찾아주신 분들께 안내드립니다.

검색어 세이초에 대한 글을 관련성을 기준으로 정렬하여 표시합니다. 날짜순 정렬 모든 글 표시
검색어 세이초에 대한 글을 관련성을 기준으로 정렬하여 표시합니다. 날짜순 정렬 모든 글 표시

2009/12/10

마쓰모토 세이초 걸작 단편 컬렉션 - 하 - 마쓰모토 세이초 / 미야베 미유키 / 이규원 : 별점 3점

마쓰모토 세이초 걸작 단편 컬렉션 - 하 - 6점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미야베 미유키 엮음, 이규원 옮김/북스피어

마쓰모토 세이초 걸작 단편 컬렉션 (중)- 마쓰모토 세이초, 미야베 미유키 엮음 / 이규원

전편들과 마찬가지로 추리소설가 미야베 미유키 여사 (이후 "여사" 생략) 가 직접 선정한 마쓰모토 세이초의 걸작 단편 컬렉션의 마지막권입니다. 이번권은 전부 3개의 장으로 구분되어 있고 마지막으로 조영일씨의 해설이 덧붙여져 마무리됩니다. 
그런데 두개의 장은 아이디어가 돋보입니다. 제 7장 "제목 짓기의 묘"는 작품을 읽기전에 제목을 보고 여사님이 내용을 먼저 상상해 보았다는 설명부분이, 제 9장의 마쓰모토 세이초 상 수상 작가에게 자신만의 마쓰모토 세이초 베스트 단편을 묻는 기획이 좋았어요.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전편들에 비하면 조금 실망스러웠습니다. 거장의 발자취를 착실하게 뒤쫓는 기획 의도는 당연히 공감합니다. 그러나 이번권은 "추리소설"을 기대하고 보기에는 좀 아니다 싶은 작품들이 대부분이었던 탓입니다. 때문에 별점은 3점입니다.

물론 작품의 수준은 높고 그 문학적 성취는 두말할 필요 없는 좋은 작품들임에는 분명합니다. 단 제 기대하고 달랐다는 것이죠...
작품별 간략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제7장 | 제목 짓기의 묘
과다 지불한 중매 사례비
시골 마을 지주의 딸 노처녀를 놓고 벌어지는 한판 사기극을 다루고 있습니다. 여사님이 나름의 상상을 펼친 설명부분 이야기도 재미있는데 제 개인적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쳐본다면 노처녀가 과연 잘생긴 부잣집 아들에게 넘어가지 않고 계속 지조를 지켰다면? 이라는 이야기로 끌고가도 재미있지 않았을까 싶네요. 조금은 유쾌한 소동극이 되겠군요^^

그리고 작품과 별개로, 당시 화폐 가치를 잘 모르겠지만 1960년 대졸 초임이 15,000엔이라고 하니 지금의 약 1/10로 치고, 요걸 기준으로 손해배상으로 청구한 금액은 80만엔이니까 약 1억원. 큰 금액이긴 하지만 무려 4명의 사기꾼들이 장기간 공들인 작전에 비하면 좀 처지는 금액이 아닌가 생각되기도 하네요.^^

살아 있는 파스칼
아내의 히스테리로 살의가 싹뜬 화가의 이야기로 도저히 "단편" 컬렉션에 들어갈 작품이 아닌 왠만한 중편 이상 길이의 기나긴 작품입니다. 작품의 모티브가 된 이탈리아 작가의 소설을 작품과 잘 결합시켜 전개하는 구성은 탄탄한 편이지만 내용에 알맹이가 없어서 실망스러웠습니다. 왜냐면 결국은 주인공 화가의 고단한 결혼생활과 그간 있었던 여성편력이 긴 내용의 대부분이라 결국 사건 자체에 관련된 내용은 너무나 짧고, 또 추리물로 보기에는 해결 부분이 합리적이지가 않아서 설득력이 너무 떨어지거든요. 마지막에 등장하는 증거는 정말이지 너무나 빈약한게 아닌가 싶어요. 차라리 그림의 완성도를 놓고 따지는 심리적인 서스펜스로 결말부분을 끌어갔더라면 더욱 좋았을텐데 말이죠...

뼈단지 풍경
마쓰모토 개인의 과거사를 다룬 듯한 서정적인 산문입니다. 할머니의 뼈단지를 찾기위한 고향 방문과 유년시절의 추억을 담담하게 펼쳐놓는 작품으로 마쓰모토 세이초라는 거장의 필력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감동적인 산문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추리물은 아니지만 이 단편집의 베스트로 꼽고 싶네요.

제8장 | 권력은 적인가
데이코쿠 은행 사건의 수수께끼─『일본의 검은 안개』에서
종전 직후 벌어진 데이코쿠 은행 강도사건을 다룬 논픽션입니다. 이 사건은 여러 경로를 통해 접해왔던 사건으로 은행 직원에게 해독제를 가장하여 독극물을 먹인 범행 방법도 놀랍지만 작가가 펼쳐놓는 배후에 731 부대가 있었다! 라는 음모이론이 상당히 합리적으로 서술되어 재미있게 읽은 작품입니다. 나름의 근거에 기반한 추리를 통해 진상을 밝혀내는 구조는 추리물로 보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어요.

까마귀
별볼일없는 인간으로 강경하게 노조활동을 하다가 모든 것을 잃은 인물과 엘리트 출신의 노조 간부로 회사와 타협한 인물. 두명의 이야기입니다. 격한 묘사를 걸쳐 의외의 결말로 귀결되는 작품으로 프레드릭 포사이스 단편집 "마지막 에이스"의 첫 단편을 연상케하는 반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하지만 반전이 생뚱맞고 동기가 불투명하며 사건 자체의 설명이 전혀 되고 있지 않은 등의 약점도 많기에 범작으로 보입니다. 아마 작가 스스로도 "노동운동"의 양면성에 대한 고발 측면이 강한 글을 쓰고 싶었던 탓이 너무 컸던게 아닌가 생각되네요.

제9장 | 마쓰모토 세이초 상 수상 작가에게 물었습니다
사이고사쓰
사이고사쓰, 즉 사이고 다카모리가 만든 휴지조각과도 같은 지폐에 얽힌 사연을 그려낸 일종의 역사물로 시대의 혼란과 그 와중에 한몫을 챙기려는 암투, 그리고 시기와 질투가 작가의 디테일한 묘사를 통해 파란만장하게 펼쳐지고 있어서 보통 이상의 흡입력을 가지는 좋은 작품입니다. 이런 류의 작품은 이렇게 써라! 라는 교과서적인 텍스트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국화 베개─누이조 약력
한 하이쿠 여성 작가의 일대기를 그려낸 작품인데 누이라는 작가가 광기에 빠져드는 과정에서 설득력이 약간 부족하지 않나 싶었습니다. 좋은 작품이기는 한데 썩 와닿지는 않았어요. 이 작품을 선정한 작가의 소갯글 처럼 "연극" (그것도 1인극 형식) 에 더 잘 어울리지 않았을까... 생각되네요.

불의 기억
과거에 대한 기억이 없는 남자가 언뜻 떠올린 기억만으로 과거를 추리해내는 일상계 추리물로 볼 수 있는 작품으로 소품이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짜임새가 높고 모든 과정이 합리적이라 이 단편집에 속한 추리물중에서는 베스트로 꼽고 싶은 작품입니다. 아주아주 간단하지만 깊이있는, 정말이지 원숙한 맛이 물씬 풍깁니다.

2009/04/13

마쓰모토 세이초 걸작 단편 컬렉션 (상)- 마쓰모토 세이초, 미야베 미유키 엮음 / 이규원 : 별점 4점

마쓰모토 세이초 걸작 단편 컬렉션 - 상 - 8점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미야베 미유키 엮음, 이규원 옮김/북스피어

마쓰모토 세이초 선생  (이후 "선생" 생략) 의 계승자이자 애호가로도 유명한 추리소설가 미야베 미유키 여사 (이후 "여사" 생략) 가 직접 선정한 마쓰모토 세이초의 걸작 단편 컬렉션 상권입니다.

마쓰모토 세이초야 뭐 추리 애호가는 누구나 알만한 거장이죠. "일본 사회파"라는 쟝르의 창시자이기도 하고 말이죠. 제가 마쓰모토 세이초 작품을 처음 접한 것은 "점과 선" 이었고, 그 이후 하서 출판사 판본을 통해 "제로의 촛점", "모래그릇" 등을 차례로 읽었고 그 이후 비교적 후기작품인 "나비성"이나 "적색등" 같은 작품까지, 국내 출간된 장편은 거진 다 읽어본 것 같습니다. 하지만 명성과 작업량에 비해 국내 출간된 작품이 수가 적고, 또 단편은 극히 드물어 아쉬움을 느끼던 차에 500페이지가 넘는 분량에 미야베 미유키 여사의 친절한 해설과 짤막한 감상, 그리고 마쓰모토 세이초의 단편이 일정한 기준으로 선정되어 실려있는 풍부한 구성이라 읽고난 후에도 만족이 큰 단편집이었습니다. 거장의 방대하고 어마어마한 작품세계를 알짜배기만 쏙쏙 뽑아 읽는 기획인지라 나름 공부도 된 것 같아 좋더군요.

이 단편 컬렉션 상권은 전부해서 4개의 큰 주제로 구성되어 있는데, 주제별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일단 제 1장인 "거장의 출발점" 은 마쓰모토 세이초의 초기작으로 추리소설은 아닌 순문학 작품 2편이 실려 있습니다. 특히 데뷰작이자 아쿠타카와 상 수상작이라는 "어느 <고쿠라 일기> 전"은 가슴이 먹먹해 지는 이야기 구성은 물론 문체나 자료 조사 등 모든 부분에서 역시나 대단함을 느끼게 한 작품이었습니다. 김성종 선생님의 "어느 창녀의 죽음" 이 떠오르기도 했고요.
두번째 작품인 "공갈자" 역시 좋은 작품이고 재미있게 읽긴 했는데, 지금 읽기에는 좀 낡은 감이 있고 탈옥에 관련된 내용이 반전같이 등장했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더군요. 너무 생각대로 이야기가 흘러가버리기 때문에 별로 상상의 여지가 없어서 좀 아쉬웠습니다. 뭐... 어차피 주제에 맞게 초기작 중에서 선정한 것이니 제 기대와 다른 것은 어쩔 수 없었겠죠. 추리물이 아니기도 하니까요.

2번째 장인 "My Favorite"는 미야베 미유키가 마음에 들어한 추리소설 4편이 실려 있습니다. "사화파"의 창시자답게 본격 정통 추리물들은 아니지만 충분히 설득력있고 지금 읽어도 그럴 듯한 트릭과 설정들이 등장하는, 그야말로 거장의 아우라를 느끼기에 충분한 좋은 작품들이 실려 있네요.
제일 먼저 등장하는 작품은 굉장히 신선하고 독특할 뿐 아니라 지금 읽어도 걸작이라 할 수 있는 "일 년 반만 기다려"입니다. 이 작품은 미야베 미유키도 해설에서 절찬하고 있는데 확실히 찬사가 아깝지 않은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주로 1인칭으로 그려지는 전개도 독특했고 말이죠. 유사한 설정의 작품인 다카키 아키미쓰의 "살의"와 비교해 봐도 재미있을 것 같은데, 다시 찾아봐야겠네요.
그리고 이어지는, 아주 단순한 단서에서 비롯되는 무서운 진상이라는 주제를 잘 표현한 "지방지를 구독하는 여자" 도 좋았습니다. 사실 저는 이 작품이 저는 "일 년 반만 기다려" 보다도 더 낫다는 생각이 드네요. 정말로 사소한 부분에서 불거지는 추리의 과정이 잘 그려져 있을 뿐 아니라 설득력 역시 충분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책의 전체 단편을 통틀어 유일하게 "탐정" 역할이 등장하기 때문에 더 마음에 들었는지도 모르겠네요. 제가 이런 고전적인 요소를 무척 좋아라 하니까요.
세번째 작품인 "이외지리"의 경우는 섬뜩한 맛이 일품인 단편인데, 이 작품의 경우는 에도 시절의 전설과 같은 이야기를 소재로 하였기에 미야베 미유키의 "혼죠 후카가와의 기이한 이야기" 느낌도 살짝 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추리적인 요소는 많이 부족하기 때문에 순전히 미야베 미유키 여사의 에도 취향이 반영된 선정이 아닐까 의심되기는 합니다...
4번째 작품인 역사추리물 "삭제의 복원" 의 경우에는 1장에 실려있던 "어느 <고쿠라 일기>전"과 연결되는 소재, 즉 일본의 문호라는 오가이의 숨겨진 이야기를 파헤치는 형식의 작품인데 역사추리물로의 완성도는 높지만, 오가이라는 인물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기 때문에 흥미가 많이 떨어진다는 것이 아쉽더군요. 소재에 대한 흥미가 제로인지라... 만약 따로 출간되었더라면 구태여 찾아 읽지 않았을 것 같은 작품이었습니다. 이 작품을 통해 "오가이"라는 인물에 대해 흥미가 생긴 것 정도가 수확이네요.

3번째 장인 "노래가 들린다, 그림이 보인다" 는 제목 그대로 노래와 그림에 대한 추리 단편 두편이 실려있습니다. 노래와 그림을 소재로 추리소설을 만드는 것에 대한 일종의 모범 답안 같은 작품들이랄까요?
"수사권외의 조건"은 과거의 히트곡을 테마로 한 단편으로, 누구나 아는 히트곡이지만 시간은 좀 흐른, 그래서 그 노래가 인상에 깊이 남는 상황을 잘 짚어낸 작품이었습니다. 90년대 후반에 서태지의 "난 알아요"를 듀엣으로 흥얼거리는 상황을 예로 들 수 있겠네요. 확실히 엄청 튈것 같기는 합니다.^^
두번째 단편인 "진위의 숲"은 길이가 제법 긴, 단편보다는 중편에 가까운 작품으로 그림 위조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작품으로, 결말이 좀 시시하고 추리물이라고 하기에는 추리적 요소가 부족한, 범죄-사기물이긴 하지만, 마쓰모토 세이초라는 작가의 새로운 면을 접한 것 같아 굉장히 신선하기도 했고 워낙에 소재가 독특해서 아주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갤러리 페이크"의 한 에피소드를 읽는 기분이었달까요? 그러고보니 이 작품의 주인공도 엘리트지만 현재 일본 미술계에서 왕따가 되어버렸다는 측면에서 후지타 레이지와 왠지 겹쳐보이기도 합니다.^^

마지막인 제 4장 "‘일본의 검은 안개’는 걷혔는가" 는 마쓰모토 세이초의 많은 논픽션 시리즈 작품들 중에서 쇼와사 발굴이라는 주제의 2.26 사건 (군부 쿠데타 미수 사건) 관련 글, 그리고 전후 일본의 이른바 "추방"과 "레드퍼지 (좌익 세력 말살) 를 다룬 글, 이렇게 두편의 논픽션을 골라서 실어 놓았습니다. 그러나 솔직히 별 재미가 없어서 대충 읽어버렸네요. 잘 알지도 못할뿐더러 애시당초 별 관심 없는 분야였거든요. "추방과 레드퍼지" 편은 해방 직후 우리나라 상황과 오버랩되는 재미는 좀 있었지만 뭐 그뿐이었습니다. 다양한 쟝르에 손을 댄 "거장" 의 대표작을 엄선했다는 작품집 취지 탓에 당연히 포함된 것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논픽션 대신 추리단편을 더 실어주는 것이 훨씬 나았을 것 같아요. 마쓰모토 세이초의 히트 논픽션인 "일본의 검은 안개" 라는 시리즈 물 제목에서 "검은 안개"라는 말이 처음 등장했다.. 정도만 새롭게 다가온 정도입니다.

덧붙여, 4개의 주제가 모두 끝난 뒷부분에는 마쓰모토 세이초와 같이 일했던 편집자 3인의 짤막한 추억담이 실려있습니다. 일종의 부록같은 느낌인데 거장이 편집자에게 시키는 "자료조사" 라는 것이 상당히 중요한 비중으로 등장하는 것이 인상적이더군요. 앞서 말했던 "고증"과 "자료조사" 가 중요한 이야기들의 방대하고 치밀한 조사 내용을 볼 때. 편집자들의 노고가 느껴져 절로 고개가 숙여질 뿐입니다. 지금이야 인터넷 등으로 업무가 좀 편해졌을 것 같은데 60~70년대의 자료조사는 정말 발로 뛰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었을테니... 편집자들의 고생을 생각하면 눈물이 앞을 가리네요. 또 이렇게 편집자를 부려먹을(?) 수 있는 "거장"의 "당당한 작업 태도" 는 부러울 따름이고요. 쩝.

결론적으로, 별점은 4점입니다. 기획과 구성은 물론 선정된 작품 거의 대부분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죠. 친절한 해설과 미야베 미유키의 짤막한 감상도 무척 좋았기에 이어질 다음 권들도 기대가 아주 큽니다. 책의 디자인도 그럴듯 했고 말이죠. 3권이 연달아 꽂혀 있는 책장의 모습을 빨리 보고 싶네요^^ 개인적 베스트는 "지방지를 구독하는 여자" 를 뽑겠습니다.

PS : 마쓰모토 세이초 탄생 100주년을 맞아 대표작들의 다양한 영상화가 이루어진다고 하는데 구해보고 싶습니다...

2009/07/22

마쓰모토 세이초 걸작 단편 컬렉션 (중)- 마쓰모토 세이초, 미야베 미유키 엮음 / 이규원 : 별점 3점

마쓰모토 세이초 걸작 단편 컬렉션 - 중 - 6점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미야베 미유키 엮음, 이규원 옮김/북스피어

마쓰모토 세이초 걸작 단편 컬렉션 (상)- 마쓰모토 세이초, 미야베 미유키 엮음 / 이규원

간만에 읽어보는 신간입니다. 어차피 고전작품이니 신간이라 하기도 좀 어렵겠지만, 어쨌건 올 4월에 읽었던 마쓰모토 세이초 선생(이후 "선생" 생략)의 계승자이자 애호가로 유명한 추리소설가 미야베 미유키 여사(이후 "여사" 생략)가 직접 선정한 마쓰모토 세이초의 걸작 단편 컬렉션 중권입니다. 상권 출간 후 3개월만이네요.

상권은 4개의 큰 주제로 구성되었는데, 이 중권은 여자"와 "남자"라는 단순하면서도 쌍을 이루는 딱 2개의 주제로만 구성되어 있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두 주제 모두 앞에 미야베 미유키의 해설이 붙어있다는 것은 상권과 같지만 해설이 너무 멋드러지게, 감칠맛나게 쓰여진 덕분에 작품 본편 내용보다도 멋지게 느껴졌습니다.

일단 짤막하게 작품별로 소개하자면 제 5장 "쓸쓸한 여인들의 초상" 에는 4편의 중단편이 실려있습니다.
첫 번째 작품인 "멀리서 부르는 소리"는 언니의 남편을 사랑하게 된 여성의 감정을 3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일종의 순애보와 같은 가슴 먹먹한 사랑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아무런 사건이 없이 단지 숨겨진 감정의 단편만을 엿보는 구조라 굉장히 의외였습니다. 솔직히 언니를 살해하는 전개로 진행될줄 알았거든요.

두 번째 작품 "권두시를 쓰는 여자"는 일상계 + 본격 미스터리가 결합된 좋은 단편입니다. 하이쿠 동인지에 열성적으로 시를 보내던 한 동호인의 시가 몇 달동안 오지 않자, 동인지 관계자들이 그 이유를 탐문하다가 뒤에 숨겨진 살인 사건을 밝혀낸다는 내용이거든요. 쉽게 지나칠법한 단순한 소재에서 극적인 드라마를 이끌어내는 거장의 노련함이 느껴졌습니다. 하이쿠 동인들이 오지랍이 너무 넓다 싶기는 한데, 이 정도야 허용범위 이내일 테지요. 시대를 떠나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작품입니다.

세 번째 작품 "서예강습"은 중편 이상 길이의, 이 책의 1/3 이상을 차지하는 긴 작품입니다. 일단 길이로 다른 작품들을 압도하는 만큼 세부 묘사도 굉장히 치밀합니다. 디테일이 잘 살아있어요.
그러나 치밀한 디테일 묘사를 제외하고는 중편으로서 존재할 필요가 있는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한 남자가 불륜 관계에서 벗어나기 위해 상대방을 살해한다는 단순하면서도 뻔한 이야기인 탓입니다. 상세한 설정, 특히 "서예 강습" 이라는 이색적인 소재로 포장한건 좋지만 지나치게 장황한 감이 있어요.
나름 기발한 아이디어가 뒷받침 된 "사체 유기"도 썩 설득력이 있다고 보이기는 어렵고요.

그래서 전체적인 수준을 평가하자면 범작 정도에 그칩니다. 무엇보다도 주인공이 남자이며 이야기도 여자에 대한 것 보다는 수렁에 빠지는 남자에 대한 내용이라서, 왜 "쓸쓸한 여인들의 초상"에 속해야 하는지도 의문입니다.

네 번째 작품 "결혼식장의 미소"는 짤막한 소품입니다. 기모노 입히기 자격증 (별게 다 있네요)를 소재로 하여 인간사에 있음직한 에피소드를 이야기로 풀어냈지요. 유사한 소재로 이야기를 풀어나갔던 "사원 시마"의 한 에피소드가 연상되기도 했습니다. 추리소설이라고 보기는 어렵고 그냥 드라마성 짙은 꽁트로 보는게 적합하겠네요.

그런데 이 작품 역시 주제와 좀 어울리지 않는 것이, 저는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별로 쓸쓸하다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제 6장 "불쾌한 남자들의 초상" 도 역시 5장과 대칭을 이루듯 모두 네 편의 단편이 실려있습니다.
첫 번째 작품 "공범"은 아주 기발합니다. 공범과 함께 은행을 턴 뒤 그 돈으로 사업에 성공한 사업가가 공범이 혹시나 생계가 어려워져 자신을 협박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사로잡힌다는 설정이 정말 마음에 들었어요. 마지막에 노숙자로 전락한 공범자가 서서히 자신이 있는 곳으로 다가온다는 묘사는 미야베 미유키 말대로 "호러" 그 자체였고 말이죠. 

그러나 후반부의 급반전이 너무나 깜짝쇼 수준이라 차라리 반전없이 서서히 다가오는 공포 부분에서 끝내는 것이 더 좋았을것 같습니다. 아르바이트에 불과한 다카오카가 왜 사건에 집착하며 진상을 밝혀내려고 하는지에 대한 이유가 전혀 등장하고 있지 않는 것도 설득력을 너무 떨어트렸고요.

좋은 작품이라는건 확실하지만, 이런 문제 때문에 뒷끝이 개운치는 못합니다.

두 번째 작품 "카르네아데스의 판자"는 대학교수 구무라의 치밀한 완전범죄를 다루고 있습니다...만, 대학교수의 심리 묘사를 제외하고는 공감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제목의 "카르네아데스의 판자", 즉 형법상의 긴급피난과 같은 항목이 적용되는 사건도 아니고 말이죠. 결국 주인공의 복수조차 자신의 파멸을 담보로 한 것인데 이것이 과연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까요? 

이 작품에서 재미있었던 것은 역사학계를 무대로 한 학자들의 출세욕에 대한 이야기이지 결코 범죄이야기가 아닙니다. 여러모로 아쉽습니다.

세 번째 작품 "공백의 디자인"은 추리 소설은 아니고 한 소규모 지방지의 광고부장의 눈물겨운 광고주 접대가 전편에 펼쳐지는 최루성 샐러리맨 드라마(?)입니다. 직장인으로 정말이지 공감가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더라고요. 저도 슈퍼갑이라 불리우는 업체들의 횡포를 잘 알기에 눈물없이 볼 수 없었습니다.

단, 여기의 우에키 부장처럼 최후의 순간이 닥치면 한번 뒤집어 엎을 것 같은데, 그러한 마무리 없이 끝나버려 허무했습니다. 샐러리맨의 고충만 그려졌을 뿐 거기서 표출할 수 있는 분노, 그리고 카타르시스가 없어서 드라마가 맥이 빠져버렸어요.

네 번째 작품이자 마지막 작품인 "산"은 굉장히 특이한 범죄 스릴러물입니다. 뭐가 특이하냐 하면 피해자, 즉 협박을 받는 당사자의 심리가 전혀 묘사되지 않는다는 것과 협박의 실질적인 과정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때문에 독자는 현재의 상황을 미루어 판단할 뿐입니다.
이색적일 뿐더러 탐정역을 맡고있는 작가 오카모토의 시선과 독자를 동일하게 위치시키는, 효과적이면서도 공들인 설정이라 생각되네요. 

하지만 이외의 내용은 평이한 협박물 수준이며 탐정역이 사건을 밝혀내는 과정이 그다지 매끄럽지 않고 우연 (피해자 동생의 편지)에 기대고 있기에 높은 점수를 주기는 어려운 평작입니다.

전체적으로 평가하자면 기대했던 추리적인 요소가 그닥 녹아있지 않아 조금은 실망스러운 독서였습니다. 추리적인 요소로 만족스러웠던 작품은 개인적인 베스트이기도 한 "권두시를 쓰는 여자"가 거의 유일했거든요. 다른 작품들은 정통 추리물로 보기에는 탐탁지 않은 요소들이 많아서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기대만큼" 이 아니었다는 것이지 결코 재미없거나 수준 미달의 작품들이 아닙니다! 재미있게 시간가는줄 모르고 읽기에는 충분한, 거장의 노련함을 느낄 수 있는 좋은 작품집임에는 분명하죠. 별점은 3점입니다.

아울러 부록 형식으로 미야베 미유키가 독자들에게 묻는 최고의 마츠모토 세이초 작품이 무엇인지에 대한 설문 조사 결과가 실려있는데 역시나 예상대로 "점과 선", "모래그릇", "제로의 촛점" 순이더군요. 제 마음 속 순위도 동일합니다.^^

2013/03/12

잠복 - 마쓰모토 세이초 / 김경남 : 별점 3점

잠복 - 6점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김경남 옮김/모비딕

모비딕과 북스피어의 세이초 시리즈 중 처음으로 간행된 단편집. 표제작 포함 총 8편의 단편이 실려있습니다.

세련된 책 디자인부터 시작해서 깔끔한 번역, 명쾌한 해설 등 흠잡을 데 하나 없는 시리즈의 한 권이며, 정통 추리물부터 순문학에 가까운 범죄드라마까지 실려있기 때문에 마츠모토 세이초의 진면목을 느끼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책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8편 중 4편이 이미 읽어보았던 작품이라는 것입니다. 그것도 3편은 바이블이라 할 수 있는 "미야베 미유키의 마쓰모토 세이초 걸작 단편 컬렉션" 에 수록되어 있고요. 이 단편집을 구해서 읽을 정도라면 미야베 미유키의 걸작 단편 컬렉션 정도는 모두 갖춰 읽었을 텐데, 중복되는 작품이 많은 것은 굉장히 아쉽습니다.

때문에 결론적으로 별점은 3점. 이 책 자체만 놓고 본다면 4점도 충분하나 어쩔 수 없는 반쪽자리 책이기에 약간 감점하였습니다. 미야베 미유키의 책을 읽지 않으셨다면 추천드립니다.

수록작별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얼굴"

"Japan 미스터리 걸작선 1"에서 예전에 읽었었던 작품이기는 한데, 이 책의 번역이 훨씬 좋아서 다시 읽는 맛은 충분했습니다. 이시오카에게 온 편지를 경찰이 의심하는 이유가 합리적으로 설명되는 등 추리적인 요소도 담뿍 담겨있고요. 그러나 결말의 급작스러움은 여전히 조금 아쉽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잠복"

강도 사건의 범인을 검거하기 위해 그의 옛 연인이 결혼 후 살고 있는 시골 소도시로 잠복 수사를 떠난 형사 유키의 이야기. 단순한 잠복 말고 별다른 내용은 없는 작품이라 추리물로 보기는 다소 어렵습니다. 

그래도 결혼 후 서서히 말라죽어가는 한 여인에게서 갑자기 불꽃이 튀는 전개는 상당히 인상적이었어요. 워낙 잘 쓴 글이라서, 거장의 시작을 느끼기에는 충분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귀축"

바람을 피우다 들통난 뒤 세 자녀를 떠안게 된 남자가 본처의 등쌀에 못 이겨 아이들을 제거해나간다는 내용의 작품. 제목 그대로 "귀축"스럽습니다. 자기 아들딸로 알고 있던 아이들을 버리고 죽인다는, 잔인하고 비상식적인 행동을 굉장히 설득력 있게 표현하고 있어서 소름이 돋네요.

다만 추리적으로는 눈에 띄지는 않습니다. 막내아들의 사망사고, 큰아들 리이치가 가지고 놀던 돌과 인쇄소를 연결하는 부분 정도만 눈여겨볼 만합니다. 추리물이라기보다는 범죄 드라마라고 보아야겠지요. 별점은 3점입니다.

"투영"

시골 소도시의 부정부패에 맞서던 한 공무원의 사고사에 얽힌 진상을 추적해나가는 내용으로 정교한 원격 살인 트릭이 등장하는 정통 추리물입니다. 그러나 술에 취했다고 해도 용접 불빛과 카메라 플래쉬, 외등을 착각하고 아예 방향을 반대로 잡는다는게 가능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술에 취하면 착각보다는 몸에 익은 습관, 즉 원래 가던 방향으로 갔을텐데 말이지요.

현실을 고발하는 사회파적인 분위기가 몰락한 신문기자 캐릭터인 주인공 다이치와 "요도신보" 관계자들을 통해 생생하게 그려지는 건 꽤 볼만했지만, 추리물로 점수를 주기는 어렵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목소리"

실수로 강도살인사건 범인의 목소리를 들었던 전화교환수가 1년 뒤 범인의 목소리를 다시 들은 뒤 살해당한다는 내용으로 알리바이 트릭이 등장하는 정통 추리물입니다. 굉장히 복잡하고 정교하게 짜여진 트릭이라서 정통 추리적인 부분에서의 만족도는 높습니다.

그러나 도모코의 남편 시게오가 범인들과 엮인다는 설정부터 작위적입니다. 피해자 도모코가 제 발로 범인들에게 찾아간 이유도 석연치 않고요. 여러모로 전개는 그다지 정교하지 못합니다. 게다가 범인들이 석탄을 이용하여 복잡한 알리바이 트릭을 만든 이유도 잘 설명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지방신문을 구독하는 여자"

"일년반만 기다려"

"마쓰모토 세이초 걸작 단편 컬렉션 (상)"에 실렸던 작품들입니다. 좋은 작품들이죠. 두 작품 모두 별점은 3점.

"카르네아데스의 널"

"마쓰모토 세이초 걸작 단편 컬렉션 (중)"에 수록된 작품. 평가는 전과 동일합니다. 별점은 2점.

다시 읽어보아도 구무라라는 녀석이 대체 무슨 생각이었는지 알 수 없네요. 자기 말대로 협조해준 애인 스미코를 더럽혀졌다고 버릴 생각을 하다니...

2013/11/21

D의 복합 - 마쓰모토 세이초 / 김경남 : 별점 2점

D의 복합 - 4점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김경남 옮김/모비딕

아래 리뷰에는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무명작가 이세에게 월간지 "구사마쿠라"의 편집차장 하마나카라가 찾아왔다. 고액의 원고료로 연재물을 의뢰하기 위해서였다. 연재물은 '전설을 찾아가는 벽지 여행'이라는 민속학 테마를 가진 여행기 기획이었다. 돈과 독특한 주제에 끌린 이세는 첫 연재를 성공리에 마쳤다.
그러나 이후 미마코라는 팬이 찾아와 여행기에 실린 장소에 대해 "35"라는 수수께끼와 같은 말을 남기고 살해당했고, 이세는 하마나카와 함께 첫 연재 당시 취재 여행에서 휘말렸던 시체 발견 사건과 엮인 진상을 추적해 나간다...

마쓰모토 세이초의 장편소설. 이럭저럭 리뷰를 올린 세이초 작품도 열 편이 넘었네요.

무명작가가 거액의 원고료로 이름도 모르는 잡지의 연재를 맡게 된다는 설정은, 곧 이 작가가 누명을 쓰고 사건에 휘말리겠구나...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 정도로 뻔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예상을 깨고 잡지도 제대로 된 잡지였고, 연재도 좋은 평가를 받는다는 전개로 이어져 조금 놀랐습니다. 의외의 요소가 신선하게 다가왔달까요.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결국 연재는 무언가에 이용된 것이었고 제대로 완결되지 못해서 작가가 스스로 사건에 뛰어들어 진상을 파헤치려 한다는 뻔한 내용으로 흘러갑니다.

이렇게 되면 작가의 연재물에 관련된 진상이 무엇인지가 이야기의 핵심이자 재미의 축이 되어야 합니다. 또 다른 한 가지 축인 사건의 흑막은 작가의 입을 빌어, 하마나카가 뭔가 꾸미고 있다는게 초반에 드러나기니까요, 허나! 아쉽게도 실제 사건의 진상은 솔직히 어이가 없는 수준이었습니다. 이유는 명확해요. 한마디로 억지스럽기 때문이죠. 과거 아버지의 억울함을 복수하기 위한 행동치고는 전혀 와닿지도 않았고요.

35라는 숫자에 맞춰 여행지를 정하고 그것을 이용해 협박한다는 것부터가 말이 안됩니다. 민속학이라는 주제에 따라 닥치는 대로 돌아다니면서 조사하던 와중에 시체가 발견되는 사건이 있었다는 단순한 글을 가지고 나라바야시가 자신을 협박한다는 사실을 알아챈다? 작중에서도 보통 인물이 아닌 서번트 미마코만 알아낼 정도의 어려운 정보로, 비록 나라바야시가 전 뱃사람이란 설정이 있긴 하지만 이건 완전히 무리입니다. 바다도 아니고 육지인데 누가 경도와 위도를 찾아볼까요? 당장 저만 해도 제가 살고 있는 곳의 경도와 위도도 모르는 판인데...

또 설령 협박 사실을 알아냈다 하더라도 공소시효도 지나고 증거도 없는 사건 때문에 두 건의 살인을 저지른다는건 억지 중의 억지였어요. 보통 사람이라면 예전에 그런 일이 있었는데 다 오해로 비롯된 거다. 미안하다 정도로 사과하고 하마나카에게 돈 몇 푼 쥐어주고 끝냈을 겁니다.

복수극으로도 완벽하게 수준 미달입니다. 대체 하마나카라는 친구는 왜 이렇게 힘들고 복잡한 공작을 꾸민 건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협박을 할 거면 증거를 모은 뒤 해당 사건에 대한 기사를 쓰지, 암호보다 어려운 연재물로 은근하게 접근할 당위성 자체가 없으니까요. 어차피 죽일 것이었다면 정체를 숨기고 일하다가, 같이 식사도 하는 등 많이 친해졌으니 때를 봐서 죽이는 게 나았을 테고요. 나라바야시가 미마코를 죽이지 않고 위에 이야기한 대로 당당하게 처신했더라면 과연 어떻게 했을지도 궁금합니다.

이외에도 사회파적인 특성을 전혀 드러내지 않는 평이한 내용, 작위적으로 얽히고 운이 많이 개입된 인간관계와 전개도 실망스러웠어요. 깊은 민속학적 소양을 보여주는 연재물과 여행지에 대한 설명도 그럴듯하긴 했으나 현학적 측면 이외의 작품에 미치는 영향이나 재미도 전무해서 지루했고요.

물론 건질 게 없진 않습니다. 실제 당시 잡지에 연재된 연재물답게 다음 단계, 다음 단계로 넘어가며 독자를 몰입하게 만들기 때문으로 무명 작가에게 찾아온 수상한 의뢰에서 시작되어 그 의뢰에 따라 작성한 글에 대한 수수께끼, 수수께끼를 풀어나가는 와중에 벌어지는 살인사건 등 착실하게 궁금증과 재미를 쌓아나가는 솜씨 하나만큼은 정말로 일품이었습니다. 확실히 독자를 몰입시키는 능력만큼은 세이초라는 이름에 값하는 작품이에요.

아울러 35에 관련된 지명을 쭉 늘어놓고 각 지역의 풍광을 소개하는 여정 미스터리 같은 묘사도 좋았어요. 작가가 실제 장소를 전부 답사하는 모습이 머리에 떠오를 정도로 말이죠.

그러나 제 별점은 2점입니다. 세이초의 깊은 민속학 소양과 더불어 여정 미스터리라 해도 좋을만큼의 풍광 묘사는 분명 인상적이지만, 뭔가 핀트가 맞지 않고 방대한 분량이 낭비된 느낌이 강한 탓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여태까지 읽은 '세이초 월드' 시리즈 중에서는 가장 별로였습니다.

2003/12/14

문예춘추 선정 일본 미스테리 100선

원 출처는 심농님의 홈페이지였으며 (현제 폐쇄), 내용은 국일미디어 간 "유령신사" 뒷부분에도 실려있습니다. 해설은 원본 작성하신 분과 제 의견이 섞여 있습니다. 이런 리스트는 사실 별 의미는 없지만 제목만 보는것도 꽤 재미있더라고요.

001 옥문도 1947 요코미조 세이시 /요코미조 세이시는 긴다이치 하지메(김전일)의 할아버지 긴다이치 코스케의 창조자입니다. 뛰어난 본격 작가죠.
002 허무에의 공물 나카이 히데오 / 이번에 동서에서 나오는 모양입니다.
003 점과 선 1957 ; 마츠모토 세이초 / 열차 시간표를 이용한 트릭
004 불연속 살인사건 1947 ; 사카구치 안고 /ㅎㅎ 바로 전에 읽었던 작품이죠. 동서에서 이번에 나왔습니다.
005 흑사관 살인사건 1934 ; 오구리 무시타로 / 동서에서 나오는 모양입니다.
006 도구라 마구라(환마술) 1935 ; 유메노 규사쿠 / 역시 이번 동서 리스트에.. (대체 언제 나올지는 의문입니다만)
007 혼진 살인사건 1945 ; 요코미조 세이시 /긴다이치 코스케가 처음으로 등장하는 작품이죠. 트릭은 수긍하기 힘들지만 역사적인 의미가 더 큰 듯 싶습니다.
008 검은 트렁크 1956 ; 아유가와 데츠야 / 동서에서 역시 이번에...
009 회귀천 정사 1980 ; 렌죠 미키히코 / 앗 모르는 작품 (*2011년 시공사에서 출간됨. 걸작입니다)
010 문신 살인사건 1948 ; 다카키 아키미츠 / 유명한 작품이죠. 어서 제대로 다시 소개가 됐으면 좋겠네요. (*동서에서 출간)
011 산고양이의 여름 1984 ; 후나토 요이치 / ?
012 대유괴 1997; 텐도 신 /텐도 신의 대유괴도 참 많이 들어본 작품입니다. (*출간되었습니다. 좋은 작품이에요)
013 이전동화 1923 ; 에도가와 람포 / 국내 소개 됐고 단편입니다. 데뷰작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일종의 암호 트릭. 동서 "음울한 짐승"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에도가와 란포 전단편집 1에도 수록)
014 음수 1928; 에도가와 람포 / 에도가와 람포의 초기 작품 중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알려져 있죠? 동서의 "음울한 짐승" 입니다. (*에도가와 란포 전단편집 2권에도 수록)
015 제로의 초점 1959 ; 마츠모토 세이초 /0의 초점으로 국내에 출간돼 있죠. 저도 하서판으로 갖고 있는데 전형적인 사회파 작품입니다.
016 11매의 트럼프 1976 ; 아와사카 츠마오
017 아 아이이치로(악애일랑)의 낭패 1978 ; 아와사 카츠마오 / 이 작품도 많이 상위권에 언급되는 작품입니다만.. (*시공사에서 출간, 좋은 작품입니다)
018 기아해협 1962 ; 미나카미 츠도무
019 고메스의 이름은 고메스 1962 ; 유키 쇼지 /역시, 낯이 익습니다. 흠. (*검은숲에서 출간) 
020 위험한 동화 1961 ; 츠치야 다카오 / 작가는 낯이 익은데..
021 점성술 살인사건 1981 ; 시마다 소지 / 나왔군요! 걸작~
022 복잡한 기계 장치 1978 ; 아와사카 츠마오
023 사건 1977 ; 오오카 쇼헤이
024 우리 1983 ; 기타가타 겐조
025 심리시험 1925 ; 에도가와 람포 /동서 "음울한 짐승"에 수록. 조금 낡은 트릭입니다만, 재미 있습니다. (*에도가와 란포 전단편집 1에도 수록)
026 상자 속의 실낙 1978 ; 다케모토 겐지
027 굶주린 늑대 1981 ; 시미즈 다츠오
028 대낮의 사각 (백주의 사각) 1959 ; 다카키 아키미츠 / 이 작품도 대표작 중 하나라고 알고 있습니다. 동서에서 나온다곤 하는 것 같은데요.. (*검은숲에서 출간)
029 황토의 분류 1965 ; 이쿠지마 지로
030 도망의 거리 1982 ; 기타가타 겐조
031 야수는 죽어야 한다 1958 ; 오야부 하루히코 / 고려원에서 문고판으로 나온 책입니다.
032 인형은 왜 살해되는가? 1955 ; 다카키 아키미쓰 / 아키미쓰의 작품이 세 개나;; 흠 보고 싶어요. (*검은숲에서 출간됨)
033 나메쿠지 쵸야 체포 소동 1968 ; 츠츠키 미치오.
034 끝없는 추적 1967 ; 이쿠지마 지로
035 고양이는 알고 있다 1957 ; 니키 에츠코 /역시 들어봤던 작품 (*시공사에서 출간되었습니다)
036 묵시록의 여름 (섬머 아포칼립스) 1981 ; 가사이 기요시
037 고도의 마인 1929 ; 에도가와 람포 /국내에 나와 있죠. 하서판으로 읽었는데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좋은 작품입니다.
038 검은 백조 1959 ; 아유가와 데츠야
039 타오르는 파도 1982 ; 모리 에이
040 변호 측 증인 1963 ; 고이즈미 기미코 / 검찰측 증인인가...^^ (*검은숲에서 출간, 무난했습니다)
041 그림자의 고발 1963 ; 츠치야 다카오 /오 제목이 정말 멋지군요.
042 악마의 공돌이 노래 1957 - 요코미조 세이시 /흠 정말 보고 싶었던 작품.
043 기울어진 저택의 범죄 1982 ; 시마다 소지 /미타라이 탐정의 두 번째 사건. 너무 보고 싶어요. (*시공사에서 출간)
044 여덟 개의 묘가 있는 마을 1949 ; 요코미조 세이시 / 팔묘촌..
045 신사동맹 1980 ; 고바야시 노부히코
046 징기스칸의 비밀 1958 ; 다카키 아키미츠 /이 소설도 상당히 유명한 작품으로 역사 미스테리로 알고 있습니다.
047 갈라진 해협 1983 ; 시미즈 다츠오
048 리라 장 사건 1968 ; 아야가와 데츠야
049 오시에와 여행하는 남자 1929 : 에도가와 람포
050 마른 풀의 뿌리 1961 ; 친신
051 밤의 오딧세이아 1981 ; 후나토 요이치
052 고층의 사각 1969 ; 모리무라 세이이치 /정말 엄청나게 끈질긴 작품입니다. 하서 수록.
053 모래그릇 1960 ; 마츠모토 세이초 /역시 하서. 당시로서는 기발한 흉기가 나오는 전형적인 사회파 작품
054 바이 바이 엔젤 1979 ; 가사이 기요시
055 한시치 체포록 1917 ; 오카모토 기도 / 와 정말 옛날 작품이네요. (*책세상에서 출간)
056 파노라마 섬 기담 1926 ; 에도가와 람포
057 한 개의 납 1959 ; 사노 요 /단편이 국내에 소개가 됐어요
058 사루마루 환상 여행 1980 ; 이자와 모토히코
059 고양이 혀에 못을 박아라 1961 ; 츠즈키 미치오
060 초대받지 않은 손님 1980 ; 사사자와 사호 /사사자와 사호도 많이 언급되는 작가.
061 짙은 갈색의 파스텔 1982 ; 오카지마 후다리
062 인생의 바보 1936 ; 기키 다카타로
063 배덕의 메스 1960 ; 구로이와 쥬고 /제목 참;;
064 증발 1972 ; 나츠키 시즈코 / W의 비극이 대표작아닌가요? 이 작품은 잘 모르겠는데 더 순위가 높네요.
065 나폴레옹 광 1979 ; 아토다 다카시 /단편입니다. 월간 미스터리에 수록된 작품. 단편집도 국내에 출시가 됐었는데요. 저는 참 좋아하는 작가입니다. 서늘~합니다.
066 부호 형사 1978 ; 츠츠이 야스다카 / SF소설가로 더 유명한 작가인 듯 한데 이 작품도 보고 싶네요. (*검은숲에서 출간, 솔직히 실망스러웠습니다)
067 샤라쿠 살인사건 1983 ; 다카하시 가츠히코
068 잠 없는 밤 1982 ; 기타가타 겐조
069 나비부인 살인사건 1946 ; 요코미조 세이시 / 동서에서 나왔습니다. "혼진 살인사건"과 같이 수록 되어 있습니다.
070 죽음이 있는 풍경 1965 ; 아유가와 데츠야
071 살인귀 1931 ; 하마오 시로
072 불꽃에 그림을 1966 ; 친신
073 검은 화집 1960 ; 마츠모토 세이초
074 아쿠쥬로 체포기록 1939 ; 히사오 쥬란
075 W의 비극 1982 ; 나츠키 시즈코 / 좋은 작품입니다.
076 베를린 1888년 1967 ; 가이도 에이오
077 안녕 아프리카의 여왕 1979 ; 모리 에이
078 단쥬로 할복 사건 1959 ; 도이다 야스지
079 거대한 환영 1962 ; 도가와 마사코 / 국내 소개된 작품은 "레이디 킬러"
080 마리오네트의 덫 1977 ; 아카가와 지로 / 유명세에 비하면 작품은 사실 좀 별로라는 생각이...^^ (*국내 출간, 쓰레기였습니다)
081 완전범죄 1933 – 오구리 무시타로
082 내일 날씨로 해두게 1983 ; 오카지마 후다리
083 삼중노출 1964 - 츠즈키 미치오
084 살아나는 황금늑대 1964 ; 오야부 하루히코
085 어두운 낙조 1965 ; 유키 쇼지
086 인간의 증명 1975 ; 모리무라 세이이치 / 어머니.. 그때 그 밀짚모자...
087 유령 열차 1976 - 아카가와 지로 / 아마 데뷰작이죠? (*국내 출간,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088 뺑소니 1969 ; 사노 요
089 유괴작전 1962 - 츠즈키 미치오
090 비합법원 1969 ; 후나토 요이치
091 장미여자 1983 : 가사이 기요시
092 스탈린 암살 계획 1978 ; 히야마 요시아키
093 친구여 조용히 잠들라 1983 ; 기타가타 겐조
094 돌밑의 기록 1948 - 오시타 우타루
095 추락 1958 ; 다카가와 교
096 우리들의 시대 1978 ; 구리모토 가오루
097 호크씨의 타향의 모험 1983 ; 가노 이치로
098 북의 유즈루, 저녁 하늘을 나는 학 1984 ; 시마다 소지 /보고 싶어요;; (*국내 출간)
099 50만 년의 사각 1976 ; 도모노 로
100 살인에의 초대 1973 ; 텐도 신

2013/07/22

일본의 검은 안개 (상) - 마쓰모토 세이초 / 김경남 : 별점 2.5점

일본의 검은 안개 - 상 - 6점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김경남 옮김/모비딕

마쓰모토 세이초가 발표하여 일세를 풍미했던 전설적인 논픽션이 드디어 정식으로 번역되어 출간되었습니다. 이런 책까지 읽을 수 있게 되다니, 정말 세상이 좋아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본 작품은 총 2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권에는 모두 6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목차는 아래와 같습니다.

  • 『일본의 검은 안개』를 헤쳐가는 방법 - 모비딕 편집부 서문
  • 1장: 출근길에 사라진 총재 - 시모야마 국철총재 모살론
  • 2장: 10분간 2,000피트, 고도 유지 - 목성호 추락 사건
  • 3장: 누가 자전거를 쐈는가 - 시라토리 사건
  • 4장: 쓸모 있는 자와 쓸모 없는 자 - 라스트보로프 사건
  • 5장: 혁명을 파는 남자 - 이토 리쓰 사건
  • 6장: 검은 돈의 뿌리, 빙산의 일각 - 2대 부정부패 사건

사회파 추리소설은 사회 고발적인 요소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논픽션과 유사한 면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사회파 추리소설의 거장이자 실제 언론인이기도 했던 마쓰모토 세이초가 쓴 논픽션이, 단순한 사건 추적을 넘어 흥미로운 추리소설을 읽는 듯한 재미를 선사해 주는건 그렇기 때문이겠지요.

다만, 이 책에 실린 사건들은 발표 당시 일본에서는 큰 반향을 일으켰겠지만, 반세기가 지난 오늘날 한국 독자들에게는 다소 생소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는 점은 아쉬웠습니다. 저 역시 이름이라도 들어본 사건은 ‘시모야마 국철총재 사건’ 하나뿐이었거든요. 그런 이유로 별점은 2.5점입니다.

물론 거장의 대표 논픽션이라는 점에서 가치 있는 작품임에는 틀림없지만, 같은 논픽션이라면 국내 추리 애호가 분들께는 다루는 사건 자체가 좀 더 흥미로운 "미스터리의 계보"를 먼저 추천드립니다.

"출근길에 사라진 총재"
‘빌리 배트’에도 등장했던, 시모야마 국철총재가 실종 후 열차에 치인 시신으로 발견된 사건을 다룬 이야기입니다. 수사는 자살로 종결되었지만, 마쓰모토 세이초는 이를 미군정 G2와 GS 간의 권력 다툼에서 비롯된 모략으로 해석하며 다양한 정황과 증거를 통해 설득력 있게 제시합니다.

특히 시모야마 총재의 속옷에만 묻어 있던 기름, 절단된 시신과 멀쩡한 겉옷, 사체에서 나온 색색의 가루 등은 모두 치밀하게 분석되며, 그가 어디에 감금되었는지를 추리하는 장면이나 기차 시간표를 통해 사건을 재구성하는 장면은 마치 본격 추리소설을 읽는 듯한 재미를 줍니다. 논픽션으로도, 재미로도 뛰어난 이야기로, 꼭 한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10분간 2,000피트, 고도 유지"
1952년, 33명의 승객을 태운 채 추락한 ‘목성호’ 항공기의 사고를 다룬 이야기입니다. 유일한 여성 승객이었던 오하라인 요코가 다이아몬드 밀수 공작의 희생양이라는 가설도 등장하지만, 점령기 미군의 실수였을 가능성으로 마무리되어 결말은 다소 싱거웠습니다. 분량도 25페이지 남짓으로 짧은 탓에, 여러모로 큰 인상을 주지는 못하네요.

"누가 자전거를 쐈는가"
삿포로에서 발생한 경찰관 시라토리 사살 사건의 전말을 다루고 있습니다. 공산당 조직을 해체하려는 모략이라는 시각에서 접근하지만, 사건 자체가 한국 독자 입장에서는 그리 흥미롭지 않아 몰입이 어려웠습니다. 유사한 일이 한국에서는 자주 벌어졌던 탓도 있을 것 같습니다.

"쓸모 있는 자와 쓸모 없는 자"
주일 소련 대표부의 라스트보로프가 실종 후 미국으로 망명한 사건을 추적합니다. 처음에는 대단한 인물인 줄 알았지만, 실제로는 이렇다 할 정보도 없는 인물로 밝혀져 다소 허무하게 느껴졌습니다. 냉전기의 일본이 미·소 간의 첩보 충돌 지대였다는 역사적 의미는 느껴졌지만, 지금의 독자들에게는 큰 흥미를 주기 어렵습니다.

"혁명을 파는 남자"
일본 공산당 내 실력자였던 이토 리쓰의 제명 사건을 통해 그의 이중 스파이 행위를 조명한 이야기입니다. 개인적 욕심과 비겁함으로 인해 좌우를 오가며 배신을 일삼는 인물의 행보는 읽는 재미가 있었으나, 스파이 행위 자체는 단순한 이간질에 불과해 큰 임팩트는 없었습니다. 중국에서 27년간 감옥 생활을 했다는 후일담은 충격적이지만, 그만큼의 무게감 있는 인물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검은 돈의 뿌리, 빙산의 일각"
쇼덴 사건과 조선 사건이라는 두 건의 부정부패 사건을 다룹니다. 쇼덴 사건은 GHQ와 관련된 정치적 공작이 얽혀 있어 흥미보다는 복잡한 뒷사정 중심으로 흐르고, 오히려 평범한 고발에서 시작된 조선 사건 쪽이 훨씬 인상 깊었습니다. 결국 수사는 정치적 이유로 흐지부지 마무리되며, 지금의 대한민국 현실과도 유사하다는 점에서 씁쓸함이 남는 이야기였습니다.

2013/02/12

불과 해류 - 마쓰모토 세이초 / 이하윤 : 별점 2.5점

불과 해류 - 6점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이하윤 옮김/해문출판사

표제작을 포함하여 총 4편의 중단편이 실려있는 단편집입니다. 마츠모토 세이초의 단편집은 이미 미야베 미유키가 엮은 대작 단편집으로 정점을 찍었다 생각했기에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지만, 얼마 전 읽은 "미스터리의 계보"가 괜찮아서 집어들게 되었네요.

표제작인 "불과 해류"는 다이몬지로 유명한 교토와 이즈 7도를 연결하는 알리바이 트릭이 등장합니다. 기발한 트릭은 아니지만 쿠마시로 - 아즈마 형사 컴비의 철저한 수사를 통해 철벽의 알리바이가 서서히 벗겨지는 묘미는 일품입니다. 교토의 다이몬지, 미나즈루 곶, 미야케지마 등 다양한 곳에서 수사가 진행되는 덕분에, 여정 미스터리 느낌을 주는 것도 좋았고요.

그러나 알리바이가 성립하지 않는다는건 밝혀냈으나, 결국 결정적 증거는 잡지 못하고 진상은 범인 시바무라의 자살과 유서를 통해 증명된다는 결말은 개운치 못했습니다. 철벽의 알리바이를 만들다 보니 생긴 문제라는 점에서 "점과 선"이 떠오릅니다. 결말마저도 비슷하니까요. 작품의 수준을 떠나, 알리바이를 파헤치고 결말에 이르는 과정의 깔끔함은 모리무라 세이이치 쪽이 한 수 위라 생각되기도 합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증언의 숲"은 르포 느낌이 나는 건조한 전개의 작품으로 경찰이 조작한 증거로 형을 살게 된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추리적으로 눈여겨볼 부분은 없고 2차대전 종전 전을 무대로, 당시 경찰의 무식한 수사와 조작이 눈에 띈 정도입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종족동맹"은 무식한 촌부의 국선변호를 하면서 무죄평결을 이끌어내지만, 이후 깊은 수렁에 빠지게 되는 변호사의 이야기입니다. 일종의 알리바이 + 순간이동 트릭이 핵심인데, 진상이 밝혀지면서 개미지옥보다 더한 수렁에 빠져드는 주인공의 심리가 드러나는 결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읽으면서 찌릿찌릿할 정도였어요.
렌페이의 순간이동을 증명할 만한 공정한 묘사가 없고, 펜던트에 대해서는 주인공의 의견이 더 설득력이 높다는 점 등의 단점은 있지만 평균 이상은 충분히 되는 작품이었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산"은 다른 단편집에서 접했던 작품으로 상세한 소개는 생략하겠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결론적으로 평균 별점은 2.5점 정도? 아주 뛰어나지 않으나 거장의 편린은 느낄 수 있는 단편집이었어요. "종족동맹" 한 편만으로도 값어치는 충분히 하니까요. 그러나 마츠모토 세이초를 아직 접하지 못하셨다면, 이 책보다는 미야베 미유키가 엮은 단편집부터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13/07/13

점과 선 - 마쓰모토 세이초 / 김경남 : 별점 4.5점

점과 선 - 10점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김경남 옮김/모비딕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카사카의 요정 '고유키'에서 일하던 두 명의 종업원은 단골손님인 기계 공구상 야스다 다쓰오를 바래다주기 위해 도쿄역 13번 플랫폼에 섰다. 그곳에서는 15번 플랫폼이 보였다. 둘은 동료 종업원인 오토키가 낯선 남자와 함께 하카타행 침대 특급 '아사카제'에 오르는 모습을 목격했다. 그 남자는 최근 부정부패 사건으로 이름이 오르내리던 OO성의 과장대리, 사야마 겐이치였다.

6일 뒤, 오토키와 사야마 겐이치의 시신이 후쿠오카 가시이 해안에서 발견되었다. 두 사람은 청산가리가 든 주스를 마시고 동반 자살한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후쿠오카 경찰서의 베테랑 형사 도리카이 준타로는 사야마가 가지고 있던 열차 식당의 영수증이 1인분으로 되어 있다는 점에 의문을 품었다. 동반 자살을 하러 가는 남자가 정말 여성을 두고 혼자 식사를 할 수 있었을까...

마쓰모토 세이초의 첫 장편이자, 발표 당시 대히트를 기록하며 사회파 추리소설의 시대를 연 기념비적인 작품입니다. 저도 약 20여 년 전 해적판 번역본으로 처음 접했었는데, 이번에 모비딕과 북스피어가 함께한 ‘세이초 월드 시리즈’의 일환으로 정식 출간되어 다시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미하라 형사가 야스다의 알리바이를 깨뜨리기 위한 집요한 수사 과정을 중심으로 흘러가는 이야기는 그렇게 복잡하거나 거창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단순한 구성을 뛰어난 트릭과 현실감 넘치는 수사 전개로 탁월하게 끌고 가는 점에서, 고전 명작다운 품격이 느껴졌습니다.

특히 도쿄에서 거의 존재할 수 없는, '4분의 공백'을 이용하여 사야마와 오토키를 목격하도록 만드는 공작은 "패러디"가 나올 정도로 유명하면서도 멋진 트릭이고, 규슈와 홋카이도를 오가는 알리바이 공작의 큰 스케일, 그리고 그것을 차근차근 파헤쳐가는 수사 과정 모두 지금 다시 읽어도 손에 땀을 쥐게 만들만큼 흥미진진했습니다.

마지막에 밝혀지는 진상도 압도적입니다. 단순한 정사 관계가 아니라, 두 사람을 각각 살해한 후 마치 함께 동반 자살한 것처럼 꾸몄다는 진상은 그야말로 ‘두 개의 점을 잘못된 선으로 연결한 것’이라는 제목과도 정확히 맞아떨어집니다. 상식이라는 맹점을 찌르는 이 반전 트릭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정도로 인상 깊었습니다.

또한 이전 번역본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사회파적인 요소들과 사건 이후의 씁쓸한 여운도 정식판에서는 더욱 두드러지더군요. 관청의 비리로 시작된 사건이라는 점, 결국 자살한 야스다는 잊혀지고, 비리에 연루되었던 부장은 오히려 더 잘나가게 되었다는 후일담은 무척 씁쓸하면서도 묵직하게 남았습니다. 200여 페이지라는 부담 없는 분량, 알리바이 트릭을 이해하기 위한 표와 도식들, 적절하게 삽입된 일러스트도 독서의 재미를 더해주고요.

물론 약간의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야스다의 동기, 그리고 실제 흑막이라 할 수 있는 야스다 료코의 캐릭터가 거의 드러나지 않는 점은 사건 외적인 묘사가 부족하다는 인상을 줍니다. 지나치게 사건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어, 소설보다는 르포르타주를 읽는 듯한 느낌도 들고요. 병약했던 탓에 기차 시간표를 탐독하다가, 어느새 그것을 활용한 알리바이 조작의 달인이 된 야스다 료코라는 캐릭터가 좀 더 부각되었더라면 훨씬 풍성한 작품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변함없는 흥분을 안겨주는 훌륭한 작품인건 분명합니다. 명작은 역시 이유가 있는 법이지요. 별점은 4.5점입니다. 아직 읽어보지 않으셨다면 꼭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13/10/24

시간의 습속 - 마쓰모토 세이초 / 김경남 : 별점 3점

시간의 습속 - 6점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김경남 옮김/모비딕

도쿄 근교의 휴양지 사가미 호수에서 목졸라 살해당한 시체가 발견되었다. 피해자는 "교통문화정보" 신문의 발행인 겸 편집자 도이 다케오였다. 주변 인물을 탐문하던 경시청 수사1과의 미하라 기이치 경위는 굣코 교통의 전무 미네오카 슈이치가 수상하다고 느꼈다. 그러나 미네오카 슈이치는 사건 당시 후쿠오카 근처 모지의 메카리 제사에 참석했다는 완벽한 알리바이가 있었다. 미하라는 이전 사건으로 알게 된 후쿠오카의 도리카이 주타로 형사에게 미네오카의 알리바이를 문의했으나 수수께끼를 밝혀내지 못하던 중, 후쿠오카에서 정체불명의 사체가 발견되는데...

마쓰모토 세이초의 1961년도 발표작. "점과 선" 발표로 일약 인기작가가 된 세이초가 4년 후, "점과 선"이 연재되었던 월간지 "여행"에 다시 연재했던 작품입니다. "점과 선"의 주역인 미하라 - 도리카이 컴비가 다시 등장합니다. 세이초 작품으로는 유일한 속편이라고도 하네요.

전작과 같이 정통 알리바이 파헤치기 추리물입니다. 사건의 핵심인 미네오카 슈이치의 알리바이 트릭, 즉 "어떻게 그가 메카리 제사 사진을 찍을 수 있었나?"와 더불어 미네오카가 도쿄와 후쿠오카를 어떻게 오갔는지, 사건 당일 도이와 함께 있었던 여자는 누구이며 어떻게 현장을 빠져나갔는지, 후쿠오카에서 발견된 피해자는 누구이며 현장에 있던 여성용 양가죽 장갑은 무엇인지, 가짜로 발급한 정기권의 용도가 무엇인지 등 다양한 트릭 및 추리가 화려하게 펼쳐집니다. 수준도 높습니다. 그 중 핵심 트릭인 알리바이용 사진 트릭은 필름 교체 및 재촬영, 조작이라는 복잡한 것인데 전문가적 지식을 활용하여 설득력이 충분할 뿐더러, 미하라 경위의 여러 가지 아이디어 - "TV를 찍은 것이 아닐까?" "예전 사진은 아닐까?" "영화 뉴스를 찍은 것이 아닐까?" 등 - 까지 검증해 주는 꼼꼼함이 돋보입니다. 마지막에 등장하는 원래 사진을 촬영한 가지와라에게 들키지 않고 필름을 빼돌리는 방법 역시 기가 막히고요. 아울러 공범인 여성의 정체, 그리고 그 정체를 밝혀주는 단서가 되는 사체가 끼고 있던 장갑 역시 당시 시대를 앞서갔다고도 보여지는 괜찮은 아이디어였어요.

미하라 경위의 직감에 의지한 추리와 도리카이 형사의 성실하고 꾸준한 수사도 전작 "점과 선" 못지 않게 잘 그려지고 있는 것은 전작의 팬으로 마음에 든 점입니다.

또 연재된 월간지가 "여행"인 탓이었을까요? 서두에 등장하는 모지의 메카리 제사를 비롯하여 사가미 호수, 그리고 그 외의 후쿠오카의 명승지를 소개하는 여정 미스터리로서의 모습도 보이는 것이 이채롭더군요. 심지어는 오사카로 출장 가는 형사들의 기차 여행까지 디테일하게 묘사될 정도니 말 다했죠. 어떻게 보면 예전 작품의 여유로움 같은 게 느껴지는 부분이라 괜히 흐뭇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제법 됩니다. 그중 가장 알 수 없었던 것은 애초에 미하라 경위가 왜 미네오카 슈이치가 수상하다고 생각했는지입니다. 알리바이가 누가 봐도 완벽한데 거기서 의심을 품고 파헤칠 생각에 집착한다는 것은 상식에 어긋나죠. 반대로 해석하면 무죄인 미네오카가 미하라 경위의 편집증적 망상의 희생자가 될 수도 있는 거잖아요? 이 문제는 피해자 도이가 최초에는 나름 인격자로 묘사되는 등, 동기를 드러내지 않은 탓입니다. 최소한 도이에게 흘러간 거금의 일부에 미네오카가 관련되어 있었기 때문에 수사가 미네오카에게 집중되었다는 설명은 필요했습니다. 아니면 차라리 미네오카가 범행을 저지르는 것을 확실하게 독자에게 보여주는 도서 추리물의 형태였다면 더 낫지 않았을까 싶네요.

그리고 두 번째로 미네오카 트릭의 핵심인 메카리 제사 사진 공작도 조금 이상했어요. 원래 사진을 찍은 가지와라가 제사 당일에 컬러 슬라이드로 사진을 찍었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 것이었을까요? 잡지에서 가지와라라는 이름만 보았을 뿐, 미네오카가 가지와라와 대면한 것은 사건 발생 얼마 전 딱 하루 만난 것에 불과한 것으로 묘사되기 때문에 더더욱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무려 두 건의 살인사건을 저지르는 범행에 대한 확신을 얻어갔다고 보기는 아무래도 힘들지 않을까 싶거든요. 첫 대면 이후에도 지속적인 연락을 취했다는 정도의 부연설명이라도 해 주었더라면 더 좋았을 겁니다.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3점. 사회파 작가로 유명하지만 (뭐 본인은 그닥 좋아한 명칭은 아니라곤 해도) 정통 추리 분야에서도 탁월한 모습을 여지없이 보여주는 좋은 작품이었어요. 장편다운 꼼꼼하고 디테일한 묘사도 인상적이었고요. 작위적이고 억지스러운 부분이 있어서 감점했으나 추리 애호가라면, 특히 알리바이 파헤치기 류에 관심 있으시다면 꼭 한번 읽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2009/09/11

절벽 - 현재훈 : 별점 3.5점

거의 백만년만의 추리소설 포스팅이 아닌가 싶습니다. 요새 너무 독서가 뜸했네요. 개인적으로도 바쁘고 여유가 없다보니 책을 지긋이 읽는 것 자체가 좀 무리더군요.

그래서 기분전환도 할 겸 이번에는 단편집에 손을 대 보았습니다. 이 책은 저도 잘 몰랐던 한국 작가 현재훈님의 단편집입니다. 우연찮게 검색을 통해 알게된 작가인데, 이렇게 새로운 작가분들을 알게될 때마다 깜짝 놀라곤 합니다. 척박한 국내 추리 문단에서 작품을 발표해 왔다는게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어쨌건 책 소개를 하자면, 이 책에는 "절벽", "곰팡이", "낙화", "검은 반점", "기만자", "부녀", "모래성", "흑무", "복제인간", "잠꼬대", "목소리", "족적" 이라는 총 12편의 작품이 실려있습니다. 몇몇 작품은 20여페이지 내외의 꽁트 분량이지만 양적으로는 풍성합니다. 수록작 대부분은 일본 사회파적인 느낌이 물씬 납니다. 그러나 암울했던 독재시대인 80년대 당시의 분위기를 작품과 캐릭터, 설정에 드러내면서 이야기와 연관시키는 본격적인 사회파 작품은 아닙니다("검은 반점"에서 노동운동이 약간 표현되는 정도입니다). 분위기만 따라갈 뿐이지요. 그래도 황금만능주의를 주요 테마로 하여, 범행의 동기와 수사의 과정을 치밀하게 보여주는 부분은 정통 사회파 작품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습니다.
또한 "낙화"나 "검은 반점"의 트릭은 작품과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기대 이상의 재미를 선사해 주며, "부녀"나 "모래성"에서의 경찰 수사에 대한 디테일한 설명은 한국 추리문학에 이런 작품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잘 짜여져 있어서 만족스럽습니다. 대부분의 내용을 심리묘사 중심으로 끌고나가는 문장력도 빼어납니다. 순수문학가 출신다운 내공을 유감없이 보여주네요. 한국적인 특색을 살린 몇몇 묘사들도 굉장히 반가웠고요. 그야말로 숨겨졌던 한국 추리문학의 재발견에 가까운 작품이랄까요.

그러나 단점 역시 분명합니다. 무엇보다도 "추리소설"로 보기에는 부족하다는 단점이 큽니다. 수록작 대부분은 '"A"가 저지른 사건에는 "B"과 관련되어 있고 "A"와 "B"가 티격태격하다가 전혀 엉뚱한 "C"에 의해 사건이 밝혀진다.'는, 반전도 아닌 깜짝쇼에 의존한다던가, 결국 범인이 자백하는 것으로 끝나는 작품이 너무 많습니다. 사실상 독자가 추리할 수 있는 여지가 거의 없어요. 

마츠모토 세이초 작품들과 설정 등에서 지나칠 정도로 유사성을 보이는 점도 거슬렸던 점입니다. 대표적으로 표제작인 "절벽"의 예를 들 수 있겠죠. 이 작품은 마츠모토 세이초 걸작 단편 컬렉션 상권에 수록된 "수사권외의 조건"의 설정을 많이 따라했거든요. 사실 백영호라는 인물이 복수를 위해 "8년"의 세월을 기다리며 자신을 감추는 과정과 범행에 대한 디테일(상상이지만)은 거의 똑같습니다. 작품 내에서도 "소설"에서 힌트를 얻었다고 할 정도니까요.
"잠꼬대"라는 작품에서 마츠모토 세이초의 작품과 주요 트릭을 언급하고 있으며, "곰팡이"는 "제로의 촛점"과 캐릭터 면에서 유사한 등 많은 부분이 겹칩니다.

그리고 작품마다 여러 고전과 명대사, 명언등이 언급되고 철학적 주제를 논하기까지 하는데 영 별로였습니다. 순문학에 대한 강박관념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던 탓입니다. 이런 쓸데없는 묘사를 들어내면 작품이 더 깔끔해졌을텐데 아쉽네요. "추리소설"이 그다지 문단에서 인정받지 못하던 70~80년대의 산물이라고 생각하니 씁쓸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아주 색다른 작품들이었고 좋은 독서였습니다. 비록 많이 알려진 작품은 아니지만 한국 추리문학을 논할때 빼놓으면 안되는 작품들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모든 작품이 뛰어난 것은 아니지만 역사적인 의미도 크기에 별점은 3.5점입니다. 85년도에 출간된 책인데 이미 절판되어 정보조차 찾을 수 없는 현실이 야속합니다. 구하실 수 있다면 한번 찾아서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절벽

이승준은 과거 가난했지만 사장의 딸 홍정아와 결혼하여 출세했다. 그러나 과거의 첫사랑과 우연히 조우하여 불륜을 저지르고, 과거 부하 백영호의 아내와도 불륜관계였다가 그 아내를 사망케하고 도주한 과거가 있었다. 이 사건으로 복수심에 불타던 백영호는 때를 기다린다... 

살인을 저지르면서까지 출세하고 싶었던 가난뱅이 청년과 황금만능주의는 "아메리카의 비극" 등 많은 작품에서 볼 수 있는 테마죠. 하지만 이 작품이 특이한 것은 출세를 위해 과거 교제했거나 임신한 여인을 살해한다는 것이 아니라 출세하고 난 뒤에 불륜이 시작된다는, 어떻게 보면 지극히 한국적인 전개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러한 부분들은 지나치게 통속적이 아닌가 싶기도 한데, 그래도 공범자가 있다는 트릭과 주인공들의 심리묘사가 잘 어우러져서 상당한 수준의 사회파 추리물로 만들어 졌습니다.

딱 한가지 아쉬운 점은 "백영호"라는 인물의 설정을 앞서 말했듯 마츠모토 세이초 작품에서 너무나 많은 것을 따왔다는 점입니다. 좀 무리한 설정이 아니었나 싶어요.

"곰팡이"

부유한 저명인사 허진영은 그녀의 과거가 양공주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김학수라는 인물에게 협박을 당하는데.... 

6.25 동란때의 숨겨야 하는 과거와 현재가 밀결합되고 있는 점, 그리고 과거에서 파생된 범죄가 범죄를 낳는 점 등 전형적 사회파 추리소설의 틀을 따르고 있는 작품입니다. 나름의 트릭과 사건 전개, 그리고 범인을 밝혀내는 과정도 상당한 설득력을 지니고 있고요.

그러나 마츠모토 세이초의 "제로의 촛점"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 그리고 협박자와 내연의 관계에 있어 같이 살해당한 여인을 쫓아다녔다(?)는 이유만으로 사건에 적극적으로 뛰어드는 탐정역의 박상호라는 인물이 별로 와닿지 않는다는 단점이 아쉽습니다.

"낙화"

화가인 내가 작품 활동을 위해 머무는 산장에 친구 박희주 부부가 찾아와 머물게 되었다. 박군은 아내 문영과의 사이가 멀어진 뒤 처제 난영과 불륜을 저지르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러던 중 문영이 산장 베란다 밑 절벽으로 떨어져 죽었다. 방은 밀실상태였고 문영의 손에는 박희주의 양복단추가 쥐어져 있던 상태였다. 

밀실 + 심리 트릭이 돋보이는 잘 짜여진 정통 추리물입니다. 지나칠정도로 치정극으로 치우쳐져서 통속적으로 흐를 수 밖에 없는 인물 설정과 상황 묘사들로 추리적인 매력이 많이 희석된게 아쉽지만 나름대로의 동기와 트릭, 범행방법 모두 납득할만한, 완성도 높은 작품이었습니다. 

한 가지 단점이라면 결말부분에서 너무 "끝"을 내려는 작가의 의도가 너무 튀었다는 것인데 그래도 작품에 흠집을 낼 정도는 아닙니다.

"검은 반점" 

신혼여행 중 신부 한미숙이 바닷가에서 실종된 후, 위도라는 섬에서 청산가리를 음독한 시체로 발견되었다. 시체가 입고있던 실내의가 바닷물에 오염되지 않은 점으로 미루어 바닷물로 흘러간 상태는 아니었지만, 구역내의 어떠한 배도 위도로 여자를 실어다 준 배는 단 한척도 없었다. 

시체가 어떻게 그 섬에 있을 수 있었을까? 라는 순간 이동 트릭을 테마로 한 작품입니다.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는 바꿔치기 트릭도 등장하는 등 추리적으로는 즐길거리가 많습니다. 해당 지역에 대한 상세한 조사가 바탕이 된 듯한 디테일도 마음에 들었고요.

하지만 범인이 시체를 은닉하거나 자연스럽게 유기하지 않고 부자연스러운 상태로 만든 이유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는 것과 좀 허무하다 싶을 정도로 맥없이 범인의 자백으로 작품을 마무리 지은 것 때문에 높은 점수를 주기는 좀 힘드네요.

"기만자" 

주인공의 독백만으로 이루어지는 기묘한 작품입니다. 과연 아내 희숙을 죽인것은 또는 죽게 만든 것은 누구인지, 경선을 죽게 만든 것은 누구인지, C군은 어떻게 된 것인지가 뒤엉켜서 흘러가는 복잡한 작품이기는 한데 썩 재미는 없더군요. 참신한 시도는 눈여겨 볼 만 하지만 제 취향은 아니었습니다.

"부녀" 

진아물산 사장 김인호의 큰딸이 밀실에서 청산가리에 의한 변사체로 발견되었다. 여러 정황으로 보아 그녀가 자살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형사 김익수는 치밀한 수사 끝에 여러 정황증거를 토대로 범인이 누구인지 알아내게 되는데... 

과거의 사건에 의한 범죄라는 테마는 사회파 추리소설에 흔히 나오는 것이죠. 이 작품은 과거의 죄를 벗어던지지 못하고 현재에 다시 범행을 저지른다는 줄거리와 더불어 현재 벌어진 사건에 대한 경찰의 치밀한 수사가 디테일하게 그려진 전형적 사회파 추리소설입니다.

작중에 경찰 스스로의 입으로 밝히듯 결정적 증거가 없다!라는 추리소설로서는 사실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고, 결말도 범인의 자백으로 끝나는 등 "추리" 적인 요소로만 본다면 조금 부족하긴 하지만 전체적인 분위기와 전개는 지금 읽어도 충분히 가치가 있는 수작입니다. 디테일한 수사와 여러 단서를 통해 유추해내는 추리가 무척이나 설득력 넘치는 덕분입니다.

"모래성"

H부동산의 회장 신병호가 자신의 저택에서 잔인하게 살해당했다. 수사관 한정수는 제한된 단서와 증언을 토대로 서서히 범인을 추적해 나가는데... 

여러 용의자, 복잡하게 꼬인 단서들과 서로 다른 증언들이 교차되며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수사 추리물입니다. 수록된 작품들 중 가장 긴 작품 중 하나인데도 불구하고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범행을 하기 전 똥을 누면 운이 좋다"와 같은 속설까지 작품에 끌어들일 정도로 세밀한 자료조사를 바탕으로 소설 속 불가능 범죄가 아닌 현실의 실제 있는 강도사건을 보는 듯한 자세한 상황 및 배경 묘사가 일품이기 때문입니다.
발자국이나 침투경로, 새벽에 들은 소리, 왜 비상벨을 누르지 않았는지 등의 다양한 단서들을 필요할 때 마다 하나씩 던져주는 등 전개도 흥미진진하고요.

하지만 신병호의 과거와 현재, 강남 복부인들과의 관계라던가 실제 사건에서의 몇몇 미심쩍은 단서 등 벌려놓은 소재를 미처 수습하지 못하고 서둘러 끝맺은 마무리 부분이 너무나 아쉽네요. 보다 긴 중편 이상 길이의 본격 사회파 추리소설로 전개하였더라면 우리나라 추리문학의 고전으로 길이 남지 않았을까 싶은데 결말이 매끄럽지 못해서 평작에 머무른 것 같습니다. 그래도 다시 읽어봄직한 수작임에는 분명합니다.

"흑무"

문학교수 김용석은 학문에서 좌절하고 부인 이지영과의 관계도 원만치 못하여 술로 고독을 삼키던 중, 단골 술집에서 접근한 한 여인에게 끌려 그녀의 집으로 가게 된다. 

복수극이긴 한데 치밀한 맛이 떨어지는 소품입니다. 주인공의 단골 술집에서 접근한 여인, 그에게 원한이 있는 범인 등 한번 수사를 한다고 치면 걸려들 내용들이 너무 많아서 완전범죄로 가장하기에는 너무 미흡하지 않나 싶더군요. 작가의 순문학에 대한 강박관념이 느껴질정도로 토스토예프스키에 대한 문학적인 이론과 평가가 난무하는 것은 내용에 혼란만 더하고요. 그냥저냥한 평작이었습니다.

복제인간 

2015년 서울 교외의 아파트촌에서 주미리여사가 살해당했다. 사건과 더불어 복제인간 유아 성추행 살인사건이 벌어지는데... 

근미래를 무대로 하고 있지만 흉기가 총이라는 것과 복제인간 아이라는 설정을 제외하고는 SF적인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다는게 특이합니다. 사실상 복제인간 아이라는 것도 "쌍둥이"라는 설정을 위해 가져온 것이니 만큼 별다른 것이 없어서 왜 근미래를 무대로 묘사했는지를 도무지 알 수 없어요. 이야기 자체는 평이하고 예상대로 전개되기에 딱히 두드러지는 부분은 없습니다. 소품 수준의 평작입니다.

"잠꼬대" 

최건호는 아내 은영의 불륜을 의심하여 여러가지로 그녀를 시험해본다. 그러던 중 은영이 독극물에 중독되어 숨지고, 사건은 자살로 판명되는 듯 하지만.... 

한마디로 "의처증"을 극단적으로 묘사한 작품입니다. 집요하고 수법이 잔인한 편이라 좀 놀랍더군요. 시대를 앞서간 듯한 강박증에 대한 심리묘사도 대단하고요.

하지만 이러한 의처증 이외의 사건 전개는 너무 막 나가기에 좋은 평가를 하기 어려운 작품이기도 합니다. 사건이 주요 전개 내용과 전혀 상관없는 부분에서 끝나버리거든요. 개인적으로는 의처증 증세의 진상이 폭로되는, 즉 최건호는 의처증으로 의심받아 정신병원에 수용되지만 앞부분에서는 결백한 듯 했던 은영이 실제로 불륜을 저지르고 있었다는 식의 전개가 더 낫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목소리" 

박찬식은 사업과 연애의 라이벌이었던 정진호를 제거하고 그의 아내 미경과 관계를 맺었다. 그러나 미경이 살해되고 모든 정황이 그를 범인으로 지목하게 되는 상황에 빠지자 박찬식은 자신에게 누명을 씌운자가 누구인지 밝혀내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한다. 

도청과 가명에 대한 다양한 이론이 피력되는 복수극입니다. 하지만 "도청" 방법 이외의 추리적인 요소를 찾아보기 힘들기에 정통 추리물로 보기엔 무리가 있네요. 경찰의 수사로 인해 끝나는 결말 역시 많이 허무한 편입니다.

"족적" 

조숙경이 살해된다. 제1용의자는 불륜관계였던 화가 김기오. 그러나 김기오는 스스로 누명에 빠졌다고 강력하게 주장하는데... 

"애크로이드 살인사건" 이 연상되는 이색단편입니다. 화자이기도 한 주인공이 스스로의 진술을 사기친다는 설정이 동일하거든요. 하지만 이야기가 정교하지 않으며 별로 공평하게 전개되고 있지 않아서 굉장히 무리가 많습니다. 그 외에도 경찰이 확실한 정황증거가 있음에도 기소하지 않는 황당한 모습을 보이는 등 여러모로 평균 이하인 졸작입니다.

2010/02/03

하우미스터리선정, 2009년 올해의 추리소설!

http://www.howmystery.com/zeroboard/zboard.php?id=news&no=215

국내 최고의 추리소설 사이트인 하우미에서 총 36명의 사이트 방문자를 대상으로 선정한 2009년 올해의 추리소설 리스트입니다. 표본수가 적긴 하지만 나름 의미있는 자료라 생각되네요. 1, 2위를 모두 읽지 않았는데 더 늦기 전에 챙겨봐야겠군요. 어쨌건 <경성탐정록>이 쟁쟁한 작품들을 뒤로하고 당당 4위에 랭크되었다는 것이 제일 기쁩니다!
상세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집계기간 : 2009년 12월 08일 - 2010년 1월 31일
참여자 수 : 36
방식 : 1인 3권 추천


1위 총 15표 <차일드44>, 톰 롭 스미스, 노블마인

2위 총 9표 <심플 플랜>, 스콧 스미스, 도서출판 비채

3위 총 8표 <살아 있는 시체의 죽음>, 야마구치 마사야, 시공사

공동 4위 총 6표
<고백>, 미나토 가나에, 도서출판 비채
<경성탐정록>, 한동진, 북홀릭

공동 6위 총 5표
<내가 죽인 소녀>, 하라 료, 도서출판 비채
* 제가 읽은 건 구판입니다.
<마인>, 김내성

공동 8위 총 4표
<녹색은 위험>, 크리스티아나 M. 브랜드, 시작
<구부러진 경첩>, 존 딕슨 카, 고려원북스

공동 11위 3표
<밤은 천 개의 눈을 가지고 있다>, 윌리엄 아이리시, 자음과 모음
<마쓰모토 세이초 걸작 단편 컬렉션 (상)>, 마쓰모토 세이초, 북스피어

공동 13위 총 2표
<파일로 밴스의 정의>, S.S.반 다인, 북스피어
<기울어진 저택의 범죄>, 시마다 소지, 시공사
<어둠이여 내 손을 잡아라>, 데니스 루헤인, 황금가지
<은폐수사>, 곤노 빈, 시작
<블러드 워크>, 마이클 코넬리, 랜덤하우스코리아
<시인>, 마이클 코넬리, 랜덤하우스코리아

이하 1표 획득작
<경관의 피>(상하), 사사키 조
<검은 화집>(상중하), 마쓰모토 세이초
<다이도지 케이의 사건 수첩>, 와카타케 나나미
<두 번째 총성>, 안소니 버클리
<명탐정 홈즈걸의 책장>, 오사키 고즈에
<천사의 나이프>, 야쿠마루 가쿠
<에도가와 란포 전단편집> 2, 에도가와 란포
<벨벳의 악마>, 존 딕슨 카
<둘 중 누군가 그녀를 죽였다>, 히가시노 게이고
<무덤으로 향하다>, 로렌스 블록
<새크리파이스>, 곤도 후미에
<신주쿠 상어>, 오사와 아리마사
<유대인 경찰 연합>(2권), 마이클 셰이본
<이니시에이션 러브>, 이누이 구루미
<루피너스 탐정단 시리즈 - 우수, 당혹>(2권), 쓰하라 야스미
<목소리>, 아날두르 인드리다손
<어제의 세계>, 온다 리쿠
<레전드>, 로버트 리텔
<46번째 밀실>, 아리스가와 아리스
<방해자>(3권), 오쿠다 히데오
<밤의 의미>, 마이클 콕스
<위철리 가의 여인>, 로스 맥도널드
<악몽의 관람차>, 기노시타 한타
<주석 달린 셜록 홈즈> 2권, 아서 코난 도일-레슬리 S. 클링거

2022/03/06

안개의 깃발 (霧の旗) (2010) - 별점 1.5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야나기다 키리코는 채권자를 살해했다는 누명을 쓴 오빠를 구하기 위해 고향 출신의 유명 변호사 오오츠카를 찾아갔다. 그러나 오오츠카는 변호 의뢰를 냉혹하게 거절했고,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키리코의 오빠는 항소 도중에 병으로 죽고 말았다. 

모든걸 잃은 키리코는 도쿄로 올라와 호스테스로 일하던 중, 우연찮게 스기우라 살해 현장을 목격했다. 그곳은 오오츠카 변호사와 불륜 관계였던 미치코의 아파트였다. 미치코는 원래 스기우라와 사귀고 있었지만 오오츠카 변호사와의 관계로 스기우라와 헤어지려고 했었고, 그 탓에 큰 다툼이 있어 왔다. 미치코는 자신의 결백을 키리코가 증언해 줄 것으로 믿었지만, 키리코는 오오츠카에 대한 복수심 때문에 키리코에게 유리한 증언, 그리고 진범을 나타내는 증거를 인멸했다는걸 숨기는데...

제가 읽어보지 못했던 마쓰모토 세이초 작품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 드라마입니다. 수차례 영상화되었는데, 제가 본 건 2010년 버젼이에요. "미스테리아 36호"에 수록되어 있던, 국내에서 영상화된 마쓰모토 세이초 작품에 대한 소개를 읽다가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유튜브에 누군가 불법이겠지만, 자막까지 붙여서 올려놓은 버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솔직히 실망스럽습니다. 키리코 오빠가 뒤집어 쓴 범죄, 그리고 스기우라 살인 사건 모두 범인이 너무 명확해서 추리물로 보기는 너무나도 허술한 탓입니다. 특히 스기우라 살인 사건은, 미치코가 현장을 발견한 뒤 그냥 경찰에 신고했더라면 범인 야마가미 체포에는 아무 문제 없었을 거에요. 라이터라는 증거가 있었으니까요. 물론 마침 근처에 있던 키리코를 불러 도움이 되어달라고 부탁한다는게 말이 안되는건 아닙니다. 미치코가 유력한 용의자라는건 분명했으니까요. 그러나 키리코가 현장에 있던 야마가미의 라이터를 몰래 빼돌리는걸 대충 넘긴건 여러모로 문제입니다.

또 키리코가 오오츠카 변호사에게 앙심을 품었다는 동기 역시 설득력이 떨어졌습니다. 진범, 아니면 사건 수사를 맡았던 경찰이나 검찰에게 원한을 품었다면 모를까, 사건 수임 자체를 거철했던 변호사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다고 앙심을 품는단 말입니까? 원래 고향에서 친하게 지냈었다던가 하는 인연도 없는데 말이지요. 오오츠카 변호사 역시 키리코가 앙심을 품었다는걸 증명했더라면 향후 미치코 변호에 유리하게 써 먹을 수 있었을텐데 그런 모습을 전혀 보이지 않는건 이해하기 힘들고요. 키리코에게 매달리는 것 말고, 미치코 변호를 위해 하는게 아무 것도 없어서 유능한 변호사라는 느낌도 들지 않습니다. 오오츠카가 힘든 어린 시절을 보낸 끝에 겨우 성공했다는 성장과정도 전개에는 불필요한 부분이었고요. 고작 몇 분으로 마무리되는 결말도 최악이었으며, 오오츠카 변호사가 어쨌건 풀려나는데 성공한걸로 보이는 미치코와 행복하게(?) 살아갈걸 암시하는 장면은 이게 뭔가 싶었습니다.

그래도 키리코의 '복수극' 한정으로는 나름 괜찮은 부분이 없지는 않습니다. 오오츠카 변호사를 파멸시키기 위한 키리코의 집념이 정말 눈부시거든요. 특히 은근슬쩍 술을 먹여 육체관계를 맺은 뒤 고소하는 마지막 장면은 정말 무릎을 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리는게 맞기는 맞나 봅니다. 두 배우의 연기도 괜찮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치카와 에비조가 냉혹한 변호사 역할에는 참 잘 어울리는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아내를 버리고 미치코에 올인하는 과정의 빌드업이 부족하기는 하지만, 이건 배우보다는 각본의 문제니까요.

하지만 장점보다는 단점이 워낙 커서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이거라던가, 이거 등 그동안 보아왔던 TV용 마쓰모토 세이초 영상물들 모두가 기대 이하였는데, 역시나 별다르지 않는 수준이었어요. 앞으로는 구태여 찾아볼 필요가 없겠습니다.

2014/07/22

10만 분의 1의 우연 - 마쓰모토 세이초 / 이규원 : 별점 2점

10만 분의 1의 우연 - 4점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이규원 옮김/북스피어

A신문의 "독자 뉴스사진 연간상" 최고상을 수상한 것은 도메이 고속도로 연쇄 추돌 사고를 촬영한 사진이었다. 약혼녀를 사고로 잃은 누마이 쇼헤이는 사진이 촬영된, 그야말로 '10만분의 1' 상황에 의구심을 가지고 개인적인 조사를 시작하는데...

마쓰모토 세이초의 81년 발표작입니다. 작가의 후기작들이 대체로 별로라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상당히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특별히 정교한 트릭이 등장하거나 복잡한 서사를 지닌건 아니지만, 그냥 한번 손에 들면 쭉쭉 읽히는 펄프 픽션스러운 재미가 있는 덕분입니다. 특히나 제목 그대로 10만분의 1의 상황을 담은 사진이라는 아이디어가 돋보입니다. 이러한 사진은 결코 우연히 찍힐 수 없다는 것을 확신한 피해자의 약혼자가 진상을 파헤치는 전개를 보여주는데 정반대의 설정, 즉 이러한 우연한 상황을 포착한 주인공이 악의 무리에게 쫓긴다는 픽션은 흔했지만("이창") 이런 접근법은 상당히 참신하다 느껴졌거든요. 

아울러 작중 잠깐 언급되기도 하고 미야베 미유키의 권말 해설에도 언급되어 있듯이 사고 현장에서 쓰러져 있을 희생자들을 내버려두고 사진을 찍는 것이 과연 옳은 행동인가? 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만드는 것도 좋았어요. 1994년 수단의 굶어 죽어가는 소녀를 독수리가 노려보는 사진으로 뉴욕 타임즈의 사진상을 수상하였지만 비난 등으로 인해 자살한 사진작가 케빈 카터가 연상되기도 했고요. 

사진이 핵심 소재인 작품답게 사진과 카메라 관련한 디테일한 정보가 가득한 것도 읽는 재미를 더해줍니다. 여러가지 렌즈에 대한 설명이나 셔터스피드 이야기, 카메라 기종에 대한 것들이 자세하게 설명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진 관련 아이디어와 정보는 괜찮고 수준 이상의 읽히는 재미를 갖추기는 했으나 역시나 항상 기대에 미치지 못했던 후기작답게 완성도 면에서는 여러모로 아쉬움을 남기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누마이 쇼헤이가 개인적인 수사에 나서 사진을 찍은 야마가 교스케를 압박해나간다는 부분까지는 나쁘지는 않고 극초반의 뉴스 스타일 전개에서 쇼헤이 - 교스케로 화자 및 주인공이 바뀌어가며 독자를 몰입하게 만드는 솜씨도 거장답기는 하나 중반 이후의 내용은 너무 쉽게 간 탓입니다.

먼저 쇼헤이가 사진작가인 교스케에게 접근하여 환심을 산 뒤에 피해자의 언니인 야마우치 미요코의 이름을 던져 수상하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부터가 말이 안됩니다. 복수를 하기 위해 진상을 캐는 인물이 기껏 가공의 인물로 나타난 뒤에 곧바로 자신을 의심하게 만든다는게 말이나 되나요?
여기까지는 그렇다쳐도 어디까지나 심리적으로 쫓기는 입장인 교스케가 폭주족 촬영을 핑계로 크레인 기계실로 쇼헤이를 유도한다는 것은 더 어이가 없습니다. '연쇄 살인 사건의 범인이 별다른 준비도 없이 복수를 원하는 피해자 가족을 아무도 없는 곳으로 부른다'와 거의 같은 이야기인데 전혀 와 닿지도 않았을 뿐더러, 이러한 장소로 유도하지 않았더라면 대관절 쇼헤이의 복수가 어떻게 이루어졌을지 전혀 감이 오지 않는다는 점에서 지나치게 작위적이고 편의적인 전개라 생각되었습니다.
게다가 후루야 구라노스케까지 죽인다? 본의가 아닌 것으로 보인 말실수 가지고 죽이다니 너무 심한게 아닌가 싶더군요. 사건 자체도 후루야가 대마초 좀 피웠다고 알맞게 높은 곳에 알아서 올라가준 다음에 알아서 떨어져 죽는 것이라 교스케 사건 못지않은 작위적이고 편의적인 발상이라 마음에 들지 않고요. 만약 후루야가 죽지 않았더라면 다음날 촬영회 등은 어떻게 얼버무릴 생각이었을지도 모르겠어요. 물론 이 후루야 사건은 쇼헤이의 복수에 정당성을 실어주기 위해 작가가 쇼헤이의 입을 빌어 불법, 호마 등에 대해 설명하기 위한 장치일 수는 있는데... 지루하다는 말이 딱 어울릴만큼 장황해서 작중에서처럼 후루야가 얌전히 듣고 있는게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아울러 후루야가 너무 쇼헤이가 하는데로 움직이는 것도 이해불가인 것은 마찬가지로 저같으면 목욕 후 술까지 먹은 상태라면 뭐가 어찌 되었건간에 한밤중에 산으로 사진 촬영한다고 올라가지는 않을거에요.

추리적으로 볼 때에도 교스케의 사진 촬영에 대한 발언 자체가 현장을 딱 한번 와본 사람이 알아챌 정도로 어설펐다는 것, 트릭도 그럴듯하게 설명하고는 있지만 스트로보로 발광 시키고 사진 촬영한 위치까지 이동하는 시간을 감안한다면 그닥 설득력있게 잘 만들어졌다고 하기는 어렵기에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습니다. 사건 현장에 한두번 와봤을 뿐인 쇼헤이가 우연히 발견한 테이프가 단서가 되었다는 점에서 경찰의 현장 조사로 발견될 수 있었으리라 싶은 것도 감점 요소고요.
사진 및 카메라를 이용했다는 점에서 이전의 "시간의 습속"과 비교되지만 "시간의 습속" 만큼 잘 고안되지 못한, 장편으로 끌고가에는 여러모로 역부족이었던 트릭이었습니다. 마지막에 비행기에서 스트로보 불빛을 보았다고 신고하는 장면은 최악의 사족이었어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입니다. 재미 하나만큼은 거장의 명성에 값하는 작품이기는 하나 세세한 완성도면에서는 도저히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들군요. 마쓰모토 세이초도 에드 멕베인처럼 초중기작을 골라서 읽어야하는 작가라는 기존 생각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알려주었다는 점 정도만 가치가 있었습니다. 작가의 팬이 아니시라면 구태여 찾아서 읽어보실 필요는 없을 것 같네요.

2013/01/20

미스터리의 계보 - 마쓰모토 세이초 / 김욱 : 별점 4점

미스터리의 계보 - 8점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김욱 옮김/북스피어

사회파 추리소설의 거장 마츠모토 세이쵸의 논픽션. "전골을 먹는 여자", "두 명의 진범", "어둠 속을 내달리는 엽총"이라는 세 편의 이야기와 상당한 분량의 해설이 실려 있습니다.

"전골을 먹는 여자"는 군마현 호시오 마을에서 종전 직후 벌어진 식인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전쟁으로 인해 상호 간 도와주는 사회적 합의가 무너진 상황에서, 산골 마을의 무지와 야만이 결합해 벌어진 끔찍한 범죄입니다. 작가가 이 일대를 여행했을 때의 과정을 설명하며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정말이지 엄청난 오지더군요.

내용은 사실 뻔합니다. "벽장 속의 치요"의 한 이야기와도 유사하지요. 그러나 논픽션이기에 훨씬 충격적일 뿐 아니라, 진상이 밝혀지는 부분에서 "도라는 왜 죽였어!"라고 윽박질렀을 때 범인이 답하는 "먹었어"라는 장면은 소름이 돋을 정도로 섬찟했습니다. 이어서 설명해주는 노구치 오사부로, 스기무라 가즈요의 범행 역시 굉장히 흥미로웠고요.

근친 결혼으로 인한 저능한 가족 공동체라는 점에서는 영국의 소니 빈 일족 일화, 기아로 인한 범죄라는 점에서는 "얼라이브"나 난파선 구명보트 이야기가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두 명의 진범"은 스즈가모리 석탑 부근에서 살해된 다나카 하루 사건을 다룹니다. 자신이 범인이라고 자백한 두 명 중 누구인지를 밝혀내는 과정에서, 일본의 사형 및 재판 제도 문제와 연결하여 이야기를 풀어나갑니다.

억울한 용의자 다카무라의 자백 및 심문 조서에서 모순을 밝혀나가는 세이쵸의 전개가 인상적입니다. 특히 "흰색 고시마키가 두꺼운 플란넬 소재였다"라는 중요한 사항을 짚어내는 장면이 대표적입니다. 또한, 경찰의 갖가지 증거 조작과 고문으로 날조된 자백 탓에 두 번째 범인이 생겼으며, 진범이 유죄 판결을 받은 후에도 재판이 계속되어 6개월이 지난 다음에야 무죄로 풀려났다는 점에서, 제도적인 야만을 규탄하는 사회파적 의미도 강하게 느껴졌고요.

"어둠 속을 내달리는 엽총"은 미스터리, 범죄 매니아에게는 친숙한 쓰야마 사건을 파헤치는 내용입니다. 무려 31명이 사망하고 3명이 중경상을 입은 대량 살인 사건이죠. 워낙에 유명한 사건이라 대략적인 내용은 알고 있었지만, 범인 도이 무쓰오의 출생에서부터 범행에 이르는 과정을 현미경처럼 세밀하게 그리고 있어서 단숨에 읽어버릴 정도로 흡입력 넘쳤습니다.

외딴 산골의 문란한 성 풍속, 소문으로 비롯된 따돌림, 한 개인의 컴플렉스가 결합하여 벌어진 사건이라고 하는데, 피해 의식이라는 것은 주변에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심각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전쟁으로 인해 사람의 생명을 경시하는 풍조가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그러나 위의 두 사건과는 다르게, 이 사건은 시대적 야만으로 빚어진 사건이 아니라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세이쵸의 글만 보면 사회적인 따돌림과 본인 스스로의 컴플렉스가 만들어낸 괴물이라고 설명되지만, 한 마을 자체를 거의 날려버린 잔인무도한 범행에는 그 어떤 핑계도 이유가 될 수 없다고 보이네요. 우리나라의 우범곤 순경 사건이나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다루었던 농약 음료수 사건과 별반 다르지 않은, 사회적 격리가 필요한 인간 말종일 뿐이라 생각됩니다.

결론 내리자면, 세 편의 이야기 모두 흥미롭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읽으면서 전율이 느껴지는 충격적인 내용도 가득하고, 생각할 거리도 많이 던져줍니다. 또한, 작가의 명성에 걸맞는 미려하고 흡입력 있는 문장이 눈길을 사로잡으며, 무지와 야만이 범죄의 원인이라는 점을 폭로하는 사회파 작가다운 고발 정신도 살아 있는 명편이라 생각됩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왜 거장이 거장인지를 알려주는 좋은 책이라 생각되네요. 아직 읽지 않으신 모든 분들께 추천드립니다.

덧: 세이쵸의 원고지라는 부록이 들어있는데, 전혀 쓸데없는 물건이었습니다. 차라리 책값을 천 원이라도 낮추는 방안을 출판사에 건의드리는 바입니다.

2018/06/02

주간문춘선정 동서미스터리 100 개정판

하우미스터리에 올라온 주간문춘선정 동서미스터리 100! 저도 예전에 소개했던 1986년 리스트의 신규 개정판입니다.

온라인 사이트에는 50개씩만 실려있는 듯 한데 리뷰를 남긴 작품 (링크), 리뷰는 없지만 읽은 작품 (붉은색)을 체크해 보았습니다. 일본 작품들 중에서는 국내 출간된 39편 중 도저히 읽을 엄두가 나지 않은 "도구라 마구라". "흑사관 살인사건"과 얼마전 출간된 "인형은 왜 살해되는가". 그리고 "모방범"과 "죽음의 샘"의 5편을 읽지 않았네요. 해외 작품은 국내 출간 44편 중 "밀레니엄 1", "본 컬렉터", "흥분"의 3편을 빼고는 다 읽어 보았고요. 와 대단하다! 8편만 더 읽으면 일단은 완전정복이니만큼 당분간은 이 리스트부터 정복해봐야 겠습니다. 딕 프랜시스의 "흥분"은 왜 읽지 않았는지 모르겠네요.

  • 2013.02.18 수정 "죽음의 샘" 완독
  • 2013.02.24 수정 "흥분" 완독
  • 2013.03.02 수정 "본컬렉터" 완독
  • 2013.03.08 수정 "인형은 왜 살해되는가" 완독
  • 2017.10.16 수정 "하늘을 나는 말" 완독
  • 2018.3.30 수정 "레이디 조커" 1권 완독
  • 2021.1.3 수정 "비숍 살인사건" 완독
  • 2021.5.7 수정 "통" 재독
  • 2023.2.12 수정 "황제의 코담뱃갑" 재독
  • 2024.11.15 수정 "11장의 트럼프" 완독
  • 2025.04.19 수정 "요이 금병매(금병매 살인사건) 완독
  • 2026.02.26 수정 "십각관의 살인" 추가

아울러 이런 류의 리스트에 대한 신뢰도가 대폭 하락하긴 했지만 이 리스트는 고전 걸작이 많기에 꽤 괜찮다 생각됩니다. 전부 재미있다고 말하기는 어려워도 대부분은 자신있게 권해드릴만 하니 아직 읽지 않으신 작품이 있다면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일본" 

1위 옥문도, 요코미조 세이시 

2위 허무에의 공물, 나카이 히데오 

3위 점성술 살인 사건, 시마다 소지 

4위 도구라 마구라, 유메노 규사쿠 

5위 화차, 미야베 미유키 

6위 점과 선, 마쓰모토 세이초 

7위 대 유괴, 덴도 신 

8위 십각관의 살인, 아야쓰지 유키토 

9위 망량의 상자, 교고쿠 나쓰히코 

10위 혼진 살인 사건, 요코미조 세이시 

11위 검은 트렁크, 아유카와 데쓰야 (국내 미출간) 

12위 회귀천 정사, 렌조 미키히코 

13위 용의자 X의 헌신, 히가시노 게이고 

14위 흑사관 살인 사건, 오구리 무시타로 

15위 살아 있는 시체의 죽음, 야마구치 마사야 

16위 아 아이이치로의 낭패, 아와사카 쓰마오 

17위 하늘을 나는 말, 기타무라 카오루 

18위 백야행, 히가시노 게이고 

19위 불연속 살인 사건, 사카구치 안고 

20위 시계관의 살인, 아야쓰지 유키토 

21위 기울어진 저택의 범죄, 시마다 소지 

22위 쌍두의 악마, 아리스가와 아리스 

23위 우부메의 여름, 교고쿠 나쓰히코 

24위 이전 동화, 에도가와 란포 

25위 모래 그릇, 마쓰모토 세이초 

26위 내가 죽인 소녀, 하라 료 

27위 외딴 섬 악마, 에도가와 란포 

28위 인형은 왜 살해되는가, 다카기 아키미쓰 

29위 레이디 조커, 다카무라 카오루 

30위 요이 금병매, 야마다 후타로

31위 기아 해협, 미나가미 쓰토무 (국내 미출간) 

32위 문신 살인 사건, 다카기 아키미쓰 

33위 리라장 사건, 아유카와 데쓰야 

34위 혼란 계략, 아와사카 쓰마오 (국내 미출간) 

35위 음수, 에도가와 란포 

36위 벚꽃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우타노 쇼고 

37위 제로의 초점, 마쓰모토 세이초

38위 11장의 트럼프, 아와사카 쓰마오 (국내 미출간) 

39위 이누가미 일족, 요코미조 세이시 

40위 상자 속의 실락, 다케모토 겐지 (국내 미출간) 

41위 모방범, 미야베 미유키 

42위 한시치 체포록, 오카모토 기도 

43위 아웃, 기리노 나쓰오 

44위 죽음의 샘, 미나가와 히로코

45위 독 원숭이, 오사와 아리마사

46위 산 고양이의 여름, 후나도 요이치 (국내 미출간) 

47위 테러리스트의 파라솔, 후지와라 이오리 

48위 태양 흑점, 야마다 후타로 (국내 미출간) 

49위 무당거미의 이치, 교고쿠 나쓰히코 

50위 불야성, 하세 세이슈

"해외" 

1위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애거서 크리스티 

2위 Y의 비극, 엘러리 퀸 

3위 셜록 홈스의 모험, 아서 코난 도일 

4위 환상의 여인, 윌리엄 아이리시 

5위 애크로이드 살인 사건, 애거서 크리스티 

6위 기나긴 이별, 레이먼드 챈들러 

7위 장미의 이름, 움베르토 에코 

8위 브라운 신부의 동심, G. K. 체스터튼 

9위 양들의 침묵, 토머스 해리스 

10위 화형 법정, 존 딕슨 카

11위 오리엔트 특급 살인 사건, 애거서 크리스티 

12위 밀레니엄 1, 스티그 라르손 

13위 죽음의 키스, 아이라 레빈 

14위 X의 비극, 엘러리 퀸 

15위 소름, 로스 맥도널드 

16위 세 개의 관, 존 딕슨 카 

17위 재칼의 날, 프레드릭 포사이드 

18위 주교 살인 사건, S. S. 반 다인 

18위 독수리 내리다, 잭 히긴스 

20위 독 초콜릿 살인 사건, 앤서니 버클리 콕스 

21위 800만 가지의 죽는 방법, 로렌스 블록 

22위. 본 컬렉터, 제프리 디버 

23위 그리스 관 미스터리, 엘러리 퀸 

24위 제제벨의 죽음, 크리스티아나 M. 브랜드 

25위 심야 플러스 원, 개빈 라이얼 

26위 별의 계승자, 제임스 P. 호건 

27위 화이트 재즈, 제임스 엘로이 (국내 미출간) 

28위 노란 방의 비밀, 가스통 루르 

29위 무죄 추정, 스콧 터로 

30위 웃는 경관, 셰발과 발뢰 

31위 시행 착오, 앤서니 버클리 콕스 

32위 쉐도우 81, 루시엔 네이험 (국내 미출간) 

33위 통, F. W. 크로포츠 

34위 모르그가의 살인, 에드거 앨런 포 

35위 흥분, 딕 프랜시스 

36위 몰타의 매, 대실 해밋 

37위 황제의 코담배 케이스, 존 딕슨 카 

39위 붉은 수확, 대실 해밋 

39위 시간의 딸, 조세핀 테이 

40위 경찰 서장, 스튜어트 우즈 (국내 미출간) 

41위 신데렐라의 함정, 세바스티앙 자프리조 

42위 이집트 십자가 미스터리, 엘러리 퀸 

43위 크리스마스의 프로스트 경부, R. D. 윙필드 (국내 미출간) 

44위 유다의 창, 존 딕슨 카

45위 나인 테일러스, 도로시. L. 세이어스 

46위 채찍을 쥔 오른손, 딕 프랜시스 

47위. 버스커빌 가의 개, 아서 코난 도일

48위 붉은 머리 가문의 비극, 이든 필포츠 

49위 점핑 제니, 앤서니 버클리 (국내 미출간) 

50위 보이지 않는 그린, 존 토머스 슬라덱 (국내 미출간)

2013/08/26

일본의 검은 안개 (하) - 마쓰모토 세이초 / 김경난 : 별점 3점

일본의 검은 안개 - 하 - 6점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김경남 옮김/모비딕

상권을 읽었으니 하권을 안 읽을 수는 없죠. 반쯤은 의무감으로 읽은 마쓰모토 세이초의 논픽션입니다. 예상은 했지만, 상권과 마찬가지로 반세기가 지난 현 시점에서 이국의 독자들에게 흥미를 불러일으킬 만한 내용은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유명한 "제국은행 사건"에 대한 이야기 같은 것은 재미있었으며, 무엇보다도 6.25에 대해 다룬 "그들의 이상한 전쟁"은 우리에게도 확 와닿는 주제며 내용이기에 상권보다는 더 몰입해서 읽을 수 있었어요.

결론내리자면 전체 별점은 3점. "그들의 이상한 전쟁" 만으로도 읽을 가치는 충분합니다. 수록된 이야기를 소개하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7장 열여섯 잔의 독배 - 제국은행 사건의 수수께끼

괴한이 은행 직원들에게 전염병 예방약이라고 속이고 독약을 먹인 뒤 현금을 가지고 사라진, 익히 알려진 유명한 사건이지요. 저자는 범인으로 발표된 화가는 단지 희생양일 뿐, 진범은 세균부대 출신으로 GHQ에 속한 인물일 것이라고 추리합니다. 근거도 탄탄하여 설득력이 높고요. 전체적인 전개가 한 편의 추리소설을 읽는 듯한 재미가 느껴져 역시나 거장다웠습니다.

그러나 일본 경찰의 추리도 크게 다르지 않았었는데, 정치적 이유로 사건이 제대로 수사되지 않은 것에 불과했다는건 좀 맥이 빠집니다. 이 논픽션의 가장 큰 테마인 미군정의 모략으로 인한 사건에 불과할 뿐이거든요. 현실적이지만, 현실을 능가하는 무언가를 기대했는데 좀 아쉬웠습니다.

8장 소설가인가 스파이인가 - 가지 와타루 사건

소설가 가지 와타루가 미군정에 납치되어 1년간 억류되었다가 풀려난 사건을 다룹니다. 결국 누군가의 모함이 원인이었고, 목숨을 건진 것은 운이 좋았을 뿐이라는 내용인데 현실적이기는 하나, 재미는 없었습니다. 수십 년간의 독재정권을 거친 우리가 보기에는 별다를 것 없는, 오히려 평범해 보이는 내용일 뿐이었으니까요.

허나 반세기 전 일본에서조차 이런 일이 큰 사건이 되었는데, 지금 우리 현실은 그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씁쓸해지네요.

10장 다이아몬드를 사랑한 사람들 - 정복자와 다이아몬드

전쟁 당시 일본이 모았던 막대한 양의 다이아몬드가 사라진 경위를 파헤치는 내용. 전쟁에 사용하기 위해 전 국민에게서 약 62만 캐럿의 다이아몬드를 확보했지만 전쟁 후 남은 것은 16만 캐럿에 불과했다는 사건의 진상을 추적합니다. 점령군인 미군과 일본의 정치 권력 쪽으로 은닉되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둔 결말로 이어지고요.

사실 일본의 다이아몬드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딱히 관심이 가지는 않았지만, 우리나라에서도 구전 설화처럼 전해져 내려오는 "고종의 독립운동을 위한 황금"도 이와 비슷하게 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울러 중간에 언급되는 인도의 독립운동가 찬드라 보슈가 독립운동 자금을 가지고 소련으로 향하다가 비행기 사고로 사망했을 때, 사라진 것으로 보이는 보슈의 트렁크 사건도 흥미로웠고요. 이 두 가지 이야기를 가지고 논픽션을 써도 정말 재미있을 것 같아요.

그나저나 이쯤 되면 완벽한 본말전도네요...

12장 그들의 이상한 전쟁 - 모략 한국전쟁

6.25에 대한 이야기. 일단 서두에서 국민의 지지를 얻는 데 실패하여 위기에 처한 이승만 정부의 도발 가능성을 언급하는 것부터 신선했습니다. 이렇게 대놓고 돌직구를 날리는 책은 처음 본 것 같아요.

그리고 전쟁의 진행 과정을 묘사하면서, 북한군의 뛰어난 유격 전투 능력과 실제 남한 주민의 협조를 언급하며 "이 전쟁은 미군이 일으키지는 않았지만 방조한 것"이라는 식으로 서술합니다. "한국은 하나의 축복이었다. 이 땅 혹은 세계의 어딘가에 한국이 없으면 안 되었다"라고 말한 미군 사령관 밴 플리트의 말이 진실의 모든 것이겠지요.

전쟁이 확대된 것은 남한군의 무능과 북한군의 실력 탓이었다는 점, 그리고 정말로 놀라운 북한군의 전과 등 다른 곳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내용이 많습니다. 그 외에도 일본을 중심으로 한 극동 아시아의 세력 관계라든가, 맥아더의 중국 진출론 등 흥미로운 내용이 가득하고요.

한마디로 추천작. 이 책이 아니라 논픽션 전체를 놓고 보아도 손에 꼽을 만한, 그야말로 논픽션의 명편입니다.

2015/10/16

푸른 묘점 - 마쓰모토 세이초 / 김욱 : 별점 2.5점

푸른 묘점 - 6점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김욱 옮김/북스피어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모두가 싫어하는 정보상 다쿠라 요시조가 휴양지 절벽에서 추락해 죽었다. 그의 죽음이 여류작가 무라타니 아사코의 표절 의혹과 관련이 있음을 추리한 잡지사 편집부원 노리코와 다쓰오는 힘을 합쳐 사건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조사를 통해 둘은 아사코의 소설이 그녀의 아버지 시시도 간지의 제자 중 한 명인 하타나카 젠이치의 작품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러나 아사코의 남편 실종 후 아사코도 정신병원 입원 후 종적을 감추었고, 다쿠라 요시조의 처남 사카모토 고조도 동료를 살해하고 도주하는 등의 사건이 잇달아 일어났다...

마쓰모토 세이초의 1958년 작품으로 비교적 초기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500페이지가 넘는 대장편입니다.

일단 작가의 다른 작품들과는 확연히 다른 차이점이 눈에 띕니다. 제가 읽은 작가의 장편 중에서는 이례적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요. 첫 번째는 사회파 미스터리 거장의 작품임에도 사회적 문제를 건드리지 않는다는 점, 두 번째는 탐정역의 주인공들도 평범한 잡지사 편집부원들이라는 점, 세 번째는 두 남녀의 풋풋함 - 여성인 노리코 시점이지만 - 이 가득한 점, 마지막은 일본 각지를 누비는 여정 미스터리의 풍취가 강해서 후배작가 우치다 아스오의 작품 느낌이 난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차이점이 작품의 질을 떨어트리지는 않으며, 엄청난 두께임에도 술술 넘어가는 재미는 기본적으로 보장한다는게 과연 거장의 작품답습니다. 무엇보다도 추리적으로 굉장히 풍성한 덕이 큽니다. 특히 등장 인물들의 관계를 활용한 반전, 진상이 탁월합니다. 반세기 전의 아이디어인데 지금 보아도 신선했어요. 제가 가장 놀랐던 것은 다쿠라 요시조의 아내가 함께 살고 있지 않았다는 것이 밝혀지는 부분입니다. 아내라고 생각했던 여자가 사실은 아내가 아니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사건의 복잡성과 의외성이 증가하게 되는 멋진 설정이었어요. 비슷한 발상이긴 하지만 무라타니 아사코를 다쿠라 요시조가 협박한 것이 아니라 그는 일종의 '원본 소스 판매자'였다는 진상 역시도 놀라왔고요. 정말 예상하지 못했으니까요.
아울러 시종일관 무라타니 아사코의 남편 료조라던가 시라이 편집장을 범인, 혹은 조력자로 몰아가서 긴장감을 높이는 분위기도 나쁘지 않습니다.

그러나 완성도 높은 걸작이라고 하기는 애매합니다. 우연으로 엮이는 작위적인 부분이 많은 탓입니다. 대표적인 예로 다쿠라가 여관을 빠져나간 직후 길에서 수면제 때문에 휘청휘청할 때, 마침 그곳을 지나던 트럭 운전수 사가모토 코조와 마주친다는 것을 들 수 있겠지요. 이건 우연이라고 쳐도 너무 심합니다. 작가의 작품을 빌어 이야기하자면 "10만 분의 1의 우연" 정도의 확률이 아닐까요? 그 외의 인간 관계들이라던가 단서, 복선이 등장하는 과정들도 작위적입니다.

석연치 않은 부분도 많습니다. 갑자기 뛰쳐나간 다쿠라가 대체 술을 먹다가 그 시간에 어디를 나간 것인지에 대해서는 설명이 부족하고, 하타나카 구니코가 사카모토 고조와 연결되는 과정도 설득력이 없으며, 무라타니 아사코의 자살 이유 역시 와 닿지 않았습니다. 작중 설명된대로 정신병원 입원 후 사라지는 결말이면 충분했을 텐데 말이지요.

무엇보다도 편집부원 두 명이 하타나카 젠이치의 동인시절 글을 읽고 한 번에 알아챈 무라타니 아사코의 표절을 동인 동료였으며 잡지계에서도 잔뼈가 굵은 시라이 편집장이 알아채지 못했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초반부터 사건에 관련되어 있는 것으로 밝혀진 시라이 편집장이 노리코와 다쓰오에게 조사를 시킨 이유가 설명되지 않는 것도 당혹스러웠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구니코를 보호했어야 하지 않았을까요?

아울러 추리적으로 풍성하다고는 했지만 정작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다쿠라 요시조의 추락사 관련 트릭이 별볼일 없고 설득력이 낮다는건 단점입니다. 자동차 헤드라이트에 절벽이라는 장소를 더한 살해 방법인데 번거롭기 짝이 없더군요. 원래 추리대로 그냥 절벽에서 밀어버리면 되지 뭘 시간까지 들어가면서 이렇게까지 했는지에 대한 이유도 불분명합니다.

마지막으로 이건 단점이라고 하기는 뭐하지만... 다쿠라 요시조가 친구의 연인을 빼앗고, 친구의 동생을 겁탈하고, 아내를 학대하고, 친구의 원고를 팔아먹는 등 죽어도 싼 희대의 악인인데 반해 그러한 모습이 선명하게 드러나지 못한 부분도 아쉬웠어요.

쓰다 보니 단점을 잔뜩 나열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앞서 말씀드렸듯 읽는 재미만큼은 충분했습니다. 여정 미스터리, 청춘 미스터리의 원형격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좋았고 추리적으로 풍성하기도 했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비교적 별볼일 없는 후기작, 아류작들에 비하면 충분히 읽을 만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덧붙이자면, 무라타니 아사코의 표절 관련 설정은 Nervous Breakdown의 "산쥬(삼중) 노출"편이 떠오릅니다.

2007/03/16

죽음의 유역 (삼중당 미스테리 명작 20) - 미나까미 쓰도무 / 김성일 : 별점 3.5점


석탄 채굴이 주 산업이었으나 지금은 거의 폐광이 되어 몰락해가는 광산도시 시노에서 어느날 59명이라는 광부가 지하에 매몰되는 사고가 일어난다. 사고와는 별개로 손가락 한개, 그리고 정체불명의 사나이가 강둑에서 타살당한 시체로 발견되고 피해자가 손가락의 주인임이 밝혀진다. 후쿠오카에서 파견나온 경위 이와다는 탄광 사고의 격심한 혼란 와중에서도 사건 수사에 집중하며 특히 피해자가 가지고 있던 새 조롱과 카나리아를 추적하여 하나씩 단서를 포착해 나간 뒤 결국 놀라운 사건의 진상을 알아낸다.

전후 사회파의 대표 작가인 미나카미 츠도무(책에는 미나까미 쓰도무 라고 나와 있긴 하지만)의 작품.

사회파 대표 작가답게, 광산과 광부들의 처참하고 위험한 삶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면서 인간의 치졸하고 이기적인 모습을 설득력 넘치게 그리고 있는 정통적인 사회파 추리 소설입니다. 순문학 작가 출신으로 나오키 상을 수상한 이력답게 문학적 정취가 넘치며, 세밀하면서도 세련된 묘사로 손에 잡힐 듯한 현장감을 전해 주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또한 작품에서 벌어지는 2개의 큰 사건, 즉 광산 매몰 사건과 살인 사건을 교묘하게 연결하여 완성도 높은 이야기로 구성한 솜씨가 놀랍습니다. 작가가 드러내고 싶은 사회파적인 테마는 광산 매몰 사건으로 다루면서도, 추리적인 얼개는 살인사건으로 진행시키다가 결말에서 하나로 이어내는데 억지스럽지도 않게, 매끄럽게 마무리합니다.
이와다 경위의 우직한 수사로 하나씩 단서가 밝혀지며 결국 범인이 드러나는 전형적인 사회파 추리소설 전개를 보여주는데, 첫 단서인 카나리아가 너무 결정적이라는 것과 중반 이후 용의자가 특정된다는 단점이 있기는 하지만 진상이 놀라운 수준이라 추리적으로도 만족스러웠습니다. 

용의자들 자백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결말, 그리고 불필요한 수상한 인물의 묘사 같은 것은 약간 아쉬우나 아무래도 좀 오래된 작품이니 납득할만 하고요.
결론내리자면 무척 재미있게 읽었고 사회파 추리소설로도 완성도 높은, 그야말로 한 시기를 대표할 만한 작품입니다. 별점은 3.5점입니다.

동시기의 사회파 거장인 마츠모토 세이초 작품과 비교해 본다면, 마츠모토 세이초 작품보다 더 적극적으로 사회적 이슈를 드러내면서도 굉장히 치밀한 묘사로 대표되는 문학적 서정성을 지니고 있기에 충분한 경쟁력과 가치가 있다 생각됩니다. 다른 작가들에 비해 국내에 소개가 많이 되지 않은 것이 이해가 안되는데, 작가의 대표작이라는 나오키 상을 탄 "기러기의 절"이나 이 작품과 비슷한 시기에 발표된 "기아해협"이 국내 출간되기를 기원해 봅니다. 
이 작품 역시 번역이 많이 부실해서 제대로 작품의 "맛"을 느끼기 힘들었는데, 더더욱 제대로 된 출판물로 다시 나와 주었으면 합니다.

마지막으로 오래된 작품이라 구하기가 무척이나 어려운 책인데 귀중한 책을 선뜻 제공해 주신 이영진님께 다시한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