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검은 안개 - 상 - |
마쓰모토 세이초가 발표하여 일세를 풍미했던 전설적인 논픽션이 드디어 정식으로 번역되어 출간되었습니다. 이런 책까지 읽을 수 있게 되다니, 정말 세상이 좋아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본 작품은 총 2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권에는 모두 6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목차는 아래와 같습니다.
- 『일본의 검은 안개』를 헤쳐가는 방법 - 모비딕 편집부 서문
- 1장: 출근길에 사라진 총재 - 시모야마 국철총재 모살론
- 2장: 10분간 2,000피트, 고도 유지 - 목성호 추락 사건
- 3장: 누가 자전거를 쐈는가 - 시라토리 사건
- 4장: 쓸모 있는 자와 쓸모 없는 자 - 라스트보로프 사건
- 5장: 혁명을 파는 남자 - 이토 리쓰 사건
- 6장: 검은 돈의 뿌리, 빙산의 일각 - 2대 부정부패 사건
사회파 추리소설은 사회 고발적인 요소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논픽션과 유사한 면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사회파 추리소설의 거장이자 실제 언론인이기도 했던 마쓰모토 세이초가 쓴 논픽션이, 단순한 사건 추적을 넘어 흥미로운 추리소설을 읽는 듯한 재미를 선사해 주는건 그렇기 때문이겠지요.
다만, 이 책에 실린 사건들은 발표 당시 일본에서는 큰 반향을 일으켰겠지만, 반세기가 지난 오늘날 한국 독자들에게는 다소 생소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는 점은 아쉬웠습니다. 저 역시 이름이라도 들어본 사건은 ‘시모야마 국철총재 사건’ 하나뿐이었거든요. 그런 이유로 별점은 2.5점입니다.
물론 거장의 대표 논픽션이라는 점에서 가치 있는 작품임에는 틀림없지만, 같은 논픽션이라면 국내 추리 애호가 분들께는 다루는 사건 자체가 좀 더 흥미로운 "미스터리의 계보"를 먼저 추천드립니다.
"출근길에 사라진 총재"
‘빌리 배트’에도 등장했던, 시모야마 국철총재가 실종 후 열차에 치인 시신으로 발견된 사건을 다룬 이야기입니다. 수사는 자살로 종결되었지만, 마쓰모토 세이초는 이를 미군정 G2와 GS 간의 권력 다툼에서 비롯된 모략으로 해석하며 다양한 정황과 증거를 통해 설득력 있게 제시합니다.
특히 시모야마 총재의 속옷에만 묻어 있던 기름, 절단된 시신과 멀쩡한 겉옷, 사체에서 나온 색색의 가루 등은 모두 치밀하게 분석되며, 그가 어디에 감금되었는지를 추리하는 장면이나 기차 시간표를 통해 사건을 재구성하는 장면은 마치 본격 추리소설을 읽는 듯한 재미를 줍니다. 논픽션으로도, 재미로도 뛰어난 이야기로, 꼭 한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10분간 2,000피트, 고도 유지"
1952년, 33명의 승객을 태운 채 추락한 ‘목성호’ 항공기의 사고를 다룬 이야기입니다. 유일한 여성 승객이었던 오하라인 요코가 다이아몬드 밀수 공작의 희생양이라는 가설도 등장하지만, 점령기 미군의 실수였을 가능성으로 마무리되어 결말은 다소 싱거웠습니다. 분량도 25페이지 남짓으로 짧은 탓에, 여러모로 큰 인상을 주지는 못하네요.
"누가 자전거를 쐈는가"
삿포로에서 발생한 경찰관 시라토리 사살 사건의 전말을 다루고 있습니다. 공산당 조직을 해체하려는 모략이라는 시각에서 접근하지만, 사건 자체가 한국 독자 입장에서는 그리 흥미롭지 않아 몰입이 어려웠습니다. 유사한 일이 한국에서는 자주 벌어졌던 탓도 있을 것 같습니다.
"쓸모 있는 자와 쓸모 없는 자"
주일 소련 대표부의 라스트보로프가 실종 후 미국으로 망명한 사건을 추적합니다. 처음에는 대단한 인물인 줄 알았지만, 실제로는 이렇다 할 정보도 없는 인물로 밝혀져 다소 허무하게 느껴졌습니다. 냉전기의 일본이 미·소 간의 첩보 충돌 지대였다는 역사적 의미는 느껴졌지만, 지금의 독자들에게는 큰 흥미를 주기 어렵습니다.
"혁명을 파는 남자"
일본 공산당 내 실력자였던 이토 리쓰의 제명 사건을 통해 그의 이중 스파이 행위를 조명한 이야기입니다. 개인적 욕심과 비겁함으로 인해 좌우를 오가며 배신을 일삼는 인물의 행보는 읽는 재미가 있었으나, 스파이 행위 자체는 단순한 이간질에 불과해 큰 임팩트는 없었습니다. 중국에서 27년간 감옥 생활을 했다는 후일담은 충격적이지만, 그만큼의 무게감 있는 인물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검은 돈의 뿌리, 빙산의 일각"
쇼덴 사건과 조선 사건이라는 두 건의 부정부패 사건을 다룹니다. 쇼덴 사건은 GHQ와 관련된 정치적 공작이 얽혀 있어 흥미보다는 복잡한 뒷사정 중심으로 흐르고, 오히려 평범한 고발에서 시작된 조선 사건 쪽이 훨씬 인상 깊었습니다. 결국 수사는 정치적 이유로 흐지부지 마무리되며, 지금의 대한민국 현실과도 유사하다는 점에서 씁쓸함이 남는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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