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주신 분들께 안내드립니다.

2009/02/27

대중적 감수성의 탄생 : 도박, 백화점, 유행 - 강심호 : 별점 3점

 


일본 강점기 시대의 조선의 도박과 백화점, 유행이라는 주제를 당대의 문학작품을 빌어 소개하고 있는 책입니다. 재미보다는 자료로 쓸까하고 사 본 책이죠. 살림 지식 총서의 책이 모두 그렇듯 얇아서 금새 읽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얇은 책 두께 때문인지 많은 자료를 동원하지 않고 김유정, 이효석, 김기림, 김남천 등 소수의 작가와 텍스트만 예를 든다는 점, 그리고 특정 주제에는 특정 작가의 특정 작품에 대한 사례만 등장하고 있다는 점이 가지는 한계는 분명합니다. 설득력도 떨어지고 말이죠. 설명하고 있는 도박과 백화점, 유행이라는 소재 모두가 상당히 재미난 것들이기에 좀 더 방대한 텍스트와 자료를 참고로 제시하였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큽니다. 물론 그랬더라면 이 가격, 이 두께로는 출간되지 못했겠지만요.

그러나 이효석의 "벽공무한" 같이 잘 모르던 작품에 대해 알게된 점은 긍정적인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일확천금을 노리는 사람의 마음가짐은 예나 지금이나 별로 다를게 없다는 것에 더해서 당시 "복권"이나 "경마장" 같은 투기의 기회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된 것도 수확이고 말이죠. 그나저나, 주인공 이름이 "천일마" 던데 이름 참... 강건마도 아니고....

어쨌건 계속 진행 중인 30년대의 경성을 무대로한 소설 창작에는 꽤 써먹을만한 요소가 많아 보였습니다. 덕분에 두께와 가격에 비한다면 그런대로 얻은게 있는 책으로 별점은 3점입니다. 제가 여태까지 읽어왔던 몇권의 살림 지식 총서 중에서는 베스트로 꼽을만 하네요.

2009/02/26

주석 달린 셜록 홈즈 1권이 왔습니다.

 리브로 쿠폰 신공과 쇼핑의 딜레마


얼마전 쓴 글의 결과물인 "주석 달린 셜록 홈즈 1권" 이 배송되어 왔습니다.

쇼핑의 딜레마에 대한 결론으로는 "17,800원 값어치는 한다" 는 것입니다. 싸움에는 이긴것 같긴 한데, 제값을 줬더라면 상당히 아픈 상처가 남았을 것 같은 책이기도 하네요.

간략한 감상은 :

1. 책은 흉기 수준을 떠나 (너무 무거워서 한손으로 휘두를 수 없어!) 거의 가구 수준입니다. 이걸 왜 회사로 배송했을까... 집으로 보낼걸.

2. 40% 할인 탓인가? 표지와 내지가 일부 구겨진 것이 거슬립니다. 종이질을 보건데 빳빳한 새것을 받아도 보관, 또는 독서 중에 구겨질 것 같아 내버려 둘 예정이긴 하지만 가격 대비해서 표지와 종이질이 상당히 저렴한 것이 못내 마음에 들지 않는군요. (물론 전 2만원이나 싸게 샀지만요...)

3. 2권 2007년, 3권 2008년 출간 예정이라는 띠지 광고문구를 보고 안구에 습기가.... 아무리 장르문학이 반짝 붐이라 하더라도 이 책은 정말이지 "무모한" 기획이었어요. 2017년에 2권이 나오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죠...

이제 집에 가져가서 읽을 일만 남았습니다. 아니지, 일단 집에 "가져가는게" 문제겠구나....

2009/02/24

리브로 쿠폰 신공과 쇼핑의 딜레마

 잡담!! 리브로 고마워! 인사이트 밀 독서중!!


매일 600명에게 쏜다고 하는 쿠폰을 구해서 그동안 구입하고 싶었던 "주석달린 셜록 홈즈"를 구입하였습니다. 정가 38,000원 인데, 현재 판매가 부진한 모양인지 40% 할인해서 22,800원에다가 5,000원 쿠폰을 빼니 17,800원에 구입이 가능하더군요. 원가 대비 20,000원 (!) 절약한 셈입니다. 파는 모양새를 보아하니 이번 기회가 지나가면 절판될 것이 뻔해서 그냥 구입해 버렸죠^^ 셜록 홈즈의 파스티쉬 작품을 창작하는 입장에서 구입하지 않을 수도 없는 책이고 말이죠.

그런데 20,000원 번 셈이니 기분은 좋지만, 또 달리 생각하면 이번의 할인과 쿠폰이 없었더라면 과연 구입했을지도 의문이 듭니다. 어떻게보면 20,000원 할인된다는 매력에 빠져서 17,800원이라는 지출에 대한 것을 너무 간과한 것이 아닌가 싶거든요. 금액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일종의 착시효과랄까요... 쿠폰도 600명밖에 안준다지만 너무 쉽게 얻어 걸려서 왠지 낚시같기도 하고 말이죠. 결과적으로는 17,800원을 약간은 충동구매로 구입해 버린 꼴인데, 비교하자면 내가 누군가와 싸울때 상대방을 2~3대 더 때려서 제압은 했지만 나도 몇대 맞아서 다치고 아픈, 그런 상황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겨서 기분은 좋은데 나도 손해를 본 그런 상황.

뭐 이러한 딜레마(?)는 인터넷 쇼핑을 하다보면 자주 겪는 일이기도 한데 득실을 따지려면 책을 받아봐야 하는 만큼 결론은 조금 유보하는 것이 좋겠죠. 책이 영 아니라면 이기긴 이겼지만 피를 철철 흘리고 쓰러지는 상황이 될 수도 있을테고 (너무 깊게 찔렸어....),
책만 좋고 만족스럽다면 내가 한대정도밖에 안맞고 상대방을 박살낸 기분을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부디 후자쪽의 상황이 되기를 바랍니다. 되도록이면 한대도 안맞으면 더욱 좋고요.^^

그나저나, 결론은 어쨌건 내가 17,800원에 너무 벌벌 떠는 소심남이라는 거. 하아....

2009/02/23

변화하는 세계의 아틀라스 - 장 크리스토프 빅토르 / 안수연 : 별점 3점

 

변화하는 세계의 아틀라스 - 6점
장 크리스토프 빅토르 외 지음, 안수연 옮김/책과함께

다양한 지도를 가지고 국제정세를 논하고 있는, 쟝르를 구분하자면 역사 + 정치역학 류의 독특한 책입니다. 아버지가 부산에서 읽으신 뒤 보내주셨기에 읽게 되었습니다. 제법 큰 크기 덕분에 들고다니면서 읽지는 못하고 주말에 집에서 완독하였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모든 주제를 그 주제에 해당하는 지도를 가지고 설명하고 있는데, 그 주제에 대해 쏙속 들어오게 하는 비쥬얼적인 학습 효과가 정말로 놀랍더군요. 대부분의 주제들이 지정학적 위치가 중요한 것들이라는 것 덕분도 있겠지만요. 이러한 독특한 설명으로 목차도 길고 담고 있는 주제가 상당히 많음에도 불구하고, 다 읽고나니 저도 이 책에서 설명하고 있는 다양한 지식들을 어느정도 머릿속에 집어넣은 것 같아 만족스러웠습니다. 또한 지도가 중요한 책 답게 올컬러에 인쇄도 아주 훌륭하고 종이질이나 번역 모두 좋은 완성도 높은 책이기도 하고요. 어쨌건 이제 저도 중국, 러시아에서 벌어지는 여러가지 일들이라던가, 세계의 패권을 가지고 부딪히는 동서양의 구도에 대해 어느정도 감을 잡았습니다. 하하하! (정말?)

하지만 보다 멀티미디어적이고 시청각적인 방법으로 이 책의 내용이 제작되었더라면 더욱 좋았을텐데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만큼 비쥬얼이 중요한 책이기 때문이죠. 어떻게 보면 애니메이션 필름북을 보는 듯한 답답함마저 느껴졌거든요. 사실 간단히 웹이나 플래쉬 컨텐츠로 구현할 수 있는 내용인데 책으로 출간되면서 올컬러에 가격도 15000원이 넘는 조금 비싼 컨텐츠가 되어버린게 아닌가 싶네요. 읽고나니 원전격이라는 TV 다큐멘터리가 더 땡깁니다...^^;;

뭐 재미도 있고 이런류의 도서에 쥐약인 저에게 나름의 지식을 잘 전달해 줬다는 측면에서 별점은 3점입니다만, 조금은 아쉬운감이 들었다고나 할까요? 이 가격이라면 CD라도 한장 껴주지.... 덧붙이자면, 저같은 성인보다는 중고등학생에게는 매우 유익할 듯 싶습니다.

2009/02/21

구부러진 경첩 - 존 딕슨 카 / 이정임 : 별점 3점

구부러진 경첩 - 6점
존 딕슨 카 지음, 이정임 옮김, 장경현 감수/고려원북스

몰링포드 마을의 대지주 판리 가문의 후계자 존 판리가 거처하는 판리 클로스에 어느날 낯선 손님이 변호사와 함께 찾아온다. 찾아온 이유는 자신이 진짜 존 판리라는 것. 그는 약 25년 전 타이타닉 호를 타고 미국에 있는 친척을 찾아가던 10대 소년 존 판리가 타이타닉 호 침몰 사고 시에 다른 소년과 신원이 뒤바뀐 채로 자라났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두명 중 누가 진짜인지를 놓고 줄다리기를 한 지 1개월여만에 결정적 증거를 가진 25년전의 가정교사 케넷 머레이를 판리 클로스로 초빙하고, 2명의 존 판리는 각자의 변호사를 대동하고 케넷 머레이와 대면하여 결정적 증거를 통해 진위를 가리고자 하는데....

존 딕슨 카의 미번역된 최대 대표작인 "구부러진 경첩" 을 드디어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최근 고전 명작들을 다시 읽고 있는데 이렇게 새롭게 소개되는 고전 명작들을 볼때마다 정말이지 기분이 좋네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타이타닉호 침몰이라는 대형 사건, 그리고 그에 따르는 인물 바꿔치기에 대한 이야기는 흡사 "마틴 기어의 귀향"을 생각나게 하기도 했고요. 그러나, 이 작품은 전에 읽었던 "녹색은 위험" 처럼 아주 높은 점수를 주기는 힘든 작품이었습니다. 읽기 전부터, 추리소설을 알고 접해온 20여년 동안 가져온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까요?

일단 딕슨 카 특유의 오컬트 적인 요소가 별로 두드러지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이야기를 오컬트쪽인 방향으로 너무 끌고가기 위해서 쓸데없는 사건 - 마녀 숭배 의식과 관련된 살인 사건 - 을 가져다 붙인 느낌이 강했습니다. 실제 본편의 중심 사건과는 별로 연관되는 것이 없을 뿐더러 이 마녀 숭배 의식 살인 사건이 벌어지지 않았다 하더라도 이야기의 전개는 그다지 무리가 없이 수정할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작가의 욕심이 너무 지나친게 아니었나 싶어요.

또 본편에 등장하는 메인 사건의 불가능한 설정, 즉 주위에 아무도 없는, 그리고 그를 지켜보는 사람이 있는 상태에서 한 인물이 눈깜짝할 사이에 살해당한다라는 불가능 범죄에 대한 설정은 딕슨 카 다운 아주 좋은 설정이기는 합니다. 문제는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단서, 그리고 핵심 트릭이 좀 애매한 편이라는 거지요. 저 개인적으로는 기디온 펠 박사가 밝혀내는 가설 (혹은 진상일지도?) 쪽이 훨씬 마음에 들더군요. 이 소설의 자칭 범인이 주장하는 트릭에 대한 설정은 현실성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범행에 대한 현실성은 물론 작품 내부에서 별 필요는 없지만 이상하게 자주 등장하는 "자동인형" 조작에 대한 설득력도 부족했고 말이죠. 이러한 부분에서는 정통 추리물로 독자와 공정한 승부를 진행하는 작가의 배려가 조금 아쉽더군요. 아주 약간의 복선만 등장해 주었더라도 좀 더 수긍이 갔을텐데 말이지요.

아울러 기디온 펠 박사도 마지막의 추리쇼 이외에는 별로 활약이 눈에 뜨이지 않았으며, 뭔가 있어보이는 제목 역시 "작품 내용과는 별 상관이 없었다" 라는 점, 빅토리아 데일리 사건의 진상은 대관절 뭐냐라는 문제, 사건의 동기가 너무 약한게 아닌가 하는 문제 (가짜라면 오히려 당당하게 이혼을 주장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마녀 집회 문제가 그렇게 큰 이슈였을까요 ?), 그리고 너무 빡빡하게 자동인형 조작에 대한 설정을 적용한 것이 아닌가 (사실 C.M.B 에 등장한 설정이 더 합리적이겠죠)하는 등의 문제점들도 눈에 거슬리더군요.

그래도 그동안 추리 애호가로 지내오면서 너무나 읽고 싶었던 작품 중 하나임에는 분명했고, 고전 명작으로 이름이 높은 작품이라 구입해서 읽은 것에는 전혀 후회가 없습니다. 한 10년 전에만 읽었더라도 더 좋은 평을 할 수 있었을텐데, 너무 소개가 늦게 된 것이 아쉬울 뿐이죠. 별점은 3점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원래 영국을 소란스럽게 했다는 이 작품의 원전격 사건인 "틱본 사건 (아서 오턴 준남작 사칭 사건)"과 보다 연관시켜 존 판리의 진위를 따지는 부분만 좀 더 디테일하게 파고들었더라면 더 흥미진진하고 재미있으면서도 좀 더 짧게 정리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타이타닉 침몰 사건까지 등장하는 등 인물 바꿔치기에 대한 내용이 충분히 드라마틱했는데도 불구하고 너무 작가 특유의 분위기를 고집한 탓에, 사족이 많은 탓에 쓸데없이 길어진게 아닌가 싶거든요. 어쨌건 이로써 딕슨 카 작품은 현재까지 국내 출간된 책은 전 작품 구입-완독이라는 재패의 기록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덧붙여, 고려원북스에서 이 책을 출간해 주신 것에는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만, 이 책은 제가 최근 몇년간 본 책 중 최악의 표지 디자인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꼭 지적해 드리고 싶습니다. 작품과는 별 상관없는 여성의 일러스트를 아동용 동화책에나 나올듯한 스타일로 전면 배치한 과감함도 경악 그 자체지만 그에 더하여 책날개를 뒤집은 듯한 앞표지는 보관과 독서, 양쪽 모두 불편할 뿐이었습니다. 제발 원서 표지를 참고라도 해 줬으면 좋겠네요.

2009/02/19

녹색은 위험 - 크리스티아나 브랜드 (크리스티나 브랜드) / 이진 : 별점 3점

녹색은 위험 - 6점
크리스티아나 브랜드 지음, 이진 옮김/시작

2차 대전 당시 런던 대공습의 와중에 마을 외곽의 한 야전병원의 수술대 위에서 우체부로 일하던 히긴스 노인이 사망한다. 이 사건으로 외과의사 문과 저베이스, 마취의 반스, 간호사 마리온과 간호 봉사대원 제인, 프레데리카, 에스더 7명의 작은 공동체에 파문이 일고 경시청에서 커크릴 경감이 파견되어 사건 수사를 시작한다. 이후 간호사 마리온이 살해당한 시체로 발견되고 커크릴 경감은 범인의 정체를 눈치채고 공습의 와중에서 범인을 잡아내기 위해 노력하는데...

크리스티아나 브랜드의 대표작입니다. 국내 출간이 너무 늦은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유명한 작품이죠. 뭐, 이 땅의 장르문학 홀대가 한두해 있었던 일이 아니니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요. 어쨌건 동서 추리문고를 통해 "제제벨의 죽음" 밖에 소개되지 않았었지만 "제제벨의 죽음" 을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는데, 이 "녹색은 위험"이 더 대표작으로 널리 알려져있어서 기대가 무척 컸었기 때문에 이렇게 읽게 되니 정말 감개무량했습니다.

그러나... 솔직히 작품 자체는 실망스러웠습니다. 기대가 너무 컸던게 아닌가 싶네요. 일단은 전개가 굉장히 고풍스러운 것이 약간 거슬리는 부분이었습니다. 반세기 이전 작품이긴 하지만 글쎄요... 크리스티 여사님 작품을 읽을때와는 확실히 다른 느낌이었어요. 작풍인지는 모르겠지만 심리묘사와 개인적이고도 사변적인 대사가 지나칠정도로 장황하게 난무하는 점도 고풍스러운 느낌에 한몫 거들면서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였고요. 이렇게 장황한 묘사와 대사는 그 사이사이에 중요 단서를 살짝 살짝 끼워넣기 위한 장치이긴 하지만 그래도 정도가 좀 심했습니다. 번역의 문제가 좀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뭔가 매끄럽지도 않고 말이죠.
게다가 커크릴 경감 (콕크릴 경감) 은 이 작품에서는 정말이지 하는게 너무 없어요! 되려 애꿎은 희생자만 늘려버리고 추리보다는 자백에 의존하는 등 명탐정으로서의 역할 수행을 전혀 하고 있지 않습니다. "제제벨의 죽음" 에서 접했던 명탐정과는 전혀 다른사람 같았어요.

동기도 지나치게 오버스러웠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혐의를 두기 위해서 다양한 동기를 등장인물들에게 가져다 붙이는건 고전 추리물로는 당연한 전개겠지만, 문제는 이 동기들이 거의 다 평이한 수준이라 "살의"를 이끌어내는 것은 좀 어려워 보였던 탓입니다. 심지어는 남동생과 누나의 목소리가 비슷하다는 어거지(?)까지 가져다 붙이는 건 영 아니다 싶더군요.

하지만 실망의 가장 큰 원인은 무엇보다도 제가 10년도 더 전에 이 작품의 영화버젼을 이미 감상했던 탓이 가장 큽니다. 화쪽이 더 깔끔하고 간결하게 각본을 구성해서 더 몰입해서, 훨씬 재미있게 볼 수 있었거든요. 사건도 잘 축약하고 내용을 많이 쳐 냈지만 추리적인 맛은 충분히 잘 살려냈던 덕분입니다. 물론 영화에 비해서 훨씬 중첩되어 쌓여있는 복선들, 다양한 단서들, 용의자와 범인을 특정하게 만드는 시간의 굴레에 대한 설정, 특히 "가운" 에 대한 추리적인 발상은 무척 좋았고 곳곳에 숨어있는 영국적인 묘사와 유머들 역시 마음에 들긴 했습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거장의 대표작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겠죠. 영화와는 다른 책의 미덕이라 할 수 있는 심리묘사와 디테일은 확실히 잘 살아 있으니까요. 그러나 지금은 구하기 힘들어도 영화쪽이 더 나은건 분명합니다. 패트리샤 하이스미스의 "낯선 승객" 역시 히치콕 감독의 영화버젼이 훨~씬 뛰어나듯이 가끔은 원작을 능가하는 영화도 존재하는 법이겠죠. 
아울러 이 작품의 가장 큰 트릭은 바로 "제목" 과 동일한데 역시나 영화를 통해 접했기에 신선함을 느끼기 힘들었습니다. 주요 트릭과 범인을 이미 알고 있는 추리소설을 다시 읽는다는 것이 얼마나 지루한 일인지 다시금 느끼게 되었네요. 
영화는 "흑백영화"라서 색깔을 전혀 구분할 수 없었던 탓에 마지막 트릭 공개가 좀 황당했던 기억이 나기는 합니다만... 하여튼 별점은 3점입니다. 영화를 보지 않았더라면 점수가 좀 더 높았을까요? 아직 크리스티아나 브랜드를 접하지 않으신 추리 애호가분들이 계시다면, "제제벨의 죽음" 을 먼저 추천드립니다.

그리고 한가지만 더 덧붙이자면, 이 고전 명작을 출간해 주신 출판사 관계자 분들께는 진심으로 감사드리지만 책 표지 디자인과 본문의 구성은 별로였습니다. 표지 디자인은 "병원이 무대인 소설에 제목은 "녹색은 위험" 이니 이렇게 가야겠다!" 라고 떠오른 첫 생각을 그대로 비쥬얼로 옮겨놓은 듯한, 녹색 바탕에 의사로 보이는 인물이 전면에 배치된 디자인인데 너무 뻔하고 안이하잖아요... 90년대 로빈 쿡 소설이 생각날 정도로 올드하기도 하고요. 가격도 착하고 책도 괜찮았지만 조금만, 아주 조금만 더 신경써 주신다면 더욱 좋을 것 같네요.

2009/02/18

화형법정 경성버젼 시놉시스

 엊그제 읽은 화형법정의 경성 버젼을 업그레이드 해서 몇줄 적어보았습니다. 트릭같은것은 대충 구상이 끝났는데 어떨지 모르겠네요. 뭐 이런 번안 소설이 지금와서 먹히진 않을테니.. 그냥 재미 삼아 쓴 것이니 만큼 가볍게 읽어 주세요. 일단은 전반부만 작성되었습니다.

** 주요 등장인물 소개 **
이완두 - 에드워드 스티븐스 : 경성의 모 일보 기자.
마리아 - 마리 도브리 : 이완두의 아내
다구치 - 마크 데스파드 : 이완두 옆집에 사는 지인. 조선 총독부 관리.
배동천 - 파딩턴 : 다구치의 오래된 친구로 전직 의사.
현씨 노인 (현씨 아범) - 헨더슨 노인 : 다구치 집안 고용인
고구수 - 고던 클로스 : 유명 작가.

** 전반부 줄거리 **

조선인으로 동경제국대학 유학 후 경성에서 신문기자를 업으로 먹고 사는 "이완두"는 유학시절에 만나 교제 후 결혼한 미모의 신여성 아내 마리아가 자랑거리이다. 별다른 사건 없이 평탄하고 무난한 나날이 이어지던 중, 완두는 신문사에 새로 연재하게 된 유명 작가 "고구수"의 최신작인 "전설 열전" 이라는 원고를 주말에 집에서 읽기 위해 가져가던 중 우연찮게 전차에서 정조시절 저잣거리에서 유명했던 무당이자 저주에 능했다는 한 여인에 대해 쓴 원고를 읽다가 그 여인의 설명에서 자신의 아내와 굉장히 흡사하다는 사실을 알고 놀란다. 또한 사실상 아내의 과거라던가 고향에 대해 거의 모르고 있었던 것을 깨닫고 집에 도착한 뒤 아내에게 몇가지 물어보려 하지만 갑작스럽게 옆집 사는 일본인 "다구치"의 방문 때문에 기회를 놓치고 만다.

큰 교제는 없었지만 제국 대학 동문이라는 이유 때문에 몇번의 왕래가 있었던 다구치는 조선 총독부 식산과에 근무하는 관리로 얼마전 같이 살던 백부가 사망한 것 때문에 문상도 갔었던 터. 다구치는 자신의 친구라는 전직 의사 "배동천"과 함께 완두를 방문한 뒤 비밀스럽게 방문 목적을 털어놓는다. 방문 목적은 백부가 사실은 독살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깊어져서 이문리 묘지에 매장된 백부의 묘를 몰래 파내는 일을 도와달라는 것. 물론 전직 의사 배동천이 시신을 검시하여 독살에 대한 확증을 얻으려는 것이었다. 독살에 대한 의심은 백부가 사망하던 날 우연찮게 백부의방 옆에서 라디오를 듣던 고용인 현씨어멈이 무당같이 보이는 행색의 여인이 독이 든 음료수를 전해주고 유령처럼 사라졌다고 말한 것과 실제로 독이 든 음료수잔이 백부의 방에서 발견된 것 때문이었다.

그다지 멀지 않지만 한밤중에 몰래, 소문이 나지 않게 빨리 파내기 위하여 다구치의 고용인인 현씨 어멈의 남편이기도 한 현씨 노인까지 4명의 일행은 곧바로 묘역에 도착하여 묘 발굴에 착수한다. 그러나... 발굴된 관에는 시체가 없었다! 다구치는 당시 상여꾼으로 직접 참여했었기에 시체가 확실히 매장때까지 관에 들어있었다고 주장하지만 시체가 없는 것에는 도리가 없는 상태. 어쩔 수 없이 일행은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데 집에는 다구치가 한밤중의 발굴을 숨기기 위해 여행보냈던 다구치의 아내와 여동생이 백부가 독살되었다는, 레이시치 경부가 보냈다는 의문의 전보를 받고 이미 돌아와 있는 상태.

다음날 여러가지 사건과 분위기 탓에 잠을 설친 이완두 앞에 다구치 백부의 고용 간호사와 다구치의 동생 오구리가 나타나고 뒤이어 실제 레이시치 경부 본인이 등장하는데....

2009/02/17

화형법정 - 존 딕슨 카 / 오정환 (약간의 스포일러 있습니다) : 별점 4점

화형법정 - 8점
존 딕슨 카 지음, 오정환 옮김/동서문화동판주식회사

출판계에서 꽤 잘나가는 위치에 있는 편집인 에드워드 스티븐스는 자신의 주말 별장 이웃인 마크 데스파드의 급작스러운 방문 및 부탁을 받는다. 부탁 내용은 얼마전 사망한 마크의 백부 마일즈의 독살 의심에 따른 시체 발굴 작업. 마크와 그의 친구인 전직 의사 파팅턴, 마크의 고용인 헨더슨 노인과 스티븐스 4인은 한밤중에 납골당 입구를 뜯어내는 대 공사를 진행하지만 마일즈 백부의 시체가 사라진 사실을 알게된다. 그 외에도 스티븐스는 이 사건과 관련되어 있다는 자신의 아내에 대한 여러가지 놀라운 사실들을 알게되는데....


구판 동서 추리문고로 읽었습니다. 이 책은 10여년전 다른 구판 동서 추리문고 몇권과 함께 제 첫 직장의 여사장님께서 하사하여 주신 선물이죠. 지금이야 복간되긴 했지만 당시에는 정말 구판 동서 추리문고로 밖에는 구할 수 없는 책이라 너무나 감사하면서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최근 고전 추리물에 대한 애정이 다시금 샘솟던 차에 손에 잡히는데로 읽게 되었네요.

어쨌건 줄거리 요약부터 하자면, 위에 대충 써 놓기도 했지만 미모의 정체불명 아내와 못난 이웃사촌때문에 벌어지는 삼일동안의 대소동... 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써버리면 흡사 "어니스트 캠프 대소동"같은 코미디 영화가 연상되는데 딕슨 카 선생님 작품이 당연히 코미디일리는 없죠. 이 작품은 역사적 사실, 그것도 흑마술 관련된 고딕 호러같은 이야기를 근대에 벌어진 사건과 절묘하게 결합시킨 딕슨 카 류 모던 고딕 호러 오컬트 추리물의 결정판과도 같은 작품입니다.

일단 장점부터 이야기하자면, 달랑 삼일에 걸친 이야기 -그것도 대부분은 이틀동안 벌어지는- 를 장대한 장편으로 풀어낸 딕슨 카의 솜씨는 역시나 탁월합니다. 또한 이틀동안 몇 안되는 인물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사건의 스케일을 커버하기 위해 앞서 말했듯 수많은 사람이 죽어나갔던 역사적인 사실, 즉 17세기 사형당했던 유명한 독살범 브랑빌리에 후작 부인 (마리 도브리)과 생 클르와, 데프레와 같은 인물들을 사건이 실제로 벌어지는 현재와 쌍으로 엮어놓듯 전개하며 작품에 색다른 맛과 다채로움을 더해주는 것도 좋고요. 덕분에 최근 유행하는 팩션같은 형태를 띄게 되었는데, 이 역시 시대를 앞서가는 감각이 느껴졌어요.

무엇보다도 탁월한 퍼즐러, 고전 미스터리 황금기의 거장답게 불가능 범죄 2건을 전면에 배치하여 대담하게 독자와 승부하는 맛이 잘 살아있어서 추리 애호가로서 너무나 즐겁게 읽었습니다. 이런게 진정한 고전 추리물의 맛이겠죠. 2개의 범죄 -꽉 막힌 납골당에서 어떻게 시체가 사라졌는지와 마일즈 백부의 방에서 문을 뚫고 나가듯이 사라진 백부에게 독약을 먹인 여인의 정체- 모두 신선하면서도 예측을 뛰어넘는 전개와 더불어 고딕 호러적이면서도 역사적인 사건과 어우러진 작품과 너무 잘 어울리는지라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별것 아닌 듯 했던 여러가지 복선들이 나중에 사실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는 고전적 전개의 효과적인 사용 역시 감탄사가 절로 나오고요. 그 외에도 알리바이에 대한 참신하면서도 거장다운 대담한 발상과 전개(응?) 등 추리적으로는 즐길 거리가 정말 많은 작품이었습니다.

그러나 단점도 있습니다. 딕슨 카 선생 최 전성기에 발표된 작품답지 않게 좀 지나칠 정도로 오컬트 쪽에 치우친 나머지 전개의 설득력이 많이 부족한 편이거든요. 갑작스럽게 사건에 뛰어들어 탐정 역할을 하는 고던 클로스의 생뚱맞은 등장은 뭐 그렇다 치더라도 마크의 도주, 오그덴의 돌출행동 같은 것들은 사실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 또한 에필로그가 지나칠 정도로 사족의 느낌이 강해서 무척 불만스러운데요. 왜 이런 에필로그를 구태여 집어넣어서 잘 마무리 된 정통 고전 추리물을 오컬트로 덧칠했는지는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에필로그 때문에 사건의 진범과 범행의 방법 등 모든 요소가 헝크러져 버리거든요. 아무래도 작가의 욕심이 너무 지나치지 않았나 싶어요.

하지만 이러한 단점에도 불구하고 과거에 벌어진 역사와 맞물리는 현대에 벌어지는 괴사건, 그리고 놀라운 진상! 덧붙여 반전까지 있는 저도 이런 작품을 한번 써보고 싶어질 정도로 매력적인 작품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겠죠. 제가 읽은 딕슨 카 작품 중에서는 충분히 상위권을 점할 작품으로 (해골성, 황제의 코담배케이스, 연속 살인사건 등이 상위권입니다), 단점을 상쇄하고도 남는 멋진 요소가 많고 재미 역시 확실하기에 별점은 4점입니다. 아직도 이 작품을 읽지 않는 추리 애호가가 있다면 꼭 읽어보시라 추천하고 싶네요.

덧붙이자면, 김내성 선생님의 "진주탑" 처럼 이 작품도 번안하면 무지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선 말기에 벌어진 살인사건과 얽힌, 경성에서 벌어지는 무서운 참극! 조선 총독부 주재원인 옆집 일본인 후루따(가칭^^) 의 부탁으로 우연찮게 사건에 뛰어든 조선인 변호사 (아무려면 어떻습니까) 고도일, 그리고 그의 미모의 부인에 얽힌 놀라운 진상! 어쩌구 저쩌구...  재미있을 것 같지 않나요?^^

2009/02/15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 데이빗 핀처 : 별점 3점

 


줄거리 요약은 필요없겠죠? 그간 이런저런 일로 힘들었던 와이프와 간만에 같이 감상한 영화입니다.

일단 영화는 좋았습니다. 브래드 피트와 케이트 블란챗을 비롯한 배우들의 연기는 물론이고 (개인적으로 예인선 선장역 배우가 아주 마음에 들었습니다) 거의 한세기에 육박하는 영화의 배경에 대한 디테일이 잘 살아있어서 무척이나 정교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데이빗 핀처 감독의 변치않는 장인정신이 느껴져서 만족스러웠고요.

그러나 저 개인적으로는 지루함이 더 큰 영화였습니다. 어른을 위한 동화이긴 한데 저하고는 확실히 맞지 않는 부분이 더 많았어요. 이번 아카데미의 유력한 후보이기도 하고 평도 너무 좋긴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저한테는 데이빗 핀처와 브래드 피트가 아카데미를 작심해서 노리고 만든 티만 풀풀나는 정말 지루한 영화였습니다

일단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지 잘 모르겠더군요. 겉모습과 내면의 성장이 정 반대인 벤자민 버튼의 상충되는 딜레마(?) 에 대한 심리묘사는 좋았지만 영화는 제목 그대로 시간이 거꾸로 가는 벤자민 버튼의 일대기일 뿐 별다른 감동도, 별다른 드라마도 없이 영화가 흘러가기에 지루하다는 느낌이 더 강했습니다. 불필요한 장면이 너무 많아서 러닝타임이 길어진 듯 하기도 했고요.

또한 시간이 거꾸로 흘러가지 않는, 정상적인 상태의 벤자민 버튼이었다면 과연 이 작품이 "영화" 로서 성립될 수 있을지 조차 의심될 정도로 벤자민 버튼의 독특한 설정에 영화가 99%이상 기대고 있기에 영화적으로 높은 점수를 주기가 힘드네요. 데이빗 핀처스러운 몇가지 디테일한 짤막한 아이디어들, 예를 들자면 번개에 7번 맞았다는 한 노인의 회고담이나 데이지가 파리에서 교통사고를 당하는 부분의 전개같은 요소는 무척이나 재미 있었지만 영화 전체적으로 그러한 기발함이나 색다름을 느끼기는 정말 힘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독특한 설정의 벤자민 버튼의 캐릭터에 공감하기가 쉽지 않았다는 것 역시 이 영화의 치명적 단점으로 생각되네요. 과학적인 기반이나 아무런 설명없이 뜬금없이 등장하기에 설득력 제로이기도 하지만, 영화안에서 벤자민 버튼이라는 인물이 나이를 거꾸로 먹는다는 것에 대해서 주위 사람들의 반응이 너무나 담담하다는 것 역시 의아했으니까요. (미국 정부가 납치해서 연구대상으로 삼는 것이 맞는 스토리 전개 아니었을까요?)

마지막으로 하나만 덧붙이자면 브래드 피트의 목소리가 보는 내내 거슬렸어요.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영화에 몰입하기 어려울 정도로 영화 분위기하고 안 맞는다는 느낌이 강했달까요. 또 속마음을 나레이션으로 들려주는 부분은 외관의 나이보다는 내면의 나이 목소리로 들려주는 것이 좋았을것 같은데 전체적으로 원패턴 목소리로 흘러가는 것도 불만스러웠고 말이죠.

결론적으로, 개인적 별점은 3점입니다. 간만에 와이프와 같이 감상했는데 와이프가 지루해 했다... 라는 것이 감점의 큰 원인 중 하나이긴 합니다. 최소한 데이트용 영화로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것 같네요. 다음에는 좀 짤막하고 몰입하기 쉬운 영화를 골라봐야겠습니다.

2009/02/11

초난감 기업의 조건 - 릭 채프먼 / 박재호, 이해영 : 별점 4점

초난감 기업의 조건 - 8점
릭 채프먼 지음, 이해영.박재호 옮김/에이콘출판


제목 그대로 80년대, 즉 PC라는 개념이 처음 생겼을 때 부터 한때 잘나갔지만 도저히 이유를 알 수 없는 삽집을 반복하며 제풀에 스러져간 IT 기업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책입니다. 물론 스러지지 않고 아직도 건재한 기업 (대표적으로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 그리고 기업과 관계없이 닷컴 열풍으로 어마어마한 거품을 양산한 투자자를 조롱하는 챕터도 있긴 하지만 내용의 일부일 뿐이죠. 

제가 이쪽 바닥에 워낙 무지한 탓에 제가 잘 모르는 기업과 솔루션이 많아서 얼마나 대단한 회사들이 스스로 자멸했는지에 대한 감이 떨어지긴 했다는게 약간 단점이긴 했지만 (디베이스? 화이트베이스는 아는데...^^) 그래도 잘 아는 기업인 IBM, 모토로라, 마이크로소프트, 넷스케이프, 구글 등의 기업의 사례도 충실한 덕분에 아주아주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책을 읽다보니 저자 스스로 볼랜드나 마이크로프로와 같은 초난감 기업에 실제로 근무했었던 엔지니어 겸 마케팅, 홍보 전문가였던 경험을 바탕으로 서술한 이야기도 많아서 더 와닿는 부분도 많았고, 과연 이렇게 멍청할 수 있을까? 하는 상황이 너무 많아서 너무나 웃겼습니다. 사실 당황스럽기까지 한 수준이었으니까요. 웃자고 쓴 건 아니겠지만 정말 웃겨요. 삽질의 사례와 관련된 도판, 주석 등도 방대하고 자세해서 웃음의 수준도 업그레이드 시켜주는 느낌까지 들고 말이죠.

아울러, 읽다가 좀 놀랐던 사실은 그간의 상식 -마이크로소프트가 "악의 축" 이다- 라는 것을 상당히 뒤집는 발언이 책 전체에 깔려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은 우리가 익히 알 듯 일종의 사기와 배짱 덕분이 아니라 품질의 우수성과 더불어 경쟁사들의 초난감한 삽질이 겹쳐진 운빨이었다는 것을 아주 자세하게 풀어놓고 있거든요. 물론 책의 후반부에서는 넷스케이프를 박살내기 위한 마이크로소프트의 초난감한 마케팅 전략이 등장하긴 하지만 망해버린 다른 기업들의 사례에 비추어본다면 그나마 새발의 피라고 할 수 있겠죠.

결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새롭게 알게 된 사실도 많고 재미도 있으며 무엇보다도 웃기다는 점에서 별 4개를 줄 만큼 유익한 독서였다고 생각됩니다. 개발자와 엔지니어 사이드에 치우친 내용이 많긴 하지만 IT 업종에 종사한다면 누구나 한번쯤 읽어볼만한 책이 아닐까 싶어요. 특히 저같은 쓰라린 이직의 경험이 있는 모든 직장인들에게 강추하고 싶습니다. 이 책을 계기로 당당하게 비웃고 떠벌일 수 있는 기회가 공적으로 마련된 것 같아 속이 후련하기까지 하네요. 가격이 좀 쎄긴 한데 그만한 가치는 충분히! 있습니다. 뭐니뭐니해도 잘나가던 누가 망했다는 이야기는 언제 읽어도 즐거운 법이니까요.^^ (지옥에나 가버려~!!!!)

덧붙이자면, 저도 DJ시절 벤처 열풍때 묻지마 투자를 받았던 소규모 벤처 근무 경험에다가 잘나가던 코스닥 기업이지만 망하려고 발버둥치며 삽질을 연발한 회사에 다닌 경험이 물론 있기에 좀 감개무량(?)하기도 합니다. 소규모 벤처는 월급도 못주는 상황으로 내몰린 끝에 결국 망해버렸고 잘나가던 코스닥 기업에서는 결국 저를 짤랐죠.

잘나가던 코스닥 기업은 결과적으로 엎어질 것이 뻔했던 돈먹는 하마같은 프로젝트를 잽싸게 중지하고 인원감축할 생각을 한 덕분에 아직까지 버티고 있고, 지금은 내부사정은 잘 모르지만 나오는 물건들 보면 포인트는 잘 잡고 있는 것 같아 현재 규모를 유지한다면 어떻게 먹고는 살겠더라고요. 예전 회사 덩치를 생각하면 이 회사 역시 이 책 국내판에 당당히 등장할만한 대표 사례로 손꼽히겠지만요. 뭐 그게 다 인생 아니겠습니까. 그러고보니 나도 이런 책을 쓸 수도 있겠구나...

2009/02/08

5시간 30분 - 정건섭 : 별점 4점

5시간 30분 - 8점
정건섭/예술시대

11월 30일, 경부선 야간 특급열차에서 한 손님이 연기처럼 사리지고 그 손님의 침대칸 짐 안에서 인기탤런트 고강진의 시체가 발견된다. 이후 조연배우 진남포의 피습사건, 고강진의 MC파트너 이화영 납치 사건 등 방송국을 둘러싼 다양한 사건이 연이어 발생되며, 박문호 형사는 친구 민형규 기자와 함께 수사와 추리를 거듭한 끝에 사건의 진상을 밝혀낸다.

정건섭 선생님의 80년대 추리소설인 "5시간 30분"을 다시 완독하였습니다. 얼마전 한국 추리소설 몇개를 추천한 적이 있는데 기억이 가물가물한 작품이 너무 많기에 추천하면서도 찜찜해서 읽은지 가장 오래된 이 작품부터 다시 읽게 된 것입니다.

이 작품은 박문호 형사 - 민형규 기자 시리즈로 컴비의 데뷰작 "덫"에 이어지는 두번째 작품입니다. 제목에서 느껴지듯 시간차 트릭이 가장 중요한 트릭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그 외에도 다양한 사건이 폭넓게 펼쳐져서 소소한 트릭과 설정의 잔재미가 곳곳에 잘 살아 있습니다. 80년대를 무대로 했기에 아날로그적인, 고전적인 트릭 파헤치기가 아니라 끈기와 집념의 수사를 통한 사건의 해결 과정을 사회파적으로 디테일하게 그리고 있다는 것 역시 매력적이고요.

또한 추리와 트릭이 모두 독자가 이해하기 쉽다는 것 역시 큰 장점으로 보입니다. 천재 탐정이 등장하여 자신의 추리를 독자에게 설득시키는 고전적인 맛도 좋겠지만 이 작품처럼 추리의 기반을 형사가 미리 세워놓은 뒤 그 추리를 뒷받침하기 위한 수사를 독자와 공유하게끔 하면서 사건에 대한 흥미와 관심을 잃지 않도록 하는 것도 상당히 흥미로운 전개 방법으로 보였거든요. 물론 이렇게 쉬운 전개가 이어지다가 가장 결정적 트릭을 마지막에 터트리는 장면은 무릎을 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단순하지만 간과하고 있던 부분이었기 때문이죠.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인 "진남포 피습사건" 이 사실상 범인의 발목을 죄는 결과였다... 라는 조금은 어처구니 없는 설정이 있기는 합니다만 그 외에는 사건의 동기, 범행, 트릭, 그리고 해결과정 모두 정상급인 재미있는 작품이었습니다. 성적인 묘사와 자극적 설정이 난무했던 80~90년대 한국 추리소설에 실망하셨던 분들이라면 꼭 한번 읽어보시기를 다시 한번 권해드립니다.

2009/02/03

빅 보우 미스터리 - 이스라엘 장윌 / 한동훈 : 별점 4점

 

빅 보우 미스터리 - 8점
이스라엘 장윌 지음, 한동훈 옮김/태동출판사

런던 보우 가의 한 하숙집의 하숙인 아서 콘스탄트가 목이 베인채 살해당한 시체로 발견된다. 시체가 발견된 방 안은 완벽한 밀실상태!

1892년, 즉 19세기 후반에 발표된 밀실 미스터리의 고전인 "빅 보우 미스터리"를 이제야 완독했습니다. 중편 길이의 표제작 이외에도 "유별난 교수형" 이라는 단편까지 2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국내에 출간된지는 꽤 오래 되었는데 뒤늦은 감이 있긴 하네요. 추리 애호가를 자칭하는 저로서는 반성해야 할 부분이죠... 

어쨌건 일단 평하자면, "빅 보우 미스터리"는 추리사에 이름을 남긴 고전답게 밀실 트릭물로서 충분히 뛰어난 완성도를 지니고 있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상당히 기발하고 참신한 일종의 밀실 + 심리 트릭이 사용되고 있는데 지금 읽어도 무릎을 칠 만한 기발한 선구자적 아이디어가 빛나거든요. 지금 읽기에는 좀 낡아 보일 수 있고 우연에 기대는 부분이 아주 약간 있긴 하지만 작품에 흠집을 낼 수준은 아니고요. 그러나 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이자 뛰어난 점은 전편을 관통하는 유머와 풍자라 생각됩니다. 유머와 풍자는 지금도 먹힐만큼 독특하면서도 유쾌한 분위기가 잘 살아 있거든요. 쉽게 이야기하자면 마크 트웨인이 썼음직한 정통 추리물이랄까요? 그만큼 유머러스함이 전편에 묻어나서 읽는 내내 즐겁게 즐길 수 있었습니다. 또한 단지 유머러스한 부분뿐 아니라 앞서 이야기했듯이 추리적으로도 뛰어난 완성도를 지니고 있기에 100년이 훨씬 지난 지금 읽어도 가치있는 "고전" 이라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겠죠. 마지막의 반전도 19세기 후반 작품으로 믿어지지 않을 만큼 뛰어난 점이 있어서 더욱 만족스러웠고요.

덧붙이자면 부록처럼 실려있는 "유별난 교수형" 이라는 작품은 트릭은 지금 보기에는 너무 뻔해보이긴 하지만 역시나 유머러스한 분위기가 넘쳐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별점은 재미와 가치 모두 기대 이상이라 4점 주겠습니다. 아직 읽어보지 않으신 추리소설 애호가시라면 반드시 읽어봐야 될 작품이라 생각되네요. 아울러 이 작품이 소개된 것 자체가 상당히 놀라운 일로 생각되는데 앞으로도 계속 다른 고전 명작들이 번역, 소개되었으면 합니다...

2009/02/02

연애곡선 - 고사카이 후보쿠 / 홍성필 : 별점 2점

 

연애곡선 - 4점
고사카이 후보쿠 지음, 홍성필 옮김/파라북스

이 책은 고사카이 후보쿠라는 전혀 모르는 일본 작가의 추리 단편집입니다. 아무런 사전정보없이 1920년대에 의학전공자 출신으로 의학지식을 바탕으로 추리소설을 썼다는 책 소개만 보고 구입한 책이죠. 제가 워낙 고전을 좋아라 하니까요. 전부 13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꽁트라 해도 어울릴정도의 굉장히 짤막한 작품들이 많습니다. 대부분의 작품이 "반전"에 많이 기대고 있는 "기묘한 맛" 류의 작품들이라는 점, 그리고 의사나 의학지식이 중요한 작품이 많다는 것도 특징이고요.

하지만 아쉽게도 책 자체는 기대에 값하지는 못했습니다. 당시에는 충격적이었을지 모르지만 지금 읽기에는 낡은 느낌이 너무 강합니다. 너무 뻔하거든요. 또 에도가와 란포의 스승이라는 작가 소개글 처럼 뭔가 유사한 분위기가 느껴지긴 하는데 란포 수준의, 지금도 먹히는 스멀스멀한, 또는 변태적인 묘사가 하나도 없이 단지 구성만 유사할 뿐이라 그런지 너무 담백해서 싱거워보이기까지 합니다. 반전이 괜찮은 작품이 몇개 있긴 한데 이 담백한 묘사 때문에 빛이 많이 바래는 것 같아요.

이런 알려지지 않은 작가의 평범한, 또는 평범 이하의 자료적 가치밖에 없는 작품집의 번역 소개보다는 좀 더 유명한 작품이 소개되었더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좀더 상세하게 작품별로 설명하자면, (뻔한 내용이 많아 Copy & Paste 신공으로 작업합니다)

보기 드문 범죄 : 3인조 보석 강도일당 중 2명이 보석을 삼키고 죽은 다른 1명의 위장을 경찰에게서 빼내오기 위하여 분투하는 이야기. 지겨울 정도로 뻔하고 설득력도 없지만 반전 하나만큼은 괜찮았습니다. 물론 지금 보면 좀 뻔하기도 하지만요...^^;; (1)

얼간이의 복수 : 자신을 무시한 환자와 선배 의사에게 복수하는 주인공의 이야기. 의학전공자 출신다운 의사와 환자를 대상으로 한 복수극으로 당시에는 무척 충격적이었을 것 같은 작품입니다. 물론 지금 보면 좀 뻔하기도 하지만요...^^;; (2)

연애곡선 : 표제작입니다. 란포 스타일이 물씬 풍기는 작품으로 광기와 애정이 잘 결합되어 있습니다. "연애곡선" 이라는 이론도 나름 설득력있게 묘사하고 있기에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었죠. 그러나 아쉽게도 반전이 너무 뻔해서 높은 점수를 주기는 힘들더군요.

메두사의 머리 : 섣부른 장난이 불러오는 비극에 관한 짤막한 꽁트. 간경병에 대한 증상을 작품에 잘 녹여내고 있다는 점은 좋지만 그 외에 특기할 점은 별로 없네요.

수술 : 식인에 관련된 괴담 꽁트로 반전의 맛이 괜찮았던 작품이죠. 너무 짤막해서 다른 이야기는 할게 없습니다...

죽음의 키스 : 콜레라의 전염에 관련된 이야기로 장황하긴 한데 설득력이 너무 떨어지는 평균 이하의 작품이었습니다.

유전 : 형법학에 따른 꽁트. 형법학의 1조항을 가지고 풀어낸 이야기인데 아이디어가 참 기발해서 마음에 들은 작품입니다.

시체양초 : 여름날 밤 순간적으로 지껄이는 창작괴담 수준의 꽁트입니다. (1)

어리석은 자의 독 : 아비산 중독으로 죽은 노부인 사건에 대한 단편인데 이야기의 전개과정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증거가 확실하면 그냥 체포하면 될텐데 너무 극적인 무대를 만들려고 억지스러운 설정을 가져다 붙여 놓았거든요. 추리적인 과정은 좋았기에 아쉬움이 더 큽니다.

혈우병 : 당시에 잘 알려지지 않은 혈우병과 인간심리를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낸 작품으로 뭔가 2% 아쉽더군요. 150세 먹은 할머니가 피를 흘리게 된 이유같은게 더 설명되었더라면...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안락사 : 반전이 인상적인 꽁트. 물론 지금 보면 좀 뻔하기도 하지만요...^^;; (3)

안마사 : 여름날 밤 순간적으로 지껄이는 창작괴담 수준의 꽁트입니다. (2)

투쟁 : 조금은 독특한 정신분석학 이론을 가지고 전개하는 작품으로 이 작품집의 베스트로 꼽을 만한 완성도 높은 수작 단편입니다. 의학이론에 대한 합리적인 설명은 물론이고 살인에 대한 동기, 그것을 밝혀내는 과정과 마지막의 암호트릭까지 다양한 장치가 독자를 즐겁게 해 줍니다. 암호트릭이 조금 유치하고 너무 전문적, 설명적이라는 점은 아쉽지만 이 정도야 허용할 수 있는 수준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