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주신 분들께 안내드립니다.

2008/10/31

서울 디자인 올림픽 짤막 관람기

어제 폐막식 전에 전 직장 동료와의 미팅 약속 때문에 찾아가 보았습니다.


보고 난 소감은... 누군가가 말했듯이 "디자인 풍물 장터" 였습니다.

볼 것은 왜 이다지도 없는지, 동선은 왜 이렇게 불편하게 짜여져 있는지 대관절 이해할 수 없더군요.

오세훈 시장의 지나친 공명심에 의해 빚어진 거대한 촌극, 또는 무한도전의 코미디의 확장판이라 생각되네요.

전두환의 "국풍 81", 또는 이명박의 청계천 복원과 비교될만한 돈낭비의 안방잔치.

내년부터는 제발 폐지되었으면 합니다. 

이 행사 할 비용이 있다면 차라리 중소기업을 후원해서 좋은 디자인의 제품을 만들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좋겠더군요. 쩝.

2008/10/29

커피견문록 - 스튜어트 리 앨런 / 이창신 : 별점 3점

 

커피견문록 (보급판 문고본) - 6점
스튜어트 리 앨런 지음, 이창신 옮김/이마고

이전에 읽었던 "악마의 정원에서"의 저자 스튜어트 리 앨런의 커피 관련 견문록입니다. 한마디로 이야기하자면 커피 역사에 대한 여행기라 할 수 있겠지만, 단순 역사 관련 기행문으로 보기에는 신변잡기에 관한 이야기나 여러가지 저자의 경험과 단상이 뒤섞여 있는 나름 복잡한 구성의 책입니다.

기대보다는 커피에 관해 그다지 전문적인 내용은 등장하지 않으며, 커피가 문화사적으로 엄청난 의미를 지녔다는 것을 좀 과대포장해서 설명하는 감은 없잖아 있지만 (예를 들면 미국 남북전쟁에서 커피를 마신 북군이 그렇지 못한 남군에게 승리했다는 등) 커피를 좋아하고 이런 문화사적인 이야기를 좋아하는 저로서는 무척 환영할만한 책일 뿐 아니라, 아프리카, 터키, 인도, 오스트리아, 프랑스, 이탈리아, 브라질을 거치는 여정이 여러가지 모험(?)과 사건으로 채워져 있으며 이 여정이 커피가 전파된 과정을 따라간다는 목적의식까지 갖추고 있어서 상당히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저자가 일반 상식보다 막나가는 친구이기에 황당한 이야기도 많이 등장하기도 하고요.

아울러 보급판 문고본이라 8000원이 안되는 저렴한(?) 가격에 구입해서 읽었기에 가격대 성능비가 아주 우수했던 책이기도 합니다. 책도 상당히 작고 예쁘게 출간되어 마음에 드네요.

커피에 대한 전문서적을 기대한다면 실망스러운 부분이 있지만 재미있게 읽었으며, 앞서 말했듯 가격이 착하기에 별점 3점은 충분한 책이라 생각됩니다.

2008/10/28

책 구입 비용

특별기획 -나는 얼마나 썼나-


밸리를 돌다 보니 재미있는 글이 있어서 저도 계산해 봤습니다. 알라딘을 주로 이용하니 만큼 알라딘만 계산해 보았는데...

1,554,760 원이 나왔습니다.

6년 토탈이니 대충 계산해도 한달에 2만원 꼴이네요. 물론 헌책방과 오프라인 서점, 특히 만화책은 홍대앞 한양문고를 통해 많이 구입했기에 절대적인 수치는 아닐테고 대충 곱하기 3정도 될 것 같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생각보다는 적군요.

현재 제가 가진 거의 유일한 취미이니 만큼 앞으로는 좀 더 부지런히 구입해도 될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책값아 오르지만 마라....

2008/10/27

역도산 - 고두현 : 별점 3점

 

역도산 - 6점
고두현 지음/스크린M&B

원로기자 고두헌씨의 역도산 평전입니다. 4년전 책으로 형이 구입해 놓았던 책을 본가에 갔다가 냉큼 집어와 읽은 책입니다.

평전이라고는 하지만 주로 초-중반부에 이야기가 집중되어 있고 말년은 좀 흐지부지 다루고 있어서 완벽한 평전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따르네요. 전부 14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1장 까지가 월드리그를 개최할 때까지의 이야기이고 그 이후의 이야기는 그다지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지 않거든요. 그래도 자료로서의 가치는 꽤 높은 편이고 그간 알고 있던 것과 다른 시각으로 역도산을 바라보고 있어서 그런대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다른 시각이라는 것은 역도산을 상당히 미화하여 묘사했다는 것으로, 다른 이런 저런 책에서 접한 정보로는 돈에 혈안이 된 쓰레기 정도로 취급되었었는데 이 책에서는 역도산은 다양한 경력에서 그다지 큰 실수를 한 적은 없고, 조선(?)을 잊지 않은 사나이였으며 지나친 흥분과 기행은 약물 중독에 의한 것이라는 등으로 표현하고 있거든요. 이런 점은 이 책이 출간될 때 개봉한 영화 "역도산"과 유사한 시각이겠지만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하는 근거도 그런대로 마련하고 있어서 아주 설득력이 없지는 않더군요.

또한 저자의 인맥을 중심으로 한 인터뷰로 자료적 가치를 높인 점은 주목할 만 했습니다. 그 인터뷰 내용을 100% 신뢰하기에는 무리가 따르지만 다양한 인물들의 인터뷰를 통해 역도산이라는 인물을 다룬 것은 꽤 괜찮은 시도로 보였습니다. 그 외에도 역도산의 상대였던 레슬러들을 상당히 비중있게 등장시킨 것도 의외의 재미거리였고요. 대표적으로는 철인 루 테즈가 있을테고, 그 외에도 샤프형제, 프레디 블라시, 스컬 머피 등의 레슬러들의 설명이 자세하여 괜찮은 참고자료가 되더군요. 시합에 관련된 이야기 역시 굉장히 상세했고요. 그리고 역도산과 친분이 있었거나 관련이 있었던 여러 재일교포들에 대한 설명 역시 자세한 편이었습니다.

많은 책, 영화 등에서 다루어진 인물답게 미국에서의 활약과 기무라와의 혈투 등 항상 반복되는 지루한 이야기도 적지 않으나 책 자체로는 그런대로 자료로서 쓸만한 요소가 많아 아주 낚였다라는 기분이 들지 않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3점. 영화 "역도산" 개봉에 기댄 기획 도서이긴 하지만 역도산에 대해 관심이 있다면 한번 쯤 읽어볼만합니다.

밴티지 포인트 (VANTAGE POINT) - 피트 트레비스 : 별점 2점

 

밴티지 포인트 - 4점
피트 트레비스 감독, 데니스 퀘이드 외 출연/소니픽쳐스

스페인 마요르 광장에서 열리는 대 테러 강력정책 협약을 위한 세계 정상회담에서 미국 대통령이 두발의 총탄에 쓰러진다. 이후 회담장에 폭탄테러가 발생하고 혼란의 와중에서 대통령 경호원 반즈는 범인을 추적하기 위해 행동을 개시한다.

지난 대선때 도발적인 카피로 잠깐 화제가 되었던 영화죠. 어제 와이프와 DVD로 감상하였습니다.

일단 이 영화에서 마음에 들었던 점을 꼽아본다면, 동일한 시간대에 벌어진 사건의 과정을 여러 인물들의 시점으로 처리한 편집방식과 친숙한 배우들의 등장을 들 수 있겠습니다. 또한 영화에 등장하는 테러조직의 작전이 상당히 그럴듯 해서 제법 흥미진진했습니다. 몇가지 중요한 포인트를 대충 넘어가는 감이 없잖아 있긴 하지만 단순히 쳐들어가서 작전을 실행하는 것이 아닌 양동작전과 여러 공범을 이용하는 것이라 나름의 설득력이 느껴졌거든요.

그러나 여러 인물의 시점으로 재해석하는 과정은 재미는 있지만 공정하고 다양한 정보의 전달 대신에 토막 정보의 나열에 그쳐 단순하다면 단순할 수 있는 이야기를 괜히 길게 끌어간게 아닌가 싶기도 하더군요. 솔직히 다양한 시점에서 모인 정보를 결말부에 터트리는 구성을 원했는데 완전 예상외였어요. 특히 중간에 폭탄을 나르는 스페인 경찰 이야기는 완전히 사족일 뿐이었고 말이죠. 감독의 욕심이 과했달까요?

때문에 추리 매니아로서 즐길거리는 분명 있었지만 색다른 시도가 단지 색다른 것에 그쳤다는 것에서 아쉬움이 많이 남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극장가서 봤으면 후회할 뻔 했습니다.....

2008/10/23

추적 (Sleuth / 2007) - 케네스 브래너 : 별점 2점

 


유명 추리작가 앤드류는 자신의 저택에서 아내의 정부인 배우 틴들을 만나 하나의 게임을 제안한다. 거액의 보석을 훔친 것으로 하여 서로 이익을 나누어 갖자는 제안. 틴들은 이 게임을 수락하고, 이후 두 남자의 게임이 시작된다.


영국의 세익스피어 극으로 유명한 감독이자 영화배우 케네스 브래너의 영화로, 배우 두명이 저택안에서 벌이는 상황극이 전부이기에 "연극" 을 그냥 영화화한 느낌도 강해서 연극에서 잔뼈가 굵은 케네스 브래너 답다.. 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뒤의 스탭롤에서도 배우는 단 3명 (두 배우를 제외하면 TV화면에 등장하는 엑스트라) 일 뿐이니 말 다했죠.

하지만 영화 자체는 "두 남자의 게임" 이 그다지 흥미롭지 못해서 상당히 지루했습니다. 초중반에는 나름 그럴듯한 요소가 있었는데 뒤로 갈 수록 대관절 어떻게 되어가는 것인지 알다가도 모를 지경이었으니까요. 일단 두뇌싸움이 빛나는 "게임"이 아니라서 각본에 별로 치밀한 요소도 없으며 뭔가 있어보이는 "추리작가"라는 요소도 전혀 살리지 못했거든요. "추적" 이라는 한글 제목은 완전히 낚시일 뿐이고 말이죠. 혹 아직 안보신 분들은 저처럼 "심리스릴러 추리물" 이 아닐까 하는 호기심은 가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전혀 아니니까요.

두 배우의 연기가 출중하기도 했고, 연극적인 세트와 촬영, 음악 등으로 갈등관계와 심리묘사를 잘 표현하고 있긴 하지만 그 외의 장점은 없습니다. 제게는 지루한 "유럽영화" 일 뿐이었기에 별점은 2점입니다. 제가 연극을 싫어하기에 이 영화가 더욱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반대로 말하자면 연극 좋아하시는 분들은 좋아하실 수도 있을 것 같네요. 뭐 다 취향문제겠죠.

2008/10/22

헬보이2 골든아미 - 기예르모 델 토로 : 별점 2점

 


인간과 요괴 사이에서 존재하던 고대의 휴전 협정이 수 천년이 지난 후, 세상을 지배하려는 요괴 세상의 누아다 왕자에 의해 깨어진다. 누아다 왕자는 세상을 장악하기 위해 수 천년간 잠들어있던 최강의 군단 ‘골든 아미(Golden Army)’ 를 깨운다. 이에 '헬보이'는 불을 다스리는 여자 친구 ‘리즈’, 사람의 마음을 읽는 ‘에이브’ 등, 각기 다른 능력을 가진 BPRD 요원들과 함께 누아다 왕자와 골든 아미를 막기 위한 최강의 대결을 시작한다! (네이버영화펌)

제가 너무나 좋아라 하는 만화 원작의 슈퍼히어로 (?) 무비! 감상한지는 좀 됐지만 포스팅꺼리도 없던 차라 몇자 적어 봅니다.

일단 전편과 비교한다면 스케일도 더욱 커졌으며 재미난 신 캐릭터의 등장도 있고 영원히 죽지 않는 무적의 군단 골든아미의 묘사도 좋았습니다.

하지만 문제점이 더욱 많은 작품이기도 한데, 우선 영화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헬보이의 매력이 많이 떨어졌습니다. 헬보이 특유의 유머나 위트가 제대로 살아있지 않았기 때문이죠. 에이브와의 술판과 고성방가 정도는 재미있었지만 영화의 극히 일부분이었을 뿐이고요. 영화에서는 차라리 에이브의 활약이 더욱 돋보이는데 이래서야 헬보이가 아니잖아요. 무슨 외전도 아니고.... 별것도 아닌 이유로 리즈와 티격태격하는 모습 역시 실망스럽습니다. 대인배 헬보이가 찌질한 아저씨가 된 듯한 느낌이었거든요. 헬보이는 진정한 마쵸여야 하는데... 역시 여자가 영웅을 약하게 만드는걸까요?

또한 악당들도 매력적이지 않았습니다. 이름만 멋진 비련의 공주와 사악한 왕자라는 구태의연한 설정은 둘째치고서라도 레벨 설정이 엉망이라 결말이 어처구니가 없었던 점은 정말이지 납득하기 어렵네요. 차라리 중간에 등장했던 중간보스들이 훨~씬 강해 보였습니다. 게다 후편을 암시하는 듯한 복선은 너무 쓰잘데 없었고 말이죠.

이야기 전개도 이상하게 맥이 풀리는 것이 배급사에서 무지막지한 가위질을 한 것이 아닌가 의심되기까지 합니다. 기에르모 델 토로 감독이 직접 각본까지 손댄것에 비하면 영화가 너무 구멍이 많이 뚫려 있는 것이 영 미심쩍네요. 뭔가 손발이 안맞아 보이는 것이 델 토로 감독이 상업성과 자신의 가치관 사이에서의 줄타기를 실패한 듯한 느낌도 강하게 들고요.

한마디로 말하자면 실망스러웠습니다. 이 영화의 문제도 좀 있겠지만 워낙 전작을 재미있게 봤기에 기대가 컸던 탓이 크겠죠. 그래도 별점을 주자면 2점입니다. 저는 관대하니까요...

2008/10/21

두산팬의 플레이오프 5차전 예상 또는 기대

 


어제는 정말 대승을 거뒀군요. 제 예상보다도 점수차가 더 나서 황당할 정돕니다. 뭐 어제일은 어제일이고....

오늘 선발은 랜들 선수 대 배영수 선수네요. 각각 1차전, 2차전 선발로 나왔는데 그리 좋은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랜들 선수는 백도어 슬라이더 (맞나요?) 가 주무기인 선수인데 이번 플레이오프 스트라이크존에는 고전할 수 있는 타입의 선수라는 것이 좀 마음에 걸립니다. 2차전에서도 대량 실점은 하지 않았지만 썩 제구가 좋지는 못했죠. 그래도 비록 3일 휴식이지만 2차전에서 80개가 안되는 공을 뿌렸다는 점, 큰 경기에 강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기대가 되기도 합니다. 이번의 미친 타격전 페이스의 플레이오프에서 5이닝 3실점만 해 줘도 두산 입장에서는 무척 고마울 것 같네요. 어제 정재훈 선수를 소모했지만 오늘 이재우, 임태훈 선수의 출격이 가능하기에 더더욱 5이닝은 버텨주었으면 하고요. 왠지 모르게 이용찬 선수가 키 플레이어가 될 것 같은 기분도 듭니다. 김명제 선수의 상태도 궁금하네요.

두산 타선은 어제 확실히 터졌죠. 삼성의 주력 선수가 아닌 선수들을 상대로 했지만 확실히 터졌을 뿐더러 그동안 너무 부진했던 3-4-5번이 동반 상승세를 탄 것이 플러스 요인입니다. 기대 이상의 활약을 해 주고 있는 1-2번 이 확실해서 3-4-5번이 평상시 정도의 활약만 해 줘도 앞서가는 경기를 할 수 있는 팀이 두산이기에 클린업의 부활은 무척 고무적이네요. 하위타선에서 중심을 잡아준 채상병 선수 역시 기대가 되고요. 상대 선발이 에이스 배영수 선수이지만 과거의 강속구 위력은 많이 잃었기에 두산 타자들이 선구안만 꾸준히 유지한다면 초반 공략이 가능하리라 예상됩니다. 배영수 선수가 4이닝을 버티지 못한다면 두산에게 유리해 지겠죠. 대량득점 후 빈타가 나온다는 공식은 플레이오프에서는 적용되지 않을 것 같고요.

그렇지만 다 가정일 뿐이고... 오늘 경기는 정말로 예상하기 힘드네요. 푹 쉰 배영수 선수가 선발이라는 점과 어제 주력 선수들이 쉬었다는 점에서는 삼성에 무게가 실리지만 준 플레이오프를 거친 삼성 선수들이 전반적으로 지치기 시작할 시점이라는 점과 플레이오프 특유의 스트라이크존, 그리고 1차전에서의 배영수 선수의 모습 등을 종합하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라는 결론이 나오거든요. 두산이나 삼성이나 불펜진이 지친건 매한가지고.... 결국 타격전이 되겠지만 어제만큼은 아닐테고...

어쨌건 두산 팬으로서 예상하자면 오늘 경기는 7 : 5 로 두산의 승리를 점쳐 보겠습니다. 딴건 몰라두 야신 김성근 감독님은 믿습니다~ 제발~!

오늘도 화이팅! 허슬두!

프렌치 경감 최대사건 - 프리먼 윌스 크로포츠 / 김민영 : 별점 4점

 

프렌치 경감 최대사건 - 8점
프리먼 윌스 크로프츠 지음, 김민영 옮김/동서문화동판주식회사

보석상 듀크 앤 피보디 상회의 지배인 게싱 노인이 살해되고 금고에 보관된 다이아몬드가 사라진다. 2개의 금고 열쇠 중 하나는 은행에 또 하나는 사장 듀크씨가 늘 몸에 지니고 다니기 때문에 여벌열쇠를 만드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 프렌치 경감은 사건을 맡아 다양한 방면으로 수사를 벌여 하나씩 단서를 모아 범인 추적에 나선다.

거장 F.W 크로포츠의 황금기 시절 걸작이며 명탐정 프렌치 경감의 데뷰작이기도 한 고전 명작입니다. 엄밀하게 이야기한다면 명탐정이라기 보다는 명수사관이겠죠. 어쨌건 알리바이 파헤치기의 명수로 유명한 프렌치 경감의 활약을 감상하는 것이 포인트인 작품 되겠습니다. 명성 만큼이나 꼼꼼하고 치밀한 수사가 펼쳐지거든요. 추리와 직감보다는 다양한 경로를 통해, 많은 인물의 협조를 얻어 정말로 발로 뛰며 수사하는 "일반인" 프렌치 경감의 모습은 천재형 명탐정이 대세였던 당시 황금기에 정말로 독특한 존재로 부각되었을 것 같더군요. 하여간 지금 읽어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정말로 현실적이고 설득력 있는 전개를 보여줍니다.

또한 추리적으로도 아주아주 완벽해서 이 소설에 등장하는 사건은 사실 딱 한건이기에 쉽게 풀릴 것 같은데 다양하게 사건이 가지치기 되면서 트릭이 다양해지기 때문에 단순하지 않고 읽으면 읽을 수록 큰 재미를 안겨다 줍니다. 알리바이 위장 트릭과 인간 소실 트릭, 누명 덮어씌우기에 바꿔치기 트릭, 거기에 암호 해독까지 등장하기 때문에 다채로운 트릭의 맛을 한껏 느낄 수 있거든요.
가장 중요한 트릭은 인간 소실 및 바꿔치기 트릭인데 지금 읽으면 약간 진부한 맛은 없잖아 있지만 굉장히 효과적으로 쓰였기에 지루하다는 느낌은 전혀 받을 수 없으며, 암호트릭 역시 공들여 만들었을 뿐 아니라 독자에게 공정하게 단서를 제공해 주기에 충분히 합격점을 줄 수 있는 트릭이었습니다. 특히나 이러한 독자에게도 공정하게 단서가 제공되는 것은 황금기 작품답게 높은 수준인데 그 때문인지 범인을 특정하기는 중반 이후에는 쉬워지는 감은 있지만 그때부터는 범인이 누구인가? 보다는 범인의 추적에 이야기가 집중되며, 다른 트릭들이 연이어 등장하기에 별 문제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마지막 반전(?)의 맛이 좀 약해진 것과 약간의 우연으로 사건이 진전되는 부분은 아주 조금 아쉽긴 한데 어차피 경찰 수사망에 걸렸을 부분이라 생각하고 넘어갈 수 있고 말이죠.
단 한가지, "변장" 을 너무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한 점이 감점 요소이긴 하지만 그에 관련된 배경 설명도 자세히 묘사하고 있어서 나름 납득되는 수준입니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유머러스한 분위기가 묻어나는 것 역시 마음에 듭니다. 잔인한 강도 살인 사건을 다루는 작품치고는 전반적으로 분위기가 넉넉한 편입니다. 이러한 분위기는 여정 미스터리로 보일만큼 당대 유럽의 명승지를 기차로, 배로 여행하며 수사하는 프렌치 경감의 모습이 자주 등장하는 것도 한몫하고 있는 것 같네요. 끈질긴 추적자인 프렌치 경감의 모습 뒤에 왠지 모를 작가의 여유로움이 한껏 묻어나거든요. 프렌치 경감의 부인이 전해주는 단서 역시 재치가 넘치고 말이죠.

황금기 고전의 향취를 한껏 느낄 수 있는 정통 추리물이면서도 부드럽고 온화한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기에 추리소설 입문자에게 추천할 만한 아주아주 좋은 작품으로 언제 읽어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작품입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5점을 줄 수도 있는 작품이지만 세월이 너무 많이 흐른 탓인지 약간 부족한 부분이 있어서....

2008/10/20

두산팬의 플레이오프 4차전 예상

 


2, 3차전 관전기는 올리지 않겠습니다. 다시 생각해도 혈압만 올라서....

오늘은 플레이오프의 분수령이 될 중요한 경기죠. 두산 선발은 김선우 선수인데 시즌에는 없었던 3일 쉬고 등판이라 1차전 때 일찍 내려가긴 했지만 오늘 얼마나 던져줄지 사실 걱정입니다. 그래도 삼성 선발은 이상목 선수에게는 두산 타자들이 왠지 강했던 기억도 있고 이상목 선수도 구위에 의존하는 선수는 아니니 두산 타자들이 공략 가능할 것으로 생각되기에 어느 선수가 먼저 강판되느냐가 포인트겠죠. 이상목 선수가 먼저 강판된다면 조진호 선수 등을 중용할 수 밖에 없는 삼성 불펜 사정 상 두산이 굉장히 유리해질 테니까요. 박빙인 상태에서 오늘도 정현욱 - 안지만 선수가 가동된다면 그건 그 나름대로 두산에게 유리한 상황 (또는 SK가 쾌재를 부를 상황) 이 될 테고요.

타선은 어제는 두산도 잘 쳤기에 크게 걱정은 안합니다. 집중이 안돼서 그렇지.... 그래도 또박또박 쳐 나가면 언젠가는 뚫리는게 수비니 오늘은 기대가 됩니다. 그나저나 홍성흔 선수가 감을 영 못찾고 있어서 걱정이군요. 지명타자로 최준석 선수를 기용하거나 6번 아래로 지명 타자를 놓는 타순 변경을 고려해 봄직 할 것 같은데 김경문 감독님의 승부수가 어떨지 모르겠네요. 삼성은 신명철 선수가 난생 처음보는 각성 모드로 잘 나가고 있긴 한데 박한이 - 김재걸 - 양준혁 선수 등 항상 해줬던 선수들이 좀 잠잠한 모습이라 살짝쿵 다행이라는 생각이...

각설하고 제 예상은 10:5로 두산 승 입니다. 이상목 - 조진호 선수에게는 두산이 분명 점수를 뽑아낼 힘이 있으니까요. 팬심으로 좀 후하게 친 감도 없잖아 있지만 어쨌건 3이닝 안에 승부가 결정나리라 생각됩니다. 초반 득점 후 김선우 선수가 5이닝 4실점 정도로 그런대로 버텨 준다면 두산은 이후 김명제 - 금민철 - 이승학 - 김상현 - 이용찬 선수 등 잉여(?) 자원을 풀 가동하여 막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이네요.

예상도 끝났으니 전 토토 하러 갑니다. 제발 두산 파이팅! 허슬 두!!!!

세계사를 뒤흔든 16가지 발견 - 구드룬 슈리 / 김미선 : 별점 2.5점

 

세계사를 뒤흔든 16가지 발견 - 4점
구드룬 슈리 지음, 김미선 옮김/다산초당(다산북스)

다산초당의 "... 뒤흔든... 가지 발견 / 사건" 시리즈의 한권입니다. 이전에"경성을 뒤흔든 11가지 연애사건" 과  "조선을 뒤흔든 16가지 살인사건" 을 읽었었죠. 한권은 대박, 한권은 쪽박이었는데 이 책은 그냥 평범한 수준이었습니다. 단지 제목에 낚이지만 않는다면 말이죠. 왜냐면 제목처럼 16개의 발견을 다루고는 있지만 이 중 "세계사를 뒤흔든" 내용은 거의 없기도 하지만 모든 발견이 "우연"에 의한 것들만 등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원제는 아마도 "우연에 의한 16가지 대발견" 이 아닐까 싶군요. 책 제목이 판매에 영향을 주기는 할테지만 이 정도라면 너무 과장광고가 아닌가요? 세계가 아닌 관련 학계를 뒤흔든 정도일텐데...

목차를 보면 더욱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쾰른 대성당 설계도의 발견이나 5000년 전의 인류의 냉동 미이라 발견이 세계사를 뒤흔들었다고 보기에는 무리잖아요. 괴테의 진화론 이야기는 정말 유머러스한 에피소드가 중심이 된 약소한 발견이었을 뿐이고요. 이 책에 등장하는 이야기 중에 정말로 세계사에 영향을 준 발견은 뢴트겐 광선과 뉴튼의 만유인력 정도만 해당될 것 같습니다. 2/16이니 비율로만 따진다면 제목이 과장된 것이 확실하겠죠.

아울러 도판도 좀 문제가 있어서 실제 중요한 발견에 대한 도판은 거의 없습니다. 원저도 그러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이스맨"을 보고 싶은데 이집트 미이라 관련 도판만 나오는 등 생뚱맞음의 연속이거든요. 뭔가 좀 책을 만들다 만 느낌이었어요. 뒤로 갈수록 나아진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습니다.

하지만 책 자체는 그런대로 재미있는 편이긴합니다. 정말로 "우연에 의해" 발견된 대 발견들이라는 극적 상황이 잘 녹아있는 이야기들이기도 하고요. 개인적으로는 "아이스맨" 이야기와 "띠무늬 스타킹을 신은 기린 - 오카피", "실라칸스"의 3개 에피소드가 특히 재미있었어요.
"아이스맨"은 발견 당시 세계적인 화제였다는데 저는 토막기사 몇개 본 것 밖에는 기억이 나지 않네요. 우리나라에는 별로 알려지지 않았었나 봐요. 그리고 실라칸스 이야기에서 코모로 제도 원주민들이 실라칸스를 낚아 먹곤 했다는 이야기는 그야말로 대폭소 였습니다. 이건 개그만화 소재로 써도 좋을거 같더라고요. 아무리 생각해도 전혀 식욕이 땡길것 같지 않은 외계에서 온 듯한 물고기인데 참으로 놀랍습니다.^^

그러나 재미와는 별개로 개인적 별점은 2점 반입니다. 제목에 낚인 쪽이라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제목과는 내용이 좀 다른 책이지만 이런 류의 토막 역사 - 상식 서적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한번 읽어보셔도 괜찮을 듯 싶긴 합니다.

2008/10/17

두산팬의 플레이오프 1차전 시청기 및 2차전 전망 및 기대

 


어제 정말 재미있는 경기 봤습니다. 어제 쓴 1차전 전망 및 기대 의 기대가 두개 중 하나는 맞고 하나는 틀렸네요. 선발 김선우 선수는 공은 좋았지만 3이닝을 버티지 못했고, 대신 오재원 선수가 기대 이상의 활약을 해 줬군요. 사실 3회에 4점 줄때까지만 해도 지는 줄 알았습니다.... 이혜천 선수도 제구가 별로 좋지 못했고 말이죠.

하지만 이후 계투진의 분전과 1번과 2번, 그리고 하위타선의 눈부신 활약으로 중요한 1차전을 가져왔네요. 김경문 감독님의 타순 변경 및 투수 교체도 아주 적절했었고 말이죠. 무엇보다도 삼성의 막강 계투진을 다 불러 낸 것이 아주 좋았습니다. 삼성의 수비 실책은 완전 예상외였는데 실책을 한 선수들이 주축 선수들이라는 것이 삼성에게는 참 난감한 점이겠죠. 개인적인 1차전 수훈 선수는 정재훈 선수입니다. 삼성의 물오른 타선을 1안타로 잘 막아주어 역전의 발판을 놓았다고 생각하거든요.

오늘 2차전은 용병 대 용병, 외국인 대 외국인 선발 투수의 대결이군요. 랜들 선수는 이번 시즌 그다지 좋지 못했지만 항상 푹 쉬다 나오면 눈부신 호투를 보여준 선수이기에 무척 기대가 큽니다. 제 생각에 5이닝 2실점 정도로 충분히 막아줄 것 같고요. 에니스 선수는 두산전 1승이 있지만 두산이 전통적으로 처음 선보이는 외국인 선수에게 약했던 탓이 더 크다고 보이고 이미 어느정도 노출이 된 선수이기에 초반 공략이 가능해 보입니다. 오늘 선발 투수 싸움은 아무래도 두산에게 좀 기운다 생각되네요. 중간은 어제 두산이 임태훈, 이용찬, 김명제, 김상현 선수를 아낀 반면에 삼성은 정현욱, 권혁, 안지만 선수를 소모했죠. 오승환 선수까지 넘어가는데 상당히 어려워 보이기에 역시 중간도 두산이 우위로 보입니다.

타선은 두산이 어제 점수를 8점이나 뽑긴 했지만 3-4-5번의 중심타선이 너무 부진했죠. 그러나 두산의 3-4-5번은 언제나 항상 믿을만한 선수들이기에 오늘은 최소한의 능력은 보여줄 것으로 믿습니다. 키 플레이어는 김동주 선수겠죠. 삼성은 어제 타선이 영 힘을 쓰지 못했을 뿐더러 두산에 강했던 최형우 선수가 아무래도 긴장을 많이 한 것 같더군요. 준플레이오프에서 대활약한 박진만 선수의 부진도 뼈아플테고 말이죠. 종합해 보면 타선 역시 두산이 강해보입니다. 기동력과 수비는 뭐 말할 것도 없고요.

전체적으로 오늘 2차전은 제가 두산팬이기도 하지만 두산이 아무래도 유리해보이는데 공은 둥근 법이니 뚜껑은 열어봐야겠죠. 그래도 오늘도 화끈하게 이겨서 편안한 마음으로 원정게임을 준비했으면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두산이 5:2 로 승리할 것을 예상해 봅니다.

파이팅 허슬 두!!!!!

경성을 뒤흔든 11가지 연애사건 - 이철 : 별점 5점!

 

경성을 뒤흔든 11가지 연애사건 - 10점
이철 지음/다산초당(다산북스)

이 책은 전에 읽었던 "조선을 뒤흔든 16가지 살인사건"과 같은 시리즈로 제목 그대로 일제 강점기 시대를 중심으로 한 당시 조선의 스캔들(?) 11개를 풀어놓은 책입니다. 그야말로 "경성스캔들" 이죠. "조선을 뒤흔든 16가지 살인사건"은 읽고나서 실망이 컸지만 이 책은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두 책의 차이점은 정말로 "충격적이고 몰랐던" 역사를 얼마나 디테일하게 설명하면서도 쉽고 이해하기 쉽게 묘사했는지의 여부 같습니다.
"조선을..."은 일단 읽는 것 자체가 힘들 뿐더러 너무 주제와 동떨어진 이야기가 많아서 실망스러웠던 것에 반해 이 책은 물론 제목과는 다르게 당대에 그다지 충격을 전해주지 않은 스캔들도 몇건 다루고 있긴 하지만 그러한 이야기들도 드라마틱하다는 점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이야기들이기에 모든 에피소드가 기대했던 것 만큼의 충분한 재미를 전해 주고 있다는 것이 차이점입니다.
또한 11개의 스캔들 중 익히 알고 있었던 사건이 윤심덕과 김우진의 이른바 "사의 찬미" 사건이나 여류화가 나혜석의 사건 두가지 밖에 없었다는 것도 책의 가치를 높이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이 두 사건 역시 알고 있는 내용보다 훨씬 자세하게, 당시의 자료를 바탕으로 설명하고 있어서 지루한 맛은 전혀 없었다는 것도 탁월한 부분이죠.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사건은 친일파 대부호의 아들 장병천과 기생 강명화의 정사사건이었습니다. 장병천-강명화 정사사건은 친일파 대부호의 아들과 기생이라는, 그야말로 사랑하는 사이지만 신분, 재력의 차이로 비극으로 끝난 너무나 순정만화같고 일일 드라마 같은 이야기로 이런 순정파적이고 비극적인 로맨스가 1920년대에 존재했었다는 점과 실제로 너무나 유명하여 여러권의 소설과 영화로도 가공되었을 만큼의 충격을 당시에 가져다 주었다는 것이 놀라웠습니다. 이렇게 유명한 이야기가 지금은 전혀 전해지지 않는 것도 의문이 들었고요. 아마도 해방 후 국무총리까지 역임했던 장병천 아버지의 형제인 장택상씨의 권세로 사건을 은폐한게 아닌가 싶기도 하더군요. 이런 사소한 부분에서도 드러나는 친일파들의 행각은 씁쓸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당대 매스컴들과 이른바 "지식인" 들의 편견과 비뚤어진 시각을 보여주는 김명순 사건과 독살미인 김정필 사건도 흥미로왔으며, 유명 공산주의자들과 혁명가들이 다수 등장하는 대하 서사시와도 같은 "제4부 - 경성을 붉은색으로 물들인 혁명적 연애 사건"의 이야기들도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공산주의 혁명가들의 불꽃같은 삶과 격동의 시대가 잘 표현되어 있었기 때문이죠. 그야말로 조선과 중국, 소련, 해방 후 북한을 넘나드는 거대한 스케일에 정말로 조선 해방과 민족을 위해 헌신했던 그들의 삶, 체포와 탈옥, 탈출, 고문 등의 고난의 세월 및 해방 후 공산주의자로 남한에서는 매도되었다는 점과 북한에서는 대부분 숙청되었다는 비극적 종말까지 모두 갖춘 극적인 이야기라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주었습니다.

그 외에도 당시의 여러 정사사건, 자유 연애주의자들과 신여성들에 대한 이야기, 동성애자 자살 사건 등 흥미로운 주제가 한 가득입니다. 목차만 읽어도 읽고 싶은 생각이 저절로 들 정도로 말이죠.

역시나 "경성탐정록" 자료로서 구입한 책이었지만 의외의 재미와 새로운 역사를 알게되는 재미가 쏠쏠하여 횡재한 기분까지 드는 책으로 별점은 5점입니다. 재미와 더불어 당대의 여러 사료와 문헌을 다수 인용하고 있기에 자료적 가치까지 충분했으니까요. 일제 강점기 시대의 또다른 역사에 대해 궁금하신 분들이라면 꼭 읽어보시길 권해 드립니다.

2008/10/16

재미있는 검객 이야기 : 일본편 - 유재주 : 별점 3점

 

집에 굴러다니던 오래된 책으로 아주 예전에 읽었었지만 엊그제 우연찮게 최근 다시 읽게 되었네요. 소설가이자 검도관 관장이기도 한 역자가 15세기 후반, 막부 시대 부터 막부 말기 까지의 일본 검술가를 인물별, 사건별로 짤막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다루고 있는 시대만 해도 400여년, 인물만 해도 수십여명일 정도로 방대한 분량이기에 대충대충 요약하여 지나가는 감은 없잖아 있지만 일본 검술계의 유명 인물들과 실제 사건들을 일별하는 재미가 쏠쏠해서 재미있게 읽은 책이기도 합니다. 등장하는 검객들의 현란한 문파 이름 및 수많은 명대사(?)도 볼거리였고요. 그리고 대부분의 주요 사건과 검술가들의 행적에서도 그다지 진검승부가 많지 않았고 생각만큼 화려한 검술쇼가 없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도 수확이었습니다. 뭐 이리 도망다니는 놈들이 많은지 그 찌질함에 정말이지 기가 찰 정도였어요.

이렇듯 재미도 있지만 자료로서 더욱 가치가 있는 책으로 대충 앞부분 목차만 적어보아도 "검성 쓰가하라 보쿠덴, 천류의 개안 사이토 덴기보, 일도류의 개조 이토 잇도사이, 이토 잇도사이의 제자 오노 다다아키, 애꾸는 검객 야마모도 간스케, 무검 가미스미 노부쓰나, 소도의 명수 도미다 세이겡, 사제간의 의리를 지킨 이와마 고쿠마노스케, 마정염류 창시자 히구치 데이지, 야규가의 황금시대, 창술의 달인 보장원 승려 잉에이, 검법가의 후예 요시오카 나오시게, 일본 최고의 검객 미야모도 무사시, 진심류 창시자 가미야 덴신사이, 실전검술의 명인 도고 시게가다, 비극적 종말을 맞은 미야케 겐방..." 등 정말이지 엄청납니다. 또 각 검객들의 주무기(?)와 주무기의 길이, 필살기, 실제 행했던 수많은 시합들에 대한 설명도 상세하고요.

어쨌건 요약하자면 취향은 많이 탈 것 같고 출간된지 10년이 지나 절판된지도 오래지만  "베가본드" 나 "신센구미" 등 일본 검술을 다룬 컨텐츠의 팬이라면 자료 삼아서라도 구해서 읽어볼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야기들이 워낙 짤막해서 금방 읽을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죠. 단 그만큼 깊이는 없습니다만...

그런데 분명 "편역" 이라고 되어 있는 책인데 책의 어디를 보아도 원저에 대한 이야기는 단 한줄도 없군요. 약간 씁쓸하기도 하네요.

2008/10/15

두산 대 삼성 - 두산팬으로서의 전망과 기대

바야흐로 내일이면 두산 대 삼성의 플레이오프가 시작되는군요. 무척이나 두근두근합니다.


현재 공개된 두팀의 전력은 박빙으로 생각되네요. 선발투수, 기동력, 타력과 백업요원은 두산이 약간 앞서긴 하지만 삼성이 준플레이오프를 거치면서 타력이 많이 올라왔고 마무리 오승환 선수의 존재로 인해 전력이 엇비슷해 보입니다. 두산이 이상하게 삼성한테 좀 약한 이미지가 있기도 하고 말이죠.

어쨌건 제 생각으로는 1차전을 잡는 팀이 4승 1~2 패 정도의 성적으로 이길 것 같습니다. 그래서 1차전이 무척 중요한데, 일단 선발투수 싸움을 보자면 1차전은 김선우 - 배영수 선수의 대결로 시즌 막판 부진하긴 했지만 김선우 선수의 구위는 배영수 선수보다는 좋아보입니다. 단 김선우 선수가 큰 무대의 중압감을 이겨내야겠죠. 개인적으로는 왠지 김선우 선수가 6이닝 정도를 2실점 아래로 막아줄 것 같은 느낌인데 잘 던져줬으면 합니다. 두 선발 투수 중 한명이라도 7이닝 정도를 막아주는 팀은 거의 무조건 승리할텐데 전 그게 김선우 선수 였으면 하니까요.

그리고 타선을 보자면 김경문 감독님이 1루수 - 2번타자로 오재원 선수를, 우익수로 전상렬 선수를 선발 출전 시킨다고 하는군요. 빠른 발과 수비를 중심으로 왼손 타자를 상위타선에 포진시킨 선발 라인업인데 오재원 선수가 얼마나 출루를 해 줄지가 관건입니다. 희한할 정도로 번트를 잘 못대는 선수이기에 스스로 출루를 해 줘야 하거든요. 김경문 감독님 말대로 1, 2번이 출루에 성공한다면 의외로 두산이 경기를 쉽게 가져올 수도 있겠지만 1, 2번이 막힌다면 어려움이 따르겠죠. 아울러 5번 홍성흔 선수가 시즌 막판 부진했던 것도 변수로 보이는데 휴식기간동안 컨디션을 끌어 올려 놓았기를 바라고요.

제 바램이 이루어진다면 1차전은 두산이 6-2 정도로 낙승하지 않을까.. 물론 바램입니다만... 하여간 이번주는 야구와 함께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아 다행입니다. 삼성팬 분들께는 죄송한 이야기지만 좋은 뉴스도 없는데 제발 두산이라도 이겨서 저에게 한줄기 단비와 같은 즐거움을 안겨주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어쨌건 허슬 두!

사이먼 싱의 암호의 과학 - 사이먼 싱 / 이원근 : 별점 5점

 

사이먼 싱의 암호의 과학 - 10점
사이먼 싱 지음, 이원근 옮김/영림카디널

이전에 읽었던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의 저자가 쓴 암호의 역사와 원리에 대한 책입니다. "경성탐정록"의 자료로 쓸 까 하고 구입한 책이죠. 목차는 1. 메리 여왕과 엘리자베스 여왕의 암호 대결/ 2. 암호 - 그 신비의 바다 / 3. 보이지 않는 암호 전쟁 / 4. 사라진 언어 / 5. 이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암호 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책 정말 물건입니다. 정말 재미있더군요. 암호도 수학이 근간이 된 과학이기에 딱딱하고 지루하게 쓰지 않았을까 걱정했는데 기우였어요. 암호의 역사를 주요 이슈별로 나누어 생성 방법과 해독 과정, 역사에 미친 파장 등을 재미있게 써서 읽는 내내 전혀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재미 뿐만이 아니라 암호에 대하여 상세하게 잘 설명하고 있어서 이거 한권 읽으니 암호 전문가가 된 것 같아 뿌듯하기까지 하더라고요.^^

딱 하나 아쉬운 점은 유렵과 영미권이 이야기의 중심이라 암호 해독에 동참하지 못한다는 것인데 이건 뭐 어쩔 수 없는 점이겠죠. 상세한 내용 이외에도 풍부한 도판과 암호문의 여러가지 예문들, 다양한 부록도 실려 있기에 정말 별점 5점이 아깝지가 않습니다. 암호에 관심 있으시다면 꼭 한번 읽어보시길 적극 권해드립니다.


1장에서는 제목처럼 메리 여왕의 엘리자베스 여왕 암살 음모에 대한 암호문을 중심으로 암호의 기원부터 중세까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주요 이슈인 메리 여왕 관련 이야기는 한편의 짤막한 역사 첩보 소설을 보는 것 만큼 흥미진진한 이야기였고 그 외의 다른 이야기들, 예를 들자면 고대 암호의 기원부터 스파르타와 로마의 암호 이야기 등도 재미있었습니다. 추리소설 트릭으로 써먹음직 했고 말이죠.
 
2장에서는 크게 두가지의 이슈, 즉 그 당시 해독이 불가능하게 여겨지던 "비즈네르 사이퍼" 와 아직도 그 수수께끼가 밝혀지지 않은 미국의 보물 관련 암호문 "빌 사이퍼" 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비즈네르 사이퍼의 아이디어와 그 해독방법도 흥미진진했지만 모험소설과 같은 분위기가 풍기는 "빌 사이퍼" 이야기는 그야말로 한편의 영화였습니다! 아직도 해독되지 않았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요. 개인적으로는 개인의 창작으로 날조된 문서로 보입니다만...

3장은 독일의 이른바 "이니그마" 시스템에 관련된 이슈가 중심입니다. 해독 불가능으로 여겨지던 이니그마 시스템의 원리를 자세히 설명하는 것은 물론, 그것을 해독하기 위한 폴란드와 영국의 암호해독팀의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재미는 물론 그간 궁금했던 이니그마 시스템에 대해 확실히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이 가장 큰 소득이었습니다. 복잡한 기계이지만 명쾌한 도판과 상세한 설명으로 그간의 궁금증이 싹 가셨거든요.

4장은 영화 "윈드토커"로 잘 알려진 미국 나바호 인디언 암호병에서 시작해서 이와 유사하게 "다른 언어"를 이용한 암호문이라 할 수 있는 고대 언어 해독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짐작대로 "로제타 스톤"과 고대 이집트 언어의 해독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익히 알고 있었던 이야기였지만 세부적인 디테일이 잘 표현되어 마음에 들었습니다. 몰랐는데 샹폴리옹 혼자서 이론을 만들고 해독한건 아니더군요.

5장은 현대 암호 시스템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이른바 "열쇠"를 중심으로 한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암호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보여주는데 사실 여기서부터는 원리는 수학이지만 컴퓨터를 이용한 작성과 해독의 영역에 들어갈 뿐더러 역사적인 사건과 맞물리는 것은 없어서 재미는 가장 떨어지는 편이었습니다. 그래도 "소수"를 이용한 열쇠 만들기에 대한 내용은 경성탐정록에 써먹어 봄직한 이야기라 개인적으로 횡재한 느낌이었어요.^^

2008/10/14

20세기 소년 - 우라사와 나오키 : 별점 3점

 

21세기 소년 -하 - 6점
우라사와 나오키 지음/학산문화사(만화)

이 작품은 워낙 유명한 작품이라 소개는 필요 없을 것 같네요. 얼마전 영화도 개봉했었고 말이죠. 그나저나 완독까지 정말 오래 걸렸네요. 이제야 다 읽었습니다. 거의 8년만인가요?

그런데 솔직히 읽고 난 감상은 "생각보다는 별로"였다는 것입니다. 초중반의 기세를 끝까지 이어나가지 못했어요. 어렸을때의 장난이 나이가 든 뒤 현실로 다가온다는 기본 설정은 정말 좋았는데 이야기가 진행되고 스케일이 점점 커지면서 스토리가 점점 산으로 간 느낌이거든요. 거창하게 벌려 놓았던 '친구가 누구인지'에 대한 수수께끼 라던가 카나의 초능력 같은 설정도 결국은 흐지부지하게 끝나버렸고 말이죠. 엔딩도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 전개이기에 허무했을 뿐더러 이 장대한 작품의 결론이 "정의는 항상 승리하고 음악이 지구를 구한다" 라는 것이라는데에는 실망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민메이 어택도 아니고.... 결국 단순한 히어로물로 전락해 버렸잖아요.

물론 과거와 현재를 교묘하게 편집하는 능력이나 흡사 영화를 보는 듯한 치밀하고 디테일한 그림, 초중반의 확실했던 이야기 전개 덕분에 이 작품을 범작으로 치부하기는 어렵고, 긴 호흡으로 어마어마한 장편을 쉼없이 연재하여 완결한 작가의 노고에는 경의를 표합니다. 하지만 보면 볼수록 중반까지의 흐름을 끝까지 이어가 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많이 남네요. 충분히 몰입할 수 있었던 일정 수준 이상의 작품이라 아쉬움이 더욱 크거든요. 중반까지는 별 5개의 흐름이었다면 중반 이후부터 결말까지는 별점을 다 깎아먹어서 완결을 본 지금의 별점은 3점입니다. 작가의 대표작으로 대접받고 있기도 하던데 저는 이전의 "파인애플 아미" 라던가 "마스터 키튼" 같은 짤막한 호흡의 단편 연재물이 더 좋았었기에 밝고 경쾌한 단편 시리즈로 돌아와 주었으면 싶네요. 추리물이면 더욱 좋고 말이죠.

PS : 인기글 기준이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메인에 올라갔네요. 기념으로 이미지 추가해 봅니다.

카즈는 행복해 - 미유키 노마 / 아이코 우에다 : 별점 3.5점

카즈는 행복해 1 - 8점
미유키 노마 지음/대원씨아이(만화)

최근 좀 심하게 달린(?) 탓에 포스팅거리가 떨어져 집에 뒹굴고 있는 잊혀진 추리만화를 끄집어 내 보았습니다. 이 책의 부제는 "베이비시터 카즈의 하트 탐정 첫번째 이야기"로, 제목 그대로 주인공이 베이비시터 되겠습니다.

프로 베이비시터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만화는 제가 이전에도, 이후에도 본 적은 없지만 전문가적인 지식을 나열하는 "프로의 세계" 류의 만화는 아니며 놀랍게도 "추리만화" 라는 것이 이 작품의 포인트라 할 수 있으며, 베이비시터가 탐정역을 맡고 있는 만큼 대부분 일상 밀착형 사건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 매력적인 작품입니다. 일상 밀착 정도는 정말 대단해서 일상계 추리물로 잘 알려진 여러가지 작품들 ("나의 미스터리한 일상", "나선계단의 앨리스", "봄철 딸기 타르트 사건" 등)도 이 책과 비교한다면 대하 서사 추리물로 보일만큼 소박하고 담백한 구성으로만 이루어져 있거든요. 예를 들자면 불륜이 의심되는 아기 엄마의 정체는? 우산에 씌우는 비닐 봉지를 수십장 모아가는 남자의 정체는? 같은 류의 소소한 사건들이 주로 펼쳐지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해 그야말로 일상계 중의 일상계라 할 수 있겠죠.

무엇보다도 담백한 일상계임에도 불구하고 추리만화로서의 가치는 정통 본격물에 비해 그다지 뒤떨어지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장점으로, 이야기의 전개와 추리의 과정이 굉장히 합리적입니다. 단서의 제공도 공정한 편이며 단편 옴니버스 물이라 이야기 하나하나가 굉장히 짧은데도 한편에 이야기를 잘 압축하여 시작부터 결론까지의 설득력도 높고요.2권부터 큰 사건 (그래봤자 아주 약간이지만요)이 벌어져서 스케일이 커지는 부분은 그다지 마음에 들지는 않았습니다만 전체적인 완성도는 상당한 수준이라 생각됩니다.

아울러 노마 미유키씨의 원작을 동글동글하고 귀엽게 구현한 그림도 마음에 듭니다. 노마 미유키 씨도 만화가이긴 한데 작품은 몇개 찾아보니 확실히 이 만화를 그린 우에다 아이코씨 그림이 훨~씬 귀여우면서도 작품과 잘 맞아 떨어지는 것 같네요. 일상계 작품이라 그런지 이 작품처럼 귀여운 순정만화 스타일이 잘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고요.

개인적인 별점은 1권만으로는 별 4점 입니다. 2권까지 포함한다면 별 3.5점이고요. 그나저나, 그다지 인기는 없었던 탓에 단행본은 달랑 2권 나오고 끝났다는 것이 아쉽습니다. 작가도 잊혀진 듯 이후의 작품은 출간된 것도 없고요. (국내기준입니다) 물론 일상계 추리물인 만큼 이야기가 별로 극적이지 않고 내용이 너무 소박하여 담백한 탓에 김전일로 대변되는 연쇄살인범이 판치는 만화들과 한판 붙기에는 당시 분위기상 무리가 있긴 했을테죠.
개인적으로는 시대를 너무 앞서간 탓도 큰 것 같은데 지금 보아도 추리만화로서의 가치는 충분한 작품이기에 Q.E.D의 소소한 일상 추리가 마음에 드셨던 분이라면 꼭 한번 읽어 보시길 권하고 싶습니다. 조사해 보니 현재 절판입니다만, (당연한가?) 뭐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는 법이겠죠?

2008/10/13

소년탐정 김전일 2부 설령전설 살인사건 - 아마기 세이마루 / 사토 후미야 : 별점 2점

 

소년탐정 김전일 2부 6 - 4점
아마기 세이마루 지음, 사토 후미야 그림/서울문화사(만화)

자전거 여행때 도와준 거부의 산악인으로부터 1억의 유산을 상속받게 되어 설산 산장으로 여행을 떠난 김전일과 미유키, 그리고 켄모치 반장은 아니나 다를까 고립된 산장에서 연쇄 살인 사건에 직면하게 되는데...

작년에 산거 같은데 포스팅이 1년이나 늦었네요. 늦었지만 다시 겨울이 다가오는 만큼 포스팅 해 봅니다^^ (사실은 깜빡했다가 어제 책을 다시 찾아서리...)

일단 이 작품은 추리적으로는 상당히 괜찮은 작품이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밀실트릭에 있어서 참신함이 돋보였고 무엇보다도 "바꿔치기" 트릭이 아주 효과적으로 사용되었었거든요. 단서도 공정하게 제공되는 편이기도 하고요. 독자의 맹점을 찌르는 날카로운 부분이 확실히 있긴 있습니다.

그러나 트릭 이외에는 이야기 전개는 빵점짜립니다. 애시당초 김전일이 왜 그 산장에 가야 했는지에 대한 당위성이 제로였고 피해자 중 한명인 쌍동이가 왜 2인 1역을 수행했는지에 대한 설득력이 전무했거든요. 이 2인 1역 트릭이 사건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이기도 해서 보다 효과적으로 설명했어야 했는데도 불구하고 설명 자체가 없습니다... 또한 간략한 줄거리에서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구닥다리 설정의 찬란한 향연 되겠습니다. 김전일 소년과 눈덮인 산장은 이미 "태롯 카드 산장"에서 써먹은 소재일 뿐더러 이미 수많은 고전 클로즈드 써클 미스테리에서 지겹도록 등장한 설정이기도 하죠. 불가능한 밀실 살인사건 역시 수차례 반복된 아주아주 식상한 소재고요. 더군다나 과거의 범죄에서 비롯된 가슴아픈 사연까지! 이건 이미 전작에서 수도없이 반복되었던 스스로의 복제에 지나지 않는 이야기 아니겠습니까... 그야말로 "아니나 다를까"의 연속이죠.

때문에 추리만화로서의 완성도는 괜찮은 편이지만 과연 "만화"라는 것으로 재미있느냐 하면 그건 아니라는 결론이 나오네요. 지루함 그 자체인 원사이드한 포맷을 버려서 무리하게 이야기를 늘리지 말고 단편 위주로 전개하는 것이 좋을텐데 너무 장편만 고집하는 것 같아 조금 안타깝기도 합니다. 이미 나올만한 캐릭터와 배경 설정은 다 나온 만큼 짤막한 사건 위주의 단편 옴니버스 시리즈 물로 나아가면 훨씬 재미있을것 같거든요. 작품 말미에 수록된 간만의 하야미 레이카가 나오는 단편이 아주 괜찮기도 했고 말이죠.

이런저런 단점들 때문에 개인적인 별점은 2점입니다. 사실 1점을 줘도 시원치 않지만 하야미 레이카 단편 덕분에 2점 줍니다. 새 작품은 아직 발간되지 않았는데 제 바램대로의 짤막한 옴니버스 단편집이기를 바랍니다.

2008/10/12

통곡 - 누쿠이 도쿠로 / 이기웅 : 별점 3.5점

통곡 - 6점
누쿠이 도쿠로 지음, 이기웅 옮김/비채

일본 작가 누쿠이 도쿠로의 데뷰작으로 "일본본격추리소설 100선"에도 선정되기도 하는 등 워낙 평도 좋고 유명한 작품이라 출간되자 마자 곧바로 구입해서 읽게 된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크게 두가지의 축으로 전개됩니다. 이 두개의 축을 가진 전개 방식이 좀 독특해서 사건을 수사하는 경시청 수사 1과의 사에키 경시와 유괴 범인을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가 각 장마다 정확하게 번갈아 묘사되는 것이 포인트죠. 때문에 실제로 범인이 범행을 저지르는 중반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결합되는 터라 중반부까지는 전혀 상관없는 책 2권을 동시에 읽고 있다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이러한 전개 방식은 다른 작품에서 쉽게 볼 수 없었던 방식으로 이 작품의 가장 큰 트릭이며 반전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상당히 참신하고 신선하게 느껴지더군요. 정교하게 구성되어 있어서 작가의 데뷰작이라는 것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의 완성도를 보여주기도 하고요.

하지만 소설 자체는 본격 추리물로 보기에는 무리가 많이 따르네요. 본격 추리물로 보기에는 추리의 요소가 너무 없거든요. 무엇보다도 결국 먼저 벌어졌던 네건의 사건에 대한 진상이 밝혀지지 않는다는 것에서 추리적으로 높은 점수를 주기는 힘들었습니다. 작품 안에서 결국은 사건이 완결되지 않기 때문이죠. 그리고 두가지 이야기를 교묘하게 겹치기는 하지만 작위적으로 이야기를 동일선상으로 끌고나가려는 작가의 의도가 들여다 보이는 것도 눈에 약간 거슬렸습니다. 덕분에 심리 묘사와 텍스트 (서술) 트릭에 의한 반전이 극대화되고 높이 평가되는 것은 사실입니다만 제가 개인적으로 기대했던 것 만큼의 정통, 본격적 요소는 전무해서 아쉬움이 남네요. 경찰이 범인의 꼬리를 잡는 단서가 결국 "투서" 때문이었다는 것도 너무 안일하게 느껴졌고요. 그 외에 사에키에 대한 이야기들은 좀 지루하고 길게 늘여쓴게 아닌가 싶었고 범인이 급작스럽게 흑마술에 빠지는 것 역시 썩 타당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작품에 대한 높은 평가는 충분히 이해할만 했고, 묘사 역시 상당한 수준이라 몰입해서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반전에 죽고 반전에 사는" 류의 작품들과는 다르게 주제의식도 확고하고 작가의 자료 조사 등 디테일한 부분에서의 노력도 읽으면서 계속 느낄 수 있었다는 것도 장점이고요. 때문에 최근 읽은 소설들 중에서는 완성도만 놓고 본다면 가장 높은 수준으로 별점은 3.5점 입니다. 4점을 주고 싶기도 한데 정통 추리물이 아니라는 점에서 약간 감점이 되었네요.

재미와 반전 측면에서는 확실히 보장되는 작품이니만큼 "벛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라던가 "살육에 이르는 병", "이중구속" 스타일의 반전, 텍스트 트릭물을 좋아하신다면 꼭 읽어보시길 권해 드립니다. 반전의 맛은 뒤지지 않으면서도 나름의 매력도 충분하니까요.

2008/10/11

본격 제 2차 세계대전 만화 1권 - 굽시니스트 : 별점 2점

 

본격 제 2차 세계대전 만화 1권 - 4점
굽시니스트 지음/애니북스

웹상에서 이미 접하긴 했지만 사실 책으로 나올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그래도 요사이 워낙 화제가 되고 있기에 관심은 있었는데 형이 구입했길래 오늘 본가에 갔다가 빌려와서 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읽고 난 감상평은 한마디로 "별로" 였습니다. 웹상에서 워낙 유명하고 널리 알려진 작품을 감히 깎아내리자니 용기가 나지 않기도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저에게는 별로였는걸요. 보다가 졸 정도로요.

일단 그림의 수준이나 만화로서의 완성도가 낮습니다. 솔직히 책으로 출간되기 어려울 정도의 완성도로 보이거든요. 아마츄어가 보수와 관계없이 연재한 작품을 책으로 만들었기에 이해는 되지만 요사이 많이 등장하고 있는 아마츄어 웹툰과 비교해서도 그 수준이 상당히 낮은 것은 분명합니다. 이 책에서 그나마의 퀄리티를 보여준 부분은 표지밖에 없을 정도로 뎃생력, 구도나 배경, 만화 자체의 완성도 모두 마음에 들지 않는 함량미달 수준이었습니다. 

또한 수많은 패러디를 통해 2차대전이라는 역사를 전달하고 있다는 취지와는 다르게 2차 세계대전에 대한 내용은 별다른 새로운 내용이 없으며, 책 내용의 패러디들이 패러디를 위한 패러디가 많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비슷한 유형의 작품으로 최훈의 "삼국전투기"를 들 수 있는데 삼국전투기의 경우는 나름대로 매니아적인 패러디이지만 상당히 적재적소에 패러디가 삽입되어 이해를 도와주고 있는 반면, 이 책에서의 패러디는 초반에는 괜찮았지만 뒤로 갈 수록 이름을 이용한 말장난이나 별다른 의미없는 패러디, 개그가 너무 많거든요. 삼국전투기가 모범답안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원소와 조조가 가르마와 샤아라는 것은 확 와닿는데 야마모토가 왜 루피인지는 대관절 영문을 모르겠다는 것이죠... 허무개그 수준의 롬멜 개그 등은 웃기기는 커녕 황당할 뿐이었고요. 물론 기발한 패러디와 재치를 보여주는 장면도 있지만 앞서 말했듯 패러디를 잘 살리기 위한 그림실력과 묘사력이 부족해서 패러디로서의 설득력도 떨어집니다.

어설프지만 굉장히 매니악하기에 도저히 일반인에게 어필할 수 없는 아마츄어의 에너지가 넘치는 작품이 책으로 간행되어 나왔다는 것에는 찬사를 보냅니다. 그러나 독자가 돈을 내고 사 볼만한 가치가 있는 책인지는 의문입니다. 저에게는 그 어떤 새로운 것이나 가치를 느끼기 어려운 책이었기에 별점은 2점입니다. 제가 직접 구입했더라면 1점일 수도 있겠죠. 어쨌건 이 상태라면 2권은 읽게 될 것 같지도 않군요.

이 책 자체 보다는 다양한 채널에서 매니아를 자극한 출판사인 애니북스의 마케팅 실력에 경의를 표할 수 밖에 없겠습니다...

부랑청년 전성시대 - 소영현 : 별점 3점

 

부랑청년 전성시대 - 6점
소영현 지음/푸른역사

한창 추리소설로 달리다가 숨을 좀 고를겸 예전에 구입한 자료용 도서를 꺼내어 읽게 되었습니다. 역사관련 도서는 오랫만이네요.

이 책은 부제의 “근대 청년의 문화 풍경”이라는 말 그대로 근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반까지의 (주로 1900년대 전후반에서 1920년대에 걸쳐) 조선의 “청년” 들을 중심으로 한 다양한 문화적, 사상적 배경을 분석하여 다루고 있는 책으로, 주제는 크게 근대 청년 / 경성풍경 / 근대화와 여성들 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 큰 주제를 지루하지 않도록 단락별로 짤막하게 구성하여 서술하고 있고요. 확실한 것은 최근 1~2년 사이의 "경성붐"에 편성한 책은 아닌, 제대로 된 책이라는 것입니다.

이른바 근대화와 근대적 청년이라는 것에 포커스를 집중하고 있기에 관련 내용이 굉장히 자세할 뿐더러, 해당 시대와 주제에 관심이 있다면 자료로서 소장가치가 충분한 책이기도 합니다. 근대 조선에서의 입신 출세를 위한 조선 유학생의 숫자라던가, 유학생들이 유학을 떠난 학교와 출신 지역은 어디인가 라던가, 근대 조선에서의 이혼율, 여성학교와 재학생 숫자와 같은 통계자료를 비롯하여 다양한 도판 및 인용된 당대의 많은 소설 및 시, 잡지 등의 기고문 등 자료만 해도 한 가득이거든요.

애초에는 창작중인 추리소설 “경성탐정록”을 위한 자료로서 구입한 책으로 재미를 위해 구입한 책은 아니었고, 책 내용도 아주 재미있다고 보기는 어렵긴 합니다. 하지만 인상적이었고 재미있게 읽은 이야기도 적지 않은데, 대표적인 것은 근대 조선에서 에스페란티스토가 많았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벽초 홍명희 선생이 에스페란티스토였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고 말이죠. 다음 경성탐정록에는 에스페란토어 암호가 등장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외에도 당대 청년들의 근대화 과정과 그들의 내면에 있는 고정관념과 근대화에 대한 딜레마, 예를 들자면 정혼자가 있거나 혼약한 상태에서 근대 교육을 받은 뒤 이혼을 결심하는 과정에 대한 자세한 해설 등도 재미있었습니다.

가격이 제법 되는 편이라 선뜻 추천하기는 어렵지만 별 3개는 충분한 가치가 있는 책이었습니다. 저에게는 자료적 가치가 더 크긴 하지만 예상외의 재미도 느낀 만큼, 사람에 따라 관심이 있다면 한번쯤 읽어볼 만한 책이 아닌가 싶네요.

2008/10/10

이누가미 일족 - 요코미조 세이시 / 정명원 : 별점 2.5점

 

이누가미 일족 - 6점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정명원 옮김/시공사

명탐정 긴다이치 코스케는 신슈지방의 재벌 이누가미 가문의 변호사 사무실 직원의 요청으로 나스에 방문한다. 이유는 이누가미 가문의 당주인 사헤옹의 죽음과 더불어 발표될 유언장에 관련된 의문의 사건 조사 때문. 그러나 도착한 날 긴다이치를 만나기로 한 직원 와카바야시가 살해되고, 유언장이 발표되어 사헤옹 은인의 손녀인 절세미녀 다마요가 이누가미 가문의 재산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중심인물로 밝혀진다. 이후 이누가미 가문의 가보인 요키(도끼), 고토(거문고), 기쿠(국화)를 의미하는 연쇄 살인 사건이 이누가미 가문에서 일어나고, 긴다이치 코스케는 결국 범인을 밝혀내게 된다.


견신 (이누가미) 가문의 연쇄살인사건을 그리고 있는 요코미조 세이시의 정통 본격 추리소설입니다. 당연히 탐정은 긴다이치 코스케고요. 제가 알고 있기로는 대표작은 아닌데 외려 영화로 더욱 유명해진 특이한 케이스의 작품이기도 합니다. (참고로 대표작으로 쳐주는 작품은 보통 “옥문도”와 “혼진 살인사건” 으로 알고 있습니다)

타고난 이야기꾼이라 할 수 있는 요코미조 세이시의 능력 덕분에 작품의 흡입력은 상당한 편이며, 기괴하고 엽기적인 살인 방법 때문에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긴 합니다. 엽기적이고 기괴한 묘사의 달인다운 솜씨도 잘 발휘되어 있고, 일본에서 가장 유명할 지도 모르는 바로 그 시체(?) 가 등장하기도 하는 만큼 기본적인 재미는 충분히 전해 줍니다. 특히 오페라의 유령에서 차용한 캐릭터 설정은 제법이었고요. 

하지만 대표작으로 꼽히지 않는 이유 역시 쉽게 이해가 되더군요. 일단 참신하다거나 신선하다는 느낌은 받기 어려웠습니다. 그간 읽어왔던 작품 대부분에 등장하는 전형적 요코미조 설정인 시골마을을 지배하는 대부호 가문의 비뚤어진 인간관계가 전면에 드러난다는 점과 사건의 동기가 가문의 재산 때문이라는 점에서 똑같거든요. 아울러 마을이나 가문에 전해지는 전설(?) 을 토대로 벌어지는 연쇄살인이라는 것 역시 다를 바 없었습니다. 독특했던 것은 나름의 복잡한 “유언장” 이라는 존재 뿐이니까요.

또한 추리적으로도 완성도가 그다지 높지 않다는 것 역시 아쉬운 부분이었습니다. 사건이 너무나 “우연” 이 겹쳐서 미궁에 빠져드는 이야기인지라 추리의 영역을 한참 벗어나는 것도 문제고, “가면”을 이용한 트릭도 그다지 정교하게 쓰이지 못했으며, 핵심인물이 자신의 정체를 숨기는 행동도 그다지 설득력이 높지 않다는 것도 감점 요인일 뿐더러, 결국 죽을 사람이 다 죽고 수수께끼의 인물이 정체를 드러낸 이후에 범행이 밝혀진다는 과정 역시 그 시점에서 용의자가 한명밖에 남지 않기에 그다지 정교하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그 외에도 정체를 숨긴 인물이 너무 많다는 것이라던가, 동기는 그럴듯 하지만 지나칠 정도로 비인간적이고 비합리적인 심리에서 유발된 범행이라는 것 등도 별로 마음에 들지 않더군요.

즉 이 작품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비정상적인 싸이코가 우연이 겹친 덕분에 운좋게 범행을 성공하지만 용의자가 다 죽어버리는 바람에 정체가 들통나는 이야기 되겠습니다. 이건 뭐 추리고 뭐고 없는 상황이죠. 작가 스스로 작품에서 "무서운 우연" 어쩌구 하며 합리화 시키려고 하는데 이건 반칙이잖아요?

제가 좋아하는 고전 정통 추리물에 명탐정 긴다이치 코스케가 등장하는 등 끌리는 요소는 많았지만 읽고나니 거장의 범작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재미와 흡입력은 거장 답지만 정통 추리물로 보기에는 많이 미흡하여 즐길거리가 많지는 않았으니까요.

제가 요새 심신이 피곤해 좀 날카로운 탓도 있겠지만 “옥문도” 등의 대표작에 비하면 약간은 수준이 떨어지는 작품임에 분명하므로 별점은 2점 반 주겠습니다.

2008/10/09

하얀 토끼가 도망친다 - 아리스가와 아리스 / 김선영 : 별점 3점

 

하얀 토끼가 도망친다 - 6점
아리스가와 아리스 지음, 김선영 옮김/시작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작가 아리스 시리즈 중,단편집입니다. 이 시리즈의 탐정은 범죄 심리학 조교수 히무라 히데오로 작가 아리스 시리즈라 불리우는 이유는 작품의 왓슨 역이 저자 이름과 같은 추리소설가 아리스가와 아리스이기 때문입니다. 전에 원서로 읽고 리뷰를 남긴 “러시아 홍차의 비밀” 도 같은 시리즈의 한권이죠. 뭐 제가 좋아라 하는 일본 본격 추리 단편집이니 당연한 마음으로 사서 읽었습니다. 작가 아리스 시리즈 대표작은 “국명 시리즈”로 알고 있는데 좀 엉뚱한 시리즈가 먼저 번역되어 소개된 것이 좀 의아하긴 했습니다만.

감상평은 뭐랄까, 좀 애매하네요. “국명 시리즈” 이기도 한 “러시아 홍차의 비밀” 보다 재미와 수준이 떨어지기도 하고요. 전체적인 책 자체의 평균은 비슷하지만 “러시아 홍차의 비밀” 은 수록작품의 편차가 커서 좋은 작품은 굉장히 좋은 반면, 이 책에 실린 작품의 수준은 엇비슷하지만 고만고만한 수준의 작품들이 모여 있어서 딱히 끌리는 작품은 없거든요. 또한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특징이기도 한 정교한 트릭에 매몰되어 이야기 전개가 매끄럽지 않은 부분도 눈에 많이 거슬렸고요. 이런 단점까지 존경한다는 엘러리 퀸을 닮을 필요는 없었을텐데... 어쨌건 별점은 3점입니다. 신본격 대표작가의 정통 추리 단편집을 국내에서 접하기는 쉽지 않기에 가산점을 더했습니다.^^

총 4편의 중단편이 실려있는데 작품별로 자세하게 이야기하자면,

부재의 증명
일종의 알리바이 트릭 + 순간이동 트릭 등이 결합된 정통 퍼즐 미스터리물입니다. 아주 약간의 시간차를 이용한 결정적 단서 포착 부분은 좋았으며 동기와 범행 방식, 범인의 행동도 설득력이 넘쳐서 완성도가 높더군요. 개인적으로는 이 단편집에서의 베스트 작품이었습니다.

지하실의 처형
형사가 수배중인 테러리스트 들에게 사로잡힌채 그들의 처형 의식의 목격자가 된다는 기본 설정은 독특했지만 애당초 범인이 둘중 하나라는 근본적 한계 때문에 꽉 짜여진 긴장감을 느끼기 어려운 작품이었습니다. 히무라의 추리 역시 경찰의 수사 결과를 토대로 이루어지기에 그다지 대단하거나 놀라운 진상이 밝혀지는 것도 아니고요. 차라리 논리 퍼즐 형태의 미스터리로 가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 싶네요. 어쨌건 정통 추리의 맛을 느끼기 어려웠고 그다지 높은 점수를 주기도 어렵기에 이 단편집에서의 워스트 작품으로 꼽겠습니다.

비할 바 없이 성스러운 순간
2건의 다이잉 메시지가 중요하게 사용되는 퍼즐 미스터리입니다. 그런데 2건 중 첫번째 메시지는 너무나 특정한 정보를 나타내는 것이며, 중간의 히무로의 착안이 명확하기에 해당 정보를 알고 있다면 크게 수수께끼로 남을 것 같지 않아 그다지 정교한 트릭으로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죽어가는 사람이 그런 정교한 도안을 그릴 수 있었을까 하는 근본적인 의문이 생기기도 하고요. 두번째 메시지는 피해자의 행동이 그럴싸 하다는 점에서는 합격점을 줄 만 하고 피해자의 의도와 다른, 하지만 정확한 결론이 도출된다는 점은 신선한 발상이 엿보였습니다. 첫번째 메시지의 작위성만 없었다면 괜찮았을텐데 아쉽네요.

하얀 토끼가 도망친다.
이 책에서 가장 긴, 중편분량의 정통 추리물로 고전적인 시간표를 이용한 알리바이 트릭을 다루고 있습니다. 긴 분량에 걸맞게 트릭 자체는 공들여 잘 만들어진 트릭으로 추리적으로는 만족할 만 한 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야기 전개에 있습니다. 범인이 범행을 하는 동기를 만들어 내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동기가 되는 첫 사건의 동기는 전혀 설명되지 않으며, 애당초 첫번째 범행에서의 증거가 너무나 결정적이기에 두번째 사건이자 주 사건의 알리바이 트릭을 파헤치는 것은 전혀 의미가 없다고 보여지거든요. 한 사건의 범인임이 명백하고 증거도 확실한데 왜 다른 사건에 시간과 공을 들이는지 영문을 모르겠습니다. 또한 작품 전반에 걸쳐 “토끼”라는 상징이 지속적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작품의 내용과는 전혀 상관없어서 나중에는 짜증마저 일었고요. 추리적 완성도가 높은, 잘 짜여진 작품이지만 이야기 전개에 실패한 작품으로 보이기에 아쉬움이 큽니다.

2008/10/08

인사이트 밀 (incite Mill) - 요네자와 호노부 / 최고은 : 별점 3점

 

The Incite mill 인사이트 밀 - 6점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최고은 옮김/학산문화사(단행본)

여자친구를 만들기 위해 차를 구입하려고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 잡지를 뒤적이고 있던 평범한 대학생 유키 리쿠히코. 그런 그에게 갑자기 등 뒤에서 한 미녀가 말을 걸어왔다. 그 여자와 함께 들여다본 잡지 귀퉁이에 실려 있던 광고에는 시급 112,000엔, 엄청난 고액의, 엄청나게 수상한 아르바이트가 실려 있었다.

'연령과 성별 불문. 일주일 기간의 단기 아르바이트. 어느 인문과학적 실험의 피험자. 하루의 구속 시간은 24시간. 인권에 위배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24시간 피험자를 관찰한다.' 수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엄청난 시급에 눈이 멀어 망설임을 이기고 연락을 넣은 유키는 지정된 장소 ‘암귀관’을 향한다. 참가자는 열두 명. 그리고, 등 뒤로 육중한 문이 닫힌 순간, 열두 명의 운명은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밤'을 향해 치닫는다.


2008년 “이 미스터리가 굉장해!”에서 10위를 차지한 요네자와 호노부의 장편 소설입니다.

정말 재미있게 읽은 소설로 처음부터 끝까지 정말 몰입하여 하루만에 읽어버리게 만드는 흡입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추리소설 매니아를 두근거리게 만드는 작중의 설정 및 트릭도 굉장히 매력적이었고요. 또한 일상계 추리소설을 발표해 왔던 요네자와 호노부의 전작과 유사하게 등장하는 인물들 대부분이 일상인, 소시민들이라는 점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여자친구를 사귀기 위해 중고차를 사려고 아르바이트에 응모하는 주인공이라니.. 정말 생동감이 넘칩니다.

하지만 분명 단점도 존재합니다. 제일 큰 단점은 모든 상황과 설정이 비현실적이라는 것이겠죠. 애당초 비밀의 조직에서 거액의 돈으로 아르바이트를 모집한 뒤 잘 기획된 폐쇄된 공간에 일단의 무리를 집어넣는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만화적이잖아요. 법과 돈을 초월한 의문의 조직, 잘 짜여진 룰과 상황에 어울리는 최적의 무대, 이건 완벽하게 만화 “라이어 게임” 판박이죠. 게다가 이 비밀의 조직이 행하는 실험(?)의 이유조차 알 수 없을 뿐 아니라 아르바이트 잡지에 광고를 실었다는 결정적 증거가 있는 이상 관련한 수사가 진행된다면 분명히 꼬리가 잡혔을 텐데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되지 않는 점은 작가 스스로 쓰고싶은 부분만을 위해 억지로 가져다 붙인 설정이 아닌가 싶은 생각까지 들 정도였습니다. 앞서 말한 생동감 있는 소시민 캐릭터도 "스와나"라는 초슈퍼 엘리트 냉혈 미인 때문에 빛을 잃는 면도 없잖아 있고요. 인터넷 지인이신 decca 님의 말에 따르면 이러한 작위성이 매력이라고 하시던데 작위적인것도 정도껏 해야죠.... 제게는 만화를 소설로 억지로 각색한 느낌이 더 컸습니다.

또한 이 폐쇄된 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살인 사건의 과정 역시 합리적인 이야기 진행과는 거리가 멉니다. 일단 한명 죽이면 몇배, 범인을 밝히면 몇배 식으로 배율을 정해놓고 살인 게임을 유도한다고 하는데, 사실 제일 힘이 센 인물이 한명만 동료로 끌어들여 연쇄살인을 뚝딱 저지른다면 곧바로 게임이 끝나고 엄청난 거액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거든요. 물론 양심에 호소하며 그러한 상황을 방지코자 하는 애매한 묘사가 나오긴 하지만 설득력은 떨어지죠. 작중에서도 결국 범인은 “2명”을 살해하는 상황인데 “2명”과 “10명”의 차이가 과연 존재할 지 의문이기도 하고요. 아울러 한 4~5명 살해하고 감옥에 갇히는 것도 좋은 방법이 아니었을까요? 가장 안전한 곳은 감옥이니 만큼 살해에 따른 보너스 수입과 안전을 손에 넣는다면 괜찮은 방법이었을 텐데 말이죠.

그리고 사건이 너무 “트릭”을 위해 작위적으로 짜여진 것도 껄끄럽더군요. 이 소설에서 진정한 이유를 가진 살인(?)은 첫번째 살인밖에 없으며, 이후 벌어진 살인은 전부 우발적이고 우연에 의한 것입니다. 물론 중간에 있는 두건의 살인은 확실한 동기가 나중에 밝혀지기는 하지만 살인이 벌어지는 상황이 우연과 우연이 결합된 상황이었다는 점에서 작위적이었고, 극적인 결말을 위해 가져다 붙인 티가 많이 납니다. 우연과 우연이 결합되는 상황 역시 중간에 등장하는 “어디에 가나 3인 이상 이동” 이라는 그럴듯한 설정에 발목을 잡힌 듯 무리수를 둔 느낌까지 들고요.

이렇듯 단점이 좀 많고 아쉬운 부분도 많은 작품이라 비록 굉장히 재미있긴 하지만 자신있게 추천하기는 좀 애매한 작품입니다. 야구에 비유하자면 2사 1,2루 찬스에서 타점없이 진루만 가능한 짧은 안타를 친 격이랄까요. (번트안타?) 그래도 저는 손에 한번 잡으면 놓기 힘들 정도의 재미를 갖췄기에 별 3개 주겠습니다. 아무리 단점이 많고 만화같은 설정이라도 재미가 가장 중요한 법이니까요. 뭔가 속편을 암시하는 결말인데 속편이 나온다면 재미는 유지한채 보다 정교하고 철저한 설정을 기대해 보겠습니다.

2008/10/07

사랑의 은하수 (Somewhere In Time) - 자노 슈와르크 : 별점 2점

 


젊은 희극작가 리차드 콜리어는 자신의 연극 발표날 한 노부인으로부터 금시계와 함께 자기에게 돌아와 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몇년 후, 그랜드 호텔이라는 곳에 투숙하게 된 콜리어는 호텔 역사관에서 우연히 발견한 아름다운 젊은 여인의 사진을 보고 한눈에 반한 뒤, 그녀에 대한 조사를 통해 그녀가 당대 제일의 여배우이자 자신에게 금시계를 선물로 주었던 노부인임을 알게 된다. 그녀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으로 1912년으로 되돌아 가고자 하는 콜리어는 자신의 대학 시절 은사의 조언으로 1912년 당시로 타임슬립에 성공하고 그녀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올드 슈퍼맨 크리스토퍼 리브 주연의 멜로물로 익히 알고 있었지만 볼 기회가 없던 차에 EBS에서 방영하기에 보게 된 영화입니다. 오래 전부터 나름의 유명세가 있던 영화고 포스터도 워낙 멋져서 기대도 컸고 말이죠.

그런데.. 영화는 제 기대를 무참하게 깨 버릴 정도였습니다. 재미도 없지만 지루했을 뿐더러 이야기 전개가 뻔함의 극치였습니다. 영화가 시작하고 30분이 지나기도전에 이미 결말까지의 내용을 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 진부한 이야기였기 때문입니다.

물론 존 배리가 맡은 상당히 괜찮은 음악, 그리고 비쥬얼 하나 만큼은 멋졌던 두 주연배우의 모습만으로도 이 영화는 존재가치가 충분할지 모릅니다.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는 비련의 사랑이 결국 죽은 뒤 내세에서 이루어진다는 감동적인 이야기 구조도 나쁘진 않았고요. 하지만 영화로서 최소한의 재미를 주는데 실패하고 있기 때문에 저에게는 참을 수 없을 만치 지루함만 가져다 준 영화였습니다.

일단 주인공 리처드 콜리어가 과거로 타임 슬립하는 부분의 설득력이 제로라는 점이 제일 문제였습니다. 멜로물에서 너무 큰 기대를 하면 안되겠지만 이건 우체통을 통한 시공의 초월이나 무선 통신 장비를 이용한 대화의 차원이 아닌 그냥 “최면술” 비스무레한 것으로 얼렁뚱땅 넘어가 버리거든요. 물론 이 설정이 불합리 하다고 해서 이야기 전개에 지장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콜리어가 다시 현대로 튕겨나오는 설정이 있다는 점에서 타임 슬립에 대해 최소한의 설득력은 가지고 있어야 했다고 생각되며, 이후 콜리어가 현실로 돌아온 뒤 다시 과거로 이동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설명을 전혀 해 주지 않는 것은 불친절의 극치로 느껴지네요.

게다가 과거로 이동하여 서로 사랑에 빠지는 부분 역시 쉽게 납득하기 어렵게 흘러갑니다. 당대 최고의 연극배우 엘리스가 잘생기긴 했지만 정체를 알 수 없는 콜리어와 몇번 이야기를 나눈 뒤 격렬한 사랑에 빠진다… 는 설정은 너무 구시대적이기도 하지만 그다지 잘 표현되지도 않았거든요. 보통 이런 영화는 주인공의 작업(?) 과정을 좀 디테일하게 보여준다던가, 서로 첫 만남을 가지는 과정이 드라마틱 하다던가 하는 약간의 부가적인 요소가 필요할텐데 너무 주인공 위주로 영화가 흘러가다 보니 사진 한장 보고 운명을 느낀 편집증 환자의 시대를 초월한 스토커 일대기를 보는 느낌이 들더군요. 만약 엘리스가 콜리어에게 반하지 않는다면 이건 정말 완전 호러영홥니다. 엔간한 난도질 정도로는 마무리 안될거에요....

어쨌건 겨우겨우 끝까지 보긴 했지만 그동안 기대하고 기다려온 세월이 아깝기까지 했습니다. 슈퍼맨의 좋은 모습만 간직하고 살아갔어야 하는데 괜히 본 것 같아요. 멜로물이 제 취향은 아니며 30년에 가까운 시간을 감안하더라도 좋은 점수는 주기 힘들군요. 별점은 2점입니다.

추리소설가로 타율왕을 알아보자 (수정)

형이랑 메신저로 대화하다가 갑자기 생각나서 포스팅하게 되었네요.

제 블로그 기준이며, 읽었지만 포스팅하지 않은 일부 작품은 편의상 "이전 시즌" 으로 통칭하였습니다.
일단 3타석(?) 이상 들어온 작가 기준이며 별점 3개가 단타, 4개가 2루타, 5개는 홈런으로 계산한 것입니다.
쓰고나니 이게 도서관련 포스팅인지 야구관련 포스팅인지 알쏭달쏭 하네요.

어쨌건 제가 평점이 좀 후해서 타율들이 다 상당히 높은 것이 특징이었습니다만 역시 로스 맥도널드가 최고였습니다. 전타석 장타라니.... 기타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 대산초어님 댓글을 보고 제가 장타율을 잘못 계산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수정하였습니다. 대산초어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1. 로스 맥도널드 - 4타수 4안타 / 2루타 3개, 홈런 1개 / 타율 1.000, 장타율 2.500, 출루율 1.000, OPS 3.500
: 완벽한 타자. 모든 타석에서의 안타 및 모두 장타 달성. "소름"은 끝내기 만루홈런급.

2. 레이먼드 챈들러 - 4타수 4안타 / 단타 2개, 2루타 2개 / 타율 1.000, 장타율 1.500, 출루율 1.000, OPS 2.500
: 명불허전이라는 말을 보여주는 타격솜씨.

3. 콜린 덱스터 - 6타수 6안타 / 단타 4개, 2루타 2개 / 타율 1.000, 장타율 1.333, 출루율 1.000, OPS 2.333
: 정통 영국식 타법. 꾸준하고 장타율도 높은 신뢰할만한 타자. 캐릭터도 확실해서 인기가 높다.


3. 데이비드 리스 - 3타수 3안타 / 단타 2개, 2루타 1개 / 타율 1.000, 장타율 1.333, 출루율 1.000, OPS 2.333
: 타석수가 약간 작긴 하지만 기대되는 신인.

5. 딕 프란시스 - 4타수 4안타 / 단타 3개, 2루타 1개 / 타율 1.000, 장타율 1.250, 출루율 1.000, OPS 2.250
: 정교한 타자. 기본 이상의 타격솜씨를 갖춰 항상 믿을만 하다.

6. 애거서 크리스티 - 18타수 15안타 / 단타 12개, 2루타 3개, 내야땅볼 3개 / 타율 0.830, 장타율 1.000, 출루율 0.830, OPS 1.830
: 이전 시즌(?)에서 놀라운 타격을 보여준 탓에 이번 시즌에는 크게 눈에 띄진 않았으며 홈런이 없어 장타율이 낮은 것이 아쉽다. 하지만 좋은 타자.

7. 딕슨 카 - 5타수 4안타 / 단타 2개, 2루타 1개, 홈런 1개, 내야땅볼 1개 / 타율 0.800, 장타율 1.600, 출루율 0.800, OPS 2.400
: 거장다운 놀라운 타격솜씨. "모자수집광 사건" 이라는 내야땅볼이 없었다면 보다 상위권에 랭크되었을 것이다.

8. 모리스 르블랑 - 5타수 4안타 / 단타 2개, 2루타 2개, 내야땅볼 1개 / 타율 0.800, 장타율 1.200, 출루율 0.800, OPS 2.000
: 제 몫은 항상 하는 타자. 크게 타율을 까먹지도 않고 장타도 꼬박꼬박 쳐준다.

9. 미야베 미유키 - 4타수 3안타 / 단타 1개, 2루타 1개, 홈런 1개, 내야땅볼 1개 / 타율 0.750, 장타율 1.750, 출루율 0.750, OPS 2.500
: 내야땅볼이 하나 있지만 OPS가 높음으로 인해 자신의 가치를 증명받았다. "화차 (인생을 훔친 여자)"는 만루홈런.

10. 엘러리 퀸 - 8타수 6안타 / 단타 3개, 2루타 3개, 내야땅볼 2개 / 타율 0.750. 장타율 1.125, 출루율 0.750, OPS 1.875
:  "국명"과 "비극" 시리즈가 중심이었던 이전 시즌에 비해 "라이츠빌" 시리즈를 통하여 상당히 타율을 끌어올렸다.

2008/10/06

혼다 디자인 경영 - 이와쿠라 신야 외 / 박미옥 : 별점 1.5점

 

혼다 디자인 경영 - 4점
이와쿠라 신야.이와타니 마사키.나가사와 신야 지음, 박미옥 옮김/휴먼&북스

일본의 자동차 메이커인 혼다의 디자인 경영의 역사와 그 사례를 주로 혼다의 창업주인 혼다 소이치로와 디자이너인 이와쿠라를 중심으로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는 책입니다.

혼다의 다양한 차종과 그 디자인 철학, 그리고 “전략”이라고까지 부를 만한 디자인 중심 제품의 개발에 관련된 이야기들을 사례 중심으로 소개하기에 전략에 관련된 책임에도 불구하고 딱딱하지 않게,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제품이 상품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디자인이라는 중요한 명제를 수십년전부터 생각하고 제품에 도입했던 혼다사의 경영진에게는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고요.

하지만 구세대적인 사장의 절대 독재와 상명하복이 지나치게 좋은 쪽으로만 해석된 것은 불만이며, 너무 사례 위주이기 때문인지 실제 전략에 도입하기에는 부족한 부분도 많은 책이기도 합니다. 혼다사의 역대 차종들과 그 개발 과정을 접하는 재미 이외의 다른 실무적인 부분을 잡아내기는 어려웠거든요. 아무래도 재미와 실무라는 두마리 토끼를 결국 다 잡지 못한 것이 아닐까 싶네요.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약간의 참고와 약간의 재미를 지닌 킬링타임용으로 적당한 책이었습니다. 뭔가 가치있는 교양서를 읽고 있다는 위안을 삼기에는 부족했어요. 그다지 남는 것은 없었으니까요. 별점은 1.5점입니다. 혼다의 자동차 역사에 대해 궁금한 사람이 아니라면 구태여 찾아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2008/10/05

악마의 정원에서 - 죄악과 매혹으로 가득 찬 금기 음식의 역사 : 별점 3점

 

악마의 정원에서 - 6점
스튜어트 리 앨런 지음, 정미나 옮김/생각의나무

알라딘에서 30% 할인 이벤트를 하고 있기에 반쯤은 충동구매로 구입한 책입니다. 여러가지 역사적인 금기음식을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7대 죄악  - 색욕, 폭식, 오만, 나태, 탐욕, 불경, 분노-에 따라 구분하고 이들 음식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놓는 책으로 저자의 엄청나게 다양한 경험과 깊은 역사적 지식이 묻어나고 있습니다. 또한 금기음식에 대한 설명을 하며 당시 해당 음식의 레시피를 그 시대 그대로 전해주는 것도 나름 재미있었습니다. "카사노바의 맛있는 유혹" 과 비스무레하게요.
 
이러한 금기의 요지는 결국 흰둥이 기독교도들이나 지배계층들이 하위 계층이나 타 민족을 억압하고 탄압하고 잡아죽이고 멸시하기 위해 만든 금기들이라는 이야기인데,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이러한 억압과 모순의 잔인한 역사를 음식으로 재미있게 풀어내는 저자의 솜씨는 대단하며 내용도 상당히 재미있는 편입니다. 단순한 역사책이라기보다는 요리, 금기 음식과 실제적 역사를 결합한 조금 이색적인 책으로, 어떻게 보면 가장 잔인한 것이 인간이라는 것도 다시금 느끼게 해 주네요.

꽤 두꺼운 분량인데 인상적이었던 부분을 꼽아본다면 AIDS의 기원에 관련된 내용, 육식과 인간의 잔인성의 연관관계를 따지는 부분 (심지어는 최근의 포테이토 칩까지) 도 기억에 남으며, "흙을 먹는 행위" 의 타당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부분도 최근 아프리카의 "진흙쿠키"와 맞물려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임종 전날 미테랑 전 프랑스 대통령의 최후의 만찬에 관련된 내용이었습니다. 한 시대의 거두가 죽기 직전에 추구한 것이 금기음식이었다는 것이 너무 아이러니컬 했거든요.

그러나 저자가 다양한 음식 기행을 통해 방대한 지식을 축적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나, 출신 배경 탓인지 대부분의 금기음식에 대한 내용이 중세시대와 미국 개척시대에 한정되고 있다는 것은 아쉬운 부분입니다. 중세시대에 관련된 내용이 이 방대한 책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 그때는 어차피 교황과 교회가 인간위에 군림하던 시기이기에 금기가 많았던 것은 너무나 당연해 보이며, 때문에 수많은 금기음식과 그 배경에 관련된 이야기가 결국 동어반복이 되어 좀 지루한 맛이 없잖아 있긴 합니다.

어쨌건 결론은 추천입니다만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책이긴 할 것 같습니다. 저야 30% 할인된 가격에 구매했으니 크게 아쉽지는 않네요. 개인적 별점은 3점입니다.

2008/10/04

에도가와 란포 전단편집 3 기괴환상 - 에도가와 란포 / 김은희 : 별점 3점

에도가와 란포 전단편집 3 - 6점
에도가와 란포 지음, 김은희 옮김/두드림

이 책은 국내 굴지의 추리 동호인 커뮤니티인 하우미스테리의 이벤트에 응모해 당첨된 책입니다. 이 자리를 빌어 하우미스테리 운영진여러분과 도서출판 두드림 관계자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이전에 구입해서 읽었던 전단편집 1편인 본격추리 1과 동일한 포맷과 기획의, 초기 에도가와 란포의 단편을 모아놓은 단편집으로, 제목 그대로 기괴환상이라는 주제에 맞는 단편만 골라 모아놓은 책입니다. 전부 22편의 작품이 실려 있습니다.
하지만 미완성 작품인 "공기사나이"와 "악령" 2편이 거의 100여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으로 실려있는 것은 이 기획이 에도가와 란포의 단편 모두를 소개하자는 취지라고는 하더라도 솔직히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었으며, "붉은 방"과 "인간의자", 그리고 "천의 얼굴을 가진 배우" 3편은 에도가와 란포가 후기에서도 직접 언급하듯이 "여태까지 이야기는 사실은 거짓말이었다며 빠져나가는" 류의 작품으로 설정이나 전개는 좋았지만 결말의 완성도가 아주 높다고 보기는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그 이외의 작품들은 역시 명불허전이랄까, 거장 에도가와 란포의 상상력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좋은 작품들이라 생각됩니다. 그 중에서도 개인적인 베스트는 기괴하고 음울한 상상력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최고 걸작 "고구마벌레" 를 꼽고 싶네요. 전쟁 직후의 참혹한 상황과 인간의 잔인함을 특유의 그로테스크한 감각을 마음껏 펼쳐 묘사한 작품이거든요.
시대를 앞서간 비쥬얼적 감각을 보여주는 "백일몽"과 "화성의 운하", "거울지옥" 도 좋은 작품으로 광기어린 상상을 표현하는 묘사가 굉장히 디테일하면서도 적나라한 것이 란포 월드 그 자체였습니다. 한국 추리소설가 김래성씨의 단편집 "비밀의 문"에 엄청난 영향을 준 것이 확실하다는 생각 역시 갖게 되었고요.
추리적 성향이 가득 묻어나는 "쌍생아", "메라 박사"와 "벌레"도 추리소설가로서의 에도가와 란포의 내공을 보여주는 작품이라 생각됩니다. "메라박사"의 기발한 원격조종트릭은 다소 환상적인 성향에 기대고 있지만 "쌍생아"의 지문 트릭은 그럴듯 해서 정통 추리로 보아도 손색없는 작품으로 보이네요.

좀 섬뜩하고 기괴한 이러한 작품군이 취향은 아니었으며 지금 읽기에는 좀 낡아보이는 감도 없잖아 있지만, 에도가와 란포의 명성에 걸맞는 일정 수준 이상의 완성도를 보여주는 작품이 많아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에도가와 란포의 후기도 자료적 가치가 충분하고요. 약간의 단점과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별점 3점은 충분한 고전이라 생각됩니다.

덧붙이자면, "고구마벌레"와 "화성의 운하", "거울지옥", "벌레"라는 기괴한 상상력의 극단을 달리는 4작품을 모아 "란포지옥"이라는 영화가 제작된 모양인데 영화에 정말 어울리는 상상력이라 생각되는 만큼 영화도 기대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