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을 뒤흔든 11가지 연애사건 - 이철 지음/다산초당(다산북스) |
이 책은 전에 읽었던 "조선을 뒤흔든 16가지 살인사건"과 같은 시리즈로 제목 그대로 일제 강점기 시대를 중심으로 한 당시 조선의 스캔들(?) 11개를 풀어놓은 책입니다. 그야말로 "경성스캔들" 이죠. "조선을 뒤흔든 16가지 살인사건"은 읽고나서 실망이 컸지만 이 책은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두 책의 차이점은 정말로 "충격적이고 몰랐던" 역사를 얼마나 디테일하게 설명하면서도 쉽고 이해하기 쉽게 묘사했는지의 여부 같습니다.
"조선을..."은 일단 읽는 것 자체가 힘들 뿐더러 너무 주제와 동떨어진 이야기가 많아서 실망스러웠던 것에 반해 이 책은 물론 제목과는 다르게 당대에 그다지 충격을 전해주지 않은 스캔들도 몇건 다루고 있긴 하지만 그러한 이야기들도 드라마틱하다는 점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이야기들이기에 모든 에피소드가 기대했던 것 만큼의 충분한 재미를 전해 주고 있다는 것이 차이점입니다.
또한 11개의 스캔들 중 익히 알고 있었던 사건이 윤심덕과 김우진의 이른바 "사의 찬미" 사건이나 여류화가 나혜석의 사건 두가지 밖에 없었다는 것도 책의 가치를 높이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이 두 사건 역시 알고 있는 내용보다 훨씬 자세하게, 당시의 자료를 바탕으로 설명하고 있어서 지루한 맛은 전혀 없었다는 것도 탁월한 부분이죠.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사건은 친일파 대부호의 아들 장병천과 기생 강명화의 정사사건이었습니다. 장병천-강명화 정사사건은 친일파 대부호의 아들과 기생이라는, 그야말로 사랑하는 사이지만 신분, 재력의 차이로 비극으로 끝난 너무나 순정만화같고 일일 드라마 같은 이야기로 이런 순정파적이고 비극적인 로맨스가 1920년대에 존재했었다는 점과 실제로 너무나 유명하여 여러권의 소설과 영화로도 가공되었을 만큼의 충격을 당시에 가져다 주었다는 것이 놀라웠습니다. 이렇게 유명한 이야기가 지금은 전혀 전해지지 않는 것도 의문이 들었고요. 아마도 해방 후 국무총리까지 역임했던 장병천 아버지의 형제인 장택상씨의 권세로 사건을 은폐한게 아닌가 싶기도 하더군요. 이런 사소한 부분에서도 드러나는 친일파들의 행각은 씁쓸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당대 매스컴들과 이른바 "지식인" 들의 편견과 비뚤어진 시각을 보여주는 김명순 사건과 독살미인 김정필 사건도 흥미로왔으며, 유명 공산주의자들과 혁명가들이 다수 등장하는 대하 서사시와도 같은 "제4부 - 경성을 붉은색으로 물들인 혁명적 연애 사건"의 이야기들도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공산주의 혁명가들의 불꽃같은 삶과 격동의 시대가 잘 표현되어 있었기 때문이죠. 그야말로 조선과 중국, 소련, 해방 후 북한을 넘나드는 거대한 스케일에 정말로 조선 해방과 민족을 위해 헌신했던 그들의 삶, 체포와 탈옥, 탈출, 고문 등의 고난의 세월 및 해방 후 공산주의자로 남한에서는 매도되었다는 점과 북한에서는 대부분 숙청되었다는 비극적 종말까지 모두 갖춘 극적인 이야기라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주었습니다.
그 외에도 당시의 여러 정사사건, 자유 연애주의자들과 신여성들에 대한 이야기, 동성애자 자살 사건 등 흥미로운 주제가 한 가득입니다. 목차만 읽어도 읽고 싶은 생각이 저절로 들 정도로 말이죠.
역시나 "경성탐정록" 자료로서 구입한 책이었지만 의외의 재미와 새로운 역사를 알게되는 재미가 쏠쏠하여 횡재한 기분까지 드는 책으로 별점은 5점입니다. 재미와 더불어 당대의 여러 사료와 문헌을 다수 인용하고 있기에 자료적 가치까지 충분했으니까요. 일제 강점기 시대의 또다른 역사에 대해 궁금하신 분들이라면 꼭 읽어보시길 권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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