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주신 분들께 안내드립니다.

2019/11/30

드라큘라 그의 이야기 - 레이몬드 맥널리.라두 플로레스쿠 / 하연희 : 별점 3점

드라큘라 그의 이야기 - 6점
레이몬드 맥널리.라두 플로레스쿠 지음, 하연희 옮김/루비박스

드라큘라라는 컨텐츠의 실체에 대해 다루는 책입니다.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흡혈귀 드라큘라의 실제 모델인 루마니아 왈라키아 공국의 군주 드라큘라의 자취를 추적해 나가는 전반부, 그리고 브람스토커를 중심으로 흡혈귀와 드라큘라 컨텐츠에 대해 다루는 후반부로 나뉩니다.

전반부에서는 실제 왈라키아 공국을 방문하여 현지 답사도 진행하고, 거의 남아있지는 않지만 유적의 자취도 탐색하는 노력에 더해 방대한 당시 사료들을 조사하여 드라큘라에 대해 상세하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 깊이와 디테일은 가히 최고 수준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지요. 잔인무도했다는 몇 가지 에피소드들만 단편적으로 알고 있었는데, 일대기 자체가 아주 흥미로운 인물이더라고요. 그래서 아주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간략하게 그의 일대기를 소개하자면, 드라큘라는 어린 시절 발칸 반도를 집어심킨 오스만-투르크 제국에 볼모로 잡혀가 어린 시절을 보냅니다. 그 와중에 형은 산채로 생매장 당하는 등의 아픔도 겪고요. 몇 년 뒤 탈출하여 트란실바니아의 후냐디의 도움으로 왈라키아 군주 자리에 오른 뒤, 동맹인 트란실바니아의 색슨족들을 가혹하게 제압합니다. 왈라키아 인들을 위해서였지만 이 때 벌인 잔혹한 학살 때문에 생긴 악명이 그를 지금과 같은 불멸의 존재로 만들게 되었죠. 이후에는 투르크와 큰 전쟁을 벌입니다. 다뉴브에서 대승을 거두지만 병력 규모 면에서 현격한 차이가 났던 탓에 험준한 산림을 이용한 유격전, 전염병을 이용한 세균전과 보급이 불가능하게 만드는 청야전을 펼칠 수 밖에 없었고, 후퇴에 후퇴를 거듭한 끝에 이웃나라 헝가리로 동맹을 요청하러 탈출하지만 무려 12년간 헝가리 왕국의 포로로 세월을 보냅니다. 헝가리 왕국은 꼭두각시 군주를 통해 왈라키아를 지배하에 두고, 투르크와 휴전을 통해 평화를 강구하려는 속셈이었을거에요.헝가리에서 러시아 정교에서 카톨릭으로 개종하는 등의 우여곡절을 겪은 드라큘라는 투르크의 지원을 받는 왈라키아 군주 바사라브 3세를 쓰러트리기 위해 출진하여 전투를 벌이다가 장렬하게 전사하며 삶을 마칩니다.

보시다시피 일생 자체가 포로배신, 전쟁으로 이루어진 인물입니다. 후대에 드라큘라로 알려지게 된 이유인 잔혹한 통치 방법도 이런 삶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공포로 충성심을 잡아두지 않으면 자리가 위태롭다고 여긴 듯 합니다. 그래서인지 왈라키아 주민들에게는 비교적 괜찮은 군주였다는군요 그 유명한 말뚝형의 대상은 주로 언제든 반기를 들 수 있는 지역 유지인 보야르와 그 일당들, 왈라키아에서 새력을 펼치는 게르만계, 그리고 당연히 오스만 제국과 이웃 나라의 병사들과 포로들 등이었다고 하니까요. 자신에게 충성하는 주민들만 평양에 모아놓은 북한 정권을 보는 듯 합니다. 덕분에 악명에도 불구하고 생전에 군주 자리를 유지할 수 있었겠지요.
말뚝형으로 대표되는 잔혹함에 대한 상세한 설명도 가득합니다. 터번을 벗지 않으려는 오스만 제국 사신의 머리에 터번째 못을 박았다던가, 말뚝형에 꽂힌 시체 냄새가 지독하다고 불평한 귀족을 가장 높은 말뚝에 꽂아 세워 놓았다던가 하는 이야기들입니다. 전설인줄로만 알았던 황당한 이야기가 많은데 출처도 명확히 소개해주고 있어서 놀랐습니다. 아무리 전설이라도 당대 문헌에 이 정도로 많이 소개되었다면 꽤나 신빙성이 높은 이야기들일테니까요. 과연 후대에 잔혹한 흡혈귀의 모델이 될 법한 인물이구나 싶더라고요.
그런데 조금 의외였던건 영화와는 다르게 드라큘라는 엄청나게 독실한 신자였다는 겁니다. 수도원을 세워 헌금을 하고, 죽는 순간에 진실로 참회하면 모든 죄가 사하여진다고 믿었다는데 솔직히 가당치도 않지요. 그렇다면 수도사까지 말뚝형에 처한건 또 왜였는지 궁금하네요.

이러한 드라큘라의 일대기와 발자취에 대한 이야기를 마무리한 뒤, 흡혈귀에 대한 유럽의 전설과 민담, 엘리자베스 바토리 백작부인의 무서운 이야기 등을 거쳐 본격적인 흡혈귀 문학에 대해 소개해주는 후반부가 이어집니다. 내용의 핵심은 브람스토커와 그의 대표작 <<드라큘라>>이기는 한데, 그 외에도 조세프 셰리단 르 파누의 <<카르밀라>>라는 흡혈귀 이야기의 고전 걸작, <<프랑켄슈타인>> 이야기의 탄생과 폴리도리, 뒤마, 플랑쉬 등이 발표한 다양한 흡혈귀 이야기도 연대별로 소개해주고 있습니다. <<카르밀라>>는 얼마전 읽었던 <<요녀전설>>과도 이어진다는 점에서 흥미로왔으며, 브람스토커의 작품도 그냥 하늘에서 뚝 떨어진건 아니고 다양한 작품들에 영향을 받았다는게 인상적이었어요. 다른 작품들과는 다르게 '드라큘라'라는 실존 인물을 주인공으로 재창작해 낸 아이디어 덕분에 불멸의 명성을 얻은 듯 한데, 남들과 다른 아이디어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깨닫게 해 줍니다. 브람스토커 이후의 다양한 흡혈귀 관련 컨텐츠 소개는 현대 컨텐츠까지 쭈욱 계속되고요.
재미는 물론 어떻게 '흡혈귀'가 호러 소설의 소재로 등장하여 널리 퍼졌는지를 쉽게 알 수 있는 보기드문 자료라 아주 좋았습니다. 특히 잘 알려져있지 않은 관련 컨텐츠 소개가 소설 뿐 아니라 영화에 이르기까지 폭 넓고 풍성해서 마음에 쏙 들었어요.

책의 마지막은 부록입니다. 지도를 비롯한 드라큘라의 일대기 및 관련된 당대 자료들의 번역본, 그리고 흡혈귀 관련 영화 소개 등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참고 문헌 목록까지 합치면 부록의 분량이 100페이지 정도나 될 정도로 풍성하며, 그 수준도 깊고 방대하여 빼 놓기 힘들 정도의 귀한 자료임에는 분명합니다. 왜 부록으로 뺐는지 잘 모르겠네요.

그래서 별점은 3점. 흡혈귀 컨텐츠에 대해 궁금하시다면 꼭 읽어봐야 할, 자료적 가치가 높은 서적입니다. 도판도 아주 충실하니까요. 장르 문학 매니아로서 추천하지 않을 수 없네요. 장르 문학, 그 중에서도 호러, 또 그 중에서도 흡혈귀 관련 장르 애호가시라면 꼭 한 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2019/11/29

회색 인간 - 김동식 : 별점 2점


전문적인 글쓰기 교육을 받지 않은 작가가 오늘의 유머 사이트에 꾸준히 업로드한 글이 인기를 얻어 출간된 작품. 과거 하이텔 시기에나 존재했을 법한 이야기의 재림이네요. 올린 글의 분량만 따지만 거의 <<태백산맥>>에 육박한다니 그 열정과 노력은 참으로 대단합니다.
그러나 하이텔 시기 인기를 끌었던 <<퇴마록>> 등과는 명확히 다른 점은, 굉장히 짧은 꽁트, 아니 쇼트쇼트라고 불러도 무방한 이야기들이 표제작을 포함하여 24편이 수록된 단편집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솔직히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대부분의 이야기가 한 편의 이야기로의 완성도가 부족하거든요. 게다가 모든 이야기들이 대체로 비슷하기도 하고요. 기묘한 설정, 그리고 그 기묘한 설정 때문에 인간들의 집단 이기주의나 탐욕이 생겨나 결국 파국을 초래한다는 결말의 이야기가 많기 때문입니다.
기묘한 설정이라도 재미있다면 괜찮지만, 그냥 기묘하다는 상황에만 매몰되어버린 이야기들도 눈에 많이 뜨입니다. 건물이 급작스럽게 식인 괴물로 변하여 밖의 사람들을 잡아먹는다는 <<식인 빌딩>>, 인간이 녹았다가 다시 돌아오면 완벽한 컨디션이 된다는 기적의 물 정화수가 대유행한다는 <<흐르는 물이 되어>>가 대표적이에요.
또 기묘한 설정에 기댈 뿐, 이야기는 예상대로 흘러가고 반전도 뻔한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아우팅>>에서 인류 모두가 인조인간이라는게 밝혀지는 장면이 대표적입니다. 차라리 연구소 경비병들만 진짜 인간이었다는 반전이라도 넣어 주었어야 했어요. 그나마 조금 신선한 반전들도 대체로 기존 상식이나 그때까지의 현실을 반대로 뒤집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괜찮아 보여도 읽으면 읽을 수록 식상해 질 수 밖에 없어요. <<영원히 늙지 않는 인간들>>에서 나이를 먹지 않게 만드는 영원의 구가 사실은 저주였다던가, <<공 박사의 좀비 바이러스>>에서 좀비 바이러스는 무적의 재생력을 안겨다주는 선물로 사람들은 다시 인간이 되려 하지 않는다던가 하는 식으로요. <<피노키오의 꿈>>에서 피노키오의 소원이 인간이 되는게 아니라 건강한 소나무가 되는 것이었다는 결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래도 반전이라도 있는 이야기는 조금 나은 편입니다. 특별한 반전 없이 인간미, 감동 쪽에 방점을 찍으려 노력한 이야기들은 더 엉망이에요. 표제작인 <<회색 인간>>이 대표적입니다. 1만여 명의 사람들이 갑자기 납치되어 땅을 파는 가혹한 노동에 시달립니다. 먹을게 부족해서 문화는 사치였지만, 어느날 노래를 부르고, 그림을 그리고, 소설을 쓰는 사람들이 나타나 문화가 생겨난다는 결말입니다. 문화가 사라지면 인간도 아니라는 주제인데, 솔직히 억지스럽죠. 이런 상황이라면 집단이 생기고, 자체적인 법률이 생기는게 타당한데 그런 내용은 전혀 없이 그냥 살기 힘든 상황만 길게 묘사되는 것도 지루하고요. 가혹한 노동 환경에서도 추구하는 문화에 대한 욕구와 인간미는 <<도박묵시록 카이지 외전 반장의 일일 외출록>> 에서 훨씬 더 재미있게 잘 그려졌다 생각됩니다. 손가락 여섯개인 신인류를 낳게 만드는 비정상적인 계획이 비선 실세의 농간으로 밝혀진 후, 손가락 여섯개인 아이들을 차별하지 말자는 생각이 모든 차별을 없앤다는 꿈같은 이야기도 황당하기 그지 없고요.
괴물이지만 또 인간이기도 한 존재에 대한 이야기처럼 다른 작품들에서 흔히 접했었던 설정도 많습니다. 어설픈 풍자, 별 것 아닌 내용을 길게 늘려쓴 이야기도 눈에 거슬렸어요.

하지만 인터넷에서 널리 인기를 끌었던 이야기답게 반짝이는 부분도 없지는 않습니다. 특히 시작 부분의 기묘한 설정이 돋보이는 이야기들이 많은 편이에요. 무인도에 표류한 생존자들이 얼마 안 되는 식량을 노인에게 나누어주기를 거부하자 노인이 자신이 부자라면서 통조림을 500만원에 사겠다고 제의하는 데에서 시작하는 <<무인도의 부자 노인>>, 신에게 소원을 빌 당사자로 선택되는 개인에게 닥치는 집단 광기를 설득력있게 보여준 <<신의 소원>>, 노인을 가상 세계에 모신다는 발상이 그럴싸 했던 <<디지털 고려장>> 등이 그러합니다. 문제는 이후의 전개가 뻔하고 결말의 반전이 억지스럽거나 작위적이거나 아예 없다는 단점은 그대로라는 점이지요.

다행히 설정도 좋고, 전개도 괜찮으며 결말과 반전도 완성도 높은 보석과도 같은 작품이 있습니다. 바로 <<인간 재활용>> 입니다. 돈만을 위해 살아온 두석구가 딸이 교통사고로 죽자, 13일 내 시체 세 구를 섞어 넣으면 한 명이 부활한다는 주술을 시도한다는 내용이지요. 단, 생존은 랜덤이라 딸이 살아나지 않는다는 설정이지요. 때문에 두석구가 전 재산을 투자해서 13일 동안 이 주술을 계속 시도할 거라는 예상은 거의 그대로입니다. 그런데 영혼들이 살아남기 위해 싸워야 하고, 영혼들은 두석구의 딸 부터 영혼을 찢어발긴다는 마지막 반전이 아주 기가 막혔습니다. 두석구는 딸이 살아날 때 까지 주술을 시도할테니 영혼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딸부터 처치하는건 당연하니까요. 이를 고통스러워 하는 딸의 마지막 대사도 좋았고요. 쇼트쇼트로는 그야말로 완벽했던 작품입니다. 수록작 중에서 베스트입니다. 이 정도면 호시 신이치의 대표작과도 어깨를 나란히 할 만 합니다.
<<보물은 쓸 줄 아는 사람에게 주어져야 한다>>도 평균 이상입니다. 정대리가 가진 보물인 쇠구슬은 손을 대면 비가 오게 만듭니다. 김대리는 이를 훔쳐내는데 성공하지만 그가 아무리 손을 대도 비는 오지 않습니다. 아내 역시 흐려지기만 할 뿐이고요. 그런데 아기가 손을 대자 지진이 발생하여 결국 집이 무너지고 맙니다. 원리는 비가 오는게 아니라 자기가 좋아하는 날이 실현된다는 이야기지요. 기묘한 설정도 좋지만 제 생각대로 전개되지 않았던 덕분에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세 모녀, 한 사내와 협곡에 갇힌 김남우가 극심한 굶주림 끝에 식량으로 희생될 사람을 뽑는 제비뽑기에 참여하는 <<협곡에서의 식인>>도 기묘한 맛 측면에서는 꽤 괜찮았던 이야기입니다. 김남우의 편인줄 알았던 사내가 놀랍게도 급작스럽게 김남우를 살해하는데, 알고보니 그들 4명은 모두 가족이었던 것입니다. 김남우가 가족을 경계하고 오히려 위협할까 두려워 남인척 하고 김남우 편에 섰다가 배신을 했다는 이야기지요. 살아난 가족이 에이즈 양성 판정을 받는다는 마지막 한 방도 묵직합니다. 아쉬운건 에이즈가 지금은 그렇게 위험한 병이 아니라는 인식이 널리 퍼졌다는 점이지요. 좀 더 '천벌'에 가까운 병에 걸리는게 나았을 거에요. 그런 면에서는 <<살인단백질 이야기>>에 나왔던 프리온을 활용한 병이 어땠을까 싶네요. 식인으로 전염되고, 치사율 100%이니까요.
<<지옥으로 간 사이비 교주>>도 반전이 좋습니다. 사이비 종교 교주 두석구가 지옥에서 악마들의 부탁으로 죄인들에게 환생을 약속하는 환생교를 만들어 포교합니다. 그들에게 희망을 주어 통제를 잘 하려는 악마들의 계획으로 생각했지요. 그러나 1년 뒤, 절대자가 강림하여 두석구를 찢어 발기고 죄인들의 희망을 끝냅니다. 죄인들에게 어설프게 희망을 주었다가 큰 고통을 주기 위한 것이었다는 결말로 아주아주 그럴 듯 했습니다.

결론내리자면 전체 평균 별점은 2점. 24편의 이야기 중 3~4편 정도가 중간 수준, 3편 정도가 중간 이상, 1편이 수작이고 나머지가 모두 기대 이하이니 이 정도가 적당하겠죠. 반 타작도 하지 못한 셈이니 전반적으로 좋은 단편집이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다음 권은 읽어볼 것 같지는 않군요. 
그래도 일하면서, 전문적인 교육도 받지 않고 이런 이야기를 계속 창작하여 발표한 작가의 노력에는 경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등단도 한 만큼, 괜찮은 아이디어가 있다면 다음에는 보다 완성도있게 다듬어 발표해 주기를 바랍니다.

2019/11/27

오늘회 참다랑어 대뱃살회, 주문해보았다.

참치는 사람이 살아가는 필수 영양소 중 하나죠. 지난 주말 급작스럽게 '참치분'이 부족해서 이것저것 조사해 보았습니다. 동네에 단 한 곳 있는 참치 횟집은 제일 저렴한 셋트 바로 위 셋트 메뉴가 55,000원이더군요. 와이프와 둘이서 가면 십만원이 넘는데다가, 최근에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무한 리필 참치 회는 먹는데 한계가 있어서 선뜻 내키지가 않더라고요. 맛있는 부위만 조금 저렴하게, 적당한 양만 먹으면 딱 좋겠다 싶었거든요. 그래서 찾다가 발견하게 '오늘회'라는 사이트의 '참다랑어 대뱃살회' 입니다.

가격은 59,900원으로 배송비까지하면 6만원을 넘어가지만 참치 횟집의 2인분 가격보다는 싸고, 사진만 보면 퀄리티가 무척 괜찮아 보여서 굉장히 땡기더라고요. 그래서 주문해보았습니다.

일단 배송은 합격, 정말로 당일 배송이 되더군요. 패키지도 튼튼하고 깔끔한게 마음에 들었고요.
배달된 회를 패키지에서 꺼내어 나름 플레이팅(?) 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어럽쇼? 결과물은 좀 실망스럽습니다.
우선, 사이트에서는 소개되지도 않은 아까미가 절반 이상입니다. 사이트에서는 대배꼽살, 대뱃살, 중간뱃살만 광고하고 있는데 말이지요. 이들이 없는건 아니지만 절대적으로 그 비중이 적습니다. 대뱃살 종류만 먹으면 너무 느끼할 수 있고, 참다랑어의 아까미가 굉장히 저렴하다고 할 수야 없지만 이래서야 본말전도, 홍보물이나 제품명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결과물이에요. 이렇게나 많이 넣어 줄거면 즈케(간장 절임)라도 좀 섞어주는게 나았을겁니다.
또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회를 길게 썰어 놓은 것도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아까미는 저 절반 정도 사이즈가 적당했어요. 길게 썰을거라면 얇게라도 썰던가...
다른 구성물들도 부실합니다. 무엇보다도 무순이 너무 적은게 불만이에요. 최소한 2~3배는 더 넣어 주었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와사비, 간장도 양이 넉넉하다고 할 수 없고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편하게 집에서 배달시켜 먹었다는 것, 그리고 참치의 질이나 해동 상태 등은 꽤 우수합니다. 그러나 앞서 말씀드린 단점들 때문에 도저히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네요. 최소한 59,900원짜리라고는 생각되지는 않았습니다.

다음에 참치분이 부족할 때에는 튜나 팩토리 같은 참치 전문 쇼핑몰을 이용해 보아야겠습니다.

2019/11/24

엘데가인 - 인도하는 신 1~3 - 츠부라 히데토모 : 별점 2.5점


아먀야데와 루아이소테라는 두 제국이 100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는 전쟁을 벌이고 있는, 날개달린 용족이 인간을 지배하는 세계. 소년 장은 우연히 루아이소테의 비행정에서 떨어진 류미르라는 소녀를 만난다. 그녀는 '엘데가인'의 비밀을 알고 있는 불사신 소녀로, 스스로 세계의 지배자가 되려고 하는 루아이소테의 가로우즈 준장이 노리는 탓에 다시 납치되어 모진 고초를 겪게 되나 장의 활약으로 구조된다.
그러나 엘데가인의 기동을 멈추기 위해 찾아간 죽음의 섬에서 결국 장은 죽고, 그녀는 가로우즈에 흡수되고 만다. 강대한 힘을 손에 넣은 가로우즈는 세계를 멸망시키고 모든 동식물을 스스로 만들어내어 새 시대의 창조주가 되려 한다. 용족이 초능력으로 가로우즈의 공격을 필사적으로 막아내는 상황에서 장은 류미르의 아버지의 도움으로 재생되어 가로우즈와 최후의 결전을 벌이는데....


츠부라 히데토모의 판타지 액션 만화. 지금 국내에서는 잊혀진 전설의, 비운의 명작 쯤으로 추억되고 있지요. 덕분에 절판된 국내판 해적판의 중고가가 엄청난 가격으로 형성되어 있기도 하고요. <<우주 영웅 전설>>과 <<사일런트 메비우스>> 정도만이 그나마 이름을 남긴 가도카와 계열의 월간 코믹 COMP에 연재되었던 작품으로 고등학생 때인가.... 강남 고속 터미널에 있었던 일본 서적 판매 서점에서 단행본으로 구입해 보았던 책인데, 우연찮게 다시 보게 되어 리뷰를 남깁니다.

그런데, 솔직히 다시 보니 '잊혀진 비운의 명작'은 절대 아닙니다. 전형적인 '보이 미트 어 걸' 이야기의 재탕이니까요. 게다가 <<라퓨타>>나 <<미래소년 코난>>의 영향을 굉장히 많이 받기도 했고요. 여주인공 류미르가 강력한 힘을 가진 인간형 로봇과 함께 엮여 있으며, 그녀가 기묘한 최종 병기의 비밀을 알고 있다는 설정은 판박이라고 해도 무방합니다. 그 외에도 현재의 세계는 과거의 고대 문명이 멸망한 뒤의 세계라는 설정이라던가, 판타지와 SF가 기묘하게 섞여 있는 묘사들은 '미야자키 월드'의 한 부분이 아닌가 생각될 정도에요. 지배자인 '흑룡'의 생각과는 다르게 이 힘을 자신이 손에 넣어 세계를 자기 뜻대로 하려는 가로우즈 준장 역시 '무스카'와 크게 다르지 않은 전형적인 미야자키 악당이지요.
물론 미야자키 월드와의 분명한 차이점은 존재합니다. 가장 큰 특징은 주인공 장이 '순동술'이라는 기술을 쓸 수 있는 초능력자로 액션에 많은 비중을 두고 있다는 점입니다. 장의 형인 소시유와 시안 등 술사 동료들, 가로우스와 루아이소테 제국의 술사들 역시 마찬가지고요. 그러나 초능력자들의 대결은 <<바벨 2세>>이후 <<초인 로크>> 등 수많은 작품에서 반복된 것이라 특별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몇몇 장면에서는 당대에 큰 충격을 안겨다주었던 <<아키라>>의 영향도 강하게 느껴집니다. 대표적인건 가로우즈가 마지막에 융합한 류미르와 분리되며 '칩'을 잃은 뒤 살아있는 고깃덩어리같은 형태로 폭주하는 장면이에요.
이야기도 많이 허무합니다. 달랑 3권 분량인데, 1권과 2권에서는 장이 납치된 류미르를 구한다, 다시 류미르가 납치된다, 그녀를 다시 구해온다, 다시 납치된다...만 반복되며 3권에서는 가로우즈와 장이 파워업하여 일기토를 벌이는 내용이 전부라 밀도가 높다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독특한 세계관과 매력적인 술사들의 개성을 모두 다 잘 살렸다고 보기도 어렵고요.

그래도 지금도 가끔 회자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인상적인 작화 때문일 겁니다. 꼼꼼한 펜터치가 돋보이는 정성 가득한 아날로그 시절의 작화로 작가의 노력이 여실히 드러납니다. 이 작화로 그려낸 액션 장면이 특히 인상적이에요. 정말 손으로 한 땀 한 땀 그려내고 있거든요.
주요 등장인물 및 몬스터까지 아우르는 캐릭터 디자인도 좋습니다. 무엇보다도 류미르가 굉장히 귀엽게 묘사되어 읽는 재미를 더해주고요. 류미르의 매력이 작품의 절반 이상은 충분히 차지한다고 생각되네요. 솔직히 3권에서 장이 파워업한 뒤 급작스럽게 성장한 외모는 전혀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요.

지금 읽기에는 많이 낡았고, 시대를 뛰어넘을만한 특별한 무언가가 있는 작품은 아닙니다. 신인급 작가가 정성들여 그린 작화와 통통 튀는 매력이 넘치는 등장인물들, 화려한 액션 모두 평균 이상이지만 기본적인 이야기에서 참신함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지요. 시대에 이름을 남기는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새삼 느끼게 해 주네요.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C.M.B. 박물관 사건목록(씨엠비) 33 - 카토우 모토히로 : 별점 2점

[고화질] C.M.B. 박물관 사건목록(씨엠비) 33 - 4점
카토우 모토히로 지음/학산문화사(만화)

한동안 출간 자체를 모르고 살다가 전자책으로 출간된 덕분에 읽게 되었습니다. 한 때는 국내 출간된 모든 추리 만화를 다 소장하겠다!는 꿈을 가졌던 적도 있었는데, 이제는 보던 시리즈도 놓치는 상황이 되어 버렸네요....

어쨌건 이전에 읽었던 두 권 모두 평균 수준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권인 33권은 개인적으로는 기대 이하였습니다. 그럭저럭 재미있는 이야기도 있기는 한데, 추리적으로는 너무나 별로이기 때문입니다. 억지스러운걸 넘어서 솔직히 말도 안되는 수준의 트릭이 남발되어 실망스러웠어요.

그래서 별점은 2점. 이번 권은 딱히 권해드리고 싶지 않네요. 이야기 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은 참고 부탁드립니다.

<<움직이는 바위>>
게임을 좋아하는 하나오카는 문부과학성 관료의 딸과 결혼하여 출셋길이 열리지만, 처가의 엄격함 때문에 게임이 금지된다. 그래서 친구들과 1년에 두 번, 온천에서 2박 3일 게임을 즐기기로 타협하고 시골 온천으로 향한다. 친구들과 게임, 맥주를 즐기던 그곳에서 전설의 '움직이는 바위'가 나타나고, 움직이는 바위를 보면 죽는다는 전설과 비슷하게 온천 여관 주인이 시체로 발견된다. 하나오카의 친구인 회사원 겐부 유리가 용의자로 몰리고, 마침 다른 조사차 현장에 있던 신라가 전설의 정체와 진상을 파헤친다.

'움직이는 바위'에 대한 이야기는 꽤 재미있었습니다. 절벽에서 떨어진 낙석에 형광 성분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돌이 떨어진 후 남겨진 자국에 빛나서 사람들이 바위가 움직인거라 착각했다는게 진상이지요. 이를 확인하기 위해 조사하던 사람 몇 명이 절벽에서 떨어져 죽은 사고가 있었으리라는 추론은 합리적입니다. 그래서 현재의 전설이 고착화되었다는 말이지요. 전설과 토속 신앙은 무언가 이유, 근거가 있다는 이론에 기반한 이야기인데 그런대로 설득력이 높습니다.

그러나 사건 이야기는 영 아닙니다. 불륜을 온천 여관 주인에게 들킨 하나오카가 그녀를 살해하고, 죄를 겐부에게 뒤집어 씌운게 진상인데 설득력이 너무 낮아요. 하나오카가 겐부에게 죄를 뒤집어 씌운건 겐부도 불륜을 알고 협박했다고 착각했기 때문인데, 실제로 그랬다면 범인 누명을 쓴 순간 하나오카도 수상하다고 이야기했을게 뻔하잖아요. 자기에게 누명을 씌울 만한 사람이 그 자리에 있었다면, 그 사람이 누군지 경찰에게 말하는게 당연하지요. 또 실제로 누명을 쓰고 체포되었다 한 들, 협박이 멈출리도 없어보이고요.

친구 네 명이 같이 이동하는 중에, '움직이는 바위'를 보면 죽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앞만 보고' 가는 상황을 이용하여 혼자 살짝 빠져나와 여관 주인을 죽였다는 트릭도 설득력이 없기는 매한가지에요. 달랑 네 명이 움직이는데 아무리 살짝 빠져나갔다 해도 아예 그 상황을 모른다는건 말도 안됩니다. 앞만 본다고 해서 말을 하지 않는 것도 아니니까요.
그래서 별점은 2점. 시골 마을의 전설을 풀어낸 전개는 괜찮았지만 추리적으로는 도저히 점수를 줄 수 없는 이야기였습니다.

<<읽지 못한 문학전집>>
남편과 사별한 후 하와이로 장기 여행을 떠난 요네쿠라 리츠코. 그녀의 여행 목적은 읽지 못한 문학 전집을 모두 읽어버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여행 첫 날, 발코니에서 책을 읽던 그녀는 아래 방갈로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을 목격하고 경찰에 신고하지만 시체를 발견하지 못한 경찰은 수사를 더 이상 진행하지 않는다.

요네쿠라 리츠코가 문학 전집을 읽지 않은 이유, 그건 그게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걸 깨닫고 남편과의 사랑을 돌이켜보는 마지막 장면이 괜찮았던 작품. 타츠키가 정말로 오랫만에 나름 활약을 펼친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어요. 이야기의 완성도는 나쁘지 않았달까요.

그러나 경찰이 아무리 무능했더라도, 나무 그림자 바로 앞 시체를 놓쳤을 것 같지는 않네요. 설령 놓쳤다 치더라도, 이건 순전히 '운'에 불과한 거라 트릭이라 부르기도 어렵고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뿔매미>>
우라메 컨설턴트에서 일하는 이가사는 별 것 아닌 내용을 기묘한 전문용어로 포장할 뿐인 사기꾼. 회사에서 유일하게 진실된 컨설팅을 하는 요시즈를 그만두게 하기 위해 사장의 임명장을 위조한다. 그러나 오히려 사장실에서 거액의 돈이 사라진 뒤 범인으로 몰려 체포되는데...

뿔매미라는 매미는 처음 들어보았네요. 이 책에 따르면 개미 등으로 의태하여 개미 속에 숨어지내며 남는 당분을 제공해주고, 대신 개미는 뿔매미를 지켜준다고 합니다. 이가사가 스스로 뛰어나다는 생각을 지나치게 한 나머지 이상하게 의태해버린 결과 - 본인이 범인이 아닌데도 범인이라고 주장하는 - 를 이 뿔매미를 빗대어 설명하고 있는데 꽤 그럴듯합니다. C.M.B 특유의 학습 만화스러운 재미가 있는 이야기에요.

트릭도 간단해서 설득력이 높은 편입니다. 주변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소품을 문에 끼어 놓아서 문이 자동으로 잠기지 않게 만드는 정도라면 누구나 가능하니까요. 물론 이가사가 문이 정말로 닫혔는지도 확인하지 않을 정도로 허술하고 멍청한 인간이었다는 설정이 앞 부분에 조금이라도 등장했더라면 훨씬 좋았을텐데 그게 조금 아쉽네요.
그래도 이야기의 완성도, 특유의 박물학적 지식을 전해주는 학습만화스러운 재미, 추리 만화로서의 설득력도 갖춘 이번 권 최고의 이야기임에는 분명합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보이지 않는 사수>>
연극에서 리어왕 역할을 맡은 나가타가 화살에 맞아 살해당한다. 등 가운데에 화살을 맞았지만 무대 뒷 쪽은 꽉 막혀있던 상태. 경찰은 시종역으로 옆에 서 있었고, 소도구인 석궁을 가지고 있던 요츠야를 체포한다. 요츠야의 무죄를 믿는 타니바타 경위는 쿠지라자키 경감의 소개로 신라를 찾아와 사건 해결을 부탁하는데...

흔해빠진 이야기의 반복에 불과한 수준 이하의 작품. 트릭과 이야기 모두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범인을 밝혀내는 것도 수사 정보를 흘려 함정을 판다는 유치한 작전이며, 트릭도 독특한 장치로 화살을 쐈다는 것에 불과하거든요. 등에 화살이 꽂힌 것도 나가타가 화살을 피하려고 몸을 비트는 순간을 노렸다는건데 너무 작위적이에요. 범인인 이다가 나가타를 살해한 동기도 원래 둘이 교제하고 있었는데, 나가타가 다른 여자를 사귀려고 했다는 것이라 경찰 수사가 부실했다고 밖에는 보이지 않고요. 아무리봐도 요츠야보다는 더 확실한 동기잖아요?

게다가 C.M.B에서 유일하게 기대해볼만한 박물학적인 재미 역시 전무합니다. 타니바타 경위가 신라에게 사건을 의뢰할 때 케이크를 가져올 정도로 신라에 대해 잘 몰랐기 때문이에요. 마지막에 감사 인사로 귀중한 식물을 보낸다며 준 것도 네잎 클로버고요! 물론 웃기기는 했습니다만.... 별점은 1.5점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점수를 줄 부분이 많지 않네요.

2019/11/22

오랫만에 야구 이야기, 두산 베어스의 2차 드래프트와 방출자 명단을 보고

2차 드래프트 결과

2015년에 몇 개의 글을 쓴게 마지막이었는데, 오랫만에 두산 베어스 관련 글을 남깁니다. 얼마전 2차 드래프트가 있었고, 두산은 언제나처럼 꽉꽉 채워 4명의 선수를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2015년, 2017년과는 다르게 이번에는 정말로 이름값있는 선수들이 유출되었다는 점에서 속이 쓰리네요. 5선발 역할을 수행했던 이현호 선수, 우승팀 한국 시리즈 멤버였던 정진호 선수는 물론이고 상무에 있을 때 상당한 수준의 기록을 보여준 강동연 선수. 회복이 더디지만 한 때 눈부신 피칭을 보여주었던 변진수 선수가 그들입니다. 특히 이현호 선수, 정진호 선수는 1.5군급이라는 점에서 두산 베어스가 정말로 KBO의 팜 역할을 담당하고 있구나 싶습니다. 게다가 2년 전의 아픈 추억 때문인지 이번에는 지명을 단 한 선수도 하지 않았고요. 득이라고는 거의 보지 못하고 타 구단 좋은 일이나 하는 이런 제도가 왜 유지되는지 잘 모르겠네요.
게다가 오늘 발표된 방출자 명단도 사뭇 놀랍습니다. 아픈 손가락이라 할 수 있는 홍상삼 선수가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군대 가기 전에는 '허쇼'라고 불리우며 선발진의 한 축을 담당했던 허준혁 선수, 시즌 중 2군에서 폼이 좋다고 자주 언급된 이정담 선수도 의외의 이름이었고요.

이 상황에서 가장 문제는 단장입니다. 올해의 2차 드래프트 명단과 방출자를 보면 꽤나 그럴듯한 트레이드 패키지를 꾸릴 수도 있었기 때문이에요. 국내 투수진이 좋지 않은 구단에게 이현호 선수 + 강동연 선수 + 홍상삼 선수 패키지를 제시했더라면 가능성있는 내야 자원을 확보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이현호 선수 말고 너무 버리는 카드 같다면, 정진호 선수와 이흥련 선수를 포함시켜서 판을 키울 수도 있고요.
물론 다른 구단들도 바보는 아니니 2차 드래프트를 기다리며 버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순위대로 지명하는 현재의 방식에서 저 선수들을 확보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으니 토탈 패키지로 거래를 제의했더라면 꽤 매력적인 제안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최소한 시도는 해 보았어야 했어요. 어차피 지키지 못할 선수들이라고 판단이 되었다면 말이지요. 이현호 선수, 정진호 선수, 이흥련 선수가 메인이었더라면 꽤 괜찮은 카드가 성사될 수도 있었을 듯 하거든요. 허도환 선수의 값어치를 보니 더더욱 그런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이미 떠나는게 결정된 선수들은 아쉬워도 어쩔 수 없지요. 새 팀으로 가게 된 선수들 모두 잘 되기를 바라며, 방출된 선수들도 선수 생활을 이어갈 수 있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편집자를 위한 북디자인 - 정민영 : 별점 3.5점

편집자를 위한 북디자인 - 8점
정민영 지음/아트북스

부제는 '디자이너와 소통하기 어려운 편집자에게' 로, 디자이너는 아니지만 북 디자인에 대해 명확하게 알아야 하는 편집자들을 위해 쓰여진 북 디자인 안내서입니다.

저자가 북 디자인을 잘 알고, 스스로 방향성을 제시할 수 있는 편집자라는게 가장 큰 장점입니다. 단순히 심미적인 이유가 아니라 왜 그렇게 디자인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명확한 이유를 들어 설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디자인 이론들도 전문적이라기 보다는 모두 상식선이라 이해하기 쉽고요. 이를 설명하기 위한 각종 자료와 도판도 굉장히 충실한 편입니다.
저도 디자인을 전공했지만 북 디자인에 대해서는 잘 몰랐었는데, 직접 하기는 힘들겠지만 그래도 좋고 나쁘고에 대해 어느정도 감은 잡을 수 있게된 것 같네요. 특히나 제가 쓴 모 책의 경우,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좋은 디자인의 요소가 많이 결여되어 있는데, 어떤 점이 문제인지 확실히 알 수 있었습니다. 표지부터 그러합니다. 제목과 부제, 저자명이 잘 정리되어 있지 않고, 저자명의 경우 가독성이 심하게 떨어집니다. 제목도 보통 상단에 위치시키는데 하단, 그것도 부제와 거리가 멀게 비치해서 한 덩어리로 읽히지 않고요. 구성의 화룡정점이라 할 수 있는 로고도 빠져있습니다. 앞날개, 뒷날개도 없으며 약표제와 표제도 흐름을 고려하여 디자인되어 있지 않습니다. 본문의 속표제면은 통상 오른쪽에 배치하는데, 이 책의 경우 각 단락의 시작은 모두 왼쪽 페이지부터로 디자인되어 있어서 어색합니다. 그 외에도 문제가 많은데 여러모로 아쉽네요. 이 책만 먼저 읽어보았다면, 뭔가 의견을 줄 수도 있었을텐데...
아울러 한 권의 책이 어떤 구성으로 이루어지는지도 잘 알 수 있던 점도 수확입니다. 독자가 책을 처음 들고 정보를 입수하는 경로라던가, 표지와 약표제면, 표제면의 관계 등 그동안 별로 신경쓰지 않았던 자잘한 디테일 들이 얼마나 중요하고 많은 생각이 깃들어 있는지 처음 알았거든요.

그러나 단점도 있습니다. 우선 내용에서 표지에 대한 비중이 너무 높다는 점입니다. 거의 절반 가까이거든요. 물론 표지가 독자를 유혹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임은 부인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이 정도의 비중이냐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펭귄 출판사' 처럼 표지도 마스터 페이지로 구성하고, 제목과 저자명, 그리고 이미지만 교체하는 경우도 충분히 좋은 표지잖아요. 지나치게 디자인에 집중하여 설명한 느낌입니다.
또 본문 디자인도 실제 본문에 대한 구성보다는 도판 등 주변 요소에 너무 집중하고 있습니다. 본문이 몇 단 구성인지, 어떤 폰트를 쓰고 어떤 행간과 자간으로 이루어지는게 좋은지 등을 판형에 따라 최적의 구성을 선보이는 식으로 안내해주는게 취지에 더 잘 맞지 않았을까 싶은데, 그런 내용은 거의 없습니다. '완성된 3차원의 책'이 어떻게 보이는지에 주력하고 있기 때문에 생겨난 문제지요.
마지막으로 설명하고 있는 책이 도판으로 소개되지 않는 경우가 제법 있어서 조금 당황스러웠고요.

그래도 북디자인 입문자라던가, 제목 그대로 북디자인을 잘 알아야 하는 편집자, 혹은 관련 직업인에게 굉장히 유용한 책이라는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이 책 자체가 저자가 주장하는 북디자인 원칙에 잘 맞게 디자인되어 있어서, 실제로 좋은 교과서 역할을 수행하고 있고요. 제 별점은 3.5점입니다. 북디자인에 관심있으신 모든 분들께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2019/11/20

씨엠비 CMB 박물관 사건목록 32 - 카토우 모토히로 : 별점 2.5점

씨엠비 CMB 박물관 사건목록 32 - 6점
카토우 모토히로 지음/학산문화사(만화)

카토우 모토히로의 시리즈 만화. 엊그제 리뷰를 올렸던 31권에 이은 감상글입니다.
4편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는데, 이 중 <<혼선>>은 굉장한 수작입니다! 그러나 상세 리뷰에서도 언급하겠지만 <<혼선>>은 C.M.B 보다는 Q.E.D에 훨씬 어울리는 이야기이기는 했어요. 신라의 매력도, 타츠키의 존재감도 너무 흐릿합니다. 다른 이야기들은 C.M.B 다운, 박물학적 정보를 전해주기는 하지만 <<혼선>>에 미치는 완성도를 갖추지는 못했고요.

그래서 전체 평균 별점은 2.5점. Q.E.D에 집중하는게 더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또 다시 들게 만드네요. 이야기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세요.

<<등불>>
영국인 베리 로웰 박사는 이란에서 발굴 중 중요한 화석을 발견하지만 이란 정부는 화석의 반출을 금지한다. 그러나 금고에 보관해 놓은 화석이 사라지는데...
화석 도난 사건을 메인으로 호모 사피엔스, 네안네르탈인, 데니소바인의 멸종과 교배, 생존에 대한 이론을 곁가지로 깔아 진행되는 작품.
범인이 베리 박사라는건 너무 뻔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훔쳤으며, 어떻게 반출했는지가 핵심인데, 훔치는 트릭은 트릭이라고 부르기 민망한 수준이라 실망스럽습니다. 철제 봉으로 덩쿨 모양으로 만든 금고라서 쉽게 벌릴 수 있었다는게 전부거든요. 설령 그게 가능했더라도, 원래대로 말끔하게 돌아갔을지도 의문이에요. 반출도 유목민들을 통해 육로로 보냈을거다라는 추측이 전부라는데, 설득력이 약하고요. 무엇보다도 애초에 화석의 두개골만 상자에 넣어 금고에 넣은 이유도 설명되지 않습니다. 누가 화석을 전부도 아니고 머리 부분만 대충 떼어서 보관한답니까?
그래도 초기 인류에 대한 박물학적 정보와 더불어 발견된 화석은 무언가를 지키려는 자세였고, 나중에 조사해보니 아이의 화석이 아래 깔려 있었다는 반전, 그 사실을 알게 된 베리 로웰 박사가 연구자로서 더 심도깊은 연구를 위해 훔친 화석을 반납하고 이란으로 돌아갈 것을 결심하는 결말은 괜찮았습니다. 최악은 아닌지라, 별점은 2점입니다.

<<혼선>>
초등학생 요시히로는 크리스마스 선물로 무전기를 받는다. 그런데 지나가던 신라는 그 무전기가 불법 무전기라는걸 알아낸다. 외국산으로 일본 국내와는 다른 주파수가 할당되어 다른 통신을 방해하거나, 개입할 수도 있는 물건이었던 것.
이후 무전기를 가지고 놀던 요시히로는 우연히 이상한 형과 무전기로 소통하며 친해지지만, 다카오라는 형이 통신을 들켜 위험에 처하자 신라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무선기의 기술적 특징을 이용해 마약 밀매 일당의 위치를 잡아내는 신라의 활약이 눈부십니다. 우선 혼선이 일어난 곳을 중심으로 파노라마 사진을 찍어 모든 곳에 등장하는 건물을 알아내죠. 그 뒤 건물에서 일당이 어디 숨었는지는 휴대폰의 전파가 닿지 않지만 무전기는 쓸 수 있는 철로 차단된 큰 공간, 그리고 옥상까지 뚫린 곳이라는 정보를 토대로 '엘리베이터 통로' 안이라는걸 추리해내고요. 물론 일당이 숨은 곳은 경찰도 샅샅이 조사하면 결국은 발견해 냈겠지만, '다카오'가 위기에 처한 상황이라 나름의 시간 제한이 있다는 점에서도 괜찮은 전개였습니다.
마지막 반전도 기가 막힙니다. 홀로 뒤쪽 주차장에 부상당한채 쓰러져있던 "다카오"를 구해서 병원으로 이송하지만, 그는 요시히로와 무전기로 이야기하던 스트로베리즈라는 팀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는 다카오가 아니라 일당의 두목인 '형님' 이었던 것이지요. 자해를 하여 상처를 낸 뒤 다카오로 가장하여 도주하려 한 것입니다. '형'은 아마 사망했을 거라는 씁쓸한 결말이기도 하고요.
좋은 작품이기는 하나 이런 슬픈 결말은 신라. 그리고 C.M.B와는 어울리지 않아 보입니다. 신라가 별다른 댓가없이 사건을 해결한다는 전개도 마찬가지라 차라리 Q.E.D였다면 더 낫지 않았을까 싶네요. 그래도 수록작 중에는 베스트에요. 별점은 3.5점입니다.

<<사시 부적>>
양품점에서 기묘한 밀실 살인이 일어난다. 손님없는 개점 전 양품점의 안쪽 오토 록이 걸린 사무실에서 점장 요네다가 칼에 찔린 시체로 발견된 것. 문제는 9시부터 시체가 발견된 10시 사이에는 아무도 사무실에 들어가지 않았으며, 현금도 사라지지 않은 사무실에서 유일하게 사라진건 요네다가 항상 목에 걸고 다녔던 사시 부적 뿐이었다.
신라는 유력한 용의자인 아르바이트생 3명의 증언을 듣고 진범을 추리해낸다.

Q.E.D에 많이 나오는, 그리고 C.M.B에서도 그에 못지 않게 등장하는 여러 관계자의 증언을 모아 진상을 밝혀낸다는 작품.
그런데 추리를 떠나서 세 명의 아르바이트 생 중 한 명이 범인이라고 하면, 답이 너무 뻔했습니다. 아와시마는 능력을 인정받아 자신만의 영역 - 디스플레이 - 이 있고 특별히 트러블도 없는 사람, 무기하라는 점장에게 대들며 언제 짤려도 괜찮다는 식으로 일하는 사람, 마메다는 너무 착해서 시키는건 다 하는 사람... 이라면 범인은 과연 누굴까요?
또 아와시마의 증언에 따르면 점장은 9시 30분에 알몸으로 사무실 밖으로 뛰쳐 나갔습니다. 그런데 10시에 사무실 안에서 죽어있던게 발견되었고요. 이 말을 토대로 생각해보면, 9시 30분에 뒷모습만으로 뛰쳐나간 인물은 점장이 아니며 때문에 9시 30분 뒤에 나타난 마메다와 무기하라 모두 알리바이는 없는 셈입니다. 살해한 뒤 점장으로 가장하여 밖으로 뛰쳐나간 뒤, 옷을 갈아입고 돌아오면 되니까요.
그리고 신라의 추리의 핵심은 '범인이 무엇을 하고 싶었냐'입니다. 신라는 아르바이트생들이 범인이라면 하고 싶었던 행동이 무엇인지를 가정하여 누가 진범인지를 밝혀내지요. 그래서 아와시마가 범인으로 거짓말을 했다면, 시체가 사무실에 있는건 이상하니 그녀는 범인이 아니라며 그녀를 용의자에서 배제합니다. 그런데 그 뒤에는 일직선으로 마메다가 범인이라며 추리를 마무리합니다. 무기하라도 동일한 방법으로 범행을 저지를 수 있는데 왜 설명하지 않는지 의문이에요. 마메다가 한 유일한 실수인 사시 부적이 목걸이라는걸 바로 알아본 걸 가지고 진범이라고 주장하는건 무리지요. 동기도 석연치 않고요.
한마디로 추리적으로도, 이야기적으로 모두 수긍하기 어려운 이야기였습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마도의 서>>
마우가 마도서를 찾는 일에 신라의 협조를 요청한다. 그러나 마도서가 있을 것으로 생각되었던 워터 타운리 남작의 성은 1894년에 일어난 화재로 이미 장서는 모두 재가 된 상태였다.
범죄집단의 협박 때문에 마도서를 찾아내야만 하는 마우는 고서점 주인 토머스 북의 도움을 받아 타츠키와 함께 폐허가 된 워터 타운리 성을 찾아간다. 마도서는 양피지에 썼을 터라 다 타지 않았을 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창문의 숫자 등을 조사해 폐허 속에서 비밀 장소를 찾아내지만 마도서는 이미 읽을 수 없는 상태. 그러나 신라는 워터의 책은 사본이며, 원본을 베낀 것이라 추리하고 원본을 찾아낸다.

19세기 후반, 독서인의 생활과 관련된 가구 들을 토대로 책을 찾아내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이런 부분은 C.M.B 특유의 박물학적 지식 공유 취지에 딱 어울리는 이야기라 생각됩니다. 마도서라는 소재도 역시 나쁘지 않았고요.
마도서에 대해 좀 더 심도깊게 풀었더라면, 현학적인 재미 충족도 더 많았을텐데 그건 좀 아쉽네요.
마도서를 찾는 이야기도 재미있었지만 워터 타운리 남작의 성에 화재가 난 이유, 그리고 타다 남은 마도서 사본에 '가짜'라는 흔적이 남은 이유에 대한 추리도 인상적입니다. 남작은 홀로 악마를 불러내기 위해 고용인들도 모두 내보냈었는데, 악마를 소환하려다 화재를 일으켰던 것이죠. 불길 속에서 악마를 애타게 찾았지만 악마가 결국 나타나지 않자 마도서에 '가짜'라는 흔적을 남기고 사망했다는 이야기입니다. 꽤 그럴듯하죠?
이렇게 추리적으로, 박물학적으로 꽤 재미있는 이야기인데 문제는 마우가 등장한다는 점입니다. 마우가 등장하는 다른 모든 이야기들과 마찬가지로 지나치게 현실성이 부족하거든요. 게다가 이 이야기에서는 범죄 조직이 암투를 벌이는데다가, 마지막에는 애들 장난 때문에 도망까지 치기 때문에 더 만화적이고 황당하다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 마우의 등장 없이 좀 더 묵직하게 전개했더라면 훨씬 좋았을텐데, 여러모로 아쉽습니다.

2019/11/18

씨엠비 CMB 박물관 사건목록 31 - 카토우 모토히로 : 별점 2.5점

씨엠비 CMB 박물관 사건목록 31 - 6점
카토우 모토히로 지음/학산문화사(만화)

카토우 모토히로의 시리즈 만화. 지난 몇 년간 출간 자체를 잊고 살다가 찾아보니 꽤 많이 출간되어 있더군요. 주말에 몰아서 읽었는데, 리뷰는 천천히 한 권 씩 올려보도록 하겠습니다.

C.M.B와 Q.E.D는 서로 쌍둥이처럼 닮았지만 명백한 큰 차이를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특히 구성 면에서 그러합니다. 거의 예외 없이 1권에 2편의 이야기라는 구성을 선보이는 Q.E.D와는 다르게 보통 3~4편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거든요. 그만큼 짧기에 읽기 쉽다는건 장점이지만, 부족한 설명과 억지스러운 전개 때문에 완성도 면에서는 조금 부족할 수 있다는 단점도 있습니다. 또 추리적으로는 여러모로 Q.E.D 보다는 부족한 작품들이 많은 것도 분명하고요. 이번 권도 장, 단점은 그대로입니다.

그래도 오랫만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오래된 시리즈로 캐릭터는 식상하고 내용도 타성에 젖어있지만, 조금이나마 신선하고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재미는 나쁘지 않은 편이니까요. 추리적으로 완성도 높은 이야기도 있고요.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수록 작품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세요.

<<지옥혈>>
도쿄 근교 시골 마을에서 산사태 발생 후 '지옥혈'이라고 불리우는 동굴이 모습을 드러낸다. 지옥혈은 일본 전 지역에 널리 퍼져있는 '사후 세계와 통하는 장소' 중 하나로, 그냥 전통적인 민속 풍습이지만 마을 사람들이 6명이나 사라지자 방송국까지 출동하여 취재를 벌이는데...

산사태로 관광객이 줄었는데 마을에 갑자기 돈이 넘쳐난다는 설정만 보아도 무언가 수상하다는 건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억지로 마을 사람들을 모두 모이게 하는 행사가 진행된다는건, 이 행사에 맞추어 사건이 일어날거라는 것도 뻔하고요.

그러나 이를 '불법 산업 폐기물 투기'와 연결시키는 아이디어는 돋보입니다. 도쿄와 가까우며, 곧 메울 구멍이라는 점에서 충분히 설득력도 높고요. 무엇보다도 지옥혈과 관련된 일본 전설을 복선처럼 깔고, '그쪽 세계의 음식' 이라는 소재로 사건을 저지른 사람들의 심리를 풀어내는 마지막 장면이 아주 인상적입니다. 수학과 과학보다 민속과 풍습, 전설 등을 이야기의 밑바탕에 깔고가는 C.M.B에 아주 잘 어울리기도 했고요.

C.M.B의 그간 부진을 충분히 만회할 만한 멋진 이야기였어요. 별점은 3.5점입니다.


<<고스트 카>>
캠핌장 외길에 반년 전에 죽은 화가 이누야나가의 알파 로메오가 나타난 뒤 사라져 버리고, 다음날 캠핑장에 찾아온 신라와 친구들은 근처 숲에서 기묘한 상황에 놓인 알파 로메오를 발견한다. 겸사겸사 사건에 휘말린 신라 일행은 이윽고 이누야나기 씨의 복잡한 집안 사정과 유산 상속 등에 관련된 문제를 듣게 된다. 가장 큰 문제는 유산 중에서도 핵심인 300호짜리 그림이 깜쪽같이 사라진 것. 아들 토라오와 요이치는 백부 네코지로를 의심하고, 네코지로는 토라오가 범인이라 확신하는데...

차가 숲 속에 떨어진 이유와 300호 그림이 사라진 사건을 엮은 진상은 괜찮습니다. 두 사건이 전혀 관계없는 것 처럼 전개하다가 마지막에 하나가 되는 과정이 꽤 그럴듯하거든요. 네코지로의 횡령은 사실로, 이누야나기씨가 이런걸 다 알고 유산 배분을 했다는 결말 - 네코지로에게 물려준 아틀리에는 거액을 들여 축대를 수리해야 하는 상황이라 - 도 나쁘지 않아요. 나름 완벽한 해피엔딩이기도 하고요.

그러나 전개 외에는 모든게 함량 미달입니다. 초반부의 알파 로메오의 등장도 제대로 설명되지 않을 뿐더러, 차고가 움직인게 전혀 티가 나지 않았다는 것도 설득력이 낮습니다. 범인인 백부 네코지로의 계획대로 잘 되었을 거라는 생각도 들지 않네요. 뭐 그래도 이전에 워낙 지뢰들이 많아서 이 정도만 되어도 고맙게 볼 수 있는 수준이라 생각됩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돌아다니는 시체>>
4인이 함께 사는 다세대 주택에서 주민 중 1명인 코노가 살해된다. 사체를 자신의 집에서 발견한 회사원 도이는 패닉 상태에서 유력한 용의자인 나카니시의 집으로 시체를 몰래 옮겨 놓는다. 나카니시도 또 다른 용의자인 츠다의 집으로 시체를 옮기고 츠다는 다시 도이의 집에 시체를 가져다 놓는다. 결국 이들은 모든 사건을 해결해준다는 소문을 믿고 신라에게 시체와 함께 찾아온다.
사건 관계자들의 증언이 이어지고, 이 중에서 중요한 단서를 뽑아내어 진상을 밝혀낸다는 전형적인 Q.E,D 스타일의 작품. 이게 왜 C.M.B 에피소드로 등장했는지 잘 모르겠어요.C.M.B 특유의 박물학적인 이론도 전혀 등장하지 않으며, 신라도 어린아이와 같은 캐릭터성 없이 평범한 탐정 역할만 수행하여 전혀 차별화되는 부분이 없습니다.

게다가 아무리 다세대 주택 주민들 모두가 코노와 원한 관계가 있었다고 해도, 범인이 시체를 그 안에 숨겨놓는 것 정도로 죄를 뒤집어 씌울 수 있다고 생각한건 말도 안되죠. 코노의 방에 시체를 돌려 놓는게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잖아요? 일본 경찰이 아무리 무능하더라도 싸움을 한 것도 아니고, 말린 정도로 혐의를 씌워 체포할거라고 생각할 수는 없지요.

결론적으로, 시리즈 특유의 매력도 없고 추리적으로 억지스러운 평범무난한 태작입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제 27회 탐정 추리 회의>>
잡지사에 주최하는 상금 100만엔인 추리 게임 대회가 열린다. 사회자가 문제를 내면 진상을 추리하여 정답자에게 상금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문제는 7년전에 실제로 일어났지만 미궁에 빠진 사건이었다. 경찰도 해결하지 못한 정답없는 사건이지만, 모든 수수께끼를 남김없이 밝힐 수 있는 해답이라면 정답을 인정한다는 조건. 문제인 사건은 마술사 야마다 요시후미가 수조 탈출 마술을 펼치다 사망한 사건으로, 2명의 제자가 유력한 용의자였다. 둘 중 한 명은 후계자에서 탈락하여 앙심을 품었기 때문이었다.

수수께끼는 모두 세가지, 왜 요시후미는 예정대로 공연 직전에 후계자를 밝히지 않았는지? 누군가 마술 장치에 손을 댔다면 어떻게 감시를 피할 수 있었는지? 왜 무대 위에서 살해되었는지? 누전은 어떻게 일으켰는지? 신라는 사건의 진상을 풀 '경이의 방'으로 모두를 안내한다.


추리 게임 대회라는 형식을 빈 정통 추리물로 진상은 공연 전 범인은 이미 요시후미를 살해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시후미는 공연 전에 밝히기로 했던 후계자의 이름을 말할 수 없었고, 범인도 차분히 마술 장치에 손을 댈 수 있었던거죠. 수조에 전기를 흐르게 한 건 이미 죽은 사체가 움직이게 만들어 사망 시간을 위장한 뒤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함이었고요.

트릭만 놓고 보면 충분히 수긍할만해서 추리적인 완성도는 높습니다. 그러나 정작 문제는 추리 게임 대회라는 설정과 전개 방식입니다. 추리 게임 대회는 요시후미의 딸이 범인을 밝혀내기 위한 일종의 추리쇼였다는건데 솔직히 말도 안되지요. 무엇보다도 유력한 용의자인 야마사키 토모히데, 즉 쿠로츠 유우키가 본인이 범인인 사건이 문제로 출제된 상황에서 평정심을 유지하면서 평상시와 같은 논리로 의견을 주장한다는건 아무리 보아도 현실적이지 않았습니다. 그 외에도 경찰이 수조에서 죽은 건지, 외부에서 살해당한 뒤 수조에 넣어진 것인지를 알아내지 못했다는 등의 디테일도 눈에 거슬렸고요.
이렇게 억지스러운 게임 대회를 만드는 것 보다는, 마술 공연을 보던 신라와 타츠키가 현장에서 사건의 진상을 추리하는 내용이었다면 훨씬 좋았을 거에요. 그랬다면 별점 4점도 충분했을텐데 말이죠. 별점은 2.5점입니다.

2019/11/17

히가시노 게이고의 무한도전 - 히가시노 게이고 / 양윤옥 : 별점 2.5점

히가시노 게이고의 무한도전 - 6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소미미디어

히가시노 게이고의 에세이집. 미공개 단편 소설 3편이 수록되어 있다는 말에 낚여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냥 에세이 모음이라고 하는게 정확한 표현이에요. 히가시노 게이고가 스노보드에 빠져 열중한 2002~2003년의 2년여 동안 연재된 에세이와 그 외 - 해당 시기에 벌어졌던 한일 월드컵 준결승, 결승전 관전 에세이 등 - 의 에세이 몇 편이 거의 전부거든요. 미공개 단편은 에세이를 가장한 단편, 그리고 히가시노 게이고를 비롯한 에세이 속 주요 등장인물들이 그대로 등장하는 짤막한 꽁트에 불과합니다. 솔직히 뭘 이런 책까지 번역해서 출간했나 싶을 정도에요. 그만큼 우리나라에서 인기가 많다는 뜻이기도 하겠지만요.

그래도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작가의 열정과 노력에는 경의를 표할 수 밖에 없겠더군요. 데뷰 이후 매년 2~3권 가량의 책을 수십년간 꾸준히 발표할 정도로 작업량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짬을 내어 스노보드에 대한 열정을 붙태우며 스키장을 다니고 연습하는 과정이 정말 대단하니까요.
여기서 눈여겨 볼 건 히가시노 게이고가 스노보드에 빠져든 이유입니다. 단순히 재미 때문만은 아니라 '향상' 때문이라고 합니다. 타면 탈 수록 어쨌건 조금이라도 나아지는 그런 성취감이 너무나 즐겁다는 것이죠. 아주 작은 것이라도 어제는 못한 것을 오늘은 해냈다는 성취감, 이런 사소한 성취감을 느낄 줄 아는 사람이 성실한 노력가라는건 당연한 일일겁니다. 그러니 매일 몇 시간을 운전해서 스키장을 찾아가 십여회의 활강을 즐긴 뒤 다시 돌아가 작품을 쓸 수 있었을테고요. 아, 이런 노력과 꾸준함은 정말 부럽습니다.

그리고 저같이 겨울 스포츠를 싫어하는걸 넘어서 혐오하는 사람 - <<너버스 브레이크다운>>의 안도의 말을 빌자면 "힘들여 이렇게 추운 곳까지 와서, 판대기를 밟고 눈 위를 미끄러지는게 뭐가 그리 신나는지" 모르겠다는... - 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재미있는 에세이들이기도 합니다. 글 자체를 재미있게 잘 쓰는 작가 답게 별거 아닌 스노보드 당일치기 여행에도 어떻게든 이야기를 집어넣으려는 노력이 특히 눈에 뜨입니다. 실존인물이라도 등장 인물들에게 명확한 캐릭터를 부여하고, 캐릭터에 맞는 이야기를 풀어놓는 과정이 잘 그려지고 있거든요. 어떤 이야기는 그 도가 지나쳐서 에세이가 아니라 아예 소설이 되어버린 이야기도 있기는 하지만요.

대부분의 에세이들 모두 재미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여러 추리 소설가들이 함께 등장하는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니카이도 레이토누쿠이 도쿠로, 신인작가 구로다 겐지 등과 스키 투어를 간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구로다 겐지가 상당한 변태라는게 드러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별 인기가 없는 작가라 다행이다 싶을 정도였습니다. 팬이 읽었더라면 치를 떨 만한 그런 내용이거든요. 그 외에도 아비코 다케마루가사이 기요시라던가, 교코쿠 나쓰히코 등이 언급되는 등 이런저런 작가들이 자주 등장해서 깨알같은 재미를 안겨줍니다.
아울러 골프에 대한 독특한 시각도 기억에 남네요. 골프를 칠 생각이 들지 않는 이유가 이상한 옷 때문이라는 내용인데 꽤 그럴싸 했기 때문입니다. 여자 친구에도 보여줄 수 없는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옷을 입어야 하는 스포츠는 해 봤자 재미있을리가 없다는 논리지요. 요새는 골프 웨어도 상당히 괜찮은게 많고, 지극히 편협한 시각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본인의 취향이나 철학은 확실히 확고하구나 싶더라고요.
한신 타이거즈의 팬으로 느낀 2003년 호시노 센이치의 기적과 같은 리그 우승에 대한 이야기도 야구 팬으로서 와 닿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전에는 패배주의에 사로잡혀 우승 따위는 기대도 안하는, 눈 앞에서 열심히 뛰고 특히 자이언츠나 이겨주면 좋다는 마인드는 우리나라의 모 팀 팬을 연상케 했어요. 야구 팬은 어느 나라에 가도 똑같은가 봅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마지막에 수록된 스노보드 관련 꽁트는 솔직히 완전히 수준 이하였습니다. 그냥 팬 서비스에 불과해요. 스키장 상급자 코스에서 시체가 발견되고, 유력한 용의자는 스노보드 초보자라서 아래까지 내려오는데 오래 걸려서 알리바이가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당연히 용의자는 초보자로 가장한 실력자였지요. 스노보드 타는 방법 - 구피 스탠스와 레귤러 스탠스 - 을 이용한 간단한 트릭이 등장하는데, 이 정도로 범인이 빠져나가길 바라는건 아무리 보아도 무리라 생각되더군요. 피해자 주변만 조사해도 동기는 쉽게 드러날 테고, 그렇다면 트릭이야 어찌 되었건 범인 체포는 문제가 없었을테니까요. 흉기로 소음총을 썼다는 등의 무리수는 단점으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빈틈이 많은 이야기였습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입니다. 에세이는 쉽게 읽을 수 있고 재미도 있습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열정과 노력도 잘 느껴졌고요. 우리나라에서 스노보드가 유행한지도 10년은 더 지난 듯 한데, 스노보드를 좋아하신다면 꼭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19/11/16

추리 소설 30선

출처 : MLB park

영국추리작가협회 선정 1위부터 100위까지 작품, 미국추리작가협회 선정 1위부터 100위 작품들과 일본 미스테리 독자 선정 서양 추리소설 1위부터 100위에 뽑힌 작품들 순위를 기본으로, 여기에 추리소설 평론에 있어 가장 권위를 갖는 평론가들인 데이비드 레먼, 하워드 헤이크래프트, 줄리언 시먼스, H.R.F. 키팅이 뽑은 100대 추리소설과 미국 독립서점협회에서 선정한 100대 추리소설 리스트를 보완해서 뽑은 역사상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 추리소설 30편 순위라고 합니다.
저도 MWA 추천 베스트 미스터리 100 이라던가, 일본의 주간문춘 선정 동서 미스터리 베스트 100의 해외편 등을 관심깊게 보아 왔는데, 고전 중심으로 추리 소설 역사에 이름을 남긴 작품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는걸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친숙하고, 국내 소개된 작품들이 많다는 점에서 눈여겨 볼 만한 리스트라 생각합니다. 너무 오래되어 지금 읽기에는 큰 재미나 가치를 느낄 수 없는 작품들이 일부 있고, 어떤 작품은 순위와 선정된 이유를 알 수 없지만, 대체로 평균 이상의 좋은 작품들이거든요. 특히나 고전과 역사적 작품들이 많다는 점에서 추리 소설 입문자들이 관심을 가지면 좋을 듯 합니다.

순위는 아래와 같습니다. 리뷰가 있는 작품은 링크가 걸려 있으며, 리뷰는 없지만 읽었던 작품은 붉은색, 아직 읽지 않은 작품은 회색입니다. <<레베카>>와 <<유리 열쇠>>부터 빨리 찾아 읽어봐야겠네요.

* 2020/02/01 <<유리 열쇠>> 링크 추가
* 2020/08.30 <<레베카>> 링크 추가
* 2020/12/31 <<디미트리오스의 가면>> 링크 추가
* 2022/11/27 <<로그 메일>> 링크 추가

30. 유리 열쇠 (대실 해밋)

29. 붉은 수확 (대실 해밋)

28. 프랜차이즈 저택 사건 (조세핀 테이)

27. 로그 메일 (제프리 하우스홀드)

26. 재칼의 날 (프레드릭 포사이드)

25.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존 르 카레)

24. 광고하는 살인 (도로시 세이어즈)

23. 양들의 침묵 (토머스 해리스)

22. 가짜 경감 듀 (피터 러브지)

21. 트렌트 최후의 사건 (E C 벤틀리)

20. 나인 테일러스 (도로시 세이어즈)

19. 대학제의 밤 (도로시 세이어즈)

18. 39계단 (존 버컨)

17. 사라진 완구점 (에드먼드 크리스핀)

16. 추운 나라에서 온 스파이 (존 르 카레)

15. 실종당시 복장은 (힐러리 워)

14. 바스커빌가의 개 (아서 코난 도일)

13. 디미트리오스의 관 (가면) (에릭 엠블러)

12. 장미의 이름 (움베르토 에코)

11.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애거셔 크리스티)

10. 빅슬립 (레이먼드 챈들러)

9. 월장석 (윌키 콜린즈)

8. 안녕 내 사랑 (레이먼드 챈들러)

7. 레베카 (다프네 듀 모리에)

6. 포스트맨은 벨을 두번 울린다 (제임스 케인)

5. 기나긴 이별 (레이먼드 챈들러)

4. 말타의 매 (대실 해밋)

3. 애크로이드 살인 (애거셔 크리스티)

2. 셜록 홈즈 단편집 (아서 코난 도일)

1. 진리는 시간의 딸 (조세핀 테이)

역사를 바꾼 총 AK47 - 마쓰모토 진이치 / 이정환 : 별점 2점

역사를 바꾼 총 AK47 - 4점
마쓰모토 진이치 지음, 이정환 옮김/민음인

일본 르포라이터 마쓰모토 진이치의 르포. AK 47의 등장과 주요 전장, 활약을 다룬 글이라고 생각하고 읽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생각과는 전혀 다른 내용이었어요. 아프리카의 시에라리온, 소말리아를 중심으로 제대로 된 정부가 기능하지 않는 무법 천지에서 총기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제대로 된 정부의 역할은 무엇인지 등을 고발하고 알려주는 르포거든요.

물론 시에라리온이나 소말리아와 같은 위험 지역의 현재 상황을 직접 발로 뛴 정보를 통해 알려준다는 점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세계의 위험지역을 누비며 취재하는, <<용오>>와 같은 일본 만화에서 가끔 등장하는 그런 르포라이터가 실재로 존재한다는게 조금 신기하기도 했고요.
또 아직 살아있던 미하일 칼라시니코프, 영국 작가 프레더릭 포사이스와 직접 진행한 인터뷰를 통해 이런저런 새로운 사실도 몇 가지 알게 되었습니다. 특히나 프레더릭 포사이스의 <<전쟁의 개들>>이 실제로 진행되었던 용병을 고용한 국가 전복 작전을 토대로 창작된 이야기로, 이 작전에 포사이스가 출자(?) 했다는 소문이 있다는건 처음 알았네요. 역시, 진짜같은 픽션을 쓰려면 이 정도의 깊숙한 개입은 필요한게 아닌가 싶습니다. AK 47의 신뢰성 높은 구조에 대한 상세한 설명 등 AK 47에 대한 정보도 나쁘지 않습니다.

하지만 비참한 상황을 고발하는 인터뷰와 현지 취재를 제외하면, 결론은 마지막 부분에서 너무 쉽게 요약됩니다. 실패한 국가는 경찰, 병사, 교사의 급료를 지불하지 않는 국가라는 것입니다. 경찰과 병사는 국민의 안전한 생활을 지키는, 최소한의 의무를 직접 담당하고 있는 사람들이며 교사는 국가의 미래를 책임지는 사업의 핵심이기 때문이지요. 누구나 아는 이야기의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해 너무 긴 분량을 할애한 셈입니다.
또 AK 47이 특유의 단순함, 신뢰성으로 이러한 무법 천지에서 사랑받는다는건 잘 알겠지만, 제목처럼 AK 47이 역사를 바꾸었다는건 어폐가 있습니다. AK 47이 아니라 M16이건, K-2이건 마찬가지인 상황이거든요. 이 정도라면 제목 사기라고 해도 무방하겠지요.

다행히 "각료들 절반 이상이 자제를 유럽이나 미국의 학교에 보낸다거나 자신의 가족은 국외에서 생활하게 하고 있는 나라, 그런 나라 역시 실패한 국가"라는 멋진 말이 마지막에 등장해서 최악은 면한 듯 합니다. 개인적으로 아주 동의하는 바에요. 부득이한 이유 - 예를 들어 해당 국가에서 태어났다거나, 해당 국가 국민과 결혼 등으로 국적을 취득했다던가, 정말로 그 국가에서만 제공하는 최고 수준의 교육을 받기 위해 유학을 갔다던가 등 - 을 제외한다면 이른바 사회 지도층 인사의 자녀들은 모두 국내에서 거주하며 생활하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거든요. 마찬가지 이유로 국내에서 병역의 의무를 수행하지 않은 자식을 둔 인물을 주요 공직에 임명하는 것도 불가한 일입니다. 최소한의 의무를 다하지 않는 사람에게 국가를 맡긴다는건 가당치도 않죠.
그 뒤 안정된 국가로서 소임을 다하고자 하는 소말리랜드의 상황을 현지 취재로 알려주며, 제대로 된 국가의 의미가 무엇인지 되짚으며 책이 마무리 되는 구성도 괜찮아요. 앞서의 비참한 다른 국가들의 상황과 대비되어 더 잘 와 닿더라고요. 고위 공직자들의 양심적이면서 성실한 모습도 인상적이었고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기대와 예상과는 백만년 정도 떨어져 있지만 주장하는 메세지 중 일부는 공감할 만 했습니다. 그러나 총기 AK 47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딱히 읽어보실 필요는 없겠습니다. 저 역시 딱히 읽어볼 필요는 없었던 책이라는 뜻이지요...

2019/11/11

요녀전설 1 - 호시노 유키노부 / 강동욱 : 별점 1.5점

요녀전설 1 - 4점
호시노 유키노부 지음, 강동욱 옮김/미우(대원씨아이)

좋아하는 작가 호시노 유키노부의 단편집.

요녀 (妖女)의 사전적 의미는 '요사스러운 여자'입니다. 요망하고 간사한 데가 있는, 한마디로 사람 마음을 가지고 놀 줄 아는 악녀를 뜻하지요. 제목만 보고 이렇게 사람 마음을 흔들어 조종하고, 그래서 파멸을 불러오는 여자들이 나오는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내용은 전혀 그렇지 않더군요. '요녀'와는 관계없는 작품이 너무 많더라고요. 수록된 8편의 단편 중 제목에 값하는 작품은 질투심 때문에 젊은 여인을 죽이려다가 파멸하는 귀족 여성이 등장하는 <<메두사의 머리>> 와 젊은 여성을 이용하는 늙은 흡혈귀 여성의 이야기인 <<카르밀라의 영원한 잠>> 두 편 뿐입니다.

조금 폭을 넓혀 본다면 일본 인형극 용 인형이 감정을 가져 연주가와 동반 자살한다는 <<히다카가와>>, 설녀가 다가오는 빙하기에서 인간을 구하기위해 후손을 남기려 한다는 <<만가>>는 여성형 크리쳐물로 볼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순애보나 드라마에 가까와서 요녀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죠. 그나마 이 정도가 아슬아슬하게 요녀 커트라인에 걸리지 나머지 작품들은 아예 '요녀'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재미라도 있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고요. <<월몽>>은 카구야 히메의 SF 변주인데, 일본 전래 동화를 소재로 한 탓에 전혀 와 닿지 않더군요. 굉장히 높이 평가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일본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는 그렇게까지 높이 평가할 이야기는 아니라 생각됩니다. 마을에 찾아온 여인과 화가를 마녀로 몰아 죽인다는 <<로렐라이의 노래>>는 히틀러와 엮은 전개가 억지스러워 영 별로였고요.
아라비아의 로렌스와 마타 하리가 타이타닉에 타서 라스푸틴과 추격전을 벌인다는 이야기인 <<역사는 밤에 이루어진다>>, 체사레 보르자의 몰락이 루크레치아가 칸타렐라를 로마 시내에 뿌린 탓이라는 <<보르자 가의 독약>>은 간단한 줄거리 요약만 보셔도 아시겠지만 내용이 어처구니를 쌈싸먹은 수준이라 아쉽습니다. 그나마 두 작품 중 <<보르자 가의 독약>>이 이야기의 완성도로는 조금 더 낫기는 합니다. 특유의 기발한 아이디어로 실제 역사를 가지고 노는 팩션 전개는 돋보이고요. 문제는 루크레치아를 무슨 성처녀처럼 그린 것과 칸타렐라가 전염병의 숙주같은 존재였다는 설정입니다.루크레치아가 오빠와 놀아나는 등 문란한 행각을 벌였다는건 역사적으로도 증명된 사실이고, 칸타렐라는 '삼산화비소' 였을 거라는게 역사가들의 추측이니까요. 다 빈치의 등장과 결말 역시 무리수였습니다.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1.5점. 제목에 부합하고 내용도 괜찮았던 작품은 <<카르밀라의 영원한 잠>> 딱 한 편입니다. 다른 작품들은 여러모로 완성도도 부족하고 기대에도 미치지 못했습니다. 2권이 있다는데 찾아보게 될 것 같지는 않네요.

2019/11/09

블러디 프로젝트 - 그레임 멕레이 버넷 / 조영학 : 별점 3.5점

블러디 프로젝트 - 6점
그레임 맥레이 버넷 지음, 조영학 옮김/열린책들

<<아래 리뷰에는 아주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869년 8월 10일 아침, 스코틀랜드 북부의 마을 컬두이에서 17세의 소년 로더릭 멕레이가 메켄지 일가를 참혹하게 살해한다. 그는 인버네스 교도소에 수감되어 재판을 기다리는 중, 자신의 일생과 저지른 범죄를 반추하는 비망록을 작성한다.

우리나라 작가 한강이 수상했던 2016년의 맨부커상 후보작이기도 했다는 범죄물. 별다른 정보 없이 읽기 시작했는데 손에서 책을 떼기 힘들 정도로 몰입해서 읽은 작품입니다.
작품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메켄지 일가를 살해하는 장면으로 끝나는 로더릭 멕레이의 비망록, 그리고 로더릭 멕레이가 사건 당시 제 정신이 아니었다고 주장하는 싱클레어 변호사와 검사측의 치열한 싸움이 펼쳐지는 재판 과정이지요.

이 중 비망록 부분은 정말이지 무섭습니다. 로더릭 멕레이가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지옥과 같은 삶에 갇혀 있다는 내용으로, 그 어떤 희망도 볼 수 없는 로더릭 멕레이의 삶은 끔찍하기 그지 없어요. 아무런 꿈도 가질 수 없고, 오히려 빚 때문에 모든걸 잃고 가족은 행정관 메켄지에게 농락당하지만 아무에게도 의지할 수 없습니다. 소년이 범행을 저지르지 않았어도 가족의 붕괴는 시간문제였을거에요.
그리고 이어지는 재판 과정, 법정 다툼에서 여러 증인들의 증언에 의해 비망록의 진실이 하나 둘 씩 밝혀지는 과정의 흡입력도 대단합니다. 작가의 구성력과 표현력이 뛰어난 덕분이지요. 무엇보다도 재판 과정에서 제임스 톰슨 박사에 의해 밝혀지는 범행의 진짜 동기는 그야말로 충격입니다. 메켄지에게 복수하기 위해 별 생각없이 저지른 충동적인 범죄가 아니라 자신의 구애를 거절한 매켄지의 딸 플로라를 능욕하는게 목적이었다는 것이지요. 검시 결과와 같은 여러가지 현장 조사 기록과 법정에서 증언으로 밝혀지는 현장의 모습 등도 이러한 진짜 동기를 강하게 뒷받침하고요. 이 작품을 추리물이라고 부르기는 어렵겠지만 이 장면만큼은 아주 괜찮았어요. 이외에 특별히 법정 미스터리같은 부분은 없습니다만 교도소 의사인 먼로 박사를 다그치는 싱클레어 변호사의 활약은 꽤 볼만했습니다.
덧붙이자면 이 와중에 밝혀지는 제임스 톰슨 박사의 사고방식은 정말이지 기도 안 차더군요. 범죄가 유전의 산물이고, 하층민의 전유물처럼 여기며 소장농들을 무시하는 지독한 특권 의식에다가 범죄자는 미적 감상이 불가능하다는 등 편견에 사로잡힌 인물인데 이런 사람이 당대 최고의 범죄 심리 전문가로 인정받았다니 정말 야만의 시대였던 것 같습니다. 심지어 영적으로 주민들을 이끌고 보호해야 하는 목사마저도 주민들이 야만적이고 소년은 사악하다는 사심을 가감없이 드러내니 말 다했지요.

하지만 아쉬운 점이 없지는 않습니다. 가장 아쉬운 점은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로더릭 멕레이의 비망록의 문체입니다. 더 날 것 느낌이 났어야 했어요. 아무리 소년의 지능이 보통 이상이며 뛰어나다고 하더라도 제대로 된 교육을 오래 받거나, 제대로 된 책을 읽어보지 못한 상태에서 쓴 글로 보이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전반적으로 가공의 소설을 실제 있었던 사건처럼 서술한 작가의 솜씨가 대단하다는 점을 볼 때 원문을 읽지 못했고, 읽을 실력도 없지만 번역하면서 유려하게 매만진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드는데, 좀 오버스럽기는 해도 차라리 '사투리' 로 막말을 포함하여 번역되는게 훨씬 좋았을겁니다.
또 아버지 존 멕레이의 존재는 아무리 생각해도 의문입니다. 메켄지에게 농락당한건 그렇다 치더라도, 딸이 성폭행당해 임신까지 했는데 침묵한다는건 말이 안되잖아요? 아무리 무관심, 무저항으로 일관한다고 해도 그 정도가 지나칩니다. 존 멕레이의 존재가 모든 사건을 일으킨 것과 다름이 없는데, 캐릭터의 설득력이 부족하다는건 분명한 단점이지요.

그래도 단점은 사소할 뿐, 작품의 가치를 저해할 정도는 아닙니다.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3.5점입니다. 재미와 함께 여러가지 생각할 거리들을 안겨주는 좋은 작품입니다. 작가의 필력, 구성력도 나무랄데 없고요. 단점을 약간 언급하기는 했지만 작품의 수준을 해칠 정도는 아닙니다. 소년의 끔찍한 삶이 너무 잔인해서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는 점은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2019/11/08

살인의 문 1/2 - 히가시노 게이고 / 이혁재 : 별점 2점

살인의 문 1 - 4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혁재 옮김/재인

살인의 문 2 - 4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혁재 옮김/재인

다지마 가즈유키는 치과의사의 아들로 태어나 어린 시절을 유복하게 보낸다. 그러나 할머니의 죽음 뒤 들불처럼 번진 소문 탓에 부모가 이혼한 뒤 아버지가 꽃뱀에게 걸려 집안은 파산한다. 겨우 취직한 다지마는 어린 시절 친구 구라모치 때문에 이런저런 사기 행각에 발을 들이게 되는데...
히가시노 게이고의 2003년작. 제목은 주인공 다지마가 마지막에 구라모치를 죽이려다 망설인 순간, 구라모치가 습격당해 식물인간이 된 사건에서 형사가 한 말에서 따 왔습니다. 어떤 계기가 주어짐으로써 살인이라는 행동을 하는 사람이 있는데, 다지마에게는 그 계기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계기가 있어야 살인자가 되는 문을 통과할 수 있다는 말이지요.
하지만 작품은 제목만큼 거창한 사건이 벌어지는 추리물이나 범죄물은 아닙니다. 불행의 별 아래에서 태어난 듯한 주인공 다지마가 초등학교 동창이자 친구 구라모치와 악연으로 엮여 보낸 평생을 그리는 대하 드라마라고 할 수 있지요. (평생이라고 해도 30대 정도입니다만....) 작가의 다른 작품인 <<백야행>>이나 <<비밀>>,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도 장기간에 걸친 등장 인물들의 드라마를 그리고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이 작품은 환상적인 요소도 없고, 범죄물이나 추리물도 아닌 드라마로서 접근하고 있다는게 차이점입니다.

물론 다지마를 정신적으로 옭아매는 구라모치의 사기 행위와 직접적인 살인을 비롯하여 수 차례의 살인 미수, 혼인 빙자 사기와 결혼 사기 등 온갖 범죄가 등장한다는 점에서 범죄물로 볼 여지도 있습니다. 특히 사기 행위의 디테일, 그 중에서도 2 번째 사기인 금 예탁 사기의 디테일은 상당한 수준이며, 다지마가 자신을 함정에 빠트린게 아내 미하루라는걸 밝혀내는 과정도 아주 그럴싸 합니다. 뻔한 트릭이고, 증거도 스토커 행위로 얻기는 하지만 그래서 더 설득력이 높게 느껴졌어요.
그러나 이러한 범죄는 모두 다지마가 구라모치 때문에 평생 짊어지고 가게 된 불운의 한 종류일 뿐이며, 히가시노 게이고가 범죄 소설 전문가라서 이러한 범죄가 소재로 사용되었다는 점에서는 아무리 봐도 보조적인 장치일 수 밖에 없겠지요. 야구 이야기였다면 에이스였지만 어깨가 망가져서 선수 생명이 끝나고, 연인은 타 팀 4번 타자와 결혼한다는 <<공포의 외인구단>> 서두와 다름이 없으니까요. 오혜성에게는 손 감독이라는 스승이자 멘토, 그리고 엄지라는 목숨을 건 집념의 대상이 있었지만 다지마에게는 불운만 가져다주는 악우 구라모치만 있었다는 정도만 다릅니다.

이렇게 범죄물, 추리물이 아니라는 점에서는 기대와 살짝 다르지만 흡입력 만큼은 정말 대단한 작품입니다. 유복한 가정에서 부모님의 이혼, 아버지의 파산에 이은 몰락과 전학 등으로 겪게 되는 이지메, 첫사랑 소녀는 구라모치와 사귄 뒤 자살하고 그 뒤 구라모치와 엮여 이런저런 사기 행각에 가담하다가 조금 삶이 나아지나 싶을 때 만난 여자 탓에 비참한 결혼 생활을 거쳐 이혼하는 등 행복이라는 걸 거의 느끼지 못하는 어마무시한 삶이 정말로 파란만장하기 때문입니다. 불행의 수준만 놓고 보면 기리노 나쓰오의 주인공들과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에요. 히가시노 게이고 작품에서 이렇게 불행한 등장 인물은 처음 보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파란만장하기는 한데, 조금만 깊게 들여다보면 딱히 알맹이가 없다는 문제는 큽니다. 일단 지나치게 작위적이에요. 다지마의 선택이 항상 안 좋은 결과를 낳는게 너무 뻔하기 때문입니다. 실제 사람이라면 이렇게까지 실수를 했을까 싶을 정도라 설득력이 떨어지고 답답합니다. 게다가 중요한 실수는 모두 다지마 본인의 실수라서 딱히 구라모치 탓을 할 이유도 없어요. 첫 직장에서 다단계 판매 회사의 사기스러운 아르바이트에 대해 잠깐 만나던 가나에에게 말한 것도 다지마 본인의 실수이고, 미하루와 결혼을 결심한 것도 다지마 본인이니까요. 미하루와의 결혼은 구라모치의 음모가 있었다 하더라도 결혼하라고 등을 떠민건 아니니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결혼한 뒤 삶이 팍팍했다 하더라도 불륜을 저지른 것도 명백한 본인 잘못이고요. 또 첫사랑 요코의 자살도 구라모치에게 책임을 묻기는 어려워요. 정황 상 요코의 아이가 구라모치의 아이라는건 증명할 수 없거든요. 결국 진상은 밝혀지지도 않잖아요?
게다가 보석을 파는 다단계 회사 사기, 동서 상사의 금 예탁 사기, 마지막의 찬스 메이크 주식 사기 모두 본인이 돈 때문에 구라모치와 협력한건 사실입니다. 양심의 가책 어쩌구 해도 무려 3번이나 유사한 범죄에 발을 담근 주제에 정의로운 척을 하는건 어림 반푼어치도 없지요. 아무리 바보라도 이 쯤 되면 구라모치를 멀리하는게 당연할텐데, 그런 부분에서의 설득력도 약합니다.

아울러 다지마가 불행에 빠지게 된 계기인 부모님의 이혼은 구라모치가 퍼트린 소문에서 시작되었다는 마지막의 반전도 문제에요. 구라모치가 금수저 다지마에게 열등감을 가진 나머지 그만큼 성공하지 못하면 내 수준으로 떨어트리겠다! 고 결심했다는 설정은 흥미롭습니다. 하지만 맥락을 보면 다지마의 어머니가 시어머니에게 살의를 품었던건 분명한 사실이에요. 시도도 있었고요. 즉, 구라모치가 소문을 낸 건 잘못이라 하더라도 그 소문은 진짜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운이 좋아 범행이 밝혀지지 않았을 뿐, 소문을 내지 않았어도 동일한 결과가 빚어질 수 있었다는 점에서 모든 원인을 구라모치에게 돌리는 건 무리입니다. 그리고 다지마의 집안이 몰락한 결정적인 이유는 아버지가 꽃뱀에 걸려든 탓입니다. 이혼을 하지 않았더라면 꽃뱀을 만나지 않았을 수도 있겠지만 그건 가정일 뿐이지요. 아버지는 결혼 중에도 가정부 아주머니와 불륜을 저지른 호색한이니 별 차이가 없었을 것 같아요.
또 구라모치가 다지마에게 집착했던 이유로 구라모치의 성공 철학 - 성공하려면 내버릴 돌이 필요하니 버리기에 만만한 인재를 항상 곁에 두어야 하고, 그 인재는 믿을 수 있어야 하는 상대여야 한다 - 이 소개되는데 이 역시 합리적이지 못해요. 구라모치가 다지마를 사기 사업에서 내버린 적은 없으니까요. 오히려 다지마는 월급 한 번 밀리지 않고 잘 빠져나간 편입니다. 특히 마지막 사건인 찬스 메이크 주식 사기에서는 구라모치가 마음만 먹으면 다지마를 사기의 책임자, 총책으로 둔갑시키기 어렵지 않았던 점에서 볼 때 더더욱 그러합니다.
수차례 등장하는 다지마의 살해 계획도 반복되어 지루한건 마찬가지입니다. 게다가 청산가리 등 기껏 구했던 독극물은 다 어쨌는지 제대로 설명되지도 않고요.

캐릭터도 분량에 비하면 별로입니다. 특히나 다지마는 묘사된 양에 비하면 알맹이가 너무 없어요. 대표적인게 어린 시절 독에 탐닉했다는 묘사입니다. 덕분에 이지메에서 벗어날 수는 있었지만 딱히 어울리는 결과를 빚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다지마가 반했던 유키도 사기꾼에 대항하던 강단있는 아가씨에서 어느새 구라모치에게 푹 빠져 헤어나지 못하는 나약한 여성으로 전락하고요.
언변좋은 사기꾼 구라모치만 그나마 볼 만 했습니다. 그런데 구라모치의 행각을 보면 다지마에 대해 어떤 생각을 품었건 간에 액면가만 놓고 보면 평균 이상의 친구가 맞아요. 금전적인 면에서는 확실히 그러합니다. 이전 사기 행각에서의 소소한 도움은 둘째치고라도 마지막에 찬스 메이크 주식 사기에서는 거액의 돈을 댓가없이 빌려주고, 회사에서 고액의 연봉을 지급하며 임원 대우로 데리고 있었을 정도니까요.

이렇게 재미는 있지만 설득력없고, 흥미위주의 이야기가 반복된다는 점에서는 무협지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무협지는 주인공이 성장이라도 하지, 다지마는 끝까지 제자리 걸음이라는 점을 보면 그보다 못해 보이기도 하지만요. 흡입력은 대단해서 킬링 타임용으로는 아주 빼어나나 작가의 최고작으로 보기에는 무리네요. 팬이 아니시라면 구태여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제 별점은 2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