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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17

히가시노 게이고의 무한도전 - 히가시노 게이고 / 양윤옥 : 별점 2.5점

히가시노 게이고의 무한도전 - 6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소미미디어

히가시노 게이고의 에세이집. 미공개 단편 소설 3편이 수록되어 있다는 말에 낚여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냥 에세이 모음이라고 하는게 정확한 표현이에요. 히가시노 게이고가 스노보드에 빠져 열중한 2002~2003년의 2년여 동안 연재된 에세이와 그 외 - 해당 시기에 벌어졌던 한일 월드컵 준결승, 결승전 관전 에세이 등 - 의 에세이 몇 편이 거의 전부거든요. 미공개 단편은 에세이를 가장한 단편, 그리고 히가시노 게이고를 비롯한 에세이 속 주요 등장인물들이 그대로 등장하는 짤막한 꽁트에 불과합니다. 솔직히 뭘 이런 책까지 번역해서 출간했나 싶을 정도에요. 그만큼 우리나라에서 인기가 많다는 뜻이기도 하겠지만요.

그래도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작가의 열정과 노력에는 경의를 표할 수 밖에 없겠더군요. 데뷰 이후 매년 2~3권 가량의 책을 수십년간 꾸준히 발표할 정도로 작업량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짬을 내어 스노보드에 대한 열정을 붙태우며 스키장을 다니고 연습하는 과정이 정말 대단하니까요.
여기서 눈여겨 볼 건 히가시노 게이고가 스노보드에 빠져든 이유입니다. 단순히 재미 때문만은 아니라 '향상' 때문이라고 합니다. 타면 탈 수록 어쨌건 조금이라도 나아지는 그런 성취감이 너무나 즐겁다는 것이죠. 아주 작은 것이라도 어제는 못한 것을 오늘은 해냈다는 성취감, 이런 사소한 성취감을 느낄 줄 아는 사람이 성실한 노력가라는건 당연한 일일겁니다. 그러니 매일 몇 시간을 운전해서 스키장을 찾아가 십여회의 활강을 즐긴 뒤 다시 돌아가 작품을 쓸 수 있었을테고요. 아, 이런 노력과 꾸준함은 정말 부럽습니다.

그리고 저같이 겨울 스포츠를 싫어하는걸 넘어서 혐오하는 사람 - <<너버스 브레이크다운>>의 안도의 말을 빌자면 "힘들여 이렇게 추운 곳까지 와서, 판대기를 밟고 눈 위를 미끄러지는게 뭐가 그리 신나는지" 모르겠다는... - 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재미있는 에세이들이기도 합니다. 글 자체를 재미있게 잘 쓰는 작가 답게 별거 아닌 스노보드 당일치기 여행에도 어떻게든 이야기를 집어넣으려는 노력이 특히 눈에 뜨입니다. 실존인물이라도 등장 인물들에게 명확한 캐릭터를 부여하고, 캐릭터에 맞는 이야기를 풀어놓는 과정이 잘 그려지고 있거든요. 어떤 이야기는 그 도가 지나쳐서 에세이가 아니라 아예 소설이 되어버린 이야기도 있기는 하지만요.

대부분의 에세이들 모두 재미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여러 추리 소설가들이 함께 등장하는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니카이도 레이토누쿠이 도쿠로, 신인작가 구로다 겐지 등과 스키 투어를 간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구로다 겐지가 상당한 변태라는게 드러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별 인기가 없는 작가라 다행이다 싶을 정도였습니다. 팬이 읽었더라면 치를 떨 만한 그런 내용이거든요. 그 외에도 아비코 다케마루가사이 기요시라던가, 교코쿠 나쓰히코 등이 언급되는 등 이런저런 작가들이 자주 등장해서 깨알같은 재미를 안겨줍니다.
아울러 골프에 대한 독특한 시각도 기억에 남네요. 골프를 칠 생각이 들지 않는 이유가 이상한 옷 때문이라는 내용인데 꽤 그럴싸 했기 때문입니다. 여자 친구에도 보여줄 수 없는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옷을 입어야 하는 스포츠는 해 봤자 재미있을리가 없다는 논리지요. 요새는 골프 웨어도 상당히 괜찮은게 많고, 지극히 편협한 시각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본인의 취향이나 철학은 확실히 확고하구나 싶더라고요.
한신 타이거즈의 팬으로 느낀 2003년 호시노 센이치의 기적과 같은 리그 우승에 대한 이야기도 야구 팬으로서 와 닿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전에는 패배주의에 사로잡혀 우승 따위는 기대도 안하는, 눈 앞에서 열심히 뛰고 특히 자이언츠나 이겨주면 좋다는 마인드는 우리나라의 모 팀 팬을 연상케 했어요. 야구 팬은 어느 나라에 가도 똑같은가 봅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마지막에 수록된 스노보드 관련 꽁트는 솔직히 완전히 수준 이하였습니다. 그냥 팬 서비스에 불과해요. 스키장 상급자 코스에서 시체가 발견되고, 유력한 용의자는 스노보드 초보자라서 아래까지 내려오는데 오래 걸려서 알리바이가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당연히 용의자는 초보자로 가장한 실력자였지요. 스노보드 타는 방법 - 구피 스탠스와 레귤러 스탠스 - 을 이용한 간단한 트릭이 등장하는데, 이 정도로 범인이 빠져나가길 바라는건 아무리 보아도 무리라 생각되더군요. 피해자 주변만 조사해도 동기는 쉽게 드러날 테고, 그렇다면 트릭이야 어찌 되었건 범인 체포는 문제가 없었을테니까요. 흉기로 소음총을 썼다는 등의 무리수는 단점으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빈틈이 많은 이야기였습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입니다. 에세이는 쉽게 읽을 수 있고 재미도 있습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열정과 노력도 잘 느껴졌고요. 우리나라에서 스노보드가 유행한지도 10년은 더 지난 듯 한데, 스노보드를 좋아하신다면 꼭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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