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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31

이퀄라이저 3 (2023) - 안톤 후쿠아 : 별점 2.5점

로버트 맥콜은 이탈리아 시칠리아의 한 와이너리를 찾아가 그곳의 주인인 마피아를 몰살시켰다. 도둑맞은 무언가를 찾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마피아 보스의 어린 손자로부터 총격을 받아 사경을 헤메게 되었다. 그를 구해준건 시골마을 알타몬테의 의사 엔초였다. 알타몬테 주민들과 어울리며 안정을 찾은 맥콜은 악당 조직 카모라에 의해 괴롭힘당하던 주민들을 위해 다시 응징에 나선다.

덴젤 워싱턴의 중년을 넘은, 노년 액션물 제 3탄. 로버트 맥콜이 악당을 때려잡는게 영화의 핵심인데, 1편이 나온 뒤 거의 10년이 지났지만 묵직한 액션은 여전합니다. 많이 등장하지는 않아도 액션이 다채로우면서도 깔끔하게 연출된 덕분에 기대에는 충분히 값합니다.
촬영도 좋습니다. 이탈리아 현지 풍광을 잘 살리는 느낌의 자연스러움이 인상적이에요. 성인이 된 다코타 패닝이 CIA 요원 에마 콜린즈로 나오는 것도 재미있었습니다. 오래전 보았던, 덴젤 워싱턴이 어린 다코타 패닝을 위해 싸우는 "불타는 사나이" 영화가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악역의 카리스마와 전투력 모두가 현저하게 수준이 낮다는 큰 단점이 있습니다. 이 시리즈 전체의 문제이기도 한데, 그래도 1편에서는 맥콜의 강함이 초반에 드러나지 않았었고 2편에서는 맥콜의 지인을 납치하는 등 어떻게든 비슷한 수준의 싸움을 보이려 노력이라도 했었지요. 그러나 3편에서의 악당들은 맥콜을 잘 알지못하고 무시하다가 맥콜이 시간을 잴 필요도 없이 그냥 쓸려나가고 맙니다. 악당들이 응징받아 마땅할 사악한 놈들이라는건 잘 보여줘서 벌레처럼 죽어나가도 나름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는 있었지만, 이렇게 허약해서야 아무래도 재미가 반감될 수 밖에 없죠.
에마도 왜 등장하는지 모르겠어요. 에마가 추적한 폭탄 테러범 자금이 카모라의 마약 대금이었다는건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로버트 맥콜이 떨쳐 일어나는건 테러 탓이 아니라 알타몬테 주민들을 위해서였으니까요. 에마의 등장보다는 차라리 로버트의 액션을 한, 두 씬 정도 더 넣는게 좋았을거에요.

그래도 시리즈 대미를 장식하기에는 나쁘지 않은 작품이었습니다. 최소한 여러모로 억지스러웠고 액션도 기대이하였던 2편보다는 좋았습니다.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2024/01/29

두산 베어스의 스토브리그와 24년 전망

2023년 두산 베어스의 스토브리그가 마무리되었습니다. 가장 컸던건 양석환 선수와의 FA 계약 체결입니다. 이를 통해 외국인 타자는 1루수가 아닌 선발 주전 외야수를 선택해야 했습니다. 김재환 선수와 양의지 선수가 번갈아 지명타자를 소화한다는 계획까지 포함된다면 더더욱 그러하지요. 때문에 수비에 약점이 있었던 로하스 선수와는 작별할 수 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대신 KT에서 잠깐 뛰었던 라모스 선수와 계약했는데, 트리플A 성적 등을 보면 나쁘지 않은 선택으로 보입니다.
이에 따른 예상 선발 야수진은 외야는 정수빈, 라모스, 김인태, 내야는 양석환, 강승호, 김재호, 허경민, 포수 양의지, 지명타자 김재환 선수입니다. 이승엽 감독이 인터뷰에서 조수행 선수에 대해 언급했던데, 제가 이전에도 썼지만 건강한 김인태 선수와 조수행 선수는 타격으로는 비교가 불가합니다. 조수행 선수는 중후반 대주자, 그리고 중견수 백업으로는 가치가 있지만 주전 외야수로는 솔직히 아니에요. 내야의 박준영 선수도 기대는 크지만 선발 출전 경기가 많을지는 두고 봐야 할 겁니다.
결론적으로 작년과 비교했을 때 크게 기대할만한 부분은 없습니다. 라모스 선수의 빠른 적응, 그리고 절치부심한 김재환 선수의 부활이 키 포인트라 생각되네요. 김대한, 홍성호, 양찬열 선수 등 젊은 야수들이 기회가 왔을 때 확실히 보여주면 더욱 좋을 테고요.

다행히 야수진보다는 투수진은 괜찮습니다. 외국인 투수 두 명은 비교적 안정적이며, 3선발 곽빈 선수도 견고합니다. 4, 5 선발 후보도 많아요. 10승 선발 투수였던 이영하, 최원준 선수에 작년부터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 최승용, 김동주 선수 등이 있으니까요. 선발진에서 탈락한 선수들과 기존 김명신, 이병헌, 박치국, 정철원, 홍건희 선수가 버틸 계투진도 나쁘지 않아요. 오랫만에 기대되는 신인 김택연 선수도 가세할 예정이고요. 김명신, 정철원, 홍건희 선수 등이 작년 혹사와 구속 저하를 이겨낼지가 관건인데, 쓸 수 있는 투수가 늘어난만큼 작년보다는 나아지리라 생각됩니다. 

이렇듯 24시즌은 타선보다는 경쟁력있는 투수력으로 버티는 시즌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하지만 이승엽 감독을 선임한 이유, 그리고 팬들의 기대는 모두 화끈한 공격에 있을겁니다. 작년처럼 계투진 혹사와 발야구에 기대지 말고, 투수들을 잘 관리해주면서 KBO 타격 레전드답게 타선을 살려 화끈한 공격을 보여주었으면 합니다. 시프트 금지 등 호재도 있으니까요. 못하더라도 최소한 LG는 꼭 이겨주면 좋겠습니다.
그럼 24년도 화이팅~ 허슬~두!!

두산 베어스의 22시즌을 마무리하며

2024/01/28

사라진 근대건축 - 박고은 : 별점 3점

사라진 근대건축 - 6점
박고은 지음/에이치비프레스

여러가지 근대 건축물 중 지금은 사라졌거나, 그 원형을 찾기 힘든 건축물들을 당대 사진과 자료를 통해 알려주는 건축사, 미시사 서적. 

목차는 일제 강점기, 한국 전쟁, 그리고 군사 정권과 발전 국가 시대로 구분하고 있는데, 해당 시기별로 많은 건축물을 일람하며 소개하지는 않습니다. 몇몇 건축물 - 일제 강점기의 조선 총독부 청사 (구 중앙청), 조선 신궁, 반도 호텔과 발전 국가 시대의 자유 센터, 그리고 중앙 정보부- 에 집중하는 편이에요. 그리고 이 건축물들이 왜, 어떻게 사라졌는지와 남은 유적과 잔해를 일목요연하게 알려주는 구성을 취하고 있고요. 남산 조선 신궁의 경우, 광복 다음날 일본인들이 주요 건축 부속물 수거 후 일본으로 옮겼고, 남아있던건 한국인들이 파괴했다는걸 알려주는 식입니다. 참배길은 돌계단은 일부가 서울특별시교육청 과학전시관 남산분관 옆으로 옮겨져 남아있다고 하네요.
이 건축물들의 디자인, 양식과 같은 주요한 특징 소개도 상세합니다. 특징적인 곡선 지붕 등 자유 센터를 대표하는 형태는 건물 후면부로, 이는 위정자가 주 출입구로 들어와 건물 후면 내려가는 계단 앞에 서서 건물 후면 아래 광장에 모인 궁중들 위에 군림하는 듯한 효과를 노렸다는군요. 레니 리펜슈탈의 나치 정권 홍보 영화가 떠오르는데, 역시 독재자들이 생각하는건 어디나 다 비슷한가 봅니다.
사진 자료들도 풍성하여 읽는 재미를 더해 줍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건 반도 호텔 영빈관 사진입니다. 일제 강점기 후 이승만 대통령 지시로 외국인 전용 영빈관으로 활용하기 위한 목적으로 호텔을 리노베이션했다는데, 실내 사진이 굉장히 세련되어서 깜짝 놀랐습니다.

그외 여러 일화에 대한 소개도 많습니다. 반도 호텔은 일본인 대재벌 노구치 시타가우가 조선호텔에 숙박하려다 허름한 옷차림으로 문전박대당한 탓에 조선호텔보다 큰 호텔로 바로 앞에 만들게 되었다는 건설 비화가 대표적입니다.
한국 전쟁 때 인천 상륙 작전을 위해 서울 폭격이 진행되었는데, 이 때 주 일본 대학민국공사 김용주가 맥아더와 면담하면서 폭격에서 보호할 구역을 논의했다는건 처음 알았습니다. 고궁, 남대문, 을지로 지역 정도가 무차별 폭격의 대상이 되지 않은건 이 면담 덕분이겠지요. 다른 건축물들을 보호하지 못했고, 파괴된 건물들도 재건하지 못했던건 지금 시점에서 보면 아쉽지만, 당시 전 세계적으로도 최빈국 중 하나였던 대한민국 상황으로는 어쩔 수 없었겠지요.

다만 소개 건축물들이 두서가 없고, 중앙 정보부 소개가 지나치게 긴 등 편집의 문제는 있습니다. 도판이 중요한 책인데 도판 인쇄질도 그리 좋지는 않고요. 해상도 낮은 원본 사진을 그대로 사용한 탓인데, 이런 사진은 후보정을 거쳐 보다 선명하게 소개해주는게 좋았을 것입니다. 
그래도 단점은 사소합니다. 사라져버린 근대 건축물에 대해 쉽게 알 수 있도록 도와주는 좋은 책입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3D, 가상 현실처럼 구현한 다큐멘터리로 만들어도 재미있것 같습니다.

2024/01/27

초대받지 않은 손님들을 위한 뷔페 - 크리스티아나 브랜드 / 권도희 : 별점 2점

초대받지 않은 손님들을 위한 뷔페 - 4점
크리스티아나 브랜드 지음, 권도희 옮김/엘릭시르

"녹색은 위험", "제제벨의 죽음"으로 유명한 크리스티아나 브랜드의 단편집. 5부 구성으로 모두 16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정통 본격물, 범죄물, 심리 서스펜스 스릴러 등으로 수록작 장르도 다양합니다.

그런데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기대했던 정통 본격물의 비중은 무척 적은 탓입니다. 트릭도 거의 등장하지 않으며 추리도 억지스러워서 추리적으로는 점수를 주기 어려운 작품들이 많아요. '기묘한 맛' 장르 느낌으로 마지막 한 줄, 한 문단으로 반전의 매력을 전해주려고 노력한 티는 역력하지만 이 역시 모두 성공한건 아니고요. 그래서 제 별점은 2점입니다.

덧붙이자면, 5부 구성도 1부 코크릴 칵테일을 코크릴 경감 시리즈로만 모아 놓았다는 것 외에는 어떤 의도로 분류하여 구성되었는지 모르겠더라고요. 예를 들어 "살인 게임"은 앙트레로 묶기 어려운, 이 단편집 최고의 메인 요리라 생각되거든요. 오히려 앙트레 선택에 5부 블랙 커피에 수록된 심리물들을 포함시키고, 범죄물을 메인 요리로 묶어 구성하는게 더 일목요연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범죄물도 심리 묘사가 중심이거나 조금 가벼운 이야기와 묵직한 본격물을 구분하여 배치하고요. 제 구성은 다음과 같습니다.

1부 아페리티프(식전주) : 코크릴 칵테일
"사건이 막을 내린 뒤에"
"피를 나눈 형제"
* 기존 구성에서 코크릴 경감의 등장을 알리는 작품 한 편, 그리고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을 선정.

2부 앙트레 선택
"이 집에 축복을"
"수군거림"
"발코니에서"
"더이상 5월 축제는 없다......"
* 심리 묘사 중심의 작품들로 구성.

3부 르 푸아송 (생선 요리)
"말벌집"
"너무나 괜찮은 사람"
"신의 힘"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 말벌집은 '굴'이 사용되어서 생선 요리로 분류했고 다른 작품들은 심리 중심의 범죄물들.

4부 리플렛 프로스펠 (메인 요리)
"살인 게임"
"희생양"
"여기 잠들다"
"회전 목마"
정통 본격 추리 범죄물들.

5부 데세르 (디저트)
"스코틀랜드에서 온 조카딸"
가볍고 유쾌한 이야기.

6부 블랙 커피
"잔 속에 든 독"
도서 추리물로 '커피'가 핵심 소재라는 점에서 블랙 커피로 분류.


마지막으로 수록작들의 간략한 리뷰는 아래에 요약하였습니다.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는 점, 읽으시기 전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1부 코크릴 칵테일.
코크릴 경감이 활약하는, 늙은 형사의 회고담인 "사건이 막을 내린 뒤에", 뺑소니 살인과 정부 살인 사건을 저지른 쌍둥이 형제의 이야기인 "피를 나눈 형제", 성질 고약한 부자 노인이 후처를 맞은 결혼식 날 독살당한다는 "말벌집", 남편의 정부라고 주장하는 여자를 독살한 아내 시점의 도서 추리 소설 "잔 속에 든 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모두 범인의 조작을 코크릴 경감이 간파한다는 작품들로 "사건이 막을 내린 뒤에"에서는 유명 극단의 톱 스타 주연 배우 제임스 드래건의 아내가 살해당했는데, 극단 배우들이 모두 나서 경찰 앞에서 연극을 펼칩니다. 이를 통해 제임스 드래건이 경찰에 연행되지만, 알고보니 범인이 제임스가 아니라 그의 아버지 아서 드래건이었다는게 밝혀집니다.
"피를 나눈 형제"에서는 쌍둥이 형제 둘 중의 한 명이 범인이고, 한 명은 알리바이가 확실히 있었다면 누구를 체포해야 하는지?에 대한 딜레마가 흥미롭게 전개됩니다. 둘 다 자기가 알리바이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를 밝혀내는건 쉽지 않아 보였거든요. 쌍둥이 형제가 서로 상대방의 옷에 증거를 남겼다는 반전도 기발했고, 결국 진흙탕 속으로 서로를 밀어넣어 파멸하는 결말도 깔끔했습니다.
"말벌집"은 1부 수록작 중에서는 제일 처집니다. 1966년 "엘러리 퀸 미스터리 매거진"이 후원한 영국추리작가 협회 회원 대상 단편소설 경연대회 1등상 수상작이라고 해서 기대가 컸는데 말이죠. 이유는 범인 엘레자베스를 체포할 근거가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훈제 연어를 준비하는게 어려웠다'는 말이 그렇게 큰 증거가 된다는건 믿기 힘듭니다. 엘리자베스가 사건을 연출했다는 것도 정황 증거에 불과하며 굴 안에 청산가리 캡슐을 숨겨 먹였다는 트릭도 억지스러웠고요.
"잔 속에 든 독"은 범인 스텔라가 범인으로 몰리자, 임기 응변으로 남편 등을 범인으로 지목한다는 내용으로 도서 추리 소설과 심리 스릴러를 잘 결합한 좋은 작품입니다. 완벽하게 처리한 줄 알았던 독이 든 커피잔이 결정적 증거가 된다는 마지막 한 마디도 좋았고요. 1부 수록작 중에서는 제일 괜찮았어요.

2부 앙트레 선택.
유명한 밀실 트릭이 등장하는 "살인 게임", 일종의 시간차 알리바이 트릭이 등장하는 "희생양", 거짓 증언으로 선량한 히피가 파멸에 이른다는 "더이상 5월 축제는 없다......"의 세 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살인 게임"은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밀실 대도감"에서도 소개되었던 단편이지요. 이전에 다른 단편집을 통해 읽었던 작품이기도 합니다. 범인이 경찰로 변장한 뒤 밀실이었던 현장에 숨어있다가, 밀실 문을 부수고 들어온 경찰 중 한 명으로 위장했다는 트릭이 기발합니다. 마지막에 이야기를 듣던 노인의 한 마디로 그의 정체가 밝혀지는 반전도 서늘했고요. 다만 범죄자의 혈통은 유전된다는 주장이 강하게 녹아들어 있다는건 현재 시점에서 보기에는 낡은 사고방식이라 아쉽네요. 그래도 2부에서는 최고작입니다.
"희생양"은 13년 전, 유명 마술사 미스테리오소가 저격당해 충직한 하인 톰이 대신 죽었던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이야기입니다. 저격용 총의 방아쇠에 묶인 끈에 사과 봉투를 위에서 떨어트린 장치 트릭인 것 처럼 풀어나가지만, 일종의 시간차 트릭이 사용되었습니다. 하지만 트릭이 너무 별로라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범인이었던 경찰이 사과 봉투를 터트려 총소리를 위장한 뒤 진짜 저격은 나중에 벌였다는데, 사과 봉투를 터트려 먼 곳에 있는 사람들까지 총 소리로 착각하게 만들었다는 것 부터가 비현실적입니다. 두 번째 총소리는 어떻게 숨겼는지에 대한 설명도 없고요. 마지막에 소년이 미스테리오소를 살해한다는 결말은 이게 뭔가 싶더군요. 마지막에 반전 요소를 집어넣어야 한다는 강박같은게 있었던걸까요? 2부, 아니 수록작 전체를 통틀어서 최악의 작품이었습니다.
"더이상 5월 축제는 없다......"는 웨일스를 무대로, 아이들이 자신들의 일탈이 드러나지 않기 위해 했던 거짓말에서 시작된 거짓말의 연쇄가 진범의 알리바이를 굳건하게 만들며 선량한 히피 무리의 리더 크리스토가 누명을 쓰고 마는 과정이 숨이 턱턱 막히도록 묘사됩니다. 셜리 잭슨이나 퍼트리샤 하이스미스를 방불케할 정도에요. 정통 추리물은 아니지만 볼만한 범죄 심리 스릴러였습니다.

3부 입가심
"스코틀랜드에서 온 조카딸" 한 편이 소개됩니다. 블란쳇 부인의 진주 목걸이를 훔치려는 컴퍼트 양과 스네이스 씨의 작전, 그리고 이들을 농락하는 진짜 '스코틀랜드에서 온 조카딸' 호지 양이 얽힌 재미난 범죄극이 펼쳐집니다. 진짜 도둑은 하녀 글래디스였다는 마지막 반전도 일품이고요. 그야말로 '입가심'에 적절한 유쾌하면서도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쾌작입니다.

4부 프티 푸르
'프티 푸르'는 한 입 디저트라고 하는데, 수록작들 대부분이 완전범죄 계획 살인물입니다. 한 입에 먹기에는 다소 부담스러운 내용들이네요.
하여튼, "여기 잠들다"는 아내를 사고사처럼 위장하여 죽이려는 제럴드의 치밀한 계획을 그립니다. 아내가 수영을 좋아해서 익사시킨다는 계획은 나쁘지 않았어요. 실제로도 거의 성공했고요. 하지만 알리바이를 위해 고용했던 타이피스트 부처 부인이 제럴드를 죽인다는 반전은 뜬금없었습니다. 부처 부인의 외모라던가 성격 묘사를 덧붙여주었다면 훨씬 좋았을 것 같네요.
"회전 목마"는 자신을 협박하던 빈들 씨를 살해한 하틀리 부인의 이야기입니다. 범죄물로도 좋은 수준이지만, 빈들 씨와 하틀리 부인의 꼬마 아이들이 범죄에 대해 모든걸 알고 서로의 속내를 감춘채 진상을 이야기하는 묘사도 서늘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까"는 악당 호러호러 족장을 살해한 이야기인데, 계획에 따른 완전범죄는 아니었습니다. 범인이 풀려났던건 목격자였던 존스 부인이 유리창 반사로 일으켰던 착각 탓이었지요.
"발코니에서"는 위에서 자신을 내려다보는 이웃 때문에 히스테리를 일으킨 제닝스 부인이 남편을 살해하기에 이른다는 내용의 심리 스릴러 범죄물입니다. 히치콕의 "이창"을 뒤집어 놓은 설정과 제닝스 부인을 바라보는 이웃 시점의 묘사를 곳곳에 삽입하다가, 이웃들이 실존하지 않았다는게 마지막 반전으로 드러나는 결말이 독특했습니다.

5부 블랙 커피
수록작 네 편 중 세 편은 여자의 심리 중심의 이야기입니다. "이 집에 축복을"은 자신의 집에서 태어난 아이를 예수라고 믿는 여자의 심리를, "너무나 괜찮은 사람"은 그야말로 딱 한가지만 제외하고는 너무나 괜찮았던 남자를 죽일 수 밖에 없었던 여자의 심리를, "수군거림"은 자신의 실수로 거짓말을 지어내서 사촌과 아빠를 죽음에 이르게 만든 여자의 심리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작품 "신의 힘"은 완전 범죄물입니다. 범인 에반스 경관의 범행 계획은 그냥저냥이지만, 딸과 손녀를 죽게만든 범인 젤링크스를 옭아맨 설정은 일품이었습니다. 에반스 경관의 거짓 증언으로 젤링크스는 반박하지 못하고 무죄를 받아들인 뒤 협박받을지 모르는 두려움에 떨게 되었다는건 충분히 설득력있는 이야기였습니다.

2024/01/26

수상한 진흙 - 루이스 새커 / 김영선 : 별점 2.5점

수상한 진흙 - 6점
루이스 새커 지음, 김영선 옮김/창비

우드리지 사립학교에 다니는 타마야는 친한 이웃 오빠 마셜과 평소에 다니지 않던 숲 속 '지름길'로 하교하던 중 문제아 채드와 마주쳤다. 채드는 마셜을 미워해서 때리기 시작했고, 타마야는 근처에 있던 진흙을 잡아 채드 얼굴에 문지르고 마셜과 함께 도망쳤다. 그런데 그날부터 타마야의 손에 원인모를 발진이 일어났고, 다음날 채드가 실종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타마야는 홀로 채드를 찾기 위해 숲으로 향했다. 진흙에 빠지는 악전고투 끝에 도와주러 온 마셜 오빠와 함께 채드를 구해 내었다.
사건의 원인은 에르고님이라는 유전자 조작 생명체의 변이가 발생하여 퍼진 탓이었다. 지역 주민들도 전염되면서 필라델피아 전체가 봉쇄되었지만, 결국 치료제 개발이 성공하여 타마야, 채드 등은 건강을 되찾았다.


딸의 논술 교재로 숲에서 탈출하는 타마야 일행을 그린 모험 소설이자, 유전자 조작 생명체 '에르고님'이 변형을 일으켜 인간에게 감염되는 재앙을 그린 재난 소설. 원인모를 발진이 일어나면서부터, 그리고 숲에서 진흙이 퍼지며 고립되지만 탈출을 위해 분투하는 과정에서 빚어지는 서스펜스가 괜찮습니다. 장르물로는 충분한 재미를 갖추고 있어요.
감염을 일으키는 진흙이 대체 에너지 연구를 통해 비롯되었다는 설정도 인상적이었습니다. 꽤 디테일한 묘사를 통해 탄탄한 설득력을 갖추고 있으며, 아주 낮은 확률이더라도 인류에게 해를 끼칠 수 있는 대체 에너지가 필요할까?와 같은 여러가지 생각할 거리도 던져주었기 때문이에요. 정답은 없는 질문이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필요하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원자력 발전'은 일본에서의 대형 사고 이후에도 연구와 설치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문제가 아무리 많더라도 다른 대안들보다는 그래도 안전하고 효율적이기 때문이겠지요. 이 책의 에르고님처럼 자동 생산에 (자가 분열에 따른 증식) 생산 일정도 짧다면 도입을 적극 검토해야 할 겁니다. 변이가 일어날 수 있는 생물학적 방안보다는 명확한 과학적 방안이 우선시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기는 합니다만.

여튼 재미도 쏠쏠하고 담고있는 내용도 나쁘지 않았기에 별점은 2.5점입니다. 단, 어른이 읽을만한 책은 아닙니다. 어른용이었다면 진흙이 광범위하게 마을을 포위하여 마을은 고립되고, 감염병도 많이 퍼져서 채드를 비롯한 여러 명이 처참하게 죽었겠지요. "BM 넥타"가 퍼진 일본처럼요. 결말도 이 책처럼 해피 엔딩은 아니었을겁니다!

2024/01/24

외계+인 2부 (2024) - 최동훈 : 별점 2.5점

<<아래 리뷰에는 반전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인간의 몸속에 가둬진 외계인 죄수의 탈옥을 막으려다 과거에 갇혀버린 ‘이안’(김태리)은 우여곡절 끝에 시간의 문을 열 수 있는 ‘신검’을 되찾고, ‘썬더’(김우빈)를 찾아 자신이 떠나온 미래로 돌아가려고 한다.
한편 이안을 위기의 순간마다 도와주는 ‘무륵’(류준열)은 자신의 몸속에 느껴지는 이상한 존재에 혼란을 느낀다. 그런 ‘무륵’ 속에 요괴가 있다고 의심하는 삼각산 두 신선 ‘흑설’(염정아)과 ‘청운’(조우진), 소문 속 신검을 빼앗아 눈을 뜨려는 맹인 검객 ‘능파’(진선규), 신검을 차지하려는 ‘자장’(김의성)까지 ‘이안’과 ‘무륵’을 쫓기 시작한다.

현재,
탈옥한 외계인 죄수 ‘설계자’가 폭발 시킨 외계물질 ‘하바’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우연히 외계인을 목격한 ‘민개인’(이하늬)은 이것이 시작에 불과함을 알게 된다.
모든 하바가 폭발하기까지 남은 시간은 단 48분,
마침내 시간의 문을 열고 무륵, 썬더, 두 신선과 함께 현재로 돌아온 이안.
외계인에 맞서 하바의 폭발을 막고 사람들을 구해야만 한다!


지난 주말 감상한 영화. 2024년 첫 극장 감상 영화네요. 1부는 넷플릭스로 감상했었는데, 당시 여러모로 바빠서 리뷰를 적지 않았었습니다.

오락 영화로서는 괜찮습니다. 긴장감을 전해주는 전개와 함께 스케일 큰 폭발과 액션이 연이어 펼쳐져서 숨 돌릴 새 없이 흥미진진하게 감상할 수 있었거든요. 마지막 결전을 앞두고 기차가 탈선하면서 벌어지는 파괴 장면은 정말 입이 딱 벌어지는 수준이었습니다. 덕분에 2시간이 넘는 상영 시간을 충분히 즐길 수 있었습니다.
중간중간 개그 요소들도 적절했고 - "이성계가 왕이 되었는가?" -, 무륵이 아니라 아인이 몸 속에 '설계자'가 들어갔다는 반전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중요 내용은 요약하여 제공해주어서 1편을 기억하지 못해도 감상에 무리가 없다는 것도 좋았고요.

그러나 고려 시대 도사, 신선들이 펼치는 액션은 80~90년대 홍콩 영화 느낌이라 별로였습니다. 의상은 물론, 사용하는 무기와 기술들 모두 "천녀유혼" 등을 떠오르게 만들더군요. 과거로 가는게 중요했다면, 고려 시대보다는 70년대 쯤으로 넘어가는게 더 낫지 않았을까 싶어요. 작중 이하늬가 분한 민개인처럼 평범한 현대인(도사의 후손이기는 하나)이 외계인과 맞서 싸울 정도의 무예를 갖추었다면, 다른 현대인들도 가능한 사람들이 등장하게끔 이야기를 만들 수 있었으리라 생각됩니다 ("아라한 장풍 대작전"처럼). 여러모로 설명도 부족하고 억지스러웠던 민개인 역할에 대한 설명도 되었을 테고요.
설명이 부족한건 그 외에도 많습니다. 우왕, 좌왕이 썬더에 의해 만들어진 프로그램이라는걸 잊고 지낸 이유라던가, 무륵이 신검에 가슴이 찔리는 등의 큰 부상을 입고도 죽지 않은 이유, 진작에 외계인들이 우주선과 썬더를 확보하지 않았던 이유 (신검만 있다고 현재로 돌아올 수는 없으니 오히려 이 둘 만 확보해 두었더라면 신검을 찾으려고 그 고생을 하지 않아도 되었음) 등등등.... 5시간 가까운 시간을 할애해도 설명을 충분히 할 수 없었다면 불필요한 소재는 뺐어야 했습니다. 아니, 애초에 1, 2편으로 나눌 필요가 있었는지도 의문이에요. 합치면 5시간 가까이 되는 작품인데, 과연 이렇게까지 길게 끌고갈 이야기였을까요? 길게 끌고간 결말이 신검을 우주선 심장부에 던져넣는 것이었다는 마무리도 시시했습니다. 흥행을 위해서라도 1편으로 만들 수 있게끔 시나리오 단계에서 정리가 필요했었습니다. 여러모로 아쉽네요.

그래도 재미는 있었기에, 그리고 국내에서 이런 SF 판타지 대작을 과감하게 제작해서 나름의 성과를 거두었다는 점에서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제작비를 건지는건 불가능해보이지만, 모쪼록 무운을 빕니다.

2024/01/21

경성크리처 에피소드 8~10 (2차 공개분) (2024) - 정동윤 : 별점 1.5점

먼저 공개되었던 1~7편 이후 나머지 에피소드를 드디어 감상하였습니다.
이전 공개되었던 에피소드는 크리처물로서의 가치는 물론이고, 옹성 병원에 갇힌 장태상 일행의 탈주를 긴박하게 그린 모험물로서의 가치도 높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빚어지는 긴장감이 장난이 아니었으니까요. 그래서 나머지 에피소드들에 대한 기대가 컸었습니다.

하지만 8편에서 장태상마저 성공적으로 탈출한 이후, 다시 옹성 병원에 잠입하여 폭탄을 설치하고 날려버리는 과정은 굉장히 헐겁습니다. 윤채옥이 병원장을 살해하고 옹성 병원으로 다시 끌려갔고, 이를 구하기 위해 장태상이 다시 병원에 잠입하는 등의 전개 역시 병원에 다시 들어가야 할 이유를 억지로 만든 느낌이라 별로였어요. 태상과 채옥의 러브 라인과 마에다 상과 장태상의 사랑(?) 싸움도 지루했고요.
화룡정점은 흑막 마에다 상의 부하들에게 둘러쌓인 장태상과 윤채옥이 칼싸움을 벌이는 장면이었습니다. 어처구니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오더라고요. 액션도 어설프고, 상황도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으니까요. 수십 명이 단 두 명을 쉽게 처리 못하는 것도 말이 안되지만, 총싸움에 왜 칼만 들고 와서 설친답니까? 이 장면을 슬로우모션까지 활용하여 길게 가져가느니, 빨리 탈출한 괴물이 나타나 마에다의 부하들을 쓸어버리도록 하는게 훨씬 나았습니다.
에필로그 직전, 이시카와의 장례식장에 폭탄을 설치하여 마에다까지 함께 날려버린 장면도 황당했어요. 폭탄 테러가 이다지도 쉽다면, 수많은 독립 운동가들은 그동안 뭐했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시즌 2를 처음부터 염두에 둔 듯 설명되지 않는 떡밥들도 제법 있는데, 이 역시 마음에 들지 않았던 점입니다.

그래서 이 후반부만의 별점은 1.5점입니다. 앞으로 이어질 시즌 2는 모쪼록 앞선 에피소드들처럼 긴장감을 가득 살린 전개를 보여주었으면 합니다.

2024/01/20

나는 배당투자로 매일 스타벅스 커피를 공짜로 마신다 - 송민섭 : 별점 3점


유튜브 '수페TV' 운영자가 자기 노하우를 설명하는 투자 설명서. '수페TV'는 구독하면서 좋은 정보를 많이 접했었기에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배당 투자의 개념은 간단합니다. 배당주 중심으로 10년 이상 월 복리로 장기 투자하여, 10년 뒤 안정적인 배당금을 받자는게 전부니까요. 하지만 실제 투자를 하려면 막막합니다. 어떤 주가 좋은 배당주인지, 어떻게 장기 투자를 하면 되는지는 알기 힘든 탓입니다. 
이 책은 이런 초보 투자자를 위해 여러가지 종목과 주요 ETF 및 투자 시뮬레이션을 설명해 줍니다.

이 중 고배당과 배당성장을 구분해서 투자해야 한다는게 가장 도움이 된 정보였습니다. 1억원을 고배당 왕족주 4종목 - 알트리아 (MO), 애브비 (ABBV), 엑슨모빌 (XOM), 리얼티인컴(O) - 과 고배당 ETF JEPI 중심의 고배당 포트폴리오, 그리고 SHCD 중심 (50%) 배당성장 포트폴리오 - 나머지는 ASML홀딩 (ASML), 로우스 (LOW), 펩시 (PEP), 프로로지스 (PLD) - 에 각각 투자했다면, 10년 뒤 고배당 월 배당금은 96만원, 배당성장은 92만원이 됩니다. 고배당은 전체 배당률 평균 5.92%, 5년간 연평균 배당 성장률 평균은 4.56%이며 배당성장의 배당률 평균은 3.27%, 5년간 연평균 배당성장률 평균은 13.78% 기준이고요. 이를 통해 단기 자금을 운용할거라면 고배당 포트폴리오를 운용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 외에도 20일 이동 평균선 이하가 좋다는 배당주 매수 타이밍이라던가, 투자자 목적에 맞는 포트폴리오 소개도 좋았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3점입니다. 실용서라서 그동안의 기준으로 별점을 주기는 좀 애매합니다만, 제게는 도움이 된 부분이 있었기에 배당 투자에 관심있는 분들께 권해드립니다.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의 독서 클럽 멤버들이라면 혐오할 책이긴 합니다만....

아울러 책을 읽고 앞으로 어떻게 투자를 이어갈지 고민해 보았는데, 아무래도 이 책에서처럼 개별 종목을 분석해가면서 투자하기는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변동성을 쫓아갈 자신이 없고, 개별 종목 투자에 실패했을 때의 자괴감도 견디기 힘들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존에 하던대로 ETF인  SCHD와 S&P 500의 비중을 1:1로 하여 적립식 투자를 이어가되, 몫돈이 생긴다면 JEPI를 담아볼 생각입니다. 

2024/01/19

일러스트와 함께하는 유명 건축물 이야기 : Architecture Inside+Out - John Zukowsky.Robbie Polley / 고세범 : 별점 3점

일러스트와 함께하는 유명 건축물 이야기 : Architecture Inside+Out - 6점
John Zukowsky.Robbie Polley 지음, 고세범 옮김/영진.com(영진닷컴)

일러스트와 함께하는 유명 건축물 이야기. 공공 생활, 기념물, 예술과 교육, 주거, 예배의 5개 주제로 구분하여 총 50개 건축물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소개는 간략한 설명글과 함께 대표 사진과 구조를 이해할 수 있는 입체적인 일러스트, 조감도로 이루어져 있고요. 이중 일러스트가 핵심입니다. 사진으로 이해하기 힘든 내부 구조를 그래도 이해할 수 있도록 큰 도움을 주기 때문입니다. 그림으로 내용을 설명해주는, 한마디로 도해(圖解)입니다. 걸작 건축물로 흔히 소개되는 낙수장의 아래 단면도가 좋은 예입니다. 어떻게 폭포와 이어지게 만들어졌는지를 그림을 통해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었어요. 그림의 퀄리티도 높습니다. 아주 근사해요.
메종 드 벨의 특징 중 하나라는 철제 창틀의 기계 장치라던가, 콜로세움의 엘리베이터(?)와 같이 세세한 디테일들도 충실히 소개해줍니다.
베르사이유 궁전처럼 거대한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경우, 단지 계획이나 전체 전경을 소개해주기도 하는데 이 역시 이해를 돕습니다.
제가 직접 방문했던 곳이 도해로 설명되는 것도 반가왔습니다. 아래의 베니스 도제 궁전의 아케이드가 그러했습니다. 이런 정보를 미리 접하고 갔더라면 훨씬 좋았을텐데 아쉽네요.
다른 건축 관련 도서에서 흔히 접해왔던 유럽, 미국 건축물에 치우치지 않고 인도 국회 의사당, 방글라데시 국회 의사당, 나키긴 캡슐 타워, 금각사 등 아시아 건축물들도 많지는 않지만 소개해주는 것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아인슈타인 타워, 타셀 호텔, 슈뢰더 하우스 같은 소규모 건물도 일부 포함되어 있는 점, 그리고 21세기 이후 건축물이 포함된 점도요. 자하 하디드의 런던 아쿠아틱 센터, 뉴욕의 세계 무역 환승센터가 대표적입니다.

다만 3만원이 넘는 고가 도서인데 오타가 간혹 눈에 띄는 문제는 있습니다. 수록된 일러스트, 도해가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지 못하는 건축물이 제법 있고, 도해와 사진이 따로 노는 것도 단점이기는 해요. 도해와 동일한 구도로 사진을 찍었으면 훨씬 좋았을겁니다. 그랬으면 제목처럼 '안과 밖'을 제대로 확인할 수 있었을텐데 말이지요.
 
그래도 보는 동안 눈이 즐겁고, 여러가지 새롭게 안 점도 많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소개된 건축물들을 언젠가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습니다.

2024/01/17

바후발리 2: 더 컨클루전 (2017) - S.S. 라자몰리 : 별점 3.5점

아마렌드라 바후발리는 마히쉬마티의 여왕 시바가미의 뒤를 이을 왕으로 낙점된 국가적 영웅이었지만, 이복동생 발랄라데바의 흉계에 빠져 궁에서 쫓겨난 뒤 죽음을 맞았다. 발랄라데바는 바후발리의 아내 데바세나를 사로잡고, 둘 사이의 아들 마헨드라까지 죽이려했다. 다행히 시바가미의 목숨과 바꿔 살아난 마헨드라는 장성한 뒤, 아버지의 나라를 되찾고 복수를 하기 위해 발랄라데바에 대항하는 군대를 일으켰다. 그리고 발랄라데바와 일기토를 벌여 결국 그를 무찌르는데 성공한다.

넷플릭스로 감상한 인도 영화. 거액의 제작비와 기록적인 흥행도 유명하지만, 아래의 움짤을 비롯한 장면들이 국내에 퍼지면서 유명세를 탔죠.
하지만 움짤처럼 황당무계하기만 한 코믹 영화는 전혀 아닙니다. 인도 역사 속 영웅담을 영화화한 웅장하고 스케일 큰 작품이에요. 우리도 익히 잘 알고 있는 여러가지 고대 신화, 영웅담과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왕의 핏줄이 사악한 친척 탓에 숨어 살다가, 복수와 자신의 자리를 되찾기 위한 전쟁을 일으켜 승리한다는 이야기거든요.

굉장히 뻔한 이야기이라는 약점은 있지만, 거액의 제작비 덕분에 시각적 쾌감은 상당한 수준입니다. 웅장한 배경을 과시하는 촬영도 그렇지만, 바후발리의 놀라운 무공을 보여주는 장면들은 그야말로 기가 막힙니다. 이는 단순히 화끈한데서 그치지 않고, 필요할 때는 필요 이상의 '멋짐'도 엄청나게 뿜어내는 덕입니다. 아마렌드라 바후발리가 아내 데바세나가 성추행을 하려던 자의 손가락을 자른 죄로 법정에 섰을 때, 아내가 잘못했다며 "목을 잘랐어야지!"라는 말과 함께 성추행범의 목을 베는 장면이 대표적이에요. 죽을 때의 모습도 할 말을 잃게 만듭니다. 끝까지 나라를 생각하며 무릎을 꿇지 않고 왕의 모습으로 죽거든요.
특유의 음악과 춤도 적절히 삽입되어 흥겨움을 더해줍니다. 음악도 좋아요!



이전에 감상했던 "RRR"과 이 영화의 장, 단점은 굉장히 비슷한데 이런걸 보면 인도 영화가 무엇인지 좀 알 것 같습니다. 화끈한 액션, 흥겨운 음악, 확실한 권선징악 이야기로 관객들을 사로잡는 '엔터테인먼트' 그 자체인 것이지요. 2시간이 훨씬 넘는 긴 상영시간도 관객들에게 충분한 즐거움을 주기 위한 필수 요소로 보이네요.
개연성 측면에서는 문제가 많지만, 이렇게 '엔터테인먼트' 정의에는 굉장히 충실하기에 추천작입니다. 2시간 넘는 상영 시간을 오롯이 즐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분들께는 유치할 수 있겠지만, 저한테는 완전히 취향 저격이기도 했고요. 별점은 3.5점입니다. 

다만 1, 2부 구성의 작품이 넷플릭스에는 2부만 올라와있는건 많이 아쉽습니다. 내용을 이해하는데에는 별 지장 없었으나, 온전히 영화를 감상했다는 기분이 전혀 들지 않거든요. 1부까지 봤다면 4점 이상도 충분하지 않았을까... 모쪼록 1부도 빨리 올라오기를 바랍니다.

2024/01/14

축제 만세! - 다카기 나오코 / 강소정 : 별점 2.5점

축제 만세! - 6점
다카기 나오코 지음, 강소정 옮김/문학동네

모두 11곳의 일본 지역 축제 참여 경험을 소개하는 일상 여행 먹부림 만화. 제가 무척 좋아하는 작가 다카기 나오코의 신작입니다.

벛꽃 축제나 눈 축제와 같이 유명한 축제는 물론이고 호랑이 춤이 펼쳐지는 하쓰우마 축제, 금붕어 초롱이 가득한 야나이 금붕어 초롱 축제, 로켓을 쏘아올리는 류세이 축제 등 신기한 축제들이 가득하며, 위치도 남에서 북까지 일본 전국을 망라하고 있습니다.
작가의 이전 작품을 좋아하셨다면, 편집자 바바씨와 함께 했었던 히로사키 벛꽃 축제 재도전, "식탐 만세"에 나왔던 작가 아르바이트 시절 주방장의 창작 요리 가게, 작가의 남편과 고향 가족들 등 반가운 소재도 많습니다. 뜨겁게 달궈진 기왓장 위에 녹차 소바를 놓고 계란 지단과 고명을 얹어 따뜻한 메밀 간장을 찍어 먹는다는 야마구치현의 가와라 소바 등 처음 보는 향토 음식들 소개도 알찼고요.

모든 축제가 재미있어 보였지만 딱 한 군데만 가야 한다면, 아오모리현 히로사키시의 히로사키 벚꽃 축제가 땡기네요. 벛꽃이 강에 떨어져 분홍색 길 처럼 보이는 '하나이카다'가 사진만 보아도 굉장히 예뻐서, 직접 보고 싶어졌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한 번 갈 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 바랍니다.
가보고 싶은건 아니지만, 다이욧카이치 축제의 기묘하고 거대한 '카라쿠리' 오뉴도 씨만큼은 한 번 실물을 보고 싶어지더라고요. 아래의 동작이 궁금하거든요! 그러고보니 올해는 "복잡한 기계장치"도 마무리지어야겠네요.....
가보지 못한 곳, 먹어보지 못한 음식을 직접 참여했던 경험을 살려 재미나게 알려주는 작가의 장점이 잘 드러난 책으로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무난무난한 작품이에요. 다카기 나오코 팬 분들께 추천드립니다.

2024/01/13

로봇 소년, 학교에 가다 - 톰 앵글버거, 폴 델린저 / 김영란 : 별점 3점

로봇 소년, 학교에 가다 - 6점
톰 앵글버거.폴 델린저 지음, 김영란 옮김/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맥스가 다니는 뱅가드 중학교에 로봇 퍼지가 등교하게 되었다. 퍼지는 정부에서 추진하는 로봇 통합 프로그램(RIP)의 핵심으로, 기술적 기반인 퍼지 논리를 발전, 완성시키기 위해 학교에 보내진 것이었다. 하지만 퍼지는 등교 첫날부터 시끌벅적한 복도를 걷다가 먹통이 되고 말았다. 연구팀은 퍼지를 완성시키기 위해 맥스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맥스의 도움과 퍼지 스스로의 프로그래밍으로 퍼지는 진짜 '인간'과 같은 생각을 갖게 되었다.
한편 뱅가드 중학교를 철저히 관리하는 인공지능 바바라 교감은 맥스를 퇴학시키려 노력하고 있었다. 맥스가 장래 학업을 방해하는 위험인물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이를 알게 된 퍼지는 맥스를 돕기 위해 자신의 전력을 다한다....


딸 아이의 논술학교 교재입니다. 별 기대없이 읽어보았는데 생각보다 괜찮았어요. 인공 지능의 발전과 '인간성'이 어떻게 비롯되는지, 그리고 인공지능에 '인간성'이 타당한지 등의 심각한 주제들을 인공지능 두 개를 통해 이야기로 잘 풀어나간 덕분입니다.
인공지능의 하나는 바바라, 또 하나는 퍼지인데 바바라는 일체의 오류를 허락하지 않는 수학적인 연산 기계로, 자신의 오류를 인정하지 않고 결론에 맞게 상황을 조작까지 하지요. 이로써 인간적인 판단을 할 수 없는 기계는 전형적인 흑백논리에 의해 큰 문제를 불러올 수 있다는걸 알 수 있습니다. 
반면 퍼지는 오류를 인정하고, 이를 통해 성장해나가면서 점차 인간적인 판단을 내리게 됩니다. 즉, 사람은 실수를 하지만 이를 통해 성장하며 어른이 된다는걸 퍼지를 빌어 알려주는 것이지요. 그래서 완벽하지는 않지만 사람과 함께 살아갈 수 있게 되고요. 반면 인간성은 인공지능, 로봇으로서는 필요한건 아니었기에, 인간의 명령을 듣지 않는 문제도 일으킵니다. 
이렇게 어느 쪽이 옳다는걸 확실히 알려주지는 않는 것과 이러한 퍼지의 반항(?)이 예상치 못한 결말로 이어지는게 마음에 들었습니다. 잘 짜여진 느낌이에요. 인간성을 갖춘 퍼지보다는, 말 그대로 주어진 명령에 충실한 바바라야말로 훨씬 군대에 적합한 인공지능임에는 분명하기도 하고요.

바바라가 학업 성과를 올리기 위해 중학교 아이들을 통제 대상으로 삼는 설정도 인상적입니다. 시스템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그럴듯하게 설명해주는 덕분입니다. 
퍼지가 함정에 빠진 맥스를 돕기위해 벌이는 여러가지 활약, 맥스와 친구들의 활약이 그럴듯해서 모험 소설로도 괜찮습니다.

물론 '퍼지 이론'은 지금 읽기에는 다소 낡은 이론이기는 합니다. 냉정한 전자 계산기같은 기계와 인간의 마음을 가진 로봇의 대결도 친숙한 소재이며, 로봇이 학교를 통제하는 것 역시 "폭력 교실 1999"가 바로 떠오를 정도라 신선하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중국 회사임이 분명한 로봇 회사 순쭈사의 산업 스파이는 등장하지 않는게 좋다 싶을 정도로 불필요한 설정이었고요.
무엇보다도 끔찍한 표지 일러스트와 유치한 제목은 최악입니다. 원제 (Fuzzy)를 살리고 보다 고급스럽게 디자인을 바꾸는게 높을거에요. 요새는 초등학교 고학년만 되어도 좋은 디자인이 뭔지 잘 아는 시대이니까요.
제 별점은 3점입니다.

2024/01/12

일본 현지 아이스크림 대백과 - 아이스맨 후쿠토메 / 김정원 : 별점 1.5점

일본 현지 아이스크림 대백과 - 4점
아이스맨 후쿠토메 지음, 김정원 옮김/클

일본의 대형 제과사의 시판 제품이 아닌, 현지 밀착형 아이스크림 제품을 소개하고 있는 도감. 사진 중심이며 동일 제품의 다양한 변주를 함께 묶어 소개하는 구성 등 모든 점에서 같은 시리즈인 "일본 현지 빵 대백과"(이하 "빵 대백과")와 동일합니다. 

하지만 "빵 대백과" 보다는 별로였습니다. 소개되는 아이스크림들에 대해서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는게 가장 큽니다. 빵은 우리나라에서는 접하기 힘들고, 맛이 궁금한 빵들이 많았는데 여기 소개된 아이스크림들은 대체로 맛이 예상이 되었던 탓도 큽니다. 예를 들어 아래 나가사키의 카스텔라와 아이스크림을 결합한 카스텔라 아이스크림은 분명 맛있겠지만, 그 맛은 충분히 짐작이 되거든요. 저렴한 카스텔라와 투게더 아이스크림으로 비스무레하게 만들 수도 있을테고요.


상당한 분량으로 소개되는 아이스모나카는 '싸만코' 맛과 별로 다르지 않아 보였습니다. 빙수들도 마찬가지고요. 맛이 쉽게 연상되지 않는건 아래의 철 아이스 정도입니다만, 그리 먹고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네요.



또 "빵 대백과"는 삼각 샌드위치를 대각선 45도로 컷팅한 이유 등 여러가지 빵들의 탄생 비화와 같은 역사와 정보도 여러가지 알려주었던 반면, 이 책은 단순히 지역 특산품 소개에 그칩니다. 기대했던 정보는 말차가 들어간 소프트 아이스크림의 원조가 아래 스이교쿠엔의 '그린소프트'라는 것 정도 뿐이었습니다

소개되는 가게와 아이스크림들이 일본 지방에 특화되어 있다는 것도 단점입니다. 가고 싶어도 가기 힘든 곳들이 대부분이니까요. "빵 대백과"처럼 도쿄 중심의 가게도 몇 군데 소개해주는게 훨씬 좋았을겁니다.
 
그래서 제 별점은 1.5점입니다. 특정 분야에 특화된 도감임에도 불구하고, 제공하는 정보가 별로 매력적이지 못해서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그래도 휴양지 오키나와라면 한 번 가 볼 만하다 싶은데, 언젠가 가게되면 아래의 히가시 식당, 후지야는 꼭 들려볼 생각입니다. 마리야 유업 제품도 먹어보고요. 그게 과연 언제가 될지.....

2024/01/10

인페르노 (2016) - 론 하워드 : 별점 1.5점

"암호를 풀지 못하면 지옥의 문이 열린다!"
전세계 인구를 절반으로 줄일 것을 주장한 천재 생물학자 ‘조브리스트’의 갑작스러운 자살 이후 하버드대 기호학자 ‘로버트 랭던’은 기억을 잃은 채 피렌체의 한 병원에서 눈을 뜬다. 담당 의사 ‘시에나 브룩스’의 도움으로 병원을 탈출한 랭던은 사고 전 자신의 옷에서 의문의 실린더를 발견하고, 단테의 신곡 [지옥편]을 묘사한 보티첼리의 ‘지옥의 지도’가 숨겨져 있음을 알게 된다. 하지만, 원본과 달리 지옥의 지도에는 조작된 암호들이 새겨져 있고, 랭던은 이 모든 것이 전 인류를 위협할 거대한 계획과 얽혀져 있다는 것을 직감하게 되는데…

거대한 음모를 밝혀낼 유일한 단서
단테의 지옥은 소설이 아니라 예언이다!


연초에 볼거 없나 싶어 넷플릭스에 들어갔다가 충동적으로 보게 된 작품.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에 이은 로버트 랭던 시리즈 제 3탄으로 "천사와 악마"는 원작만 읽고 영화는 보지 않았는데, 이 작품은 원작을 읽지 않고 영화를 보게 되었네요.

로버트 랭던 교수가 기억을 잃은 채 여러 조직에게 쫓기면서 암호를 풀어나가는 중반부까지는 흥미로왔는데, 시에나가 조브리스트의 연인임을 밝힌 이후부터는 아쉬움 투성이입니다. 이야기의 개연성도 많이 부족했고요.
가장 이해가 되지 않았던건 왜 랭던 박사를 기억 상실처럼 속여서 암호를 해독하게 만들었냐는 것입니다. 바이러스를 없애려고 하는 WHO는 바이러스에 대해 아무런 단서가 없었어요. 조브리스트는 자살했으니 시에나가 랭던 박사를 속여서 암호를 풀게 하지 않았다면, 바이러스의 위치는 끝까지 드러나지 않았을겁니다. 바이러스 확산을 앞당기기 위해서 위치를 알아내야 했다고 설명되는데, 앞당겨야하는 합당한 이유는 정작 설명되지도 않고요.
조브리스트가 바이러스의 위치를 구태여 암호로 남긴 이유도 모르겠습니다. 아무도 모르게 작전을 성공시키려면, 위치도 영원히 숨겨놓는게 당연하잖아요? 단테의 신곡 속 지옥을 활용한 암호로 남긴 이유도 알 수 없으며, 해석도 억지스럽기 짝이 없었습니다.
마지막에 바이러스를 둘러싼 짤막한 액션도 별로였습니다. 톰 행크스가 소화하기에는 어색했기 때문입니다. 나이가 많이 들어보인 탓이지요. 흐름상 바이러스가 유출되지 않을거라는 확신도 들어서 긴장감도 전혀 느낄 수 없었고요.

이탈리아 피렌체를 중심으로 유명 건물들과 작품들을 활용한 배경은 멋있었지만, 그 외에는 건질게 없네요. 단점만 가득한 작품으로 제 별점은 1.5점입니다.

2024/01/07

오늘 한잔? - 하이시 가오리 / 안혜은 : 별점 3점

오늘 한잔? - 6점
하이시 가오리 지음, 안혜은 옮김, 아사베 신이치 감수/이다미디어

'애주가 의사들이 권하는 최강 음주법'이라는 소갯글에 혹해서 읽게된 책. 애주가 의사들이 풀어낸 올바른 음주 방법 가이드로 술을 좋아하는 애주가라면 관심을 가질만한 정보를 가득 담고 있습니다. 숙취를 예방하는 음주법이 대표적입니다. 숙취 예방을 하려면 술이 위에서 체류하는 시간을 늘려야 합니다. 혈중 알코올 농도의 상승을 완만하게 만드는게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름'이 많은 음식을 안주로 같이 먹는게 좋다는군요. 대표적인게 치킨입니다. 치즈, 낫토도 좋으며 위벽 보호를 위해서는 음주 전 미리 우유를 마시는 것 보다는 양배추를 먹는게 도움이 됩니다. 
또 숙취 예방을 위해서는 간이 알코올을 해독하는 능력을 알고, 이에 맞춰 음주를 하는게 중요합니다. 1시간 동안 분해 가능한 순수 알코올 양 (술에 함유된 에탄올의 양으로 도수/100*마신 양(ml)*0.8)은 '체중*0.1g'이라네요. 저는 7g이니 한 시간에 맥주 500cc 1/3이 적당량인 셈입니다.

병에 걸리지 않는 음주법도 알아두면 좋은 정보입니다. 일본인 기준, 적정 주량은 순수 알코올로 하루 20g (맥주 500cc 한 잔, 와인 2잔 정도) 입니다. 일주일 총량으로 이 기준을 지켜야 하며, 일주일에 이틀 이상 '휴간일'도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과한 음주 후 구토가 하고 싶어질 때는 참으면 안됩니다. 자연스러운 생체 반응에 따르는게 좋으니까요. 하지만 구토는 식도가 위산에 손상될 수 있으므로 구토할 정도로 술을 마시는건 지양해야겠지요.
그리고 술과 함께 약을 먹는건 절대로! 안됩니다. 약은 원래 절반 정도 대사되는걸 전제로 처방되는데, 간에서 약과 알코올을 동시 처리해서 약리 효과가 지나치게 커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대사의 절반을 알코올이 가져가므로). 그래서 음주 후 약을 먹어야 하면 최소 3~4 시간은 지나야 한다네요.

어떤 술이 어디에 좋은지?에 대한 정보도 실려있는데 고구마로 만든 전통 소주는 혈전 용해 물질을 증가시키며, 레드 와인 속 폴리페놀은 심질환과 동맥경화 예방 효과가 있다고 하네요. 레드 와인의 레스베라트롤과 쓴 맛 나는 맥주 속 이소알파산은 치매 예방에도 효과적이고요.
이외에 만취 때 뒷담화가 하고 싶어지는 이유는 전두엽이 마비되기 때문이며, 필름이 끊겨도 집에 찾아갈 수 있는 이유는 고정된 장기 기억 덕분, 술은 마실 수록 세지는게 아니라 무조건 (100%) 유전자에 의해 결정된다는 등의 재미있는 정보가 많습니다. 음주 후 목욕할 때 '히트 쇼크'가 와서 사망할 수도 있다는건 추리 소설의 트릭으로 사용해도 좋아 보였어요.

비슷한 조언이 반복되며, 관심이 없을 소재도 일부 섞여 있다는 단점도 있으나 여러모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이 책이 제공해 준 정보에 따라 앞으로는 한 주에 와인 1병 정도를 치즈 안주와 함께 즐겨볼까 합니다.

2024/01/06

필요의 탄생 - 헬린 피빗 / 서종기 : 별점 3점

필요의 탄생 - 6점
헬렌 피빗 지음, 서종기 옮김/푸른숲

냉장고 도입에 따른 가정의 변화를 알려주는 과학사, 미시사, 인문학 서적.

냉장고 도입의 역사는 얼음과 아이스박스에서 시작됩니다. 가정 내에서 얼음을 사용한 역사가 생각보다 오래되었더군요. 17세기에 시작되어 18세기에는 귀족들 계층에 확고하게 자리잡았고,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에는 일반 가정에도 보급되었다고 하니까요.
그리고 유명한 19세기 영국의 만국 박람회에 여러가지 제빙기의 등장 후 모든게 바뀌었습니다. 얼음을 언제든지 대량으로 생산하는 시대가 열리자 저온 유통 체계가 자리잡아서 식료품 공급망에 엄청난 영향을 줬습니다. 한 마디로 신선한 식품들이 계절과 지역에 상관없이 전 세계 곳곳에서 값싸게 거래되는 세상이 된 것이지요.

이런 상황에서 가정용 냉장고가 도입된건 필연적인 흐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이 유럽보다도 보급은 훨씬 빠르고 광범위 했습니다. 이유는 20세기 초 근교 주택이 성장하여, 미국의 주택 크기가 계속 커진 덕이 큽니다. 그래서 실내에 냉장고를 충분히 설치할 수 있었거든요. 반면 유럽의 주택 크기는 그대로라 냉장고 크기는 작을 수 밖에 없었을 뿐더러, 영국의 경우는 식품 저장고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어서 가정 내에 냉장고를 들이기가 여의치 않았다고 하네요. 1953년에도 영국 전체 가구의 5% 정도만 냉장고를 보유했다고 할 정도로요. 그러나 이후 신규 주택 단지에 냉장고가 기본 설치되고, 중앙 난방의 보급으로 식품 저장고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된 등의 이유로 냉장고 보급은 가속화되었습니다. 음식의 보존 기간을 늘리기 위한 각종 첨가물이 금지된 것도 한 몫 단단히 했습니다. 건강을 강조한 광고도 이런 분위기를 이끌었고요. 심지어 1950년대 뉴질랜드에서는 냉장고에 보관하지 않은 우유를 파는게 범법행위에 해당하기도 했다니, 보급될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인겁니다.

그 외에도 냉장고 문 안쪽에 선반을 단 발명 특허는 사장될 뻔 했다던가, 선반 특허를 반격했던 회전식 선반은 좋은 아이디어였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사장되었다, 냉장고 소리를 감추기 위해 라디오를 다는 발명도 있었다는 등 소개되는 냉장고 관련 잡학들도 재미있었어요. 그 중 냉장고에 음성 메시지를 남기는 발명은 최근에서야 여러가지 센서와 칩으로 가능했을 기술같은데, 이미 1970년대에 카세트 테이프 레코더를 이용해서 구현했다는게 놀라왔습니다.

'냉장고'하나만으로 미국과 유럽의 주거 환경, 가정 내 상황, 그리고 미국의 교외화 현상 등을 설명할 수 있다는게 인상적이었던 독서였습니다. 냉장고와 냉동 기술이 핵심 이유는 아니겠지만 최소한 영향을 미쳤다는건 부인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이렇게 하나에 대해 깊이 파고 들면, 관련된 다른 것들에 대해 이해하기 쉬워진다는게 미시사의 묘미가 아닐까 싶군요. 별점은 3점입니다.

2024/01/05

검은 황무지 - S.A. 코스비 / 윤미선 : 별점 3점

검은 황무지 - 6점
S. A. 코스비 지음, 윤미선 옮김/네버모어

<<아래 리뷰에는 결말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보러가드는 어머니의 병원비와 딸의 대학 등록금 등 급전이 필요해서 로니의 보석상 다이아몬드 강탈에 참여했다. 로니와 콴의 실수로 엉망진창이 된 와중에도 보러가드의 빼어난 운전실력 덕분에 다이아몬드는 훔쳐냈다. 그러나 다이아몬드는 뒷세계 거물 레이지의 것이었고, 레이지는 강도단을 붙잡아서 경쟁자 셰이드의 플래티넘 코일을 훔쳐오라고 협박했다. 보러가드는 혼신의 힘을 다해 코일을 성공적으로 탈취해 왔지만, 로니가 배신해서 코일을 빼돌렸고 보러가드의 사촌 켈빈마저 살해했다.
배신을 알게 된 레이지는 보러가드의 가족을 납치하려고 했고, 이에 보러가드는 로니와 레지 형제를 죽이고 코일을 되찾은 뒤, 가족을 지키고 복수를 하기 위해서 레이지와 마지막 결전을 준비하는데....


"타임지에서 선정한 역대 최고의 추리, 스릴러 소설 100선"을 통해 읽게 된 작품. 두뇌파 악당이 주인공이며, 그가 세운 계획에 따라 벌어지는 여러가지 범죄들이 이어집니다. 조금 어려운 말로는 피카레스크 하이스트 스릴러, 쉬운 말로는 악당 범죄 활극이지요. 한마디로 말하자면 흑인 버젼의 "악당 파커" 시리즈입니다.

하지만 전형적인 피카레스크 물과는 큰 차이점이 있습니다. 주인공 보러가드는 온갖 범죄를 저지르고 살인도 서슴치 않는 악당이기는한데, 그가 범죄를 저지르는건 모두 가족 때문이며 마지막에는 가족을 위해 스스로 사라질 결심까지 한다는 점입니다. 가족을 다치게 하지 않기 위해서요. 물론 마블 세계관의 킹핀처럼 '내 가족에게는 따뜻하지만 반대하는 자들에게는 잔인한' 악당도 있지만 '보러가드'는 삶에 찌든 소시민으로 가족을 위해 싸우는 '아버지'의 모습을 강하게 보여줍니다. 탁월한 묘사는 이런 모습을 더욱 생생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해 주고요. 반면 '버그'로서는 피도 눈물도 없는 악당으로 범죄 계획을 세우고, 자신을 괴롭힌 악당들에게 하는 복수는 처절합니다. 이렇게 악당 '버그'와 좋은 아버지 '보러가드'라는 이중적인 면모를  이상하지 않게 잘 그려낸 솜씨가 탁월했니다.

범죄물로서도 평균 이상입니다. 일단 스릴러로서의 전개가 발군입니다. 보러가드에게 끊임없이 위기가 닥치는데 정말 읽는 내내 손에 땀을 쥐게 만들었습니다. 이게 연재물이었다면 다음 호를 기다리기 힘들었을 것 같을 정도였어요.
'하이스트' 물로서도 충분한 재미를 가져다 줍니다. 다이아몬드 강도 사건, 코일 탈취 사건, 그리고 마지막 레이지와의 결전이라는 세 개의 큰 작전 모두 계획부터 성공하기까지의 과정이 세밀하게 설명되는 덕분입니다. 모두 보러가드의 운전 실력이 핵심이라는 독특함도 좋았습니다. 다이아몬드 강도 사건에서 고가도로로 도주한 뒤 뛰어내린다던가, 코일을 탈취할 때 코일이 실렸던 트럭을 더 큰 트럭 안으로 몰아 넣어 숨기는 식이거든요. 마지막에는 레이지를 끝장내기 위해 애차 더스터를 몰고 카 체이스를 벌이고요.
보러가드의 정비 기술도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다이아몬드 강도 사건 때에는 이산화질소식 촉매 시스템을 엔진에 장착해서 빠른 속도를 냈으며, 강철판을 용접하여 추락 시 충격을 흡수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코일 탈취 때에는 달리면서 밴이 트럭 안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트럭 꽁무니에서 경사로가 나오도록 개조했고요. 레이지에게 준 벤에는 원격 조종 폭탄을 설치하여 폭발시켰습니다. 이런 요소들은 범행 과정에서 반전처럼 등장해서 재미를 더해주며, 설명도 충분해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자동차에 대한 상세한 설명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등장하는 거의 모든 차는 차종에 대해 무조건 언급해줄 정도인데, 작가가 자동차에 대해 남다른 애정을 지니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 중에서도 아버지의 유물로 또 다른 주인공으로 보이기까지 하는 '더스터'는 무슨 차인지 궁금해서 좀 찾아보았는데, "Plymouth Duster"로 1970년대 생산된 자동차더군요. 전형적인 '아메리칸 머슬' 입니다. 보러가드, 아니 버그와 참 잘 어울리네요. 가족에 위기가 닥쳐도 포기하지 못할 정도로 애정을 보이지만, 복수를 끝낸 뒤 폐차시킨다는 결말까지도 뭔가 미국적이고 마초적이었고요.

하지만 걸작 하이스트 소설로 보기에는 작전은 평이한 편입니다. 신기에 가까운 운전 실력이 알파이자 오메가로 그렇게 치밀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아요. 대단한 세력을 지닌 듯한 악당 레이지의 조직이 보러가드 한 명에 의해 괴멸되는 결말도 별로였습니다. 여기에서야 말로 수와 화력의 열세를 뒤집을 치밀한 작전이 필요했는데, 단지 '폭탄'으로 모든걸 해결한다는건 지나치게 시시했거든요. 악당 조직이 이 때 한 곳에 모두 모인다는 설정도 억지스럽고요. 최소한 보스 레이지가 직접 나서서 트럭을 찾으러 갈 이유는 없잖아요? 전형적인 헐리우드 액션 스릴러 스타일의 결말이었습니다.

그래도 단점은 사소합니다. 범죄 소설로서의 재미만으로도 별점 3점은 충분합니다.
덧붙이자면, 보러가드가 흑인이지만 인종 차별에 관련된 내용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 것도 좋았습니다. 어떤 가치관, 사상은 전혀 담겨있지 않은 순수한 오락물이거든요.

2024/01/03

경성크리처 에피소드 1~7 (1차 공개분) (2023) - 정동윤 : 별점 2.5점

안녕하세요! 2024년 새해가 밝았네요. 찾아주신 분들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2024년 첫 포스트는 요새 가장 뜨거운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리뷰입니다. 연말 연휴 기간에 감상하였습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재미있었습니다. 크리처 모험물은 굉장히 뻔한 장르물인데, '일제 강점기'라는 시대와 '일본군에 의해 폐쇄된 병원'이라는 공간이라는 무대에서 비롯된 변주가 아주 괜찮았어요. 시대적 배경은 장태상이 목숨을 걸고 병원에 잠입하는 이유 - 막바지에 몰린 일본에 의해 모든걸 잃을 처지가 되어서 - 라던가 일본군이 잔혹한 생체 실험을 거듭하는 이유 - 패전을 뒤집기 위해? - 와 같은 핵심 설정을 잘 설명해주며, 병원에서 이루어지는 탈출극도 여러가지 조건 - 장태상과 관계된 인물이 내, 외부에 다수 있었다는 등 - 덕분에 굉장히 흥미롭게 전개되기 때문입니다. 장태상의 탈출 계획도 헛점은 많지만 여러 액션들과 함께 그럴듯하게 펼쳐져 손에 땀을 쥐게 만들고요. 한 마디로 크리처 모험물 장르로는 손색없는 수준입니다.
돈도 많고, 싸움 실력도 빼어나고, 머리도 비상한데다가 경성 북촌의 핫가이다운 잘생긴 외모도 빼 놓을 수 없는 위트 넘치는 완벽남 장태상 캐릭터도 좋았습니다. 제 취향에 딱 맞았기 때문입니다. 박서준도 적역을 맡은 느낌이에요.

물론 단점이 없지는 않습니다. 셋트 티가 물씬나는 미술, CG는 기대 이하였습니다. 특히 이 작품의 알파이자 오메가인 괴물의 강력함이나 무서움이 제대로 표현되지 못한건 큰 단점이에요. 질소로 쉽게 잡을 수 있다는 설정도 좀 곱씹어봐야 하지 않았을까 싶고요.
이야기 개연성도 부족한 부분이 많으며, 분량 낭비에 가까운 설정과 장면도 제법 됩니다. 대표적인게 애국단 멤버들이지요. 왜 나온건지 모르겠더라고요. 괴물이 윤채옥의 모친이었다는 약간의 반전도 뻔했습니다. 한국적 신파도 과한 편이에요. 
배우들도 모두 명배우들이나 일부 배우들의 일본어 연기는 부족하다는게 느껴져서 거슬렸습니다. 

하지만 재미 측면에서는 합격점입니다. 일부 매체의 혹평은 이해가 안되네요. 장르물로는 차고 넘치는 수준인데 말이지요. 별점은 2.5점입니다. 다음 에피소드가 벌써부터 기대됩니다. 도대체 누가 약을 먹었을까요? 윤채옥이 모친처럼 괴물이 될까요? 아기를 가진 명자가 괴물을 낳게 될까요? 아...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