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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31

2012 내 블로그 리뷰 총결산

2011 내 블로그 리뷰 총결산

아홉번째 블로그 결산 보고.
2012년 읽은 책 중 리뷰를 남긴 책은 추리 / 호러 장르문학 47권, 기타 장르문학 8권, 역사서 15권, 디자인 및 스터디 도서 4권, Food 및 구루메 관련 도서 4권, 기타 도서 17권으로 모두 95권입니다.
작년보다 좀 늘기는 했는데 결산의 기준이 될만한 10권 이상 읽은 분야는 추리, 역사서, 기타 도서 정도네요.  

2012년 베스트 추리소설 :
<독거미>
단평 : 기묘하고 독특하며 고급스러운 유럽스타일에 짧다는 장점까지!

올해는 추리소설 쪽은 읽은 양에 비하면 흉작이었습니다. 별점 4점짜리는 없고 3.5점 짜리 작품도 <살해하는 운명카드>와 이 작품뿐이었으니까요. 한국 쟝르문학에 대한 애정으로 가산점이 부과되었던 <살해하는 운명카드> 대신 이 작품을 올해의 베스트로 꼽습니다.

2012년 워스트 추리소설 :
<마리오네트의 덫>
왜 이 작가가 일본에서 인기 있는지 또다시 고민하게 만들다.

두말할 필요도 없는 수준 이하의 작품이었습니다. 아무리 수준과 인기는 별개라 하더라도 대표작이라는 이 작품의 수준도 이 정도라면 도대체 인기의 비결이 뭔지 궁금해 질 수 밖에 없네요.


2012년 베스트 역사 도서 :
<꼿 가치 피어 매혹케 하라>
단평 : 내용도 흥미롭고 자료적 가치도 높다.

별점 4점짜리 역사서는 이 작품과 <조선의 탐정을 탐정하다>의 두편이었습니다. 둘 중 보다 대중적이고 흥미로운 주제를 다룬 이 작품이 올해의 베스트입니다.

2012년 워스트 역사 도서 :
별점 2.5점 이하의 작품이 없기에 생략합니다. 모두 일정 수준 이상의 작품이었어요.


2012년 베스트 기타 도서 :
<그곳은 소, 와인, 바다가 모두 빨갛다>
단평 : 지식과 재미의 두마리 토끼를 다 잡은 보기드문 결과물.

2012년 워스트 기타 도서 :
별점 2점 밑의 작품이 없기에 생략합니다. 2점 정도면 그래도 평작은 되니까요.


2012년 베스트 디자인 도서 (번외)
<펭귄 북디자인 1935-2005>
단평 : 올해 유일한 별점 5점짜리 작품.

출판분야 종사자나 최소한 관련 분야에 관심이 있는 분들, 특히나 예비 편집 디자이너에게는 필독서! 제가 대학 다닐 때 이 책을 읽었더라면 인생이 아마 바뀌었을지도....


결산평 :
작년보다는 많이 읽었기에 나름 만족합니다. 일종의 개인적인 목표라 할 수 있는 100권을 채우는데에는 실패했지만 그래도 근접한 성과를 보이기도 했으니까요. 또 추리소설 리뷰 블로거를 표방하고는 있지만 추리소설에 대한 극심한 편식은 항상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만큼 올해는 다른 책들도 비교적 관심있게 들여다 보았다는 점도 마음에 듭니다. 

그나저나 9년 째라니 블로그도 운영한지 참 오래되었군요. 여전히 마이너 중의 마이너라는 것은 슬프지만 그것보다도 더 큰 문제는 이글루스 서비스가 이젠 정말로 어떻게 될지 잘 모르겠다는 것인데 10년을 채울 때까지는 버텨주면 좋겠네요. 아니면 최소한 DB 백업 기능 정도는 유료로라도 제공해 주어야 할텐데 말이죠...

어쨌건 이 블로그에 들러주시는 여러분들도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내년에는 올해보다 더 많은 것을 이루고 성취하시는 한해가 되셨으면 합니다. 제 블로그를 들러주신다면 일상 생활의 소소한 것에도 관심을 가지시는 진짜 디테일한 분임이 분명하니 내년에는 정말 잘 되실겁니다~! 해피뉴이어~!

청춘의 증명 - 모리무라 세이치 / 최고은 : 별점 2점

 

청춘의 증명 - 4점
모리무라 세이치 지음, 최고은 옮김/검은숲

<주의. 하기 리뷰는 일부 내용의 소개 및 주요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전쟁 직후, 가사오카는 연인과의 데이트를 덮친 괴한에게서 자기를 구해준 경찰을 도와주지 못한 일로 연인과 헤어진 뒤 경찰에 투신하여 형사가 된다. 오로지 그 사건의 범인 "구리야마"를 체포하기 위해서....
그리고 20여년 후, 산에서 피살 사체가 발견되고 사체의 주요 특징과 투병 중에도 현장에서 주요 증거를 가지고 온 가사오카의 노력으로 피해자가 "구리야마"라는 이름의 전과자임이 밝혀진다.


모리무라 세이이치의 대표작인 <증명 시리즈> 3부작의 완결편.
<인간의 증명>과 <야성의 증명>과는 다르게 국내 초역 / 출간된 작품으로 개인적으로도 오래전부터 읽기를 희망해 왔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운이 좋게도 국내 최고의 추리동호회 "하우미스터리"에서 진행했던 이벤트에 당첨되어 읽게 되었네요. 이 자리를 빌어 먼저 관계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증명 시리즈>의 명성에 어울리지 않는, 솔직히 기대에 전혀 미치지 못한 작품이었습니다...
첫번째 이유로는 형사 가사오카가 천신만고끝에 신원을 밝혀낸 피살사체는 사실 가사오카가 찾아 헤메던 원수였다는 설정부터가 작위적일 뿐더러 그 외의 수사의 과정 모두가 운과 우연에 의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피해자가 식사를 같이 한 사람을 찾아내는 과정, 거기에 얽힌 존 덴버의 노래와 사연, 유력한 용의자 야부키가 떠올린 또다른 관계자, 공사 중 우연히 발견된 등 수사가 벽에 부딪힐만 하면 주요한 증언이나 단서가 튀어나온다니 정도가 지나쳤어요.
게다가 형사 가사오카 부부 - 주요 참고인인 전 특공대원 출신 야부키 부부 - 요정 주인인 용의자 이시야마 / 기다 부부 가족이라는 달랑 세 가족 관계 안에서 모든 이야기가 이루어지게끔 만든다는 설정도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형사 가족의 아들이 용의자 가족의 딸과 결혼하게 되는데 용의자 딸이 주요 참고인이자 형사의 전 애인 아들과 불륜관계이며 이 전 애인 아들이 형사를 죽게 만든다... 라는 설정이거든요. 또 전 애인 아들이 형사를 죽이는데 사용한 자동차는 용의자가 사용한 뒤 증거인멸 차원에서 처분한 것이며 가장 중요한 증거가 된다는 깨알같은 우연까지! 이 정도면 국내 막장 드라마들도 감히 쳐다보기도 어려운 수준의 막장이 아닐까 싶네요. 결말도 장대한 내용에 어울리지 않게 한두페이지로 다 정리해버리는 식이며 내용도 막장에 어울리는 황당한 것들이라 마지막까지도 어이가 없었고 말이죠.

또 추리소설다운 발상이나 트릭 역시 없어서 무척 실망스러웠습니다. 단지 발품을 파는 수사와 증언에 의지할 뿐 별다른 트릭이 등장하지도 않거든요. 공소시효가 지난 시점에서 기다가 구리야마를 살해한 이유를 찾기 어렵다는 점 - 구리야마가 협박을 하더라도 사회적 지위 등을 놓고 볼 때 설득력을 지니기 어려웠을 것 - 등 주요 동기도 설득력이 없어서 점수를 주기 힘들게 만듭니다.

마지막으로 전체적으로 많이 낡았다.. 라는 느낌이 많이 들게 만드는 것도 단점이었어요. 전개도 그렇지만 중간에 나오는 야부키의 특공대원 시절 에피소드와 구리야마와의 관계, 기다가 가사오카 도키야의 아버지의 직업을 듣고 보이는 반응 등 낡아빠진 전형적 클리셰들은 지금 읽기에는 너무 뻔했습니다. 특히 야부키의 에피소드는 비중에 비하면 너무 길어서 아예 별개의 이야기로 느껴질 정도였어요.

그래도 당대의 인기작가다운 읽는 재미 하나만큼은 그런대로 있는 편이기는 하며 "청춘"에 대해 작가가 고민한 결과를 전달해 준다는 점은 괜찮았습니다. 예를 들면 등장인물들의 입을 빌어서 청춘은 짧다, 청춘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청춘은 자유롭게 누려라, 단 청춘은 비겁하면 안된다는 내용을 끝없이 반복하거든요. 전전 세대가 고도성장기를 맞이하여 정신적으로 흔들리는 전후 세대에게 던지는 주요한 메세지라 생각되네요.
아울러 비겁한 청춘의 결말은 불행밖에 없다는 식으로 주제의식을 전달하려 하는데 사실 가장 비겁했던 것은 과거를 숨기고 불륜까지 저지른 마쓰노 도키코와 야망을 위해 진실을 조작한 가사오카의 아들 도키야, 결혼 전 불장난을 즐긴 아사야마 유키코라는 점에서 외려 잘 비겁하면 인생을 성공할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씁쓸하지만 이게 현실이라는 점이 이 작품을 사회파 추리소설로 만드는 것이겠죠. 이게 작가의 의도인지는 모르겠지만요.

그러나 막장 설정과 전개, 추리적으로는 거의 무가치했기에 이 정도 장점만으로 일정 수준 이상이었다고 평가하기는 불가능합니다. 제 별점은 2점입니다.
취향과는 다르지만 수작이라 생각하는 <인간의 증명>, 평작 수준이지만 폭발하는 에너지를 느낄 수 있었던 <야성의 증명>과 비교하기도 어려운 작품으로 아직 읽지 않으신 분들이라면 구태여 읽어보실 필요는 없을 것 같네요.

그나저나, 이벤트로 받은 도서를 이렇게까지 혹평하니 저도 마음이 무겁군요...

2012/12/29

지상아와 새튼이 - 문국진 : 별점 2점

 

지상아와 새튼이 - 4점
문국진 지음/알마

일전에도 소개했던 문국진 교수의 법의학 에세이집. 일전에는 <지상아>만을 읽고 감상문을 올렸었는데 이어서 이번에 새로 간행된 <새튼이>까지 합본된 책을 구해 새롭게 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많이 실망스러웠습니다. 이유는 글들을 개작한 탓입니다. 서문에서 소개하기를 <법의관이 도끼에 맞아 죽을 뻔했디>를 펴낸 것이 계기가 되어 현대적으로 개작하여 재출간했다고 하는데 뭐가 현대적인지도 모르겠지만 사건의 경과, 결과도 비교적 상세하게 실려있던 원작에 비해 주요 사건과 법의학 관련 이야기만 소개하고 있는 등 축약이 심해서 개작이 아니라 개악이라 생각됩니다.

물론 이러한 축약과 함께 원전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던 저자의 단상 등을 정리하고 법의학에 완전히 촛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에서 법의학에만 관심이 있는 분들에게 더 좋을 방향일 수도 있기는 합니다. 법의학적으로 흥미로운 이야기들도 여전하긴 하니까요. 예를 들자면
성적인 목적에서 비롯된 사고성 의사를 확정하기 위해서는 목 부분을 자세히 검사할 필요가 있다는 것, 왜냐하면 같은 장난(?)을 반복했다면 목 부분에 엷은 흉터가 있을 수 있기 때문.
50여년 전의 완전범죄. 한 여대생 살해사건에서 용의자로 지목된 남자친구가 혐의를 벗는 과정.
초기 교통사고에 대한 상세한 법의학적 고찰.
삼각팬티와 뒷물로 비롯된 성병
등의 이야기가 가득합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구작 쪽이 훨씬 좋았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구작이 절판되어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게 아쉬울 뿐입니다.

2012/12/24

술 한잔 인생 한입 5권 - 라즈웰 호소키 / 이재경 : 별점 3점

 

술 한잔 인생 한입 5 - 6점
라즈웰 호소키 지음, 이재경 옮김/에이케이(AK)

술 한잔 인생 한입 - 酒のほそ道 1~27 (미완) - ラズウェル細木 : 별점 2.5점
일전 원서로 27권까지 읽은 작품인데 파워블로거 채다인님의 블로그에서 개최했던 이벤트에서 당첨되어 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한국어판으로 읽으니 원서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재미가 확실히 느껴지더군요. 만화야 짧고 간단한 이야기인 만큼 저의 형편없는 일본어 실력으로도 어느정도는 이해가 가능했으나 만화 사이사이에 수록된 작가의 짧은 수필이나 단상, 그리고 부록같은 레시피들은 깊게 들여다보기 어려웠던 부분인데 한국어판은 그러한 점에서 충분한 만족감을 선사해주거든요. 소다츠의 하이쿠의 충실한 번역도 아주 좋았고요.
또 5권은 한국을 방문하는 소다츠의 이야기가 그려졌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이왕이면 다홍치마.. 뭐 그런 기분이에요. 한국 방문에 대해 작가가 쓴 취재 여행기도 아주 재미있었고 말이죠.

만화적인 재미, 나름 여러가지 술문화에 대한 정보 전달적인 측면 모두 합격점을 줄 만한 좋은 만화라 생각되네요. 별점은 3점입니다. 요리 하나로 사랑이 이루어지고 분쟁이 해결되며 맛을 보다가 눈을 감으면 삼라만상이 펼쳐진다는 등의 허황된 요리만화에 염증을 느끼시는 모든 분들, 그 중에서도 술꾼들에게 적극 추천하는 바입니다.

2012/12/22

심야식당ⅹ단츄 - 단츄, 아베 야로 / 강동욱 : 별점 3점

 

심야식당ⅹ단츄 - 6점
단츄.아베 야로 지음, 강동욱 옮김/미우(대원씨아이)

심야식당에 실려있는 요리의 재현 및 바리에이션을 소개하는 책. 레시피는 짤막하게 요약되어 있을 뿐이며 멋진 사진과 함께 그 요리에 대한 평가와 트라비아, 간단한 레시피 응용이 더 비중이 큰, 일종의 팬 서비스 기획물이죠.

그러나 단순 기획물로 보기에는 꽤 괜찮은 책이더군요. 여러가지 트라비아, 재미있는 정보가 곳곳에 가득하기 때문인데 예를 들자면 빨간 비엔나가 빨간 색인 이유 (때깔을 좋게 만들기 위해), 봉지 야키소바가 3인분인 이유 (주 타겟으로 3,4인 가족을 상정했는데 4라는 숫자는 불길해서), 문어 먹물 스파게티가 없는 이유 (맛이 없어서) 등이 있겠죠.
게다가 레시피의 응용방법도 아주 볼만합니다. 이 중에서 꼭 해먹고 싶은 생각이 든 것은 햄커틀릿 카레 덮밥, 메추리알 알조림, 돼지김치볶음 야키우동 (이건 응용해서 소면을 넣은 돼지 두루치기로 만들어도 되겠더라고요), 냉동만두 맛있게 먹는 비법, 참치 통조림 덮밥입니다. 가정식 요리를 추구하는 심야식당의 요리답게 집에서 재현이 가능한 요리들이라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라 생각되네요.

요리책으로 보기에는 부실하지만 내용은 기대를 충분히 만족시키기에 별점은 3점입니다. 심야식당 팬 분들께는 강추드립니다. 

2012/12/18

사라진 직업의 역사 - 이승원 : 별점 3점

사라진 직업의 역사 - 6점
이승원 지음/자음과모음(이룸)

조선과 대한제국, 일제강점기 시기에 걸친 근대 초기에 생성되었으나 지금은 사라진 9개의 직업의 흥망성쇠에 대해 다룬 인문 교양 - 미시사 서적. 소개된 9개의 직업은 아래와 같습니다.
1. 소리의 네트워커, 전화교환수
2. 모던 엔터테이너, 변사
3. 문화계의 이슈 메이커, 기생
4. 이야기의 메신저, 전기수
5. 트랜스 마더, 유모
6. 바닥 민심의 바로미터, 인력거꾼
7. 러시아워의 스피드 메이커, 여차장
8. 토털 헬스 케어? 물장수
9. 메디컬 트릭스터, 약장수
목차만 보아도 너무 재미있을것 같지 않나요? 저는 굉장히 재미있었습니다. 단순히 어떻게 생겼고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떻게 사라졌는지만을 다룬 것이 아니라 당시 자료들을 통해 실존했던 인물들과 그에 얽힌 에피소드도 풍부하게 전해주기 때문에 읽는 재미를 더해준 것 같아요.

이 중에서도 당대 최고의 변사였으나 유성영화 도입과 마약 중독으로 몰락한 변사 서상호에 대한 이야기와 "물장수"에 대해 다룬 이야기가 가장 재미있었습니다. 서상호 이야기는 그간 궁금했었던 점을 시원하게 긁어준 느낌이 들었어요. 중간중간 실려있는 실제 변사의 대사 (서상호의 <암굴왕> 등) 도 좋은 참고가 되었고요. 아울러 물장수 관련 이야기는 다른 어떤 책에서도 본 적이 없을 정도로 자세하게 실려 있어서 좋았습니다. 물장수들의 조합에서부터 물을 어디서 퍼 왔는지, 수도가 생기고 어떻게 되었는지 등... 그야말로 흥망성쇠를 잘 다루어주고 있으니까요.
또 <경성탐정록>의 첫 단편인 <운수 좋은 날>의 주요 설정 중 하나가 인력거꾼이라 관련 이야기도 흥미롭게 읽었는데 이 책을 보니 경성탐정록의 시대배경인 1930년대에는 인력거는 이미 거의 사멸했다... 라는 사실도 인상적이었습니다. 고증에 더 신경써야 겠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더군요.

그러나 아쉬운 점도 몇가지 있기는 합니다. 근대, 특히 일제강점기에 집중된 이야기일 것으로 기대했는데 "전기수"와 "유모"에 대한 이야기는 보다 이전 시대부터 다루어서 기대와는 좀 달랐다는 점을 먼저 들고 싶네요. 단점이라고 하기는 좀 뭐하지만 확실히 기대와는 달랐어요. 특히 "전기수" 이야기는 내용과 자료적인 가치 모두 기대에 미치지 못하기도 했고요.
그리고 "약장수" 편은 실제 약장수 이야기보다는 양약의 도입과 약 광고가 중심이 되었기 때문에 책의 주제와는 거리가 좀 있더군요. 실제 약장수라는 직업에 대해서는 짤막하게 다루는 정도거든요. 재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조금 더 자세하게 약장수에 대해서 소개해 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생기네요.
아울러 도판 등 자료적인 부분에서 다른 유사 도서에 비해 부족함이 느껴지는 것도 단점이었고요.

이러한 약간의 단점 때문에 별점은 3점입니다. 그래도 재미와 자료적 가치 모두를 갖춘 책으로 근대에 대해 관심있으신 분들에게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2012/12/16

Q.E.D 큐이디 41 - 카토우 모토히로 : 별점 3점

 

Q.E.D 큐이디 41 - 6점
카토우 모토히로 지음/학산문화사(만화)

Q.E.D 큐이디 40 - 카토우 모토히로 : 별점 3점

C.M.B와의 콜라보레이션 기획물인 <발키아의 특사>와 심리 추리물 <카프의 추억> 두편이 실려있습니다.

콜라보레이션 기획물 <발키아의 특사>는 C.M.B 쪽보다는 조금 낫더군요. 한결 디테일한 전개를 보여줄 뿐 아니라 이유도 깔끔하게 설명되고 있는 등 완성도 면에서는 더 좋았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한쪽에 치중한 전개를 보일 것이라면 구태여 양 시리즈를 묶어서 하나로 전개하지 뭐하러 나누었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또 중반부에 펼쳐지는 타츠키와 가나의 액션씬은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수였어요. 이 장면 때문에 진지한 법정 추리물에서 아동용 모험물로 전락한 것 같거든요. 때문에 별점은 2.5점입니다.

<카프의 추억>은 점성술사인 아내 린에게 총격을 가한 혐의를 받고 수감된 주인공의 이야기를 토마가 듣는 이야기로 일종의 서술 트릭물입입니다. 중간중간에 등장하는 정체모를 노인의 사진이라는 복선을 효과적으로 사용했을 뿐 아니라 피라미드형 폰지 사기의 설정도 잘 녹여내는 등 전개는 깔끔해요. 만화의 특성을 잘 살린 반전도 상당히 효과적이고요.
그러나 작가의 작품에서 굉장히 많이 반복된 "잘못된 기억"을 이용한 트릭이라는 점에서는 감점입니다. 거의 대부분의 에피소드에서 성공한 설정과 트릭이기는 하나 좀 지겹더군요. 별점은 3점입니다.

두 작품 평점은 반올림해서 3점 정도... C.M.B 보다 낫기는 한데 아주 좋았다라고 말하기도 조금 애매했어요. 다음권에서는 Q.E.D의 강점이라 할 수 있는 일상계 작품이 좀 소개되었으면 합니다.

CMB 박물관 사건목록 19 - 카토우 모토히로 : 별점 2점

 

CMB 박물관 사건목록 19 - 4점
카토우 모토히로 지음/학산문화사(만화)

CMB 박물관 사건목록 18 - 카토우 모토히로 : 별점 2점

대망의 Q.E.D와의 콜라보레이션 기획물을 포함한 총 세편의 작품이 실려있습니다.
그러나 콜라보레이션 기획물을 비롯한 전편이 내용이나 추리적인 부분 모두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CMB 시리즈의 가장 큰 특징이자 장점이라 할 수 있는 "박물학적인 지식 전달"이 제대로 전해진 에피소드가 없다는 점에서도 높은 점수를 주기는 힘들었고요. 결론적인 평점은 2점입니다.

다음 권에서는 특징을 잘 살리고 추리적으로도 괜찮은 에피소드들이 소개되었으면 합니다.

<긴자 몽환정의 주인>
1950년대 긴자에 있었다는 고급 클럽 <몽환정>의 주인이었던 료가 사랑했던 사람은 누구인지 밝혀낸다는 이야기. 유명인사들이 준 선물과 거울이라는 장치의 쓰임새에 대한 약간의 심리적인 트릭이 있기는 하나 추리물로 보기는 어려웠습니다. 드라마적으로도 수긍하기는 좀 힘들었고요. 별점은 1.5점입니다.

<밤에 댄스>
신라의 동창생이 목격한 도난사건의 증언이 다른 증언과 다르다는 모순을 해결해 준다는 일상계 소품. 다른 증언을 한 사람들이 사실은 동일인물이라는 아이디어는 꽤 참신합니다만 경찰 수사력 문제에 불과한 것이기에 추리적으로 높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그래도 신라가 어른스럽게 한 말, "나는 것이 운명이기 때문에" 라는 표현 하나만큼은 아주 괜찮았어요. 별점은 2.5점입니다.

<대통령 체포 사건>
대망의 Q.E.D와의 콜라보레이션 기획물. 국제 사법 재판소에서 바르키아의 전 대통령의 신병처리를 둘러싸고 벌이는 토마와의 한판 승부를 그린 중편입니다.
그런데 기대에 비하면 무척 실망스러웠어요. 국제 사법 재판소의 기능과 역할, 재판 방법에 대해서 소개하는 부분은 여전히 괜찮았고 법정에서의 드라마도 그럴싸 했으나 은닉재산인 다이아몬드를 둘러싼 진상이 별로 와닿지 않았거든요. 그냥 법정물로 끝내는 것이 훨씬 좋았을텐데 드라마를 너무 의식한 탓일까요? 억지스럽게만 느껴졌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2012/12/15

어벤져스 (2012) - 조스 웨든 : 별점 3점

 

[3D 블루레이] 어벤져스 - 6점
조스 웨든 감독,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외 출연/월트디즈니

캡틴 아메리카, 아이언맨, 헐크, 토르, 블랙 위도우, 호크아이가 같이 로키와 외계군단에 맞서 싸운다는 히어로 무비. 극장가를 강타한 메가 히트작이기도 하죠.
원래 이런 영화는 닥치고 극장에서 관람했었는데 결혼하고 애까지 있다보니 제때 챙겨보는 것은 불가능하더군요. 이제서야 뒤늦게 감상하고 포스팅 남깁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돈들인 티도 확실히 날 뿐 아니라 대히트칠만한 요소도 충분한 괜찮은 액션 오락영화였습니다.

물론 단점을 짚자면 한두가지가 아니긴 합니다. 로키가 쉴드에 자발적으로 잡혔었던 이유, 호크아이가 습격을 강행한 이유, 마지막 결전에서 헐크가 이성이 있는 이유 등 설명되지 않는게 너무 많거든요. 메인 악역인 로키가 자칭 신이라면서 너무 약해빠진 것도 밸런스에 문제가 있는 것 처럼 보였고 말이죠.

그러나 이런 영화에서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 있을까요? 매력적인 히어로들의 캐릭터도 도드라질 뿐더러 액션 역시 충분히 즐거울 뿐 아니라 특수효과를 잘 사용한 임팩트있는 영상도 넘쳐단다는 점에서 오락영화로서의 가치는 충분합니다. 마지막 최종 결전에서 어벤져스 멤버들의 액션을 원테이크 처럼 찍은 장면은 그야말로 백미였어요. 거기에 더해 위트있는 대사는 보너스와도 같고요. 그야말로 생각했던 그대로를 충실하게 영상으로 옮겨준 작품이라 생각되네요. 별점은 3점입니다.

2012/12/11

좌충우돌 펭귄의 북 디자인 이야기 - 폴 버클리 / 박중서 : 별점 2점

 

좌충우돌 펭귄의 북 디자인 이야기 - 4점
폴 버클리 엮음, 박중서 옮김/미메시스

일전에 읽었었던 <펭귄 북디자인 1935-2005>을 읽고 감명받은 차에 구입하게 된 신간.
그러나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죠. 솔직히 실망스러웠습니다. 2만원이 넘는 가격을 생각한다면 돈이 좀 아까운 수준이었어요.

이전의 <펭귄 북디자인>같이 잘 짜여진 디자인 철학과 방법론을 기대했는데 이 책은 북디자인 (그것도 커버만) 결과물과 그것에 대한 작가, 디자이너 및 일러스트레이터 등 관계자의 짧은 코멘트가 전부입니다. 즉 하나의 책을 디자인하기 위한 작업을 어떻게 진행하였으며 어떤 컨셉과 원칙이 있었는지 파악하기는 애시당초 힘들다는 것이죠.
이전의 책이 북 디자인을 위한 다큐였다면 이 책은 관계자 두서너명이 맛깔난 화면과 함께 등장해서 농담 따먹기를 하는 코멘터리 느낌이랄까요.

물론 실려있는 유려한 북디자인 자료만으로도 어느정도 가치가 있기는 합니다. 몇몇 코멘트는 제법 인상적이에요. 최소한 웃기기는 하거든요. 그러나  제 기대와 너무 달랐기에 별점은 2점입니다.
디자인 전공자 출신으로 그래픽 디자이너 경력에 현재 디자인에 관심이 많은 제가 보기에는 전공자, 디자이너, 애호가 그 누구도 만족하기 힘든 결과물이라 생각되네요.

2012/12/09

조선의 탐정을 탐정하다 - 최애순 : 별점 4점

 

조선의 탐정을 탐정하다 - 8점
최애순 지음/소명출판

일제 강점기 시절 조선의 탐정소설에 대한 8편의 논물을 모은 한국문학사 서적.

8편의 논문은 각각 '탐정'소설이 무엇인지에 대한 개론, 소파 방정환의 소년 모험소설, 채만식의 탐정소설 <염마>, 김내성의 <백가면>, 주요 번역작품 소개, 번역 작품 중 독보적인 인기였던 모리스 르블랑과 루팡 (뤼뺑) 시리즈의 번역 역사, 최서해의 번안 탐정소설 <사랑의 원수> (원작 <노란방의 수수께끼>)와 김내성 <마인>의 관계 연구, 방인근의 <마도의 향불>을 중심으로 한 식민지 조선의 여성 범죄와 팜므파탈 이야기가 주제입니다.

제목만 보아도 흥미진진한데 내용도 딱딱하지 않고 상당히 재미있어서 쉽게 읽을 수 있었어요. 예상외로 꽤나 인기있었던 근대 조선의 "탐정" 소설들과 왜 정통 본격물이 유행하지 않고 통속적인 연애 소설과 결합되어 진화하였는지에 대해 밀도있게 쓰여졌거든요. 이 때 조선에 본격물이 안정적으로 정착하였더라면 제가 좋아하는 고전 본격물이 다수 소개되었을테고 국내 추리 창작 환경도 많이 변했을텐데 조금 안타깝기도 하네요.
또 저자가 실제 확인한 자료를 통해 소개하는 다양한 창작, 번역 작품에 대한 소개의 디테일도 감탄사를 자아냅니다. 방인근의 <마도의 향불>에 대한 소개는 작품을 읽은 느낌이 들 정도에요. 아울러 이렇게 많은 작품들이 있었는데 지금와서 읽을 수 있는 작품은 한손으로 꼽기 힘들 정도라는 현실도 아프게 와 닿았고요.

그 외에도 여러가지 자료가 풍부하게 실려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소파 방정환과 김내성의 아동 모험물에 대해 여러가지 텍스트와의 비교해 본다던가, <노란방의 수수께끼>와 <마인>과의 비교를 통해 마인의 가치를 재조명하는 연구, 그리고 한국형 팜므파탈을 당시 많았던 본부살인사건과 연계하여 소개하는 등의 시대상황을 반영한 연구가 추리애호가로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이런 연구야말로 한국 추리문학사적으로 의미있는 주제겠죠.

아무래도 모든 분들께 추천드리기 조금 어려워 보이기는 하나 식민지 조선을 무대로 한 추리소설을 창작하는 분께는 자료적인 의미에서라도 강력하게 추천드립니다. 그런 사람이 많이 있지는 않겠지만.... 그런 사람의 하나로서 별점은 4점입니다. 꼭 창작이나 자료적인 목적이 아니더라도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분들에게는 의미있는 책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네요.

덧붙이자면 6.25 전후 한국 추리소설사를 조망하는 후속권이 나와주었으면 하는 바램이 생깁니다.

축전등록 - EST님의 홈즈글루 양^^

이웃 블로거 EST님의 블로그 생일 축전입니다. EST님의 따님인 이글루양의 무려 홈즈버젼! 너무너무 귀여워서 따로 포스팅해서 소개합니다^^ 축전도 생전 처음이라 너무 기쁘네요. 제 그림은 아니지만 널리 알리고 싶은 마음에 창작밸리로 고고~!

EST님과 블로그 생일이 똑같은 묘한 인연이 있기도 한데, 앞으로도 오래오래 자주 뵐 수 있으면 좋겠네요.^^

2012/12/06

진혼가 - 하세 세이슈 / 이기웅 : 별점 1.5점

진혼가 - 4점
하세 세이슈 지음, 이기웅 옮김/북홀릭(bookholic)

신주쿠를 베이징 패거리와 상하이 패거리가 반씩 나누어 균형을 유지한 상태. 베이징 패거리의 자금줄인 장다오밍이 살해되고 베이징파의 두목 추이후는 전직 경찰 타키자와에게 배반자 색출을 지시한다. 한편 장다오밍을 살해한 킬러 추성은 상하이 패거리 주훙의 정부 지아리의 보디가드로 일하게 된다...

<불야성> 후속편. 전직 경찰인 변태 타키자와와 킬러 추성 두명의 시각으로 전개되며 전작의 주인공 류젠이는 철저히 주변인물로 묘사되는 차이가 있어서 스핀오프 같은 느낌도 나더군요. 경찰ㅊ(전직이지만)과 중국인 킬러가 중국 폭력단과 대결한다는 구도는 왠지 오사와 아리마사의 <독원숭이>가 떠오르기도 하고요. 류젠이가 양웨이민에게 복수하기 위해 타키자와, 추성과 지아리를 조종하여 베이징파와 상하이파의 균형을 깨트린다는 이야기 전개는 전작과 거의 판박이라 할 수 있습니다. 

허나 전작에 비하면 모든 면에서 처지는 속편이었어요. 판에 박은 전개도 지루하고 너무 운과 우연에 의지한 상황이 많아서 치밀함이 떨어지거든요. 사건의 원인인 지아리가 쉐위안을 살해한 것, 타키자와의 폭주, 추성이 류젠이를 찾아오고 지아리에게 반하게 된 것 모두가 필연적이라고 보기에는 미심쩍은 우연의 산물에 불과하죠. 류젠이가 초능력 최면술사라도 되면 모를까 이 모든게 류젠이의 생각대로라는 것도 황당할 뿐이고요. 상하이파와 일본 야쿠자의 격돌에서 운좋게 추성과 타키자와가 빠져나온다는 전개도 솔직히 어이가 없었습니다.
또 타키자와의 조사도 순전히 소문과 발품에 의지한 것으로 베이징파의 보스라면 하루만에 파악할 수 있는 수준인데 추이후가 애초부터 타키자와에게 조사를 받긴 이유조차 석연치 않은 등 대충대충 넘어가는게 너무 많아요.
마지막으로 스스로의 성 정체성을 깨닫고 사랑의 전사로 거듭나는 타키자와의 모습은 대관절 이게 뭔가 싶더군요.

아울러 이러한 이야기의 허술함을 넘치는 폭력 묘사로 때우려 한 티가 역력한 것이 영 마음에 들지 않네요. 등장하는 모든 여자들은 강간당하고 거의 모든 남자들은 살해당하는 식인데 이 소설의 배경이 현대 일본이라는 것이 믿어지지가 않을 정도에요. 게다가 주역급 인물들 모두가 트라우마에 더해 가학적이고 폭력적인 습성을 지니고 있다는건 현실성 제로의 설정이라 생각됩니다.

결론내리자면 전편 이상의 강도높은 폭력 묘사와 인간 쓰레기 타키자와의 폭주를 보는 맛은 나쁘지 않아서 쉽게 읽히기는 하나 단순한 화장실용, 킬링타임용 펄프픽션에 불과한 작품입니다. 뒷세계 이야기에 폭력이 난무한다고 해서 하드보일드 느와르라니, 저는 동의할 수 없어요. 전편에 버금가는 디테일한 신쥬쿠 뒷세계의 묘사는 나쁘지 않고 번역도 아주 좋은 편이기는 하나 건질 건 그뿐이랄까요. 별점은 1.5점. 전편의 팬이 아니라면 읽지 않으셔도 될 것 같아요.

2012/12/02

위대한 승부 (Searching for Bobby Fischer / 1993) - 스티브 잘리안 : 별점 3점

 

7살 아들 조쉬가 체스에 대해 천재적인 재능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된 아버지 프레드는 아들의 교습을 브루스 판돌피니라는 거물급 플레이어에게 맡긴다. 그러나 토너먼트에 출전하면서 조쉬는 점차 체스와 승부에 지쳐가는데...

원제는 searching for bobby fisher. 체스 천재 조쉬 웨이츠킨을 주인공으로 한 성장영화로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고 하네요.

일단 성장영화다운 교훈적인 내용이 가득합니다. 예를 들자면 "체스" (또는 다른 것이라도)에 빠질 필요는 없다, 인생에 있어서 승부라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 스스로가 즐기면서 하는 것이 중요하다 등등 같은거요.

이러한 교훈과 더불어 저 역시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공감했던 부분은 조쉬의 천재성을 소유하려 하고 통제하려 하던 아버지 프레드의 모습이었어요. 우리나라의 무리한 교육열과 비슷하게 생각되기도 했고요. 천재마저도 현실에 좌절하고 피로감을 느끼는데 아이의 능력조차 제대로 모른 상태에서 아이들을 통제하려 하는 것은 분명 잘못된 일이 아닐까요? 영화 속 조쉬가 체스를 잊고 아이다운 삶을 즐기며 부활하듯 아이는 정말로 아이처럼 키우는 것이 맞겠다는 생각이 다시 들었습니다. 물론 이렇게 키우는 것 자체가 우리나라에서는 더욱 힘든 일이겠지만....

단지 교훈만 있는 것은 아니고 체스를 잘 몰라도 즐길 수 있는 시합 장면의 박진감을 잘 살린 좋은 체스 영화이기도 합니다. 전설적 체스천재 바비 피셔의 소개가 곁들여진다는 것도 마음에 들고요. 또 "퀸을 먼저 사용하면 안된다"라는 지시를 영화 내내 복선처럼 써 먹는 것도 괜찮았어요. 마지막 결승전은 아주 약간의 체스 지식 -끝까지 간 졸은 자신이 잃은 말과 바꿀 수 있다 / 퀸은 전후좌우대각선 어느 방향으로든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 - 이 있어야 완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긴 하나 이 정도는 허용범위 내라고 봐야겠죠.
그 외에도 주인공 아역, 특히 조쉬 역의 꼬마도 귀엽고 체스 선생 역의 벤 킹슬리, 조쉬 아버지 역의 조 만테냐, 조쉬의 동네 친구이자 선배(?) 비니 역의 로렌스 피쉬번 등 화려한 조연진도 볼거리입니다.

물론 아쉬운 점도 조금 있는데 조니의 현명한 어머니의 비중이 너무 작고 아버지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는 점과 동네 친구 비니의 역할이 애매한 점 (사실 비니는 빼고 브루스에게 조언자로서의 역할을 집중시키는게 나았을 거에요), 그리고 마지막 승부에서 졸을 움직여 퀸으로 승부를 내는 장면은 너무 뻔한 결말로 끝판왕 최종보스인 라이벌 조나단과의 마지막 결전치고는 좀 김새는 결말이었다 생각됩니다.

그래도 성장영화로서도 우수하고 체스 영화로서도 괜찮은 만큼 결론은 추천작입니다. 별점은 3점. 성장기 아이가 있다면 더 와 닿을 수 있는 영화가 아닐까 싶네요.

아울러 영화에서 최종보스 끝판왕으로 나오는 조나단과의 마지막 챔피언쉽 매치가 실제로는 조금 달랐다고 하는 후일담도 재미있네요. 정말로 조쉬가 무승부를 제의했지만 실제 마지막 경기 상대였던 제프 역시 거절했고 경기 끝에 공동 우승을 차지하게 되었다고 하더군요. 자세한 정보는 위키피디아를 참고하세요.

2012/12/01

TIME - 노베르토 앤젤레티, 알베르토 올리바 / 정명진 : 별점 3점

 

TIME (보급판) - 6점
노베르토 앤젤레티 & 알베르토 올리바 지음, 정명진 옮김/부글북스

'사진으로 보는 ‘타임’의 역사와 격동의 현대사'라는 광고 문구에 혹해서 구입한 책입니다.
그런데 생각과는 차이가 있더군요. 타임의 커버와 '올해의 인물' 등에 대해 소개하며 말 그대로 격동의 현대사를 다시금 짚어나가는 책일 줄 알았는데 '타임'의 역사가 더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편이거든요.

물론 당대 시사적으로 핵심인 이슈들이 제법 보이기 때문에 아예 기대와 달랐다고 하기에는 좀 어렵겠죠. 미국 중심이라는 한계는 있지만 현대사 주요 이슈는 대체로 포함되어 있고 그 중에서도 인종차별이나 월남전에 대해 보도한 기사의 흐름같은 것은 아주 볼만한 내용이었습니다.
또 '타임'의 역사 자체도 꽤 눈여겨 볼만한 부분이 많아요. 커버와 내지, 폰트 등 편집 디자인적인 흐름, 일러스트레이터들의 화풍과 창작법에 대한 소개 등 디자인 전공자라면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는 내용이 가득합니다. 그 외 다양한 도판들도 인상적이었어요. 예를 들자면 케네디의 죽음이나 마틴 루터 킹의 전설적 연설과 장례식 사진같은거요.
한마디로 말하자면 엄청난 높이, 두께, 무게에 값하는 자료적 가치는 분명 있는 책입니다.

결론적으로 별점은 3점. 지금 인터넷 서점에서 반값 할인 중이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별점 0.5점은 더 줄 수도 있습니다.
'타임'이라는 전설적 저널에 대해 궁금하신 분들이라면 꼭 읽어야 할 책이고 편집 디자인에 관심있는 분들도 체크해 두세요. 단 격동의 현대사에 대해 알고 싶은 것이 많으시다면 약간 방향이 다르다는 점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2012/11/26

라디오 체조의 탄생 - 구로다 이사무 / 서재길 : 별점 2.5점

 

라디오 체조의 탄생 - 6점
구로다 이사무 지음, 서재길 옮김/강

다양한 일본 컨텐츠에서 보았던 "라디오 체조"가 어떻게 탄생했는지 설명하는 미시사 서적. 단지 라디오 체조만 설명하는 책은 아닙니다. 라디오 체조, 그리고 더 넓게는 "라디오 방송"을 상세하게 설명하면서 당시 일본의 모습과 사회상을 묘사하는 책이죠.

가장 궁금했던 라디오 체조의 역사 자체는 꽤 단순한 편입니다. 1928년, 미국 메트로폴리탄 사의 라디오 체조를 베낀 것이긴 하나 당대 일본인들이 가지고 있던 "근대화"를 위한 "근대적 신체로의 교정" 이라는 생각에 합치했기 때문에 방송이 시작될 수 있었으며 이후 비교적 낮은 수신기 보급률과 파시즘적 정책 등의 이유로 아침 일찍 모여서 라디오 체조를 한다는 집단 조기 체조로 진화했다고 설명되고 있습니다.
그다지 어렵게 쓰여지지 않아서 쉽게 읽을 수 있으며 라디오 체조에서 구령을 맡았던 사람은 육군 도야마 학교 장교인 에기 리이치로 전전 라디오 체조의 상징과 같은 인물이 되었다는 것, 일본의 여러 식민지에서도 집단 조기 라디오 체조를 시행했다는 것 등의 새롭게 알게된 것들도 꽤 많은 편입니다. 라디오 방송 관련 이야기들도 자료로서 괜찮았고요.

그러나 읽기 전의 기대에 값한 책은 아닙니다. 라디오 체조에 대한 다양한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풀어낸 책을 기대했는데 역사적인 의미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이거든요. 재미보다는 지식에 치중한, 한마디로 말하면 논문에 가까운 책이랄까요. 물론 읽는 재미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만...
아울러 라디오가 인기를 끌게 된 "소케이센 (도쿄 6대학) 야구 중계"라던가 베를린 올림픽 중계 시 전설이 된 멘트 "마에바타 힘내라!" 같은 자세한 설명이 등장하는 라디오 방송 관련 이야기들도 나쁘지는 않으나 다른 책에서 이미 접했던 것이기에 신선함이 떨어졌다는 것도 단점이라 생각됩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자료적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나 재미로 보기에는 어려운 책입니다. 저같은 근대에 관심있는 일반인에게는 아무래도 에피소드 중심의 미시사 서적이 더 맞는 것 같네요. 정말로 라디오 체조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께만 권해드립니다.

덧 : 당시 군국주의 파시즘 하의 일본에서 전략적으로 보급한 측면도 분명 있지만 일찍 일어나서 체조를 하는 것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고 그렇기 때문에 아직까지 그 명맥이 유지되는 것이겠죠. 저도 건강을 위해서 아침에 일찍 체조를 할까 생각이 들기도 하는군요.

2012/11/24

칠석의 나라 1~4 - 이와아키 히토시 : 별점 3.5점

지금은 거장 대우를 받는 이와아키 히토시의 90년대 작품. <타지카라오>를 읽은 뒤 생각이 나서 다시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설정 자체는 뻔해요. 80~90년대 유행했었던 "외계에서 찾아온 지능체와의 만남, 그리고 그 후예들의 후일담" 이라는 설정이니까요. 그러나 이 작품에서는 마루카미 교수의 실종과 주인공 미나미마루의 초능력을 둘러싼 미스테리 스릴러 형태로 전개됨으로써 흔해빠진 작품들과는 차별화된 재미를 보장해 주고 있습니다.
게다가 외계인이 등장하는 설정도 마루카미의 문장 (까치 - 원 - 손)에서 시작해서 "창을 본다"라고 통칭되는 외계를 보는 능력과 "창에 손이 닿는다"로 통칭되는 물질을 그곳으로 보내는 능력에 대한 디테일한 설명, 이 능력이 발현된 이후 외계인이 더 찾아오지 않게 된 이유 등이 작가 특유의 전개로 설득력 높게 표현되기 때문에 유사품과는 그 격을 달리합니다.

주인공 미나미마루의 캐릭터도 마음에 들어요. 이런 류의 작품들 주인공과는 전혀 다른 낙관적이고 천하태평인 성격에다가 강력한 초능력을 가졌지만 당면한 고민은 취직일 뿐이라는 점, 능력에 대해 어떻게 사용할지를 긍정적으로 고민하면서 스스로를 감춘다는 점 등이 현실적이면서도 매력적이거든요.

이러한 탄탄한 설정과 이야기가 요새 기준으로는 길지 않은 4권이라는 분량으로 완결되도록 빠른 호흡을 지녔다는 것 역시 큰 장점이고요. (특히나 요새는 보기 힘든 장점이죠) 물론 호흡이 너무 빠른 탓에 마루카미 교수라던가 요리유키 등 주요 등장인물들 설명이 많이 부족하고 정부가 나섰음에도 결국 별다른 해결없이 대충 정리되는 결말 등 소소한 단점이 조금 있기는 합니다. 그래도 저는 불필요하게 길게 늘어지는 것 보다 이렇게 빠른 호흡으로 전개되는 것이 더 마음에 들어요.

한마디로 다시 읽어도 여전한 재미와 완성도를 갖춘 수작입니다. 별점은 3.5점. 천편일률적인 외계인 이야기가 식상하시다면 꼭 한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12/11/19

스쳐 지나간 거리 - 시미즈 다쓰오 / 정태원 : 별점 2.5점

스쳐 지나간 거리 - 6점
시미즈 다쓰오 지음, 정태원 옮김/중앙books(중앙북스)

하타노 가즈로는 12년 전 근무하던 사립 고교에서 제자와의 애정행각이 들통나 학교를 그만두고 고향에서 학원 강사를 하고 있던 중 학원 제자의 한명인 유카리가 연락 두절이 된 것을 알고 그녀를 찾기 위해 상경한다. 몇가지 조사를 통해 그녀를 둘러싼 모종의 범죄를 눈치채고 사건에 접근해 가면서 전 직장인 사립 학교 내 비리와 이사장 사망 사건 등이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시미즈 다쓰오의 작품으로 92년도 "이 미스터리가 굉장해! (고노미스)" 1위 작품입니다. 고 정태원 선생님이 번역한 작품인데 뒤늦게 읽게 되었네요.

이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은 흡입력! 일단 읽기 시작하면 손에서 떼기 힘들 정도에요. 1. 연락이 두절된 제자를 찾는다 -> 2. 제자가 급박하게 떠난 듯 하다 -> 3. 정체 불명의 남자들에게 제자 관련하여 위협을 받는다 -> 4. 전 직장이었던 학교를 둘러싼 음모에 대해 알게 된다 -> 5. 제자와 불륜관계였던 전 학교 직원 쓰노다와 그가 관련된 협박 사건을 알게된다... 라는 식의 에스컬레이트 전개인데 설득력 있으면서도 흥미진진하게 풀어나가서 정말이지 숨돌릴 틈 없이 끝까지 달려주는 맛이 아주 일품이거든요. 흡사 알레스테어 맥클린의 전성기 모험물이 연상될 정도로요. 읽는 재미만으로 따지면 특 A급 오락물이라 할 수 있어요.

물론 일개 학원 강사가 경찰의 힘을 빌리지 않고 제자의 실종에 집착하며 사건을 해결하려 노력하는 이유가 명쾌하게 설명되지 않는 점, 12년 전 하타노가 연류되었던 제자와의 애정행각을 둘러싼 그 때의 주요 인물들이 다시 현재의 사건에서 모두 조우하는 기막힌 우연 등 이야기를 만들기 위한 작위적인 요소가 많다는 것은 분명 감점요인이기는 합니다. 탐정역인 하타노의 수사가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부분은 빠른 전개에는 도움을 주지만 설득력이 높다고 보기는 어려웠고요.
그리고 홍보문구와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서 정통 하드보일드를 기대한 독자에게는 실망을 가져다 줄 수 있다는 것도 문제이긴 해요. 사랑에 살고 사랑에 죽는 순정남이자 전형적인 열혈교사 캐릭터인 하타노부터가 별로 하드보일드스럽지 않을 뿐더러 정교한 구성이나 어두운 범죄, 심리묘사가 두드러지는 하드보일드, 혹은 느와르스러운 작품은 절대 아닙니다. 외려 큰 돈을 둘러싼 범죄에서 빚어진 액션을 강조하는 활극이죠. 구태여 예를 들자면 죤 맥클레인의 <다이하드>에 가까운 작품이에요. 그러고보니 헤어진 전처와 마지막에 잘 된다는 해피엔딩 결말마저도 똑같네요.

약간의 단점은 있으나 한마디로 잘 짜여진 1급 오락물, 전형적인 헐리우드 서스펜스 스릴러입니다. 추리물이라고 보기 힘든 구석이 많기에 "이 미스터리가 굉장해!" 1위를 차지할만한 작품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즐길거리가 많은 것은 분명해요. 별점은 2.5점입니다. 킬링타임용 읽을거리를 찾는 분들께 추천드립니다.

아울러 다시한번 고 정태원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

2012/11/17

죽이러 갑니다 - 가쿠타 미쓰요 / 송현수 : 별점 3점

죽이러 갑니다 - 6점
가쿠타 미쓰요 지음, 송현수 옮김/Media2.0(미디어 2.0)


나오키상 수상작가 가쿠타 미쓰요가 '살의'를 테마로 쓴 단편집. 모두 일곱 편의 단편이 실려있습니다. 잘 모르는 작가로 독특한 범죄 스릴러물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스쳐지나가는 사람의 "죽이러 갑니다"라는 말을 듣고 갑자기 과거 초등학교 때 자신을 가혹한 악의로 대했던 선생이 떠올라 찾아간다는 표제작 <죽이러 갑니다> 같이 일상 속 소소한 살의와 그것에 대처하는 일반인의 모습을 그린 소품들이더군요. 여성 작가가 일상 속 살의를 주제로 썼다는 점, 주제를 디테일한 심리묘사를 통해 설득력있게 표현했다는 점에서는 고이케 마리코가 연상되었습니다.

그러나 고이케 마리코 작품과 가장 큰 차이점은 살의는 그냥 살의로 끝날 뿐이라는 점입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본격적인 노력이나 적극적인 행동은 거의 등장하지 않거든요. 그나마 살의를 품은 이유가 확실하고 살인을 저지르기 위해 체력을 키우는 등 가장 적극적이었던 <잘 자, 나쁜 꿈 꾸지말고>의 사오리조차도 살의의 대상인 전 남친 고타와 마주치자 아무런 액션 없이 이유를 알 수 없는 사과를 하고 도망칠 뿐이에요. 여기서 범죄를 저지르면 고이케 마리코,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살의와 절망이 끝없이 업그레이드될 뿐이라면 기리노 나쓰오가 되겠지만... 이런 비겁합이 보통 현실인거죠.
또 약간 독특했던 것은 거의 대부분의 작품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젊은 여성을 주요 매개체의 하나로 등장시키고 각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비록 이름은 다르지만 이어지는 느낌을 주는 식이라서 하나로 이어진 연작이 아닌가 생각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독특했어요.

그런데 아주 일상스러운 느낌을 주기에는 극단적인 상황과 설정이 많다는 점은 좀 아쉽더군요. 일본에서는 흔한 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단편이 히키코모리, 왕따, 학대, 이유없는 증오 등이 등장하고 그에 따르는 트라우마를 주요 소재로 삼고 있는데 이런 일이 실제로 자주 있지는 않을테니까요.

그래도 일상스러우면서도 오싹한, 서늘한 느낌을 주면서도 여운을 남긴다는 점에서 좋은 작품들이라 생각되네요. 대부분 "살의"를 어떻게든 극복하는 결말로 이어지는 것도 마음에 들었고요. 멀어져가는 부부관계를 몇몇 대사로 표현하는 <스위트 칠리소스>와 어렸을 적 동경의 대상이던 친구가 사소한 왕따 등의 증오를 스스로의 내부에서 키워나가다가 붕괴하는 모습에 대해 지켜본 것을 회상하는 <우리의 도망> 이 개인적으로는 베스트였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추리소설도 아니고 장르문학으로 보기도 어렵지만 소소한 일상 속 디테일한 심리묘사를 즐기시는 분들께 추천드립니다.

2012/11/15

혈액형 살인사건 - 고가 사부로 / 박현석 : 별점 2점

혈액형 살인사건 - 4점
고가 사부로 지음, 박현석 옮김/현인

일본 추리소설계의 3대 거성 중 한명이라는 들어보지도 못한 타이틀의 작가가 쓴 단편집. 총 10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나름 추리소설은 읽을만큼 읽었다고 생각하는데 일본 추리소설 3대 거성 중 두명을 들어본 기억조차 없다니 많이 반성해야 겠어요. 어쨌거나 초기 형태의 일본 추리 단편물을 접할 수 있는 흔치않은 기회이기에 관심이 가던 책이었습니다. 국내에는 란포 이외에는 고사카이 후보쿠의 <연애곡선> 정도만 소개되어 있으니까요.

그런데 읽어본 결과는 실망이 더 컸습니다. 쓰여진 시대를 감안하더라도 최소한의 소설적인 완성도가 부족한 작품들이 많이 실려 있기 때문입니다. 작가의 특기가 과학이었기에 과학을 응용한 트릭을 만드는 데에는 제법 많이 공을 들였지만 그 외의 부분은 너무 대충 넘어간 느낌이에요. 한마디로 수수께끼에는 적합하나 소설로는 부적합한 그런 작가였달까요.... 감히 일본 추리소설계의 3대 거성 중 한명이 맞는지 의심까지 갖게 만들 정도로요. 그 외에 지나치게 직역스러운 번역도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고요.

별점은 2점. 자료적으로는 가치가 있고 쉽게 접하기 힘든 당대 작품이기는 하나 이 정도 수준이라면 구태여 찾아 읽을 필요는 없다 생각됩니다.

<혈액형 살인사건>
게누마 박사의 죽음과 가사가미 박사 부부의 자살 뒤 1년 후, "나" 우자와가 사건에 대해 공개하는 형태로 쓰여진 중단편 작품.
혈액형이 중요한 동기로 사용되고 있다는 점, 그리고 게누마 박사의 기묘한 죽음에 대한 트릭 (밀실에서 1시간 30분 정도의 가스 흡입으로 사람이 사망할 수 있도록 한 장치가 무엇인지?)이 엄청나게 과학적이라는 점에서 독특함을 풍기는 작품입니다. 그야말로 과학 추리 소설이랄까요? 쓰여진 시대를 감안하면 초월적인 작품라 생각될 정도에요. 일산화탄소를 액화한다는 발상은 지금 읽어도 신선한, 좋은 트릭이라 생각되고요.

그러나 트릭에 비하면 작품 자체는 평균 이하입니다. 우왕좌왕하는 전개에다가 범인이 너무 뻔하게 드러나버리는 등 읽는 재미를 줘야 하는 소설적 완성도가 심하게 별로에요. 혈액형이라는 동기도 시대를 감안하면 특이하나 지금 읽기에는 낡아빠졌을 뿐이죠. 작가가 너무 과학적인 설정과 트릭에만 신경을 쓴 티가 역력하기에 별점은 2점입니다.

<사랑을 위하여>
순수한 선의에서 아기를 집에 데리고 오게 된 주인공과 그의 아내, 아기 어머니를 찾아달라고 의뢰받은 사립탐정, 그리고 다시 아내와 주인공의 수기로 이어지는 작품.
아기가 왜 주인공과 닮았는지, 아기 어머니가 왜 아기를 열심히 찾지 않았는지 등 소소한 수수께끼가 잘 배치된 작품으로 괜찮은 일상계 소품이라 생각됩니다. 각각 1인칭 수기로 이어지는 전개도 낡은 방식이기는 하나 작품과는 잘 어울렸어요. 개인적으로는 이 단편집의 베스트로 꼽고 싶습니다. 별점은 3점.

<푸른 옷의 사내>
자택에서 협심증으로 숨진채 발견된 오바마(!) 신조의 죽음을 둘러싼 수수께끼를 파헤치는 이야기. 그러나 지금 읽기에는 너무 뻔한 작품이 아니었나 싶어요. 오바마 신조가 죽었다면 가장 득을 보는 것은 상속자 다쿠이치일테고, 그가 오바마의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을 정도로 닮았다는 설정까지 있으니 이야기가 길어질 이유가 하나도 없거든요.
다쿠이치가 상속세 때문에 시체를 방조했다는 진상 하나만큼은 조금 독특하나 그 외에는 별로 건질게 없는 평범 이하의 작품입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덫에 걸린 사람>
빚때문에 발버둥치는 도모키 - 노부코 부부가 각각 고리대금업자 다마시마를 죽일 결의를 한 뒤 벌어지는 이야기인데 무려 500엔이라는 거금을 갑자기 입수하게 된다던가, 지나가던 다케야마가 500엔을 분실한 뒤 우발적으로 다마시마를 죽이게 된다던가 하는 식의 우연치고도 너무 지독한 우연이 연달아 벌어지기 때문에 도저히 좋은 점수를 줄 수가 없네요. 김화백 작품을 보는 기분마저 들 정도에요. 막나가는 것도 정도가 있어야 되잖아요?
죄책감을 묘사하는 부분이라던가 마지막의 "운명이라는 녀석은 항상 덫을 놓고 기다리고 있다. 그것이 운명이다" 라는 도모키의 대사는 멋지지만 그냥 그 뿐이었습니다. 별점 1점 이상은 주기 어려운 몹쓸 작품이에요.

<위조지폐 사건>
중학생 화자인 "나"와 동급생 모리 하루오가 친구 도비야마의 고향에 방문해서 그 마을에서 벌어진 위조지폐 사건의 진상을 파헤친다는 내용으로 셜록 홈즈 느낌이 가득 나는, 전형적인 셜록 홈즈 스타일 작품입니다.
개인적으로 이런 류의 작품을 굉장히 좋아하기도 하지만 탐정역의 모리 하루오가 강아지 발바닥의 잉크를 단서로 하여 절에 방문한 뒤 논리적인 추리를 통해 진상을 알아낸다는 과정 자체는 셜록 홈즈물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로 깔끔하면서도 설득력이 넘쳤습니다. 만약 시리즈가 있다면 읽어보고 싶을 정도로 괜찮은 작품이었어요.
그러나 아동용으로 창작된 듯 한 조금 저렴한 문체와 묘사, 그리고 탐정역인 모리 하루오의 인간적 매력이나 개성이 전혀 표현되지 않는 점 등이 점수를 깎아먹네요. 별점은 2.5점입니다.

<진주탑의 비밀>
경찰과 협력하여 일하는 하시모토 빈이 깜쪽같이 가차로 바꿔치기 당한 진주탑의 행방을 밝혀낸다는 작품으로 역시나 셜록 홈즈 스타일입니다. 의뢰인의 의뢰와 주요 단서를 놓고 벌이는 탐문 수사, 그리고 마지막에 등장인물을 모두 모아놓고 벌이는 깜짝 추리쇼까지 완벽하게 고전적인 작품이에요.
허나 사세의 간단한 공작으로 이루어지는 트릭이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점이 좀 아쉽네요. 어차피 전문가들도 제대로 알아채지 못한다면 사세 입장에서 진주탑을 만들 때 몇몇 진주만 바꿔치기 했다면 훨씬 용이하게 돈을 손에 넣었을텐데 이런 공작을 할 필요가 없잖아요? 그것도 무려 7만엔이나 되는 거금을 쓴다는 점에서 더욱 현실성이 없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 스타일은 잘 따라 했지만 내용면에서는 부족함이 많았다 생각되네요.

<거미>
쓰지카와 박사와 시오미 박사라는 두 박사간의 알력다툼과 그로 인해 비롯된 살의에 대한 이야기로 동기는 <혈액형 살인사건>과 좀 비슷하고 트릭은 <웃지 않는 수학자>와 동일한 작품입니다. 그런데 <웃지 않는 수학자>에서는 나름 폐쇄공간에다가 특정 시기에서만 이루어진다는 제한조건이 있기는 하나 이 작품에서의 연구실 회전은 상시로 이루어지는 것이기에 정말로 트릭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을까라는 의문이 생기기는 합니다. 에도가와 란포 스타일인 거미에 대한 광기 묘사도 뭔가 2% 부족할 뿐더러 좀 뻔했고요. 그냥저냥한 당대 분위기스러운 평작이라 생각됩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꾀꼬리의 탄식>
명문 화족 후타가와 가의 후계자 시케유키의 죽음, 그리고 상속자 시케타케의 정체가 무엇인지에 대해 써내려간 중단편. 제법 긴 분량인데 시케유키가 사망할 때 까지의 전반부, 노무라의 아버지와 시케유키가 남긴 문서로 이루어진 중반부, 시케타케의 정체와 시케유키 죽음에 얽힌 트릭을 파헤치는 후반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시케유키가 일본 알프스를 파헤치는 작업을 하는 이유가 서서히 밝혀지는 과정까지의 긴장감이 꽤 그럴듯하고 시케유키를 독살한 트릭도 괜찮은 편이나 진상이 정말로 무엇이었는지 알려주지 않고 유력 용의자를 급작스럽게 단죄하며 끝내버리는 마지막 결말때문에 작품을 망쳐버렸어요. 어차피 증거도 없고 주인공이 할 수 있는 것도 없었겠지만 이렇게 끝내는건 너무 안이한 처사였다 생각됩니다. 최소한 진상은 밝혀 줬어야죠. 시대를 감안하더라도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려워요. 별점은 2점입니다.

<호박 파이프>
한 집에서 피살된 일가족, 남겨진 방화의 흔적, 그리고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 백주강도 사건의 관계자 이와미가 얽혀 의외의 진상이 드러난다는 본격 추리물. 간단한 암호 트릭과 더불어 방화에 이용된 염산가리와 설탕의 혼합물에 유산을 떨어트리는 장치 등 복잡한 트릭이 사용된 작품입니다. 전개도 흥미로운 편입니다. 이와미라는 평범한 회사원이 범죄에 어떻게 관계되었는지를 설득력있게 보여주고 있으니까요.
그러나 완성도는 그닥 높아 보이지는 않네요. 백주강도가 탐정역을 자연스럽게 수행하는 과정에서의 설득력이 전무할 뿐 아니라 트릭의 과학적 설명은 합당하나 범인이 그렇게까지 정교한 장치를 만들 필요가 있었는지에 대한 의문이 생기거든요. 그야말로 트릭을 위한 트릭일 뿐이었어요. 별점은 2점입니다.

<니켈 문진>
묵직한 니켈 문진에 맞아 죽은 시체로 발견된 시미즈 박사의 사인을 둘러싸고 그의 서생인 시모무라와 우치노가 두뇌싸움을 펼쳐 진상을 밝혀낸다는 이야기입니다. 하녀인 야에코를 화자로 하여 전개하는 구조는 독특하긴 하나 이야기 전체의 설득력이 낮아서 마음에 들지는 않네요. 왜 시미즈 박사가 독가스를 연구했는지, 또 왜 독일어로 그 연구를 기록했는지도 설명되지 않고 비밀을 훔치려는 사람들의 공작이 너무나 허술해서 어이가 없을 정도에요.
순수한 니켈이 자석에 반응한다는 과학 상식을 알게된 것 이외에는 건질 부분이 전무한, 그야말로 너무한 수준의 작품이었습니다. 별점은 1점입니다.

2012/11/12

절대 0도의 수수께끼 - E.S 가드너 : 별점 2점

변호사 페리 메이슨 시리즈로 유명한 E.S 가드너의 작품인 표제작과 R.M 파뤼의 <액체 침략자>라는 작품이 실려있습니다. 구 아이디어회관 문고본 시리즈의 하나로 직지 프로젝트 덕분에 이전에 전자책화 된 것이죠. 이번에 구글북스에서 무료로 제공하길래 다운받아 읽게 되었습니다.

<절대 0도의 수수께끼>는 억만장자의 유괴사건에서 시작되어 관계자들이 연이어 사라지는 사건을 추적하는 핑거튼 탐정소의 탐정 로드니의 활약을 그린 모험물입니다. 절대 0도가 되면 분자가 움직이지 못하게 되어 물질이 사라진다는 이론이 핵심 설정이기에 SF로 분류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무리가 아닌가 싶네요. 로드니가 절대 0도에 대해 눈치채게 되는 몇가지 단서 및 복선이 등장하며 나름 단서를 짚어나가며 수사하는 과정이 디테일하기 때문에 구태여 분류하자면 추리물이라 생각됩니다. 워낙에 말도 안돼는 핵심 설정과 트릭 때문에 정통 추리물로 보기에도 조금 애매하긴 하지만요.거기에 더해 꽤 박진감 넘쳤을 전개과정의 묘사가 아동용으로 번역되면서 많이 훼손된 듯하다는 느낌까지 받았습니다.
때문에 별점은 1.5점입니다. 페리 메이슨이라도 등장했더라면 팬심으로 점수가 좀 더 올라갔을지 모르나 점수를 줄만한 부분이 도통 없네요.

<액체 침략자>는 작은 호수의 여과성 바이러스가 지능을 갖추게 된 뒤 인간으로 부터 얻은 지식으로 업그레드하여 지구를 정복(?)하려 한다는, 1930~40년대 미국에서 유행한 외계에서 온 방문객 소재의 작품입니다. 흔해빠진 소재와 설정이지만 물로 희석되면 죽는다는 바이러스의 약점을 잘 활용하여 바다로의 길을 차단하는 작전이 등장하는 부분은 꽤 흥미로왔으며 주인공 화학자 데이가 인류를 정복(?) 하려는 여과성 바이러스와 일종의 우정을 나누게 된다는 발상과 바이러스보다는 주인공의 동료인 슈미트 쪽이 외려 더 악당이라는 점이 상딩히 돋보였습니다. 80여년 전 작품이나 이러한 점에서 현대적인 감각이 느껴지더군요.
결론적으로 지나치게 아동틱한 번역은 아쉬우나 시대를 앞서간 반짝반짝 빛나는 아이디어들이 돋보이는 괜찮은 소품이었다 생각되네요. 별점은 3점입니다.

덧붙이자면, 구글북스 자체의 성능이나 가독성은 나쁘지 않았어요. 그러나 기존 아이디어 회관의 직지 프로젝트 버젼 전자책에 포함되어 있는 삽화가 빠진 것은 무슨 이유인지 좀 궁금합니다.

2012/11/10

수학암살 - 클라우디 알시나 / 김영주 : 별점 2점

 

수학암살 - 4점
클라우디 알시나 지음, 김영주 옮김, 주소연 감수/사계절출판사

일상 생활 속 수학의 힘을 보여준다는 취지로 다양한 생활 속 오류를 소개하는 책. 총 6개의 단락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수학적인 내용은 많지 않고 사례들도 오타라던가 별거 아닌 과장법이라고 생각되는 것들이 대부분이라 "중요한 오류" 라 느껴지지도 않는 문제가 큽니다. 짤막짤막하게 이어지는 내용들 덕분에 읽기 쉽다는 장점은 있지만 그냥 그 뿐이랄까요.

그래도 몇가지 재미있었던 사례를 꼽아보자면
  • 아이 다섯명이 감자 네 개를 나눠 가지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감자로 퓨레를 만드는 것이라는 주장.
  • 보통 면적이 두배가 되면 길이는 2파이, 다시 말해 141% 의 비율로 늘어나기 때문에 A4 크기는 A2로 확대해야 글자가 두배가 된다는 것.
  • 샴페인 잔은 원뿔을 뒤집어 놓은 모양으로 높이의 절반은 전체 부피의 1/8 에 불과함.
  • 파스칼이 계산한 "주사위를 네번 던졌을 때 6이 나올 확률"은 6이 나오지 않을 확률인 5/6의 4승을 1에서 뺀 값인 0.52라는 것.
등이 있기는 한데 전체적으로 기대와는 너무 달랐어요. 별점은 2점입니다. 연령대가 낮은 청소년 층에 적합한 교양서라 생각되네요.

2012/11/09

무협의 시대 - 송희복 : 별점 3점

 

무협의 시대 - 6점
송희복 지음/경성대학교출판부

1960년대, 근대적 무협 영화를 창조한 호금전에서 이소룡까지 약 20여년간의 무협영화사를 감독별, 배우별로 소개하는 영화사서적.

사마천의 사기 속 <자객열전>과 무협 영화와의 상관관계, 이른바 "협"이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도입부에서 시작하여 실질적인 무협 영화의 시대를 연 호금전 감독 작품 중심의 1부, 무협영화 전성기 장철 감독을 위시하여 왕우, 적룡, 강대위와 이소룡 등 70년대 무협의 다양한 배우와 작품에 대해 소개하는 2부, 그리고 70년대 이후를 짤막하게 정리한 3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호금전이나 장철같은 거장에 대한 자료는 인터넷 등을 통해 찾아볼 수 있지만 왕우를 위시하여 강대위, 적룡, 나열, 이소룡 등의 남자배우에다가 정패패, 초교, 이청, 하리리, 상관영봉 등의 여자배우까지 소개하는 등 자료로서의 가치가 무척 높더군요. 도판도 컬러는 아니나 엄선했다는 느낌은 전해 줄 정도로 꼼꼼하기도 하고요.
또한 아주 상세하지는 않으나 주요 작품별 소개에서 개봉당시 신문 광고라던가 소장한 비디오 테이프 표지같은 실질적이고 경험적인 자료를 덧붙인 것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물론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작품들은 아무리 걸작이더라도 지금 감상한다면 낡아빠졌을 뿐이라는 사실이 좀 슬프긴 합니다. 제가 보았던 <외팔이> 가 단적인 예가 될 수 있겠죠. 그래도 <복수>는 상당히 재미있게 본 만큼 장적강 트리오의 최고작 (장철 - 적룡 - 강대위) <자마>, 쇼브라더스의 야심작이자 무협영화의 벤허라고 칭하는 <유성호접검>, 외국에서는 최고의 무협영화로 불리운다는 <죽음의 다섯손가락>은 한번 구해보고 싶네요. 간지가이 적룡따꺼의 전성기 주연작이라는 <초류향>도 궁금하고 말이죠.

한마디로 말해서 무협영화라는 쟝르물에 대한 헌사로서 관심있으시다면 재미도 같이 느낄 수 있는 책입니다. 매니아가 애정의 대상을 할 수 있는 극한의 디테일로 그려내었기에 관심이 있다면 재미가 없을 수가 없죠. 척박한 국내 환경에서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였다는 것도 확실한 책이고요. 때문에 별점은 3점입니다. 무협영화를 사랑하시는 모든 분들께 일독을 권해 드립니다.

2012/11/03

꼿 가치 피어 매혹케 하라 - 김태수 : 별점 4점

 

꼿 가치 피어 매혹케 하라 - 8점
김태수 지음/황소자리

신문광고를 중심으로 근대에 대해 설명하는 미시사 서적.

근대 조선에 대한 미시사 서적은 개인적으로 관심이 큰 분야라 이 블로그에서 리뷰한 것만 열권이 넘을 정도로 많이 읽고 접해왔습니다. 그러나 어느정도 읽으니 주제와 내용면에서 많이 겹치는 것이 눈에 뜨이더군요. 주요한 일상생활사는 주로 <별건곤>에서 인용하는 책들이 많기에 가지는 어쩔 수 없는 한계라 생각되지만요.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차별화되는 포인트가 있어서 아주 마음에 들었습니다. 신문광고라는 주제가 아주 좋아요. 당대의 사회상과 관심사를 한눈에 보여주는데 광고만한 것이 또 있을까요? 광고를 주요 매개체로 하여 여러가지 자료를 토대로 해당 내용에 대해 설명해 주는 방식이기 때문에 다른 근대 미시사 서적과 겹치는 주제가 있기는 하나 내용면에서 "다르다"라는 느낌을 확실하게 전해주더군요. 각 꼭지별로 상세한 자료조사를 통해 당시 광고를 그대로 보여주는 등 자료적 가치가 뛰어나다는 것도 마음에 들은 점이고요.

목차는 아래와 같습니다.

기생|개쌍놈도 데리고 노는 민중화의 세상이라
고무신|강철은 부서질지언정 별표 고무는 찢어지지 아니한다
성병약|화류병은 문명의 병이다
영어|입신의 기초이며 출세의 자본이라
아지노모도|끄내라, 끄내! 밥상 드러온다
과자|포켓트에 너흘 수 있는 호화로운 식탁
산아제한|'가정화합의 벗' 삭구를 아시나요?
전쟁|캬라멜도 싸우고 있다
창씨개명|나의 조선 이름은 촌티가 나서......
영화|촤뿌린씨의 눈물과 웃음, 거리의 등불은 빛난다
자동차|제갈량의 목우유마냐 옥황상제의 용마냐
라디오|문명이 운다 조선의 라듸오!
위생|건전하고 매력 있는 살바탕을 맨드러야
박가분|부인 화장계의 패왕
백화점|백화점 승강긔 바람에 억개가 읏슥하다
술|맥주는, 가로대 자양품이라
커피|양탕국이냐, 독아편이냐
손기정|축! 마라손 왕 손남 양군 만세
전당포|훈장 3원, 요강 50전
바리캉|경제계의 대복음, 이발계의 혁명
양장|유방을 해방하자
포르노그래피|밤의 쾌락을 맛볼랴는 남녀에 권함

목차만 읽어도 너무나 재미있을 것 같지 않습니까? 저는 전부 다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이 중에서도 개인적으로 인상깊었던 항목은 "강철은 부서질지언정 별표 고무는 찢어지지 아니한다"라는 현란한 카피가 돋보이는 별표 고무의 광고 등이 실린 <고무신>, 화류병 (매독) 치료를 위한 다양한 제품의 광고를 선보이며 당시 성병의 전파 경로 등을 고찰하는 <성병약>, 당대의 피임약과 아들낳는 약 등을 소개한 <산아제한>, 창씨개명을 위한 개명에 돈을 받은 작명소 광고에서 부터 창씨개명에 대한 여러가지 에피소드가 이어지는 <창씨개명> 등이 있습니다. 전병하라는 농부가 성을 "전농"으로, 이름의 병하를 한자를 바꾸어 일본 발음으로 부르니 "덴노 헤이카"가 되었다는 등의 사연이 참 재미있더군요. 현재 두산의 모태인 박승직 상점의 "박가분"이 조선 화장품의 패왕이 되었다가 결국 연독 (납) 중독이 발견, 보도됨으로 사멸했다는 일대기가 기록된 <박가분>도 흥미로왔고요.

결론내리자면 최근 읽은 관련 미시사 서적 중에서는 가히 최고라 생각됩니다. 흥미로운 주제, 주제에 대한 소개 및 설명. 충실한 도판 등을 통한 자료적 가치 모두 뛰어나기에 별점은 4점입니다. 근대 조선, 경성에 대해 궁금하신 분들께 강력하게 권해드립니다.

2012/10/30

스노우화이트 - 모로호시 다이지로 : 별점 1.5점

 

스노우화이트 - 4점
모로호시 다이지로 지음/미우(대원씨아이)

모로호시 다이지로의 그림동화를 소재로 한 단편집. 모두 12편의 단편이 실려있습니다.
다양한 쟝르를 소화해가며 그림동화를 재해석한다는 아이디어가 돋보이더군요. 뱀파이어 호러물로 변주한 <스노우화이트>, 영혼 이동 호러물 <카라바 후작>은 어디 내 놓아도 손색없는 작품이라 생각됩니다. 좀 뻔한 근미래 종말론적 분위기 SF <라푼젤>도 그럭저럭 괜찮았고요.

그러나 나머지 작품들은 대부분 실망스러웠습니다. 단순한 아이디어나 설정만으로 승부하는 작품이 많은데 딱히 재미있지도 않을 뿐더러 완성도도 별로거든요. 허무개그스러운 분위기가 많다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요.
작가 특유의 기괴한 센스가 딱히 두드러지지 않는 것도 개인적으로는 감점요소입니다. 책 소갯글처럼 "모로호시 World 초보자를 위한 최적의 입문서"일지는 몰라도 이 작가의 매력이 잘 표현된 작품은 아니라 생각되네요. 과연 이 작품으로 모로호시 다이지로를 접한 초심자가 과연 다른 작품을 찾아보게 될까요?

어차피 전부 12편에서 3편만 마음에 드니 별점 척도로도 1.5점 이상은 못 주겠습니다. 8,500원이라는 가격도 용서가 되지 않네요. 작가의 팬과 초심자 모두에게 적합치 않은 책으로 판단됩니다. 그래도 궁금하신 초심자 분 계시면, 딱 한번 읽은 책 4,000원에 양도하겠습니다....

2012/10/27

샤프를 창조한 사나이 - 히라노 다카아키 / 박영진 : 별점 1점

 

샤프를 창조한 사나이 - 2점
히라노 다카아키 지음, 박영진 옮김/굿모닝북스

일본 샤프의 창업자이자 "샤프 펜슬"을 발명한 하야카와 도쿠지 일대기.
빈민촌 혼죠 후카가와에서 자라며 가혹한 새어머니의 학대에 시달린 유년시절, 소학교 중퇴 후 시작한 도제생활, 스승의 사업 실패 후 야시장 장사까지 해 가며 보은, 독립의 시작이 된 특허 상품 벨트 버클 도쿠비죠 개발,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알고 친가족과 재회, 최초의 샤프 펜슬 탄생, 성공의 와중에 닥친 관동대지진으로 전 가족을 잃은 일, 이후 라디오로 재기 성공.... 등의 이야기가 담담하게 펼쳐집니다.

허나 한마디로 이야기하자면 흔해 빠진 용비어천가식 미담에 불과해요. 당대 인물들 중 고생 안 해본 사람은 없을터라 고생담이 딱히 와 닿지도 않을 뿐더러 뛰어난 장인으로 기술에 기반한 인물이라는 것도 당시 일본 기업가들 대부분이 마찬가지였을 것이라 생각되기에 특별함을 느끼기 어려웠습니다. 이야기 중 친구이자 라이벌이라고 소개된 마쓰시타 고노스케 역시 마찬가지잖아요? 소니의 이부키 마사루도 그렇고.
지진으로 모든 가족을 잃은 상처가 있다길래 순애보같은 개인사를 기대하기도 했는데 내연의 처와 평생을 함께 했으며 정작 하나뿐인 딸은 또다른 애인이 낳았다는 시마과장스러운 가족사도 역시나 싶더군요.

그나마 조금 특이한 것은 바보스러울만큼 착했다는 점인데 기업가로서의 성공에는 발목을 잡을 뻔한 일이 많은 만큼 본받을 일은 전혀 아니더라고요. 뭐 이러한 일화도 굉장히 과장되었을 것이라 생각되긴 하지만요.

어쨌거나 샤프 자체가 무너져버린 지금 읽기에 적합한 책은 아니며 딱히 남는 것도 없는 전형적인 1세대 기업가 성공담이었습니다. 회사에 굴러다니기에 읽었지만 이런 케케묵은 성공담보다는 차라리 <소니 침몰>처럼 샤프의 몰락을 다룬 책이 더 재미있고 유익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소니처럼 말이죠. 별점은 1점입니다.

2012/10/23

야수는 죽어야 한다 - 오오야부 하루히코 : 별점 1.5점

야수는 죽어야 한다 - 4점
오오야부 하루히코/고려원(고려원미디어)

식민지 조선에서 태어난 다테 구니히코는 해방 후 온갖 고초를 겪으며 일본으로 귀항햐여 성장하는 과정을 통해 성공, 그리고 돈에 대한 강한 집착을 갖게 된다. 그래서 그가 가장 빠른 성공을 위해 택한 것은 "범죄" 였다...

오오야부 하루히코의 전설적인 데뷰작. 다테 구니히코라는 희대의 안티히어로를 주인공으로 한 하드보일드 활극입니다. 그야말로 일세를 풍미한 당대 대 히트작이기도 하죠. 대학교 입학금 강탈이 필생의 목표로 그려지는 100 여 페이지 분량의 1부와 아버지, 여동생의 원수인 게이큐 재벌의 총수 야지마 가문에게 복수하는 2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당대에는 참신했을테고 다양한 쟝르물에 영향을 끼쳤을지는 모르나 무려 60여년이 지난 지금 시점에서는 별달리 새로울 것 없는 흔해빠진 안티 히어로 액션 모험물일 뿐이라 실망스러울 뿐이었습니다. 일단 설정부터가 오버스러워요. 키 180에 복싱으로 다져진 몸매, 뛰어난 사격실력과 운전실력, 수려한 외모, 하버드 유학 경험까지 있는 영문학자라는 설정을 갖춘 내츄럴 본 킬러 다테 기미히코라는 캐릭터는 남성 판타지의 이상형이라 할 수 있지만 그 자체만으로 만화적인, 현실성 제로의 인물이죠. <아이거 빙벽>의 조너던 헴록은 이놈에 비하면 옆집 아저씨 수준이에요.
범행들도 어이가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나마 현실성 측면에서는 1부가 조금 나은 편이기는 해요. 대학교 입학금 강탈 작전은 1,600백만엔 정도의 금액 강탈로 끝나서 그러려니 할 수 있으니까요. 허나 2부에서의 은행 습격 시 강탈한 돈은 무려 87억엔으로 묘사되는 등 스케일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라 뭐라 언급하기도 난감하네요. 이 정도면 거의 국가 전복, 쿠데타 수준이 아닐까요?

캐릭터의 강한 마초적 매력과 함께 디테일한 총기류와 범행에 대한 묘사, 빠른 전개로 독자를 사로잡는 재미는 충분하나 설득력 측면에서는 빵점에 가까운, 전형적인 펄프 픽션이었습니다. 별점은 1.5점. 당대 독자에게 어필했으리라 짐작되는 부분이 일부 있기는 하나 지금 읽기에는 너무 낡았다는 것이 정답인듯 합니다. 그래도 마쓰다 유사쿠 주연의 80년도 영화 작품은 보고 싶기는 하네요.

2012/10/21

범인 없는 살인의 밤 - 히가시노 게이고 / 윤성원 : 별점 2점

 

범인 없는 살인의 밤 - 4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윤성원 옮김/랜덤하우스코리아

<신참자>를 읽고난 뒤 충동적으로 연이어 읽게 된 히가시노 게이고의 단편집. 전부 7편의 단편이 실려 있습니다. 특이한 점은 정통 추리물이라기 보다는 인간 심리를 주제로 한 작품들이 많다는 것이겠죠. 그러나 <신참자> 보다는 확실히 별로였습니다...

재미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주제에 걸맞는 이야기들로 섬찟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반전들은 괜찮은 편이니까요. 허나 반전을 위해 작위적인 설정들이 개입된 이야기가 많다는 점과 더불어 추리적으로 그닥이었기 때문에 점수를 주기는 좀 어렵네요.
물론 추리적으로만 놓고 본다면 여섯번째 작품인 <굿바이 코치>, 그리고 마지막 작품인 표제작 <범인 없는 살인의 밤>이 괜찮은 트릭과 더불어 결말까지 설득력있는, 일정 수준 이상의 완성도를 보여주어 역시나 작가의 이름 값을 느끼게 해 주기는 합니다. 허나 그외의 작품들은 아무래도 작품들의 주제가 사소했던 감정이나 오해 등에서 촉발된 살인사건을 다루고 있기 때문으로 정교하거나 디테일한 것과는 거리가 있어요. 동기도 과장된 것들이 많았고요.

결론적으로 별점은 2점. 읽는 재미는 있지만 작가의 명성을 생각한다면 평범한 수준이었다 생각됩니다. 보다 정교한 추리물이었거나 아니면 심리묘사를 중심으로 한 "기묘한 맛" 류의 단편이었다면 훨씬 좋았을텐데, 지금은 이도저도 아닌 애매한 결과물로 보이네요.

<작은 고의에 관한 이야기>
친구 다쓰야의 자살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는 이야기. 고등학생에 어울리는 수사과정의 현실성이 돋보이고 진상도 깔끔하나 우연이 많이 개입된 상황 + 설득력 떨어지는 동기라는 측면에서는 아쉬움이 남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어둠속의 두 사람>
제자 하기와라 신지의 동생 살해 사건에 대해 알아가다가 놀라운 진상을 깨닫게 되는 중학교 교사 히로미의 이야기.
전개도 그럴듯하고 반전도 충격적이면서 설득력있는데 문제는 과연 범인이 범행을 그렇게 저지를 수 있었을까 하는 점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죽일 이유가 별로 없는 것 같은데 말이죠. 때문에 별점은 2.5점 입니다.

<춤추는 아이>
매주 수요일 밤 리듬체조를 연습하는 소녀에게 푹 빠진 제자를 위해 소녀에 대해 조사해주는 가정교사 구로다의 이야기.
시작은 순수했지만 결말이 비극적이라는 점에서 단편집 주제에 가장 잘 맞는 작품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드라마에 가까운 평범한 내용으로 추리적으로는 언급할만한 것은 전혀 없기에 별점은 2점입니다. 약간의 일상계 분위기만 내 주었더라면 더 좋았을텐데... 어쨌건 추리소설은 아니었습니다.

<끝없는 밤>
오사카로 혼자 부임한 남편이 살해된 것을 알게 된 주부 아쓰코의 이야기.
인간적이면서도 관찰력 좋은 형사 반바의 캐릭터는 마음에 들지만 처음에 남편 시체가 놓여진 상태를 공정하게 알려주지 않는 등 추리적으로는 역시나 언급할 만한 점이 별로 없는 작품이었습니다. 아쓰코의 심리묘사 정도만 볼 만 했 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하얀 흉기>
A 식품회사 자재과 직원들을 대상으로 발생한 연쇄 살인 사건의 진상에 대한 이야기.
범인을 초반부터 드러낸다는 점이 독특했으며 첫번째 사건의 트릭도 괜찮았고 무엇보다도 동기가 확 와 닿은 작품입니다. 저도 담배를 끊어야 할텐데 말이죠... 하지만 딱 한가지, 범인이 정신이상이었다는 결말은 섬찟하기는 하나 너무 쉽게 풀어낸 느낌이에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굿바이 코치>
양궁부 제자 모치즈키의 자살과 그녀의 유서인 비디오테잎을 통해 밝혀지는 진상에 대한 이야기.
범인인 코치의 트릭은 우연이 동반된 결과물이기는 하나 꽤 기발한 편입니다. 문제는 모치즈키 나오미가 코치를 함정에 빠트릴 계획이었다면 아예 테이프 자체를 바꿔치기 하는 것이 더 나았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구태여 처음 테이프의 상황과 동일하게 꾸며가면서 약간의 단서만 남기는 식으로 갈 필요가 전혀 없거든요. 아예 통째로 바꿔치기 하던가 파기해서 궁지에 빠트리는 것이 더 효과적인 복수였을 텐데 말이죠. 트릭말고는 별로 건질게 없기에 별점은 2점입니다.

<범인 없는 살인의 밤>
유명 건축가 키시다 저택에서 벌어진 우발적인 살인 사건에 대해 인칭을 바꿔 가면서 전개하는 작품입니다. 인칭을 바꿔 간다는 점에서 트릭이 살짝 엿보였는데 (서술트릭이겠거니... 싶었죠) 진상은 제 예상보다도 한번 더 복잡하게 꼬아놓았더군요. 경찰의 수사과정도 상당히 돋보였고 말이죠.
그러나 트릭의 설득력은 그닥 높지 않고 작위적 설정이 지나쳐서 트릭을 위해 만든 것 같은 느낌도 강하게 듭니다. 누가봐도 같은 이름의 여자 가정교사가 있다면 이상하다고 생각할텐데, 사소한 부분에서 신경을 좀 덜 쓴 것 같기도 하고요. 별점은 2.5점입니다.

2012/10/19

[근조] 실비아 크리스텔 (1952-2012)

 


모든 제 동년배의 영원한 누님. 실비아 누님께서 운명을 달리하셨네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신참자 - 히가시노 게이고 / 김난주 : 별점 3점

 

신참자 - 6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재인

가가형사 시리즈 단편집. 모든 단편들이 중년 이혼녀 살인사건이라는 하나의 사건을 중심으로 각각 사소하게나마 연관되어 있는 - 가가 형사가 수사 도중 선물하고 다니는 선물이 두번째 단편에 등장하는 닌교야키나 다섯번째 가게의 케이크라던가, 일곱번째 단편에서 피해자 전남편과 술을 먹는 가게가 두번째 단편의 주 무대라던가 하는 식이죠 - 연작 단편집이기도 합니다.

추리적으로는 모순된 증언을 밝힐 수 있다면 아무리 기묘해도 그것이 진실이라는 점에서 (예를 들자면 케이크가게와 피해자 아들을 연결시키는 진상 같은 부분) 홈즈의 귀납 추리법이 떠오르는데 고전 추리물 애호가로서 정말이지 무척 반가운 점이었어요. 이러한 추리법이 다양한 지역주민들의 모순된 증언 이면의 진실을 파헤친다던가, 이유를 알 수 없는 상황에 대한 단순한 진실을 밝혀낸다는 일상계 분위기가 강하다는 것도 마음에 들었고요. 실제로 있음직한 이야기들이 많았으니까요. 한마디로 추리적으로 충분한 재미를 가져다 주는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또한 이러한 과정에서 꼬여있던 인간관계가 해결된다던가, 감정의 응어리가 풀린다는 치유계스러움, 피해자 아들 고우키의 성장물 스러움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도 아주 독특하다 느껴졌습니다. 고우키가 어머니의 진심을 알게 된다던가 하는 이야기에서는 잔잔한 감동도 전해주는 것이 아주 좋았어요.

덧붙이자면 실존하는 지역인 니혼바시 고덴마쵸의 여러 가게들을 무대로 펼쳐진다는 점도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저도 지역 특산물이라는 닌교야키나 아몬드 푸딩위에 패션 프루트젤리를 얹은 젤리는 한번 사먹어보고 싶어지더군요.

그러나 몇몇 이야기는 비약이 심하고 정보를 공정하게 전달해주지 않는다는 점과 중반부까지의 이야기, 즉 지역 주민들의 거짓 증언을 밝혀내는 이야기들은 작위성이 두드러진다는 점에서 조금 불만이기는 했습니다. (아무리 고집이 세고 입이 무거워도 살인사건을 수수하는 형사앞에서 태연하게 거짓증언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또 피해자의 자금 관계를 조금만 철저하게 조사했더라면 보다 쉽게 진상을 밝혀낼 수 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한데 너무 수사가 발품, 탐문으로 진행되는 부분은 납득하기는 좀 어려웠고요.

그래도 결론은 수작. 이전에 읽었던 가가 형사 시리즈는 묵직한 정통 추리물 + 복수극 느낌인 <둘 중 누군가 그녀를 죽였다> 뿐이었는데 아주 상반된 작품이라서 굉장히 의외였지만 저는 이쪽 분위기가 훨씬 마음에 듭니다. 재미와 함께 추리적인 요소도 잘 갖추고 있는 작품임에는 분명하다 생각되네요. 별점은 3점입니다.


<센베이집 딸>
용의자의 옷차림에 대한 증언과 가가 형사가 관찰을 통해 밝혀낸 사실 (거리를 지나다니는 직장인들의 옷차림)을 바탕으로 비약이 심하지만 논리적인 진상을 밝혀내는 과정이 고전추리 스타일이라 마음에 든 작품입니다. 그러나 살인사건이라는 강력사건 수사 앞에서 입을 다물고 있었을까?라는 점에서는 설득력이 별로 없네요. 별점은 2.5점입니다.

<요릿집 수련생>
피해자의 집에 있던 닌교야키에 얽힌 진상을 밝혀내는 이야기. 사건과는 하나도 관계가 없다는 점과 추리적인 요소가 부족하다는 점에서는 약간 처지기는 하나 실제 있음직한 일상계스러운 분위기는 좋았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사기그릇 가게 며느리>
피해자의 집에서 발견된 주방 가위를 사기그릇 가게 고부갈등과 연결시킨 작품. 식사용 가위라는 말을 주방 가위로 오해했을 것이라는 진상을 시어머니의 여행과 연결시킨 전개가 깔끔합니다. 이 정도면 거의 완벽한 일상계가 아닐까 싶네요. 별점은 3점.

<케이크 가게 점원>
피해자가 자주 들린 케이크 가게 - 피해자가 갑자기 연고도 없는 고덴마쵸로 이사온 이유 - 피해자의 아들이 동거하는 연인의 집 이라는 연결고리를 풀어내는 이야기로 철모르는 피해자 아들 고우키의 인간적인 성장이 돋보이더군요. 피해자가 이사오게 된 계기가 순전히 우연이었다는 점에서 정교함이 떨어지나 은행이 많다는 묘사를 통해 공정하게 독자에게 정보를 전해준 것이 아주 괜찮았어요. 별점은 3점입니다.

<번역가 친구>
시체를 발견한 피해자 친구의 응어리를 풀어주는 이야기가 중심으로 추리물이라기 보다는 치유계로 보이는 작품입니다. 세번째 이야기의 사기그릇 가게에서의 증언이 주요 소재로 쓰인다는 점에서 연작물 특성을 많이 보이기도 하죠. 드라마는 잔잔하니 좋은데 추리적으로 별로 눈여겨 볼 만한 부분은 없기에 별점은 2점입니다.

<청소회사 사장>
피해자의 전남편이 등장하여 가족간의 응어리를 풀어낸다는 작품으로 역시나 치유계스러운 느낌이었습니다. 반지에 대한 묘사가 공정하지 못하다는 점에서 추리물로 보기는 좀 어렵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민예품점 손님>
유일하게 한편으로 완결되지 않는 작품으로 마지막 이야기를 위한 복선 및 정보제공 성격이 강한 작품입니다. 별점을 단독으로 주기는 좀 애매하네요.

<니혼바시의 형사>
범인을 밝혀내는 대단원격인 작품으로 전편인 민예품점 손님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깔끔한 마무리는 좋은데 진상, 동기가 너무나 평범해서 앞부분의 수사가 왜 필요했을까.. 라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는 점에서 조금 맥이 빠지기도 하네요. 그래도 흉기를 찾아내는 부분이 현실적이면서도 정교해서 괜찮았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