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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31

존 윅 (2014) - 데이빗 레이치, 채드 스타헬스키 : 별점 2.5점



미중년 액션물의 하나.



1952년 생인 이 형이나



1954년 생인 이 형에 비하면 키아누 리브스야 여전히 젊어보이기는 하죠.



하지만 1964년 생으로 나이가 쉰이 넘었으니 미중년이라 해도 무방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앞의 두분인 지금 보니 미노년이라고 칭하는게 맞을지도?

여튼, <테이큰>이후 쏟아져 나온 유사 장르물이기는 하나 다른 경쟁작들과는 다른 나름의 차별화 요소를 지니고 있습니다. 일단 존 윅은 순수하게 본인의 "사소한" 복수를 위해서 움직인다는 점이 그러합니다. 목숨을 걸 만큼 사랑했던 아내가 죽기 전 남긴 마지막 선물인 개를 잃게 되자 분노가 폭발했다는 설정이죠. 딸을 구하기 위해 나서는 <테이큰>보다야 황당하고 비현실적이지만 잘 알지도 못하는 아가씨들을 위해 킬러, 인간 흉기들이 목숨을 건다는 것보다는 설득력이 높아 보여요. 남이 보기에는 아무렇지도 않아도 나는 손톱이 깨져도 아파 죽는 것 처럼 자기의 일은 자기만 아는 법이니까요.
그리고 "왕년에" 주인공이 어떤 활약을 했는지 다른 경쟁작들은 디테일로 살짝 보여줄 뿐 딱히 설명되는 것이 없는데 이 작품에서는 주인공이 응징할 대상인 러시아 마피아 두목이 스스로 존 윅의 대단함을 강조함으로서 그의 강함에 대한 설득력을 강하게 느끼게 해 줍니다.

무엇보다도 본편 이야기와 상관없는 디테일들이 상당히 볼거리로 금화로 이루어진 킬러들의 경제 체제라던가 존이 죽인 시체를 처리하는 장의사 등이 그러하죠. 그 중에서도 영화 속 킬러들의 호텔인 콘티엔탈 호텔에 대한 설정은 군계일학입니다. 킬러들이 자연스럽게 묵는 호텔로 호텔 안에서는 "사업" 관련된 일을 하면 안된다는 불문률이 있는 곳으로 이 장소만 가지고도 괜찮은 영화 몇편 뽑아낼 수 있을만큼 멋드러진 이야기였습니다. 그만큼 잘 그려내고 있기도 하고요.
친구 킬러인 마커스 캐릭터도 괜찮았어요. 악당 보스의 말 대로 "노병" 느낌으로 원거리 스나이퍼 캐릭터인데 여러모로 매력적이었거든요. 간만에 본 윌리엄 데포가 적역을 맡아 호연을 보여주기에 감정이입이 더 잘 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영화 자체만 놓고보면 혼란스럽기도 합니다. 아무도 건드릴 수 없는, 헤드샷이 특기인 원샷원킬의 먼치킨 최강자와 의외로 헛점도 많고 그다지 강하지 않은 현실적인 중년 남자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느낌이거든요. 중반에 나이트 클럽을 휩쓰는 장면은 정말 대단한데, 직후에는 허무하게 잡히는 등 뭔가 앞뒤가 안맞아 보이니까요. 특히나 마지막에 할아버지 보스와 1:1로 싸우는 장면은 밸런스가 맞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몸 상태가 별로라 하더라도 러시아 마피아 조직 하나를 혼자서 쓸어버리는 킬러가 할아버지와 1:1이라니, 이건 말도 안돼죠. 차라리 영화 속 설정과 소문처럼 먼치킨으로 묘사되는게 더 낫지 않았을까 싶어요. 나이는 경쟁자들에 비해 열살이나 어린데 능력은 가장 못해 보이니 안쓰러울 따름입니다.
덕분에 액션 역시 화끈할 때와 밋밋할 때가 구분되는 것도 단점이에요. 시종일관 강하게 달려주는게 훨씬 좋았을텐데 말이죠. 아울러 라이벌로 등장하는 퍼킨스 양의 결말도 영 뜬금없어서 당황스러울 정도였습니다.

물론 이 정도면 짧은 시간동안 즐기기에 적당한, 킬링타임용으로는 괜찮은 작품이기는 합니다. 1시간 30분 남짓한 시간동안 존 윅의 복수, 아들을 잃은 마피아 두목의 복수, 악당에게 고용된 여자 킬러의 습격 등의 이야기가 아주 깔끔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런대로 시원하게 펼쳐지니까요. 결론적으로 별점은 2.5점입니다.

아울러 키아누 리브스가 최근 부진하죠. 이 작품은 박스오피스 모조로 확인해보니 제작비는 2천만불인데 월드와이드 합산 흥행 수익은 7천만불로 다행히 제법 성공한 편이더군요. 키아누 리브스를 위해서라도 후속작을 기대해봅니다.

덧 : 제작자 중 한명이 에바 롱고리아네요. 본인이 제작한 영화라면 작은 역할이라도 나와주는게 여러모로 낫지 않았을까요?

2015/01/27

서랍 속 테라리움 - 구이 료코 / 박의령 : 별점 3점

서랍 속 테라리움 : 신장판 - 6점
쿠이 료코 지음, 김민재 옮김/㈜소미미디어

<<던전밥>>으로 낙양의 지가를 올리고 있는 구이 료코 (쿠이 료코)의 국내 첫 번역 출간작. 200페이지를 갓 넘는 분량에 무려 33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2페이지에서 10여페이지 남짓한 작품들의 분량을 볼 때에는 쇼트쇼트라고 해도 무방하겠죠.
참고로 쇼트쇼트, 쇼트-쇼트는 사전적인 의미로 원고지 10매 안팎의 아주 짧은 소설을 지칭합니다. 꽁트보다 더 짧은, ‘마이크로픽션’ 혹은 장편(掌篇)에 해당하는 형식이라고 하죠. 호시 신이치가 이 장르의 대가로 널리 알려져 있기도 하고요. 제가 무척 좋아하는 장르이기도 합니다. 쉽고 빠르게 읽을 수 있을 뿐더러 의표를 찌르는 반전, "기묘한 맛" 류의 독특함 가득한 작품이 많을 뿐더러 평범한 일상 드라마는 물론이고 SF, 추리, 범죄 스릴러, 판타지 등 장르를 넘나드는 다양성이 마음에 들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특징은 호시 신이치나 아토다 다카시같은 몇몇 쇼트-쇼트 대가의 특징일 수도 있겠지만요.

이 책에 수록된 단편들도 이러한, 제가 알고 있는 쇼트-쇼트의 특징이 가득한 작품들입니다. 정말 "기발하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독특한 아이디어를 보여주고 있거든요. 그 중 인상적이었던 것을 몇가지 소개한다면,
  • 자신을 멀리하던 사장 딸이 사실은 자기를 너무나 사랑하는 변화무쌍한 아가씨였다는 것을 타임머신 원리를 이용한 데이터 전송이라는 설정과 함께 전개하는 <연인 카탈로그>
  • 일년에 한번 용을 먹는 마을에서 여러가지 용고기 요리 (회에서 숯불구이, 국물요리까지!)를 즐긴다는 <용의 역린>
  • 주인공의 인사를 무시한 직장 동료에 대해 마음 속에서 법정을 열어 재판을 통해 결론을 내린다는 내용을 아가씨의 귀여운 심리묘사와 함께 선보이는 <대리 재판>
  • 애완동물 아기를 키우는 이야기로 짙은 여운을 남기는 <봄볕>
  • 왕따에 대한 인형극을 창작하다가 토끼 나라에 대한 거대한 서사극을 만들어 내는 <머나먼 이상향>
  • 편의점 음식만 먹는 서민스러운 삶을 살던 친구가 프렌치 코스 요리를 먹고난 뒤 요리에 대해 기이하게 평가하는 <특식>
  • 우연히 찾아간 산속 식당에서 주위 손님들이 파란만장한 행동을 펼친다는 <이런 산 속에>
등이 그러합니다. 이런 작품을 창작하는 사람은 도대체 아이디어를 어디서 얻는지 너무 궁금해지네요.

또 쇼트-쇼트의 또다른 특징인 다양한 장르를 펼쳐 보여주고 있다는 것도 장점으로 SF, 판타지, 구루메 (?), 기이한 법정물, 일상계 드라마에 러브 코미디, 심리 썰렁물까지 오만가지 장르를 오가고 있으며 장에 따라 작풍을 바꾸는 그림 실력도 높이 평가할 만 합니다. 정통 판타지스러운 고풍스러운 펜화, 전형적인 순정만화 스타일의 작화, 그리고 평범한 스타일의 일상계스러운 그림 등이 장르에 잘 어우러져 있어서 보는 재미를 더해 주거든요.
덧붙이자면 전체적으로 유머러스하고 밝은 분위기의 이야기들이라는 것도 마음에 든 점입니다.

그러나 호시 신이치의 쇼트-쇼트는 유명 거장의 작품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졸작이 의외로 많은 편인데, 이 단편집에 수록된 작품들도 마찬가지 문제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든 작품이 빼어난 것은 아니라는 뜻이에요. 그래도 아주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작품은 아니고 거장의 졸작보다는 볼만한 작품이기는 합니다만.... 좀 뻔한 아이디어, 뻔한 전개의 식상한 이야기들은 조금 실망스러웠어요. 예를 들자면 사랑을 알게 된 인공 두뇌의 이야기라던가 상위 문명에 납치당해 사육당하는 미녀의 이야기가 대표적이겠죠. 흔한 이야기로 작가만의 별다른 상상력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충분히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작품집이라 생각합니다. 여러가지 장르의 단편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에서 <군청학사> 시리즈와 비슷한 느낌이에요. <군청학사>보다는 훨씬 짧은 호흡의 이야기로 여운은 짙지 않지만 스피디하게,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라는 차이점은 있지만요. 별점은 3점입니다. <<던전밥>>도 빨리 국내에 소개되면 좋겠네요.

2015/01/26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 - 이사카 고타로 / 오유리 : 별점 2.5점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 - 6점
이사카 고타로 지음, 오유리 옮김/현대문학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대학 입학 후 자취를 시작한 나 (시나)는 우연히 알게 된 이웃인 가와사키에게서 기이한 제안을 받는다. 같은 건물에 살고 있는 외국인을 위해 서점을 터는 것을 도와달라는 것.
그리고 2년전, 펫샵에서 일하며 외국인 도르지와 동거하는 나 (고토미)는 우연히 애완동물 살해범 3인조와 엮이게 되는데....


이사카 고타로의 장편 소설. <사신 치바>는 나쁘지 않게 읽었지만 이상하게 땡기지는 않은 작가였습니다. 정통 추리물 작가라 생각하지도 않았었고요. 허나 이 작품은 어딘가의 추리소설 추천 리스트에도 올라가 있을 정도로 유명한 대표작이라 관심이 가던 차에 읽게 되었습니다. (무슨 리스트인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네요)

그런데 하루만에 푹 빠져서 완독할 정도로 유명 작가의 대표작다운 맛은 있었습니다. 작가를 다시 보게 되었달까요? 일단 읽는 맛이 뛰어나요. 2년전 과거를 고토미라는 화자를 통해, 그리고 현재를 시나라는 화자를 통해 교차시키면서 전개하는 방식도 독특할 뿐더러, 고토미와 도르지가 얽히게 된 애완동물 살해범들의 범죄와 시나가 가와사키와 얽혀 기이한 사건에 빠져든다는 이야기가 무척이나 흥미롭기 때문입니다. 이 두개의 이야기가 도대체 어떻게 연결될지 계속 호기심을 자극하기도 하고요.
캐릭터가 생생한 것도 큰 장점으로 막 사는 것 처럼 보여도 나름의 철학이 있는 가와사키는 정말로 보기드문 멋진 캐릭터였어요. 도르지도 부탄이라는 나라의 종교관, 인생관이 바탕이 되어 있는 독특함이 만만치 않을 정도로 생생하게 묘사되고 있는데, 특히나 부탄 출신 외국인이라는 점에서 우리나라 영화 <방가방가>가 떠올라 반가왔습니다. 문제는 이 영화가 연상된 덕분에 이어지는 서술 트릭을 더더욱 눈치채기 어려웠다는 점입니다만....

아울러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추리적인 요소도 상당한 수준입니다. 현재의 가와사키는 사실 도르지였다는 일종의 서술 트릭이 대표적으로, 화자를 오가는 전개를 통해 교묘하게 잘 짜여져 있어서 마지막까지 눈치챌 수 없었어요. 2년이라는 시차를 통해 성립될 수 있었던 어학 실력 등은 충분히 설득력을 가지기도 하고요.
또한 이 사실이 드러나는 장면에서의 추리적 장치도 괜찮은 편이에요. 시나의 집 전공도서가 사라진 것, "옆옆집"이라는 단어, 글을 못 읽는 외국인이라는 설정 등을 활용하여 일상계 느낌을 전해주는, 멋진 장면이었습니다.

그러나 잘 짜여진 작품으로 보기에는 아쉬운 점도 없지는 않아요. 고토미가 왜 경찰에 신고를 하지 않았는지가 가장 의문입니다. 아무리 경찰에 대해 신뢰가 없었어도, 신고만 했더라면 죽음에 이르지는 않았을텐데 말이죠. 처음에는 도르지가 불법체류자라 경찰에 알리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을까 생각했는데 아무런 이유가 없더군요.

그 외에 불필요한 설정도 많습니다. 가와사키가 HIV 양성 보균자가 되었다는 것이라던가, 단백질 인형같은 레이코씨의 정체 등이 그러합니다. 특히 레이코씨는 중요도를 놓고 볼 때 이렇게까지 비현실적으로 설정할 필요는 없었을 것 같아요. 시나가 기묘한 상황 속에서도 평범함으로 균형을 잘 잡고 있었는데 갑자기 만화가 되어 버리는 느낌이 들 정도니까요.
또한 2년 전 이야기가 현재로 이어지는 여러가지 복선들도 작위적이죠. 가와사키가 동물을 키우고 싶다는 인적없는 숲 정도가 적당했을텐데, 래서 팬더를 훔치는 아이들을 연이어 등장시킨 것은 여러모로 무리수라 생각되거든요. 솔직히 그렇게 쉽게 훔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지도 않기도 하고요.
무엇보다도 갓 이사온 옆집 남자가 밥 딜런의 노래를 불렀다고 살인 현장의 감시를 맡긴다는 것은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습니다. 가와사키 (도르지)가 레이코를 조심하라는 말을 시나에게 한 이유도 불분명하고요.

그래도 이러한 단점들을 뛰어넘을 만큼의 재미는 확실히 보장하고 있기는 합니다. 젊은 청춘들에게 다가갈만한 괜찮은 일상계 청춘 추리 스릴러라 생각되네요. 별점은 2.5점. 추리 스릴러 입문자분들께 적당한, 거부감없이 다가갈만한 작품으로 추천합니다.
영화도 꽤나 높은 평가를 받고 있던데 한번 찾아봐야겠어요. 무엇보다도 소설의 핵심인 가와사키의 정체에 대한 서술 트릭을 도대체 어떻게 해결했는지 너무너무 궁금합니다.

덧 1 : 밥 딜런의 노래 <blowin' in the wind>를 찾아 들어보니 좋은 곡이긴 했습니다만 신이 불렀다는 느낌까지는 들지 않았어요. 제가 나이를 많이 먹은 탓이겠죠.
덧 2 : 좋은 책이기는 한데 13,800원이라는 책값은 너무 비싸요. 문고본 스타일로 반값 정도로 나온다면 참 좋을텐데, 도대체 도서 정가제가 누구를 위한 정책인지 점점 더 궁금해집니다.

2015/01/23

연쇄살인범 지도 매핑 - 브렌다 랠프 루이스 / 이경식 : 별점 2점

연쇄살인범 지도 매핑 - 4점
브렌다 랠프 루이스 지음, 이경식 옮김/휴먼앤북스(Human&Books)


이런 류 연쇄살인범 관련 논픽션은 그동안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꾸준히, 많이 읽어왔습니다.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애호가로서의 흥미, 그리고 창작을 지망하는 사람으로서 자료 및 아이디어 확보 측면에서 말이죠. 허나 세계적인 연쇄살인마가 흔한 것도 아닌만큼 몇권 읽으면 충분하기는 합니다. 특히나 미국에서 발표된 책이라면 미국 중심이기에 미국의 유명 살인마들 - 에드 게인테드 번디, 샘의 아들, 나이트 스토커 등등 - 은 이제 지겨울 정도로 많이 알고 있기도 하고요.

그래도 이 책을 읽게 된 이유는 제목 때문입니다. 연쇄 살인범의 범죄 행각을 지도에 매핑했다는 제목에서 뭔가 색다른 것이 있지 않을까 기대했거든요. 미드 <넘버스>의 에피소드 하나가 떠오르기도 했어요. 수학자 동생이 무작위로 보이는 범죄 행위가 실제로는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수학이론을 통해 밝혀내고 (범인이 범행 장소와 자신과의 연관성을 숨기기 위해 무작위적으로 범행 장소가 바뀌지만 이러한 무작위는 외려 작위적인 수열을 형성하므로 그 시작점을 수학적으로 알아낼 수 있다.. ) 범인이 어디 있을지 추론하던 에피소드였죠.

그러나... 지도 매핑은 그냥 범죄 행위를 지도에 그려놓은 것일 뿐이라 실망스러웠습니다. 지도가 실려있을 뿐 연쇄살인범들과 그들의 범죄행각을 요약해서 소개해주는 방식은 다른 책들과 대동소이해요.

물론 이 책만의 장점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지도가 별 정보를 전해주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없는 것 보다는 당연히 있는 것이 낫고 그 외의 도판들, 예컨데 피해자 사진들이 조금 더 많이 수록되어 있는 점도 괜찮았어요.
무엇보다도 다른 책에서는 보지 못했던, 비키니 살인마 찰스 소브라즈, 트럭 운전사 연쇄 교살범 폴커 에케르트 등의 연쇄살인마들이 수록되어 있는 점에서는 나름 가치가 있습니다. 비교적 최근에 씌여졌기에 최근의 범죄, 배낭여행객 살인자 이반 밀라트나 유명한 사건이었던 워싱턴의 저격수 존 앨런 무하메드와 리 보이드 말보, 베르사체 저격범 이야기가 실려있는 것도 마음에 들었고요. 그 중에서도 얼마전 보았던 영화 <툼스톤>의 원작 <무덤으로 향하다>의 범인들 모델로 생각되는 싸이코패스 컴비인 태평양 연안 고속도로 살인마 비태커와 노리스 이야기가 가장 충격적이고 놀라왔습니다.


다른 책들에 비해 소설처럼 조금 더 생생하게 쓰여진 것과 체포와 수사 과정 및 범인들이 체포된 이후 사법거래로 종신형을 선고받았다던가, 사형을 기다리고 있다던가, 사형을 당했다던가, 아니면 놀랍게도 해당 국가의 형법이 정해져 있어서 석방되었다던가! (안데스의 괴물 페드로 로페즈) 등의 후일담까지 꼼꼼한 것도 특징입니다. 이반 밀라트 차에 탔던 영국인 여행자가 가방과 여권을 모두 버려두고 달아난 사례처럼 적극적으로 살기 위해 노력한 경우 의외로 살아난 경우가 많거나, 최소한 범인을 잡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경우가 많다는 것은 처음 알았네요.

허나 장점보다는 제목에 낚인 듯한 기분도 크며 내용도 아주 새롭거나 하지는 않아서 별점은 2점입니다. 이제 이런 책은 좀 많이 지겹습니다...

그나저나 외국 살인자들은 자칭이건 타칭이건 별명이 있는데 참 기묘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식으로 별명을 붙이면 장난스럽다고 엄청 공격받을 것 같은데 말이죠. 국가마다 문화가 달라서 그런 걸까요?

2015/01/21

유괴 - 다카기 아키미쓰 / 이규원 : 엘릭시르 : 별점 2.5점

유괴 - 6점
다카기 아키미쓰 지음, 이규원 옮김/엘릭시르

<하기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엘리트 치과 의사가 유괴 살인을 저지른 일로 일본 열도를 떠들썩하게 만든 기무라 사건의 재판이 열리는 법정. 그곳에 완전 범죄를 꿈꾸는 한 남자가 방청석에서 재판을 지켜본다.
이윽고 고리대금으로 거금을 모은 이노우에 라이조의 아들이 유괴되고, 기무라 사건과 비교할 수 없는 치밀함에 경찰은 혀를 내두르게 된다.
모든 희망이 사라진 뒤 라이조는 거금을 들여 범인에게 현상금을 거는데...


다카키 아키미쓰의 장편. <파계재판>의 햐쿠타니 센이치로 변호사 시리즈로 실제 있었던 유괴 사건을 소재로 쓴 작품입니다. 범인이 유괴사건에 대해 연구하고 재판을 방청하며 얻은 정보로 완전 범죄에 가까운 범행을 저지른다는 내용이죠.

약간은 도서 추리소설과 비슷한 풍으로 실제 사건과 거의 동일한 기무라 사건에 대한 디테일한 묘사에서 시작하여, 이노우에 가문에서 일어난 유괴사건을 둘러싼 전개과정은 흥미진진하기 이를데 없습니다.
추리적으로도 범행의 "동기"와 범행의 과정만큼은 이쪽 장르 경쟁작들과 충분히 자웅을 겨룰 만 하다 생각됩니다. 특히나 고령인 라이조의 나이를 감안하여 유산 상속을 노렸다는 진짜 동기는 정말이지 무릎을 칠 만큼 좋은 아이디어였어요. 아들이 있고 특정한 유언이 없다면 라이조 사후 아들에게 전 재산이 상속되지만 아들이 없다면 아내와 동생과 같은 친권자 기준 분배되며, 아내와도 이혼을 한다면? 이라는 것으로 작중 내내 강조되는 라이조의 재산을 감안할 때 충분히 설득력이 느껴졌으니까요. 또 이 동기와 "실종 후 7년 동안은 살아있는 것으로 간주된다"는 법적 조항이 맞물리는 결말 역시도 인상적이었고요.

범행의 과정도 실제 유괴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은 작품답게 생생하면서도 디테일한 부분에서의 고민이 많이 느껴져 만족스러웠어요. 유괴 사건을 다룬 많은 작품들에서 제기되는 질문 - 결국 범인이 몸값을 어떻게 손에 넣을 것인가? - 에 대한 나름의 해석도 괜찮았습니다. 거짓말 탐지기에 대해 상세한 정보를 전해주는 등 당대 수사 기법에 정통한 여러가지 정보를 전해주는 것도 마음에 들었어요. 거짓말 탐지기의 %에 대한 이야기나 부신 피질의 문제가 있으면 제대로 검사할 수 없다는 내용 등은 처음 알게 된 사실이었고 말이죠.

또 당시 화제가 되었던 유괴 사건을 전면에 내세운 점과 정신 감정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을 견지하는 설정 등에서는 사회파적인 성격을 느끼게 해 주는데, 권말에 상당한 분량으로 수록된 '마사키 유괴 살인 사건'의 재판을 다룬 논픽션이 그 방점을 제대로 찍어줍니다. 논픽션으로서도 뛰어나지만 실제 작품과 여러모로 연결되어 있어서 읽는 재미를 더해 주거든요.

그러나 전체적인 완성도를 놓고 본다면 기대에 값하는 작품은 아니었어요. 치밀하고 흥미진진했던 범행 과정의 묘사에 비교하면 후반부는 너무 쉽고 어설픈 탓인데, 범인을 지목하게 되는 이유가 "범인이 기무라 재판을 방청했을 것이다!" 라는 생각에서 시작되는것이 대표적인 예이겠죠. 다쿠지가 신문을 연구하는 것이 훨씬 안전하고 손쉬웠을텐데 구태여 방청을 한 이유가 명확하게 설명되지 않을 뿐더러, 범행이 성공한 이후 무가치한 존재에 지나지 않는 기무라의 운명을 알기 위해 방청을 계속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설득력이 떨어지잖아요. 신문으로 확인해도 될텐데 말이죠. 범인이 관련된 장소에 당당히 얼굴을 내민다는 것도 비상식적인 행동이라 생각되고요.
근거없는 추리와 설명할 수 없는 범인의 무의미한 행동이 결합된, 그야말로 소 뒷걸음질 치다가 쥐 잡는 우연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데 이렇게 우연으로 점철된 전개는 또 있습니다. 다에코에게 불륜남이 때맞춰 전화하여 라이조에게 이혼 결심을 하게 만드는 장면이라던가 오카 다미코의 죽음과 오카야마 도시오의 도주로 사건이 미궁에 빠진다는 것 등이 그러합니다.

또 햐쿠타니 센이치로와 그의 아내가 라이조가 내건 현상금에 눈이 멀어 사건에 뛰어든다는 동기도 마음에 들지 않네요. 너무 억지로 시리즈로 끌고가려는 느낌이었달까요. 차라리 시리즈가 아니라 사건을 수사하던 에노모토 경위 그룹에서 햐쿠타니 센이치로와 같은 발상의 전환으로 사건 해결의 단서를 얻는다는 식으로 풀어내는게 어땠을까 싶어요. 아니면 최소한 햐쿠타니 센이치로가 기무라 재판에 방청객, 혹은 참고인으로 참여했다가 범인을 알아챌 수 있었다는 내용이라도 나와 주던가요.

마지막으로 피해자의 어머니 다에코의 공작에 의해 범인으로 확정된다는 결말도 깜찍하기는 하지만 현실성은 약하죠. 누군가에게 혐의를 뒤집어 씌우기 위한 가장 유치한 수준의 공작으로 범인이라고 단정할 수 없는 그 어떤 증거도 없는 인물의 집에서 유력한 단서가 발견되었다고 해서 바로 범인 취급을 해 버리면,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낭패를 볼 겁니다. 제가 봤을 때 빠져나갈 수 있는 근거도 제법 있지 않았을까 싶어요.

작품은 본격 추리의 향취도 나면서도 사회파적인 느낌도 전해주는, 과도기의 교량 역할을 잘 해주고는 있지만 이러한 단점들로 아주 높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별점은 2.5 점입니다. 제가 읽었던 작가의 작품 중에서는 아래에서 순위를 다툴 작품이에요.

2015/01/19

왼쪽 주머니에서 나온 이야기 - 카렐 차페크 / 정찬형 : 모비딕 : 별점 2.5점

왼쪽 주머니에서 나온 이야기 - 6점
카렐 차페크 지음, 정찬형 옮김/모비딕


카렐 차페크의 단편집. 고전을 좋아라하는 저로서는 구입하지 않을 수 없었던 단편집인데... 내용은 생각과는 달랐습니다. 정통파 본격 추리 단편집이라기 보다는 "쇼트쇼트"가 연상되는, 조금 희한한 상상력이 발휘된 초단편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호시 신이치 스타일보다는 추리적인 색채가 짙다는 차이점이 있지만요.

이쪽 장르도 좋아해서 즐겁게 읽기는 했지만 실려있는 작품들의 완성도가 천차만별이라는 점, 그리고 좋은 아이디어에 비해 전개가 낡고 지루하며 결말의 의외성이 없는 등의 단점은 조금 아쉬웠습니다. 이러한 점은 쓰여진 시기를 감안한다면 어쩔 수 없었겠죠. 그러나 막 나가는 전개의 작품도 몇개 있는데 의도인지, 아니면 습작들이 이상하게 뭉쳐져 하나의 작품이 된 것인지도 궁금해지더군요. 탈영병이 거름 더미 속에 몇달 숨어있다가 잡혀온 이야기와 다리가 없다는 이유로 상이용사 연금까지 받던 로이지크가 양심 때문인지 정말로 불구가 되어간다는 이야기가 하나로 묶여있는 <실종된 다리>가 좋은 예입니다. 어차피 초단편이라면 나누어 수록했어도 될 것 같은데 왜 하나로 묶었는지 잘 모르겠네요.

그리고 단점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역시나 쓰여진 시기 탓인지 "양심"에 대한 것이 작품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도 눈에 띕니다. 이 작품에 나오는 모든 사람들은 근본적으로 너무 선한 인물들이라 범죄를 저질러도 양심에 가책에 의해 여러가지 갈등을 빚는다는 내용이 많거든요. 아무래도 좋았던 시기에 착한 사람이 쓴 작품이라는 느낌이에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기묘하고 기발한 발상은 좋지만, 지금 읽기에 너무 오래되긴 했어요.

완벽하지는 않지만 추리물 성향을 지닌 작품부터 소개해 드리자면,

<도둑맞은 선인장>
식물원에서 귀한 선인장이 도난당하자 선인장에 치명적인 질병이 유행하고 있다는 기사를 조작하여 발표한 뒤 약품을 판매하는 가게에서 잠복하다가 범인을 체포한다는 내용입니다. 식물원에서 훔친 방법도 기발한데 나이든 여자로 변장하고 가슴에 화분을 숨겨 나왔다는 것이죠.

<하르쉬의 실종>
아르메니아인들이 하르쉬를 어떻게 죽이고 시체를 옮겼는지에 대한, 즉 시체의 순간이동 트릭이 등장합니다. 굉장히 쉬운 트릭이기는 하지만 범행 당일 비가 왔다는 것, 그리고 카펫 속에 시체가 들어있다는 사실과 하르쉬 시체의 기묘한 반점을 연결하는 부분은 괜찮았어요. 명탐정 메이즈리크의 활약도 나쁘지는 않았고요.

<도난당한 살인사건>
범인들이 경찰로 위장한 뒤 살인을 저지르고 깜쪽같이 뒷수습한다는 이야기. 목격자는 많았지만 경찰 복장을 한 범인을 보고는 단지 지켜보기만 했던 것이죠. <오터모울씨의 손>이 떠오르기도 하는데, 이런 트릭의 원조격인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영아 납치 사건>
사라진 영아를 찾기 위한 바르토세크 반장의 활약을 다루고 있습니다. 경찰들에게 아기들을 보면 "정말 사랑스러운 아기군요. 몇 개월 됐나요?"라고 말하라고 시키고 그 말에 과민반응을 보이고 아기를 숨긴 어머니를 체포하게 된다는 내용이죠. 모든 아이 어머니는 아이를 자랑스러워한다는 심리를 이용한 트릭에 더해 전반적으로 유쾌한, 블랙 코미디스러운 전개가 인상적인 소품입니다.

법정물도 있습니다.
<하브레나의 판결>
기자들이 법정 소식을 실으려고 노력하던 중, 실제 법정에서의 사건보다 더 흥미진진한 사건들을 창조하는 하브레나라는 인물에게 창작의 댓가를 지불하고 이야기를 전해받는다. 하브레나는 스스로 법에 대해 통달했다고 여기는 인물인데 어느날 그가 창작한 이야기, 즉 앵무새를 훈련시켜 이웃집 여자를 볼 때 마다 "화냥년"이라고 말하게 만든 늙은 독신남이 실형을 선고받는다는 이야기가 실제 법조인 등 관련된 사람들에게서 잘못된 판결이라고 공격을 받게 된다. 그러자 하브레나는 자신의 이야기 속 판결이 정당하다며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스스로 앵무새를 훈련시켜 이웃집 여인에게 욕설을 하게끔 만들고 법정에 서게 된다는 내용.

설정부터 흥미롭지만 진행 과정 역시나 눈을 떼기 어려울 정도로 재미있었던 작품이에요.

법의학물의 선구적인 작품도 있습니다.
<바늘>
롤빵 속에 들어간 바늘이 어떻게 들어갔는지를 알아내기 위해 국립화학연구소의 우헤르 박사가 빵과 바늘에 대한 모든 상황을 검토한 끝에 롤빵이 만들어진 뒤에야 바늘이 들어갔다는 결론을 내리는 부분이 그러합니다. 바늘을 누가 넣었는지는 중요하지 않고 이 빵을 찾기 위해 화학자들이 빵을 수도 없이 만들어본다는 과정이 더 중요한 작품이기도 해요. "옹고집"이라는 말을 표현하기 위해서 말이죠.

반전이 괜찮은 작품도 있습니다.
<우표 수집>
한 노인이 과거를 회상합니다.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하층민인 로이지크와 절친이 된 뒤 우표 수집에 빠져 살았지만 성홍열로 앓아 눕고 얼마 뒤, 둘만의 비밀 장소에 숨겨둔 우표가 사라지자 로이지크를 의심하여 그와의 우정이 결딴나게 됩니다. 본인 스스로도 모든 것을 의심하면서 고독하고 외롭게 살아가게 되고요. 그리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유품을 정리하다가 우표를 숨긴게 아버지라는 것을 알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고해>
너무나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탓에 마음이 무거워진 범죄자가 신부, 변호사를 찾아가 죄를 털어놓는다는 이야기. 신부와 의사가 이러한 이야기를 공개할 수 없다는 점을 이용한 것이죠. 반전은 마지막에 그에게서 고백을 들은 의사가 모르핀 주사 2방을 추가로 놓았다는 것입니다. 그가 다시는 괴로워하지 않게 말이죠.

블랙코미디 스타일의 유쾌한 범죄극도 인상적이에요.
<여의주와 새>가 대표적으로, 진귀한 카페트를 훔치기 위한 주인공의 노력이 엄청난 슬랩스틱으로 묘사된 작품입니다. 영화로 만들어도 좋겠더라고요.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기발한 작품들도 많습니다.
도둑이 도둑질을 마친 뒤 시를 남겼는데 우연히 그 시를 지역 신문에서 극찬하자 도둑의 창작욕이 폭발하여 도둑질은 시를 발표하기 위한 수단으로 변질되어 간다는 <서정적인 도둑>을 대표작으로 꼽고 싶네요.

영어를 못하는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영국 방문 중 우연히 한 남녀의 이야기를 몰래 듣는데, 둘의 이야기를 음악처럼 듣고 그 속의 범행에 대해 인지하게 된다는 <오케스트라 지휘자의 이야기>. 남자의 사악한 말은 묵직한 베이스 뭐 이런 식인데 작가에게 경의를 표하게 만드는 기가 막힌 아이디어라 생각됩니다.

2015/01/16

엑스맨 : 메시아 콤플렉스 : 에드 브루베이커 외 / 이규원 : 별점 1점

엑스맨 : 메시아 콤플렉스 - 4점
에드 브루베이커 외 지음, 이규원 옮김/시공사

하우스 오브 엠 이후 수많은 뮤턴트들이 힘을 잃고 죽기까지 한 상황. 그러던 어느날 세레브로가 고장날 정도로 엄청난 뮤턴트(M데이 이후 최초의 뮤턴트)가 태어난다. 현장으로 출동한 엑스맨은 퓨리파이어와 머라우더가 새로 태어난 아기를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는 것을 알게되는데....

전작 <하우스 오브 엠>을 재미있게 읽어서 탄력받아 읽게된 후속작.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완벽하게 실망했습니다. 기대에 전혀 미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이 책만 가지고는 내용 이해가 불가능했기 때문입니다. 다른 작품들은 아무리 부실하더라도 내용 이해는 어떻게 어떻게 할 수 있었는데 이 작품은 정말 모르겠어요. 전개가 CD 튀듯이 툭툭 튈 뿐더러 급작스럽게 등장하는 단체와 인물이 너무 많고, 생략도 잦아서 무슨 이야기가 진행되는지 알기 어렵거든요. 예를 들자면 레일라 밀러가 왜 다른 미래로 가는지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미래에서 알게 된 사실은 프로페서 X의 죽음말고는 현재에 영향을 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그냥 아이가 메시아였다! 라고 한 뒤 뮤턴트의 메시아를 죽이려는 사악한 존재들과 싸우게 된다는 심플한 이야기 구성이 더 좋지 않았을까요?
그 외에도 이야기의 핵심과는 상관없는 에피소드도 너무 많아요. 시니스터의 죽음과 로그의 부활이라던가, 뮤턴트를 잡아먹는 괴물 이야기가 그러합니다. 누군지도 모르는 히어로, 빌런도 많이 등장하는데 역시나 설명이 많이 부족했고요.
아울러 작화 담당자가 중간중간 바뀌는데 너무 급격하게 작화가 바뀌는 탓에 캐릭터조차 알아보기 힘들었다는 것도 큰 단점입니다. 일본 애니메이션 스타일의 작화는 영 적응도 안되더군요.

그래서 이 책만의 별점은 1점입니다. 유명한 이슈로 걸작이라고 하는데 저는 잘 모르겠네요. 이후 세계관에 큰 영향을 주었다는 이유로밖에는 해석되지 않습니다..

2015/01/15

하우스 오브 엠 - 브라이언 마이클 벤디스 외 / 최원서 : 별점 3점

하우스 오브 엠 - 6점
브라이언 마이클 벤디스 외 지음, 최원서 옮김/시공사

스칼렛 위치가 잉태했다가 읽은 두 아이에 대한 기억, 그리고 그녀를 죽이러 오는 어벤져스를 막기 위한 퀵 실버의 설득으로 스칼렛 위치의 능력이 최대급으로 발현된다. 그 결과로 뮤턴트가 세계를 지배하고 매그니토 가문이 그 정점에 있는 새로운 세계가 만들어지는데....

"만약에..." 설정으로 기존 세계가 아닌 또다른 세계관을 그린 엑스맨 이슈. 이쪽 장르물에서는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로 알고 있습니다.

특징이라면 "만약에..." 설정을 기존 세계관과 통합하여 진행한다는 점입니다. 스칼렛 위치의 능력을 활용하여 새로운 설정이 반영된 또다른 세계관을 보여주면서도 그것이 원래 세계관 속에 녹아들어 있다는 색다른 전개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작년에 감상했던 <엑스맨 :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가 떠오르기도 하네요. 이건 일종의 타임 패러독스물이긴 하지만요.
그 외에도 뮤턴트가 정점에 있다는 세계관이 꽤나 그럴듯하기도 하고 여러 히어로들이 뒤바뀐 인생을 살아가는 등 팬으로서 즐길거리가 많았던 작품이기도 합니다.
마지막 스칼렛 위치의 대사인 "뮤턴트는 이제 그만!("No more Mutants!")"으로 촉발되는 또다른 현실 역시도 아주 인상적이고요,

그러나 No more Mutants 이후 능력이 사라지는 뮤턴트와 유지하게 된 뮤턴트들의 구분이 어떻게 된 것인지와 어떻게 울버린이 이전 현실의 기억을 떠올릴 수 있었는지 설명되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뜬금없이 이전 현실의 기억을 되돌리는 능력자 레일라가 등장하여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점은 단점이라 생각됩니다. 일종의 데우스 엑스 마키나이니까요.

그래도 이 정도면 상당한 수준의 완성도를 지녔다고 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도 별다른 사전 지식 없이 이 책 한권만으로도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이 돋보입니다. 작화도 뛰어나고요. 별점은 3점입니다.

2015/01/14

잔혹한 세계사 - 조지프 커민스 / 제효영 : 별점 3점

잔혹한 세계사 - 6점
조지프 커민스 지음, 제효영 옮김/시그마북스

흥미로운 제목과 저자의 이름 (조지프 - 조셉 커민스)만으로도 기대가 되는 책, 거기에 더해 알라딘에서 50% 할인 행사까지 진행해서 도저히 구입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참고로 작년 이야기이며, 지금은 도서 정가제 덕에 가격이 원상복구된 상태입니다만.

제목 그대로 전 세계에서 벌어졌던 여러가지 잔혹한 대량 학살 사건을 연대기순으로 수록한 책으로 모두 18건의 사건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저자 특유의 디테일하고 깊이있는 묘사와 다양한 도판, 자료들은 역시나 기대 이상이더군요.

수록 사건 모두가 인상적이나 그 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것으로는 <마운틴 메도즈 학살> 사건을 첫 손가락에 꼽겠습니다. 처음 알게된 내용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모르몬교의 창시자 조지프 스미스와 그의 후계자 브링검 영에 대한 소개 및 모르몬 교에서 자체적으로 운영한 암살단 "단", 학살 자체 모두가 처음 안 것들로, 유타주의 모르몬 왕국을 지키려는 브링검 영이 200여명의 이민자를 정부에서 보낸 토벌 세력으로 오해한 탓에 벌어진 사건인데 전말이 공개된 후에도 정작 브링검 영은 처벌받지 않았다니 놀라울 뿐입니다. 
또 모든 면에서 우리나라의 "백백교 사건"과 굉장히 유사해서 더 기억에 남기도 했습니다. 카리스마 넘치는 교주의 지시에 의한 집단 살인 및 그 명령을 충실히 따른 행동대원들이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죠. 물론 모르몬교는 백백교와는 달리 최소한 "교인들"의 이익을 위해 벌인 일이라는 큰 차이가 있고 그것이 두 종교의 명운을 가른 것이겠지만 여러모로 시사하는 바가 있어 보이네요. 더 놀라운 것은 모르몬교에서도 이 학살이 중대한 범죄라는 것을 인지하고 애도를 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잘못을 했다면 사죄하는 것이 당연한건데, 당연한게 비상식이 되는 현재가 더 기이한 걸까요?

<아르메니아 대량학살 사건>도 마찬가지로 처음 알게 된 사건입니다. 1차대전 당시 터키에서 벌어진 사건으로 러시아에게 패전한 터키가 해당 영토에 분포한 아르메니아인들이 러시아에 협력할 것을 우려하여 학살했다는 것인데, 가해자인 터키가 지금까지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않고 있으며 미국도 산유국이자 NATO 회원국인 터키의 위상을 의식해 언급을 자제한다는 점에서 꼭 상기해야 하는 사건임에는 분명합니다. "형제의 나라"도 좋지만 형제가 큰 잘못을 한 것도 항상 기억해야겠죠.
그 외의 사례들 역시 놀라울 정도로 잔혹한 인간의 본성을 잘 드러내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첫번째로는 이러한 광기에 가까운 잔혹한 살육이 대체 어디서 기인한 것인지에 대한 고찰이 없다는 점입니다. 그냥 있는 그대로의 "사실" 전달에 충실할 뿐입니다. 그래서 읽다보니 살육을 지시하고 그것을 수행하고, 또 그것을 받아들이는 어떻게 받아들였는지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아서 답답했어요. 예전에 나치가 유대인을 살육한 것을 심리학적으로 설명해주는 "밀그램 실험" 관련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결국 같은 이치였을까요? 여튼 저자와 독자가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여지를 조금이라도 마련해 주는게 좋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두번째로는 수록 사건의 선정 기준이 모호하다는 점입니다. 미국 - 영국 중심의 학살 사례가 많기 때문인데 저자가 아무리 미국인이라 하더라도 지나친 감이 있었어요. 물론 수록 사례들 모두 집단 이기심에서 비롯된 잔혹한 광기를 잘 증명하기는 하나 "학살" 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뭔가 레벨이 안 맞는 느낌이 드는 사례들도 있거든요. 실제로 한 40여명이 사망한 <인도 캘커타 블랙홀> 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규모면에서는 학살이라고 부르기는 어려우니까요. 인도 - 영국의 관계가 상업적인 관계에서 통치, 지배로 탈바꿈한 계기가 되었기에 역사적인 의미가 있었을지는 모르지만 이 책과는 잘 어울리지 않았어요. 사건도 특별한 광기가 아니라 어떻게 보면 후진적인 체제에서 벌어진 부주의한 사고에 불과하고요.
세번째로는 카테고리 분류입니다. 각 사례별로 보면 종교적, 인종적, 정치적, 경제적 목적들로 구분되는데 단순히 연대순이 아니라 사례를 적절하게 분류하여 묶어 놓는 것이 이해에는 더 도움이 되었을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아쉽다기보다는 어쩔 수 없는 점인데 읽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잔혹한 인간 본성을 디테일한 묘사와 도판으로 함께 읽는게 썩 유쾌한 경험은 아니었거든요. 영화나 소설과는 다르게 실제로 있었던, 그야말로 "사실"이라는 점에서도 마음이 무거웠어요.

그래도 내용의 충실함은 물론 자료적 가치도 높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구입했기에 더 만족스럽고요. 별점은 3점입니다.

2015/01/13

녹스머신 - 노리즈키 린타로 / 박재현 : 별점 2.5점

녹스머신 - 6점
노리즈키 린타로 지음, 박재현 옮김/반니

추리소설, 그 중에서도 본격 추리소설은 체계적인, 나름의 규칙이 존재하는 장르죠. 이 작품은 이러한 본격 추리소설의 규칙을 실제하는 물리학, 양자역학에 끼워넣은 독특한 SF인 <녹스 머신>과 <논리 증발>, 그리고 추리소설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한 메타 픽션 <들러리 클럽의 음모>, 그리고 독특한 암호트릭 중심의 본격 SF <바벨의 감옥>으로 이루어진 중단편집입니다.
발표 당시 큰 화제를 불러 온 ('주간문춘 미스터리 베스트 10' 3위, '본격미스터리 베스트 10' 4위,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와 '미스터리가 읽고 싶다' 부문 모두 1위) 작품으로 국내 번역이 언제되나 기다리고 있었는데 마침 국내 최고의 미스터리 동호회 "하우 미스터리"에서의 이벤트 당첨 덕에 읽게 되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좋은 기회를 마련해 주신 관계자 분들께 먼저 감사드립니다.

완독한 첫 느낌은 노리즈키 린타로라는 작가의 역량이 정말 대단하구나! 라는 것입니다. 추리 소설에 대한 깊이있는 연구를 해 왔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추리소설에 대한 해박한 지식 외에도 광범위한 물리학, 양자역학 지식까지 어떻게든 충족시켜 만들어낸 이야기들이라 작가의 노력, 탄탄한 지식에 경의를 표할 수 밖에 없네요. 이런 점은 확실히 배워야겠죠. 추리 소설의 규칙을 과학 이론으로 만든 아이디어도 나쁘지 않았고요.

그러나 좋은 작품이냐 하면 그렇다!라고 확답하기는 어렵습니다. 기대했던 추리적 요소도 없다시피할 뿐더러 작품의 난해한 정도가 지나치거든요. 작품들이 독자를 의식하고 쓰여진 것이 아니라 작가의 자기 만족, 취미 활동의 일환이 아닌가 의심될 정도로 말이죠. 독자를 의식했더라도 굉장히 특이한 독자를 대상으로 한 것임에는 분명해 보입니다. <파운데이션>의 '심리역사학'처럼 이론에 대해 독자가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만 설명하고 나머지는 온전히 이야기에 집중하는게 소설로서는 더 맞는 방향이 아니었을까요?

게다가 <녹스 머신>에서 문헌수리해석, 물리학과 타임머신 관련 이론, 양자역학, 평행 세계 등에 대한 학술적 이론을 빼면 '타임머신 개발에 성공한 중국인이 과거로 돌아가 녹스를 만나고, 그 탓에 녹스가 자신의 십계명을 수정한다' 가 이야기의 전부입니다. 기대했던 반전은 없이 타임 패러독스에 대한 고민도 별 볼일없이 해결되며, 예상했던 결말과도 크게 다르지 않아 시시해요. 솔직히 도라에몽의 타임머신 단편들이 더 그럴듯하고 흥미진진하게 타임 패러독스를 다뤘다 생각됩니다.
<바벨의 감옥> 역시 마찬가지. 일종의 격자화된 틀, 그리고 그곳에 배치된 글자들을 이용한 암호 트릭이 전부로 그 외의 이야기, 즉 외계 종족과 일종의 텔레파시 싸움을 벌인다는 설정 및 다른 내용은 이 트릭이 왜 존재하는지를 설명하기 위한 사족에 불과합니다. 그나마도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이해하기도 힘들어서 읽으면서 졸 정도였어요. 그렇다고 트릭이 대단하냐? 하면 그럴 수도 없는 것이 일본어 세로쓰기 구조를 이용한 트릭이라 일본 외에서는 애시당초 먹히기 힘든 트릭이에요. 어떻게든 한글화를 시도한 번역자의 노고는 알겠지만 그닥 성공한 것도 아니고요.

다행히 <들러리 클럽의 음모>와 <논리 증발> 두편은 그래도 조금 더 쉽게 읽히며 재미면에서 더 낫기는 합니다. 일단 메타 픽션인 <들러리 클럽의 음모>는 다른 세작품과는 다르게 SF는 아닙니다. 본격 추리소설에 대해, 그리고 여러 추리소설 작가들과 그 주인공들을 살펴볼 수 있게 하는 독특한 창작물이죠. 추리소설의 화자 역할인 탐정의 파트너들이 소속된 '들러리 클럽'에서 아가사 크리스티의 <10번째 인디언 인형>이 추리 소설에 위기를 불러올 것이라는 주장을 놓고 회의를 진행한다는 내용인데 설정만 보아도 추리소설 애호가라면, 그것도 본격 추리소설 애호가라면 즐거울 수 밖에 없는 작품이니까요. 정말로 실존한 인물들처럼 묘사된 들러리 캐릭터들 - 특히 악역인 밴 다인 (반 다인), 꼰대가 되어버린 왓슨 - 도 잘 살아있을 뿐더러, 실존했던 아가사 크리스티 여사 실종 사건을 들러리 클럽과 엮는 시도도 괜찮았고, 빅4 등의 다양한 패러디도 볼거리였어요. 마지막 밴 다인의 독살이 뜬금없이 이루어지는 등 정작 추리적인 요소가 기대 이하라는 점은 좀 아쉽긴 합니다만...
<논리 증발>도 <녹스 머신>보다는 스케일이 크면서도 내용이 풍성해서 이야기로서의 완성도는 더 높았던 작품입니다. 복잡한 이론을 걷어내더라도 전자화된 데이터에 발화를 일으키는 촉매재로 엘러리 퀸의 작품들, 그 중에서도 '독자에의 도전'이 삽입되어 있지 않은 <샴 쌍둥이의 비밀>이 이용된다는 추리소설 매니아만이 할 수 있는 발상과 그것을 풀어나가는 전개가 나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공각기동대>를 연상시키는 전뇌 생명체가 된 유안이 메시지를 남긴다는 결말도 깔끔했고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평균 별점은 2.5점. 추리소설 매니아가 자신의 역량을 극한으로 발휘한, 지적인 작품임에는 분명하고 덕분에 평론가들과 매니아들에게 사랑받을 작품이기는 합니다만 추리, SF 양쪽 장르 모두에서 이야기의 완성도는 기대 이하였습니다. 특히 추리적인 부분에 있어서 작가의 이름에 어울리는 작품들은 아니었어요. 저는 "매니아"로서 충분히 즐길 수 있었지만 다른 분들께 쉽게 권해드리기 어렵네요.

아이언 맨 : 헌티드 - 크르스토스 게이지 외 / 이규원 : 별점 2점

아이언 맨 : 헌티드 - 4점
크리스토스 게이지 외 지음, 이규원 옮김, 카를로 파굴라얀 그림/시공사


익스트리미스 바이러스를 생체 실험한 죄로 감옥에 갇혔던 마야 한센은 살인 누명을 쓰고 도망치는 토니를 돕기 위해 풀려나 다시 토니와 가까운 사이가 된다. 한편 중국 모처에 감금돼 있던 만다린을 찾아내 토니에게 복수하려던 카림 마흐와시 나지브는 도리어 그에게 죽임을 당하고, 탈출한 만다린은 토니를 혼란에 빠뜨릴 음모를 준비한다.

마흐와시의 실종 사건에 뭔가 수상함을 느낀 토니는 S.H.I.E.L.D. 인원을 대동하여 중국으로 향하고, 거기서 이미 사망한 마흐와시를 발견한다. 시신을 수거하여 마야 한센과 살 교수에게 부검을 의뢰했으나 그것은 만다린이 남기고 간 음모의 시작이었다. 마흐와시의 몸에서 방출된 변형 바이러스가 살과 마야 한센을 공격하고 살은 처참하게 생을 마감한다. 때마침 구출에 나선 토니 덕분에 목숨을 건진 마야 한센이었지만 익스트리미스 연구를 계속했다면 변형바이러스의 공격에서 살을 구할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에 토니를 원망하며 떠난다. 그리고 그녀가 새롭게 자리 잡은 생명 기술 회사 프로메테우스 젠테크. 그러나 프로메테우스 젠테크의 CEO는 기업가로 위장한 채 토니를 철저히 파멸로 몰아가려는 만다린이었다. 그는 익스트리미스를 대량생산하여 공기 중에 살포하고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거대규모 테러를 계획한다. 익스트리미스 바이러스에 감염된 후 살아남으면 초인적인 힘과 치유능력을 얻을 수 있지만, 치사율이 97.5%에 이르러 엄청난 대참사가 예견되는 상황이다. 하지만 계속된 비극 탓에 정부는 토니를 정신이상자로 판정내리고 활동을 중지시킨다. 스스로가 추진한 법에 발목이 묶여 버린 토니. 그러나 등록법의 규정에 따라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가는 지구가 멸망한다. 토니는 구형 아머들을 꺼내 입고 만다린을 상대로 최후의 결전을 준비한다.

권말에는 마담 히드라의 이야기가 담긴 <아이언 맨: S.H.I.E.L.D. 국장 애뉴얼>이 수록되어 있다. <알라딘 책 소개 인용>

<아이언맨 3>을 보고 탄력받아 읽은 작품. 영화에서 핵심 소재였던 익스트리미스가 중요하게 등장하는 작품입니다. 영화에 등장했던 마야 한센 박사의 비중도 크고요. 무엇보다도 메인 빌런 오리지널 만다린!이 가공할 능력을 뽐냅니다. 이야기 전개도 굉장히 흥미로와서 토니 스타크가 환각을 보는 등의 이유로 주위의 불신을 사게 되고, 그러한 와중에 만다린의 음모와 맞닥뜨려 그것을 어떻게 해결할지 긴장감을 자아내는 전개는 일품이었어요. 닥 샘슨과 같은 그간 보기 힘들었던 히어로의 등장이라던가 만다린이 아이언맨과 숙적다운 일기토를 벌이는 장면 등 팬이라면 즐길거리가 많기도 하고요.
무엇보다도 권말에 수록된, 마담 하이드라와의 승부를 그린 단편도 아주 유쾌하고 즐거웠습니다. 부자 플레이보이라는 토니 스타크의 모습이 유머러스하게 잘 그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작화는 영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말이죠.

그러나 고질적인 마블 시리즈의 문제점을 동일하게 가지고 있기도 한데 그것은 바로 이 작품만 읽으면 내용을 완전하게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이슈와 관련된 다른 작품들을 읽지 않고는 설명되지 않거나 생략되어 넘어가는게 너무 많거든요. 또 거대한 세계관의 일부라 다른 이슈, 시리즈나 캐릭터를 알고 있지 않아도 역시나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고요.

때문에 이 작품 하나만으로 완성도를 평가하기에는 여러모로 무리입니다. 전체 이슈를 파악한다면 보다 높은 점수를 줄 수 있을지도 모르나 이 책 한권만의 별점은 도무지 높게 줄 수 없네요. 그래서 작품만의 단독 별점은 2점입니다.

덧 1: 익스트리미스 치사율이 무려 97.5%! 영화에서 페퍼가 어떻게 살아났는지 잘 모르겠군요.
덧 2 : 상기의 이유로 영화에서 킬리언이 수하로 둔 익스트리미스 강화인간이 5명이라고 한다면 피실험자는 무려 200명. 195명은 어떻게 된걸까요?

2015/01/12

아이언맨 3 (2013) - 셰인 블랙 : 별점 3점



아이언맨 2 (2010) - 존 파브로 : 별점은 2.5점

<어벤져스> 이후 트라우마로 불면증, 신경증에 시달리는 토니 스타크 앞에 테러리스트 만다린의 수하가 나타나 해피 호건에게 중상을 입힌다. 이후 토니 스타크의 선전포고에 만다린 일당은 저택 습격으로 응수하며 토니 스타크는 미완성 슈트 한벌만 가진채 겨우 탈출에 성공한다.
그 후 토니는 죽은 것으로 위장한채 만다린, 그리고 그 뒤에 존재하는 단체 AIM과 수장 킬리언의 음모를 파헤치기 위해 노력하는데...


12에 이어 본 마블 슈퍼 히어로 시리즈 아이언맨 영화 3편. 좀 늦게 감상하게 되었네요.

2편은 실망스러웠지만 3편은 흥행도 성공하고 평도 좋았던만큼 기대가 컸었는데 역시나, 킬링타임용 SF 액션 영화로는 이만한 작품이 없다고 생각됩니다. 아주 즐겁게 감상했어요. 두시간이 넘는 꽤 긴 러닝 타임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일단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뒷받침 된 덕이 큰데 특히 만다린은 배우일 뿐, 테러리스트로 오인하게 만들기 위한 킬리언의 계획이었다는 것이 아주 마음에 들었습니다! 내용을 모르고 봤는데 상당히 놀랐어요. 배우도 벤 킹슬리라는 명배우가 맡아서 이런 찌질하면서도 기막힌 역을 소화할지는 상상도 못했네요.

아울러 재치넘치고 신나며 뛰어난 CG로 구현된 액션씬도 보는 재미를 더합니다. 마지막에 슈트들이 날아와 익스트리미스 군단과 한판 대결을 펼치는 장면은 아이언맨 팬이라면 누구나 꿈꿔왔던 장면이라 생각되네요. 악역의 강함도 충분히 표현되어 재미있었습니다. 아울러 제임스 로드가 워머신 없이 맨몸 액션을 펼쳐 대통령을 구하는 장면도 좋았어요. 아무리 기술이 뛰어나도 결국 그 안에 들어가는 사람이 더 중요한게 아닌가 싶더군요.
그 외에도 아이언맨 시리즈 특유의 깨알같은 유머에 더해 토니 스타크의 맨몸 활극같은 즐길거리가 많았습니다. 토니 스타크가 1편 이후 간만에 맥가이버스러운 로우테크 발명을 선보이며 여러가지 주변 지형지물 및 도구를 이용하여 살기 위한 전쟁을 펼치는 액션씬인데 그런대로 설득력있게 묘사되거든요.

그리고 감독이 원래 공포영화 연출을 하던 사람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영화 내내 깜짝깜짝 놀래키는 부분이 많다는 것도 인상적이에요. 엘렌 브란트와의 격투씬 (그 중에서도 주방에 숨은 토니에게 엘렌이 고개를 내미는 장면)이라던가 아이언맨이 대통령 전용기에서의 액션을 끝내고 차에 치이는 장면이 대표적이죠. 호러스럽기는 하지만 영화에 적절한 긴장감을 더해주는 등 좋게 작용한 부분이 많은 것 같아요.

물론 킬리언이 무슨 목적으로 테러를 벌이는지가 설명되지 않는다던가, 왜 익스트리미스를 이용한 폭탄보다야 익스트리미스 인간전사 쪽이 더 크고 강력한 범죄를 일으킬 수 있는데 비효율적인 폭탄 작전으로 일관하는지기에 등 전개 면에서 설명되지 않거나 대충 넘어가는 것도 없지는 않습니다. 익스트리미스 강화인간이 어떤 기준으로 죽는지도 잘 모르겠고요. 그리고 마야 한센이 토니를 찾아온 것도 이해는 되지 않더군요. 킬리언과 손잡은 관계라면 습격날 구태여 찾아올 이유도 없으며, 공식이 궁금했다면 진작에 찾아왔으면 되잖아요?
무엇보다도 페퍼가 최종병기가 되는 마지막 장면은 정말 뜬금없을 뿐더러 웃기기까지 해서 당황스러웠습니다. 이건 확실한 감점 요소로밖에는 보이지 않았어요.

허나 단점은 사소할 뿐, 캐릭터와 대결 구도만 잘 표현된다면 충분한데 부가적인 재미까지 가득하니 이건 뭐 최고라고 할 수 밖에요. 확실히 마블이 영화 기획은 잘하네요. 별점은 3점입니다.

칫솔을 삼킨 여자 - 롭 마이어스 / 진선미 : 별점 2점

칫솔을 삼킨 여자 - 4점
롭 마이어스 지음, 진선미 옮김/양문

캐나다의 전문의인 롭 마이어스가 다양하고 기이한 환자들에 대해 소개하는 논픽션. 총 51개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뭔가 추리소설을 쓰기 위한 영감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읽게 되었습니다.

장점이라면 논픽션으로 실화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과 환자가 생각하지 못했던, 예상치 못한 사고가 제법 많이 수록되어 있다는 점, 그리고 간호사의 의문의 빈혈을 다룬 이야기에 나온 말, "모든 의학적 의문에는 해답이 있다"라는 말 그대로 의학적으로 원인을 찾기 위한 과정이 드라마틱하게 전개되어 한편의 추리소설을 보는 재미를 느끼게 하는 점입니다.
개중 인상적이었던 것들을 몇개 소개해드리자면,
<젊은 여성의 위 속에 들어 있는 178개의 콘돔>
콘돔은 코카인을 넣고 밀봉한 것으로 밀수가 목적이었죠. 결국 젊은 여성은 사망하는데 콘돔이 몇개 터져 코카인이 체내로 흡수되었기 때문입니다. 원인은 복통으로 고생하는 아가씨에게 친절한 할머니가 미네랄 오일을 주었는데 그것이 콘돔의 고무를 녹인 것이라고 하네요.

<정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신부>
혼전 순결을 지키다가 결혼한 날 자신이 정액에 대해 알레르기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신부의 이야기입니다. 정액에 익숙해지게끔 하는 치료로 병은 나았지만 신부는 그 뒤로는 오르가즘을 느낄 수 없었다고 하는 슬픈 후일담이 이어집니다.
<법의관이 도끼에 맞아 죽을뻔했디>에 실렸던, 성교 중 페니실린 쇼크사한 아내의 이야기와도 비슷하네요.

<내 가슴에 바느질용 바늘 있다>
가슴이 아프다고 호소한 환자의 말에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았던 사례입니다. 마지막 의사가 엑스레이를 찍어보니 가슴에 바느질용 바늘이 삽입되어 있었다고 하네요. 의사들이 얼마나 무책임하고 환자에 대해 관심이 없는지를 잘 드러내는지 알려주는 사례죠.

<사람의 근육을 부숴버리는 자동차>
자동차 운전을 19시간 연속한 남자에게 원인을 알 수 없는 근육통 등의 증상이 일어나는데 원인은 앉은 자세로 압력을 받으며 오랜 시간 동안 움직이지 않아 근육이 부서진 것 때문입니다. 근육에 손상이 발생하여 혈액 속에 CK (크레아틴 카이나제)가 많아져 콩팥에 독성을 나타내고 급성 신부전을 일으킨 것이라네요.

<죽음으로 몰고 간 입 냄새>
입냄새가 심하다는 것에 컴플렉스가 있어서 가글을 열심히 했는데 가글 제품이 마그네슘이 다량 포함된 것이라 마그네슘 중독으로 사망한 사례. <위기탈출 넘버원>에 나올 법한 이야기라 생각됩니다.

그 외에도 전선을 씹다가 납 중독에 걸린 사례라던가 남자로서 궁금했던 발기 지속에 대한 사례 등이 눈에 띄이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러나 단점도 명확합니다. 일단 절반 이상이 이전에 읽었던 <다윈상>과 비슷하게 환자의 무모하거나 바보같은 도전, 아니면 정신이상으로 벌어진 사고라 그닥 새로울게 없는 탓이 큽니다. 기대했던 "추리적" 재미가 전무한 것이죠.
또 장의사와 환자들에 대해 꽤나 상세한 묘사를 시도하는 등 소설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데 그게 논픽션이라는 장르와 잘 어울리지 않은 것도 문제였습니다. 개중 구더기가 환자의 코, 두피에서 발견된 사례나 수간을 시도하다가 직장이 찢어졌다는 등의 지저분한 내용에 대한 적나라한 묘사는 읽으면서 불쾌하기까지 했어요. 아울러 가격도 컨텐츠의 내용과 양에 비하면 과하다 생각됩니다.

때문에 별점은 2점. 딱히 찾아 읽으실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2015/01/11

기지 살인사건 - 하드론

기지 살인사건 : 네이트판

원작은 하드론님으로 상당히 오래전에 공개된 작품인데 이제서야 읽어보게 되었네요.
제가 읽어본 한국 호러 소설 중에서는 베스트로 꼽을만한 작품이라 소개드립니다. 아직 읽지 않으셨다면 꼭 한번 읽어보세요.

정말 세상은 넓고 고수는 많네요.

2015/01/07

나를 찾아줘 (Gone girl. 2014) - 데이비드 핀처 : 별점 3점


<하기 리뷰에는 영화의 결말 등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삶을 살아가는 완벽한 커플 닉&에이미.
결혼 5주년 기념일 아침, 에이미가 흔적도 없이 실종된다.
유년시절 어린이 동화시리즈 ‘어메이징 에이미’의 실제 여주인공이었던 유명인사 아내가 사라지자, 세상은 그녀의 실종사건으로 떠들썩해진다.

한편 경찰은, 에이미가 결혼기념일 선물로 숨겨뒀던 편지와 함께 곳곳에서 드러나는 단서들로 남편 닉을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한다. 미디어들이 살인 용의자 닉의 일거수일투족을 보도하기 시작하고, 시간이 갈수록 세상의 관심이 그에게 더욱 집중된다.

과연 닉은 아내를 죽였을까? 진실은 무엇일까? <영화 소개에서 인용>


<셔터 아일랜드> 이후 추리소설 원작 영화로는 가장 큰 흥행 및 비평적인 성공을 거둔 영화죠. 진작부터 관심이 있었지만 이제서야 감상하게 되었습니다.

영화는 크게 두개의 부분으로 나뉩니다. 에이미가 장기간에 걸친 완벽한 계획으로 남편 닉을 구렁텅이로 빠트리는 과정이 1부, 그리고 그 사실을 에이미 시점에서 밝혀주며 에이미가 도주 중 자금을 강도당한 뒤 옛 애인 데시를 만나고, 그를 죽이고 다시 닉에게 돌아오는 2부 구성이죠.

이 중 1부의 악녀 에이미의 완벽한 계획이 상당한 볼거리로 이 정도로 치밀하면 정말 벗어나기 힘들겠다 싶을 정도로 꽉 짜여져 있습니다. 남편의 동기를 장기간에 걸쳐 만드는 과정, 사건 현장의 조작 등이 대표적이에요. 그 외에도 동네 임산부와 의도적으로 친해져서 임신사실을 조작한다는 생전 처음 보는 트릭이 등장하기도 하고 별로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나름의 보물찾기 암호트릭이 등장하는 등 추리적으로 꽤 풍성한 편이에요. 에이미가 데시를 죽이는 과정도 즉흥적이지만 탄탄하게 짜여져서 만족스러웠습니다.
1부의 내용 전개가 현재 시점은 모두 닉, 그리고 과거에 있었던 일들의 회상은 에이미 시점으로 그려지는데 1부 종료 시점에 과거 회상은 모두 에이미가 창작한 가짜였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것도 특이했습니다. 일종의 서술트릭인데 상당히 잘 만들어졌다 생각되네요.

또 에이미의 남편인 닉이 <디아볼릭>의 찐따처럼 허술하지 않고 나름 똑똑한 친구로 대결 구도를 형성하여 극적 긴장감을 더해주는게 아주 좋았습니다. 특히 가장 위험한 순간, 즉 자신이 범인으로 전미에 알려지고 있는 상황에서 불륜사실이 폭로된 직후 전국 방송 인터뷰를 자처한 뒤 에이미가 원하는 완벽한 모습을 연기해서 에이미가 자기에게 돌아오게 만드는 과정이 백미입니다. 턱에 손을 가져다 대는 제스쳐도 효과적으로 활용되죠.
에이미가 돌아온 뒤의 에필로그, 종반부도 상당히 괜찮아요. 위선과 조작으로 점철된 부부생활 연기를 계속한다는 것인데 이것을 하게 만드는 설득력이 장난이 아니거든요. 사는게 지옥이라는 현실이 절절하게 와 닿기도 하고요.

마지막으로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심리묘사도 명불허전입니다. 이 감독 영화는 어딘지 모르게 불편하고 불안한 감정을 전해 주는데 이 영화 역시 마찬가지에요. 보는 내내 어딘지 모르게 불안불안하더라고요.

하지만 아주 뛰어난 드라마냐 하면 그렇지만은 않아요. 애초에 동기 자체가 싸이코 에이미의 집착에 기인하고 있어서 설득력을 완벽하게 담보하고 있지 않거든요. 가장 이해가 안되는게 와이프가 예쁘고 똑똑한데다가 돈까지 많다면 영화에서처럼 나를 완벽하게 컨트롤하려 한게 그리 큰 문제일까요? 저 같으면 죽으라면 죽는 시늉이라도 했을거에요. 게다가 와이프와 멀어졌다고 제자와 불륜이나 저지르다니, 솔직히 죽어도 싼놈이라고 생각됩니다.
에이미의 처음 계획 역시 그녀가 과연 자살하려 했는지도 의문이고 자살할 생각이었다면 데시를 죽이는 상황처럼 닉을 죽이고 자살하던가 경찰에 신고하는게 훨씬 쉽고 깔끔했을 것이라는 점은 분명한 약점입니다. 또 우연에 가까운 강도사건만 없었더라도 어떻게 되었을지 모른다는 점에서 완벽한 계획인지도 잘 모르겠더라고요. 물론 그렇더라도 데시에게 납치되었다는 상황을 자작했을지 모르지만...

그리고 이건 문제라고 하기는 좀 뭐한데 1부에서 과거 이야기는 모두 에이미가 창작한 가짜라 현재 시점에서 닉이 주장하는 에이미의 문제, 부부간의 불화는 결국 설명되지 않고 끝나버립니다. 부부 관계가 얼마나 심각한 상황이었는지, 남편을 사형시키고 자살할 생각까지 했는지는 알 수 없어서 조금 답답하긴 하더군요.

아울러 배우진도 좀 아쉽습니다. 아카데미 위너 벤 에플렉은 꽤 괜찮았지만 에이미역의 로자문드 파이크는 <잭 리처>에서의 볼륨감이 화면에서 도드라지지 않아서 작중 표현된 대로 치명적인 매력의 소유자로 보이지 않았고 그녀에게 집착하는 닐 패트릭 해리스 역시 게이라는 것을 거의 전세계가 다 아는 상황에서 한 여자에게 집착한다는 캐릭터가 딱히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그래도 간만에 본 웰 메이드 범죄 드라마임에는 분명합니다.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영화답게 러닝타임이 두시간을 훌쩍 넘지만 꽉 짜여진 탄탄한 연출과 전개 덕에 시종일관 손에 땀을 쥐고 보았네요. 최근 보기 드문 완전범죄물이라는 측면에서도 높은 점수를 주고 싶네요. 별점은 3점입니다.

덧 1 : "Gone Girl"이 왜 "나를 찾아줘"로 번역된 것일까요? "Girl"이라는 미묘한 단어가 꽤 중요해 보이기도 하는데요.
덧 2 : 원작소설도 평이 좋은데 읽어봐야 할지는 잘 모르겠군요. 원작자인 길리언 플린이 영화의 각본까지 맡은 것으로 보아 원작에 굉장히 충실한 작품이라 판단되거든요. 고민 좀 해 봐야겠습니다.

2015/01/06

클래식 미스터리 걸작선 - 워싱턴 어빙 외 / 한동훈 : 별점 3점

클래식 미스터리 걸작선 - 6점 워싱턴 어빙 지음, 한동훈 옮김/태동출판사

이 블로그를 찾아주신 모든 분들께서는 아마도 짐작하시겠지만 저는 고전 본격 황금기, 클래식 미스터리는 사족을 못 쓰는 애호가입니다. 이런저런 고전들은 많이 읽은 편인데 평균적으로 괜찮게 평가하고 있는 이유는 다 저의 취향 때문이죠.
그러나 아주 오래전 읽었었던 예전에 읽었던 <골든에이지 미스터리 중편선>이 심하게 기대 이하라서 나름의 기준점을 최소한 19세기 말 이후로 설정해 놓았습니다. 그 이전 작품들은 지금 읽기에는 심하게 낡았다고 여겼거든요. 이 책 역시 대부분 작품이 19세기 후반 발표된, 기준점 통과가 간당간당해서 그동안 읽지 않았었던 책입니다.

그런데 이 책 완전 대박입니다. 예상치 못한 즐거움과 놀라움이 가득했어요. <셜록 홈스의 라이벌들>과 견줄만한, 국내에 많이 소개되지 않은 명탐정들 - 여성 탐정 러브데이 브룩, 오스트리아 최고의 형사이자 탐정인 요제프 뮬러, 의뢰인을 위해서는 그 어떤 일이라도 하는 변호사 랜돌프 메이슨, 과학 탐정 크레이그 케네디 교수 - 시리즈 단편들은 완성도를 떠나 존재만으로도 반가웠을 뿐더러 <무시무시하고 이상한 침대>, <결산>, <위험천만한 게임>이라는 "걸작"이라 칭해도 부족함없는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14편이나 되는 작품이 수록된 볼륨도 마음에 들고요.
발표된 시기를 감안할 때 지금 읽기에는 낡아버리거나 시대착오적인 작품도 있고, 고전적 작법으로 쓰여져 지금 기준의 완성도를 충족시키기는 어려운 작품도 수록되어 있기는 하지만 이 정도는 고전을 읽을 때 감수해야 할 필연적인 세금과도 같은 것이죠. 가이 포크스나 보르시치와 같은 고유명사를 잘못 번역한 옥의 티는 있지만 전체적으로 번역도 무난한 편입니다.

수록 작품 평균해서 별점은 3점. >고전 본격물 미스터리 애호가에게는 놓칠 수 없는 책인데 고전 애호가가 아니시라면 호불호가 갈릴 것 같기는 하네요. 그래도 최소한 걸작이라 말씀드린 저 세작품은 꼭 한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본서는 절판되었으나 e-book은 상당히 저렴한 가격에 판매되고 있기도 하니까요.
작품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스포일러 포함되어 있는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울버트 웨버, 혹은 황금의 꿈>
<슬리피 할로우> 등으로 유명한, 19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소설가 중 한명이라는 워싱턴 어빙의 작품.
일확천금을 노리는 평범한 네덜란드 출신 배추농부 울버트 웨버가 숨겨진 보물을 찾기 위해 이런저런 시도를 한다는 내용인데 떠벌이가 지껄이는 듯한 구전문학같은 묘사가 볼거리입니다. 울버트의 보물을 찾기 위한 헛된 노력이 해적들의 은밀한 행동과 결합되어 전개되는 독특한 전개, 블랙코미디 느낌도 많이 전해주는 유쾌함도 나쁘지 않았고요.
그러나 울버트가 부동산 재벌이 된다는 난데없는 결말과 같은 두서없는 전개, 구전문학스러운 묘사 등은 너무 낡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약간 호러분위기이기는 하지만 장르 문학으로 보기에는 여러모로 애매하기도 하고요. 최소한 "미스터리"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았던 작품입니다. 부동산이 최고라는 교훈을 전해준다는 점에서 차라리 시사풍자물이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별점은 2점입니다.

<길쭉한 궤짝>
에드거 엘런 포우의 단편. 친구가 애지중지 돌보는 궤짝 안에 있던 것이 무엇이었을까?에 대한 이야기. 낡았다는 느낌을 주기는 하나 꽤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선장의 말을 빌어서가 아니라 마지막 침몰 직전 상황에서 진상이 드러나는 것, 예를 들자면 관 뚜껑이 열리고 아내의 시체가 등장하는 <어셔가의 몰락> 식으로 묘사하는 것이 더 충격적이지 않았을까 싶긴 합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무시무시하고 이상한 침대>
윌리엄 윌키 콜린스의 걸작 단편. 무허가 3류 도박장에서 주인공이 도박으로 거금을 딴 뒤 술에 취하고 몽롱한 채로 도박장 방 하나를 빌려 잠을 자다가 침대 천장이 서서히 내려오고 있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된다!는 내용.
주인공이 술에 취하는 과정의 생생한 묘사도 뛰어나지만 무엇보다도 침대 지붕이 내려오는 묘사가 정말 대단합니다. 읽다가 숨이 턱턱 막힐 정도에요. 잠이 오지 않아 세밀하게 관찰했던 벽에 걸린 그림 속 인물의 깃털 유무에서 모골송연한 범죄로 부드럽게 이어지는 과정도 매끄러운데, 짧은 글이지만 정교하게 복선이 짜여져 있기 때문이겠죠.
한마디로, 이 작품을 읽은 것 하나 만으로도 이 작품집을 읽을 가치가 충분하다 생각되네요. 근대 추리소설의 시조 중 한명이라 할 수 있는, 거장의 작품다왔달까요. 별점은 5점입니다.

<꿈속의 여인>
조금 흔해빠진 괴담이랄까... 자신의 생일날 자신을 죽이기 위해 나타나는 여인에 대한 환상과 공포를 품고 살아가는 마부 아이작의 이야기.
별다른 극적 반전도 없고 여인의 정체도 알려주지 않는 등 불친절한 부분이 많아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네요. 앞선 작품은 걸작인데 이 작품은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습니다. 거장이라고 항상 걸작만 쓰는건 아닐테니... 그래도 아이작의 과거 이야기는 분명 흥미로우며 꿈과 현실을 잇는 과정의 묘사만큼은 볼만했던 만큼 별점은 2.5점입니다.

<공주의 복수>
캐서린 루이자 퍼키스의 여성 탐정 러브데이 브룩 시리즈 중 한편. <셜록 홈즈의 라이벌들>에 <문간의 검은 가방>이라는 단편이 소개된 시리즈로 전형적인 빅토리아 시대 셜록 홈즈 스타일의 단편으로 루시에 쿠니에르라는 아가씨의 실종 사건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추리적으로는 별로였어요. 러브데이의 추리가 불완전한 "관찰"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먼저 집사가 드루스 소령을 쳐다보는 눈빛에서 사건의 실마리를 잡았다고 하는데 지나친 억측이죠. 뭐 이 부분은 눈빛에서 살기를 느끼는 무림 고수와 같은 재주가 있었을지도 모르니 그렇다 쳐도 사건 관계자들이 모인 상황에 난입하여 "모자 가게"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은 그냥 넘어가기 힘들 정도의 비약이었습니다... 그녀를 빼돌린 드루스 부인과 그윈 부인이 불안한 눈빛을 교환하며 모자를 쳐다보았다? 이게 모자 가게를 가리키는 것인지, 그냥 눈둘데가 없는 것인지도 불명확하지만 그 모자 가게에서 산 모자인지도 확실치 않은데 말이죠.

주로 관찰을 통해 추리하는 러브데이 브룩과 자신은 전혀 의도하지 않았지만 주위 남자들을 매료시키는 루시에 캐릭터, 셜록 홈즈의 라이벌치고 1인칭이 아니라 3인칭으로 쓰여진 점 등은 특이하지만 추리적인 부분 때문에 아주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천국의 물가에서>
아주아주 약간 고딕 호러 분위기가 나기는 하는데 실상은 고전적이고 낭만적인 러브스토리인 작품. 주인공 케언공이 라마스 양에게 청혼할 때의 대사는 재미난데 그 외에는 별다른게 없는 고전 할리퀸 로맨스입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목사 서재의 피웅덩이>
오스트리아 최고의 형사이자 탐정인 요제프 뮬러 시리즈 단편. 목사관 서재에 피웅덩이를 남긴채 목사가 사라진 사건을 해결하는 이야기.
충격적이면서도 기발한 인간 소실 트릭이 등장할 것으로 기대가 되었는데 실상은 트릭이고 뭐고 없이 서재에서 예배당으로 이어지는 통로를 지나 지하실에 숨긴 것이라는 결론이라 맥이 빠졌던 작품입니다. 이래서야 명탐정이 딱히 등장할 필요도 없죠. 자세한 현장 조사가 이루어졌더라면 충분히 알아낼 수 있었을 거에요. 아무리 피가 응고하였더라도 아무런 흔적없이 시체를 옮기는 작업을 성공했을리는 없으니까요.
그 외에도 사건 해결의 핵심 단서가 순전한 우연 - 범인이 시체를 옮길 때 우연히 팽이가 떨어져 그것을 돌리게 된 것 - 이라 추리적인 면에서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습니다. 미래를 내다보는 능력을 지닌 양치기 캐릭터는 전혀 등장할 필요가 없었고 말이죠.
셜록 홈즈처럼 현장을 아주 철저하게 조사한 뒤 단서를 찾아내어 사건을 해결하는 뮬러의 활약은 그럴듯했습니다만 이러한 이유로 별점은 2점입니다. 홈즈 시대 추리소설의 단점만이 극대화된 작품이었어요.

<범죄구성 사실>
엉클 애브너 시리즈로도 유명한 멜빈 데이비스 포스트의 변호사 랜돌프 메이슨 시리즈 중 한편. 사교계의 총아인 사무엘 월콧이 사실은 리차드 워렌이라는 인물로 월콧의 아내와 공모하여 그를 죽인 뒤 신분을 가로챈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월콧 (워렌)이 아내를 죽여 입을 막으려는 계획을 돕는다'는 나름 충격적인 설정으로 고객을 위해서라면 불법적인 행동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랜돌프 메이슨의 캐릭터가 잘 드러나는 작품이에요. 페리 메이슨의 선구자적인 캐릭터죠.

또 완벽하게 시체를 없앨 경우 범죄 사실 자체가 성립하지 않고, 사망 사실과 그 사망을 가능케 한 폭력이 있었다는 증거가 없어서 무죄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이 당시에 소설로 발표했다는 것도 놀라운 아이디어라고 생각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있었던 이른바 "시신 없는 살인사건"이 떠오르네요. 요새는 이 법의 헛점이 많이 알려진 덕인지 이런저런 정황 증거를 통해 범죄 사실이 입증된다면 유죄를 선고하는 것으로 보이기는 합니다만....
그리고 시체를 없애는 과정의 디테일도 놀랍습니다. 황산을 이용하여 시체를 녹여 없애는 방법인데 소설처럼 깔끔하게 모든 흔적을 단시간내에 없애는 것은 어려웠겠지만 묘사가 잔혹하면서도 생생해서 굉장히 설득력있게 다가오더군요.

결론적으로 별점은 3점. 쓰여진 시기를 감안하면 좋은 점수를 줄 수 밖에 없는 작품이라 생각됩니다.

<쌍벽의 탐정>
따로 설명이 필요없을 작가인 마크 트웨인의 작품. 정통 추리물에 가까운 서사, 그리고 제법 그럴듯한 범죄 및 트릭이 등장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하지만 완성도는 좀 쳐지는 편이에요.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아치 스틸맨이 어머니를 버리고 모욕한 아버지에게 복수하기 위해 길을 떠나고, 그 와중에 자신이 가지고 있는 특수한 재능 (냄새 맡기)를 어필하는 전반부와 호프 캐넌의 은광 부락에서 벌어진 폭사사고를 다룬 후반부로 나뉘는데 두 이야기가 잘 결합되지도 않을 뿐더러 지루하게 묘사되기 때문입니다.
특히 전반부 이야기는 설득력도 낮고 이렇게 길게 설명될 필요가 있나 싶을 정도로 장황해요. 후반부도 문제가 있는 것은 마찬가지라서 플린트 버크너에게 살의를 품은 노예와 같은 영국 소년 페트락 존스가 범행을 결심하는 과정, 거기에 아치 스틸맨이 그 마을에 거주하고 있으며 그의 특수한 능력을 발휘하여 실종된 아기를 찾아내는 이야기, 마지막으로 플린트 폭사사건 이후 페트락의 친척 아저씨 셜록 홈즈가 등장하여 여러가지 단서를 이용하여 범인을 지목하고 아치 스틸맨과 추리 대결을 펼치는 이야기 등 이런저런 이야기가 난잡하게 전개됩니다.
마크 트웨인 작품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려운 정교한 과학적 트릭 - 초가 타는 시간을 이용하여 도화선에 불을 붙이고 알리바이를 만듬 - 이 등장하는 것은 인상적이지만 아치 스틸맨이 현장 조사를 통해 증거를 확보한 만큼 완전 범죄로 보기에는 문제가 많은 작품이죠.
물론 셜록 홈즈의 패러디물을 쓰기도 했던 작가의 작품답게 셜록 홈즈가 등장하여 여지없이 망가지는 장면은 재미있었고 그 외에도 셜록 홈즈 스타일에 대한 통렬한 패러디, 예를 들어 "탐정에게 들키지 않으려면 탐정 곁에서 일을 꾸미는게 가장 좋은 방법이다" 등은 인상적이고 재미있긴 했습니다. 미국적인 정취와 무식함 (집단 린치를 포함하여)을 한껏 느낄 수 있다는 부가적인 장점도 존재하고요.

그러나 단점이 더 부각되는 작품이라 별점은 2.5점입니다. 조금 더 짧게 줄였더라면 훨씬 좋았을텐데, 작가의 욕심이 과했던게 아닌가 싶네요.

<블랙 핸드>
제목을 한글로 풀이하면 "흑수단". 제목 그대로의 범죄단체가 등장하는 작품으로 크레이그 케네디 교수 시리즈 중 한편입니다. "과학 탐정"의 선구자적인 인물이라고 하는데 이 작품에서도 자신이 직접 개발한 도청 장치를 이용하여 사건을 해결하죠.

셜록 홈즈 시리즈의 영향을 짙게 느껴지는데 1인칭 화자가 파트너로 등장하는 것에서부터 기묘한 사건의 의뢰, 독자가 그 사용법을 알 수 없는 장치의 등장, 대단원으로 이어지는 전개는 홈즈 시리즈를 보는 듯 합니다. 그러나 사건을 해결하는 방법은 별게 없습니다. 유괴 사건에서 아이를 은닉한 장소를 도청 장치를 통해 듣고 경찰에게 알려준다는 방법이 전부니 말이죠.

그런대로 잘 쓰여지기는 했지만 아주 좋은 작품이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탁상시계>
<독화살의 집>이라는 멋진 본격 추리소설을 쓴 작가의 작품이라 기대가 컸는데 환상특급을 보는 듯한 내용이라 기대와 영 달랐습니다. 장르 구분을 하자면 판타지에 가까왔달까요. 시간을 불특정하게 14분간 멈추는 능력이 있는 탁상시계로 벌인 완전범죄 이야기로 시간이여 멈춰라! 류의 내용이라 추리적으로는 건질만한 것이 아무 것도 없었어요. 시계에 대한 최소한의 설명도 이루어지지 않고 반전도 없어서 여러모로 실망스러웠습니다.
만년 2인자의 질투심이라는 동기는 충분히 설득력있기는 하고, 이런 류 아이디어의 원조인지도 궁금하긴 한데 높은 점수를 주긴 힘드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결산>
퍼시벌 와일드의 단막극. 극작가로도 알려져 있지만 국내에 출간된 작품은 단편집 두권밖에 없지요. 때문에 자료로서도 귀중한데 작품의 수준도 아주 높습니다. 딱 두명의 등장인물이 이발소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빚어지는 극도의 서스펜스가 놀라울 정도에요.
이발사 킬번이 과연 그의 딸을 농락하고 버린 손님 존의 멱을 딸 것인가?와 존이 시간제한이 있는, 전 재산이 걸린 경매에 참석할 수 있는가?라는 두가지 드라마를 긴장감넘치게 선보이면서도 킬번이 존을 12년 동안 뒤쫓고 지금의 찬스를 만들게 된 경위를 설명해주는 솜씨도 탁월합니다. 아울러 마지막 반전 - 존이 이야기한 경매시간과 이발소 시계가 얼마나 빨리 가는지에 대한 대사 - 까지 확실하고요.
이런 작품이 10여 페이지에 불과하다니 고개가 숙여질 뿐이네요. 별점은 5점입니다!

<위험천만한 게임>
프로 사냥꾼 레인스포드는 우연히 조난당하여 러시아 출신 부호 자로프 장군의 섬에 표류하였다. 자로프 장군은 사냥에 미친 인물로 극도의 긴장감을 위해 인간을 사냥하고 있었고 레인스포드도 협박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생명을 건 게임에 참여하는데.....
어딘가의 앤솔러지에서 읽었었는데 다시 읽어도 재미있었던 걸작입니다. 인간 사냥이라는 아이디어, 그리고 실제 사냥 게임에 대한 설정 - 3일이라는 시간 제한 및 자로프 장군이 사거리 짧은 피스톨을 장비했다는 핸디캡 등 - 이 탁월할 뿐 아니라 두명의 대결에 대한 묘사가 긴장감이 넘치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마지막 반전도 기가 막혀요. 바다로 뛰어든 레인스포드의 목적은 탈출이 아니라 성까지의 거리를 단축시키기 위함이었다는 것인데 예상을 깨는 맛이 있었거든요.
결론적ㅇ로 별점은 5점입니다. 한 남자가 협박 때문에 생명을 건 모험에 뛰어들어 성공한 뒤 협박자를 응징한다는 내용은 스티븐 킹의 단편 <벼랑 끝에 선 사나이>가 떠오르기도 하네요.

<새 출발>
잘 모르는 작가의 종말 이후를 그린 SF. 문명이 모두 사라진 뒤 이전 문명의 기억을 지닌 자가 미개집단의 종교인과 충돌한다는 설정의 작품입니다.
설정부터 많이 접해보았던 것으로 딱히 특별한 내용은 없네요. 종교인이 믿는 신의 존재가 식기세척기였다는 반전은 있지만 충분히 예상 가능하여 뛰어나다고 하기 어렵고요.
한마디로 전체적으로 진부했어요. 시대가 너무 흐른 탓이겠죠. 별점은 2.5점입니다.

2015/01/05

명탐정 따위 두렵지 않다 - 니시무라 교타로 / 이연승 : 별점 1.5점

명탐정 따위 두렵지 않다 - 4점 니시무라 교타로 지음, 이연승 옮김/레드박스
<하기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일본의 노부호 사토 다이조는 미국의 엘러리 퀸, 영국의 에르퀼 푸아로, 프랑스의 매그레 경감, 그리고 일본의 아케치 고고로에게 흥미로운 사건이 있다며 초청장을 보낸다. 사토 다이조의 저택에 모인 현역에서 은퇴한 세기의 명탐정들에게 사토 다이조는 황당무계한 제안을 한다. 그것은 바로 이 년 전 현금수송차를 탈취하여 3억 엔을 강탈하여 미궁에 빠진 이른바 '3억 엔 사건'을 실제로 재현하겠다는 것.
사토 다이조가 말하는 '3억 엔 사건' 재현이란 3억 엔 사건의 범인상과 유사한 인물에게 자신의 3억엔을 훔치게 하여 그 모방범의 행동 궤적을 추적함으로써 진짜 3억 엔 사건의 실태를 추리하겠다는 것이다. 네 명의 명탐정은 사토 다이조의 제안을 승낙한다. 명탐정들 앞에서 사토의 부하인 간자키 고로가 이 터무니없는 계획을 진행한다.
간자키 고로는 3억 엔 사건의 범인상에 부합하는 무라코시 가쓰히코라는 젊은이를 찾아냈고, 무라코시는 사토가 계획한 대로 사토가 준비해둔 3억 엔을 빼앗는다. 이후로 네 명의 명탐정들은 차례차례 무라코시의 이후 행동을 추리하는데 무라코시는 마치 명탐정들이 조종하기라도 한 것처럼 추리대로 행동한다. 그런데 크리스마스이브에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살인 사건이 벌어지는데… (알라딘 책 소개 인용)


여정 (트래블) 미스터리의 대가로 알려진 니시무라 교타로의 장편 소설.
1970년대를 무대로 세계의 명탐정을 모아 추리쇼를 벌인다는 설정은 팬픽 느낌이 강하지만 이쪽 바닥에서 이름을 날린 거장의 작품답게 단순한 패러디 팬픽은 아닙니다. 작위적이기는 하지만 꽤 흥미로운 범죄가 등장하거든요. 특히 탈세를 위한 범죄라는 동기는 지금 시점에서도 무릎을 칠만한 괜찮은 아이디어였다고 생각되네요.
당연하다면 당연한 팬픽스러운 요소도 가득하여 고전 명탐정의 팬이라면 즐길거리가 제법 되기도 합니다. 등장하는 탐정들의 캐릭터가 확실하게 잡혀 있고 적절하게 사용되고 있기 때문으로, 일본의 아케치 고고로는 별다른 특색없는 조용한 노인이지만 엘러리 퀸의 촐랑대고 경박스러운 명랑함, 푸아로 (포와로)의 하늘을 찌를 듯한 자존감, 은근하면서도 묵직한 메그레 캐릭터는 제가 생각한 그대로였어요. 이들이 나이를 먹은 뒤 정말로 살아 있다면 어땠을까를 가정한 묘사도 좋은데 엘러리 퀸이 하드보일드를 평가하며 육체보다는 머리가 중요하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좋은 예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건이 벌어진 뒤 현장에서 엘러리가 "모자는 어디로 갔을까요?"라는 대사를 한다던가, 위치가 바뀐 의자에 집중하는 식의 고전적인 추리 방식도 완전 제 취향이었고 말이죠.

그러나 완성도 높은 한편의 추리소설로 보기에는 무리입니다. 애초에 설정부터 이해하기 어려운게 아무리 늙었어도 세계 굴지의 명탐정을 한명도 아니고 네명이나 불러놓고 그들을 모두 속이려 한다는 것은 말도 안되죠. 원래 계획대로라면 (단지 돈 3억엔을 잃었다고 믿게 만들기 위함) 거금을 들여 명탐정을 부를 이유도 없는 것이었고 그냥 미시마 앞에서 3억엔 사건과 동일한 범죄를 저지른다는 계획을 실행해도 충분하기도 했고요. 경찰을 부른 뒤 돈이 불탔다는 것만 공식적으로 알게 만들면 되잖아요. 아니면 명탐정들의 결론이야 똑같으니 네명이나 한명이나 그게 그건데 그냥 일본의 아케지만 부르던가요.
뭐 이러한 설정은 팬픽 기획을 위한 작위적인 것이었다고 양보하더라도 (어차피 이런 소설이 현실적일 수는 없으니), 범행 자체가 곳곳에 헛점 투성이라는 것도 문제에요. 우선 간자키가 다이조의 계획대로 1인 2역으로 움직였으리라는 보장이 전혀 없다는 점이 그러한데, 1인 2역도 다이조의 지시라고 하더라도 더스트 슈트를 통해 지폐를 불태운 행동은 설명되지 않습니다. 무라코시 - 간자키가 더스트 슈트가 소각장으로 이어지는 것을 몰랐던 것은 순전한 우연, 착각이었으니까요. 혹 이렇게 지폐를 불태운 것도 다이조의 지시였다고 한다면 마지막 장면에서 간자키가 자신이 무라코시가 아님을 증명하려 애쓸 필요는 없다는 점, 무엇보다도 마지막 추리쇼에서 시기 적절하게 간자키가 혼자서 알약을 꺼내어 먹은 뒤 죽어버린 것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이 정도로 적절하게 죽어준다면 이건 우연이 아니라 거의 최면술의 영역이 아닐까 싶기도 하네요. 덧붙여, 지폐의 "덩어리"가 남아서 감식이 가능했더라면 그 지폐가 폐기대상인지 아닌지 정도도 확인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1.5점. 팬픽 측면의 가치와 예쁜 디자인 덕에 별점을 약간 더합니다면 추리적으로는 평균 이하의 작품이었습니다. 고전 애호가가 아니시라면 딱히 찾아 읽어보실 필요는 없을 것 같군요.

덧 : 아케치 코고로가 아니라 고고로로 번역된 이유가 따로 있는지 궁금합니다.

2015/01/02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 줄리언 반스 / 최세희 : 별점 3점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 6점 줄리언 반스 지음, 최세희 옮김/다산책방
<하기 리뷰에는 반전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토니 웹스터는 고등학생 시절 앨릭스, 콜린, 에이드리언과 우정을 나누다가 졸업한 뒤 대학에 진학한다.
그 뒤 토니는 대학에서 여자친구 베로니카를 사귀게 되나 그녀와의 관계가 이상한 방향으로 꼬여가고 있음을 감지하다가 에이드리언이 그녀와 교제하게 되었다는 편지를 보내온다.
토니는 쿨한척 엽서를 보내고 그 둘을 인생에서 지워버리기로 결심하나 얼마 후 에이드리언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리고 40년이 지나, 60대가 된 토니에게 베로니카 어머니의 유언장이 도착한다. 얼마간의 돈과 에이드리언의 일기장을 토니에게 남긴다는 유언.
왜 그녀는 토니에게 그러한 것을 남겼을까? 토니는 수수께끼를 풀고 일기장을 되찾기 위해 베로니카와의 접촉을 시도하는데...


안녕하세요. 2015년 한해가 시작되었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이 작품은 회사 동료의 추천으로 교보문고 e-book으로 읽었습니다. 이런저런 상을 수상한 유명 작품이더군요.

20대의 학창 시절 중심으로 에이드리언의 자살로 끝나는 1부, 40여년이 지난 뒤, 왜 베로니카가 에이드리언의 일기장을 돌려주지 않을까?를 파헤치는 2부로 나뉘어져 있는 작품으로 화자인 토니의 1인칭으로 시점으로 의식의 흐름, 과거의 기억과 현재가 뒤섞이며 과거 사건에 대한 진실이 밝혀지는 전개가 복잡하면서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덕분에 분량은 장편이라고 부르기 어려울 정도로 짧지만 다 읽기까지는 제법 시간이 걸렸네요.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주기도 했고요. 정통 추리물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2부에서 토니가 과거의 진상을 찾아가는 과정이 상당히 흥미로와 추리 장르로 분류했는데 마지막 반전이 충격을 안겨다 준다는 점에서 "기묘한 맛" 류의 심리 드라마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웃음기가 쏙 빠졌다는 점에서 로얄드 달 보다는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에 가까운 스타일말이죠. 마침 무대가 영국이기도 하니...
이러한 장르 문학으로서의 가치는 물론 묘사와 디테일 역시 대단한 수준입니다. 특히 제 대학 시절이 연상된 1960년대 학창 시절의 토니와 친구들의 속물적이고 허세에 가득찬 묘사, 그리고 여러가지 소품으로 상황과 캐릭터를 설명해주는 솜씨가 아주 좋았어요. 손목 안쪽으로 돌려놓은 손목 시계와 같은 것 등이 그러합니다.

그런데 솔직히 베로니카가 토니에게 책임을 묻거나 원망하는 이유를 잘 모르겠더군요. 어린 시절 절친에게 애인을 빼앗긴 뒤 악담을 퍼부은 것이 그렇게나 잘못된 일일까요? 게다가 에이드리안이 베로니카의 어머니와 관계를 가지고 자살하게 된 건 토니하고는 무관한 일입니다. 토니의 편지가 없었어도 당연히 가족은 만날 가능성이 높았을 뿐더러, 베로니카 몰래 어머니에게 가서 물어보라고 한 충고가 잘못된건 아니었으니까요. 실제로 베로니카의 어머니가 토니에게 주의를 준 것은 사실이기도 하고요. 
에이드리언이 충고를 따라 베로니카의 어머니를 만난 뒤, 관계를 가지게 된 건 순전히 두 사람의 자유 의지입니다. 토니가 책임을 느낄 하등의 이유는 없습니다. 참혹한 결과만 놓고 봤을 때 베로니카 관점에서= 원망을 품을 수는 있지만 대상은 토니가 아니라 어머니, 에이드리언이었어야 합니다. 
같은 이유로 에이드리언의 일기 복사본의 문장 "예를 들면, 만약 토니가" 라는 문장 뒤에 "편지만 보내지 않았어도"라고 쓰여졌던 거라면, 에이드리언 역시 그다지 뛰어난 인물은 아닌 셈입니다. 본인 실수를 가지고 남 탓이나 하다니.... 아울러 베로니카가 어머니가 토니에게 남긴 유산을 피 묻은 돈이라고 비난할 이유도 없어요. 에이드리언의 유산도 아니고 어머니가 토니에게 남긴 것이니까요.
어머니가 일기장을 토니에게 남긴 이유가 조금 궁금하기는 하고, 베로니카가 명확하게 상황을 이야기하지 않고 질질 끌면서 단서를 하나씩 흘린 이유도 잘 모르겠습니다.

또 토니가 문제의 편지를 보낸 것이 모든 것의 원인인 것 처럼 묘사되는데 이 사실이 전혀 다른 기억 (쿨한 엽서) 으로 치환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잊어버린 것도 아니고 아예 다르게 기억을 한다니... 저도 비슷한 경험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 책에 나오는 상황의 일이었다면 분명히 기억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 기억, 그리고 역사라는 것이 "역사는 살아남은 자의 회고에 더 가깝다"라는 작중 표현처럼 작품의 핵심 테마인데 역사를 너무 부정확한 측면만 강조하여 다룬게 아닌가 싶네요.영국보다는 프랑스 느낌 강한 장황하고 복잡한 심리묘사도 지나친 감이 없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별점은 3점입니다. 분명 잘 쓴 소설임에는 분명하고 반전도 빼어나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허나 특기할 만한 부분이 딱히 없으며 역사에 대한 취급은 실망에 가까웠기에 감점합니다. 그래도 고급스러운 유럽 문학 향취가 짙은 만큼 장르 문학 팬 분들 중 고급 취향이신 분들께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뭐 비싸보이는 포장을 뜯어보면 내용은 막장이라는 점에서, 이래저래 영화 <졸업>의 잔혹한 변주에 지나지 않아 보이기도 하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