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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28

피너츠 완전판 11 : 1971~1972 - 찰스 M. 슐츠 / 신소희 : 별점 2.5점

피너츠 완전판 11 : 1971~1972 - 6점
찰스 M. 슐츠 지음, 신소희 옮김/북스토리

피너츠 완전판도 열 권을 넘어 열 한 권 째에 접어들었네요. 사두고 몇 개월이 지났는데 이제서야 읽고 리뷰를 올립니다. 

이전 권에서 이어오는 설정을 활용한 - 정신 상담하는 루시, 찰리 브라운의 여름 캠프, 야구팀, 우드스탁과 스누피의 우정 등등등 - 개그가 많지만 이전 권들과는 확실히 차별화되는 점도 많아서 좋았습니다. 특히나 페퍼민트 패티가 찰리 브라운에게 극 호감을 보이고, 겉모습과는 다르게 연약한 소녀라는걸 보여주는 에피소드가 많아서 굉장히 새로왔어요. 페퍼민트 패티와 빨간 머리 소녀 사이에서 벌어진 에피소드, 찰리 브라운의 아빠가 1934년에 타던 까만 2도어 승용차와 그 당시 데이트하던 여자애 사이에서 있었던 소박하지만 설레이는 에피소드처럼 감성을 자극하는 이야기가 등장하는 것도 이전에는 보기 힘들었던 내용이고요. 또 패티만큼은 아니지만 샐리 브라운의 비중이 상당히 높아진 것도 차이점입니다.

새 캐릭터도 등장하는데, 패티를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마시는 꽤나 유명한 캐릭터인데 캠프에서 만난 줄은 몰랐습니다. 그리고 루시와 라이너스의 동생 리런이 태어난건 전혀 몰랐던 설정이라 놀랐어요. 이번 권에서 실제로 등장하지 않고, 에피소드도 몇 개 없어서 인기는 그닥이었던 것 같지만 말이죠. 아울러 세계관에서 가장 인기 작가로 보이는 헬렌 스위트스토리도 처음 등장하는데 이를 활용한 개그도 재미있었어요.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빵 터지는 재미는 없지만 팬에게 친숙한, 한결같은 수준의 재미를 선사하는 책입니다. 가격과 시리즈 전체의 볼륨을 생각한다면 선뜻 권해드리기는 조금 어렵지만 팬이라면 놓치기 힘든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별점과 소장가치, 재미가 꼭 비례하는건 아니니까요.

2018/10/27

비하인드 도어 - B.A. 패리스 / 이수영 : 별점 1.5점

비하인드 도어 - 4점
B. A. 패리스 지음, 이수영 옮김/arte(아르테)

모두가 부러워하는 화려한 부부 잭과 그레이스. 남편 잭은 승률 100%를 자랑하는 유명 가정 폭력 전문 변호사로, 영화배우와 같은 외모까지 갖춘 근사한 남자다. 그레이스는 다운증후군을 가진 여동생까지 사랑해주는 잭과 함께 행복한 나날을 꿈꾸지만... 그녀는 괴물 같은 그의 손길이 사랑하는 동생 밀리에게 닿기 전에 이 악몽을 끝내려 한다. 닫힌 문 뒤에서, 아무도 모르는 둘만의 처절한 심리 싸움이 시작된다... <<출판사 제공 줄거리 인용>>

책 뒤에 소개된 짤막한 본문 - "원할 때마다 얼마든지 공포를 주입할 수 있는 사람. 계속 숨겨 둘 수 있는 사람. 아무도 궁금해 하지 않을 사람. 그런 사람을 찾아 보는 한 편 내 갈망을 충족시킬 방법도 마련했어. 뭔지 알겠어?" 나는 멍하니 고개를 저었다. 잭은 몸을 기울여 내 귓가에 입을 가져왔다. "너랑 결혼했어. 그레이스" - 가 마음에 들어 집어들게 된 작품. 
바로 얼마 전에도 '좋은 사람인 줄 알았던 지인이 싸이코패스였다'는 책을 읽었었는데 이 책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결혼하기 전까지는 핸섬하고 친절한 신사로, 그레이스가 결혼이 행운이라고 생각하게 만들었던 잭이 결혼하자마자 자신의 정체를 밝히며 돌변한다는 이야기니까요.

이런 류의 이야기라면 얼마나 범인이 치밀하게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자신의 정체를 아는 상대방을 협박하고 죽이려 하는지가 잘 묘사되어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재미 핵심 요소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이 책은 아쉽게도 완벽한 실패작입니다. 다른 작품들과 차별화를 주기 위한 무리한 설정 탓이에요. 잭이 치밀해서 그레이스가 탈출도 못 하고 도움도 청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설정인데 너무 비현실적이라서 전혀 와 닿지 않았거든요. 어딘가에 갇혀 있는게 아니라 손님도 만나고 외출도 하는데 그 어떤 도움도 청할 수 없다는건 솔직히 말이 안되죠. 이런저런 설명을 덧붙여 놓기는 했지만 다 핑계로 밖에는 보이지 않있습니다. 여자 화장실 안에는 같이 못 간다는 묘사가 등장하니 화장실에서 거울에 몇 자 쓴다던가 하는 식으로 방법을 생각해 볼 만 한데 절박함이 부족해요. 이래서야 감금과 협박을 즐기는게 아닌가? 싶을 정도에요.

그렇다면 주인공의 위기 극복, 탈출 과정이 재미있느냐? 아닙니다! 겨우 구한 약을 잭에게 먹이고 탈출한 그레이스가 태국으로 여행간 후 완전 범죄를 꾸민다는 내용인데 과정이 전혀 납득이 되지 않거든요. 겨우 탈출했을 뿐 잭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지하실에서 어떻게 될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벌일 일은 아니잖아요. 이럴 계획이었다면 최소한 책을 확실히 죽였어야 했습니다. 단지 지하실에 가두었다고 죽는다는 보장도 없고, 잭이 깨어나 탈출하면 모든게 끝나는 상황이니까요. 실제로 잭이 바로 태국으로 쫓아 왔다면 그레이스가 옭아매인 신혼 여행 상황이 반복되었을 겁니다. 그리고 뉴질랜드 행을 가장한 죽음을 맞게 되었겠죠.
결말 부분에서 에스더가 그레이스를 도와줘 완전 범죄를 성공시킨다는 것도 지나치게 작위적이에요. 그 전까지 에스더와의 친분은 전혀 묘사 되지도 않고 드러나지도 않았으며, 에스더에 대한 캐릭터가 제대로 설명 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너무 뜬금없이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에스더가 밝힌 이유인 "빨간 방" 의 정체는 말이 되는데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세부 묘사가 너무 부족했어요.

다른 부분들도 건질게 없는건 마찬가지입니다. 예를 들어 현재와 과거가 복합되어 진행되는 진부한 방식의 전개도 역시나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밀리의 수면제가 현재에 등장하는 시간의 흐름에 따른 전개가 깔끔했던 것 정도만 볼거리였습니다만, 이 정도도 수습이 안 됐다면 이야기가 성립하지도 않았을테니 딱히 장점이라고 보기는 어렵네요.

처음에 완벽함을 강요받는 그레이스에 대한 묘사가 이어져 완벽에 집착해서 아내의 허술함을 용서하지 못하는 일상계스러운 특이한 싸이코구나 싶게 만드는 부분은 독특했기에 차라리 이런 설정을 밀어 붙였더라면 어땠을까 싶네요. 잭이 누군가를 감금해서 공포에 질리게 하는 모습을 즐기는 싸이코패스라는 이야기는 그닥 신선하지 못했으니까요. 아니, 너무 뻔하죠. 이런 뻔한 내용이니 잭이 남편에게 폭행당한 여자들을 전문으로 변호하는 변호사라는 작위적인 설정은 단점으로 보이지도 않을 정도입니다.
그래도 그나마 한 가지 괜찮았던 아이디어라면 잭이 그레이스와 결혼한 이유입니다. 그레이스의 동생 밀리가 다운증후군인데 밀리를 감금하려는 계획이라는 건데 불쌍한 장애우를 학대하는 악당이라는 느낌이 더해져 사악함을 강조한다는 점에서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밀리에 대해 그레이스가 가진 모정에 가까운 애정을 협박의 재료로 쓴다는 것도 그럴듯 했고요. 아울러 사건의 핵심인 공포의 "빨간방" 묘사는 괜찮은 편이에요.

하지만 장점은 빈약해서 진부하고 억지스러운 이야기라는 결론을 뒤집기는 무리에요. 영화도 많이 제작되는 인기있고 유행하는 소재를 억지스러운 설정을 덧붙여 변주한 현실성없는 이야기라 도저히 좋은 점수를 줄 수가 없네요. 제 별점은 1.5점입니다.

2018/10/26

망내인 - 찬호께이 / 강초아 : 별점 2.5점

망내인 - 6점
찬호께이 지음, 강초아 옮김/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열다섯살 여중생이 인터넷 익명 게시판의 악의적인 소문과 신상 공개를 견디다 못해 아파트에서 투신한다. 경찰은 자살로 결론짓지만 언니 '아이'는 이 사건은 타살이며 반드시 범인을 찾아 복수하겠다고 다짐한다. 그러나 수소문하여 찾아간 유명 탐정은 온라인 사건은 맡을 능력이 없다며 고사하고, 대신에 신비에 싸인 해커이자 '탐정들의 탐정'이라 불리는 '아녜'를 소개한다. 처음에 '너무 쉽고 재미없는 사건'이라는 이유로 아이를 문전박대하던 아녜는 몇 일 후 '예상 외로 재밌는 사건'이라며 의뢰를 받아들인다. 조사가 진행되고 용의자의 범위가 좁혀질수록 몰랐던 동생의 과거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진실은 저 너머로 향한다. (출판사 제공 책 소갯글에서 인용)

중국의 추리작가 찬호께이의 700페이지가 넘는 대장편. 동생 샤오원이 자살을 선택하게 만든 인터넷 글을 올린 kidkit727을 찾는 전반부만큼은 철야책이라는 별명을 붙여도 좋을만큼 엄청난 흡입력을 자랑합니다. 우선 설정부터가 굉장히 공감이 갑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신상 공개 때문에 무차별한 비난에 시달린 유치원 여교사가 자살한 사건처럼 현실적인 소재니까요. 

그리고 여러가지 방법으로 자신의 정체를 숨긴 kidkit727과 탐정 아녜의 현란한 두뇌 싸움도 굉장한 볼거리입니다. 이를 친숙한 인터넷 및 각종 기술 용어 설명을 통해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있는 것도 굉장한 장점이고요. 그동안 용어, 명칭만 알아왔지 실제 기술적인 원리나 내용에 대해서 잘 몰랐던 여러가지를 쉽게 이해할 수 있었거든요. 이런 최신 기술이 개인 정보 유출, 해킹에 사용되고 저 역시 언제든지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내용이라 더욱 관심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해킹이나 첨단 기술에 관련되지 않는 순수한 추리들도 볼만합니다. 아녜의 사회 공학 이론을 바탕으로 한 다채로운 화술과 용의자 분석들도 아주 그럴듯하며 아이가 아녜의 집을 청소하면서 주요 증거물을 따로 모아 놓는다던가, 모탐정을 보고 아녜에게 어떤 정보가 전달되었을지를 알아내는 장면들 모두 왠만한 정통 추리물 못지 않은 추리적인 즐거움을 가득 전해 줍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용의자가 좁혀진 다음부터는 재미가 한 풀 꺾입니다. 특히 샤오원의 주변 인물 중 iOS 핸드폰을 사용하는 인물이 범인이다! 이후부터 말이죠. 용의자가 적을 뿐 아니라 그 다음부터는 전형적인 탐정의 탐문 수사에 불과한 활동이 거의 전부이기 때문이며, 이후 아녜는 이미 처음부터 범인을 알고 있었다고 밝혀지는 장면에 이르면 이런 행동들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싶더라고요. 다른건 몰라도 샤오원의 유서를 위조하여 도서관 책에 숨기는 연극은 불필요했습니다. 해킹용 어플리케이션을 심을 수 있었기에 진작에 심어서 정보를 수집했더라면 그만이며, 변호사 사무실에서 수리리로 자칭한 여학생이 정보를 빼냈다는 증언을 입수했을 때 모탐정을 통해 사진 등으로 그게 누군지 알아냈더라도 게임은 끝나는 상황이니까요. 두쯔위가 증거를 인멸하는 모습을 아이에게 보여주어 복수심을 끌어 올리기 위해? 그런것 치고는 너무 거창한 연극이었어요.

또 이어지는 두쯔위에 대한 복수는 전개에 심각한 문제가 존재합니다. 아녜가 두쯔위의 와이파이, 스마트폰을 해킹하여 게시판을 위조하고 정보를 차단하는 작전은 상당히 설득력있게 묘사되어 읽는 재미는 충분하고, 인터넷 세계에서 무기명으로 무차별한 음해와 신상털기가 자행되며 누구나 피해자나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주제 의식만큼은 빛나지만 두쯔위의 동기가 자신을 모함했던 샤오원에 대한 복수때문이었다는게 밝혀지는 결말이 문제에요. 너무 작위적이었거든요. 이 진상을 아녜가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는 설정도 당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헛수고 하지 말고 최소한 아이가 복수를 의뢰할 때 알려줬어야죠.
그나마 샤오원도 가해자였다는 진상 정도면 충분했을텐데 언니 아이가 샤오원에게 무관심했었다는 부분은 명백한 사족입니다. 어머니와 언니 때문에 샤오원이 자살 결심을 굳혔다는건데 이런 쓸데없는 죄책감을 불러 일으킬 이유는 없어 보이네요. 이렇게 따지면 세상에 죄인 아닌 사람이 어디 있을까요.... 또 샤오원이 자살을 결심한 건 잔혹한 메일 탓이 크고, 메일을 보낸 두쯔위가 아예 잘못이 없다고 할 수는 없기에 포인트를 좀 잘못 잡은게 아닌가 싶기도 했고요.

무엇보다도 분량으로는 1/3 수준인 진범 스중난 파트는 완벽한 사족이자 작위적인 전개의 결정판이라 도저히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스중난이 사건의 원인이 된 샤오원 성추행 사건의 진범이라는 것부터 시작해서 원조 교제를 통해 희생양을 물색하는 쓰레기라는 설정은 도무지 공감이 되지 않더군요. 앞서 말씀드린, 누구나 가해자도 피해자도 될 수 있는 인터넷 세계의 무서움을 드러내기 위해서라면 스중난이 동생 두쯔위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 자신의 전문 기술을 활용하여 샤오원을 공격했다 정도가 현실적이고 괜찮았을겁니다. 괜히 절대악으로 포장해서 응징할 필요는 없었어요. 
스중난의 파멸을 위한 과정에서 불거지는, 가쉽을 사고파는 사이트에 대한 아이디어는 처음에만 혹할 뿐 조금만 들여다보아도 현실성없는 내용이었고 이 사이트 투자를 미끼로 한 아녜의 작전도 별로 와 닿지 않았습니다. 그냥 스중난의 정체를 밝힐 수 있는 동영상만 유포해도 끝날 일인데 쇼맨쉽이 지나쳐요.

그리고 700페이지가 넘는 장편임에도 캐릭터들이 입체적이지 못한 것도 단점입니다. 가난하지만 책을 좋아하고 빼어난 지성을 지닌 의뢰인이자 주인공 아이와 천재 해커 탐정으로 처음에는 비호감덩어리였지만 알고보니 정의의 화신이라는 아녜의 캐릭터 설정부터가 흔해 빠진 일본 추리 만화를 답습하는 설정이라 식상하기 짝이 없어요. 천재 탐정, 해결사가 첫 의뢰인과 컴비가 된 후 자기 집에 거주하게 하면서 자기 일을 돕게 하는 에필로그는 <<시티 헌터>> 를 떠오르게 만들고요. 
무엇보다도 세계적인 투자자 그룹 SIQ의 2인자로 잘생기기까지 해서 아시아판 리처드 기어로 보인다는 스투웨이가 산발에 평균 이하로 보이는 아녜였다는 반전은 억지스럽고 작위적인 설정의 극치었습니다. 사채꾼 우시지마가 알고보니 정의의 억만장자 토니 스파크였다는 이야기인데 이게 말이나 됩니까. 차라리 은둔하고 있는 천재 이노우에가 아녜였다면 모를까... 이 반전만큼은 도저히 용서가 안되네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전체 700여 페이지 중 kidkit727의 정체가 두쯔위였음을 밝혀내는 약 절반 가량의 분량은 단점이 없지는 않으나 별점 3점을 줘도 좋을 만큼 재미있고 볼거리가 많습니다. 두쯔위에 대한 복수가 진행되는 150여 페이지는 앞서 말씀드렸던 작위적인 결말 때문에 진행 과정은 흥미진진함에도 별점은 2.5점 정도고요. 그러나 나머지 약 200여 페이지에 해당되는 스중난 파트는 총체적인 난국이기에 별점은 1.5점입니다. 그래서 전체 평균 별점은 2.5점입니다. 노골적으로 에필로그에서 시리즈임을 어필하는데 앞으로 계속 읽어볼지는 살짝 고민이 되는 수준이군요. 이야기를 절반 정도로 줄이고, 스중난은 아녜와 같이 조력자의 위치로 하여 마지막 두쯔위 자살 직전에 그녀를 구해주고 개과천선 (?) 한다는 내용이었다면 별점 3점도 충분했을텐데 아쉽네요.

2018/10/21

불티 - 시즈쿠이 슈스케 / 김미림 : 별점 2.5점

불티 - 6점
시즈쿠이 슈스케 지음, 김미림 옮김/arte(아르테)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가지마 이사오는 도쿄 지방법원의 판사로 일가족 살해 혐의를 받고 기소된 피고 다케우치 신고에게 무죄 판결을 내린 후 퇴관하고 대학교 교수로 근무하게 된다.
2년 뒤 다케우치는 가지마 이사오의 앞에 다시 나타나고, 심지어 가지마 이사오 바로 옆 집으로 이사오게 된다. 가지마 가(家)의 모든 대소사에 성의를 다하는 그에게 집안 사람들 모두는 호감을 느끼지만 며느리 유키미만은 알 수 없는 불편함을 느끼는데...


법률 미스터리로 유명하다는 작가 시즈쿠이 슈스케의 장편. 한번 손에 잡으면 내려 놓을 수 없다는 뜻의 '철야책' 이라는 별명이 있다기에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생각과는 조금 다르더군요. 작가의 이력 및 초반부의 판사 가지마 이사오의 재판과 그에 관련된 딜레마 때문에 당연히 법률 미스터리인 줄 알았는데 싸이코 살인마 다케우치와 가지마 가(家)의 대결을 그린 전형적인 서스펜스 스릴러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대결에서 전해지는 서스펜스가 읽는 내내 넘쳐서 압도적인 몰입감을 선사해 주기 때문에 '철야책' 이라는 별명에는 충분히 값합니다. 다케우치가 가지마가(家)와 친하게 지내기 시작하면서 유일하게 비협조적인 인물인 며느리 유키미를 배제해 가는 첫번째 과정부터 시작해서, 사소한 의심들이 쌓여 진상을 알게 된 어머니 가지마 히로에가 위험에 처하는 전개 및 집안일에는 무심하다가 뒤늦게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는 가지마 이사오와 그를 돕는 유키미의 활약이 교차되는 후반부까지 정말로 흥미진진하거든요.
다케우치가 수상하다는건 상당히 초반부터 암시되기 때문에 어떻게 남은 500여 페이지를 끌고 갈까 궁금했는데 여러가지 장치를 통해 흥미를 더하는 솜씨가 일품인 탓으로, 특히 유키미 배제에 그녀의 딸 마도카를 이용하는 아이디어가 인상적이었어요. 요쿠르트로 밤 잠을 못 자게 하고, 창문으로 보이는 자기 집에서 약간의 조작으로 마도카가 인형 놀이를 과격하게 하게끔 유도하면서 유키미의 폭행을 끌어내는 식인데 치밀하면서도 설득력이 높아 감탄했습니다.

아울러 싸이코 다케우치의 설정도 독특해서 나름의 재미를 선사합니다. 사실 착하고 평범해 보였던 지인이 알고 보니 싸이코 살인자더라.. 하는 설정의 작품은 쎄고 쎘죠. 스플래터 고어 호러가 아닌 싸이코 살인자가 등장하는 대부분의 작품이 아마 비슷한 설정일 거에요. 주인공이 살인자의 정체를 알아내지만 주위 사람들은 주인공 말을 믿지 못하고, 오히려 주인공이 살인자에게 살해당할 위기에 처한다는 식의 이야기 전개 역시 대부분 비슷할테고요.
하지만 이 작품은 설정 면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이는 부분이 있습니다. 살인자 다케우치는 자신이 가진 재력을 활용하여 상대방에게 무한에 가까운 호의를 베풀고, 이에 대한 보답으로 상대방으로부터의 애정과 호감을 강요하는 인물이라는 점이죠. 한마디로 애정과 호감을 자신의 돈과 성의로 사려고 하고, 이를 거절당했을 때 격렬한 살의를 품게 되는 것입니다. 상대방의 호감을 자신만의 기준으로 착각하는 스토커, 혹은 자신의 편의를 위해 살인을 저지르는 싸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들처럼 자신의 이득을 중시하는 인물이 아니라는게 상당히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게다가 다케우치는 가지마 이사오가 재판관 시절 무죄 판결을 내린 피고 출신이라는 설정도 새롭습니다. 이는 다케우치가 가지마가(家)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계기가 될 뿐 아니라, 정말 무죄로 보이는 다케우치의 묘사를 통해 독자들도 정말 진범이 누구인지 궁금하게 만드는 효과를 가져오기도 합니다. 중반부의 가장 큰 승부인 피해자 유족 이케모토와 대면한 다케우치가 이케모토가 진범이 아니냐고 되묻는 장면이 특히 그러하죠. 주인공인 유키미마저 속아넘어갈 정도이니 독자야 오죽 하겠습니까.

하지만 단점도 분명합니다. 우선 원죄 운운한다던가, 재판관으로서 사형 선고를 내리는 심경을 그려내는 등의 법률 미스터리스러운 설정은 내용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 불필요한 묘사였습니다 제목의 '불티' 부터가 사건의 원인이 된 다케우치의 무죄 판결을 뜻하는 듯 한데, 내용만 보면 이는 별 관계가 없거든요.
마찬가지로 마지막에 다케우치를 스스로 단죄하고 죗값을 받는 가지마에 대한 에필로그도 별로 와 닿지 않았습니다. 자기 눈 앞에서 아들을 죽이려 하는 살인자를 누가 가만 놔 두겠어요? 이러한 전개를 통해 사형 선고 등 현재 사법 시스템의 문제와 딜레마를 짚고 넘어가려면 앞부분에서 가지마 이사오가 사형 선고에 극도의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는 걸 더 드러냈어야 합니다. 현재 수준으로는 죄인에게 사형 선고를 내리는 걸 간접 살인이라고 생각하던 인물이 스스로 사람을 죽인 상황에 대한 딜레마가 잘 드러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는 억지로 법관 설정과 모호한 주제 의식을 끼워 넣은 탓이며, 그냥 평범하고 착하게만 살아온 동네 할아버지가 주인공이었다면 그럴 필요는 없었겠죠. 분량도 훨씬 깔끔하게 정리되었을 테죠.

그 외에도 다케우치의 무모한 범죄가 이어지는 와중에 그가 수상하다는 걸 가지마 이사오가 몇일에 불과한 조사로 알아내는 과정은 경찰과 검찰이 대체 무엇을 했는지 의심을 품게 만들며, 사건의 핵심인 다케우치 등에 난 도저히 혼자서 낼 수 없는 상처를 낸 트릭도 솔직히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방망이에 줄을 묶어 기둥을 축으로 회전시켜 등을 때렸다는 건데... 이 정도로 세 명이나 살해당한 사건의 유력 용의자가 무죄 판결이 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지 않을까요?
마지막으로 히로에의 시어머니 간호와 고부 갈등, 유키미의 집안 문제도 사족입니다. 시어머니의 죽음이 사건의 도화선이며 장례 일정과 이야기가 발 맞춰 돌아가기는 하지만 시어머니, 시동생 이야기는 뺐어도 됐을 것 같아요. 읽으면서 가장 짜증이 났던 부분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읽는 재미는 충분하지만 단점도 있기에 감점합니다. 그래도 드라마화도 두 번이나 되었을 만큼 재미만큼은 확실하니 조금 고급진 (?) 킬링 타임용 소설을 찾으시는 분들께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참고로, 두번째로 제작된 드라마는 다케우치 역을 춤추는 대수사선의 마시타 유스케 산타마리아가 연기했다니 한 번 보고 싶어지네요. 조금 조사해보니 결말 부분이 다르긴 하지만요. 가지가 이사오가 마지막에 다케우치에게 진짜 유죄 판결을 내리고 다케우치는 자살을 택하는 결말인데 앞서 말씀드렸던 제가 느꼈던 문제점 - 가지마가 살인을 저지르고 죗값을 받는다는 와닿지 않는다 - 을 제작진도 공감한게 아닌가 싶습니다.

2018/10/20

옛날 책도 가끔은 쓸모가 있지 - 엘리자베스 아치볼드 / 서민아 : 별점 2점

옛날 책도 가끔은 쓸모가 있지 - 4점
엘리자베스 아치볼드 지음, 서민아 옮김/스윙밴드

제목만 보면 실용 서적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이 책의 정체는 역사학자가 중세 시대의 고문헌을 뒤적거려 뽑아낸 대단해 보이는 (?) 조언, 금언들을 당대 삽화와 함께 배치한 어른들을 위한 '우스개' 서적입니다. 그만큼 내용이 뜬금없고 황당하기 짝이 없습니다.

몇가지 예를 들자면, 우선 '영주 부인 거절하는 법'이 있습니다. 1,200년 경 베클스의 다니엘이 쓴 <<교양인 대장전>>에서 뽑아낸 말인데 영주 부인이 자꾸 유혹하면 아픈 척하라는 조언이죠. 과연 교양인! 답네요.
물 속에서 발톱 깎는 법도 있습니다. 1789년 멜키세덱 테브노의 <<수영의 기술>> 에 나온 비법으로 오른손에 칼을 쥐고 왼발을 들어 오른쪽 무릎에 올려 놓아야 한다는 이야기인데 이런 걸 책으로 쓴 이유가 사뭇 궁금해집니다. 글을 쓴 멜키세덱 조차도 별다른 쓸모나 장점은 없지만 시간 관리 방법으로 추천할 만 하다고 하니 본인 스스로도 알맹이 없는 이야기라는 건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만요.
그 외에도 등을 대고 똑바로 눕는건 자살행위라는 1474년 바르톨로메오 플라티나의 말, 주위 사람에게 땅에서 무언가를 주워 달라고 해서 땅에서 씨앗 등 자라나는 걸 줍는다면 4시, 7시, 10시이며 돌 등 자라지 않는 걸 주우면 2시, 5시, 8시, 11시 경이다는 1658년 존 화이트의 '언제든지 시간을 알 수 있는 비법', 일곱살 이전 아동에게는 연령과 와인의 도수에 따라 적절한 양의 물에 희석한 와인을 먹이라는 미켈레 사보나롤라의 의학 지침 등 황당무계한 이야기가 가득합니다.

또 당대의 어처구니없는 각종 레시피도 많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11세기 콘스탄티누스 아프리카누스라는 어마무시한 이름의 저자가 쓴 <<성생활을 위한 책>>에 수록된 발기 불능 치료약이 눈길을 끄는데 흰 양파 씨, 금불초, 참새 뇌, 야자 숫나무의 꽃, 백향목을 같은 양으로 준비해 따뜻한 물에 개어 병아리 콩만하게 만든 후 아침에 와인과 함께 일곱 알을 먹으라고 하네요. 참새 뇌를 대관절 어디서 구해야 할까요? 
와인을 마시기 전에 샐러드 오일을 한 모금 죽 들이켜고, 와인을 마신 후 마신 와인의 세 배의 우유를 마시는 1653년 휴 플랫의 술 취하지 않는 법은 왠지 모르게 시도해보고 싶어지네요.

물론 1280년 경 아마뉴 드 세스카스의 <<신사를 위한 자기계발서>>에서 소개된 알뜰하게 멋 부리는 법처럼 지금 읽어도 와 닿는 조언이 없는건 아닙니다. 우선 몸매부터 관리해야 하며, 옷을 살 돈이 없다면 좋은 악세서리를 챙기고 추레한 차림으로 다니지 말라는 조언인데 크게 틀린 말은 아니에요. 추레한 차림은 볼품없는 사람 취급을 당하게 되기 때문이며, 진정한 멋쟁이는 평범한 것을 세련되고 품위 있게 연출할 줄 아는 사람이라니 이 역시 맞는 말이고요.
그리고 따뜻한 맥주는 차가운 맥주처럼 갈증을 충분히 해소하지도, 더위를 식히지도, 속을 시원하게 해 주지도 않아서 별로라는 토비아스 베네르의 글은 특정 종류의 맥주는 상온에서 마시는게 좋다는 일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네요. 암요, 맥주는 시원하게 마셔야죠.

하지만 유용한 조언은 한 줌 정도에 지나지 않는 극소수이며 대부분의 내용은 피식하고 넘어갈 수준에 불과합니다. 그렇다고 빵빵 터지는 이야기가 많지도 않아서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네요. 뜬금없는 내용과 한 쌍을 이루는 당대의 도판들이 꽤나 적절하고 책의 만듦새도 괜찮긴 하지만 아무리 가점을 한다 해도 별점은 2점입니다. 여러분들께 권해드릴 책은 절대 아닙니다.

2018/10/19

흑백의 여로 - 나쓰키 시즈코 / 추지나 : 별점 2점

흑백의 여로 - 4점
나쓰키 시즈코 지음, 추지나 옮김/엘릭시르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바에서 일하는 여대생 리카코는 삶의 의미나 재미를 찾지 못한 상태에서 유부남 애인 도모나가의 부탁으로 함께 자살 여행을 떠난 후, 아타미의 아가미 깊은 산 속에서 수면제를 다량 복용한다.
하지만 구토 증상으로 수면 상태에서 깨어난 리카코는 옆에 누운 도모나가가 칼에 찔려 죽었다는 걸 알고 놀라 도쿄로 돌아와 도모나가의 죽음에 얽힌 진상을 밝혀내려 하는데...


오랫만에 추리 소설을 집어 들게 되었네요. 이 작품은 "일본의 애거서 크리스티"라는, 다소 과한 별명의 소유자인 일본의 여성 추리작가 나쓰키 시즈코가 1975년에 발표한 장편입니다. 이전에 읽었었던 저자의 장편은 두 편인데 나름 복잡한 트릭이 등장하는 W의 비극이 평작,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의 짝퉁인 <<그리고 누군가 없어졌다>>는 완벽한 졸작이었다면 이 작품은 그 중간 정도 수준입니다.

특징이라면 전형적인 일본 사회파 스릴러, 추리물의 얼개를 갖추고 있다는 점입니다. 두 청춘 남녀가 등장해서 미궁에 빠진 살인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이 일본 전역의 여행을 통해 전개되며, 이 와중에 제법 기발한 트릭과 진상이 선보이는 내용은 사회파 작가 중에서도 당시 일본을 평정했던 모리무라 세이이치의 초기작 영향이 아주 짙게 느껴졌습니다.
사회적인 문제, 이슈가 전면에 노골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누구나 쉽게 위조할 수 있는 호적, 호모섹슈얼과 바이섹슈얼, 트렌스젠더를 비중있게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더더욱 사회파 추리물이라고 해도 무방할겠죠. 하여튼, 예상 외의 장르라 놀랐습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장점, 단점도 모리무라 세이이치 작품들과 비슷해요. 장점부터 설명드리면, 첫번째는 쉽게 읽힌다는 점입니다. 도모나가 죽음의 진상을 쫓는 리카코와 실종된 매형 이와타의 행방을 쫓는 다키이가 우연히 만나 함께 사건을 파헤쳐나가는 과정 속에서 잇달아 새로운 사실이 드러나고,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등 독자의 흥미를 잡아끄는 솜씨가 아주 제법이거든요. 펄프 픽션이기는 하지만 읽는 재미만큼은 충분합니다.

두번째 장점은 나름의 트릭과 더불어 이어지는 반전과 진상이 괜찮다는 점입니다. 도모나가는 자살할 생각이 없었고, 성전환을 한 아내 유키코의 비밀을 알고 협박하던 이와타를 아내가 살해하자 그 시체를 은닉하기 위해 동반 자살을 가장했다는게 진상인데, 1975년이라는 시대를 놓고 보면 꽤나 앞서간 "성전환 수술"을 활용한 반전이 돋보여요. 이를 앞 부분에서부터 계속해서 복선을 던져주며 중간중간 관련된 이야기를 계속 흘려서 설득력도 높은 편이고요. 리카코가 남장을 한다던가, 남장을 하면서 기묘한 매력을 느낀다는 묘사는 지나치고, 복선이 좀 과한 탓에 어느 정도 되면 진상은 눈치챌 수 있기는 하지만요.
참고로 덧붙이자면 모리무라 세이이치 작품 중 <<흑마술의 여자>>가 살짝 떠오르는 반전이기도 합니다. 1974년 발표된 작품인데 성전환까지는 아니지만 질 형성술에 대한 내용이 유사하기 때문인데 아무래도 조금 영향을 받지 않았나 싶기도 하네요.

세번째 장점은 이러한 내용 중에서 정사를 떠난 아타미로의 여정, 아오야마에서 오모테산도 등 도쿄 시내와 가사이, 이와타의 뒤를 쫓아 헤메는 후쿠오카, 리카코와 도모나가의 고향인 시즈오카 방문 등 다양한 지방을 방문한 묘사들입니다. 디테일도 좋고 생동감이 넘쳐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직접 방문한 느낌이 팍팍 나기 때문입니다. 당시 유행이 막 시작되었을 여정 미스터리 느낌인데 이런저런 흥행 요소를 모두 가져다가 인기작을 만드려는 작가의 의지만큼은 확실히 알 수 있었어요.

그리고 마지막 장점으로는 여성 작가 특유의 섬세하고 독특한 시각이 빛나는 묘사들을 들 수 있습니다. 죽은 도모나가가 차고 있던 손목시계는 은빛 예거 르쿨루트, 집으로 돌아온 리카코가 찾은건 담배로 오래된 하이라이트, 다키이의 차는 회색 코로나, 다키이다 주문한 술은 미즈와리라는 식의 디테일들이 발군인데 그 중에서도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던 묘사는 숨어 살게 된 리카코의 이사 선물이자 집들이 기념으로 다키이가 사온 선물입니다. 인스턴트 커피, 각설탕, 하얀 머그잔 두 개인데 정말 센스가 대단하지 않나요?
또 월경곤란증 치료약으로 경구피임약으로도 알려져 있는 필이 주요 단서로 쓰인 점은 확실히 여성 작가라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었고, 중간에 지하철에 우연히 본 여성을 보고 스스로 남장을 하는 장면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말 여성이기에 할 수 있는, 그런 묘사였다 생각되네요. 남과 여, 누명을 쓴 리카코와 진범 등 정 반대 상황을 은유하여 붙인 제목도 멋지고요. 아마도 모리무라 세이이치였다면 굉장히 직접적인 제목이었을 거에요.

그러나 단점도 명확해요. 앞서 말씀드린대로 흥행을 노리고 이런저런 요소를 모두 모아놓기는 했지만 이 모든게 구태의연하다는 점입니다. 질퍽한 정사 장면에서 시작되는 첫번째 문단부터 흥행을 노린 티가 물씬 나지만 무척 식상했어요. 또 아무리 이인증이라는 병을 조금 앓고 있더라도 꽃다운 스물한살 여대생이 불장난 같은 불륜 상대, 그것도 열 일곱섯 살이나 많은 연상의 남자와 동반 자살을 쉽게 결심 한다는 설정도 이해가 되지 않았고요. 이럴거면 보다 깊은 관계였어야 했습니다. 여기서 불거지는 '정사'라는 소재는 구태의연의 극치고요.

그리고 정사 이후의 과정이 지나치게 작위적이고 뻔하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리카코와 다키이가 서로 만나게 되는 상황부터가 그러해요. 리카코가 도모나가의 집을 찾아가는거야 그럴 수 있다 쳐도 다키이가 도모나가의 집을 찾아가게 된 것은 순전히 우연에 불과하거든요. 게다가 매형 이와타가 실종되고 사흘만에 범인의 집을 찾아내고, 나흘째 잠복하다가 리카코를 만나게 되는 식인데 이 정도면 경찰이 도대체 왜 필요한지도 모르겠습니다. 평범한 직장인이 훨씬 유능하잖아요?
이어지는 전개도 작위적이고 우연에 기반한건 모두 마찬가지로 특히 가사이가 죽기 전 마키노 의사의 이름을 남긴게 가장 억지에요. 그냥 "유키노는 남자였다" 라고 이야기하는게 당연하죠. 의사의 입을 통해 성전환의 과정을 설득력있게 표현하려 한 작가의 의도는 알겠지만 도가 지나쳐 이야기가 산으로 간 느낌입니다.
그 외에도 호적 위조를 통한 신분 세탁이 반복되고, 유키노의 무모한 범행이 성공리에 거듭되는 전개도 별다른 고민이 느껴지지 않아 별로였어요. 

이렇게 장점, 단점이 명확한 작품으로 아주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그래도 모리무라 세이이치 작품들과 가장 큰 차이점인 해피 엔딩이라는 결말은 나쁘지 않으며 쉽게 읽히기는 하는 만큼, 이 작품으로 사회파에 입문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네요. 

마지막으로 다키이가 요 몇 주 동안 쓴 돈이 도대체 얼마나 될지 궁금해서 대충 큰 비용만 따져 보았는데 후쿠오카 비행기 2명 왕복, 리카코가 묵는 싱글룸 2박에 다키이가 묵는 스테이션 1박 호텔비, 꽤나 장거리 (합쳐서 시외 편도 한시간?) 왕복 택시비, 기차로 한시간 반 정도 걸리는 시즈오카행 신칸센 왕복 비용, 시즈오카에서 편도 삼십분 정도 택시 비용, 마지막 추격에서 삿포로행 비행기 편도 두 장, 지토세 공항에서 오카다마 공항까지 택시비, 메반베쓰행 비행기 편도 두 장을 한국 기준으로 후쿠오카는 부산, 시즈오카는 광주, 삿포로는 제주로 대체해보면 전부 백오십만원 정도 쓴 듯 합니다. 여기에 리카코의 임시 거처까지 마련해 주다니... 1급 건축사 면허 소유자로 설계부서 내 1팀 주임이라고 하는데 돈벌이가 꽤 괜찮은가 봅니다.

2018/10/14

중국집 - 조영권, 이윤희 : 별점 3점

중국집 - 6점
조영권 지음, 이윤희 그림/CABOOKS(CA북스)

경력 26년의 피아노 조율사인 저자가 조율 등 업무를 위해 전국 각지로 출장을 다니며 해당 지역 유명 중국집을 탐방한 글과 사진, 그리고 글을 바탕으로 한 만화와 함께 엮은 맛집 탐방기.

전국 출장을 다니며, 업무가 끝난 후 극심한 허기를 느끼고 식사를 하는 한편 한편의 구성은 "고독한 미식가"와 약간 비슷하지만, 저자 조영권씨의 피아노 조율 업무가 중국집 식사와 같은 비중으로 설명된다는 점과 아무 식당이나 찾아가는게 아니라 '중국집' 만 찾아간다는 식으로 분명히 차별화됩니다.
특히 피아노 조율에 대한 디테일들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제가 워낙 전문가, 장인들의 세계를 다룬 작품을 좋아하기 때문인데 그런 류의 다른 작품들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심오하면서도 복잡하고, 저자만의 노하우가 드러나는 부분들도 많아서 만족스러웠어요. 간단한 선만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구도와 투시 모두가 꼼꼼한 만화도 아주 마음에 들었고요.

이야기의 핵심인 중국집 탐방도 강원도에서 제주도까지 정말 전국을 망라하고 있는 볼륨도 풍성하고, 밑반찬이 뭐가 깔리는지에서부터 시작해서 가게마다 조금씩 다른 재료와 레시피에 대해 상세하게 소개하는 디테일과 저자 나름의 요리별 분석과 맛에 대한 묘사도 재미있어서 쉽게 읽힙니다.
중간중간 등장하는 짜장면의 역사라던가 물짜장을 비롯한 다양한 짜장면들의 소개, 탕수육의 부먹과 찍먹의 유래는 중국집에서 배달이 시작되었던 70년대에 탕수육 배달할 때 시간이 지나면 바삭함이 사라지기 때문에 튀김과 소스를 별도로 배달하며 생겨난 것으로 원래는 소스와 함께 볶아나오는게 맞다던가 충청도에서 물쫄면을 소개하며 인천에서 시작된 쫄면이 경부선을 타고 지방으로 전파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등 오랜 맛집 블로거다운 식견이 느껴지는 글들도 재미 요소고요.

하지만 '혼밥' 이기 때문에 특별한 요리없이 대부분 볶음밥, 짜장면, 짬뽕과 만두 정도만 먹는건 조금 아쉬웠습니다. 많이 먹어도 면 요리에 만두 한 종류 곁들이는 정도거든요. 이왕 지방까지 내려가 먹는 거라면 좀 더 다양하게 이것저것 먹어 보아도 좋았을텐데 말이죠. 아무리 볶음밥만으로 그 중국집의 실력을 가늠할 수 있다 하더라도 이래서야 정보가 너무 부족하죠.
또 책의 디자인, 만듦새는 나쁘지 않으나 저자의 글을 만화로 옮긴 내용은 사진이 전무하다는 편집은 영 별로였어요. 인천 신성루의 자춘결을 먹는 에피소드가 대표적으로 뭔가 맛있어 보이는 요리인데 그림만으로는 그 내용이 잘 전달되지 않아 안타까왔거든요. 그 외에도 '인발루' 소개에서 첫 페이지 글이 두번째에도 다시 나오는 오류와 가로형 사진이 세로로 편집된 부분은 눈에 거슬렸던 부분입니다. 혹 재판을 찍는다면 수정되면 좋겠습니다.

그래도 단점은 사소합니다. 피아노 조율의 세계와 중국집의 식사 메뉴 탐방이라는 굉장히 독특한 두가지 세계를 하나로 엮어 재미나게 풀어내었다는 점에서는 확실히 독보적인 책이기도 하고요. 제 별점은 3점입니다. 맛집 소개글이나 미식 블로그를 자주 찾으신다면 한 번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네요.

2018/10/13

달팽이 더듬이 위에서 티격태격, 와우각상쟁 - 권오길 : 별점 3점


오랜 생물학 지도 경험이 있는 저자가 우리말 
속담, 고사성어, 관용구에 서린 생물들에 대해 쉽게 재미나게 이야기를 풀어놓은 책. 딸아이가 커가면서 속담에 관심을 많이 가지길래 저도 공부나 해 볼까 해서 구입하였는데 의의로 굉장히 재미있더라고요. 

속담, 옛말 자체는 잘 알지만 잘 몰랐던 등장 생물에 대해 자세하게 알려주는 이야기들이 특히 재미있었는데요, 예를 들자면 "청출어람"이 "쪽빛"에 관련된 이야기라는건 누구나 알 겁니다. 하지만 쪽이 "상떡잎식물 마디풀과의 한해살이 풀로 동양에서는 남, 서양에서는 인디고라고 부르는 염료 식물이다. 천연 염료인 쪽은 석회와 잿물을 써서 산화, 환원 과정을 거쳐야 비로서 쪽빛을 얻을 수 있다. 자체에 방충, 방부 기능이 있다..." 는건 잘 몰랐는데 이를 상세하게 알려주는 식입니다. "결초보은"도 뜻은 누구나 아는 내용이지만 이 풀이 우리나라에서도 자라는 "그령" 이다!" 라던가 "부평초"가 우리가 흔히 보아온 "개구리밥" 이라는 것, "용 빼는 재주"의 용이 녹용을 뜻한다는 것 등도 처음 알았네요.

또 몰랐던 속담이나 옛 말을 접하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가물치 콧구멍이다" 라는 속담이 그러해요. "코빼기도 안보인다"는 뜻으로 가물치 콧구멍은 실제로 잘 보이지 않는다는군요. 아울러 우리의 민물고기 가물치가 흘러들어간 일본, 미국 등에서도 먹이사슬 최상단에서 다른 생물들을 압살하고 있다니 나름 자부심도 느껴집니다. 마찬가지로 제목에도 사용된 "와우각상쟁" 역시 처음 들은 말로 달팽이를 옛날에 그 느린 행동을 소에 빗대어 "와우"라고 불렀으며, 더듬이 넷이 서로 째려보고 다툰다고 생각하여 "와우각상쟁"이라는 말이 나왔다고 합니다. 별 것도 아닌 일로 집안, 식구끼리 다투고 있다는 뜻으로 쓰인다네요.

유래를 처음 알게 된 옛 말도 있습니다. "뚱딴지 같은 소리"에서 뚱딴지가 무엇인지 아시나요? 저는 처음 알았는데 '돼지감자'이며, 국화과 해바라기속에 드는 여러해살이 풀로 꽃, 줄기, 잎이 하나도 감자같지 않은데 감자 꼴의 덩이 뿌리가 달려있는 게 그 유래일 것이라고 합니다. 그야말로 엉뚱함 그 자체인 셈이죠. "호박꽃" 이 왜 박색의 대명사인지에 대한 유래도 재미있었어요. 옛부터 곡식을 심기 힘든 곳곳에 호박을 심어서 너무나 흔해 빠지게 꽃을 보게 된 탓이라고 합니다. 호박꽃이 못나 보이지 않아 유래가 항상 궁금했었는데 속이 다 시원하네요.
그 외에도 "꿩 대신 닭" 은 평양 전통 요리 꿩만둣국을 만들 때 만두소를 꿩고기로 채워야 하지만 구하기 힘들어 닭고기로 채운 것이 유래이며, "밴댕이 소갈머리"의 유래도 밴댕이가 그물에 걸려 잡히면 스트레스를 못 이기고 파닥파닥 날뛰다가 금세 제 풀에 죽어버리는 습성에서 비롯되었다는군요. 몸집에 비해 내장이 별로 없어서 해부학적으로도 틀린 말이 아니라는 깨알같은 해석도 재미있었어요.
사마귀 이야기에서 사마귀의 다른 말인 '버마재비'의 유래는 '무서운 범 아저씨', 즉 '범 아재비'를 소리나는대로 적었다던가 "옹고집"은 아주 고집스러운 매에서 따온 "응應 고집"에서 생겨났다는 등의 어원 유래도 인상적이었고요.

먹을 수 있는 생물의 경우 요리법 등에 대해서도 짤막하게나마 소개해 주는 점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랴" 편에서 된장 담그기에 대해 아주아주 상세하게 설명하는 것 처럼 조리법을 중심으로 설명하는 이야기처럼 말이죠. 앞서 설명드린 밴댕이 이야기에서 "오뉴월 밴댕이" 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오뉴월 제철에는 밴댕이 회가 정말 맛있다는데 한 번 먹어보고 싶어집니다.
요리, 맛에 대해 나름의 이론이 등장하기도 하는데 "가재는 게 편" 에서 똑같은 종이라도 민물 것 보다 바다의 것이 더 맛있는 이유에 대한 설명이 그러합니다. 바다 생물은 고농도의 짠물에 살기 때문에 몸에 단백질, 지방과 같은 양분을 많이 저장해 놓아야 하기 때문이라네요.

이렇게 재미있고 유익한 내용이 가득한데 아쉬운 부분도 없지는 않습니다. 첫 번째는 교양 서적이라기 보다는 저자의 추억이 담뿍 담긴 에세이 형식으로 쓰여졌다는 점입니다. 쉽게 읽힌다는 장점은 있지만 교양, 과학 서적으로의 형식이 갖추어졌더라면 저같은 고연령 독자에게는 더 좋지 않았을까 싶어요. 지금은 손자에게 할아버지가 친절하게 설명하는 식이라 제가 읽기는 조금 거북한 면이 없잖아 있었습니다.
두번째는 도판이 부실하다는 점입니다. 위에 소개해드린 생물들의 도판이 멋스러운 일러스트, 최소한 디테일한 사진으로라도 곁들여 졌더라면 정말 좋았을텐데 몇몇 '삽화' 가 전부입니다. 공들여 그린 그림이지만 아동용 도서 삽화 수준이라 생물에 대해 디테일하게 알려주는 도판이라고 보기는 힘들어요. 

그래도 별점 3점은 충분한 멋진 책입니다. 제. 딸 아이가 조금만 더 크면 권해주고 싶을 정도이며, 후속권인 <<소라는 까먹어도 한 바구니 안 까먹어도 한 바구니>> 를 바로 구입할 정도로 말이죠.
그리고 저자의 글을 토대로 최불암 할아버지가 옛 말과 생물을 소개하는 탐방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보아도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어느 지역에 가서 특정 옛말, 속담에 관련된 이것저것을 찾아보고 마지막에 해당 소재를 재료로 한 음식을 먹는 형식이라면 재미있지 않을까 싶어요. 최소한 저는 보고 싶습니다.

2018/10/09

고독한 미식가 2 - 구스미 마사유키, 다니구치 지로 / 박정임 : 별점 2점

고독한 미식가 2 - 4점
구스미 마사유키 원작, 다니구치 지로 지음, 박정임 옮김/이숲

단권으로 별다른 내용은 없었던 전작이 독특한 매력 덕분에 드라마화가 되어 성공한 후 뒷 이야기가 이어진 역주행의 아이콘같은 작품. 읽은지는 백만년 정도 되었지만 국내 출간본을 읽은 김에 짤막한 리뷰 남깁니다.

드라마 성공 이후의 후속작이라는 느낌이 굉장히 강하게 전해집니다. 평범한 독신 중년 남자의 평범한 혼밥에 가까워졌으며 거의 모든 에피소드가 배가 고파서 처음 간 동네에서 모르는 가게를 탐색하다가 들어간다는 점, 그리고 전작의 고로는 나름 꼰대 마인드를 보였는데 이번에는 별로 그렇지 않고 좀 더 대중적이고 일반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점 등이 드라마 설정을 떠올리게 만들거든요. 대부분의 음식들을 맛있게 먹고 전작만큼의 과식도 하지 않는 점도 그러합니다. 전작에서는 야키니쿠를 먹으러 가서 인간 화력발전소 운운하면서 엄청난 고기와 잡채 등을 위 속으로 밀어 넣는데 2권에서는 돈코쓰 라멘에 밥 반공기, 사리 한 개를 추가해서 사리를 반이나 남길 정도에요.

드라마의 팬으로서 이러한 사소한 설정의 변경은 나쁜 방향은 아니라 생각됩니다. 허나 전작의 매력 포인트, 구루메 만화로 보기는 힘들 정도의 일상성과 독특한 캐릭터가 많이 희석되지 않았나 싶어요. 오차즈케를 먹으러 갔다가 부하 직원에게 술을 강권하는 부장을 쓰러트리는 에피소드 정도만 전작을 떠오르게 하는데 이는 전작의 햄버그 집 에피소드와 너무 똑같아서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더군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그냥 추억은 추억대로 두는게 좋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2018/10/07

우울증 탈출 - 타나카 케이이치 / 미우 : 별점 2점

우울증 탈출 - 4점
타나카 케이이치 지음/미우(대원씨아이)

타나카 케이이치는 국내에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애니메이션까지 되었던 데뷰작 개그 만화 <<닥터 치치부야마>>가 유명하죠. 개인적으로는 데즈카 오사무의 그림체를 똑같이 구사하며 그려낸 개그 만화들이 꽤 마음에 들어서 관심을 두고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구루나비 모두의 밥 사이트에 연재했던 <<펜과 젓가락>>은 그야말로 압권이었거든요. 유명 만화가 가족과 만화가가 좋아했던 음식에 대해 인터뷰한 내용을 만화로 그린 작품인데 해당 작가의 그림을 그대로 모사하여 그려냈기 때문입니다! 한번 보시면 이해하실거에요. 유사한 류의 작품들은 작가의 SNS (예 : 페이스북) 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고요.
하지만 <<펜과 젓가락>> 연재가 끝나서 아쉽던 차에 국내에 작가의 작품으로는 처음으로 번역 출간되어 기쁜 마음으로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데즈카 오사무의 팬이기도 하니까요.

그런데 이 작품은 개그 만화는 전혀 아니었습니다. 제목 그대로 작가 본인의 우울증 투병 이력을 중심으로 우울증을 극복하는 방법에 대해 알려주는 만화에요.
당연하게도 '우울증' 이 무엇이며 이를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에 대한 방법론적인 이야기는 꽤 괜찮습니다. 저자를 포함한 우울증 환자 17명의 인터뷰를 통해 개인별로 달랐던 원인과 증상, 그리고 극복 방법을 소개해주기 때문입니다. 우울증은 평생 간다, 우울증은 여러가지 (몸과 마음) 무리한 상황에서 견디지 못한 몸이 내보내는 경고 신호이다, 이를 없애려면 (극복하려면) 나 자신을 좋아해야 한다, 칭찬과 인정받는다는 느낌이 중요하다, 의사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자신을 긍정하라 등 여러가지 정보는 물론 다양한 방법과 팁이 등장합니다. 저는 다행히 우울증까지 앓지는 않았지만 가끔 업무적인 스트레스를 받을 때가 있기는 한데, 상대방의 언행을 반대로 생각해 본다던가, 아침에 억지로라도 나 자신을 격려하고 칭찬하는 방법은 써먹음직하다고 생각되더군요.
또 내용이 풀 컬러라서 좀 놀랐습니다. 14,000원이라는 가격에 걸맞는 완성도랄까요? 비싸기는 하지만 풀컬러의 180여 페이지 정도 분량이라면 가격도 어느정도 수긍할만 합니다.

하지만 친숙한 데즈카 오사무 화풍에 오너캐인 양복입은 작가 본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하기는 하지만 다른 작품에서 느꼈던 재미는 찾기 힘들었습니다. 개그 만화를 기대한 건 아니지만 <<실종 일기>> 처럼 엄청나게 심각한 이야기라도 개그 센스가 빛날 수도 있었을텐데 우울증 환자와의 인터뷰 중심으로만 흘러가는 탓입니다. 작가 본인에게 우울증은 너무나 심각한 병이라 개그의 대상으로 고려할 수는 없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조금 아쉬웠습니다.
우울증에 대한 인터뷰도 계속 반복되다 보니 그 내용이 그 내용 같을 뿐 아니라 딱히 관심사가 아니라 몰입하기 힘들기도 했고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우울증에 대해 관심이 있으시다면 한 번 읽어보실만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별로 구입할 필요는 없습니다. 저 역시 작가에게 흥미가 가서 구입했지만 딱히 두고두고 읽을 것 같지는 않네요.

2018/10/06

과학의 미해결 문제들 - 다케우치 가오루, 마루야마 아쓰시 / 홍성민 : 별점 2점

과학의 미해결문제들 - 4점
다케우치 가오루.마루야마 아쓰시 지음, 홍성민 옮김, 최재천 추천/반니

대멸종의 원인에서 블랙홀 관찰까지, 과학사의 12가지 미 해결 문제를 설명해 주는 과학 서적. '미해결' 이라는 단어의 울림이 좋아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실망이었습니다. 평범한 직장인이 이해하기에 너무 어렵게 쓰여진 내용이 많다는 이유가 가장 큽니다. 처음의 '푸앵카레 추측'의 경우는 설명하면서 어떻게든 쉽게 설명해 주려는 노력이 돋보여서 뒷 내용을 기대하게 만드는데, 뒤로 가면 갈 수록 그런 노력이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시간 여행을 설명하며 등장하는 초끈 이론의 경우는 그 정도가 너무 심해서 무슨 이야기인지 도무지 짐작조차 되지 않더군요.
또 수학과 과학 분야에 있어 독자가 이해하기 위한 결정적 한 방도 부족합니다. 푸앵카레 추측이 증명되었다는게 서스턴의 기하화 추측을 증명해냈기 때문이라는데 뭘 어떻게 증명했는지는 설명되지 않는 식이거든요. 물론 한 주제 당 30~40 페이지에 불과한 분량에서 이런 내용을 설명해주는건 불가능했겠지만 그래도 제일 중요한 내용이 빠진 느낌이라 기분이 영 별로에요. 소수와 리만 가설에서 1, 2 다음에 오는 숫자가 42라는 것도 왜인지 설명되지 않아 답답했던 부분이고요. 그 외에도 설명이 부족한 내용이 태반입니다.

물론 조금이나마 이해하여 부족했던 제 지식을 채운 부분도 있기는 합니다. 대표적인 것은 진화론 관련 설명으로 라마르크의 용불용설 - 획득 형질 유전설 - 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부모가 열심히 공부했더라도 자녀의 머리가 좋아지지 않는다는 단순한 한 마디로 알려주는데 머리에 쏙 들어오더라고요. 또 다윈의 진화론은 형질의 차이는 우연히 발생하며 환경에 적응한 생물이 선택되는 것이다라는 차이가 있으며, 진화는 아직 명확히 증명된 게 아니라는 이야기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진화에는 방대한 시간이 걸리며 진화는 한번 뿐인 현상이기 때문이라네요.
마지막으로 뱀장어의 번식이 아직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는 것도 처음 알았는데 꽤 재미있었습니다. 지금은 조사를 통해 뱀장어의 산란 장소가 대충 밝혀졌고 이는 대륙 이동 이전의 장소가 아직까지 유지되고 있다는 이론도 새롭게 다가왔고요.

하지만 재미있고 가치있던 내용보다는 그렇지 않은 내용이 훨씬 많기에 별점은 2점입니다. 별로 권해드릴만한 책은 아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