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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28

사라진 남자 (Charlie Muffin) - B. 프리맨틀 / 박종원 : 별점 3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찰리 머핀은 영국 정보부의 베테랑 요원이지만 정보부장이 엘리트 군인 카스버트슨 경으로 교체된 뒤, 그를 싫어하는 부장과 다른 애송이 엘리트들에 의해 홀대와 좌천은 물론 죽을 위험까지 겪는다.
한편, 찰리 머핀의 활약으로 체포된 소련의 1급 스파이 베렌코프의 석방 지연으로 궁지에 몰린 KGB의 수장 카레닌은 망명 의사를 은밀하게 피력하고, 영국 정보부는 카레닌을 받아들이기 위한 작전을 진행한다. 그러나 카레닌과 접촉했던 애송이 해리슨이 사살당하고, 스네어가 체포되자 카스버트슨은 어쩔 수 없이 찰리 머핀을 작전 전면에 내세우고, 찰리 머핀은 단독으로 진행한 카레닌과의 대화에서 입수한 정보로 CIA 수장 거슨 라트거즈를 협박하여 협조를 이끌어낸다.
그리고 카레닌 망명의 D-Day가 다가오고, 그가 국경을 넘기로 계획한 오스트리아에는 수백명의 영국 정보부와 CIA 요원은 물론 두 수장까지 자리잡아서 카레닌 망명을 기다리는데....


원제 Charlie Muffin. 브라이언 프리맨틀의 스파이 소설입니다. 작가의 대표작으로 오래전 '동서 미스터리 100'에서 41위를 차지했을 정도로 유명한 작품이지요. 무려 <<빅 슬립>>보다 순위가 높습니다!
이미 14년 전에 읽고 리뷰를 남겼었지만, 책 정리 중 우연찮게 다시 집어들어 읽어보게 되었네요. 워낙 오래전에 읽어서 그런지, 처음 읽는 느낌이었어요. 심지어 마지막 반전마저도 기억나지 않았으니 처음 읽는 것과 다를바 없지요.

이 작품의 재미를 책임지는건 주인공 찰리 머핀 캐릭터입니다. 궁지에 몰려도 항상 퇴로를 마련하는 능력있는 스파이로서의 모습이 생생한 묘사로 잘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액션 없이 주로 대화만으로 긴장감을 자아내게 만드는 전개도 빼어나고요.
찰리 머핀이 카레닌 장군과 손을 잡고, 영국 정보부와 CIA 주요 요원과 부장들까지 소련에 체포되는 배신을 저지르는 반전도 좋았어요. 배신한 동기에 대한 설명도 확실해서 설득력도 높습니다. 진짜 프로임에도 불구하고 새로 부장으로 부임한 헨리 카스버트슨 경과 그가 총애하는 젊은 애송이들에게 무시받고, 부당한 대우를 받고, 심지어 생명의 위협까지 받았기 때문이거든요. 퍼블릭 스쿨 출신 엘리트가 아닌 낮은 신분 출신으로, 외모도 보잘 것 없다는 말도 안되는 이유 탓이니 복수를 당해도 싸죠. 애송이 해리슨은 사살당하고, 스네어는 체포된 뒤 세뇌 공작으로 광인이 되며 카스버트슨은 소련에 체포된 뒤 실각하게 되는 결말인데, 안타깝다기보다는 속 시원했습니다.

이렇게 찰리 머핀이 배신하는 반전에 대한 단서, 복선도 충실하게 짜여져 있어서 이야기 완성도도 높은 편입니다. 비교적 초반에 묘사되는, 체포된 러시아 스파이 베렌코프와의 회견 장면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베렌코프는 찰리 머핀에게 러시아는 결코 스파이를 잊지 않는다, 하지만 영국에서는 거들떠 보지도 않지 않는다며 "찰리, 나는 결단코 당신네 나라의 조직에서 일을 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고 말합니다. 찰리는 그게 체포되지 않기 위한 큰 동기라고 답하지만 베렌코프는, "그래 가지고 어떻게 자기 부하가 일을 잘 하기를 기대할 수 있겠소. 물론 러시아에도 여러 가지 결함은 있소. 하지만 적어도 충성심이라는 것은 존재합니다"라고 응수하지요. 베렌코프가 한 말 그대로 찰리 머핀은 충성심 따위는 잊고, 복수와 개인 영달을 위해 마지막 작전을 벌이게 됩니다.
그 외에도 초반부 찰리 머핀이 유럽으로 향했던 2주간의 휴가, 베렌코프와의 여러 번 회견에서의 대화도 모두 복선 및 단서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또 14년 전에 읽었을 때 보다 '조직 관리'와 '역량 평가' 부분이 더 눈에 들어왔던게 신기했어요. 저도 직장에서 어느 정도 리더, 매니저 역할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제가 보기에 찰리 머핀은 그 전문성을 인정하여, 위에서의 관리를 최소화하고 최대한 업무 진행, 의사 결정의 권리를 주어야 하는 인재입니다. 그러나 영국 정보부는 찰리 머핀의 역량을 잘못 판단하여, 조직원이 조직에 대한 충성과 애정 모두를 잃고 떠나게 만드는 최악의 조직 관리를 보여줍니다. 상사가 전문성이 부족했던 탓이죠. 저도 이런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 보다 부단히 노력해야 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하여튼, 별점은 3점. 시대를 뛰어넘을 만한 이야기는 아니더라도, 스파이, 첩보물로는 평균 이상의 완성도와 재미를 갖춘 좋은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냉전 시대 스파이물을 좋아하신다면 적극 추천드립니다. 이미 절판된지는 오래 되었지만,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는 법이지요.

2021/03/27

코핀 댄서 - 제프리 디버 / 유소영 : 별점 3점

코핀 댄서 - 6점
제프리 디버 지음, 유소영 옮김/랜덤하우스코리아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본 컬렉터' 사건 이후 뉴욕 시경과 FBI의 수사 자문으로 일하는 전신마비 범죄학자 링컨 라임은 시카고 외곽 상공에서 폭발한 민간 제트기 사건을 조사해달라는 의뢰를 받는다. 사망자는 거물급 무기상 필립 핸슨의 재판에 증언을 하기로 한 조종사 에드워드 카니. 그러나 라임의 관심을 더더욱 끈 것은 이 사건에 청부살인업자 '코핀 댄서'가 관련되어 있다는 것.
코핀 댄서에게 5년 전 부하들을 잃은 적이 있기에 댄서를 잡으려는 라임의 의욕은 어느 때보다도 강하다. 이제 남은 핸슨 재판의 증인은 카니의 부인인 퍼시와 동료 헤일. 재판까지 정확히 45시간이 남은 상황, 링컨 라임은 최강의 암살자 코핀 댄서로부터 이들을 보호하는 한편, 자신의 손으로 댄서를 잡아들일 함정을 준비해야 하는데… <<출판사 제공 책 소개 인용>>


제프리 디버의 빅 히트한 전신마비 범죄학자 링컨 라임 시리즈 2작. 링컨 라임과 살인청부업자 코핀 댄서와의 대결을 그리고 있는데, 500페이지가 넘는 분량에도 불구하고 시종일관 흥미를 자아내는 재미가 매력적인 작품입니다.

특히 링컨 라임과 동료들 시점과 살인을 실행하는 청부업자 스티븐 콜 시점을 오가는 구성에서 전해지는 재미가 상당합니다. 스티븐 콜의 현재 행동을 통해 그가 앞으로 범행을 어떻게 저지를지?를 궁금하게 만든 뒤, 이를 알아챈 링컨 라임이 간발의 차이로 이를 저지하려고 하는 과정이 반복되는데, 뻔하기는 하지만 몰입할 수 밖에 없더라고요. 스스로는 전화도 걸 수 없는 링컨 라임이 범행 수법을 알았지만 전화를 거는데 실패해서 타겟 중 한 명이 희생되는 장면은 그 중 백미입니다. 2000년대 이후 작품이었다면 Siri로 쉽게 전화를 걸 수 있었을 텐데 (<<스마트 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처럼요), 당시 음성 인식 기술의 한계가 여실히 느껴지기도 했고요.
스티븐 콜이 링컨 라임이 장애인임을 알아챈 뒤 그의 능력을 인정하는 장면도 아주 멋졌습니다. 왜 링컨 라임이 강한지를 잘 알려주는 장면이었어요.
범죄학자, 법의학자이자 감식 전문가인 링컨 라임이 주인공인 작품다운 디테일도 압권입니다. 애밀리아 색스 등을 활용하여 수집한 미량 증거물들을 통해 스티븐 콜을 추적해 나아가는 묘사가 아주 빼어나요. 대체로 범행 과정을 검증하는 정도에 그치기는 하지만, 지문 인식이 불가능한 지문 조각을 긁어모아 하나의 지문을 만드는 등, 실제 수사에 활용하는 장면들도 제법 많은 편입니다. 스티븐 콜 범행에서도 폭탄의 디테일 등 볼거리가 아주 많고요.

허드슨 에어와 퍼시 플레이 시점으로 보여지는 여러가지 비행 관련 전문 정보들도 잘 활용되고 있습니다. 공항의 지형지물을 활용하여 폭탄을 비행기 외부에 부착한다는, 공항 구조를 잘 활용한 아이디어처럼요. 공항에서 총격전이 벌어지는 장면에서도 숨어있는 파일럿을 끌어내기 위해 비행기를 쏜다는 발상 등에서 많은 연구와 조사가 뒷받침된 티가 납니다.
무엇보다도 퍼시 플레이가 고도가 낮아지면 폭발하는 폭탄 때문에 마지막 비행에서 겪는 고군분투는 정말이지 인상적이었어요. 범인이 설정한 고도보다 높은 공항 (덴버)으로 향한다던가, 부족한 연료를 근처 사막이 태양빛을 받고 만들어낸 상승기류로 해결한다는 등의 아이디어들도 적재적소에 활용되어 이야기를 빛내 줍니다. 이 이야기만 가지고도 한 편의 이야기가 충분히 될 수 있을 정도에요. 그만큼 드라마와 긴장감이 잘 살아있었습니다.

약간은 서술 트릭을 갖추고 있으며, 두 개의 반전이 존재해서 추리적으로 풍성한 느낌을 주는 점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이야기 구조에서 링컨 라임과 시종일관 대등한 대결을 펼치던 또 다른 주인공 스티븐 콜은 '댄서'가 아니라는게 나중에 밝혀지거든요. 이건 정말 생각도 못했네요.
이외에도 악덕 사업가 핸슨이 아니라 허드슨 에어 멤버 론 탤봇이 청부를 의뢰했다는 반전도 놀라왔고요.

그러나 반전에 지나치게 집착한 느낌을 전해주는건 조금 아쉬웠어요. 스티븐 콜이 그냥 댄서였어도 이야기에는 별 문제가 없었을텐데 말이지요.
론 탤봇이 사장 퍼시를 비롯한 3명의 소유주를 없애고 회사를 가로채려고 했다는 청부 의뢰 동기도 설명이 부족합니다. 론 탤봇의 횡령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는데, 그럴 필요가 있었을까요? 단순 횡령과 살인 청부는 급이 다른 범죄인데 말이지요. 잘나가는 항공사의 경영진 중 한명으로 이익을 나누는 것 대비해서 얼마나 큰 이익을 보는지가 제대로 설명되지 않아서, 동기가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게다가 3명을 죽이려다가 경찰, 보안관을 포함하여 거의 20여명이 죽거나 중상을 입었습니다. 아무리 봐도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요. 미량 증거물로 그가 이 모든걸 꾸몄다는게 증명된다는 것도 무리였다 생각되고요. 끝까지 부인해서 법정까지 갔다면, 아마 무죄 판결을 받았을 겁니다.

또 이야기 전개에 억지가 많다는 점도 단점입니다. '댄서'가 색스에게 총상을 입고 체포되는 마지막 장면을 한 번 볼까요? '댄서'는 원거리 저격을 가장한 뒤, 뒤로 돌아가 기습하려는 작전이 들켜 체포되고 맙니다. 하지만 자리만 조금 높은 곳으로 이동해도 쉽게 색스와 퍼시, 롤랜드를 저격해서 쉽게 죽일 수 있었습니다. 완벽하게 이길 수 있는 카드를 버리고, 질 수도 있는 별로 좋지 않은 카드를 선택할 이유는 없어요. '댄서'가 체포되게 만들기 위한 억지에 불과합니다.
댄서의 전지전능함을 과시하기 위한 설정들도 억지스러운 부분이 적지 않습니다. 댄서가 스티븐 콜에게 살인 청부를 재하청 준 뒤, 그를 만나는 장면이 대표적입니다. 댄서는 '조디'라는 약물중독 노숙자로 변장하고 스티븐 콜과 접촉하지요. 그런데 이 때 스티븐 콜이 만나자마자 그를 죽이지 않은건 순전히 우연에 불과했었습니다. 이후, 조디가 배신한걸 알아챈 스티븐 콜의 저격이 실패한 것도 우연이고요. '댄서'가 체포된 뒤 "모험 없는 인생은 없다. 그래도 난 대응책을 강구했다. 스티븐 콜의 잠재적 동성애 성향을 이용했다." 고 링컨 라임에게 떠벌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조디'가 스티븐 콜의 동성애 성향을 알아챈 방법에 대한 설명도 없고, 그가 스티븐 콜의 취향이었다는 정보도 전혀 등장하지 않기 때문에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그리고 이야기를 되짚어 생각해보면, 에드가 죽은건 어쩔 수 없었지만, 누군가 자신들 생명을 노린다는걸 알고 난 뒤에도 비행에 집착했던 퍼시 플레이 탓에 사건이 커진 탓이 너무 큽니다. 경찰과 FBI가 시키는대로 안전 가옥에 얌전히 있었다면, 사건이 이렇게 커지지도 않았을거에요. 퍼시는 회사가 망하지 않기 위해서였다고 하지만, 죽고 나서는 그런건 아무 필요가 없잖아요? 악당 론 탤봇이 회사를 차지했을 수는 있지만, 다른 친구와 경찰, 보안관 들의 희생은 없었겠지요. 그녀는 살아도 산게 아닐거에요.
링컨 라임의 말은 죽어도 안 듣는 아멜리아 색스의 무모함, 그녀가 느끼는 질투심과 링컨 라임과의 러브 라인 등도 이야기에는 별로 도움이 된 것 같지 않네요. 지나치게 헐리우드 식이었달까요?

하지만 별점 3점은 충분합니다. 재미 측면에서는 충분히 읽을만 하고, 링컨 라임이라는 캐릭터의 독특한 설정도 잘 써먹고 있으니까요. 영화화되기 좋은 내용인데, 영화 소식이 없는게 좀 신기하군요.

2021/03/26

두산 베어스, 트레이드 단상

 

응원팀 두산 베어스가 라이벌 LG 트윈스와 좌완 함덕주, 우완 채지선 선수를 내주고 내야수 양석환, 좌완 남호 선수를 받는 트레이드를 단행했습니다.
찾아보니 두 팀의 트레이드는 두산이 이재영, 김용의 선수를 LG의 최승환, 이성열 선수와 바꾸었던 2008년이 가장 최근이었습니다. 두산이 트레이드를 자주 했던 팀인데도 불구하고, LG와의 트레이드가 유독 없었던 이유는 라이벌 팀이기 때문일테지요. 어느 한 쪽으로 무게추가 기울면, 다른 팀과의 트레이드 대비 팬들에게 훨씬 큰 원망을 들을 테니까요.
하지만 이런 위험에도 불구하고, 베어스 프런트와 코치진은 오재일 선수가 떠난 1루 자리를 채우기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듯 싶습니다. 동계 훈련과 연습 경기, 시범 경기를 거치며 테스트했던 김민혁, 신성현 선수 모두 신뢰를 주는데 실패한 거지요. 특히 이 중 반드시 자리를 잡아주어야 할 기대주 김민혁 선수는 아무래도 시간이 많이 필요해 보이더군요.

개인적인 견해를 말씀드리자면, 괜찮은 트레이드로 보입니다. 양석환 선수부터 살펴보자면, 출루율이 낮은 공갈포 유형이라죠. 하지만 지금 두산에게 가장 필요한건 뭐다? 바로 장타력입니다! 애초에 출루율까지 높았다면 트레이드 대상이 되지도 않았을거에요. 1루 수비도 좋다니 더할나위 없습니다. 1991년 생이니 앞으로 3~4년은 기량을 유지하는데 문제도 없어 보이고요. LG에서 타 팀으로 갔던 타자들이 대폭발했던 사례와는 다르게, 같은 잠실 구장을 쓰는 만큼 갑작스러운 기량 향상은 기대하기 힘듭니다만, 두산에서 1루수 주전 자리를 확보한 상태에서 타격을 한다면, 보다 나은 모습을 보이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습니다.
그리고 남호 선수는 좌완 파이어볼러로 최고 148Km까지 던질 수 있는, 2020년 고졸 신인인데 트레이드가 되었다니 아주 의외였습니다. 작년에 선발로 좋은 모습을 보였던 기억이 나거든요. 1군에서 던진 이닝은 적지만, 가능성만큼은 충분한 기대주라 생각되네요.

물론 두산에서 내 준 선수들도 모두 좋은 선수들인건 분명합니다. 함덕주 선수는 국가대표로 아시안 게임 금메달을 따기도 했던, 한 때 국내를 대표하던 좌완 셋업맨으로 나이도 20대 후반에 불과하니까요. 채지선 선수 역시 20대의 군필 투수로 150km를 상회하는 빠른 직구와 위력적인 체인지업이 주무기인 떠오르는 젊은 투수입니다. 급작스럽게 떠나보내게 되어 굉장히 아쉬워요.
그러나 함덕주 선수는 140Km를 넘어야 위력이 배가되는데, 작년 기준으로 구속이 영 회복되지 않고 제구도 그닥이라 좋을 때와 좋지 않을 때 편차가 컸습니다. 무엇보다도 코치진이 선발로 투입하지 않기로 결정한게 이번 트레이드의 결정적 요인이 아니었나 싶네요. 채지선 선수도 이닝당 1개 꼴로 삼진을 잡아내기는 했지만 볼넷도 이닝당 0.7개 수준, FIP도 5.22라 필승조로 투입하기에는 좀 애매했었고요.
그래서 코치진은 함덕주 선수가 맡아 줄 좌완 불펜은 남호 선수와 이현승 선수로, 채지선 선수 역할은 돌아온 김강률 선수로 충분히 채울 수 있다고 판단한게 아닐까 싶습니다. 솔직히 남호 선수는 선발로 키워 보았으면 싶네요.

어찌되었건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습니다. 이제 두산 베어스 선수가 된 양석환 선수, 남호 선수 환영합니다! LG로 간 함덕주, 채지선 선수도 멋진 활약 보여줘서 프로야구 역사에 윈윈 트레이드 사례로 오래도록 기억되기를 바랍니다. 두산 전은 살살 해주고....

2021/03/21

순전히 팬심으로 써보는 2021 두산 베어스 예상!

순전히 재미와 감으로 써보는 2015 프로야구 예상!

몇 년 전에 프로야구 관련 글도 많이 썼었는데, 오랫만에 써 봅니다.

사실 작년 시즌, 오랫만에 두산 베어스 시즌 예상을 올리려다가 반쯤 쓰고 관 뒀었습니다. 그런데 작년에 올리지 않은건 천만다행이었어요. 저는 재작년 우승 전력을 온전히 유지한데다가 주력 선수들이 FA로이드 효과로 더 강한 모습을 보일거라 확신해서 통합 우승을 할 거라고 생각했었거든요. 하지만 잘 아시다시피 예상은 완벽하게 빗나갔습니다!
이유는 투수진 붕괴 탓이 컸지요. 선발 중 이용찬 선수는 부진을 거듭하다가 부상 후 수술로 초반 시즌 아웃되었고, 외국인 투수 플렉센도 여러 달 자리를 비웠습니다. 국가대표 우완 정통파로 활약이 기대되었던 이영하 선수는 전년도 17승에서 달랑 5승에 그치며 막판에는 선발진에서도 탈락했고, 유희관 선수는 선발진 합류 이후 최소 이닝을 투구하는 최악의 부진을 보였으니까요. 시즌 전 예상했던 5선발 중 로테이션을 제대로 지켜준 선수는 1선발 알칸타라 선수 뿐이었습니다.
중간 계투진도 마찬가지로, 전년도 마무리 이형범 선수는 부상으로 시즌 아웃, 그리고 기대가 컸던 김강률 선수와 윤명준, 김명신 선수 등도 미미한 활약만 보여주었습니다. 노장 이현승 선수도 좋지 못했고요. 이 선수들 WAR를 다 합쳐도 1이 안될겁니다.
계투로 시즌을 시작해서 선발로 전환했던 최원준 선수가 10승을 거둬주고, 트레이드로 영입했던 홍건희, 이승진 선수의 활약 등으로 중반 이후 투수진은 어느정도 새 판을 짤 수 있었지만 그 전에 까먹었던 경기가 너무 많았어요.

야수진도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내야 여러 포지션을 맡아서 대활약했던 최주환 선수 외에는 FA로이드가 별로 효과가 없었습니다. 허경민, 정수빈 선수는 전년 대비 살짝 웃도는 활약을 보여주었고, 오재일 선수와 김재호 선수는 되려 전년보다도 살짝 못 미치는 모습이었지요.
다행히 한국 시리즈까지 올라가는 저력과 뚝심을 보여주기는 했지만, 거기까지가 한계였습니다. 2위라도 차지해서 플렉센 선수를 조금이라도 아꼈더라면 해 볼 만 했겠지만, 준 플레이오프부터 거치며 우승을 하는건 아무래도 무리였어요.

작년의 아쉬움은 이쯤에서 마치고, 올 시즌을 한 번 예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투수진 :
전년도 시즌 시작 전 5선발진 거의 대부분이 교체되는 시즌입니다. 이 중 가장 큰 변수는 외국인 투수 2명 교체고요.
새 외국인 투수 둘이 합쳐 25승 정도만 해 주고, 국내 선발진이 뒤를 받치면 작년 정도 성적은 기대해볼 만 합니다. 작년 붕괴 덕에 어느정도 후보군이 갖춰진 상황이기도 하죠. 작년 10승 투수 최원준 선수에 5선발로 가능성을 보여주었던 김민규 선수, 선발을 노리는 좌완 함덕주 선수, 잠실 한정 유희관 선수 등 면면은 나쁘지 않습니다. 이영하 선수는 학폭이 걸림돌이고, 이용찬 선수는 계약도 아직 하지 못했지만 작년에도 둘이 합친 WAR은 1.4 정도에 불과했었습니다. 때문에 출장을 못한다 하더라도 큰 변수라고 보기는 힘듭니다. 팀 분위기에 문제만 없다면 말이죠.
계투와 마무리도 박치국, 김강률, 홍건희, 이승진 선수를 중심으로 이형범, 김명신, 윤명준 선수 등이 가세해주면 좌완이 부족하지만 꽤 괜찮아 보여요. 기대가 크지는 않지만 장원준 선수가 부활하거나 권휘나 최세창 선수 등이 가능성을 보여주면 더욱 좋을 테고요.

그러나 선발진에서 압도할만한 에이스가 보이지 않는 문제는 큽니다. 작년 두산 선발진이 줄부상 사태에서 그나마 버틸 수 있었던건 알칸타라 선수의 압도적 피칭 덕분이었지요. 이렇게 외국인 투수들 중 한 명은 반드시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습니다. 국내 선발진도 고만고만한 선수들 중 확실하게 10승을 해 줄 수 있는 선수가 한 명 이상 필요하고요. 계투진은 김강률, 이승진 선수 컨디션이 가장 중요한 변수라 생각됩니다.
이러한 가정이 모두 좋은 쪽으로 풀린다면 10개 구단 중 전체 4~5위, 그렇지 못하면 7~8위 수준의 투수진으로 보이네요.

야수진 :
김재환, 정수빈, 박건우 선수가 지키는 외야와 페르난데스 선수가 주로 맡는 지명, 박세혁 선수를 중심으로 한 포수진은 다른 구단과 비교해 보아도 크게 나쁘지는 않습니다. 백업도 김인태 선수가 네 번째 외야수로 중심을 잡아준다면 꽤 괜찮고요.
그러나 최주환, 오재일 선수가 FA로 이적한 내야는 문제입니다. 허경민 선수의 3루를 제외하면 타 팀 대비 특별히 나아보이는 포지션이 전무해요. 조금 많이 쳐 줘서 유격수 정도?

믈론 팀도 문제 보완을 위해 FA 보상 선수 두 명 모두 내야수를 지명했습니다. 군 제대한 김민혁 선수도 있고요. 허나 공격력, 특히 장타력에서는 차이가 큽니다. 최주환, 오재일 선수가 합쳐서 30개 정도 홈런을 쳤다고 볼 때, 새로 영입한 선수들이 이 숫자를 보완한다는건 아무래도 무리입니다. 오재원 선수와 김재호 선수의 에이징 커브도 두드러 질 테고요.
그나마 김재환, 박건우 선수의 FA로이드 활약, 그리고 개인적으로 강승호 선수에게 기대가 가기는 합니다만 이 정도면 10개 구단 중 중하위권 야수진인 셈입니다.
페르난데스 선수가 공격력을 유지한 채 1루 수비를 소화하고, 외야에서 김인태 선수가 자리를 잡아 주는게 그나마 좋아 보이는데, 시범 경기에서 주전과 포지션이 판가름날 것으로 보입니다.

결론 :
잇단 선수 유출도 끝났습니다. 타 팀에서 탐낼만한 선수는 이제 없어요. 그래도 젊은 투수 몇 명은 나왔는데, 야수진은 암울합니다. 가장 문제는 장타력이고요. 어쩔 수 없이 두점 베어스 모드로, 한 점 짜내기 시도가 많은 시즌이 될 걸로 보입니다. 오랫만에 발야구도 보여줄테고요.
이 경우 과거 KILL 라인처럼 중간 계투진 역할이 중요할텐데, 박치국, 홍건희, 김강률, 이승진 선수에게 이 정도 역할을 바라는건 솔직히 팬이지만 무리로 보이네요... 그래도 제가 예상한 올 시즌 두산 베어스 순위는 5위입니다.
기본 전력이 탄탄하고 투자 중심이 명확하며 작년 대비 유출이 없는 NC와 LG가 1, 2위를 차지할건 확실해 보이지만 다른 팀들은 리빌딩을 기조인 한화를 빼면 전력이 엇비슷하니 혹시 모르잖아요? 언제나 변수가 존재하는게 스포츠고, 여러가지 우주의 기운이 모일 수도 있으니까요.

안되면 아예 기대를 접고, 투타의 중심 곽빈과 김대한 선수 (혹은 다른 난세의 영웅이)가 자리를 잡을 때까지 5년 버티는 것도 방법인데, 그러기에는 이번 FA투자가 아깝긴 하군요.

2021/03/19

조선의 미식가들 - 주영하 : 별점 2.5점

조선의 미식가들 - 6점
주영하 지음/휴머니스트

조선 시대, 음식과 요리에 대해 글을 남긴 문인과 그들의 글 속 주요 요리를 소개해주는 식문화미시사 서적. 당시 음식, 요리에 대해 글을 남긴 사람들을 '미식가'라 칭하고 있는 셈으로, 모두 15인이 소개되고 있는데 상세한 목차는 아래와 같습니다.
“훈기가 뼛속까지 퍼지니” 이색의 소주
“돼지고기를 찍어 먹으니 참으로 맛있었다” 김창업의 감동젓
“관서의 국수가 가장 훌륭하다” 홍석모의 냉면

“맛이 매우 좋아서 두텁떡이나 곶감찰떡마저도 크게 미치지 못하는구나” 허균의 석이병
“어해 중에서 으뜸이다” 김려의 감성돔식해
“가슴이 시원스럽게 뚫리는 듯했다” 이옥의 겨자장

“동치미 국물에 적시고 소금 조금 찍으면 그 맛이 더없이 좋다” 전순의의 동치미
“겨울밤에 모여서 술 마실 때, 아주 좋다” 이시필의 열구자탕
“지난번에 처음 올라온 고추장은 맛이 대단히 좋았다” 영조의 고추장

“지금 엿집에서 사용하는 좋은 방법이다” 김유의 엿
“먹으면서 꽤 오래 이야기를 나누다 파했다” 조극선의 두붓국
“목구멍에 윤낸다고 기뻐하지 말라” 이덕무의 복국

“잠깐 녹두가루 묻혀 만두같이 삶아 쓰나니라” 장계향의 어만두
“즙이 많이 묻어 엉겨서 맛이 자별하니라” 빙허각 이씨의 강정
“갓채는 물을 짤짤 끓여 부으면 맛이 좋으니” 여강 이씨 부인의 갓

주로 선비, 사대부들이 쓴 산문이나 시조, 편지 속에서 음식, 요리를 주제로 쓴 글을 찾아낸 뒤, 음식과 요리에 대해 분석하고 글을 쓴 사람에 대해 소개하는 구성입니다.
<<도문대작>>을 쓴 허균이나 채소에 대한 시조를 남겼다는 목은 이색 등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잘 모르는 조선 선비들이 음식에 대해 쓴 글들을 통해 자연스럽게 당대 식문화를 엿볼 수 있다는게 좋았습니다. 또 귀양가서 쓴 글이 많다는게 이채롭더군요. 크게 두 가지 경우가 있었습니다. 귀양가서 험한 음식을 먹다보니, 예전에 먹었던 맛난게 생각나 글로 남긴 경우도 있지만, 귀양가서 처음 보는 먹거리와 음식에 대해 글을 남긴 경우요. 전자의 경우는 허균, 후자의 경우는 조선 후기 김려의 글이 대표적입니다.

김려가 쓴 <<우해이어보>> 속 글들을 조금 더 살펴보자면, 김려가 현재 마산 지역인 '우해'에서 귀양살이를 할 때 쓴 글로 당시 어떤 생선으로 어떻게 젓갈을 만들었는지 상세하게 알 수 있는 내용입니다. 최고의 젓갈이라는 감성돔을 비롯하여 볼락, 삼치에 붕장어까지 젓갈로 만들었다니 신기합니다. 당시 이런 물고기들이 많이 잡혔으며, 어민들도 판매를 위해 대량으로 젓갈을 담궈 시장에서 팔았다는걸 증명하기도 하고요. 꽤 거대했던 산업으로 짐작되는데, 지금은 그 전통이 많이 사라진듯 하여 무척 아쉽습니다. 함께 소개된 홍게로 만든 포는 꼭 한 번 먹어보고 싶네요.
이렇게 귀양지에서 처음 본 먹거리와 음식은 귀양지 특성 상 해산물이 많다는 것도 재미있었습니다. 귀양지에서 먹는 음식인데 등장하는건 지금은 쉽게 먹기 힘든 고급 재료들이더라고요. 과거 원나라가 고려를 방문했을 때, 원나라에서는 비싸서 먹지도 못하는 전복 등을 일반 백성들이 쉽게 먹는걸 보고 놀랐다는데, 딱 그 심정입니다. 3면이 바다라는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새삼 깨달았습니다.

정조 때 성균관 유생이었던 이옥이 남긴 글로는 당시 고추가 널리 전파되었다는걸 알 수 있었습니다. 이옥이 워낙 고추를 좋아해서 직접 심어 먹었을 뿐 아니라, 고추를 많이 먹으면 풍이 들거나 눈에 좋지 않다는 세간 속설을 반박하는 글까지 썼다니 고추 사랑이 정말 어지간했던것 같습니다.
인조 때 조극선이 남긴 글은 '연포회'라는 행사가 성행했음을 보여줍니다. 이를 통해 연포회가 왜, 어떻게, 어디서 진행되었는지 상세하게 소개해주고 있기도 하고요. 연포회에서 먹었다는 두붓국 레시피도 꽤 자세합니다. 지금 만든다면 굴을 넣고 새우젓으로 간을 한 육수에 연두부를 넣어 먹으면 비슷할거 같아요. 조극선은 닭고기를 써서 만든 것으로 설명되고 있지만요.
음식을 먹을 때에도 선비다움을 유지하라는 '잔소리' 가득한 이덕무의 글은 꼬장꼬장했을 당시 선비들의 마음 속을 보여주는 것 같아 재미있었고요.

잘 몰랐던 당대 요리들에 대해 새롭게 알게된 내용도 많습니다. 영조가 병을 다스리기 위해 자주 먹었다는 '이중탕'에 대한 소개가 특히 흥미로왔습니다. 재료는 인삼과 백출, 건강포, 감초인데 영조가 조선조 최대 수명을 자랑하게 만든 일등 공신이라니 흥미가 가지 않을 수 없겠지요. 저도 이제 중년을 넘어서는 나이이기도 하고요.
찍어 먹으면 맛있다는 감동적즙이 무엇인지도 소개해 줍니다. 감동즙은 젓갈의 일종으로 국물이 젓갈보다 넉넉하여 즙이라고 불렀으며, 김창업은 감동이 '자하젓'과 같다고 했다네요. 새우젓에 돼지고기를 찍어 먹는 현재 풍습과도 비슷한데, 역시 사람 입맛은 다 비슷한 법이겠지요?

현재도 재현 가능할 정도로 레시피 소개도 충실합니다. 목은 이색이 남긴 한시 <<새벽에 한 수를 읊다>> 를 볼까요? “기름에 두부를 튀겨 잘게 썰어서 국을 끓이고, 여기에 파를 넣어서 향기를보태네, 잘된 멥쌀밥은 기름이 자르르 흐르고, 깨끗이 닦은 그릇들은 눈에 환히 빛나누나"로, 두부 요리 레시피가 아예 소개되고 있습니다.

물론 아쉬움과 문제가 없지는 않습니다. 우선 허균과 <<도문대작>>은 이쪽 분야에서는 너무 많이 접한 소재였습니다. 당연히 조선의 미식가를 꼽을 때 허균을 꼽지 않을 수는 없었겠지만 신선함이 떨어질 수 밖에 없지요. 몇 년 전에 읽었던 <<조선의 탐식가>>들과 내용면에서도 많이 겹칩니다.
세조 때 어의 전순의가 편찬한 요리책 <<산가요록>>이라던가, 사대부 가문 부인들이 가문의 레시피를 기록했던 장계향의 <<음식디미방>>, 빙허각 이씨의 <<규합총서>>는 취지와는 조금 거리가 있는 선정이라 생각되고요. 도판도 그냥저냥한 수준입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담고있는 내용은 가치있지만 단점도 있어서 감점합니다.
덧붙이자면 여기 수록된 거의 대부분의 글들은 현재 네이버에서 공짜로 읽을 수 있습니다. 책에 관심이 가시더라도 네이버를 통해 먼저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21/03/15

메그레 - 조르주 심농 / 성귀수 : 별점 3점

매그레 - 6점
조르주 심농 지음, 성귀수 옮김/열린책들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은퇴 후 시골에 내려가 전원생활을 만끽하고 있는 매그레의 집에 처조카이자 파리 경찰청 형사로 일하는 필리프가 찾아와 도움을 청한다. 실수로 자신이 감시하던 경찰청 주변의 카페 주인 페피토 팔레스트리노가 살해당하는 사건에 연루되고 만 것이다. 즉시 파리로 향해 자신에게 너무도 익숙한 공간으로 돌아온 매그레는 일부 옛 동료들의 불편한 시선에도 아랑곳 않고 용의자로 지목된 조카를 구하기 위해 독자적인 조사에 들어간다. <<출판사 제공 책 소개 인용>>

메그레 시리즈 공식적인 마지막 장편. 은퇴한 메그레 반장이 누명을 쓴 조카를 구하기 위해 범죄자 제르맹 카조와 대결한다는 내용.

정밀한 과학 수사가 발달하기 전, 범죄자들이 여러 명 범행을 공모하고 서로의 알리바이를 위증한다면 어떻게 체포할 수 있었을까요? 오래 전 부터 궁금했던 주제인데, 이 작품 속 제르맹 카조가 딱 그러합니다. 그는 A를 죽이기 위해 B를 고용하고, B가 위험해지면 C가 B를 죽이게 하는 식으로 조직을 관리하거든요. 자기 손에 절대 피를 묻히지 않지요. 어쩌다 경찰이 A, B, C를 모두 심문하더라도 괜찮도록, 사전에 확실하게 말을 맞추어서 위증을 하기도 하고요. 그래서 경찰은 카조를 체포할 수 없었습니다. 증거가 없을 때 마음 먹고 위증을 하면, 그걸 밝혀내는건 거의 불가능하다는 거지요.

그래서 메그레는 궁지에 몰립니다. 은퇴한 상태라 체포도 못하고, 고문이나 가혹 행위를 가할 수도 없으니까요. 이 과정에서 풍부한 드라마가 생겨납니다. 특히 딸같은 창부 페르낭드를 대하는 모습은 좀 이색적이더라고요. 좌충우돌하다가 카조와 마지막 정면 승부를 벌여 자백을 끌어내는 1:1 대결은 클라이막스로 충분한 카타르시스를 제공하고요. 이 과정에서 전화기를 들어올려 카조가 자백하는걸 경찰이 들을 수 있도록 조작한 간단한 트릭도 괜찮았습니다. 별 건 아니지만 이 트릭을 숨기기 위한 노력 등으로 긴장감을 끌어내는 솜씨가 아주 일품이었어요.
카조가 반쯤은 자랑스럽게 자백을 하게 만드는, 오스프가 살해되었을거라는 결정적 추리도 아주 깔끔했습니다. 덕분에 다른 메그레 시리즈와는 다르게 추리적으로도 볼 만한 편입니다.

그러나 이야기 전개에 큰 헛점이 존재합니다. 카조가 이렇게 완벽하게 수하와 범행을 조종할 수 있었다면, 구태여 오스프라는 목격자를 내세워서 현직 경찰인 메그레의 조카를 범인으로 몰 필요는 없었습니다. 이런 쓰잘데 없는 조작으로, 메그레가 직접 나서서 사건에 뛰어들게 했을 뿐 아니라, 컨트롤이 힘든 약쟁이 오스프를 처리해야 하는 부담마저 짊어지게 되었으니까요. 이들의 위증이 너무 뻔뻔했던 탓에 검사까지 격분하여 메그레 수사에 전면 협조한다는 묘사가 등장하기는 하지만, 애초에 사건을 조작하지 않았다면 경찰에 오스프와 일당들이 체포되지도 않았을겁니다.
또 메그레가 짜증내는 묘사가 많은 것도 부담스러웠습니다. 나이든 꼰대 느낌이 너무 강해서 캐릭터에게 매력을 느낄 여지가 별로 없더군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3점입니다. 추리적으로도 볼만하고, 트릭도 나름 사용된 점은 마음에 듭니다. 큰 헛점은 감점 요소이지만, 이 정도면 제법 무난한, 대미를 장식하기 충분한 작품이었다 생각되네요.

2021/03/13

범죄소설 - 김용언 : 별점 3점

 

범죄소설 - 6점
김용언 지음/강

얼마 전 읽었던 <<하드보일드 센티멘털리티>>와 유사한, 추리 및 범죄, 하드보일드 장르 문학에 대해 분석한 문학 이론서.
<<하드보일드 센티멘털리티>>는 미국 역사 흐름에 따른 사람들의 가치관 변화가 장르 문학 스타일 변경에 큰 역할을 하였다는데, 이 책도 동일한 주장을 담고 있습니다. 자본주의의 확대, 남성들의 불안 등이 주요 동기였다는 주장은 별다를게 없거든요. 특히 하드보일드 문학 장르에 대한 분석은 거의 같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에요. 소개되는 작품과 작가들에 대한 이야기도 대동소이하고요.

그렇지만 <<하드보일드 센티멘털리티>>에서는 순수하게 하드보일드 소설만 분석하고 있으며, 시대가 변할 수록 '감상주의'가 강해졌다고 주장하고 있는 반면, 이 책은 고전 본격물과 이후 하드보일드 범죄 소설을 나누어 분석하고 있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이 두 장르를 '엔트로피'라는 개념을 빗대어 설명하고 있는게 인상적이었어요.
이 책에 따르면 고전 본격물은 외부적 자극이나 변화의 계기를 일절 고려하지 않은, 모든 원인과 결과가 세심하게 고려되고 창안되고 배치된 '닫힌 계'입니다. 추리 소설은 하나의 기계와 같고, 독서는 경악과 호기심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미스터리가 하나씩 풀릴 때마다 호기심의 '양'은 점점 줄어들고요. 탐정이 멕스웰의 도깨비 역할을 해서, 무질서를 통제하고 질서를 찾게 만드는 것이지요. 마침내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사물의 일상적 질서가 회복되는 평화로운 결말로 끝납니다. 즉. 호기심이라는 에너지가 최대에서 최소로 옮겨가고, 엔트로피가 최대인 '평형 상태'가 되는 열역학 엔트로피 이론과 동일한겁니다. 이렇게 마지막에 '열 죽음' 상태에 놓이기 때문에, 한 번 읽고 결말을 알게되면 그 책을 다시 읽게 되는 일은 좀처럼 생기지 않게 되는 것이고요.
하지만 20세기 하드보일드는 다릅니다. 셜록 홈즈처럼 완벽한 멕스웰의 도깨비 역할이 불가능하다는걸 통감했기 때문입니다. 하드보일드 탐정들이 할 수 있는건 사회의 부패와 범죄가 들끓는 현상을 낮추고, 일시적이나마 숨겨진 질서의 패턴을 찾아내려 애쓰는 정도에 불과합니다. 완벽한 무질서의 해결을 만들어 낼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들의 존재가 더 큰 무질서를 낳기도 하니까요. 엔트로피 이론에 따라 결국 어느정도 안정화되기는 하지만, 그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은 험난하고요.
이 논리에 따르면 1980년대 일본에서 신본격 소설이 등장하여 유행한건, 일본이 버블 경제로 최고 호황을 맞았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가능합니다. 19세기 산업 혁명과 마찬가지로 경제적 안정이 뒷받침 되면서 사람들이 '닫힌 계', 즉 범죄가 해결되고 안정적인 질서로 끝나는 체계를 추구했기 때문이라는 식으로요. 하드보일드 범죄 소설처럼 개인이 발버둥쳐서 좌절하거나 약간의 희망과 소득만 얻을 뿐, 부조리한 세계는 그냥 움직일 뿐이라는 어두운 이야기는 먹히지 않게 된 거지요. 반대로 버블이 붕괴한 1990년대 이후, 기리노 나쓰오 등에 의해 처절한 범죄 소설이 등장한건 당연한 수순이고요.

이렇게 재미있는 발상은 돋보이는데, 문제는 책이 쑥쑥 잘 읽히지는 못한다는 점입니다. 정말 어렵게 쓰여져 있거든요. 이해가 되지 않는건 아니지만, 읽기 편한 글은 아니었어요.
한국 작가가 쓴 글인데도 불구하고 분석 대상이 영미 장르 문학이라는 것도 아쉬웠던 점입니다.

그래도 범죄 소설, 추리 소설 애호가라면 한 번 읽어볼만한 책이라 생각되네요. 제 별점은 3점입니다.

2021/03/12

철도, 역사를 바꾸다 - 빌 로스 / 이지민 : 별점 2점

철도, 역사를 바꾸다 - 4점
빌 로스 지음, 이지민 옮김/예경

<<책장을 바꾸다>>에서 추천했던 책입니다. 제목 그대로 인류 역사에 관여한 주요한 철도를 주로 소개하고 있는 미시사 서적입니다.

언뜻 보기에 책의 완성도는 높습니다. 도판도 좋아 보였고요.
실제로 담고 있는 내용도 나쁘지 않아요. 교통 수단으로서의 활용을 넘어서서 철도의 보급을 통해 일반인들이 일상에서 벗어난 '여행'을 즐기게 되는 등 사회와 관련 산업이 변화했다는걸 실제 사례를 통해 잘 보여주는 레스터-러프러버 철도 이야기나 인도 철도의 역사를 다루며 영국의 식민지 지배의 흥망성쇠까지 함께 알려주는 대인도 반도 철도 이야기, 크림 전쟁을 승리로 이끌며 군수 산업으로서의 가능성을 한껏 보여준 그레이트 크리미안 철도 이야기, 초기 미국을 양분하지 않도록 도와준 센트럴퍼시픽 철도 이야기 등 책의 부제인 '인류 문화의 흐름을 바꾼 50가지 철도 이야기'에 잘 들어맞는 이야기들을 소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차와 관련된 문학 작품과 그림, 컨텐츠 들을 알려주는 파리-르아브르 철도 이야기나 도시 교통망을 재정립한 지하철 탄생을 다룬 메트로폴리탄 철도 이야기, 추리 소설 애호가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오리엔트 특급 열차>>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소개한 시카고-세인트루이스 철도 이야기처럼 관련된 여러가지 재미있는 정보도 많고요. 디젤 엔진을 발명했던 독일의 루돌프 디젤 박사가 런던행 열차에서 홀연히 사라진 뒤 바다에서 시신이 인양되었다는 이야기는 정말이지 흥미진진했습니다!
센트럴퍼시픽 철도를 놓을 때 중국인 노동자들의 엄청난 희생이 있었고, 이 철도는 미국 원주민 거주지를 파괴했다는 사실에 대한 냉정한 서술, 그리고 중국 징장 철도와 일본 도카이도 철도와 같이 동양의 유명 철도도 망라하는 등 공평한 시각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이 정도면 철덕이 아니더라도 당연히 좋아할만한 책일겁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같은 단락에서 동일한 지명도 다르게 쓴다던가, 이야기에서 주요하게 언급하고 있는 지명은 도판으로 수록된 지도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던가, 미시사 서적으로는 중요할 연도 표기에 오류가 있다던가 하는 등의 문제가 많다는 치명적인 문제가 존재합니다. 전체적인 번역 자체도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고요. 쉽게 읽힌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번역에 조금만 더 신경을 써 주었더라면 지금보다는 훨씬 좋았을텐데 여러모로 아쉽네요.

2021/03/07

ON 온 - 나이토 료 / 현정수 : 별점 1.5점

 

ON 온 - 4점
나이토 료 지음, 현정수 옮김/에이치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갓 형사과에 입사하여 서류 정리 업무를 맡은 신참 형사 도도 히나코. 그녀는 미해결 사건파일들을 암기하다가 자살로 보이는 어느 택배 배달원의 변사 사건에 처음으로 투입된다. 그런데 그 자살 피해자는 히나코가 암기 중이었던 미해결 성폭행 사건의 유력 용의자였다. 자신의 음부에 병을 박아 넣고 죽은 참혹한 시신은 당연히 살인으로 의심할 만했다.

하지만 자살이라는 완벽한 증거가 곧 발견되었다. 피해자가 자신이 직접 자살하는 장면을 촬영한 스마트폰이 발견된 것이다. 게다가 경찰서에 보관된 스마트폰 속 자살 동영상이 어느 날 인터넷 동영상 투고 사이트에 공개되고, 연이어 유사한 자살 사건들이 일어나기 시작하는데……. <<출판사 제공 책 소개 인용>>


일본산 범죄 스릴러물. 잔혹한 범죄를 저질렀던 범죄자들이 연쇄 자살하는 사건을 수사하는 이야기입니다. 당연히 어떻게 범죄자들이 자살하게 만들었는지를 풀어내는게 핵심이고요.
그런데 검시를 통해 자살한 범죄자들 뇌에 종양이 있다는게 발견됩니다. 당연히 자살은 뇌 종양이 원인이고요. 정상적인 검시 과정에서 밝혀진거라 추리의 여지는 별로 없습니다. 때문에 추리의 여지를 남기고, 독자들의 흥미를 끌기 위해서는 "누가 어떻게 피해자들에게 뇌종양을 만들었는지?"를 밝혀내는 후더닛+하우더닛 이야기로 흘러가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이런 이야기 구조를 만드는데 실패했습니다. 우선 후더닛 측면으로 보자면, 유력한 용의지 나카시마 다모쓰가 초반에 등장해서 범인이라는 인상을 팍팍 심어주기 때문에 점수를 줄 방법이 없어요. 의외성이 전무하니까요. 도도가 항상 가지고 다니던 양념통 지문과 자살 현장의 콜라병 지문이 일치한다는게 밝혀지는 클라이막스는 나쁘지는 않아요. 양념통을 나카시마가 만졌던 적이 있었고, 이를 통해 나카시마가 피해자 미야하라 아키오를 마지막에 만난 인물이라게 입증된 셈이거든요. 하지만 이미 나카시마가 근무하는 병원이 피해자들의 접점이라는게 드러난 이상, 곧 밝혀질 일이었어요. 뭔가 대단한, 결정적인 단서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나마 이 정도는 봐줄만 한데, 하우더닛 측면에서는 빵점 짜리입니다. 상식적으로 뇌종양을 만들려면 외과적인 수술이 필요했을겁니다. 이전에 읽었던 <<숙명>>에서 처럼요. 그러나 감옥에 수감된 사형수마저 종양이 생긴걸 보면, 다른 방법을 썼을겁니다. 그런데 그 방법이 무엇인지는 전혀 셜명되지 않습니다! 나카시마가 끼고 있던 큰 반지가 자살을 시작하게 만드는 하이테크 장치였다는 설정도 황당하기는 마찬가지에요. 이래서야 초능력자가 염력으로 사람을 죽였다는, <<스캐너스>>와 별로 다를게 없지요. SF판타지스러운 이야기에 불과합니다. 중간에 이런저런 가능성을 타진하며 불가능하다고 말했던 조건반사, 최면술 조작이 차라리 나아 보일 정도입니다.

캐릭터들도 진부하거나, 묘사나 설명이 지나칩니다. 주인공 도도 히나코는 착하고 순진하다는 점에서, 이런 범죄 스릴러 속 스테레오 타입이었던 강단있고 강한 여형사가 아니라는 차별화 포인트는 명확합니다. 그러나 흔하디흔한 일본 컨텐츠 속 착하고 열심히 사는 여주인공 그 자체라서 스테레오 타입인건 마찬가지죠. 게다가 그녀가 절대적인 암기력을 가지고 있다는 설정은 왜 등장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야기에서 별로 효과적으로 사용되지 않거든요. 히토미가 이탈리안 레스토랑의 잘생긴 점원에 대해 이야기한 걸 떠올린게 수사의 결정적인 단서가 되기는 합니다. 허나 이 정도는 절대 암기력까지는 필요없는 내용이었습니다. 구태여 이런 초능력같은 설정을 붙일 이유는 없었습니다. 살인 방법과 더불어 작품의 현실성을 급락시키는 또 다른 원인만 제공할 뿐이었어요. <<탐정학원 Q>>스러운, 만화같은 이야기였달까요.
연쇄살인마 오토모 이야기는 진부하기 짝이 없을 뿐 아니라 전개 상 불필요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습니다. 나카시마가 뇌를 조종하여 자살하게 만드는 장면을 히나코 앞에서 보여준다는, 극적인 클라이막스를 위해 억지로 등장시킨거에 불과해요. 살해당한 히토미가 언급했던 이탈리안 레스토랑의 잘생긴 직원이 오토모라는게 밝혀지면, 체포는 시간문제였을테니 추리할 여지도 없고요.
그 외 범죄자들의 자살과 그들의 범행에 대한 상세한 묘사도 거북했습니다. 지나치게 잔인한 탓이지요. 범죄자들이 천벌을 받게 만드는, 일종의 공감을 불러 일으키기는 합니다만 좀 지나쳤어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1.5점입니다. 천인공노할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들에게 천벌이 내리기를 바라는 독자의 소원을 충족시켜주며, 천벌을 위해 뇌를 조작해서 자살하게 만든다는 아이디어는 꽤 흥미로왔습니다. 그러나 그걸 이야기로 잘 풀어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설득력도 낮고요. 싸구려 헐리우드 스릴러 수준에 불과해요. 시리즈라고 하는데, 후속권을 읽을 일은 없겠습니다.

2021/03/06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 - 권일용, 고나무 : 별점 3점을 읽는 자들 - 권일용, 고나무 : 별점 3점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 - 6점
권일용.고나무 지음/알마

권일용은 국내 최초의 프로파일러입니다. 경찰 학교를 졸업하고 일선 형사로 근무하다가 발탁되었죠. 감식 업무에서 재능을 발휘했던걸 눈여겨 보았던 서울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계장 윤외출의 덕이었습니다. 그 뒤 여러 수사에서 능력을 발휘하여 프로파일러로서의 입지를 굳힌 인물입니다. 
이 책은 권일용이 프로파일러로서 수사에 참여했던 6가지 사건을 중심으로, 국내 수사 기관에서 프로파일링이 어떻게 시작되어 성장했는지를 설명해주는 논픽션입니다.

첫 번째 사건은 2001년 조현길이 저질렀던 여아 살인 사건입니다. 가장 중요한 단서는 피해 여아 사체를 냉동실에 보관했던 탓에 사체 등 부분에서 발견된 일정한 간격의 가늘고 긴 눌린 흔적을 가지고, 해당 냉장고 모델을 찾아낸 것이었습니다. 해당 냉장고는 업소용 중대형이었고, 이를 비롯한 여러가지 직접 확인한 단서를 토대로 권일용은 한국 범죄 사건 수사 역사상 처음으로 프로파일링 보고서를 제출하게 됩니다. 그의 보고서가 수사에 기여한 바가 있고, 보고서 속 범인상이 진범 조현길과 대체로 일치했던 덕분에 이후 국내 범죄 수사에서도 프로파일링이 활용되게 되었습니다. 국내 프로파일링 역사상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정작 뒤이어 권일용이 투입되었던 2003년 유영철 사건에서는연쇄 살인을 알아채지 못하는 실패를 겪게 됩니다. 매스미디어를 통해 유영철이 경찰 수사 방향을 인지했기 때문입니다. 유영철은 범행 수법을 바꾸었고, 권일용은 이전 사건과 이후 사건을 연결짓는데 실패했죠. 그러나 정통 수사기법의 한계도 잘 설명되고 있습니다. 수사팀은 대낮에 범행을 저지르고 피가 묻은 상태에서 도망을 갔는데도 목격자가 없다는 점에 착안하여 차량을 이용한 범죄일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했습니다. 그리고 차량 수색에 집중했죠. 하지만 권일용은 시대가 바뀌어서 사람들이 다른 사람에게 집중하지 않는걸 깨닫고, 차에 집착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고 이는 들어맞았습니다. 최초 노인 살인 사건 현장 근처에 교회가 있었던게 나름 의미가 있었다는 것도 권일용의 생각대로였고요. 유영철은 교회가 옆에 있지만 바로 앞에 사는 이 사람도 무참히 죽는다’라는 걸 세상에 알리고 싶었다고 하지요. 물론 사체 매장 현장에 표식을 한건 완전히 헛다리를 짚기는 했습니다. 권일용은 범인이 자신의 살인 행위를 반추하고 되돌아볼 것이라는 낭만적인 추정을 했는데, 유영철은 그냥 '사체를 묻은 데를 또 파면 귀찮아서' 표시를 한 것 뿐이었으니까요.
이렇게 단순한 실패보다는 나름 성과가 있었던 유영철 사건이 있었던 덕분에 권일용은 더욱 성장했고, 경찰 내에도 프로파일링 팀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 덕분에 뒤이은 정남규 사건에서는 큰 역할을 하게 됩니다. 단순 강도 상해범으로 체포되었던 정남규가 서울 서남부 연쇄 살인사건의 범인임이 드러나게 되는 결정적 계기가 된 자백을 권일용이 이끌어내게 되거든요.

2009년 강호순 사건에서도 권일용 팀의 분석이 그대로 들어맞았습니다. 범인은 '호의동승'으로 피해자들을 유인했고, 이를 위해 고급차를 탔을 것이다, 그는 사람들에게 호감을 주는 인물일거라는 분석이었는데 실제로 강호순은 에쿠스를 탔으며, 범행 당시 깔끔한 양복을 입기도 했고, 차 대쉬보드 위에 개와 함께 있는 사진을 장식해 놓는 등 치밀하게 본인을 위장했다고 밝혀졌으니까요. 주변 사람들 평가도 굉장히 좋았다고 하지요

강호순 사건 중간에 맡았던 2007년 제주에서 발생했던 아동 성범죄자 성유철 사건은, 프로파일링의 활용보다는 아동 성범죄에 대한 특징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주고 있으며, 마찬가지로 2007년에 벌어졌던 고정민 (가명) 양 실종 사건에서는 사람의 자백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잘 알 수 있었습니다. 실제 범행을 저지르지 않은 사람이 거짓 자백에 이르는 과정과 거짓 자백 후 범행의 줄거리를 지어내는 모습 모두 교과서적으로 드러난 사건이더라고요. 흔히 이야기하는, 성폭행 피해자들이 확 물어버리고 소리를 지르는걸 왜 못하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실체를 제대로 설명하기는 힘든 '공포심' 때문이라는데 굉장히 와 닿았어요.

또 끔찍한 연쇄 살인 사건을 통해 1960~1970년대에는 살인이 이해할 수 있는 범죄였는데, 왜 그 양상이 달라졌는지에 대한 분석도 상세합니다. 자본주의로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사회가 일부 구성원들을 스트레스로 압착할 때 일부 반사회적인 범죄자들이 복수심으로 무차별 범죄를 저지르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살인자의 반사회성은 후천적 영향일 가능성이 높고요. 서구 사회에서는 반사회성에 유전적 요인이 있다고 여기지만, 단일 민족인 한국에서 유전적 이유로 누구는 괴물이 된다는 건 가능성이 낮다는 이유인데 그럴듯합니다. 복수심, 사회에 대한 분노로 가득차 있었던 유영철, 정남규와는 다르게 진짜 서구적인 쾌락 연쇄 살인을 저지른 강호순과의 차이도 잘 드러나고요.
하지만 저는, 과거에도 잔혹 범죄는 존재했던 만큼 연쇄 살인이 양극화로 더 증가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경찰 수사력의 발달로 과거 사건화되지 않았던 사건들도 밝혀지고, 이게 과거보다 발달한 매스컴을 통해 널리 알려진 탓에 증가한걸로 보이는게 아닌가 싶거든요. 이런 부분에 있어 깊게 연구된 자료가 있으면 좋겠네요.

그 외 단순히 당시 벌어졌던 범죄와 그 수사, 해결 과정 뿐 아니라 수사에 참여했던 프로파일러들의 생각과 행동도 자세하게 묘사되고 있습니다. 프로파일러가 무슨 마법사나 천재가 아니라, 수사를 돕는 역할이라는게 잘 드러나지요. 수사 현장에서 쓰이는 전문적인 은어 등 디테일도 좋습니다.
그리고 피해자 가족들의 가슴 아픈 현실도 충분히 설명되고 있는데, 이를 통해 사형 제도에 대해 다시 한 번 곱씹어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었습니다. 잠깐 스쳐지나가듯 등장하기는 하지만, 권일용도 사형 집행에 찬성하는 입장이더군요.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교도소에서 교정, 교화가 가능하다고 쳐도, 사형을 선고받을 정도의 중죄를 저지른 범인을 교정, 교화시켜 사회에 복귀시킬 이유는 없습니다.

이렇게 여러모로 읽어 볼 만한 논픽션인건 분명한데, 건조한 르포르타쥬 문체가 아니라 권일용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적인 구성과 문체로 쓰여진건 영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호불호가 갈릴 것 같은데, 저는 확실히 불호 쪽이에요. 분명 실화인데 뭔가 각색되어서 왜곡되었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한국 프로파일링의 역사를 담기 위한 취지 탓이었겠지만, 익히 알려진 사건에서 누구나 다 아는 정보를 빼곡하게 채워 놓은 부분들도 조금은 아쉬웠고요.
그래서 제 별점은 3점입니다. 한국 범죄사, 프로파일링 역사에 대해 알고싶으시다면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홍차 애호가의 보물상자 - 제임스 노우드 프랫 / 문기영 : 별점 3점

 

홍차 애호가의 보물상자 - 6점
제임스 노우드 프랫 지음, 문기영 옮김/글항아리

서양의 많은  애호가에게 바이블처럼 읽힌다는 차에 대한 전문서이자 문화사 서적.

1부는 차의 기원에서 시작하여 차가 세계로 퍼져나가게 된 역사, 그리고 홍차 인기가 주춤했던 뒤 다시 인기를 끌게 된 현재 시점까지를 상세하게 서술하여 알려주고 있습니다.
특징이라면 '기원' 부터 상세하게 통사적으로 서술해서 알려준다는 점이지요. 특히 미국인 저자에게는 불리했을 중국차 역사가 비교적 정확하다는 데에서 많이 공부했다는걸 알 수 있었어요. 중국 신농 황제가 차에 관심을 보였고, 기원전 1066년 윈난 성에서 생산된 차가 황제에게 공물로 바쳐졌다는 등 중국 고대사에서 시작하여 당나라 육우의 <<다경>>이후 송나라 채양의 <<다록>>, 명나라에서 이전과 다른 녹차 가공법이 등장했다는 역사 소개가 상세하며, 심지어 <<고문진보>> 속 차에 대한 명시 '칠완다가'까지 번역하여 소개할 정도입니다.
또 이 과정에서 차 전래가 불교 전파와 관련이 있다는 여러가지 설들과 그에 대한 해석은 재미있었습니다. 첫번째 설은 승려 감로가 1세기 경 인도 순례를 마치고 돌아올 때 차를 들여왔다는 설로, 그가 심었다는 전설의 차나무 일곱 그루는 아직도 쓰촨성 멍딘 산에 남아 있다네요. 두번째 설은 달마 선사 눈꺼풀에서 차나무가 자라났다는 설인데, 달마 선사가 인도 출신이니 이 역시 차나무 인도 기원설을 의미하지요. 야생 차나무의 고향은 윈난성과, 인간이 차나무를 처음 재배한 곳으로 알려진 쓰촨 성 모두 인도에서 중국으로 가는 길목이라는 점, 불교에서 명상과 술을 대신하기 위한 이유로 차를 이용했고, 그래서 승려들이 차나무 재배와 차 가공법을 발전시켰다는 점에서 꽤나 타당한 해석으로 보입니다. 불교가 융성했던 당나라에서 육우 선사가 <<다경>>을 쓴 배경 역시 마찬가지 이유일테고요. '차 茶'라는 문자가 등장한 시기와 그 발음에 대해서도 잘 소개되고 있습니다.
일본 다도 문화의 역사, 그리고 일본 다도를 대표하는 센노 리큐에 대한 설명도 상세합니다. 주로 오카쿠라 가쿠조의 <<차에 관한 책>>에서 인용한 내용이 많은데, 놀랍게도 국내에 e-book으로 번역되어 출간되어 있네요. 이 책에 일본이 가루차를 거품내는 송나라 방식을 쓰는건, 자기들이 몽골 침략을 물리쳐서 차 전통을 계승할 수 있었던 거라는 해석이 나오는 모양인데, 한 번 읽어봐야겠습니다. 센노 리큐 이후 센차 방식을 발전시킨 바이사오에 대한 설명도 빼 놓지 않고 있고요.

다음은 중국차가 유럽에 전해지는 과정에 대한 설명입니다. 1610년 네덜란드가 최초로 차를 들여오면서 유럽에서 차가 확산되게 됩니다. 이후 17세기 프랑스, 네덜란드, 영국이 전쟁을 벌일 때 프랑스와 네덜란드 교역 단절로 프랑스는 차 공급이 끊어졌고, 반대로 영국과 네덜란드에서는 커피 수입이 단절된게 국가적 선호가 갈리게 된 이유라고 하네요.
그리고 영국에서 찰스 2세와 왕비에서부터 시작된 엄청난 차 유행과 이 때문에 벌어진 영국 동인도 회사, 존 컴퍼니와 중국 무역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원래 중국차를 성공적으로 수입해서 유럽에 유통시킨건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였는데, 네덜란드는 중국 차의 미래를 과소평가해서 인도네시아 자와섬을 통한 중계 무역만 하다가 수요 폭증 때 중국과 직거래하던 영국 동인도 회사에게 완전히 밀려나게 되었고요.
그리고 보스턴 티 파티, 제국주의의 선봉장이었던 동인도 회사의 추악한 행위들과 아편 전쟁, 영국이 패권을 쥔 뒤 민싱 레인에서의 차 거래와 차 운반선들이 레이스를 펼치던 영광의 시대, 인도 아삼 지방에서의 차 재배 성공, 토머스 립턴과 실론 티의 성공 등이 이어지게 됩니다.
하지만 2차 대전 이후, 기존 제국주의 사고방식과 다른 전통들이 모두 파괴된 뒤 그 자리를 값싼 '티백'이 차지하였고, 회사마다 가격 경쟁이 시작되어 고급 차들이 모두 시장에서 사라져버린 시대가 도래하게 됩니다. 이 시대는 1980년대까지 계속되었고요. 다행히 지금 고급 차 시장이 기지개를 펴고 있다고 언급하며 차 역사 설명은 마무리됩니다.
그 외에는 차와 관련된 여러 유명인들, 그리고 '본차이나'로 대표되는 다기 제조에 대한 역사 등을 함께 소개해주고 있는데, 모두 재미있었어요.

반면 2부의 나라별 주요 차 소개는 특별히 와 닿는 내용은 없었습니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도 많았고, 인터넷 등에서 확인 가능한 정보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입니다. 강희제가 '벽라춘'이라고 이름붙인 차 이름의 유래는 찻잎이 우러나는 동안 나선 모양으로 회전하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저자 개인적인 견해는 괜찮았지만요. 그 밖에는 프랑스가 1825년 베트남에 최초의 차나무를 심었다고 자랑하지만, 옛날부터 차나무는 베트남에 야생으로 자라고 있었으며, 차는 이미 1,000년 전 부터 인도차이나 문화 일부였다며 일침을 가하는 것처럼 제국주의를 비판하는 시각 정도만이 눈에 뜨였습니다. 프랑스가 뭘 새롭게 한 건 없고, 오히려 창피해 해야 마땅하다는 이야기로, 비교적 공정한 견해라 할 수 있겠죠.
그래도 2부 마지막에 실린 블렌딩과 차 브랜드 설명은 그런대로 유용했습니다 . 브랜드별 대표 차 명칭, 어떻게 블렌드되어 있고 어떤 맛인지를 대략적이나마 알려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얼 그레이의 기원과 레시피에 대한 자세한 설명도 인상적이었고요.
하지만 3부는 50페이지도 안되는 짤막한 분량인데다가 차를 어떻게 마시는게 좋은지 차 마시는 방법이 전부입니다. 도판과 함께 상세하게 소개해주는 다른 책들에 비해 더 나은 점을 찾기는 어렵더군요. 도판이 없다면 최소한 유튜브 동영상 링크라도 포함해 주는게 좋지 않았을까 싶네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3점. 2부와 3부는 그닥이었지만, 1부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차에 대해 관심이 있으시다면 최소한 1부만이라도 꼭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