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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27

궁극의 문구 - 다카바타케 마사유키 / 김보화 : 별점 3점

궁극의 문구 - 6점
다카바타케 마사유키 지음, 김보화 옮김/벤치워머스

최근 문구 관련 책을 꽤 자주 읽네요. 이 책은 공대 출신 디자이너로 1999년 <> 을 통해 공식 '문구왕' 에 등극한 이후 문구왕으로 활약을 이어가고 있는 저자의 문구 리뷰집입니다. 저자의 화려한 프로필은 블로그를 참고하세요.

책은 130여 페이지 정도의 얇은 분량인데 문구왕이 직접 써 본 것 중 정말로 괜찮은 문구 68종에 대해 장점과 가격 등 상세 정보를 소개하고 있어서 정보로서의 가치는 아주 높습니다. (이후 8종의 추가 문구까지 더하면 76종!) 직접 그린 일러스트도 꼼꼼해서 볼 만 하고요.
또 짤막한 리뷰지만 곳곳에서 문구왕 다운 디테일이 돋보이는 점도 아주 마음에 들었습니다. 톰보우의 유성 다색 볼펜 리포터 4 소개에서 '4색 노크의 모양이 모두 다르다'는 아이디어를 콕 짚어 이야기하는 부분이 좋은 예입니다. 이렇게 색별로 다른 형태를 유니버셜 디자인으로 구현하는건 앞으로 정말 중요한 일이 될 수도 있겠다 싶었거든요.
몇몇 칼럼, 그리고 문구왕의 노하우를 공유하는 부분도 디테일 측면에서는 많이 공감이 갔고요.

당연히 몇몇 제품은 리뷰 만으로도 소장하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인데, 그 중에서도 인상적이었던 제품은 아래와 같습니다.
우선은 펜텔 멀티 8. 8종의 심을 가진 색연필 샤프펜슬. 3,800엔 (국내 판매가 약 34,000원)이라는 가격은 좀 비싸지만 딸아이 필통에 넣어주고 싶네요.
펜텔 사인펜은 이전에 별 감상없이 써 본 적은 있습니다. 별 감흥없이 사용했었는데 문구왕 왈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여 지금까지 왕좌를 지키고 있는, 이 바닥의 컵누들, 포카리스웨트, 오로나민C라고 하는군요. 1963년에 발표된 세계 최초의 휴대용 수성펜으로 지금까지 디자인을 유지하고 발매되는 원조라는 점에서 그러하다는데 작은 의미 부여만으로도 다시 구입하고 싶어집니다.
PIROT 캡리스블랙은 펜촉이 클립 쪽에 달려 주머니에 꽂고 다녀도 잉크가 흐르지 않는다는 아이디어가 돋보입니다. 20만원에 육박하는 가격, 단종되었다는 현실의 벽은 높지만 실물을 볼 기회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 외에 몰스킨 노트, TOMBOW MONO 지우개, A-Type 커터칼, D형 디자인 나이프, 3M 스프레이 풀 시리즈, 3M 테이프들, 국내에서는 '날크립'으로 알려진 OHTO 슈퍼 그립 등 친숙한 문구 소개도 아주 반가왔어요.

그러나 몇몇 리뷰는 지나칠 정도로 '오덕' 스럽다는 점은 단점입니다. 크게 "쓰다", "지우다", "자르다", "붙이다", "엮다", "재다", "정리하다", "그 외" 로 분류된 내용 중 "쓰다"와 "지우다" 외 다른 분류 속 제품 들은 일반 가정에서 일반인이 쓰기에는 좀 과하다 싶은 제품들이 제법 되거든요. 테이프 커터, 게이지 펀치, 날짜 스탬프 등이 대표적입니다.
또 단점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국내에서는 구하기 힘든 제품이 제법 많은 점도 아쉬웠어요. 설명만 읽어도 몇몇 제품은 소장 의욕이 불타오르는데 구할 방법이 없네요. 문구왕의 쇼핑몰에서 국내 배송도 지원해 주었으면 하는데... 힘들겠죠?

하지만 단점 보다는 재미, 가치가 워낙 뛰어나기에 별점은 3점입니다. 문구를 좋아하신다면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그나저나, 이렇게 특정 분야의 전문가가 쓴 리뷰집은 대체로 한 번 읽어볼 만 한 것 같습니다. 전문가의 노하우를 저렴하게 훔쳐오는 느낌이 드니까요. 물론 원하는 정보는 인터넷 검색을 통해, 또는 인터넷 커뮤니티나 블로그, SNS를 통해 쉽게 얻을 수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어떤 정보가 진짜인지 판단하기 어려울 정도로 정보 과잉이 되어버린지 오래죠. 오히려 지금은 이렇게 진짜배기 전문가가 공인한 정보의 가치가 더욱 높지 않을까 싶네요.

오로지 일본의 맛 - 마이클 부스 / 강혜정 : 별점 2점

오로지 일본의 맛 - 4점
마이클 부스 지음, 강혜정 옮김/글항아리

영국인 요리사 출신 작가가 쓰지 시즈오의 <<일본 요리 : 단순함의 예술>>에 깊이 매료되어 현재의 일본 요리를 탐구하고자 3개월 동안 아내, 두 아들과 함께 도쿄를 비롯한 일본 이곳저곳을 다니며 여러가지 다양한 이국적인 문화를 맛보고 즐긴다는 여행 에세이집.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무척 실망스러웠습니다. 여행 목적은 그럴듯했지만 내용은 목적에 딱히 부합하지 않는, 그냥 일본 이곳저곳 여행기와 식도락이 결합된 뻔한 여행기에 불과하거든요.
다른 여행기들과 마찬가지로 색다른 곳에서 느끼고 경험한 이색적인 체험을 써내려가고 있는데, 문제는 서양인 시각에서만 신기하고 재미있을 만한 체험이라는 점입니다. 일본에 이웃한 한국인 시각에서 봤을 때 새롭게 느껴지는 것은 하나도 없었어요.

게다가 와패니즈라 불려도 무방할 정도로 저자가 지나치게 일본을 맹신하는 묘사도 별로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일본 요리 장인이 만든 튀김을 맛본 후, 엄청난 기술과 맛에 감탄하는 정도는 괜찮아요. 일본 튀김은 저도 좋아하니까요.
그러나 아지노모토사를 방문기를 통해 MSG의 무해함을 강조하며 합성 조미료를 전도하고, 쓰키지 시장 방문 경험의 마지막을 '장기를 팔아서라도 꼭 가봐야 하는 곳' 이라고 마무리 하며, 생 와사비야 말로 슈퍼 푸드이며 그 맛에 중독되었다고 한다고 묘사하는 식으로 직접 찾아서 경험하고 맛본 모든 요리와 재료에 대해 끝없는 칭찬과 홍보가 반복됩니다.
이러한 맛에 대해 부정하는건 아닙니다. 허나 일본 내 식문화를 소개하는 다른 작품들과 비교할 때 특별한 내용은 없습니다. 예를 들어 튀김이나 와사비, 가쓰오부시 등은 모두 <<맛의 달인>> 등에서 자세히 소개했던 것입니다. 튀김의 핵심 비결인 밀가루 대충 풀기, 와사비 농원의 생육 환경과 강판에 가는 법, 가쓰오부시 제조법 및 전용 대패 모두 말이죠. 쓰키지 어시장은 <<어시장 3대째>>라는 더 길고 방대한 작품이 이미 존재하고요.
이는 일본 요리가 건강식이며 장수에 도움이 된다며 오키나와 요리와 장수의 비결을 탐구하는 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역시나 <<맛의 달인>>에서 이미 등장했던 소재잖아요? 그나마 오키나와의 새로운 소금 제조법 정도만 기억에 남을 뿐입니다.

직접 '비스트로 스맙'을 찾아 가서 기무라 타쿠야 등을 만나고, 스모 연습장을 찾아가 챵코 나베를 직접 먹어 보는 식의 현장감 넘치는 경험담은 나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역시 방송이나 다른 여러가지 컨텐츠에서 보았던 내용에 반복에 불과하고, 저자가 신기하게 생각한 대부분은 우리나라에서는 별로 새로운 것도 아닙니다. 장인 정신을 발휘하는 요리사들, 연예인들이 직접 스튜디오에서 요리를 해서 게스트에게 먹이는 등은 우리나라 방송에서도 흔히 볼 수 있으니까요.

물론 고래 고기처럼 일본의 정책을 비판하고, 맛없다고 이야기하는게 없지는 않습니다. 도쿄를 벗어나서의 이야기들에서 조금 많이 드러나는 편이에요. 허나 고래 고기는 이런저런 컨텐츠에서 특유의 풍미가 있다고 언급되어 왔으니 색다를 것도 없으며, 도쿄 이외의 장소에서의 에피소드는 음식, 요리 관련 이야기라기 보다는 외국인의 좌충우돌 여행기에 더 가깝다는 점도 마음에 들지는 않았어요.
무엇보다도 비판적 시각은 일부일 뿐, 결국 글은 가이세키 요리나 오사카 패스트푸드를 극찬하는 기승전'일본맛있쪄'로 마무리되니 온전한 비판이라고 보기는 어렵겠죠. 일본 최고의 회원제 레스토랑 미부에서의 놀라운 경험이 소개되는 마지막 묘사가 대표적입니다. 일본 요리란 무엇인지, 그 진가를 제대로 체험했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거든요. 맛을 떠나 일본 요리의 찬양이 반복되는 느낌이라 지루했습니다. 게다가 저자의 일본 여행 목적이기도 했던 일본 요리의 비결은 '재료 본래의 맛을 끌어내는 것' 이라는 것도 로산진 이래로 너무 많이 접한 내용이라 식상한 것이고요.

개인적으로 그나마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요리사다운 시각이 돋보이는 몇몇 디테일이었습니다. 일본인들이 숯불구이를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비결이 재료를 작게 만드는 혁신 덕분이라는 착안이 대표적이에요. 서구에서 초밥이 진짜 이유를 끌게 된 이유로 제시하는 것도 신선합니다. 설탕, 소금, 식초로 이루어진 초밥 양념이 빅맥의 기본 양념과 동일하다는 것이죠.
또 저자의 재기발랄한 글솜씨 덕분에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는 장점은 큽니다. 예를 들어 성게 맛에 대한 묘사도 제가 본 작품 중 최고로 꼽을 만 해요. 인어들이 바닐라 맛만 있는 수제 아이스크림 가게를 연다면 이런 맛이 아닐까 싶다는데, 정말로 멋드러진 발상입니다!

하지만 거의 500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을 이 정도의 단편적인 장점만으로 덮을 수는 없습니다. 실망이 컸기에 별점은 2점입니다. 이 책을 읽느니 <<맛의 달인>> 을 다시 정독하는게 정보와 재미 측면에서 더 나을 겁니다.

2018/01/21

최근 본 책 중 가장 황당한 책

제목만 보았을 때에는 그렇게 황당하지는 않았는데...

세기말적인, 상상을 초월하는 병맛 일러스트와 편집이 구매 의욕을 자극시키는 놀라운 책입니다. 제목 그대로 "시선강탈" 수준이에요. 여러분들과 함께 즐기고 싶습니다.

"하나 까 줄까?" 이거야말로 쿨 시크
표정만큼은 하얀거탑.

예의바른 소년 무키오. 귤에게서도 예의를 찾네요.

표정만 보면 "신이시여 제가 이 작품을 만들었습니까?" 수준 그런데 엄마는 대체 왜 놀라는 걸까요? 그리고 이거야말로 귤한테 무례한거 같은데....

제일 궁금한건... 이 전개도로 과연 토끼를 만들 수 있는건가요?

코코 (2017) - 리 언크리치 : 별점 4.5점



<<아래 리뷰에는 핵심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게 중요한 작품은 아니지만...>>

디즈니픽사의 신작. 딸아이와 함께 온 가족이 감상한 작품입니다. 픽사의 전작 <<굿 다이노>>는 이제 이 친구들도 디즈니한테 밀리는구나, 여기까지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실망스러웠는데 (참고로, 이후 이어진 <<도리를 찾아서>>와 <<카 3>>는 모두 후속작이라 전작을 보지 못한 딸 아이 때문에 보지 않았습니다.) 이 작품은 그러한 우려를 불식시킵니다.

우선 멕시코를 무대로 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권에서 굉장히 잘 먹힐만한 이야기 구조를 갖추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어요. 대가족으로 조상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돌아가신 분들을 기리는 날이 따로 있으며 이 날에는 온 가족이 모여 식사를 한다는건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니까요. 또 "죽은자의 날 (제삿날)"에 죽은 조상들 (귀신들)과 어울린다는 기본 얼개 역시 굉장히 친숙합니다. 조상님이 꿈에 나타나서 도와준다던가, 가사 상태에서 돌아가신 부모님을 만난다던가 하는 흔한 이야기들과 똑같잖아요.

이렇게 친숙한 설정을 토대로 가족의 의미를 생각하게 만든다는 이야기도 아주 감동적입니다. 최근 보기 드문, 가족이 가장 중요하고 가족은 서로 사랑하는 관계라는 것을 이렇게까지 잘 그려낸 작품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말이죠.
물론 중반 정도에 이르면 누구나 델라 크루즈가 진짜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아니고, 헥터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일 것이라는 반전은 쉽게 눈치챌 수 있습니다. 마마 코코의 기억을 노래로 떠올리게 만든다는 마지막 장면도 예상 가능하고요. 하지만 이러한 뻔한 전개를 특별한 신파 없이도 눈물샘을 자극하게 만드는 연출도 아주 대단했습니다. 노환으로 거의 기억을 잃어가는 할머니가 기억을 되찾는 장면이 특히 압권이었어요. 아, 저도 눈물을 참기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류의 가족 이야기가 서구 시장에서도 먹힐까? 하는게 조금 궁금하네요. 굉장히 동양적인 설정으로 보여서 말이죠. 영화가 미국에서도 흥행하는걸 보면 먹힌다 싶기도 하다가도, 그냥 미국 내 라틴 계열 인구 비율이 높아서 흥행이 잘되는건가 싶기도 하고, 잘 모르겠어요.

여튼 그 외에도 픽사스럽지 않은, 디즈니의 DNA가 삽입된 것도 눈에 뜨입니다. 시종일관 흐르는 흥겹고도 즐거운 음악이 화면 및 내용과 어우러지는, 일종의 뮤지컬을 방불케하는 장면들이 대표적이죠. 디즈니 작품들처럼 아예 대사까지 노래로 치환하는 수준은 아직 아니지만, 극적인 감정을 불러 일으키는데 음악과 노래가 굉장히 효과적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만큼 노래들도 좋아요. 제가 어린 시절, 아버님께서 자주 듣던 Trio los panchos의 노래들이 떠오르더군요.

이렇게 장점이 가득하지만 약간 아쉬운 점도 없지는 않습니다. 일단 여러가지 설정의 디테일이 좀 부족해요. 죽은 자들의 날에 저주를 받아 끌려왔다는 설정부터 그러합니다. 미겔 말고도 이 날 도둑질 한 사람이 한 둘이 아닐텐데, 미겔을 보고 다들 너무 놀라는게 좀 이해가 되지 않았거든요.
죽은 자들의 도시에 대한 설정도 깊이가 없는건 마찬가지에요. 비쥬얼은 휘황찬란하지만 그냥 해골들이 살아갈 뿐, 현대 도시의 이미지를 거의 그대로 구현해 놓은 정도에 불과하거든요. 알레브리헤라 불리우는 일종의 애완동물(?) 들 설정도 설명이 너무 부족하고요.
액션이 중요한 작품은 아니지만 뭔가 화려한 볼거리가 부족하다는 것도 조금은 단점이었어요.

그래도 단점은 사소할 뿐, 가족 영화로 손색없는 걸작입니다. 별점은 4.5점. 아직 보지 못하신 모든 분들께 꼭 한 번 감상하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이따가 부모님께 전화 한 통화 드려야겠네요.

아울러 이 작품이 픽사의 현재라면, 오프닝 단편 <<올라프의 겨울 여행>>은 디즈니의 현재인데 역시나 대단한건 마찬가지더군요. 행복한 가족 영화의 전통에 충실하면서도 노래와 장면이 어우러지는 뮤지컬 적 연출, 슬랩스틱적인 개그 등 디즈니의 강점이 모두 발휘된 좋은 작품이었어요. 제 딸은 이 작품을 더 마음에 들어할 정도로 말이죠. 두 스튜디오의 선의의 경쟁이 앞으로도 계속 좋은 결과를 낳기를 바랍니다.

2018/01/20

만화 재즈란 무엇인가 - 라즈웰 호소키 / 서정표 : 별점 2점

만화 재즈란 무엇인가 - 4점
라즈웰 호소키 지음, 서정표 옮김/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술 한잔 인생 한입>>으로 유명한 라즈웰 호소키 작품. 재즈에 대해 설명해 주는 만화입니다. 필명부터 재즈 뮤지션인 트럼본 연주자 라즈웰 러드로부터 유래된, 재즈 애호가로 잘 알려진 작가로 총 3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재즈 카페에서 재즈 전문가가 재즈에 대해 학생들에게 알려준다는 설정은 동일하지만 1부는 고교생 커플을 대상으로 "재즈가 무엇인지" 에 대해 설명해 주는 입문 파트, 2부는 한가해 보이는 사모님 3 명을 대상으로 재즈의 역사 및 주요 장르와 해당되는 앨범을 소개해주는 내용 3부는 다양한 대상의 수강생들에게 재즈를 즐기기 위한 방법을 안내해주는 식으로 입문에서 역사, 취미까지 아우를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죠.

이전에 읽었던 <<라면이란 무엇인가>>와 같은 시리즈인 듯 한데, 다행히 <<라면이란 무엇인가>> 보다는 재미있습니다. 2~4 페이지 정도의 짤막한 에피소드가 이어지는 전개인데 한 에피소드가 최소한 하나의 이야기로 완결될 뿐더러, 나름의 재미를 줄 수 있도록 기-승-전-결 이 갖추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라면이란 무엇인가>> 보다 재미있다 정도이지, 기대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이런 류의 만화라면 뮤지션들 중심으로 일대기와 그 음악을 소개하는 <<페인트 잇 락>> 같은 작품이 보통 떠오르잖아요? 뮤지션들은 대체로 워낙 드라마틱한 인생을 살아서 그것만 보아도 충분히 재미있기도 하고요.
하지만 이 작품은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강의하는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어서 그런 재미는 전무합니다. 뮤지션들은 제대로 소개되지도 않아요. 물론 명반, 명곡은 충실히 소개하고 있지만 만화책이라 직접 들을 수 있지도 않고, 락의 명곡들처럼 곡들이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는 한계도 명확합니다.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재즈 입문서로서의 가치는 충분하지만 만화적으로는 많이 부족해서 감점합니다. 차라리 포털 등에서 실제 곡들과 함께 들을 수 있는 웹툰 서비스를 한다면 가치는 더 높아질텐데, 다른 미디어로의 확장을 기대해 봅니다.

2018/01/19

샤를로트의 우울 - 곤도 후미에 / 박재현 : 별점 2점

샤를로트의 우울 - 4점
곤도 후미에 지음, 박재현 옮김/현대문학

아이가 없는 부부 고스케와 마스미가 외로움을 달래려 경찰견 출신의 반려견 샤를로트를 키우기 시작한 후, 그녀와 함께 여러 일상 속 수수께끼를 해결해 나간다는 곤도 후미에의 담담한 일상계 추리 연작집. 표제작을 포함하여 모두 여섯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처음에는 삼색털 고양이 홈즈처럼 단서를 턱하니 주거나, 방향을 제시하는 식으로 반려견이 무언가 추리를 하나 싶었는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그냥 반려견과 살아가는 일상 이야기에 수수께끼가 개입하고, 이를 고스케나 마스미가 밝혀낼 뿐이에요. 이렇게 현실적인 이야기가 반려견과 애견인, 애묘인 등 애완동물에 관련된 묘사와 함께 한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으로, 이 쯤 되면 본격 애견 소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등장하는 반려견들 모두 착하고 귀엽게, 그러면서도 섬세하게 그려져 작가의 깊은 애정 또한 강하게 느껴지고요. 또 작품을 통해 알 수 있는, 우리나라와는 조금 다른 일본만의 애견인 문화, 사고 방식도 인상적입니다. 예를 들어 젊은 부부가 마당이 있는 단독 주택에 살면서 대형견을 키운다는건 우리나라에서는 쉽게 상상하기 힘들죠.
아울러 이러한 설정 덕분에 샤를로트가 우리나라에 흔한 푸들 등의 소형견이 아닌 대형견 셰퍼드로 등장하여 여러가지 매력을 선보이는 것도 좋았습니다. 경찰견 출신이지만 지금은 느긋하고 노는걸 좋아하는 백수 아가씨라는 캐릭터가 아주 이채로왔거든요.

그러나 아쉬운 점은 추리적으로 수록작 모두의 수준이 높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편차가 심하거든요. 마음에 든 이야기가 없지는 않지만, 영 아닌 작품도 많아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전체 평균 별점은 2점 정도? 그래도 좋은 작품도 포함되어 있고, 독특한 일상계라는 특징은 분명한만큼, 후속작이 이어졌으면 합니다. 계속 읽어볼 생각, 있습니다!

이야기별로 짤막한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양해부탁드립니다.

<<샤를로트의 우울>>
표제작. 샤를로트를 키우게 된 과정이 등장하는 연작의 도입부로 부부의 집에 강도가 침입했지만 샤를로트가 짖지 않은 이유를 파헤치는 내용입니다.
"개가 짖지 않은 이유" 는 셜록 홈즈도 일찌기 주목한 단서죠. 그러나 침입한 강도가 전직 경찰견 조련사 출신이라, 그것을 눈치챈 샤를로트가 지금의 편안한 생활을 뒤로하고 나름 힘들었던 경찰서로 가기 싫었기 때문에 숨어있었다는 진상은 여러모로 억지스러웠습니다. 이웃집에 도둑이 들었을 때에는 열심이 짖어서 알렸음에도, 정작 자기 집에 도둑이 들었는데도 짖지 않는다는건 여러모로 납득하기 어렵죠. 이건 똑똑한게 아니라 직무 유기에 가까우니 해고되어도 할 말 없는 상황이란걸 샤를로트는 알까요? 여튼, 표제작 치고는 영 시원치 않았어요. 별점은 1.5점입니다.

<<샤를로트의 친구>>
공격성 넘치는 자신의 치와와를 일부러 대형견에게 다가가게 하는 할머니가 등장하는 작품.
추리적으로는 별로인건 마찬가지입니다. 결국 치와와 미리는 샤를로트를 물고, 그 책임을 물어 할머니의 이혼한 며느리 집으로 보내지는데, 누가 보아도 할머니의 의도가 명백해서 추리의 여지가 별로 없거든요. 개를 키우기 귀찮아서 사고를 일으키게 만든게 뻔하니까요.
그래도 할머니의 손녀 사와짱이 샤를로트를 문다는 해프닝으로 전모가 밝혀진다는 전개는 순진하고 귀여워서 괜찮았습니다. 조금 작위적이긴 하지만요. 별점은 2점입니다.

<<샤를로트의 남자 친구>>
마스미 부부는 우연히 사사키 씨라는 애견인을 만나 그가 키우는 시바견 하나코를 알게 됩니다. 그리고 얼마 후, "사사키 하나코"라는 이름표를 단 길 잃은 개를 발견하고 당연히 사사키 씨의 개라고 생각하여 연락하지만, 하나코는 사사키 씨 부인이 잘 키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당황하게 되지요. 결국 이 하나코는 사사키 씨가 이혼한 것으로 알고 있는 전 남편이 제대로 이혼 수속을 밟지 않고, 결혼 상태를 유지하고 있기 위해 수작을 부리기 위한 도구라는 것을 밝혀낸다는 이야기입니다.

제목의 "샤를로트의 남자 친구"는 해리스라는 다른 개인데, 이 개가 사사키 씨 남편이 데려온 하나코를 향해 사납게 짖어서 진상이 드러난다는 점에서 진짜 애견인을 위한 작품이구나 싶었습니다. 해리스는 남자애한테만 짖는다는 설정이거든요. 일종의 사기 범죄를 다룬 이야기라 조금은 무거운 내용이지만, 이렇게 애견인과 애완견이 이야기의 중심이 되기 때문에 가볍게, 즐거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어서 좋더군요. 작품 전체적인 분위기하고도 아주 잘 어울렸고요.

딱 한가지 문제는 사사키 씨의 남편이 왜 개를 한 마리 더 구입해서 하나코로 위장한 이유가 제대로 밝혀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아마 잃어버린 것이겠지만 석연치는 않더군요. 또 사사키 씨가 애견인이 아니라 단순히 사기를 치기 위해 개를 구입했으니, 또다른 남자아이 가짜 하나코는 앞으로 별로 사랑받지 못할 것이라 생각이 들어 조금 가슴이 아팠고요.

그래도 개인적으로 이 단편집의 베스트였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샤를로트와 고양이 집회>>
불면증 때문에 새벽 산책을 나선 마스미가 한 골목길에서 십여마리의 고양이가 모여있는 "고양이 집회"를 목격하고, 그 곳에서 다친 새끼 고양이 "꼬맹이"를 주워온다는 이야기.

누가 고양이 집회의 원인이 되는 먹이와 캣닙을 뿌렸는지가 수수께끼인데 딱히 호기심이 생기지도 않을 정도로 사소한 이야기라 몰입하기가 조금 힘들었습니다. 이 수수께끼보다는 마스미의 불면증에 대한 고민, 그리고 애묘인 가미야 씨의 입을 빈 "고양이를 위한 것" 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야기가 더 중요하게 다루어집니다. 그냥저냥 쉬어가는 이야기 정도랄까요. 별점은 1.5점입니다.

<<샤를로트와 사나운 개>>
도사견 "고나쓰"의 존재를 안 마스미는 우연히 고나쓰에게 치마를 물려 주인 집에 신세를 지게 된 덕분에 그 가정에 대해 이런저런 것들을 알게 되죠. 그리고 우연히 산책 중 버려진 고나쓰의 장난감이 어린 아이와 똑같이 생긴 것을 발견하고 무서운 의도를 간파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집에 있는 갓난아이를 견딜 수가 없어 일종의 원격 살인을 저지르려 한다는 내용으로, 비록 사건은 벌어지지 않고 나름 해피엔딩으로 끝나지만 실제 법적으로는 살인 미수라는 중죄가 등장하는 작품. 이 정도면 일상계로 보기 힘들겠죠.
물론 개의 습성을 잘 활용한 트릭이 등장하고, 이를 밝혀내는 과정이 공정하고 설득력있기 때문에 추리적으로는 높이 평가할 만 합니다. 당연히 실패하고 만 결말 역시 현실적이라 마음에 들었고요.

마음 한켠이 무겁지만 추리 단편으로 완성도는 높습니다. 별점은 3점. <<샤를로트의 남자친구>>와 더불어 이 단편집의 양대 베스트 작품이에요.

<<샤를로트의 집 지키기>>
부부의 집에 누군가 침입한 흔적이 발견되어 부부는 샤를로트를 마당에서 키우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침입이 이어지는 와중에, 우연히 진상을 알게된다는 이야기.

수수께끼는 흥미롭지만 진상은 <<고양이 집회>> 수준으로 시시했던 작품. 한 소년이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샤를로트를 껴안으려고 했다는게 전부거든요. 동기도 이해하기 어렵지만 애초에 CCTV 만 설치했어도 쉽게 알아낼 수 있는 것이라 사건성도 없기 때문에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별점은 1.5점.

2018/01/13

전쟁터의 요리사들 - 후카미도리 노와키 / 권영주 : 별점 2점

전쟁터의 요리사들 - 4점
후카미도리 노와키 지음, 권영주 옮김/arte(아르테)

2차 대전 중 미국 육군 제 101 공수사단 제 506 낙하산 보병연대 제 3대대 G중대 소속 조리병인 '키드' 오등 특기병이 조리병 동료인 에드, 디에고와 중간에 합류한 부상병 던힐, 의무병 스파크, 기관총병 라이너스, 통신병 와인버거 등과 함께 참혹한 전투를 거치는 와중에 벌어지는 소소한 수수께끼를 풀어나간다는 미스터리 작품. 총 5개 장으로 구성된 일종의 단편집입니다.

소소한 사건들이라는 측면에서는 일상계인데, 일상계로 보기에는 범죄의 스케일이 클 뿐 아니라, 2차 대전을 무대로 다양한 전투가 벌어지는 상황이라 동료와 관계자들이 수없이 죽어나가고 다치기 때문에 다른 일상계 작품들처럼 여유있고 한가롭지는 않다는 점이 독특합니다. 또 2차 대전 당시에 대한 묘사가 상당한 수준이에요. 고증 여부는 판단하기 어렵지만 실감나게 그려진 것 만큼은 분명하거든요. 덕분에 노르망디 상륙 작전, 마켓 가든 작전, 아르덴 대공세와 같은 주요 전투 모두에 투입되어 분투하는 키드와 동료들의 모습은 왠만한 전쟁 영화 저리가라고 할 정도로 재미있었습니다. 제가 2차 대전 이야기를 굉장히 좋아하기도 하고요.

그러나 아쉽게도 전쟁에 대한 묘사 외에 건질만한 부분은 없습니다. "추리 소설과 요리" 관련 글을 쓰고 있기도 해서 관심을 가진 책인데, 정작 추리와 요리 부분은 별 내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 "전쟁 소설" 로는 괜찮지만 "추리 소설" 로는 여러모로 부족해서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추리 소설을 기대하시고 읽으시면 실망하실 가능성이 높다는 점, 참고 부탁드립니다.

에피소드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합니다~

<<제 1장. 노르망디 공수 작전>>
잘생긴 기관총병 라이너스가 예비 낙하산을 모으는 이유는? 에 대한 수수께끼 풀이가 펼쳐지는 이야기의 도입부로 화자인 키드와 탐정역인 에드 및 기타 주요 전우들이 소개됩니다.
또 주방이 더럽혀지는걸 참지 못하는 저택 주인이 야전 병원을 허락한 까닭에 대한 궁금증과 저택 주인은 혼기가 찬 딸이 있고 결혼을 앞두고 있다는 것, 낙하산 천 재질의 일부는 나일론이 아니라 명주이며 하얀색이다! 라는 일련의 단서들 모두 독자에게 순서대로 공정하게 제공되어 추리에 동참하기 쉽게 만들고요.

그러나 저택 주인에게 저택을 임시로 사용하기 위한 허락의 댓가가 흰 명주천으로 웨딩드레스를 만들어 딸에게 준다는 진상은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이 되지 않네요. 지나친 비약일 뿐더러 물자 무제한의 미군이 이렇게 바보같이 협상한다는건 비현실적입니다. 그야말로 이야기를 만들기 위한 억지설정에 불과해요. 때문에 추리적으로 좋은 점수를 주가는 힘듭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제2장 군대는 위장으로 행진한다>>
휴식과 재충전을 위해 후방으로 잠시 이동한 주인공 일행이 분말 계란 도난 사건을 해결한다는 이야기. 분말 달걀은 예전 다른 책에서 괜찮은 발명품으로 소개되었던 기억이 나는데, 작 중에서는 최악의 요리로 등장해서 이채로왔습니다. 하긴, 맛도 좋았다면 지금 널리 퍼졌어야 정상이겠죠.

하여튼, 600 상자나 되는 보급품이 감쪽같이 사라지는 불가능 범죄를 다루고 있는데, 수많은 보급품이 쌓여져 있던 중 삐죽 튀어나온 상자열 이라는 특정 조건이 잘 맞아 떨어져야 하며, 완전 범죄보다는 범행을 드러내어 못된 상관에게 엿을 먹이려는 동기가 결합된 현실적 트릭과 범행이라는 점은 괜찮았어요.

하지만 범행 스케일에 비하면 동기의 설득력이 낮고, 인종차별 이야기는 억지로 집어넣은 느낌이에요. 좀 더 깔끔하게 정리했더라면 좋았을텐데 말이죠. 별점은 2.5점입니다.

<<제3장 굴뚝새와 솔개>>
마켓 가든 작전에 투입돤 주인공 부대의 처절한 전투가 펼쳐집니다. 착해빠진 주인공 키드조차 1편에서 친구가 된 보급병 오하라의 죽음에 충격을 받고 저항 불가의 SS요원을 조준 사격하여 죽일 정도로 끔찍하게 묘사되죠. 그 외 많은 전우가 전사하고요.
이러한 전투 중에 미군을 도와준 미군에게 협력하는 네덜란드인 얀센 부부가 자살하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민간인이 갑자기 튀어나와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나는데 에드가 사건의 진상을 밝혀냅니다.

이야기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얀센 부부의 유서는 그림 동화를 활용한 일종의 암호로 꽤 그럴듯합니다. 하지만 너무 작위적으로 동화에 억지로 끼워맞춘 느낌이에요. 애초에 이 방법을 영어로 적어 남길 필요도 없고, 암호를 풀어 복잡하게 열 필요도 없어요. 금고도 아닌 나무 완구인데 개머리판으로 두드려 부수면 그만이죠.
그 외에도 머리를 짧게 깎은 정체 불명의 민간인과 우유 한 컵 밖에 없던 비참한 부부의 상태를 연결하여 나치 부역자가 가족 내에 있었음을 드러내는 전개도 나쁘지는 않지만 식상했고요.
무엇보다도 부부가 자살하는 상황은 완전히 이해 불가에요. 어린 딸 로테와 아들 테오를 위해서라면 더러워도 끝까지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치는게 당연한데 말이죠. 이 점 하나 때문에라도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별점은 1.5점입니다.

<<제4장 유령들>>
아르덴 공세 당시, 바스토뉴 사수에 투입된 주인공 부대가 투입됩니다. 그리고 동료 디에고가 들은 섬뜩한 유령 소리의 진상을 밝혀내는 이야기입니다. 놀라운건 탐정역인 에드가 전사한다는 전개입니다. 예상도 못해서 깜짝 놀랐네요.

그러나 이러한 충격적 전개에 비하면, 쌓여있는 독일군 병사 시체에 대검으로 칼을 꽂는 연습을 했다는 유령 소리의 진상은 영 별로에요. 동기 자체는 그럴듯하죠. 부상을 입은 것처럼 위장하여 후방으로 이송되려는 일련의 병사들이 있고, 그들을 적당히 다치게 하기 위해 연습했다는 이야기는 전쟁에서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니까요. 그렇지만 시체에 대검을 꽂는게 정말로 연습이 되어 적당히 원하는 만큼만 다치게 할 수 있었는지는 솔직히 모르겠어요. 대충 찌르고 결과를 하늘에 맡기는게 더 옳은 방법이지 않았을까 싶네요.
아울러 디에고가 마켓가든 작전 때문에 "외상형 스트레스 장애 (PTSD)"에 시달린다는 묘사도 진부했기에 별점은 2점입니다.

<<제5장 싸움의 끝>>
던힐이 독일인이라는게 밝혀져 스파이 혐의로 수감되는데, 키드와 전우들이 그를 탈옥시켜 가족과 함께 하게 해 준다는 마지막 이야기.
그림 동화에 정통하다던가, 공수부대원은 아이가 있으면 안되는데 있다고 한다던가, 독일군 통조림 조리 방법을 알고 있다던가 하는 식으로 던힐이 독일인이라는 단서는 이전 장에서도 계속 독자에게 공유되어 왔었죠. 눈치채기는 쉽지 않지만 꽤 정교한 맛이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 탈옥 작전은 별게 없습니다. 이전 전투와 사건에서 얻은 인맥을 총 동원하는 것에 불과하거든요. 그냥 모든 살아남은 전우들이 모여 활약하는 일종의 에필로그성 이야기일 뿐이에요.

또 유대인 수용소의 참상을 그리는 장면은 진부함의 정점을 찍으며, 던힐을 축으로 전쟁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것 자체는 나쁘지 않지만, 즉 민간인에 대한 폭격, 그 외 전쟁 범죄 등에 대해 일본인 작가가 쓸 이야기는 아니라 생각되어 영 별로였어요. 외려 키드의 처음 생각처럼 히틀러를 지지한 국민도 죄인이니 벌을 받아야 한다는게 맞지 않을까요?
뭐 하나 건질게 없기에 별점은 1.5점입니다.

그리고 정말 후일담이 이어집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1989년, 노인이 된 키드가 다른 전우들과 함께 동독에 거주하던 던힐을 다시 만나는 내용으로 다른 전우들의 근황 모두가 상세하게 소개됩니다. 전쟁과 삶, 죽음에 대해 조금 생각하게 만드는 키드의 생각이 펼쳐지는데 개인적으로는 사족이라 생각되네요. 평가할 만한 내용은 아닙니다. 로테와 테오를 키드가 양육하게 되었고, 행복하게 산다는 정도만이 마음에 들 뿐입니다.

2018/01/06

문구의 과학 - 와쿠이 요시유키 & 와쿠이 사다미 / 최혜리 : 별점 3점

문구의 과학 - 6점 와쿠이 요시유키 & 와쿠이 사다미 지음, 최혜리 옮김/유유

문구에 그렇게 관심이 있는 편은 아니지만 문구에 대한 책은 좋아합니다. 친숙한 소재이지만 얼마나 놀라운 창조물이며, 얼마나 많은 노력이 들어갔는지를 여실히 깨닫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이 책 역시 마찬가지고요.
전에 읽었던 <<문구의 모험>> 과 비교하자면, <<문구의 모험>> 은 14종의 문구가 어떻게 발명되고, 어떻게 현대에 이르렀는지를 상세하게 소개해주는 역사서라면, 이 책은 수십 종의 문구에 대해 2페이지에서 4페이지 정도로 짤막한 분량을 할애하여 작동 원리와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안내하는 매뉴얼입니다.

그런데 길이도 짧고, 모든 문구에 대해 1 페이지의 도해가 수록되어 이해를 도와주기 때문에 읽기가 아주 편했서 좋더군요. 본문의 이해를 돕도록 간략화하여 구조를 잘 알려주고 있거든요.
다루고 있는 문구의 종류가 쓰는 것, 지우는 것은 물론 지우고 붙이고, 자르고 묶고, 측정하고 보관하고, 마지막에 종이에 이르기까지 방대하여 재미있는 내용도 많고요. 몇가지 기억에 남은건 아래와 같습니다.

  • 일본에서 연필을 최초로 사용한건 도쿠가와 이에야스임. 
  • 연필 모양에 육각형이 많은 이유는 잘 굴러가지 않으며, 세 손가락으로 쥐고 쓸 때 3의 배수가 쥐기 쉽기 때문. 기능이 형태를 결정한다!는 말이 잘 어울리는 예네요.
  • 색연필이 둥근 이유는 색연필 심이 부드럽기 때문. 육각형으로 만들면 심까지 거리가 짧아지는 지점이 생긴다. (균등하지 않다) 그래서 잘 부러진다고 하는군요.
  • 최초의 샤프심은 흑연으로 만들어서 지름이 1밀리미터가 넘었음. 흑연과 점토 성분으로는 가늘게 만들 수 없었기 때문. 현재의 샤프심은 플라스틱 수지와 흑연을 원료로 하여 가늘게 만들 수 있다는데, 신기하네요. 왜 연필은 플라스틱 수지를 쓰지 않는 걸까요?
  • 고성능 샤프에 있는 후레후레 기능은 가볍게 흔들면 심이 계속 나오는 기능이라고 합니다. 쓸 때 자동으로 계속 심이 나오는 건가요? 한번 써보고 싶네요. 심지어 미쓰비시 연필의 구루토가 샤프는 쓸 때마다 샤프심을 9도씩 회전시켜 항상 일정한 굵기로 쓸 수 있도록 한다고 하니, 샤프의 세계도 참으로 심오합니다. 샤프를 발명한 히라노 다카아키의 전기를 읽었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 지워지는 볼펜의 원리는 특수 잉크임. 지우개로 문자를 지울 때의 마찰열에 반응하여 잉크가 무색으로 돌아간다. 때문에 종이를 냉동고 (영하 20도)에 넣어두면 다시 원래대로 글자가 돌아온다는데, 아 이건 정말 대단해요! 추리 소설에 인용해도 됨직한 멋진 이야기입니다.
  • 사인펜은 수성 잉크 펠트펜에 대한 펜텔의 상표명인데 일반 명사가 된 것.
  • 블루 블랙 잉크 (만년필에 사용하는) 지우개는 잉크 화학 반응을 이용. 브루블랙 잉크 속 철이 검은색으로 변하며 산소와 결합하는데, 이 산소를 제거하는 것. 수산을 사용한다.
  • 셀로판 테이프의 셀로판 필름은 목재의 섬유로 만든 천연 필름임. 셀로판이라는 용어부터가 식물 섬유를 구성하는 셀룰로오스와 투명하다는 의미의 프랑스어 Transparent를 합성한 명칭.
  • 우표의 접착 성분인 초산비닐수지가 들어 있는 껌을 초콜릿과 함께 씹으면 껌이 녹아버리는데, 초콜릿에 함유된 유지가 초산비닐수지를 녹이면서 일어나는 현상임.
  • 베르누이 커브를 이용한 가위날이 있는데, 자르는 동안 두 가윗날이 이루는 각이 30도를 유지하도록 만든 것.
  • 커터칼은 일본에서 처음 만듬. OLFA (올파) 1956년. 유리조각과 판 초콜릿에서 아이디어를 얻음.
  • 커터 매트는 사실 칼날을 보호해 주는 도구임. 종이를 받치고 자르면 칼날이 쉽게 상함. 커터 매트는 말랑말랑한 층이 칼날을 보호해줌.
  • 스테이플러 침의 단면 비율은 정해져 있음. 3:5
  • 전자계산기와 전화기 키 배열이 다른 이유도 설명해줍니다. 계산기는 가장 많이 사용하는 2와 1을 붙여놓은 것이며 전화기는 오래전 다이얼식 전화기 숫자 배열을 응용하여 0과 1을 배치한 것인데, 아주 오래전 <<어둠의 인형사 사콘>> 에서 트릭으로 써먹었었죠.
  • 정규와 자는 다름. 정규는 선을 긋는 용도이며 자는 길이를 재는 것. 삼각정규는 삼각자. 전형적인 일본식 표현이죠? 그런데 삼각자의 가운데 구멍은 쉽게 집어들기 위해 공기가 빠져나가라는 용도라는건 처음 알았네요.
  • 인감, 인주가 문구로 소개되어 있는데 일본식 정의인지 좀 궁금합니다. 하긴, 우리나라에서도 문구점에서 파니 문구라고 해도 크게 문제는 없겠죠. 그런데 인주는 수은과 유황을 합성한 주 (유화수은) 를 송진, 밀랍, 아주까리 기름 등과 잘 섞어서 반죽한 것이라는데, 수은은 독약이니 인주를 먹으면 죽을지도 모르겠어요. 한 번 조사해보고 싶어집니다.
  • 지퍼는 일본 히로시마현 오노미치에 있는 회사에서 1927년 자크인 이라는 이름으로 첫 생산. 여기서 자크라는 말이 유래. 자크는 일본어로 돈주머니를 뜻하는 긴차쿠에서 유래된 말. 어원이라는게 알고보면 참 허무한게 많아요. 이 역시 마찬가지.
  • 모조지의 이름 유래는 의외였습니다 정말로 "모조" 해서 만든거라 모조지거든요. 다이쇼 시대, 오스트리아에서 제조한 종이를 모조한 것이 유래인데, 또 재미있는건 사실 메이지 중기 당시 대장성 인쇄국이 제조한 종이 (국지) 를 오스트리아 사람들이 파리 만국 박람회에 출품된 것을 보고 모조지를 만든거고, 이를 다이쇼 시대에 역수입해 또 모조한 것이라고 합니다. 모조된 종이를 모조한거죠. 제대로 부르려면 "모조모조지"라고 해야겠네요.
이외에도 재미있는 내용이 가득해요. 일본인 저자가 일본 시장, 환경을 중심으로 적었기에 용어, 그리고 설명해주는 내용이 조금 우리나라와 다르다는 단점은 있지만 얻는게 더 많았던 독서였어요. 오히려 유유 출판사 책 답게 좀 과한 가격이 더 문제죠... 그래도 문구에 관심이 많으시다면 꼭 한 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2018/01/04

우리가 사랑한 비린내 - 황선도 : 별점 3점

우리가 사랑한 비린내 - 6점
황선도 지음/서해문집

2018년 첫 리뷰네요. 한국 어류학자 황선도가 한국 해산물을 전문적 지식을 결합하여 소개하는 책입니다. 16종의 어패류 및 우리 바다 환경에 대한 글들이 300페이지가 넘는 분량에 빼곡하게 수록되어 있으며, 관련된 도판도 충실합니다.

무엇보다도 바다에 관련된 전문 지식의 양과 깊이는 실로 방대합니다. 그 중에서도 아무래도 제목과 연관된, "먹거리" 관련 이야기들이 특히 기억에 남네요. 오분자기는 원래 지천에 널렸었고 국물 맛이 전복보다 좋아 해물 뚝배기에 많이 썼는데 지금은 씨가 말라버렸다는 이야기가 대표적입니다. 지금의 오분자기 뚝배기는 작은 전복을 쓴다는군요.
또 조선 정조 대 문인 이옥의 <<백운필>> '석화' 편에 "석화의 쓰임은 회가 최고이고, 무치는 것이 다음이고, 젓갈로 만드는 것이 그 다음이고, 죽을 만드는 것이 또 그 다음이고, 전을 만드는 것이 그 다음이고, 국으로 만드는 것이 제일 못하다"고 적혀있다는 것도 인상적이에요. 이 당시에는 튀김이 들어오기 전이었겠죠? 튀김이 있었다면 회하고 좋은 승부가 되었을텐데 말이죠.
<<노인과 바다>>에서 산티아고가 2박 3일 동안 사투를 벌여 잡은 물고기가 "대서양 녹새치"라는 주장도 재미있었습니다. <<맛의 달인>>에서 새치를 주문한 이사무를 주위 사람들이 비웃는 에피소드가 떠오릅니다. 새치가 <<노인과 바다>> 속 사투의 주인공이었다는 이야기를 이사무가 알았다면 비웃던 사람들에게 "새치는 <<노인과 바다>>의 산티아고가 2박 3일 동안 목숨을 걸고 잡은 물고기입니다. 여러분들도 문학의 향기를 좀 느껴 보시죠!"라고 한 방 날릴 수 있었을텐데... 이래서 공부를 해야 하나 봅니다.
참돔이 양식이 되는 탓에 양식이 안되는 감성돔이 고급 어종으로 부상했다는 등 좋아하고 즐겨 먹는 돔, 방어나 참치, 연어, 소라, 꼬막, 키조개 등 친숙한 해산물들에 대해 상세한 정보를 알아가는 재미도 쏠쏠하고요.
마지막에 황폐화된 바다 자원을 재생하기 위한 노력 사례가 실려있는데 화룡정점입니다. 남획 등으로 사막처럼 변한 마안도 재생을 위한 수중림 조성이 가장 돋보이는데 우리 후손들을 위해서라도 부디 잘 되었으면 좋겠어요. 저도 위도와 마안도 등은 한 번 돌아보고 싶어집니다.

이러한 저자의 전공 분야인 어패류에 관련된 직접적 지식 외의 각종 정보 수준도 놀랍습니다. 특히 "어원"에 관련된 이야기들이 그러합니다. "스키다시"의 어원은 "붙이다"라는 뜻의 일본어 스케루에서 온 것으로 우리말로는 "곁들이", 즉 사이드 디시를 의미한다라던가, 중국의 '남삼여포'라는 사자성어가 있는데 남자에게는 해삼, 여자에게는 전복이 좋다던가, 멍게는 방언으로 원래 표준어는 "우렁쉥이" 였는데 방언이 더 널리 쓰이게 되어 표준어가 되었다던가, "진상"은 "진상품 부역"이 굉장히 고통스러웠던 과거에서 비롯된 말이라던가 하는 식이며, 갯벌, 갯뻘, 개펄 중 뭐가 맞는 표현인지?에 대한 궁금증도 풀어줍니다. 개 (바닷물이 드나드는 곳)의 벌판이라는 뜻으로 "갯벌"이 맞으며 갯벌에 있는 흙은 "개펄" 이라고 하네요. 과학자도 글을 쓰려면 이 정도까지 공부하는구나 싶어서 많이 반성하게 됩니다.

그 외에도 다양한 사료로 고증해 주는 우리 어패류에 관련된 역사들도 아주 재미있습니다. 흔히 알고 있는 "도루묵" 이야기에 나오는 왕은 선조가 아니다!라는 주장이 아주 흥미롭더군요. 도루묵은 주로 강원도, 함경도, 경상북도 동해 북쪽 바다에서 잡히는데 선조는 임진강, 평양, 의주로 피난을 갔기 때문에 도루묵을 먹었을 가능성이 아주 낮기 때문이랍니다. 고려시대 왕들도 동해안 쪽으로 피난 간 왕이 없다니 과연 "도루 묵이라 불러라"고 한 왕은 누구였을까요? 궁금합니다.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에 조선의 전복 진주가 명산품으로 소개된다는 이야기도 새로왔고요.

이렇게 재미도 있고, 담겨있는 정보도 충실한 좋은 인문학 서적입니다. 전문성을 찾기에는 조금 가벼운 에세이 느낌이 강하다는건 장점이 될 수도 있고, 단점이 될 수도 있는데 저에게는 장점이 더 많았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역시, 믿고보는 서해문집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