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주신 분들께 안내드립니다.

2022/12/29

2022 내 블로그 리뷰 총 결산

열아홉번째 블로그 리뷰 총 결산. 드디어 이 블로그가 성인이 되었습니다. 19금 컨텐츠도 이제 소화할 수 있겠네요.

올해 읽은 책은 권수로는 다음과 같습니다. (괄호는 작년)
추리 / 호러 장르문학 71 (57)권, 기타 장르문학 5 (3)권, 역사서 5 (17)권, 디자인 or 스터디 4 (1), Food 및 구루메 관련 도서 4 (15)권, 기타 도서 13 (24)권
모두 102 (117) 권을 읽었습니다. 작년과 비교하면 약 15% 정도 감소했네요. 코로나 사태가 진정된 덕분으로 외부 활동이 늘었고 대선, 월드컵 등 굵직한 이벤트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추리 / 호러 장르문학은 더 많이 읽었고, 그동안 자주 읽었던 역사서와 음식 관련 도서에 대한 관심이 급감한건 아무래도 짬이 나서 책을 읽는 시간에는 좀 더 흥미 위주의 책을 집어들게 된 탓이고요. 올해 추리 소설 1,100권째 리뷰를 달성하느라 좀 많이 달렸던 이유도 있을겁니다.

그럼 언제나처럼 각 항목별 베스트 - 워스트를 소개해드립니다. 언제나처럼, 올해 발표된 작품 기준이 아니라 제가 올 한해 보고 읽은 것들 기준입니다.

2022년 베스트 추리소설 :
<<디오게네스 변주곡>>
올해는 별점 3.5점을 받은 작품이 두 편 있었습니다. 이 책과 미쓰다 신조의 <<마가>>입니다. 두 작품 다 좋은 작품이지만, 단편집으로 <<추리 소설가의 등단 살인>>, <<숨어있는 X>>라는 두 편의 별점 4점 짜리 단편이 수록된 이 작품을 올해의 베스트로 꼽겠습니다.

아울러 올해 읽은 단편 중 최고의 단편은 <<미스터리를 읽은 남자>> 수록작인 <<엘러리 퀸을 읽은 남자>>입니다. 보기드문 별점 5점짜리 단편이지요. <<디오게네스 변주곡>> 수록작 2편과 교고쿠 나쓰히코의 <<싫은 소설>> 수록작 <<싫은 여자친구>>는 별점 4점으로 아쉽게 선정되지 못했네요.

2022년 워스트 추리소설 :
<<심야의 손님>>
별점 1점짜리 작품이 이렇게 많았던 해도 드물 것 같습니다. A.J 킨넬의 <<퍼펙트 맨>>, 엘러리 퀸의 <<샴 쌍둥이 미스터리>>, 오쿠라 데루코의 <<심야의 손님>>, 모리스 르블랑의 <<수정 마개>>, 시로다리아 교의 <<명탐정에게 장미를>>의 여섯 편이나 되니까요. 최악 중에서도 최악은 <<심야의 손님>>이었습니다. 단편집인데 수록작들은 별점 1점도 못되는 작품들 투성이거든요. 이렇게 뭐 하나 건질거 없는 망작은 정말이지 오랫만에 봅니다.

2022년 베스트 기타 장르문학 :
<<프로젝트 헤일메리>>

2022년 워스트 기타 장르문학 :
<<변덕쟁이 로봇>>

2022년 베스트 역사 도서 :
<<기억의 의자>>
달랑 5권 읽긴 했지만 역사 관련 도서들은 언제나 평타 이상은 쳐 줬었죠. 별점 3.5점을 받은건 이 책이 유일했지만, 다른 책들도 별점 2.5점 이상이었고요. 올해도 워스트는 따로 선정하지 않겠습니다.

2022년 베스트 디자인 or Study :
<<당신이 찾는 서체가 없네요>>
달랑 4권 읽기는 했지만, 그 중에 군계일학처럼 빛나는 별점 4점짜리 책입니다.
그 외 책들도 가장 낮은 점수가 별점 2점이니, 워스트는 역시 선정하지 않겠습니다.

2022년 베스트 Food / 구루메 도서 :
<<혼밥 자작 감행>>
디자인 관련 서적과 마찬가지로 4권만 읽었는데 놀랍게도 모두 별점 3점입니다! 평균 별점으로는 가장 높은 분야네요. 다 좋았지만 제가 사랑하는 만화 <<술 한잔 인생 한입>>의 삶을 구현한 듯한 쇼지 사다오의 에세이 <<혼밥 자작 감행>>을 베스트로 꼽아봅니다.

2022년 베스트 기타 도서 :
<<덜미, 완전범죄는 없다 1>>
범죄 관련 논픽션으로 완벽했던 결과물. <<그것이 알고 싶다>>를 애청하신다면, 흥미롭게 읽으실 수 있는 책입니다.

2022년 워스트 기타 도서 :
<<그 남자의 시계>>
별점 1.5점을 받은 책은 <<그 남자의 시계>>와 <<룸>>의 두 권입니다. 이 중 워스트는 <<그 남자의 시계>>입니다. 두 권 모두 기대했던 내용이 아니어서 실망이 컸지만, <<그 남자의 시계>>가 가격 측면에서는 더 비쌌으니 감점도 더 크게 받아야겠지요.

2022년 베스트 Movie :
<<탑건 : 매버릭>>
한 마디만 하겠습니다. 극장에서 두 번 봤습니다.
워스트는 딱히 꼽을게 없네요...

2022년 베스트 Comic - 추리 or 호러 :
<<BOX ~ 상자 속에 무언가 있다>>
모로호시 다이지로의 상상력이 나름 정교한 이야기와 결합된 수작 모험물.

2022년 워스트 Comic - 추리 or 호러 :
<<C.M.B 박물관 사건목록 44>>
설득력없는 트릭의 향연. 시리즈가 끝난게 다행이다 싶네요.

2022년 베스트 Comic - 기타 :
<<혼자를 기르는 법>>
독특한 작화, 무거운 분위기, 가벼운 개그의 조합. 좋았습니다.

2022년 워스트 Comic - 기타 :
<<지구 멸망 일주일 전, 뭐 먹을까?>>
독특한 설정 외에는 건질게 없었던 망작.


2022년 한 해도 이렇게 저물어가네요. 여러분들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새해에는 원하시는 일 다들 이루시는 그런 한해 되시기를 바랍니다. 작년, 그리고 재작년에도 말씀드렸지만 제 블로그를 찾아주시는 분들이라면 남들이 관심갖지 않는 사소하고 디테일한 것들에도 관심을 가지시는, 정말로 세심한 분일테니 내년에는 더욱 잘 되실게 분명합니다. 사랑합니다~!

2021 내 블로그 리뷰 총 결산

2022/12/25

엔진의 시대 - 폴 인그래시아 / 정병선 : 별점 3점

엔진의 시대 - 6점
폴 인그래시아 지음, 정병선 옮김/사이언스북스

역사에 이름을 남긴 자동차들에 대해 시기별로 소개해주는 책.
그 자동차를 만든 주역이 누구인지와 함께 자동차가 출시되었던 당시 상황, 사회적 분위기를 엮어서 성공했다면 왜 성공했는지, 실패했다면 왜 실패했는지와 그 외 어떤 후폭풍(?)을 불러 왔는지 등 관련된 이야기를 무려 470페이지가 넘는 분량으로, 15편의 이야기를 통해 상세하게 설명해 줍니다.
당대를 대표했고, 큰 인기를 끌었던 자동차에 대한 이야기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읽다보니 시대와 트렌드, 유행이라는 것에 대해 식견을 넓힐 수 있었었어요. 자동차야말로 소비재의 끝판왕 격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요. 미국 중심의 이야기라는 한계가 있고, 소개되는 도판과 책의 편집이 그닥이라는 점은 아쉽지만 여러모로 독서였습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15편의 소개 중 인상적이었언 몇 편에 대해서, 아래와 같이 짤막하게 소개드리며 리뷰를 마치겠습니다.

<<모델 T대 라살>>
자동차를 일반인도 소유할 수 있게 한 포드의 모델 T의 등장, 그리고 곧 돈이 있는 사람들은 고급진 무언가를 찾게 되었지만 모델 T의 디자인 개선을 등한시했던 포드가 시장을 잃는 과정이 소개됩니다. 모델 T의 개발 과정도 상세하지만, 무엇보다도 헨리 포드에 대한 보다 깊이있는 접근이 돋보였습니다. 자존감이 높은 독재자로 그가 벌였던 여러 행각이 가감없이 소개되며, 차를 개발했던 인물 중심으로 서술되는 책의 정체성을 분명히 알려줍니다. 조금 놀랐던건 모델 T는 완벽해서 더 개량할게 없다고 포드는 믿었다는데, 소개되는 내용을 보니 실제로도 그러했다는 점입니다. 보기에는 아름다웠던 라살이 지금은 거의 잊혀진 차라는 것도 그 사실을 증명하지요.

<<쉐보레 콜벳>>
제네럴 모터스가 업계 최초로 자동차 디자인을 강화하게 된 계기가 되었던 얼의 등장, 매년 디자인을 바꿔 차를 출시하고, 양산하지 않는 프로토타입 개발 등의 혁신적인 조치로 자동차 업계를 리드하는 과정과 콜벳의 아버지 아르쿠스-둔토프와 콜벳의 성공적인 역사를 알려줍니다. 얼은 독재자였지만 확실히 시대를 읽는 눈은 있었나봐요.
"학교를 지나치는데 아이들이 휘파람을 불며 환호하지 않으면 다시 제도판으로 돌아가야 한다."
는 말은 새겨들을 명언입니다.

<<1959년식 캐딜락>>
쉐보레의 업계 선두 지위를 빼앗아 온 크라이슬러의 '테일핀' 전성 시대에 대한 이야기가 그려집니다. 쉐보레가 따라할 수 밖에 없었던 테일핀의 탄생과 그 유행에 대한 이야기인데, 정말로 암 런 맥락이 없더군요. 쓸데없지만 멋있다고 생각되어 유행한 경우인데, 아무래도 2차 대전 후 고도 성장기를 맞아 풍요와 화려함을 상징하는 무언가가 필요했던게 아닌가 싶네요. 그걸 대표하는게 바로 엘비스의 핑크 캐딜락이기도 하니까요.

<<폭스바겐 비틀과 마이크로 버스>>
테일핀과 같은 화려함과 속물 느낌의 감성과 반대되는, 그래서 지식인들의 아이콘이 된 폭스바겐의 비틀과 마이크로 버스의 탄생과 2차 대전 후 하인츠 노르트호프가 회사를 이끌며 살아남아서, 결국 미국 시장까지 진출 후 성공하는 과정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전후 폐허 상태에서 복구하는 폭스바겐의 분투도 볼만했지만, 무엇보다도 미국에서의 성공적인 광고 프로모션이 기억에 남습니다.

<<쉐보레 콜베어 : 소비자의 반란>>
에드워드 콜이 주도했던, 미국인을 위한 비틀이었던 콜베어의 탄생에서 시작하여 콜베어의 오버스티어링 문제 (뒷바퀴 미끌림)로 변호사 찰스 네이더의 주도로 고발과 조사가 시작되어 결국 미국의 소비자 운동이 출범하게 된 콜베어의 사건을 설명해줍니다. 미국에서의 소비자 보호법 - 징벌적 손해배상 등 - 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계기인, 쉐보레 콜베어의 코너 조향 문제가 설명됩니다. 결국 쉐보레가 후기 모델에서 개선 방안을 도입했기에 무죄 판결을 받았다는 결말은 다소 씁쓸했습니다.

<<포드 머스탱 : 아이아코카와 신세대 미국인>>
자동차 세대 교체의 아이콘이었던 머스탱과 함께 그 성공 비결을 알려 줍니다. 1960년대 ~ 70년대 초반의 전후 베이비 붐 세대가 자동차 소비 전면에 나서며 "누구나 원하는 자동차"로 멋진 디자인, 저렴한 가격, 다양한 옵션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네요. 현대차의 이른바 '옵션질'은 역사가 증명하는 탁월한 마케팅 기법인 셈이지요. 제가 어렸을 때 자서전으로 일세를 풍미했던 리 아이아코카의 활약도 잘 그려지고 있습니다. 당시는 자서전의 시대였었는데, 저도 아이아코카 자서전과 척 예거 (최초로 음속을 돌파했던 비행사) 자서전 두 권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재미있었어요.

<<폰티액의 GTO : 들로리안의 염소>>
두 가지 이야기가 중심입니다. 하나는 머스탱과 전혀 다른 '상남자'를을 노린 들로리안의 머슬카 폰티액의 전성기, 다른 하나는 폰티액의 아버지로 '들로리안 모터스'를 만들었던 업계의 풍운아 들로리안의 흥망성쇠이지요. <<백 투더 퓨처>>의 타임머신으로도 유명한 들로리안의 DMC-12는 청설모의 카툰을 통해 그 탄생과 멸망(?) 과정을 잡해 보았었는데, 훨씬 자세하고 깊이있게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혼다 어코드 : 오하이오 고자이마스>>
전통적인 미국 차와 달랐고, 디트로이트 문화와도 전혀 달랐던 일본차 어코드와 혼다가 어떻게 미국 땅에 성공적으로 정착했고, 미국내 양산에 성공했는지에 대한 이야기.
어코드의 성공 이면에는 독재자같았던 혼다 소이치로를 제어할 수 있었던 2인자 후지사와 다케오가 있었다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흥미로왔습니다. 후지사와 다케오 덕분에 문제가 있었던 공랭식 엔진이 아닌 수냉식 엔진을 탑재할 수 있었다고 하는데, 이 때 후지사와 다케오가 혼다 소이치로와 독대하며 했던 말이 대박이네요.
“혼다, 어떤길을 갈 건가? 자네는 회장인가, 아니면 엔지니어인가?”
인데, 기업 회장이면 엔지니어로서의 자존심을 버려야 한다는 뜻이었지요.
참고로 이때 개발된 엔진이 CVCC 엔진으로 별다른 장치 추가 없이 미국에 새로 제정된 배출가스 기준을 만족하는 유일한 엔진이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혼다의 성공담을 이 책에서는 "애플 컴퓨터"의 첫 등장과 비슷하다고 언급하는데, 실제로도 그런 느낌이에요.
또 그간 읽었던 일본 회사의 성공담은 판타지 <<시마 과장>>은 제껴두더라도 도요타 자동차 성공담처럼 세일즈맨이 주인공으로 등장해서 판매와 마케팅 위주로 이야기가 흘러갔었는데, 일본인 관리자가 미국인 직원을 채용하여 그간 디트로이트의 관행을 깨는 수평적 조직을 만들어 미국 내 생산 기지를 만드는데 성공하는 과정이 상세하게 설명되고 있어서 신선했습니다.

<<크라이슬러 미니밴>>
앞서 말씀드렸던 리 아이아코카의 또다른 히트작을 다루고 있습니다. 오래전 읽었었던 자서전에서도 언급되었던 기억이 나네요.
베이비 부머 세대인 '사커맘' 들이 아이들 여럿을 나르듯 가족이 함께 이동하는데 필요한, 외장이 작으면서도 내부가 큰 그런 차가 새롭게 태어나는 과정을 그리는데, 상품기획자라면 관심있게 볼 내용이라 생각됩니다. 새로운 소비자를 대상으로,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에 걸맞는 기존에 없었던 제품을 내 놓는 과정을 설명해 주고 있으니까요.

<<BMW3 시리즈>>
마케터, 상품기획자라면 흥미롭게 볼 수 있을 내용. BMW 3 시리즈가 '보보스'에게 다가갈 수 있었던건 그들의 기호에 부합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주요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보보들은 화려하지만 저속한 것들은 가지려 하지 않는다. 사치와 낭비를 일삼는다고 동네방네 떠드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그들이 남의 이목에 신경을 쓴다는 인상도 줄 수 있는데, 당연히 싫다. 그들은 희소성을 추구한다. 대중이 몰라야 하고, 디자인이 탁월해 삶이 더 편하고 특별해지는 물건이라면 금상첨화다.……… 그들 중에 저녁식사를 하면서 다이아몬드 목걸이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정찬의 주최자가 사용하는 샐러드 분배용 포크에 아프리카적 감수성이 담겨 있음을 발견하고 화제로 삼는 행위라면 정말이지 멋지다."
라는데, 지금 말로 따지면 '홍대병' 에 걸린 사람들을 위한 차라는 뜻이겠지요? 우리말로 '하차감'이 중요한 사람들을 위한 차라는 뜻도 될 테고요. 이들을 위한 차는 독일차 BMW 3였다는게 결론인데, 여러모로 의미심장합니다. 결국 자동차는 특정 계층 이상에서는 어느 정도 허영의 산물일 수 밖에 없다는 의미도 되니까요.

덜미, 완전범죄는 없다 2 - 한국일보 경찰팀 : 별점 3.5점

 

덜미, 완전범죄는 없다 2 - 8점
한국일보 경찰팀 지음/북콤마

1권과 동일하게 각종 사건들의 상세한 소개에 더해 수사와 특별히 관계되어 있던 법의학법과학 방식이 소개되는 논픽션.
이번에는 거짓말 탐지기, DNA 분석, 루미놀 시약, 삭흔, 뼈, 법보행 등이 등장합니다. 그 외에도 범죄의 종류 - 실종, 도굴 - 이라던가 수사 방식 - 잠복, 공개 수배 -, 범인의 특징 - 싸이코패스, 피해망상 -, 단서로 사용되는 여러가지 요소들 - 자백, 간접증거 - 등 많은 범죄 관련 소재가 언급됩니다. 이건 법의학과 법과학 관련 소재가 떨어졌기 때문이었을걸로 생각됩니다.

아무래도 사건 쪽에 관심이 많이 가게 되는데, 특기할만한 점 첫 번째는 여러 지능범들의 등장이었습니다. 사체 인멸, 현장 조작에 알리바이 트릭까지 사용하는 놀라운 범인들의 모습은 간담을 서늘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두 번째 특기할 점은 범인들이 뻔뻔하기 그지없다는 점이었습니다. 인면수심이라는 말로도 부족한 범인들의 행태에 대한 언급을 읽으니 사형 제도의 부활을 간절히 소망하게 되네요.

특정 주제에 맞는 대표적인 사건을 선정하기 쉬웠을 1권보다는 주제부터가 다소 정리되지 않았다는건 아쉽지만, 상세한 사건 정리가 여러 자료와 도판 등으로 뒷받침되는 좋은 범죄 논픽션이라는건 분명합니다. 제 별점은 3.5점입니다. 두 타석 연속 장타!
마지막으로 앞서 말씀드렸던 범죄 특징들이 잘 살아있는 몇몇 사건들, 그리고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사건 몇가지를 아래에 소개해드립니다.

<<아산 노부부 살인 방화 사건>>
지능범 등장 사건 (1).
범인은 범행을 저지른 다음날 알리바이 조작을 위해 현장에 다시 침입했습니다. 양초를 이용한 장치로 시간 조작 방화를 일으키려고요. 범인은 집을 비웠던 시간에 영화 다운로드를 걸어 두어서 집에 있는척 했다는 알리바이 트릭까지 써먹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확실히 만화와 다른 법입니다. 범인은 한 달도 더 지난 사건 당일 행적을 너무 상세하게 기억하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다운로드했던 영화 제목을 기억하지 못해서 덜미가 잡히고 말거든요. 체포되어서 다행입니다.

<<환경 미화원 살인 사건>>
지능범 등장 사건 (2)
추리 소설에서나 봄직했던 정교한 시신 유기가 놀라왔던 사건입니다.
범인은 피해자를 살해한 뒤 철물점에서 사온 50리터짜리 검은색 비닐봉투 15장과 이불로 시신을 감싸고 그 위에 100리터짜리 종량제 쓰레기봉투 2장을 덧씌웠습니다. 이불을 쓰레기 봉투에 담아 버리는 걸로 보이도록요. 그리고 환경 미화원이었던 범인은 자기 담당 구역에 '쓰레기'로 위장한 시신을 미리 가져다 놓은 뒤, 다음날 시신을 함께 일하는 동료와 함께 쓰레기 수거 차량에 던져 넣었습니다. 시신은 그대로 전주 시내의 한 소각장으로 이동 후 소각 처리되고 말았다는군요. 무섭습니다.

<<거여동 여고 동창 살해사건>>
지능범 등장 사건 (3)
단순 질투로 친구와 친구 아이 두 명을 살해했던, 비상식적인 잔혹함으로 충격을 안겨다 주었던 사건으로 아직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손에 목장갑만 꼈어도 덜미를 잡히지 않았을 정도의 지능범으로 방 열쇠를 넣은 핸드백을 방범창 안으로 던져 넣는 식으로 일종의 밀실 트릭까지 사용된, 거의 성공했던 완전범죄였다고 알고 있었는데, 실제로도 크게 다르지 않더군요. 아이들이 너무 처참하게 살해되었다는 것, 그리고 피해자가 손에 현장에는 없었던 종잇조각을 쥐고 있었다는 것만으로 자살이 아닐 수도 있다고 판단했던 현장 수사관들의 식견에 경의를 표합니다. 참고로, 종잇조각은 범행 도구로 준비해왔던 페트병으로 만든 빨랫줄 고정판에 붙어 있던 것이었다네요.
하지만 아무런 단서를 찾을 수 없을거라고 경찰을 도발까지 했는데도 불구하고 정작 집에 범행 기록을 꼼꼼히 적어둔 일기장을 남겨두었다는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과시욕' 이라는게 있었던걸까요?
아울러 이런 계획 살인의 경우는 당연히 사형 선고를 받았어야 했는데 무기 징역에 그쳤다는 것도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제발 이런 범인은 좀 죽입시다.

<<신혼부부 니코틴 살인 사건>>
범인은 신혼 여행을 떠났던 일본에서 범행을 저질렀고, 시신 화장을 서둘러 증거 인멸을 시도했지만 일본 경찰의 부검 감정서로 덜미가 잡힌 경우입니다. 피해자의 사인은 혈관 내 다량 투여된 니코틴에 따른 급성 중독사인데, 시신의 왼쪽 팔에서 두 곳, 오른쪽 팔에서 한 곳, 총 세 곳에서 주사바늘 자국이 발견되었기 때문에 살인이 입증되었거든요. 처음 주사했을 때 바로 독성이 나타났을터라, 그 다음 나머지 두 곳에 스스로 주사를 놓는건 불가능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스스로가 아니라면 타인이 주사를 놨다는 것이고, 사망 장소에는 남편밖에 다른 이는 없었으니 범인은 뻔한 셈입니다.
단지 돈 목적으로 결혼하자마자 아내를 살해한 인면수심의 뻔뻔한 살인범이라는 특징도 잘 살아있는 사건으로, 남편이라는 놈은 이 증거가 드러나자 자살 방조라고 우겼다는데,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네요. 이런 놈도 좀 죽입시다....

뻔뻔함이라면 <<포천 암매장 살인 사건>>범인도 빼 놓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싸이코패스인 범인이 완벽한 증거 앞에서도 범행을 끝까지 부인하는 가공할만한 뻔뻔함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첫 조사에서 "사건 당일 피해자를 만난 적이 없다"고 발뺌하더니, 두 사람이 함께 포천으로 이동하는 장면이 찍힌 폐쇄회로 TV 화면을 제시하자, “함께 갔지만 피해자는 포천이동갈비를 먹으러 갔다"고 바로 말을 바꾼다던가, "함께 어머니 산소에 들렀는데, 피해자가 갑자기 사라졌다"는 비상식적 변명을 늘어놓는 식이었다네요. 이런 변명이 통할거라 생각한 것도 어이가 없고, 끝까지 범행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도 놀라왔어요.

<<미아동 노파 살인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DNA가 남아시아계라는게 결정적 증거가 되었던 사건입니다. 그런데 이 사건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던건 잠복 중이던 형사가 혼혈로 보이는 어린 형제를 보고 사진을 보여주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아이 중 큰 아이가 "아빠다!"라고 외쳐서 범인임을 확신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정말 잔인한 행동이었어요. 잔혹한 범행을 저지른 범인은 잡아야하는게 맞습니다. 하지만 혼혈 아이들의 집만 알아내어도 다른 방법으로 아이들 아빠 신원을 알 수 있었을텐데,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지 않았을까요?

<<울주 노인 연쇄살인 사건>>
사건 현장에 범인의 DNA가 전혀 남아 있지 않았고 폐쇄회로 TV 영상도, 목격자도 없었지만 "내가 살인범이다"라는 자백 진술과 이 진술에 신빙성을 더하는 정황증거가 더해지면서 용의자가 범인이 됐던 사건입니다. 이를 통해 '자백'이 증거가 되기 위한 조건이 얼마나 까다로운지를 잘 설명해주고 있고요.
피고인의 자백이 곧바로 유죄 증거로 이루어지는 경우는 최근에는 극히 드물다고 합니다. 법적으로도 자백이 고문, 폭행, 협박 또는 기망 등으로 인한 것이라고 의심되거나, 혹은 피고인의 자백이 피고인에게 불리한 유일한 증거일 땐 자백은 유죄 증거가 될 수 없다고 하고요. 자백을 증거로 인정하는 조건도 까다롭다네요. 과거 '약촌 오거리 택시기사 강도 살인'처럼 허위 자백으로 억울하게 옥살이했던 경우가 많은 탓이겠지요.

<<이천 무덤 연쇄 도굴 사건>>
정신병자가 저지른 범행으로 범행 자체는 특기할게 없는데, 피해자가 너무 안타까왔던 경우입니다. 피해자 중 한 명인 최씨는 부모 무덤이 도굴당한건 자신에 대한 원한 때문이라고 믿어서 11년간 주변 사람들을 끊임없이 의심하면서 친지와 가족 대부분을 잃었다고 하거든요. 정신병자 한 명 때문에 인생이 망가져버렸는데, 이런건 정말 누구한테 하소연해야 할까요?

<<제주 보육교사 피살 사건>>
미제 사건인줄 알았었는데, 과학 수사를 통해 이전에도 수사 선상에 올라 있었던 택시 운전사가 검거되었더군요. 사건 당시에는 피해자 사망 추정 시각에 확실한 알리바이가 있어서 빠져나갈 수 있었지만, 과학 수사를 통해 피해자 사망 시각이 재조정되어 결국 체포할 수 있었습니다. 동물 사체를 이용한 실험 결과로, 시신이 발견된 배수로는 그늘인 데다 바람이 심했고, 사후 일주일이 넘은 뒤에도 부패가 진행되지 않았다는걸 확인하는 방법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결정적 물증이 없다는 약점이 있어서 경찰은 다시 철저한 재조사에 들어갔는데, 9년 사이 미세 증거물을 증폭해 보는 기술이 발달한 덕에 다행히 추가 증거를 수집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피해자 옷에서 범인 옷과 동일한 섬유 조각이, 범인의 차에서 피해자 섬유 조각이 수집되었던 것이지요. 섬유 조각이 범인이나 피해자의 것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이렇게 교차 발견되는게 많아지면 둘이 만났다는 의심이 높아질 수 밖에 없겠지요.
이 책에서는 이렇게 수사를 통해 용의자를 구속 기소하는 단계까지만 언급되는데, 인터넷을 찾아보니 용의자는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고 합니다. 역시나, 섬유 증거만으로는 증거력이 약하네요. 그 외의 증거들도 용의자가 범인이다! 라고 하기 어려운 것들이었고요. 법원의 판단을 존중해야겠지만 결과적으로는 아쉽습니다. 언젠가 진범이 잡혀 피해자의 원한이 조금이라도 풀릴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덜미, 완전범죄는 없다 1 - 한국일보 경찰팀 : 별점 4점

2022/12/18

본인방 살인사건 - 우치다 야스오 / 이희성 : 별점 2.5점

 

본인방 살인사건 - 6점
내전강부/범조사(이루파)

<<아래 리뷰에는 진상, 진범, 그리고 트릭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바둑 기전의 하나인 '천기위' 타이틀을 놓고 본인방이기도 한 노장 다카무라 9단과 젊은 피 우라카미 8단이 격돌을 벌이게 되었다. 나루코 온천 호텔에서 펼쳐진 1박 2일의 대국에서 결국 우라카미 8단이 승리했지만, 다카무라 9단은 수를 놓는 고려시간을 의도적으로 조절하는 행동으로 패배를 자초했던 덕분이었다. 그리고 다음날, 사라진 다카무라 9단이 아라오 호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현지 경찰의 수사는 난관에 봉착했지만, 고노에 기자는 우라카미 8단의 도움을 얻어 다카무라 9단의 고려시간이 일종의 암호였다는걸 밝혀내는데....


명탐정 아사미 미츠히코 시리즈로 유명한 여정 미스터리의 대가 우치다 야스오의 작품입니다. 하지만 아사미 미츠히코 시리즈는 아닙니다. 바둑 기사인 8단 우라카미와 바둑 전문 기자 고노에가 탐정역으로 활약합니다. 우연찮게, 십 수년만에 다시 읽게 되었습니다. 십 수년 전에는 간략하게 감상 중심으로 리뷰를 남겼었는데, 이번에는 조금 더 길게 리뷰를 남겨볼까 합니다.

고노에 기자와 천기위 우라카미 8단이 탐정으로 활약하는데, 기사라는 직업의 특성을 잘 살리고 있습니다. 세가와 9단이 몰래 고쳐놓은 기보의 고려시간을 우라카미 8단이 밝혀내는 식으로요. 기사만의 굉장한 기억력을 발휘했던 겁니다. 이런 기억력은 다카무라 본인방과 살해된 사립탐정 와타나베를 연결시키는데도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본인방 유품 중 하나였던 라이터가 원래 와타나베의 것이었다는걸 기억해 낸 덕분이니까요.
핵심 트릭인 본인방이 대국 중 고려시간을 이용하여 발신한 모르스 부호도 다시 읽어보니 제 기억보다도 잘 짜여져 있더군요. 유별날 정도로 길게 고려시간을 사용한 뒤 메시지 전달이 시작된다는 점, 그리고 메시지 전달을 위해 세 가지 타입 (장, 단부호와 스페이스)의 기호가 필요했는데 세 종류의 시간을 이용한다는 발상이 고려시간과 잘 어울렸거든요. 아주 디테일하게 숫자를 맞추기 힘든 대국 중 고려시간 특성에도 딱 맞아 떨어집니다.
그 외에도 추리적으로 볼 만한 부분은 또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본인방과 와타나베 탐정을 연결하는 고리가 된 '라이터'의 주인을 추적하는 수사 과정의 디테일이 대표적입니다. 과정도 설득력이 높지만 독특한 디자인의 라이터라서 제조사를 쉽게 찾을 수 있었고, 마침 제조사 영업 담당이 바둑 애호가라 우라카미 8단을 도와주기 위해 나선다는 식으로 현실적으로 그려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본인방이 살해당했던 상황에 대한 진상도 기발했습니다. 수사 결과, 본인방은 어딘가를 차를 타고 이동하다가 내려서 다시 호텔로 걸어 돌아오던 중이었다는게 밝혀집니다. 그렇다면 범인은 본인방을 그 곳에 내려준 뒤 한참 뒤에 다시 돌아가서 본인방을 살해했다는건데, 그 이유를 알 수 없었지요. 어차피 인적도 없는 곳이었는데 왜 그 곳에서 바로 살해하지 않았을까요? 고노에와 우라카미는 범인이 사람을 잘못 태웠고, 본인방이 살인범의 차를 타고 있다는걸 깨닫고 중간에 내렸다고 추리합니다. 본인방은 세가와 9단으로부터 와타나베 탐정이 살해당했다고 이미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차에서 와타나베 탐정이 가지고 있었던 독특한 라이터를 발견해서, 이상함을 눈치챘다는 것이지요. 원래 차를 타기로 했던 세가와 9단은 본인방과 동년배 친구였고, 본인방과 마찬가지로 하오리 정장을 입고 있어서 범인이 착각했을거라는 설정 등 이를 뒷받침하는 정교한 장치들도 일품입니다.
모르스 부호를 역시 잘 알고 있었던 세가와 9단이 기보를 몰래 고치면서, 고친 부호가 범인 '아네시마'의 이름을 나타내도록 고쳤다는 결말도 아주 마음에 들었고요.
여러 지방의 풍광 묘사도 여정 미스터리의 달인답습니다. 초반 본인방 살해의 무대가 되는 나루코 지역의 상세한 묘사는 물론, 마지막 세가와 9단이 진상을 밝히고 자살하는 한시로오토시 절벽은 대단원의 무대로 나무랄데 없었습니다.

하지만 국회의원 마키노가 세가와 9단을 협박해서 천기위 기전 개최 권한을 대동신문사로부터 빼앗아 J 일보로 넘기려고 했다는게 무려 5명이라는 사람이 죽은 사건의 동기라는건 설득력이 떨어졌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천기위 기전이 넘어가는 과정에서의 불법적 요소는 전무하기 때문입니다. 본인방이 고용한 와타나베 탐정이 검은 뒷돈 거래 정도를 알아냈더라면 모르지만, 그런 언급은 아예 없어요. 이런 상황에서 사건이 확대될 위험을 무릎쓰고 살인을 저지를리 없습니다. 결국 마키노 의원 조직에 갓 합류한 운전사 아네시마가 과하게 충성심을 발휘하여 와타나베 탐정을 살해한 것이 진상이었는데, 많이 허무했어요. 그 뒤에 본인방을 살해한건 억지스럽기까지 했습니다. 드러난 동기가 없거든요. 본인방을 세가와 9단으로 착각하고 잘못 태웠다는걸 나중에 알았다손 치더라도, 그게 사람을 죽일만한 이유가 될 수는 없습니다. 와타나베 탐정이 그 차에 탔었다는 (그리고 살해당했다는) 중요한 단서인 라이터를 잃어버렸다는걸 알게되었다면 모르지만, 그렇다면 살해 후 라이터를 회수하지 않은건 이상합니다. 니미야 3단이 기보가 수정된걸 알아챘다한들, 이 역시 살해할만한 이유로 보이지는 않았어요. 수정하지 않았다고 딱 잡아 떼더라도 증거가 없으니까요. 세가와 9단의 인망이라면 충분히 그냥 넘어갈 수 있었을겁니다.
그리고 그리고 어쨌건 본인방도 일본기원 소속입니다. 천기위 기전을 어느 신문사가 주관하는지가 기사 입장에서 그렇게 중요할까요? 정해진 수익만 전달되면 기사 입장에서는 마찬가지일텐데 말이지요.

무엇보다도 최악은 세가와 9단이 범인 아네시마와 함께 자살한다는 결말이었습니다. 딸 레이코에게 씌워질 수 있는 오명을 차단하기 위해 사고사로 위장하고 자살한다는 거지요. 진상을 묻어버렸기에 마키노 국회의원은 처벌받지 않는다는 결말인데, 아무리 산 사람이 더 중요하다지만 황당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우라카미와 레이코의 행복을 위해 진상을 묻어두겠다는 고노에 기자의 행동도 별로였어요. 사람이 네 명이나 죽었는데 이걸 묻어둔다는게 말이나 되나요?
세가와 9단의 딸 레이코는 사실 마키노 의원의 딸이었고, 그 사실을 밝히겠다는 협박 때문에 범행에 가담했다는 설명은 바둑 기사들을 악역으로 만들지 않기 위한 고육지책이었겠지만, 구차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 프로 바둑 기사를 주인공으로, 기전을 동기로, 바둑 대국을 주요 무대 및 핵심 트릭의 장으로 활용한건 독특했지만, 이야기의 설득력 측면에서는 다소 아쉬움이 남네요. 평작 수준은 충분하나, 딱히 찾아 읽어봐야 할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2022/12/17

밤에 걷다 - 존 딕슨 카 / 임경아 : 별점 2점

 

밤에 걷다 - 4점
존 딕슨 카 지음, 임경아 옮김/로크미디어

<<아래 리뷰에는 진상과 트릭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파리 경시청 총감 방코랭은 스포츠 스타 살리니 공작으로부터 신변 보호 요청을 받았다. 아내 루이즈의 전남편 로랑이 협박 편지를 보낸 탓이었다. 로랑은 정신병으로 입원했다가 의사를 죽이고, 성형 수술을 한 뒤 도주 중인 위험인물이었다.
공작 부부를 만나러 페넬리의 가게에 방문한 방코랭 일행은 얼마 지나지 않아 완벽한 밀실에서 목이 잘린채 살해된 공작의 시체를 발견했다. 뒤이어 유력한 용의자였던 공작의 친구 보트렐르도 목이 베여 살해되고 말았다.
로랑은 어떻게 유럽 대륙을 건너 밀실에서 살인을 저지르고 깜쪽같이 사라졌을까?


존 딕슨 카의 앙리 방코랭 시리즈 장편. 데뷰작이기도 합니다. 괴이하면서도 신비로운 분위기, 그리고 정신병자 살인마가 괴이한 상황에서 사람 목을 베어 죽이는 간담 서늘한 묘사들은 고딕 호러물 느낌도 전해줍니다. 같은 시리즈인 <<해골성>>과 비슷하게요.

추리적으로는 밀실의 제왕 존 딕슨 카다운 밀실 살인 사건이 서두부터 등장하여 눈길을 잡아끕니다. 펠리니의 가게 3층의 방은 앞, 뒷문 모두 감시가 확실했고 (심지어 문 하나는 방코랭이 직접 감시!), 창 밖으로는 아무도 들어올 수 없었으며 비밀 통로도 일체 없었던 완벽한 밀실이었고, 용의자들의 알리바이도 완벽했거든요. 트릭이 무엇이었을지 아주 궁금하게 만들어 주었어요.
지명수배범인 로랑이 국경을 건넌 방법에 사용된 트릭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대륙에서 공작을 살해한 뒤, 공작으로 변장하고 국경을 건넌 것으로, 간단해서 현실적일 뿐 아니라 단서들 제공이 아주 공정했던 덕분입니다. 유럽 대륙을 갔다온 이후 공작이 180도 변했다는 증언과 단서들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많거든요. 공작이 마약 중독자였다는 설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를 초반부 공작의 짐은 국경에서 검사를 하지 않는다고 이야기와 연결하여 '공작이 마약 밀수를 했다'는 식으로 독자를 이끌지만, 알고보니 스포츠맨 공작은 마약 중독일 수 없으니 다른 사람이라는 결론에 이르는 단서였지요.
탐정으로서 매력은 다소 떨어지지만, 방코랭의 추리법에 대한 소개 등도 추리 애호가로서 볼 만 했습니다. 지식이나 경험없이 타고난 통찰력만으로 수사관이 될 수 없다며, 과학 수사 기법을 비롯하여 분석에 대한 전문가적인 지식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고 일갈하는데, 시대를 앞서간 생각이었어요.

벨 에포크 시대를 정면으로 다루는 배경 설정도 볼거리였습니다.. 공작 등 귀족들이 화려한 옷을 입고 자유분방한 연애를 하며 마약을 빨면서 검술 대결을 펼치는데, 자동차를 타고다니고 전기불이 존재하는 이색적인 세계의 풍광이 잘 묘사되어 있으니까요. 분명 존재했던 과거인데 이상할 정도로 비현실적이라서 이런 곳이라면 명탐정과 미치광이 연쇄 살인범이 있어도 자연스러울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일제 강점기 당시, '마굴'이라 불렸던 상하이 분위기가 비슷하지 않았을까 싶네요.

하지만 딕슨 카의 다른 걸작들에 비하면 많이 처집니다. 추리적인 부분에서의 문제가 너무 커요. 밀실 트릭부터가 알고보면 별게 아니었거든요. 설명도 부족했고요. 공작 (으로 변장했던 로랑)은 이미 11시경에 부인에게 살해당했고, 11시 30분에 목격된 공작은 보틀레르의 변장(?)이었다는 트릭이 사용되었습니다.
문제는 카드룸 입구를 지켜보는 경찰 눈에 뜨이지 않고 흡연실로 들어갈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카드룸 문은 벽 때문에 홀에 서 있는 그 누구라도 문을 볼 수 없었다나요. 그렇다면 이건 밀실이 아니었던 겁니다! 이런걸 현장에 있었던 명탐정 방코랭이 몰랐다는게 말이나 될까요? 게다가 이 중요한 사실이 독자에게는 제대로 설명되지도 않습니다. 맨 첫 장에서 약도가 제공되기는 하나 이 정도로는 부족했어요.
보틀레르가 아무런 변장도 하지 않고 로랑처럼 보였던 이유, 루이즈 부인 몸에 반드시 튀었을 핏자욱은 어떻게 처리했는지 등 설명되지 못한 점도 너무 많습니다. 보틀레르가 가발이라도 썼더라면 모를까, 여러모로 억지스러워서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네요.

처음에 등장해서 살해당했던 살리니 공작은 변장한 로랑이었다는 트릭도 억지스러웠습니다. 아무리 연기력이 뛰어나고 얼굴이 닮았다 하더라도, 주위 사람들이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는건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지금도 아니고, 이 당시 성형수술 수준은 별볼일 없었을텐데 말이지요. 옛 친구야 안 만났다쳐도, 공작 가문의 오래된 변호사 키라르의 눈까지 속였다는건 지나쳤어요.
또 변장에 성공했는데, 자기 자신을 협박하는 편지를 써서 경찰에 신변 보호 요청을 한 이유도 모르겠습니다. 특별히 경찰과 게임을 하고 싶었던 것 같지도 않고, 그나마 생각해 볼만한건 자기 과시지만 그걸 위해서는 잃는게 너무 많아서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보였습니다. 방코랭의 추리대로 루이즈 부인을 살해하고 도주할 생각이었다면, 경찰을 부를 이유는 없었어요.

루이즈 부인의 자백만으로 마무리되는 결말도 그닥이었습니다. 첫 번째 범행은 그렇다쳐도, 보틀레르를 살해할 때의 증거는 이미 방코랭이 차고 넘치게 모은 것으로 보여서, 구태여 자백은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녀가 남자들에게 농락당한 기구한 인생이라는게 잘 그려지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이용한 남자들을 깔끔하게 살해한 팜므 파탈로 보기에는 범행이 허술해서 이도저도 아닌 캐릭터가 되어 버리고 말았어요.
게다가 루이즈 부인이 모든 트릭과 살해 방법을 스스로 말하는 탓에, 방코랭은 별로 하는게 없다는 문제도 큽니다. 모든 트릭을 알아챘다고는 하지만, 정작 하는거라고는 루이즈 부인의 자백에 추임새를 넣는 것 밖에 없어서 이게 과연 명탐정인가 싶더라고요. 물론 진짜 공작의 시체를 발견하고, 루이즈 부인이 진범이라는걸 알아내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명탐정이라면 마지막 루이즈 부인 자백에서도 뭔가 존재감을 보여주었어야 했습니다. 이런 점이 방코랭을 다른 딕슨 카의 명탐정들만큼이나 기억에 남지 못한 이유가 아니었나 싶네요.
화자인 미국인 제프 역시, '사랑꾼' 으로의 모습 말고는 아무런 활약을 보이지 못해서 인상이 흐릿한건 마찬가지에요.

그래서 제 별점은 2점. 절판된지 오래인데, 구태여 구해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번역 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가독성도 떨어지는 편이고요.
오래전 처음 읽었을 때에는 아주 좋았던 기억이 남아있는데, 나이를 너무 많이 먹었나봅니다. 제가 읽었던 딕슨 카 작품 중에서는 최악입니다.

2022/12/11

새로운 단어를 찾습니다 - 사사키 겐이치 / 송태욱 : 별점 2점

새로운 단어를 찾습니다 - 4점
사사키 겐이치 지음, 송태욱 옮김/뮤진트리

일본의 국어 사전 산세이도와 신메이카이를 현재의 모습으로 이끌었던 편집 책임자 겐보와 야마다의 일생과 갈등에 촛점을 맞춘 논픽션. NHK의 다큐멘터리를 책으로 엮은 듯 하네요.
이전에 읽었었던 <<사전, 시대를 엮다>>처럼 사전의 역사를 그린 일종의 미시사 서적일걸로 생각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사전을 어떻게 만드는지 디테일을 알 수 있을 걸로 기대했고요. 하지만 생각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책의 핵심은 순수하게 '단어'에 집착하여 평생을 바친 겐보 선생과, 스스로의 생각과 주장이 더 중요했던 야마다 선생의 갈등이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읽다보면 야마다는 도무지 용서가 안되는 그런 사람이라서, 이걸 갈등이라고 표현할 수 있나 싶더군요. 겐보 선생은 '산세이도'와 '신메이카이' 두 권을 동시에 진행하기가 힘들어 부득이하게 조수 야마다에게 '신메이카이'를 맡겼을 뿐입니다. 그러나 야마다는 대뜸 그걸 가로채버리고 말았을 뿐 아니라, 심지어 겐보 선생이 '사고를 당했다'는 거짓 정보를 뿌려 자신이 사전을 빼앗은걸 정당화하고, 겐보 선생이 모았던 용례까지 멋대로 사용했던 인간말종이었으니까요.

실력면에서도 겐보 선생이 한수 위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야마다는 사전은 문명 비평이라는 신념을 지니고 있었다고 하는데, 본인 시각으로 당시 문명을 비평하는건 신문 사설이라면 모를까, 사전이라는 컨텐츠에는 절대로 맞지 않는 방식입니다. 현재 '신메이카이' 편집 책임자 구라모치 야스오 역시 "흔히 말하는 '사전은 공기(公器)'라는 생각과 '사전은 문명 비평'이라고 하며 주관적인 사상이나 비판을 말하는 것은 모순되지 않을까요?“라며 이 방침에 동조할 수 없었다니 말 다 했지요. 자기 후임조차 동조할 수 없었던, 그의 세대에서 수명이 끝나버린 신념이었던 셈입니다.
이보다는 사전은 말을 비추는 거울이고, 말을 바르게 하는 귀감이라는 겐보 선생의 '가가미론'이 더 사전에는 어울리는 신념이자 이론임에는 분명해 보였습니다. 이 이론을 관철하기 위해 평생 145만 개나 되는 용례를 모은 겐보 선생의 실천력 역시 임기응변과 재미있는 말을 지어내는데 그쳤던 야마다보다 훨씬 사전에 어울렸고요.

하지만 단지 '재미있는 해설이 있다' 며 신메이카이 사전 쪽이 더 인기를 끈다니 좀 억울한 느낌도 듭니다. 그 '재미있는 해설'도 아래와 같은 것들인데, 재미 측면에서는 나쁘지 않고 나름대로 문명 비판적인 부분이 없지는 않지만 저는 이렇게 주관적인 해설이 쓰인 사전을 구입하고 싶지는 않네요.
연애(愛) : 특정한 이성에게 특별한 애정을 품고 둘만이 함께 있고 싶으며 가능하다면 합체하고 싶은 생각을 갖지만 평소에는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아 마음이 몹시 괴로운 (가끔 이루어져 환희하는 상태. - 신메이카이 국어사전 제3판
공약(公約) : 정부정당 등 공적인 위치에 있는 자가 세상 사람들에게 약속하는 일. 또한 그 약속. [금방 깨지는 것에 비유된다]
정계(政界) : [불합리와 금권이 행세하는] 정치가들의 사회. - 신메이카이 국어사전 제3판
부락(部落) 여러 채의 농가. 어가 등이 한 덩어리로 뭉쳐 있는 곳. [협의로는 부당하게 차별당하고 박해받은 일부 사람들의 부락을 가리킨다. 이런 편견은 하루빨리 없애는 것이 바람직하다] - 신메이카이 국어사전 제2판

그래서 제 별점은 2점. 기대와 전혀 달랐을 뿐 아니라, 내용에 동조하기 힘들어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구태여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2022/12/10

도대체 무엇이 동기? 와이더닛을 만끽할 수 있는 걸작 미스터리들

* 언제나처럼 honto의 북트리 서비스를 통한 추리 소설 추천. 국내 소개된 작품은 3편인데, 다 좋은 작품들입니다. '와이더닛'에 촛점이 맞춰졌다기 보다는, 서정적이면서도 깊이있는 문학적인 묘사에 촛점이 맞춰진게 아닌가 싶기는 하지만요.


'와이더닛', 즉 'Why done it'은 미스터리의 세계에서는 "왜 범행을 저질렀는지?"를 밝히는게 핵심인 미스터리 작품을 의미합니다. 불가능 범죄 상황과 연결되는 경우가 많아서, 미스터리 작품의 장점을 모아 놓았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런 와이더닛 걸작을 소개해 드립니다.

"토오미 사건, 사토 마코토는 왜 목을 절단했을까?" 요미사카 유지 : 국내 미출간
80개가 넘는 살인을 저지른 연쇄 살인범 킬러 사토 마코토의 이야기를 작가 요미사카 유지가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쓴 미스터리. 다른 범행은 모두 완벽하게 저질렀는데 토우미 사건에서만 예외적으로 목을 자른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한, 심플한 와이더닛이면서도 저자 특유의 비틀림이 더해진 작품.

"동기" 요코야마 히데오
"64" 등 장편 소설이 영화화되고 있는 요코야마 히데오는 단편에서도 뛰어난 재능을 보인다. 이 단편집에는 4명의 주인공이 등장하는데, 각자만의 '왜?"를 능숙한 인물과 심리 묘사로 그려내고 있다. 저자의 세계관이 가득 담긴 주옥과 같은 4편의 단편들을 즐겨 보시길.

"칼과 우산" 이부키 아몬 : 국내 미출간
에도 막부 말기에서부터 메이지 시대까지 격동의 교토를 무대로, 실존인물이었던 에토 신페이와 가공의 무사를 탐정역으로 하여 전개하는 연작 역사 미스터리. 사형 집행 당일 왜 죄수가 살해되었는지를 쫓는 "감옥사의 살인", 도서 추리물이자 우수한 와이더닛물인 "벛꽃" 등의 걸작이 수록되어 있다. 시대 배경을 살린 두 주인공의 관계 변화에도 주목하면 좋을 단편집.

"외침과 기도" 시자키 유우
주인공이 방문한 이국에서 일어난 여러가지 사건과 수수께끼를 밝혀나가는 5편의 단편이 이어지는 연작집. 걸작인 "사막을 달리는 뱃길"을 시작으로, 이국의 풍경과 문화를 서정적이면서도 환상적인 필치로 그려내고 있다. 수록작 모두 동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매력적인 수수께끼로 가득 찬 좋은 와이더닛물이기도 하다.

"회귀천 정사" 렌조 미키히코
다이쇼에서 쇼와 시대를 무대로, '꽃'을 모티브로 한 5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수록작 모두 선명한 와이더닛물로 렌죠 미키히코의 요염하면서도 유려한 문장에 대한 평가도 높은, 미스터리의 틀에만 담기에는 아까운 불후의 명작.

한밤의 미스터리 키친 - 이시모치 아사미 / 김진아 : 별점 2점

 

한밤의 미스터리 키친 - 4점
이시모치 아사미 지음, 김진아 옮김/알에이치코리아(RHK)

<<아래 리뷰에는 진상과 트릭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래전, <<귀를 막고 밤을 달리다>>와 <<문은 아직 닫혀 있는데>> 등으로 접했던 이시모치 아사미의 최신작. 제가 읽었던 전작들과는 분위기가 전혀 다른, 전형적인 일상계 연작 단편집입니다.
수록작 모두 친한 부부 - 화자인 나 (후유키 나쓰미)와 겐타 부부, 나가에와 나기사 부부 - 가 가족들끼리 술과 맛있는 요리를 먹는 모임을 가질 때 안주와 연관되는 약간의 수수께끼가 있는 이야기와 여러가지 추리를 나누는데, 모두가 생각도 못했던 숨겨진 진상을 나가에가 추리해낸다는 내용으로, 마지막 작품인 <<일석이조>>만 후유키 부부의 아들 다이가 탐정역으로 나올 뿐 구성은 똑같습니다.

수록작 중 두 작품은 꽤 마음에 들었습니다. 첫 번째는 <<하루씩 차이난다>>입니다. 아는 쌍둥이 초등학생이 있는데, 부모는 쌍둥이를 같은 학원에, 서로 다른 요일에 보냈습니다. 학원이 꽤 멀어서 자동차로 이동해야 했는데도 말이지요.
아이들이 게임을 너무 좋아해서 번갈아 실컷 하도록 그랬다는 등의 이런 저런 추리가 이어지지만, 나가에가 쌍둥이가 야무졌다는 말로 상황을 정리합니다. 함께 살던 조부모가 아픈 탓에 둘 중 한 명은 항상 집에 남아 비상 상황에 대비했어야 했던 거라면서요. 추리에도 대한 든거, 단서로 다는건 옛스러운 쌍둥이 자매 이름과 엄마가 너무 바빴다는 것, 그리고 쌍둥이 자매가 초등학생치고는 야무졌다는 것으로 꽤 합리적이었습니다.
<<일단 헤어졌다 다시 합친다>>에서는, 회사에서 미혼모가 되었던 미호 씨가 출산하고 2년 뒤 같은 회사의 노모토 씨와 결혼한 이야기의 진상이 그려집니다. 미호 씨의 아이는 노모토 씨와 똑 닮았고, 그녀도 아이 아빠가 '노모토 씨'라는걸 부정하지 않았는데 왜 출산 후 2년이나 지나서 결혼했을까요? 나가에가 추리한 진상은 노모토 씨는 아이 아빠의 동생이었다는 겁니다. 아이 아빠였던 형이 결혼 직전 불의의 사고로 죽었고, 그런 형수와 조카를 가까이하며 돕다가 결국 결혼하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이를 위해 미호 씨가 임신 사실을 알리기 전 사흘 정도 회사를 쉬고 초췌한 얼굴로 출근했었다 - 연인이 사망했기 때문 - 는 등의 단서를 깨알같이 배치하여 설득력을 높이고 있습니다. 원서를 읽어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노모토 지로의 이름이 한자로 등장하는지 좀 궁금하네요. 나름 결정적인 단서라서요.
마지막 작품인 <<일석이조>>는 본편 추리보다는, 책을 읽기 싫어하고 공작을 좋아하는 초등학생이 방학 숙제용 독서 감상문으로 공작 키트 조립 설명서 감상문을 제출했다는 기상천외한 발상과 결말에서 드러나는 일종의 서술 트릭이 더 볼만 했습니다. 두 가족의 아들 딸인 다이와 사키가 알고보니 어른이 된 시점이었다는 겁니다. 그리고 둘이 결혼을 약속한다는 결말로 이어지는데, 작품의 마무리로는 안성맞춤이었다 생각되네요.

그러나 다른 작품들은 추리가 비약이 심해서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산 넘어 산>>에서는 상사로부터 필요 없다는 안마의자를 받았지만, 기껏 운반한 뒤 현관문을 통과할 수 없다는걸 알게되어 우여곡절 끝에 결국 돈을 내고 재활용 폐기물로 버렸다는 다노이 씨 부부 이야기가 나옵니다. 나가에는 이건 모두 다노이 씨 부인의 계획이었다고 추리하지요. 근거는 미니밴을 불러서 옮길 정도면 당연히 치수를 쟀을테고, 현관문 크기도 새로 이사를 갔으면 알고 있었을텐데 그걸 알고도 무리해서 옮겼다는 것, 그리고 집에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가 있어서 구식 안마의자는 위험했는데 구태여 받아들였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통해 상사가 필요하면 가져가라고 했지만, 부하직원 입장에서 그걸 거절못해 생긴 해프닝이라면서요. 하지만 이럴거면 미니밴으로 집으로 옮기는 시늉은 필요 없었습니다. 그냥 쓰레기장으로 직행하면 되지요. 분해를 해 가면서까지 집 안에 들이려는 시도는 억지스러웠어요. 상사 체면을 세워주기 위해서였다 해도, 동네 주민들에게는 사실을 알리지 않을 이유도 없습니다.
<<어느새 다 되어 있다>>는 입시에 열을 올렸던 엄마의 아이 마사키는 3지망 학교에 합격했고, 아이를 방치했던 엄마 아이 노아는 1지망 학교에 합격했던 이야기의 진상인데 이건 추리라고 하기 힘듭니다. 애초에 '아이를 집에서 가르칠 자신이 없어 입시 학원에 보냈다'는게 어떻게 '아이를 방치했다'라고 주위에 알려졌는지를 잘 모르겠네요. 입시 학원에 주말에도 열심히 다닌 아이가 1지망 학교에 합격한건 전혀 이상한게 아니잖아요? 그리고 이야기를 전한 후유키 나쓰미는 자기 아들이 초등학교 4학년인데도 불구하고, 노아와 마사키가 입학한 학교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는걸로 묘사되는데 이 역시 납득하기 어려웠고요.
그 뒤 이어지는 나머지 세 편의 이야기는 추리적으로는 아예 볼게 없는 수준이었습니다.
남의 이야기로 추리를 쏟아내는 모임도 비현실적이며, 나가에가 한 마디하면 정적에 빠진다는 묘사도 촌스러웠습니다.주위에서 일어났던 이야기를 풀어내는거라, 어차피 진상은 아무도 모른다는 단점도 크고요.

하지만 추리적인 부분보다도 마음에 들지 않았던건 기대했던 요리, 음식과의 조화가 영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요리나 음식이 추리의 핵심 요소로 사용되는걸 기대했었는데, 사건 이야기를 끌고 오기 위한 소재에 불과했기 때문입니다. 사건 이야기와 엮는 것도 몇몇 사건은 억지스러웠습니아. <<산 넘어 산>>이 대표적입니다. 로스트비프를 잘 썰지 못한건 다소 아쉬움이 있는 정도일 뿐, '산 넘어 산'이라고 표현하는건 잘못된 경우지요. 무슨 일을 도모하는데 예상못한 어려움이 닥친 상황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문어 안 든 다코야키>>를 '엘리트인데 속에 든게 없다'는 신지 아빠에게 빗대는건 잘못된 것이었고요. 엘리트라는 것 자체가 문어가 든 다코야키잖아요?
음식, 요리 묘사도 상식적인 수준이며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아서 먹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 소소한 일상계로 가볍게 즐길만은 하지만, 추리적으로나 요리 측면으로나 모두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딱히 권해드릴 작품은 아닙니다.

덧붙이자면, <<일단 헤어졌다 다시 합친다>>에서 아이 얼굴이 아빠와 닮았다는 표현을 "빼쐈다" 라고 번역했는데, "빼쏘다"가 사전에 있는 말이기는 해도 "빼닮았다"가 더 일반적인 단어가 아니었을까 싶네요.

2022/12/04

"시간표 트릭"이라는 하나의 장르를 확립한, 만족도 높은 철도 미스터리 걸작들.

* 언제나처럼 honto의 북트리 서비스를 통한 추리 소설 추천입니다. 그런데 소개작 중 <<오리엔트 특급 살인>>은 기차 시간표 트릭이 사용된건 아니니, 제목은 조금 잘못된 셈입니다. 기차가 주요 무대이자 소재인 작품들이라고 하는게 맞았을거에요. 아니면 <<오리엔트 특급 살인>>을 빼고, 니시무라 교타로 작품을 넣는게 맞지 않았을까 싶네요.

'움직이는 밀실'이라고 하는 점이 소재로서도 다루기 쉽기 때문일까요? 열차는 미스터리의 무대로 자주 등장합니다. 또한 일본에서는 초 단위의 정확한 운행을 이용한 '시간표 트릭' 이라는 독자적인 미스터리 문화도 탄생했지요. 차내에 숨어있는 범인, 시간표가 만들어내는 알리바이...... 여행의 과정보다는 수수께끼 풀이에 비중을 두고 있는 철도 미스터리, 그 걸작들을 소개해 드립니다.

<<오리엔트 특급 살인사건>> 애거서 크리스티
크리스티의 수많은 대표작 중에서도 여러 번 영상화된 덕분에 특히 유명한 작품. 터키에서 프랑스행 오리엔트 특급을 탄 명탐정 푸아로가 열차 안 밀실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을 조우한다는 이야기. 푸아로는 용의자들의 철벽 알리바이를 대화라는 무기로 무너뜨린다. 수수께끼 풀이의 순도가 높은 미스터리 작품.

<<점과 선>> 마츠모토 세이초
일본 미스터리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작품. 시간표를 사용한 '알리바이 트릭', 그리고 현실적인 배경과 사회성을 가진 사건을 그린 '사회파 미스터리'의 융합은 이후 미스터리계에 큰 영향을 주었다. 60년 이상 전에 쓰여진, 고전 중 고전인 철도 미스터리.

<<인형은 왜 살해되는가>> 다카기 아키미쓰
인형을 이용한 연쇄 예고 살인에 명탐정 가미즈 교스케가 도전하는 다카기 아키미츠의 대표작 중 하나. 첫 사건은 단두대에서 인형의 목이 잘린 후, 두 번째 사건은 열차에 인형이 치인 뒤 똑같이 실행된다. 제목인 '인형이 왜 살해되는지?'가 작품의 핵심이며, '독자에 대한 도전장'까지 포함되어 있는, 범인 찾기의 흥취를 즐길 수 있는 걸작.

<<검은 백조>> 아유카와 데쓰야 : 국내 미출간
철도 미스터리뿐만 아니라, 수많은 알리바이 트릭을 이용한 작품을 발표한 작가가 창조한 '오니츠라 경부' 시리즈 중 하나. 살인 사건 수사선상에 떠오른 용의자를 오느츠라 경부가 꾸준한 수사를 통해 조금씩 몰아붙인다. 맹점을 찌르는 시간표 트릭에 논리적인 추리가 합쳐진 추천작.

<<신칸센 살인사건>> 모리무라 세이이치
<<인간의 증명>>, <<고층의 사각>> 등으로 알려진 모리무라 세이이치가 발표한 첫 번째 철도 미스터리. 신칸센 열차내에서 발견된 시체는 엑스포 이권을 두고 다투고 있던 연예 프로덕션 실력자였다. 용의자는 후속 차량에 승차하고 있어 범행은 불가능하다고 생각되었다.... 연예계의 어두운 부분을 날카롭게 파고드는 작품.

덜미, 완전범죄는 없다 1 - 한국일보 경찰팀 : 별점 4점

덜미, 완전범죄는 없다 1 - 8점
한국일보 경찰팀 지음/북콤마

국내에서 과학 수사를 통해 해결했던 여러 사건들을 정리한 논픽션. 2부 구성으로 모두 22건의 사건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1부는 특정 과학 수사 기법이 해결에 핵심 역할을 담당했던 대표적인 사건들이 소개되고 있어서, 해당 수사 기법에 대해 이해를 돕는 구성입니다. 현장 검증과 검시는 물론이고, 비산 혈흔 등 혈흔 형태 분석, DNA 분석, 프로파일링, 법 최면, 지문 감식, 지리 프로파일링 등이 등장하며, 수사 기법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물론이고 전문가들에 대한 인터뷰 등 부가 자료들도 빠짐없이 수록되어 있어서 이해를 돕습니다. 사건도 밝혀진 모든 내용이 소개되고 있으며, 사건 현장 사진과 도해로 구성된 사건 상황 등 도판도 완벽합니다.
2부는 완전 범죄를 노렸지만, 수사관들이 끈질긴 수사로 밝혀낸 사건들이 담겨 있습니다. 사건에 대한 소개는 1부와 마찬가지로 완벽한 수준이에요. 그래서 별점은 4점. 우리나라 범죄를 다룬 논픽션 중에서는 최고 수준이라 생각됩니다. 아직 읽어보지 않으신 분들께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덧붙여, 몇 가지 기억에 남는 사건들을 아래와 같이 소개해 드립니다.

첫 번째는 <<마포 만삭 의사 부인 살해 사건>>입니다. 의사 남편이 만삭 부인을 살해했던 엽기적인 범행으로, 피고인 남편 측에서 캐나다 법의학 전문가까지 증인으로 불러 법정 다툼이 있었던게 아직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그런데 내용을 읽어보니, 남편 범행이 확실하더군요. 피해자의 목졸림 흔적과 얼굴과 몸의 멍자국, 저항하다 생긴 것으로 보인 손톱 밑의 남편 DNA 등 현장 증거가 뚜렸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남편 쪽에서 주장했던, "욕조에서 넘어져 죽은 것 같다"는걸 설명할 수 없는, 피해자 몸의 혈흔과 상처가 결정적인것 같아요. 욕조에서는 혈흔이 발견되지 않았으니까요.
<<양양 일가족 방화 사건>>은 무식한 범인이 교과서처럼 단서를 남긴 범행이라 기억에 남습니다. 현장 검증과 검시로 피해자 일가족 시신에서 수면제가 검출되어 누군가 방화를 저지른게 명백하다는게 드러났습니다. 그런데 범인은 경찰 진술에서 필요도 없는 말을 해 가며 자살이 맞다고 주장했고, 결국 현장에서 발견된 차용증 등으로 동기마저 드러나버리고 말았지요. 범행 직후 소방차를 따라 다시 현장에 나타난 것까지, 하는 행동 모두가 추리 소설에 흔히 등장하는 단순 무식한 범인을 연상케합니다. 아울러 고작 2,000만원도 안 되는 돈으로 어린 소녀가 포함된 네 명의 일가족을 참혹하게 살해한 범인에게 무기징역은 너무 관대한 선고였습니다. 능지처참하고 저잣거리에 효수를 했어야....
<<서울 광진구 주부 성폭행 사건>>은 그야말로 한 편의 추리소설 같은 이야기였습니다. DNA 감식을 통해 드러난 범인은 범행 당시 수감 중이었지만, 과학수사관 권경사의 추리 덕분에 진범이 체포되기 때문입니다. 범인은 수감 중인 용의자의 일란성 쌍동이라는 추리였지요.
<<60대 남녀 변사 사건>>은 단순 자연사로 보였지만, 현장 검증을 통해 몇 가지 이상한 정황이 포착되어 살인 사건이라는게 드러난 경우입니다. 현장에서의 구토 흔적과 기묘한 자살 시도 흔적, 그리고 자연사는 이불 한 장만 반듯이 덮고있는게 일반적인데 이불 두 장이 포개져 쌓여 있었던 것, 피해자 옷과 맞지 않았던 방에 떨어져 있던 단추 등이 단서가 되었습니다. 검시 결과도 살인 사건임을 증명해 주었고요. 현장 상황과 시신의 모습 등을 분석하는 과정이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안성 부부 살인 사건>>은 프로파일링이 사건 해결에 핵심 역할을 했다는 데에서 주목할 만 합니다. 잔혹한 현장 모습으로 청부 살인이나 원한 살인이 의심되었지만 프로파일러들은 "돈을 목적으로 한 범죄이며, 근처에서 일어났던 침입 사건의 범인과 동일인물일 것이다. 침입이 발각되어 과도한 공격으로 피해자들을 살해했고, 불을 지르고 도주했다. 최근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몰린 사람이며, 피해자들은 물론 마을을 잘 알고 있는 면식범일 것이다"는 그림을 그려냈습니다. 이는 실제 범인 모습과 일치했지요. 어떻게보면 좀 뻔한데, 현실은 픽션과는 엄연히 다르다는걸 새삼 깨닫게 됩니다.
<<양주 전원 주택 살인 방화 사건>>을 통해서 지문은 고온에서는 수분이 증발하면서 흔적 자체가 사라지는 특성이 있어서, 화재 현장에서는 '열 사각 지대'에서 집중적으로 지문을 채취한다는 등 실제 현장에서의 지문 감식에 대해서 상세하게 알 수 있었고, <<의정부 연쇄 절도 사건>>은 이름도 생소한 '지리 프로파일링'을 접하게 해 주어 좋았습니다. 범죄가 발생한 장소와 시간을 토대로 범인이 머무는 곳과 다음 범행 장소를 예상하는 과학수사 기법이라는데, <<넘버스>>에서 비슷한 이야기가 소개되었던 적이 있지요. 실제 사건을 해결할 정도로 정립된 기법이라는건 처음 알았습니다.

2부의 <<고급 전원주택 연쇄 강도 사건>>은 완전 범죄를 노린 3인조 일당들이 증거를 남기지 않고 전원 주택을 털었던 사건으로, 집에 설치된 폐쇄 회로 TV는 본체까지 뜯어서 들고갔고, 현장에 남긴 담배 꽁초도 어디선가 주워와 일부러 흘리는 등 굉장히 치밀하게 범행을 저지른 사건입니다. 범행 장소를 오간 차량이 없었다는게 특히 주목할만 합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전원 주택이 산과 가깝다는걸 이용하여, 목표지 인근까지 대포차로 이동한 뒤 야산에서 하루 노숙을 하고 범행을 저질렀다고 하는군요. 현장에 일부러 뿌린 꽁초 중 동일한 DNA가 검출된 탓에 덜미가 잡히고 말았지만, 정말로 대단한 지능범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부산 교수 부인 살인 사건>>은 한 때 뉴스를 도배했던 사건이라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당시는 범죄 전문가 교수가 경찰과 두뇌 싸움을 벌인 것이라는 인식이 있었는데, 사건 개요를 읽어보니 별다르게 머리를 쓴 부분은 없어서 놀랐습니다. 내세운 알리바이도 엉망이었고, 내연녀를 동원한 시체 유기도 곧바로 경찰에 발각되어 버리고 말았으니까요. 언변만 빼어날 뿐 일개 잡범 수준에 불과했어요. 차라리 앞서의 고급 전원주택 연쇄 강도 사건 범인들 수준이 더 높았습니다. 범인의 직업이 선입견을 만든 대표적인 경우라 할 수 있겠네요. 이런것도 일종의 미스디렉션이겠지요.

2022/12/03

그 남자의 시계 - 맷 흐라넥 / 배상규 : 별점 1.5점

그 남자의 시계 - 4점
맷 흐라넥 지음, 배상규 옮김, 스티븐 루이스 사진/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남자들이 소장하고 있는 명품 시계에 대해서 화려한 사진과 함께 소개해주는 책. 대략의 정보만으로 읽어본 이유는, 비록 소장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기계식 시계는 개인적으로 관심을 갖고 있는 아이템이기 때문입니다. 과거 이런 글을 올렸을 정도로요.

그런데 영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역사적이고 유명한 시계가 아니라 말 그대로 '그 남자의 추억이 어린' 시계들을 소개해주고 있는 탓입니다. 시계는 이야기를 끌어내는 소재일 뿐이고, 시계보다 얽혀있는 추억과 이야기들이 더 의미가 있다...는 내용이거든요. 잔잔하니 나쁘지는 않지만 시계 자체의 역사와 의미에 집중하고 싶었던 저 같은 독자에게는 거의 무의미한 내용이었습니다.
게다가 '그 남자' 들은 어차피 시계 관련 인물이 많으며, 기계식 시계를 어렵지 않게 살만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도 문제에요. 물려받았다며 소개하는 시계들이 대표적이지요. 가족들이 고가 시계를 수집했다는 뜻이니 결국 타고 나면서 금수저 집안이었다는 거잖아요? 그래서 내용도 별로 와 닿지 않았습니다.

사진도 오래된 세월이 잘 드러나도록 촬영되어 있는데, 호불호가 갈릴 듯 합니다. 폴 뉴먼의 아내가 폴에게 선물로 주었다는, 무려 200억원이라는 가격으로 거래되었던 시계는 뒷면의 문구를 통해 사랑과 세월을 동시에 느끼게 해 주지만, 대부분은 그냥 오래된 소장품이구나 싶은 생각만 들게 만들었거든요.
소개되는 시계들도 롤렉스 등 다소 뻔한 명품 시계가 많고, 시계 역사상 유명한 독특한 제품이 소개되지도 않습니다. 카시오 지쇼크, 스와치 등 저가 모델도 간혹 보이기는 하지만 비중이 높지 않습니다.

그래도 꽤 많은 시계들이 소개되는 덕분에 몇몇 시계는 기억에 남네요. 제임스 본드가 찼던 '버즈 소 Buzz Saw' 롤렉스 서브마리너레퍼런스 5513이 대표적입니다.

Die 20 besten „James Bond“-Gadgets

실베스터 스탤론이 올맨 브라더스 밴드의 리드 싱어 그레그 올맨이 차고 있는걸 보고 홀딱 반해 구입했다는 롤렉스 티파니 앤 코 서브마리너 금시계 레퍼런스도 꽤 인상적이었고요. 각 시계 브랜드들 수장고를 돌면서 찍은 여러가지 시계들도 재미있는게 많았습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제 별점은 1.5점입니다.

2022/11/27

몸값과 생명을 둘러싼 속고 속이는 공방이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유괴 미스터리 걸작

* 자주 소개드리는 honto의 북트리 서비스를 통한 추리 소설 추천으로, 이번에는 유괴가 주제인 작품들입니다. 일본 작품만 선정하지 말고, <<킹의 몸값>>과 같은 유명 해외 고전도 포함시키는게 좋았을 것 같네요.유괴는 현재 진행형으로 이뤄지는 범죄를 말합니다. 범인과 피해자, 경찰간의 몸값과 생명을 둘러싼 긴박한 공방, 그리고 이 과정에서 서로를 어떻게 속일 것인지?는 소설의 주제로 매력적입니다. 이런 유괴 주제 미스터리 소설 중에서, 끝까지 결말을 읽지 않을 수 없는 걸작을 골라보았습니다.

<<99%의 유괴>> 오카지마 후타리 : 국내 미출간
오카지마 후타리는 '납치의 오카지마', '유괴의 오카지마' 라고 불릴 정도로 유괴 소설의 명수이다. 이 작품은 30여년 전에 발표되었지만, 당시로서는 보기 드물었던 컴퓨터 등의 첨단 기기를 동원하여 치밀한 유괴 범죄를 그리고 있다.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알리바이도 완벽하고, 증거도 남기지 않은 완전 범죄의 행방에 주목해 보시길.

<<게임의 이름은 유괴>> 히가시노 게이고
광고 크리에이터 사쿠마는 자신의 프로젝트를 망친 원수 카츠시로의 딸과 공모하여 가짜 유괴 사건을 저지른다. 몸값은 3억엔. 유괴와 몸값을 중심으로 등장인물들의 속셈이 서로 엇갈리며 사태는 의외의 방향으로 굴러간다. 유괴를 순수 두뇌 게임으로 그린 걸작.

<<대유괴>> 덴도 신
감옥에서 알게 된 3명의 남자들이 인생 한방!을 목표로 대부호 할머니를 유괴한다. 그런데 이 할머니가 오히려 유괴범들을 손아귀에 넣고, 그들의 범행을 자기 시나리오로 바꾸어 버린다. 이를 통해 5천만엔이었던 몸값이 100억엔으로 늘어나면서 엄청난 매스컴의 주목을 받는 '대유괴'로 바뀌어 가는 모습이 압권인 작품.

<<유괴의 과실>> 신포 유이치 : 국내 미출간
종합 병원 병원장의 손녀가 유괴된다. 범인의 요구 사항은 몸값이 아니라 입원 환자를 죽이라는 것. 그 입원 환자는 정계의 거물이자 재판 중인 피고였다. 그리고 이 사건과 동시에 '몸값 대신 특정 주식을 사라'고 요구하는 또 다른 유괴 사건이 일어나는데... 두 개의 유괴 사건이 얽히며, 이야기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작품.

<<1의 비극>> 노리즈키 린타로
야마쿠라 가문에 아들을 유괴했다는 전화가 오는데, 실제로 유괴된건 지인의 아들 시게루였다. 잘못 유괴했다는걸 범인에게 숨긴채 야마쿠라는 몸값을 전해 주려 노력하지만, 사소한 실수로 시게루는 살해당하고 만다. 유력한 용의자였던 남자마저 살해당한 뒤 명탐정 노리즈키 린타로가 나서고, 사건은 의외의 전개를 맞이하게 된다.

로그 메일 - 제프리 하우스홀드 / 이나경 : 별점 2.5점

로그 메일 - 6점 제프리 하우스홀드 지음, 이나경 옮김/arte(아르테)

<<아래 리뷰에는 결말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국의 고위층 명사가 유럽 어딘가의 독재자를 암살하려다가 체포되었다. 진짜로 죽이려고 했던건 아니고, 심심풀이로 벌인 게임에 지나지 않았지만, 독재자의 부하들은 모진 고문 뒤 사고로 위장해 죽이려 했다.
다행히 목숨을 건진 그는 천신만고 끝에 영국으로 돌아오지만, 독재자의 부하들이 여전히 자기를 노리고 있다는걸 알게 되었다. 불명예를 걱정한 그는 국가의 도움을 받지않고 홀로 도주하여, 과거 추억이 어려있던 도싯 지방에 은신처를 마련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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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대전 직전인 1939년 출간된 전설적인 서스펜스 스릴러.
사실 저는 제목만 보고 최첨단 IT 소재물이라고 착각해 왔었습니다. Log mail이라고 생각했었거든요. 알고보니 Rogue Male 이더라고요! 외톨이 수컷, 일본식 표현으로는 한마리 외로운 늑대와 비슷하겠지요? 일종의 사냥감이지만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하며, 가끔은 흉폭함과 야성을 드러내는 주인공에게 딱 들어 맞는 제목입니다.

하여튼, 여러 미스터리 랭킹에서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명성이 자자했던 작품으로, 국내에는 상당히 늦은 2019년에 출간되었는데 명성답게 서스펜스, 긴장감은 발군입니다.
외국에서 망신창이 상태로 이름모를 낚시꾼, 그리고 영국 배의 일등 항해사 베이너의 도움을 얻어 귀국한 뒤, 도싯 지방의 아무도 모르는 오솔길에 위치한 은신처로 이동하기 위해 여행하는 부부로부터 사이드카가 달린 자전거를 구입하는 등 갖은 노력을 다하고, 은신처 위치가 좁혀질 위기에 처하자 경찰 시선을 돌리기 위해 다른 곳을 은신처처럼 만들어 위장하고, 결국 외국 비밀 요원 퀴브-스미스에게 위치가 발각되어 좁은 공간에 갇혔다가 탈출하는 과정 모두 읽는내내 손에 땀을 쥐게 만듭니다.

여러가지 잘 안배된 설정들도 긴장감을 더해줍니다. 대표적인게 주인공이 고문을 받아 '눈에 상처'를 입었다는 설정입니다. 사람들 눈에 너무 띄는 탓에 원래 계획이었던 시골 마을에 몰래 숨어드는게 불가능해져버리니까요. 선글라스로 가려도 누구나 눈에 이상이 있다는걸 눈치채버리고 말거든요.
비교적 초반에 비밀요원 중 한 명을 죽이는 바람에 영국 경찰들에게도 쫓기게 된다는 설정도 마찬가지입니다. 덕분에 주인공의 눈 이상이 전국에 알려졌을 뿐더러, 외국 정보요원들 뿐만 아니라 영국 경찰들도 주인공을 체포하려 해서 이중고를 겪게 됩니다.

주인공의 실력과 의지, 인내력만으로 이야기를 끌고가는 것도 마음에 듭니다. 조력자 - 특히 미녀 - 를 만나 도움을 얻는 헐리우드 스릴러스러운 전개는 전무합니다. 처음 탈출할 때 외국인 낚시꾼과 일등 항해사 베이너가 선선히 도와주는 장면같이 운에 의지하는 부분이 있지만, 이 정도면 충분히 허용 범위 안쪽입니다. 낚시꾼은 독재 반대파일 수 있으며, 베이너의 경우는 주인공이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아는 유명인사라는 설정 덕에 도와주었을 거라는 암시를 주는 식으로 합리적인 설명도 덧붙여져 있고요.

쫓고 쫓기는 대결 구도도 잘 그려져 있습니다. 치밀하고 끈기있는 추적으로 주인공의 은신처를 알아낸 퀴브-스미스 대령은 라이벌로 손색이 없습니다.
더 놀라왔던건 만만치 않았던 영국 경찰의 수사력 묘사였습니다. 도싯 시골 숲 속에 은신처를 마련하고 숨어 있던 주인공에게 거의 한끝발 차이로 육박해 올 정도의 솜씨를 보여줍니다. 심지어 맞부닥치는 바람에 정면에서 도주극을 벌이는 상황에 놓이기도 하지요.
이런 상대방들의 추적을 통해 원래 사냥꾼이었던 주인공이 사냥감이 되었다는 상황을 잘 알려주는 묘사들도 몰입을 도와줍니다.

그러나 몇가지 앞, 뒤가 맞지 않는 문제가 있습니다. 주인공의 독재자 암살 시도가 그러한데요, 주인공은 일관되게 단지 자기의 실력을 시험해보고 싶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퀴브 -스미스에 의해 은신처에 산채로 감금당한 뒤에 갑자기 약혼했던 연인의 복수를 위해서라는 동기가 튀어나옵니다. 이럴거라면 처음부터 당당히 죽일 의도가 있었다고 말했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영국인이 남의 나라 지도자를 쏘려고 했다가 잡혔는데, 이게 왜 외교 문제가 되지 않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단지 게임에 불과했다는 말을 외국 정보부에서 선선히 받아들여서 사고사로 죽이려 했다는 것도 말이 안되고요. 주인공은 상당한 고위층으로 보이기에, 당연히 좋은 협박거리(?)로 사용될 수 있었으니까요.

전체적으로 흥미로운건 사실이지만, 경찰 추적이 근처에 이른 탓에 가짜 은신처를 만든 뒤 그 곳에 숨어있다가 도주한 것처럼 꾸미는 장면은 과했습니다. 도주 경로와 흔적을 남기기 위해서 일부러 눈에 띄는 행동을 하고, 경찰 바로 옆에 숨는 묘기를 부릴 것 까지는 없었어요. 은신처를 감추려다가 본인이 위기에 처하는건 주객이 전도된 상황이잖아요. 또 그렇게 잘 숨을 수 있으면, 모습을 드러내지 말고 은신처에서 숨어 있는게 더 나았을테고요.
게다가 이 시도는 퀴브 -스미스에 의해 숨겨두었던 사이드카가 드러나, 은신처 바로 근처까지 퀴브 -스미스가 찾아왔을 때의 행동과는 반대라 앞, 뒤가 맞지 않습니다. 주인공은 퀴브 -스미스가 근처 농장을 다 뒤져서 오솔길이 은신처라는걸 알아냈다고 추리합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앞서 경찰이 나타났을 때 처럼 다른 곳으로 도주했다고 위장하거나, 아니면 실제로 도주했어야 했습니다. 시간도 충분했었고요. 하지만 은신처에 틀어박혀 숨어있는 방법을 택했다가 산채로 감금당하고 말지요.

주인공을 은신처에 가둔 퀴브 - 스미스가 바로 그를 죽이지 않고 회유하는 척 연기를 하는 장면도 이상했습니다. 바로 죽이지 않는 이유를 영 모르겠더라고요. 영국을 떠나지 않겠다는 서류에 서명을 받기 위한 목적은 전혀 납득할 수 없었습니다. 별로 대단한 서류가 아니라는건 주인공과 퀴브 -스미스의 대화로 이미 드러날 정도이고, 주인공 서명 정도를 위조하는게 그리 어려울거라는 생각도 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인공이 영국 정부와 경찰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 것도 21세기의 한국 독자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불명예가 예상된다는데, 도대체 무슨 불명예인지 모르겠더라고요. 주인공이 "사실 내가 아는 영국인 중에 그가 가져온 망할 문서에 서명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도 거부하겠지만, 대부분은 그저 고집 때문에 거부할 것이다."며 서명을 거부하는 것도 마찬가지고요.

무엇보다도 퀴브-스미스와의 마지막 대결이 아쉬웠습니다. 총이 없어서 고대 로마의 노포와 비슷한 무기를 직접 만들었다는 설정은 나쁘지 않아요. 그러나 퀴브 스미스가 환기구를 막았던 자루를 빼다가 주인공이 쏜 화살에 맞고 죽는건 어처구니 없었습니다. 주인공에게 총이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환기구로 고개를 내민다는건 영 석연치 않았습니다. 물론 직전에 주인공이 서명을 하겠다며 퀴브-스미스를 구워 삶기는 했지만, 그 정도로는 부족합니다. 총이 없다는걸 퀴브-스미스가 확실히 알고 있었다는 식으로 내용을 보강하던가, 아니면 퀴브-스미스가 예상하지 못한 무기를 사용하는 식으로 끌고가는게 더 좋았을 겁니다. 최소한 주인공과 자웅을 겨룬 라이벌에게 어울리는 결말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 명성의 이유는 잘 알 수 있지만, 지금 시점의 한국 독자가 읽기에는 다소 낡은 느낌도 없지 않아서 감점합니다.
이런 작품은 아무래도 영화로 보는게 더 낫지 않을까 생각되는데, 아니나 다를까 과거 2번이나 - 그 중 한 편은 흑백 고전 영화 시대의 거장 프리츠 랑 감독이고, 또 다른 한편은 명배우 피터 오툴 주연 - 영화화 되었더군요. 곧 베네딕트 컴버비치 주연으로 다시 영상화된다는 소문이 있는데, 어떻게 만들어질지 기대되네요.

2022/11/26

두산 베어스의 22시즌을 마무리하며

 


올 시즌, 두산 베어스는 60승 2무 82패로 9위를 차지하였습니다. 제 예상보다 훨씬 못한 결과입니다. 가장 큰 이유는 10승 이상을 기대했던 1선발 에이스 미란다의 부상과 중도 퇴출이었습니다. 확실한 1선발이자 연패 스토퍼 역할을 해 줄 투수가 없으니 연패도 잦아지고, 이닝 이터의 부재는 중간 투수들의 부담을 불러오는 등 악순환이 이어졌습니다. 대체 선발로 선을 보였던 박신지, 최승용 선수도 별로 인상적이지 못했고요. 반등을 기대했던 이영하 선수는 이제 더 이상 선발로 가치가 없는 현실만 일깨워 주었습니다.
중간 투수진도 정철원 선수가 놀라운 활약을 보여주며 신인왕까지 수상했지만 그 뿐이었습니다. 부활을 기대했던 박치국, 이승진, 이형범, 김강률 선수는 결국 시즌 내내 별로 팀에 보탬이 되지 못했고 홍건희 선수도 솔리드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으니까요.

당연히 타선도 문제가 많았습니다. 스트라이크존 확대로 성적이 하락할거라는건 어느정도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로 큰 타격을 입을 줄은 정말 생각도 못했습니다. 중심 타선은 한심할 정도입니다. 김재환 선수는 몸값에 어울리지 않는 성적으로 보여주었고, 양석환 선수도 전년 대비 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성적을 기록했습니다. 병살타 신기록을 세운 호세 페르난데스 선수를 비롯, 스텝업을 기대했던 박계범 선수의 성적은 처참할 지경이고요. 박건우 선수의 뒤를 이어 만개할걸로 믿었던 김인태 선수도 부상 등으로 제몫을 하지 못했습니다. 강승호, 정수빈 선수도 기복이 심해서 시즌 한창 때에는 별로 좋은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무엇보다 심각했던건 팀 컬러가 없어졌다는 겁니다. 각목으로 때려 부수던 우동수 깡패곰 시절이나, 선발로 찍어 눌렀던 판타스틱 4를 기대하는건 아닙니다. 하지만 '육상부' 시절의 BQ 넘치던 플레이들은 가능하잖아요? 뛰지 못하면 잘 하기라도 해야죠. 올 시즌은 공수에 있어 실수가 너무 많았습니다. 끝내기 안타를 치고도 세레머니 할 생각 탓에 병살 아웃되어 허무하게 끝나버렸던 SSG전이 대표적입니다. 수비를 못하면 1군에 올리지 않는다는 베어스 철학은 어디갔는지도 모르겠고요.
근성과 투지로 '미라클 베어스'라고도 불리웠던 모습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실수하고 못하면 스스로에게 화를 내고, 아무리 전력이 떨어져도 LG전에서만큼이라도 근성을 보여주던게 바로 얼마 전인데 말이지요. 오재원 선수같은 선수가 필요한데, 그런 역할을 해 줄 선수가 없다는게 너무나 아쉽습니다.

이런 모든 점을 고려해본다면, 결국 김태형 감독의 책임이 커 보입니다. 물론 프런트 진의 잘못도 작지는 않아요. 작년에도 글을 남겼었지만, 김재환 선수에게했던 투자, 그리고 직전해 정수빈 선수를 잡아서 박건우 선수룰 놓친 것 모두 프런트 진의 실수니까요. 선수단 구성이 엉망이 된 건 프런트 책임이지요.
그러나 팀 컬러의 실종, 잘못된 선수 기용, 끝없는 타격 부진, 유망주 육성 실패 등은 모두 감독에게 가장 책임이 클 것입니다. 직전 시즌까지는 눈부신 성과를 보였지만, 재계약은 더 못하고 감독이 교체된건 당연한 수순입니다.

이제 2023년부터 이승엽 감독을 맞아 새롭게 달리게 되었습니다. 아직 시즌은 커녕, 스토브 리그가 마무리되지도 않았고 동계 훈련 역시 시작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작년보다는 전망이 밝네요.
가장 큰 이유는 외국인 선수 교체와 양의지 선수의 복귀 덕분입니다. 알칸타라 선수의 복귀가 확정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둘이 합쳐 20승은 해 주지 않을까라는 기대가 스물스물 생기거든요. 스탁, 미란다, 브랜든 합쳐서 14승을 거두었던 작년보다 +6승이 더해지며, 단순 WAR만 비교해도 박세혁 선수보다 +3 이상 높은 양의지 선수의 복귀까지 합치면 거의 10승이 더해지는 셈입니다. 이 정도만 되어도 70승 2무 72패로 거의 5할이니, 5강 싸움은 가능한 수준이 됩니다. 올해 5위였던 기아의 성적도 비슷했지요.
기존 선수들도 조금 기대가 생깁니다. 일단 투수진은 외국인 투수 두 명이 정상적으로 로테이션을 돈다는 가정 하에 올 시즌 스텝업한 곽빈 선수를 필두로 4선발로는 차고 넘치는 최원준 선수, 갑툭튀 정철원 선수는 확실한 상수로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 올해 부상으로 정상 가동되지 못했던 박치국, 김강률 선수 등이 힘을 보태주고, 기대주인 최승용, 이병헌 선수 등 신인 몇 명이 뒷받침만 해 주면 올해보다는 확실히 나을 겁니다.
올해 가장 큰 문제였던 타선의 해결사는 호미페 대신 선택된 새 외국인 타자 호세 로하스와 복귀한 양의지 선수 두 명입니다. 팀에 부족했던 장타력을 더해줄 수 있는 선수들이니까요. 여기에 신임 이승엽 감독과 전면 교체된 코치진이 반드시 터져야 하는 김대한 선수를 비롯, 몇몇 선수만 알을 깨도록 도와준다면 더할나위 없겠습니다. 그걸 위해 선택한 신임 감독이라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유튜브 등을 통한 마무리 훈련 모습 등은 긍적적으로 보였습니다.

뭐 그래도 당장 우승을 노린다는건 도둑놈 심보입니다. 작년 성적을 보면 말이죠. 가을 야구가 아니라 한국 시리즈 진출이 당연한 것인줄 알았던 좋았던 시절은 다 갔으니, 당분간은 성적을 내려놓고 팬으로서 열심히 하는 모습에 박수를 쳐 줄 생각입니다. 당장 내년은 성적보다는 앞으로가 기대되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기를, 그리고 LG에게는 반드시 이겨주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무엇보다도 내년 시즌에는 선수단의 핵이 될 만한, 근성 넘치고 팀 컬러를 대표할만한 스타 선수가 나와주면 좋겠습니다. 김대한, 송승환, 안재석, 이유찬, 정철원, 최승용 선수나 아니면 다른 선수 누구라도요. 겁없이 뛰어도 되는 시즌이니 부담갖지 말고!

순전히 팬심으로 써보는 2022 두산 베어스 예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