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 메일 - 제프리 하우스홀드 지음, 이나경 옮김/arte(아르테) |
<<아래 리뷰에는 결말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국의 고위층 명사가 유럽 어딘가의 독재자를 암살하려다가 체포되었다. 진짜로 죽이려고 했던건 아니고, 심심풀이로 벌인 게임에 지나지 않았지만, 독재자의 부하들은 모진 고문 뒤 사고로 위장해 죽이려 했다.
다행히 목숨을 건진 그는 천신만고 끝에 영국으로 돌아오지만, 독재자의 부하들이 여전히 자기를 노리고 있다는걸 알게 되었다. 불명예를 걱정한 그는 국가의 도움을 받지않고 홀로 도주하여, 과거 추억이 어려있던 도싯 지방에 은신처를 마련하는데....
2차 대전 직전인 1939년 출간된 전설적인 서스펜스 스릴러.
사실 저는 제목만 보고 최첨단 IT 소재물이라고 착각해 왔었습니다. Log mail이라고 생각했었거든요. 알고보니 Rogue Male 이더라고요! 외톨이 수컷, 일본식 표현으로는 한마리 외로운 늑대와 비슷하겠지요? 일종의 사냥감이지만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하며, 가끔은 흉폭함과 야성을 드러내는 주인공에게 딱 들어 맞는 제목입니다.
하여튼, 여러 미스터리 랭킹에서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명성이 자자했던 작품으로, 국내에는 상당히 늦은 2019년에 출간되었는데 명성답게 서스펜스, 긴장감은 발군입니다.
외국에서 망신창이 상태로 이름모를 낚시꾼, 그리고 영국 배의 일등 항해사 베이너의 도움을 얻어 귀국한 뒤, 도싯 지방의 아무도 모르는 오솔길에 위치한 은신처로 이동하기 위해 여행하는 부부로부터 사이드카가 달린 자전거를 구입하는 등 갖은 노력을 다하고, 은신처 위치가 좁혀질 위기에 처하자 경찰 시선을 돌리기 위해 다른 곳을 은신처처럼 만들어 위장하고, 결국 외국 비밀 요원 퀴브-스미스에게 위치가 발각되어 좁은 공간에 갇혔다가 탈출하는 과정 모두 읽는내내 손에 땀을 쥐게 만듭니다.
여러가지 잘 안배된 설정들도 긴장감을 더해줍니다. 대표적인게 주인공이 고문을 받아 '눈에 상처'를 입었다는 설정입니다. 사람들 눈에 너무 띄는 탓에 원래 계획이었던 시골 마을에 몰래 숨어드는게 불가능해져버리니까요. 선글라스로 가려도 누구나 눈에 이상이 있다는걸 눈치채버리고 말거든요.
비교적 초반에 비밀요원 중 한 명을 죽이는 바람에 영국 경찰들에게도 쫓기게 된다는 설정도 마찬가지입니다. 덕분에 주인공의 눈 이상이 전국에 알려졌을 뿐더러, 외국 정보요원들 뿐만 아니라 영국 경찰들도 주인공을 체포하려 해서 이중고를 겪게 됩니다.
주인공의 실력과 의지, 인내력만으로 이야기를 끌고가는 것도 마음에 듭니다. 조력자 - 특히 미녀 - 를 만나 도움을 얻는 헐리우드 스릴러스러운 전개는 전무합니다. 처음 탈출할 때 외국인 낚시꾼과 일등 항해사 베이너가 선선히 도와주는 장면같이 운에 의지하는 부분이 있지만, 이 정도면 충분히 허용 범위 안쪽입니다. 낚시꾼은 독재 반대파일 수 있으며, 베이너의 경우는 주인공이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아는 유명인사라는 설정 덕에 도와주었을 거라는 암시를 주는 식으로 합리적인 설명도 덧붙여져 있고요.
쫓고 쫓기는 대결 구도도 잘 그려져 있습니다. 치밀하고 끈기있는 추적으로 주인공의 은신처를 알아낸 퀴브-스미스 대령은 라이벌로 손색이 없습니다.
더 놀라왔던건 만만치 않았던 영국 경찰의 수사력 묘사였습니다. 도싯 시골 숲 속에 은신처를 마련하고 숨어 있던 주인공에게 거의 한끝발 차이로 육박해 올 정도의 솜씨를 보여줍니다. 심지어 맞부닥치는 바람에 정면에서 도주극을 벌이는 상황에 놓이기도 하지요.
이런 상대방들의 추적을 통해 원래 사냥꾼이었던 주인공이 사냥감이 되었다는 상황을 잘 알려주는 묘사들도 몰입을 도와줍니다.
그러나 몇가지 앞, 뒤가 맞지 않는 문제가 있습니다. 주인공의 독재자 암살 시도가 그러한데요, 주인공은 일관되게 단지 자기의 실력을 시험해보고 싶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퀴브 -스미스에 의해 은신처에 산채로 감금당한 뒤에 갑자기 약혼했던 연인의 복수를 위해서라는 동기가 튀어나옵니다. 이럴거라면 처음부터 당당히 죽일 의도가 있었다고 말했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영국인이 남의 나라 지도자를 쏘려고 했다가 잡혔는데, 이게 왜 외교 문제가 되지 않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단지 게임에 불과했다는 말을 외국 정보부에서 선선히 받아들여서 사고사로 죽이려 했다는 것도 말이 안되고요. 주인공은 상당한 고위층으로 보이기에, 당연히 좋은 협박거리(?)로 사용될 수 있었으니까요.
전체적으로 흥미로운건 사실이지만, 경찰 추적이 근처에 이른 탓에 가짜 은신처를 만든 뒤 그 곳에 숨어있다가 도주한 것처럼 꾸미는 장면은 과했습니다. 도주 경로와 흔적을 남기기 위해서 일부러 눈에 띄는 행동을 하고, 경찰 바로 옆에 숨는 묘기를 부릴 것 까지는 없었어요. 은신처를 감추려다가 본인이 위기에 처하는건 주객이 전도된 상황이잖아요. 또 그렇게 잘 숨을 수 있으면, 모습을 드러내지 말고 은신처에서 숨어 있는게 더 나았을테고요.
게다가 이 시도는 퀴브 -스미스에 의해 숨겨두었던 사이드카가 드러나, 은신처 바로 근처까지 퀴브 -스미스가 찾아왔을 때의 행동과는 반대라 앞, 뒤가 맞지 않습니다. 주인공은 퀴브 -스미스가 근처 농장을 다 뒤져서 오솔길이 은신처라는걸 알아냈다고 추리합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앞서 경찰이 나타났을 때 처럼 다른 곳으로 도주했다고 위장하거나, 아니면 실제로 도주했어야 했습니다. 시간도 충분했었고요. 하지만 은신처에 틀어박혀 숨어있는 방법을 택했다가 산채로 감금당하고 말지요.
주인공을 은신처에 가둔 퀴브 - 스미스가 바로 그를 죽이지 않고 회유하는 척 연기를 하는 장면도 이상했습니다. 바로 죽이지 않는 이유를 영 모르겠더라고요. 영국을 떠나지 않겠다는 서류에 서명을 받기 위한 목적은 전혀 납득할 수 없었습니다. 별로 대단한 서류가 아니라는건 주인공과 퀴브 -스미스의 대화로 이미 드러날 정도이고, 주인공 서명 정도를 위조하는게 그리 어려울거라는 생각도 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인공이 영국 정부와 경찰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 것도 21세기의 한국 독자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불명예가 예상된다는데, 도대체 무슨 불명예인지 모르겠더라고요. 주인공이 "사실 내가 아는 영국인 중에 그가 가져온 망할 문서에 서명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도 거부하겠지만, 대부분은 그저 고집 때문에 거부할 것이다."며 서명을 거부하는 것도 마찬가지고요.
무엇보다도 퀴브-스미스와의 마지막 대결이 아쉬웠습니다. 총이 없어서 고대 로마의 노포와 비슷한 무기를 직접 만들었다는 설정은 나쁘지 않아요. 그러나 퀴브 스미스가 환기구를 막았던 자루를 빼다가 주인공이 쏜 화살에 맞고 죽는건 어처구니 없었습니다. 주인공에게 총이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환기구로 고개를 내민다는건 영 석연치 않았습니다. 물론 직전에 주인공이 서명을 하겠다며 퀴브-스미스를 구워 삶기는 했지만, 그 정도로는 부족합니다. 총이 없다는걸 퀴브-스미스가 확실히 알고 있었다는 식으로 내용을 보강하던가, 아니면 퀴브-스미스가 예상하지 못한 무기를 사용하는 식으로 끌고가는게 더 좋았을 겁니다. 최소한 주인공과 자웅을 겨룬 라이벌에게 어울리는 결말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 명성의 이유는 잘 알 수 있지만, 지금 시점의 한국 독자가 읽기에는 다소 낡은 느낌도 없지 않아서 감점합니다.
이런 작품은 아무래도 영화로 보는게 더 낫지 않을까 생각되는데, 아니나 다를까 과거 2번이나 - 그 중 한 편은 흑백 고전 영화 시대의 거장 프리츠 랑 감독이고, 또 다른 한편은 명배우 피터 오툴 주연 - 영화화 되었더군요. 곧 베네딕트 컴버비치 주연으로 다시 영상화된다는 소문이 있는데, 어떻게 만들어질지 기대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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