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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19

나의 차가운 일상 - 와카타케 나나미 / 권영주 : 별점 1.5점

 

나의 차가운 일상 - 4점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권영주 옮김/내친구의서재

<<아래 리뷰에는 진상과 범인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와카타케 나나미는 우연히 알게된 지인 이치노세 다에코가 자살 시도 후 의식을 잃고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함께 크리스마스 이브를 보낼 약속을 했기에 나나미는 그녀가 자살 시도를 했다는걸 믿지 않았고, 누군가 다에코가 쓴 '수기'를 나나미에게 보낸 뒤 나나미는 다에코 사건을 혼자서 파헤치기 시작했다. '수기'는 다에코가 친구 도모요가 식물인간이 된 이유를 밝혀내기 위해 회사를 옮겨가며 조사에 나섰고, 어렸을 때 부터 독살을 반복해 왔던 범인 세누마 도루가 누구인지 찾아냈다는 내용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범인인줄 알았던 세누마 도루는 다에코 사건과 관계가 없다는게 드러났고, 나나미 앞에서 세누마 도루마저 살해당하는데....


와카타케 나나미의 데뷰작이었던 <<나의 미스터리한 일상>>의 후속 장편. 작가와 이름이 똑같은 '와카타케 나나미'가 탐정으로 활약하는 이야기입니다.
<<나의 미스터리한 일상>>은 사소하고 평범한 일상 속 수수께끼를 풀어나가는 일상계 단편, 그리고 단편이 모여 하나의 큰 사건을 이야기하는 연작 구성이었던 반면, 이 작품은 전형적인 하드보일드 장편에 가깝습니다. 지인의 사고에서 촉발된 조사가 거대한 사건들을 연쇄적으로 일으키는 방아쇠가 되고, 결국 비참한(?) 결말로 이어지는 내용이니까요.
전작은 꽤 성공적으로 국내 시장에 소개되었으며, 재판까지 이루어졌던 반면 후속작은 있는지도 몰랐었는데, 읽고나니 왜 소개가 늦어지고 그 존재도 알 수 없었는지 알겠더군요. 추리적으로 별볼일 없고, 여러 사건들 - 세누마 도루가 벌인 독살 사건들, 이치노세 다에코 자살 미수 사건, 세누마 도루 살인 사건 - 이 모두 따로 놀고 있어서 내용도 정리되지 않은 느낌을 강하게 전해주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와카타케 나나미가 수사에 나선 계기가 된 다에코 자살 미수 사건과 세누마 도루가 독살범임을 밝혀내는 다에코의 수기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세누마 도루를 살해한 것도 다에코 사건과 무관하게 가족이 저지른 범행이고요. 다른 하드보일드 소설처럼 한 사건에서 다른 사건들이 파생되는게 아니라, 그냥 우연찮게 전혀 다른 사건들이 한 인물 주변에서 일어났을 뿐입니다. 이런 우연이 한 번에 겹친다는 것, 그리고 자살 시도와 불합리한 죽음이 너무 많다는건 현실적이지 못합니다.

각 사건들의 세부 요소들도 제대로 짜여져 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이치노세 다에코의 '수기'가 좋은 예입니다. 이치노세 다에코가 세누마 도루의 수기를 어떻게 입수했는지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 탓이에요. 세누마 도루가 누나 이시하라 사와코에게 주었던걸 사무실에서 우연히 입수하여 복사를 했다는데 말도 안돼요. 사와코는 분신 자살을 선택하여 동생과 수기의 존재를 지워버리려고 했을 정도인데 수기를 그렇게 허술하게 놔 두었다? 그럴리 없지요, 애초에 연쇄 독살범이 버젓이 살아 있는 상태에서 자기 범행을 고백하는 수기를 남긴 것 부터가 말이 안되고요.

다에코 자살 미수 사고를 일으킨 이가라시의 동기도 불분명합니다. 다에코를 놓치기 싫어서 그랬다는데, 그와 다에코의 관계가 이런 엄청난 사건을 불러올 정도였는지 독자는 알 수가 없거든요. 단순히 '놓치기 싫었다' 정도로 간주하기에는 지나치게 치밀한 범행이라는 인상도 지우기 힘듭니다.
이가라시가 와카타케 나나미의 추리만으로 자백한다는 것도 어이가 없었습니다. 증거는 단 하나도 없었는데 말이지요. 게다가 자백도 결국 '다에코가 자살했다'는거라 허무했습니다. 결국 와카타케 나나미의 진상 조사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는거잖아요. 자살 동기도 납득하기 어려웠고요.

세누마 도루 살인 사건도 억지스러웠습니다. 누나 이시하라 사와코는 동생이 연쇄 독살범이라는걸 수기를 통해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만약 동생의 범행으로 가족이 고통받을까 두려웠다면, 수기를 입수한 뒤 바로 죽였어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범행이 계속되어 체포될 가능성이 높아지니까요. 구태여 한참 기다렸다가 죽일 이유는 없습니다. 마침 도루가 와카타케 나나미와 만나고 있던 그 시점에 범행을 저지른다는 것도 지나치게 작위적이었습니다. 사와코가 도루를 죽였다는 증거가, 와카타케 나나미가 담배를 피우는걸 알고 있었다는 것 뿐이라는건 비약이 심했습니다. 흡연자는 담배를 피우는걸 보지 않아도 냄새로 알 수 있으니까요.

캐릭터들도 별로였습니다. 주인공이자 화자인 와카타케 나나미는 불행과 사고를 불러온다는 점에서는 하무라 아키라와 비슷한데, 시종일관 진지하고 어두워서 호감가는 부분이 없었습니다. 짜증만 유발하는 다른 주변 인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대체로 성격들이 괴퍅하고 모가 나 있는 탓에 오히려 현실적이라는 느낌을 받지 못했어요. 대표적인건 세누마 도루입니다. 정신병자이기도 하지만 그가 다른 사람과 접촉하면 심한 알러지 반응을 일으키는 이상 체질을 가지고 있다는건 억지스러웠습니다.

그나마 밀실이었던 다에코의 방에서 가스가 누출되었던게 아니라, 그 전 노래방에서 가스 호스를 다에코 입에 직접 물려 가스를 흡입하게 하고, 술에 취한 것 처럼 위장해서 집으로 옮겼던 이가라시의 범행 정도만 괜찮았어요. 그리고 동행들과 집의 가스를 단속한 뒤 문을 잠겄던 겁니다. 나중에 이동할 때 가스 냄새가 나는 향수를 조합하여 뿌린 뒤, 그 때 집에 들어가서 가스를 누출시켰고요. 가스를 언제 흡입했는지는 밝혀내기 힘들고, 순전히 냄새로만 판단 가능하다는 점을 이용한 괜찮은 트릭이었다 생각되네요.

하지만 이 트릭 외에는 말씀드렸듯 건질게 없기에 별점은 1.5점입니다. <<나의 미스터리한 일상>>의 후속작이라고는 하지만, 제목 외에는 관련성을 거의 찾을 수 없으며 완성도, 재미, 수준 모두 기대 이하였습니다. 습작 수준의 작품으로 작가의 팬이 아니리시라면 구태여 구해 읽어보실 필요도, 이유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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