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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20

클락성 살인사건 - 키타야마 타케쿠니 / 김해용 : 별점 1.5점

 

클락성 살인사건 - 4점
키타야마 타케쿠니 지음, 김해용 옮김/북홀릭(bookholic)

<<아래 리뷰에는 진상과 트릭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전자기장 이상으로 멸망을 앞둔 세계, 유령을 잡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탐정 미나미 미키는 파트노 시노미 나미와 함께 '클락성'으로 향했다. 수수께끼의 미녀 쿠로쿠 미카가 '스킵맨'이라는 유령을 퇴치해 줄 것을 의뢰했기 때문이었다. '클락성'은 그 이름처럼 거대한 세 개의 시계가 외벽에 설치된 저택으로, 현재와 과거, 그리고 미래를 나타내는 시계라고 했다. 그리고 그날 밤, 클락성의 주인 쿠로쿠 박사와 박사의 동생 슈지가 목없는 시체로 발견되었고, 두 명의 목은 박사의 딸로 오랫동안 혼수상태였던 미온의 방에 놓여 있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고 서로 떨어진 관에 있던 두 사람을 살해하는 것, 그리고 입구를 마모루가 철통같이 지키고 있었던 미온의 방에 잘린 머리를 가져다 놓는건 불가능해서 사건은 미궁에 빠졌고, 슈지의 아들 레이마와 박사의 아들 린, 그리고 결국 루카마저 죽고 마는데...


전자기장 이상으로 멸망을 앞둔 지구를 무대로, '유령'을 잡을 수 있는 능력을 갖춘 탐정 미키가 '클락성'에서 일어난 괴 사건을 해결하는 SF 판타지 추리물. '물리의 다케야마'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잘 짜여진 물리 장치 트릭의 대가 기타야마 다케쿠니의 데뷰작으로 메피스토 상 수상작이기도 합니다. 국내 출간된지는 꽤 되었지만, 다소 유치해보이는 제목과 낯선 작가 이름 탓에 손이 가지는 않았는데 어딘가의 랭킹에서 추천하기에 구해보게 되었네요. 작가의 다른 작품인 <<인어공주>>을 재미있게 읽기도 했고요.

그런데 작품은 대체 제가 뭘 읽었나 싶을 정도로 엉망이었습니다. 제대로 리뷰를 쓰기 힘들 정도로요.
일단 유령이 등장하는 세계관과 물리 법칙을 따르는 본격 추리물은 잘 어울리지 않더군요. 그냥 지구 멸망을 앞두고 있었다 정도의 설정으로 충분했을겁니다. 뭔가 있어보였지만, 사실상 알맹이 없었던 다른 유치한 설정들 모두 없는게 차라리 나았고요. 멸망을 막기 위해 노력하는 조직인 12사도와 SEEM, 그리고 그들이 멸망을 막기 위해 찾는 '한 밤의 열쇠'라는 존재 등등은 모두 본 사건과 아무런 관련이 없거든요. 미키가 유령을 잡을 수 있다는 설정도 마찬가지에요.
사건과 연관이 있던건 클락성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모두 시간에 대한 유전병이 있는 도르 가문의 후손이며, 클락성은 일부러 시간에 대한 감각을 지우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정도였습니다만, 이 역시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작위적인 설정이라 별로 와 닿지 않더군요.

기대했던 트릭도 별볼일없었습니다. 거대한 세 계의 시개가 벽 면에 붙어 있는 클락성의 특징을 활용한 트릭이라는게 빤히 들여다 보였던 탓입니다. 즉, 서로 떨어진 두 관을 시침과 분침이 다리 역할을 하는 특정 시간에 이동했던 것이지요. 시간만 알면 단순 소거법으로 범인은 알아낼 수 있었습니다. 알리바이가 없는건 린 밖에 없었으니까요.
이 트릭은 아래와 같은 클락성에 대한 도판만 사전에 공개되었다면, 누구나 풀어낼 수 있었을겁니다. 아리스가와 아리스도 권말 해설을 통해 똑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추리의 묘미를 즐기기 위해서는 도판을 보지 말라고요. 반대로 말하자면, 등장인물들의 추리력이 형편없다는 의미입니다. 그들은 클락성을 실제로 보고, 잠시 머물기까지 했는데도 불구하고 거대한 시계 바늘이 과거와 미래의 관을 오가는 통로가 될 수 있다는걸 떠올리지 못하니까요.


시계 트릭보다는 차라리 범인은 린이 아니라 미키라 주장하는 미온과 나미의 추리 대결이 더 볼만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이야기되는, 박사와 슈지의 머리를 잘랐던 이유에 대한 추리가 괜찮았거든요. 범인이 두 개의 관을 시계 바늘을 이용하여 오가기 위해서는 특정 시간에만 시계 바늘로 만들어지는 길이 열리고, 그건 처음 길이 열리고 나서 2시간 뒤라는 조건이 있습니다. 그런데 범인 린은 아날로그 시계를 볼 줄 몰랐고, 클락성 안에는 시계도 없어서 첫 범행에서 시계의 목을 베어 가지고 왔다고 추리합니다. 시체의 안구가 2시간 지나면 변하는 법의학적 상식을 이용했기 때문이라나요. 제가 여태까지 보아왔던 시체 훼손 추리물에서 손에 꼽을만한 독창적인 동기였습니다. 얼마전 소개해드렸던 엽기 토막 살인이 등장하는 추리 소설들 랭킹에서 언급해도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에요.
문제는 이 추리에도 헛점이 많다는 겁니다. 구태여 시체의 목을 벨 필요는 없었습니다.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바늘의 위치만 확인해도 되었을 일이니까요. 린이 아날로그 시계를 볼 줄 몰라서 범인이 될 수 없다고 하는 미온의 주장도 마찬가지로 현실적이지 않아요. 거대한 시계가 붙어있는 집에서 태어나 자라온지 십년이 넘었다면, 시계를 볼 줄은 몰라도 그걸 이용하는 방법은 충분히 알 수 있는게 당연하잖아요?

미온이 루카와 린의 모친이었다는 일종의 반전도 불필요했을 뿐더러 영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린의 동기를 설명하기 위해서였다는건 알겠어요. 하지만 누나였어도 돼잖아요. 어린 소녀를 근친상간으로 임신시켜 출산하게 했다는건 지나치게 극단적인 설정이었어요. 불쌍한 루카를 죽인 이유도 모르겠고, 결국 세계가 멸망하는 건지도 알 수 없는 결말도 별로였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절판된게 당연하다 싶은 망작이었습니다. 중고 가격이 상당한 편인데, 절대 그만한 값어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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