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주신 분들께 안내드립니다.

2018/02/28

2017 대표이글루 추천

 2017 대표이글루 추천이 시작되었습니다


매년 돌아오는 행사인데 이번에는 형식이 조금 바뀌었네요. 개인적으로는 불편하고 손이 많이 가서 마음에 들지는 않습니다만, 그래도 오랜 이글루스 유저로 행사를 포기할 수 없어 참여합니다. 제 추천 이글루는 아래와 같습니다. 다른 멋진, 좋은 블로그들도 많지만 올해는 이 정도만.


http://hsong.egloos.com/
-테마: 음식
-한줄평: 맛집 소개에 있어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녹두장군님 블로그

http://totheno1.egloos.com/4150190
-테마: 음식
-한줄평: 이글루스 전체 최고의 유명인 (?) 이자 능력자 채다인님 블로그.

http://leosden.egloos.com
- 테마 : 영화
- 한줄평 : SF 영화 팬이라면 놓치기 힘든 방대한 리뷰들

http://waterlotus.egloos.com/
- 테마 : 만화
- 한줄평 : 최신 만화에 대한 소개와 리뷰에 더해 각종 정보까지 충실!

http://babnsool.egloos.com
- 테마 : 음식
- 한줄평 : 연륜과 식견이 묻어나는 좋은 에세이풍 글들이 가득.

2018/02/25

2017년 하우미스터리 선정, 올해의 추리소설!

2016년 하우미스터리 선정, 올해의 추리소설!

매년 이맘때쯤 발표되는 2017년 하우미스터리 선정 올해의 추리 소설 결과입니다. 언제나처럼 2017년 출간된 추리 소설을 대상으로 하고 있습니다.
참여자는 45명 뿐이지만 투표하신 분들이 대부분 추리 애호가라는 점에서 상당히 공신력있는 투표가 아닐까 싶네요.

대망의 2017년 1~3위는 아래와 같습니다.

1위 20표 :
<<세 개의 관>> 존 딕슨 카, 엘릭시르

2위 17표 :
<<애거사 크리스티 완전 공략>> 시모쓰키 아오이, 한겨레출판

3위 13표
<<괴물이라 불린 남자>>, 데이비드 발다치, 북로드

특징이라면 2위까지가 작년 1위보다도 획득 표수가 많다는 점입니다. 특히 1위 20표는 주목할만해요. 참여자 45명이 무순으로 세 작품씩을 꼽는 방식인데 이중 20표라면 추리 애호가들 사이에서 45%에 가까운 지지를 받았다는 이야기이니까요. 저도 오래전에 동서 추리 문고 버젼으로 읽어본 작품이긴 합니다만... 이 정도의 선호도라면 다시 읽어봐야 될 것 같네요. 3위인 데이비드 발다치 작품도 이번 기회에 도전해 봐야겠고요.
이외의 다른 순위의 작품들이 궁금하시면 상기 링크를 통해 확인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제 선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애거서 크리스티 완전 공략>> - 추리소설 비평의 바이블. 아 저도 이런 리뷰를 쓰고 싶네요.
2. <<하늘을 나는 말>> - 소개가 늦지 않았나 싶은 원조 일상계. 재미있었어요.
3. <<웃는 경관>> - 재 소개가 반가운 북유럽 걸작. 일독을 권해드립니다.

2018/02/24

지문 - 콜린 비번 / 유혜경 : 별점 3점

지문 - 6점
콜린 비번 지음, 유혜경 옮김/황금가지

지문이 신원 확인에 사용된다는건 지금은 일반 상식입니다. 하지만 어떻게 이렇게 지문이 신원 확인의 수단이 되었을까요? 이 책은 지문이 현재의 자리를 차지하기 까지의 과정을 상세하게 설명해주는, 지문의 역사에 대한 일종의 미시사 서적이자 과학사 서적입니다. 거기에 더해 지문이 해당 위치를 차지하게 된 결정적 사건인 뎁퍼드가에 위치한 채프먼 화방의 강도 살인 사건의 전말 및 재판 과정과 최종 판결까지의 전말이 지문의 역사와 함께 소상하게 펼쳐지는 논픽션 성격도 띄고 있습니다. 즉, 지문의 역사가 뎁퍼드가 사건을 비롯한 다양한 실제 지문 응용 사례와 함께 전개되는 구성이죠.

'지문학'의 역사는 학술적인 내용이 많은 편입니다. 하지만 의외로 재미있더군요. 지문이라는 존재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주목한 이후, 지문의 여러가지 특성에 대한 연구 과정과 실제 지문을 분류하는 방법 등의 디테일도 재미있지만 지문 연구의 발명자(?) 타이틀을 차지하기 위한 이전투구가 아주 흥미로왔기 때문이에요. 흡사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 했습니다. 사고방식부터 썩어빠진 거물 쓰레기 골턴이 또다른 쓰레기 허셜과 손잡고, 실제 지문 연구의 권위자로 이를 인정받기 위해 노력했던 폴즈의 연구를 빼앗은 후 폴즈를 부정하는 양심도 없는 행각이 그것으로 다행히 (?) 골턴도 다른 인물들에 의해 영광의 월계관을 빼앗기고 잊혀진다는 결말인데, 씁쓸하면서도 많은걸 생각하게 해 줍니다.
또 폴즈가 지문을 알리기 위해 절박한 노력을 하던 와중에 발표되었던 기사가 마크 트웨인의 <<미시시피에서의 삶>> 이라는 작품 속 <<엄지손가락 지문 채취와 그 결과>> 라는 작품에 영향을 미쳤다고 합니다. 복수를 위해 '수상가' 로 위장하여 살인범을 찾아나선 인물의 이야기로 내용이 궁금해지네요.

하지만 아무리 재미있다 하더라도 지문학의 역사보다는 관련된 사건들 쪽이 더욱 호기심을 자극합니다. 아르헨티나에서 벌어진 유아 살인 사건 등 초창기 지문을 활용하여 해결한 범죄들 모두 흥미진진하며, 지문이 사용되지 않아 문제가 되었던 범죄들 이야기도 아주 재미있었어요. 여러 명의 피해자 증언으로 수년간 구속되었었지만 진범이 다른 사람으로 드러났던 아돌프 벡 사건이 대표적이에요. 면식 식별이 문제가 될 수 밖에 없는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했다는데 책에 실려있는 사진을 보니 범인과 벡은 정말 닮긴 닮았더라고요. 이러니 명확한 개인별 확인 수단이 필요할 수 밖에요.

그 외에도 많은 사건들이 소개되는데, 그 중에서도 압권은 역시나 서두와 마지막을 장식할 정도로 작품 전체에서 가장 중요하게 서술되는 뎁퍼드가 살인 사건입니다. 몇가지 정황 증거는 있지만 실질적인 증거는 범인의 지문 밖에 없는 상황, 지문이 아직 널리 인정받지 못한 때에 지문만 가지고 과연 용의자들에게 유죄 선고, 더 나아가 '사형 선고' 를 내릴 수 있는지? 라는 딜레마를 잘 설명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문학의 아버지 폴즈 역시 '지문으로 사형 선고를 할 수 있는지?' 에 대한 개인적 의구심으로 변호인 측에 협력할 정도였으니 말 다했죠.
또 이 과정에서 범인측 변호사와 증인들, 검찰측이 벌이는 치열한 법정 싸움도 아주 볼만합니다. 지문 도입으로 자리를 잃게 된 전 원래 영국 경시청 신원 확인 전문가로 일했던 복수심 불타는 가슨 박사와 검사측이 벌이는 논쟁이 가장 기억에 남는군요. 잘 짜여진 법정물로도 손색없어 보일 정도였습니다.
결국 체포된 두 형제 모두 교수대로 향하는데 아마 제가 배심원이었다 하더라도 지문 외 증거들로 유죄 판결을 내리는 데에는 문제가 없지 않았을까 싶긴 합니다. 지문은 밥 숟가락 한 개 얹은 정도의 재판이긴 했으니까요. 그래도 이후 지문이 증거로 채택되는데 큰 역할을 하게 되니 제 몫은 충분히 다 한 셈이겠죠.

마지막 에필로그에서 '서로 다른 손가락에서 채취한 두 개의 지문이 동일할 수 없다' 는 것은 아직도 증명되지 않았다는 말도 인상적이었어요니다. 이를 증명하는 한 방법은 현재 살아있는 모든 사람의 지문끼리 서로 비교하는 것 밖에는 없는데 이는 불가능하니까요.

이러한 지문 관련 이야기와 함께 당대 지문의 가장 큰 경쟁자였던 '베르티용'과 베르티용의 측정법에 대해서도 자세히 소개해주고 있습니다. 실험을 통해 두 사람이 어느 특정 치수가 똑같은 경우는 4:1의 비율로, 모두 11가지 측정치를 보유하는 베르티용 측정법을 통해 두 사람에게 모두 동일한 치수가 나올 확률은 4의 11제곱 대 1이었다는 기본 이론과 베르티용 측정법이 지니고 있던 구조적인 문제 (측정 자체가 번거롭고 어려우며 측정 기준도 상황, 장소, 사람에 따라 일정치 못함) 를 비롯, 베르티용도 지문을 등록하는건 찬성했지만 이를 상세 분류하는 것을 반대하여 쉽게 해결할 수 있었던 '모나리자 도난 사건' 의 범인 확인이 늦어지게 되어 치명타를 입었다는 이야기 등은 이전에 미쳐 알지 못했던 내용들이기도 했고요.

이렇게 재미와 지적 호기심을 모두 만족시키는 괜찮은 책입니다. 이 책만 읽으면 지문이 어떻게 신원 확인에 이용되어, 중요한 증거의 하나로 자리잡았는지를 잘 알 수 있으니까요. 법의학이나 법과학 등에 관심이 많으시다면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검찰측 증인 - 애거서 크리스티 / 강영길 : 별점 2.5점

검찰측 증인 - 6점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강영길 옮김/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이 바닥에서 전설급 명성을 자랑하는 표제작 포함 모두 8편의 작품이 수록된 단편집. <<애거사 크리스티 완전 공략>> (이하 <<공략>>) 을 읽고 탄력받아 읽기 시작한 책입니다. <<공략>> 에서의 별점은 무려 5점! 달려가서 구입해야 하는 걸작이죠. 이미 소장하고 있고, 읽어보기도 했지만 너무 오래전에 읽은 탓에 기억이 가물가물하고 리뷰도 올리지 않았기에 겸사겸사 다시 읽게 되었네요. 참고로, 제가 소장한 책은 '동서 추리 문고' 출간본으로 <<공략>> 에 소개된 단편집 수록작과 수록작은 일치하는데, 뒷부분에 <<카리브 해의 수수께끼>> 가 함께 포함되어 있습니다. 한 권 값으로 두 권을 읽는 셈이니 이득이죠? <<카리브 해의 수수께끼>> 은 별도로 리뷰를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특징이라면 '정통 추리물' 이 아닌 심령 소재 오컬트 호러물이 많다는 점입니다. 대부분의 심령 현상을 '영혼' 과 결부시켜 설명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주요 인물로 '정신 의학자' 가 등장한다는 점도 독특합니다. 정신 의학자가 영혼에 대해 이야기하는건 영 와 닿지는 않았지만요. 종교인이 등장하는게 더 낫지 않았을까요?
하여튼, 이렇게 호러물이기는 하지만 <<공략>> 에서도 언급되는 '지극히 연극적인 전개' 가 가득하다는 여사님 작풍도 한껏 느낄 수 있습니다. 표제작부터 그러해요. 레너드 볼이 결정적으로 무죄를 선고받게 되는 이유는 아내 로메인이 벌인 연극이 결정적 역할을 하니까요. 그 외에도 <<라디오>> 에서는 핵심 트릭이, <<푸른 항아리의 비밀>> 에서는 이야기 전체에 연극이 활용되며 <<붉은 신호등>> 이나 <<네 번째 남자>>, <<마지막 강령술>> <> 는 설정과 내용이 한 편의 연극을 보는 듯 합니다.

그런데 호러물로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어서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들어요. 지금 읽기에는 별로 무섭지 않으며, 낡았다 여겨지기까지 한다는 점입니다. 시대를 앞서간 부분은 분명 있지만 시대를 초월하지는 못한거죠. 솔직히 읽고나서 <<공략>> 에 대한 신뢰도가 대폭 감소했습니다...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작품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은데,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검찰측 증인>>
부유한 노부인을 살해한 혐의로 레너드 볼은 재판에 넘겨진다. 범행 시각에 아내와 함께 있었다는 유일한 알리바이는 아내 로메인에 의해 부정되고,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변호사 메이헌은 로메인의 증언을 뒤집을 결정적 증거를 확보하는데...

유명한 작품이기는 한데 <<공략>> 에서 몇몇 작품에 대해 언급한 바와 같이, 지금 읽기에는 너무 낡았습니다... 레너드 볼을 무죄로 만들기 위한 로메인의 노력이 너무 어설픈 탓이 커요. 당시 시대에서는 위증죄는 큰 죄가 아니었을까요? 게다가 로메인의 위증은 엄밀하게 말하면 살인 미수에 가까운 중죄라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을텐데 왜 이런 부분을 간과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런 중요한 재판에 단지 편지만 증거로 제시될 뿐 정작 법정에 로메인을 옭아매었다는 노파를 증인으로 부르지 않은 이유도 설명되지 않고요.

그래도 '일사부재리' 원칙과 배심원 제도의 맹점 등 현대 재판의 문제점을 드러내는 주제 의식과 아이디어 만큼은 현 시점에도 건재합니다. 무엇보다도 레너드 볼이 진범이라는 마지막 로메인의 외침 하나만으로도 한번 읽어볼만해요. 별점은 2.5점입니다.

<<붉은 신호등>>
절친 잭 트렌트의 부인 클레어를 연모하는 더못 웨스트는 저명한 정신과 전문의인 백부 앨링턴 경에게 그 사실을 들키고 언쟁을 벌인다. 그러나 직후 앨링턴 경이 살해되고, 웨스트는 범인으로 체포될 위기에 놓이는데...

주인공이 벌이지 않은 범죄로 위기에 처해진다는 서스펜스 단편. 약간 윌리엄 아이리쉬 느낌도 나는데 서스펜스에 집중하기 보다는 웨스트의 짝사랑, 그리고 제목의 '붉은 신호등' 이라는 웨스트가 지닌 일종의 예지 능력이 더 중요하게 묘사되는게 차이점입니다. 이 능력을 활용하여 최대의 위기를 벗어나는 (경찰이 덥쳤을 때 하인인 척 연기) 장면이 클라이막스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궁지에 몰리는 과정에서의 서스펜스를 잘 살리지는 못했으며, 클레어가 아니라 잭 트렌트가 광기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알리지 않는다는 점에서 지나치게 작위적입니다. 이 부분에서 앨링턴 경이 웨스트를 압박하는 이유도 잘 설명되지 않는 것도 문제에요. 뒤에 영국의 이혼법 등 몇가지 이유가 등장하는데 이국의 독자가 지금 읽기에는 설명이 많이 부족하거든요. 웨스트의 예지 능력 역시 설명이 부족한건 마찬가지고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이 설정으로 윌리엄 아이리쉬가 썼다면 훨씬 좋았을 것 같습니다.

<<네번째 남자>>
유명한 변호사, 의사, 종교인이 우연히 밤 기차에 동승하게 된다. 의사 캠벨 클라크 박사는 한 집에 사는 여러 사람들처럼 몸 하나에도 여러 개의 영혼이 있을 수 있다고 주장하며 과거 '펠리시 볼' 이라 불렸던 처녀의 다중인격 사례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이야기를 들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네번째 승객 라울 르타르도는 자신이 알았던 펠리스 볼과 아네트 라블이라는 소녀에 대해 말해주는데...
다중인격을 소재로 한 일종의 심령 호러물.
다른 수록작들은 모두 잊어버린지 오래지만 아직까지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있던 작품입니다. 다중인격에 대한 진상도 흥미로울 뿐더러, 펠리시가 자신의 몸에 침입한 타인을 격퇴한 결말이 충격적이기 때문입니다.

딱 한가지, 이러한 펠리시의 격퇴를 좀 더 극적으로 드러내지 못한 점은 좀 아쉽습니다. 이미 그녀가 상상을 초월한 방법으로 자살했다는게 밝혀진 후 과거 이야기가 등장하기 때문이에요. 라울의 회상이 끝난 다음에 나오는게 훨씬 좋지 않았을까 싶네요.
아울러 다중인격을 여러 '영혼' 이 한 몸에 깃든 탓이라는 설명은 구시대적인 발상이죠. 쓰여진 시기를 감안하면 단점이라고 하기는 좀 어렵지만요.

하지만 지금 읽어도 서늘한 감정을 불러 일으키는 멋진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이 단편집의 베스트에요. 별점은 4점입니다.

<>
정신 의학의 권위자 모티머 클리블랜드는 우연한 사고로 외딴 집에 살고 있는 딘스머스 씨 가족의 신세를 지게 된다. 딘스머스 가족은 무언가 알 수 없는 이상한 분위기가 감돌며, 이를 눈치챈 클리블랜드는 자신의 침실에서 SOS 신호를 발견한다.
이상한 말을 지껄이는 딘스머스를 비롯한 가족들의 묘사, 주변 인가에서 수 km 이상 떨어진 외딴 집이라는 설정은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지만 내용은 꽤 깔끔한 추리물입니다.
무엇이 이상하고,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추리하는 일종의 와이더닛 물이죠. 그런데 추리를 위한 단서들이 독자에게도 공정하게 제공되고 있으며 진상도 납득할 만한, 설득력있는 이야기로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여사님의 비소 사랑도 눈에 뜨이네요.

딱 한가지, 탐정역을 정신과 의사에게 시켜가며 딘스머스 가족의 별장에 초자연적인 무언가가 깃들어 있다고 분위기를 끌고가는 묘사가 잘 살아나지 못한건 조금 안타깝네요. 이 부분만 공포스럽게 묘사했다면 정말 좋았을텐데 말이죠. 여사님과 고딕 호러는 잘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그 외에는 단점을 찾을 수 없는 깔끔하고 완성도 높은 수작입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그나저나... 죽을 뻔한 의붓딸 샬럿과 가족들과의 관계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가 더 궁금합니다. 유산 상속만 되면 영원히 연을 끊고 살겠지만 그 전에 진짜 지옥이 열리지 않을까 싶은데 말이죠. 비소가 아니라 도끼가 등장할지도?

<<유언장의 행방 (라디오)>>
리지웨이 부인의 돈을 노리는 조카 찰스가 라디오로 쇼크사를 일으키는 계획을 실행하는 이야기로, 돌아가신 패트릭 고모부를 가장한게 찰스라는게 너무나 뻔해서 부인이 죽을 때 까지 긴장감은 전무합니다. 솔직히 이대로 끝나는 시시한 이야기겠구나 싶었어요.
그런데 유언장이 사라졌다는 반전이 기가 막힙니다! 덕분에 흔해빠진 범죄물에서 약간 오 헨리 느낌의 블랙 코미디로 작품이 확 살아납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청자의 비밀>>
잭 하팅턴 (24)은 골프의 핸디를 줄이는게 인생의 유일한 목적인 회사원으로, 골프장 근처에 방을 얻어 살면서 매일 출근 전 1시간 연습하곤 한다. 그런데 어느날 부터 그는 매일 아침 7시 25분에 여자의 비명소리를 듣게 되는데...

등장인물들이 유령과 감응한다는 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작품으로 또 유명 정신과 전문의가 등장하는데, 정신과 의사 배빙턴이 영혼의 치료자로 자칭한다는 점에서 과학적이라기 보다는 뭔가 쎄~한 느낌이 들더군요. 심지어 영매의 존재를 믿기까지 하니까요. 이래서야 사기꾼아닌가 싶은 생각이 안 들래야 안 들 수 없죠.
그런데 결국 이 모든게 잘 짜여진 사기극이라는 진상으로 넘어가니 참 잘 어울리네요. 이걸 의도한건 아니겠지만 시간이 흐른 탓에 오히려 작품과 더 잘 어울리는 모양새가 된거라 신기하기도 합니다.

물론 단편인 탓에 설명이 부족한 부분이 몇군데 있긴 합니다. 래빙턴 박사가 실제로 유명한 의사라며 등장하는 부분이 대표적입니다. 잭이 백부의 컬렉션을 잘 알고 있으리라는 보장도 없고 말이죠.

그래도 옥의 티 수준일 뿐, 유쾌하고 즐거운 작품이었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집시>>
집시 여인을 만나 경고를 받은 후 사망한 친구 사건에 대해 파헤치고자 집시 여인을 찾아 나선다는 이야기.

일종의 예지 능력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는 <<붉은 신호등>>과 비슷합니다. 그러나 단순한 예감이 아니라 핏줄로 전해지는 신비한 능력이라고 포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합리성을 떠나 최소한 설명을 해 주는 점은 좋았습니다.

하지만 완성도는 기대에 미치지 못합니다. 방향을 잘 잡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탓이 커요. 집시 여인 캐릭터를 공포스럽게 조성하는 식의 캐릭터 공포물처럼 시작해서 공포 분위기를 한껏 잡아나가지만, 불안에 떨던 주인공이 약혼녀 레이첼을 만나자마자 행복함에 휩싸인다는 결말은 뜬금없기 그지 없거든요. '두번 다시 보기 힘들겠다' 는 말 뜻이 주인공이 아니라 집시 여인의 죽음을 뜻했다는 일종의 반전은 신선했으나 효과적으로 활용되지 못했고요. 제 별점은 1.5점입니다.

<<램프>>
오래 전 굶어죽은 아이의 유령이 살고 있다고 알려진 집으로 이사 온 3대 가족의 손자 조프리가 병으로 죽고, 소년의 유령과 함께 떠난다는 이야기.

이 단편집에 많이 수록된 영혼에 대한 이야기 중 한 편입니다. 어디선가 영화에서 본 듯한 내용이에요. 아이의 눈에만 유령의 실체가 보인다는 설정이 특히 그러하죠.

그런데 별로 무섭지도 않고, 결말도 시시합니다. 전개에 기복이 없고 묘하게 담백한 탓으로 하나 뿐인 손자가 죽었는데도 불쌍한 소년 유령과 함께 떠난 것에 만족하는 할아버지 윈버 씨 묘사가 대표적입니다. 그냥저냥 잔잔한 소품이랄까요. 별점은 1.5점입니다.

<<아서 카마이클 경의 이상한 사건>>
저명한 심리학자이자 의학박사인 에드워드 카스테아스가 직접 목격한 사건 이야기. 그는 친구 세틀 박사가 준남작 아서 카마이클이 갑자기 백치가 되어버린 증상에 대해 도움을 요청하여 저택을 방문합니다. 그리고 회색 고양이와 관련된 기묘한 상황을 마주한다는 이야기죠.

진상은 카마이클 부인이 의붓 아들을 키우던 고양이와 몸을 맞바꾸었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아들에게 재산을 상속시키기 위해서요. 그녀는 동양의 피가 흐르는 마녀로 흑마술이나 최면술, 혹은 또 다른 기묘한 재주를 지녔다는 설정이고요. 이런 류의 이야기는 만화 등에서는 흔히 보아온 것이나 이를 상당히 이른 시기에 작품화하여 발표했다는 선구자적인 부분은 높이 평가할만 하네요.

그러나 선구자적 부분 외에 점수를 줄 만한 부분은 없습니다. 이 단편집 수록작 대부분이 지닌 '설명이 부족하다' 는 단점이 극명하게 드러나있기도 하고요. 어떻게 정신을 바꾸었는지? 에 대한 설명도 없고, 청산가리로 살해된 고양이의 몸 속에 들어간 아서 카마이클의 정신이 어떻게 다시 본인의 몸으로 돌아오는지에 대한 설명 역시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이야기는 에드워드 카스테아스 1인칭이며, 그가 실제 목격한 내용만 기록되어 있다는 설정으로 부족한 설명을 떼우려고는 하지만, 독자는 카스테아스의 비망록이 아니라 소설을 읽고 있는 만큼 최소한의 설명은 해 주었어야 합니다. 이래서야 한 편의 이야기로 완성도를 논하기도 어렵죠. 별점은 1.5점입니다.

<<날개의 부름>>
부호 사이러스 헤이머가 장애가 있는 거리의 악사의 연주를 듣고 높은 곳으로 향하는 꿈을 꾸지만, 속박으로 인해 다시 지상으로 떨어지는 것을 반복한다는 이야기.

장애인 악사가 신의 사자인 "목양신" 이라는 등 판타지 설정을 갖추고 있지만 정작 내용은 "부" 가 현실적인 속박으로, 모든걸 내려 놓아야 "승천" 할 수 있다는 약간은 동양적인 사고방식으로 흘러가는 독특한 작품. 한마디로 크로스오버인데... 다른 작품들에서 느껴지는 공포나 서스펜스는 전혀 느낄 수 없어서 안타깝습니다. 좋은 이야기이긴 한데 특별한 반전도 없고요.
무엇보다도 <<공략>> 에서 코즈믹 호러라고 설명하고 있어서 굉장히 호기심이 생겼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아서 실망이 컸습니다. 덕분에 <<공략>> 에 대한 신뢰도가 대폭 감소해 버렸어요. 별점은 1.5점입니다.

<<마지막 강령술>>
라울은 결혼을 앞둔 영매 시몬의 마지막 강령술 의식에 참석한다. 그것은 이미 죽은 딸 아메리를 구체화한 영혼을 불러내기 위해 거액을 지불한 마담 엑스를 위한 강령술이었다.
영매가 불러낸 구체화한 영혼 (엑토플라즘?) 에 손대면 영매가 죽는다는 설정이 전부인 이야기. 구체화한 영혼이 진짜가 되었을 때 부터 이야기가 시작되어야 하는데 이래서야 이야기가 너무 알맹이가 없죠.
<<공략>>은 논리를 철저히 관철함으로써 발생한 현상이라 무서운 작품이라고 설명하는데 솔직히 이해가 잘 되지 않습니다. '논리' 자체가 딱히 설득력이 없을 뿐더러, 이 논리를 관철하는 이유는 작품 내내 강하게 설명되고 있어서 의외성있게 다가오지 않기 때문이에요. 논리적인 반전, 혹은 또 다른 무언가가 필요했습니다. <<공략>> 신뢰도 감소 2연타로 별점은 1.5점입니다.

<<죽음의 사냥개>>
1차 대전 중 벨기에의 한 수도원에서 독일군 부대가 날아가 버린다. 벽에 검은 사냥개 모양의 화약 흔적만 남긴 채. "나" 는 이 사건에 관련된 수녀 마리 앤젤리크를 찾아내는데 그녀는 한 과학자의 연구 대상이었다...
고대 문명 및 그 문명의 사제들이 가지고 있는 초능력을 다룬 이색 단편. 수녀가 제 2 그리스도, 수정궁의 지도자 운운하는 신성 모독을 서슴치 않는 등 뭔가 있음직한 분위기는 물씬 풍기지만... 다른 단편들과 마찬가지로 내용에서 제대로 설명되는게 거의 없어서 무척 답답했습니다. 수녀가 가진 능력은 무엇인지, 로즈 의사가 어디까지 알아내어 음모를 꾸몄는지 등 뭐 하나 드러나지 않거든요.
<<공략>>은 논리가 부족해서 불안하고 두려운 작품이라고 설명하는데, 논리가 부족한게 아니라 미완성으로 보일 뿐이에요. <<공략>> 신뢰도 하락 3 콤보 되겠습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2018/02/18

에르큘 포아로의 모험 (포와로 수사집) - 애거서 크리스티 / 천두병 : 별점 2점

에르큘 포아로의 모험 - 6점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천두병 옮김/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애거사 크리스티 완전 공략>> (이하 <<공략>>) 을 읽고 충동적으로 읽기 시작한 여사님의 포와로 시리즈 단편집. <<공략>> 에서 언급한 수많은 걸작들보다 이 책을 먼저 집어든 이유는 딱 한 가지, 가입한 전자 도서관에서 대여가 가능했기 때문입니다. 오래 전에 구입해서 읽은터라 기억도 없고 리뷰도 남아있지 않아서 처음 읽는 기분으로 읽을 수 있었네요. 단, 제가 읽은건 <<에르큘 포와로의 모험>> 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동서 추리 문고" 판본이라 원서 대비 일부 단편이 빠져있고, 뒤에 장편 <<구름 속의 죽음>> 과 합본된 버젼입니다. 조사해보니 <<싸구려 아파트의 모험>> 등 여러 작품이 빠져있고, <<요리사를 찾아라>> 라는 다른 단편집 수록작이 실려 있는 등 구성이 엉망진창이라 좀 아쉽습니다만.

여튼, 읽어보니 크게 두 가지의 특징이 느껴집니다. 첫번째는 "연극" 이라는 요소가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공략>> 에서 언급한 걸작들처럼 작품 전체가 한 편의 연극으로 다의적인 내용을 품도록 쓰여진건 아닙니다. 단지 작 중 벌어지는 사건을 한 편의 연극처럼 재구성하여 보여주거나, 사건 해결을 위한 연극을 꾸미는 식 정도로만 쓰이죠. 즉 독자는 작품 속 연극을 작품 속 인물들과 함께 바라보는 정도에 그칩니다. 연극이라는 요소의 외연 확장 없이 단순하게 사용되었기 때문으로, 덕분에 작품들이 굉장히 작위적인 느낌을 전해줍니다.

두번째는 여러모로 초기작으로 보이는 점입니다. <<공략>>에서 언급한 대로, 홈즈 시리즈의 영향이 강하게 드러날 뿐 아니라 내용 수준이 지금 읽기에는 여러모로 좀 유치하기 때문이죠. <<공략>> 에서 말하는대로 트릭의 완성도가 낮은 탓도 크며, 전개에 있어 전혀 상관없는 인물을 수상하게 묘사하는 등 독자를 속이려는 의도가 너무 눈에 뜨이기 때문입니다.

결론내리자면, 여사님 작품 치고는 높은 수준이라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제 별점은 2점입니다. 하지만 나름의 가치는 분명히 있습니다. 고전의 향취가 강하며 짤막하게 읽기 쉽다는 점이 그러합니다. 고전 본격 추리 소설에 입문하고자 하는 입문자 분들께 권해드립니다. 

작품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읽으시기 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전승 무도회 사건>>
크론쇼 백작이 전승무도회에서 마지막 모습을 보이고 10분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살해된 시체로 발견된다. 그와 교제 중이던 여배우 코코도 코카인 과다 복용으로 사망하는데....

포와로와 헤이스팅스가 전통적인 홈즈와 왓슨 구도로 사건을 해결하는 본격 추리 단편. 사건을 의뢰할 뿐 아니라 해결에 도움을 주는 충실한 조력자 역할인 재프 경감마저도 레스트레이드 경감 포지션이라 할 수 있죠.

하지만 고전적인 설정에 비하면 완성도가 높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핵심 트릭이 시각적인 정보에 의존하기 때문입니다. 작중 묘사만으로는 공정하게 단서가 제공된다고 할 수 없어요.
게다가 전개와 설정도 작위적이에요. 코코가 죽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또 아무리 프로 배우라도,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장을 하는건 위험부담이 컸을텐데 이에 대한 안전장치가 없다는 것도 잘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정체가 드러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는데 말이죠.
또 전개에서 자신만이 진상을 안다며 정보를 툭툭 던지는 포와로의 모습은 지나칠 정도로 홈즈가 연상되어 그닥 마음에 들지는 않았어요.

그래도 <<공략>> 에서 설명되었던 여사님의 특기, 즉 "연극을 글로 옮긴" 작풍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는 점 하나는 좋았습니다. 결정적인 추리쇼가 연극이거든요. 하지만 이 역시 작위적이기만 할 뿐, 완성도에는 좋은 영향을 주는건 아니죠.

그래서 별점은 2점. 본격적인 여사님 스타일로 진화하기 직전의 습작같은 작품이에요. 자료를 찾아보니 데이빗 서쳇 주연의 TV 시리즈로 제작되기도 했는데 영상물에 훨씬 잘 어울리는 작품이라 생각되는군요.

<머스든 저택의 비극>>
시골 장원에서 사망한 노인 사건을 다루고 있는데 <<공략>> 에서 베스트로 꼽았던 작품이죠.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주 실망스러웠습니다. 입 속에서 총을 발사하여 총상이 보이지 않았다는 핵심 트릭부터가 기대 이하에요. 검시한 의사가 내출혈로 오진했을 뿐이라 의사가 실력만 있었어도 그냥 넘어가기 힘들었을겁니다. "의안을 빼고 총을 쏜 후 의안을 다시 집어 넣은" 식으로 총상을 위장했던 <<엉클 애브너>> 시리즈 중 한 작품 트릭 정도라면 모를까.
전개도 블랙 대위의 우연한 방문이 사건 해결의 시발점이 되는 등 여러모로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이에 더해 지나친 연극조 분위기도 감점 요소입니다. 자백을 이끌어내기 위한 그야말로 '연극'이 펼쳐지는데 지금 읽기에는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유치했어요. 발표 당시에 읽었더라면 고딕 호러 느낌이 전해졌을지 모르겠지만, 현 시점에서는 영 아니올시다에요.

이 작품을 <<공략>> 에서 높이 평가한 이유는 딱 한가지, 푸아로의 마지막 말 한마디가 살인자의 냉혹함을 부각하기 때문이라는데.... 이 장면 하나만으로 베스트로 꼽기는 여러모로 무리에요. 게다가 <<공략>> 에서 지적한 장점인 '뛰어난 단편소설만이 지니는, 최소한의 글자 수로 최대한의 충격을 선사하는 순발력의 미학' 을 저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냥 포와로의 수다에 불과하거든요. 제 별점은 1.5점입니다.

<<백만 달러 공채>>
일종의 밀실이라 할 수 있는 항해 중인 여객선에서 백만 달러에 달하는 채권이 도난당한다. 항구에서 완벽에 가까운 수색이 이루어지지만 발견되지 않고, 채권은 여봐란듯이 시장에서 유통되는데....
밀실에서의 소실 트릭이 등장하는 작품으로 트릭만큼은 재미있었습니다. 채권의 실체는 아무도 보지 못했으며, 애초에 채권 자체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대담한 발상이 인상적이거든요.
일종의 연극 무대와 소품처럼 설명하는 묘사는 단편집 수록작 전체에 공통적인 연극적인 구성을 답습하고 있는데 다행히 이 작품에서 만큼은 적절한 수준입니다. 여객선이라는 공간은 연극 무대와 잘 어울리기도 하니까요.

범인이 너무 뻔하게 드러난다는 단점은 조금 아쉽지만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클럽의 킹>>
미모의 발레리나를 협박하던 매니저가 살해된 채 발견된다. 발레리나는 도주 끝에 한 가정집에 구조되는데...

복잡한 인간 관계가 등장한다는 점에서는 <<공략>> 에서 언급했던 여사님 작풍의 특징의 편린이 엿보입니다. 브릿지를 하는데 킹이 없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진상을 꿰뚫어보는 포와로의 솜씨도 그럴듯 하고요. 우리나라 버젼이라면, "도둑 잡기" 를 하는데 조커가 없었다 정도의 이야기겠죠.

그러나 사건 자체가 범인과 공범들의 연극이라 이 쯤 되니 연극 사랑도 좀 지나치지 않나 싶을 정도입니다. 동기 및 설정도 작위적이기 짝이 없고요. 무엇보다도 이 정도 상황이라면 경찰이 충분히 범인을 검거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장점보다는 단점이 더 눈에 많이 뜨이기에, 별점은 2점입니다.

<<이집트 왕 무덤의 모험>>
당대 유명했을 투탄카멘의 저주를 추리물로 변주한 작품. 트릭이랄건 딱히 없지만 우연한 사고를 발단으로 원격 조종 살인 등 연쇄 살인을 일으키고, 진짜 목적한 살인은 그 사이에 감춘다는 ABC 살인사건의 원형같은 아이디어가 잘 녹아든 수작 단편입니다.

그러나 단점은 역시나 과장된 추리쇼, 연극이 동반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이런 연극 없이도 범인을 잡아내는데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을텐데.... 좀 아쉽네요. 별점은 3점입니다.

<<그랜드 메트로폴리탄 보석 도난 사건>>
석유 부호의 아내가 잃어버린 진주 목걸이를 되찾는다는 내용으로 작위적이고 유치한 작품입니다. 이유는 이 책 전체를 지배하는 연극조 구성 때문이에요. 불쌍한 프랑스 하녀의 자리비움 시연도 그렇고, 포와로가 카드에 대해 묻는 척 하며 지문을 입수하는 전개, 그리고 진범이 두 명의 유명한 보석 도둑으로 변장한 상태였다는 점이 그러합니다. 현장의 장치를 이용한 트릭도 연극 무대 느낌이 물씬 나고요.
이러한 이야기가 설득력있게 묘사되었면 모를까, 트릭을 알아내는 장면부터 작위적이고, 등장인물이 너무 적어 용위자도 특정 가능할 뿐더러... 심지어는 트릭마저도 유치합니다.
게다가 남편과 보험을 연결시켜 용의자를 흐리게 하는 묘사도 노골적으로 독자의 시선을 돌리려는 의도가 느껴져서 마음에 들지 않네요.

그야말로 초기작이라는 티가 물씬 나는 작품. 별점은 1.5점입니다.

<<저주받은 상속권>>
고전 추리 걸작의 향취가 물씬 풍기는 단편. 한 집안에 전해져 내려오는 저주, 저주를 이용한 냉혹한 살인이라는 설정은 브라운 신부 단편이 떠오르고 어둠 속에서 숨어있다가 살인자를 덮치는 장면은 셜록 홈즈 시리즈 ( 그 중에서도 <<얼룩끈>>) 가 떠오르죠.

그런데 이야기의 큰 문제가 있기는 합니다. 전설이 오래 전 부터 계속되어 온 이유를 설명할 수 없거든요. 이집트 왕 무덤의 모험에서 처럼 현재 시점에서 진행되는 저주나 전설은 지금 시작되었으니까 가능하지만, 과거의 사건은 후대의 사람이 일으킬 수 없으니까요. 즉 과거에 실제로 저주가 존재해다는 이야기밖에는 되지 않아서 여러모로 애매한 이야기가 되어 버렸어요.

그래도 마지막 포와로의 대사 하나로 평범 이하의 소품에서 작품의 가치가 확 뛰어오릅니다. 저주의 발단이 된 아내의 외도와 자식의 출생의 비밀에 대한 의심이 후대에 구현되어 가문과 재산이 넘어갔다는 점에서는 살짝 오싹하기도 하네요. 의처증으로 아내와 아들을 죽인 미치광이에게 어울리는 멋진 마무리입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요리사를 찾아라>>
홈즈 시리즈를 연상케하는 도입부, 요리사가 사라진 사건이 상류층에게 있는 강력 사건보다 못할게 없다는 가정 주부의 의뢰 등 시작부터 범상치 않은 작품입니다. 실종된 요리사와 거액을 지닌 채 도주한 은행원을 연결시키는 전개도 일품이고요.

그런데 몇가지 의아한 점이 없지는 않습니다. 낡은 트렁크를 구하기 위해 이렇게까지 수고를 할 필요가 있었을지 의문이며, 부인이 의뢰를 취소한 이유도 석연치 않네요. 남편이 범인이 아니라면 구태여 의뢰를 취소할 필요가 있었을까요?

그래도 평균 이상은 되는 좋은 작품이었어요. 별점은 3점입니다.

<<웨스턴 스타>>
사라진 보석 "웨스턴 스타"에 관련된 진상을 풀어내는 이야기로 지나친 억측이 가득한 작위적인 작품이라는, 이 대부분의 단편집 수록작들이 갖춘 단점을 아주 정확하게 갖춘 작품입니다. 주요 등장인물들이 배우들이며, 핵심 트릭이 연극이라는 점은 이제 지겹기까지 하네요.
앞서 다른 작품에서 말씀드렸듯 연극적이라도 설득력있게만 전개되었다면 조금 괜찮았을거에요. 하지만 이 작품 속 연극은 각본이 너무 부실해요. '수수께끼의 중국인' 이라니! 게다가 변장을 너무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하고 있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고요.

한마디로 점수를 줄 부분이 없는 평균 이하의 작품입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구름 속의 죽음>>
이전에 리뷰를 남겼던 작품이죠.

** 그리고 이어지는 리뷰는 이 책에는 수록되어 있지 않은 다른 <<포와로 사건집>> 수록작들 리뷰입니다. 별도로 구해 읽었습니다만, <<싸구려 아파트의 모험>>, <<베일을 쓴 여인>>, <<사라진 광산>>, <<초콜릿 상자>> 는 아직입니다. 나중에라도 읽으면 업데이트 하도록 하겠습니다.

<<납치된 총리>>
영국 총리가 실종된 사건을 다룬 작품으로 세계 정세를 소재로 꽤나 거대한 음모가 등장합니다.
그러나 추리적으로는 그닥이에요. 바꿔치기 트릭이 등장하는데 지극히 억지스럽거든요. 조작이 너무 쉽다는 맹점도 있고요. 솔직히 총리가 저격당하는 등의 사고가 있었는데 너무 조치가 대충이 아니었나 싶군요. 여러모로 평균 이하로 별점은 1.5점입니다.

<<사냥꾼 별장의 모험>>

헤이스팅스가 현장에서 발로 뛰고, 포와로는 간단한 정보만으로 진상을 추리해내는 안락의자 탐정물.

전형적인 홈즈, 왓슨 컴비 단편이 떠오르는 작품입니다. 설정은 <<바스커빌 가의 개>>와 똑같으니까요. 하지만 완성도는 홈즈 시리즈에 미치지 못합니다. 트릭은 진범이 원래 배우 출신으로, 1인 2역 연기를 했다는 것인데 경찰의 수준 (더불어 헤이스팅스까지) 이 의심될 정도로 유치한 트릭이었어요. 연극 사랑이 정점에 달했는데 이건 정말 너무한 수준이죠. 범인들이 구태여 포와로에게 사건을 의뢰하여 긁어 부스럼을 만든 이유도 제대로 설명되지 않고요.

고전 향취 물씬 풍기는 도입부와 분위기는 마음에 들지만 그 외에는 건질게 없네요. 별점은 1.5점입니다.

<<데이븐하임 씨 실종 사건>>
저명한 은행가의 실종 사건 해결을 걸고 재프 경감과 내기를 한다는 이야기. 재프 경감의 끈기있는 수사 활동보다 자신의 추리가 더 확실하다고 자부하는 포와로의 모습이 재미있습니다. "눈 같은걸 쓰는 것 보다 눈을 감고 생각하는게 더 낫다"는 말로 대표되는, 자존감이 극히 높은 자부심 덩어리 포와로 캐릭터를 여실히 느낄 수 있거든요.

또 전개가 일품이에요. 홈즈 시리즈인 <<입술 비뚤어진 사나이>> 와 별다르지 않은 진상은 대단치 않고, 트릭도 변장 트릭에 불과하다는 단점은 크지만 전개하면서 드러내는 정보들을 통해 이를 설득력있게 꾸며내는데 성공하고 있거든요. 가장 완벽하게 실종될 수 있는 장소에 대한 아이디어도 아주 괜찮았고요.

딱 한가지, 지나치게 변장을 맹신하는건 눈에 거슬리네요. 데이븐하임 씨는 배우도 아니고, 얼굴도 잘 알려져있는데 이래서야 설득력이 너무 낮죠.

그래도 가벼운 소품으로 읽을만 했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잃어버린 유언장 사건>>

돌아가신 큰아버지와 거액의 유산을 두고 승부를 벌이는 바이올렛 마쉬양의 의뢰에 대한 이야기.

유산을 모두 자선단체에 기부하겠다는 내용과 다른, 뒤에 쓰여진 유언장을 찾아내는 일종의 보물찾기 이야기인데 여러모로 문제가 많은 작품입니다. 모호한 말에서 찾아내야 하는게 유언장이라는걸 짚어내는 첫 과정부터 애매하며, 유언장을 찾아내는 과정의 설득력도 지극히 낮거든요. 불에 가져다 대어야 보이는 잉크라는 단서는 아무데도 없는데, 이래서야 추리가 아니라 초능력의 영역이 아닐까 싶네요. 게다가 헤이스팅스도 지적했지만, 둘만의 승부에 포와로가 끼어든 자체도 반칙이고 말이죠.

여러모로 단점만 도드라지는 소품으로 별점은 1.5점입니다.

<<이탈리아 귀족의 모험>>
이탈리아 귀족 살인사건을 파헤치는 내용으로 <<사냥꾼 별장의 모험>> 과 같은 개념, 트릭의 작품입니다. 목격자가 범인으로 위증을 했다는게 진상이니까요.
하지만 어처구니없는 변장보다는 그래도 공들인 연출이 들어가 있으며, 진상을 알게 만드는 "수플레" 라는 단서도 나름 공정히 제공되고 있습니다. 커피에 대한 언급만 빼고 말이죠. (커피는 전혀 공정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전화가 어디서 걸려왔는지? 라는 결정적 단서를 경찰이 미리 조사하지 않았기 때문에 큰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범인이 이런 사실도 간과하고 엉터리 알리바이 공작을 꾸민게 믿어지지가 않을 정도에요. 발표 시점에는 신고 전화의 출처에 대해서는 조사하지 않았던걸까요?

그래서 별점은 2.5점. 나쁘지도 않지만 단점도 명확한 평작입니다.

2018/02/16

패러독스의 세계 - 다무라 사부로 : 별점 2.5점

패러독스의 세계 - 6점
다무라 사부로/전파과학사

오래전 사랑했던 추억의 전파과학사 문고. 저렴한 가격에 ebook 대여가 가능하여 읽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행사가 끝난 듯 싶군요.

이 책에는 두 개의 전혀 다른 내용의 이야기가 함께 수록되어 있습니다. 앞 부분은 천애고아 미다 타로가 연인의 사고사 후 자살하려고 생각할 때, 우연히 외계인 퀴리그인에게 납치되어 퀴리그 별에서 가정교사 및 기술자로 일하며 여러가지 수학 논리를 설명해준 과거를 설명하는 일종의 수기이며, 뒷 부분은 "웃지 말 것 - 웃음과 패러독스", "읽지 말 것 - 수학과 패러독스" 라는 두 개의 챕터로 여러가지 패러독스 상황을 관련된 이야기들로 설명해 주는 구성입니다.

미다 타로의 수기 부분은 솔직히 왜 이런 기묘한 설정으로 이야기를 끌어나가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구태여 외계 행성 설정을 끌어들이지 않더라도 설명 가능한 부분이라 생각되거든요.
그래도 초-중학생 수준의 외계인 아이들에게 수학과 논리를 가르친다는 설정 덕분에 수학에 기반을 둔 내용이 많음에도 아주 어렵고 심오하지 않아서 이해가 쉽다는 장점은 있습니다. 가르치는 내용들이 제목 그대로 "패러독스" 관련된 역설 이야기가 많아서 퍼즐을 푸는 듯한 재미도 넘치고요. 각종 공작이나 퍼즐, 심지어 미다 타로가 외계인 아이들에게 보여주는 '요술' 관련된 도판까지 도판이 생각 외로 많은데 이 역시 읽는 즐거움을 더해줍니다.

단순한 즐거움 외에도 현학적인, 새로운 지식을 알게 되는 기쁨 역시 컸습니다. 오래 전부터 궁금했지만 답을 몰랐던 수학 문제의 답을 알게 된게 대표적인 예입니다. "12 척의 배를 가진 부자가 장남에게는 1/2을, 차남에게는 1/4을, 막내에게는 1/6을 주기로 했는데 1척이 침몰해버렸다. 그런데 이웃에서 배를 빌려와서 장남에게 12척의 1/2인 6척, 차남에게는 1/4인 3척, 막내에게는 1/6인 2척을 주니 모두 11척이라 이웃에게 배를 돌려줄 수 있었다. 어떻게 된 것인가?" 라는 문제죠. 정답은 애초부터 잘못된 유언이라는 것입니다! 1/2 + 1/4+1/6 이 "1" 이 아니기 때문이죠.
비교적 자주 접했었던 "세 명이 여관에 숙박비로 1인당 1만원 씩 지불했다. 그런데 여관 주인이 서비스로 5천원을 깎아 주었다. 그러나 이를 돌려주던 종업원이 2천원을 슬쩍하고 3천원만 돌려주었다. 각자 1만원 씩 냈는데 1천원씩 돌려 받았으니 1인당 낸 돈은 9천원이고, 3명이서 2만 7천원을 내었다. 여자 종업원이 2천원을 슬쩍한걸 더하면 2만 9천원. 1천원은 어디로 갔을까?" 라는 문제도 이 책 덕분에 속 시원하게 정답을 알 수 있었습니다. 여관 주인이 받은 돈은 2만 5천원이고, 종업원이 가로챈건 2천원이라 이는 손님 세 명이 지불한 돈과 일치합니다. 여기에 깎아준 3천원을 더하면 처음의 3만원이 됩니다. 이 돈에 또 슬쩍한 돈 2천원을 억지로 더해서 발생하는 오류죠.

이러한 퍼즐같은 이야기 외에도 정통 수학에 기반을 둔 이야기도 흥미로왔습니다. '앞의 두개의 수의 합이 다음 수가 되는 피보나치 수열의 이웃한 3개의 수는 항상 한가운데 수의 제곱과 양 끝 두 수의 곱은 언제나 1만큼 다르다' 라는 사실 등 새롭게 알게 된 이론도 많고요. 또 '큰 원의 원 둘레와 작은 원의 원 둘레가 1:1로 대응하더라도 길이는 똑같다고 할 수 없다' 는 이유 등 완벽하지는 않지만 몰랐던 수학 이론에 대해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생겨서 만족스러워요. "1/3 + 1/3 + 1/3 은 1인데 1/3은 0.333333333..... 이라 1/3을 더하면 완벽한 1이 되지 않는데?" 라는 문제에 대한 답도 미력하나마 깨우칠 수 있었네요.

수기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논리 퍼즐도 대미를 장식할만합니다. 아주 인상적이었기 상세하게 소개해 드릴께요. 일단 문제는 다음과 같습니다. "두 개의 문이 있는 방이 있다. 한 방은 정답, 다른 방은 오답이다. 방에는 언제나 사실을 말하는 정직 족, 언제나 거짓말을 하는 거짓말쟁이 족으로 이루어진 별에서 온 두 사람이 있다. 두 사람이 어느 부족인지는 모른다. 이 두 사람 중 한 명에게 한번만 질문할 수 있다. 그들의 답은 "팔" 또는 "다아" 중 하나이다. 이 "팔" 과 "다아" 중 어느 쪽이 yes이고 어느 쪽이 No 인지는 알 수 없다. 무슨 질문을 해야 하고, 답은 어떻게 되는가?" 입니다. 논리 퍼즐로 한참 고민해도 됨직한 멋진 이야기죠?
이 책에서는 놀랍게도 수학 공식화하여 설명해주고 있는데 내용 중 "동치" 개념과 교환율, 간략화 공식에 대해 완벽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공식으로 "왼쪽의 문이 정답입니까? 라고 질문을 받으면 당신이라면 "팔" 이라고 대답합니까?" 라는 답이 도출되는 과정은 놀라왔습니다. 수학적으로 풀어낼 수 있는 이야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는데 말이죠. 여러분들도 이 답이 맞는지는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책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는 미타 타로의 수기와 비교한다면 이어지는 "웃지 말 것 - 웃음과 패러독스" 부분은 그렇게 인상적이지는 않습니다. 여러가지 패러독스를 다양한 글을 통해 설명하고 있는데, 라쿠고나 잡지의 유머 등을 인용하여 이해를 돕는건 좋지만 너무 장황하거든요.
물론 유머, 우스개 들에서 패러독스 이론을 끄집어 내는건 대단했고, 유머만 소개되는게 아니라 체스터턴의 단편과 <<라쇼몽>>이 인용되는 등 볼거리가 많긴 합니다만... 글 말고 도판이나 다른 보조 장치가 필요했습니다. 글 만으로는 한계가 있어 보였어요. 거짓말 관련된 패러독스가 내용의 대부분이라는 점도 아쉬웠고요.
마지막의 "읽지 말 것 - 수학과 패러독스"는 제목처럼 수학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기는 한데, 그 비중이 높지 않습니다. 도입부에서 칸토어의 정리를 쉬운 집합 형태로 바꾸어 설명하는 부분은 재미있었지만, 이외에는 패러독스를 수학으로 설명하기 위한 여러가지 이론 설명 비중이 더 크기 때문이에요.

그래도 전체적으로 재미있고 읽을만한 내용임에는 분명합니다. 허나 문제는 번역이에요. 책의 가치를 번역이 반 이상 깎아먹고 있어서 안타깝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수학 이야기인데 어떤 항목은 번역된 글 자체를 이해하기 힘들 정도거든요. 책 자체는 별점을 3점 이상 주고 싶어도 번역 때문에 도저히 2.5점 이상은 주기 힘드네요.
수학을 공부하는 중학생 정도라면 쉽게 이해하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내용들이라 생각되어 수학을 좋아하신다면 추천드리고 싶은데, 번역 때문에 선뜻 권해드리기 어렵군요. 조금 현대적으로 각색해서 새롭게 번역되어 출간된다면 더 바랄게 없겠습니다.

2018/02/09

책낸자 - 서귤 : 별점 3점

책 낸 자 - 6점
서귤 지음/디자인이음

<<고양이의 크기>> 라는 독립 출판물을 발표한 서귤 작가가 자신이 책을 만든 과정을 4컷 만화로 그려낸 작품. 독립 출판에 관심이 많기에 주저없이 구입해 보았습니다.

장점이라면 저 역시 출간을 꿈꾸는 사람으로 많은 자극이 되었다는 점입니다. 책을 출판한다는 의미를 되새기는 기회도 되었고요. 특히 초반 책 만들기 워크샵 강사 덕집장 (독립잡지 THE Kooh 편집장) 의 주옥같은 명언들은 심금을 울립니다. "매일 하면 그게 직업이다. 매일 책을 만들면 작가다." 가 대표적이죠. 정말 많이 반성하게 됩니다. 왜 나는 매일 하지 않았을까...
또 적은 분량의 4컷 만화지만 이를 통해 책을 출간하여 유통할 때 까지의 긴 호흡의 이야기로 그려낸 전개도 마음에 들었어요. 작화도 빼어나지는 않지만 내용과 잘 어울리며, 범상치 않은 상상력을 지닌 작가의 개그 센스가 작품과 아주 잘 어울려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직장 생활 묘사는 마음에 들지 않더군요. 실제 직장 생활을 하는 작가의 묘사 치고는 놀라울 정도로 생동감이 없을 뿐더러, 너무 힘들고 안 좋은 쪽으로만 묘사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십수년차 직장인으로, 현실 속에서 이 책 속 과장처럼 예의없게 이야기하고 사람에게 상처주는 상사와 지루하고 따분하며 사람을 소모시키기만 하는 업무가 존재한다는건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반대급부로 좋은 동료, 친구와 상사,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업무도 함께 있는 법이죠. 힘든 일만 있으면 회사를 다니는건 불가능해요.
그러나 이 책 속에서 직장 생활에서의 좋은 점은 단 한 개도 그려져 있지 않습니다. 한마디로 작품 속 회사와 상사는 '독립 출판은 힘든 직장 생활을 잊기 위한, 그리고 자신을 찾기 위한 탈출구이다'라는 당위성을 이야기에 부여하기 위한 작위적인 장치일 뿐입니다. 솔직히 걸러 읽어도 무방할 정도에요.
이런 뻔하디 뻔한 묘사보다는 "직장 생활에 쫓기지만 30대도 되었으니 기념삼아, 또 나의 어린 시절 꿈과 성취를 위해 책을 한번 내 보기로 했습니다!" 라는 평범한 이유와 함께 책을 만드는 과정을 보다 심도깊게 다루는게 좋지 않았을까 싶네요.

하지만 단점보다는 장점이 많고, 개인적으로는 눈여겨볼 부분이 많았던 책임에는 분명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조사해보니 <<고양이의 크기>> 도 증쇄가 결정된 모양인데, 이를 계기로 앞으로도 서귤 작가가 좋은 작품을 많이 써 주었으면 하네요.

2018/02/04

애거사 크리스티 완전 공략 - 시모쓰키 아오이 / 김은모 : 별점 4.5점

애거사 크리스티 완전 공략 - 10점
시모쓰키 아오이 지음, 김은모 옮김/한겨레출판

오랜 경력의 평론가가 "왜 크리스티의 작품이 인기가 있고 재미있는지?"를 알기 위해 작품 발표 순서대로 전부 읽어본 후 평을 기록한 평론 집이자 리뷰 집.

리뷰의 수준은 최상급입니다. 스포일러를 최대한 자제하면서 작품의 핵심을 콕 집어 지적하고 있는데 그야말로 추리 소설 리뷰의 교과서라 해도 좋을 정도예요. <<스타일즈 저택의 괴사건>> 은 '불순물 하나 없는 본격 추리 소설의 원형'이라고 한다던가, <<엔드하우스의 비극>> 은 고명에 의존하지 않고 면발과 국물의 감칠맛으로만 승부하는 우동같은 작품이라는 식이죠. 무엇보다도 좋은 작품은 정말 읽어보고 싶을 정도로 잘 소개하고 있기도 합니다.
또 전문가답게 유사하거나 참고해야 할 여러 작품을 함께 소개하는 점도 눈여겨볼 만 합니다. 트릭면에서 특히 그러합니다. <<비뚤어진 집>><<구름 속의 죽음>> 정도는 저도 알고 있었지만... <<골프장 살인 사건>> 이 10년 뒤 발표된 역사적 명작과 같은 장치를 사용했고, <<블랙커피>> 속 장치는 다리오. 아르젠토의 <<서스페리아 2>> 속 장치와 일맥상통한다, <<맥긴티 부인의 죽음>> 은 하드보일드 성향이라 우수하다는 등 정보는 그 깊이와 수준에 정말 감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대체 이런 걸 어떻게 기억하고 쓰는지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네요.

그리고 리뷰가 작품이 발표된 연대별로 이어지는 덕분에 여사님의 발전, 작법의 진화를 알 수 있게 하는, 일종의 연대기적 구성을 갖추었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여사님 특유의 섬세한 인간관계 묘사가 정교하게 쌓아 올려지고, 트릭보다 인간관계와 동기 등 다양한 요소에 주목하는 작품들이 늘어나는 과정을 잘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과정에서 여사님이 얼마나 많은 작품 스타일에 도전했는지도 알게 되었는데 정말 대단하더군요. 정통 추리에서 시작해서 모험물, 신본격 스타일 서술 트릭스릴러법정극, 하드보일드, 오컬트 심령 괴기물, 심지어 코즈믹 호러(!) 까지 장르 문학의 거의 전 범위를 아우르고 있으니까요. 왜 거장인지를 리뷰를 읽으면서 새삼 다시 느끼게 됩니다.
아울러 매우 낡아빠진 오래전 고전 작가 같지만 그렇지 않다며 <<세번째 여인>> 의 경우 1966년 발표된 작품으로 곧 '레드 제펠린' 이 결성될 시점이라고 지적하는 장면에서는 시대가 확 와 닿아서 놀랐습니다. 저 역시 언젠가 읽은 여사님 작품에서 '스푸트니크' 호가 언급되는 장면을 보고 놀랐던 적이 있죠. 참고로 이 작품은 당시 미국 최첨단 추리 소설에 도전한 작품이라고 저자는 소개하는데 꼭 한번 읽어보고 싶어집니다. 무모한 도전에서도 일정 수준 이상의 결과물을 뽑아낸 증거라나요?

이렇게 리뷰 자체만으로도 대단하지만, 이 리뷰를 통해 작가가 스스로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낸다는 게 책의 핵심일 뿐 아니라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기도 합니다. 인기가 있는 이유는 당연히 '걸작'이기 때문인데, 걸작인 이유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아서 제대로 알려지지 못했다고 지적합니다. 이는 여사님의 걸작들은 요약해서 설명하기가 불가능해서 제대로 소개되지 못 한 탓이고요. 작품 전체가 트릭이자, 복선이자, 단서이자, 미스디렉션으로 소설 전체가 속이기 위해 짜여진 플랫폼일 뿐 아니라, 여사님은 트릭에 능한 작가가 아니기 때문에 명료하게 설명될 수 있는 본격물에 비하면 그 장점이 선명하게 드러나기 어렵다는 게 최종 결론인데, 여사님 작품에 대한 저자의 리뷰들을 읽어보면 이 의견에 동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 리뷰를 통해 여사님의 특징적인 작법을 눈치챌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해주는 것도 좋았습니다. 특유의 스타일은 그녀가 일종의 "연극"처럼 상황을 다룬 것이 비결로, 여사님 작품은 그림이나 동영상, 연극처럼 독자나 관객이 어디를 주목해야 하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무언가 일어나는 이야기라는데 아주 타당해 보였어요. "다의적" 이야기를 어떻게 올바르게 해석해 내는지가 중심이라는 것으로 정말 무릎을 칠 만했습니다. 제가 읽었던 여사님 작품을 몇 편 떠올려 봐도 저자의 말대로 "여사님 머릿속에 상영되는 연극을 종이 위에 옮겼다고 해도 무방하다." 고 할 수 있으니까요.
"보이는게 다가 아니다" 라는 것, 즉 보이는 것이 완벽하게 자연스러운 겉보기를 만든 후, 겉보기와는 다른 진실에 그 이상의 설득력을 부여한다는 방법도 이와 일맥상통합니다. 가장 좋은 예는 여행지라는 무대와 신원을 위장한다는 설정인데 정말 그럴싸 하죠? 연극과 같은 상황을 접목하기 좋은건 당연히 일상과 분리된 장소일테고, 이런 상황에서 자신을 위장하는게 보다 손 쉬운건 당연하니까요.
아울러 여사님은 독자가 어떤 때 어떤 인물을 의심하고 어떤 때 용의 선상에서 제외하는지를 완벽하게 꿰고 있었던 덕분에 독자를 속이는 작품을 쓸 수 있었다고 하는데, 이건 정말이지 흉내도 내기 어렵겠죠.

그런데 딱 한 가지, 저자 스스로 모든 작품의 별점을 매기고 평가한 결과에 전적으로 동의하기 어렵기는 합니다. 물론 평론, 리뷰 및 평가는 온전히 자기 혼자만의 결과물이기에 모든 사람이 만족하거나 동의할 수는 없죠. 그러나 전반적으로 별점이 높게 형성되어 있을 뿐 아니라, 널리 알려진 걸작이 아닌 자신만의 기준이 많이 부여되고 있어서 공감가지 않는 부분도 제법 많았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아주 별로였던 <<헤라클레스의 모험>> 을 굉장히 높게 평가하고, <<다섯 마리 아기 돼지>> 나 <<끝없는 밤>> 을 최고 걸작 중 하나로 꼽은게 대표적인 예입니다. <<신비의 사나이 할리 퀸>> 역시 마찬가지고요. 한 권도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로맨스 소설'로 알고 있는 매리 웨스트매콧 명의 작품을 높이 평가한 것도 의아했던 점이에요. 제가 보았을 때에는 정교한 심리 묘사와 '이야기의 다의성' 이라는 항목을 지나치게 높이 평가하고 있지 않나 싶더군요.
그리고 <<슬픈 사이프러스>> 등 몇몇 작품은 국내 번역명과 동떨어진 일본식 제목으로 소개되거나, 포와로와 마플 및 기타 장편 외 몇몇 작품들에 대한 국내 출간 여부가 체크되지 않은 점은 옥의 티입니다. 출판사의 배려가 아쉽네요.

그래도 크리스티 여사님의 작품을 이해하기 위한 교과서이자 잘 쓰인 추리소설 리뷰 집으로 완벽에 가까운 책입니다. 별점은 4.5점입니다. 저도 여사님같은 작품을 쓰지 못할 바에야, 이런 리뷰라도 쓸 수 있어야 할텐데 말이죠.... 여튼, 추리소설 애호가라면 누구든 반드시 읽어봐야 할 책이에요. 저자의 표현을 빌자면, "뛰어가서 사 오시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저자의 전체 베스트 10을 소개하며 글을 마칩니다. 저도 여사님의 작품은 십 수권 읽어본 정도로 아직 읽어보지 못한 작품이 많은데 서둘러, 시간 나는 대로 읽어봐야겠습니다.

1. 커튼
2. 다섯 마리 아기 돼지
3. 끝없는 밤
4. 주머니 속의 호밀
5. 봄에 나는 없었다.
6. 백주의 악마
7. 깨어진 거울
8. 신비의 사나이 할리 퀸
9. 죽음과의 약속
10. N 또는 M

그 외 개인적으로 <<장례식을 마치고>>, <<할로 저택의 비극>>, <<맥긴티 부인의 죽음>>, <<카리브해의 미스터리>>, <<서재의 시체>> 도 읽어봐야겠어요. 다른 작품들도 많지만, 이것만 해도 올해 여름까지는 충분하겠죠?

2018/02/03

중국 초청 SF 단편들

중국 SF로부터의 초대장

자주 찾는 블로그 이웃 잠보니님 글을 통해 소식을 듣고 읽게 된 중국 SF 단편들. 중국 SF는 이전에 <<삼체>> 를 꽤 재미있게 읽기도 해서 사뭇 기대가 컸습니다.

하지만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모두 6편의 단편 중 딱 한 편, <<기아의 탑>> 을 제외하고는 모두 SF로서, 하나의 이야기로서의 완성도가 수준 이하거든요. 대체로 설정은 그럴듯하지만 최소한의 설명도 없고, 이야기도 편의대로 흘러가는 느낌이 강하기 때문이에요. 뭔가 있어보이려고 노력은 했지만 결과가 딱히 괜찮다고 보기도 어렵고요. 과거 모뎀 시절 유행했던 함량미달의 한국 SF 단편들이 떠오르는, 그런 이야기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1.5점. 독특하다는 점은 주목할만 하지만 구태여 찾아 읽으실 내용은 아닙니다. 작품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기아의 탑>>
추락한 우주선의 생존자들이 먹을 것 하나 없는 수도원에 고립된 상황을 그린 이야기로, 생존자들이 식인으로 치닫는다는 전개는 뻔하지만 "수도원의 수도사들은 도대체 무엇을 먹고 살았을까?" 라는 약간의 미스터리와 "진동으로 가득 찬" 행성이라는 SF 적인 설정이 잘 결합되어 충분한 재미를 전해 주는 작품입니다.
결국 수도원에서 생각을 증폭시켜 무엇이든 만들 수 있다는, 나름 철학적이면서도 신선한 설정 및 이를 흉폭한 야성이 무위로 되돌린다는 결말도 괜찮았고요. 그게 뭐가 되었건 '최후의 말 한마디'는 들어 주어야 한다는 교훈을 남겨줍니다.

그런데 이전에 거주하던 수도사들은 어디로 사라졌는지를 설명해주지 않는건 조금 아쉽더군요. 생각을 증폭시켜 열반에 이르렀다는 설정일까요? 또 생존자들을 습격하는 괴물의 정체도 뭔가 복선처럼 풀어주었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네요.

그래도 중국 SF의 저력을 확인하는데는 문제없는 작품이었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고래자리를 본 사람>>
행위 예술가인 아버지는 딸의 숙제를 위해 '만들어 낸' 행성이 '진짜' 라고 주장하며, 그 주장을 증명하지 못해서 (혹은 증명하기 위해서) 모두의 지탄을 받는 참혹한 죽음에 이른다. 딸 릴리안은 아버지와 떨어져 성장하여 우주 비행사가 된 후, 웜홀을 통과하여 고래자리 델타를 직접 보고 나서야 아버지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과학이 기반이 된 행위 예술이 등장하고, 주인공 릴리안이 웜홀을 통과하는 우주 비행사라는 등 SF적인 설정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아버지와 딸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라 생각되는 소품.아버지의 진의를 나중에서야 이해하게 된다는 내용인데... 저 역시 딸아이를 키우고 있어서 조금 뭉클하게 다가오긴 했지만 별로 SF 처럼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도 큰 문제는 아버지가 어떻게 고래자리 델타성을 보았는지에 대해 설명되지 않는거죠. 이래서야 본격 SF라고 하기에는 너무 부족합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지하철의 충격>>
사람으로 가득찬 출근길 지하철이 시공을 초월하여 달리기 시작하면서 벌어지는 갖가지 기묘한 현상을 그린 SF.

초반 설정은 참신합니다. 출근길 지하철을 타 본 적이 있는 사람을 자극하는 원초적인 공포가 리얼하게 그려지기 때문이죠.
그러나 암벽등반가 샤오지가 열차 밖으로 나가 앞으로 이동하면서 목격하는 다른 차량의 상태, 현상에 대한 묘사가 이어지면서 부터는 이야기는 그야말로 폭주하기 시작합니다. 이 모든게 초자연적인 무언가에 의한 진화, 새로운 생태계를 만드는 과정이라는 내용인데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 잘 모르겠더군요. 아무리 봐도 하나의 이야기로 성립한다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마지막 대사에서 특히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게 무슨 호접몽도 아니고...

기묘한 상황에 대한 묘사가 대부분이며 이야기로 성립하기 어렵다는 점에서는 중국 고전 기담을 연상케 하네요. 물론 고전 기담 쪽이 이야기로서의 완성도는 더 높겠죠. 별점은 1.5점입니다.

<<인류의 여신 G>>
선천적 결함을 지닌채 태어나 정상적 성생활, 출산이 불가능했던 G는 기도를 통해 전신 성감대를 지니게 된다. 이러한 그녀는 상류층의 구경거리로 전락하나 그녀는 자신의 능력을 이용해 대중의 정점에 선다.
일본 에로 만화에서 접했음직한 설정이 등장하는 작품. 인간의 해탈, 전도와 좌절, 한 단계 위로의 진화라는 일종의 종교 프로세스를 섹스에 빗대어 풀어내기는 했는데 딱히 신선하거나 재미있지는 못합니다.

게다가 SF로서는 함량 미달입니다. G의 변신은 기도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정에서 시작하여 G가 대중을 사로잡는 과정과 이유도 제대로 설명되지 않아서 설득력이 전무하기 때문이에요. 결국 자신의 말이 거짓말이라고 말한 뒤 과격 종교집단에 쫓기는 신세가 된 그녀에게 일어난 결말 역시 잘 이해가 되지 않고요. 고자와 석녀가 함께 절정에 이르렀다?

애매하게 종교적인 내용을 넣지 말고, 불감증에 시달리던 인류에게 전신 성감대 미녀가 등장하여 인류를 자위만으로도 충분한, 한단계 더 높은 쾌락의 세계로 이끈다는 식으로 가는게 더 화끈하고 좋지 않았을까 싶군요. 별점은 1.5점입니다.

<<탈피>>
탈피를 거듭하는 혈인이지만 약물의 힘으로 탈피 충동을 억누르며 배우로 성공한 공은 투라는 다른 혈인을 만난 후 그에게 연기를 가르친다. 투 역시 배우로 성공하지만 그는 배우로서의 삶이 아니라 탈피를 택한다. 공도 탈피에 대한 욕망은 크지만 탈피 후 자신의 모습이 어떻게 변할지 알지 못해 주저하는데...

이종족 판타지. 9번의 탈피를 끝내고, 혈인으로서 죽어가느냐 아니면 자신의 본능을 숨기고 인간 세계에서 살아갈 것인지 선택에 대한 이야기인데 뾰족한 재미는 없습니다. 늑대 인간이나 뱀파이어로서의 삶을 선택하느냐! 인간으로 살아갈 것인가라는 유사 딜레마들과 딱히 차별화되는 내용도 없고요.

'배우'라는, 일종의 가장된 삶의 대표격인 직업을 선택한 정도가 조금 신선했지만 그냥저냥합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우주표 담배>>
우주정거장만한 담배를 만든다는 이야기로 스케일 하나 만큼은 높이 사 주고 싶은 작품. 흡연 인구가 엄청난 중국에서 생각했음직한 내용이죠.

이 모든게 환상이고, 담배는 값싼 대용품 센티멘털 니코틴에 밀려났다는 결말도 뻔하지만 괜찮습니다. 전통적인 산업의 종말을 블랙 코미디 식으로 그린 느낌을 전해주기 때문으로 바로 얼마전, 미국 토이저러스의 오프라인 매장 폐쇄 사태가 떠오르더군요. 별점은 2.5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