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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0/04

백설공주에게 죽음을 - 넬레 노이하우스 / 김진아: 별점 2.5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토비아스는 고향 마을에서 두 소녀, 로라와 스테파니를 살해한 혐의로 10년간 복역한 뒤 출소했다. 시신도 발견되지 않았고 자신은 사건 당일 만취해 기억이 없었지만, 정황 증거 때문에 유죄 판결을 받았다. 출소한 그가 마을로 돌아온 뒤 주민들의 적대감이 커져 테러까지 당했다. 그 무렵 10년 전 실종된 로라의 시신이 발견되고, 스테파니를 닮은 소녀 아멜리까지 실종되자 보덴슈타인 형사반장과 피아 형사는 10년 전 사건을 재수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두 소녀가 다른 이유로 죽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로라는 토비아스의 친구들에게 성폭행당한 뒤 달아나다 죽었고, 스테파니는 불륜 관계였던 교사 그레고어와 다투다가 그에게 살해당했다. 이 모든 것을 알고 있던 가해자들과 관계자들은 토비아스가 범인으로 몰리는 것을 알면서도 침묵했다는 게 진상이었다...

독일 작가 넬레 노이하우스가 발표한, 보덴슈타인 반장과 피아 형사를 주인공으로 한 '타우누스' 시리즈의 네 번째 작품입니다. 유명 시리즈이지만 그동안 찾아보지는 않았습니다. 오래전 읽었던 시리즈 두 번째 작품이 심하게 별로였던 탓입니다. 그런데 지난 추석 연휴, 아내와 이 작품을 원작으로 한 TV 드라마를 웨이브로 감상하다가 재미있어서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두 소녀를 살해했다는 죄로 10년간 복역한 토비아스가 고향 마을로 돌아오면서 시작되는 도입부부터 흥미진진합니다. 토비아스를 향한 마을 사람들의 도가 지나친 증오, 그리고 토비아스 가족에게 닥친 여러 불행이 실감 나게 묘사되어 재미를 더하고요.

추리적으로도 볼 만합니다. 핵심은 로라와 스테파니의 죽음이 전혀 다른 사건이었다는 겁니다. 로라는 토비아스의 친구들에게 성폭행당한 뒤 살해됐고, 스테파니는 불륜 관계였던 교사 그레고어에게 살해됐습니다. 그중 로라 사건의 가해자였던 친구들의 부모가 현장을 조작하고 거짓 증언을 보태 토비아스에게 두 사건의 죄를 뒤집어씌운 것이지요.

이때 과거 현장에 있었던 ‘남자’가 실은 유명 배우가 된 토비아스의 소꿉친구 나디아였다는 일종의 복선과 반전도 효과적으로 사용됩니다. 모든 사건을 목격했던 티스에게 그레고어의 아내인 다니엘라가 협박과 부적절한 약 처방을 통해 입을 막아 왔다는 사실도 수사를 통해 자연스럽게 드러나 진상을 밝히는 데 큰 역할을 하고요.

동기도 설득력이 높습니다. 아들들의 범죄를 숨기려던 부모들, 남편 그레고어를 지키려 했던 다니엘라의 행동 모두 당연합니다. 나디아가 당시 진상을 밝히지 않았던 것도 그녀가 토비아스에게 강하게 집착했다는 묘사를 통해 잘 설명됩니다.

그러나 실제로 독자가 '추리'를 할 만한 정통 본격 추리물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사건을 풀어가는 데에는 티스의 증언과 그림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며, 단서들도 모두 수사를 통해 차례대로 밝혀지기 때문입니다. 잘 짜인 수사물이라고 할 수는 있지만, 정통 본격 추리물은 아닙니다.

그리고 몇몇 설정은 다소 편의적입니다. 마을 사람들이 토비아스를 집단으로 폭행했는데도 경찰이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든가, 토비아스가 하필 사건 당일 술에 취해 기억을 잃었다는 설정이 대표적입니다. 10년 전 어린 시절, 스테파니의 불륜을 목격하고 그 충격에 만취했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현시점에 친구들을 만났다고 만취해서 필름이 끊긴다는 건 잘 설명되지 않아요. 마침 그날 아멜리가 실종되었다는 것도 억지스럽고요.

가장 큰 문제는 사건과 직접 관련이 없는 보덴슈타인 아내의 불륜 이야기가 지나치게 길게 다루어진다는 점입니다. 그 외에도 불륜이 넘쳐나는 건 볼썽사나웠습니다. 아멜리가 토비아스에게, 보덴슈타인이 클라우디스의 처제에게 첫눈에 끌리는 설정도 이야기에 꼭 필요한지 의문이고요.

그래도 별점은 2.5점입니다. 추리의 정교함이나 군더더기 없는 구성 측면에서는 부족하지만, 두 죽음의 진상이 차례로 밝혀지고 마을 사람들의 비밀이 드러나는 과정만큼은 재미있었습니다. 드라마로 만들어질 만큼의 흡입력은 충분합니다.

2026/09/27

스트릿 레스토랑 파이터(2026) - 이우형, 김만희: 별점 2.5점

"흑백 요리사 시즌 2" 후 오랫만에 챙겨본 요리 서바이벌 프로그램입니다. 티빙을 통해 감상했습니다.

특징이라면 참가자들이 요리 실력만 겨루는게 아니라, 실제 손님을 상대로 음식을 판매하고 매출을 겨룬다는 점입니다.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장사할 장소와 찾아오는 손님을 분석한 뒤 어떤 메뉴를 얼마에 팔지까지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즉, 요리 실력뿐 아니라 외식업 경영자로서의 감각이 중요하다는 건데 이 설정이 생각보다 재미있습니다.

심사도 특이합니다. 심사위원이 음식을 먹은 뒤 맛과 완성도를 평가하는 여타의 요리 서바이벌과는 다르게 실제로 손님이 돈을 내고 음식을 사 먹은 결과의 매출과 별점을 겨루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가격이 비싸거나 장소에 어울리지 않으면 팔리지 않을 수 있고, 반대로 비교적 평범한 음식이라도 가격과 서비스 속도, 손님의 취향을 잘 맞추면 좋은 매출을 올릴 수 있습니다. 덕분에 전문 셰프 못지않게 요식업 사업가들의 활약을 보는 재미가 큽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이연복 셰프의 활약도 반가웠습니다. 적지 않은 나이에도 쉴 새 없이 밀려드는 주문을 처리하면서 경쟁을 이어가는 모습에서 관록을 느낄 수 있었고, 결국 결승 문턱까지 올라가는 과정이 아주 인상적이었어요. 다른 참가자들이 앞서 설명드린대로 메뉴와 가격, 판매 전략을 치밀하게 고민하는 것과는 달리, 이연복 셰프는 그야말로 맛있는 중식을 만들어 파는 데 충실하다는 점에서는 반전 매력을 느낄 수 있었고요.

예상과 실제 결과가 상당히 다르다는 점도 흥미로웠습니다. 예를 들어 첫 대결에서 두끼 떡볶이 대표가 컵 떡볶이를 5,000원에 판매한다고 했을 때, 상당히 잘 팔릴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가격 부담도 크지 않고 다른 음식을 먹은 손님이 입가심이나 간식처럼 추가로 구입하기에도 좋은 메뉴니까요. 그런데 예상과 달리 판매 결과는 그리 좋지 않았습니다. 이런 장면들을 통해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장사와 실제 현장에서의 소비자 선택은 꽤 다르다는 사실을 잘 알려줍니다. 확실히 장사가 쉽지 않네요.

다만 프로그램이 뒤로 갈수록 '어떻게 해야 이길 수 있는가'에 초점이 지나치게 맞춰지면서 초반의 재미가 조금씩 줄어드는 느낌도 있었습니다. 특히 데이터를 강조한 우승팀 Hungry가 마지막 전주 한옥마을 대결에서 돈가스와 함박스테이크를 메뉴로 선택한게 대표적입니다. 전국 어디서나 어렵지 않게 먹을 수 있는 메뉴를 선택하고, 최대한 빠르게 음식을 제공해 고객 회전율을 높이는 한편 여러 가지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하는 전략이었지요. 장사 관점에서는 합리적인 선택이었고 실제로 승리까지 거두었지만, 시청하는 입장에서는 메뉴 자체가 주는 의외성이나 참신함이 거의 없어서 재미를 느끼기 힘들었습니다.

물론 이 프로그램이 단순한 요리 경연이 아니라 장사 대결이기 때문에 이런 전략도 실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결국 음식 프로그램에서 기대하게 되는 새로운 메뉴나 예상하지 못했던 조합을 구경하는 재미가 사라진다는 문제가 발생하지요. 제작진이 장사 능력을 평가하면서도 특정 전략이 지나치게 유리해지지 않도록 예상 가능한 핸디캡이나 조건을 조금 더 적극적으로 설정했으면 어땠을까 싶습니다.

변수를 만들기 위해 고객의 별점을 반영한 방식도 취지 자체는 괜찮습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특별히 불만이 크지 않으면 낮은 별점을 잘 주지 않는 편이고, 별점 자체도 사람마다 기준이 크게 다르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누구에게는 평범한 음식이 별점 5점일 수 있고, 다른 사람에게는 상당히 만족스러운 음식도 4점에 그칠 수 있습니다. 차라리 제작진이 별점 기준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제시했으면 평가의 의미가 커졌을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맛과 양이 가격에 적절하면 3점, 현재 가격보다 2,000원을 더 지불해도 먹고 싶다면 4점, 5,000원을 더 내도 좋을 정도라면 5점처럼 가격 대비 만족도를 기준으로 안내하는 방법도 가능했을 것입니다. 정확한 기준이 있었다면 매출 경쟁과 별점 평가가 서로 보완되는 장치가 되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요리 대결에 실제 장사라는 요소를 결합했다는 점은 신선합니다. 그러나 독특한 음식과 셰프들의 창의적인 요리 대결을 기대하기는 힘들고, 그런 면에서의 재미는 찾기 어렵습니다. 실제로 요식업에서 메뉴, 가격, 회전율 같은 요소가 어떻게 작용하는지 궁금하다면 그럭저럭 볼 만합니다.

2026/09/25

독약의 윤무(毒薬の輪舞) - 아와사카 쓰마오: 별점 2.5점

아래 리뷰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경시청 특수범죄수사과의 형사 우미카타 후사나리는 병원에 입원한 뒤, 구입한 미개봉 캔 음료에 다른 물질이 들어있다는걸 발견했다. 특범에 보고 후, 수사를 위해 부하 고미나토 신스케까지 정신병 환자로 위장시켜 병원에 잠입시킨 우미카타는 자신을 세계은행 총재라고 믿는 모모타, 이상 행동을 일삼는 모로하시, 노출증 환자 라쿠, 어린 거식증 환자 산고 등 개성 강한 환자들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수사는 좀처럼 진전되지 않고, 오히려 강한 쓴맛을 내는 약물 PTC가 아무도 손댈 수 없었던 물에 섞이는 불가사의한 사건이 연이어 벌어졌다. 처음에는 단순한 장난처럼 보였지만, 병원에 과거 원장이 전쟁 중 개발한 맹독 리자드톡신이 보관되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그리고 마침내 산고가 의문의 죽음을 맞는데…….

아와사카 쓰마오의 괴짜 형사 우미카타 시리즈 두 번째 작품입니다. 전작이 괜찮길래 연이어 읽었습니다. 원서입니다.

천재 명탐정이면서 한없이 게으르고, 주위 사람들을 불쾌하게 만들면서도 온갖 잡지식과 아첨에 능한 우미카타의 독특한 매력은 여전합니다. 기묘한 괴짜들이 넘쳐나는 정신병원이 무대인데, 그 사이에서도 밀리지 않는 존재감을 보여줄 정도로요.

아와사카 쓰마오의 정통 본격 추리소설답게 불가능 범죄도 등장하며, 트릭도 깔끔합니다. 핵심 수수께끼는 PTC와 리자드톡신을 몰래 먹인 방법인데, PTC 사건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 201호실: 마돈나와 아담이 먼저 물을 마셨을 때는 괜찮았지만, 뒤이어 우미카타가 마시자 심한 쓴맛이 났다. 
  • 국제회의 보고회: 식당에서 가져온 보온병 속 물을 모로하시가 먼저 마셨을 때에는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았지만, 뒤이어 같은 물을 마신 총재는 쓴맛을 느꼈다. 
  • 병원 식당: 모모코가 물병에서 직접 따라 가져온 세 컵 가운데 산고가 마신 물에서만 PTC가 발견되었는데, 물을 따른 뒤 산고가 마실 때까지 약을 넣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는 모두 산고의 장난이었는데, 우연이 겹쳐 불가능 상황이 되었다는게 진상입니다. 201호실에서는 산고가 미리 물에 PTC를 넣었지만, 마돈나는 미맹이었고 아담은 구강청량제 때문에 일시적으로 미각이 마비되어 쓴맛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국제회의에서도 산고가 물병에 미리 PTC를 넣었지만, 이를 먼저 마셨던 모로하시가 꾀병이 들킬까봐 일부러 쓴맛을 참았고요. 식당에서는 마지막에 물을 마신 산고가 평범한 물을 마신 뒤 손수건으로 입을 닦는 척하며 숨겨 둔 PTC를 자기 컵에 넣었던 겁니다.

산고가 독 리자드톡신이 든 우유를 마시고 죽은 사건에서, 우유에 손대지 않고 독을 넣은 트릭도 볼만합니다. 범인은 마찬가지로 산고였습니다. 산고는 새어머니 모모코를 살해하기 위해 소리 센서 인형 ‘이즈와 폰’을 이용해서 아래와 같이 원격 독살 장치를 만들었습니다. 

  • 개 인형 ‘폰’의 입속에 리자드톡신 캡슐을 넣어 두고, 인형 앞 독서대에는 책을 펼쳐 비스듬한 경사로를 만들었다. 그 아래에 우유 컵을 놓았다. 큰 소리가 나면 인형이 작동하면서 폰이 입을 벌리고 뛰어오르고, 그 순간 캡슐이 입에서 튀어나와 펼쳐진 책 위를 굴러 내려가 우유 컵에 떨어진다.

산고는 방 밖에서 모델건을 쏴서 장치를 작동시킬 생각이었습니다. 자신은 우유에 접근하지 않은 채 모모코를 독살할 생각으로요. 그러나 한밤중 모로하시가 가방을 떨어뜨린 소리에 장치가 예정보다 먼저 작동했고, 이를 몰랐던 산고가 범행을 단념했지만 이미 독이 들어간 우유를 마시고 죽었던게 진상입니다.

이러한 핵심 수수께끼 외에도, 병원에 출몰한 눈이 빛나는 유령의 정체에 대한 추리, 모지하라 병원 입원 환자들이 모두 꾀병이라는 추리, 라쿠가 남긴 수식을 풀어내는 추리 등 자잘한 추리들 모두 볼만합니다. 초반에 등장하는 '그 어떤 것도 넣을 수 없는 밀봉된 캔에 다른 내용물을 넣은 트릭' 역시 간단하지만 현실적이라서 마음에 들고요.

그러나 아쉬운 부분도 있습니다. 우선 전개가 많이 어설픕니다. 아무리 정신병원 안에서 피해자가 꾸민 일이 잘못되어 스스로 죽게 된 사건이라 해도, 현직 경찰이 두 명이나 잠입해 있는데 이를 일반 변사 사건으로 무마한다는건 조금 당황스럽습니다.

그리고 산고의 죽음이야 모두의 행복(?)을 위해 그렇다 쳐도, 사사키 의사가 하야사키 씨에게 리자드톡신을 먹인 건 엄연한 범죄 행위로 보입니다. 이것까지 별다른 문제 없이 덮고 넘어가는 건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최소한 병원에서는 해고했어야 합니다.

우미카타의 여성과 음식에 대한 집착도 지나칩니다. 괴짜 탐정이라는 설정은 재미있지만 이 부분만큼은 정도가 심해서 볼썽사납게 느껴집니다.

그래도 이 정도면 볼만했던 후속작입니다. 억지스러운 설정은 분명 있지만 재미있는 요소도 많고, 불가능 범죄의 트릭도 깔끔해서 추리적으로 볼 만하니까요.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일본에서의 인기와 유명세도 그리 높지 않아서 우리나라에 소개될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혹시라도 소개된다면 한 번쯤은 읽어볼만 합니다.

2026/08/29

츠쿠모고미 - panpanya: 별점 2.5점

애정하는 작가 panpanya의 신간입니다. 올해 4월에 출간되었는데, e-book 출간을 기다리다가 결국 참지 못하고 구매하였습니다. 모두 17편의 짧은 에피소드를 수록한 단편집입니다. 일상적인 소재에 기묘한 상상과 설정을 더하는 panpanya의 기존 작풍이 그대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수록작 중에서는 "Home Vacation", "파인애플을 모르신다", "철새의 계절", "우리는 일본 보도교 주식회사"가 특히 좋았습니다.

"Home Vacation"은 집 자체를 물에 띄워 휴가를 보낸다는 이야기입니다. 집을 떠나 휴가를 가는 것이 아니라 집 자체와 함께 움직인다는 단순하면서도 엉뚱한 발상이 재미있습니다.

"파인애플을 모르신다"에서는 파인애플이 어떻게 생겨나는지를 탐구하다가 pineapple이라는 이름 그대로 솔방울과 사과를 합쳐 새로운 열매를 만들어 냅니다. 말에서 출발한 아이디어를 실제 상황으로 발전시키는 과정이 기발해요. 파인애플은 코스타리카에서 국가적으로 관리하는 기밀이며, 주인공이 만든 '푸르츠 솔방울'도 나름의 의미가 있다는 결말도 좋았고요.

"철새의 계절"은 어릴 때에는 새들이 거대했지만 성장한 뒤에는 평범한 크기로 보인다는 내용으로, 어린 시절의 기억과 현재의 차이를 그야말로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방식이 인상적입니다. 

"우리는 일본 보도교 주식회사"는 육교를 활성화하기 위해 상가를 도입하는 등 여러 아이디어를 시도하는 이야기입니다. '수고'가 든다는 단점을 회피하기 위해 육교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한다는 발상이 아주 그럴듯해요. 아래와 같은 상업 시설의 추가는 어렵더라도, 자판기와 간단한 휴식 공간 정도는 충분히 말이 됩니다. 아예 극단적으로 높이를 높인 전망대 형식도 그렇고요.

여유로운 분위기와 부드러운 그림도 여전히 좋습니다. 비현실적인 설정을 과장하지 않고 평범한 일상처럼 그려내는 방식도 작품과 잘 어울립니다.

반면 전체적으로는 전작들보다 기발함이 부족한 편입니다. 특히 panpanya의 작품을 계속 읽어 왔다면 새롭거나 신선하다는 느낌을 받기 힘들어요. "게에게 홀려서 2", "decoy 23, 봄", "여긴 어디일까요? 여행" 등 기존부터 이어져 온 시리즈가 수록된 탓이 큽니다. 익숙한 설정과 소재가 반복되다 보니 새로운 이야기를 읽는다는 느낌이 약해요.

비교적 긴 이야기인 "승리의 짜임새", "동물의 분수", 표제작 "츠쿠모고미"도 이전 작품들에 비하면 별로입니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보여준다기보다 기존 작품의 설정과 분위기를 다시 활용한다는 인상이 강해 자가 복제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panpanya 특유의 상상력과 분위기, 그림은 여전히 즐길 만하고 몇몇 단편은 충분히 재미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작품들 중에서는 처지는 편입니다.

2026/08/28

종이학(折鶴) - 아와사카 쓰마오: 별점 2.5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랑을 중심으로 한 단편집입니다. 표제작 포함하여 모두 네 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1988년 이즈미교카 문학상 수상작이기도 하네요. 원서로 읽어보았습니다.

아와사카 쓰마오의 다른 작품에서 흔히 보였던 왁자지껄한 분위기와 달리, 담백하고 순수한 연애물로 대체로 나이 든 중년의 심리를 그리고 있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렌조 미키히코의 작품처럼요.

기모노에 문장을 그려넣는 '문장사'로서의 경력을 한껏 담아낸 기모노와 자수 등 전통 장인들의 세계에 대한 설정과 묘사도 흥미롭습니다. 이러한 소재가 차분한 사랑 이야기와 어우러져 작품만의 분위기를 만들어 내고요. 미싱과 같은 현대 기술 때문에 몰락해 가는 장인들의 모습은 참 실감납니다.

대단한 범죄는 등장하지 않지만, 본격 추리 작가다운 추리적인 요소도 적절하게 삽입되어 있습니다. "시노비야마 사랑 노래"에서는 여관 고카쿠로에서 요지로가 살해당한 뒤, 원한이 있던 유키다유가 범인으로 의심되었습니다. 그러나 유키다유 일행은 샤미센을 연주하며 떠났다는 증언 덕분에 혐의를 벗었지요. 그러나 와키타는 증인들이 일행을 직접 본 것이 아니라 멀어지는 듯한 샤미센 소리만 들었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여관을 떠난게 아니라 연주 소리를 조금씩 줄이다가 멈추어 떠난 것처럼 꾸며냈을 거라고 추리하지요.

"가쿠노다테에서"에서는 고급 프랑스 요리점의 성냥과 향수, 유코 가문의 정식 문장이 들어간 기모노를 단서로 도시유키가 유코의 마음을 알아챕니다. 범죄 해결이 아니라 사람의 감정을 밝혀내는 데 추리적인 테크닉을 활용한게 인상적입니다.

표제작 "종이학"에서는 누군가 다고토의 이름을 사칭해 불륜 여행을 다니고 있다는 수수께끼가 등장합니다. 이는 쓰루코가 다고토를 이용했다는 진상으로 이어지고요. 이 작품도 본격적인 범죄보다는 사람들의 관계와 감춰진 마음을 밝히는 장치로 추리가 이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단점은 아무래도 추리 소설로서는 시시하다는 점입니다. 사랑 이야기가 중심이라 사건과 트릭이 소박하고, 기발한 범죄나 강렬한 반전을 기대한다면 아쉬울 수밖에 없어요. 강력 범죄와 트릭이 등장해서 그나마 가장 추리 소설다웠던 "시노비야마 사랑 노래"조차도, 와키타의 추리와는 다르게 진범은 그냥 강도였다는 진상이라서 허무합니다. 

그리고 여성 심리가 설득력있게 그려지지 못한 문제도 큽니다. "시노비야마 사랑 노래"에서 아야코가 와키타와 밤을 함께 보낸 이유, "사랑의 도피"에서 유리가 3일간의 도피 후 마음을 바꾼 이유, "가쿠노다테에서"의 유코가 전 남편과도 시간을 보냈으면서 구태여 도시유키에게 돌아왔던 이유 모두가 불분명합니다. 이런걸 순애, 혹은 여심이라고 표현할 수는 있겠지만 저는 전혀 와 닿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도 "종이학"의 쓰루코는 정말 최악이에요. 원래 다고토와 사랑하는 사이였지만 집안의 반대로 데릴사위 류지를 들여 결혼한 뒤, 나중에 가업을 살리기 위해 거래처 부장 요코쿠라와 하룻밤을 보내고 그를 사랑하게 되었다고 하거든요. 이건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 이해도 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기존 작품과 전혀 다른 아와사카 쓰마오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습니다. 담백한 순애와 중년의 마음, 일본 전통 장인의 세계에 소박한 추리를 곁들인 독특함에 더해 일본 전통 기모노 세계와 묘사도 아름답고요. 별점은 2.5점입니다. 추리적인 재미는 약하지만 작가의 새로운 모습을 느낄 수 있는 작품으로 추천드립니다.

2026/07/24

203호실 - 가몬 나나미 : 별점 2.5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대학 신입생 오키무라 기요미는 한정된 예산 때문에 도쿄 변두리의 작은 원룸 203호실에 들어갔다. 처음에는 방을 꾸미며 자취 생활을 즐겼지만, 어느 날부터 원인을 알 수 없는 악취가 풍기기 시작했다. 그 뒤 방 안에서는 설명하기 어려운 현상이 계속되었고, 무너져 가던 기요미는 호감을 품었던 썸남 니이자토, 그리고 아르바이트 동료 유키코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러나 두 사람의 도움은 미미했고, 결국 기요미는 203호실 안의 깊은 어둠에 삼켜지고 말았다... 

가몬 나나미의 "203호실"은 여대생이 기이한 원룸에 삼켜지는 과정을 그린 장편 호러 소설입니다. 원서로 읽었습니다.

흔히 대저택을 무대로 삼는 전형적인 ‘저주받은 집’ 이야기인데, 이를 가난한 대학 신입생의 원룸으로 축소한게 인상적입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악취, 천장에서 누군가 뛰어다니는 소리, 사람이 앉았다 간 듯한 바닥의 온기, 기묘한 얼룩과 벌레, 갑자기 젖은 현관 매트처럼 일상적인 소재가 괴이현상과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공포가 한층 더 현실적으로 다가옵니다. 천장 얼룩을 가리려고 붙인 외국 풍경 그림 속 창문을 누군가 긁는 듯한 장면처럼 섬뜩한 묘사도 제법 많고요.

기요미와 이전 세입자들이 사라졌는데도 아무도 이를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 결말 - '전에 살던 학생이 집세를 밀린 채 도망가 버렸을 뿐이다'. - 도 좋습니다. 극도의 외로움이 공포심으로 승화되어 스스로 파멸하고 말았다는 뜻도 되니까요. 단순한 호러가 아니라, 비정한 현대 사회를 고발하기도 하는 멋진 설정입니다. 

그러나 사건이 203호실이라는 좁은 공간과 기요미 한 사람에게 집중되어 이야기의 규모가 작은 탓에 뒤로 가면 지루해집니다. 기요미의 행동도 답답합니다. 왜 진작에 방을 떠나지 않았을까요? 부동산에 제시할 명확한 사유가 없다는 설명은 한국 독자에게 쉽게 이해되지 않습니다. 가족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는 행동도 납득하기 어렵고요.

가장 큰 아쉬움은 괴이현상의 원인이 끝내 설명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203호실에 정체불명의 악의가 존재하고 거주자들을 삼킨다는 사실만 제시될 뿐, 그 기원이나 정체는 밝혀지지 않습니다. 미쓰다 신조의 작품들처럼 괴이의 실체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는 설명은 필요했다고 생각합니다. 앞서 설명드렸듯, 극한 외로움으로 기요미가 미쳐버렸다는 식으로 풀어내는 식으로요.

그래도 독자를 섬찟하게 만드는 호러 소설로서의 가치는 충분합니다. 분량도 적당한 편이고요. 헌티드 하우스와 저주받은 집 이야기, J호러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습니다.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2026/07/19

퍼즐(만화) 1~2 - 원작 야마다 유스케 / 작화 산베 케이 : 별점 2.5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야마다 유스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산베 케이가 만화화한 작품입니다. 원서로 읽었습니다.

기본적인 줄거리는 원작을 따르지만, 각색을 통해 원작에서 아쉬웠던 부분을 보완했습니다. 우선 원작에서는 테러범들이 학교를 점거하고 학생들에게 퍼즐 게임을 강요하는 이유가 다소 불분명했습니다. 그러나 만화판에서는 미토메가 연인 카와모토가 임신 후 동급생들에 의해 자살로 내몰린 복수를 위해 범행을 저질렀다는 설정을 추가해서 동기에 설득력을 부여합니다. 

퍼즐 게임의 의미도 더 자연스럽게 이야기와 연결됩니다. 원작에서는 퍼즐 조각을 학교 곳곳에 숨긴건 그냥 게임이었을 뿐이지만, 만화판에서는 카와모토가 괴롭힘을 당했던 장소들에 조각을 숨겼다는 설정으로 자연스럽게 보완하고 있는 덕분입니다. 퍼즐을 완성하면 카와모토의 얼굴이 드러나고, 학생들은 그녀의 죽음과 자신들의 과거를 떠올리게 되니까요. 

학교에 테러범들이 폭탄을 설치했고, 보다 강하게 학생들을 통제한다는 설정 역시 경찰이 권총 한 정 뿐인 테러범들을 쉽게 제압하지 못하고 48시간을 흘려 보낸다는 원작보다는 더 낫습니다. 

산베 케이의 그림도 여전히 매력적입니다. 여성으로 변경된 야스다 선생을 적극 활용해 원작에서는 느낄 수 없던 특유의 육감적이면서 성적인 분위기를 극명하게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러한 성적인 연출이 너무 과하다는 문제는 있습니다. 주인공 유아사까지 여성으로 변경할 필요가 있었을지도 의문이고요. 

그리고 원작 각색도 좋기만 한 건 아닙니다. 학생의 임신 후 죽음과 그에 관련된 복수는 "동급생" 등 여러 작품에서 활용된 다소 진부한 설정이니까요. 또 원작의 핵심 주제였던 입시와 성적만을 중시하는 학교에 대한 비판도 희석되어 버린건 아쉽습니다. 야스다 선생이 성적 향상을 미끼로 남학생들과 관계를 가졌다는 설정만 기억에 남을 뿐이에요. 

2권이라는 짧은 분량 탓에 미토메 일당이 총과 폭탄을 얻은 방법 등 주요한 설정 설명이 부족하며 전개가 지나치게 빠른 것도 문제입니다.

그럼에도 전개가 빠른 만큼 쉽게 페이지가 넘어간다는 장점은 분명합니다. 설정, 전개 모두 원작보다는 나았고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원작과 비교하며 각색 과정과 차이를 살펴보는 재미도 있으니 원작을 읽었다면 한 번쯤 읽어볼 만 합니다.

2026/07/05

명탐정 코난: 척안의 잔상 (2025) - 시게하라 카츠야 : 별점 2.5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야마토 칸스케는 용의자를 추격하던 중 저격을 당해 왼쪽 눈의 시력과 당시 사건에 대한 기억 일부를 잃었다. 10개월 뒤, 모리 코고로의 옛 동료 사메타니가 저격당해 죽자, 모리 탐정은 경찰과 함께 사메타니가 찾았다는 나가노현으로 향했다. 

결국 여러가지 단서들로 범인은 사법 거래에 불만을 품고 정부를 협박하려 했던 나가노현 경찰 하야시였다는걸 밝혀냈다. 마지막 설산 추격전 끝에 하야시는 체포되고, 야마토 칸스케도 잃어버렸던 기억을 되찾으며 사건은 해결된다.

"명탐정 코난" 시리즈의 28번째 극장판입니다. 전작은 하코다테가 무대였는데 이번에는 나가노현이 무대입니다. 설산과 노베야마 전파망원경 시설이 주 배경으로 등장하지요.

가장 좋았던 점은 원작 만화나 TV 애니메이션을 보지 않아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독립적인 이야기라는 점입니다. 모리 코고로가 오랜만에 사건 해결의 중심에서 활약하는 것도 반가웠습니다. 나름대로의 추리는 물론이고 뛰어난 사격 실력까지 선보이며 제 몫을 톡톡히 합니다.

등장인물이 많지만, 비중 배분도 훌륭합니다. 나가노현 경찰 3인방은 사건의 핵심 관계자인 만큼 당연하게 활약하고, 란은 범인과 맞서 가라데 액션을 보여 줍니다. 소년 탐정단은 결정적인 단서를 찾아내고, 하이바라는 마지막 추격전에서 과학자로서의 능력을 발휘하고요. 비중이 적은 사토와 타카기도 마지막 추격전에서는 나름 역할을 합니다. 아가사 박사의 퀴즈, 아무로 토오루의 냉정한 모습도 팬으로서 반가왔어요.

추리적으로도 볼만합니다. 범인이 사용한 총기를 주요 단서로 쓰는게 좋았어요. 겉으로는 권총이지만 실제로는 소총탄을 사용하는 개조 총기였는데 이는 앞서 여러 단서들로 밝혀지고, 결국 범인이 경찰 내부 인물이라는게 자연스럽게 드러나거든요. 피해자의 별명인 '와니' 역시 진범을 특정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톡톡히 합니다. 나가노현 경찰 하야시가 연인의 죽음 탓에 사법 거래에 불만을 품고 정부를 협박하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다는 동기도 충분히 설득력이 있습니다.

설산과 전파망원경 시설을 활용한 액션들도 대체로 그럴듯하게 그려집니다. 최근 극장판에서 자주 보였던 어처구니없는 액션이 줄어든 점은 마음에 들었습니다. 주 무대인 나가노의 풍광도 수려하게 그려지고요.

반면 코난의 활약은 다소 아쉬웠습니다. 추리에서는 큰 존재감을 보여 주지 못했고, 마지막 평지에서 무한 동력으로 날아다니는 스노보드 추격 장면은 황당했습니다.

범인 하야시의 행동도 쉽게 납득되지는 않습니다. 사법 거래에 불만을 품고 정부를 협박하려 했다는 점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정체가 드러날 것을 우려해 사메타니를 살해한 것은 스스로 범행의 명분을 무너뜨린 행동이었습니다. 그런다고 해서 법안이 바뀔 이유도 없고요.

야마토 칸스케의 기억 상실 역시 아쉬웠습니다. 특정 기억만 사라졌다가 사건 해결에 필요한 순간 되살아나는 전개는 지나치게 편의적이고 작위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사메'와 '와니'의 연결도 많이 사용된 소재인데, 작중 등장인물들이 모두 모르고 있다는 것도 좀 와 닿지는 않았어요.

그래도 이야기 완성도가 떨어졌던 전작보다는 여러모로 낫습니다. 모리 코고로의 활약도 만족스러웠고요. 일부 설정은 아쉬웠지만 코난 팬이라면 충분히 추천할 만한 작품입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2026/07/03

고블린 숲의 집 - 존 딕슨 카 : 별점 2.5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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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브와 빌 커플은 헨리 경을 피크닉에 초대했다. 장소는 이브의 사촌 비키가 어린 시절 깜쪽같이 사라졌던 사건으로 유명한 고블린 숲에 있는 별장이었다. 그런데 이번 피크닉에서도 비키가 깜쪽같이 사라지고 말았다. 이브와 헨리 경이 별장 정문을 바라보고 있었고, 뒷문과 창문은 모두 잠겨있었으며 별장 안에는 다른 숨을 곳도 없었다...

존 딕슨 카의 명탐정 중 한 명인 헨리 메리베일 경이 등장하는 단편입니다. 이전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밀실 대도감"에서 "고블린 숲의 비밀"이라는 제목으로 언급된 작품이지요. 원서를 구해 읽었습니다.

"밀실 대도감"에서 언급할 만큼 밀실 트릭이 핵심인 작품입니다. 사건의 수수께끼는 별장 안에 있던 비키가 사라진 겁니다. 정문은 헨리 경과 이브가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에 비키는 그쪽으로는 나갈 수 없었습니다. 뒷문과 창문은 모두 잠겨 있었고, 별장 안을 수색해도 비키는 발견되지 않았지요.

의사인 빌이 비키를 살해한 뒤, 욕실에서 시신을 해체하고 유포에 싸서 바느질한 다음 세 개의 큰 피크닉 바구니에 나누어 담았다는게 진상입니다. 이후 빌은 뒷문으로 빠져나갔고, 나중에 헨리 경 앞에서 둘을 찾는다며 정문으로 들어온 이브가 뒷문을 잠그면서 처음부터 잠겨 있었던 것처럼 꾸몄고요.

트릭도 괜찮지만, 핵심 단서인 유포 조각과 세 개의 피크닉 바구니도 미리 제시된다는 점도 마음에 듭니다. 공정함 측면에서는 충분히 합격점을 줄 수 있어요.

반면 작품 전체의 완성도는 다소 아쉽습니다. 가장 이상한 건 빌과 이브가 헨리 경을 목격자로 초대한다는 설정입니다. 살인을 저지르고, 그걸 실종으로 위장하려는 범인이 굳이 유명한 명탐정을 현장에 불러들일 이유가 있을까요? 

범행의 현실성에서도 다소 문제가 있습니다. 작중에서는 범행에 헨리 경이 시가 세 대를 피울 정도의 시간이 흐른걸로 묘사됩니다. 대략 두세 시간 정도로 볼 수 있는데, 그 시간 안에 성인 여성을 살해하고 시신을 해체한 뒤 유포에 싸서 바느질하고, 바구니에 나누어 담은 후 현장 정리까지 끝냈다는건 비현실적입니다.

이브와 비키의 목소리가 같다는 정보가 후반에 공개되는 점도 공정성 측면에서는 아쉽습니다. 그리고 이게 필요했던 정보인지도 잘 모르겠어요. 구태여 비키가 신비로운 공간에서 살아있다는 척을 할 필요는 없었으니까요. 실종 신고 후 유산을 받으려면 오히려 하면 안되는 행동이 아니었나 싶네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2026/06/21

참교육 (2026) - 홍종표 : 별점 2.5점

교권 침해와 학교 현장의 여러 문제를 교권보호국이 해결한다는 내용의, 요새 한창 인기인 10부작 TV 드라마입니다. 넷플릭스로 감상했습니다. 

가장 큰 장점은 제목 그대로 시원하게 펼쳐지는 교권 침해에 대한 참교육입니다. 교권 침해 사례들 대부분이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들이라는 점도 몰입을 돕습니다. 실제로 저렇게 처벌받는다면 좋겠다는 공감을 이끌어내기 때문입니다. 한 화에 하나의 사건으로 이루어진 구성도 좋아요. 부담 없이 볼 수 있고, 전개도 빠릅니다. 

참교육의 대부분은 나화진의 무력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시험지를 빼돌리던 교사를 응징하는 에피소드나 진상 학부모를 상대하는 에피소드 등 나름대로 머리를 쓰는 작전들도 펼쳐지는데 이 역시 꽤 볼 만 합니다.

캐스팅도 좋습니다. 특히 나화진 역의 김무열이 돋보입니다. 강한데다가 항상 준비되어 있어서 언제나 여유가 넘치는 모습을 잘 표현하고 있는 덕분입니다. 봉근대 사무관도 인상적입니다. 언더커버 작전과 정보 수집에서 활약하는데, 교권보호국이 단순히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조직만은 아니라는 점을 잘 보여주거든요. 

다만 뒤로 갈수록 사건 해결 방식이 비슷해지는 점은 아쉽습니다. 결국 핵심은 나화진의 무력으로 정리되는 경우가 많은 탓입니다. 참교육도 개인 정보를 확보한 뒤, 그걸 활용하여 피해를 주는 식으로 선을 넘는 부분은 좀 불편했어요. 아무리 대상이 학폭을 저지른 범죄자라고 하더라도, 이건 또 다른 가해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메인 빌런인 조규철도 애매합니다. 머리가 좋은 사이코패스라는 설정은 있지만, 그래봤자 고등학생일 뿐입니다. 국가 기관을 상대로 위협이 될 수는 없어요. 조직이나 무력도 별 볼일 없고요. 여러모로 빌런으로서의 존재감은 약합니다.

그리고 주연 배우들 캐스팅은 대체로 좋지만, 학생 역할의 조연 배우들은 고등학생이나 중학생으로 보기 어려운 배우들이 너무 많더군요. 특히 6화의 촉법소년 중학생들은 거의 30대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좀 더 어린 배우들을 캐스팅할 수는 없었을까요?

그래도 빠른 호흡으로 쉽게 볼 수 있는 속 시원한 킬링 타임 액션물로는 괜찮았습니다. 세계적으로 인기를 끄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지요.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2026/06/12

코끼리를 목욕시키는 여자 - 화바이룽/ 김소희 : 별점 2.5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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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에 사랑은 추억이나 순간, 아니면 소유할 수 없는 상황에서만 존재하는 것 같아."

어느 날 남편 밍런이 갑작스럽게 이혼을 통보했다. 밍런에게 다른 여자가 생겼다고 의심한 나는 친한 팡 언니에게 부탁해 밍런을 조사하기 시작했지만 성과는 없었고, 결국 이혼은 성립되었다. 

그 뒤 밍런이 사람을 죽여 체포된 뒤 구속되었고, 밍런의 동기를 알지 못해 답답해하던 나에게 독방에서 자살한 밍런의 이메일이 전달되며 모든 진상이 밝혀졌다...

대만 작가 화바이룽의 장편소설입니다. 범죄물 형식을 갖추고 있지만 실제로는 심리 드라마에 가깝습니다. 

남편 밍런을 교도소에서 면회하는 장면으로 시작한 뒤, 이야기는 사건의 처음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리고 밍런의 갑작스러운 이혼 통보, 아내의 불륜 의심, 사설 조사, 살인, 구속, 자살, 마지막 진상까지 빠르게 이어지는데 이러한 전개가 만들어 내는 흡입력이 작품의 가장 큰 장점입니다. 밍런이 왜 이혼을 요구했는지, 왜 개명했는지, 왜 살인을 저질렀는지, 왜 끝내 자살했는지 계속 궁금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오롯이 주인공의 1인칭 시점으로 이어지는 묘사도 좋습니다. 갑자기 남편에게 버림받은 아내의 혼란과 분노가 현실적으로 느껴지는 덕분이에요. 사건은 비현실적인 방향으로 흘러가지만, 주인공의 감정은 설득력이 넘칩니다. 그만큼 생생하고 생활감 있는 묘사가 빼어납니다. 웃기기도 하고요.

범행의 세부 묘사도 나쁘지 않습니다. 밍런의 작업실은 보안이 엄격한 곳입니다. 그래서 피해자 뤄지가 그곳에 쉽게 들어갔다는 설명은 의심스럽고, 밍런이 자백한 그대로 사람을 죽인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품게 만듭니다. 작업실에 있던 두 개의 옷장도 마찬가지입니다. 밍런은 옷이 많은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데 작업실에는 옷장이 두 개나 있었고, 그중 하나는 잠겨 있었는데 역시 뭔가 수상하다는 느낌을 줍니다.

이는 밍런이 작업실에서 재스민이라고 부르는 러브돌과 관계를 맺고 있었다는 진상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옷장은 밍런이 재스민과 관련 물품을 숨긴 공간이었고요. 이를 알아챈 뤄지는 밍런을 협박하다가 고압 전기에 감전되어 살해당합니다. 이 죽음 역시 앞에서 밍런이 형과 함께 감전 장치를 만들었다는 복선을 통해 연결됩니다. 이런 점에서는 꽤 잘 짜여 있다는 생각을 갖게 만듭니다.

그리고 뤄지가 밍런의 비밀을 알게 된 이유도 재미있는데, 아내가 의뢰한 불륜 조사 때문이었습니다. 아내는 남편이 바람을 피우는지 확인하려 했을 뿐인데, 그 조사 때문에 밍런의 은밀한 비밀이 드러나게 된 것이지요. 비밀은 협박으로 이어지고, 결국 살인까지 부르고요. 처음의 의심에서 비롯된 행동이 마지막 비극과 진상에 맞물린다는 점에서 일종의 윤회식 구조라 할 수 있는데, 작품과 아주 잘 어울렸습니다.

하지만 밀리의 서재에서 홍보하는 대로 '추리소설'로 보면 아쉽습니다. 복선은 있지만 독자가 단서를 모아 진상을 맞히는 이야기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건은 시간 순서대로 흘러갈 뿐이며, 중요한 진실은 밍런의 자백(이메일)로 밝혀지니까요. 

밍런의 동기도 설득력이 약합니다. 그는 결혼했고 아이도 둘이나 있습니다. 그런데 왜 갑자기 러브돌에 깊이 빠졌을까요? 주인공 '나'의 1인칭으로만 전개되기 때문에 밍런 시점의 고민은 잘 설명되지 않습니다. 그가 어둠 속에 머물고 싶었다는 식인데, 이 정도로는 부족합니다. 더구나 이미 이혼도 했고, 러브돌과의 관계가 불법도 아닌데 왜 살인까지 해야 했는지는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허술한 부분도 보입니다. 작업실에 들어가기 어렵다는 점은 좋은 복선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뤄지가 경비원 친구의 도움을 받아 작업실에 들어갔다고 밝혀집니다. 이렇게 되면 보안이 엄격하다는 설정의 힘이 약해집니다. 치밀한 장치로 보기도 어렵고요. 또 이 경비원 친구의 존재도 문제입니다. 밍런은 자신의 비밀을 감추기 위해 뤄지를 죽이고 자살합니다. 하지만 뤄지가 작업실에 들어가는 것을 도운 경비원 친구가 입을 열면 밍런의 비밀은 다시 드러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밍런의 자살 이유도 애매해집니다. 비밀을 완전히 묻는 게 불가능하니까요.

그래도 흥미진진한 작품이라는 건 분명합니다. 남편의 이혼 통보에서 시작해 불륜 조사, 살인, 자살, 진상 공개까지 이어지는 흐름이 빠릅니다. 주인공의 심리 묘사도 좋고, 생활감 있는 문장도 인상적입니다. 추리물로는 아쉽지만 범죄 드라마로는 충분히 재미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별점은 2.5점입니다.

2026/06/05

딜쿠샤, 경성 살던 서양인의 옛집 - 최지혜 : 별점 2.5점

서울 종로구 행촌동에 있는 지금으로부터 약 100년 전에 지어진 서양식 주택 "딜쿠샤"의 역사와 복원 과정을 다룬 인문학, 미시사, 근대미술사 서적입니다.

책은 우선 "딜쿠샤"의 역사부터 짚습니다. 테일러 부부가 이 집을 지은 과정, 화재 이후 다시 보수한 과정, 그 뒤 누가 이 집에 살았고 누가 이곳에서 일했는지를 차례로 알려주거든요. "딜쿠샤"는 이른바 문화 주택 열풍의 출발점처럼 볼 수 있는 집으로, 이 집의 건축 과정 소개를 통해 당시 조선에 방갈로를 비롯한 서양식 주택이 어떻게 들어오고 퍼졌는지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책의 핵심인 복원 과정에 대한 내용이 이어집니다. 당시 촬영된 사진을 기준으로 실내의 세부 요소를 하나씩 찾아내고, 그것을 다시 재현하는 과정이 자세하게 소개됩니다. 전등이 몇 개였는지 같은 고증은 물론, 복원에 필요한 물품을 어떻게 구입했는지, 구할 수 없는 물건은 어떻게 제작했는지도 설명됩니다. 이를 통해 복원이라는 일이 단순히 낡은 건물을 고치는 수준에 그치는게 아니라는걸 알 수 있습니다. 사진과 온갖 자료들을 조사하여 물건의 쓰임을 확인하고, 없어진 것은 다시 만드는 굉장히 치밀한 작업이더군요. 그 정성은 정말 놀라울 정도였어요.

그리고 복원 과정에서 구하거나 만든 여러 소품들에 대한 상세한 설명도 좋습니다. 몇 가지 예를 들면 아래와 같습니다.

비연호는 코담뱃가루를 담는 작은 병입니다. 청나라 때부터 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당시 청에서는 담배는 금지했지만, 코로 흡입하는 코담배는 감기, 두통, 위장병 같은 증상을 완화하는 치료약으로 허용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코담뱃가루는 습기에 약했기 때문에, 공기에 덜 닿도록 입구가 작은 병을 만들었고요. 그 병이 비연호입니다.

딜쿠샤 벽난로 옆에 놓인 둥근 그릇은 히바치로 일본 전통 화로입니다. 나무, 도자기, 동으로 만들었는데, 특징이라면 난방용으로만 쓰인건 아니라는 점 입니다. 방 안에서 차나 국을 데우거나, 김을 굽고, 찰떡을 구워 먹고, 깨를 볶는 데에도 썼다고 하네요.

2층 거실 탁자는 상판과 다리까지 조각 장식으로 뒤덮여 있는데, 이건 일본의 닛코보리 탁자입니다. 닛코보리는 일본 닛코 지역의 공예품입니다. 1643년 제3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미쓰가 닛코의 도쇼구를 크게 고치면서 많은 조각 장인들이 모였고, 공사가 끝난 뒤 이들이 그 지역에 정착해 방문객을 대상으로 쟁반과 가구 같은 기념품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 유래라고 합니다.

서양인의 서양식 주택이지만, 당시 조선의 가구와 소품들도 갖추어져 있었는데 이에 대한 설명도 확실합니다. 조선의 돈궤를 서양인들이 캐시박스라고 불렀고, 우리나라 전통 가구 중 장은 분리되지 않지만 농은 층층이 분리되는걸 의미하며, 당시 서양인들에게 삼층장은 조선 가구의 대표였는데 1920~30년대 조선을 찾은 미국인들은 화려한 것을 좋아해서, 번쩍거리는 장식이 많이 붙은 삼층장을 선호했다는 등의 정보가 가득한 덕분입니다. 

이런 정보들과 함께하는 도판도 좋습니다. "딜쿠샤" 복원에 관련된 소품과 세부 디테일 사진이 많이 실려 있습니다. 소품과 관련된 도판, 당시 분위기를 알려주는 사진도 충실합니다. 이런 책은 글만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은데, 사진 자료가 많아서 읽기 편했습니다.

다만 단점도 분명합니다. 특히 문장이 아쉽습니다. 이런 저런 명언과 미학 이론을 들먹이며 이야기를 멋스럽게 쓰려는 표현이 많은 탓입니다. 책의 소재 자체가 이미 충분히 재미있는 만큼 오래된 사진을 보고, 사라진 물건을 찾고, 공간을 다시 만드는 과정만 담백하게 쓰는게 좋았을 것입니다. 괜히 문장을 꾸미려는 부분이 오히려 정보 전달을 방해한다고 느껴집니다.

또 다른 단점은 일부 정보의 근거가 약하다는 점입니다. 저자의 전문분야인 건축, 미술, 복원 외의 생활문화 부분은 다소 부실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영국인들이 홍차를 좋아한 이유를 영국 물의 미네랄 함유량이 높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부분이 그렇습니다. 차 문화는 그렇게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는 주제가 아닙니다. 역사, 무역, 계급, 식민지, 기호품 소비 등 여러 요소가 얽혀 있으니까요. 이 책에서처럼 한, 두 페이지로 간단하게 정리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2026/05/29

어려운 문제가 가득한 레스토랑 - 유키 신이치로 / 김은모 : 별점 2.5점

"#진상을 말씀드립니다"의 작가 유키 신이치로의 공유 주방을 배경으로 한 연작 단편집입니다. 다양한 음식점 수십 개를 등록해 우버 이츠로부터 배달 주문을 받는 공유 주방의 점장이, 외부 활동을 하는 배달원들이 모아온 정보를 바탕으로 추리를 펼치는 안락의자 탐정물입니다.

설정은 꽤 좋습니다. 점장은 뛰어난 추리력을 가진 미남이지만, 정의감 넘치는 명탐정이라기보다는 적절한 가격에 추리 결과를 제공하는 냉정한 장사꾼에 가깝습니다. 의뢰인만 알고 지불할 수 있는 거액의 요리를 시스템에 등록해 거래하는 방식도 합리적이고요. 배달 앱과 공유 주방이라는 현대적인 시스템을 추리소설의 장치로 활용했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시스템에 대한 깊은 연구도 돋보이고요.

사건 역시 일상계에 가까운 이야기부터 묵직한 살인까지 다양하게 펼쳐집니다. 앞부분 수록작들은 설정도 좋고, 추리적으로도 충분히 재미있습니다. 특히 첫 번째와 두 번째 작품은 이 시리즈가 가진 장점을 잘 보여줍니다. 배달원이 사건 현장에서 직접 뛰어다니고, 점장은 그 정보를 바탕으로 결론을 내리는 구조도 안정적입니다.

다만 뒤로 갈수록 설정이 애매해지고, 추리적으로도 기대에 미치지 못합니다. 특히 후반부에서 점장의 정체를 실체적으로 밝혀내려는 시도가 등장하는 점은 영 별로였습니다. 이런 인물은 판타지로 남아 있을 때 더 매력적입니다. 굳이 현실적인 설명을 붙이려는 순간, 앞에서 쌓아둔 쿨하고 냉정한 분위기가 흐트러지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최소한 앞의 수록작 두 편만큼은 괜찮았습니다. 작가의 전작이 영 아니어서 별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그래도 자기만의 무언가를 보여주기 시작한 것처럼 보입니다. 작가로서 성장했구나 싶었어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전체 완성도가 아주 뛰어나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공유 주방과 배달 앱을 결합한 안락의자 탐정물이라는 설정, 그리고 앞부분 수록작들의 추리적 재미만으로도 읽어볼 가치는 있습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진상에 대한 스포일러 포함되어 있습니다.

넘어져도 빈손으로는 일어서지 않는 완두콩 싹 달걀 수프 사건

맨션에서 화재 사건이 벌어졌다. 화재가 일어난 방의 입주민이었던 대학생 가지와라 료마는 팬티 바람으로 입주민들을 깨워 도망치게 하여 대참사를 막았다. 그러나 전소한 료마의 방에서 료마의 전 여자친구 유즈키의 시체가 발견되는데...

경찰은 자살 가능성을 생각합니다. 유즈키가 헐렁한 옷을 입고 화재 현장에 나타나 ‘당해봐라’라는 복수에 가까운 말을 내뱉은 뒤, 불길이 치솟는 건물 안에 자기 발로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실연에 따른 극단적 선택처럼 보였던 것이지요.

그러나 점장의 추리는 다릅니다. 료마는 유즈키를 미리 죽여 자기 방에 놓아둔 뒤, 불을 지르고 유즈키의 옷을 입고 나와 유즈키인 척했습니다. 그리고 밖에 있다가 다시 화재 현장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유즈키가 스스로 불길 속으로 들어간 것처럼 꾸몄던 겁니다.

근거는 배달원의 조사입니다. 료마가 여성스러운 외모와 체구의 소유자이며, 심한 근시라 잘 때는 렌즈를 끼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냈기 때문입니다. 료마는 팬티 바람으로 밖에 나와 있을 때 현장에 있던 현재 여자친구를 알아봤습니다. 이 증언을 통해 점장은 료마가 렌즈를 끼고 있었고, 따라서 자다가 급히 나온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깨어 있었다는 사실을 간파합니다.

시리즈의 설정과 분위기를 알려주는 첫 작품으로는 꽤 좋습니다. 사건 자체도 나쁘지 않고, 여장 트릭과 시력 단서를 결합한 추리도 깔끔합니다.

무엇보다 마음에 들었던 것은 결말입니다. 사건을 의뢰해던 료마의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 진상을 알고 싶어 한게 아닙니다. 그 진상을 가지고 아내를 협박하려 했지요. 점장은 이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아버지에게 추리를 들려줍니다. 점장은 음식점의 셰프로서 고객의 허기진 배를 채워주면 충분하다는 식이거든요. 정의를 내세우지 않고, 자기 추리가 진짜라고 보장하지도 않고요. 이 부분에서 의뢰와 돈에만 충실한 추리를 펼친다는, 이 시리즈만의 독특함이 잘 드러납니다.

그래서 별점은 3점입니다. 첫 작품으로서 세계관 소개도 잘하고, 추리적으로도 준수합니다. 무엇보다 점장의 냉정한 캐릭터가 확실하게 각인된다는 점이 좋았습니다.

잉꼬부부의 갈릭 버터 치킨 수프 사건

남편 다이시로가 교통사고로 죽은 뒤, 아내는 처음으로 남편의 왼손 손가락 두 개가 절단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다이시로는 왜 손가락이 절단된 것을 숨겼을까? 그리고 아내는 왜 몇 개월 동안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는가?

설정부터 굉장히 흥미롭습니다. 손가락이 절단된 남편, 그 사실을 몇 개월 동안이나 모른 아내라는 출발점만으로도 독자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합니다. 

게다가 이 사건은 배달을 맡은 배달원의 가정사와 연결되며 부부 사이의 애정에 대한 이야기로 확장되는데, 이 드라마가 특히 좋습니다. 배달원은 자기 손가락이 잘렸을 경우, 아내가 그걸 알아챌지 확신하지 못합니다. 이 불안과 의심이 마지막 식사 장면으로 이어지는 부분은 이 작품의 백미이고요. 사건의 수수께끼와 배달원의 개인사가 따로 놀지 않고, 부부라는 공통된 주제 안에서 자연스럽게 맞물리기 때문입니다. 부부간의 소통 부족이라는 사회파스러운 문제 제기까지 담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추리적으로도 깔끔합니다. 남편의 아내가 엄청난 악처로, 결혼반지에 대해 히스테리에 가까운 집착을 보였다는 증언이 핵심 단서입니다. 점장은 결혼반지를 잃어버린 남편이 그것을 숨기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손가락을 절단했다고 추리합니다. 극단적인 해결책이기는 하지만, 이는 앞서 쌓아온 부부 관계의 드라마와 맞물리면서 충분한 설득력을 얻습니다. 추리에 대한 근거 - 구급차 대신 택시를 탔고, 절단된 손가락을 가져가지 않았다 -도 합리적이고요.

반지를 누가 가져갔는지에 대한 추리도 좋습니다. 남편은 자신이 결혼했다는 사실을 숨기고 호스티스 리리카를 만났습니다. 그렇다면 그가 아내의 이름을 말했을 리 없지요. 그런데 리리카는 아내 요리코의 이름을 알고 있었습니다. 결혼반지 안쪽에 부부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반지를 가져간 사람은 리리카였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단순하지만 논리적으로 잘 맞아떨어지는 추리였습니다.

단점이 없지는 않습니다. 아무리 악처의 잔소리가 싫었다 하더라도 손가락을 절단한다는건 너무 극단적이지요. 베란다에 대한 조사 역시 조금 과하게 작위적입니다. 그러나 단점들은 사소합니다. 설정과 전개, 드라마, 추리가 모두 잘 맞물린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4점입니다. 수록작 중 최고작입니다.

뜻대로 안 되는 세상의 양파 토마토 수프 사건

나는 전직 패션모델 출신 싱글맘으로 아들 하루토와 함께 어렵게 살아가고 있었다. 유일한 위안은 수시로 X에 올리는 글에 대한 반응이었다.

배달원의 일상이 사건과 연결된다는 전개 방식은 직전 작품과 같습니다. 이번에는 배달원이 SNS, 정확히는 X에 중독되어 있으며, 그로 인해 벌어지는 여러 폐해를 직접 알거나 접하게 됩니다. 그리고 사건 역시 같은 상황에서 비롯되고요.

수수께끼는 빈집털이범의 기묘한 행동입니다. 범인은 빈집을 털러 들어왔는데, 그 안에서 무언가에 놀란 듯 핸드폰을 확인하다가 붙잡혔습니다. 도대체 그는 왜 빈집 안에서 갑자기 핸드폰을 확인했을까요?

정답은 빈집털이범이 집을 착각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빈집털이범은 배달원으로 일하며 배달품 안에 집집마다 다른 감사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그 감사 메시지를 받은 사람이 X에 글을 올리면, 범인은 어느 집인지 알아낼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그 사람이 X에 집을 비운다는 글을 남기면 그때 빈집을 터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사건에서 범인은 그 집을 유명 인플루언서 마루미 짱의 집으로 착각했습니다. 이는 모두 마루미 짱의 계획이었습니다. 마루미 짱은 자기 고교 동창이자 친구인 고토미의 집을 털게 하려고 일부러 고토미의 집에 놀러 가서 배달을 시킨 뒤, X에 감사 메시지를 올렸지요. 이유는 자신에게 악플을 달던 악플러의 정체가 고토미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고요. 복수하려 한 것이지요.

동기는 좋고, 추리도 깔끔합니다. SNS를 활용하는 범죄 수법도 재미있습니다. X에 중독된 배달원이 X 때문에 개인 사생활이 드러나고, 대중의 관심을 얻으려 할수록 오히려 가족에게서 멀어지는 과정을 사건과 결합한 부분도 괜찮아요. 소재와 주제가 잘 맞물린 편입니다.

하지만 약점도 분명합니다. 가장 큰 문제는 감사 메시지를 보낸 배달원이 반드시 빈집털이범이라는 전제가 없다는 점입니다. 마루미 짱은 빈집털이범이 나타날 때까지 계속 고토미 집에 놀러 가서 배달을 시킬 생각이었을까요? 이 부분은 뭔가 설득력 있는 설정이 추가로 필요했습니다. 마루미 짱은 확신을 가지고 있었을 거라는 점장의 추리는 재미있지만, 지금의 내용만으로는 범행 계획이 지나치게 우연에 기대고 있다는 느낌이 강합니다.

또 하나 불만이었던 건 점장의 태도입니다. 앞선 작품들에서 점장은 사건의 진상이 몰고 올 파장과 무관하게 순수히 돈과 주문에만 추구했습니다. 그게 특징이자 멋있는 점이었고요. 그런데 이 작품에서는 배달원에게 훈계하는 듯한 말을 남겨서 점장만의 카리스마가 깨져버립니다. 때문에 캐릭터의 일관성이 이어지지 못합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SNS와 배달 시스템을 이용한 범죄라는 아이디어는 나쁘지 않았지만, 사건의 설득력과 점장 캐릭터 운용에서 아쉬움이 큽니다.

수치가 이상한 수준의 건더기 가득한 육개장 수프 사건

작가인 배달원이 점장에게 수수께끼를 가져왔다. 한 여성에게 열 번이나 똑같은 배달원이 음식을 배달했고, 마지막 배달 때에는 밀봉된 배달 음식 봉투 안에 머플러가 들어 있었다는 사건이었다. 마침 그녀가 머플러를 잃어버린 직후였기 때문에, 단순한 우연이라고 보기에는 이상한 상황인데...

점장은 음식을 가져다준 사람이 배달원이 아니라, 잘못 배달된 음식을 받은 다른 건물 입주민이었다고 추리합니다. 오래된 맨션의 1호와 2호가 나란히 서 있어서 배달원이 착각했고, 그 잘못 배달된 음식을 받은 남자가 다시 여성에게 가져다주었다는 것이지요. 마침 그는 여성에게 호감이 있었고, 여성을 관찰하다가 머플러를 잃어버린 사실을 알게 된 뒤 선물로 머플러를 넣었습니다. 이는 가게 포장지가 기성품이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그는 배달 온 포장을 뜯은 뒤, 기성 포장지로 머플러와 함께 다시 포장해서 배달품을 가져다준 겁니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 더 좋았던 건 이 표면상의 추리가 아닙니다. 실제로는 작가가 점장의 정체를 캐내려고 이런 사건을 가져왔다는 사실을 밝혀내는 추리가 더 인상적이었습니다. 점장은 작가에게 실제 배달 경로로 배달을 시킨 뒤, 그 동선을 확인해서 오배송이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논리적으로 밝혀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점장의 정체를 캐내려는 작가 설정은 영 별로였습니다. 물론 이런 수수께끼의 가게와 점장에 대해 궁금해하고, 어떻게든 그 실체를 밝혀내려고 애쓰는 인물이 있을 수는 있습니다. 문제는 그 방법이 너무 어설프다는 겁니다. 미행도 그렇고, 사건을 의뢰하는 방식도 와 닿지 않습니다. 이 수수께끼를 해결한다고 해서 점장의 정체에 얼마나 가까워질 수 있는지도 애매하고요.

게다가 작가가 점장의 손에 의해 죽고 만다는 결말은 완전히 실망스러웠습니다. 이 시리즈에서 점장은 만화적이고 판타지 같은 인물이지만, 배달원이 현실을 붙잡고 있는 덕분에 그럭저럭 실감나게 느껴집니다. 그런데 판타지 속 인물처럼 보였던 점장이 현실에 있는 배달원에게 직접 손을 대는 순간, 그 실감은 완전히 깨져버리고 맙니다. 판타지는 판타지로 남아 있어야 했어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사건과 추리 자체는 나쁘지 않았지만, 점장의 정체를 파고드는 방향과 결말시리즈의 매력을 깎아먹었기에 감점합니다.

악령 퇴치 닭봉 삼계탕풍 수프 사건

분명히 비어 있는 이웃집에 계속해서 물건 배달이 오는 이유가 무엇인지 밝혀달라는 의뢰가 접수되었다. 

진상은 빈집의 옆집 여자, 정확히는 의뢰인 집 기준으로 옆옆집에 사는 여자가 벌인 일이었습니다. 그녀는 허술한 맨션 방범 체계를 개선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비어 있는 집 앞으로 계속 물건이 배달되는 상황을 만들면, 관리인이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CCTV를 설치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겁니다.

사건 자체는 흥미롭습니다. 비어 있는 집으로 계속 배달이 온다는 수수께끼는 일상계 미스터리지만 나름대로 기묘함을 전해줍니다. 다른 수록작들보다 범죄의 무게가 덜해서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고요.

하지만 진상은 영 와 닿지 않았습니다. 맨션의 방범을 강화하고 싶었다면 이런 노력을 할 것이 아니라, 차라리 직접 CCTV를 사서 맨션 주인에게 가져다주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 싶거든요. 만두 배달만 한가득 시켰는데, 최소한 몇십만 원은 들었을 테니까요. 그 돈과 수고를 생각하면 범행 동기가 설득력 있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맨션 관리인이 진상 주민을 내쫓기 위해 다른 층에서 같은 범행을 저질렀다는 전개도 억지스럽습니다. 다른 층에서는 장기 출장 간 집 앞으로 배달이 계속되어 그 이웃집 진상이 이사를 갔다고 하는데, 정작 기분 나쁜 건 배달이 온 집 주민이지 이웃집 주민은 아닐 겁니다. 유명한 진상 세입자가 이 정도 일로 꿈쩍이나 할까 싶기도 하고요.

시리즈의 매력인 배달원의 일상과 사건의 연계도 잘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이번 배달원은 인기 없는 개그맨입니다. 그런데 이 수수께끼를 자기 개그 소재로 쓰는 것이 전부이고, 본인의 드라마와 사건이 깊게 엮이지는 않습니다. 앞선 작품들에서 배달원의 개인사가 사건의 주제와 맞물렸던 것과 비교하면 확실히 약합니다.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수수께끼의 출발점은 괜찮았지만, 진상과 동기, 배달원 캐릭터 활용이 모두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모르는 게 약인 완탕 고추장 수프 사건

누군가의 습격을 받은 ‘나(가지와라)’는 죽기 전에 범인의 정체를 확신했다...

첫 번째 사건의 배달원이 점장에게 인간 소실 사건 해결을 의뢰했다. 첫 번째 사건의 의뢰인이었던 가지와라 씨가 실종되고, 그의 자택에서는 강한 루미놀 반응이 발견된 사건이었다.

마지막 수록작인데 연작 단편집의 마무리로는 괜찮은 구조를 갖추고 있습니다. 앞선 단편들의 배달원들이 모두 등장하고, 첫 번째 사건 의뢰인과 관련된 사건을 해결한다는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 작품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마지막 작품으로 돌아오는 방식은 일종의 수미쌍관으로, 확실히 연작 단편집이구나!라는 재미를 전해줍니다.

추리적으로도 괜찮은 부분이 있습니다. 가지와라가 배달을 시켰을 때, 범인은 어떻게 그 사실을 알고 배달원보다 먼저 찾아가 살해했는지가 핵심입니다. 진상은 특정 상품을 주문하면 안건 상담 비용을 할인해준다는 쿠폰에 있었습니다. 범인은 가지와라에게 그 쿠폰을 전달해두었고, 가지와라가 특정 상품을 주문하자 상담 의뢰가 들어온 것을 알고 배달원보다 먼저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그를 살해한 뒤, 큰 우버 이츠 가방에 시체를 넣어 옮겼던 겁니다. 이는 특정 상품이 상담과 관련되어 있다는 앞선 설정과도 잘 연결되고, 쿠폰 전달 같은 소소한 정보도 비교적 공정하게 제공되어 마음에 듭니다. 

배달 앱과 공유 주방 시스템을 이용한 시리즈 특유의 장치도 마지막까지 살아 있고, 모든 추리는 결국 해석하기 나름이라는 점장의 철학도 잘 드러나서 시리즈 작품의 매력을 한껏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장이 범인이었다는 결말은 뜬금없었습니다. 가지와라의 전처, 그러니까 가지와라 료마의 어머니로부터 암살 의뢰를 받았다고 해서 실제로 살인까지 저지른다는 전개는 쉽게 납득되지 않습니다. 앞선 작품들에서 쌓아온 세계관을 감안하더라도, 이 정도로 직접적인 살인 실행까지 가는 것은 과했습니다.

배달원들이 합심해서 진상을 알아내려고 노력한다는 설정도 생각만큼 와 닿지 않았습니다. 연작의 마무리로 여러 인물을 다시 모으려는 의도는 알겠지만, 인물들의 감정이나 관계가 충분히 쌓여 있었다고 보기는 어려우니까요. 

마지막에 점장의 추리 철학에 대한 설명이 너무 긴 것도 단점입니다. ‘모든 것은 해석하기 나름’이라는 생각 자체는 이 시리즈와 잘 맞습니다. 하지만 마지막에 그 철학을 길게 풀어 설명하다 보니, 사건의 긴장감보다 작가의 설명 의식이 더 강하게 느껴진 탓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2026/05/02

귀공자 (2023) - 박훈정 : 별점 2.5점

코피노 마르코는 아버지가 자신을 찾는다는 말을 듣고 한국으로 향했다. 그런 마르코를 뒤쫓는 의문의 남자, 자칭 "친구"에 의해 아버지의 부하들은 모두 죽었다. 마르코는 우여곡절 끝에 의붓형을 만났지만, 의붓형 한이사는 마르코가 아버지에게 심장을 주어야 한다고 했다. 곧바로 수술이 시작되었지만 수술실에 '친구'가 나타나 마르코를 구해주는데...

박훈정 감독의 액션 영화입니다. 최근에는 미중년 액션물을 많이 보았는데, 생생한 젊은 남자가 펼치는 무쌍 액션물은 오랫만이네요. 그런데 이 젊은 남자, '친구'가 굉장히 매력적입니다. 마르코에게 자기는 "친구!"라며 살갑게 굴다가도 순식간에 사람을 죽이는, 엄청난 실력을 가진 프로 해결사라는 모순적인 인물을 잘 그려낸 덕분입니다. 명품 정장을 걸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잔혹한 살육을 벌인다는 모순도 그럴듯하게 표현됩니다. 여기에는 '친구'역을 맡은 김선호의 연기와 매력이 한 몫 단단히 하고요. 그야말로 혼자서 영화를 끌고 갑니다.

김강우가 연기한 한이사도 빌런으로는 나쁘지 않습니다. 돈과 상속이 전부인 잔혹한 속물 재벌 2세라는 인물상을 설득력 있게 연기하고 있거든요. 그리 깊이 있는 악역이라고 보기는 어렵고 뻔하지만, 장르 영화 속 빌런으로는 충분한 존재감을 보여줍니다.

액션도 괜찮습니다. 합도 잘 맞고, 장면의 동선도 지루하지 않게 짜여 있기 때문입니다. 박훈정 감독 특유의 잔혹한 분위기도 잘 살아 있어서 총격전, 맨손 격투, 자동차 추격 등 종류도 다양한데 뭐 하나 처지지 않습니다.
이 중에서 '친구'가 마르코를 쫓는 추격전이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단순히 죽이려는 사람과 도망치는 사람의 관계가 아니라, 장난이 많이 포함된 애매함이 독특했어요. 이 과정에서 '친구'의 엄청난 신체 능력도 튀지 않게 선보여서 마음에 듭니다.

각본이 중요한 영화는 아니지만 여러 설정을 적절히 잘 써먹는 것도 눈에 띕니다. '친구' 역시 코피노 출신이라는 설정이 대표적입니다. 위기 상황에서 필리핀어로 정보를 주는 장면으로 잘 이어지는 식으로요. 덕분에 마르코를 이용해 돈 벌 생각만 있어 보였던 '친구'가 사실은 마르코의 편이었다는 결말도 설득력을 갖게 됩니다.

그러나 핵심 설정이 너무 말이 안 된다는 문제는 큽니다. 아버지가 죽으면 상속에서 지기 때문에 심장 이식 수술을 시켜야 한다는 상황은 그럴듯합니다. 문제는 그 심장 제공자가 반드시 사생아인 마르코여야 할 이유가 없다는 점이에요. 이 일을 위해 쓴 돈만 당장 천만 달러 규모이고, 그 과정에서 죽은 사람도 수십 명입니다. 그 정도 비용과 희생을 감수할 수 있다면, 마르코 한 명에게 매달리지 않고 다른 방식으로 충분히 심장을 구할 수 있었을 겁니다. 최소한 유전적인 조건이나 특수한 의학적 이유가 있다는 설명이 필요했어요.

액션은 앞서 말했듯 좋지만, 김선호가 연기한 '친구'의 무력이 너무 압도적이라서 조금 시시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악당들은 수수깡과 다름이 없으니까요. 그에게 맞설 수 있는 빌런이 한 명 정도는 나와주었어야 했습니다. '친구'가 나타나면 만사형통이라, 강한 캐릭터를 보는 재미는 있지만 위기감은 약합니다.
여기서 마르코의 활용도 아쉽습니다. 초반에 꽤 괜찮은 실력을 가진 복서로 등장해서 당연히 그의 복싱 실력이 후반부 어떤 식으로든 쓰일 것이라 기대하게 만드는데, 이야기 내내 마르코는 쫓기고, 얻어맞고, 도망치는 역할에 머뭅니다. 이럴 거라면 왜 굳이 복서라는 설정을 길게 보여주었는지 모르겠네요.

마지막 장면에서 한이사가 '친구'를 그냥 보내주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의문도 남습니다. '친구'가 거래를 깨고 그들을 죽인 뒤 마르코를 구해주었을까요?

그래도 흥행에 실패할 정도의 망작은 아닙니다.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이야기의 짜임새를 중요하게 보는 관객이라면 아쉬움이 크겠지만, 최소한 김선호의 연기만으로도 볼 가치는 충분합니다. 액션도 좋고요. 속편이 나오면 좋겠습니다.

2026/04/25

가구, 집을 갖추다 - 김지수 : 별점 2.5점

가구와 인테리어를 단순히 취향의 대상으로만 보지 않고, 생활사와 주거문화의 변화 속에서 풀어내는 에세이 모음집입니다. 

읽으면서 가장 눈에 들어온 장점은 가구와 인테리어 전문가인 저자의 식견이 곳곳에서 드러난다는 점입니다. 화장대 설명에서 청동기시대의 거울 대체품 이야기에서 출발해, 르네상스 이후 화장 문화의 변화, 17세기의 로보이 화장대, 18세기의 토일렛 테이블,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의 더치스 화장대까지 이어지는 흐름을 자연스럽게 정리하며 화장대가 단순한 가구가 아니라 미의식, 계급 문화, 생활양식의 변화와 함께 발전해 왔다는 점을 알려주는 식입니다.

이런 설명은 서양 가구사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조선 말기의 경대, 유리 거울의 보급, 좌식 문화에 맞추어 발달한 소반의 구조와 쓰임, 사랑채와 안방의 변화를 통해 한국의 주거문화와 가구를 연결해 설명해 주기도 하거든요.
덕분에 읽다보면 왜 과거의 가구들이 작고 이동하기 편한 구조였는지, 왜 안방이 오랫동안 생활의 중심이 되었는지, 또 근대 이후에는 거실과 식탁 중심의 공간으로 어떻게 옮겨갔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온돌의 일반화와 좌식 문화의 정착, 그리고 그에 따라 소반이나 경대 같은 생활 가구가 발달해 나갔단 것이지요. 

현재의 생활 방식과 이어지는 제안들도 흥미롭습니다. 소파보다 식탁에 투자하라는게 대표적입니다. 이는 단순한 인테리어 조언이 아니라, 거실과 부엌을 통합하고 한 공간에서 함께 있으면서도 각자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생활 방식으로의 전환을 의미합니다. 실제로 따라 하고 싶은지와는 별개로, 집을 꾸민다는 일이 결국 어떤 삶을 선택하느냐와 연결된다는 점을 생각하게 만드네요. 이사를 계획 중인데 여러모로 참고가 됩니다.

엠파이어 스타일, 리젠시 양식, 아르데코 같은 서양 디자인사의 흐름을 대중문화와 사회 변화 속에서 풀어내는 대목도 흥미롭게 읽혔습니다. 예술가와 장인, 파리지엔느와 프렌치 시크 등의 설명도 재미있게 읽었고요.

다만 책의 성격에 비해 도판이 부실하다는 단점은 있습니다. 설명을 뒷받침해주는 시각 자료가 꼭 필요한 책인데 말이지요. 저자의 일러스트가 수록될 필요가 있었을지도 의문입니다.
아울러 인문학 서적으로 보기에는 전문성이 조금 부족합입니다. 흥미로운 이야기와 넓은 범위의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정작 근거는 충분히 설명하지 않고 넘어가는 부분이 적지 않거든요. 

그래도 가구와 집을 둘러싼 역사, 문화, 생활양식에 대해 쉽게, 부담없이 읽을 수 있다는 장점이 크기에 별점은 2.5점입니다. 

2026/04/10

기억 속의 유괴 - 오야마 세이이치로 / 한수진 : 별점 2.5점

저자의 "붉은 박물관" 시리즈 두 번째 작품집입니다. 표제작을 포함해 모두 다섯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전작을 그다지 재미있게 읽지 않아서 별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생각보다는 괜찮았습니다. 단편다운 기발하고 신선한 부분이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수록작 전부가 빼어나지는 않고, '설녀' 히이로 사에코 관장의 만화적인 설정은 여전히 별로지만 이 정도면 한 번 읽어볼 만은 합니다.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고생 추락사 사건"

1991년 2월, 기타구 도립 니시가하라 고등학교에서 2학년 여학생 후지카와 유리코가 옥상에서 떨어져 사망했습니다. 후두부를 화단 모서리에 강하게 부딪친 것이 사인이었고, 사건 당시 아래층에서 일하던 작업자는 옥상에서 한 소녀가 "이제 곧 작별이네요. 저는 선배를 좋아해요"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 말 때문에 유리코가 선배에게 고백했다가 살해당한 것으로 여겨졌고, 같은 미술부 3학년 남학생 세 명이 유력한 용의선상에 올랐지만 뚜렷한 증거가 없어 사건은 끝내 미제로 남고 공소시효까지 만료되었습니다.

'붉은 박물관장' 히이로 사에코는 고정관념으로 굳어져 있던 사건의 전제를 뒤집어 버립니다. 당시 고백한 사람은 유리코가 아니라 그녀의 후배인 1학년 여학생이었고, "이제 곧 작별"이라는 말 역시 죽음을 암시한 것이 아니라 전학을 뜻하는 말이었다고요. 그래서 당시 1학년생 가운데 전학을 간 학생을 추적해, 그 학생이 진범이었다는 사실을 밝혀냅니다.

대단한 트릭이 사용된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고정관념'을 깨는 맛이 잘 살아 있어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연쇄 방화 사건"

1990년, 후추, 고쿠분지, 구니타치, 다치카와 일대에서 연쇄 방화 사건이 발생했었습니다. 피해자들 사이에 별다른 공통점이 없었기 때문에 보험금을 노린 자작극이나 교환 방화설은 설득력을 잃었고, 여러 건 가운데 한 건만 진짜 목적이고 나머지는 위장이라는 해석도 방화 횟수가 너무 많아 힘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범인은 누군가를 찾기 위해 방화를 저질렀다는 사건의 실마리가, 범인을 신고하려다 살해당한 가타노 사치에의 전화로 알려졌습니다. 이 때문에 사건은 '야채 장수 오시치 사건'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결국 확인된 유일한 공통점은 방화 대상이 된 집들이 모두 24~25년 전에 지어졌다는 점뿐이었습니다.

사에코는 우선 소거법을 이용해 범인이 찾고 싶어 했던 대상들을 추려냅니다. 소방관은 다른 사람이 출동할 수 있어서 제외하는 식으로요. 그리고 동시에 특정한 조건을 가진 집들을 계속 태웠다는 점을 연결해 사건의 목적을 밝혀냅니다.

그렇게 해서 추리해 낸 진상은 현장검증 책임자 벳쇼가 진범이며, 그는 연쇄 방화가 일어나면 동일한 수사 인력이 반복적으로 현장에 투입된다는 점을 이용해서 특정 시기에 지어진 집들 가운데 한 곳의 바닥 밑에 묻혀 있을 어머니의 시신을 찾아내려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집 안의 사람들은 미리 대피시켰습니다. 시신이 훼손되거나 혼동되지 않도록 말입니다.

오시치 사건이라는 아이디어도 좋고, 연쇄 방화 피해자들의 공통점을 통해 범인의 목적과 정체를 밝혀 나가는 추리도 빼어납니다. 어머니의 사체를 찾기 위해서라는 목적으로 저지른 범죄치고는 지나치게 극단적이라는 단점이 조금 거슬리지만, 큰 흠은 아닙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토막 사체 사건"

1999년 3월 23일, 아라카와 하천 부지에서 토막 난 시신이 발견되었습니다. 머리와 몸통, 양팔의 위아래 부분, 양다리의 위아래 부분으로 나뉘어 있었고, 각 부위가 관절을 중심으로 절단되어 있다는 점이 특징이었습니다.

보통 토막 사체는 운반을 쉽게 하기 위한 것이 목적입니다. 그러나 이 작품은 관절 부위를 추가로 정교하게 잘라낸 목적이 무엇인가를 두고 흥미로운 추리를 펼쳐 보입니다.

사에코는 범인이 "가동 범위가 큰 관절"을 의도적으로 제거했다고 보고, 이것이 시신의 마지막 자세를 숨기기 위한 행위였다고 추리합니다. 피해자는 죽은 뒤 사후 경직이 일어나 특정 자세로 굳었을 것이고, 그 자세만 보면 범행 현장이나 범인과의 관계를 짐작할 수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논리이지요.
또 범인은 경직이 풀릴 때까지 기다릴 수 없었고, 그 때문에 굳은 자세를 알아볼 수 없도록 시신을 관절 위주로 절단해 유기했다는 점을 통해 사에코가 지목한 범인은 피해자의 지인 쓰카모토 가즈오였습니다.

피해자는 가즈오의 중고차 가게에서 차를 타며 자주 놀았는데, 차에 앉아 있던 피해자를 살해한 뒤 급하게 자리를 떠나는 바람에 피해자가 운전하는 자세로 굳어 버렸던 것입니다. 그리고 가즈오는 피해자의 아내 오리에를 사랑하고 있었으며, 그녀가 남편 호소다의 성으로 장례를 치르는 상황을 막고 싶어서 시신이 빨리 발견되도록 유기할 수밖에 없었고요.

이처럼 사후 경직으로 범행이 밝혀지는 것을 막기 위해 '관절'을 제거했다는 아이디어가 아주 좋네요. 정말 획기적입니다. 단편 특성상 용의자가 몇 명 등장하지 않아서 범인이 빠르게 짐작된다는 단점은 있지만, 별점 3점은 충분합니다.

"회사원 살해 사건"

1990년 3월 14일, 미나미시나가와에서 회사원 후지시로가 살해당했습니다. 후지시로는 주변 동료들에게 거액의 채무를 지게 만들고, 그런 상황을 즐기던 인물이었습니다. 이런 성격 때문에 그를 원망하는 사람은 많았고, 사건 역시 원한 관계를 중심으로 수사가 전개되었지만 유력한 용의자에게 알리바이가 있어서 결국 미제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앞선 작품들에 비하면 평균 이하였던 졸작입니다. 가장 큰 이유는 추리의 설득력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사에코는 후지시로가 속한 재료과 멤버들을 중심으로 용의자를 좁혀 가는데, 그 전제부터 억지스럽게 느껴집니다. 협박이나 금전적 압박이 특정 부서 사람들에게만 향했을 리 없으니까요.
또 후지시로의 집에 있던 의자의 위치를 보고 그가 어깨를 다쳤다고 추리하는 부분까지는 흥미롭지만, 그것이 사건 해결의 핵심 근거가 되는 과정은 억지스럽습니다. 실제로 의자를 무엇에 썼는지는 피해자가 죽었으니 밝힐 수 없기도 하고요. 청소하느라 빼 놓았을 수도 있잖아요?

여기에 더해 진범 사와모토가 구보데라를 살해하고 그의 신분을 빼앗았다는 반전은 최악입니다. 앞서 구보데라에게 완벽한 알리바이가 있다고 제시해 놓고, 나중에 사실은 그 인물이 이미 다른 사람으로 대체되어 있었다고 뒤집는다는 점에서 일종의 서술 트릭이라고 할 수는 있지만, 이를 납득하게 할 만한 사전 단서가 충분히 제시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기억 속의 유괴"

26년 전, 다섯 살이던 토다 나오토가 유괴당했습니다. 당시 범인은 몸값을 요구했지만, 결국 별다른 이유 없이 나오토를 풀어주었다.

친모가 나오토와 동반 자살을 할 목적으로 납치했지만 양부모에 의해 살해당한 뒤, 양부모는 친모의 사체를 유기하고 나오토가 납치당한 기억을 왜곡시키기 위해 유괴 사건을 자작했다는 것이 진상입니다.

양부모가 매년 어디론가 참배를 갔던 점, 범인의 이상했던 당시 몸값 요구 같은 단서는 있지만 친모의 정체 등 독자에게 공유되지 않는 정보가 많아서 좋은 추리물이라고 보기는 어렵네요. 납치와 유괴, 살인과 같은 강력 범죄가 등장하지만 이상하게 소품 느낌을 준다는 점도 별로였고요. 납치와 살인은 우발적이고, 유괴가 작위적인 연극인 탓이겠지요. 별점은 2점입니다.

2026/02/14

진짜 도쿄 맛집을 알려줄게요 - 네모 : 별점 2.5점

일본 현지에 거주하는 저자 네모가 도쿄의 로컬 맛집을 직접 소개하는 가이드북입니다. 조만간 일본 여행을 앞두고 있어서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단순히 관광객들이 자주 찾는 유명 체인이나 후기 위주의 맛집이 아니라, 실제 현지인이 일상 속에서 방문하는 식당과 요리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에서 신뢰가 가더군요. 

책은 음식 종류를 기준으로 챕터를 나누어 구성되어 있습니다. 돈부리, 라멘, 소바와 우동 등 면 요리, 고기와 생선 요리는 물론, 일본식 가정 요리와 양식, 카레, 베이커리, 디저트, 편의점 음식까지 폭넓게 다루고 있는데, 관광객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음식들이 대부분 포함되어 있다는게 좋았습니다. 일본 현지인이 아니면 접하기 어려운 메뉴들 소개도 인상적입니다. 닭고기 사시미 스테이크나 멸치 육수 츠케멘, 낫토 소바, 토로로, 각종 후라이 요리처럼요.
또 소개된 식당들 대부분이 관광객들이 부담 없이 접근할 수 있는 가격대라는 점도 좋았어요. 각 식당의 대표 메뉴, 가격, 위치, 영업 시간, 휴일 등 기본 정보 역시 충실하게 정리되어 있어 실용적이기도 하고요. 요리를 맛있게 먹는 팁은 정말 꼭 참고할만 합니다. 

츠케멘은 히가시이케부쿠로 다이쇼켄에서 개발한 메뉴로 원래는 가게 영업이 끝난 후 직원 식사용으로 남은 면에 라멘 국물을 찍어 먹던게 시작이다, 2000년대 중반에 대유행을 한게 진한 국물에 우동만큼 굵은 면을 찍어 먹는 스타일 츠케멘이다, 가마타마 우동은 가마아게 우동의 일종으로 따뜻하고 부드러운 우동에 날달걀을 얹은 메뉴이다, 이나니와 우동은 1600년대 아키타현 영주 가문에서 먹었던 음식이며 냉우동으로 츠유에 찍어먹는 스타일이다와 같이 각 요리들에 대해서 짤막하게라도 소개를 덧붙여 주어서 일본 음식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데에도 도움을 줍니다. 

이렇게 흥미로운 정보와 함께 요리를 워낙에 맛깔나게 소개하고 있어서 꼭 방문하고 싶다는 욕심이 들게 만듭니다. 그래서 아래 가게들은 구글 맵에 저장해 두었지요. 한두 군데라도 갈 수 있으면 좋을텐데, 웨이팅이 꽤 있다고 해서 걱정이 되네요.

  • 텐동 덴후쿠
  • 카츠동 엔라쿠
  • 토지나이 카츠동 즈이초
  • 소유라멘 키라쿠
  • 멸치 육수 츠케멘 미야모토
  • 이타소바 카오리야
  • 낫토 소바 바쿠잔보
  • 붓카케우동 오니얀마
  • 가마타마 우동 마루카
  • 야키니쿠 잠보
  • 야키니쿠와 곱창 호르몬 마사루
  • 우설 규탄 아라
  • 모츠니코미 아부쿠마테이
  • 아지후라이 아오키 쇼쿠도
  • 카키후라이 타라라
  • 크로캉 쇼콜라 365日
  • 철판 프렌치 토스트 빵토 에스프레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점은 분명 존재합니다. 우선 양식이나 카레는, 굳이 일본에서까지 먹을 필요가 있을까 싶네요. 물론 일본에서의 맛은 다를 수 있고, 이런 요리들 애호가도 있겠지만 보통의 여행자 입장에서는 굳이 시간과 동선을 들여 방문할 정도의 메뉴는 아니라 생각됩니다.

도판의 품질도 그리 뛰어나지 않으며, 특히 지도가 아예 제공되지 않는다는 점도 큰 단점입니다. 특정 지역별로 맛집을 묶어 ‘아침–점심–저녁’ 코스를 추천해주는 구성이 있었다면 활용도가 훨씬 높았을 텐데 말이지요. 가격 때문이겠지만 지나치게 런치에만 집중하고 있는 점도 아쉽고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단점이 없지는 않으나 일본 여행을 앞두고 있는 분들이라면 한 번쯤 참고해 볼 만한 가이드북이라고 생각합니다.

2026/02/08

십각관의 살인 1~2 - 키요하라 히로 (아야츠지 유키토 원작) : 별점 2.5점

이번 주는 "십각관의 살인"으로 꽉 찬 한 주네요. 결국 만화 버전까지 찾아 읽어 보았습니다. 마침 리디 북스에서 제공하고 있더라고요.
원작과 거의 똑같은 전개인데, 만화만의 각색 요소가 몇 가지 있습니다.

  • 가와미나미(카와미나미)가 여자로 바뀐 점
  • 치오리가 술을 먹다가 죽은게 아니라 연구회원들과 크루즈 여행 중 사고사 했다는 점
  • 마지막 장면에서 엘러리가 밴(반)에게 속는게 아니라 진범을 밝히고 죽는다는 점

입니다.

이 중 치오리를 사고사로 만든건 괜찮은 각색이었어요. 치오리만 구명 조끼가 없는걸 알게된 반이 치오리는 사고로 죽은게 아니라 연구회원들에게 구명 조끼를 빼앗겨 죽었다!고 여기고 복수를 펼친다는건 원작보다는 조금 더 설득력있는 동기였으니까요. "소년 탐정 김전일"의 "비련호 살인 사건"과 똑같은 동기이기도 하지요.

하지만 큰 틀에서는 다른 건 없습니다. 핵심 트릭인 반의 정체는 모리스였다!는 똑같은 탓입니다. 사실 궁금했던건 모리스가 반이라는걸 어떻게 숨기면서 전개할까 하는 점이었는데, 그냥 헤어스타일만 다르게 - 모리스는 단정하게 묶고, 반은 대충 풀어헤치는 스타일 - 묘사할 뿐입니다. 보다 정교한 만화적인 장치가 들어갈 것으로 기대했는데 실망스러웠어요.
작화도 나쁘지는 않지만 순정 만화체라는건 작풍과 잘 어울리지 않았고, 작품의 주인공 중 하나라 할 수 있는 십각관에 대한 묘사가 그닥이라는 단점은 큽니다.

그래도 긴 장편을 무리없이 만화화 했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캐릭터들도 대체로 원작과 부합하고요. 제 별점은 2점입니다. 소소하게 읽을 만 합니다.

2026/02/01

그렇게 사건 현장이 되어 버렸다(2025) : 별점 2.5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백악관에서 호주 국빈 만찬이 열리던 밤, 백악관 관리 총책임자 A.B. 윈터가 시체로 발견됐다. 대통령 측근 해리 홀린저 등은 자살로 무마하려 했지만, 워싱턴 경찰 국장이 수사를 위해 부른 명탐정 코델리아 컵은 살인 사건이라며 백악관을 폐쇄하고 모든 관계자와 초대 손님들과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인터뷰와 여러 수사에도 불구하고 여러 문제로 인하여 사건은 자살로 마무리되었으나, 국회 청문회에서 새로운 사실(세 번째 남자)이 밝혀져 다시 코델리아 컵이 소환되는데...

넷플릭스에서 감상한 추리 드라마입니다. 총 8회 에피소드, 시간으로는 약 8시간에 이르는 대장편입니다. 이렇게 긴 호흡의 장편 영상 추리물을 본 건 처음인 듯합니다.

그럼에도 지루하지는 않습니다. 안락의자형 추리물을 영상화한다면 이렇게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잘 구성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국회 청문회에서의 증언과 컵 탐정이 관계자들과 인터뷰를 진행하는 장면이 전개의 대부분인데, 이를 단순히 나열했더라면 매우 지루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증언 장면과 컵 탐정이 추리한 실제 상황을 교차 편집하여, 왜곡된 증언과 진상을 동시에 보여주는 연출이 매우 훌륭합니다.

단서 제공도 공정한 편입니다. 범인 릴리 슈마커가 대통령의 배우자 엘리엇의 목소리를 흉내 내 사건 발생 당시 2층을 비우고, 이후 사건 현장은 옐로우 룸을 드나드는 문을 폐쇄하는 공사를 진행한 것이 핵심 단서인데, 릴리가 인터뷰 중 실제로 엘리엇의 성대모사를 선보이는 장면이 등장할 정도니까요. 이런 장면은 소설로는 구현하기 힘든, 영상물이기에 가능했던 연출이었다고 생각됩니다.
그 외의 단서들, 예를 들어 백악관 내부 그림의 이동으로 문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장면 등도 모두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탐정 코델리아 컵도 매력적인 인물입니다. 뛰어난 추리력을 지닌 명탐정이기도 하지만, 세인트 메리 미드라는 마을과 인간 관계의 전문가인 미스 마플처럼, 자신이 지닌 "탐조"라는 전문 지식을 활용해 사건을 풀어나가는 방식이 흥미로웠던 덕입니다. 
스스로를 천재로 인식하고 있으며, 주변 인물들의 무능을 드러내며 면박을 주는 데도 거리낌이 없는 태도 또한 인상 깊습니다. 고전 본격물의 "잘난 척하는 명탐정"에 가까운 캐릭터이지만, 백악관 관계자들의 무능과 거짓이 워낙에 강하게 드러나는 덕분에 오히려 통쾌함을 안겨줍니다.
추리의 절정에서 선보이는 추리쇼도 명탐정답게 화려합니다. 릴리가 범인임을 밝혀내고, 핵심 증거인 시계를 찾아내는 장면은 압권이었습니다.

배우들의 캐스팅도 적절합니다. 모두 자신에게 딱 맞는 배역을 맡아 열연을 펼칩니다. 카일리 미노그의 깜짝 카메오 등장도 재미요소였어요. 

그러나 단점이 없지는 않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백악관 내부 묘사입니다. 지나치게 희화화되어 도무지 현실감이 들지 않습니다. 대통령을 가까이서 보좌하는 조직이 이렇게 무능하게 묘사된다는 건 과장이 지나치지요. 백악관의 전통과 규범은 무시한 채, 개인의 아집으로 만찬을 망친 요리사 실라와 파티셰 디디에, 알코올중독 집사, 그리고 불청객과 정체 불명의 게스트까지 들여보낸 경호원들 모두 다음 날 해고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인물들입니다.

미국 대통령이 게이라는 설정 역시 과하다고 느꼈습니다. 이야기 전개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차라리 더 자연스럽게 풀어냈더라면 좋았을 것입니다. 여성인 릴리가 퍼스트 레이디의 목소리를 흉내 냈다면 훨씬 더 설득력 있었을 테고요. 여러모로 불필요한 설정처럼 보였습니다.

추리적인 면에서도 억지가 있습니다. 릴리는 별다른 고민 없이 살인을 저질렀고, 이후 사건이 미궁에 빠진 건 대통령 동생 트립, 엔지니어 브루스, 파티셰 디디에 등이 우연히 개입한 탓입니다. 거의 동시에 사건 현장에 모였던 여러 인물이 벌인 우발적 행동으로 인해 사건이 꼬였다는 설정은 지나치게 작위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사건이 호주 국빈 만찬 중에 벌어졌고, 국빈들을 감금했다는 설정도 무리입니다. 백악관 직원을, 백악관 내부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누군가가 살해했다는 점은 이미 코델리아 컵에 의해 밝혀졌던 상황이었고, 그렇다면 국빈들은 바로 풀어주었어야 했습니다. 다른 관계자들의 감금을 유지하더라도요.

후더닛물답게 의심스러운 용의자들을 다양하게 배치하고는 있지만, 정작 범인 릴리의 동기가 제대로 부각되지 않은 점도 아쉽습니다. 릴리는 재벌가 출신으로 애초에 살인을 저지를 만한 동기가 희박합니다. 실라나 엘시처럼 직접적인 "해고"라는 동기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요. 횡령이라는 설정을 덧붙이고는 있지만, 명확히 설명되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대통령의 가장 큰 후원자의 딸인 릴리가 이 정도 이유로 해고되거나 커리어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는다는 설정은 쉽게 납득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추리물로서 잘 만들어진 작품이긴 합니다. 설정의 과도함과 동기의 빈약함 같은 단점은 분명하지만, 추리물 애호가라면 한 번쯤은 감상해 볼 만합니다.

2026/01/17

굿뉴스 (2025) - 변성현 : 별점 2.5점

일본 여객기가 테러조직 적군파에 의해 하이재킹되었다. 테러범들은 평양으로 향할걸 요구했지만, 이 소식을 들은 중앙정보부장 박상현의 지시로 박상현의 수족 아무개와 관제사 서고명 중위가 활약하여 여객기를 김포 공항에 착륙시키는데 성공했다. 김포를 평양으로 착각하게 만들 속셈이었지만, 라디오에서 팝송이 흘러나오는걸 알아챈 테러범들이 속지 않자 대치가 시작되었고, 결국 시간 내 평양행이 결정되지 않으면 자폭하겠다는 테러범들의 최후 통첩이 전달되는데....

작년에 공개된 넷플릭스 전용 한국 영화입니다. 별다른 사전 정보없이 감상하였습니다. 꽤 진지한 테러범과의 협상 중심의 영화일줄 알았는데 블랙 코미디에 가까운 작품이라서 의외였네요.

블랙 코미디에 어울리는 재기발랄한 연출이 눈에 먼저 들어왔습니다. 설명이 필요한 지점에서 말로만 밀어붙이지 않고, 화면을 그 설명에 잘 어울리는 상황에 맞춰서 가볍게 웃음을 끌어내는 방식이 꽤 자주 나옵니다. 일본 여객기 통신망을 북한보다 먼저 잡아내는게 핵심인 초반부 작전에서, 이를 서부극에서의 일대일 결투로 묘사하는 식으로요.
이런 연출을 비롯해서 전반적으로 한 번에 빵 터뜨리는 개그를 의도했다기 보다는, 피식하게 만드는 요소들이 계속 이어지는데 타율이 꽤 괜찮은 편입니다. 실제 '요도호 사건'의 내용을 충실하게, 하지만 코믹하게 변주한 각본도 나쁘지 않아요. 평양 공항으로 위장한 김포 공항에 착륙한 비행기 안의 테러범들이 평양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아무개' 등과 벌이는 상황들 - 공항 건물에서 테러범이 햄버거를 먹는 흑인을 보고 따지자 서고명 중위는 '소련인'이라고 대꾸하고, 비행기 기장은 푸시킨도 흑인이었다고 말하는 등 -이 대효적인 예입니다. 

배우들의 연기도 전반적으로 만족스럽습니다. 특히 중앙정보부장 역의 류승범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충청도 사투리로 뺀질대고 깐족거리는 톤을 유지하면서도, 웃기기만 한 인물이 아니라 잔인성과 권력의 냄새를 슬쩍 끼워 넣는 균형이 꽤 좋습니다. 유머러스한 악역이라는 말이 딱 맞는데, 과장되지 않게 리듬을 타는 방식이라 장면을 끌고 가는 힘이 있었습니다. 능력있는 군인에서 출세에 눈이 먼 야망가, 거기서 다시 인질들 생명에 대한 책임감으로 괴로워하는 서고명 중위의 연기도 돋보였어요. 홍경이라는 처음 보는 배우가 연기했는데, 앞으로가 기대됩니다.
일본 테러리스트들, 비행사, 정부 고관 역할을 맡은 일본 배우들도 대체로 안정적입니다. 특히 "백야행"의 야마다 타카유키가 한국 영화에서 비중 있는 역할로 등장하는 건 개인적으로 꽤 뜻밖이었는데, 연기도 좋았습니다. 거의 유일한 인격자(?)지만, 막판에 흥분하는 장면에서 제대로 존재감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영화가 기대만큼 성공하지 못한 이유는 잘 알겠더군요. 중반까지는 여객기를 김포 공항에 착륙시키기 위한 작전을 나름대로 치밀하게, 그렇지만 일본, 한국, 북한, 테러범들 모두 바보스러운 모습을 극대화하며 블랙 코미디를 잘 섞어서 그려내는데 그 이후는 무엇을 이야기하려는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탓이 큽니다. 급작스럽게 인도주의자로 거듭난 서고명의 딜레마 - 출세냐, 인질들의 생명이냐! -를 그리는 건지, 각자의 이익과 유불리에만 골몰하는 인간 군상을 다루는 사회 풍자물인지(누가 봐도 윤석렬-김건희 부부가 떠오르는 영부인의 등장까지 포함해서) 잘 모르겠더라고요.

비행기가 평양으로 간 뒤에 이야기가 어느 정도 정리되고 마무리되었으면 그래도 깔끔했을 텐데, 이후의 내용은 완전히 군더더기처럼 느껴집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서고명 대위를 “완전한 영웅으로 만들지 않겠다” 같은 의도를 넣으려 한 것 같기도 한데, 그렇게까지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생각되거든요. 이외에도 어색하게 메시지나 사상을 끼워 넣으려는 듯한 부분들은 모두 영 별로였습니다. 별로 웃기지도 않고요. 차라리 코미디로 계속 밀어 붙였더라면 더 나았을텐데, 괜히 러닝타임만 잡아먹을 뿐입니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문제는 '아무개'의 존재입니다. 중앙정보부장이 뭐가 아쉬워서 신원도 불분명한 이런 인물을 국가간 외교가 얽히는 거대한 작전에 핵심 인물로 기용할까요? 북한 출신이라는 등의 설정도 억지스럽고, 아무개가 뉴스까지 조작하며 진실을 대충 숨긴다 어쩌구 하는 메시지도 잘 와 닿지 않습니다. 무언가의 전문가로는 전혀 생각되지 않는 배우 설경구의 연기도 별로였고요. 이 인물을 빼고, 중앙정보부장과 서고명 중위, 테러범들을 중심으로 하여 블랙 코미디 하이재킹 군상극으로 만들었어야 합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재기발랄한 연출과 배우들의 연기는 장점이지만, '아무개'라는 존재의 무리수와 후반부 사족, 그리고 전반적인 영화 톤을 제대로 잡지 못해 러닝타임이 늘어진건 단점입니다. 그래도 가벼운 마음으로는 볼 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