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주신 분들께 안내드립니다.

2020/06/30

Somei의 에바

https://vimeo.com/433112136
상하이의 감독이자 모션 디자이너인 Somei Sun의 프로젝트랍니다. 잘 만들었네요.
그나저나, 에바도 이제 우려낼대로 우려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새로운 무언가가 계속된다니 놀랍고도 부럽습니다.

2020/06/29

전기톱은 남자의 로망! 엔진, 모터달린 물건을 좋아하신다면

https://www.youtube.com/channel/UCZXWtd7Db3TbLNG5i0Xs0JA

각종 엔진과 모터류를 수입, 유통하는 회사 유튜브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전기톱이 탐나네요. 전기톱은 추리와 장르 문학 애호가에게 빼 놓을 수 없는 아이템이니까요!

봉준호 감독의 아카데미 수상 소감으로도 인용된 고전 호러 <<텍사스 전기톱 학살>>이 가장 유명하겠지만, 개인적으로는 한 TV용 단막극 에피소드가 먼저 떠오릅니다. 젊은 여성이 나이든 벌목꾼 우두머리(?) 와 결혼합니다. 주위에 아무 것도 없는 산 속, 젊은 아내는 잘생긴 벌목꾼을 유혹하지요. 그러나 현장이 발각되자 그녀는 거짓말로 빠져나가고, 우두머리는 잚은 벌목꾼에게 전기톱을 휘둘러 실명하게 만듭니다. 그러자 이를 계기로, 결국 모든 벌목꾼들이 들고 일어나게 됩니다.
마지막에서 실명한 벌목꾼이 큰 나무를 벤 뒤, 무언가 액체를 뒤집어쓰며 동료들과 환호합니다. 그리고 카메라가 줌 아웃되자 나무에 벌목꾼 우두머리가 묶여 있었던게 드러납니다! 그리고 벌목꾼이 전기톱을 가져다 대는 두번째 나무에 젊은 부인이 묶여있다는 결말로 끝나는 작품입니다. 아마 스티븐 스필버그의 <<어메이징 스토리>>의 한 편이 아니었나 싶은데 조사해보니 아닌 듯 싶네요. 정체가 궁금해집니다.

여튼, 이런 류의 장비에 관심 많으시다면 구독 신청하셔도 좋을 듯 하네요.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2020/06/28

늑대는 어떻게 개가 되었나 - 강석기 : 별점 2점

늑대는 어떻게 개가 되었나 - 4점
강석기 지음/Mid(엠아이디)

과학 전문 컬럼니스트 강석기의 일러스트가 있는 과학 에세이. 과학 동아에 연재되었던 글들을 엮은 책입니다. 일러스트는 사실 별 볼일 없습니다. 딱히 일러스트가 있어야 할 이유도 모르겠고요. 또 모두 50편의 수록된 컬럼 모두가 흥미롭거나, 재미를 자아내지는 못했습니다.

물론 재미있는 주제도 없지는 않습니다. 몇 가지 인상적이었던 내용을 꼽아보자면, 우선은 사람들의 대인관계 범위, 즉 네트워크가 한정돼 있어 새로운 사람을 사귀게 되면 기존 네트워크에 올라와 있는 사람 가운데 누군가를 잘라내기 마련이라는 이야기입니다.
1990년대 영국 옥스퍼드대 실험심리학과 로빈 던바 교수는 사람의 뇌 크기를 토대로 인류의 이상적인 (구성원 각자가 서로 잘 아는) 집단의 규모가 150명 내외라고 주장했다는군요. 이를 '던바의 수'라고 부르는데, 오늘날 던바의 수는 실질적인 인적 네트워크의 한계로 인식되고 있다고 합니다. 즉, 네트워크에 한계가 있으니, 누군가 선호 네트워크에 추가되면 누군가는 내려가야 하는 법인 셈이죠. 저는 150명까지는 안 될 것 같은데, 나중에 한 번 추려봐야겠습니다.

위대한 철학자, 과학자들의 산책 습관과 이들의 엄청난 창조력에 상관관계가 있다는 연구 결과도 놀랍습니다. 학술지 실험심리학저널 2014년 7월호에는 걷기가 정말 창의력을 높여준다는 연구 결과가 실렸다고 하네요. 걷는 게 무조건 도움이 되는 건 아니며, 걷는 것에 신경을 쓰지 않을 정도의 편안한 걸음, 즉 산책 같은 걷기가 효과가 있다는데, 정확한 이유는 아직 모른답니다. 여튼, 회사에서 아이디어가 필요할 때는 잠깐 걷는게 상책인 듯 합니다.

선택 어업의 부작용에 대한 이야기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자연 상태에서 물고기는 한 번에 알을 수만 개나 낳고, 이 가운데 살아남은 강한 녀석들이 짝짓기를 해(물론 체외수정이지만) 종을 이어갑니다. 자연계에서는 어리거나 병든 녀석들이 사망률이 높기 마련이지요.
그런데 선택 어업은 정 반대로 작고 어린 녀석들은 그물망을 빠져나가 살아남으며 커다란 물고기만 잡히게 됩니다. 어획량이 적다면 자연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겠지만, 지금처럼 어자원고갈에 이르지 않는 범위 내에서 총량을 규제하는 상황에서는 선택어업이 덩치 큰 물고기의 사망률을 높이는데 큰 역할을 하는 것이지요.
결국 몸집이 크게 자라고 늦게 성숙하는 유전자를 지닌 물고기들의 비율이 줄어들고 대신 조숙하고 몸집이 작은 경향의 물고기들이 늘어나고 있다니 큰일입니다. 이런 부자연 선택은 캐나다 큰뿔양의 뿔 크기에서도 증명됩니다. 사냥꾼 한 사람이 사냥할 수 있는 큰뿔양 마리수를 제한하자, 사냥꾼들은 돈을 많이 받을 수 있는 '큰 뿔을 지닌 큰뿔양만을 골라 사냥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불과 20여 년 만에 뿔의 크기는 평균 25%나 줄어들었다네요. 원래 큰 뿔은 성선택으로 나타난 표현형으로, 뿔이 크고 화려할수록 수컷이 더 건강하고 활력이 넘친다는 증거이므로 암컷들이 선호하기 때문에 오랜 세월에 걸쳐 큰뿔양의 뿔은 더 커지는 방향으로 진화해왔는데 사람들이 선택적인 사냥에 나서면서 불과 20년만에 성선택에 완전히 반대가 되는 방향의 진화를 이끌어낸 셈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선택어업' 대신 어획량과 크기를 규제하지 말고 어획량만 규제하는 '균형어업'으로 어업정책을 바꿔야 할 때라고 하는데, 그럴 듯 합니다. 앞으로는 <<도시 어부>>와 같은 프로그램에서 자를 대고 기준에 못 미치는 물고기는 놓아주는 모습도 사라져야 할 것 같네요.

아울러 더운 여름, 주목할 수 밖에 없었던 내용이 있습니다. 완벽한 냉난방 시스템은 우리 몸의 대사율을 떨어뜨리는 데 일조한다는 내용이지요. 25도 내외에서 정적인 생활을 하게 되면 체온을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 우리 몸이 별도의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너무 더우면 땀을 내 체온을 식혀야 하고 너무 추우면 몸을 덜덜 떨어, 즉 근육에서 영양분을 연소시켜 열을 내야 하는데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요. 그런데 25도 내외의 온도가 유지되어 몸의 대사율이 떨어지면, 즉 에너지를 덜 쓰게 되면 섭취한 여분의 에너지는 지방으로 축적되고 이것이 현대 사회 비만이 만연하게 된 원인 중 하나라고 하네요. 그래서 연구자들은 겨울철 난방 온도를 좀 내려 몸이 지방을 태우는 '열생성'을 통해 체온을 유지하게 만들자고 주장한다는데, 잘 되면 좋겠습니다.

집단의 크기가 문화적 복합성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실험도 재미있습니다. 그물 설계 실험을 거쳐 집단 내 구성원 숫자가 많으면 많을 수록 높은 점수를 받는다는걸 증명한 실험입니다. 이를 통해 고립된 개인이나 소수 집단은 복잡한 문화를 제대로 전달할 수 없고 만들어낼 수도 없음을 잘 알 수 있습니다. 한편 피험자들이 두 과제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게 하는 실험 조건 역시 집단의 크기가 클수록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왔다는군요. 능력에 따른 노동의 분업을 통해 두 과제 모두 성공적으로 수행했기 때문입니다.
오래전 ABE 문고에서 <<마지막 인디언>>이라는 책을 읽었던 기억이 나는데, 결국 이 마지막 인디언이 모든 문화를 전달하는건 불가능했을거라는게 참 아프게 다가옵니다. <<나는 전설이다>>역시 마찬가지고요.

마지막으로 동아시아인들이 관계지향적이고 통합적 사고를 하는 이유가 벼농사를 지었기 때문이며, 개인주의이고 분석적 사고를 하는 서구인은 밀농사를 지었기 때문이라는 가설도 재미있어요. 벼농사는 물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대규모 관개시설이 필요하고 농사를 지을 때도 이웃 간에 물을 잘 나눠 써야 한며, 피를 뽑는 작업 등 밀농사에 비해 두 배 이상 손이 많이 가는 탓입니다. 그 결과 벼농사권에서는 상부상조하는 관습이 이어져왔고 나보다는 우리'를 앞에 둘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죠. 그러나 밀농사는 자연 강우에만 의존하고, 일이 고되기는 해도 나 혼자 힘으로 내가 먹을 걸 얻는 데 큰 어려움이 없기 때문에 농사의 독립성이 컸고 그만큼 다른 사람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됐기 때문에 이런 생활패턴이 수천 년 이어져오면서 동아시아인과 서구인의 사고방식에 근본적인 차이가 생겼고, 동아시아인 가운데서도 특히 논농사가 압도적인 한국인과 일본인에서 전형적인 동아시아적 사고 패턴이 보이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럴싸하지요? 그러나 요즘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별로 없어서, 앞으로는 어떻게 바뀔지는 잘 모르겠네요. 저 개인적으로는 가족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상부상조하는 전통만큼은 앞으로도 유지되면 좋겠다 싶습니다.

그러나 인상적이고 기억에 남는 글은 소수이고, 전체적으로는 재미 측면에서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제 관심사 밖의 이야기도 많았고요. 또 제목처럼 흥미로운 주제를 다루지만, 내용은 별다를게 없는 글들도 실망스러웠습니다. 늑대는 어떻게 개가 되었나? 그냥 인간이 오래 전에 키웠기 때문이랍니다. 다른 내용은 없어요. 그래서 제 별점은 2점입니다.

2020/06/27

완벽한 커피 한 잔 - 래니 킹스턴 / 신소희 : 별점 3점

완벽한 커피 한 잔 - 6점
래니 킹스턴 지음, 신소희 옮김/벤치워머스

<<완벽한 차 한 잔>>과 대칭을 이루는 커피 관련 교양서. 구성 역시 <<완벽한 차 한 잔>>과 별로 다르지 않아요. 역사, 원두에 대한 소개 및 커피 구성 요소에 대한 분석, 커피 만드는 과정에 대한 상세한 소개, 커피 추출법 및 각종 도구와 레시피 등이 잘 정리되어 소개되고 있거든요.

구성 내용에 대해 조금 더 상세하게 소개하자면, 우선 1장 '원두'의 내용은 커피가 발견되어 전 세계로 퍼지게 되는 과정에 대한 간략한 소개에서 시작해서 원두별 상세한 소개, 원두의 향미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인 고도별 원두 향미 분석, 원두의 수확과 가공 방법까지입니다.
2장 '화학 작용'은 커피를 구성하는 다양한 물질을 분석하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커피에서 카페인을 제거하는 방법 설명이 기억에 남으며, 커피에 추가되는 중요한 요소인 우유에 대한 설명이 상세한 것 역시 눈에 띄는 점이었어요. 순전히 커피에 추가되는 우유의 성질과 효과에 대해 집중하고 있습니다.
3장은 커피를 만들 때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로스팅과 분쇄에 대해 설명해줍니다. 로스팅의 핵심이 고기 구울 때 등장하는 '마이야르 반응'과 관계가 깊다는 것은 처음 알았네요. 카페에서 가끔 보는 '강배전', '약배전'이 무슨 뜻인지도 잘 알 수 있었고요. 강배전은 고온 로스팅을 1차 크랙 현상 뒤 2차 크랙이 일어나기 전 까지 진행하는 것이고, 약배전은 1차 크랙 직후에 멈춘다는군요. 2차 크랙에 가까와질 수록 숯이나 재 같은 향미, 즉 '탄 맛'이 도드라기지기 때문이라는데, 이를 절묘하게 조절하는게 바리스타의 능력이겠지요. 저 개인적으로는 산미가 진한 커피보다는 조금 고소한 강배전 쪽이 입맛에 맞기는 합니다.
이러한 용어 설명 외에도 직접 로스팅하고 분쇄하기 위한 가이드적인 부분도 굉장히 충실합니다. 각종 기구와 방법을 일러스트와 함께 단계별로 쉽게 이해할 수 있게끔 설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프라이팬으로 원두를 로스팅하는 방법까지 소개될 정도니까요.
4장은 추출과 균형이라는 제목으로 커피를 추출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역시 추출 방법은 물론이고 물의 종류. 온도까지 자세하게 소개되고 있습니다.
5장은 커피와 테크놀로지로 다양한 커피 메이커가 소개됩니다. 터키의 이브릭, 사이펀 / 진공식 커피메이커, 모카포트, 전동 커피 메이커, 캡슐 커피 머신 등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기계가 일러스트와 함께 수록되어 있습니다. 당연히 커피 메이커 외에도 우유 거품 내는 기구나 컵과 같은 커피를 위한 부가적인 기구도 모두 수록되어 있어요. 정교한 그림이 특히 볼거리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6장은 커피 만들기에 대한 내용으로 여러가지 커피 만드는 방법이 등장합니다. 주전자에 분쇄한 원두와 물을 넣고 대충 끓여 우려내는 '카우보이식 커피'에서 시작하여 거의 모든 커피 추출 방법을 망라합니다. 에스프레소를 베이스로한 다양한 커피 음료도 함께 수록되어 있고요. 추출 방법에 대한 단계별 상세한 소개가 특히 압권으로, 기구만 있다면 도전해 봄직할 수준으로 쓰여져 있습니다.

커피를 맛있게 추출하는 방법에 대한 책은 많을겁니다. 다양한 커피 레시피 및 커피의 역사에 대한 책도 많고요. 하지만 딱 이런 내용들을 요약해서 딱 한 권으로 정리한다면 이 책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책의 디자인, 가격도 적당해서 마음에 듭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악몽과 몽상 1 - 스티븐 킹 / 이은선 : 별점 2.5점

악몽과 몽상 1 - 6점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엘릭시르

스티븐 킹의 단편집. 어쩌다보니 2권부터 읽고, 뒤이어 읽게 되었네요. 2권과 마찬가지로 모두 12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지만, 모두 완성된 단편이라는 점에서는 차이를 보입니다. 순문학적 작품보다는 박진감넘치는 화끈한 계열이 많다는 점은 2권과 같고요.

하지만 다양한 장르물이 수록된 2권에 비하면, 장르적인 변주는 거의 없습니다. 크리쳐 호러범죄 액션 스릴러가 6편이나 되거든요. 게다가 대체로 어딘가에서 보아왔던 설정이 많아서 2권보다는 실망스러웠습니다. 순문학을 추구한건 아니겠지만 도무지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웠던 작품도 3편이나 수록되어 있고요.
또 <<돌런의 캐딜락>>을 비롯해서, 화끈한 계열 작품들은 나쁘지 않았지만, 비슷한 설정과 분위기의 작품들이 연달아 이어져서 읽으면 읽을 수록 지루해졌습니다. 강-강-강이 아니라 강-중-약으로 구성하는 편집의 묘가 아쉽더군요.

그래도 전체 평균한 별점은 2.5점입니다. 스티븐 킹 다운 작품들은 여전한 매력을 선사해주니까요.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세요.

<<돌런의 캐딜락>>
아내를 죽게 만든 갱단 보스 돌런을 향한 초등학교 교사의 집념의 복수극.

약 80페이지 가량 되는 단편인데, 대부분이라 할 수 있는 거의 60페이지 분량에 걸쳐 복수의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복수의 방법이 굉장히 황당해요. 돌런이 이용하는 라스베이거스 고속도로가 공사로 막혔을 때, 그 곳에 캐딜락이 완벽하게 파묻힐 수 있는 거대한 함정을 파는거지요. 그리고 돌런의 차가 지나갈 때 '전방에 우회도로' 표지판을 치우고 돌런의 캐딜락이 함정에 쳐박히게 만듭니다. <<루니툰>>에서 코요테가 로드러너를 잡기 위해 꾸미는 함정과 비슷한 발상이에요.

계획은 간단하지만, 작열하는 라스베이거스의 태양 아래에서 폭 1.5m, 길이 13미터에 15세제곱미터의 흙을 파내는 과정이 정말 엄청납니다. 굴착기의 도움을 빌리지만 여러 번 죽을 뻔 하고, 포기할 뻔 하는 모습이 스티븐 킹의 날 것 그대로의 묘사로 생생하게 전해지기 때문입니다. 정말 눈 앞에서 사람이 익어가면서 땅을 파는 모습과 그 열기가 느껴질 정도로 엄청난 묘사였어요.

하지만 돌란이 그 길을 지난다는 걸 알았다면 이런 생고생을 하지 않아도 다른 좋은 방법이 많지 않았을까 싶은데, 지나칠 정도로 공이 많이 드는 복수극이기는 하네요. 제가 본 복수극 중에서도 역대급으로 손에 꼽을 수준입니다. 돌런의 캐딜락이 방탄까지 완벽한 탱크같은 차이며, 항상 2명의 프로 보디가드와 함께 하기 때문에 직접 공격은 여러모로 위험하다는 이유를 드는데 그리 와 닿지는 않았습니다. 다이너마이트를 파 묻는게 더 낫지 않았을까요? 함정을 파는 계산처럼 속도와 시간을 계산해서 넓은 범위를 폭파시키면 충분히 성공할 수 있었을텐데 말이지요.

그래도 재미면에서는 나무랄데 없는 작품이었습니다. 확실한 권선징악이라는 점, 그리고 독특한 복수 방법과 완벽한 완전 범죄라는 점도 좋았고요. 개인적으로 이 단편집의 베스트로 꼽고 싶네요. 별점은 4점입니다.

<<난장판의 끝>>
하워드의 동생 바비는 천재로 세계 평화를 꿈꾸다가 우연히 '라플라타'라는 마을이 범죄가 전혀 없는 평화로운 곳이라는걸 알게된 뒤, 그 곳의 물에 특별한 성분이 있다는걸 밝혀낸다. 바비는 그 물을 농축하여 화산 폭발을 이용하여 세계로 뿌리는데...

<<살인 단백질 이야기>>와 <<엘저넌에게 꽃을>>을 결합한 이야기. 물 안에 뇌와 비슷한 단백질 성분이 있는데, 이것이 치매와 비슷한 증상을 유발한다는건 <<살인 단백질 이야기>>이고, 천재가 백치가 되어 선한 의도를 가지고 죽는다는 이야기는 <<앨저넌에게 꽃을>>이니까요. 특히 1인칭 시점의 일기 형태이며, 글쓴이가 바보가 되었다는 결말은 판박이에요. 한 마디로 내용과 전개, 설정에 새로운 부분은 거의 없습니다.
또 엄청난 천재라는 바비가 이 물의 성분이 무엇인지 정말로 알아내지 못하고 엄청난 재앙을 초래한다는 전개는 앞 뒤가 맞지 않아서 실망스러웠어요.

스티븐 킹의 흥미진진한 묘사 덕분에 몰입할 수 있기는 합니다만, 스티븐 킹 만의 무언가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이야기였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어린 아이들을 허락하라>>
소갯글은 '옥수수밭의 사악한 아이들이 돌아온다!'입니다만, 내용은 많이 다릅니다. 아이들이 초자연적인 무언가로 변했다고 믿는 노처녀 교사 시들리 부인이 결국 아이들을 죽이다가 체포된 뒤 자살한다는 이야기거든요. 그래도 초자연적인 존재에게 밀리면서 점차 궁지에 몰리는 시들리 부인에 대한 묘사는 아주 흥미진진합니다. 시들리 부인이 폭주해서 아이들을 살해하는 것 역시 예상대로지만 긴장감넘치게 풀어내고 있어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들리 부인이 진짜 미친건지, 아니면 아이들이 정말로 무언가에 점령당해버려 초자연적인 존재가 된 건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 편이 나았을 겁니다. 결말에서 은근슬쩍 후자일 거라는 여운을 남기는데, 모호한 채로 독자의 상상에 맡기는 결말이 답답하기는 해도 작품과는 더 잘 어울렸을 것 같네요. 지금의 결말은, A급 심리 스릴러가 B급 싸구려 호러물로 끝난 느낌이라 별로였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나이트 플라이어>>
타블로이드 업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민완기자 디스는 경비행기를 타고 다니며 공항에서 살인을 저지르는 흡혈귀 '나이트 플라이어'를 쫓아 위험천만한 비행에 나선다. 그리고 노스캐롤라이나 월밍턴에 이르러서야 '나이트 플라이어'와 조우하는데...

영화화도 된 유명한 단편. 디스가 공항에 착륙하다가 폭풍우와 벼락 등으로 위기에 처하는 장면 묘사는 박진감이 넘치다 못해 터져나갈 정도이고, 월밍턴 공항에서 살육당한 시체를 보고 화장실 세면대에 토악질을 하다가 거울로 흡혈귀 드와이트 렌필드가 소변보는 모습을 확인하는 부분은 그야말로 압권입니다. 흡혈귀는 거울에 비치지 않기 때문에 피에 물든 소변 줄기만 보인다는건데, 정말 기가 막혀요.

그러나 내용은 별게 없습니다. 흡혈귀 드와이트 렌필드의 기원이나 흡혈과 살인의 목적, 동기, 이유가 등장하는 것도 아니고, 결말 역시 경찰이 디스를 체포하는 듯한 묘사가 전부라 어정쩡한 느낌이 들거든요. 디스가 기사를 썼는지 안 썼는지도 제대로 설명되지 않고요.
영화 쪽을 확인해보니 흡혈귀에 대한 설명이 없는건 마찬가지지만, 나름의 의미를 부여한 영화쪽 결말만큼은 소설보다 더 괜찮아 보였습니다. 디스가 살인마이고, 흡혈귀는 그의 상상일 수 있다는 이야기인데 사회 비판적인 의미도 담고 있는 그럴듯한 반전이었다 생각되네요.

동기와 결말이 어쨌건 간에, 흥미로운 전개와 묘사만으로도 읽는 재미는 충분했던 작품. 하긴, 흡혈귀가 피를 빨아 먹고 사람을 죽이는게 무슨 이유가 중요하겠습니까. 그냥 괴물이니까 그런거지. 별점은 2.5점입니다.

<<팝시>>
처음에는 유괴물로 생각되었습니다. 유괴범 셰리던이 아동 유괴를 시작하게 된 계기, 그로부터 유괴 행각이 이어지는 전개가 흥미롭게 펼쳐지거든요.
그러나 이 이야기는 <<나이트플라이어>>와 마찬가지로 흡혈귀가 나오는 크리쳐 고어물입니다. 크리쳐는 바로 제목이기도 한 '팝시'고요. 팝시는 하늘을 날아다니는, 어디에 있어도 유괴된 이이를 찾아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유괴범 셰리던의 자동차를 찾아내어 습격하는게 작품의 클라이막스인데, 역시나 킹 다운 박진감넘치는 묘사가 일품입니다. 또 유괴된 아이가 팝시의 손자로 이른바 크리쳐 혈족이라는 살짝의 반전도 나쁘지 않았고요. 무엇보다도 아동 유괴범 셰리던에게 처절한 응징을 가하는게 또 다른 악인 흡혈귀라는 설정이 재미있었습니다. 권선징악 측면에서도 마음에 드네요.

스티븐 킹의 장점이 20페이지 안쪽의 분량에 전부 담긴, 공포 소설가 스티븐 킹을 대변할만한 단편입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익숙해질거야>>
캐슬록의 노인들이 잡화점에 모여 폐허가 된 뉴올 저택에 대해서 이런저런 추억을 이야기한다는 내용의 작품.

솔직히 뭘 이야기하려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코라 뉴올이 게리 폴슨에게 왜 추잡한 짓을 했는지. 노인들의 기억이 진짜인지, 허구인지도 잘 모르겠어요. 이야기가 완성된건지 아닌지도 헛갈리고요. 뉴올 저택을 다시 짓는 것도 당쵀 무슨 관계가 있는지 알 수가 없더군요.

스티븐 킹이 뭔가 있어보이는 이야기를 하려는거 같기는 합니다만, 저는 기승전결 확실한 괴물 나오는 이야기가 더 좋네요. 별점은 1점입니다.

<<움직이는 틀니>>
외판원 빌 호건은 태풍이 오기 전, 방문했던 잡화점에서 자신을 '브라이언 아담스'라고 자칭하는 히치하이커를 태운다. 이윽고 브라이언 아담스는 강도로 돌변하여 호건을 위협하는데...

잡화점에서 우연히 손에 넣은 거대한 움직이는 틀니 장난감이 악당을 물리친다는 내용의 작품. 간단한 설정만 보아도 무척 황당해 보이죠? 하지만 이를 박진감 넘치게, 설득력있게 풀어내는 묘사는 정말이지 장난이 아닙니다. 특히나 호건과 브라이언의 사투, 이어지는 브라이언과 틀니의 사투는 그야말로 명불허전이에요. 모래바람과 태풍이 불어오는 와중에 갇힌 차 안에서 두 명의 등장인물만으로 풀어가는 이야기를 이렇게까지 몰입감 넘치게 선사한다는건 정말이지 타고난 재능이 아닐까 싶을 정도입니다.

물론 움직이는 틀니에 대한 아무런 설명도 없고, 이야기의 개연성은 전무하다는 단점은 있습니다. 악마의 소도구였다던가, 누군가의 저주였다던가하는 최소한의 설명마저도 없으니까요. 하지만 이런 류의 이야기에서 그런걸 기대하면 안되겠죠? 그런 점에서는 <<나이트 플라이어>>와 비슷하지만, 정의가 악을 물리친다는 이 쪽이 더 제 취향이었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헌사>>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 잘 모르겠다 2.
흑인 하우스키퍼 마서 로즈월이 자신의 아들이 내 놓은 첫 소설책에 대해 친구 다시와 술을 마시면서 하는 이야기인데, 내용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아이의 친부는 강도짓을 하다가 죽은 조니인게 명확하지만, 흑인 마녀 마마 들로름에 의해서 그 아이의 아버지는 유명한 백인 소설가 피터 제프리스가 되어 아이가 그 능력(?)을 이어받았다는 내용인가 싶기는 한데... 분명하지는 않네요. 설령 그렇다 치더라도, 기승전결로 완결되는 이야기는 아니고요.
모르는 내용에, 완성된 이야기로 보이지도 않아서 별점은 1.5점입니다.

<<움직이는 손가락>>
세면대에서 기어나오는 손가락을 없애려고 고군부눝하는 하워드 미틀라의 이야기.
스티븐 킹 특유의 고어 크리쳐물과 궁지에 몰린 주인공의 심리 묘사가 결합된 작품. 킹이 잠결에 화장실에서 나는 소리를 듣고 아이디어를 떠올려 쓴 작품일거라 생각되네요. 변기 속에 손가락을 가두기는 했지만, 쾅쾅거리는 소리에 뚜껑을 열기 직전 이야기는 마무리 되며 독자의 상상에 맡기는 결말이 인상적입니다.

설정 면에서 치밀한 맛은 없고, 개연성도 많이 부족하지만 킹이 크리쳐 물의 대가라는걸 새삼 느끼게 해 주는 작품이었어요. 별점은 2.5점입니다.

<<운동화>>
음악 프로듀서로 일하는 존 텔은 타보리 스튜디오 화장실에서 운동화 유령을 목격한다.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겠다 3.
결국 존 텔은 유령을 만나 직접 이야기를 듣기는 합니다. 하지만 유령은 존 텔 주변 인물에 대해서만 몇 가지 이야기하고 말 뿐이에요. 폴 재닝스가 범인으로 삼만 달러를 넘게 챙겼다고 해도... 그게 존 텔 앞에 나타난 이유가 될 수는 없지요. 그렇다고 존 텔의 성장기로 보기에도 여러모로 애매했고요.

하나의 완성된 이야기라는 점에서 다른 알 수 없는 이야기들보다 낫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좋은 점수를 줄 만한 여지가 있지는 않네요. 별점은 1.5점입니다.

<<밴드가 엄청 많더군>>
메리와 클라크 부부는 여름 휴가 중 충동적으로 모르는 길을 달리다가 오레곤의 '로큰롤헤븐' 이라는 마을에 찾아가게 된다. 메리는 마을에서 불길한 느낌을 받지만 클라크의 주장으로 식당에 잠깐 들리게 되고, 거기서 그들은 재니스 조플린, 버디 홀리와 같은 오래전에 죽은 록스타들을 보게 된다.

여행객이 길을 잃은 뒤 이상한 마을에 방문하여 위험에 처한다는 내용의 작품은 굉장히 많습니다. 제가 리뷰로 소개했던 작품만 해도 러브크래프트의 <<인스머스 (인스마우스)의 그림자>>라던가 <<히치콕 미스터리 매거진 걸작선>> 수록작인 <<역사적 오류>> 등이 그러합니다. <<웰컴 투 동막골>>도 위험에 처하지 않다 뿐이지 기본 발상은 마찬가지라 할 수 있을테고요. 그 외에도 수많은 작품에서 사용된 설정이지요.

보통 이런 류의 이야기에서 마을이 숨기고 있는 비밀은 은밀한 의식과 관련이 있는게 보통입니다. 여행객들은 산 제물로 쓰이고요. 그런데 이 작품은 '은밀한 의식'에서 한 발, 아니 두 세 발자욱 더 나아갑니다. '은밀한 의식'이 아니라 난리법석의 로큰롤 공연을 추구하는 마을이었던거지요. 여행객들은 공연에 관객이 없어서 필요했던 것입니다!
엘비스 프레슬리가 시장으로 나오는 등 설정이 워낙에 황당해서 우습기까지 한데, 이런 내용을 스티븐 킹의 묘사로 읽으니 공포가 따로 없다는게 재미있는 점이었습니다. 마을에서 탈출하기 위해 벌이는 자동차 추격신은 여전한 박력을 자랑하고요. 로큰롤 공연을 몇 일 동안 계속 보면 미쳐버릴지도 모르겠다는 점에서는 확실히 공포스럽기도 하네요. 작중에 나오는대로 로큰롤 '헤븐'이 아니라 '로큰롤 헬'인 셈입니다.

딱히 새로운 아이디어가 있지는 않지만 그 어떤 설정과 이야기라도 약간의 변주를 통해 박진감넘치는 호러 소설로 만드는 스티븐 킹의 필력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던 작품이었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가정 분만>>
좀비가 창궐하는 세상에서, 외딴 섬 마을에서 아이를 낳으려는 매디의 이야기.

일단, 기둥이 되는 이야기는 아버지가 중심인 가정에서 살다가, 아버지의 사후 중심축을 잃고 흔들리던 매디에게 성실하고 충직한 남편 잭이 나타나 청혼하는 이야기입니다. 좀비 창궐로 시체가 되어 돌아온 잭을 매디가 도끼로 처단한 뒤, 가정 분만을 결심하는게 결말이고요.
이 이야기에 매디가 사는 섬마을 사람들이 자경단을 조직하여 마을에 하나 있는 공동묘지를 지키며 깨어나는 시체들을 토악질을 해 가며 해치우는 내용이 곁들여져 있습니다.

그런데 두 이야기가 난잡하게 흩어져 잘 정리되지 않은 느낌이에요. 한 개의 이야기를 하다가, 전혀 상관없는 다른 이야기를 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말이지요. 또 매디가 가정 분만을 결심하는게 딱히 대단해 보이지도 않아서 이게 기둥 이야기가 될 수 있나 싶었습니다. 전 세계에 좀비가 창궐했다면 어차피 다른 대안도 없잖아요?
기승전결로 보더라도, 완전한 '결'로 끝맺지 못한 느낌이라 조금 답답했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 차라리 섬 마을 주민들이 힘을 합쳐 좀비를 격퇴하고 섬을 지켜내는 이야기로 끌고가는게 더 나았을겁니다. 마을 공동 묘지에서 되살아난 가족들과 싸우는 이야기는 충분히 드라마가 될 수 있으니까요.

2020/06/21

연애의 행방 - 히가시노 게이고 / 양윤옥 : 별점 2.5점

연애의 행방 - 6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소미미디어

히가시노 게이고의 설산 시리즈 네 번째 작품인 단편집. 시리즈 2편 부터의 무대였던 사토자와 온천 스키장이 주요 무대로 등장합니다.

하지만 단편집이라는 점 외에 다른 시리즈와는 전혀 다른 차이점이 있습니다. 추리모험범죄물이 아니라 일상 연애물이라는 점입니다!
모두 일곱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호텔리어 히다를 큰 축으로, 그의 직장 동료이자 친구인 미즈키와 아키나 커플, 쓰키무라와 마호 커플, 그리고 히다가 프로포즈를 하려 했으나 실패한 미유키와 고타 커플, 마지막으로 히다와 모모미 커플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설산 시리즈답게 이들의 연애가 대부분 사토자와 온천 스키장에서 이루어지고요.

전작이었던 <<눈보라 체이스>>가 대학생의 청춘 연애 활극 느낌이었다면, 이번에는 아예 연애물에 집중한 건데 그 결과물은 꽤 괜찮은 편입니다. 무엇보다도 추리 소설 작가답게 연애물이지만 약간이나마 미스터리 요소를 더하고 있다는게 마음에 들었어요. 고타가 모모미와 불륜을 꿈꾸다가 리프트에서 약혼녀 미유키를 마주한다는 첫 에피소드부터 그러합니다. 고글과 마스크 등으로 중무장해서 얼굴을 알아볼 수 없는 스키장의 특수 상항을 잘 이용하여 불륜남의 긴장감을 코믹하게 잘 그려내고 있거든요. 이 상황은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고타의 얄팍함이 드러나는 반전으로 연결되는 결말로도 이어지는데 역시 괜찮았습니다. 수미쌍관식 구조인 셈인데 이야기아 아주 잘 어울렸어요.
또 히다의 프로포즈 대작전인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미즈키의 프로포즈를 위한 작전이었다는 에피소드도 반전의 묘미가 느껴졌으며, 히다의 진심을 알아내기 위해 모모미가 일부러 슈퍼볼 경기가 있는 날, 사찰 순례 여행을 제안하는 장면 역시 공정한 (너무 노골적이긴 했지만요) 단서 제공을 통해 쌓아 올린 복선이 설득력있게 쓰여지는 좋은 장면이었습니다.

그러나 미즈키, 고타의 한 없는 가벼움은 영 별로였습니다. 30대의 진중한 연애를 그려주는게 더 좋았을텐데 말이죠. 무엇보다도 모모미가 고타의 얄팍함을 폭로하는 에피소드가 마지막이라는건 많이 아쉬웠습니다. 히다와 모모미 커플이 제대로 이루어졌는지는 확인하고 싶었거든요.

그래도 재미있게 읽히기는 합니다. 가볍게 읽기에 적당했던 소품들이에요. 누가 죽거나, 부서지거나 하는 것 보다 젊은 남녀의 사랑 이야기가 더 설산에 어울리는 법이지요.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더운 여름, 시원하며 유쾌하며 가벼운 읽을거리를 찾으시는 분들께 추천드립니다.

Q.E.D Iff 증명종료 7 - 카토 모토히로 : 별점 2.5점

Q.E.D Iff 증명종료 7 - 6점
카토 모토히로 지음/학산문화사(만화)

6권에서의 실망을 뒤로하고 새롭게 읽은 7권. 간만에 로키, 에바와 뭉쳐 인도에서 수학 천재 소년을 찾고 학교 선생님 살인 사건을 해결하는 <<무지개 너머의 라마누잔>>, 그리고 전후 오사카 흥행계에서 벌어졌던 수수께끼와 같은 사건의 진상을 풀어내는 <<어떤 흥행사>>라는 두 편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강력 범죄와 일상계 구성이 아니라서 조금 특이했는데, 전권보다는 대체로 괜찮더군요. 다행입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아주 빼어나지는 않더라도, 기대했던 만큼의 재미를 선사하는 좋은 이야기였어요. 작품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세요.

<<무지개 너머의 라마누잔>>
인도에서 아이들을 가르키는 라비는 아르쟌이라는 천재 소년을 발견하고 근무하는 대학 이사장에게 장학금을 요청하지만, 강도에게 살해당하고 만다.
아르쟌을 찾아서 장학금을 주어서 제 2의 라마누잔 (인도의 천재 수학자)으로 만들겠다는 고인의 유지를 받들기 위한 에바의 부탁으로 로키, 토마, 가나는 인도로 향하는데...


초반부 전개와는 다르게 아르쟌을 찾는 과정은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핵심은 라비 선생이 살해당한 이유, 그리고 대학 이사장이 장학금 주는걸 주저한 이유를 밝히는 것입니다.
일단, 라비 선생이 살해당한건 이사장의 대학 진학 뒷거래 증거를 가지고 협박(?)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이사장이 뇌물과 뒷 돈 운운하는 장면 등의 복선으로 설명됩니다만 공정함, 정교함 측면에서는 좀 약해요. 고의는 아니었다는 이사장의 설명도 구차하고요.
그러나 장학금 주는걸 주저한 이유는 놀랍습니다. 라비 선생이 찾은 수학 천재 소년은 아르쟌이 무려 6번째인데, 그 전의 아이들은 천재가 아니라 단지 조숙했을 뿐이라는거죠. 결국 중압감으로 인해 2명은 자퇴하고, 1명은 자살해버려서 이사장은 아이들이 짊어질 부담에 대해 고민한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굉장히 와 닿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재능으로 승부하는 세계에서는 재능 차이가 명확하게 드러나는 탓에 조금 뒤떨어지면 금방 좌절할 수 밖에 없다'는건 저 역시 미술 대학교를 별볼일 없는 능력으로 겨우 졸업한 탓에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으니까요.
아울러 인도 수학자 라마누잔과 그의 발견을 테마로 하고 있고, 라비 선생이 이사장 비리의 증거가 어디있는지를 남긴 '4번째 쌍동이'라는 소수 관련 정보도 Q.E.D 스러워서 좋았습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아르쟌에게 너의 미래를 스스로 선택하라는 토마의 모습도 토마스러워서 마음에 듭니다. 냉정해 보일 수는 있지만, 틀린 말은 아니죠. 누군가의 말, 혹은 유품 (라비 선생의 반지)은 아무 도움이나 보증도 되지 않는건 당연하니까요.

그러나 아르쟌이 갱단에게 살해당한 라비 선생의 복수를 위해 갱단 사이의 항쟁을 일부러 일으킨 사건은 영 별로였어요. 위에서 좋다고 이야기한 내용 정도로 끝냈으면 좋았을텐데, 아이들 장난같은 행위로 7명이 죽고, 수십명이 중상을 입는 갱단 항쟁이 벌어진다는건 너무 막 나간게 아닌가 싶거든요.
항쟁을 일으킨 결정적 방법인 라비 선생의 유령 모습 조작도 너무 유치해서, 이게 과연 가능했을지 의심스러울 정도고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수학적인 정보 전달과 천재 소년의 장학금 관련 이야기는 여러모로 볼 만 했지만, 이에 얽힌 갱단 이야기는 나오지 않느니만 못했습니다. 갱단 이야기를 빼고 일상계처럼 정리했다면 별점 3점 이상도 충분했을겁니다.

<<어떤 흥행사>>
1964년, 오사카 흥행계의 큰손 유메다가 분신 자살하지만 불에 탄 차만 발견되고 사체는 발견되지 않는다. 그리고 현재, 유메다 사건을 추적하는 역사 학자이자 소설가 후지와라는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을 유메다와 친했던 야쿠자 야마가와의 일기가 경매에 나온걸 알고 경매에 참가한다. 그 곳에서 우연히 유메다와 관련된 기녀 츠루코에 대해 조사하는 프리라이터 가네모리와 토마, 가나와 만나게 되고, 토마는 작가들의 이야기와 일기 내용을 들은 뒤 유메다 사건의 진상을 말해준다.

사건의 핵심 수수께끼는 세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흥행사 유메다 메지로에 대한 이미지가 왜 말하는 사람마다 달랐는지?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야망과 배포가 큰 쾌남아인데, 어떤 사람 (특히 야마가와)에게는 무능력하고 소심한 인물로 비추었던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한 것이지요.
두 번째는 유메다와 만담가 츠바메, 그리고 기녀 츠루코 3명의 관계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떼 놓을 수 없는 사이였고, 어떤 사람들은 서로 얼굴도 안 보는 사이라고 했는데 진상은 무엇인지? 입니다.
세 번째는 차에서 사체가 사라진 수수께끼에 대한 것이고요.
이에 대한 토마의 추리는 대담합니다. 유메다와 츠바메, 그리고 기녀 츠루코가 동일인물이었다는 거지요. 유메다와 츠바메가 떼 놓을 수 없었지만 서로 얼굴도 보지 않았다는 수수께끼는 그렇게 해결됩니다. 츠루코가 모두의 비밀을 속속들이 알고 있었던 이유도 마찬가지고요. 유메다와 츠루코가 후대 작가가 추적할만큼의 무용담을 남긴 것도, 가짜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고요. 반대로, 이들을 깊게 알게 된 야마가와에게는 그들의 진실된 능력이 보인거죠.

하지만 이 트릭을 밝혀낸 핵심 단서인 야마가와의 일기 속 묘사 - '어두웠던 극장에서 야마가와 옆에 유메다가 나타날 수 있었던 건 밝은 무대 위에서 그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메다는 무대 위에 있었던 츠바메와 동일인물이다' - 는 그럴싸하기는 하지만, 반론도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또 유메다와 츠바메가 동일 인물이라는건 그렇다 쳐도, 후대 작가가 추적할만큼 그 매력과 인기가 남달랐던 츠루코마저 남자가 변장했다는 건 솔직히 납득하기 어려웠어요. 이 정도의 변장 능력이 있었다면, 흥행사로는 실패했더라도 먹고사는데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을텐데 빚에 허덕이다가 야마가와의 일기마저 훔쳐 팔아넘길 정도로 몰락했다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고요.
때문에 대담한 추리에 걸맞는 완성도를 지녔다고 보기는 좀 어렵겠습니다.

그래도 건질게 없는건 아니에요. 전후 고도 성장기 오사카 흥행계를 그린 묘사는 괜찮거든요. 특히 유메다, 아니 츠바메의 정체를 알고 있었지만 흥행업에 대한 미련으로 친절을 배푼 배포 큰 야쿠자 야마가와는 꽤나 멋지게 그려집니다. <<타이거 & 드래곤>>의 야쿠자 야마자키와 좀 비슷한데, 그보다는 훨씬 큰 남자인 셈이지요.

그러나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재미 측면에서는 합격점을 줄 만 하고 트릭과 반전도 남다른 점은 있습니다. 설득력 측면에서는 아쉬움이 남지만 평작 수준은 됩니다.

2020/06/20

어두운 범람 - 와카타케 나나미 / 서혜영 : 별점 2.5점

어두운 범람 - 6점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서혜영 옮김/엘릭시르

여름에는 추리 소설이지요. 좋아하는 작가 와카타케 나나미의 단편집입니다. 재미와 완성도 모두 무난하고 평이했습니다. 전체적인 별점은 2.5점.
수록작 5편에 대한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파리 남자>>
하무라 아키라는 모토미야 하루로부터 군마현 이카호 온천 근처에 외따로 위치한 할아버지 집에 놓여있는 어머니의 유골 항아리를 회수해달라는 의뢰를 받는다. 그녀의 외할아버지는 유명한 심령 연구가 히다리 슈지로로 사후 폐허가 된 그 집은 유령이 나온다는 소문이 무성한 상태였다.
폐가가 된 히다리 슈지로의 자택을 방문한 하무라 아키라는 유골 항아리를 찾다가 '파리 남자'의 습격을 받아 지하실로 떨어지고, 그 곳에서 예전 안면이 있던 작가 아사쿠라 교스케의 시체를 발견하는데...

굉장히 짧은 이야기이지만, 본격물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추리적으로는 빼어난 작품. 모토미야 하루의 오빠가 과거 하무라 아키라, 아사쿠라 교스케의 취재 당시 동행했던 카메라맨 오사무였으며, 그가 '파리 남자'라는 진상을 추리하기 위한 단서가 모두 공정하게 제공되고 있거든요. 굉장히 짧은 분량임에도 등장하는 등장 인물들의 대사를 적절히 분배하여 단서와 정보를 전달하는 솜씨가 탁월합니다. 아사쿠라는 오빠 일을 통해 알게 되었으며, 오빠가 일하다가 다쳐서 다리가 불편하다는 모토미야 하루의 말을 통해 당시 카메라맨이 하루의 오빠였다는걸 추리해내는 과정이 대표적입니다. '파리 남자'로 보인건 방독면 때문이고, 이는 그 집에서 화산 가스가 나오기 때문인데 이를 별 거 아닌 듯 했던 TV 속 뉴스 묘사등으로 범인의 동기, 즉 그 집 주변이 '온천 지대'로 확인되어 단순 매각이 아닌 개발을 원했다는걸 풀어내는 추리도 일품입니다.

물론 억지가 없지는 않아요. 아사쿠라에게 심령 스폿으로 공동묘지 터를 추천한건 그 땅의 소유주일 수 밖에 없다는 추리가 그러합니다. 아사쿠라가 인터넷 등 다른 루트로 정보를 얻었을 가능성은 아예 배제하고 있으니까요.
또 집을 동생에게서 빼앗으려고 했다는 동기는 충분히 이해가 되지만, 유골함이 없다고 모토미야 하루가 집의 매각 계획을 철회했을지는 모르는 일이지요. 즉, 하무라 아키라를 습격해서 계단에서 밀어 떨어트릴 이유는 없어 보였습니다. 아사쿠라의 시체도 결국 모토미야 하루의 증언을 통해 행선지가 드러나면 영원히 감출 수는 없었을테니까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3점. 단편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작위적인 전개, 약간의 억지는 아쉽지만 항상 위험에 처하는 하무라 아키라의 특징이 잘 드러나 있으며, 추리적으로도 공정한 좋은 작품입니다.

<<어두운 범람>>
사상 초유의 거대한 태풍이 도쿄로 다가오는 와중에, 잡지사에서 일하는 '나'는 흉악한 사형수 이소자키에게 팬레터를 보낸 야마모토 유코라는 여자를 찾아 나선다. 피해자 쪽 관계자나 독점 인터뷰를 노리는 인간이 아닌가 싶은 이소자키의 변호사 사이토의 부탁에 더해, 근무하는 잡지사에서 출간하는 책에 쓸 소재거리가 되겠다는 심산 때문이었다.

일본 추리작가 협회상 단편상을 수상한 작품. 하지만 추리적으로 대단치는 않습니다. 일단 이소자키가 다섯명이나 죽이는 폭주를 저지를 때 부상을 입었던 "죽지 않는 남자" 후쿠모토 다이키치의 옛 여자친구가 유코라는걸 알아내고, 펜레터를 보낸건 유코가 아니라 그녀의 아버지 다다노부라는걸 알아내기까지 사용된 페이지는 열 손가락을 넘지 않아요. 그만큼 전개가 빠르며 추리의 여지도 없습니다. 오히려 이 과정을 통해 부각시키는건 이소자키가 왜 폭주를 저질렀는지? 유코는 어디에 있는지?에 대한 수수께끼입니다. 다다노부는 이소자키의 범행 전날 밤, 태풍이 불어올 때 유코는 사라졌는데 사실은 이소자키가 그녀를 죽이고 자포자기 상태에서 폭주를 저지른게 아닐까 주장하고요. 그러나 이는 다다노부의 계략이었습니다. 전일본이 미워하는 범죄자 이소자키에게 팬레터를 보낸건 누구인지 변호사가 흥미를 갖게하여 그 집을 조사하게 만들고, 그 때 시체를 발견하게 만든거지요. 목적은 유코의 보험금으로, 실종자에게는 보험금이 나오지 않으니 시체가 발견될 필요가 있었던게 진상인거죠.

이렇게만 보면 꽤 그럴듯해 보입니다만, 이소자키가 범행을 저질러 수감된 뒤 그의 아버지가 목을 맨 곳에 시체가 있었다는건 애시당초 말이 안됩니다. 자살 당시 현장 조사는 철저히 진행되었을테니까요. 그렇다면 시체를 가져다 둔 건 이소자키가 아닌게 뻔하지요. 또 트렁크에 넣었다 한 들, 조사를 하면 사체가 오랫동안 묻혀있었다는 것도 바로 들통날테고요. 그럼 시체를 유기한 제 3자가 있다는 뜻이니 이소자키의 범행은 여러모로 불가능합니다. 즉, 다다노부의 계략은 헛점 투성에 불과해요. 아울러 이 과정을 통해 이소자키가 왜 폭주했는지는 드러나지 않아서 답답했습니다.

유코의 백골에 많은 골절이 보여서 다다노부가 말한, 휠체어를 탄 어머니 범행설의 신빙성을 떨어트린다는 결말과, '나' 역시 다다노부처럼 노모 때문에 미칠것 같은 상황인데 다다노부의 범행에서 많은 영감을 얻고 범행을 결심하는 듯한 마지막 장면은 꽤 모골 송연하기는 합니다. 이런 점을 본다면, 정통 추리물이라기 보다는 '기묘한 맛' 류에 가까와 보이기도 합니다. 고령자 부양 문제가 핵심 소재이며, 동기라는 점에서는 사회파 추리물이라고 할 수도 있을테고요. 이렇게 인간 본성의 어두움을 사회 문제와 함께 덜컥 내놓는건 와카타케 나나미의 특기이기도 하지요.

범인의 계획이 헛점 투성이라 감점하여 별점은 2.5점이지만, 추리 외에 눈여겨 볼만한 부분이 많아서 좋았습니다. 이런 점 때문에 추리작가 협회상을 수상한게 아닌가 싶네요.

<<행복한 집>>
'나'는 동경하던 잡지 <<cozy life>>의 편집장 세쓰코의 실종 후 사장의 지시로 계약직 작가 미나미 하루히코와 함께 다음호 잡지 제작에 투입된다. 업무와 함께 세쓰코 편집장의 행방을 찾던 와중에, 그녀가 공갈 협박 및 횡령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는 증거를 확보한다. 하지만 세쓰코 편집장의 시체가 발견되고, 그녀의 죽음은 자살로 처리되는데...

착하고 성실해 보였던 사람이 악당이고, 평범해 보이는 일상이 사실은 범죄로 가득했다는, 하드보일드같은 설정을 기묘한 블랙 코미디 느낌의 묘사로 그려낸 와카타케 나나미 특유의 작품. 미나미 하루히코는 바로 전작인 <<어두운 범람>>에도 출연했었고, 잡지를 위한 취재로 하자키 시의 헌책방에서 일한다는 독신 여성을 만나는 등 작가의 팬이라면 반가운 요소가 많았습니다. 또 고령자 부양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는 점도 전작과 마찬가지인데, 아무래도 작가가 고령자 부양이라는 현실에 직면했던게 아닌가 싶네요. '나'가 고령자 부양에 대해 떠올리는 내용은 경험자가 아니면 모를 내용이라 생각되거든요.
추리적으로는 눈에 띄는 부분은 없지만, 범인 마쓰바라 사야카와의 취재에서 그녀가 수상하다는 단서는 모두 알려주는 등 정보 제공만큼은 본격물에 가깝게 공정한 편입니다.

그러나 이야기의 완성도는 미흡합니다. 내용에서 모호한 부분이 많기 때문입니다. 실력만큼은 인정받는, 한창 때인 편집자 세쓰코가 공갈 협박에 횡령이라는 범죄를 저지른 동기부터 불투명합니다. 그녀의 죽음이 마쓰바라 사야카의 범행 때문인지도 명쾌하게 드러나지도 않고요. 미나미 하루히코의 역할 역시 모호한건 마찬가지에요. 그가 세쓰코를 위해 협박 대상을 물색한 조사자인지, 아니면 공범자인지도 잘 드러나지 않으니까요.
무엇보다도 마쓰바라 사야카가 범인이라면, <<cozy life>>의 취재에 선뜻 응한 것도 이해가 되지 않지만, 그녀가 마쓰바라 할머니를 죽이고 집을 차지했다면 <<cozy life>>에 자신의 집을 독자 투고 형태로 소개해달라고 보낼 이유도 없었을겁니다.

와카타케 나나미 특유의 작풍을 잘 느낄 수는 있지만 이러한 점들 때문에 감점합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덧붙이자면, 야나기 무네요시의 <<수작업의 일본>>이 읽으면 잠이 오는 특효약이라는데, 국내에 출간되면 한 번 읽어보고 싶군요. 요새 불면증이 생겨서요.

<<광취>>
가리야 마나부는 일곱살 때 유괴되었다가 사흘 뒤 발견된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는 어디에 있었는지 말하지 말라며 마나부를 협박하고, 그 뒤 7년 뒤 자살한다. 그 트라우마로 알코올 중독에 빠지지만 어머니의 도움으로 겨우 빠져나온다. 그러나 어머니 사후 가재도구를 정리하다가 어린 시절 사건의 단서를 발견한다. 그건 오기와라 미나코라는 수녀원 보육 시설에서 살던 중학생 소녀의 사진이었다.

가리야 마나부의 1인칭 독백같은 이야기. 처음 어린 시절 이야기는 공손하게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는 듯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되어가면서 반말로 강하게, 협박조로 총을 들이대며 수녀들에게 이야기하는게 드러나는 구조가 독특했습니다.

그러나 내용이 특별하지는 않으며, 전개는 억지스럽습니다. 무엇보다도 가리야 마나부가 수녀들에게 분노를 터트릴 이유는 없습니다. 모든 문제의 원인은 인간 쓰레기인 가리야 마나부의 아버지입니다. 오기와라 미나코가 사생아 분지를 낳고 수녀원에서 쫓겨난건 그 탓이지, 수녀들의 잘못은 아니죠.
수녀원에 돌아가고 싶은 미나코의 소원을 죽은 뒤에도 받아주지 않은 수녀원 측의 처사가 문제가 없는건 아니지만, 이는 분지의 유괴 사건 후 마나부가 언론에 그 이유 - 미나코가 유일하게 수녀원에 들어갈 수 있었던건 어린아이의 실종 때 자원 봉사로 카레를 대접했을 때 뿐이라 분지가 유괴를 저지른 것 - 를 공개했다면 원만하게 해결될 수도 있었을겁니다. 구태여 총까지 들이밀면서 장황한 이야기를 풀어놓을 이유는 없어요.

마지막 분지가 만든 카레 재료의 정체가 무엇이냐는게 반전처럼 등장하며 이야기는 마무리되는데, 장르 문학을 좀 읽어본 독자라면 미나코의 사체가 카레집 '파라다이스 로스트'에 놓여져 있다는 묘사에서 충분히 떠 올릴 수 있을 뿐 아니라, 오기와라 히로시의 <<어머니의 러시아 수프>>가 바로 떠올라서 새롭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습니다. 1인칭 시점으로, 지능이 조금 떨어지는 인물을 등장시켜 나름의 가족애를 그리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러시아 수프의 정체가 '파라다이스 로스트'의 특제 카레와 정체라는 반전과 똑같으니까요. 허나 <<어머니의 러시아 수프>>는 절박한 굶주림이라는 이유가 명확하지만, 이 작품에서 미나코의 사체를 재료로 쓸 이유는 딱히 없어서 그만큼 와 닿지도 않습니다. 이유를 좀 더 모골송연하게 끌어냈더라면 훨씬 좋았을텐데 말이지요. 지금으로서는 억지스러웠습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독특함과 읽는 재미는 좋았지만,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도락가의 금고>>
하세가와 탐정 사무소가 문을 닫은 뒤, 무직이 된 하무라 아키라는 이전에 안면이 있던 '살인곰 서점' 주인 도야마의 요청으로 서점의 아르바이트를 시작한다. 그리고 흔치않은 희귀본이 나올거라는 기대에 고우다라는 자산가의 유품 정리를 맡은 뒤, 고우다 가의 금고를 열기 위한 단서라는 '고케시'를 찾아 후쿠시마까지 가게 되는데...

하무라 아키라가 <<조용한 무더위>>에서처럼 '살인곰 서점'에서 일하게 된 시작을 알리는 단편. 지방마다, 만드는 사람에 따라 모두 디자인이 다른 일본 전통 민예 장난감 고케시의 줄무늬를 금고를 여는 암호로 썼다는 트릭이 등장합니다. 트릭 아이디어도 꽤 기발하며, 고우다가 미스터리와 고케시 양쪽 모두의 매니아라는 설정이 덧붙여져 있어 설득력은 높은 편입니다. 후처가 고케시 장인의 여동생이었다니, 장인에게 시켜 만들기는 어렵지 않았을테니까요.

하지만 암호 고케시를 찾는 하무라에게 고케시 진열장을 넘어트려 상처입힌 범인의 정체는 너무 뻔했습니다. 후쿠시마 별장에는 관리인이 있는데, 그 관리인이 고케시를 만들었던 장인이자 고우다의 매형 안도였다니 이래서야 추리의 여지는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게다가 안도 측에서 하무라를 다치게 만든 동기도 불분명합니다. 안도는 고케시를 만들었기 때문에 암호 고케시 본체 없이도 금고를 여는게 가능했으며, 하무라가 고케시를 가지고 오기 전에 이미 금고를 열어 속의 원고를 빼돌렸으니 하무라와 고케시는 없어도 되니까요.

고우다가 남긴 원고의 내용이 고우다를 배신했던 후처의 언니와 그 연인의 동반 자살과 같은 내용이었다는 결말만큼은 섬찟합니다. 그러나 이 역시 안도가 이 원고를 대충 읽었으면서 내용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설정 구멍으로 보이네요. 안도는 원고가 무엇인지 아는 것으로 보아 읽어본걸로 보이는데, 내용이 자기 동생의 자살이 위장된 살인일 수 있다는걸 모를 수는 없지요. 즉, 설정만 놓고 보면 안도는 고우다가 오래전 에로 소설을 썼다 정도가 아니라, 살인자일 수도 있다고 협박하는게 당연합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 하무라 아키라 시리즈를 좋아하는 팬이라면 즐길 거리가 있기는 한데, 전체적으로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2020/06/14

빅 클락 - 케네스 피어링 / 이동윤 : 별점 2.5점

빅 클락 - 6점
케네스 피어링 지음, 이동윤 옮김/피니스아프리카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조지 스트라우드는 거대 출판업체 재노스 엔터프라이즈 산하의 잡지 <<크라임웨이>>에서 편집주간으로 일하다가, 한 파티에서 재노스의 연인 폴린 델로스를 만나 알게된 후 그녀와 불륜에 빠진다.
그러나 스트라우드와의 밀회 직후 그녀는 재노스를 게이라고 비난하다가 살해당하고, 재노스는 자신의 범행을 숨기고 희생양으로 내세우기 위해 그녀가 살해당하기 직전 만나고 있던 남자를 찾아나선다. 그를 찾기 위해서 출판사에서 선택한 인재는 바로 조지 스트라우드였다.


케네스 피어링이 1946년에 발표한 고전 범죄 소설.
잘 알지 못하는 작가의 잘 알지 못하는 작품입니다만, <<블러디 머더>>에서 줄리언 시먼스가 추천했기 때문에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국내 출간본에서는<<커다란 시계>>라고 언급됩니다)

이야기의 핵심은 줄리언 시먼스의 말 그대로, 조지 스트라우드가 사주의 명령에 의해 누군가를 찾아야 하는데 그 누군가가 자기라는 딜레마, 그리고 자신의 위치를 활용하여 어떻게든 조사를 흐리지만 점차 궁지에 몰리는 과정입니다. 살인 사건이 일어나고, 피해자와 잘 알고 있으며 유력한 용의자인 사람이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그 사람을 찾는 척하면서 진상을 밝혀낸다는 이야기는 덴젤 워싱턴이 주연이었던 <<아웃 오브 타임>>이 떠오릅니다. 아마 이 작품은 이런 류의 이야기의 원조일 거라 생각됩니다. 특이한건 <<아웃 오브 타임>>과 마찬가지로 앞 부분이 조금 지루하다는 점입니다. 출판, 잡지업계에 대한 상세한 묘사와 함께 조지 스트라우드와 폴린 델로스가 불륜에 빠지는 과정이 장황하게 그려지기 때문입니다. 특히 폴린과 함께 한 일종의 데이트 코스에 대한 디테일은 뭘 이런것까지 설명하나 싶었거든요. 하지만 이 데이트 과정이 용의자를 찾는 가장 중요한 단서가 되기 때문에, 이야기의 핵심과도 잘 맞아 떨어져서 무릎을 치게 만듭니다.

또 여러가지 디테일들의 독특함도 볼거리입니다. 손님이 원하는 그 어떤 물건도 보여준다는 골동, 고물상과 바가 합쳐져 있는 '길의 바'에서의 에피소드도 재미있지만, 무엇보다도 무명화가 루이즈 패터슨과 그녀의 작품 때문에 빚어지는 서스펜스가 압권이에요. 조지 스트라우드가 '유다'라고 부르는 그녀의 작품을 골동품상에서 구입하는데, 구입을 경쟁했던 여자 손님이 루이즈 패터슨이었기 때문입니다. 조지 스트라우드가 그녀의 팬이라 그림을 사무실에 걸어놓기까지 했는데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다는 설정도 재미있고, 조지 스트라우드를 찾기 위해 출판사는 루이즈 패터슨과 접촉하고, 결국 둘의 상봉이 이루어지는 부분이 작품의 클라이막스이기도 하니까요. '나는 그를 본 순간 고함을 치려 했지만, 숨을 쉴 수 없어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는 건데, 정말 기가 막혔어요.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교묘하게 '유다'라는 그림을 없앨 수도 있다고 협박하는 조지 스트라우드의 협박도 일품이고요.
이 그림은 마지막까지 등장합니다. 결국 '승리자'가 된 조지 스트라우드의 전리품으로요. 50달러주고 구입했지만 여러모로 화제가되어 최고 1만달러 정도를 받을 수 있다니, 나름 해피엔딩이기도 합니다. 조지가 얻은건 돈이 아니라 나름의 교훈이지만요.

그러나 조지 스트라우드에게 닥친 위기 탓에 서스펜스가 발생하기는 하지만, 해결하려는 노력은 그리 대단해 보이지 않아서 아쉽습니다. 스스로 조사를 훼방놓는다고는 하지만, 그런 작전이 그닥 정교하게 드러나지 않거든요. 순전히 우연으로 (출판사에서 일종의 현상금을 걸자 조지를 찾아나선 관계자가 미행해서 출판사 건물을 찾아냄) 점차 포위망이 좁혀지고, 결국 회사 건물 안에 범인이 있다!는 결론으로 직접 대면 수사하는 상황에 몰립니다. 그러나 조지 스트라우드는 앞서 설명한 루이즈 패터슨과의 대면 시의 협박 외에는 별로 하는게 없어요. 뭘 할 수 없는 상황이기는 하지만 최소한의 빠져나가려는 노력조차 보이지 않습니다.
심지어 마지막 위기 탈출은 출판사가 얼 재너스에게 닥친 문제 (수사 대상) 등으로 다른 회사에게 인수되어 조지 스트라우드를 찾는 노력이 바로 끝나버리기 때문에 맥이 빠질 정도로 시시합니다. 운, 우연 등이 겹친 결과일 뿐 조지 스트라우드와는 하등의 관계가 없지요. 또 이 인수합병으로 모든게 마무리된다는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조지 스트라우드는 재너스가 진범이 아니라는게 밝혀지기 이전에는 진범일 가능성이 있으며, 진범이 아니더라도 주요 참고인이라는건 변함이 없습니다. 그런데 단지 출판사에서의 조사가 끝났다고 모든게 해결된다? 솔직히 억지스러워요. 경찰마저 나서서 찾고 있다는 설정이 있는 한 이렇게 대충 넘길 수는 없는 이야기였습니다. 재너스의 투신 자살로 사건이 해결되는 듯한 결말도 마찬가지로 납득이 잘 되지 않았어요.

아울러 작가가 시인 출신이라는 경력 때문에 그런지, 지나치게 멋을 많이 부린 느낌도 많이 듭니다. 제목이기도 한 "빅 클락"이 대표적이에요. 시간은 뭘 해도 흐르고, 사람들은 모두 시계 속 부품일 뿐이라는 논리를 풀어내는 등으로 꽤나 의미 부여를 하고 있지만 실상은 그냥 있어보이게끔 하는 소재에 불과합니다. 이야기와는 별 상관이 없으니까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흥미로운 범죄 스릴러로 쑥쑥 읽히는 맛은 좋고 비슷한 이야기 구조의 원조격이라는 역사적 가치는 크지만 잘 짜여진 범죄물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케빈 코스트너 주연의 <<노 웨이 아웃>>이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되는 등, 두 차례에 걸쳐 영화화되었다고 하는데 영화로 보는게 더 낫지 않을까 싶기도 하네요.
<<모래톱의 수수께끼>>도 <<블러디 머더>> 추천으로 읽었지만 별로였었는데, 이런 류의 추천에도 그만 좀 낚여야 겠습니다.

2020/06/13

미스테리아 23호 - 미스테리아 편집부 : 별점 2점

미스테리아 23호 - 4점
미스테리아 편집부 지음/엘릭시르

엘릭시르에서 출간하고 있는 국내 유일의 추리 전문 잡지. 2019년 3월 출간된 과월호로 특집이 <<명탐정 코난>>이라 예전부터 관심이 있었던 차에, 알라딘을 통해 중고로 저렴하게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실망에 가깝습니다. 과월호로 산게 다행이다 싶더군요. 특집인 <<명탐정 코난>>이 전혀 기대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명탐정 코난>>이 <<소년탐정 김전일>>의 대 히트로 기획되어, 당시 신인 만화가였던 아오야마 고쇼에 의해 창작되었다는 첫 출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관련된 모든 정보를 소개해주고 있는 구성은 나쁘지는 않습니다. 문제는 나무위키 등 인터넷 상에 있는 각종 정보들과 별 차이가 없다는 점입니다. <<코난>> 속 주요 등장인물 이름과 지명의 유래에 대한 소개가 대표적입니다. 주요 등장인물마다 이 특집 전체 분량만큼을 할애하고 있는 나무위키에 비하면 턱도 없는, 그야말로 기본 정보만 알려줄 뿐이라 무척 실망스러웠어요.
만화 속 에피소드를 클로즈드 서클밀실암호다잉 메시지독살마술사알리바이, 미스터리 투어, 물리 트릭의 8종으로 분류하여 소개하는 내용은 더 별로에요. 일단 분류부터가 말이 안되지요. 클로즈드 서클과 미스터리 투어는 이야기의 '상황' 이고, 밀실, 암호, 다잉 메시지, 알리바이, 물리 트릭은 '트릭' 이며, 독살은 방법, 마술사는 직업이라 아무리 보아도 동일한 수준의 분류가 아닙니다. 주요 소재를 끄집어 내었을 뿐으로, 이런 식으로 키워드를 도출한 뒤 관련된 추리 소설 등을 풀어놓는건 그다지 어려울 것 같지 않네요. '마술사'를 이야기하는데 마술사 탐정인 그레이트 멀리니 인용이 없는 등 내용도 부실합니다.
이런건 아무래도 저자 편의에 따른 특집 기사 페이지 보충용 글 뭉치가 아니었나 싶은 의심이 듭니다. 저만 해도 이런 키워드에 '변장'이나 '축구' 를 추가하여 이야기를 풀어내는건 금방 할 수 있거든요. 변장이 등장하는 범죄물은 수도 없고, 축구는 <<파리의 밤은 깊어>> 정도만 당장 떠오르지만, 다른 스포츠 물도 인용하면 충분히 한 꼭지 글은 만들 수 있으니까요.

이렇게 인터넷을 통해 쉽게 알 수 있는 정보, 무의미한 키워드 도출말고 코난에 대해 의미있는 컬럼이나 분석이 실리는게 더욱 좋았을겁니다. 추리 만화계 전반의 흐름과 함께 코난이라는 작품의 위치를 짚어주어도 좋았을테고요. 이 특집은 구태여 구해 읽을 필요없는 내용이었습니다.

또 특집 기사 외에도 책 소개라던가, 드라마 작가인 도현정 작가 인터뷰도 이번 호는 별로 재미가 없었습니다. 도현정 작가 인터뷰는 두 번째 핵심 기사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의 분량이기는 한데, 드라마들 전부를 보지 못했고 딱히 관심도 없어서, 드라마 중심으로 인터뷰가 이루어지는 내용은 읽어도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 너무 많았어요.

하지만 재미있는 기사와 글이 없는건 아닙니다. 와카타케 나나미의 <<헌책방 어제일리어의 사체>> 속 음식들을 작품과 함께 재미나게 소개하는 정은지 작가의 컬럼은 언제나처럼 포만감을 주는 좋은 글이었습니다. 법의학을 통해, 상세한 과학 수사를 통해 진상을 밝혀낸 과거 사건을 소개해 준다던가, 옛 사건을 기록한 논픽션들도 마음에 들고요. 이 중에서도 1950년대 말, 한국 최초의 텔레비전 방송국 HLKZ의 화재 사건은 몰랐던 사건이라 아주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보험금을 노린 고의 방화인지, 정말 실수인지, 누군가의 음모인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는 결말도 재미있었어요. <<겨울 여자>>를 쓴 조해일의 범죄 소설 <<갈 수 없는 나라>>에 대한 글도 인상적이고요. 대중 소설의 1인자가 추리, 범죄 소설의 수법을 차용하여 사회파스러운 작품을 일찌기 발표했었지만, 작가 스스로도 한계를 느낀 범작에 머무른 이유를 비교적 정확하게 서술해주고 있기 때문이지요. 이를 통해 해방 후 20세기까지 한국 추리 소설의 한파가 어디서 어떻게 비롯되었는지를 유추해 볼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에 수록된 소설들도 나쁘지 않습니다. 그 중에서도 한국 작가 송시우의 <<누구의 편도 아닌 타미>는 엄지 척! 입니다. 작가의 단편집에 등장했던 서행물산 총무부 과장 임미숙이 등장하는 시리즈 단편인데 일상 속에서 벌어진 비일상적인 상황과, 그 속에서 빚어진 범죄를 일반인 임미숙이 해결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서행물산의 문제아 신입사원 추예나의 집을 찾아간 임미숙이, 그녀의 집에서 나타난 수상한 남자의 정체에 대해 궁금해하다가 추예나의 건방진 전화를 받고 진상을 깨다는 부분이 백미에요. 간단한 암호 트릭인데, 그 수준이 높지는 않지만 그래도 설득력은 충분했습니다. 다른 시리즈 작품을 꼭 찾아 읽어봐야겠어요.
실리아 프렘린의 <<정말 필요한 경우>>는 오싹, 불쾌하면서도 서늘한 반전이 있는 일종의 '기묘한 맛' 류의 작품입니다. 80이 넘은 독신 노처녀가 공짜 전화를 놓는게 위험하다고 말한 이유를 그리고 있는데, 앞 부분의 복선과 함께 하는 반전은 꽤 그럴싸 했습니다. 빼어나지는 않아도, 평균은 되는 좋은 작품입니다.
마지막의 <<가스등>>은 히치콕 영화로 유명한 작품 시나리오를 3부작으로 나누어 1부를 싣고 있는데, 영화를 한 번 찾아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흥미진진하더군요. 굉장히 오래되었지만 서스펜스만큼은 명불허전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다른 장점들이 없는건 아니지만 특집 때문에 구입했는데, 특집이 마음에 들지 않으니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마음에 들었던 논픽션들만 별도로 출간되기를 기다리는게 훨씬 낫아 보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