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방 어제일리어의 사체 -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서혜영 옮김/작가정신 |
편집자로 일하던 아이자와 마코토는 실직 후 바다를 찾아왔다가 익사체를 발견했다. 어쩔 수 없이 하츠키시에 머물게 된 마코토는 헌책방 ‘어제일리어’의 주인 베니코의 간단한 테스트를 통과한 뒤, 그녀의 취업 제의를 받아들였다.
한편 그녀가 발견한 익사체는 하츠키시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마에다 가문의 히데하루로 밝혀져 장례 준비가 진행되는데, 그 와중에 마에다 가문의 현 주인 마치코마저도 어제일리어에서 살해되고 마는데...
소도시 하자키를 무대로 한 와카타케 나나미의 코지 미스터리 시리즈 두 번째 작품입니다. 개인적으로 굉장히 좋아하는 작가라 주저 없이 선택했는데, 읽고 나서야 두 번째 작품이라는걸 알았네요.
그런데 이 작품, 정말 재미있습니다! 작가 특유의 시니컬한 유머가 가득한 것에 더해 추리적으로도 상당한 수준이기 때문입니다. 대단한 트릭이 등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독자가 수사와 추리의 과정에 공정하게 참여할 수 있도록 했으며, 범인과 동기가 이치에 맞는 등 본격 추리적인 요소에 아주 충실합니다.
거기에 더해, 아이자와 마코토가 초반에 겪는 호텔 화재 사건이나 마코토와 치아키의 전화 통화, 베니코 여사의 옛날 이야기 같은 사소한 단서들이 모두 사건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덕분에 장편임에도 불구하고 지루하거나 복잡한 느낌 없이 추리 소설의 재미를 가득 느낄 수 있었어요.
작가 특유의 시니컬한 유머 역시 즐거움을 선사합니다. 시끌벅적하면서도 황당한 상황이 계속 이어지지만, 적절히 수위와 템포를 조절하며 작품과 어울리도록 녹이는 부분에서 작가의 내공이 더욱 깊어지고 원숙해졌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마코토가 처음 어제일리어를 방문한 뒤, 베니코 여사와 펼치는 '고딕 로맨스 퀴즈' 등 고딕 로맨스 소설에 얽힌 다양한 떡밥들은 매니아를 자극하는 요소로 작용해 더욱 흥미로웠고요.
하지만 주요 사건의 깔끔한 해결에 비해 다른 사건들은 정리가 다소 부족하다는건 아쉬웠습니다. 특히 마치코-구도가 얽힌 하쓰호 살해 및 유기 사건이 그렇습니다. 구도가 하쓰호를 죽인 이유도 명쾌하지 않았고, 시체 유기에 대한 진상은 다소 억지스러웠거든요. 이 때문에 마치코 역시 유언장을 폐기하려면 차라리 불을 지르는 것이 나았을 것이라는 가정이 성립하거든요. 유언장도 없애고, 생사가 불분명한 하쓰호의 행방을 파악할 수 있어 재산 상속에 문제가 없어지니 1석 2조가 되니까요. 어차피 자신이 직접 죽인 것이 아니니, 마치코의 영향력을 고려하면 큰 문제 없이 넘어갈 수도 있었을 겁니다.
구도가 마코토를 습격하면서까지 사체를 처리하려 했던 것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어차피 사건은 종결된 상태였으니까요. 이런 행동은 무리수였습니다. 차라리 고마지 반장의 추리로 밝혀내는 식으로 처리하는게 더 나았을 거에요.
덧붙이자면, 히데하루의 출생과 관련된 이야기와 그가 복수를 결심한 이후의 행동들 역시 다소 뜬금없었습니다. 복수 방법도 어설펐지만, 마이와 시노부가 얽히는 과정이 순전한 우연에 불과하다는 점은 앞선 정교한 장치들과 비교한다면 너무 쉽게 처리된 듯 합니다.
하지만 단점은 사소합니다. 별점은 3.5점! 이상하게 단점을 리뷰에 상세하게 적기는 했는데, 장점이 훨씬 더 월등한, 재미있는 작품입니다. 많은 분들이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빨리 1권을 구해 읽어야겠네요.
PS: '코지 미스터리'를 표방한 작품치고는 너무 강력한 사건이 등장하며, 전형적인 일본의 콩가루 집안 재산 싸움이 펼쳐지는 점이 의외였습니다. 이런 작품도 코지 미스터리로 분류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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