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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02

귀공자 (2023) - 박훈정 : 별점 2.5점

코피노 마르코는 아버지가 자신을 찾는다는 말을 듣고 한국으로 향했다. 그런 마르코를 뒤쫓는 의문의 남자, 자칭 "친구"에 의해 아버지의 부하들은 모두 죽었다. 마르코는 우여곡절 끝에 의붓형을 만났지만, 의붓형 한이사는 마르코가 아버지에게 심장을 주어야 한다고 했다. 곧바로 수술이 시작되었지만 수술실에 '친구'가 나타나 마르코를 구해주는데...

박훈정 감독의 액션 영화입니다. 최근에는 미중년 액션물을 많이 보았는데, 생생한 젊은 남자가 펼치는 무쌍 액션물은 오랫만이네요. 그런데 이 젊은 남자, '친구'가 굉장히 매력적입니다. 마르코에게 자기는 "친구!"라며 살갑게 굴다가도 순식간에 사람을 죽이는, 엄청난 실력을 가진 프로 해결사라는 모순적인 인물을 잘 그려낸 덕분입니다. 명품 정장을 걸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잔혹한 살육을 벌인다는 모순도 그럴듯하게 표현됩니다. 여기에는 '친구'역을 맡은 김선호의 연기와 매력이 한 몫 단단히 하고요. 그야말로 혼자서 영화를 끌고 갑니다.

김강우가 연기한 한이사도 빌런으로는 나쁘지 않습니다. 돈과 상속이 전부인 잔혹한 속물 재벌 2세라는 인물상을 설득력 있게 연기하고 있거든요. 그리 깊이 있는 악역이라고 보기는 어렵고 뻔하지만, 장르 영화 속 빌런으로는 충분한 존재감을 보여줍니다.

액션도 괜찮습니다. 합도 잘 맞고, 장면의 동선도 지루하지 않게 짜여 있기 때문입니다. 박훈정 감독 특유의 잔혹한 분위기도 잘 살아 있어서 총격전, 맨손 격투, 자동차 추격 등 종류도 다양한데 뭐 하나 처지지 않습니다.
이 중에서 '친구'가 마르코를 쫓는 추격전이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단순히 죽이려는 사람과 도망치는 사람의 관계가 아니라, 장난이 많이 포함된 애매함이 독특했어요. 이 과정에서 '친구'의 엄청난 신체 능력도 튀지 않게 선보여서 마음에 듭니다.

각본이 중요한 영화는 아니지만 여러 설정을 적절히 잘 써먹는 것도 눈에 띕니다. '친구' 역시 코피노 출신이라는 설정이 대표적입니다. 위기 상황에서 필리핀어로 정보를 주는 장면으로 잘 이어지는 식으로요. 덕분에 마르코를 이용해 돈 벌 생각만 있어 보였던 '친구'가 사실은 마르코의 편이었다는 결말도 설득력을 갖게 됩니다.

그러나 핵심 설정이 너무 말이 안 된다는 문제는 큽니다. 아버지가 죽으면 상속에서 지기 때문에 심장 이식 수술을 시켜야 한다는 상황은 그럴듯합니다. 문제는 그 심장 제공자가 반드시 사생아인 마르코여야 할 이유가 없다는 점이에요. 이 일을 위해 쓴 돈만 당장 천만 달러 규모이고, 그 과정에서 죽은 사람도 수십 명입니다. 그 정도 비용과 희생을 감수할 수 있다면, 마르코 한 명에게 매달리지 않고 다른 방식으로 충분히 심장을 구할 수 있었을 겁니다. 최소한 유전적인 조건이나 특수한 의학적 이유가 있다는 설명이 필요했어요.

액션은 앞서 말했듯 좋지만, 김선호가 연기한 '친구'의 무력이 너무 압도적이라서 조금 시시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악당들은 수수깡과 다름이 없으니까요. 그에게 맞설 수 있는 빌런이 한 명 정도는 나와주었어야 했습니다. '친구'가 나타나면 만사형통이라, 강한 캐릭터를 보는 재미는 있지만 위기감은 약합니다.
여기서 마르코의 활용도 아쉽습니다. 초반에 꽤 괜찮은 실력을 가진 복서로 등장해서 당연히 그의 복싱 실력이 후반부 어떤 식으로든 쓰일 것이라 기대하게 만드는데, 이야기 내내 마르코는 쫓기고, 얻어맞고, 도망치는 역할에 머뭅니다. 이럴 거라면 왜 굳이 복서라는 설정을 길게 보여주었는지 모르겠네요.

마지막 장면에서 한이사가 '친구'를 그냥 보내주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의문도 남습니다. '친구'가 거래를 깨고 그들을 죽인 뒤 마르코를 구해주었을까요?

그래도 흥행에 실패할 정도의 망작은 아닙니다.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이야기의 짜임새를 중요하게 보는 관객이라면 아쉬움이 크겠지만, 최소한 김선호의 연기만으로도 볼 가치는 충분합니다. 액션도 좋고요. 속편이 나오면 좋겠습니다.

2026/05/01

잃어버린 얼굴 - 사쿠라다 도모야 / 최고은 : 별점 3.5점

얼굴이 훼손되고 손목마저 절단된 상태의 신원 불명 사체가 발견되었다. 다행히 피해자의 정체는 전직 탐정이었던 야기 다쓰오라는게 곧바로 드러났다. 고마네에서 벌어진 다른 살인 사건과 연루되었기 때문이었다.

사건 수사에 나선 수사계장 히노 유키히코는 이 사건이 10년 전 실종된 오누마 겐, 그리고 지역 신문에 실린 경찰의 부실 대응을 고발하는 투서와 연결되어 있다는걸 알아냈고 탁월한 추리력을 발휘하여 진상을 밝혀낸다...

"매미 돌아오다"로 좋은 인상을 심어준 사쿠라다 도모야의 장편 추리 수사물입니다. 

굉장히 정통적인 경찰 수사 추리물인데, 복선 회수 방식이 인상적입니다. 앞부분에 툭툭 던져놓은 것처럼 보였던 지역 신문 투고, 부부 싸움 끝에 벌어진 살인 사건, 표백제를 구입한 여성에 대한 이야기 같은 요소들이 나중에는 모두 본 사건과 직접 맞물리기 때문입니다. 읽다 보면 정말 하나도 허투루 사용된 설정이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에요.
이런 복선들과 이어지는 추리, 진상의 몇 가지 예는 아래와 같습니다.

  • 경찰의 부실 수사에 대한 투서 + 수상한 남자가 다이야라는 소년에게 접근했던 사건 + 투서 전 지방지에 실렸던 하야토의 시 + 다이야는 하야토의 친구였다 + 그날, 다이야는 하야토의 집에서 놀다가 나왔다 → 수상한 사람은 하야토의 존재를 시를 통해 알았고, 다이야를 하야토로 착각했다.
  • 시라카와 현장을 발견한 고다 미쓰코가 들고있던 다루마 위스키 병 + 죽은 야기가 구속 전 단골 바 바텐더에게 술을 보관해달라고 부탁 + 야기가 협박에 사용했던 기록은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았다. → 야기는 USB를 다루마 병 속에 보관하고 있었다.
  • 오누마 겐이 횡령을 저질렀다 + 오누마 겐은 사채도 쓰고 있었다 + 야기에게 불륜 조사를 의뢰한 사람 중 하나가 쓰지였다 + 쓰지의 아내 가나는 오누마 겐의 직장 동료였다 → 오누마 겐은 가나와 불륜을 저지르다가 야기에게 협박당했고, 쓰지를 살해했다.

이런 식으로 사소해 보이는 흩어져 있는 정보들이 진상으로 정리되는 과정은 아주 만족스럽습니다.

수사계장 히노가 펼치는 추리의 짜임새도 좋습니다. 사소한 지점에서 이상함을 포착한 뒤, 그걸 기발한 방향으로 연결해 나가는 방식인데 신선하고 재미있어요. 대표적인게 시라카와가 살해되었을 당시 문고리가 걸려 있지 않았다는 점에 착안하는 추리입니다. 살인까지 저지른 사람이 그렇게 허술했을 리 없으니 이는 임시 상황이었고 누군가 곧 돌아올 예정이었다고 추리를 전개하는데 설득력이 높습니다. 이는 앞서 나온, 수상한 여자가 표백제를 구입했다는 이야기와 연결되어 범인이 '부부' 였다는걸 드러내게 되지요.
그 외에도 고다 미쓰코가 빼돌리려고 했던 USB가 숨겨진 장소를 밝혀내는 추리 등 히노의 명추리는 볼만한게 많습니다. 

오누마가 10년 전 쓰지를 살해한 뒤 그의 신분으로 바꿔치기해서 살아왔다는 반전도 괜찮습니다. 오누마로 의심되지만 혈액형이 달랐던 신원불명의 사체 등 관련된 정보도 충실히 제공됩니다.
화려한 액션이나 극적인 장치보다는 탐문과 방문 조사, 그리고 차곡차곡 쌓이는 증언을 통해 진상에 접근하는 방식으로 묘사도 꼼꼼하여 수사물로서의 재미도 잘 살아 있고요.

다만 아쉬운 부분도 없지는 않습니다. 우선, 운과 우연이 과하게 작용하는 편입니다. 사건의 발단부터가 그러합니다. 오누마를 야기가 '우연히' 발견하고 뒤를 쫓았던게 시작이었으니까요. 오누마가 '아들일지도 모르는' 초등학생의 시를 지방지에서 읽은 것, 우에무라 교코가 오누마의 접근에 대해 투서를 보낸 것, 시라카와가 걸쇠가 걸리지 않은 야기의 집에 들어가 살해당한 것도 모두 우연입니다. 이런 부분은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지요.

그리고 경찰도 예전 사진을 통해서는 바로 알 수 없을 정도로 외모가 많이 달라졌는데도 불구하고, 야기가 십여 년 전에 조사했던 상대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었다는 것도 쉽게 납득되지 않습니다.

무 이건 전직 탐정의 실력이라고 쳐도, 오누마가 쓰지를 살해한 뒤에도 사건 현장 근처에서 계속 살았다는건 정말이지 말도 안됩니다. 작품 안에서 나름대로 설명하려고 애쓰지만 솔직히 잘 와 닿지는 않습니다. 무리한 설정이었다고 밖에는 보이지 않아요.

주인공 히노의 성격도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아요. 오누마 구미에 대한 취조 과정 등에서 엿보이는데 너무 인간적인 탓입니다. 오지랖도 너무 넓어요. 쓰레기를 쌓아두는 폭력적인 사타케의 부친 이야기는 본 줄거리와 큰 관련이 없는데 굳이 이렇게까지 설명할 필요가 있나 싶습니다. 인간미를 부각하기 위한 장치로 보이는데, 하드보일드스러운 사건과는 영 어울리지 않아서 별로였어요. 차라리 좀 더 냉정하게 사건을 바라보는 형사 쪽이 더 좋았을 겁니다. 

그래도 좋은 평가를 받을만한 잘 짜여진 작품이라는건 분명합니다. 제 별점은 3.5점입니다. 추리 애호가라면 한 번 읽어보셔도 좋겠습니다.

2026/04/26

존 윅 4 (2023) - 채드 스타헬스키 : 별점 3점

최고 회의의 그라몽 후작이 직접 존 윅을 처단하기 위해 나섰다. 존 윅의 친구 케인이 후작의 하수인으로 직접 나섰고, 그는 존 윅을 보호하던 또 다른 친구 코지마저 죽였다. 존 윅은 살아남아 자유를 얻기 위해 후작에게 결투를 신청하는데...

존 윅 시리즈의 네 번째이자 마지막 작품입니다. 넷플릭스로 감상했습니다. 

시리즈 장편답게 독립적인 에피소드라기보다는 앞선 세 편에서 쌓아 온 존 윅에 대한 설정과 서사가 한꺼번에 폭발하는 종결부 성격이 강합니다.

그래서 당연하겠지만 액션은 정말 최고입니다. 더 기대할게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 이상을 보여주네요. 몇몇 장면이 특히 인상적인데, 첫 번째는 베를린 시퀀스에서 존과 독일 지부 수장 킬라 하르칸의 격돌 장면입니다. 현란한 네온 조명에서 춤추는 군중 사이로 처절한 격투가 어우러지는 몽환적인 연출이 돋보입니다. "발레리나"의 첫 액션 시퀀스가 노렸던게 이런 분위기가 아니었을까 싶군요. 

결투 직전 파리에서 펼쳐지는 '사냥' 장면은 더욱 대단합니다. 존은 결투에 참가하기 위해 자신을 노리는 킬러들을 상대로 개선문 로터리의 자동차 지옥을 통과하고, 계단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가 다시 기어오르며 끝없이 몰려드는 적들을 상대하는데 그 쾌감이 장난이 아니에요. 무엇보다도 이 장면에서 등장하는, 건물 내부를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점으로 길게 이어지는 총격전은 역대급입니다. 카메라가 인물 위를 부유하듯 이동하면서도 동선이 흐트러지지 않고, 각 방을 돌파하는 리듬과 총기 화력의 변화가 롱 테이크를 통해 합을 맞추며 선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게임과 홍콩식 총격 액션, 현대 스턴트 설계가 한 장면 안에서 결합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 수 있어요.

등장 인물들도 좋습니다. 케인은 견자단의 존재감만으로도 강함에 대한 충분한 설득력을 보여줍니다. 젊은 킬러 노바디도 애견인 킬러라는 설정과 가방을 활용한 독특한 액션이 시선을 사로잡고요. 빌런 킬라 하르칸의 거구, 그라몽 후작의 뺀질거리면서도 잔혹한 모습도 잘 어울립니다.

그러나 시리즈가 길어지면서 생겨난, 설정 놀이가 지나치다는 단점은 있습니다. 결국 결투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다면, 존이 그토록 긴 시간 동안 싸운 이유가 무엇인지 하는 의문이 남네요. 후작이 윈스턴의 호텔을 파괴하고 샤롱을 죽이는 선택 역시 이유도 알 수 없는 비효율적인 행동이었고요.
마지막 결투도 여러모로 석연치 않습니다. 승패가 후작이나 존 윅이 죽어야 갈리는 거라면, 처음에 후작을 쏴 버리고 끝내면 되는 거잖아요?

그리고 초반 오사카 파트는 완전히 억지였습니다. 존이 일본에 가서 서사적으로 얻는게 전무한 탓입니다. 오히려 결과적으로는 친구 코지만 죽게 만들었을 뿐이지요.
코지도 의리는 멋지지만 액션이 영 별로라 실망스러웠습니다. 총격전 중심 세계관에 활과 수리검을 들고 나오는 행동도 영문을 모르겠고요. 감독이 와패니즈일 거라는 강한 의심만 듭니다. 

그래도 어차피 이야기가 중요한 영화는 아니지요. 중요한건 압도적인 액션인데, 액션만큼은 충분히 기대에 값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스타일리시한 액션을 좋아하는 분들께 추천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