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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7/26

비키퍼(2024) - 데이비드 에이어 : 별점 2점

양봉꾼 애덤 클레이는 친절했던 이웃 엘로이즈가 보이스 피싱 조직에게 전재산을 잃고 자살하자 복수에 나섰다. 그는 원래 초법적인 해결사 집단 '비키퍼'의 에이전트였기에, 자신의 능력을 활용하여 피싱 조직을 분쇄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피싱 조직의 우두머리 데릭 댄포스는 미국 대통령의 아들이었고, 데릭은 어머니의 경호 조직을 최대한 활용하여 숨어버리는데...

데이비드 에이어 감독, 제이슨 스타뎀이 주연을 맡은, 요새는 너무 흔해진 '은퇴한 중노년 전문 요원의 복수극'입니다. 

하지만 다른 유사 작품들과는 확연히 다른 액션을 선보이는게 차이점입니다. 제이슨 스타뎀이 50대 후반이기는 하지만, 중년을 넘어 이제는 노년에 가까운 키아누 리브스, 리암 리슨, 덴젤 워싱턴보다는 훨씬 쌩쌩한 덕분입니다. 

물론 전성기처럼 날아다니는 모습은 없지만 보스턴 나인스타 빌딩에서 FBI SWAT 팀이 지키고 있는 입구를 아무런 장비 없이 홀로 돌파하는 장면, 용병들을 엘리베이터 안으로 몰아넣은 뒤 한꺼번에 처치하는 장면처럼 지형 지물과 주어진 환경을 최대한 활용하는 신선하면서도 시원한 액션을 선보입니다.

빌런인 댄포스가 개발했다는 자금 흐름 추적 알고리즘도 흥미로운 설정입니다. '유산을 상속할 대상이 없는 고인의 자금'을 빼돌린다는 아이디어는 한 편이 범죄 스릴러로 충분히 발전시킬 수 있어 보였습니다. 살짝 지나치기는 아쉬웠어요.

그러나 아무리 액션 중심 영화라 하더라도 이야기의 설득력은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애덤 클레이가 복수에 나서는 계기는 서사가 충분하지 않아 공감할 수 없었고, 아무리 비키퍼가 법 위에서 움직이는 초법적 조직이라고 해도 대통령 별장에 암살을 목적으로 침입한 인물을 그대로 방관한다는건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미국 대통령 별장에 쳐들어와서 경호원들을 학살하고 대통령 아들까지 죽인 인물을 그냥 놔 둘리가 있겠습니까?

마지막 절정부의 대통령 별장에서의 액션은 기대에 미치지 못합니다. 미국 대통령 경호 조직이 수수깡에 지나지 않는 탓입니다. 애덤이 아무리 초월적인 존재라 하더라도, 상황이 너무 비현실적이에요. 도가 지나쳤어요.

댄포스의 알고리즘과 그 뒤에 숨은 음모 역시 거창한 설정을 끝까지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채 흐지부지 마무리되는데, 차라리 단순한 보이스피싱 조직의 배후 정도로 그리는게 더 깔끔했을 겁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완성도가 높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아무 생각 없이 1시간 30분 정도를 흘려보내기에는 나쁘지 않습니다. 이런 류의 영화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한 번쯤 볼 만합니다.

2026/07/25

아이 윌 파인드 유(I Will Find You) (2026) - 로버트 헐 : 별점 1.5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데이비드 버로우스는 아들 매슈를 살해했다는 누명을 쓰고 5년째 복역 중이었다. 그러나 처제 레이철이 매슈가 살아있을지 모른다는 증거 사진을 보여준 뒤 탈옥하여 아들을 찾아 나섰다.

그러나 누군가가 여러 방법을 동원하여 버로우스를 옭아맸고, 버로우스는 수차례 체포와 죽을 위기를 넘기면서도 점점 사건의 흑막과 진상에 접근해 나가는데...

"숲"의 작가 할런 코벤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TV 드라마입니다. 넷플릭스에서 흥행하고 있길래 감상하게 되었습니다. 

처제 레이철이 가져온 한 장의 사진 속에서, 죽었다고 알려진 매슈가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이는 모습을 발견한 뒤 생명의 위협을 받다가 탈옥을 선택하는 이야기 도입부는 아주 강렬합니다. 설정도 흥미롭지만 탈옥 과정의 디테일도 좋고, 이후 도주 과정도 설득력있게 선보이는 덕분입니다. 

버로우스가 인간관계와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바탕으로 사건의 진상에 접근하는 과정도 흥미롭습니다. TV 드라마답게 매회 반전과 새로운 의문을 던지면서 시청자가 다음 화를 보게 만드는 솜씨도 제법이고요.

하지만 반전이 많은게 좋게만은 작용하지 않습니다. 애덤 맥켄지가 사실 악당 니키 피셔의 끄나풀이었다는 반전이 대표적입니다. 그는 자신의 직업까지 걸면서 버로우스의 탈옥을 돕고, 매슈의 관까지 파헤칠 정도로 헌신적인 모습을 보여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그가 갑작스럽게 배신자로 바뀌는 전개는 그동안의 행동과 쉽게 연결되지 않습니다. 더구나 니키 피셔가 최종 흑막조차 아니라는 사실이 비교적 쉽게 드러나면서 이러한 반전이 왜 필요했는지도 의문입니다.

게다가 진범이 헤이든이었다는 진상은 최악입니다. 헤이든은 매슈가 자신의 친아들이라고 믿어서 매슈를 데려갔던 겁니다. 그런데 왜 헤이든이 버로우스를 적극적으로 도와줄까요? 심지어 좋아하는 레이철이 함께 있지 않는 상황에서 버로우스를 경찰에 넘기거나 죽이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버로우스가 매슈를 끝까지 찾으려 하니, 없애버리는게 당연하지요. 하지만 헤이든은 후반부까지 충실하게 버로우스를 도와줄 뿐입니다. 

애초에 사건의 시작부터가 말이 안됩니다. 버로우스를 매슈의 살인범으로 조작할 정도의 재력과 영향력이 있다면, 매슈만 빼돌린 뒤 버로우스 가족이 사고로 사망한 것처럼 꾸미는 편이 훨씬 간단했을테니까요. 막대한 비용과 위험을 감수하면서 버로우스가 친아들을 살해한 것처럼 꾸민 이유는 설명되지 않습니다. 그 외에도 설명되지 않는건 많아요. 예를 들자면, 니키 피셔는 버로우스의 아버지가 흉기인 야구 배트를 숨겼다는걸 어떻게 알았을까요? 니키 피셔가 부하를 시켜 증인을 죽이고, FBI를 공격할 이유도 없고요.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초반부의 압도적인 몰입감만큼은 최고지만, 진범과 진상을 끝까지 숨기려는 데 지나치게 집중해서 이야기를 다 망쳐버리고 말았습니다. 추천드리기 어려운 졸작입니다. 드라마가 아니라 복선과 심리 묘사를 충분히 쌓을 수 있는 소설이 더 어울렸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2026/07/24

203호실 - 가몬 나나미 : 별점 2.5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대학 신입생 오키무라 기요미는 한정된 예산 때문에 도쿄 변두리의 작은 원룸 203호실에 들어갔다. 처음에는 방을 꾸미며 자취 생활을 즐겼지만, 어느 날부터 원인을 알 수 없는 악취가 풍기기 시작했다. 그 뒤 방 안에서는 설명하기 어려운 현상이 계속되었고, 무너져 가던 기요미는 호감을 품었던 썸남 니이자토, 그리고 아르바이트 동료 유키코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러나 두 사람의 도움은 미미했고, 결국 기요미는 203호실 안의 깊은 어둠에 삼켜지고 말았다... 

가몬 나나미의 "203호실"은 여대생이 기이한 원룸에 삼켜지는 과정을 그린 장편 호러 소설입니다. 원서로 읽었습니다.

흔히 대저택을 무대로 삼는 전형적인 ‘저주받은 집’ 이야기인데, 이를 가난한 대학 신입생의 원룸으로 축소한게 인상적입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악취, 천장에서 누군가 뛰어다니는 소리, 사람이 앉았다 간 듯한 바닥의 온기, 기묘한 얼룩과 벌레, 갑자기 젖은 현관 매트처럼 일상적인 소재가 괴이현상과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공포가 한층 더 현실적으로 다가옵니다. 천장 얼룩을 가리려고 붙인 외국 풍경 그림 속 창문을 누군가 긁는 듯한 장면처럼 섬뜩한 묘사도 제법 많고요.

기요미와 이전 세입자들이 사라졌는데도 아무도 이를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 결말 - '전에 살던 학생이 집세를 밀린 채 도망가 버렸을 뿐이다'. - 도 좋습니다. 극도의 외로움이 공포심으로 승화되어 스스로 파멸하고 말았다는 뜻도 되니까요. 단순한 호러가 아니라, 비정한 현대 사회를 고발하기도 하는 멋진 설정입니다. 

그러나 사건이 203호실이라는 좁은 공간과 기요미 한 사람에게 집중되어 이야기의 규모가 작은 탓에 뒤로 가면 지루해집니다. 기요미의 행동도 답답합니다. 왜 진작에 방을 떠나지 않았을까요? 부동산에 제시할 명확한 사유가 없다는 설명은 한국 독자에게 쉽게 이해되지 않습니다. 가족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는 행동도 납득하기 어렵고요.

가장 큰 아쉬움은 괴이현상의 원인이 끝내 설명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203호실에 정체불명의 악의가 존재하고 거주자들을 삼킨다는 사실만 제시될 뿐, 그 기원이나 정체는 밝혀지지 않습니다. 미쓰다 신조의 작품들처럼 괴이의 실체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는 설명은 필요했다고 생각합니다. 앞서 설명드렸듯, 극한 외로움으로 기요미가 미쳐버렸다는 식으로 풀어내는 식으로요.

그래도 독자를 섬찟하게 만드는 호러 소설로서의 가치는 충분합니다. 분량도 적당한 편이고요. 헌티드 하우스와 저주받은 집 이야기, J호러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습니다. 제 별점은 2.5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