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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7/12

콘 비프 샌드위치를 먹는 밤 Season 2 : (9) 축배와 흉기 사이

추리소설에서 와인은 익숙한 소재입니다. 독살에 사용되기도 하고, 중요한 대화가 오가는 식탁에 오르기도 하지요. 하지만 와인 병 자체가 흉기가 되는 경우는 의외로 많지 않습니다. 영화에서는 술병을 휘두르는 장면을 흔히 볼 수 있지만, 추리소설에서는 오히려 드문 소재입니다.

우리가 익숙하게 보는 와인병은 사실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진 물건입니다. 와인의 역사는 기원전 수천 년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당시에는 암포라 같은 토기나 참나무통이 와인을 담는 용기였습니다. 두꺼운 유리병이 본격적으로 사용된 것은 17세기 이후이고, 지금과 비슷한 형태가 자리 잡은 것은 18세기 말에서 19세기에 이르러서였습니다.와인병의 모양도 지역마다 조금씩 다릅니다. 보르도 와인은 어깨가 각진 병을, 부르고뉴 와인은 둥근 어깨를 가진 병을 사용하는 것이 대표적입니다.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병의 실루엣만 보고도 어느 지역 와인인지 짐작할 정도이지요.

이렇게 만들어진 와인병은 와인을 안전하게 보관하기 위해 두껍고 단단한 유리로 제작됩니다. 자연스럽게 무게도 제법 나가고, 목 부분을 잡으면 손에 쥐기도 편합니다. 축하와 만찬을 위한 물건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둔기로 사용하기에도 적합한 형태인 셈입니다. 그래서인지 추리소설에서도 와인병은 종종 인상적인 흉기로 등장합니다. 대표적인 예가 앤서니 호로위츠의 "숨겨진 건 죽음"입니다. 

유명 이혼 전문 변호사 리처드 프라이스가 자신의 집에서 와인병에 맞아 살해된 채 발견됩니다. 현장에는 초록색 페인트로 적힌 ‘182’라는 숫자가 남아 있고, 탐정 호손과 작가 호로위츠는 그 숫자의 의미를 쫓으며 수사를 시작합니다. 여러 용의자가 저마다 충분한 살해 동기를 가지고 있어 마지막까지 범인을 쉽게 짐작하기 어려운 정통 본격 추리소설입니다.

작품 속에서 흉기로 사용된건 1982년산 샤토 라피트 로트실드 병입니다. 보르도 1등급 와인의 대표격으로, 흔히 프랑스 보르도 '5대 샤토' 가운데 하나로 불리우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와인 브랜드 중 하나이지요. 그 중에서도 1982년은 최고의 빈티지 가운데 하나로 꼽히고요. 아무리 와인병이 흉기로 적합했다 하더라도, 흉기로 쓰기는 구하기도 힘들고 너무 비쌉니다.

반대로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와인이 흉기로 등장하는 작품도 있습니다. 더글라스 케네디의 "빅 피쳐"입니다. 

이 작품은 사진가를 꿈꿨지만 월가의 변호사가 된 벤 브래드포드의 이야기입니다. 아내의 불륜을 알게 된 그는 충동적으로 그녀의 연인 게리를 살해하고, 그의 신분으로 살아가게 되지요.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얻었고, 프랑스에서는 영화로도 만들어졌던 인기작입니다. 유난히 와인이 자주 등장한다는 특징도 있습니다. 벤의 인생이 중요한 전환점을 맞을 때마다 와인이 함께하거든요.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클라우디 베이 소비뇽블랑입니다. 

클라우디 베이는 뉴질랜드 말버러 지역을 대표하는 화이트와인으로, 지금도 국내에서 쉽게 구할 수 있습니다. 벤은 아내의 불륜을 이 와인 때문에 눈치챕니다. 와인을 잘 모르던 베스가 어느 날 갑자기 클라우디 베이를 사 왔다고 말하지만, 정작 그 가게에서는 이 와인을 취급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알고 보니 이웃인 게리가 즐겨 마시던 와인이었고, 베스 역시 그에게서 선물받은 것이었습니다. 벤은 게리를 찾아가 같은 와인을 함께 마시다 말다툼 끝에 결국 클라우디 베이 병을 휘둘러 그를 살해합니다. 와인 한 병이 불륜의 단서가 되고, 결국 살인의 흉기로까지 이어지는 것이지요.

흥미로운 뒷이야기도 있습니다. 클라우디 베이 와이너리의 설립자는 더글라스 케네디와 친구였다고 합니다. 작가는 친구의 와인을 작품 속에서 최고의 소비뇽블랑이라고 극찬했지만, 그 와인을 살인의 흉기로 사용해 버렸기 때문에 설립자는 처음에는 못마땅해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소설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클라우디 베이 역시 함께 유명해졌고, 와이너리도 고액에 매각할 수 있었으니 지금은 무척 고마와하지 않을까 싶네요.

와인병은 원래 축배를 위한 물건입니다. 하지만 추리소설에서는 때로 사건의 단서가 되고, 때로는 살인의 흉기가 되기도 합니다. 같은 와인병이라도 작품에 따라 전혀 다른 역할을 맡는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평범한 식탁 위의 와인 한 병도 작가의 손을 거치면 전혀 다른 의미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다음에 클라우디 베이를 보게 된다면, 저는 아마 먼저 이 소설부터 떠올릴 것 같습니다.

2026/07/11

악의 등교 - 원작: 산천, 각색: 팀 더 제이, 작화: 시원

김현성은 학폭 피해로 식물인간이 된 뒤, 정신만 남은 채 10년을 버티며 복수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사건 발생 직전 시기로 회귀한 뒤, 10년을 준비한 계획에 따른 복수를 시작하는데...

흔해빠진 회귀 복수극입니다. 그래도 이 작품은 몇 개의 확실한 차이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김현성이 10년 동안 복수를 시뮬레이션 해 왔다는 겁니다. 그래서 회귀 후 복수의 과정은 나름대로 설득력을 가집니다. 여기에 식물인간 상태에서 뉴스와 사회 변화를 기억했다는 설정도 잘 활용되고 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대산 지역 건설 회사 후계자와 미래의 대권 후보에게 접근하여 자신의 배경을 만드는 과정은 제법 치밀합니다. 

두 번째는 복수 자체입니다. 김현성은 가해자들을 절대 용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단순한 1회성 응징이 아니라 아예 인생 자체를 무너뜨리거든요. 기껏 회귀했는데 복수는 시시했던 다른 회귀 복수물들에 비하면 훨씬 화끈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합니다.

세 번째는 '대산'이라는 가공의 소도시가 무대라는 점입니다. 워낙 작은 도시라서 중앙의 통제가 잘 먹히지 않고, 지역 최고의 건설 회사가 도시를 좌지우지하는 상황이 복수에 잘 활용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차이점으로 괜찮은 재미를 선사해 주는데, 아쉽게도 '골든 서클'과의 대결이 펼쳐지는 후반부는 영 별로입니다. 정재계 최상위층이 속해있는 “골든 서클”은 고등학생이 맞서 싸울 수 있는 상대가 아닌 탓입니다. 그리고 김현성이 10년 동안 계획을 세웠다고 해도, 골든 서클에 대한건 과거에는 알 수 없었습니다. 당연히 이야기처럼 잘 풀렸으리라는 보장도 없고요. 이는 작품만의 좋았던 차별화 포인트를 내다버린 어리석은 전개입니다.

골든 서클이라는 조직의 설정도 황당합니다. 하는거라곤 학폭을 유도해 타겟의 학교 생활을 지옥으로 만드는 정도입니다. 이걸 국내 최상위 그룹 후계자가 이끈다는건 말도 안되지요. 사건의 증명 역시 학폭 주도자들의 현금 흐름만 추적해도 충분했을테고요. 

싸움 실력은 UFC 선수급이고, 공부는 수능 만점 수준인 김현성의 능력에 대한 설정, 명진건설의 고창범처럼 김현성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인물 설정도 현실감이 떨어지는 등, 그 외의 설정들도 문제는 많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복수 장면만 놓고 보면 꽤 시원하지만, “골든 서클” 사건으로 키우지 말고 대산시 안에서 복수극을 마무리했다면 더 나았을 것입니다. 추천할 만한 작품은 아닙니다.

2026/07/10

퍼즐 - 야마다 유스케 : 별점 2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명문 사립 도쿠메이칸 고등학교가 테러범들에게 점거당했다. 최우수 학급인 3-A 반의 담임 야스다와 전학갔던 이전 동급생 미토메가 인질로 잡혔다. 테러범들은 인질들의 목숨을 댓가로 3-A 반 학생들에게 게임을 제안했다. 48시간 내에, 학교에 숨겨져 있는 2,000개의 퍼즐 조각을 찾아 맞추는 게임이었다.  

일본 작가 야마다 유스케의 장편 소설입니다. 만화, 드라마, 영화에 심지어 게임까지 제작되었던 인기작인데 국내에는 아직 정식 소개되지는 않았습니다. 원서로 읽었습니다. 

특징이라면 전형적인 폐쇄형 게임 미스터리 장르의 구조를 갖추고 있다는 점입니다. 폐쇄된 곳은 학교, 게임은 학교 안에 숨겨진 2,000개의 퍼즐 조각을 48시간 안에 찾아서 맞추는 것. 게임의 보상은 인질의 목숨이니까요.

하지만 다른 폐쇄형 게임 미스터리와 비교해 보면, '게임'이 장점입니다. 학교 곳곳에 작은 퍼즐 조각이 숨겨져 있는데, 이를 찾아내서 맞춰야 한다는 현실성도 좋고 예상치 못한 곳에서 퍼즐 조각을 발견하는 묘사도 흥미를 자아내는 덕분입니다. 그리고 퍼즐 조각을 찾아서 맞추기 위해 열 세 명의 학생들이 역할을 분담하는 과정, 이 때 서로 각자가 가진 심리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묘사도 재미 요소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한 조각을 끝내 발견하지 못해서 게임은 실패하는데, 여기서 테러범들의 정체로 이어지는 결말도 그럴싸 합니다. 마지막 한 조각이 미토메의 얼굴이었고, 퍼즐의 원본 그림이 3-A반 학생들의 입학식 사진이라는 단서도 충실하고요. 테러범들은 입학은 같이 했지만 성적 하락으로 낙오하여 전학갔던 동급생들이었습니다. 이 부분은 입시 학원처럼 변한 학교 비판도 담고 있어서, 약간 사회파스러운 느낌도 전해줍니다. 초반에 이탈했던 이케타의 어머니가 다른 애들이 갇혀 있을 때 공부를 따라잡아야 한다고 종용하는 장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게임 외 설정은 납득하기가 어렵습니다. 테러범들이 총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경찰이 48시간 동안 별다른 행동을 하지 못하는 것은 이상합니다. 학생 두 명이 초반에 돌아가는 등 통제도 제대로 되지 않고요. 또 학생들이 왜 계속 게임에 참여해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도 불충분합니다.야스다 선생은 학생들을 성적과 입시 기준으로 대하던 교사입니다. 과거에 낙오한 학생 미토메가 누구인지도 대부분 몰랐고요. 그런데 학생들이 야스다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부자연스럽습니다. 

테러범들의 목적도 불분명합니다. 이들이 낙오한 가장 큰 이유가 야스다 선생 때문이라면, 복수의 대상은 야스다로 한정하는게 당연합니다. 그런데 학교를 점령하고 학생들에게 퍼즐 게임을 시킨 이유는? 전혀 와닿지 않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퍼즐을 찾는 과정과 학생들의 심리 묘사를 통한 긴장감은 제법이지만, 설정과 동기 등의 측면에서 완성도는 부족합니다. 추천할 만한 작품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