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출 업계를 전면에 내세운 장편 웹소설입니다. 자주 찾는 커뮤니티에 작가분이 계신 덕분에 우연찮게 알게 되어 읽게 되었습니다.
가장 돋보이는건 배경이 되는 사출 업계에 대한 치밀한 조사와 설명입니다. 생산과 영업 정도만 훑고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중국 동포와 탈북민 고용 문제, 현장 생산 환경, 원료 수급, 노동자들의 처우와 수당 문제까지 폭넓게 다루고 있는 덕분입니다.
또한 단순히 용어나 업계 분위기를 가져다 붙이는 수준에 그치지 않고, 그 배경 자체를 이야기의 동력으로 끌어들이고 있다는 점도 좋습니다. 노동 환경 개선 문제나 공장장과의 갈등, 현장 내부의 자체적인 규율, 고부가가치 상품 개발과 공장 확장, 원료 수급 등의 실제 공장 내 환경이 이야기의 소재로 사용되어 업계물로서의 현장감은 압도적이라 할 수 있어요.
웹소설답게 호흡도 빠르고 전개도 시원시원합니다. 문장이 어렵지 않고 사건이 일사천리로 진행되기 때문에 가독성도 좋은 편이에요. 실제 기업을 연상하게 만드는 설정 역시 이 소설의 재미를 높여 주는 요소입니다. 남양, 매일유업, 오뚜기(아마도?) 같은 현실 기업들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들이 있는데, 기업 구조와 이해관계를 보다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게 해 줍니다.
주인공의 성공 방식도 나름 인상적입니다. "재벌집 막내아들"이나 "상남자"처럼 이미 알고 있는 미래를 발판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이 작품의 이과장은 자기 힘으로 성과를 만들어 가기 때문입니다. 정도 경영과 사원 복지를 성공의 발판으로 삼고, 유튜브를 성공의 도구로 활용하는 설정은 판타지스럽기는 하지만 아주 거슬리지는 않습니다. 앞서 말한 철저한 업계 조사가 뒷받침된 덕분이지요. 한성에서 태성으로 자리를 옮긴 뒤, 된장 계량 스푼에서 시작해서 친해진 '본부장'의 절대미각을 살린 '본부장 부대찌게'와 '본부장 커피' 런칭에 힘을 보태 성공을 거두는 부분까지는 읽으면서도 꽤 그럴듯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서사와 소재가 잘 짜여져 있었거든요.
그러나 본부장 커피 이후는 솔직히 망작입니다. 그냥 판타지로 전락해 버리는 탓입니다. 게다가 중국 진출 시점부터는 그야말로 가관이에요. 여러 활동을 통해 이과장(이 시점부터는 이사장이지만) 중국에서 일종의 계몽 활동을 펼치다가, 심지어 시진핑 주석까지 만나는 식으로 흘러가는데 이게 뭔가 싶더라고요. 현실적인 산업 현장 서사와 기업 성장담이 이 작품의 강점이었는데, 그와는 동떨어지는 황당무계한 전개였습니다.
등장인물들도 그리 매력적이지 않습니다. 인물들이 상당히 전형적이거든요. 이과장은 착하고 정의로운 인물이며, 그의 아내 오세정도 비슷한 결을 공유합니다. 잘생긴 처남 캐릭터는 설정만 놓고 보면 조금 튀는 편이지만, 결국 엄청나게 착한 훈남이라는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래서 서사가 길어질수록 캐릭터의 힘이 떨어집니다. 러브라인도 특별한 긴장감이나 설렘을 주지 못해 보는 맛이 약합니다. 이야기 전체가 산업과 경영 쪽으로 무게를 두고 있다 해도, 인물 관계에서 오는 흡인력이 조금만 더 있었더라면 훨씬 풍성한 작품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아니면 생생함이 탁월한 외국인 노동자나 탈북자를 좀 더 중요하게 썼더라면 독특한 맛이라도 살렸을 텐데 말이지요.
등장인물들의 설정 활용도 아쉽습니다. 대표적인게 이과장의 탁월한 시력에 대한 설정입니다. 처음에는 뭔가 중요한 장치처럼 보이는데, 막상 이야기 전체를 놓고 보면 특별한 역할을 하지 못합니다.
결말도 영 별로에요. 태성을 대기업으로 키워 내는 쪽으로 끝까지 밀어붙이거나, 반대로 판타지성을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확실한 방향성을 가졌어야 하는데 일종의 번아웃 상태에서 대충 살기로 마음먹는다는 결말이라서 성공기라는 측면에서도 애매하고 판타지 서사라는 측면에서도 애매해져 버렸습니다. 한마디로 허무해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업계물로서의 사실감과 가독성, 그리고 국내에서의 성공담이 주는 재미는 분명합니다. 특히 사출 업계에 대한 묘사만큼은 대단한 강점이고요. 그러나 여러 단점들로 인하여 전체적인 만족도는 많이 떨어집니다. 재미가 아주 없는 작품은 아니지만, 선뜻 추천할 만한 작품은 아닙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