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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0/25

소실점 (2026) - 청웨이하오: 별점 2.5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 아파트에서 집을 나선 소년 창눠가 사라졌다. 집을 나선 뒤 건물 현관에는 나타나지도 않았다. 친하게 지냈던 잉잉 누나의 집인 302호에 들렀다는 사실이 드러났지만, 그곳에서 어디로 어떻게 사라졌는지는 알 수 없었다.

2. 도박에 빠진 옌우는 빚에 쫓기다 급사한 아버지의 돈을 써버린 뒤, 아버지 시신을 은닉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한다.

3. 린위퉁은 예전에 살던 집에서 성폭행을 당해서 이사했다. 이 사실을 우연히 공유하게 된 회사 동료 아준과 함께 사건 수사에 나선다. 

별개로 보이는 세 개의 사건이 동시에 펼쳐지는 중국산 범죄 스릴러 영화입니다. 추천하는 기사를 읽고 넷플릭스를 통해 감상했습니다.

위의 세 사건이 하나로 모이는 과정이 돋보입니다. 아이의 실종, 시신 은닉, 과거의 성폭행 사건을 차례로 보여주면서 각각의 의문이 다른 사건의 해답으로 이어지도록 구성된 덕분입니다.

요약하자면, 아이의 실종은? 잉잉의 집 302호와 옌우의 집 301호를 잇는 비밀 통로 때문에 벌어졌습니다. 통로를 발견한 창눠가 301호에 들어왔다가, 마침 시신 은닉을 하던 옌우와 마주쳐서 감금당했던 겁니다. 과거 성폭행 사건은? 302호에 사는 잉잉의 아버지 쉬즈제가 비밀 통로를 통해 저질렀습니다. 그는 인테리어 공사 업자라는 직업을 이용해 두 집을 잇는 통로를 만들었고요.

이러한 진상이 드러나기까지, 잘 배치된 단서와 복선으로 이야기를 차근차근 쌓아 올리는 전개도 좋으며, 스릴러물답게 긴장감도 잘 불어넣고 있습니다. 대표적인게 옌우 시점의 촬영분입니다. 아버지의 시신을 숨겨야 하는 그의 상황을 따라가는 화면에서는 갑갑하면서도 날이 선 듯한 긴장감이 잘 전해집니다. 당장 무슨 일이 터질 것 같은 불안감을 영상으로 잘 살리고 있어요.

그러나 다소 길다는 단점은 있습니다. 특히 린위퉁과 아준의 관계를 보여주는 대목이나 두 사람이 탐정처럼 사건을 추적하는 과정이 너무 길어요. 사실 아준은 나올 필요도 없고요. 이런저런 불필요한 요소를 쳐내고 두 시간이 훌쩍 넘는 러닝타임을 조금 줄였다면 더 좋았을 겁니다.

전개도 아주 매끄럽지만은 않습니다. 인물의 행동이나 사건을 연결하는 방식에 작위적인 부분이 있는 탓입니다. 잉잉이 지나치게 입을 다무는 이유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고, 옌우가 시신을 숨기는 데 필요한 타일을 산 곳이 하필 쉬즈제의 가게였다는 우연도 지나칩니다. 쉬즈제가 옌우를 찾아가 다그치는 장면도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이웃집 남자가 사람을 죽일 배짱도 없는 인물이라는 사실을 무슨 수로 확신한 것일까요? 평소 만만하게 보았더라도 옌우 부친의 시신을 발견한 순간에는 질겁하는게 당연합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옌우를 몰아붙이는 태도는 억지스러웠어요.

옌우의 집이 쉬즈제의 바로 이웃집이라는 사실을 마지막 순간까지 감추는 방식도 반칙처럼 느껴집니다. 관객은 알려주지 않은 정보를 알 방법이 없으니까요. 물론 이 관계를 일찍 드러냈다면 비밀 통로와 실종의 진상이 뻔해졌겠지만, 그렇더라도 핵심적인 공간 정보를 감춘 채 유지하는 반전은 아쉬움이 남을 수 밖에 없네요.

아울러 경찰이 너무 하는 일이 없다는 점도 아쉽습니다. 아이가 건물 밖으로 나간 흔적이 없다면 당연히 아파트 전체를 철저히 조사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랬다면 옌우의 범행과 실종 사건의 진상은 훨씬 일찍 드러났을 것입니다. 수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수수께끼가 유지된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습니다.

그래도 전체적으로는 잘 만든 범죄 스릴러라는건 분명합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2026/10/24

장국의 알타이르 1~27 -- 카토 코토노: 별점 2.5점

루메리아 대륙의 상업 국가 투르키에는 13인의 장군들에 의해 통치되는 '장국'이다. 17세의 나이로 장군에 오른 마흐무트는 12년 전, 빌트리안 제국과의 전쟁으로 가족을 모두 잃었던 경험 때문에 전쟁을 막고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대륙의 패권을 노리는 발트라인 제국은 결국 전쟁을 일으켰고, 마흐무트는 주변국들과 '반제 동맹'을 결성하여 이에 맞섰다. 

초전, 카리르 장군의 대패에도 불구하고 마흐무트는 제국 육군을 패퇴시켰고, 독약의 자가노스 장군이 이끄는 동맹군이 제국의 수도 성 미하엘을 포위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제국의 여장군 레레데릭이 일으킨 군대가 반대로 투르키에의 수도인 금색 도시를 향해 진격했고, 양측의 수도를 둘러싼 마지막 공방전이 벌어지는데...

총 27권으로 완결된 장편 만화입니다. 가상의 대륙을 무대로 투르키에 장국의 젊은 장군 마흐무트가 발트라인 제국의 팽창에 맞서는 과정을 그린 작품으로, 정치와 외교, 전쟁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거의 15년 전에 1권을 접하고 재미있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간 읽지 않고 있다가 모처럼 기회가 되어 읽게 되었습니다.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중동의 이슬람 국가를 연상시키는 투르키에 장국의 장군이 주인공이라는 점입니다. 실제 역사를 모방한 가상 역사물은 적지 않지만,  오스만 제국을 비롯한 중동 국가들은 적대 세력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신기했어요. 

그리고 거대한 대륙의 패권을 둘러싼 이야기를 다룬다는 점에서 대하 서사물로 볼 수 있습니다. 등장하는 국가와 인물도 많고, 외교적 이해관계와 전쟁 양상도 제법 복잡하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27권이라는 적당한 분량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했다는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합니다. 비슷한 규모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지나치게 분량을 늘리거나 마무리에 실패하는 작품도 적지 않은데, 적어도 이 작품은 결말까지 이어지는 과정은 깔끔한 편이에요. 

무엇보다도 이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은 전투 묘사입니다. 주요 전투마다 승패를 결정짓는 요소가 비교적 명확하고, 특별한 기술과 신무기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4장국의 반란군을 상대로 벌인 전투입니다. 마흐무트는 압도적인 병력 열세에도 불구하고 승리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동궁(총)'이라는 신무기였습니다. 발트라인 제국의 수도를 방어하는 철벽의 성, 성 미하엘 공략에서도 거대한 대포인 '경고의 종'이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고요. 중해에서 펼쳐지는 해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베네딕크 함대가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는 새로 만든 기동성 높은 갤리선과 꺼지지 않는 불인 '포이니크스의 등' 덕분이었습니다.

이처럼 새로운 무기와 기술이 전투의 승패를 좌우한다는 설정도 재미있지만, 단순히 무기의 위력만으로 승부가 결정되지 않는다는 점도 마음에 듭니다. 전투 상황과 지형, 병력의 특성을 이용하는 다양한 전략과 전술이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4장국의 반란을 진압할 때 마흐무트가 나뭇가지를 이용했던 전략이나, 발트라인 제국의 피노 장군이 투르키에 장국의 카리르 장군을 섬멸할 때 펼쳤던 매복과 포위 방진이 좋은 예입니다. 무르물로 분지에서 벌어진 전투의 기병대 운용도 인상적이고, 제국 남령군을 따라잡기 위해 벌이는 기마 추격전 역시 흥미진진합니다. 특히 해안선을 달리는 장면은 작품에 등장하는 수많은 전술 중에서도 백미라고 할 만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개별 전투의 구성과 비교하면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외교와 전략은 의외로 허술한 편입니다. 우선 마흐무트가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무역에 뛰어드는 전개는 억지입니다. 밀짚을 비롯한 상품의 교역으로 국가 간 전쟁을 막을 수 있다는 발상 자체가 그다지 설득력 있게 다가오지 않는 탓입니다. 물론 무역을 통해 국가 간 분쟁을 막는 전략은 현실에서도 사용되기는 하지만, 이게 석유같은 거라면 모를까 짚단 정도로 전쟁을 막는다는건 말도 안되지요. 게다가 어차피 전쟁은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라서 이러한 무역 이야기는 분량 낭비에 불과합니다.

마흐무트의 성공이 지나치게 운에 좌우된다는 점도 문제입니다. 위기에 처하거나 무언가 필요한 상황이 되면, 마침 그 문제를 해결해 줄 사람이나 물건이 등장하는 식입니다. 우라도 왕국의 비료처럼요. 이런 방식으로 위기를 해결하다 보니 천재라는 마흐무트의 설정에도 불구하고 그 능력이 충분히 설득력 있게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등장인물들이 지나치게 평면적이라는 점도 아쉽습니다. 대부분의 인물은 자신이 소속된 국가나 조직에 무한한 충성심을 보이며, 명령에 충실하게 따를 뿐 배신이나 개인적인 야심은 거의 드러내지 않습니다. 물론 군인이라면 명령에 복종하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국가의 운명이 걸린 전쟁과 권력 투쟁을 다루는 작품에서 거의 모든 인물이 이토록 단순하게 행동한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른 대립과 갈등이 부족하다 보니 정치극으로서의 깊이도 떨어지고요. 

인물의 기본적인 설정 역시 전형적입니다. 어린 나이에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는 천재 마흐무트부터 시작해서, 주변 인물들 역시 익숙한 유형을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방대한 세계관과 복잡한 국가 관계에 비해 등장인물의 성격과 행동 방식이 너무 단순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때문에 대하 서사물인데도 불구하고 군웅물로 보기에는 어렵습니다.

전투에서 적의 지휘관을 제거하는 전략이 지나치게 자주 등장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지휘관을 잃은 군대가 혼란에 빠지는 것은 당연하고, 지휘관 제거를 노리는 작전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는 대장만 죽이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식의 도박수가 너무 많이 등장합니다. 전투의 규모와 양상이 달라져도 이런 방식이 반복되다 보니, 정교한 전략보다는 성공 여부를 장담할 수 없는 모험에 지나치게 의존한다는 인상을 줍니다.

후반부에 이르면 이런 문제점은 더욱 두드러집니다. 마지막 전쟁은 투르키에 장국의 자가노스 장군이 발트라인 제국의 수도 성 미하엘을 먼저 함락시키느냐, 아니면 레레데릭이 장국의 금색 도시를 먼저 점령하느냐의 시간 싸움으로 전개됩니다. 그런데 이 경쟁이 과연 얼마나 의미 있는 것인지 의문입니다. 레레데릭이 금색 도시를 함락시킨다고 해도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레레데릭의 군대는 이미 투르키에 장국의 한복판까지 깊숙이 진격해 있습니다. 주변 동맹국들의 군대가 규합되어 포위망을 형성한다면 장기간 버티기 어려운 처지입니다. 무엇보다도 병력을 보충할 방법이 사실상 없다는 것이 치명적입니다. 포에니 전쟁 당시 이탈리아 깊숙이 진격해 여러 차례 로마군을 격파했지만 결국 전쟁 자체를 끝내지는 못했던 한니발의 사례가 떠오릅니다. 적국의 수도를 점령하는 것이 군사적으로나 정치적으로 큰 성과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만으로 전쟁의 최종 승리까지 보장되는 것은 아닙니다.
반면 자가노스가 공격하는 성 미하엘은 상황이 전혀 다릅니다. 발트라인 제국은 이미 주요 영지를 모두 잃었고, 수도는 외부와의 통로도 거의 단절된 채 고립되어 있습니다. 이런 상태라면 성 미하엘의 함락은 결국 시간문제일 뿐입니다. 두 전선의 전략적 상황이 이토록 다른데도 마치 어느 쪽이 먼저 상대의 수도를 점령하느냐에 따라 전쟁의 승패가 결정될 것처럼 묘사하는 것은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제국 황제의 항복 역시 이해하기 어려운 전개입니다. 성 미하엘에는 여전히 7만여 명의 상비군이 남아 있는데도 황제는 전면 항복을 선택합니다. 물론 수도가 고립되고 전쟁에서 패배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점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차피 제국이 멸망하면 황제 자신도 목숨을 보장받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그렇다면 마지막까지 남은 병력을 총동원해 승부를 걸어야 하는 것 아닐까요? 적어도 그 정도 병력을 보유하고 있다면 결전을 시도할 여지는 충분해 보입니다. 대장군까지 직접 전선에 나서 레레데릭과 맞서 싸우는 투르키에 장국의 모습과 너무나 대조적입니다. 제국 황제가 모든 것을 포기하고 항복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되었어야 했습니다.

제국의 항복 이후에 이어지는 이야기는 사족에 가깝습니다. 투르키에 장국이 새로운 패권국으로 나아가기 위한 과정이라는 설명과 함께 이후의 정세가 제시되지만, 전쟁이 끝난 뒤라 긴장감이 크게 떨어집니다. 새로운 국제 질서의 형성이라는 주제를 다루려는 의도는 알겠지만, 별다른 흥미나 재미를 느끼기 어려웠습니다. 작품의 주된 갈등이 해소된 시점에서 굳이 이만큼의 설명을 덧붙일 필요가 있었는지도 의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국의 알타이르"는 충분히 읽어볼 만한 작품입니다. 전쟁의 전체적인 흐름과 외교적 전략에는 허점이 많고 인물 묘사도 단순하지만, 개별 전투만큼은 상당히 공들여 구성했습니다. 실제 역사를 연상시키는 다양한 국가와 문화를 배경으로 신무기, 기발한 전술, 대규모 회전과 공성전, 해전 등을 두루 보여준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입니다. 대륙의 패권을 둘러싼 거대한 이야기를 27권으로 마무리했다는 점도 장점이고요.

결론적으로 별점은 2.5점입니다. 치밀한 정치극이나 깊이 있는 인물 묘사를 기대한다면 아쉬움이 남겠지만, 다양한 무기와 전략이 등장하는 흥미진진한 중세 전쟁 만화를 좋아한다면 추천드립니다.

2026/10/23

400년의 유언―죽음의 정원의 죽음 - 츠카토 하지메: 별점 4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교토의 사찰 류온지에서 정원사 이즈미 시게타케가 목에 공구가 박힌 채 소년을 끌어안고 발견되었다. 역사사물보전재단 직원 가와베 다쓰헤이 역시 옷이 앞뒤로 바뀌어 입혀지고 양쪽 손목이 절단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경찰은 두 사건이 4년 전 류온지에서 벌어진 시게타케의 아들 신타로 살인 사건과 관련이 있다고 보고 수사에 나섰다.

신사와 사찰을 순회하는 보안원 가게야마는 시게타케의 마지막 순간을 지켜본 인연으로 사건에 뛰어들었다. 그가 남긴 말의 의미를 추적하던 가게야마는 일련의 사건을 풀 열쇠가 류온지의 창건과 역사에 얽힌 수수께끼에 있음을 알아내는데…….

정말 오랫만의 독서입니다. 국내에는 소개되지 않아서 원서를 번역해서 읽었습니다. 

교토의 사찰 류온지를 주 무대로 하는 작품인데, 류온지의 구조를 장황하게 설명하는 초반부는 다소 지루하지만 중반부터는 굉장히 재미있어서 깜짝 놀랐습니다. 가쿠레 키리시탄의 역사와 센노 리큐의 할복, 리큐의 기독교 신앙에 관한 가설을 류온지라는 가공의 절에 결합한 상상력이 대단하기 때문입니다.

류온지가 실은 박해받는 기독교 신자들의 성당이었다는 발상도 신선하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들도 탄탄합니다. 앞서 장황하게 설명했던 류온지의 구조는 물론이고 정원석과 석등, 건물과 족자의 기묘한 특징들이 성당의 기능과 상징을 감추기 위한 것이었다는걸 합리적으로 설명하는 덕분입니다.
족자 "네마겐게쓰"의 비밀이 대표적입니다. 이 그림은 도코노마 너머에도 공간이 이어지는 듯한 착시를 만드는데, 그 가상의 공간을 실제 건물에 더하면 오쿠쇼인 전체가 거대한 십자가가 된다는 것이지요.
단순한 학술적 토론에 그치지 않고, 석등에 불을 붙인 뒤 ‘용의 꼬리를 움직여라’라는 전승에 따라 잉어돌을 움직이자 석등이 회전하며 빛의 십자가가 나타나는 장관으로 이를 극대화하는 연출도 좋습니다. 우물 속 성모상이 드러나는 장면도 인상적이에요.

리큐의 할복과 뒤이은 류온지 초대 주지 료도의 할복을 기독교 신앙과 연결하는 설명도 지적 재미를 더합니다. 리큐에 관한 가설의 진위와 별개로, 작품 안에서는 설득력 있게 활용됩니다. 나름대로 팩션같은 느낌도 주고요.

현대를 무대로 한 본격 추리소설로서의 가치도 높습니다. 시케타케를 살해한 범인이 현장에서 도주할 수 없었다는 불가능 범죄, 범인 군지의 알리바이 트릭 등 수수께끼와 트릭이 풍성한 덕분입니다.

추리를 위한 단서 제공도 공정합니다. 예를 들어 시케타케 사건의 경우, 피해자가 설치했던 장치로 일어났다는게 밝혀집니다. 피해자를 살해한 흉기였던 버어니어 캘리퍼스(밧줄 고정 용도), 가게야마가 발견한 나무에 걸려있던 밧줄, 쓰토무 소년이 목이 졸렸던 이유, 시케타케가 오래전 사냥 등으로 생활했다는 등이 단서로 제공됩니다.

이런 유형의 작품에서는 보기 드물게 경찰의 활약도 인상적입니다. 군지를 범인으로 지목한 사람은 다카시나 형사거든요. 그는 '조작된' 녹음테이프에 담긴 팩스 작동음의 시각이 군지가 팩스를 보냈다고 증언한 때와 일치한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또한 ‘온기쿠’의 배송 차량에 위치 추적기를 부착해 알리바이를 꾸몄다는 사실도 간파하지요. 피해자 가와베의 손목을 자른 이유도 추론을 통해 밝혀내고요. 간만에 보는 경찰의 활약이었어요.

하지만 대담한 상상력은 돋보이지만, 16세기에 창건된 류온지에 이처럼 정교한 장치들이 설치되었다는 것도 현실성이 높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류온지의 구조에 대해서는 장황하게 설명하지만, 장치들의 동작 원리는 아무런 설명이 없는 것도 문제고요. 그리고 설령 당시에는 작동했더라도 수백 년이 지난 현재까지 그대로 움직인다는 점은 비현실적입니다.
탐정 역인 가게야마가 시게타케의 친아들이었다는 반전과 친구 다카시나의 아내에게 연심을 품고 있다는 설정도 굳이 필요하지 않았고요.

그래도 단점은 사소합니다. 별점은 3.5점입니다. 여러모로 볼거리가 많은 작품인만큼, 국내에도 정식 소개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