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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6/19

스와이프 엄금 - 치넨 미키토 / 김은모 : 별점 1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는 밝은 미래를 위해 선배 야에가시가 부탁한 '도메키의 동네'라는 괴담 조사를 나섰다. 인터넷 검색 등을 통해 도메키의 피해자였던 아메치의 정보를 입수하여 도메키의 동네가 어디인지 알아냈지만, 현장 조사 후 나에게 '도메키'가 들러붙은걸 알게 되었다... 

한쪽에는 본문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휴대폰 앱 화면이나 관련 그림이 실려 있는 그림책에 가까운 단편입니다. "유리탑의 살인" 등으로 유명한 치넨 미키토의 신작으로 밀리의 서재를 통해 읽었습니다.

형식만큼은 휴대폰 중심의 이야기와 잘 어울립니다. 메시지, 위치 정보, 앱 인터페이스처럼 보이는 화면이 동일한 내용의 본문과 함께 펼쳐져서 독자가 화자와 똑같은 화면을 보는 느낌을 주는 덕분입니다. 

하지만 이외의 장점은 없습니다. 우선 괴담치고 무섭지 않은 탓이 가장 큽니다. "도메키의 동네"는 눈이 그려진 이미지 외에는 긴장감이 거의 없고, 도메키의 습격도 뻔합니다. 피해자들을 추적하는 매개체가 휴대폰이었다는 진상 역시 책의 형태와 도메키의 행태를 보면 쉽게 짐작되고요.

내용도 별게 없어요. 화자가 하는거라고는 앱에 표시된 내용을 확인하거나 검색하는게 전부입니다. 피해자인 아메치의 집을 찾아가 계정 정보를 얻는 정도를 빼면요.

처음에는 야에가시의 후배 가즈마가 화자였던걸로 보였지만, 사실 화자는 가즈마의 연인 루리카였다는 반전도 애매합니다. 교묘하게 서술 트릭을 쓴건 맞지만, 이 반전은 이야기와 별 관계가 없기 때문입니다. 화자가 누구였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어차피 가즈마와 루리카는 모두 죽거든요. 이래서야 그냥 서술 트릭을 활용한 깜짝쇼에 불과합니다.

그림도 아쉽습니다. 휴대폰 앱 화면처럼 꾸민 페이지는 형식과 잘 어울리는데 그 외의 일러스트는 영 별로에요. 분위기를 살리기는커녕 유치하게 보여 그렇잖아도 무섭지 않는 괴담으로의 가치를 더 떨어뜨립니다.

그래서 별점은 1점입니다. 독특한 편집 형식 하나를 제외하면 추천할 만한 부분을 찾기 어려운, 알맹이 없는 이야기를 일러스트로 포장했을 뿐인 망작입니다. 추천하지 않습니다.

2026/06/14

콘 비프 샌드위치를 먹는 밤 Season 2 : (7) 달콤한 커피의 뒷 맛

추리소설 속 커피는 대개 쓰고 진한 음료가 연상됩니다. 밤늦게 사건을 조사하는 탐정의 책상 위에 놓여 있거나, 피로를 쫓기 위해 마시는 각성의 음료처럼 등장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커피의 쓴맛은 긴장감이나 고독한 분위기와도 잘 어울리고요.

하지만 커피가 언제나 블랙으로만 통했던 것은 아닙니다. 커피에 설탕을 넣는 습관은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고, 우유나 크림을 더해 쓴맛을 줄이는 방식도 커피 문화 안에서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으니까요. 커피에 데운 우유를 섞어 마시는 프랑스의 카페오레, 커피에 크림과 설탕을 더해 마시는 비엔나식 카푸치노처럼요. 오늘날 익숙한 카푸치노와 카페라테, 카페모카 역시 에스프레소에 우유와 거품, 초콜릿 등을 더해 커피의 쓴맛을 부드럽게 조절한 커피입니다. 여기에 바닐라 라테나 캐러멜 마키아토처럼 향과 단맛을 더한 음료까지 생각하면, 달콤한 커피도 엄연히 커피를 즐기는 오래된 방식 중 하나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흐름을 생각하면, 추리소설 속에서 커피에 설탕이나 우유를 넣는 장면도 그리 이상할 것은 없습니다. 심지어 시간과 장소에 따라서, 설탕과 우유를 섞는게 커피를 마시는 익숙한 방식이었을 수 있습니다. "빙과"로 잘 알려진 고전부 시리즈의 "이제와서 날개라 해도"에 나오는 이바라가 방문한 커피 맛집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 가게에서는 주문할 때 우유와 설탕이 필요한지를 먼저 묻고, 필요하다면 각설탕 두 개를 내주고 우유는 커피에 미리 넣어 주거든요. 이는 요즘 기준으로 보면 조금 낯선 방식이지요. 보통은 손님이 직접 취향에 맞게 우유나 설탕을 넣으니까요. 하지만 이 작품을 통해, 이렇게 커피에 설탕과 우유를 더해 마시도록 준비된 곳도 있다는걸 알 수 있습니다.

아카가와 지로의 단편 "커피, 그리고 교수와 여대생"도 비슷합니다. 주인공 다케미야 교수는 집에서 직접 원두를 볶을 정도로 커피에 관심이 많은 인물입니다. 그런데 그런 그 역시 커피를 마실 때 자연스럽게 설탕을 넣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설탕은 커피 맛을 망치는 첨가물이 아니라, 커피에 진심인 사람의 취향에 따라 커피를 완성하는 하나의 방식이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보면 달콤한 커피는 생각보다 평범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추리 소설에서는 달콤한 커피를 여러모로 활용합니다.

첫 번째로는 강한 쓴맛과 단맛을 이용하는 경우입니다. 크리스티아나 브랜드의 단편 "잔 속에 든 독"에서 스텔라는 남편의 불륜녀를 모르핀으로 독살할 때 뜨겁고 진한 커피를 선택합니다. 설탕을 듬뿍 넣어서요. 이는 친절이나 취향이 아닙니다. 커피의 쓴맛과 설탕의 단맛이 모르핀의 이상한 맛을 덮어 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설탕 때문에 스텔라는 콕크릴 경감에게 덜미를 잡히고 맙니다. 단맛은 독을 감추는 것과 동시에 범행을 드러내는 단서가 된 셈입니다.

두 번째 사례는 단 맛이 아니라, 달콤하게 만든 형태가 트릭으로 사용된 경우입니다. 히가시가와 도쿠야의 단편 "키리가미네 료와 보이지 않는 독"에 등장하는 모카치노처럼요. 모카치노는 초콜릿 시럽을 섞고, 휘핑크림을 얹고, 초콜릿 가루를 뿌린 뒤 시나몬 스틱까지 꽂아 내는 음료로 커피라기보다는 디저트에 가깝습니다. 작품 속에서도 그 모습은 컵에 담긴 케이크처럼 묘사될 정도지요.

그런데 카도쿠라 할아버지가 모카치노를 마시다가 독살당할 뻔합니다. 당연히 의심은 모카치노로 향하지요. 초콜릿 시럽, 휘핑크림, 초콜릿 가루, 시나몬 스틱 등 여러가지 재료가 들어간 음료라면 달콤한 맛과 향이 이상한 냄새나 쓴맛을 쉽게 알아차리지 못하게 만들 것 같으니까요. 하지만 정작 커피와 시나몬 스틱 어디에서도 독은 검출되지 않습니다. 

다행히 결국 할아버지가 한쪽 손을 다쳤다는게 열쇠가 되어 진상이 밝혀집니다. 범인은 모카치노의 레시피를 활용하여 커피에 독을 넣지 않고 독을 먹였던 겁니다. 단순한 블랙 커피였다면 성립하기 어려웠을 트릭이라서, 특별한 커피 레시피가 수수께끼, 트릭의 형태가 된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 사례는 미나토 가나에의 "리버스"에 등장하는 달콤한 벌꿀을 넣은 커피입니다. 이 커피는 죽은 친구 히로사와를 떠올리게 하는 중요한 매개이자 반전의 핵심 역할을 합니다. 히로사와는 단것을 좋아하던 친구였고, 특히 벌꿀을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주인공 후카세가 카페에서 벌꿀을 커피에 넣어 마시는 장면은 처음에는 좋았던 추억으로만 보입니다. 커피에 꿀을 넣고 천천히 저어서 커피와 벌꿀이 자연스럽게 섞이게 만든, 들꽃 향이 입안에 퍼지는 듯한 맛은 히로사와와 함께 보냈던 시간을 떠올리게 하니까요.

하지만 후카세와 주변 사람들이 히로사와를 떠올리는 과정에서, 벌꿀은 점점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됩니다. 히로사와가 좋아했던 것, 후카세가 미처 알지 못했던 것, 그리고 과거의 어떤 순간이 커피 한 잔을 통해 다시 연결됩니다. 그리고 이는 핵심 반전으로 이어지고요.

이 점에서 "리버스"의 벌꿀 커피는 다른 작품 속 달콤한 커피와 조금 다릅니다. 앞서의 달콤한 커피들이 주로 범죄를 숨기기 위해 사용되었다면, "리버스" 속 달콤한 한 잔의 벌꿀 커피 안에는 우정과 기억, 그리고 아직 말해지지 않은 진실이 함께 담겨 있기 때문이지요.

커피의 쓴맛은 추리소설과 잘 어울립니다. 그러나 이렇게 보면 달콤한 커피도 못지않게 추리소설적입니다. 쓴 커피가 탐정의 정신을 깨운다면, 달콤한 커피는 사건의 표면을 부드럽게 덮습니다. 그리고 그 아래에서 뜻밖의 수수께끼가 천천히 드러나기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후카세가 히로사와를 위해 만들었던 벌꿀 커피 레시피를 소개하며 글을 마칩니다. 작품 속에서는 후카세는 융 필터로 정성스럽게 내린 커피에 벌꿀을 넣어 텀블러에 담아 히로사와에게 건네 주었지만, 집에서는 조금 간단하게 만들어도 좋습니다.

  1. 커피를 진하게 내린다.
    가능하다면 핸드드립이나 융드립처럼 향이 잘 살아나는 방식이 좋고, 산미가 강한 커피보다 부드럽고 묵직한 원두가 어울린다. 집에 드립 도구가 없다면 평소보다 조금 진하게 내린 아메리카노를 사용해도 괜찮다.
  2. 컵이나 텀블러를 미리 데운다.
    뜨거운 물을 잠시 담았다가 버리면 커피가 빨리 식지 않는다. 작품 속 후카세처럼 누군가에게 건넬 커피라면 텀블러에 담는 쪽이 더 어울린다.
  3. 벌꿀을 넣는다.
    가볍게 단맛만 더하고 싶다면 1티스푼이면 충분하다. 설탕 한 스푼 정도의 단맛을 원한다면 벌꿀은 2~3티스푼 정도 넣는 편이 좋다.
  4. 바닥까지 천천히 젓는다.
    벌꿀은 설탕보다 무겁고 끈적해서 컵 아래에 가라앉기 쉽다. 스푼으로 바닥을 긁듯이 천천히 저어 커피와 잘 섞는다.
  5. 토스트와 함께 먹는다.
    "리버스"를 떠올린다면 허니 토스트를 곁들이는 것도 좋다. 바삭하게 구운 토스트에 버터를 바르고, 남은 벌꿀을 조금 뿌린다.

# 시리즈 전체 보기

2026/06/13

아비무쌍 - 노경찬 / 이현석 : 별점 2점

무협 웹툰인데 초반에는 설정이 신선해서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제목 그대로 주인공 노가장이 무림의 영웅이나 천하제일인이 아니라, 세 아이를 먹여 살려야 하는 홀아비 가장으로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사별한 아내가 남긴 세 쌍둥이를 키우기 위해 그는 원래 하던 해결사 일을 접고, 안정적인 직장인 천룡회 무사로 취직합니다. 그리고 이후 10년 넘게 문지기로 일하며 아이들을 키운다는 설정이지요. 이 과정에서 추가 보수를 위해 위험한 임무를 맡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노가장은 문파의 원한, 가문의 복수, 천하제일을 향한 야망 같은 동기는 없습니다. 오로지 아이들을 굶기지 않고 무사히 키우는데 주력하지요. 무림의 명성보다 월급과 안정성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요. 이런 생활감 넘치는 설정은 그간 제가 읽었던 무협이라는 장르물에서는 정말이지 처음 봤습니다.

그리고 노가장이 상당한 실력자이면서도 스스로를 하수라고 생각한다는 점도 재미 요소입니다. 그는 자신의 무공을 무림인들에게 비하면 별것 아니라고 여기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처음 만났던 무림인이 무림 5존의 한 명인 관존이었기 때문에 묵사발이 났던 것 뿐이지요. 하지만 스스로를 과소평가하는 노가장은 어떤 임무를 맡던 살아남는걸 최 우선 과제로 삼아 해결사 일을 하며 쌓은 경험과 실전 감각으로 여러 위기를 돌파합니다. 

노가장의 세 쌍둥이 아들과 딸에 대한 이야기가 교차해서 진행되는 부분도 괜찮습니다. 무공을 배우고, 각자의 성향에 맞게 성장하며, 점점 자기 길을 찾아가는 과정은 전형적인 무협지 서사라서 재미가 없을 수 없으니까요. 아들들과 딸의 개성도 뚜렷하고요.

작화도 좋습니다. 그림체도 독특하지만 액션 장면에서 속도감과 무게감이 빼어납니다. 검과 주먹이 부딪치는 장면, 인물의 움직임, 타격의 순간 표현이 시원하며 절묘합니다.

그러나 이런 장점들은 비교적 초, 중반부이며 후반으로 가면 흐려져 버리고 맙니다. 노가장이 무협지 속 절정고수의 반열에 오르며 가장 매력적이며 특별했던 '홀아비 가장의 외벌이 육아 생존기'라는 신선했던 컨셉이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다른 뻔한 무협지와 다를게 없어집니다. 

물론 십 여년이 지나, 노가장이 무시받는 수모와 천룡회 내부 암투에 휘말려 부하를 잃은 복수를 위해 스스로의 자리를 만들려는 움직임만큼은 흥미롭습니다. 이 과정에서 무림인을 정리하려는 관존의 음모와도 얽히는데, 이 역시 기존 무협지에서는 보기 힘든 설정이고요. 그러나, 이런 이야기를 하려면 다른 쓸데없는 설정은 쳐냈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신교의 우두머리 천소소가 왜 등장하는지 전혀 모르겠습니다. 행복이를 비롯한 여러 조연도 마찬가지고요. 게다가 비교적 비중이 높았던 천룡회 내부 암투가 순식간에 정리되는 전개도 솔직히 어이가 없었습니다.

핵심인 오문 설정이 지나치게 만화적이라는 문제도 큽니다. 오행의 성질을 따른다는 설정은 그렇다 쳐도, 사람이 불이나 흙처럼 변해 마인이 된다는 표현은 유치했습니다. 노가장이 신존이 되는 과정도 충분히 설득력 있게 그려졌다고 보기는 어렵고요. 사부가 어떻게 기운을 가져갔는지, 노가장의 변화가 어떤 원리로 이루어졌는지 등이 명확하게 설명되지 않는 탓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초반 설정만큼은 분명히 신선하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작품 고유의 색깔이 약해지고, 평범한 강자 중심 무협물에 가까워지는 점은 아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