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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21

잔혹한 여로 - 야마무라 미사 : 별점 2점

일제 강점기 당시 조선에서 거주한 적이 있을 정도로 우리와 인연이 있는데, 국내에는 제대로 소개된 적이 없는 일본 여성 추리작가 야마무라 미사의 초기 단편집입니다. 설 연휴 때 원서로 읽었습니다. 

모두 일곱 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의외였던건, 수록작 중 세 편은 트릭을 전면에 내세우는 정통파 본격 추리물이라는 점입니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는데 말이지요.

특히 "공포의 연하장"이 아주 괜찮습니다. 트릭은 다음과 같습니다.
남겨진 유류품을 통해 피해자는 당첨된 연하장을 상품인 우표와 오전 9시 이후에 교환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러나 유력한 용의자인 거래 증권회사 직원 가사하라는 오전 8시 40분에 출근했다는 철벽의 알리바이가 있습니다. 연하장은 가사하라가 보냈지만, 사전에 당첨 유무를 아는건 불가능해서 미리 알리바이를 만들 수도 없고요.
다카기 경부는 연하장에 소인이 없는 점(연하장은 12월 22일까지 접수분은 1월 1일 도착 보장이라 소인이 찍히지 않음)에 주목해서, 빌견된 당첨 연하장은 가사하라가 사건 당시에 가지고 간 것이라고 추리합니다. 당첨 연하장을 가사하라가 미리 확보할 수 있었던 건 증권회사가 직원에게 연속 번호의 연하장 500장을 주는 전통 때문이었습니다. 연하장 추첨에서 최하등 우표는 100장당 반드시 3장 당첨되므로, 가사하라는 보내지 않고 남겨 둔 100장의 연속 번호 연하장만 있어도 반드시 당첨 엽서를 확보할 수 있었지요. 즉 가사하라는 당첨 번호 발표 후 보관 중이던 연하장 중 당첨된 것을 고른 뒤, 사건 당일 피해자 집에 들고 가서 피해자를 살해하고 집에 있던 자기가 보낸 진짜 연하장과 바꿔치기했던 겁니다. 상품은 따로 교환해서 시체를 발견하러 갔을 때 몰래 피해자 주머니에 넣었고요.

이렇게 일본의 연하장 풍습과 증권 회사의 전통 등을 잘 결합하여 만들어 낸, 최근 본 작품 중에서도 손에 꼽을 만큼 멋진 트릭입니다. 완벽한 알리바이였지만, 가사하라가 원래 피해자에게 보냈던 연하장이 드러나면서 범행이 밝혀지는 결말까지 깔끔합니다.

피해자와 가사하라의 육체 관계와 같은 불필요한 설정과 진짜 연하장이 발견되는건 순전히 운이었다는 단점은 있지만, 이 정도면 별점 4점도 충분한 수준입니다.

"검은 테두리의 사진"은 오사카로 출장간 범인이 전날 사진으로 찍어 두었던 방송이 오사카에서는 그날 방송된다는걸 알고난 뒤, 전날 찍었던 사진을 알리바이에 이용한다는 도서 추리물입니다.
사실 트릭이 대단하다고 보기는 어렵고, 우연과 운이 지나치게 많이 좌우되는 전개도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도쿄와 오사카에서는 같은 방송이라도 방송하는 채널이 다른데, 경찰이 이를 눈치채고 체포한다는 결말도 설득력이 약했고요. 앞서 범인 오사와는 '화면만 사진에 담았다'고 분명히 말하고 있으니까요. 채널 다이얼이 어떻게 보였다는건지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결말에서 호텔 종업원이 오사와의 알리바이를 깨는 증언을 했다고 증언했다니, 사진 따위는 아무런 증거가 될 수 없습니다. 사실 사진은 다른 사람이 찍어줄 수도 있으니, 애초에 그리 탄탄한 증거라고 하기는 어렵지요.

그래도 TV를 찍은 사진을 알리바이에 사용한다는 설정만큼은 독특해서 눈길이 갑니다. 현재 시점에서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아날로그 방식인 덕분입니다. 시대를 초월하지는 못했지만, 시대상을 잘 반영한건 분명합니다.

"죽은 자의 손바닥"에서는 셀로판지를 이용하여 이미 죽은 사람의 손바닥 도장을 찍는 트릭이 나옵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위의 두 편 보다는 별로에요. 범죄물, 수사물, 추리물의 모든 측면에서 기대 이하거든요. 경찰의 추리는 근거없는 첫인상에 기반하고 있고, 범행 방법도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 탓입니다.

그런데 위의 세 작품을 제외하면 다른 작품은 모두 추리물로 보기도 어렵고, 내용도 그냥저냥합니다.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들어요. 간략하게 소개드리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잔혹한 여로"는 일종의 범죄 반전물입니다. 진범이 드러난 뒤 진범마저 개미지옥에 빠진다는 마지막 부분은 꽤 그럴 듯 합니다. "50퍼센트의 행복"은 오래 전 친자 감정 방식에 대한 상세한 소개가 볼만했던 치정 드라마이고요. 그러나 두 작품 모두 지금 시점에 읽기에는 너무 뻔합니다. 결말도 안이하고요.

"고독한 증언"은 일본항공 123편 추락 사고를 떠오르게 만드는 드라마입니다. 비행기 추락 사고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생존자 가사이 나오미의 증언을 회사측, 유족측이 제각각 제멋대로 유리하게 이용하려 한다는 내용이지요.
설정은 나쁘지 않지만 나오미의 고뇌를 심도깊게 다루지도 못했고, 밝혀진 진상 - 폭탄 테러 - 도 설득력이 약하며, 가사이 나오미가 결국 자고 있었다며 입을 다무는 결말도 영 아닌 탓에 점수를 주기는 어렵습니다.

"살의의 축제"는 오래전 살인 사건의 범인이 공소 시효가 지난 뒤, 돈으로 진범을 날조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동기가 되는 살인범으로 몰린 사람은 가족마저도 영원히 떳떳하게 살아갈 수 없는 일본의 분위기 묘사, 그리고 당시 범인과 유족 측 인물들이 당시 상황을 복잡하게 밝히는 결말은 꽤 인상적입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이미 국내에 소개된 걸 읽은 바람에 다소 김이 빠진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전체 평균 별점은 2점입니다만, 잘 모르는 작가의 진면모를 어느 정도 느낄 수 있었다는 점에서는 좋은 독서였습니다. "공포의 연하장"만큼은 국내에 소개되면 좋겠습니다.

2026/02/20

꽃다발은 독 - 오리가미 교야 / 이현주 : 별점 3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기세는 어린 시절 과외 선생이었던 마카베의 협박범을 잡기 위해 기타미 탐정 사무소를 찾았다. 소장 대리인 기타미는 기세의 중학교 선배였다. 마카베가 의뢰를 망설여서 기세는 직접 사건을 의뢰했고, 조사를 통해 협박은 마카베가 저질렀다는 4년 전 강간 사건과 관련이 있다는게 드러났다. 마카베는 누명을 썼다고 주장했지만, 결국 마카베는 모든 걸 잃고 학교마저 그만둔 채 지금에 이르렀다...

밀리의 서재를 통해 읽은 일본의 범죄 스릴러입니다. 분량이 비교적 간결한 편이라 집어들게 되었네요.

이야기는 결혼을 앞둔 마카베에게 익명의 협박장이 도착하면서 시작됩니다. 협박은 4년 전 그가 저질렀다는 강간 사건과 관련되었고, 협박범은 당시 피해자로 추정되지요. 그러나 마카베는 억울함을 호소하며, 기세도 그가 누명을 썼을 가능성에 무게를 둡니다. 기타미의 조사 과정을 통해 독자들도 ‘마카베는 억울한 피해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갖게 되고요. 이렇게 '원죄(엔자이)'를 다루는 부분은 살짝 사회파 느낌도 전해줍니다.
그러나 뒤이은 전개는 마카베가 정말 결백한 인물인지?에 대한 의심을 싹트게 하여 흥미롭습니다. 마카베의 모친도 그의 무죄를 믿지 않고, 마카베 가족이 왜 합의를 했는지에 대한 이유 - DNA 검출 -가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앞서 기세를 통해 소개된 마카베라는 인물과는 너무 다른 이야기라서, 독자로서는 놀라움을 느낄 수 밖에 없어요.

마지막에 드러나는 반전은 더 놀랍습니다. 앞서의 이야기와는 완전히 다른 방향에서 사건을 뒤집어 버리는 덕분입니다. 우선, 4년 전 사건은 피해자였던 나가노 가나미의 자작극이었습니다. 마카베에게 푹 빠진 나머지 그를 자기 것으로 만들고자 했던 목적이었지요. 그리고 그녀는 결국 성공해서 마카베와 결혼을 앞두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협박장은 이 사실을 알게 된 가나미의 아버지 나가노가 마카베를 돕기 위해서 보냈던 겁니다. 이렇게 독자가 자연스럽게 믿어온 전제가 뒤집히는 순간의 파괴력은 상당합니다. 이 반전이 결혼식 직전의 마카베에게 진상을 알릴지 말지에 대한 딜레마로 이어지는 결말도 충분히 흥미롭고요. 

그리고 반전은 협박장이 두 종류 - 강경한 경고와 정중한 문체 - 였다는 단서로 뒷받침되는데 이 역시 높은 점수를 줄 만 합니다. 기타미와 기세는 강경한 경고는 마카베에게 보냈고, 가나미가 받아볼 수 있는 협박장은 정중한 문체로 보냈다고 추리했습니다. 그러나 알고보니 나가노는 처음에 가나미에게 강경한 경고가 전달되도록 협박장을 보냈습니다. 부부의 이름으로 동거 중이라면 자연스럽게 아내가 우편함을 확인할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지요. 그는 딸의 정체를 알고 있었으니까요. 그러나 그 경고가 효과를 보지 못해서, 마카베에게 정중한 방식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려 했던 겁니다. 이렇게 등장인물은 물론 독자까지 공정하게 제공한 단서로 속여 넘기는데 성공했다는게 아주 좋았어요.
가나미가 마카베를 옭아매기 위해 벌였던 몇 가지 장치 - 당시 마카베가 연인과 시간을 보냈던 러브 호텔에서 아르바이트를 해서 DNA를 손에 넣었다는 등 - 도 설득력있게 설명되고요.

진상을 드러내기 위해 기타미가 벌이는 조사의 상세함도 최고 수준입니다. 주로 탐문과 관계자 면담이 중심이지만, 기타미는 피해자 이름을 알아내기 위해 마카베의 변호사 사무실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정보를 캐 내기까지 하는데 이는 법대생 기세의 입을 빌어 법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지 않는 선이라고 설명되거든요. 그야말로 일반 '탐정'이 조사할 수 있는 한계를 그려낸 느낌이에요.
개인이 받은 '협박장'이라는 비교적 가벼운 소재를 다룬 점도 현실적이라서 마음에 들었고요. 이 역시 일개 탐정이 해결할 수 있는 최대치의 범죄일테니까요.

그러나 마카베가 받는 협박의 원인이 4년 전 사건일 수밖에 없는 탓에 협박범이 그 사건의 피해자나 관계자일 거라는 예측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해자인 가나미를 찾아가는 과정이 너무 길어서 중반부는 다소 지루합니다.  
아울러 중학생 시절부터 탐정으로 활약해 왔다는 기타미의 설정은 이야기의 현실성을 저해합니다. 굳이 필요했던 설정은 아니었어요. 기세와 기타미의 1인칭 시점을 오가는 전개도 불필요해 보였고요. 

그래도 반전을 중심에 둔 일상계 범죄 스릴러로서의 미덕은 분명합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추리 소설 애호가라면 한 번쯤 읽어볼 만 합니다.

2026/02/15

더 립 (2026) - 조 캐너핸 : 별점 2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팀장 재키가 살해된 뒤, 팀장 대행 데인이 이끄는 팀은 밀고를 받고 출동한 현장에서 2천만 달러라는 거액의 현금을 발견했다. 돈을 빼돌리려는 데인에 맞서 제이디와 마이크 로는 각자 어떻게든 이를 저지하려 했지만, 조직의 습격 후 데인과 제이디의 대립은 격화되고 말았다. 결국 현장에 지인인 DEA 요원 마테오 팀이 출동하여 대립은 일단락되는 듯 보였지만, 압수 현금을 이송하던 중 놀라운 사실이 밝혀지는데...

 넷플릭스의 최신 장편 범죄 스릴러 액션 영화입니다. 연휴를 맞아 감상하였습니다. 2천만 달러의 현금을 둘러싸고 출동한 경찰 팀 내부의 갈등과 배신을 그린 작품으로, 거액의 돈, 부패한 경찰, 내부 밀고자라는 익숙한 재료를 활용하지만 반전이 포함되어 있다는게 다른 유사 헐리우드 액션 스릴러와 다른 점입니다.

이야기는 거액의 현금이 숨겨진 집에 경찰 다섯 명이 출동하면서 시작됩니다. 팀 리더 데인과 제이디, 마이크 로, 누마, 롤로 형사가 현장을 통제하고 집주인 데시와 대치하는 가운데, 단순한 압수 작전처럼 보이던 상황은 점점 미묘한 긴장감으로 변해 갑니다. 데인이 돈을 빼돌릴 의도를 드러내고, 제이디는 이에 의심을 품으며 같은 경찰이지만 서로 대립하게 되는데 이 전개가 아주 일품이에요. 절정부 직전까지 영화는 대부분 이 집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진행되며, 인물 수도 많지 않고 무대 역시 크지 않지만 흥미진진한 전개 덕분에 지루함을 느끼기 어렵습니다.
전개의 핵심은 부패 경찰과 그에 맞서는 경찰의 대립인데 데인 역의 맷 데이먼, 제이디 역의 벤 애플렉, 마이크 로 역의 스티브 연 등 화려한 이름값의 배우들이 호연을 펼쳐 설득력을 더해 주고요.

반전도 인상적입니다. 데인이 돈을 빼돌리려 했던 것은 실제 횡령이 아니라 내부 밀고자를 찾아내기 위한 연극이었고, 진짜 밀고자는 마이크 로였다는 사실이 밝혀지거든요. 데인은 팀원들에게 각각 다른 액수의 돈을 찾으러 간다고 말해 두었고, 그 정보가 외부로 흘러나간 경로를 추적함으로써 배신자를 특정해 내었던 겁니다. 영화 "밀정"에서 사용된 트릭과 동일한데, 특별하지는 않아도 효과적이며 현실적이라서 마음에 드네요. 앞서 무심히 지나갔던 대사가 반전의 단서로 기능한다는 점에서 정교하다는 느낌도 전해주고요.

이렇게 밀고자 마이크와 그와 연결된 협력자 마테오의 정체가 드러난 뒤에는 카 체이스와 총격전이 이어지는데, 길지 않은 분량이지만 꽤 화끈합니다. 문제의 가방 안에는 현금이 아니라 전화번호부 등이 들어 있었고, 실제 현금은 한 푼도 빼돌려지지 않은 채 모두 압수되며 정의로운 경찰들이 승리하는 해피엔딩도 깔끔했어요. 

그러나 이야기의 설득력은 많이 부족합니다. 가장 큰 문제는 흑막인 마테오의 행동입니다. 그는 동료들과 함께 현장에 출동한 시점에서 데인 일행을 모두 제거하고 현금을 탈취할 수 있었음에도 그러지 않습니다. 카르텔의 습격으로 위장해 상부에 보고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해 보이는데 말이지요. 게다가 누마와 롤로 형사를 현장에 남겨둔 채 데인과 제이디만 차에 태워 이동한다? 이건 정말 납득하기 어려워요. 데인을 포섭해 제이디를 제거하고 돈을 나눌 생각이었다면 다른 형사들 역시 정리하거나 끌어들였어야 했고, 둘 다 제거할 생각이었다면 그 장면을 목격한 인물들을 그대로 둘 이유가 없으니까요. 

데인의 연극 또한 집주인 데시가 마이크만을 정의로운 형사로 오해한 뒤, 마이크에게 데인이 펼친 연극을 밀고해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했다는 점에서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이 연극은 사실상 불필요했습니다. 대놓고 마이크에게 돈을 빼돌릴 계획을 설명해 주더라도 결과는 다를게 없는 탓입니다. 데인과 제이디가 마이크의 비밀 휴대전화를 확보한 상황에서 굳이 마테오를 기다려야 했는지도 의문입니다.
악당들의 행동도 어설프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데인 일행에게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주고, 30만 달러만 가져가라는 식의 경고를 하는 장면은 긴장감을 위한 장치로 보이지만 현실성은 떨어집니다. 돈을 노리는 범죄자라면 전부를 노렸어야 자연스럽습니다. 

촬영도 그리 좋지는 않습니다. 넷플릭스 영화인 탓일까요? 전반적으로 저렴해 보이는 느낌이 들어서 영 별로였어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정교한 범죄 스릴러라기보다는 킬링 타임용 헐리우드 액션 스릴러에 가깝습니다. 그냥 시간 때우기 용으로 적당한 수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