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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15

친구가 사라졌다 - 가네시로 가즈키 / 양억관 : 별점 1점

화려한(?) 고교 생활을 보냈지만 지금은 평범한 생활을 보내던 대학생 미나가타에게 동급생 유토가 찾아왔다. 사라진 친구 기타자와를 찾아달라는 부탁을 하기 위해서였다. 기타자와가 푹 빠졌었다는 연합서클 ESSC와 관련된 문제로 생각한 미나가타는 ESSC의 리더 시다와 대면했지만, 오히려 기타자와가 강간과 대마 밀매 등의 범죄를 저질렀다가 사라졌다는걸 알게되는데...

"GO"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가네시로 가즈키의 장편입니다. 몰랐는데 미나가타가 고등학교 때 활약했던 전작이 있습니다. 작 중에서도 전작의 활약이 자주 언급되고요. 하지만 이 작품만 읽어도 별 문제는 없습니다.

내용은 그대로 사라진 친구 기타자와를 찾는 이야기입니다. 주인공 미나가타가 해결사처럼 움직이며 사건의 배후를 파고드는 전개로, 정통 추리소설이라기보다는 청춘 범죄 활극에 가깝습니다.

장점은 분명합니다. 쉽게 읽힙니다. 한마디로 가독성이 좋은 책입니다. 문장은 빠르고, 장면 전환도 가벼우며, 크게 막히는 부분 없이 술술 넘어갑니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고 읽는다면 금방 끝까지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독성 외에는 전부 단점에 가깝습니다. 우선 설정부터 빈약합니다. 주인공 미나가타부터 그러합니다. 무언가 그럴듯한 과거가 있고 지금은 혼자 살면서 휴대폰과 TV도 없이 LP로 음악을 듣는 취미가 있으며, 유명 탤런트와 친구라는 등의 설정은 지나치게 멋을 부린 느낌입니다. 현 시점에 맞지도 않고요. 80~90년대 하루키 작품 주인공이 액션 영화 주인공이 된 느낌인데 영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단맛 쓴맛 다 본 인물처럼 보이게 하려는 의도가 노골적으로 드러나는데, 나이를 생각하면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기껏해야 대학생인 주제에 무슨 대단한 경험을 했나 싶거든요. 이보다는 군대 갔다 와서 취업전선에 뛰어든 우리나라 20대 청년 경험이 더 화려할 겁니다.

미나가타 주변 인물들의 설정은 더 황당합니다. 미나가타에게 취미삼아 살인 격투술을 가르치는 노숙자 람보와 윌, 대학생으로 연합 서클 ESSC를 이끌며 군림하지만 이면에서는 개인정보를 이용해 협박과 조종을 일삼는 시다, 친구들을 돕다가 사적 복수 활동까지 시작한 여고생 리츠 등 만화로 보기에도 황당한 설정이 넘쳐납니다. 이들 모두 미나가타와 함께 이야기의 현실감을 떨어뜨리기만 합니다.

이야기도 허술합니다. 핵심인 '사라진 친구' 기타자와 실종 사건의 원인이 된, 유명 대학 서클 멤버의 음주 강간 사건은 와세다 대학 슈퍼 프리 사건을 그대로 따왔으며, 실종 사건을 추적하는 과정에서도 치밀한 추리나 강한 긴장감이 만들어지지는 않는 탓입니다. 기타자와를 되찾는 작전도 별볼일없습니다. 결국은 미나가타의 개인기와 인맥에 의존하다가 갑자기 튀어나온 리츠의 도움으로 야쿠자를 제압하는 게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이래서야 재미가 있을 수 없지요. 별로 통쾌하지도 않고요.

그리고 가장 불쾌했던 건 납치된 기타자와를 불쌍한 피해자처럼 그려내는 묘사입니다. 고바야시에게 성폭행당했던 과거가 현재의 그가 저지른 여대생 강간의 면죄부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작품은 성폭행 때문에 트라우마가 생긴 탓에 그랬다면서 기타자와를 불쌍하게 보이도록 묘사합니다. 본인이 피해자였다고 해서 가해 사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잖아요? 이런 놈은 "사채꾼 우시지마"의 이벤트 서클 에피소드에서처럼 철저하게 부숴버려야 했습니다. "콜드 게임"처럼 기본적인 윤리 의식이 뒷받침되지 않아서 별점 1점 이상은 못 주겠네요. 가네시로 가즈키의 광팬이라면, 그리고 전작을 읽었다면 참고 삼아 읽어볼 만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추천하지 않습니다.

2026/05/10

콘 비프 샌드위치를 먹는 밤 Season 2 : (2) 달콤 미스터리 페어의 비밀 샌드위치

이번에 소개해 드릴 요리는 와카타케 나나미의 "조용한 무더위" 수록작인 "파란 그늘 7월"에 등장하는 샌드위치입니다. 아주 화려하거나 수상해 보이는 음식은 아닙니다. 오히려 티타임에 나와도 전혀 이상할 것 없는, 얌전하고 소박한 샌드위치지요. 그런데 이 작고 평범한 음식이 뜻밖에도 사건의 실마리가 됩니다. 

이 작품은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탐정'인 하무라 아키라 시리즈로, 하무라 아키라가 일하는 살인곰 서점의 도야마 점장이 기획한 ‘달콤 미스터리 페어’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디저트가 나오는 미스터리 소설을 모아 전시하고, 티파티까지 열겠다는 행사이지요. 이 중 한 편이 대프니 뒤 모리에의 "레베카"입니다. 맨덜리의 4시 반 티타임에는 버터를 듬뿍 넣은 크럼펫, 작고 귀여운 토스트, 따뜻한 스콘, 생강 쿠키, 엔젤 케이크, 오렌지 필과 레이즌이 든 케이크처럼 누구라도 혹할 만한 디저트들이 줄줄이 등장하니까요. 

그런데 정작 이 작품 속 핵심은 이런 화려한 디저트들이 아닙니다. 교통 사고로 사망한 피해자 쓰구미의 어머니는 서점을 찾아와, 딸이 "레베카"의 티파티를 열고 싶어 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그 메뉴 가운데 하나로, 작품에 등장하는 비밀 재료를 넣은 샌드위치를 만들 생각이었다고 덧붙이지요. 쓰구미가 준비했던 속재료는 커민 시드로 밑간한 병아리콩이었다고 합니다.

커민 시드는 향신료의 하나로 씨앗처럼 생겼고, 음식에 넣으면 조금 이국적이고 묵직한 향이 납니다. 카레에서 맡아 본 듯한 향이라고 생각하면 대체로 비슷합니다. 병아리콩은 고소하고 담백하며, 삶으면 포슬포슬하고 부드럽지요. 으깨면 샐러드처럼 만들기도 좋고요. 짐작컨대 삶은 병아리콩을 으깨고, 소금으로 약하게 간한 뒤 커민 시드를 섞었을 겁니다. 여기에 마요네즈나 버터를 조금 더해 부드럽게 만들고, 식빵 사이에 얇게 펴 발랐겠지요. 화려하지는 않지만 티타임 메뉴로는 꽤 잘 어울리는 샌드위치였을 거예요. 달콤한 과자들 사이에서 살짝 다른 결을 만들어 주기도 했을 테고요.
모양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티파티에 올릴 샌드위치이니, 두툼하고 투박한 형태였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아마 부드러운 식빵 사이에 병아리콩 속을 얇게 넣고, 가장자리를 잘라낸 뒤 작고 단정하게 썬 형태였겠지요. 삼각형이거나 길쭉한 손가락 모양이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맛도 좋았겠지만, 이국적이고 독특한 재료라는 점에서 누구나 쉽게 떠올릴 만한 샌드위치는 아닙니다. 그런데 도야마 점장이 티파티를 위해 찾은 과자 장인 MIHARU의 글에서, 커민 시드로 밑간한 병아리콩이 '레베카'의 비밀 재료 샌드위치 재료라며 소개되고 있었습니다. 이는 쓰구미가 사고로 죽어 가던 때 레시피가 적힌 노트를 훔쳐간 범인이 MIHARU라는 걸 알려 주는 중요한 단서가 됩니다.
보통 미스터리의 단서라고 하면 핏자국이라든가 이상한 쪽지, 누가 들어도 수상한 말 같은 눈에 띄는 걸 떠올리기 마련인데 이 작품은 그 대신에 티파티 메뉴에 들어갈 샌드위치 속재료라는 아주 사소한 디테일을 사용한다는게 인상적입니다.

게다가 "레베카"에는 이보다 더 눈에 잘 띄는 샌드위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맥심의 할머니가 티타임에 먹는 물냉이 샌드위치나, 맨덜리에서 먹는다고 언급되는 오이 샌드위치처럼요. 영국식 티타임을 떠올리면 바로 연상되는 익숙한 메뉴들입니다. 하지만 와카타케 나나미는 이런 샌드위치보다 조금 더 낯설고, 그만큼 더 고민이 필요한 ‘비밀 샌드위치’를 사건과 연결합니다. 그 솜씨에는 감탄할 수밖에 없습니다. 원작의 디테일을 세심하게 읽어낸 것도 놀랍지만, 그것을 살인곰 서점의 이벤트와 엮어 하나의 미스터리로 다시 조립해 낸 방식이 무척 영리하기 때문입니다.

좋은 미스터리는 종종 아주 작은 것에서 움직입니다. 맛있어 보이는 다과 목록 한가운데 툭 끼어 있는 샌드위치 하나, 언뜻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속재료 하나 같은 것에서 말이지요. 그래서 저는 이 작품을 떠올리면 화려한 케이크보다도 먼저 그 병아리콩 샌드위치가 생각납니다. 가장 수수한 음식이, 끝내 가장 또렷한 단서가 되었으니까요.

마지막으로 커민 시드로 밑간한 병아리콩 샌드위치 레시피를 소개하며 글을 마칩니다.

  1. 병아리콩 준비하기
    삶은 병아리콩 1컵 정도를 준비한다.
  2. 향내기
    커민 시드 1작은술을 마른 팬에 약하게 볶아 향을 살린 뒤, 살짝 으깬다.
  3. 속재료 만들기
    병아리콩을 포크로 대충 으깨고, 소금 약간, 볶은 커민 시드, 후추 조금을 넣어 섞는다.
  4. 부드럽게 다듬기
    마요네즈나 버터를 1~2큰술 넣어 질감을 부드럽게 맞춘다. 너무 곱게 갈기보다는 약간 포슬한 느낌이 남는 편이 좋다.
  5. 샌드위치 만들기
    식빵 사이에 속재료를 얇게 펴 바르고, 가장자리를 잘라낸 뒤 삼각형이나 손가락 모양으로 작게 썬다. 티타임용이라면 한입 크기로 작게 만드는 쪽이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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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09

정점 APEX (2026) - 발타사르 코르마우퀴르 : 별점 2점

사샤는 파트너를 잃고 깊은 상심에 빠졌다. 그녀가 무리하게 암벽 등반을 진행했던 탓이었다. 사샤는 슬픔을 잊기 위해 오스트레일리아 오지를 찾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살인마 벤을 만나 쫓기게 되는데...

샤를리즈 테론과 태런 에저튼이 주연을 맡았고, 호주의 거친 오지를 배경으로 인간 사냥의 표적이 된 주인공과 사냥꾼의 추격전을 그린 최신 서바이벌 액션 영화입니다. 넷플릭스를 통해 감상했습니다.

샤를리즈 테론과 태런 에저튼의 연기가 돋보입니다. 두 배우 모두 뻔한 캐릭터를 어떻게든 살리려고 노력하거든요. 덕분에 사냥감과 사냥꾼이라는 단순한 관계가 그런대로 볼 만해집니다. 추격전도 나름대로 두뇌를 쓰는 부분은 괜찮습니다. 초반부에서 스마트폰을 이용해 사샤를 낚는 장면처럼요.

호주 오지의 풍광을 활용한 장면들도 나쁘지 않습니다. 인간의 체력과 판단력이 한계까지 시험받는데, 워낙 대자연이 압도적으로 묘사되어 화면상으로 제법 설득력 있게 다가옵니다. 그래서 중반부까지는 어느 정도 긴장감을 느끼며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단점도 명확합니다. 오지에 사람을 사냥하는 미치광이 살인마가 있고, 주인공이 그에게 쫓기며 살아남아야 한다는 설정이 지나치게 뻔한 탓이 큽니다. 사샤가 등산과 서바이벌에 능한 전문가라는 설정도 훨씬 적극적으로 활용했어야 했는데, 영화는 그 장점을 충분히 살리지 못합니다. 대부분의 시간을 단순한 도주와 추격으로 채울 뿐입니다. 사샤가 지형과 등반 기술을 이용해 벤과 치열하게 맞서는 장면이 더 많았어야 했습니다.

뒤로 갈수록 긴장감과 재미도 떨어집니다. 초반에는 압도적인 자연환경과 인간 사냥이라는 설정이 결합하면서 어느 정도 몰입하게 만들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지루해지며 액션도 별로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결정적 도주 장면의 설득력이 너무 부족해요. 귀를 물어뜯어 위기를 벗어난다는 것은 기대에 비해 너무 시시했습니다.

게다가 이어지는 결말은 아쉬움의 '정점'을 찍습니다. 다리를 다친 벤이 자기 목숨을 순순히 사샤에게 거는 듯한 선택을 한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웠어요. 지금까지 사람을 사냥해온 인물이라면 더 집요하고 교활한 방식으로 마지막 승부를 걸었어야 했습니다. 마지막 장면 때문에 이도 저도 아닌 찌질한 악당으로 전락해버리고 맙니다.

여기에는 살인마 벤에게서 미친 사냥꾼의 압도적 카리스마를 느끼기 힘들다는 이유도 한몫 단단히 합니다. 벤 역을 맡은 태런 에저튼의 연기가 아무리 좋아도, 어린아이 같은 인상과 왜소해 보이는 체격을 극복하는 것은 불가능하니까요. 이 역으로 마동석이 할리우드 데뷔를 했더라면 더 낫지 않았을까 싶네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배우들의 연기는 좋고, 시작 부분의 등반 장면과 호주 오지의 풍광을 살린 서바이벌 장면들은 중반부까지 볼 만합니다. 하지만 설정이 뻔하고, 후반으로 갈수록 긴장감이 떨어지며, 사샤의 전문가적 능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단점 때문에 감점합니다. 비슷한 장르를 많이 본 관객에게는 새롭거나 강렬한 인상을 주기 어려운 그냥저냥한 킬링타임용 액션 영화예요. 굳이 추천하기 어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