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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8/07

죽음이 두 사람을 갈라 놓을 때 까지(till death do us part) - 존 딕슨 카: 별점 3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극작가 리처드(딕) 마컴은 식스 애시즈 마을에서 레슬리 그랜트와 약혼했다. 그리고 그 직후에 마을 바자회에서 레슬리가 점쟁이의 천막을 찾은 뒤 이상할 정도로 동요했고, 심지어 사격장에서 레슬리가 우연히 쏜 총탄이 점쟁이를 맞히는 사고가 일어났다. 

그리고 그날 밤, 점쟁이는 자신이 저명한 병리학자 하비 길먼 경이며 레슬리는 세 번이나 남편들이 밀실에서 청산가리를 주사하여 자살한 것처럼 만든 독살범이라는 이야기를 딕에게 들려주며, 레슬리가 딕을 초대할 때 자신이 집에 숨어들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다음날 새벽, 하비 길먼 경도 밀실에서 청산가리 주사로 사망한 사체로 발견되었고, 현장에 나타난 기디언 펠 박사는 피해자는 하비 길먼 경이 아니라 유명한 사기꾼 샘 드 빌라라는걸 밝히는데...

존 딕슨 카의 장편으로 기디온 펠 박사 시리즈 중 한 편입니다. 일본 번역본으로 읽었습니다.

작품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초반 설정입니다. 주인공 딕 마컴의 약혼녀 레슬리는 한 점쟁이에게서 불쾌한 말을 듣고 분개하다가 우발적으로 그를 총으로 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그날 밤, 점쟁이는 자신이 유명 병리학자 하비 길먼 경이며 레슬리가 과거 남편들을 청산가리로 살해한 독살범이라고 주장하고요. 그리고 다음 날 새벽에 하비 길먼 경마저 자신이 설명했던 사건과 똑같은 형태로 밀실 안에서 청산가리 중독으로 죽은 채 발견됩니다. 마컴은 레슬리를 믿고 싶지만, 피해자가 남긴 말과 똑같이 벌어진 죽음은 그녀를 의심하게 만들 수 밖에 없게 되지요. 아, 정말이지 두근두근합니다.

피해자가 하비 길먼 경이 아니라 변장한 사기꾼 샘 드 빌라였고, 레슬리가 독살범이라는 거짓말로 마컴을 속여 그녀의 집에 몰래 들어간 뒤 보석을 훔치려 했다는 계획도 좋아요. 점쟁이의 예언과 독살범이라는 폭로가 모두 절도 계획을 위한 연극이었다는건데 상당히 잘 짜여져 있는 사기극이라는 느낌을 전해 주기 때문입니다. 원래 밀실 살인 트릭은 없이 이 사기극만 라디오 드라마로 발표되었다는데, 납득이 되는 완벽한 구성이라 생각되네요.

딕슨 카 작품답게 밀실 트릭도 괜찮습니다. 벽에 난 구멍으로 실을 빼낸 뒤, 그 실을 당겨 창문의 잠금 장치를 잠근다는, 아래의 그림에서 알 수 있듯 지극히 단순한 트릭이지만 단순해서 현실성은 높습니다.

무엇보다도 새벽에 벌인 총격 소동으로 장치에 사용했던 구멍을 나중에 만들어졌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아이디어가 빼어나며, 이에 대한 단서 제공도 고전 본격 추리물답게 공정합니다. 총 구멍이 밤에 만들어졌을 수도 있다는 애시 경의 증언처럼요.

하지만 진범인 미들스워스 박사가 직접 기디언 펠 박사를 데려와 사건 해결을 부탁했다는 전개는 이상합니다. 자신의 범행을 밝혀낼 가능성이 가장 높은 사람을 스스로 현장에 부를 이유가 있을까요? 미들스워스 박사가 나서지 않았다면, 무능한 지방 경찰들에 의해 샘 드 빌라는 자살로 인정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의심을 산 레슬리는 마을을 떠나게 되고, 딕과도 헤어지게 되겠지만 둘의 사랑을 미들스워스 박사가 지켜줄 이유는 없어요.

그리고 독자를 속이기 위한 설정도 과합니다. 새벽에 레슬리가 피해자의 집 앞까지 갔는데 몽유병 상태라 기억하지 못했다던가, 금고 속 내용물 때문에 신시아와 격투를 벌였다는 설정들이 대표적입니다. 마컴의 시점으로 전개되는 상황 묘사와 신시아를 비롯한 주변 인물들의 행동들도 모두 혼란스럽고요. 쓸데없는 작전으로 마을 우편소장이 살해당한 것도 불필요한 설정이었습니다.

그래도 단점이 크지는 않습니다. 혼란스러운 묘사는 제대로 된 번역으로 읽었다면 충분히 해결될 수 있는 영역일 테지요. 제 별점은 3점입니다. 강한 도입부와 효과적인 밀실 트릭이라는 장점만으로도 한 번 읽어볼 가치는 충분힙니다.

#여태까지 내가 읽었던 존 딕슨 카 작품 순위

2026/08/02

R.I.P. 히가시노 게이고

지난 7월 23일, 일본 추리소설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별세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투병 중이었던 대장암 때문이라고 하는데, 최근에도 신작이 출간되었으며 평소에 운동도 즐기는 것으로 알고 있어서 건강에 문제가 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네요. 

추리 소설이라는 제 평생의 취미 활동에 많은 활력을 더해준 작가셨던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그 곳에서는 아프지 말고 신나게 보드를 타시길...

# 나의 히가시노 게이고 작품 베스트 15

광장(2025) - 최성은: 별점 2.5점

동명의 인기 웹툰을 원작으로 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입니다. "김부장"을 챙겨봐서인지, 넷플릭스 추천으로 뜨길래 보게 되었네요. 

가장 큰 장점은 액션입니다. 남기준이라는 인물이 얼마나 압도적으로 강한 존재인지를 과장 없이 설득력 있게 보여주는 덕분입니다. 특히 초반 PC방에서 벌어지는 난투극과 구준모가 숨어 있던 별장에서의 액션은 현실감 있는 타격감과 묵직한 연출이 인상적입니다. 화려한 기술보다 그야말로 상대를 압도하는 힘과 타격을 중심으로 구성되어서 남기준이라는 캐릭터의 존재감을 선명하게 드러냅니다.

단순한 복수극에서 끝나지 않고, 거대한 음모를 결합한 전개와 흑막은 이금손이었다는 반전도 괜찮습니다. 경찰이면서도 돈을 위해 폭력 조직과 결탁한 뒤, 조직을 자신의 손아귀에서 움직이는 핵심인물 차영도 설정도 설득력있게 그려내는데 성공합니다.

그러나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구준모가 죽은 이후 이야기의 동력이 급격히 떨어진다는 점입니다. 남기준의 목표는 동생 남기석을 죽인 범인에게 복수하는 것이었는데, 구준모가 제거된 시점에서 그 목적은 사실상 달성되니까요.
이후 이금손과 차영도가 진짜 배후였다는 사실이 드러나며 새로운 복수의 대상이 생기지만, 구준모와 이금손, 차영도의 관계가 충분히 설명되지 않아서 다소 억지스럽습니다. 구준모가 남기석을 죽이라고 지시한 것은 분명해 보이는데, 이금손과 차영도가 그 선택을 어떻게 유도하고 설계했는지는 작품에서 명확하게 제시되지 않는 탓입니다. 구준모가 두 사람의 계획에 이용당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었어야 합니다.

후반부 액션의 완성도 역시 초반만큼 만족스럽지는 않습니다. PC방과 별장에서 보여준 묵직한 실전 액션과 달리, 끝판왕 격인 재일교포 킬러 카네야마와의 대결은 칼부림 중심으로 비현실적이고 이질적이기 때문입니다. 오래된 홍콩 액션 영화를 연상시킬 정도에요. 이어지는 차영도와 이금손과의 대결 역시 두 사람이 애초에 남기준과 대등하게 맞설 상대가 아니기 때문에 긴장감을 끌어내기는 힘들고요. 쓸데없이 잔인한 것도 영 별로였어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액션과 분위기만으로도 볼거리는 충분합니다. 후반부 이야기와 액션이 초반의 완성도를 끝까지 유지하지는 못하지만 킬링 타임용으로는 괜찮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