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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8/21

희극비기극(喜劇悲奇劇) - 아와사카 쓰마오: 별점 3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거대 화물선을 개조한 공연용 배 '우콘호'에 시치로는 마술사로 고용되어 조수 마코토와 탑승했다. 그러나 연예인 혹부리 곤타와 세가와 박사가 연달아 살해당하고 말았다. 시치로 일행은 피해자들 모두가 거꾸로 읽어도 똑같이 읽히는 '회문' 이름을 가졌다는걸 알아냈다. 시치로는 전처 우타코, 조수 마코토(모리 마리모라는 예명)가 다음 피해자가 될까 걱정하면서 점차 사건에 깊숙히 휘말리게 된다...

일본 작가 아와사카 쓰마오의 장편 추리소설입니다. 본격 추리와 아와사카 쓰마오 특유의 소동극이 결합된게 특징입니다. 거꾸로 읽어도 똑같이 읽히는 회문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연이어 살해당한다는 설정도 독특하고요. 목차의 모든 소제목도 회문으로 구성되어 있을만큼 회문을 전편에 걸쳐 적절히 써먹고 있기도 합니다.

첫 피해자였던 논 레논(None lenon)이 진범이었고, 그 정체는 그랜트였다는 전개도 좋습니다. 그랜트와 레논은 동일 인물이었으며, 한 사람이 두 사람의 역할을 번갈아 연기하고 있었다는건데, 이를 마술이라는 소재로 드러내는게 아주 기막힙니다. 

우선 레논의 특기 마술은 얼굴을 가린 채 선보이는 독심술인데, 이는 얼굴을 최대한 가리고 드러내지 않기 위한 장치였습니다. 그리고 세 장의 거대한 트럼프를 이용한 마술 리허설도 진상과 연결됩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특별할 것 없는 바꿔치기 마술이었지만, 곤타만은 그 공연을 유난히 높게 평가했습니다. 곤타는 무대를 옆에서 지켜보았기 때문에 트럼프 안에 사람이 들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평범해 보였던 바꿔치기가 실제로는 불가능한 조건에서 이루어졌다는걸 알아챈 것이지요.

그랜트가 진범이라는 사실을 밝혀내는 결정적 단서도 공정하게 제공됩니다. 사건 당시 배 안의 전화는 계속 불통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바킨 단장은 전화로 곤타의 방에 불려갔다가 살해당했습니다! 그렇다면 전화는 배 밖에서 걸려 왔어야 합니다. 당시 상황을 모두 파악하면서 외부에서 바킨에게 전화를 걸 수 있었던 사람은 그랜트뿐이었고요.

연쇄살인의 배경이 된, 과거 사이비 종교 집단에 전염병이 퍼졌는데, 근처를 지나던 무일푼으로 궁지에 몰렸던 바킨 단장과 산엔자이 극단원들이 환자들을 돕는 대신 마약으로 독살하고 금품을 빼앗은 사건 이야기도 흥미진진합니다. 이를 통해 범인 그랜트는 사이비 종교 집단 교주로 현재의 살인들은 산엔자이 극단원들을 대상으로 했던 복수극이었던게 밝혀지는데, 동기에 대한 설득력도 높습니다. 아울러 앞서 결정적 조건으로 보였던 회문 이름은 단순히 회문을 좋아했던 바킨 단장이 단원들 예명을 지어서 생긴 우연의 일치였다는 상황도 합리적으로 설명되고요.

아와사카 쓰마오 특유의 좌충우돌하는 희극적 묘사도 볼거리입니다. 곤타의 시체가 들어 있는 호랑이 탈 인형이 엉뚱한 곳으로 배송되면서 벌어지는 대소동이 대표적입니다. 끔찍한 살인 사건과 황당한 상황이 한데 어우러져 제목처럼 희극과 비극이 뒤얽힌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 덕분입니다.

그러나 단점도 명확합니다. 우선 주인공 시치로가 아주 별로입니다. 아내가 떠난 뒤 알코올 중독에 빠진 별 볼 일 없는 마술사라는 설정, 조수 마코토와 전처 우타코를 둘러싼 관계 모두 진부합니다.

범인을 밝혀내는 논리적인 추리 과정과 다르게 개별 살인에 사용된 트릭들도 모두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레논이 칼에 찔려 죽은 것처럼 꾸민 방법이 대표적입니다. 배의 근육과 지방을 등 쪽으로 이동시켜 칼이 들어갈 공간을 만들었다는데, 아무리 레논이 인도에서 특별한 수행을 했다 하더라도 납득하기 어려운 설명입니다. 세가와 박사를 사고사로 위장한 라이터 트릭 역시 가스 라이터에서 나온 불꽃이 사람을 태울 정도로 강하게 번진다는 전제에 의존하고 있어서 비현실적이에요. 인화가 된다고 하더라도 사망할 정도의 사고가 될리는 없었을 겁니다.

곤타와 타마하의 시체가 뒤바뀐 과정도 별볼일 없어요. 당시 시체에 손을 댈 수 있었던 인물이 사실상 그랜트뿐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랜트가 진범이라는 사실도 비교적 일찍 짐작할 수 있어요.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과거 미국의 사이비 종교 집단과 관련된 외국인이 범인일 가능성이 커지는데, 주요 인물 가운데 그 조건에 맞는 외국인은 사실상 그랜트뿐이니까요. 

그래도 '회문'과 마술이라는 소재의 사용과 추리적인 전개, 흥미로운 과거의 범죄 등 재미있는 요소가 많아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개별 트릭의 완성도에는 아쉬움이 있지만, 회문과 마술을 결합한 색다른 본격 추리소설을 찾는 독자라면 추천드립니다.

2026/08/16

채권추심원(2026) - 수라퐁 플런상: 별점 2점

눔은 과거 피도 눈물도 없는 사채업자의 채권 추심원으로 악명을 떨쳤다. 그러나 채권 추심 중 벌어진 살인 사건으로 10년 동안 복역했고, 출소 후 뇌종양으로 시한부 선고까지 받았다. 그러나 조용히 살아가던 눔이 알고 지내던 노점상인 할머니와 손녀가 사채업자 포에게 잔혹하게 당한 뒤 눔은 포를 죽일 결심을 하는데...

넷플릭스로 감상한 태국산 액션 영화입니다.

이야기는 뻔합니다. "아저씨"를 비롯한 여러 영화에서 볼 수 있었던, 잘 알지도 못했던 소녀를 위해 남자가 목숨을 걸고 복수한다는 이야기의 변주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물론 익숙한 이야기를 사용했다는걸 단점이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뻔한 이야기라도 복수의 과정과 액션을 얼마나 멋지고 처절하게 보여주느냐가 더 중요하니까요.

문제는 정작 그 액션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좋게 보면 실제 싸움에 가까운 실전 액션이지만, 나쁘게 보면 동네 막싸움처럼 보여서 영 폼이 나지 않습니다. 눔이 전문 킬러나 특수부대 출신이 아니라 전직 채권 추심원인 만큼 엄청난 전투 능력을 보여줄 수는 없었겠지만, 그래도 복수극의 핵심 볼거리라고 할 만한 장면은 필요했습니다. 아무리 현실적인 액션을 추구했다고 해도 영화적인 쾌감까지 포기할 필요는 없었어요.

악당 포도 아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눔과 마지막까지 맞서야 하는 인물인데 무력이 별로 대단해 보이지 않고, 비주얼에서도 위압감이 부족합니다. 주인공의 복수가 강렬하게 느껴지려면 그만큼 상대하는 악당도 강력해야 하는데, 최종 보스라고 하기에는 기생 오래비 느낌이라서 여러모로 격이 떨어집니다. 눔의 액션과 포의 존재감이 모두 약하다 보니 절정부의 액션도 시시하고요.

불필요한 설정도 많습니다. 눔이 뇌종양 때문에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다는 설정이 대표적입니다. 눔의 어린 시절 친구이자 경찰인 콩이 빚더미에 올라앉았다는 설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콩은 그냥 정의로운 경찰로 설정하고, 상관의 비밀 지령을 받아 수사하다가 그 상관이 실제로는 악당 포의 끄나풀이라는 사실을 알아내는 정도로 이야기를 끌고 갔어도 충분했을 것입니다. 여러 사정을 추가하다 보니 인물은 복잡해졌지만 그만큼 이야기가 풍성해졌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그래도 처음 접해 본 태국 영화인데 생각보다 굉장히 만듦새가 좋다는 점에는 크게 놀랐습니다. 연출은 물론 촬영과 편집, 음악까지 어느 하나 크게 빠지는 부분이 없는 웰메이드 영화더라고요.

하지만 여러모로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제 별점은 2점입니다. 전체적인 만듦새는 좋지만 액션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야기까지 뻔한데 액션의 쾌감도 부족하다 보니 추천하기는 어렵네요.

2026/08/15

동궁(2026) - 최정규: 별점 3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넷플릭스 한국 드라마입니다.

처음에는 모든 사건이 연못 귀신의 저주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연못 귀신의 원한은 자신을 모함해 죽인 대왕대비를 향한 것이었고, 왕과 동궁에는 원한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지금의 왕이 왕이 될 수 있던건 왕의 생모인 숙빈이 자기 아들을 왕으로 만들기 위해 벌였던 독살 덕분이었고, 숙빈은 대왕대비와 연못 귀신의 원한을 이용해 진실을 숨겼다는 사실이 드러나지요.
하지만 이 과거의 사건 역시 현재 세자들의 죽음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지금의 악귀는 얼마 전 죽은 세자였거든요. 결국 죽은 세자가 형제를 독살해 왕이 되려 했고, 이를 알아챈 왕이 세자를 죽이면서 원한이 시작되었다는 진상이 밝혀집니다.
이렇게 반전이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연못 귀신 - 대왕 대비 - 숙빈 최씨 - 세자로 주적이 계속 바뀌는 구성이 가장 큰 장점입니다.

선악을 구분하기 어려운 왕 역의 조승우와 대왕대비의 연기는 감탄이 나오며 영상도 인상적입니다. 전체적으로 푸른 색감을 유지하면서 왕의 곤룡포와 생강 옹주의 화려한 한복을 강하게 대비시키는 장면들이 특히 좋았습니다. 의상과 세트도 보기 좋게 갖춰져 있으며, 꺼먹살이의 귀여운 존재감도 재미를 더해주는 요소였어요.

하지만 다소 앞뒤가 맞지 않는 부분은 조금 거슬립니다. 초반 영안군을 습격한 존재가 연못 귀신처럼 묘사된 부분이 대표적입니다. 연못 귀신은 영안군을 습격할 이유가 없으니까요. 또 이는 진상과도 잘 연결되지 않습니다. 귀매의 눈을 얻은 구천이 어떻게 되었는지, 저쪽 세계에서 어떻게 돌아왔는지와 같이 설명이 부족한 부분도 제법 되고요. 

무엇보다 가장 큰 단점은 액션입니다. CG도 과하지만 액션이 최근 다른 작품들에 비해 화려함, 강함, 속도감 모두 부족한 탓입니다. 특히 마지막 세자와 구천의 대결은 90년대 오래된 홍콩 영화 와이어 액션처럼 보입니다. 세자와 구천 모두 무술에 능하다는 설정도 없어서 이런 육탄 대결에 대한 설득력도 약하고요.

그래도 별점은 3점입니다. 궁중 미스터리와 반전이 많은 드라마를 좋아한다면 추천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