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주신 분들께 안내드립니다.

2023/06/30

알라딘 24주년의 기록

알라딘이 24주년을 맞아 언제나처럼 여러가지 이벤트를 진행 중입니다.

언제나처럼 참여했는데, 이번에는 저의 누적 기록 중 몇가지 중요 정보는 별도의 영수증형태로 볼 수 있도록 제공해주는게 좋네요.


저는 7942일간에 걸쳐 1,500권이 조금 넘는 책을 구입했고, 약 1,500여만원을 사용했다고 알려줍니다. 언뜻보면 큰 돈 같지만, 21년을 조금 넘는 기간이니 한 해에 70만원 정도라 그리 대단한 금액은 아닙니다. 물론 알라딘에서만 책을 사는건 아니긴 하지만요.

관심있으시면 지금 알라딘 홈페이지를 방문하셔서 '24주년 당신의 기록'을 선택하시면 확인하실 수 있으니,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2023/06/29

엘비스 (2022) - 바즈 루어만 : 별점 3.5점

미국 남부 멤피스에서 트럭을 몰며 음악의 꿈을 키우던 19살의 무명 가수 '엘비스'. 지역 라디오의 작은 무대에 서게 된 '엘비스'는 어디서도 본 적 없는 몸짓과 퍼포먼스로 무대를 압도하고, 그에게 매료된 관객들에게 뜨거운 환호성을 받는다.
쇼 비즈니스 업계에서 일하던 '톰 파커'는 이를 목격하고 '엘비스'에게 스타로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하며 함께할 것을 제안한다.
자신이 자라난 동네에서 보고 들은 흑인음악을 접목시킨 독특한 음색과 리듬, 강렬한 퍼포먼스, 화려한 패션까지 그의 모든 것이 대중을 사로잡으며 '엘비스'는 단숨에 스타의 반열에 올라선다.
그러나 시대를 앞서 나간 치명적이고 반항적인 존재감은 혼란스러운 시대 상황과 갈등을 빚게 되고 지금껏 쌓아온 모든 것이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고 압박하는 '톰 파커'까지 가세해 '엘비스'는 그의 뜻과는 다른 선택을 하게 된다.
이로 인해 평생을 함께한 매니저 '톰 파커'와의 관계도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하는데…


6월 초, 유럽에 갔다올 때 비행기에서 감상했습니다. 바즈 루어만 감독의 음악과 어우러지는 화려한 영상이 그야말로 압도적이었어요. 솜씨가 여전하더군요.
엘비스 전기영화답게 엘비스의 여러가지 공연히 화려하게 펼쳐지는데, 그 중 두 가지 공연씬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하나는 예고편에서도 비중있게 등장하는, 매니저가 엘비스를 처음 보는 첫 공연입니다. 이른바 '털기' 춤을 선보이며 여성 관객을 미치게 만드는걸 그야말로 제대로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여성이 아닌 저도 전율이 올 정도로 인상적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라스베가스 공연 장면입니다. 왜 엘비스가 공연의 황제인지, 그리고 그가 팬을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한 번에 알 수 있게 해 주는 공연이었어요. 거액 계약에 대한 당위성도 부여하고요. 리허설 장면을 통해서는 음악적인 재능도 알려줍니다.


마지막으로 엘비스의 마지막 공연을 보여준 것도 좋았습니다. 영화에서 설명해 준 대로, 몸 상태가 어땠건간에 항상 공연에, 그리고 노래에는 진심으로 최선을 다했던 가수 엘비스의 모습을 모든 관객들이 알게 되었으니까요. 저 역시 이렇게 멋진 목소리로 라이브를 소화하는 가수였다는걸 이제서야 알게 되었네요.


그러나 이야기의 중심축이라 할 수 있는. 엘비스와 매니저 톰 파커 대령과의 악연이라는 드라마는 진부했습니다. 또 과연 그가 악당이었는지?는 의문입니다. 엘비스의 모든 수익의 절반을 가져갔으니 악당이다! 라는 논리인데, 대부분의 매니지먼트 회사가 그 정도 수익은 가져가지 않나요? 영화에서도 설명되지만 엘비스가 가져간 수익도 천문학적이었습니다. 엘비스의 낭비벽이 심해서 발목을 잡혔을 뿐이지요. 
그래도 톰 파커 대령 역을 맡은 톰 행크스의 호연은 눈부셨습니다. 톰 행크스의 악역 연기는 거의 처음 보는 것 같은데, 얄미운 악당을 잘 그려내고 있거든요. 명배우는 명배우에요.
반면 주연 배우 오스틴 버틀러는 조금 아쉬웠습니다. 노래도 잘하고 젊은 시절의 연기는 충분히 그럴싸 했는데, 말년의 '거구'는 전혀 표현하지 못했거든요. 엘비스라는 인물의 분위기만큼은 온 몸으로 뿜어내고 있어서, 당대 불세출의 스타라는 존재감만큼은 잘 표현하고 있어서 과거 명배우들의 메소드 연기처럼, '그 사람이 되는' 노력을 보여주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습니다.

별점은 3.5점. 실존 슈퍼 스타를 영화화한 작품 중에서 손가락에 꼽을 수 있을 만큼 멋지고 재미있는 작품입니다. 엘비스만 좀 더 닮았어도 4점 이상은 충분했을 겁니다. 영화에서도 다루어진 유명한 컴백 스페셜 무대나 다시 정주행해 봐야겠네요.


2023/06/27

나랑 후리오랑 교정에서 - 모로호시 다이지로 : 별점 3점

나랑 후리오랑 교정에서 - 6점
모로호시 다이지로 지음/대원씨아이(만화)

모로호시 다이지로의 초창기 단편집. 1990년에 발표되었던 <<성>>을 제외한 다른 작품들은 1981년부터 1985년 사이에 발표되었기에, 초창기 시기를 대표하는 작품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위와 같이 BS 망가 야화에서 소개되었을 정도니까요. 목차는 아래와 같습니다.
  1. 방주가 오던 날
  2. 난파선
  3. 진수의 숲
  4. 나랑 후리오랑 교정에서
  5. 늪의 아이
  6. 유사(流砂)
  7. 쿠로이시지마(黑石島) 살인사건
  8. 성(城)
  9. 파란 무리
  10. 그림자의 거리
이 중 앞의 두 편은 아주 짤막한 가벼운 개그물로 언급할만한 작품은 아닙니다. 크리쳐 호러(?)물 <<진수의 숲>>, <<늪의 아이들>>은 <<자선단편집>>에 수록되었던 작품이고요 (궁금하신 분들은 이전 리뷰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그 외 작품들에 대해 짤막하게 소개해드립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나랑 후리오랑 교정에서>>
자신이 외계인이며 UFO를 타고 어디론가 떠난다고 말하는 동급생 후리오와 어울리다가, 약간의 차원 뒤틀림(?)을 경험한다는 내용.
작가의 말에 따르면, 폴 사이먼의 노래 (Me and Julio Down by the Schoolyard)에서 제목을 따 와 만들었다고 합니다. 내용은 아무런 관련이 없다면서요. 


그런데 가사를 잠깐 찾아보니 '훌리오와 내가 교정 (학교 운동장)에서 만나는데 엄마가 뭔가 법에 위배되는걸 봤고, 그래서 나와 훌리오를 잡으면 구치소에 집어 넣는다'는 내용이더라고요. 정확한 의미는 영 알 수가 없는데 (폴 사이먼 본인도 엄마가 본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고 답변했답니다.), 이런 노래의 모호함이 만화의 결말과 일치한다는게 재미있습니다. 후리오가 UFO를 타고 갔는지, 그냥 버스를 타고 평범하게 떠났는지 제대로 드러내지 않고 여운을 남기니까요.
보는 시각에 따라서 일상 속에서 약간의 뒤틀림을 보여주는 일상계 SF물, 아니면 평범하지만 조금은 독특한 성장기로 볼 수 있는데, 저 개인적으로는 SF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더 폴 사이먼, 그리고 모로호시 다이지로 스타일에 가까우니까요. 흥겨운 노래하고도 잘 어울리고요. 기껏 상상력을 발휘했는데 그냥 버스타고 이사간거라면 너무 슬프잖아요.
대표작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 여러모로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유사>>
주인공과 친구들은 사막과 엄청난 유사 폭포 탓에 감옥과 다름없는, 미래가 없는 별 볼일없는 마을을 벗어나기 위해 분투한다. 그러나 마을 사람 모두가 합심해서 그들을 막아서는데....

SF의 탈을 쓰고 있기는 하나 현실에 안주하려고만 하고 위기에는 전혀 대응하지 않으려는, 그리고 젊은 청춘의 뒷다리만 잡는 기성 세대를 풍자하는 작품입니다. 작품이 발표된 1980년대는 모로호시 다이지로도 기성세대보다는 청년에 가까운 나이라 그릴 수 있었겠지요? 사력을 다하는 청춘을 기성 세대가 뒤쫓는 결말은 여운을 남깁니다.
 

그러나 지금 읽기는 낡은 소재와 전개라는건 단점입니다. 불합리한 현실을 탈출하려고 애쓰는 청춘 이야기는 널리고 널렸으니까요. 예를 들어, 이런 마을을 벗어나기 위해 불법적인 범죄를 저지르면? <<총몽 (알리타)>>이 되는거지요. 별점은 2.5점입니다.

<<쿠로이시지마 살인사건>>
외딴 섬에서 젊은 여성의 사체가 발견되어 형사가 파견되었고, 섬 사람 누군가의 딸로 여겨져 장례식이 열렸다. 그런데 장례식 와중에, 그 딸이 살아있다는게 밝혀진다.
다른 사람이 피해자일 것이다!라고 생각했지만 그녀 역시 살아있었고, 바닷물의 영향으로 사체마저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은 형사에게 없었던 일로 하자며 반 쯤은 협박하듯이 부탁하는데....


우리나라 모 섬에서 일어났던 범죄가 떠오르는 작품. 폐쇄적인 공동체 안에서 '좋은게 좋은거다'라는 식으로 넘어가는 바람에 수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흔합니다.
그런데 전형적인 모로호시 다이지로 그림체인데다가, 전개 방식도 모로호시 다이지로의 호러물스타일이라서 기묘하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개그 콘서트 꽁트를 정극 배우들이 제대로 연기하는 느낌이랄까요? <<유사>>처럼 현실에 안주하려는 기성 세대에 대한 풍자로 볼 수도 있을테고요.
흔한 이야기인데 여러모로 모로호시 다이지로의 기묘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성>>
대기업에 서류 하나를 전해주러 왔던 사원의 출장은 서류에 관계된 회사간의 복잡한 정리, 대기업의 인사 이동 등으로 장기화되고 말았다. 팩스로 지시를 기다리는 자택 대기 명령을 받은 뒤, 오랜 시간이 흘러 그가 죽었을 때 지시가 전달되었다. 일반 사원들은 1층 이상 올라가보는게 꿈이라는 본사 건물 15층으로 오라는 지시였다....

대기업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벌어질 수 있는 부조리한 현실을 풍자하는 블랙 코미디 드라마. 지금 읽기에는 다소 뻔했습니다. 결말도 다소 뜬금없었고요. 왜 마지막에 15층으로 부른 걸까요? 별점은 2점입니다.

<<파란 무리>>
장기 매매가 일반화된 미래. 하층민은 장기를 팔고 인공 장기로 교체하여 삶을 이어나간다. 판매된 장기는 하나로 모아져 부자 노인의 뇌를 이식한다는 소문이 있었다. 하지만 알고보니 장기를 팔아 인공 장기로 교체하는건 단순한 빈민 대책으로 무의미한 시술이었고, 이 모든건 권력자들이 권력을 쥐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었다.

80년대 유행했던 전형적인 디스토피아 SF물.
지금 읽기에는 너무 낡은 이야기였습니다. 기묘한 세포 덩어리로 피해자들을 변질시킨다는 결말에서 모로호시 다이지로 특유의 이형 생태 결합을 선보이기는 하는데, 장기 매매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어서 이야기에 잘 녹아들지 못하더군요.  <<소일런트 그린>>정도의 충격적인 반전도 아니었고요. 지금 시점에서 다시 언급될만한 작품은 아닙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그림자의 도시>>
한 초등학생이 모르는 아이에게 이끌려 낯선 골목길로 향했다. 그 곳에서는 괴물이 나타나 사람과 건물을 잡아먹었다. 꿈인줄 알았는데 실제로 잡아먹혔던 아이는 교통사고로 죽었고, 잡아먹힌 학원도 불에 타 버렸다.
괴물이 자신의 얼굴을 하고 있다는걸 깨달은 아이는 괴물에게 모델건을 쏘고 기절했다. 그리고 정신이 든 뒤, 싫은 일이 생길 때 마다 모르는 골목길로 항하게 되었다....

<<신세기 에반게리온>>에 영향을 주었다는걸로 유명한 작품. 아래의 장면 덕분일겁니다.


그러나 내용은 다소 뻔했습니다. 이세계에서 경험한 일이 현실 세계에서 실제로 벌어진다는 이야기는 많으니까요. <<앨리스 죽이기>>가 떠오르네요. 때문에 지금 읽기에는 진부했습니다. 모로호시 다이지로의 작화로는 작품의 분위기를 잘 시각화하지 못하고 있고요.

하지만 초등학생이 주인공이고 진짜 악당 - 싫어하는걸 없애버리는데 주저함이 없으니 - 이라는 점은 특이했습니다. 이 점 하나만큼은 높이 평가하고 싶어요.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2023/06/26

2023.06.20 ~ 06.25 두산 베어스 감상

주중 SSG - 주말 키움 / 홈 - 원정 6연전
성적 : 2승 4패

좋았던 점 
  • 안정된 선발진 (5선발은 다소 아쉬웠지만)

나빴던 점
  • 5경기 평균 2득점에 그친 타선
  • 두 경기 패배의 주역 이영하 선수

총평과 이번주 예상 (혹은 기대) 
다행스러운건 키움 전 위닝으로 5위 자리는 사수했다는 검니다. 5할 승률은 무너졌지만요. 
그러나 주간 전적 2승 4패는 다소 아쉬운 결과입니다. 선발 투수들이 거의 전경기 퀄리티 스타트 플러스에 가깝게, 대부분 6이닝 2실점 이하로 버텨주었음에도 불구하고, 2주 연속 계속된 타선 침체로 말미암아 SSG전에서 스윕패를 당했기 때문입니다. 5경기 평균 득점이 2점이라니 할 말이 없네요. 만루 찬스를 세 번 연속 놓친 것도 심했지만, 목요일 경기는 달랑 3안타에 그쳤으니 말 다했지요. 점수는 못 내더라도 안타는 제법 쳤던 것 같은데, 지난 주는 그런 모습마저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다른 팀에는 몇 명씩 있는 젊은 타자들이 도무지 성장하지를 않는 이유가 궁금해집니다.
이승엽 감독도 답답했는지, 강승호 선수를 2루에 다시 기용하고, 로하스 선수를 콜업하는 등 이런저런 수를 다 써보는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그 덕분인지는 몰라도 일요일 한 경기는 모처럼만에 시원하게 이길 수 있어서 다행이었어요. 이 타격감이 한 경기 반짝일지, 기폭제가 될 지는 이번 주를 지켜봐야 하겠지만 기폭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투수진은 앞서 말했듯 선발진은 견고했습니다. 최승용 선수가 계속해서 좋지 못한데, 이승엽 감독도 당분간 장원준 선수를 5선발로 쓴다고 하니 나아지겠죠. 어차피 5선발이니 기대치가 높지도 않고요.
문제는 복귀 후 한 주 정도 빛나는 투구를 보여주었던 이영하 선수의 충격적인 부진입니다. 두 경기 등판해서 1/3 이닝 6자책이라는 엄청난 기록을 남기고 패배의 원흉이 되었습니다. 박정수 선수가 롱맨으로 괜찮은 투구를 해 주고, 김명신 선수도 건강히 복귀했으니 퓨처스에서 재조정하는게 좋아 보입니다.

이번 주는 홈에서 NC, 원정 롯데 경기가 이어지는데 최원준, 장원준, 곽빈, 브랜든, 알칸타라, 최원준 선수 순으로 등판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NC는 현재 선발진에 공백이 생겼고, 롯데는 전반적으로 하향세인 만큼, 그리고 중위권 다툼을 앞서가기 위해서 꼭 잡아야 하는 팀들이니만큼 이번 주는 전 시리즈 위닝을 목표로 달려보았으면 합니다. 4승 2패 기원합니다.
하지만 장마가 시작된터라... 몇 경기나 치루어질지 모르겠네요.

2023/06/25

658, 우연히 - 존 버든 / 이진 : 별점 2.5점

658, 우연히 - 6점
존 버든 지음, 이진 옮김/비채

<<아래 리뷰에는 핵심 트릭과 진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은퇴한 전설적인 뉴욕 경찰 거니에게 대학동창 멜러리가 찾아왔다. 1부터 1000까지의 숫자 중 무작위로 자신이 떠올린 숫자를 알아맞춘 누군가가 자기를 협박하고 있다는 걱정을 털어 놓기 위해서였다. 경찰에 신고하라는 거니의 지시를 자신의 사업 - 조금 수상쩍은 일종의 종교단체 - 핑계를 대며 회피하던 멜러리는 결국 살해당하고 말았다. 사건 현장도 기묘한 점 - 허공으로 사라진 듯한 발자국, 총을 쏜 뒤 깨진 병으로 목을 찌른 점 등 - 투성이었다.
거니는 지방검사 클라인의 요청으로 수사본부에 자문역으로 참여했고, 브롱크스와 소더턴에서 잇달아 일어난 살인 사건이 동일범의 소행이라는걸 알아냈다. 범인은 경찰과 일종의 게임을 하고 있었다....


<<유리탑의 살인>>에 꽤 중요하게 언급되었던 작품. 소개가 멋드러지고 재미있어 보여서 바로 집어들게 되었습니다. 
"범인은 1에서 1000까지의 수 중 피해자가 아무렇게나 떠올린 숫자를 어떻게 맞출 수 있었을까?"라는 질문과 함께 시작되는 도입부는 기대에 부응합니다. 아주 흥미로왔거든요. 살인이 벌어진 뒤, 현장의 범인 발자국을 따라가보니 허공으로 떠오른 듯 갑자기 사라졌다는 엽기적인 현장도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었고요. 범인이 살인 현장에 이전 사건이 일어났던 장소에 대한 단서를 남기며 - 작약 (피어니), 넙치 (플라운더) - 경찰과 게임을 벌이는 전개도 재미있었습니다.
기상천외한 트릭, 불가능 범죄에 연쇄 살인극, 거기에 범인과의 두뇌싸움까지 결합되어 있으니 본격물로의 판은 제대로 깔린 셈입니다. 이런 작품을 21세기에 볼 수 있다는게 놀랍네요.

특히 도입부를 장식했던 '숫자 맞추기' 트릭은 높이 평가하고 싶습니다. 원리는 유명한 '주식 투자 사기'와 같아요. 여러명에게 '숫자를 생각하라'는 편지를 보내고, 그 뒤 '너가 생각한건 이 숫자야'라는 편지에 모두 똑같은 숫자를 써서 보내는 겁니다. 그러면 그 숫자를 생각했던 사람은 깜짝 놀라며 범인에게 조종되고 마는 것이고요. 범인이 편지를 보낼 대상자가 많으면 많을 수록 그런 사람은 늘어나게 됩니다. 문제는 주식이 오르냐, 내리냐와 같은 단순한 이지선다가 아니라 1부터 1000까지의 광범위한 숫자라는게 핵심인데, 챗 GPT에게 물어보니 "1부터 1000까지의 숫자 중에서 무작위로 하나를 선택하는 경우, 10000명이 각자 선택하는 경우의 수는 1000의 10000승으로 같은 숫자를 선택하는 경우의 수는 약 1/1000이 됩니다. 즉, 10000명이 각자 1부터 1000까지의 숫자 중에서 무작위로 하나를 선택하는 경우, 약 10명 정도가 같은 숫자를 선택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라고 하네요. 범인처럼 약 수만명에 이르는 광범위한 DB를 확보한 사람이라면 충분히 시도해볼 수 있는 방법인거지요. 누구나 알고 있음직한 아이디어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고 그럴듯하게 만들어냈다는건 아무리 칭찬해도 부족하지가 않습니다.
트릭과 결합된 범인의 행동도 설득력이 넘칩니다. 범인은 당첨된 - 숫자를 맞춘 - 사람들에게 약간의 돈 (200여 달러)을 수표로 보내도록 유도합니다. 자신이 이런 숫자를 알 정도로 전지전능하고, 너의 비밀도 알고 있다면서요. 그러면 뭔가 비밀이 있는 사람들은 수표를 보낼 수 밖에 없습니다. 사실 범인은 아는게 하나도 없지만 이렇게 받은 수표를 이용하여 피해자들의 이름과 주소를 알아내게 됩니다.
형사답지않고 프로파일러에 가까운 거니 형사의 활약도 독특했습니다. 범인 입장에서 왜 그랬는지?를 생각하고 추리한다던가, 범인의 심리를 예상해서 위기를 타개하는 장면들이 그러합니다. 과장이 심한 측면은 있지만 나름 볼 만 했어요. 아내와의 대화로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묘사도 기존 컨텐츠들의 거친 상남자 뉴욕 형사들과는 달랐고요.

그러나 도입부의 숫자 트릭 외의 추리적 요소들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전화로 생각한 숫자를 말하게 한 뒤, 우편함의 편지를 보라고 했던 두 번째의 숫자 맞추는 트릭이 대표적입니다. 숫자를 듣고 편지를 우편함에 넣은게 당연하지요. 실제로도 그러했고요. 신발 밑창을 거꾸로 붙인 장화를 신고 범행을 저질러서 허공으로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는 트릭은 유치했습니다.
그리고 첫 번째 트릭은 피해자를 골라내고, 이름과 주소를 알아내기 위해서라는 목적이 분명합니다만, 뒤이은 트릭들은 이렇게 범행을 저지를 당위성을 확보하지 못힌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두 번째 숫자 맞추기를 하지 않았더라도 어차피 멜러리를 죽였을테고, 이미 죽였다면 현장을 기묘하게 위장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이를 위해 덧붙인 경찰과 게임을 하기 위해서? 라는 설정은 억지스러웠고요.
주정뱅이 경찰이었던 아버지 탓에 어머니가 장애를 얻어서 복수를 시작했다는 범인의 동기도 납득하기 힘들었어요. 그렇다면 범행 대상도 주정뱅이 경찰이었어야 했는데, 금주 치료를 받은 사람들을 죽이고 다닌건 다소 이치에 맞지 않아 보였거든요.
범인의 총구 앞에 놓인 나르도 반장을 구하기 위해 거니가 범인을 도발하면서 시간을 끌고, 이 틈에 나르도 반장이 술병을 던져 범인을 죽인다는 결말도 작위적이었습니다.
아울러 좋다는 첫 번째 트릭도 후보자가 많아지면 들통날 우려가 많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SNS 등 소통 수단이 많은 지금보다는 인터넷 등이 덜 발달한 시대에 적절했을 트릭이에요.

경찰의 수사에도 문제가 많습니다. 범인이 수표를 보내도록 유도한 사서함 주인 더모트를 철저하게 조사하지 않은게 대표적입니다. 범인이 그 사서함에 접근해서, 수표를 빼돌려 주소를 알아낸건 명확합니다. 그렇다면 수표를 보는게 쉬웠을 더모트가 유력한 용의자가 되는건 당연한 이치입니다.
범인이 어떻게 범행 현장에서 개인 흔적을 철저히 지웠는지에 대한 설명도 없어서 아쉬웠습니다. 전혀 다른 도시에서 무려 3건이나 범행을 저질렀는데 자신의 흔적을 모두 지운다? 현대의 과학 수사를 일반 범죄자가 벗어나기는 거의 무리가 아닐까 싶네요. 이런 부분은 대충 넘어가고 있는데, 설득력을 갖추려면 보다 상세한 디테일이 필요했습니다.

너무 길다는 문제도 큽니다. 사건과 관계된 이야기로 분량이 늘어났다면야 괜찮았겠지만, 거니 형사의 지극히 개인적인 사진 작업들과 여러가지 생각, 꿈, 아들과의 인연과 사건 등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건 지루함만 더해줄 뿐이었습니다. 부인과의 긴장감 느껴지는 관계도 마찬가지고요.
그냥 집에서 쉬면서 편하게 사건 이야기를 하다가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잡으면 안되나요? 프렌치 경감처럼요. 현대물이라고 다 이혼남에 가정 내 위기를 겪는건 아닌데 말이지요. 필요한 설명보다 쓸데없는 부분의 디테일만 넘치는 셈입니다.

그래도 숫자 맞추기 트릭에 대한 발상만큼은 좋았기에 별점은 2.5점입니다. 분량을 줄이고 범행 과정의 설득력을 보강했더라면 아주 괜찮은 작품이 될 수 있었을겁니다. 그래도 본격적인 추리물 애호가라면 즐길만한 작품인건 분명합니다.

덧 : 유리탑의 살인에서는 이 작품의 '658'이 추리 소설에서 가장 대표적인 세자리 숫자라는 식으로 언급하는데, 추리 소설에서 가장 유명한 숫자는 '813' 아닐까요?

2023/06/24

게임사회 전시 관람 (06.23)

오랫만에 회사 행사로 미술 전시회를 보고 왔습니다. 전시명은 <<게임 사회>>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하는 전시로, 집에서는 한 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지만 남들 출근하는 평일에 미술관을 가니 발걸음도 가벼웠습니다. 벌써 해바라기가 피었더라고요.
전시의 주제는 말 그대로 '게임'입니다. 비디오 게임이 등장한지 50년이 지난 오늘날 게임의 문법과 미학이 동시대 예술과 시각문화, 더 나아가 우리의 삶과 사회에 미친 영향을 짚어보기 위해 기획되었다고 하네요.
게임은 시각과 청각 중심의 인터페이스 디자인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스토리텔링, 몰입 경험과 사회적 상호 작용을 아우른다는 측면에서 현 시대 가장 앞서있는 종합 예술이자 미디어 아트일 수 있다는 점에는 저도 동의합니다. 한, 두 명이 아니라 수많은 크리에이터들의 노력이 결합되어야 완성될 수 있는 결과물이기도 하고요. 아무래도 제 직업이 UX이니만큼 관심이 갈 수 밖에 없는 전시였어요.

전시를 감상하기 전에 '어떤 것들이 전시되어 있을까?'를 개인적으로 이것저것 상상해 보았는데,'예술'이라고 부를 수 있는 대표적인 게임을 전시하고 있는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아니면 <<마인 크래프트>>로 만든 여러가지 창작물들, 또는 너무 유명해서 이미 아이콘이 되어버린 대표적인 게임을 토대로 만들어진 결과물들이 소개되지 않을까 생각도 했고요.
이건 예술품이라고 부르기는 민망하지만....

실제로 전시를 보니, 제 생각과 절반 정도는 일치했습니다. 실제로 사회적으로 큰 영향을 준 대표적인 게임들이 여러가지 소개되고 있었거든요.
대표적인건 비디오 게임의 조상님이라 할 수 있는 <<팩맨>>, 가상 현실이라는걸 게임을 통해 최초로 사람들에게 알려준 <<심시티>>, 최근까지도 메타버스 세계관으로 잘 나가고 있는 <<마인 크래프트>> 등이 그러합니다. 대부분의 게임들이 조작 가능한 상태로 전시되어 있는 것도 좋았어요. 전시의 취지를 잘 살렸더라고요.
<<카트라이더>>까지 소개되고 있었는데, 이건 아마 협찬(?)이 아닐까 싶은 생각은 드네요. 그 정도 사회적인 반향을 불러 일으킨 게임은 아니니까요. 우리나라 기준이라면 <<스타 크래프트>>를 소개해주는게 맞지 않나 싶었습니다. 그야말로 산업 자체를 바꾼 게임이니까요. 그래도 <<카트라이더>>에 가장 많은 학생들이 몰려서 게임을 하는 모습을 보니, 이거야말로 진정한 '게임 사회'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결과물의 완성도, 사회적인 영향력이 뭐가 중요하겠습니까. 인기 많고 재미도 있으면 그게 최고죠.
그리고 예술에 가까운(?) 게임으로 <<플로우>>, <<플라워>> 등이 소개되고 있는데, 조금 조작해보니 게임이라기 보다는 인터랙티브 아트에 가깝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이걸 더 사용자가 몰입할 수 있고, 무언가 성취감을 느끼게 하면 그게 바로 게임이 될 텐데 그걸 어떻게 찾아갈지를 고민해보아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단순한 인터페이스라도 뭔가 그런 경험을 주도록 만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게임의 형식을 빌린 일종의 미디어 아트들이 선보여지는데, 이건 좀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실제 오락실(?)처럼 꾸며놓은 전시 공간, 그리고 게임기 형태를 빌어 설치하고 만들어 둔 작품들은 언뜻 보면 진짜 게임같게끔 잘 만들어놓기는 했는데요, 조금 자세히 들여다보면 지나칠 정도로 왜색이 짙은건 둘째치더라도, 결과물의 상상력이 너무 빈곤했습니다. 일본 만화를 많이 접했던 사람들에게는 그리 신기하지 않은 볼거리(?)에 지나지 않을 정도로요. 실제로 조작까지 가능한 작품도 몇 개 있었지만, 수십년전 플래쉬 게임 수준이라 단계가 너무 단순해서 몰입할 수도 없었고요.
이렇게 관람을 끝냈습니다. 홀로 감상해서 의견을 나눌 사람이 없다는게 안타까왔지만, 많은걸 느끼게 해 준 좋은 전시였습니다. 다음에는 의견을 나눌만한 지인들과 와서 감상하고 싶네요.

2023/06/23

까마귀의 엄지 - 미치오 슈스케 / 유은정 : 별점 2.5점

까마귀의 엄지 - 6점
미치오 슈스케 지음, 유은정 옮김/문학동네

<<아래 리뷰에는 진상, 반전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다케자와는 실수로 직장 동료 빚을 떠앉은 뒤 사채를 끌어쓰다가 몰락하고 사채업자 밑에서 일하게 되었다. 채무자의 남은 돈을 쥐어짜는 일이었다. 그러다 한 편모 가정의 어머니가 자살한 뒤 다카자와는 충격을 받고 조직의 비밀 서류를 빼돌려 경찰에 신고했다. 조직은 괴멸되고 두목 히구치는 체포되었지만, 다케자와는 보복을 당해 열두살 딸 사요를 잃고 말았다.
7년이 흘러 다케자와는 똑같이 사채로 아내를 잃은 데쓰와 팀을 이루어 자잘한 사기를 저지르며 먹고 살았다. 다케자와 때문에 자살한 여자의 딸들 - 마히로, 야히로 - 과 그 남자친구 -간타로 - 와 우연찮게 동거하던 중, 다케자와를 노리는 누군가가 나타났다. 히구치의 복수임을 직감한 다케자와는 도망치려 했지만, 데쓰와 마히로, 야히로, 간타로의 조언과 도움으로 반격을 결심했다.
도청 장치를 설치한 선불폰을 이용하여 사채 조직의 계좌 정보를 빼낸 뒤, 도청 탐지 업체를 위장하여 조직에 잠입하여 금고 속 현금을 털 계획을 세웠고, 5명 모두가 역할을 맡고 실행에 나서는데....


미치오 슈스케의 작품은 여태까지 모두 일곱 권 읽어보았습니다. <<해바라기가 피지 않는 여름>>은 좋았지만, 그 외는 대체로 그냥저냥이었어요. 서술 트릭과 무리한 설정에 기대는 경우가 많았던 탓입니다. 그래도 이 작품은 이런저런 랭킹에서 추천했고, 아베 히로시 주연의 영화로도 개봉된 적이 있는 대표작이기에 관심이 가던 차에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작품은 크게 심각한 사채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는 전반부, 유쾌한 범죄를 그리는 후반부로 나뉩니다. 전반부에서 묘사되는 다케자와와 데쓰의 과거는 사채가 원흉이 된 가족의 파멸이라는 점에서 <<화차>>를 떠오르게 만드는데, 중반 이후 분위기는 돌변합니다. 다양한 인물들이 개성을 뽐내며, 비교적 유쾌하게 흘러가기 때문입니다. 작가의 <<외눈박이 원숭이>>와 비슷하게요. 또 다케자와 일당이 히구치 조직의 돈을 빼돌리려고 한탕 작전의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는 과정은 <<스팅>>이나 <<뉴욕을 털어라>>와 같은 케이퍼 소설 - 범죄자가 주인공으로 범죄를 유쾌하고 가볍게 다룬 소설 - 이라고 보아도 무방하고요.

그런데 전반부는 별로 마음에 들지 않더군요. 다케자와가 빚을 진 이유는 본인 실수입니다. 무고한 소시민이 사채의 늪에 빠져든게 아니라요. 일종의 사기를 당한거긴 하지만, 누구 탓을 할 건 못됩니다. 빚을 졌으면 갚아야죠.
게다가 딸마저 잃고 좌절한 다케자와가 '사기'로 먹고 살게 되었다는건 최악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을 등쳐먹는 사기꾼이야말로 사채업자보다 더 나쁜, 최악의 인물 아닌가요?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던들, 현재의 사기 행위에 면죄부가 될 수는 없습니다. 자잘한 범죄를 통해 기획력, 행동력을 선보이며 마지막 큰 '한탕'을 계획할만한 인물이라는걸 설명하기 위한 어쩔 수 없던 설정이라 생각되는데, 감정이입하기는 힘들었습니다. 사기꾼 주인공이 나올 수는 있어요. 다만 그럴거라면, <<스팅>> 처럼 대놓고 범죄물로 그리는게 나았을겁니다. 괜히 사채업자의 피해자라는 설정을 덧붙일 필요는 없었습니다. 이야기와 별 관계도 없고요.
자잘한 사기 행각 - 은행에서 출금한 손님의 현금을 빼돌리는 사기, 데쓰와 다케자와가 처음 만날 때 데쓰가 저질렀던 자물쇠 교체 사기, 전당포를 이용한 사기 등 - 도 재미는 있었지만 치밀하고 잘 짜여진 이야기는 아니었습니다.
아울러 <<외눈박이 원숭이>>가 떠오르는 다소 과장된 인물 설정도 감정이입을 방해합니다. 다케자와와 데쓰 외에는 비현실적인 인물들인 탓입니다. 화룡정점은 마술사 간타로입니다. 말투와 행동 묘사 모두가 도저히 현실에 존재하는 사람같지 않았어요.

그래도 후반부 한탕 작전은 꽤 재미있었습니다. 아래와 같이 그럴싸한 단계를 거치면서 상당한 설득력을 보여주는 덕분이지요. 흥미진진하기도 하고요.
  1. 일당은 싼 가격으로 유혹하여 히구치의 사채 조직이 도청 장치를 심어놓은 선불폰을 구입하게 만들었다.
  2. 도청으로 사채 조직의 계좌 번호를 빼 낸 뒤, 이를 알리는 편지를 보내어 계좌 속 현금을 사무실에 보관하게 만든다.
  3. 도청 감지 업체를 위장하여 사무실에 잠입한 뒤, 금고 속에 도청 장치가 있다고 속여 금고를 열게 만든다.
  4. 장난감 총을 진짜처럼 보이도록 속여 돈을 강탈한다.
  5. 달아나던 마히로가 건물에서 떨어져 죽은 것 처럼 위장하고 돈을 빼돌린다. (돈이 들었던 봉투를 바꿔치기 함)
알고보니 작전은 히구치가 이미 알고 있었으며 히구치가 모든걸 용서하고 끝낸다는 마무리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이는 다들 과거를 잊고 각자의 인생을 사는 완벽한 해피 엔딩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나쁜 사람이라도, 일당이 저지른 행위는 엄연히 범죄이니만큼 이 정도로 마무리되는게 현실적이었겠지요.

하지만 문제가 없지는 않습니다. 특히 가짜 총까지 동원해서 돈을 훔치려고 했다는건 억지스러웠습니다. 일당 중에 마술사가 있었으니, 자연스럽게 봉투를 바꿔치기하는게 더 현실적이었을거에요. 계획대로 히구치 조직이 연극에 속아넘어갔다 하더라도, 금고에 돈을 돌려 놓을 때 봉투가 바뀐걸 알아챘을테니까요. 저 연극이 그렇게 시간을 많이 벌어주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불법 추심 사채업체라 하더라도, 돈을 훔쳐 달아나던 사람이 떨어져 죽었다고 그냥 돈만 회수하고 물러난다는 것도 애매했습니다. 돈을 어떻게 모았건 간에, 모은 돈을 도둑맞았으니 엄연히 피해자입니다. 구태여 몸을 사릴 필요는 없어요.

다행히 마지막 반전이 이 단점들을 한 방에 해결해 줍니다. 다케자와 일당이 모든걸 걸었던 한탕 작전은 데쓰가 꾸민 연극이었다는 반전입니다.
데쓰는 마히로, 야히로 자매의 아버지로 자기가 집을 떠난 뒤 아내가 자살한 것에 대한 복수, 다케자와에 대한 연민 등이 겹쳐 남은 사람들이 모든걸 털고 새롭게 일어날 수 있도록 이런 일을 벌였던 겁니다. 그는 굉장한 경력과 실력의 사기꾼으로 연극에 사용한 거액의 돈은 진짜 히구치에게 사기쳐서 확보했고요. 그래서 다소 어설퍼보였던 작전, 그리고 이상할정도로 낭만적이었던 결과 - 히구치가 모든걸 용서하고 놓아주는 - 가 설명됩니다. 다케자와가 '사기꾼'이라서 마음에 들지 않았던 전반부도, 사기는 나쁘다는걸 확실하게 알려주며 마무리되어서 납득할 수 있게 만들고요.
데쓰가 모든걸 꾸몄다는걸 교묘하게 이야기 속에 숨겨서 진행한 것 역시 감탄스러웠습니다. 초반, 데쓰가 애너그램에 능하다는 것에서 시작해서 다케자와가 데쓰의 사기를 눈치챌 때부터 모든 부분에 관련된 단서를 교묘하게 삽입하고 있으며, 이를 마지막에 드러내는 솜씨는 절묘했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 그냥 케이퍼 범죄물로 끌고가는게 훨씬 좋았을거라는 생각은 들지만, 한 번 읽어볼만한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영화가 궁금하네요.

2023/06/22

오아시스 식당 - 아베 야로 외 / 정문주 : 별점 2.5점

오아시스 식당 - 6점
아베 야로 외 지음, 정문주 옮김/미우(대원씨아이)

문필가, 편집자이자 만화가라는 사코 후미오가 심야식당의 작가 아베 야로와 함께 맛집을 돌아다닌걸 기록한 에세이 모음. 모두 20곳의 식당이 소개되며, 아베 야로와 사코 후미오의 짤막한 만화, 둘의 이런저런 요리를 주제로 한 대담이 함께 수록된 구성입니다.
자기 주장이 약하고 순전히 가게의 맛과 멋을 찬양하는 착한 글들이라는건 심야식당과 일맥상통합니다. 누군가의 쉼터같은 오아시스 식당을 소개하는데 험한 말을 쓸 수야 없었겠지요.

소개된 가게도 몇가지 특징이 있는데, 첫 번째는 전부 대중 식당으로 2~3대가 이어 운영하는 노포가 많다는 겁니다. 일본 양식에서 밥을 함께 담아내는 방식을 처음 고안했다는 유명식당 연와정 - 현재 3대째 - 에서 시작해서, 원조 돈가스 카레격인 '가와킨 덮밥'을 만든 가게의 후계자 - 4대째 - 가게처럼요.
이런 유명 노포들 외에 본인들이 직접 검증한 동네 맛집 소개도 충실하다는게 두 번째 특징입니다. 그래서 현재 사는 곳인 도쿄, 그리고 근처 가나가와 맛집 소개가 12곳으로 절반 이상을 차지하며, 이런 류의 책에서 접하기 힘들었던 고치 맛집도 6군데나 등장합니다. 둘 다 고치 출신인 덕분이지요. 고치 명물 가다랑어 다타키는 다른 작품들을 통해 익히 알고 있었지만, 베라야키같은 그 지역 사람만 아는 명물 소개는 신선했어요. 얇은 밀가루 반죽에 가쓰오부시, 파래, 파, 덴푸라를 올리고 반죽과 계란을 풀어 덮고 뒤집은 뒤 소스를 발라 먹는 요리라네요.
세 번째 특징은 왠지 모르게 친숙한 식당이 많다는겁니다. 우선은 심야 식당과 관련된 가게가 있습니다. 고엔지의 중화 고토부키로, 가게 명물 부추달걀볶음은 심야식당의 메뉴로도 등장했었지요. 녹말 소스를 끼얹은게 특징입니다.
그 외에도 호놀룰루 식당은 무라카미 하루키가 쓴 칼럼에 등장했고, 대낮부터 술을 판다는 노가타 식당은 <<고독한 미식가>>의 한 에피소드가 바로 떠올랐어요. 아침 8시에 문을 여는, 성인영화계의 스타였다는 주인이 운영하는 주점 데라코아는 <<술 한잔 인생 한입>>에 등장해도 괜찮다 싶은 생각이 들었고요. 가본적은 없지만 다 친숙한 느낌입니다.
그 중에서도 압권은 도키와장 멤버들이 단골이었던 라면가게 마쓰바! 제가 좋아하는 <<만화의 길>>에도 여러차례 등장했었지요. 언젠가 방문해서 라멘은 꼭 한 번 먹어보고 싶습니다. 



'주다'도 판다니 라면에 한 잔 곁들여야 할테고요. 


물론 맛은 큰 기대하지 않습니다. 글을 보니 전문가가 아닌, 2대의 부인이 조리를 하고있다니까요. 그야말로 가정식일 겁니다. 하지만 이런게 더 <<만화의 길>> 스타일 - 고생스럽지만 잔 정이 넘치던 그 시기 - 이라고 생각됩니다.

밥집 탐방이다보니 요리를 따라하기는 힘든데, 한번 해봄직한 요리도 몇 가지 있어요. 요코하마 사이타마야 식당의 커피 소주가 그러합니다. 얼음이 든 큰 유리잔에 1/3 정도 소주를 붓고 그 위에 옛날 느낌 커피 (커피 우유 느낌이라니, 우리나라로 따지면 다방 커피나 맥심?)를 부어 만든다고 합니다. 요새 하이볼 등이 MZ에게 유행이라는데, 우리나라에서도 '맥심 소주볼' 이라고 팔면 어떨까 싶네요. 술과 커피를 섞어 마시면 건강에 굉장히 안 좋다고 하기는 합니다만....
가와킨 덮밥도 밥 위에 채 썬 양배추, 돈가스를 올리고 닭고기 카레를 끼얹었다니, 맛은 다를지언정 흉내는 낼 수 있을 것 같고요.

이렇게 갈 수 없는 곳을 남의 눈과 입과 귀로 접한 셈으로, 푸근하고 정감어려 좋았으며 재미있는 내용도 많습니다. 하지만 대체로 갈 수 없는 곳들이며, 유통기한이 있을 수 있다는건 아쉽네요. 비슷비슷한 내용이라 뒤로 갈 수록 식상해진다는 문제도 있고요.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2023/06/20

2023.06.13 ~ 06.18 두산 베어스 감상

주중 NC - 주말 LG 원정 3연전
성적 : 2승 4패
 
좋았던 점
  • 노장의 분전, 장원준 선수 (화요일만)
  • 115구, 투혼의 퀄리티 스타트 곽빈 선수

나빴던 점
  • 초반에 무너진 투원준 선수들 (최, 장)
  • 주말 LG전 실책의 향연

총평과 이번주 예상 (혹은 기대)
주간 전적 2승 4패는 어느정도 예상했습니다. 상위권 강팀을 연달아 만나는데 우리는 땜빵 선발이 두 경기나 나와야 하는 일정이었으니까요. 게다가 재조정을 거치고 올라온 최원준 선수마저 좋지 못해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건 힘들었습니다. 그나마 화요일 첫 경기를 예상도 하지 못했던 장원준 선수의 호투로 잡아서 기대를 했는데, 알칸타라 선수 경기를 놓친게 아쉽습니다. 날씨라도 도와주었더라면 강우 콜드로 한 게임 더 가져올 수 있었는데 말이지요.

초반에 선발 투수가 무너진 두 경기를 제외하면 투수진은 어느정도 버텨주었는데, 문제는 타선입니다. 안타는 제법 치는 것 같은데 득점권에서 도무지 치지를 못하네요. 백미는 수요일 경기 무사 만루 무득점이라 할 수 있고요. 여기서 한 점이라도 냈다면 경기 향방은 몰랐을 겁니다.
잘 못 치면 수비라도 잘 해야 할텐데, LG 전에서의 연이은 실책 행진은 볼썽사나울 정도였어요. 이 정도면 야수진의 전면 재조정이 필요해 보입니다. 신인급 야수들에게는 세금을 내야 한다 치더라도, 고참 선수들의 실수에는 질책도 필요해보여요.

다행히 아직까지는 5할 승률을 사수하며 5위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이번 주는 역시나 상위권 팀인 SSG, 그리고 상승세의 키움과 홈, 원정 경기를 갖네요. 순서만 보면 SSG 전에 알칸타라, 최원준, 최승용 선수가, 키움 전에 곽빈, 브랜든, 알칸타라 선수가 등판하게 됩니다. 최근 부진한 최승용 선수 대신에 다른 선수가 투입될 수도 있고요.
다행인건 알칸타라 선수의 2번 등판과 브랜든 와델 선수의 등판입니다. 초반에 무너지는 선수들은 아니니까요. 5할 승률 유지를 목표로 잡을 경기를 확실히 잡는 경기 운영이 필요할 때입니다. 3승 3패를 기대합니다. 아니면 제발 비가 오기를 바랍니다~~

2023/06/18

패미컴 컴플리트 가이드 - 야마자키 이사오 / 문기업 : 별점 3점

패미컴 컴플리트 가이드 - 6점
야마자키 이사오 지음, 문기업 옮김/라의눈

제목 그대로, 80~90년대 패미컴 게임 전체 소개 및 관련 정보까지 망라하여 소개하고 있는 책. 저도 80년대 패미컴 유저라서 옛 추억 소환 차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이전에 읽었던 <<초패미컴>>, <<초초패미컴>>과 비슷한 책인데, 가장 큰 차이점은 도판이 컬러라는 점입니다. 이 점 때문에라도 따로 구매할 가치가 있는 셈이지요.

담고 있는 정보가 많고 충실해서 패미컴 애호가라면 즐길거리가 많습니다. 저같은 옛 유저라면 옛날 게임들을 하나씩 떠올리는 것만 해도 시간이 금방 갈 정도입니다. 패미컴의 탄생, 패미컴의 변종들, 다카하시 명인, 패미컴을 다루는 TV 프로그램, 잡지, 광고 등 다양하게 수록되어 소개되는 각종 정보들도 굉장히 재미있었고요.

제가 재미있게 했던 게임을 하나 꼽자면, 역시나 <<사라만다>>. 작은 사진으로라도 다시 보니 반가왔습니다. 추억 돋네요.


그리고 책을 보다가 몇가지 새롭게 느낀게 있는데, 첫 번째는 미디어 믹스 게임이 많았다는 겁니다. 특히 인기 만화를 소재로 한 게임이 많더라고요. 쿠소게로 유명했던 <<터치>>는 익히 알고 있었지만, <<바츠 & 테리>>와 같이 그렇게 대단한 히트를 치지 못했던 만화까지 게임화를 한 건 놀랐습니다. 심지어 게임 요소가 거의 없어 보이는 <<맛의 달인>>까지 게임화를 시도했던데 어떤 게임일지 궁금하네요. 유우코의 마음을 얻기 위해 이사무와 한 판 승부를 벌이는 내용이었다면 꽤 흥미로왔을것 같습니다. (아래의 짤막한 소개만 보면, 또 출시일을 보면 그럴리는 없겠지만...)


두 번째는 인기 연예인들을 소재로 한 게임들도 제법 된다는 겁니다. 미디어믹스와 비슷하게, 유명세를 이용하여 팔아먹기 좋았기 때문이겠지요. 그런데 주인공들은 당대 인기 아이돌들보다는, 예능인이나 다소 매니아 취향(?) 연예인이 많더군요. 인기 가수로는 아래와 같이 제가 좋아했던 TV Network 정도만 눈에 뜨일 뿐이었어요.

인기 연예인은 아니지만, 고르바초프가 주인공인 게임까지 있는데 히카루 겐지나 체커스와 같은 당대 아이돌 게임은 왜 없었던걸까요? 소속사에서 허락을 하지 않았기 때문일까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격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보통 5,000엔에서 시작해서 거의 만엔 가까이 가는 게임들도 있는데, 굉장히 비싸다고 생각되었거든요. 그런데 조사해보니 80년대 후반 ~ 90년대 초반 일본은 버블 시기였기에 평균 급여가 425만엔으로 높았더군요. 월급으로 따지면 35만 5천엔이지요. 그렇다면 월급의 1.5%정도 되는 돈입니다. 월급이 300백만원이라고 치면, 게임 하나가 4만원 정도니 한달에 한, 두개는 살만했겠구나 싶었습니다. 
물론 싼 가격은 아니에요. 당연히 한 번 구입하면 마르고 닳도록 할 수 밖에 없었겠죠. 게임을 처음 고를 때에도 꽤 신중했을테고요. 무언가를 저렴하고 쉽게 소비하고, 싫증이 나면 곧바로 없앨 수 있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방식인데, 오히려 이렇게 비싼 돈을 주고 깊이 고민해서 구입하는 방식이 개인의 취향이 생기는데에는 더 좋은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듭니다.

이렇게 여러가지 추억을 되짚을 수 있었고, 볼거리도 많은 책이지만 수록 도판의 크기가 너무 작다는 문제는 큽니다. 육안으로는 상세 화면을 거의 확인할 수 없을 정도에요. 중반 이후부터는 스마트폰의 '확대경' 앱을 설치해서 읽었습니다.
<<초패미컴>> 등과 다르게 게임에 대해 명백한 사실, 좋은 의도만 전달하고 있는데, 해당 게임의 가치에 대해서도 조금 더 상세하게 소개해주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쿠소게, 망작으로 밝혀졌다면 명확하게 안내해 주는 식으로요. 

그래도 즐겁게 읽었습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다음 버젼이 만들어진다면, 실제 게임 동작 화면과 사운드도 감상할 수 있는, 조금 더 나아가 실제 게임을 즐길 수도 있는 복합적인 컨텐츠로 제작되는게 훨씬 좋을 것 같네요. 판권이나 저작권 등 여러가지 이슈가 해결되어야 하겠지만요.

2023/06/17

설원의 독수리 - 마이클 모퍼고 / 보탬 : 별점 2점

설원의 독수리 - 4점
마이클 모퍼고 지음, 마이클 포맨 그림, 보탬 옮김/내인생의책

바니는 독일군 폭격으로 집을 잃고 어머니와 함께 이모가 살고 있는 콘월로 향하던 중, 기차 안에서 공습 감시원으로 활약했던 1차대전 참전 용사 아저씨를 만났다. 
기차가 독일군 공격을 피해 터널 안으로 숨어든 사이, 아저씨는 겁에 질린 바니를 달래려고 오래전 1차대전 때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저씨의 친구 빌리는 전쟁으로 모든걸 잃은 고아 소녀를 구해준걸 계기로, 전쟁을 끝내기 위해 노력했던 전쟁 영웅으로 빅토리아 훈장 등 수많은 훈장도 받았다. 그러나 그가 마지막 전투에서 살려주었던 독일 병사가 아돌프 히틀러였다! 빌리는 고아 소녀 크리스틴과 결혼하여 행복한 삶을 보냈으나, 나중에 그 사실을 알고난 뒤 죄책감때문에 히틀러를 암살하려 시도했지만 실패하고 말았다는 이야기였다. 
아저씨가 이야기를 마친 뒤, 어두운 터널 안에서 모자는 잠이 들었다. 그런데 기차가 다시 출발하고 난 뒤, 아저씨는 사라졌다. 기차 차장에게 물어보았으나 아저씨는 처음부터 없었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바니는 나중에 이모로부터 아저씨가 빌리였고, 그는 멀베리 공습 때 이미 죽었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전쟁 영웅 헨리 텐디의 실화를 각색해서 만든 작품. <<나와 마빈 가든>>처럼 아이의 토론 수업 교재입니다. '아돌프 히틀러를 살려준 병사'라는 유명한 실화에 기반한 작품이지요. 전쟁에 대한 참상, 그리고 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고통에 빠트릴 수 있는지와 한 사람이 그걸 어떻게 막을 수 있는지를 아이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알려주고 있습니다. 

나쁘지는 않은데, 아동용 소설이기에 어른이 읽기에는 여러모로 애매했습니다. 인간 드라마로 보기에는 빌리의 고뇌 등이 제대로 그려지지 못했고. 드라마 부분도 약한 편입니다. 그가 히틀러를 살려주었다는 과거는 주변과의 갈등을 일으키지도 못해서 극적 긴장감도 부족하고요. 전쟁물로 보기에도 디테일이 부족하며, 암살물로 보기에는 정교함과 치밀함이 턱도 없습니다. 아무리 전 전쟁 영웅이라 하더라도, 히틀러라는 인물 암살을 이렇게 쉽게 시도할 수 있을리가 없잖아요? 
빌리는 이미 죽은 사람이었다는 결말도 썩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편의적인 발상이라 생각됩니다. 이미 죽었다면, 아마 암살 시도가 실패했을 때 죽었겠죠. 폭격 때문이 아니라.
그래서 제 별점은 2점입니다.

2023/06/16

亂れからくり 복잡한 기계장치 : 13 나사 저택

亂れからくり (創元推理文庫) (文庫) - 8점 泡坂 妻夫/東京創元社

13 나사 저택
"건드리지 마!"
마이코는 억눌린 목소리로 말했다.
당연히 건드릴 리 없었다. 토시오는 다다미방 위에 쪼그리고 앉았다.
마이코는 데츠바 옆에 무릎을 꿇고 한참을 앉아 있었다.
데츠바의 양손 손가락이 비틀려 있었다. 죽기 직전에 데츠바는 어떤 고통에 시달렸을까. 의복 가슴 부분의 흐트러짐도 고통의 격렬함을 말해주고 있는 듯했다.
"방금 전에 죽었네."
마이코는 토사물에 얼굴을 가까이 대고 냄새를 맡았다.
검은 칠을 한 책상에는 주홍색 쟁반이 놓여 있고, 물이 반쯤 담긴 컵이 놓여 있었다. 쟁반 옆에는 뚜껑이 잘 닫힌 작은 빨간 병이 놓여 있었다. 낯익은 병이었다. 병 바닥에는 여전히 몇 개의 빨간 캡슐이 들어 있었다.
마이코는 방을 둘러보았다. 방의 가구들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흐트러진 물건은 하나도 없었다.
"미로로 돌아가자. 누군가 발견하면 귀찮아질테니까."
마이코는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섰다. 자신이 앉아있던 다다미 위에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것을 확인한 뒤, 다다미방 안쪽으로 돌아갔다. 낡은 도구들이 쌓여 있는 방에 들어서자 마이코는 평소의 그녀와는 다르게,
"젠장 ...... 드디어 나의 마지막 증인까지 죽여버렸군……"
라는 말을 내뱉었다.

"데츠바는 어떻게 죽었습니까?"
동굴의 세 갈래 길, 마이코가 말한 E 지점으로 돌아왔을 때, 토시오는 물었다.
마이코는 평평한 바위 위에 앉았다. 그것은 데츠바의 죽음을 목격한 뒤 마음의 동요를 가라앉히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앞으로의 행동을 위해 몸을 추스르기 위한 것 같았다.
"자살이 아니야. 독약을 먹은 거야."
마이코는 그렇게 단정했다.
"책상 위에 놓여 있던 병을 기억하겠지? 그건 마사오가 데츠바를 위해 준 약이었어. 만약 데츠바가 자살했다면 죽기 직전에 그 병을 놓아두었을리 없어."
"그렇군요."
"데츠바는 아침 식사 후 늘 그렇듯이 그 약을 먹었을거야."
"식사에 독극물이 들어갔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토시오는 마사오가 준 약에 독이 들어있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것도 아니지. 식사에 독이 들어있었다면 당연히 식사 중에 쓰러졌을테니까."
"식사를 누군가가 치웠을 수도 있잖아요?"
"안 돼. 책상 위의 토사물은 책상이 깨끗하게 치워진 상태에서 토한 것이니까."
"컵의 물 속에 독극물이 들어 있었을 가능성도 있지요."
마이코는 멍하니 토시오를 바라보았다.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책상 위에 약병이 있는 이상, 독극물은 그 약에 섞여 있었다고 생각하는게 자연스럽지 않겠어?"
"그건 그렇긴 하지만 ......"
"당신은 마사오가 데츠바에게 건네준 약병에 독이 들어 있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군."
"분명 누군가가 똑같은 캡슐에 독을 담아서, 그 약병과 똑같은 약병에 담아서 바꿔치기 한 것이겠죠."
"하지만 데츠바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필요 이상으로 신경을 많이 썼을 거야. 최근에 가족이 네 명이나 죽었으니까. 데츠바가 가지고 있는 약병을 바꿔치기 할 틈이 있었을 것 같지는 않은걸."
"......독극물 캡슐을 하나만 준비해서 데츠바의 약병에 몰래 넣었다는건 어떻습니까? 카오리 씨와 소우지가 죽기 전에요. 데츠바가 아직 자기들을 노리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때 말입니다."
"호오......."
마이코는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꽤나 그럴싸한 말을 하는군. 맞아. 독약 캡슐을 하나만 넣었다면 가능성은 있어. 책상 위에 있던 약병 안에 얼마나 많은 캡슐이 남아있었을까?"
"열 알도 채 안 됐을 것 같은데."
"그래, 그런 거였어. 그렇다면 그 약병이 캡슐로 가득 차면 몇 알 정도 들어갔을까?"
"오십 알은 들어가겠지요."
"데츠바는 그 캡슐을 매일 아침 한 알씩 먹는 습관이 있었어. 따라서 범인이 독극물을 넣었다면 거의 40일 전에 넣었다는 뜻이지. 그렇다면, 역시 가장 쉽게 독을 넣을 수 있는 사람은 누가 뭐래도 마사오야"
"독은 무엇일까요?"
"청산성 독극물인 것 같더군...... 마사오는 병원에 근무한 적이 있었지?"
"독극물은 꼭 병원이 아니어도 구할 수 있어요. 청산가리라면 도금에도 쓰이지 않나요? 해바라기 공예는 작지만 도금 공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도 그렇지, 하지만 ......"
마이코는 손전등으로 동굴의 바위 하나하나를 비추고 있었다. 마치 아이가 거울로 햇빛과 놀고 있는 것처럼 전등 불빛이 춤을 추었다.
"마사오 씨는 동기가 없어요."
토시오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있어."
마이코는 무심코 말했다.
"데츠바가 어떤 유언을 남겼는지는 모르겠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마와리 가문의 유산은 마사오의 것이야."
"유산이라니........"
"있어."
마이코는 전등을 크게 움직였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건, 제니야 고헤에가 덴포 14년에 오노 벤키치에게 상담했던게 무엇이었을까?라는 것이야."
"제니야 고헤에가 ......"
토시오는 마이코의 말 뜻을 바로 파악하지 못하고 말을 더듬었다.
"오노 벤키치의 츠루슈일록 첫머리에 적혀 있었잖아.
‘…. 비, 카네이시로 감. 회의 후 심사숙고 끝에 승인을 미룸.’
카네이시는 당연히 고헤에의 집이야. 비가 오든 말든 벤키치는 카네이시에 갔어. 그만큼 중요한 용건이었음을 알 수 있지. 카네이시에서 은밀한 회의가 있었고, 고헤에는 중요한 일을 벤키치에게 부탁했던거야. 하지만 쉽게 맡을 수 있는 일이 아니었어. 고심 끝에 승낙을 미루었고."
"그게 뭐였을까요?"
"다음 날들의 기록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지. ‘하루 종일 고민하다.’ 다음 날은 ‘도면은 진전이 없다….. ‘라고. 너무 큰 일이라서 도면에 대해 생각할 틈이 없었던거야. 그리고 다음 날, 구우에몬이 모리타치노치토세를 가지고 찾아왔어.…..구우에몬에게 맡길까, 벤키치는 고민했지. 또 다음 날, 맑은 날씨가 계속되고 통풍이 회복된 우타는 역립인형의 의상을 만들었어. 이 기록은 구우에몬에게 모든 것을 맡기기로 결심한 벤키치의 마음이 그대로 담겨 있는 것 같아."
"그 구우에몬이란?"
"마와리 사쿠조야."
마이코는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사람은 가명을 지을 때 아예 엉뚱한 이름으로 짓지는 않는 법이야. 그때 스승 벤키치는 칼로 베지 못하는 말을 만드는 일에 몰두하고 있었지. ……..말을 베는 마와리 사쿠조, 어때? 딱 맞는 이름 아니야?"
"............"
"구우에몬은 그 목적을 실행하기 위해 번을 떠나 도망쳐 버렸어. 명목상으로는 시녀에게 손을 댔다고 하지만, 꾸며낸 이야기야. 구우에몬은 가나자와를 떠나 오나와로 옮겨왔지."
"사쿠조의 아내는 오나와 태생이었어요."
"거기서 비롯되었겠지. 구우에몬은 생계를 위해 가나자와에서 배운 기우라기리코보시(起上り小法師)와 쌀을 먹는 쥐에서 힌트를 얻은 키츠키(きつつき)를 만들기 시작했어. 카라쿠리를 배웠던 만큼, 섬세한 일에 능했을테고. ……생활이 안정된 후, 구우에몬은 가게 이름을 츠루슈도(鶴寿堂)로 짓고, 아이에게도 도키치(東吉)라는 이름을 지어주었어. 벤키치에 대한 애착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수 있지 않아?"
"그렇다면 구우에몬이 물려받은 것은 도대체 무엇이었습니까?"
"그건 제니야 고헤에의 입장이 되어보면 알 수 있는 일이 아닐까?"
"...... 모르겠습니다."
"이봐. 가가번의 중신 오쿠무라 히데미가 죽기 전, 고헤에는 절정의 시기였어. 나이는 칠십. 하지만 가가번에서 반대파가 세력을 키우기 시작했고, 세간의 시기와 질투를 모르는 것은 아니었지. 오히려 더 강하게 느꼈을거야. 지금 손을 잡고 있는 히데미도 병이 들었다, 반대파가 정권을 잡으면 내일은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아무도 모른다, 요도야 진고로(淀屋辰五郎)의 사례도 있다, 사소한 일로 상인이 재산을 몰수당한 사례가 한, 두 번이 아니었던 시대였어. 자신을 지키고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는……"
마이코는 잠시 말을 잇지 못하다가 말했다,
"재산의 일부를 은닉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지 않았을까?"
토시오는 생각에 잠겼다. 재산의 은닉.......그래, 그것은 당연히 생각할 수 있는 일이다. 지금도 가끔 금화를 담은 항아리가 발굴되는 경우가 있다. 재산을 은닉하는 것은 당시 상인들 사이에서는 상식적인 일임에 틀림없었다.
"제니야 고헤에의 자산이 삼백만 양이었다니 10%만 해도 삼십만 양이야. 천량상자가 삼백 개나 된다고."
마이코는 회계업자처럼 계산을 했다.
"고베에가 아무리 해운업자였더라도 그런 막대한 돈을 다른 번으로 쉽게 옮길 수 있었을까요?"
"그래서 오노 벤키치에게 자문을 구한 것이 아니었을까? 벤키치는 젠고 재벌에게 없어서는 안 될 두뇌였어. 하지만 벤키치는 거절했어. 벤키치의 은둔 생활을 보면 상상이 가. 벤키치는 지금까지 없던 가라쿠리에 대한 열정은 있었지만, 번주의 눈을 피해 재산을 은닉하는 일은 꺼려했어. 너무 세속적이고 위험한 일이었으니까. 그래서 벤키치는 고민 끝에 모든 것을 구우에몬에게 맡기기로 결심했어."

"구우에몬이 그만큼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었을까요?"
"그랬다고 생각해. 무엇보다도 벤키치에게 푹 빠져 있었고, 동시에 제니야 고헤에의 신봉자였다고 생각되는군. 그렇지 않다면 벤키치가 구우에몬에게 상담할리도, 고헤에가 일을 맡길리도 없었을테니까."
"구우에몬은 그 일에 성공했군요?"
"그렇지. 구우에몬은 시녀에게 손을 댔다는 이유로 탈번 후 가나자와를 떠났지. 벤키치는 그 때 마지막 작별의 선물로 역립 인형을 주었을테고. 그리고 어떤 계획에 의해 고헤에의 재산의 일부가 이 오노와에 숨겨졌던거지. 장소는 이 동굴 안이 틀림없을거야."
"그 재산은 아직 누구도 발견하지 못했을까요?"
"구우에몬은 정직한 사람이었어. 고베에의 재산을 맡았지만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스스로 장난감을 만드는 일을 시작한 것을 보면 알 수 있지. 그러던 중 가가 번에서는 결국 집정관 히데미가 죽어버려서 반대파가 득세하게 되었어. 고헤에는 공식어선의 지위를 빼앗긴 뒤, 하호쿠가타 매립공사에 착수했다가 투독사건의 혐의로 체포되어 옥사했고, 제니야 가문은 순식간에 몰락했어. 구우에몬은 가슴이 아팠을거야. 유산을 제니야에게 돌려주어야 했는데 불가능해져버렸으니까. 결국 그 기회를 갖지 못한 채 병으로 죽고 말았지."
"그 사실을 자신의 아들에게도 말하지 않았던걸까요?"
"물론, 말하지 않았겠지. 하지만 아들 도키치는 한, 두 가지 버릇이 있는 사람이었어."
"마와리 호도말씀이시죠?"
"그래. 도키치는 자신의 이름도 버린 뒤 호도라 자칭하고, 츠루슈도를 없애고 해바라기 공예라 했지. 문장까지도 바꾸었고. 이유는 하나야. 가나자와와의 인연을 끊고 고헤에의 재산을 자기가 차지하려고 했던거야."
마이코는 손전등을 크게 움직였다.
"호도는 요코하마의 도박판에서 큰돈을 벌었다고 하지만, 그 자금은 고헤에의 재산 중 일부였을거야. 하지만 호도는 상술에 능한 사람이었어. 은닉 재산의 대부분은 아직 그대로 남아있을 거야."
마이코는 계속했다,
"호도는 요코하마를 떠나 오노와로 이주했어. 물론 동굴에 재산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서 말이야. 그리고 기괴한 나사 저택을 지었어. 장난감을 싫어하는 호도가 이런 건물을 지은건 아까 말했듯이 이 저택에 미로 같은 것이 있어도 부자연스럽지 않기 때문이야. 그 미로는 지하 동굴의 지도이자 입구였고. 평범한 건물에 미로 따위를 만든다면, 미로는 금방 관심의 대상이 되었겠지. 그러면 미로가 왜 만들어졌는지에 관심을 갖게 되고, 결국 동굴도 발견되고 말았을테니까."
"나사 저택 전체가 입구를 숨기기 위한 하나의 커다란 미로였던 셈이군요."
"그리고 호도의 언행도 생각해보면 마찬가지야. 호도는 기행이 많은 남자였다고 전해지는데 이 성격 역시 의도적으로 그렇게 보이도록 꾸민 것이었을거야. 무슨 일이 있어서 숨겨진 재산이 발견된다 하더라도, 동굴 속에 재산을 숨겨놓는건 과연 호도가 할만하다고 생각하게 만들기 위해서. 호도가 나사 저택을 만든 진짜 속뜻은 바로 이것이야."
"호도는 이 사실을 아들에게 말하지 않았던걸까요?"
"아마도? 미로로 그린 지도만 남겼지. 설령 아들에게 전했을지 몰라도 데츠바에게는 전해지지 않았어. 데츠바는 전쟁 후 가난을 경험했잖아? 만약 알았더라면 당연히 은닉 재산을 사용했을 거야. 그리고 둘러보니 이 동굴이 발견된 것은 아주 최근의 일인 것 같아."
"누가 발견했을까요? 토모히로, 아니면 소우지?"
"둘 다겠지. 소우지는 오노 벤키치의 역립 인형을 발견했어. 역립 인형은 데츠바의 다실 다다미방 안쪽 작은 방에 있었고........ 토모히로가 가나자와의 다카라다 노인에게 보여주었던 사진, 두 사람 뒤에 찍힌 소나무 숲의 모양이 카네이시의 소나무 숲과 닮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
"토모히로는 가나자와에 갔었군요"
"그렇다면 마사오도 당연히 제니야 고헤에의 은닉 재산에 대해 들었을거야. ...... 이제 가 봐야겠다."
마이코는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펴고 일어섰다.

동굴 밖으로 나오자 약한 햇살이 비췄지만, 오랫동안 어둠 속에 있던 눈에는 꽤나 눈부셨다.
마이코는 남은 양초와 손전등을 가방에 넣었다. 두 사람의 옷은 진흙투성이였다. 마이코는 진흙을 털어낸 뒤, 닫힌 담벼락 문 아래로 손을 뻗었다.
물소리와 함께 튀어나온 돌판이 조용히 동굴 입구를 닫기 시작했다. 동시에 울타리가 움직이기 시작하며 미로의 문을 열었다.
"정말 잘 만들었어."
마이코는 오각형의 돌탁자가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을 보고는 울타리 사이로 몸을 넣었다.
미로를 걷던 중, 미로 입구에서 제복을 입은 경찰을 만났다. 두 사람의 모습을 쫓고 있던 순경이었다.
"어머, 마중 나왔어요?"
마이코가 담담하게 말했다.
"아니요, ......"
경찰관이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길을 잃었어요. 출구를 알려주실 수 있나요?"
"그게 ......"
"그건 곤란하네요. 아마 이쪽인 것 같은데요."
마이코는 순경과 자리를 바꾸어 먼저 나섰다.
미로를 빠져나와 소정 쪽으로 가니 호시자와가 무서운 표정을 짓고 서 있었다.
"덕분에 좋은 공기를 마실 수 있었어요."
마이코가 지나가려고 하자,
"나라키 씨가 만나고 싶대요."
무뚝뚝한 얼굴로 말했다.
"오호. 미녀의 얼굴이 보고 싶었구나."
"그런 게 아니야. 데츠바의 시체가 발견됐어. 이제는 돌아가려고 해도 돌아갈 수 없다고. 각오해."
마이코는 일부러 눈을 크게 떴다.

亂れからくり 복잡한 기계장치 : 1 달그락달그락 새 亂れからくり 복잡한 기계장치 : 11. 베이지 않는 말

2023/06/15

나와 마빈 가든 - 에이미 새리그 킹 / 이혜선 : 별점 2점

나와 마빈 가든 - 4점
에이미 새리그 킹 지음, 유시연 그림, 이혜선 옮김/봄나무

초등학생 오비 데블린 가족은 한때 대지주였지만 증조 할아버지의 빚 때문에 대부분의 땅을 빼앗겼고, 땅은 주택단지로 개발되었다. 오비의 하나 뿐이었던 친구 토미도 새로 이사온 아이들 패거리와 어울리며 오비를 배신하고 말았다. 그래서 오비는 홀로 자신의 영역인 샛강 일대를 오가며 쓰레기를 줍는 나날을 보냈다. 주택 단지 건설로 훼손되고 있었던 그 일대 자연을 사랑했고, 남들과 어울리기 위해서 그들처럼 되는걸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플라스틱을 먹는 기묘한 동물을 발견했다. 오비는 동물에게 "마빈 가든"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재활용 플라스틱을 먹이로 가져다 주며 친구가 되었지만, 지독한 냄새를 풍기는 마빈의 배설물이 모든걸 황폐화시키는 폐기물이라는걸 알게 되었다. 한편 장난이 점점 흉악해지는 토미 패거리도, 그리고 어른들도 주택 단지를 망가트리려는 존재와 기묘한 동물에 대해 눈치채기 시작했다.
토미 패거리나 어른들이 마빈 가든을 죽이려 한다고 생각한 오비는 과학을 가르치는 지 선생님에게 도움을 청했고, 선생님은 생물학자 친구와 수렵 감독관을 불러주었다.
다행히 오비의 엄마를 비롯한 어른들은 마빈을 보호하는데 동의했다. 마빈 가든은 떠났지만, 오비는 마빈 가든의 연구로 과학 대회에서 상을 타고, 토미와 토미의 누나가 오비에게 저질렀던 괴롭힘도 엄마를 비롯한 어른들 모두가 알게 되었다. 토미는 사과하면서 다시 친구가 되자고 말했고, 오비는 일단 그에게 기회를 주기로 했다.


아이가 토론 수업에 쓰는 교재라고 가져온 책. 우연찮게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자연에 대한 묘사는 좋고, 마빈 가든이라는 신기한 동물 설정은 괜찮더군요.

그러나 환경 보호에 대한 메시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건 당황스러웠습니다. 소설이 아니라 환경 보호 광고물이라고 해도 믿을 수준이더군요. 메시지를 은근하게 담아내는건 어린이용 책에는 적합하지 않는걸까요?
전개도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외로운 소년이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와 친구가 되어 현실을 극복해낸다는 지극히 전형적인 이야기를 지극히 전형적으로 풀어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한 배경 설정들도 고민이 부족합니다. 신규 개발 주택단지 아이들과 원주민 아이들과의 갈등, 그로 인해 촉발된 따돌림같은 갈등 관계는 진부했어요. 이 중 최악은 작중 No.1빌런인 토미에 대한 설정과 묘사입니다. 오비에 대해 배신을 반복하는 모습은 설득력이 부족했고, 잘못에 대해 아무런 댓가도 치루지 않고 다시 친구가 되자는게 전부라서 이야기가 완전히 해결된 느낌을 주지 못한 탓입니다. 아동용 소설이라면 권선징악이 보다 명확한게 좋을것 같은데 말이지요.
결말도 엉망이었습니다. 마빈 가든의 발견, 배설물에 의한 황폐화 등으로 극적 긴장을 높여 가다가, 마빈 가든의 존재를 어른들에게 고백하는게 끝이에요! 터무니없다 싶을 정도로 허무합니다. 모든걸 녹이는 배설물을 내뱉는 동물을 그냥 보호한다며 내버려 둔다는 것도 납득하기 힘들었어요.

그래서 별점은 2점. 글을 잘 쓰기는 했지만, 마빈 가든 설정을 제외한 대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어른이 읽을 책은 절대 아닙니다. 아이들도 재미를 느끼기는 힘들 것 같고요. 
이럴 바에야 거대 크리쳐와 친구가 된 아이가 지구를 지키기 위해 싸운다는 일본 괴수물 설정을 도입하는게 훨씬 좋았을 겁니다. 토미같은 녀석은 악당 괴물에게 잡아먹히고.....

2023/06/12

2023.06.06 ~ 06.11 두산 베어스 감상


주중 한화 홈 - 주말 기아 홈 3연전
성적 : 4승 2패 

좋았던 점 
  • 8이닝 무실점 쾌투! 에이스의 면모를 뽐낸 알칸타라 선수
  • 3게임 철벽 이닝 삭제, 돌아온 이영하 선수
  • 노장의 분전, 장원준 선수 

나빴던 점
  • 힘에 부쳐 보이는 5선발 신예들. (최승용, 김동주 선수)
  • 여전히 자리를 찾지 못하는 외야 후보군 (로하스, 김대한, 송승환, 홍성호 선수) 

총평과 이번주 예상 (혹은 기대)
주간 전적 4승 2패로 승패마진 +2를 기록했는데, 주초 한화전 스윕이 컸습니다. 7, 8 선발이라고 할 수 있는, 대체 선발의 대체 선발로 승부했던 화, 수요일 경기를 중간 계투진의 수고로 잡고, 목요일 경기를 알칸타라 선수가 책임져 주었던 덕분이지요. 
그러나 주말 기아 3연전은 좋지 못했습니다. 중간 계투진 과부하가 걸린 상태에서, 젊은 선발 투수들이 5이닝일 버텨주지 못하니 승부를 걸 수가 없었습니다. 타격도 나쁘지는 않았지만, 한 방이 부족해서 결국 따라가지 못했고요. 토요일 경기의 김재환 선수 타구는 잠실이라서 넘어가지 못했는데, 여러모로 아쉬웠습니다. 상대 왼손 투수를 상대하기 위해 오른손 타자 중심으로 라인업을 짠 승부수도 잘 먹혔다고 보기는 힘들고요. 기대했던 김대한, 송승환 선수가 너무 부진했죠. 
그래도 지는 경기에 필승조를 투입하지 않은건 이승엽 감독이 좋은 판단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토요일에 박치국 선수가 등판하기는 했지만, 대신 일요일에는 나오지 않았지요. 그래서 일요일 경기는 돌아온 곽빈 선수의 퀄리티 스타트에 필승조의 힘을 더해 잡을 수 있었습니다. 

여튼 주간 합계 위닝으로 5위 자리를 잘 지키고 있습니다. 작년 9위 팀에 양의지 선수 한 명 보강되었을 뿐이니 이 정도 성적이면 나름 만족합니다. 심지어 외국인 선수도 한 명만 활약하고 있는 상황이니까요. 
이번 주는 연승가도를 달리는 NC, 그리고 잠실 라이벌 LG와의 3연전이 시작됩니다. NC는 최근 기세가 무섭죠. LG는 이번 시즌은 두산보다 강팀인건 분명하고요. 선발로 장원준, 알칸타라, 최원준, 최승용, 곽빈, ? (김민규?) 선수 순서로 나서는데 알칸타라와 곽빈 선수 경기는 반드시 잡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전부 스윕당할 수도 있어 보어요. 이길 경기는 반드시 잡고, 질 경기는 최대한 잘 질 수 있도록 이승엽 감독의 현명한 용병술이 필요한 때입니다. 구설수가 있기는 했지만, 정철원 선수도 돌아와서 힘을 보태주어야 할 테고요.
이번 주만 잘 넘기면, 다음 주에는 브랜든 와델 선수가 합류할테니, 최승용, 김동주 선수의 체력을 안배해가며 중위권 안착을 충분히 노릴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이번주가 올 시즌을 판가름할 고비가 되겠네요.

물론, 이승엽 감독도 초보 감독치고는 충분히 잘 하고 있습니다. 신인 선수들을 적극 활용한다던가, 없는 살림에도 계투진을 최대한 짜내서 과부하를 줄여주는 노력은 보기 좋아요. 하지만 이번 주는 이길 경기는 이기는 경기 운영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성적은 2승 4패를 예상하지만, 모쪼록 3승 3패로 반타작이라도 해 주기만을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홍성호 선수의 대뷔 첫 타점과 장타 축하드립니다. 앞으로 더 꾸준한 모습을 보여주어서 고만고만한 선수들이 각축을 벌이는 외야 경쟁에서 한 발 앞서 가기를 바랍니다.

2023/06/11

씨 하우 데이 런 See How They Run, 2022 - 톰 조지 : 별점 1.5점


<<아래 리뷰에는 진범, 진상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953년 영국, 애거사 크리스티의 <<쥐덫>> 연극 공연이 성공하며, 이를 영화로 만드려는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감독으로 내정된 미국인 리오 코퍼닉은 모두가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각본가 머빈에게는 각본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싸움을 걸었고, 제작자 존 울프의 불륜을 협박하여 고급 호텔에 머물렀으며, 주연 배우 디키의 아내 실라를 유혹하다가 디키와 격투를 벌이기까지 했다. 결국 리오는 살해당했고, 경시청의 스콧 국장은 스토파드 경위와 스토커 순경에서 사건을 맡겼다. 둘의 수사를 통해 주요 관계자들이 모두 리오를 싫어했다는게 드러났지만, 스토커 순경은 스토파드 경위의 전처가 리오와 불륜을 저질렀을지도 모른다는 증거를 잡게 되었다. 그리고 연극을 상영하던 극장에서 머빈마저 살해당한 뒤, 스토커 순경은 스토파드 경위가 범인이라 여겨 그를 제압하는데....


디즈니 플러스로 감상한 영화. 아직까지는 본격물 향취를 잘 살릴 수 있는 1953년이라는 시대 배경, 수상쩍은 여러 등장인물들과 그들의 동기에 대한 묘사, 무엇보다도 크리스티의 <<쥐덫>> 연극이 핵심 소재이며 마지막에는 여사님이 직접 등장하기까지 한다는 점에서 추리소설 애호가로서 안 볼 수가 없었습니다.

가장 좋았던 것은 웨스트엔드에서 상영되는 <<쥐덫>>이 어떤 형태인지 알 수 있게 해 주었다는 점입니다. 아래와 같이 연극에 대해 잘 알 수 있도록 등장합니다. 초반부는 공연도 보여주고요. 덕분에 연극에 대한 궁금증이 어느정도 풀렸습니다.


고전 본격물스러운 등장인물들의 설정과 묘사, 1953년이라는 시대를 잘 드러내는 의상과 셋트도 충분한 볼거리를 제공합니다. 화면 분할을 통해 극적 효과를 높여주는 연출도 좋았고요.
본격 미스터리 명탐정스러운 스토파드 경위, 메모광으로 급한 성격의 소유자 스토커 순경 등 캐릭터도 특징적으로 잘 그려내고 있습니다. 추리적으로는 스토커 순경이 스토파드 경위가 전처를 잃은 복수를 한게 아닐까 의심하는 과정이 괜찮았어요. '메모광' 설정이 효과적으로 사용되어 고전 본격 미스터리 영화 느낌을 듬뿍 전해줍니다.

하지만 좋은 작품이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스토파드 경위에 대한 의심 외에는 추리적으로 점수를 줄 부분이 없기 때문입니다. 
진상을 살펴보자면, 범인은 극장 직원 데니스였습니다. 그는 <<쥐덫>>의 소재가 된 실제 유아 학대의 피해자였는데 <<쥐덫>>이 피해자를 범인으로 만든 것에 대해 분노한 나머지, 연극 상영과 영화 제작을 중지시키기 위해 감독을 살해해서 무대에 시체를 전시했던 겁니다. 
그런데 데니스가 범인이라는걸 관객이 추리할 수 있는 단서는 전혀 제공되지 않습니다. 그냥 급작스럽고 뜬금없이 마지막에 범인이라며 총을 들고 등장하지요.
범행도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감독 리오를 살해한건 나름 설명될 수 있겠지만, 이어지는 범죄들은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각본가 머빈 살해부터 보자면, 감독이 없어도 영화는 제작될 수 있습니다. 각본가 역시 마찬가지고요. 영화 제작을 정말로 막고 싶었다면, 제작자 존 울프를 살해하는게 옳았습니다.
데니스가 크리스티 여사님 저택에 관계자를 불러 모은 행동도 아예 이해 불가입니다. 다 모아서 죽이려는 것이었을까요? 그렇다고 보기에는 가진 흉기가 영 마땅치 않던데 말이지요. 또 제작자야 죽여서 영화 제작을 막기 위해서였다쳐도, 연극 배우와 연극 연출가를 부른 이유도 잘 모르겠습니다. 이들은 영화와 별 관계도 없는데 말이죠. 이래서야 그냥 고전 본격 미스터리스러운 추리쇼, 대단원 분위기를 내기 위해 생각없이 집어넣은 장면으로밖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본격 미스터리처럼 등장인물들에게 범행 동기를 부여한 것도 설득력이 약합니다. 각본에서의 의견 충돌, 남들 다 아는 불륜 사실이 들통난 정도로 사람을 죽인다는건 무리니까요.
개인적으로 최악은 크리스티 여사님의 등장이었습니다. 추리의 여왕다운 모습은 전혀 보여주지 못한 탓입니다. 연기도 별로였을 뿐더러, 배우도 그리 잘 어울린다 생각되지 않았어요. 범인에게 독(?)이 든 차를 먹이려는 노력도 개그 요소로서의 가치가 더 높아 보였고요. 이 정도면 본격 미스터리를 풍자하고 희화하하기 위한 의도로 만든 영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럴러면 제대로 웃기기라도 하던가....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영화의 만듦새는 좋지만, 추리 영화로서는 실패작입니다. 짤막한 분량이기는 한데, 시간낭비에 가까왔습니다. 이보다는 여사님의 소품을 영화화하는게 훨씬 좋았을텐데, 아쉽습니다.

2023/06/10

유리탑의 살인 - 치넨 미키토 / 김은모 : 별점 2점

유리탑의 살인 - 4점
치넨 미키토 지음, 김은모 옮김/리드비
<<아래 리뷰에는 진범, 반전, 트릭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약물 전달 시스템 트라이던트를 개발하여 엄청난 부를 거머쥔 코즈시마 타로는 자신의 저택 '유리관'에 조촐한 행사를 위해 여러 손님 - 유명 추리 소설가 쿠루마 코신, 편집자 사쿄 코스케, 영능력자 유메요미 스이쇼, 형사 카가미 츠요시, 그리고 명탐정 아오이 츠키요 - 을 초대했다. 유리관에는 손님 외에 집사 오이타 신조, 메이드 토모에 마도카, 요리사 사카이즈미 타이키와 코즈시마 타로의 주치의 이치조 유마가 함께 있었다.
행사 직전, 이치조 유마는 코즈시마 타로를 독살했다. 코즈시마가 동생의 난치병 치료를 특허 분쟁으로 막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연사로 위장할 계획은 즉사하지 않은 코즈시마가 전화를 건 탓에 실패해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뒤이어 집사 오이타, 메이드 마도카가 연달아 밀실에서 살해당한채 발견되자, 유마는 명탐정 아오이 츠키요의 조수, 왓슨 역을 자처하여 컴비를 이루게 되었다. 두 사건의 범인에게 코즈시마 살해까지 떠넘기기 위해서였다.


발표 당시, 미스터리 애호가들 사이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던 작품. 이제서야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 대부호가 만든 기묘한 저택이라는 무대
  • 저택이 고립된 상황에서 벌어지는 3건의 연쇄 살인 사건
  • 모든 사건들은 일종의 밀실 상황
  • 사건은 명탐정이 해결
는 점에서 전형적인 클로즈드 서클 본격 미스터리입니다. 이 중 한 사건은 화자인 이치조 유마가 이미 저지른 도서 추리물이기도 하고요. 미스터리 애호가들이 좋아할만한 요소는 모두 들어가 있는 셈입니다.

또 사건의 이런 저런 상황이 여러 미스터리 명작들과 관련되어 있다는 점도 애호가들을 자극하는 요소입니다. 저택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을 <<유리관의 살인>>이라고 부르고, 코즈시마가 남긴 다이잉 메시지는 <<비뚤어진 집>>, <<Y의 비극>>, <<독 초콜릿 사건>>을 의미한다던가, 마도카 사건에서 남겨져 있던 메시지는 '관 시리즈'와 관련이 있으며, 결국 이 모든 진상은 '관 시리즈'와 연결된다는 식입니다.
트릭도 모두 유명 작품에서 따 왔습니다. 오이타 신조 사건에서 특정 시간에 자동 발화시킨 트릭은, 의도적으로 창문이 아침 햇빛을 집중시키도록 만들었다는 점에서 엉클 애브너 시리즈인 <<둠도프 사건>>과 유사합니다. 토모에 마도카의 시체를 밀실 안으로 집어넣는 트릭은 작 중에서도 언급되듯 <<기울어진 저택의 범죄>>가 떠오르고요. 만화 <<외천루>>에서는 아래와 같이 아예 동일하게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더라도, 주요 등장인물들이 모두 미스터리 애호가들이라 별로 중요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온갖 작품들이 언급되고 있어서 읽는 재미를 더해줍니다.
후기 퀸 문제 - 작품 속 해결이 진짜 해결인지를 작품 속에서는 증명할 길이 없다 - 를 진지하게 고민하게 만든다던가, 비밀 통로와 암호, 심지어 '독자에게의 도전장'까지 삽입된건 그야말로 미스터리 애호가의 피를 끓게 만들지요.

무엇보다도 '작위적인 상황들은 알고보니 저택 주인 코즈시마 타로가 꾸민 연극이었기 때문이었다!'는 반전은 신선했습니다. '작위적'인게 당연한 상황을 설득력있게 만드는데 이보다 나은 아이디어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괜찮았어요. 엄청난 부자인 코즈시마 타로는 미스터리에 푹 빠진 나머지, 스스로 위대한 걸작을 쓰고 싶어서 트릭을 고안한 뒤, 추리와 관련된 이런 저런 손님들 - 명탐정, 추리 소설 작가, 편집자, 영매 - 을 초대하여 실제로 추리를 하게 만든 것입니다. 연극이니 당연히 코즈시마를 비롯한 피해자들은 죽지 않았었습니다. 지하 감옥에서 등산 조난자들을 대상으로 생체 실험을 한게 들통나서 살해당했다는 유치한 동기 역시 가짜였고요.
코즈시마가 연극을 위해 '유리탑' 안에 이중 나선 구조와 같은 비밀 나선 계단을 설치했다는 진상도 적절하게 써먹고 있습니다 (이 진상이 <<미로관>>과 유사하다는 점도 과연 코즈시마 타로답더군요). 영능력자 유메요미, 그리고 화자 유마까지 알 수 없는 인기척을 계속 느꼈다는 식으로 비밀 계단과 통로에 대한 단서도 공정하게 제공되고 있고요.
트릭도 다른 작품에서 따 온게 많다고는 했지만, 그런대로 볼만했습니다. 특히 오이타 사건에서 식당을 밀실로 만든 트릭은 괜찮았어요. 각설탕을 회전 빗장에 꽂아 넣고 화재를 일으키면, 스프링쿨러가 작동하여 각설탕이 녹아서 빗장이 걸린다는 것인데 현실적이라 마음에 들었습니다. 시체에 등유를 끼얹어 화재를 일으킨 원인도 위장하는 등 디테일도 꼼꼼했고요. 명탐정 아오이 츠키요가 괜찮았다고 말할만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미스터리 애호가를 위한 장치와 반전 외에는 과연 그렇게까지 절찬을 받을만한 작품인지 고개를 갸웃하게 만듭니다.
우선 본인이 명탐정임을 주장하는 아오이 츠키요는 작위적인걸 넘어서는, 그야말로 현실과는 백만광년은 떨어진 듯한 만화같은 캐릭터라 영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이래서야 "모든게 '연극' 이라서 작위적이었다"는 아이디어는 빛이 바랩니다. 그래봤자, 핵심 등장인물이 가짜보다 더 한 만화라서 영 와 닿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작품을 위해서는 보다 진지한, 현실적인 탐정으로 묘사되는게 바람직했습니다.
아오이 츠키요의 비현실성은 진상 부분에서 극에 달합니다. 그녀는 연쇄 살인이 연극임을 초반에 간파하고 실제로 피해자들을 살해했다고 합니다. 졸작 <<유리관의 살인>>을 납득할 수 없어서 본인이 범인이 되는 걸작 메타 미스터리로 만들기 위해서라고요. 이게 무슨 말일까요? 살인이 무슨 장난도 아니고..... 이러한 '메타' 방식 설정은 일본 일부 작품에서 가끔 보곤 했는데, 적절히 잘 사용된 경우는 생각나지 않네요.
명탐정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명탐정을 부르기 위해 불가능 범죄를 저지르곤 했다는 아오이 츠키요의 또다른 배경 설정도 한심하기 그지 없었어요. 시로다이라 쿄의 <<명탐정에게 장미를>>에도 등장했던 설정인데, 그 때도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리뷰를 남겼었지요.
그리고 악당 - 명탐정 대신 명범인 - 이 되기로 결심하고 살인을 저질렀다면, 초지일관 그렇게 나갔어야죠. 마지막 순간에 유마를 구해주고 키스까지 한 다음 사라지는건 최악이었습니다. 캐릭터만 희미하게 만들었을 뿐입니다. 만화나 라이트 노벨 세계관이라면 모를까, 정통 본격물에는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코즈시마 타로의 추리 소설이 엉망이라는건 츠키요가 이미 언급했지만, 실제로도 트릭 외에는 건질게 없습니다. 소설에서 진범은 카가미였습니다. 딸이 코즈시마 일당 - 코즈시마와 집사 오이타, 메이드 마도카 - 에게 납치되어 생체 실험을 받다가 죽었다는걸 알고 복수하기 위해서였지요. 그는 모든 진상이 밝혀지고 난 뒤 어차피 죽을 생각이었다며 자살합니다. 그렇다면, 복수를 마치고 죽을 결심을 한 범인이 밀실 살인 사건을 저질렀다는건데, 이게 말이 됩니까?
그리고 경찰이 수사에 본격적으로 나섰다면, 카가미의 동기가 밝혀지는건 시간 문제였습니다. 어차피 빠져나갈 방법도 없으니 트릭을 사용해 범행을 저지를 이유도 없지요. 손님들이 초대되었을 때 범행을 저지를 이유도 당연히 없습니다. 카가미는 이전에도 코즈시마를 방문해서 같이 식사를 한 적도 있었습니다. 다음에도 혼자 찾아와 모두를 죽이는게 더 쉬운 복수였을거에요. 관 시리즈, 특히 <<십각관의 살인>>이 걸작인 이유 중 하나는 범인이 트릭을 만든데 타당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작품처럼 아무런 설득력없이 수수께끼를 만들기 위해 트릭을 사용한게 아니고요.
또 딸의 복수를 위해서였다면, 조가타케산 사건을 언급하는 것도 이상했고 - 딸은 조가타케산 사건의 피해자라기 보다는, 최근 사건의 실종자이므로 -, 코즈시마 일당의 범행을 드러내기 위해서였다면 돌려 말할 까닭도 없습니다. 직접적으로 복수의 이유를 쓰면 되지요. 나카무라 세이지를 죽이라면서 비밀 통로를 은근히 알려주는건 도무지 납득할 수 없었습니다.
코즈시마가 유마가 자신을 독살하게끔 유도하여 연기했다는 설정도 어처구니를 상실케 했고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원래는 모든게 연극이었다는 발상을 제외하고는 딱히 건질게 없었습니다. 쉽게 읽히는 라이트 노벨스러운 작풍은 분명한 장점이지만, 추리적으로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네요. 진지한 본격 추리물과는 거리가 멉니다.
예전 <<데드 트릭>>리뷰 에서, 본격 미스터리는 프로레슬링과 비슷하다는 말에 동의한다고 했었는데, 프로레슬링도 형편없고 장난스러운 각본은 욕을 먹기 마련입니다. 제가 나이가 있는 탓에 요새 트렌드와 거리가 있어서 이런 작품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건 사실이겠지만, 살인을 장난스럽게 다루는 작품은 진심으로 없었으면 합니다. 

2023/06/09

All of panpanya

최근 푹 빠진 작가 panpanya의 국내 소개된 작품 8편을 모두 완독하였습니다. 제 순위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주먹밥이 굴러가는 마을>> (5)
  2. <<두 번째 금붕어>> (4)
  3. <<동물들>>, <<구아바노 홀리데이>>, <<게에게 홀려서>>, <<물고기 사회>> (3)
  4. <<침어>> (2.5)
  5. <<아시즈리 수족관>> (1.5) 
전권 평균 별점이 3점 이상이라니 놀랍네요. 
완독 기념으로 전권 리뷰를 올립니다. 상세한 내용은 아래를 참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아시즈리 수족관 - 4점
panpanya 지음/미우(대원씨아이)

초기작 중심 단편집. 작화는 안정되어 있지 못합니다. 편안함과 거침이 공존하고 있어요. 특유의 부드럽고 편안한 그림체가 아닌, 정석적인 만화식 펜 드로잉을 보여주는 작품들이 몇 편 수록되어 있는게 특이했습니다. 뎃생력은 영 아니었습니다만.
수록작은 기묘한 수족관, 기묘한 상점가, 기묘한 박물관, 두 번째 교토 타워와 같은 비현실적인 공간을 방문한 방문기가 많습니다. 심지어 프랑스까지 가서 망자의 거리를 방문할 정도입니다. 환상적인 공간 구성을 보여주기는 하는데, 문제는 대부분 '우연히' 그 곳에 가서 기묘한 공간을 보고 올 뿐 특별히 기승전결이 갖추어진 완성된 이야기가 없다는 점입니다. 설정이 치밀하지 않고 기존 작품들의 재구성이나 패러디가 많아서 신선함도 부족하고요.
그나마 이야기로 볼 수 있는건 <<심부름>> 정도입니다. 어머니가 써 준 심부름 메모에서 알 수 없는 글자로 쓰여진걸 사기 위해 없는게 없다는 완전 상점가 까지 여정을 떠나 알지도 못하는 무언가를 구입해 온다는 이야기죠. 

주인공의 기묘한 착안에 따른 노력과 그 결과를 보여주는 특유의 매력 포인트도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자판기 안에 동물들이 들어가 움직인다는걸 알고 나서, 전기의 힘으로 움직이는 자동 자판기를 자유연구 과제로 제출하여 동물들에게 자유를 선사한다는 <<자판기>> 정도만이 기대에 값합니다.
그 외에는 수족관에서 보여줄 물고기를 잡으러 떠나는 이야기로 주인공을 구하고 격류에 휩쓸린 레오나르도가 물고기가 되어 돌아온다는 결말의 <<너의 물고기>>가 눈여겨볼만 했습니다. 딱히 재미가 있던건 아니지만, 파트너 레오나르도가 첫 등장한다는 점에서 말이지요.
반면 제목의 수록작이야말로 일종의 맥거핀에 가깝습니다. 열 페이지도 안되는 짤막한 작품으로 별 비중은 없거든요.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1.5점. 기대와 전혀 달랐고, 습작 수준의 수록작도 많아서 점수를 줄 여지가 없습니다. 팬이 아니시라면 구태여 구해 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침어 - 6점
panpanya 저자/미우(대원씨아이)

단편보다 짧은, 쇼트쇼트라 부를 만한 초단편이 많이 수록된게 특징. 
벌 서면서 이런저런 새로운 걸 깨닫는다는 <<벌 서는 법>>, 일상 속 이야기를 짧은 분량 안에서 무려 12년에 걸쳐 빌드업하고, 평범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끝맺는 <<가로수의 순서>> 등이 기억에 남습니다. 비교적 긴 이야기로는, 비가 올락말락 하다가 갑작스럽게 폭우가 쏟아질 때 우연히 만난 개구리 덕분에 무사히 귀가한다는 <<비 오는 날>>이 기묘하면서 따뜻하고 서정적인 느낌이라 좋았고요.

표제작, 그리고 젤리같은 물고기 뉴 피시의 정체를 밝히는 과정을 그린 <<뉴 피시> 두 작품은 '물고기'를 주 소재로 삼은 단편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뉴 피시>>는 물고기들이 살기 위해 만들어낸 식품이었는데, 맛이 없어서 외면받았지만 주인공 활약으로 기사회생하게 된다는 내용이고, 표제작은 전설의 편안한 오더메이드 베개 '침어'의 존재를 알고 쿠슈 카고시마로 떠난 주인공과 레오나르도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요약하자면. 너무 편안해서 베개로 쓰이던 물고기 '침어'는 실존했습니다. 그러나 하룻밤 베고나면 죽어버려서 (물밖에 나와 하룻밤이 지나게 되니까), 그것과 최대한 비슷하게 베개를 만든게 현재의 '침어'였습니다. '침어' 베개를 구입한 주인공은 운 좋게 해변에서 진짜 침어를 한 마리 주웠고, 그래서 가끔 침어에 얼굴을 파묻곤 한다는 결말로 끝나는데, 얼토당토 않은 이야기를 천연덕스럽게 일상 이야기처럼 펼쳐놓는 전개가 매력적이었습니다. 수록작 중 베스트로 꼽고 싶네요.

반면 신주쿠 지하의 이상한 공간에서 피자 만두를 찾는 <<지하답사>>는 제법 길지만, 작화나 전개 모두 초기작 느낌으로 <<아시즈리 수족관>>과 비슷하더군요. 솔직히 별로였습니다.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입니다. 아직은 스타일이 완성되지 않았기에 감점합니다만, 볼 만한 작품도 제법 많았습니다.


두 번째 금붕어 - 8점
panpanya 지음/미우(대원씨아이)

'연구'를 바탕으로 풀어나가는 이야기가 많다는게 특징. 소재도 다양합니다. <<멜로디>>는 저녁이 되면 마을에 울려퍼지는 음악의 정체가 무엇인지 찾아나서는 이야기입니다. 어디서 울려퍼지는지를 찾아내기 위해 고민해서 아이디어를 짜내는 과정도 재미있고, 결국 찾아낸 음악의 정체도 기발했어요. '숨바꼭질'을 잘하기 위한 다양한 연구와 고민이 펼쳐지는 <<숨바꼭질의 주의사항>>, 매미 소리를 겨울에 틀면 따뜻함을 느낄지도 모른다는 <<계절 보내는 법>>, 완벽한 등교길에 대해 연구한 결과를 펼쳐보이는 <<통학로의 소양>> 등도 모두 독특하고요. 그 외에도 소품 서랍을 정리하는 방법, 풍선 편지를 개조했더니 영원히 날게 될 지도 모르는 물건이 되었다는 등 다른 수록작들도 갖가지 분야에 대한 연구와 고민을 망라하여 선보여줍니다. 이러한 연구를 통해 주인공이 항상 무언가를 깨닫거나 익히고 끝나는데, 그게 예상대로 흘러가지만은 않는다는 것도 재미요소였어요.

연구까지는 아니더라도 일상 생활 속 사물에 대한 독특한 고민을 보여주는 작품도 많습니다. 전자동 부적 제작 기계가 어떻게 '공덕'을 부여 받는지를 그려낸 <<길흉화복 챙기기>>는 정말 생각도 못했던 전개를 보여줍니다. 해변의 집과 해수욕장의 시즌 오프 방법이 등장하는 <<바다 폐장하는 법>>도 그러하고요.

학교에서 키우던 금붕어를 잃어버린 뒤 새로운 금붕어를 구입하러 나서는 표제작은 그닥이었지만, 전체적으로 panpanya의 독특함과 기발함을 한껏 만끽할 수 있는 좋은 단편집입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구야바노 홀리데이 - 6점
panpanya 지음, 장지연 옮김/미우(대원씨아이)

단편집이기는 한데, 무려 3부작 여행기 <<구야바노 홀리데이>>가 수록되어 있다는 점이 특징.
표제작 외에는 작가의 다른 단편들처럼 뭔가를 만들고, 찾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엉터리 일기술>>, <<비교 비둘기학 입문>>, <<부호>> 등 일상에 밀착해 있는 이야기가 많다는 것도 마찬가지고요. 일상 속에서 이런 아이디어를 떠올린다는건 분명 대단한 재능이라 생각됩니다. <<고구마 줄기 원더랜드>>는 는 고구마를 캐면서 땅 속을 헤집고 다닌 끝에 진짜 맛있는 군고구마를 알게되지만, 다시 캐 낼 수는 없게 되었다는 다소 환상적인 이야기인데, 결말만큼은 현실적이라는게 인상적이었고요.

그런데 표제작은 구야바노를 찾기 위해 필리핀을 간 여행기라 달리 기발한 상상력이 발휘되고 있지는 못해서 조금 아쉬웠습니다. 바라보는 시각이 독특해서 재미있기는 했는데, 작가의 특징이 온전히 발휘되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게에게 홀려서 - 6점
panpanya 지음/미우(대원씨아이)

기묘한 반전들이 있는 작품들이 많이 수록되어 있는게 특징. 
워싱턴 조약에 위배되는 왕도룡뇽을 키우다가 아마존으로 가서 놓아주지만, 알고보니 왕도룡뇽은 일본 원산의 고유종이었다는 <<왕도룡뇽 사건>>처럼요. 최고는 완벽한 일요일을 보내기 위해 토요일 하루를 온전히 일요일 준비에 바치는 <<perfect sunday>>입니다. 완벽한 일요일을 위해 온갖 기계 장치를 만들고, 일요일 산책 코스까지 사전에 답사하는 등 준비를 마치지만 '소풍은 당일보다 전날 준비와 저녁이 더 설레었던 것 같다'는걸 깨닫고, 알고보니 그 날이 일요일이었다는 반전, 다행히 다음날도 공휴일이었다는 반전이 계속 이어집니다.
 
쇼트쇼트 중에서는 <<decoy>>가 기억에 남습니다. 호수에 띄워놓은 가짜 나무 오리를 디코이라고 하는데, 동료로 착각하고 찾아온 오리를 그리는 사람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그런 그림을 계속 그러다보니 수면을 잘 그리게 되있다는 다소 황당한 결말로 끝납니다.
암흑 전골 세트가 초심자 용이 있었다는 <<전골>>, 파인애플이 어떻게 열리는지 몰라 조사하러 나섰지만 결국 사실을 알아내지 못한다는 <<파인애플을 모르신다>>, 살아있는 돌고래 계산기가 리만 가설을 풀어낸다는 <<계산기의 마음>>도 재미있었고요. 인터넷에서 먼저 유명해진, 단무지만드는 프라모델이 나오는 <<DANMUJI DREAM>>도 수록되어 있습니다.

다만 별다른 내용이 없었던 표제작이나, 전철에서 몸을 두고 내린다는 등으로 비교적 평이한 발상의 이야기도 수록되어 있어서 수록작별로 재미와 수준에 있어 다소 편차가 있습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동물들 - 8점
panpanya 지음/미우(대원씨아이)

앞 부분은 일상 생활을 소재로 - 특히 이사에 대해서 - 에서 지극히 평범하지만 비현실적인 느낌을 전해주는 단편들이, 뒤에는 제목에 걸맞게 붉은귀 거북이라던가, 야생동물 마미와 같은 동물들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 중 주인공을 쫓아다니는 동물 마미에 대해 그려낸 <<마미>>는 panpanya 작품 치고는 꽤 큰 스케일 - 일종의 대형 로봇까지 등장하는 등 - 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반면 <<무지나>>는 마미와 똑같은 동물인 무지나가 등장하는데, <<마미>>와는 다르게 일상과 결합된 전개를 보여준다는게 재미있었어요. 주인공이 무지나를 구해주자, 무지나는 은혜를 갚기위해 도토리를 가져오고 주인공이 도토리로 빵을 만드는 법을 가르쳐 주는 식으로 전개되거든요. 같은 동물로 정 반대 분위기의 이야기를 그려낸, 일종의 '빛과 그림자'인 셈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일상계 쪽이 더 마음에 들었습니다.

다른 작품들도 panpanya 특유의 상상력과 기발함이 가득하며, 뒤에 용어집이 수록되어 있는 등의 디테일도 좋았습니다. 별점은 3.5점입니다.


주먹밥이 굴러가는 마을 - 10점
panpanya 지음, 장지연 옮김/미우(대원씨아이)

환상의 동물 츠치노코를 발견하고 난 뒤 생활을 그린 <<츠치노코 발견하다>>, 츠쿠바산 관광 이벤트에 당첨되어 말하는 여행권과 함께 투어를 떠나는 꽤나 긴 이야기인 <<츠쿠바산 관광 불안내>>, 쓰레기도 돈을 주고 사는 상점에 대한 <<도가니>>는 기발한 상상력을 토대로 한 가공의 세계관을 재미나게 묘사한 작품들입니다.
표제작인 <<주먹밥이 굴러가는 마을>>은 주먹밥이 굴러 어디로 가는지에 대해 연구하는 내용인데, 비현실적인 설정을 일상과 결합하고, 그것을 '연구'하면 어떤 결과물이 될까?에 대해 상상력을 발휘한 작품이고요.
언덕 위에 무엇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올라가는 <<거기에 언덕이 있으니까>>와 카스텔라풍 찜케이크의 맛에 빠져 잘 수급되지 않는 찜케이크 확보를 위해 노력하는 <<카스텔라풍 찜케이크 이야기>>는 일상의 디테일을 극대화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가끔 등장하는 짤막한 일기도 이러한 일상성을 강화시켜 주는 역할을 합니다.
환상, 기발한 설정, 연구, 일상 등 panpanya의 대표적인 매력 포인트를 잘 알려주는 좋은 작품집입니다. 별점은 5점입니다.

덧붙이자면, 엘리베이터와 케이블카의 차이가 뭘까요? 좌석이 있고 없고의 차이라고 하네요. <<츠쿠바산 관광 불안내>>에 나옵니다!


물고기 사회 - 6점
panpanya 지음, 장지연 옮김/미우(대원씨아이)

'일상'을 특별하게 그려내는 panpanya의 매력 포인트가 잘 살아있는 작품집. 
<<맞지않는 계절>>은 크리스마스 산타 썰매의 순록은 아르바이트였고, 썰매도 평상 시에는 주차 중이라는 독특한 일상성이 좋습니다. 일상과 환상의 결합을 보여준달까요. 기묘한 일상성이 돋보이는 작품들도 매력적이었어요. 여행을 갔다가 이상적인 기념품을 직접 만드는 <<선물의 마음가짐>>이 대표적입니다. 최애빵 '카스텔라 풍 찜 케이크'를 소재로 한 연작은 일상성을 극대화하고 있습니다. 카스텔라 풍 찜 케이크 생산 종료를 앞두고 마지막 생산품을 구하기 위해 편도 2시간 반 걸려 3개를 확보한다던가 -서울에서 대전 정도를 가서 호두과자를 사온 느낌 -, 직접 만들기위해 다양한 연구를 거치고, 생산이 재개된 후 재 구입을 위해 발품을 팔다가 안정적인 주문 방법을 알아내는 과정을 담담하지만 매력적으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레시피 소개도 충실하고요. 한 번 만들어 보고 싶을 정도에요.


하지만 물고기가 진화하여 인간의 해산물 가공 공장을 인수하여 자체 통조림을 납품하게 된다는 표제작은 별로였습니다. 일상도 아니고, 환상으로 보기에는 상상력이 다소 부족했습니다. 일상 쪽에 집중하는게 더 나았을겁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