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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9/30

12인의 성난 사람들 (12 Angry Men) - 시드니 루멧 : 별점 4점



슬럼가에서 발생한 살인사건, 아버지에게 구타당하며 살아온 18세 소년이 용의자로 체포되고 이 판결을 요청받은 12명의 배심원이 한자리에 모여 투표를 하게 된다.
투표 방식은 만장일치제로 그간의 재판에서 모든 범죄 내용과 증거, 증언을 들은 배심원은 모두 유죄를 선고하나 단 한명(헨리폰다)만 불확실한 내용 뿐이라며 무죄임을 주장한다.
헨리 폰다는 유죄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주장하는 결정적 증언과 여러 증거들을 하나씩 불확실한 것으로 바꾸어 나가며 배심원들의 마음을 하나 둘 돌리기 시작하여 결국 전원에게서 무죄라는 판결을 이끌어 내게 된다.

시드니 루멧 감독의 1957년작 흑백 영화입니다.

제목처럼 12명의 배심원들과 배심원실(?)에서만 모든 이야기 전개가 이루어지는, 극히 한정된 공간과 인물들로 구성된 작품입니다.
이러한 구성 탓에 연극적인 구성을 가지고 있고, 그래서 12인의 배우들의 연기가 무척 중요한데 이 영화의 배우들의 연기는 정말로 발군이더군요요. 감정표현이나 각각의 캐릭터가 굉장히 현실적으로 와 닿고 있습니다.

내용은 줄거리 요약처럼 배심원 제도의 문제점을 다루고 있죠. 자신의 감정만으로 유죄를 주장하는 인물들과 속단으로 유죄 판결을 내리려는 인물들 속에서 토론으로 합리적인 결정 (선고)를 내리려는 주인공의 활약을 그렸기에 비록 배심원이 주인공이긴 하지만 법정 스릴러적인 요소는 전무합니다.
하지만 당연히 이야기 전개상 추리적인 요소가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가장 중요한 증언 중 하나인 '위층에서 죽이겠다는 소리를 듣고 뛰어나와 소년이 도망가는 것을 보았다'는 노인의 증언을 기차길 옆에 살고 있어서 소리가 들리지 못했을 것이고, 노인은 중풍에 걸려서 걸음이 느리므로 뛰어나와도 소년을 보지 못했을 것이라는 식으로 뒤집는 부분이나 또 다른 증인이 사실은 안경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밝히는 부분은 추리적으로 보아도 완벽한 장면이라고 할 수 있겠죠.

이 영화에서 문제가 딱 하나 있다면, 소년이 범인이냐, 그렇지 않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정의를 위해 심증적으로 의심이 들면 일단 무죄를 선고하자는 식의 이야기라 후련하게 해결되는 맛이 부족해요.

그래도 시종일관 탄탄한 배우들의 연기와 시나리오로 흥미진진하게 즐길 수 있는 고전 걸작임에는 분명합니다. 스릴과 추리적 요소가 잘 살아 있는 내용도 좋았고요. 감독의 적절한 카메라 워킹과 클로즈업으로 밋밋한 공간을 박력있게 바꾸는 연출도 눈여겨 볼 만 하네요. 시드니 루멧 감독의 데뷰작이라고 하는게 믿기지 않을 정도의 공력을 보여주거든요.
꼭 돈을 많이 들인다거나 하는 것 보다 영화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해 주는 영화입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이하는 추리적으로.. 오류를 밝히는 장면들입니다>


집의 도면을 검토해서 실제로 중풍에 걸린 노인이 문까지 뛰어(?)나오는 데 증언한 시간보다 훨씬 오래 걸린다는 것을 증명하는 부분


칼잡이는 아래에서 위로 찌른다.. 시체에 칼이 위에서 아래로 찔려 있는 것을 뒤집는 부분


평소 안경을 쓰는 증인의 증언에 의심을 품는 부분

2004/09/29

나는 만화책을 몇권이나 보았을까?

나는 만화책을 몇 권이나 보았을까?

산왕님 글을 읽고 저도 좀 궁금해져서 써봅니다.

저는 초등학교 6학년때부터 본격적으로 만화가게를 드나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하루에 한권꼴로 봤다고 한다면..... 중학교 3년+고등학교3년+대학교4년+직장생활6년 (군생활 2년은 당연히 뺐습니다) 이니까 16*365=5,840 권이라는 계산이 나오네요.

저도 생각보다 적어서 무척 놀랐습니다. 역시 평균치로 계산하니 이렇게 나오는군요.

산 책만 해도 꽤 된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저렴하게(?) 취미생활을 한 편이라 오히려 기분이 살짝쿵 좋아지기도 한다는.... (정말?)

폭스가의 살인 - 엘러리 퀸 : 별점 2.5점

폭스가의 살인 - 6점 엘러리 퀸 지음/시공사

2차대전의 전쟁영웅으로 고향 라이츠빌에 금희환향한 데비 폭스. 하지만 그에게는 아버지가 어머니를 살해한 남자라는 원죄가 굴레처럼 따라다녀 언젠가는 자신도 아내를 죽이고 말 것이라는 강박관념에 시달린다.
견디다 못한 데비 부부는 엘러리 퀸에게 12년 전의 아버지의 살인사건의 진상 조사를 의뢰하게 되고 엘러리 퀸은 12년 전에 확고 부동한 정황 증거로 유죄선고를 받고 무기 징역을 살고 있는 베야드 폭스의 무고를 밝히기 위한 어려운 작업을 시작한다. 

역시나 옥수수밭님의 증정품 시그마 북스 중 한권입니다. 라이츠빌 시리즈 2번째 작품인데 제가 별 생각없이 읽다 보니 3번째부터 읽고 말았네요. 뭐 그래도 내용 상 큰 지장은 없지만... 


그런데 이전에 읽었던 라이츠빌 시리즈에 비해서는 생각보다 단점이 제법 많더군요.
제일 먼저 눈에 뜨이는 것은 한국어판 제목의 문제입니다. 원작에서는 이름보다는 "여우"라는 사전적 의미가 더 강한 듯 한데 억지스러운 번역이 아닌가 싶어요.
그리고 트릭이 별로라는 것도 문제에요. 중요한 단서였던 "주전자", 그리고 방문했던 손님에 대한 진상 조사를 결국 경찰이 게을리 했다는 것, 즉 당시 수사의 미흡한 점으로 베야드 폭스가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는 단순한 결론은 심히 당황스럽거든요. 그렇게 깔끔하던 베야드가 컵을 확인도 하지 않고 병든 아내에게 주었다는 제일 중요한 설정도 사실 이해가 되지 않았고요.
게다가 마지막에 있는 반전도 약해서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의외의 진범이 밝혀지기는 하지만 앞부분에 나왔던 복선과 단서로 어느정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Y의 비극" 비스무레한 느낌도 나긴 했으나 훨씬, 아주 약한 반전이었어요.

물론 12년이나 지난 살인 사건을 해결한다는 꽤나 재미난 설정을 흥미진진하게 풀어나가고 있다는 점, 무엇보다도 해피엔딩이라는 점은 좋았으며 작품 자체가 추리적인 부분보다는 인간 드라마에 촛점을 맞춘 듯 싶기에 몇몇 단점만으로 평가절하할 수 없기는 합니다. 인간 드라마 측면에서 색다른 재미를 주기도 하고요.
무엇보다도 읽는 재미만큼은 발군이라 흡입력이 대단하므로 시간가는 줄 모르고 독파할 수 있었습니다. 다시한번 옥수수밭님께 감사를...^^ (즐거운 추석입니다^^)

결론내리자면 범작 정도? 별점은 2.5점입니다. 단순한 재미를 떠나 엘러리 퀸의 이 시기 작품들은 추리사적인 가치가 크니 아직 읽지 않으셨다면 일독을 권해드립니다.

PS : 제가 엘러리였다면 이 작품과 3번째 작품 "열흘간의 불가사의" 두개 모두 의뢰가 들어오면 정신과 의사를 찾아가 보라고 단호히 거절했을 것 같습니다. 탐정의 영역을 벗어난 의뢰들이라 생각됩니다.^^

2004/09/28

복수 - 장철 : 별점 3점

"영웅본색"의 적룡의 젊은 시절! 남다른 근육과 배에 꽂힌 손도끼를 보라!

주인공 "강대위"의 이른바 "살벌한 쿨함"

저 패션감각! 멋지다! (이퀄리브리엄인가....)

최후의 결투! 특유의 굳은 표정을 시종일관 유지하는 대단함!

1925년 중국의 어느 도시, 경극의 무술 전문 배우로 활동하던 관옥루(적룡)는 자신의 아내에게 호시탐탐 유혹의 손길을 뻗치던 봉사부의 도장의 간판을 부수며 자신의 아내에게 손을 뗄것을 경고하나 봉사부와 그의 일당등에 의해 잔혹하게 살해당한다. 이에 남쪽에 거주하던 관옥루의 동생 관소루(강대위)는 복수를 위해 찾아와 형의 원수들을 하나씩 처치하기 시작한다.

장철 감독의 1970년도 영화입니다. 명성이 워낙 자자하여 한번 보고 싶었지만 기회가 닿지 않던 차에 우연찮게 구해 보게 되었습니다.

일단 당시 영화답지 않은 화면 구성이 놀랍습니다. 장철 감독도 호금전과 더불어 재평가 받고 있는 감독이지만 초반부의 경극 장면과 관옥루의 살해 장면을 교차 편집한 장면이나 여러 액션 장면은 대가의 풍모를 느끼게 합니다.

무엇보다 대단한 것은 액션! 주인공 관소루는 2:8 가름마에 미소를 절대 띄지 않는, 누군가가 표현한 "살벌한 쿨함"으로 무장하고 눈에 띄는 원수의 패거리는 일단 다 죽입니다. (그 당시 중국 치안 상황이 정말 황당한 수준이었나 보더군요^^)

대략 보아도 30~40여명은 혼자 쓸어버리는데 그 살육의 장면을 극대화한 아름다움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정통 홍콩 쿵푸영화의 아류가 아닌 독특한 칼부림 액션으로 표현하여 화면에 피가 난무하는 그야말로 하드고어 액션을 보여줍니다. (특수촬영에 장철 감독이 돈을 더 썼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조금 남습니다)
거기에 마지막에 복수를 완료하고 죽어가는 관소루의 모습까지 겹쳐지며 영화의 화룡점정을 찍어버리네요.
70년대 영화다운 닭살스러운 장면이 곳곳에서 묻어나는 것과 ("음식이 다 식어요" "난 식은것을 더 좋아하오") 약간은 허접한 촬영 방식이 옥의 티지만 이 영화는 당시 무술 영화의 "에너지"를 느끼게 하는 데에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묘한 에너지와 "무릇 남자는 강해야 한다!"라는 남자다움을 극한으로 강조하는 고전! 오히려 저는 최근의 세련되고 특수효과 남발한 중국산 무협보다는 이 영화가 더욱 마음에 듭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열흘간의 불가사의 - 엘러리 퀸 : 별점 3점

열흘간의 불가사의 - 6점 엘러리퀸/시공사

2차 대전 이전, 프랑스 파리에서 잠시 교분을 가졌던 하워드 밴 혼의 갑작스러운 부탁으로 엘러리는 라이츠 빌의 밴혼 저택에 머물며 하워드의 기억 상실 발작을 도와준다. 하지만 하워드는 자신의 새어머니 샐리와의 부정한 관계로 고통받던 상태로 마침내 협박까지 받게 되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엘러리는 사건에 뛰어들지만 하워드의 발작이 결국 의외의 사건을 부르며 엘러리는 이 모든 사건은 성서의 "10계"가 바탕이라는걸 깨닫는다.


엘러리의 "라이츠빌" 시리즈의 3번째 작품입니다. 엘러리의 유머와 잘난척이 줄어든 대신 잔인한 인간성에 보다 촛점을 맞춘 작품이죠. 역시 "옥수수밭" 님 덕분에 구해 읽게 되었습니다.

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제목처럼 열흘동안 벌어지는 사건을 성서의 "10계"와 연결시켜 진행해 나간다는 점입니다. 독특하고 획기적인 아이디어일 뿐만 아니라, 10계의 범죄를 하나씩 행하면서 결국 살인에 도달하게 되는 과정을 치밀하게 묘사하고 있으면서도 독자에게 생각할 여지를 주는 것은 역시 정통파의 거장답더군요. 거기에 더해 굉장히 효과적이고 충격적인 반전을 던져주고 있는 점도 마음에 들고요.

하지만 너무 아이디어에 치중한 탓인지 중간 과정에 몇몇 핵심적인 오류가 보인다는 것은 아쉽네요. 하워드의 기억 상실은 예측 불가능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범인이 효과적으로 써먹은 여러 자료들이 전부 허구였다는 사실 역시 그간의 치밀함에 비추어 볼때 너무 무신경한 부분이었다 생각됩니다. 범인이 의도한대로 사람을 조종할 수 있다던가, 엘러리가 1년전에 받은 쪽지 뒷면을 한번도 보지 않다가 마지막에 뒷면을 보고 진상을 깨닫는다던가 하는 등의 설정 역시 현실성이 떨어지고요.
기발한 아이디어에 치중한 나머지 치밀한 전개가 부족하다는건 다른 엘러리 작품과 유사합니다. "악의 기원" 처럼요.

그래도 엘러리의 패배(정확하게 보면 1승 1패지만 제가 보기에는 패배가 맞습니다)가 선보이는 이야기 전개는 독특하며, 기발한 아이디어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볼 가치가 있는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다시 한번 책을 영구대여(?)해 주신 옥수수밭 님께 감사드리며....^^

2004/09/27

중국 오렌지의 비밀 - 엘러리 퀸 : 별점 2.5점

 
중국 오렌지의 비밀 - 6점 엘러리 퀸/시공사

뉴욕 챈슬러 호텔 22층에 있는 맨더린 출판사 사장 도널드 커크의 사무실에 찾아온 정체불명의 사나이가 살해된 시체로 발견된다. 현장인 대기실의 모든 집기에서부터 피살자의 복장까지 거꾸로 뒤집혀 있는 괴상한 상황에 더해 밀실에 가까운 대기실의 존재 탓에사건은 미궁에 빠진다.
도널드 커크의 친구인 엘러리 퀸은 우연히 사건에 뛰어들게 되고, 피살자의 복장에서 단 하나 빠져있던 "넥타이"를 주목하며 특유의 추리력으로 결국 사건을 해결하게 된다

엘러리 퀸의 국명시리즈의 하나로 초기작이라 볼 수 있는 작품.
개인적으로 엘러리 퀸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아무도 모를 어려운 인용구를 남발하는 식의 잘난척하는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었죠. 그래서 우연찮게 구했던 몇몇 작품만 읽고 애써 구해보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블로거 "옥수수밭"님의 도움으로 구해서 읽게된 이 작품은...! 엘러리 퀸의 잘난척과 인용구는 역시나 가득하지만 고전 추리로서의 미덕과 정통파로서의 품격과 내용을 모두 갖추고 있는 좋은 작품이더군요. 역시 선입견을 가지면 안되요... 반성, 반성합니다. 

여튼, 누가 뭐래도 정통파는 의외의 상황, 정교한 트릭, 의외의 범인 이 세가지가 잘 짜여져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이 작품은 "거의 밀실에 가까운" 방에서 모든것이 뒤집혀진채로 죽은 피해자 (입고있는 옷과 방의 모든 가구들, 심지어 그림까지!)라는 의외의 상황과 이 상황을 잘 이용한 트릭, 그리고 가장 범인 같지 않은 사람이 범인이라는 것 까지 정통파의 플롯과 내용을 그대로, 하지만 설득력 있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또한 독자에게 던지는 도전장!이라는 부분으로 독자에게 지적 게임을 유도한다던가 후반부의 엘러리가 관련자 전원을 모아놓고 추리쇼를 펼치는 부분은 김전일과 코난류의 일본 추리 만화의 마지막 장면과 무척이나 흡사하여 왠지 친근감마저 느껴졌고요. (특히나 김전일과 굉장히 비슷한 기분이 듭니다) 

그러나 범인이 갑자기 닥친 상황에서 급하게 짜낸 트릭으로 완벽한 알리바이를 구축할 수 있었다라는 부분의 설득력이 약한 것은 단점이긴 합니다. 이런 트릭으로 방을 밀실로 만들고 알리바이를 만드느니 시체를 잠깐 동안만 숨겨놓고 나중에 태워버린다던가.. 하는 방법으로 처리 하는 편이 더 낫지 않았을까요?
거기에 방을 밀실로 만드는 방법은 약간 억지스럽기도 합니다. 감히 잠깐 생각했던 트릭으로 엘러리 퀸에게 대결하다니 건방진 놈 같으니라고.

그래도 추리적으로는 마음에 들은 부분이 많고 내용도 재미있고 흥미진진한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국명 시리즈는 "이집트 십자가", "그리스관" 에 이어 이로써 세 작품 째인데 기회가 된다면 더 구해서 읽어보고 싶네요. 별점은 2.5점입니다. 책을 주신 옥수수밭님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PS : 그런데.. "중국 오렌지"라는 제목은 억지네요. 국명시리즈라는 타이틀에 엘러리가 너무 집착한 듯 싶어요^^

2004/09/26

귀신이 산다 - 김상진 : 별점 1점


추석 개봉 영화들 중 흥행 1위를 달리고 있는 영화입니다. 차승원 영화는 기본은 항상 해 준다는 기대와 김상진 감독의 영화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볼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설정이나 초반부 전개는 제법 그럴싸해요.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로 자기 집 갖기가 평생 소원인 주인공 박필기(차승원)가 드디어 집을 장만하지만 그 집에 귀신이 살고 있다는 이야기.... 웃음거리도 충분하고 귀신과의 사투나 차승원이 대항하는 방법, 여러 자그마한 에피소드들이 볼만하거든요.

하지만 거기까지, 중반 이후 차승원이 우연히 번개를 2번이나(!) 맞고 식스센스에 눈을 뜨기 시작하면서 영화는 막나가기 시작합니다. 귀신을 볼 수 있는 "디아이"를 소지하게 된 차승원! 귀신을 볼 수 있는 직장 상사 장항선의 충고와 도움으로 귀신 장서희를 오히려 데리고 놀기 시작하면서 영화는 급속히 힘을 잃습니다. 일단 초반부의 강력한 장서희의 파워가 전부 사라져 버리며 이야기가 모순이 생기기 시작하며 후반부의 악덕 부동산 업자와의 한판 대결은 귀신들린 부동산 업자 부하들이 소림 무공인지 뭔지로 날라다니면서 화려한 집단 난투극을 벌이는 남기남 류의 전개까지 보여주더군요.
거기에 화룡점정으로 마지막의 장서희가 남편의 유령과 승천하는 장면은 Ghost (사랑과 영혼)을 거의 그대로 가져다 베낀 어처구니를 물말아 먹은 장면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막판 후반부는 졸음이 쏟아져 헤어나기 어려웠어요.
그나마 연기라도 좋았으면.. 싶지만 장서희의 연기는 그야말로 바닥 수준으로 몸서리가 쳐지네요. 거기에 CG와 특수효과는 왜 이리 후진거야?

한국 코미디 영화의 대부라는 김상진 감독의 작품 수준이 이정도까지 떨어지다니 가슴이 아픕니다. 이젠 한국의 왕정감독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겠네요. 차승원이라는 괜찮은 배우를 데리고 이 정도 영화밖에 못찍었나 하는 생각에 아쉽기만 합니다.

한마디로, 최근 제가 관람한 영화들 중에서 가장 쓰레기급입니다. 아니 역사상 가장 쓰레기 급 중 하나죠. 돈보다도 왠지 사기당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스타들이 출연하는 추석 특집 TV극 수준의 작품으로 저만의 미스터리 영화 흥행 차트 ("색즉시공", "조폭마누라")에 추가되어야 할 영화입니다. 그 어떤 사정이 있더라도 지인들의 관람을 힘 닿는대로 적극 저지해야 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별점은 1점입니다.

정말이지.......도대체 왜 흥행이 잘 되는 거죠?

2004/09/24

기나긴 이별 - 레이먼드 챈들러 / 박현주 : 별점 4.5점

기나긴 이별 - 8점 레이먼드 챈들러 지음, 박현주 옮김/북하우스

사립탐정 말로우는 우연한 기회 도움을 준 테리 레녹스와 가끔 술잔을 나누는 친구가 된다.
그러나 그가 억만장자 하란 포터의 둘째딸 실비아와 재혼한 후 관계가 소원해지는데, 어느날 그가 갑자기 도움을 요청한다. 그의 부정한 아내가 별관에서 시체로 발견되고, 정황증거만으로도 체포되면 유죄 판결을 받게 되는 급박한 상황에 처했기 때문. 말로우는 테리의 국경 탈출을 도와주고, 그 사실이 밝혀져 체포된 뒤 갖은 고초를 당하지만 테리가 멕시코에서 자신의 범행을 기록한 유서를 남긴 채 자살한 시체로 발견되어 겨우 풀려나게 된다.
이후 말로우는 스펜서라는 출판인에게서 인기 대중 작가 로저 웨이드의 보호를 요청받고 그와 그의 미모의 아내 아이린의 생활에 끼어든 후, 웨이드의 심각한 알콜중독의 원인 규명을 위해 그와 아이린의 과거를 주변인의 시선으로 조사하던 말로우는 웨이드가 자살한 후, 의외의 진실을 알게 되는데...

레이몬드 챈들러의 최고 걸작이라고 알려진 작품. 주변인들의 강력한 추천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과연 명불허전이더군요. 필립 말로우의 카리스마와 존재감은 그야말로 발군이며 이른바 "싸나이"들의 우정과 독특한 "팜므 파탈"의 존재가 찬란하게 빛나거든요.
길거리를 배회하던 생면부지의 남자와 서서히 우정을 맺어 나가다가 그 남자가 관련된 사건에 의문을 품고 진상을 추적해 나가는 과정은 흡사 무협지, 나쁘게 말하면 좀 "마초"스러운 면도 있지만 필립 말로우라는 불세출의 캐릭터가 종횡무진 활약함으로써 남다를 재미를 선사하며 하드보일드란 이런거다!라는 것을 극대화한 묘사는 문학적인 성취마저 느끼게 해 줍니다. 수사의 과정이 비교적 세밀하게 묘사되고 이야기의 복선이나 반전 역시 일관성 있게 구성, 전개되기에 추리적으로도 높은 점수를 주고 싶고요.

물론 전혀 다른, 별개로 여겨지던 사건들이 하나로 귀결되는 이야기 구조와 진상에 도달하는 과정이 너무 길어서 어떻게 보면 좀 지루한 면이 있기는 합니다. 한번에 읽지 않으면 내용 전개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기도 하고요. 아울러 번역의 문제인지 모든 등장인물의 말투가 비슷비슷한 부분은 좀 아쉽네요. 말로우의 마초스러움이 극에 달해 있는 묘사도 정말 아주 약간, 거슬렸습니다. 정말 무협지스러운 묘사라 생각되었기 때문이에요.

그래도 필립 말로우의 명대사와 명장면이 속출하는 명편으로 하드보일드를 읽는다면 꼭 거쳐가야 할 작품이 아닌가 싶습니다. 별점은 4.5점입니다.

추천 명대사
"안녕이라고 말하는 것은 잠시동안 죽는다는 것이다"
"정말 잘 가라는 말은 벌써 해 버렸단 말이야. 정말 잘 가라는 말은 슬프고, 쓸쓸하고, 절실한 느낌을 지니고 있을 걸세"

2004/09/22

움직이는 표적 - 로스 맥도널드 / 이가형 : 별점 3.5점

움직이는 표적 - 8점 로스 맥도날드 지음, 이가형 옮김/해문출판사

루 아처는 백만장자 랠프 샘프슨 실종사건의 의뢰를 받아 사건에 뛰어든다. 단서는 랠프의 양복 주머니에 들어있는 여배우의 사진 한장. 루 아처는 여배우 페이에게 접근해 단서를 캐 나가기 시작하며 여러 인물들을 만난다. 그러던 중 몸값 10만 달러를 요구하는 협박장이 샘프슨의 집에 도착하고, 아처와 변호사, 검사, 보안관은 돈을 지불한 뒤 일당을 일망타진하려는 작전을 펼치게 된다.
그러나 아처의 앞에서 돈을 가지고 도주하던 유괴범은 살해당하고 오히려 돈은 종적을 감춘다. 이윽고 아처는 살해당한 유괴범의 정체와 정보를 알게된 후 진정한 사건의 진범이 누구인지를 파악하게 된다...

<소름>의 기억이 살아있던 차에 다시 집어들어 읽게 된 루 아처 시리즈. 기념할만한 데뷰작이죠.
데뷰작답게 작가가 오랜 시간 준비한 티가 물씬 납니다. 상당히 복잡한 플롯이지만 굉장히 치밀하고 잘 짜여져 있는것이 그러한데요, 행방불명된 백만장자가 약간 미쳤다.. 라는 근거로 쓰인 한 광신자에게 준 사당과 사원이 사실은 백만장자의 사업과 관련이 있다...라는 내용이나 중반부에 잠깐 나오는 바다로 향해 날아가는 검은 원반의 정체 등, 인물 하나 하나, 장면 하나 하나가 결과적으로 다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소름> 처럼 나름의 한방, 반전을 가지고 있는데 단지 반전으로서가 아니라 인간의 심리를 꿰뚫는 표현으로 여타 작품들보다 수준 높은 품격을 보여주는 것이 마음에 듭니다. 황금 만능 주의 사회에 울리는 경고의 메시지도 좀 담겼달까요? 이런 비슷한 상황이 누구에게나 벌어질 수 있다는 부분이 충격적으로 다가오는 것 같네요.
제목 "움직이는 표적"은 그다지 작중에서 효과적으로 쓰이지는 못했지만 나름대로 인상적인 대사로 인용되며 루 아처라는 캐릭터를 부각 시키는데 유용한 장치였다고 생각됩니다. 또 일단 굉장히 멋지잖아요?

또한 하드보일드의 전통이 잘 살아 있으면서도 루 아처만의 매력을 풍기는 시리즈의 특징 그대로 루 아처의 활약도 여전합니다. 액션이면 액션, 추리면 추리, 배짱이면 배짱 모든면에서 충분히 인상적이며 자신만의 존재를 잘 어필하고 있거든요. 또한 악역이던 선역이던 여성들을 대하는 시각에서 감성적인 부분이 느껴진다는 점에서 확실히 다른 하드보일드 작품들과 차별화되는데 저는 마음에 들었습니다.

한마디로 거의 모든면에서 완벽한 데뷰작. 루 아처라는 탐정의 될성부른 떡잎(?)을 알아보는데는 모자람 없는 작품이었고 미국 하드보일드의 계보를 짚는데도 중요한 작품이라 생각됩니다.
문제는 너무 복잡해서 한번에 읽지 않거나 캐릭터들 상관관계를 정리하지 않으면 읽기가 약간 까다롭기도 하다는 점이지만 약간의 어려움만 감수한다면 일급 하드보일드 추리물의 진수를 느끼실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별점은 3.5점입니다.

덧 : 분명 영화화가 되었으리라 생각해서 조사해 봤더니 "영국"영화로 1966년도에 제작되었더군요. 제목은 "Harper!" 명배우 폴 뉴먼과 로렌 바콜이 나오는데 주인공 이름이 "루 하퍼" 입니다. 이름을 바꾼 이유인 즉슨 폴 뉴먼이 H로 시작하는 이름을 가지는 것이 영화 성공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프로듀서의 의견 때문이었다군요. 허 참...

덧 2 : 읽으실 때 도움되실 캐릭터 일람 추가드립니다~

  • 루 아처 : 사립 탐정, 주인공
  • 랠프 샘프슨 : 괴짜 백만장자. 점성술과 사이비 종교에 빠져 있으며 최근 실종됨.
  • 샘프슨 부인 : 랠프 샘프슨의 부인으로 사건 의뢰자. 승마하다가 낙마한 이후 다리가 부자연 스럽다.
  • 미란다 샘프슨 : 샘프슨의 딸. 앨런 태거크를 사랑하지만 아버지의 압력으로 앨버트 그레이브스와의 결혼을 진지하게 고민중인 천방지축 아가씨.
  • 앨버트 그레이브스 : 샘프슨의 고문 변호사. 이전 아처의 상관인 지방검사였다
  • 앨런 태거트 : 랠프 샘프슨의 자가용 비행기 조종사. 2차대전 당시의 전쟁 영웅 출신으로 굉장히 핸섬한 젊은이
  • 드와이트 트로이 : 지저분한 갱. 술집 "미치광이 피아노"의 주인.
  • 페이 이스터브룩 : 왕년의 영화 스타. 랠프의 친구로 점성술에 관심이 많다.
  • 베티 프레일리 : "미치광이 피아노"의 재즈 가수. 마약 중독자.
  • 퍼들러 : "미치광이 피아노"의 보디가드. 트로이의 오른팔.
  • 클로드 : 샘프슨이 산과 수도원을 기증한 사이비 종교 교주.
  • 에디 레시터 : 샘프슨 납치범 중 한명.
  • 피터 콜튼 : FBI 수석 검사관. 과거 아처의 상사.
  • 스패너 : 보안관.
  • 험프리스 : 지방검사. 

안녕! UFO - 김진민 : 별점 1.5점

안녕 유에프오 (2disc) - 4점 김진민 감독, 봉태규 외 출연/덕슨미디어

선천적 시각장애인 경우는 애인과 헤어지고 스스로에게 변화를 주기 위해 먼 구파발로 이사 온다. 상담소에서 일하는 경우는 밤마다 구파발행 막차 버스를 타고 퇴근하는데 그 버스에는 항상 실연의 아픔을 호소하는 사연과 이를 느끼~하게 위로하는 라디오 방송 "박상현과 뛰뛰빵빵"이 흐른다. 사실 방송의 정체는 버스기사 상현이 밤마다 집에서 혼자 녹음한 짝퉁 교통방송. 어느 날 동네 골목길에서 우연히 자신을 도와 준 상현에게 경우는 친구하자며 당돌한 제안을 하고, 상현은 자신의 버스와 라디오방송에 대해 핀잔을 주는 경우를 보며 얼떨결에 이름도, 나이도, 직업도 속이게 된다. 
버스에선 버스기사 박상현으로, 경우 앞에선 전파사 직원 박평구로 애매모호한 이중생활을 하게 된 상현은 어느새 그녀를 사랑하게 된다. 그러나 경우와 가까워질수록 그녀를 속이는 상현의 마음은 갈수록 복잡하고 괴롭기만 하다. 그리고 좀처럼 마음을 열지 않는 경우 역시 그의 마음을 애타게 하는데... 

"슈퍼스타 감사용"을 너무나 재밌게 봐서 이범수씨의 첫 주연작이라는 (그것도 멜로물!) 이 영화를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가벼운 웃음과 따뜻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채워진 영화로 주인공 박상혁이 "은평구"라는 동네 이름을 보고 가명으로 "박평구"라는 이름을 생각해 낸다던가, 장님 아가씨 경우와의 만남을 통해 자신을 조금씩 속이는 과정 같은것이 잔잔하면서도 웃음을 자아내고 전체적인 분위기와 음악이 상당히 괜찮습니다. 보면서도 흐뭇한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영화라 할 수 있겠네요. 조연들의 연기도 감칠맛나고 전체적으로 자연스러운 것이 높은 점수를 줄 만 합니다.

하지만 아쉬움도 많은 것이 일단 이야기가 극적 긴장감이 별로 없이 잔잔하게 흘러가다가 갑자기 기복이 생기는 등 짜임새가 별로 매끄럽지 못합니다. 또한 UFO나 이범수의 가족관계, 동네 사람들 이야기등 주변 소재를 무리하게 끼워넣은 느낌이 강하며, 뒤로 갈 수록 주변 이야기의 비중이 강해지는 탓에 주요 스토리가 흐려져서 주인공들의 이야기가 감정이입이 되지 않을 정도로 망가져 버리네요.
거기에 마지막에 진짜 UFO까지 나오는 장면은.... 좀 너무합니다. 한발짝이 아니라 한 10발짝은 너무 앞서 나간것 같아요. 사실 UFO가 전혀 상관없는 영화로 만들었어도 하등 지장이 없는 소재인데 왜 이렇게 무리하게 집착했을까요?
그리고.. 다들 연기력이 좋지만 딱 한명! 이은주씨의 장님연기는 솔직히 실망스럽습니다. 뭐 알 파치노급의 연기를 바란건 아니지만 그래도 장님이라는 인물의 눈동자나 시선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화가 날 정도네요.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1.5점. 그냥 취미로 자신의 가상 방송을 녹음해서 버스에서 트는 버스 운전사와 장님 아가씨의 사랑이야기만 중심으로 다루면 영화가 훨씬 좋았을 것 같습니다. 이 설정은 솔직히 괜찮았는데 너무 이거저거 보여주려는 욕심이 많았어요. 잔잔하고 흐뭇하긴 하지만 아쉬움도 많이 남는 영화였습니다. 역시나.. 흥행에 실패하는 영화는 다 이유가 있다니깐...

2004/09/20

레드 스퀘어 - 8점
마틴 크루즈 스미스/영림카디널
책 표지와 "페리체"님이 제공해 주신 오리지널 "레드스퀘어

러시아의 형사부장 아르카디 렌코는 검사와 상층부가 관련된 밀수 사건을 파헤치다가 숙청당해 시베리아 어선에서 고난의 세월을 보내던 중 러시아의 개혁, 개방 분위기와 함께 복직된다. 그리고 맡게 된 암시장 환전상 루디 로젠을 감시하는 임무 수행 중 루디가 눈 앞에서 살해당하는 것을 목격하고 수사를 시작한다. 그러나 경찰청 장군 페니야긴, 렌코의 부하 야크마저 살해되자 렌코는 사건에서 밀려나게 된다.
루디에게 발송된 "레드 스퀘어는 어디 있나요?"라는 수수께끼의 Fax 메시지가 독일에서 발송되었다는 점, 그리고 루디의 사업 파트너로 알려진 독일인 보리스 벤츠를 찾기 위해 뮌헨으로 날아간 아르카디 렌코는 옛 연인 이리나를 다시 만나게 되고 이리나를 통해 사업가 막스 알보프를 만난 뒤, 그는 이 모든 사건이 러시아 미술품을 밀반출 하려는 거대한 음모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되는데...

주의! 하기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마틴 크루즈 스미스의 러시아 형사 아르카디 렌코 시리즈 3번째 작품. 1작인 "고리키 파크"와 2작 "북극성" 모두 재미있게 읽었기에 큰 기대를 가지고 읽기 시작했습니다.

1작에서 검사가 관련된 사건을 다루며 결국 권력 상층의 밀수 사건을 적발해 내는 아르카디 렌코, 그는 원래 촉망받는 형사 반장으로 2차대전의 전쟁영웅 렌코 장군의 아들이라는 설정이죠. 허나 1작 사건 해결 후에는 사건의 핵심 인물이자 연인인 이리나의 미국 망명을 조건으로 혼자 소련에 남습니다. 당연히 숙청당해 시베리아 원양 어선 "북극성"호에서 일하게 되죠. 북극성호에서 발생한 여자 승무원의 살인 사건을 조사하여 미국 어선과 얽힌 음모를 밝혀낸다는 것이 2작 "북극성"입니다. 그리고 이번 작품에서는 북극성 사건에서의 공로를 인정받아 다시 형사반장으로 복귀한 이후부터 이야기가 시작되네요.

냉전이 한창이던, 그래서 "철의 장막"에 둘러 쌓여 있던 소련을 배경으로 한 1, 2작과는 확실히 다른 것은 해빙 무드가 본격적으로 무르익던 고르바쵸프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러시아, 체첸 마피아들의 음모에 많은 거물급 인물들이 얽혀있다는 식으로 전작들보다 이야기의 스케일은 훨씬 큽니다. 그러나 커진 스케일에도 불구하고 핵심 이야기는 깔끔하게 전개되는 편이라 전작들보다도 오히려 읽기는 쉬웠으며, 첩보 스릴러물 비슷하게 여러 단체들의 암투와 그 사이에서 좌충우돌하는, 하지만 너무나 인간적인 주인공의 활약이 흥미진진하게 묘사되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번역이 가장 최신인 만큼 가장 잘 되었다라는 생각도 들긴 합니다만.
또한 가장 중요한 단서 중 하나인 "레드 스퀘어"라는 단어와 러시아 마피아의 관계에 대한 초, 중반부 수수께끼가 풀리는 반전이 굉장히 좋습니다. 유명한 장소인 "붉은 광장"이 아니라 러시아 현대 미술의 대작가 말레비치의 전설적인, 절대주의의 상징과도 같은 작품을 이야기 하는 것이라는 반전인데, 이 반전을 통해 전반부의 거의 대부분의 인물들과 사건, 그리고 복선이 연결고리를 찾게 되는 이야기 구성이 상당히 매끄럽기 때문이에요. 결과적으로 악역이 파멸하는 해피엔딩이라는 것도 제 취향이었고요.
무엇보다도 역사의 큰 흐름이었던 "페레스트로이카" 당시를 배경으로 하여 러시아의 사회 실상을 치밀한 사전 연구 및 조사를 통해 르포 형식으로 디테일하게 설명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실제 그 흐름에 휩쓸린 아르카디 렌코를 비롯한 주인공들이 격동의 역사 속 현장에서 살아 숨쉬는 듯한 느낌을 전해주는 묘사가 아주 마음에 듭니다. 예를 들자면 고르바쵸프의 개방 정책에 불만을 품은 군부의 쿠데타라는 실재 역사적 사건이 벌어지는 와중에 마피아 보스 보리스 벤츠와 알보프를 상대로 마지막 승부를 펼치는 식이죠.
아주 약간의 문제라면 보리스 벤츠가 보리야 구벤코였다는 반전아닌 반전이 책 옆날개의 캐릭터 소개로 밝혀진다는 것 정도에요.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3.5점. 최근의 흐름이기도 한 역사와 추리를 섞은 작품들이 대부분 공상과 허구에 기반하는데 반해, 이 작품은 실제 시대 분위기를 잘 전해주는 실감나는 묘사로 현실감을 극대화하는 매력이 넘칩니다. 말레비치의 실제 생애와 역사를 절묘하게 조합하면서도 러시아의 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보고 디테일하게 묘사한다는 점에서는 작가의 사전 조사와 구성력이 놀라울 뿐입니다. 더군다나 작가가 미국인이라는 사실에서 한번 더 놀라게 되네요.
전 3편에 달하는 마틴 크루즈 스미스의 이 시리즈 중에서 가장 읽기 편했고 가장 재미있게 읽은 작품입니다. 아마존을 뒤져봤더니 다른 시리즈도 있는 듯 하던데요, 냉소적이면서도 너무나 인간적인 아르카디 렌코의 팬인 만큼 후속 시리즈도 빨리 번역되길 소망합니다.

덧 : 말레비치에 대하여 - 카사미르 말레비치는 키예프 출신의 러시아 화가로 몬드리안과 칸딘스키와 더불어 추상예술의 개척자이다. 처음에는 후기 인상파의 영향을 받았으니 나중에 M.F.라리오노프 및 러이사 전위파 시인들과 친교를 맺고, 쉬프레타티즘을 주창하였다. 1911년에는 ‘다디아의 책’이라는 그룹에 참가하여 러이아의 입체파 운동을 추진하였으며 12년 파리 여행후 레제풍의 기하학적 추상화를 발표하고 급속히 자기 방법을 발전히켜 12년 <흰 바탕에 검은 네모꼴>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이어 원.십자가.삼각형을 추가하고, 그러한 기본형태에 의한 추상예술을 이론화하여 절대주의라 이름 짓고 15년 V.V 마야코프스키와 함꼐 선언문을 작성하였다. 형명직후 교수직에 임명되기도 했으니, 미술정책의 반동적 전환으로 상페테르부르크에서 자유를 잃은채 지냈다. 26년에 독일로 이주해 절대주의 선언을 상세히 설명한 <비구상의 세계>를 바우하우스를 통해 간행했다.



2004/09/19

슈퍼스타 감사용 - 별점 4점


1982년 삼미에서 제 6구단을 창단해 프로야구에 가입하던 해, 삼미 특수강 주임이던 감사용은 테스트를 거쳐 왼손이라는 이유로 "파견"형식으로 삼미 슈퍼스타즈의 투수로 합류한다. 그러나 국가대표 한명 없던 삼미 슈퍼스타즈는 개막 이후 연패를 거듭하며 최하위 팀으로의 이미지만 심어주며 감사용은 주로 "패전"처리용 투수로만 기용된다.
그러던 어느날, 당시 최고의 슈퍼스타이던 OB베어스의 박철순 투수의 20연승 기록 경기에서 감사용은 자청하여 선발 투수로 나선 뒤 박철순과 경쟁하듯 완투한 끝에 여러 선수들의 도움으로 3-2로 앞선 9회말 2사 만루의 상황을 맞게된다....

이 영화는 국내 영화로는 최초로 국내 프로 야구 실화를 소재로 만든 영화입니다. 특히 82년 창단 당시 부터 최약체의 이미지를 가지며 야구 팬들에게는 동정을 넘어 비웃음의 대상이었던 "삼미 슈퍼스타즈"의 이름도 이미 잊혀진 투수 "감사용"을 주인공으로 다루고 있죠.

일단 프로야구의 팬이라면 즐겁게 볼 수 있는 영화입니다. 현재까지 그 이름이 전해지는 스타들의 이름을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재미가 쏠쏠하거든요. 클라이막스까지 당대 최고 스타로 군림하는 "박철순"선수를 비롯해서 당시 MBC의 백인천, OB의 신경식, 윤동균, 김우열, 삼미의 양승관, 인호봉, 금광옥 등 추억의 스타들이 대거 언급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당시 삼미의 에이스로 알려진 "인호봉"선수를 중심으로 재미있는 장면들이 자연스럽게 등장하는 것이 무척 돋보입니다. 억지 웃음이나 과장이 아니라 연기와 장면이 하나가 되는 자연스러운 유머들이라 더욱 마음에 들어요. 이야기 전개도 굉장히 전통적이지만 자연스럽고 음악의 선정도 좋고요.
배우들의 연기도 좋아서 주인공 감사용 역의 이범수를 비롯, 가족과 선수들 모두 과장되지 않은 좋은 연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기대하지 않았던 이혁재도 배역을 잘 소화해내고 있고요. 뭐 개인적으로 팬이었던 박철순 역의 공유는 약간 불만이었지만.... ^^ (해설자 역으로 깜짝 출연한 이병훈 씨는 "외인구단" 에서 하일성 씨를 연상시키더군요)
무엇보다 감사용의 주변인물들, 특히 어머니와 형을 중심으로 따뜻한 에피소드들을 절묘하게 조합해서 후반부의 가슴 뭉클한 장면까지 끌어내는 것이 최대의 장점이라 할 수 있겠죠.

그러나 단점도 곳곳에 보입니다. 우선은 프로야구 팬으로서 잊혀진 인물에 가깝던 감사용 선수와 삼미 슈퍼스타즈의 선수들을 부각시킨 점은 높이 사고 싶지만 그 과정에서 너무 과장과 각색이 많다는 점입니다. 이래서야 오히려 당시 선수들에게 누가 되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에요. 실제로도 거의 유일한 스타였던 양승관 선수가 돌출행동을 했다던가.. 하는 기록은 전혀 볼 수 없거든요. (오히려 팀 분위기는 좋았다고 하네요)
그리고 극적 전개를 위해서라지만 박철순 선수의 20연승을 저지하기 위한, 그리고 자신의 첫승을 위한 경기를 책임지는 감사용 선수의 모습도 분명 허구에요. (실제 16연승째에 등판했다고 알고 있고 그 경기에서 완패했다고 합니다) 중반부에 1승을 추가하고 갑자기 한국 시리즈 우승이나 한 듯이 즐거워 하는 삼미 선수들의 모습 또한 어색했습니다. 7회에 금광옥의 투런홈런으로 역전하는데 그 이후 편집이 잘못되었는지 감사용이 병살 처리를 하는 장면이 2번이나 등장하는 등, 아웃 카운트 계산이 조금 이상해 보이는 것도 옥의 티입니다.
무엇보다도 제일 압권은 마지막 자막! 감사용 선수가 대망의 1승을 바로 다음 연도에 롯데를 상대로 기록하고 삼미가 전기 리그 (당시는 전-후기 리그로 나누어서 경기가 진행되었습니다) 2위를 차지했다는 자막은 흡사 감사용 선수가 다음해부터 엄청난 활약을 보여 삼미가 2위를 차지할 수 있다는 것 처럼 보이지만 그건 천만의 말씀이죠...^^

그래도 비교적 적은 예산에도 불구하고 잘 짜여진 각본을 토대로 괜찮게 만든 스포츠 영화임에는 불구합니다. 예전의 그 어떤 국산 영화보다 야구 장면을 잘 재현한 실제 시합 화면은 굉장히 인상적이었고, 재미도 있지만 감동도 있으며 무엇보다 감사용이 비록 패전 처리만 하며 일생 일대의 기회에서도 결국 패배하게 되지만 결코 좌절하지 않는 모습이 패배라는 것에 익숙한 현대인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내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고편에서도 나온 자막 "프로야구 20년 역사상 투수는 총 758명, 그 중 1승 이상 거둔 투수는 431명입니다"가 가장 가슴에 와 닿네요.
80년대 복고 바람과 히트한 소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의 영향으로 기획, 제작된 영화라는 생각은 들지만 국내 프로야구도 20년이 넘고 그동안 배출했던 슈퍼스타들이 즐비한 만큼 이제 이런 영화들이 슬슬 나와줄 때가 되었다고 봅니다. 물론 의외의 인물이 먼저 영화화가 되긴 했지만 앞으로도 이런 영화가 많이 제작되면 좋겠네요.

개인적으로, 야구 팬으로서, 무척 즐겁게 감상했습니다. 별점은 4점. 이 영화가 꼭 대박을 쳤으면 합니다.^^

2004/09/18

2004-11-19 06:19:20 PPOI! (っポイ!) - 보이 : 야마자키 타카코

현재 22권까지 사보고 있는 순정만화(!) 입니다. 원래 순정계열은 그리 취향은 아니지만 우연찮게 사본 1권이 괜찮아서 한권만 더.. 했던게 여기까지 왔네요.

내용은 키는 150밖에 안되지만 불의를 보면 못참는 여장이 잘 어울리는 미소년 주인공 아마노 타이라와 키도 훤칠하고 엄청 핸섬하며 못하는 것이 없는 만능 천재 소꼽친구 (옆집소년) 만리의 중 3 청춘 백서.. 쯤 되는 이야기입니다.

중 3이지만 수험생인 만큼 미래에 대한 고민, 이성에 대한 갈등, 그리고 여러 친구들과의 우정, 그리고 여러가지 학창생활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습니다. 개중 심각한 이야기도 있고 좀 가벼우면서도 밝은 이야기도 있는데 저는 성격상 밝은 이야기 쪽이 훨씬 마음에 들더군요.

하지만 이런 이야기 정도라면 사실 널리고 널린 지라 그닥 매력을 특별히 느낄만한 이유는 없지만..... 제가 이 만화를 보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저 사람! 동일중 농구부 주장이자 사장 아들, 하나시마다 에이타츠 때문입니다!

요사이 타카오카에 밀려 출연 비중이 굉장히 적어진 것 같지만 마코토 양을 향한 한결같은 마음이나 그 개그센스, 유별난 언어 구사력, 그리고 특출난 행동력까지 모두 갖춘 완벽한 캐릭터랄까요? 약간 "후르츠 바스켓"의 시구레 비스무레한 느낌도 있는 멋진 캐릭터 입니다.

여장이 잘 어울린다는 설정의 타이라나 실제로는 존재할 턱도 없는 슈퍼맨 만리에 비해 이 얼마나 다정다감하며 우리 옆에 있을 것 같은 귀여운 소년이란 말입니까?

제발 종결되기전에 마코토 양이 하나시마다의 뜨거운 마음 받아주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끝으로 명대사 하나 :
마코토 "하나시마다, 너는 친구와 같은 사람을 좋아하게 되면 어떻할꺼야?"
하나시마다 "난 너를 위해서라면 수백명의 친구라도 버리겠어!"

2004/09/17

배꼽티를 입은 문화 - 찰스 패너티 / 김대웅 : 별점 2.5점

배꼽티를 입은 문화 - 6점
찰스 패너티 지음, 김대웅 옮김/자작나무
"문화의 171가지 표정"이라는 부제가 붙은 일종의 잡학 서적입니다.

목차만 보아도 흥미로운 내용이 무척 많습니다. 대표적인 것을 꼽아보면
  • "신부를 약탈하던 풍습"
  • "약탈한 신부를 어디에 숨겼을까?"
  • "비오는 날에만 돈을 건다"
  • "낙타를 타고 온 산타크로스"
  • "향수의 원료는 무엇일까?"
  • "파리의 비키니 수영복 대회"
  • "턱시도의 어원은 늑대"
  • "부채는 계급의 상징"
  •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바셀린 사나이"
  • "한 애처가의 발명품"
등등 역사적인 풍습이나 미신에 관한 유래, 친숙한 발명품이나 상품의 기원과 제조법 등 역사와 문화, 과학, 풍속 등 전 분야에 걸쳐 광범위한 잡학과 상식을 다루고 있는 책입니다. 이전에 읽어보았던 리더스 다이제스트의 "잡학사전"이나 "책속의 책" 비스무레한 책이랄까요?

워낙 이런 류의 책을 좋아하는 탓에 나름대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171가지의 짤막한 이야기들로 책이 구성된 것도 마음에 들었고요. 무엇보다 이런 흥미진진한 내용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었죠.
특히 개인적으로 재미있게 읽었던 부분은 각종 물건의 발명사였습니다. 지퍼나 바셀린, 밴드에이드, 운동화, 아이보리 비누 등등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는 듯 쓰고 있지만 실제로 그 기원에 대해 잘 몰랐던 여러 상품들의 이면에 있는 발명사가 상당히 재미있더군요. 

다만 역사적인 배경이나 유래, 어원 같은 것은 저자의 광범위한 조사에 물론 기인한 것이겠지만 좀 단편적인 사실을 가지고 전체를 유추하는 식의 내용도 상당히 많아서 약간 의심이 가는 부분도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너무 짤막해서 부실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없잖아 있고요.

그래도 재미와 지적인 만족을 동시에 줄 수 있는 책이라 생각되네요. 별점은 2.5점입니다.

2004/09/14

명탐정 코난 - 은빛 날개의 마술사 : 별점 1.5점



모리탐정사무소에 연극배우 마키 쥬리(牧樹里)으로부터 의뢰가 들어온다. 그녀가 가지고 있는 스타사파이어 반지 '운명의 보석'을 훔쳐가겠다는 괴도 키드(キッド)의 범행 예고장이 도착했다는 것이다. 
공연에 초대된 코고로와 란(蘭), 코난(コナン), 그리고 소년탐정단 일행앞에 괴도 키드는 대담하게도 신이치(新一)로 변장하고 나타났다. 여러모로 복잡한 상황 하에 막이 오른 연극 <왕비 조세피나>. 코난은 신이치로 변장한 키드의 범행 증거를 잡기 위해 한시도 눈을 떼지 않는다. 마침내 정열적인 연극이 클라이맥스에 도달할 때 신이치가 사라지고, 급히 뒤를 쫓던 코난은 2명의 경비원 중 한 명이 키드라는 걸 알아채고 추격을 시작하지만 결국 놓친다.
하지만 무사히 스타사파이어를 지킨 코고로와 코난 일행은 쥬리로부터 감사 표시로 홋카이도(北海道) 하코다테(函館) 별장에 초대를 받는다. 코난 일행이 탄 대형 여객기가 예정대로 하코다테를 향해 이륙하자 곧 마키 쥬리가 살해당하는데....

이제 7번째 극장판인가요? 이 작품은 인기가 많은 서브 캐릭터 중 하나인 괴도 키드를 전면에 부각시킨 작품입니다.
하지만 내용은 허술하기 그지 없습니다. 극장판 시리즈는 점점 퀄리티와 내용의 수준이 떨어지는 느낌이 들 정도로 각본이 엉망이네요. 차라리 원작 만화에 있는 에피소드를 각색하는 편이 훨씬 나을 정도입니다.

일단 키드의 초반 범행 예고에서 시작해 키드와 코난의 추격전이 벌어지는 초반부, 비행기에서의 살인사건이 벌어지는 중반부, 비행기가 기장의 중독으로 조종 불능상태에 빠지는 후반부로 이루어져 있는데 세 부분이 각자 따로 노는듯한 느낌을 줍니다. 키드와 코난의 라이벌전을 그리려는 초반부 의도와는 달리 그나마 추리극이라 할 수 있는 중반부의 살인사건에서 괴도 키드는 방관자로만 등장할 뿐입니다.
추리도 문제가 많습니다. 먼저 초반부에서 키드의 교묘한 도둑질을 기대한다면 실망만 할 뿐이에요. 암호 트릭 자체는 괜찮았지만 그다지 효과적으로 쓰이지도 않았고요. 무엇보다도 중반부의 살인사건은 트릭을 위해 다른 요소들이 전부 어거지로 짜맞춰졌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일단 용의자들의 동기가 굉장히 약하고, 다른 방법도 많이 있었을텐데 용의자가 한정되는 비행기안에서 범행한 범인의 의도도 이해되지 않아요. 그나마의 트릭도 우연으로 이루어진 측면이 있어서 그다지 믿음이 가지 않고요. 설득력이 떨어진달까요?
게다가 6번째 극장판 "미궁에 십자로"에서 지나치게 남용한 3D를 역시 많이 사용해서 작화나 전체적인 연출의 느낌이 좋지 못합니다. 셀과 3D를 조화롭게 사용하기에는 아직 멀은 것 같고 작화도 기존 TV 시리즈 수준 정도로 극장판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네요.

물론 건질게 아주 없는건 아니라서 모리탐정의 개그는 웃기기는 합니다. 또 키드가 신이치로 변장하고 나온다는 설정이나 초반부의 추격전은 제법 재미있고 마지막의 비행기 비상 착륙 장면은 상당히 흥미진진하고요. 한마디로 딱 방학특선 아동용 모험물 수준의 작품입니다. 추리라는 요소가 곁가지일 뿐이죠. 그래서 별점은 1.5점. 나이가 먹을대로 먹은 제가 점수를 줄 여지는 거의 없네요. 명탐정 코난의 팬으로서 다음 작품은 이런 아동용 모험활극 대신 좀 더 제대로 된 각본으로 만들어지길 바랍니다.

2004/09/13

헬보이 - 기예르모 델 토로 : 별점 2.5점


원작이 만화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 내용이나 캐릭터에 대한 사전 정보는 전혀 없이 보게 된 영화.

1944년, 2차세계대전에서 수세에 몰린 나치는 러시아의 흑마술사 라스푸틴을 고용, 지옥의 악마를 불러와 전세를 역전시킬 음모를 꾸민다. 라스푸틴의 염력으로 혼돈의 지옥신 자하드가 깨어나고 지옥의 문이 열리려 할 때, 연합군은 미리 정보를 입수한 덕에 간신히 저지에 성공한다. 간발의 차이로 지옥에서 지구로 불려온 헬보이는 B.P.R.D.(Bureau of Paranormal Research & Defence)를 설립한 브룸교수에게 인도되어 텔레파시 예지력을 지닌 양서인간 아베 사피엔, 불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파이로-키네시스' 리즈와 함께 악에 맞서는 전사로 성장한다. 
60년후, 어둠 저편으로 추방되었던 라스푸틴은 추종세력에 의해 부활하고, 그가 창조한 '죽을수록 강해지는 지옥의 사냥개' 삼마엘과 고통에서 쾌락을 느끼는 부관 크뢰넨에 의해 온세계에 강력한 파괴와 종말의 기운이 퍼져나간다. 지옥의 문을 다시 열기위해선 헬보이의 파워가 꼭 필요한 라스푸틴은 리즈를 향한 헬보이의 사랑을 간파하고, 리즈의 목숨을 볼모로 헬보이에게 악마로서의 각성과 파괴신으로서의 재림을 강요하는데...

감독 기예르모 델 토로는 블레이드 2의 감독을 맡았던 감독이죠. 블레이드 2에서는 별 감흥 없었는데 이 작품에서는 화려한 액션씬은 물론 디테일까지 잘 잡아내고 있어서 놀라왔습니다. 괴물들의 디자인이나 움직임도 상당히 리얼하면서도 멋지고요.

무엇보다 이 영화는 헬보이라는 캐릭터로만 이루어진 캐릭터극이라 할 수 있는데 악마 헬보이가 아버지로 여기는 교수에게 인간적인 감화를 받아 스스로 뿔을 꺾고 인간을 위해 싸운다는 독특한 아이디어 부터 아주 마음에 드네요. 이러한 독특한 아이디어와 설정에 더해 론 펄만의 분장이 거의 필요없을 것 같은 완벽한 외모와 연기도 압권이고요. 정말 유머와 위트 넘치는 괴물을 제대로 표현해 내고 있거든요. 특히 헬보이가 마이어스와 리즈의 사이를 의심해서 뒤쫓는 장면은 그 중에서도 백미죠. 그동안 슈퍼 히어로물의 캐릭터들은 궁상에 떠는 스파이더맨이나 인간세계에 동화하지 못하는 X맨들, 어린시절의 트라우마에 괴로워하는 배트맨같이 다들 고민에 가득찬 어두운 인물들이 많았는데 안티 히어로의 계보를 이으면서도 유머러스한 헬보이는 나름의 존재감을 충실히 어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스토리 자체가 지상에 지옥을 불러온다는 굉장히 쌈마이적인 설정에다가 이런 류의 영화에 단골로 등장하는 나찌를 결합시켜 왠지 촌티가 나며, 라스푸틴이라는 실제 있었던 거물 악당(?) 까지 끌어들여 뭔가 있어보려고 애쓰지만 사실 좀 아니올시다였습니다.
그리고 전편을 통해 가장 강한 악당인 크뢰넨 대령이 막판에 헬보이에게 제대로 걸리자마자 바로 죽어버린다던가, 애써 살아나 지옥을 불러오려는 라스푸틴이 허무하게 쓰러지는 등 끝 부분에서 뭔가 강한 임팩트를 주지 못하는 점도 아쉬웠어요, 선-악의 대립을 강조하기 위해서 헬보이와 그가 속해있는 B.P.R.D을 보다 어필하는 것도 좋았을 것 같은데 그냥 결과만 놓고 본다면 저멀리 러시아의 오지에서 아무도 모르게 자기들끼리 티격태격하다가 끝나버리는 느낌입니다. 단지 초능력자 3명만 보유하고 있는 특수조직이라니... 최소한 자가용 제트기나 비밀요새 정도는 갖추고 있어야지!

그래도 상당히 유머스러우면서도 정통 안티-히어로의 면모를 잘 갖추고 있는 헬보이라는 캐릭터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습니다. 수작이라고는 절대 말할 수 없지만 만화 원작의 영화화로는 모범적인 정도의 완성도를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80일간의 세계일주 - 쥘 베른 : 별점 5점!

누구나 잘 알고 있지만 의외로 제대로 정독하지 못하고 어린 시절 "세계 명작 동화" 같은 시리즈의 다이제스트판으로 접했을 유명한 소설입니다.

이 책은 프랑스 갈리마르 출판사가 기획한 "스칼라 월드 북스"시리즈를 창작시대라는 출판사가 펴낸 책으로 고전 명작들을 초판본 무삭제 완역함은 물론, 각존 차별화된 삽화와 참고 자료의 화려한 도판으로 꾸며진 책입니다. 14,500원이라는 가격은 제법 부담되지만 워낙 책의 질이 뛰어난 편이라 별로 아깝지는 않네요.
<실제 당시의 사진과 그림들을 인용한 화려한 도판들>

내용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필리어스 포그라는 영국 신사가 클럽 친구들과의 20,000파운드가 걸린 내기를 통해 80일간 세계를 일주하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여기에 충직한 하인 빠스빠르두와 필리어스 포그를 은행 털이범으로 착각한 픽스 형사, 인도에서 구해준 아름다운 아우다 부인 같은 조연들이 가세하여 시종일관 흥미진진한 모험담을 보여줍니다.
<좌로부터 아우다 부인, 빠스빠르두, 필리어스 포그>

워낙 예전에 읽었었기 때문에 기억도 가물가물 했는데 다시 읽어보니 역시 구관이 명관! 빠스빠르두가 불길속에서 변장하고 아우다 부인을 구하는 장면이나 마지막에 시간에 쫓기게 되자 배를 뜯어서 땔감으로 쓰며 항해하는 장면, 동쪽으로 여행했기 때문에 하루를 벌게되는 반전은 알고 있어도 역시 명불허전!

또한 다시 읽어보니 영국인은 굉장히 합리적이고 계산적으로, 프랑스인은 과장되고 흥분을 잘하며 유머스럽게, 미국인들은 화끈하지만 무모한 인물들로 묘사한 점이나 여러 식민지에 대한 유럽인들의 시각이랄까.. 그런것들이 조금 느껴져서 이채로왔습니다.

또 이 부분처럼 기억나지 않았지만 굉장히 유머스러운 부분도 재미있었습니다. 미국 횡단 기차에서 선교활동을 하는 모르몬 교 목사의 집회에 일부 다처제에 혹해 참석한 빠스빠르두. 모르몬 교의 장황한 역사를 설파하는 선교에 지루해진 참석자들이 하나 둘 자리를 떠나며 결국 설교가 끝날때 혼자 남게 되는데 목사가 마지막으로 노기띈 목소리로 묻습니다.

"그리고 당신 형제여! 당신도 우리 깃발 아래 당신의 천막을 세워 보시려오?"
"싫은데요"^^;

좀 아동용 취향이긴 하지만 제가 읽어도 그렇게 유치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로 잘 구성된 책입니다. 도판과 삽화가 굉장히 뛰어난 편이라 더욱 추천합니다. 그나저나 왠지 책 선전이 되어 버렸네요.^^ 그래도 이런 책은 사줘야 합니다.

2004/09/10

프로야구 병역 비리 파문에 대한 단상

뉴스 :: 네이버

저는 원년부터 프로야구 베어스의 팬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더 관심있게 관련 뉴스를 찾아보는 편입니다. 그런데 요새 정말 난리군요.

물론 돈 몇천만원에 군대를 가지 않을 수 있다면 그 유혹이 참기 어려웠으리라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100명이 넘게 적발된 것이겠죠.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당연히 군대를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도대체 말이죠... 프로야구 선수가 무슨 벼슬도 아니고, 젊은 나이에 2년 갔다 오면 애로사항이 꽃핀다던데 그건 일반인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어린나이부터 야구를 해 왔다는 것이 어떤 강제적인 것도 아니었고 나름의 부와 명예를 쫓아 프로 무대까지 진출했을 터일텐데, 의무를 다 하지 않고 권리와 자신의 이득만 챙기려는 얄팍한 수단에 분개하지 않을 수 없네요. 그리고 군대가면 운동선수 생명이 끝난다던데, 오히려 군대가서 술도 안먹고 규칙적인 생활하면 건강과 컨디션이 더 좋아질 것 같은데 그게 어디 검증이나 된 사실인가요? 설령 검증되었다손 치더라도 이건 범죄요 비리입니다. 그들의 직업이 어찌되었건 일반인보다 특혜를 받아야 할 당위성 자체가 없기 때문이죠.

무엇보다도 두산의 L선수.... 브로커를 소개시켜주고 천만원의 커미션을 받아 챙겨? 에라 이 정신나간 나쁜놈아. 니가 어찌 감히 그럴수가 있냐? 이런 쓰레기같은 놈....

좌우지당간 이왕지사 밝혀진거, 이번 기회에 얄팍하고 버르장머리 없는 생각들을 뜯어 고칠 수 있도록 엄중 수사하여 강력한 처벌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비단 프로야구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연예인들과 기타 권력자들 집안 아들들도 빠져나갈 수 없는 철통 수사를 벌여서 다 구속조사하여 현역으로 입영시켜야죠.

이딴 짓을 한 놈들은 모두 특전사에 보낸다던가, 아니면 제대할때까지 진급을 시키지 않는 다던가, 아니면 휴가를 보내지 않는다던가 하는 방안도 아울러 실행하여 유사 사건을 미연에 방지하는 조치도 필수적이라 보여집니다.

어찌됐건 프로야구가 붕괴위기에 처한것은 분명합니다. 앞으로 군대를 가야만 하는 상황이 모두에게 공평해 진다면 모를까 각 구단마다 처한 사정과 갭이 엄청나게 커서 당장 내년 시즌부터 어떻게 운영될지 모르는 분위기입니다. L구단같은 경우에는 이미 존폐의 위기에 처했다고 보이고요.

아! 이제 고교야구의 전성시대가 다시 열리는가!

2004/09/09

시행착오 - 앤소니 버클리 콕스 : 별점 4점

시행착오 - 6점 앤소니 버클리 콕스 지음, 황종호 옮김/동서문화동판주식회사

"런던 리뷰"지에 정기적인 평론을 기고하는 평론가 토드헌터씨는 동맥류로 시한부인생 판정을 받게된다. 그는 남은 시간을 가장 값지게 사는 방법을 고심하다가 사회에 해가 되는, 하지만 처벌 받지 않는 존재들을 처단하는 방법을 선택한다.
그가 선택한 인물은 대중 작가 팔로웨이를 유혹하여 가정과 가계를 파탄낸 요부 진 노우드. 하지만 경찰은 팔로웨이의 사위 빈센트 파머를 유력한 용의자로 체포하여 사형선고까지 내리게 되며, 토드헌터 씨는 그의 무죄와 자신의 유죄를 밝히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자기 자신을 고발하여 재판정에 서게 된다...

세계 3대 도서 추리소설 중 하나인 "살의"의 작가 앤서니 버클리 콕스의 작품. "살의"는 아직 읽어보지 못했지만 작가의 명성은 익히 들어온 탓에 주변 분의 추천으로 읽게 되었습니다.
일종의 도서 추리처럼 범인역의 토드헌터씨를 미리 밝혀 놓고 있지만 일반적인 상식과는 반대로 범인이 스스로의 범행을 증명하기 위해 동분서주 하는 과정을 흥미진진하면서도 유머스럽게 그리고 있는 작품입니다.

좋았던 점은 스스로의 범행을 증명하기 위해 단서들을 나열하고 복선들을 잘 짜깁기 하는 등의 추리적인 요소와 법정에서의 치열한 공방같은 법정 스릴러의 요소가 잘 갖추어진 점, 내용상 탐정역의 비중이 작을 수 밖에는 없지만 중요한 조력자인 범죄 연구가 치터윅씨라던가 법정 장면에서 눈부신 활약을 보이는 왕실 변호사 어니스트 프리티보이(!) 경 같은 캐릭터가 잘 살아 있고 각각의 영역 (추리-법정 스릴러)을 확실히 구축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사소해 보이는 여러 사건들이나 단서를 짜맞추고 앞부분의 불필요해 보였던 여러 묘사들이 의미를 가지게 되는 부분들이 많다는 점과 마지막의 반전이 아주 괜찮다는 점입니다. 반전은 어느 정도는 예상 가능하나 저의 생각을 뛰어넘는 부분이 있으며, 그 모든 내용이 앞에 등장한 단서와 복선에 기한다는 정통 추리적인 요소를 잘 따르고 있기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네요.

다만 목차에서 각 단락마다 제1부 - 악한 소설풍 (피카레스크) / 제2부 - 신파연극풍 (트랜스폰타인) / 제3부 - 미스터리소설풍 (디텍티브) / 제4부 - 신문소설풍 (저널리스틱) / 제5부 - 괴기소설풍 (고딕) 이라는 재미있는 부제로 구분하여 놓았지만 번역의 미스인지 각 부제별 소설의 느낌은 별로 살아 있지 않다는 점이 조금 아쉬웠습니다. 원본은 느낌이 다를까요?
그리고 "시한부인생"이라는 토드헌터씨의 나름대로의 긴장감있는 핸디캡이 거의 노출되지 않고 하나의 설정으로만 쓰인 점은 좀 유감입니다. 유머를 살리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일 수는 있겠지만 덕분에 최후의 순간까지도 토드헌터씨의 병과 죽음이 별로 와 닿지 않더군요.

그래도 법정물과 추리물의 줄타기를 성공적으로 하고 있으면서도 독특한 유머가 잘 살아있는 재미있는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상당한 분량에다가 등장인물의 수도 많은 편이지만 집중력을 잃지 않고 끝까지 읽게 하는 힘은 충분해요. 때문에 별점은 4점입니다. 이 작품만으로 평가하기는 이르겠지만 상당히 즐길만한 작품을 쓰는 작가라는 생각이 드는데 대표작이라는 "살의"도 한번 읽어봐야 겠네요.

2004/09/07

빅포 - 애거서 크리스티 / 유명우 : 별점 1.5점

빅포 - 4점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유명우 옮김/해문출판사

이름 그대로 4명의 인물 - 조직의 보스이자 브레인이라 할 수 있는 존재는 중국인 리창옌, 자금을 대는 거부 미국인 에이브 라일랜드, 천재 여류 과학자이면서도 사악한 무기를 개발하려고 하는 프랑스인 올리비에 부인, 조직의 킬러인 전직 연극배우 - 을 중심으로 구성된 빅 포 (Big Four)라는 악의 세력에 맞서 싸우는 포와로의 활약을 그린 단편집.
이들은 자신들의 세계정복(?) 계획에 포와로가 가장 큰 걸림돌이 되리라 예상하여 포와로를 제거하려 하고 포와로는 헤이스팅스와 함께 힘을 모아 대결한다는 조금은 단순한 설정인데 각 단편들이 하나의 큰 이야기 흐름을 따라가고 있는 연작 형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첫번째 사건은 행방불명 되었었던 영국 정보부원 메이얼링의 살해사건입니다. 메이얼링이 포와로에게 빅포의 위험을 알리다가 포와로 방 침대에서 살해당한 시체로 발견되며 살해당한 증거는 시계의 문자판으로 만든 "4"라는 숫자 이외에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는 것. 그런데 정작 트릭은 범인이 "변장의 명수"였다.. 라는, 일고의 가치도 없는 허무한 것이라 뭐라 이야기할게 없네요.

두번째 사건은 훼일리라는 빅포의 존재를 알고있는 노인이 살해당한 사건으로 교묘하게 잘 짜여진 트릭이 등장합니다. 범인이 진작부터 살해를 목적으로 하인을 포섭하는 부분은 좀 억지스럽지만 영국의 여름 날씨와 푸줏간 주인을 연결하는 부분이 아주 괜찮았어요.

세번째 사건은 젊은 유망한 과학자 할리데이의 실종사건입니다. 빅포의 구성원 중 한명인 과학자 올리비에 부인의 정체가 폭로되는 부분으로 빅포의 하수인으로 포와로의 옛사랑 로사코프 백작부인이 등장하는 등 연작의 전체 구성에 있어서는 중요한 작품이나 추리적으로는 빵점에 가까웠습니다. 스파이 소설이나 모험 소설로 보는게 더 타당한 작품이었어요.

네번째 사건에서는 빅포의 나머지 멤버가 미국인 거부 에이브 라일랜드라는 것이 밝혀집니다. 헤이스팅스가 좌충우돌하는 내용이 거의 전부로 세번째 사건처럼 전체에 있어서는 중요한 내용이긴 하지만 추리적인 요소는 거의 없다는 것이 동일합니다. 한마디로 별로라는 이야기죠...

다섯번째 사건은 부유한 여행가 페인터의 살인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빅포가 페인터의 회고록 출판을 막기 위해 살인을 저지른 것으로 페인터가 죽기 전 남긴 "노란 자스민"이라는 글귀를 토대로 범인을 알아낸다는, 어떻게보면 전형적인 포와로식 단편입니다. 이 책의 다른 사건들에 비해 추리적 가치가 비교적 높은 내용이라 그나마 마음에 든 편입니다.

여섯번째 사건은 러시아 체스 고수와 미국인 체스 고수의 시합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입니다. 이 책의 가장 뛰어난 단편으로 크리스티 여사의 단편에서 거의 보기 드문 과학적, 기계적 트릭이 등장하고 있으며 살인의 원인과 동기도 매끄럽게 처리하고 있는 좋은 작품이었어요.

일곱번째 사건은 헤이스팅스의 부인을 납치, 헤이스팅스로 하여금 포와로를 배신하게 하려 하는 빅포의 음모가 그려집니다. 그냥 뻔한 모험소설로 포와로의 "액션"이 등장하긴 하지만 건질건 거의 없는 최악의 작품이었습니다. 크리스티 여사 작품 중에서도 최악으로는 1, 2위를 다투지 않을까 생각될 정도였어요.

여덟번째 사건에서는 빅포의 킬러인 연극배우의 정체를 밝히려는 포와로의 치밀한 노력이 빛나는 편입니다. 외모와 행동에서 유출한 데이터만 가지고 끈질기게 추적하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모험소설적인 내용과 추리적인 부분과의 모범적인 공존 형태를 보여주고는 있다고 할 수 있겠네요. 하지만 역시 마지막 부분이 많이 허무한 등 아쉬운 점이 더 많았습니다.

마지막 사건은 포와로의 죽음과 포와로의 쌍동이 형 아킬의 등장, 빅포의 회의장소에서 벌어지는 마지막 사투를 담고 있습니다. 쌍동이 형에 관한 반전은 괜찮았지만 빅포의 너무나 허무한 최후나 포와로와 헤이스팅스의 탈출이 "운이 좋아서" (물론 포와로의 준비는 있었지만) 가능했다는 등, 내용상의 헛점이 많아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네요.

결론내리자면 홈즈 시리즈의 분위기가 많이 느껴지는 모험물 스타일의 작품이었습니다. 거대한 악의 세력과 맞서 싸우는 포와로의 활약을 그리고 싶었던 크리스티 여사의 의도는 확실히 전해지고요. 그러나.... 포와로라는 캐릭터에는 별로 어울리지 않는 설정이라 생각되며 빅포라는 악의 조직이 너무 비현실적으로 그려져서 설득력도 떨어지고 왠지 아동물같은 느낌마저 들었습니다.(거의 "검은별" 수준입니다....)
괜찮은 아이디어나 트릭이 간간히 등장하고 여섯번째 사건 같은 경우는 상당한 수준으로 충분한 재미를 전해주긴 합니다만 괜찮은 아이디어들을 빅포라는 조직과 무리하게 연관 시키면서 무너져 버리는 부분이 많아 안타깝네요.
"부부탐정" 처럼 악당 조직은 중간 중간 별개의 이야기로 등장하고 아예 다른 내용으로 꾸며져 한권의 단편집으로 처리하였으면 훨씬 좋지 않았을까 싶네요. 하여간.... 제가 읽은 크리스티 여사의 작품 중 최악이었습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2004/09/05

시실리 2Km - 신정원 : 별점 2점


조직의 다이아몬드를 들고 튄 석태(권오중 分)는 우연한 교통사고로 시실리라는 마을에 잠시 머물게 된다. 시실리에서 하룻밤을 묵게 된다. 그런데 다이아몬드를 확인하려 들어간 화장실에서 어이없는 사고로 쓰러진 석태를 본 주민들은 석태의 코에서 발견한 다이아몬드 하나를 나눠 가지기 위해 석태를 안쓰는 방 벽에 묻어버린다.
한편, 조직의 명으로 석태를 쫒던 양이 (임창정 分)는 휴대폰 위치추적으로 겨우겨우 시실리까지 당도한다. 자꾸만 부인하는 마을 주민들과 음산한 동네 분위기, 그리고 귀신 목격 사건으로 질겁하여 그곳을 떠날까 했던 양이는 현장에서 석태의 키티 양말 한 짝을 발견하고 석태가 이곳에 있음을 확신하게 된다.
결국 석태의 시체를 찾아내고 다이아몬드를 전부 회수하는데 성공하나 다이아몬드를 보고 눈이 뒤집힌 농기구로 무장한 마을 주민에게 기습당해 궁지에 몰린 양이는 도망치다가 귀신 송이(임은경)과 친해지고 송이의 죽음과 마을 주민들의 과거를 알게 되는데...

이런 저런 일 와중에 시간이 남아서 아무 생각없이 보게 된 영화입니다. 마침 흥행도 괜찮게 하고 있고 임창정이라는 배우는 꽤 좋아하는 편이라서 선뜻 보게 되었습니다.

의외로 영화는 초반부에서 중반부까지는 기대를 훨씬 뛰어넘는 재미를 선사합니다. 특히 초반부의 석태가 벽에 묻히는 장면이나 양이 일당이 시실리로 쳐들어와서 벌이는 행각들, 석태가 묻힌 벽에 대못을 박으면서 느껴지는 긴장감과 웃음의 조화는 대단하고 임창정의 칼잡이 양이 연기도 시종일관 웃음을 자아냅니다. 귀신 송이의 돌연한 출연과 그 공포감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면서도 그 공포스러운 상황을 코미디로 반전시키는 부분 역시 뛰어납니다.

하지만 양이 일당이 다이아몬드를 찾아내고 마을 주민들이 습격하는 중반이후부터 영화가 갑자기 삼천포로 빠지기 시작합니다. 비록 농기구로 무장했고 기습을 했다고는 하지만 조폭들이 일방적으로 당한다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고요. 무엇보다도 송이의 과거를 양이가 알게되면서 신파조로 갑자기 돌변하는 전개가 심하게 당황스럽습니다.(거기에 그 음악이라니!)
클라이막스라 할 수 있는 귀신 송이의 빙의 작전과 마을 주민과의 한판 승부를 가장 싼티나게 찍은 연출이나 다이아몬드를 삼킨 양이의 배를 가르려던 마을 주민들이 양이의 말 몇마디에 서울 금고에 있는 다이아몬드를 찾아 나서는 부분에 이르면 역대급 쓰레기가 아닌가 싶을 정도에요.

평화로운 마을의 주민들이 사실은 엄청나게 사악한 존재들이었다... 라는 테마는 좋았고 배우들의 연기도 기대 이상이었으며 긴장과 공포, 웃음을 함께 가져다 주는 이야기 진행도 비교적 깔끔한 편이었지만 제작사의 의도였을까요? 중반 이후의 예상가능하면서도 당황스러울 정도의 뻔하고 유치하면서도 싼티나는 전개로 영화의 재미와 밀도가 뚝 떨어져 버려 아쉽습니다. 조금 더 잔인하게, 그렇지만 확실하게 이야기를 진행시켰더라면 한국 영화사에 길이남을 보기드문 컬트 무비의 반열에 올랐으리라 생각되지만 결과적으로 "만들다 만 영화"일 뿐이네요. 때문에 별점은 2점입니다.

2004/09/04

사라진 이틀 (半落ち) - 요코야마 히데오 / 서혜영 : 별점 2.5점

사라진 이틀 - 6점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들녘(코기토)

초등학생 소녀 연쇄 폭행마를 수사하던 시키 경정은 경찰청 간부인 가지 경감의 아내 살인사건의 조사를 명령받고 심문관으로 참석하게 된다. 가지 경감은 13살의 아들이 백혈병으로 사망하고 아내가 알츠하이머 병을 보이자 아내를 목을 졸라 살해한 것. 시키 경정은 가지 경감의 범행을 심문하다가 살해 후 자수할때까지 이틀간의 공백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가 이틀 사이 도쿄의 환락가 가부키쵸를 방문했다는 것을 알게된다. 이틀의 공백을 시키 경정은 집요하게 조사하려 하지만 경찰청 내부에서 스캔들을 피하기 위해 살해 후 방황한 것으로 사실을 왜곡하게 되며 시키 경정은 사건에서 강제적으로 물러나게 된다.
이후 사건은 검찰로 송치되며 검찰청의 사세 검사 역시 경찰 내부의 음모를 파악한 뒤, 이틀의 공백을 밝혀내려 한다. 그러나 경찰과 검찰 고위층의 거래로 이같은 시도 또한 무산된다.
한편 동양신문사의 나카오 기자는 가지 경감의 도쿄 행이 가부키쵸였다는 사실을 특종으로 터트리지만 경찰과 검찰의 거래로 오히려 궁지에 몰리게 되는데... 과연 이틀의 공백기간 동안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미스터리 부분 1위!", "영화화 되어 격찬을 받은 바로 그 작품!" 등등의 카피 문구에 혹해서 사게 된 요코야마 히데오의 장편 소설.

이 작품은 크게 아래의 5단계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 1단계 - 시키 경정이 주인공으로 가지 경감을 심문하는 내용
  • 2단계 - 경찰에서 범인을 인계받은 사세 검사의 조사
  • 3단계 - 동양신문 나카오 기자의 사건 조사 및 특종 발표
  • 4단계 - 변호사 우에무라와 판사 후지바야시의 조사와 인터뷰, 그리고 재판 과정
  • 5단계 - 교도소에 입소한 가지를 관찰하는 교도관 고가와 마침내 밝혀지는 진실

이 각 단계별 이야기는 각각 시작과 끝맺음이 확실하게 구성되고 있어서 연작 단편을 읽는 기분마저 들더군요.
각각의 단계마다 가지 경감을 조사하는 인물들이 주인공으로 설정되어 각각의 인간관계와 과거, 생각들을 가감없이 투영하는 구조로 인물이 상당히 많이 등장하는 편이지만 단계별로 포커스가 확실한 편이라 큰 혼란 없이 쉽게쉽게 읽을 수 있는 점은 큰 장점이며, 주인공급 캐릭터들의 성격도 뚜렷하여 이야기별로 중심을 확실히 잡아주고 있는 것도 좋았습니다.

그러나 초반에는 상당히 궁금하고 흥미진진했던 가지 경감의 수수께끼의 이틀과 "인생 50년"이라는 유언 같은 글귀의 비밀이 각 단계별로 서서히 밝혀지는 것이 아니라 중반 이후부터는 어느 정도의 내용만 밝혀진 채로 단계별로 주역 인물들만 바뀌며 이야기가 반복됨으로서 초반의 흥미가 많이 떨어지는 점은 아쉬웠습니다. 이야기의 중심이 점점 가지 경감이 아닌 다른 주인공들로 옮겨가면서 뭔가 밀도가 점점 약해지는 것도 불만스러웠고요. 시키 경정-사세 검사-나카오 기자의 3인방이 불의를 참지 못하고 정의감에 불타는, 그렇지만 상부의 압력에는 결국 굴복한다는 유사한 성격의 인물들이라거나 치사한 상사들의 묘사가 너무 평면적이고 천편일률적이라는 것도 감점 요소겠죠.
무엇보다도 이 책은 추리소설은 절대로(!) 아니라는 것이 가장 안타까운 점이었습니다. 사건과 수사라는 기본적인 형식은 어느정도 따라가고 있다고 보여지지만 애시당초 이 공백의 이틀에 관한 내용은 가지 경감의 자백 이외에는 수사의 단서가 전혀 없는 것으로 묘사됨으로써 그 어떤 추리적인 가능성이나 상상의 여지를 불허하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그냥 추리작가가 쓴 정통 드라마...랄까요. 읽는 재미는 상당한 편이고 막판의 밝혀지는 비밀 역시 꽤 괜찮은 설정이라 생각되지만 정통 추리를 기대한 저에게는 기대 이하일 수 밖에 없는 작품이었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예전에 추리소설인줄 알고 구입했던 히가시노 게이고의 "비밀"이 연상되네요. 대체 어떻게 미스터리 부문 1위를 했다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2004/09/03

고스트웨이 - 토니 힐러먼 / 설순봉 : 별점 3점

고스트웨이 - 6점 토니 힐러먼 지음, 설순봉 옮김/민음사

나바호 족의 마을에 정체불명의 나바호가 나타나 그를 뒤쫓아온 또 다른 사나이와 총격전을 벌이는 사건이 일어난다.
정체불명의 나바호는 LA의 자동차 절도 조직에서 일한 앨버트 고먼으로 밝혀지나 그는 그의 숙부뻘 친척 호스틴 비게이의 호건(오두막) 근처에서 나바호 방식으로 매장된 시체로 발견되며, 호스틴 비게이는 실종된다.
나바호 부족 경찰 순경인 짐 치는 이 사건과 더불어 호스틴 비게이의 손녀인 마가렛 빌리 소시가 할아버지의 편지를 받고 기숙사에서 빠져나온 사건을 병행 수사하는 와중에 자동차 절도 조직의 보스 멕네어가 고용한 살인 청부업자에게 폭행당하는 등 갖은 고초를 겪는다.
결국 짐은 이 사건이 맥네어의 범행을 증언하기 위해 FBI의 증인보호 프로그램으로 숨어 있는, 살해당한 앨버트의 동생 르로이 고먼이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데... 

인디언 탐정이라는 독특한 캐릭터로 추리소설 시리즈를 발표해 온 토니 힐러먼의 작품. 전에 "시간의 도둑"과 "카치나의 춤"을 이미 재미있게 읽어서 나름대로 기대하고 구입했는데 발표 순서는 더 앞쪽에 있는 작품이더군요. 그래서인지 두 작품의 주인공 중 한명인 조 리프혼 경위는 등장하지 않고 젊은 짐 치 순경만 탐정역으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차분하고 냉정한 리프혼 경위보다는 젊고 행동적이면서도 명랑한 구석이 있는 짐 치를 보다 좋아했던 터라 읽은 순서에 상관없이 재미있게 즐길 수 있었습니다. 이 시리즈의 가장 큰 특징인 나바호, 크게는 인디언 사회에 대한 깊은 지식과 애정으로 이루어진 묘사도 변함없이 발휘되고 있다는 것도 좋았고요. 다른 시리즈에서는 여유가 조금 더 생겼는지 인디언 사회에 대해 약간 유머스럽게 그리는 부분도 있는데 이 작품은 초기작답게 일반적인 지식 나열에 그치는 부분이 많아서 약간 불만스럽긴 했습니다만...
그래도 노래의식이나 매장방식, 기타 여러가지 자질구레한 생활방식에 대한 생생한 묘사는 물론 호스틴 비게이의 호건에서 벌어진 앨버트 고먼의 나바호 매장 방식이 이상하다는 것을 짐 치가 느끼고 조사를 하게 된다는 부분처럼 독특한 이색 소재를 추리적인 트릭과 잘 결합하고 있다는 것은 정말 높이 평가하고 싶네요. 이색 설정은 이색 설정에만 그칠 뿐인 작품이 많은데 이 작품은 최소한 설정과 이야기를 한데 어우른다는 점에서 한 수 위라고 할 수 있겠죠. 나바호 부족 경찰 순경인 짐 치라는 캐릭터 역시 독특한 설정에 그치지 않고 생생하게 살아있고요. 이런 점에서 짐 치라는 캐릭터에 대한, 나아가서는 인디언에 대한 작가의 깊은 애정이 느껴졌습니다.

또 추리적으로도 나무랄데 없는 구성을 보여준다는 것도 아주 좋았어요. 자신만의 느리면서도 꾸준한 방식으로 집요하게 추적하여 수사하는 짐 치의 수사방법, 그리고 모아진 단서로 결론을 무리없이 이끌어내는 마무리가 아주 인상적이었거든요.

정교하게 맞물리는 구조, 특별하거나 기발한 트릭도 없고 싸이코 범죄자가 등장하지도 않고 엽기적인 연쇄살인도 벌어지지 않지만 오히려 인간적인 넉넉함이 살아있다는 점에서 미국 추리 문학계의 저력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잘 팔려서 후속작들도 계속 출간되면 좋겠네요.

2004/09/01

소름 - 로스 맥도널드 / 강영길 : 별점 4.5점


소름 - 10점 로스 맥도날드 지음, 강영길 옮김/동서문화동판주식회사

사립탐정 루 아처는 갓 결혼한 아내가 실종되었다는 청년 알렉스 킨케이드의 의뢰를 받고 행방불명된 신부 도로시의 행적을 수사하기 시작한다. 이윽고 도로시가 피투성이에 정신착란 증세를 보이며 발견된다. 원인은 친구이자 지도교수였던 헬렌 헤거티의 시체를 발견한 것. 보안관 사무실에서는 도로시를 유력한 용의자로 의심하게 된다.
아처는 도로시의 실종은 호텔에 방문한 의문의 사나이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의문의 사나이 책 베그리의 정체를 추적, 그는 10여년전 어린 소녀였던 도로시 매기의 법정 증언때문에 아내를 죽였다는 혐의로 10여년 복역한 도로시의 아버지 토머스 매기라는 사실을 밝혀낸다.

이 과거의 죽음과 현재의 살인, 그리고 또 다른 제 3의 살인이 서로 관련되어 있으리라 짐작한 아처는 헬렌 해거티와 도로시(달리)가 다녔던 대학의 지도 부장 로이 브래드쇼와 그 어머니 미세스 브래드쇼, 헬렌의 친구 설리 버크와 그 남동생 등 수많은 인물들의 실타래를 풀며 사고로만 알려졌던 과거의 루크 딜로니 사건이 사실은 살인사건이었다는 점과 이 세개의 살인사건의 연관성을 파악하게 된다....

"움직이는 표적"과 "위철리 여자", 단편 "미드나잇 블루" 이후 읽은 루 아처 시리즈입니다. 워낙 평이 좋아서 꼭 읽고 싶었는데 얼마전 알라딘 할인행사로 구입하여 읽게 되었네요.

"주의! 아래 리뷰에는 진범을 포함한 스포일러가 다수 들어 있습니다!"

이야기 전개는 다른 하드보일드와 거의 다름 없는 형태로 진행됩니다. 우연히 사소한 사건을 맡게 된 사립탐정이 그 사소한 사건에서 파생되는 살인사건을 접하게 되고 그 살인사건이 과거의 다른 사건과 연관됨을 눈치챔으로써 결국 진정한 진상을 깨닫게 된다는 전개인데 다른 하드보일드와 거의 대동소이하죠. (몰타의 매..는 제외할 만 하겠네요) 작품답게 수많은 인물들이 스쳐지나가며 각각의 인물들이 사건들과 밀접한 연관이 있고 연결고리 역할을 하는지라 한번에 읽지 않으면 조금 힘들다는 것도 유사하고요.

그러나 루 아처라는 건조하고 관찰력 뛰어난 캐릭터는 그만의 우울함과 고독함을 유별나게 강조한 덕에, 터프함과 마쵸스러움을 과시하면서도 일종의 기사도 정신을 보여주며 시니컬한 유머를 내뱉는 여타 하드보일드 탐정 캐릭터와 확실한 차이가 느껴집니다. 다른 여러 캐릭터들도 굉장히 독특하고 성격들이 강해서 각자의 에너지가 느껴지는 것이 좋았고요. 또한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최소한 알렉스 부부의 행복은 지켜진다는 점도 차이점이라 할 수 있겠네요. 전체적으로 심리학과 시적 정서가 감싸고 있는 듯한 독특한 분위기는 이 작품만의 매력이고요.

이러한 다른 장점들도 많지만 무엇보다도 이 작품의 핵심이자 중요한 요소인 사건의 진상, 마지막 3페이지에 걸쳐 나오는 진상이야말로 모든 인물관계와 사건을 깔끔하게 정리해 버릴 뿐더러 다른 하드보일드와 비교하여 이 작품을 비교 우위에 서게 하는 대단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로이 브래드쇼와 미세스 브래드쇼라는 모자간으로 알았던 둘만의 비밀스러운 결혼 생활과 아내이자 어머니 역이였던 미세스 브래드쇼 (티시)의 상상 이상의 질투와 증오..... 아무도 예상 못했지만 오히려 20여년 동안 관계를 숨겨왔다는 그 비현실성과 부조리 때문에 광적인 한 인간의 잔인성과 비 인간성을 증폭시키는 효과를 가져다 주는 것 같습니다. 정말 생각치 못했던 이 마지막 3페이지 만으로도 이 작품은 추리 역사에 기억될 것입니다.

딱 하나 아쉬운 점은 이 진상 때문에 알렉스가 의뢰를 중도에 잠깐 포기하였을 때 사건을 계속 뒤쫓고 있던 아처가 미세스 브래드쇼에게 대신 사건을 맡아달라고 의뢰하는 장면이 어색해진다는 것입니다. 결말과 연관시켜 보면 아처가 사실 살해당하는 것이 당연한 상황으로 보여지거든요. 범인에게 "내가 당신 사건을 당신 돈으로 조사하고 싶다"고 말하는 탐정이라니.... 물론 이 전개로 인해 이 부인과 지속적인 연결고리를 가져가게 되는 부분은 있지만 그래봤자 전화 몇 통화 뿐이라 설득력이 약해요.

그러나 단점은 사소할 뿐, 하드보일드 3대 거장 중 한명의 대표작다운 품격과 재미를 갖춘 걸작임에는 분명합니다. 챈들러와 해미트 보다 국내에서의 대중적인 지명도는 어떻게 보면 약하지만 (아마 영화화가 적게 되었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싶네요) 결코 그들에 뒤지지 않는 작품이에요. 동서 추리문고에서 건진 또다른 수확이라 생각되며, 이 대단한 작품을 실버 대거에 머물게 한 해당 년도의 골드 대거 수상작도 꼭 읽어 보고 싶습니다. 별점은 4.5점입니다.

PS : 솔직히 이 마지막 반전은 어떻게 보면 소설이라는 작품에서 느낄 수 있는 트릭이 아닌가 싶습니다. 미세스 브래드쇼라는 노부인의 외모와 행동을 그 나이와 현실보다도 과장되게 묘사하고 브래드쇼 교수를 보기보다 "젊게" 묘사하며 교수의 생활을 극단적으로 젊음이 가득한 곳으로 설정하여 상대적으로 그 차이를 보다 심하게 독자가 느낄 수 있게 한 고도의 트릭이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