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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31

피너츠 완전판 13 - 찰스 M 슐츠 / 신소희 : 별점 2.5점

피너츠 완전판 13 : 1975~1976 - 6점
찰스 M. 슐츠 지음, 신소희 옮김/북스토리

피너츠 완전판 12 : 1973~1974 - 찰스 M 슐츠 / 신소희 : 별점 2.5점

신간이 나오면 습관처럼 구입하게 된 피너츠 완전판의 13번째 이야기입니다. 언제나의 설정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죠.

신 캐릭터도 여럿 등장합니다. 우선 라이너스가 스누피를 데리고 트러플을 찾아나서는 이야기에서 '트러플스'라는 소녀가 등장하죠. 라이너스와 스누피가 푹 빠졌을 정도로 강한 임팩트를 남겼는데 저는 처음 접했습니다. 임팩트에 비하면 몇 편 등장하지 않고 이사가는 식으로 끝난건 좀 이해가 되지 않는데, 뭔가 어른의 사정이 있던 걸까요? 하여튼 이 트러플스 에피소드들에서는 라이너스가 미식가스러운 대사 - 에그 베네딕트에 트러플 한 조각을 올리면 검은 올리브를 올리는 것 보다 훨씬 고급스러워진대 - 를 읆는 장면 외에는 딱히 건질건 없네요.
그 다음에 등장하는 스누피의 형 스파이크는 나름 재미있는 활약을 해서 조금 더 낫긴 합니다. 제 기억에도 남아 있는걸 보면 다행히도 가끔씩은 등장할 정도의 인기는 얻은 모양입니다. 여동생과 조카까지 등장하는걸 보니 확실히 울궈먹을만한 소재라고 느낀거겠죠?

스누피가 발을 다쳐 깁스를 한 설정은 처음 등장하는데 관련 에피소드들은 꽤 재미있습니다. 마시의 야구 모자에 대한 집착도 이번에 처음 등장하고요. 캠프에서 마시를 좋아하는 남자 아이 플로이드의 등장 에피소드도 강렬했어요. 결국 '모든 일에는 때가 있는 법이다'는 결론인데, 확실히 마시는 어른스럽습니다. 폭력적이기도 하고요.
라이너스도 어른스러운 점에서는 뒤지지 않죠. 여름이 거의 지나가버린걸 아쉬워하는 찰리 브라운에게 "여름은 항상 날아서 지나가게 마련이야. 겨울은 항상 천천히 걸어가고!"라는 멋진 말을 남기니까요. 이 말은 항상 겨울이 왜 이리 기냐고 불평하는 우리 딸에게 전해줘야겠어요. 
그 밖에 죠스의 개봉, 엘튼 존의 안경, 킹콩의 리메이크 등 시대 상황에 어울리는 소재들도 언제나처럼 적당히 등장합니다.

그런데 학교 건물에 말을 거는 샐리라던가, 무언가를 너무 쉽게 믿어버리는 패티는 지금 보면 확실히 정상은 아니에요. 병원에 가서 상담을 받아야 하지 않나 싶을 정도죠. 특히 패티는 스누피에게 속아 애견 훈련소까지 들어갈 정도니 이건 아무리 개그라도 심하다 싶어요. 물론 나중에 진상을 알고 스누피를 혼내주기 위해서 나서기는 하지만... 다행히 스누피와 함께 옆집 고양이와 사투를 벌인 덕에 우정을 회복하기는 하는데 이런 과장은 지금 보기에는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네요. 

그래도 이 정도면 준수한 재미는 전해줍니다. 별점 2.5점은 충분하죠.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알라딘 인터넷 사이트가 개편되었는데 책 정보를 블로그에 공유하는 방법을 도저히 찾을 수가 없습니다. 마음에 안 드는 점이 계속 생기던 차인데, 이거 더 사용해야 할 지 의문이 생기는군요.

2019/03/30

맛의 천재 - 알렉산드로 마르초 마뇨 / 윤병언 : 별점 5점!

맛의 천재 - 10점
알레산드로 마르초 마뇨 지음, 윤병언 옮김/책세상

이탈리아인이 자국의 유명 요리와 그 요리에 관련된 주변 역사까지 상세하게 소개해주고 있는 요리 관련 미시사 서적.

딱딱할 내용을 재미나게 써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전세집 운운하는 박찬일 셰프의 소갯글부터가 재미난데 이어지는 본문도 시종일관 유쾌하면서도 기묘한 유머가 가득합니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요리 역사에 대한 사료적 가치가 엄청나게 높습니다. 피자만 해도, 피자의 역사만 오롯이 다룬 책도 읽어보았지만 오히려 이 책 쪽이 밀도가 더 높다게 대표적인 예입니다. 원래, 19세기 초 까지만 해도 반죽에 먼저 치즈 등 식재료를 올리고 그 위에 토마토 소스를 뿌렸다는데 언제 이 순서가 뒤바뀌었는지는 알 수 없다던가, 마르게리타 피자는 원래 있었지만 요리사 라파엘로 에스포지토가 재치 (피자의 이름을 묻는 왕비에게 왕비의 이름이라고 대답한) 를 발휘한 덕분에 역사에 길이 남았다는 이야기 등 시시콜콜하면서도 실제 역사에서 빼 놓을 수 없는 디테일이 가득합니다. 

그 외에도 몇 가지 기억에 남는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우선 스파게티도 흔히 알고 있던, 마르코 폴로가 중국에서 국수를 가져온게 유래라는 설은 오류라고 합니다. 1929년 미국의 <<마카로니 저널>> 이라는 월간지에 실린 근거없는 기사가 유래라는군요. 기사를 읽어보니 베네치아 뱃사람 이름이 스파게티라는 둥 황당하기 짝이 없어서 이 기사가 사실처럼 굳어진게 이해하기 힘들 정도입니다. 애초에 재료부터 다르니까요. 물론 마르코 폴로의 <<동방 견문록>>에 수마트라 지방의 파스타에 대해 언급했다는 사실과 실제 중국에서 유래되었을지도 모른다는 가정을 전해주기는 합니다. 당연히 마르코 폴로보다는 훨씬 전 시대에 말이죠. 
또 스파게티가 주력 국수가 되고 마카로니는 샐러드 용으로 밀려난 계기는 1927년 크래프트 사의 파마산 치즈 가루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원래 마케로니는 귀족들의 음식이었는데 안타까와요. 

샐러드는 이탈리아 대표 요리의 하나랍니다. 로마에서부터 먹어왔다죠. 소개되는 로마식 샐러드 레시피를 보니 식초는 아끼되 기름은 아끼지 말고, 소금은 많이 후추는 적당히 쳐서 먹는다는데 완전 제 취향입니다. 
프로슈토는 고대 로마에서도 먹었던 유서깊은 음식으로 포 강 유역의 에트루리아 문명터에서 발굴된 뒷다리가 없는 돼지의 뼈가 그 사실을 증명한다고 합니다. 당시의 돼지 종류는 지금과 달랐다는 당연한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된 것도 좋았어요. 또 놀랐던 건 당연히 생으로만 먹을 줄 알았는데 볶거나 익혀먹는 레시피도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튀김까지 있는데 그 맛이 궁금해집니다.
카르파초가 그 명성에 비하면 만들어진지 고작 50년 밖에 되지 않았다는 것에도 놀랐네요. 실존 인물로 의사가 건강 문제로 날고기를 권했던 후작 부인 니나 모체니고를 위해 만들어진 요리라는 역사도 흥미롭고요. 이름도 화가 카르파초의 이름에서 따온 직접적인 네이밍이라는데 역시나 처음 알았습니다. 요리 창조자인 베네치아 해리스바의 주세페가 아들 아리고와 요리 이름에 대해 고민하다가 앞 벽에 화가 비토레 카르파초의 전시회 포시터를 보고 옳다쿠나 싶어 이름을 결정했다고 합니다. 화가가 즐겨 쓴 붉은 색이 요리의 색상과 유사했기 때문이라는데 무릎을 칠 만 합니다.
후반부 누텔라 이야기에서는 다시금 책의 가치를 느낄 수 있습니다. 누텔라가 어떻게 생겨났고, 그 이름이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현재와 같은 세계 정복 (?) 이 어떠한 과정을 거쳤는지를 그야말로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경쟁 제품까지 소개하니 말 다했죠. 그나마 누텔라에 대해 비교적 자세히 소개했던 <<오무라이스 잼잼>>에서의 내용은 그냥 겉핥기에 불과하더라고요. 
그 외에도 옥수수, 모짜렐라, 와인, 티라미수 등 친숙한 음식에 대한 방대한 정보가 가득합니다.

그리고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데 있어서 과감한 발상도 돋보입니다. 포크에 대해 소개하며 샤를마뉴 재위 당시 왕과 귀족들은 사냥한 동물들을 끊임없이 먹어야 했기 때문에 통풍이 직업병과 같았다는 반쯤은 우스개스러운 이야기도 좋은 예겠지만 대표적인건 로마 시대에 늑대는 야수가 아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로마인들이 기본적으로 채식주의자라는 사실에 기반하며, 그들이 양을 먹지 않았기에 늑대는 경쟁자, 야수가 아니라 친구였다는거죠. 그러나 인간이 양을 먹기 시작하면서 늑대가 야수가 되었다는데, 무척이나 그럴듯하죠? 로마의 시조 로물루스와 레무스 형제에게 젖을 먹인게 늑대였던 것이 이 발상을 뒷받침합니다.
와인과 사과주의 대결에 대한 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와인이 세계를 뒤덮은 이유를 기독교와 연결시켜 설명하거든요. 초기 기독교, 로마 교회는 포도주와 깊이 연관되어 있었는데 알프스 북쪽 드루이드 교도는 사과주를 마셨다는 사실에서 시작합니다. 드루이드들 천국 명칭 '아발론'은 아발의 섬, 즉 사과의 섬이라는 뜻이라는 말과 함께요. 결국 로마 교회가 승리한 뒤 사과가 지옥을 상징하며 종교 행사에서 사과주가 영원히 사라져 버리게 된 것으로 설명합니다. 
샐러드가 식사의 시작에서 식사 도중의 곁들임 음식으로 밀려나는 과정과, 다시 식사 시작 음식으로 복귀하는 과정이 실제 역사적 사실 - 식초가 들어간 음식을 거부하는 문화와 비타민 유행 - 과 결합해 보여주는 내용도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 디테일이 탁월한 덕분에 새롭게 알게 된 사실도 많습니다. 르네상스 시기의 연회 문화에 대해서는 이것저것 다양한 책 (예를 들어 이런 거) 을 읽었지만 와인을 따르던 전문가 코피에레에 대한 묘사는 처음 봤네요. 온갖 좋은 점은 한 몸에 다 갖춘 듯한 사람이더라고요. 길게 늘어뜨린 옷에 주홍색 양말, 붉은색이 아닌 검은색 벨벳 신발을 신는다는 패션 센스마저 돋보입니다. 또 당시 요리들은 모두 단품이 아니라 코스였으며 당시 설탕을 많이 사용했던건 소금의 짠맛을 상쇄하기 위해서였다는 발상도 눈에 띕니다. 그리고 안 좋은 냄새를 없애기 위해 향료가 필요했다는 것도 사실과 멀었다는군요.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음식을 먹어야 했던 사람들은 당연히 비싼 향료를 살 여유도 없었을 거라는게 이유인데 확실히 와 닿습니다. 
캐비아는 원래 굉장히 싸구려 음식으로 1차 세계 대전 당시에는 영국 병사들에게 보급품으로 캐비아 캔을 나누어 줄 정도였다는 것도 신기합니다. 참치 대뱃살, 킹크랩과 같은 과정을 밟은 셈이네요,
유명한 디자이너 브루노 무나리의 손길이 닿은 에스프레소 머신과 저도 사용해 본 적이 있는 모카 에스프레소 디자인 등 디자인 강국 이탈리아스러운 이야기들도 마음에 들었고요.
다빈치가 실제로 레스토랑을 경영했다는 이야기, 그곳에서의 일화도 기억에 남습니다. 음식의 양을 줄이고 플레이팅에 신경을 쓴 최첨단의 세련된 레스토랑이었는데 손님들 모두 격분해서 경영은 실패하고 말았답니다. 과연, 플레이팅 따위보다는 가성비가 최고인거죠.

이런 내용이 재미난 글과 함께 500페이지가 넘는 분량에 빼곡하게 실려 있습니다. 단점을 찾는게 힘들 정도로 재미있고 가치도 높은 책입니다. 2만원이라는 가격도 수긍할만 합니다. 제 별점은 5점! 요리, 특히 이탈리아 요리를 사랑하신다면 꼭 한 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아, 이탈리아인들은 정말로 위대한 민족이에요. 요리와 예술 측면에서는요.

2019/03/24

너의 기억을 지워줄게 - 웬디 워커 / 김선형 : 별점 2점

너의 기억을 지워줄게 - 4점
웬디 워커 지음, 김선형 옮김/북로그컴퍼니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잔인하게 강간당한 제니를 위해 부모는 망각 요법으로 당시의 기억을 없앤다. 그러나 오히려 제니는 자살을 기도하고, 새로 제니를 맡게 된 정신과 의사 앨런은 제니의 기억을 복구하여 치료하려 한다.
하지만 제니의 기억이 하나둘씩 돌아오고, 특히 제니가 표백제 냄새에 강한 거부 반응을 보이자 앨런은 자신의 수영 선수 아들 제이슨이 범인이 아닐까 생각한다. 표백제와 강간범은 몸에 털이 없었으며 빨간 새가 그려진 파란색 후드티를 입었다는 증언 모두 제이슨에게 해당되기 때문이었다.

앨런은 제니의 아버지 톰에게 들은, 톰의 직장 상사 밥이 딸 뻘인 비서 라일라와 성관계를 가졌다는 말을 이용하여 밥을 범인으로 조작하려 결심한다. 약간의 조작을 통해 밥은 수사 선상에 오르고, 알리바이도 없으며 과거 성범죄 경력이 있었다는게 밝혀져 궁지에 몰린다. 밥은 어쩔 수 없이 제니 강간 사건이 발생한 시간에 친구의 딸 라일라와 성관계를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밝혀 누명을 벗지만 분노한 라일라의 아빠에 의해 살해당한다.

권능을 행사하려면 엄청난 자신감이 필요하고, 그거러면 자아가 아주 강인해야 한다.
우리가 낳은 자식을 보호할 수 없다면 그것이야말로 참담한 불행이다.


심리 범죄 스릴러물이라고 생각하고 읽었는데 결론은 망각 요법과 트라우마 치료에 대한 안내서같은 느낌의 작품. 제니와 앨런, 숀, 톰, 샬럿 등 주요 등장인물들이 과거의 트라우마와 현재의 강박증을 이겨내는게 주요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범죄물의 분위기를 풍기는건 아들 제이슨이 범인이 아닐까 생각한 앨런이 제니의 기억을 조작하는 정도에 그칩니다. 물론 설득력은 높습니다. 정신과 전문의다운 디테일아 살아있거든요. 샬럿에게 들은 밥과의 성관계 묘사와 TV 광고, 경찰과의 통화를 활용하여 제니의 마음 속에 밥이 범인이라는 생각을 심어놓는 과정이 아주 흥미롭게 그려집니다. 밥이 왜 알리바이를 대지 못하는지에 대한 설명도 그럴듯하며, 알리바이를 밝힌 후 처단받는다는 결말도 나쁘지는 않았어요.
조금 꼬아놓기는 했지만 초반의 유력한 용의자였던 마약 판매상 더마코와 제이슨, 그리고 진범 셸비가 그곳에 있었던 이유도 합리적이라 마음에 듭니다.

하지만 그 외에는 딱히 건질건 없습니다. 일단 범죄 스릴러, 추리물이 아닌 탓이 큽니다. 범죄물로서 제대로 기능하려면 제니를 강간한 범인이 누구인지가 이야기의 핵심이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거든요. 무엇보다도 진범의 정체가 뜬금없습니다. 몇 번 반복해서 소개된, 앨런이 구하지 못한 유일한 환자라는 셸비가 진범인데 그 전 까지는 아무런 정보를 주지 않다가 결말에서 급작스럽게 정체가 밝혀지는 식이라 영 와닿지 않아요. 셸비가 앨런에게 복수하기 위해 그의 아들 제이슨을 스토킹하여 강간하려고 했다는 목적 정도만 납득이 가는 수준입니다. 이럴거면 범인은 누구라도 괜찮았던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대충 마무리한 느낌이 들 정도에요.
셸비가 오래전 앨런도 강간한 적이 있었다는 설정도 황당합니다. 앨런도 다른 등장인물들과 마찬가지로 환자이며, 제니의 치료와 함께 스스로도 치유되었다는 결말을 위한 억지 설정인데 이게 대체 뭔가 싶더라고요. 또 셸비가 진범이라는걸 진작 알고 있었던 걸로 보이는데 제이슨에게 혐의가 가지 않도록 동분서주하던 앞부분 모습과 상당히 괴리감이 느껴집니다. 이를 경찰에게 이야기하지 않은 이유도 잘 모르겠고요.

극에 달한 앨런 1인칭 시점의 묘사 역시 그닥입니다. 주변 묘사 없이 앨런의 심리 묘사와 등장 인물간의 대화에 전적으로 의지하고 있는데 소설이 아니라 그냥 작가의 말이나 인터뷰를 읽는 기분이 들 정도입니다. 그래서인지 몰입하기 힘들었고요. 또 어느새 톰과 샬럿의 과거와 현재 비밀까지 공유하며 그들을 치료하게 되는 전개도 이상합니다. 분명 제니의 치료, 기억 복원이 목적인데 왜 부부의 심리 치료까지 하는건지 전혀 설명되지 않으니까요.
이를 위해 등장인물들이 모두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설정도 억지스럽습니다. 심지어 샬럿은 과거 의붓아버지와의 성관계를 숨겼을 뿐 아니라 남편 톰의 직장 상사 밥과 불륜 관계라는 설정인데 이건 너무 지나치죠. 이런 설정은 또한 성폭행 피해자인 제니가 아닌 샬럿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게 만드는데 이 역시 좋아 보이지 않았습니다. 샬럿은 밥과의 관계를 깨고, 자신이 잃었던 것이 무엇이며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면으로 직시하면서 다시 일어서게 됩니다. 톰 역시 그런 샬럿을 제대로 바라보면서 다시 사랑하게 되고요. 그런데 제니는? 잃어버린 기억을 찾고 고통을 떠올린 후 치유가 되었다는게 전부입니다. 샬럿과 톰이 뭘 어떻게 하건 아무런 관계가 없어요. 그냥 막장 드라마와 같은 재미를 주기 위한 장치에 불과합니다.

등장 인물들과의 대사로 이야기 전개가 이루어져 숀같은 인물의 비중이 기묘하게 높다는 것도 단점입니다. 숀은 제니의 심리를 전달해주기 위해 투입되어 비중도 커진 도구에 불과해 보이거든요. 제니 사건과는 관계가 없어서 등장하지 않아도 무방한데 말이죠.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쓰여졌다면 더 간결하고 깔끔하게 정리되었을텐데 여러모로 아쉽습니다.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재미도 없고 묘사도 지루하며 장황한 작품입니다. 무엇보다도 스릴러가 아니라서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별로 권해드릴 만한 작품은 아닙니다. 인터넷 상의 그럴듯한 소개에 낚이지 마시길 바랍니다.

2019/03/23

맥주어 사전 - 리스 에미 / 황세정 : 별점 2.5점

맥주어 사전 - 6점
리스 에미 지음, 황세정 옮김, 세노오 유키코 감수/웅진지식하우스

앞 부분의 맥주의 역사를 간략히 만화로 그린 부분에 꽂혀서 구입했는데 그 부분을 제외하고는 제목 그대로 사전입니다. 맥주에 관련된 용어들과 간략한 설명이 200여 페이지되는 분량에 빼곡히 수록되어 있습니다.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맥주 재료, 양조법이나 양조장에 대한 정보 외에도 이런저런 새로운 정보가 많습니다. 맥주를 맛있게 따르는 비법이라는 '세 번 따르기' 같은 내용처럼 말이죠. 첫번째로는 맥주병을 높이 들고 천천히, 그 다음에 세게 따라 거품을 만듭니다. 두번째로는 거품이 어느 정도 가라앉아 맥주와 거품이 1:1이 되면 병을 잔의 가장자리로 가져가 천천히 따릅니다. 거품이 잔보다 1cm 정도 높게 올라올 때 까지요. 마지막으로는 거품이 잔보다 1.5~2cm 높아질 때 까지 맥주를 조심스럽게 부으면 된답니다. 
그런데 마녀가 에일을 만들어서 팔던 에일 와이프에서 비롯되었다는 소개는 조금 뜻밖이었어요. 마녀 하면 떠오르는 뾰족한 모자, 고양이, 끓는 냄비, 빗자루 모두가 에일 와이프를 상징하는 것으로 모자를 빼면 고양이는 맥아를 노리는 쥐를 쫓기 위해, 끓는 냄비는 맥아죽을 끓이는 용도, 빗자루는 청소 및 에일 와이프를 알리는 소품이었다는 소개는 상당히 그럴싸하게 들렸습니다. 한 번 조사해 보고 싶어지네요. 그 외에도 레시피도 몇 개 소개되어 있습니다. 글루비어를 만드는 법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맥주에 관련된 인물들도 여럿 소개되는데 독일의 대문호 괴테에 대한 소개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세 끼 식사보다도 슈바르츠비어 (독일식 검은 맥주)를 더 좋아했기 때문이라는군요. 
좀 지루해질 만 하면 등장하는 저자의 짤막한 에세이나 이런저런 토막정보들도 재미를 더해줍니다. 맥주와 잘 어울리는 막과자 (다카시)에 대한 소개 등이 그러합니다. 살라미 계열은 바이젠, 고추냉이 맛은 브라운 에일 등의 조합인데 한 번 먹어보고 싶어지네요.

일러스트도 아주 좋아요. 제가 좋아하는 아사오 하루밍 스타일인데 단순하면서도 충분한 정보를 담고 있으며 색의 활용도 단순하지만 대담해서 아주 마음에 듭니다. 이런 일러스트가 어우러져 단순한 사전이 아닌 '그림 도감'을 읽는 기분을 전해주기도 합니다. 그야말로 어른을 위한 동화책같은 느낌도 들고요.

하지만 단점도 없지는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일본' 시장을 위해 쓰여진 책이라 주요 지역 정보는 일본에 대부분 국한되어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에요. 아무리 정성껏 일본의 크래프트 비어와 양조장을 소개해 준다 한 들 그림의 떡이니까요. 국내 정보는 한 장 짜리 국내 양조장 지도 정도 외에는 기억나는게 별로 없습니다.
또 '기린 맥주'를 즐겼다는 로산진도 소개되는게 마땅했을텐데 왜 소개되지 않았는지는 조금 의문입니다. 맥주를 별로 좋아하지도 않았다는 아인쉬타인을 소개하느니 로산진을 소개하는게 나았을 겁니다.

그래도 단점은 사소할 뿐 맥주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언젠가 일본에 가게 되면 소개된 맥주를 좀 구해봐야겠어요.

2019/03/17

얼음의 나이 - 오코우치 나오히코 / 윤혜원 : 별점 3점

얼음의 나이 - 6점
오코우치 나오히코 지음, 윤혜원 옮김, 홍성민 감수/계단

기후 변화에 대한 연구를 연대순으로 소개하며 기후 변화가 어떻게, 왜 일어나는지를 상세하게 알려주는 과학 서적. 전혀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관심이 없던 분야인데 이전에 읽었던 <<책장의 정석>>에서 추천했던 기억이 떠올라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읽어보니 확실히 기후 연구에 대해서는 바이블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정도더군요. 그만큼 내용이 압도적입니다. 400여 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을 통해 해저 퇴적물 산소동위원소비를 연구하여 당대 수온을 알아내고, 산호초 방사선 탄소 연대를 측정하여 해수면 변동의 역사를 복원하고, 지구의 공전궤도와 자전축 변동에 따른 일사량 변화로 지구 기후가 변동되었다는 밀란코비치 효과 검증을 통해 빙하기 발생 원인을 밝혀내고, 빙하 코어 채굴 후 이산화탄소와 방사성탄소 연대 측정, 대기 화석 분석 등으로 기후 변화를 연대순으로 그려내는 등의 이야기가 자세하게 소개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연구에 관련된 다양한 그래프 등 도판도 충실하게 수록되어 있어서 이해를 돕는 건 물론이고요. 

개인적으로는 지구 온난화로 빙하가 늦으면 왜 빙하기가 시작되는지에 대해 이유에 대해 알게 된 게 가장 큰 수확이었어요. 심층수 순환 때문이라는데 전혀 몰랐네요. 당연히 따뜻해져서 얼음이 녹으면 더 따뜻해질 거라 생각했는데 말이죠. 원리는, 우선 따뜻한 저위도 지역 바닷물은 햇빛에 의한 가열과 강수에 의한 염분 저하로 밀도가 낮아지고, 고위도 지역은 그 반대로 밀도가 커져서 심층수 순환이 일어납니다. 이를 통해 따뜻한 열 에너지가 북쪽으로 공급되는거죠. 하지만 빙하가 녹아서 고위도 지역 심충수 밀도가 낮아지면 이 흐름이 약해지거나 멈춰서 열 에너지 공급이 중단됩니다. 현재 심층수가 형성되고 있는 그린란드 해로 유입되는 멕시코 만류의 수온은 섭씨 약 10도인데, 이게 심해저로 가라앉으면 섭씨 2도까지 떨어집니다. 즉, 8도에 해당하는 열 에너지가 대기로 빠져나가고 이를 통해 북대서양 북부 지역은 혹독한 한랭화를 맞이하게 됩니다. 무섭습니다...
또 최근의 1만년 동안은 그나마 기후가 안정화를 찾고 있는 시대라고 합니다. 물론 15세기부터 19세기 후반까지의 약 400년간을 소빙하기라고는 하는데 기온은 이전 시대에 비해 고작 0.2도 낮은 정도라는군요. 이 정도로도 소빙하기라고 불리울 정도로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니 기후의 영향은 정말 대단합니다. 앞으로의 지구 온난화 시기에는 기온이 1.8~3.4도나 오를 거라고 하니 앞으로가 큰일이에요. 다행이라면 빙하기는 북구, 즉 유럽 쪽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 설명되고 있는 점 정도랄까요?
그 외에도 빙하기에는 먼지가 많았는데 그 이유는 적도 지역과 극 지방의 온도차가 커쳐서 대기의 남북 방향 순환도 보다 강해지고, 그만큼 육상에서 휘말려오는 먼지가 많아지고 건조 지대가 광범위해지기 때문이었다는 등 기후 변화에 대한 상세한 정보가 가득합니다.

하지만 단점이라면.... 솔직히 읽기 쉬운 책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과학 도서라 어쩔 수 없겠지만 재미로 읽는 책은 절대 아니에요. 재미 따위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기 힘듭니다. 대학 때 접했던 교제 수준이랄까요? 아무리 도판이 많고 설명이 상세해도 머릿 속에 쏙쏙 들어오는 그런 내용은 절대 아닙니다. 문체도 딱딱하고요. 완독하는데 정말 여러 개월 걸렸습니다. 기후 변화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었기에 쉽게 손이 가지는 않았던 탓도 크지만요. 그래서 제 별점은 3점입니다. 책의 가치는 분명하나 읽는 맛 측면에서는 별로 권해드리고 싶지는 않군요.

아무도 문밖에서 기다리지 않았다 - 매슈 설리번 / 유소영 : 별점 2.5점

아무도 문밖에서 기다리지 않았다 - 6점 매슈 설리번 지음, 유소영 옮김/나무옆의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리디아는 일하던 서점에서 목을 매고 죽은 청년 조이의 시체를 발견했다. 그의 주머니에는 리디아가 열 살 때 단짝들과 함께 했던 생일 파티 사진이 들어 있었다.
리디아는 자신에게 남겨진 조이의 유품 속 책들을 오려낸 빈 공간이, 짝이 되는 다른 책을 맞추면 메시지를 표시하기 위한 구멍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녀는 조이가 남긴 메시지를 통해 그녀의 잊고 싶었던 어린 시절 "망치 살인마" 사건의 진상을 더듬어 나가기 시작하는데....


아무런 정보 없이 우연찮게 e-book으로 읽게 된 작품. 하지만 생각보다 재미있어서 몰입해서 읽을 수 있었습니다. 리디아가 과거 망치 살인마의 연쇄 살인 현장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생존자였으며, 이를 억지로 잊고 살다가 조이가 자살하고 남긴 메시지 때문에 반 강제로 망치 살인마의 정체를 더듬어 나가는 과정이 아주 흥미로왔기 때문입니다.

특히 망치 살인마가 리디아가 숨어있는 걸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살려주었다는 현장 묘사, 그리고 수상쩍은 아버지 토마스의 행동을 결부시켜 아버지가 진범이 아닌가? 하는 전개로 진행되었지만, 조이가 라지의 이복 동생이었다는게 밝혀지면서 드러나는 반전이 괜찮습니다. 조지가 사진을 가지고 있던 이유는 리디아가 아니라 이복형 라지가 같이 찍혀 있었기 때문이었던거지요. 
이를 통해 망치 살인마는 아내의 불륜 상대를 가혹하게 응징한 파텔 씨라는게 드러나는데, 이는 파텔 씨가 엄청나게 호전적이고 무서운 성격이며 조지가 유품으로 남긴 정장 (어머니를 만나러 갈 때 입으려고 산 것), 조지와 라지 모두 잘 생겼으며 파텔 부인이 미인이었다는 묘사, 파텔 부인이 망치 살인마 사건 직후 인도의 고향으로 가서 9개월 후에 돌아왔다는 등의 여러가지 복선으로 잘 설명되고 있어서 나름 설득력도 높습니다. 아버지 토마스의 수상쩍은 행동 역시 피해자였던 오툴 부인과 불륜 관계였다는 설정으로 합리적으로 설명되고요. 모든 진실이 밝혀진 후 파텔 부인이 더 이상 참지 않았다는 결말도 깔끔합니다.
트라우마를 지닌 주인공이 등장하는 작품은 많지만 장황한 심리 묘사가 많지 않아서 읽기 수월했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어요. 전반적으로 묘사에 군더더기가 없어서 경쾌하고 깔끔한 느낌을 전해줍니다.

주인공이 서점 직원인 덕분에 등장하는 많은 책들도 반가왔습니다. 예를 들자면 리디아가 서점에 면접을 보러 갔을 때 지배인에게 추천했던 책은 <<백 년 동안의 고독>>, 리디아가 서점에서 시간을 보내는 한량들을 지칭할 때 쓰는 '책 개구리'라는 표현은 베아트릭스 포터의 <<피터 래빗>> 속 멋쟁이 개구리 제레미 피셔에서 따온 것, 조이가 남긴 책 중 리디아가 추천해서 산 책은 <<나사의 회전>>과 폴 오스터의 뉴욕 이야기 3부작 등인 식이죠.

그러나 잘 짜여진 범죄 스릴러, 추리물로 보기는 힘듭니다. 정교하다고 보기는 여러모로 힘든 탓입니다. 우선 당시 형사였던 모버그의 말대로 토마스는 유력한 용의자 No.1입니다. 리디아를 찾는다는 이유로 현장을 모두 들 쑤셔 놓았을 뿐 아니라 흉기까지 들고 설쳤으며 피해자 중 오툴 부인에게만 그의 핏자욱을 남긴 등의 정황 증거부터 차고 넘치거든요. 알리바이도 없으며 무엇보다도 리디아가 숨어 있다는 걸 뻔히 아는데도 살려주었다는 건 누가 뭐래도 부인하기 힘든 사실이고요. 이 정도면 유죄 판결을 받는데 부족함이 없어 보여요. 그런데 단지 '리디아가 충분히 고통을 겪었다' 는 이유만으로 윗 선에서 압력이 가해져 토마스에 대한 수사와 기소가 중지되었다는건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어금니 아빠 이영학을 딸이 불쌍하다고 풀어준다는거나 마찬가지니까요.

게다가 조지가 리디아에게 접근하여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하고 유품을 남긴 이유도 전혀 와 닿지 않습니다. 구태여 리디아를 찾아가 얼쩡거린 이유, 자살하면서 유품과 메시지를 남긴 이유가 무엇일까요? 라지를 직접 찾아갈 수도 있었을텐데요. 작 중 리디아의 서점 동료인 플라스의 말대로 '웨이터에게 팁도 안 주는 짓거리' 같은 민폐에 불과합니다. 또 메시지도 이렇게 장황하게 남길 필요는 없습니다. 종이에 힘들게 칼질을 해서 구멍을 뚫을 거였다면 요약해서 단도직입적으로 "어머니가 나를 부정했다, 그래서 나는 죽는다' 라고 써도 충분하잖아요. 암호 트릭 자체로는 그럴싸하지만 지나치게 멋을 부린 느낌이에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입니다. 장점과 단점이 확실한데 읽는 재미는 충분한 만큼 가벼운 읽을거리를 찾으신다면 한 번 읽어보셔도 괜찮을 것 같네요.

2019/03/10

보기왕이 온다 - 사와무라 이치 / 이선희 : 별점 2.5점

보기왕이 온다 - 6점
사와무라 이치 지음, 이선희 옮김/arte(아르테)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부
다하라는 어린 시절 치매에 걸린 할아버지와 집을 볼 때 정체불명의 회색 덩어리 그림자를 응대한다. '치가쓰리'라는 기묘한 말을 하며 집에 들어오려는 '그것'을 할아버지가 모처럼 맑은 정신으로 소리쳐 퇴치한다. 그리고 몇 년 뒤, 할머니로부터 사람을 끌고가는 요괴 '보기왕'에 대해 듣는다. 집에 들이거나 대꾸를 하면 안된다는 것.

세월이 흘러 직장을 얻고 결혼한 다하라에게 수수께끼의 전화가 걸려오고, 수상쩍은 인물이 찾아오기 시작한다. 회사 후배 다카니시가 큰 상처를 입고 아내와 딸 치사마저 위험에 처하자 다하라는 고교 동창인 민속학 교수 가라쿠사를 통해 오컬트 작가 노자키와 퇴마사 마코토를 만난다. 그러나 퇴마사 마코토가 알려준 대책이라고는 "부인과 아이에게 다정하게 대해주라'는게 전부.
그러나 다행히 노자키와 마코토는 다하라의 집에 정기적으로 찾아와 아내 가나와 아이에게 힘이 되어주고, 다하라도 그들에게 마음을 열지만 '보기왕'이 집에 찾아와 부적을 찢고 난동을 부린다. 겨우 침입을 저지한 마코토는 자신의 힘이 미력하다며 언니를 호출한다. 언니는 당장은 시간이 없다며 지인들을 부르나 고명한 스님을 비롯한 지인들 모두 겁을 먹고 거절하며 딱 한 명, 부탁을 수락한 영매사 세쓰코는 한 팔을 잃는 큰 부상을 입고 죽고 만다. 다하라는 마코토의 언니 도움으로 결계를 치려 하지만 그것 역시 언니를 위장한 '그것'의 음모였다. 결국 '그것'에게 다하라는 죽고 만다.

2부
아내 가나는 다하라의 죽음이 기뻤다. 다하라는 자신만의 가치관에 따라 아내와 딸을 심리적으로 학대했기 때문이었다. 노자키와 마코토의 도움으로 가나와 치사 모녀는 어느정도 안정을 찾아가나 다시 '그것'의 습격이 시작된다. 마코토가 목숨을 걸고 저지하지만 실패하고, 도망치던 모녀를 덥친 '그것'은 치사와 함께 사라진다. 그 뒤 미쳐버린 가나는 병원에서 깨어난다.

3부
가나와 치사를 습격한 '그것'으로부터 치사를 지키다가 중상을 입은 마코토를 병원으로 옮긴 노자키는 드디어 마코토의 언니 고토코를 만난다. 그녀는 자신이 직접 치사를 구하겠다며 중상을 입은 마코토에게 휴식을, 노자키에게 협조를 요청한다. 다하라의 본가에 찾아간 둘은 다하라 가족의 숨겨진 끔찍한 과거를 알아낸다. 오래전 할어버지 긴지의 가혹한 폭행으로 다하라의 외삼촌, 외숙모가 죽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은 할머니가 복수와 원망으로 할아버지를 저주했기 때문에 찾아온 것이었다.
그리고 둘은 치사를 구하고 보기왕을 퇴치하기 위해 최후의 결전에 나선다.


제22회 일본 호러소설대상 대상 수상작으로 작가의 데뷰작입니다. '보기왕' 이라 불리우는 크리쳐와 맞서 싸운다는 정통파 크리처 호러물이죠. 그렇지만 이유없이 괴물이 튀어나와 사람을 도륙하는 흔해빠진 고어 크리처물과는 다릅니다. 
가장 큰 차이점은 '보기왕' 이라는 크리처의 정체와 그것이 나타난 이유를 나름 설득력있게 포장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보기왕'이라는 이름의 유래부터 그러합니다. 일찍이 일본에 진출했던 유럽인들에게서 비롯된 명칭이라고 설명하고 있거든요. "부기맨"이 변형된 말이라는데 그럴듯하죠? 또 노자키가 <<기이잡설>> 등의 이런저런 자료와 고문헌을 뒤지다가 밝혀낸 정체도 그럴듯해요. 오래전 먹고 살기 위해 K시에서는 산에 사는 요괴에게 노인과 아이를 일부러 마쳤다는게 그 유래가 된 것입니다! 실제로 요괴가 있건 없건 간에 사람을 납치하는 요괴와 입을 줄이기 위한 마을의 이해관계가 일치했다는 이야기로 굉장히 설득력이 높아요. '고려장' 이야기와 별 다를 것도 없으니까요. 이렇게 크리쳐물인데도 일본 역사를 바탕으로 했다는 점은 <<요괴헌터>>가 떠오릅니다. 대단한 이론적 배경이 있는건 아니지만 몇몇 디테일 들이 괜찮다는 점도 비슷하네요.
게다가 할머니가 할아버지를 저주하여 마도부를 통해 불러내었기 때문이라는 이유도 섬찟합니다. 할아버지 긴지의 가혹함과 외삼촌의 죽음 등 앞부분에서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던 복선을 통해 이를 뒷받침하는 전개도 일품이에요. 데뷰작이라고 보기 힘들 정도의 솜씨죠. 이러한 전개는 1, 2, 3부로 나뉜 구성에서도 돋보입니다. 1부는 다하라, 2부는 가나, 3부는 노자키가 주인공인데 각각의 이야기의 구멍을 메워나가며 새 주인공의 시각에서 새로운 사실을 드러내기 때문에 독자를 몰입하게 만들거든요. 1부에서 다하라가 굉장히 가족에게 지극 정성을 다하는 아빠로 '괴물, 혼령은 대부분 빈틈으로 들어온다. 이는 가족 간에 생기는 마음의 빈틈인 '골'을 의미한다.'는 게 받아들여지지 않지만, 2부의 가나 시점 묘사를 통해 다하라가 사실은 나쁜 아빠였다는게 밝혀지는 과정이 좋은 예입니다. 
또 '알고보니 나쁜 놈' 인 다하라와 소극적으로 상황에 끌려만 다니는 가나가 아닌 진 주인공 노자키와 마코토, 고토코가 전면으로 부상하여 힘을 합쳐 괴물을 퇴치하는 왕도적인 결말도 나쁘지 않아요. 정의롭고 착한 주인공이 악을 물리친다는 이야기는 너무 전형적일 수 있지만 이 작품에는 정말 딱 어울립니다. J호러 특유의 찝찝한 결말이었다면 더 마음에 들지 않았을거에요. 

크리처물 다운 섬찟한 묘사도 볼거입니다. 일종의 영적 덩어리로 입과 이빨만 강조되는 보기왕에 대한 묘사는 별 거 없지만 '그것'이 고토코를 가장하여 다하라를 농락하는 장면이라던가 '그것'은 뒷문으로부터 들어오는게 진짜 공포라는 앞 부분의 복선이 이어져서, 가나가 화장실 입구에 결계를 치지만 뒷문이 있다며 변기로부터 '그것'이 기어나오는 장면이 특히 압권이죠. 얼마전 일본에서 영화화되어 개봉되기도 했는데 예고편을 보니 화장실 장면은 제대로 등장하는 듯 해서 기대가 됩니다. 소설에서도 아주아주 무서웠으니 영화로 보면 효과는 그 이상일거라 확신이 드네요.

이렇게 대상을 받을만한 좋은 점도 많지만 단점도 없지는 않습니다. 우선 앞서 칭찬한 전개에서 딱 한 가지, 가라쿠사가 다하라를 저주했고, 다하라의 남은 가족까지 저주했다는 설정은 과합니다. 술 자리에서 쓸데없는 이야기 좀 들었다고 돈과 노력을 더해 '마도부' 까지 선물한다? 그것도 정작 원망의 대상은 죽은 다음인데? 이래서야 설득력이 너무 떨어져서 등장하지 않는 것만 못해요.
또 마코토는 그럭저럭이지만 그녀의 언니 고토코 캐릭터는 지나치게 만화적입니다. 뛰어난 능력으로 괴물들 사이에서도 이름이 높고, 경찰 최 고위층도 움직일 수 있는 어둠의 실력자라는 설정이거든요. 식신만 나오지 않을 뿐 <<마법사의 딸>> 에 나오는 일본 최고의 음양사 스노즈키 무잔과 판박이죠. 만화였다면 모를까 소설에 등장하기에는 비현실적입니다. '보기왕' 처럼 설득력있게 그 존재에 대해 설명해 주었더라면 조금 나았겠지만 그런 설명도 전무하고요. 이런 점에서 보면 <<요괴 헌터>>의 한 에피소드로 그려지는게 더 낫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네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소설 보다는 영화나 만화 쪽이 더 잘 어울렸을 것 같아서 조금 감점합니다만, 재미도 있고 흡입력도 괜찮아서 킬링 타임용으로는 적당한 작품입니다. 호러물을 좋아하신다면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19/03/09

신안 보물선의 마지막 대항해 - 서동인, 김병근 : 별점 3점

신안 보물선의 마지막 대항해 - 6점
서동인.김병근 지음/주류성

국내 고고학 사상 최대의 성과를 거두었다는 신안 보물선의 발굴 물품을 통해 당대 역사를 설명해주는 미시사 서적.

신안선에 실려 있었던 유물들을 종류별로 상세하게 분석하여 당시 어떤 문화가 융성했는지를 설명해주는 것은 물론, 무역선의 항해 경로를 통해 당시 무역을 통한 문화 교류가 어떤 식으로 일어났는지와 신안선이 침몰했던 시기의 원나라와 고려를 중심으로 주변국의 당시 시대 정황과 정세까지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이 책의 가장 큰 가치는 유물들 한개 한개에 대한 상세한 설명입니다. 신안선에 가득 실려있던 당대의 고급 목재 자단목에 대해 '힌두어 찬단을 음역한 전단이라는 말에서 유래되어 이후 자단이라는 말로 바뀌었으며, 기원전 5세기 전후부터 사용한 고급 목재로 그 향도 귀중하게 여겨졌다'는 식으로 그 유래와 용도를 알려주는게 좋은 예죠. 출토된 향로와 화분, 다완 (찻잔)과 주전자 등을 통해 분향, 꽃꽂이, 다도 문화에 대해 상당한 분량을 할애하여 설명해주는 것도 아주 좋았습니다. 조금만 보완되면 온전히 한 권의 책으로 나와도 손색없다 싶을 정도거든요. 
그 외에도 유물을 통해 소개되는 흥미로운 이야기는 아주 많습니다. 도자기, 동전과 같은 명확한 유물말고도 목패와 같은 기록물과 게다, 숯돌과 같은 생활 용품 등 워낙 많은 유물이 출토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이야기를 컬러 도판과 지도, 다른 관련 유물에 대한 정보와 소개를 통해 이해를 돕는 구성도 아주 좋았습니다. 특히 도판 측면에서는 정말이지 나무랄데 없더군요.

발굴 과정에서 있었던 다양한 에피소드들도 소소하니 재미있습니다. 신안선 발굴로 당시 도자기가 엄청나게 출토되어 우리나라가 당시 도자기 최대 보유국이 되었을 뿐 아니라 (당연히 중국을 제외하고겠죠?) 국제 시장에서 해당 시기 도자기 가격이 폭락했다는 등의 이야기는 여러모로 눈길을 끕니다. 도자기만 무려 2만점이 넘게 출토되었다니 폭락할만도 하죠.
또 신안 보물선 덕분에 우리나라가 현재 중국 동전 최다 보유국이기도 하다는군요. 한과 후한에서부터 시작하여 신, 당, 북송, 남송, 요, 금, 원과 서하까지 아우루는 28톤, 8백만개에 이를 정도의 양이 출토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동전은 일본에서 대불을 만들기 위해 사용될 예정으로 보고 있는데, 만약 신안선이 침몰하지 않았더라면 일본에 가마쿠라 대불과 같은 불상이 한 개 더 생겼을거라네요. 일본으로서는 아쉽겠어요.

이렇게 재미있는 내용이 많지만 페이지의 주석이 모두 책 말미에 수록된 점은 아쉽습니다. 페이지 하단에 주석을 소개했더라면 훨씬 좋았을텐데 말이죠. 또 책의 목차가 두서 없으며 문체도 조금 딱딱한 편입니다. 신안 보물선 발굴에 대한 상세한 설명 뒤에 항해 경로를 설명하며 당대 무역, 그리고 주변국들의 상황을 알려준 후 유물 하나하나를 통해 관련된 문화를 차례대로 소개하는게 더 나았을 겁니다. 발견과 개괄적인 설명, 그리고 좀 더 미시적인 접근이 가능했다는 점에서요. 지금은 이런 내용이 약간 뒤섞여져 있는 편입니다.
그리고 제가 이 쪽 공부가 부족하여 단언할 수는 없지만 저자의 지나친 억측이 아닌가 싶은 부분도 몇 가지 있습니다. 대표적인 건 고려 개성 상인의 송도부기가 서양에 전해진 후 이게 르네상스의 원동력이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부기를 영어로 북 키핑 (Book Keeping) 이라고 하는게 '부기'의 발음을 베껴낸 표현이라는걸 증거로 제시하는데 좀 아니다 싶었어요.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르네상스 운운하는건 지나쳤어요.

그래도 단점은 사소할 뿐, 책 자체의 가치는 충분합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가격이 조금 쎈 편이기는 하지만 분량과 전 페이지가 풀 컬러라는 점에서는 납득할 만한 수준이에요. 고려 시대 문화와 문화 교류사, 미시사에 대해 관심있으신 분들께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2019/03/02

레시피가 없어도, 그럴싸하지 않습니까 - 다마무라 도요 / 권남희 : 별점 3점

레시피가 없어도, 그럴싸하지 않습니까 - 6점
다마무라 도요 지음, 권남희 옮김/위즈덤하우스

보통 요리는 어렵다, 손이 많이 간다, 복잡하다고 생각을 많이 합니다. 실제로 그런 부분도 없잖아 있고요. 하지만 이 책은 그런 생각을 여지없이 깨 줍니다. 조리법을 기본부터 파고들어 레시피라는게 실제로는 별 게 아니다라는걸 알려주거든요. 요리의 기본 요소는 물과 공기, 물, 기름이라는며 모든 요리는 이 네가지 요소를 엮어서 연출하고 응용할 수 있다는게 결론인데 여러모로 조금 전문적인 <<한그릇 더!>> 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결론에 이르기까지 설명을 돕기 위해 실전 레시피도 많이 수록되어 있는데 모두 그럴듯합니다. 대충대충 만드는 알제리식 양고기 스튜와 무지하게 세련된 프랑스 요리 코틀렛 드 무통 퐁파두르는 굉장히 비슷한 요리라는 첫번째 단락부터 굉장히 와 닿더라고요. 집에서 만드는, 아마추어가 만드는 요리니 레시피에 너무 구애받지 말라는 말도 인상적입니다. 소스 100가지, 1000가지 만드는건 일도 아니라며 소개하는 비결도 아주 심플해서 마음에 들고요. 집에 있는 재료들을 대충 조합해서 쓰라는 이야기인데 충분히 그럴싸 했습니다. 
그 외에도 많은 레시피들이 소개되는데, 그 중에서도 시인 구사노 신페이 씨의 아이디어로 나온 일품요리라는 "신페이 죽" 레시피는 정말 따라해보고 싶어졌어요. 야식용으로 생쌀과 참기름, 물을 1:1:15의 비율로 섞어 흙 냄비에 넣고 불을 켠 뒤 뚜껑을 덮고 2시간동안 내버려두면 된다고 합니다. 소금간을 해서 먹으면 엄청나게 맛있다네요. 참기름을 너무 많이 넣는 듯 한데 그 맛이 정말로 궁금합니다. 혹 제 블로그 지인 분 중 시도하신 분이 있으시다면 꼭 제보 부탁드립니다.

또 요리와 음식의 몇가지 정의에 대해 저자가 고민한 결과를 소개하는 부분도 좋았습니다. 첫번째는 샐러드라는 요리 정의에 대한 고민입니다. 간단하게 소스를 뿌려 먹는게 샐러드라면, 스테이크에 소스를 뿌리는 것도 샐러드인가? 에 대한 고민인데 생각도 못했던 부분이었어요. 이 고민은 '인간이 "불"을 이용할 줄 알았을 때 요리를 발견했다' 가 아니라 '인간은 "소금"을 이용할 줄 알았을 때 요리를 발견했다.' 는 말로 이어지는데 그럴싸합니다. 저자의 말대로 열을 가하지 않아도 맛있는 요리는 많으니까요.
스튜와 수프의 차이가 무엇이냐는 고민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국물이 많은 스튜 (예를 들어 부이야베스) 와 수프는 본질적으로는 차이가 없으니 결국 정의하기 나름이라는 이야기인데 역시 깊이 공감할 수 있었거든요. 얼마나 건더기가 들어갔는지, 국물을 먹는 요리인지 건더기를 먹는 요리인지에 따라 구분할 수는 있지만 그게 어느 시점인지는 명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조리기와 삶기를 구분할 수 없다는 것도 마찬가지고요.

그러나 딱 한가지, 마지막에 저자가 강조하는 '요리의 사면체' 이론은 좀 지나쳤습니다. 앞서 쉽게 설명해주었던 여러가지 이론을 본인 스스로 복잡하게 만들 필요는 없었어요. 그냥 쉽게쉽게, 대충대충 요리해도 맛있다는 내용으로 마무리했더라면 훨씬 좋았을 겁니다.
아울러 단점이라고 하기는 조금 어렵지만 도판이라는게 극도로 부족하다는 것도 조금 아쉬웠습니다. 책의 특성 상 몇몇 요리는 사진으로라도 소개해 줄 필요가 있어보이거든요.

그래도 결론내리자면 추천작으로 별점은 3점입니다. 요리 전문가로서 실력과 지식을 갖춘 저자의 내공을 잘 느낄 수 있었던 좋은 책이었습니다. 쉽고 재미나게 설명하는 글솜씨도 괜찮은 만큼, 요리와 음식에 관심있으신 분들께서는 한 번 쯤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2019/03/01

맛있는 요리에는 과학이 있다 - 코야마 켄지 외 / 김나나 외 : 별점 2.5점

맛있는 요리에는 과학이 있다 - 6점
코야마 켄지 외 지음, 김나나 외 옮김/홍익출판사

각종 조리법을 과학적 근거로 설명하는 요리 과학 교양서. 크게는 조리, 음식 재료, 간, 물의 4 챕터로 구분되어 있으며 각 챕터별로 상세하게 항목을 다룹니다. 예를 들어 조리의 경우는 튀김과 볶음, 찜 등 모두 6개의 소 챕터로 이루어져 있는 식이죠. 300여 페이지의 분량을 챕터별로 낭비없이 빼곡하게 채우고 있습니다.

그동안 별 생각없이 행했던 조리법들이 나름 과학적 근거가 있다는게 굉장히 신기했습니다. 기억에 남는 것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아이스크림 튀김은 아이스크림을 얇은 카스텔라나 스펀지 케이크로 감싸서 만든다고 합니다. 기포가 많아서 열이 아이스크림까지 전달되지 않는다네요.
볶음 요리 중 간을 맞출 수도 있지만 볶은 재료는 기름 막에 둘러 싸여 있어서 간을 제대로 맞추려면 재료에 밑간을 해 놓는게 좋답니다.
과학적인 맛있는 볶음밥을 만드는 방법도 설명됩니다. 계란의 단백질은 열이 가해져 익을 때 기름과 수분을 감싸므로 풀어놓은 계란은 맨 처음에 넣어야 합니다. 볶음밥에 수분은 적이므로 계란은 처음에 볶아 단단하게 만드는거죠. 계란이 반숙이 되면 밥을 넣습니다. 계란은 기름을 흡수하기 시작하지만 아직 완전히 익지 않아서 계란의 기름이 밥에 달라붙게 됩니다. 이로써 밥이 뜨거운 기름에 코팅되어 고슬고슬한 볶음밥이 완성됩니다. 계란이 다 익은 후 넣으면 기름이 이동하지 않으므로 재빨리 해야 합니다. 밥을 잘 풀어 계란과 섞은 뒤 고기와 채소를 넣고 마지막에 간을 맞추면 완성입니다. 양념은 볶는 도중에 넣으면 소금에 의해 수분이 빠져나가 축축해지므로 금물입니다. 채소도 수분이 적은 당근이나 피망, 고기도 구운 돼지고기나 햄이 좋다는군요. 건더기가 많은 볶음밥을 먹으려면 따로 볶은 뒤 계란 볶음밥과 섞는 것과 방법이랍니다.
조릴 때 양념을 넣는 순서도 있다는군요. 소금은 설탕보다 분자량이 작아 그만큼 식품에 침투되기 쉬우므로 설탕을 먼저 넣고 소금을 넣으면 소금 맛이 나지만, 반대의 경우는 설탕의 분자량이 커 좀처럼 침투되지 않는다네요. 소금을 먼저 넣으면 재료에서 수분이 빠져나와 조직이 단단해져 다른 양념이 맛을 내기도 어렵고요. 하지만 설탕을 먼저 넣더라도 양 조절을 잘 해야 합니다. 설탕은 물에 대한 친화성이 크서 수분을 꼭 끼고 놔주지 않아 다른 양념 침투를 방해할 수 있거든요. 이래저래 어려운게 조림 요리인 듯 싶습니다.
찜의 비결은 찜기 안에 수증기가 가득 찰 때까지 기다렸다가 재료를 넣는 겁니다. 수증기와 달리 공기는 열의 전도율이 높지 않아서 미리 찜기 속에서 공기를 몰아내지 않으면 온도가 충분히 올라가지 않습니다. 온도가 낮을 때 재료를 넣으면 재료가 차가운 재료 표면에 수증기가 물방을로 맺혀 물을 뒤집어 쓴 것 처럼 축축해지고요. 그리고 구멍이 송송 뚤리지 않는 계란찜의 비결은 온도입니다. 계란 단백질은 60~70도에서 응고되기 때문입니다. 100도 정도의 높은 온도에서 계란 단백질은 급격하게 응고되는데 수분은 수증기가 되려 해서 응고되어 가는 계란 속에 기포를 만들게 됩니다. 
그리고 일본에서 발표된 책이라 전자레인지의 활용도를 다양하게 선보이는게 독특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천천히 가열'같은 기능이 대표적이죠. 어차피 전자레인지 조리는 잘 하지 않지만 채소나 과일 등 데우고 싶지 않은걸 알루미늄 은박지에 포장하고 도시락을 데우는 아이디어는 눈길이 가네요. 마이크로파는 알루미늄을 통과하지 못하니까요.

재료 쪽에서도 몰랐던 내용이 많습니다. 예를 들자면 연어는 붉은살 생선인줄 알았는데 실은 흰살 생선 쪽이라고 합니다. 살색은 먹이인 새우와 개의 적색색소로부터 물든 것이라는군요. 같은 이치로 연어에 흰살 생선을 먹이면 살이 하얗게 된다고 합니다. 
또 밥을 가장 맛있게 보관하는 방법은 냉동 -> 냉장 -> 보온의 순서라고 합니다. 보온 밥통의 보온 기능은 실은 별 쓸모 없는 기능이네요. 차라리 "급속 냉동"이나"냉장" 으로 기능을 바꾸면 더 잘 팔릴지도 모르겠어요. 특허라도 내 볼까요?
이런 내용 외에도 요리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도움될 만한 이야기가 가득합니다.

하지만 문제라면 너무 과학적이라 읽기에 지루하고 쉽게 지친다는 점, 그리고 번역에 오류와 오타가 많다는 점입니다. 조리법과 재료로 책을 나누더라도 조금 더 넉넉하고 실제 사례 중심의 재미있는 내용을 추가했더라면 훨씬 좋았을 것 같고요, 조금 더 철저한 교정은 여러모로 아쉽습니다.
그래도 개인적으로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별점 2.5점은 충분하죠. 제가 읽은 구판은 절판되었고 개정판이 나왔던데 개정판은 저의 바램이 조금이나마 반영되었기를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