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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29

나쁜 토끼 - 와카타케 나나미 / 문승준 : 별점 2점

나쁜 토끼 - 4점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문승준 옮김/내친구의서재

<<아래 리뷰에는 진범과 진상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무라 아키라는 가출 소녀 미치루를 찾는 의뢰를 수행하던 중 칼에 찔리고 말았다. 하지만 이 사건을 해결한 덕분에 로열 할리우드 호텔 체인 회장 다키자와의 의뢰를 받았다. 미치루의 친구이기도 한 딸 미와를 찾아달라는 의뢰였다. 고압적인 다키자와 때문에 조사는 난항을 겪었지만, 미치루의 도움으로 공통의 친구였던 아야코가 미와 실종과 관련이 있다는걸 알아냈다.
그러나 아야코는 마약 중개인에게 살해당했고, 소녀들의 공통 친구인 가나도 실종되는 등 사건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갔고, 하무라 아키라도 납치당해 감금당하고 마는데....


와카타케 나나미의 이른바 '세계에서 가장 불행한 탐정' 하무라 아키라 시리즈 첫 장편. 국내 소개된건 얼마 되지 않았는데, 초기작이 지금 소개되는게 조금 뜻밖이었습니다.
하무라 아키라의 불행은 이 작품에서도 화려하게 펼쳐집니다. 단순한 가출 소녀를 집으로 데려오는 간단한 의뢰에 미친 강간마 탐정이 끼어드는 바람에 격투 끝에 발이 부러지고, 친구가 교제하는 남자가 사악한 혼인 빙자 사기범이라는걸 알게 되고, 또 다른 실종 소녀를 찾는 의뢰는 자기 밖에 모르는 아버지 때문에 처음부터 고생하다가 납치 당해서 이틀 동안이나 갖히게 되고 마지막에는 사냥 게임의 사냥감으로 죽을 뻔 하니까요. 이 정도면 시리즈 전체를 통틀어서도 불행과 고생으로는 1, 2위를 다툴만 합니다.

그러나 그 외에는 딱히 건질건 없더군요. 가장 큰 문제는 억지스러운 설정입니다. 비교적 현실적이며, 일본의 현실에 잘 어울리는 하드보일드물이라고 여겨지는 후기작 - 특히 살인곰 서점 시리즈 - 과 비교하면 확연히 차이가 날 정도에요. 부유하지만 고압적인 아버지를 중심으로 한, 다키자와 가족과 다이라 가족 묘사부터가 그러합니다 전형적인 하드보일드 스타일을 흉내내고는 있는데, 캐릭터들이 너무 비현실적이고 만화적이었거든요. 딸의 소유물은 마음대로 내다 버리면서 거액의 용돈을 주고 남자와 만나는건 아무렇게 생각하지도 않는 다키자와, 어린 시절 유괴당한 뒤 죽고만 아들을 못 잊어 딸을 아들이라고 생각하는 다이라 미치루의 엄마 등 도저히 공감할 수 없는 인물들이 한 가득입니다. 하무라 아키라의 불행을 강조하기 위해서인지는 모르지만, 대부분의 등장인물들이 자기만 아는 괴물로 묘사되는 것 역시 읽기도 불편했고 현실적이지도 못해서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범인들이 버젓이 사람을 죽이고, 납치하고, 경찰서에서 유력한 용의자가 눈에 젖가락을 꽂는 방법으로 자살한다는 식의 전개도 억지스러웠습니다. 왜냐하면 이게 "현대물"이기 때문입니다. 개중 백미는 작품에 등장하는, 남자 명사들의 모임 '28회'에서 사람을 사냥감으로 하는 게임을 했다는 진상이었습니다.
사실 사냥꾼이 사람을 사냥한다는 소재를 가진 장르 문학은 많이 있습니다. 자기 소유의 섬으로 난파해 온 생존자들을 사냥하는 게임을 즐긴다는 내용의 <<가장 위험한 게임>>이 우선 떠오르네요. SF <<불사 판매 주식회사>>에서도 고용한 인간 사냥꾼들과 승부를 펼치는 이야기가 등장하고요. 이 작품처럼 나름 상류층 사람들 모임에서 친목 행사로 사람 사냥이 벌어진다는 설정의 작품도 있습니다. 바로 단편 <<요트클럽>>이지요. 하지만 이 작품처럼 막 나가지는 않아요. <<불사 판매 주식회사>>은 이야기가 허구라는게 이미 시대 배경 등으로 등장하고, <<아주 위험한 게임>>은 개인 소유의 섬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인물이 벌이는 게임입니다. <<요트클럽>> 역시 망망대해에서 우연히 마주친 선박 승객들을 사냥감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그나마 말은 되고요. 그러나 현대 일본에서 노숙자도 아니고, 평범한 여학생들을 대상으로 사냥 게임을 한다? 그것도 여러차례에 걸쳐서? 아무리 봐도 억지스러우며 설득력도 낮습니다.
노나카가 이 사냥 게임 사냥감으로 쓰기 위해 돈이 필요하고 유혹에 빠지기 쉽고 시끄러운 주변 인물이 없는 젊은 여자를 찾고 있었다 하더라도, 친구 딸의 친구를 끌어들인다는 것도 설득력이 부족했습니다. 최소한 다른 연줄을 활용하는게 맞았어요. 이 건을 계기로 사기가 파토날 수도 있으니까요. 실제로도 그러했고요.

작위적이며 불필요했던 요소들도 너무 많아요. 가면을 쓰고있던 딸 미와를 사살한게 아버지 다키자와였다는게 대표적이지요. 하무라 아키라를 납치해서 이틀 동안 가두어 놓는다는 것도 말이 안됩니다. 정황을 보면, 감금 장소에 시체를 묻었다면 영원히 발견되지 않았을거에요. 범인들의 범죄 행각을 보면 하무라 아키라 한 명 더 죽인다고 해도 죄상이 달라질 것도 없고요. 사건이 커질걸 우려했다? 미와와 가나의 실종은 경찰도 알고 있었습니다. 고아나 다름없는 가나야 그렇다쳐도, 대기업 회장 다키자와의 딸 실종은 이야기가 다르지요. 이래저래 하무라 아키라를 죽여서 입을 막는게 당연했습니다.
이외에도 하무라의 친구 미노리가 혼인 빙자 사기범 우시지마 준타와 교제하면서 일어나는 트러블, 도토종합리서치 사원 세라가 일으킨 트러블들도 불필요한 이야기들이었습니다. 보통 정통 하드보일드는 아무런 관계가 없어보이는 트러블 들이 결국 하나의 방향을 가리키는데 반해, 이 작품에서는 요란스럽기만 할 뿐, 전개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그냥 분량만 차지할 뿐이지요.

추리적으로도 별볼일 없었습니다. 노나카가 범인이라는걸 추리해 낸 것처럼 그려지지만, 당연히 노나카밖에 용의자가 없게끔 이야기가 흘러갔기 때문에 대단한 추리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독자가 함께 고민해볼 만한 단서도 딱히 제공되지 않으며, 제목이자 게임의 유래가 되는 동요의 존재는 억지스럽기만 했습니다. 대부분의 수사는 탐문, 그리고 관계자들 증언을 통해서 나아가고 있어서 탐정이 딱히 필요한 이야기로 보이지도 않았고요.

물론 볼만한 부분이 없는건 아닙니다. 하무라 아키라라는 독특한 탐정에 대한 묘사만큼은 발군이에요. 그녀에 대한 세세한 일상 묘사로 소심하면서도 정의로운 그녀의 매력이 생생하게 전해집니다. 미와의 엄마 아스미가 자살한 탓에 노나카가 궁지에 몰리는 과정이라던가, 미치루가 발가락을 잘 쓰는게 특기라는 극 초반의 복선도 잘 활용되고 있고요. 악당들이 모두 몰락하고 만다는 결말은 특히 마음에 들었던 부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장점보다는 단점이 더 많다는건 분명합니다. 제 별점은 1.5점입니다. 후반부 작품들 수준에는 확연히 미치지 못합니다. 구태여 구해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2022/05/28

C.M.B. 박물관 사건목록(씨엠비) 45 (완결) - 카토우 모토히로 : 별점 2점

 

[고화질] C.M.B. 박물관 사건목록(씨엠비) 45 (완결) - 4점
카토우 모토히로 지음/학산문화사

드디어! Q.E.D의 스핀오프 C.M.B가 완결되었습니다. 제가 첫 리뷰를 올렸던게 2006년 12월이니, 무려 16여년의 세월을 함께 한 셈입니다.

수록된 작품은 두 편입니다. <<대단원>>은 이전 권에서 이어지는 이야기로, 대영박물관의 케이티 이사의 사악한(?) 음모를 분쇄한다는 내용입니다. 전편의 범인이었던 올드리치가 살아있었고, 신라가 살고 있는 곳을 알아내어 죽이려고 했지만 이는 신라의 함정이었지요. 신라가 살고 있던 곳은 케이티로부터 정보를 입수했기 때문에, 케이티도 살인 방조 혐의로 경력이 끝장나고 말고요.
나름 통쾌하기는 하지만 추리적으로 대단한건 없었습니다. 잘 짜여진 이야기라고 하기도 어렵습니다. 화재로 어떻게 될 지 모르는 박물관에서 극적으로 죽은척했지만 살아남는다는 올드리치의 계획부터가 억지스러웠으니까요. 이 계획은 올드리치가 범인임이 확정된 후, 여러 목격자들에게 박물관에서 죽음을 맞는다는걸 보여줘야 의미가 있었습니다. 이전 이야기처럼 혼자 신라를 죽이고 반지를 빼앗으려 했다면 불필요한 계획이었어요.

<<로마노프 왕조의 보물>>은 제목 그대로 타츠키가 로마노프 왕조의 보물을 찾아나서는 이야기입니다. 23살이 되어 문화재 복원가가 된 타츠키가 로마노프 왕조의 보물이 숨겨진 곳이 기록되었다는 오래된 일기의 복원 의뢰를 받은 뒤, 여차저차해서 일기를 썼던 일본인 타츠노스케의 발자취를 쫓아 러시아를 횡단해 나간다는 내용이지요.
역시나 추리적으로는 기대 이하였습니다. 의뢰인 미츠토시가 범인으로 타츠키 일행을 미행했다는 결말도 당황스러웠고, 중간에 등장하는 시체 소실 트릭도 억지스럽기 짝이 없었기 때문이에요. 시체를 두꺼운 기차 의자 시트 뒤에 감췄다가, 차장으로 변장해서 꺼냈다는 트릭인데 시체가 시트 뒤에 이렇게까지 숨겨질 정도로 시트가 두껍고 푹신할리가 없지요. 그림으로 그린 결과물도 억지스러웠으니 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이 에피소드의 유일한 가치는, 일종의 '도라에몽' 시공이라서 16년간 고등학생이었던 신라와 타츠키도 결국 성인이 되어 다시 만난 뒤 함께 '박물관'이라는 길을 걸어갈 것이라는걸 알려주는 에필로그밖에는 없습니다.

무려 16년의 세월을 함께 한 작품의 마무리치고는 너무 별로라 아쉽지만, 그래도 완결되었다는데 큰 의미를 두고 별점은 2점 주겠습니다. 이제 Q.E.D에 보다 집중해 주면 좋겠네요.

마지막으로, 완결을 기념하여, 그동안 CMB에 등장했던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을 꼽으며 리뷰를 마칩니다. 이 목록만 보아도 20권 중반~30권 후반까지가 재미면에서 최전성기 구간이었던게 확인되네요.

<<씨엠비 CMB 박물관 사건목록 43>> : <<치과>>
<<씨엠비 CMB 박물관 사건목록 39>> : <<상상 속 살인>>
<<씨엠비 CMB 박물관 사건목록 37>> : <<광구>>, <<고양이 꼬리>>
<<씨엠비 CMB 박물관 사건 목록 36>> : <<산의 의사>>, <<카스미장 사건>>
<<씨엠비 CMB 박물관 사건목록 35>> : <<도토리와 솔방울>>
<<씨엠비 C.M.B 박물관 사건목록 34>> : <<낡은 집>>
<<씨엠비 C.M.B 박물관 사건목록 32>> : <<혼선>>
<<씨엠비 C.M.B 박물관 사건목록 31>> : <<지옥혈>>
<<씨엠비 C.M.B 박물관 사건목록 30>> : <<소우야 군의 실종>>
<<씨엠비 C.M.B 박물관 사건목록 25>> : <<백 스토리>>, <<향목>>
<<씨엠비 C.M.B 박물관 사건목록 24>> : <<다이아몬드 도둑>>, <<옷장 속의 유령>>
<<씨엠비 C.M.B 박물관 사건목록 23>> : <<네 번째 코테에>>
<<씨엠비 C.M.B 박물관 사건목록 22>> : <<여름 보충 수업>>, <<유리의 낙원>>, <<나선 골동품점>>
<<씨엠비 C.M.B 박물관 사건목록 14>> : <<주사위게임>>, <<꽃집 아가씨>>
<<씨엠비 C.M.B 박물관 사건목록 12>> : <<노파와 원숭이>>
<<씨엠비 C.M.B 박물관 사건목록 11>> : <<마루지메네코>>
<<씨엠비 C.M.B 박물관 사건목록 3>> : <<도시전설>>
<<씨엠비 C.M.B 박물관 사건목록 2>> : <<파란 빌딩>>, <<저주의 가면>>
<<씨엠비 C.M.B 박물관 사건목록 1>> : <<의태>>

세상에서 가장 친절한 중국 건축 이야기 - 자오광차오, 마젠충 / 이명화 : 별점 2.5점

세상에서 가장 친절한 중국 건축 이야기 - 6점
자오광차오.마젠충 지음, 이명화 옮김, 한동수 감수/다빈치

제목만 보면 중국 건축에 대한 미시사, 건축사 책으로 여겨지지만 실상은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입니다.
건축의 기초가 되는 석재, 벽 등을 만드는 흙, 기둥과 지붕을 받치는 나무, 사람이 집을 짓는 타와 그 주변의 사람들에 대해 여백이 많은 그림과 글로 설명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그림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채지충의 그림이 떠오르는 가벼운 선 중심인데, 디테일을 알려주는 부분은 정교하고 컬러도 깔끔하면서 동양적으로 채색되어 있어서 하나하나가 빼어난 일러스트 작품으로 손색이 없거든요.

아래의 백석 난간에 대한 설명처럼 그림으로 건축 구조를 설명해주는 도감같은 구성이 없는건 아니며, 이런 부분의 완성도도 높은걸 보면 저자의 도감식 구성 작품을 한 번 구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러나 아무래도 중국 건축물에 대한 설명은 부족했고, '작업노트'라는, 재밍와 가치가 느껴지지 않는 내용이 뒷부분 30여 페이지에 이르는 분량으로 수록되어 있는건 감점 요소입니다. 가격에 비하면 170페이지도 안되는 분량도 아쉬웠고요.

그래서 별점은 2.5점. 선뜻 권해드리기 어려운 점도 있지만 여백이 많은, 어른을 위한 그림책 장르를 좋아하시면 한 번 읽어보셔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2022/05/22

제노사이드 - 다카노 가즈아키 / 김수영 : 별점 2.5점

 

제노사이드 - 6점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김수영 옮김/황금가지

<<아래 리뷰에는 소설 결말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대학원생 고가 겐토는 아버지의 장례식을 마친 뒤, 아버지가 보낸 수수께끼의 메일을 통해 기묘한 노트북과 거액, 그리고 은신처를 입수하였다. 처음에는 아버지의 불륜을 의심했지만, 곧 아버지가 '폐포 상피 세포 경화증'의 치료약을 만들고 있었다는걸 알게되었다. 영문도 모른채 경찰에 쫓기게 되자 겐토는 은신처에 숨어 아버지의 연구를 이어받는다.
한 편, 아프리카에서 예거가 이끄는 용병 4명에 의한 '네메시스 계획'이 진행되었다. 피그미 족 부부에게서 태어난 초인류 아키리를 말살하는 미국 주도의 작전이었다. 그러나 미 정부는 용병들도 모두 죽일 생각이었고, 이를 알아챈 용병들은 아키리와 손을 잡고 아프리카를 빠져나갈 계획을 세우는데...


다카노 가즈아키의 장편 과학 액션 스릴러. 아프리카 탈주극과 일본에서 약을 제조하려는 겐타의 이야기라는 두 개의 큰 축을 가지고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이 중 아프리카 탈주극, 즉 미국 정부가 진화한 초인류 아키리를 말살하려 하지만, 아키리 일행이 이를 뿌리치고 아프리카를 탈출하기 위해 벌이는 여러가지 모험들은 아주 재미있었습니다. 무제한의 자금은 물론, 거의 대부분의 정보를 쥐고 있는 미국 정부의 목표물이 살아남기 위해 벌이는 여러가지 계획들의 짜임새가 돋보였기 때문입니다. 작가의 설정도 괜찮았습니다. 사실 이 작전에 정식 미국 군대가 투입되었다면 아무리 초인류의 지능이라도 아키리 일행이 살아남기는 불가능했을거에요. 그러나 정치적, 외교적으로 섣불리 정식 군대를 투입할 수 없었기에 소수의 용병을 고용하여 작전을 실행했고, 이들을 막아서는건 미군이 아니라 현지 무장 단체라는 상황이 조성되어 그나마 탈출할 수 있었으니까요. 이를 내다본 아키리 일행이 자기들이 포섭하여 탈출에 활용할 수 있는 인물들로 용병들을 구성했다는 것도 꽤 그럴싸했고요.
작전에 참여한 용병들의 이력과 그들의 능력은 물론, 도주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겪는 아프리카 무장 단체와의 교전도 생생하게 묘사되고 있습니다. 제일 압권은 클라이막스라 할 수 있는, 소년병 집단과의 교전이었어요. 아이를 살리기 위해서 아이를 죽여야 하는 딜레마가 실존했던 아프리카에서의 소년병 징집과 훈련 역사와 맞물려 극대화되어 표현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에 등장하는, 아키리의 누나 에마가 일본에서 이들을 도와주고 있었다는 반전도 괜찮았습니다. 아키리의 능력만으로는 어려웠을 여러가지 일들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가 명쾌하게 설명되면서도, 초인류의 가공할 능력을 잘 선보이고 있기도 하니까요.

이런 밀리터리 스릴러스러운 이야기 외에도 '초인류'의 존재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도 볼거리였습니다.
만약 지금 인류의 지성을 아득히 뛰어넘는 초인류가 진화의 결과 나타난다면, 그는 인류를 어떻게 할 것인가? 에 대해 화두를 던지고, 이에 대해 등장인물들 (주로 루벤스)의 입을 빌어 털어놓는 작가의 생각이 아주 흥미로왔던 덕분입니다. 초인류가 무서운 것도 그의 지력과 무력이 아니라, 그것을 사용하는 이의 인격이라 말하며 이를 현재 인류에 빗대는 장면이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현재 인류가 얼마나 호전적이고 폭력적인지에 대한 설명을 여러 명의 입을 통해 쌓아올리다가, 아프리카에서의 잔혹한 체험에 뒤 이어 이야기하니까 훨씬 더 와 닿았던 것 같네요.
미국은 민주주의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일종의 독재 국가로 그 리더가 누구냐에 따라 전 세계적인 위협을 초래할 수 있다는 현실을 드러내는 번즈 대통령을 비롯한 여러 캐릭터들도 잘 그려내고 있습니다. '반대 의견의 문제점은 꼬치꼬치 따지면서 배제하고, 찬성하는 사람들만 주위에 가득하게 채워 가는 것'은 미국 정부 뿐 아니라 작은 회사에서도 흔히 보아왔던 일인데, 이렇게 설명되니 이해가 쉬워서 좋았고요.
'하이즈먼 리포트'를 중심으로 한 초인류가 탄생할 수 있는 여러가지 가능성에 대한 그럴듯한 이론들 등 작가의 생각을 설명하기 위해 방대한 자료를 근거로 제시하고 있는 부분에서는 굉장한 노력이 느껴졌습니다.
덧붙이자면 저 개인적으로는 '초인류'가 나타났다 하더라도, 그 개체 한 명이 과연 인류에게 위협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조금 회의적입니다. 실제로 이 작품에서도 아키리 혼자서는 절대로 살아남지 못했을테니까요. 현생 인류의 지성을 아득히 뛰어넘어 온갖 자연 현상마저도 예측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현대 무기를 이겨내지 못한다는 한계는 존재하고요. 노화와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것 역시 분명합니다. 즉, 최소한의 '세력'을 형성할 수 있는 개체수가 필요합니다. 물론 잘 성장한다면 지극히 '신'에 가까운 존재가 될 테니, 인류에게 위협이라는건 분명한 사실입니다만, 한, 두명으로는 조금 버거운 것도 사실이지요.

하지만 다른 한 개의 축, 일본에서 겐토가 아버지의 유지를 이어받아 에마가 만든 프로그램 기프트를 활용하여 '폐포 상피 세포 경화증'이라는 불치병을 치료하는 약을 만들어 낸다는 이야기는 솔직히 별로였습니다. 아버지의 의문의 죽음 이후, 아버지로부터 기묘한 메시지를 받고 우연찮게 노트북을 손에 넣기까지의 과정은 재미있어요. 신약 개발에 대한 디테일도 엄청난 수준이고요. 그러나 평범했던 주인공이 급작스럽게 '세계를 위해' 일했던 아버지의 유지를 이어받고, 이를 막으려는 거대 조직과 싸운다는 일본 만화 등에서 수도 없이 보아왔던 전형적인 설정에서 그다지 나아가지는 못했습니다. 경찰에게 쫓긴 뒤 은신처에 잠입하고 나서부터는 딱히 위협도 없어서 재미도 떨어지고요. 오히려 겐토가 이 약을 만드는데 거의 목숨까지 거는 이유가 제대로 설명되지 못하는 단점이 더 크게 다가왔습니다. 약을 만들어내는데 성공하여 과학자로 한 걸음 나아가고, 아버지에 대해 되새기게 되는 성장기스러운 부분도 지나칠 정도로 전형적이었어요.
또 겐토 이야기가 이렇게 많은 비중을 차지할 이유도 없었습니다. 아키리를 죽이려고 했던 용병단 리더 예거의 아들이 이 병에 걸렸고, 예거를 자신들의 편으로 만들기 위해 약을 만드는 것 처럼 묘사되고 있지만 이 계획은 헛점이 너무 많습니다. 예거가 이런 터무니없는 말만 믿고 아키리를 돕게 된다는게 과연 말이나 될까요? 예거의 아들이 작전 완료 시점까지 살아있을 가능성, 약이 그 때까지 완성되리라는 보장도 없고요. 용병들을 설득하는건 미 정부가 그들에게 준 약이 독약이라는걸 증명하는걸로 충분했을겁니다. 실제로도 그랬고요. 즉, 겐토 이야기는 모두 빼더라도 이야기 전개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습니다. 겐토의 가장 중요한 조력자로 한국인 유학생 '정훈'이 등장하는 부분은 한국인 독자로서 반가왔지만 이 역시 큰 줄기의 이야기와는 관계가 없다는 점은 마찬가지였어요.
하긴 애초에 아프리카 탈출부터가 문제입니다. 아프리카에서 그냥 탈출해서 은신하면 되었을 텐데, 왜 자기 존재를 노출하여 스스로를 위험에 빠트리는지가 전혀 설명되지 않으니까요. 초인류가 생각해 낼 만한 작전치고는 헛점이 너무 많았습니다. 헛점은 그 외에도 많아요. 용병단 구성도 안배된 것으로 보이지만 일본인 믹이 왜 포함되었는지는 불분명하고, 마지막에 전투기를 자연 현상으로 격추하는 부분도 완벽한 초인류의 예측과는 별개로 조종 자체는 불완전한 '인간'이 하기 때문에 제대로 된 계획이라고 하기는 힘듭니다. 여객기 추락 후 피어스 해운의 배가 근처를 지나간다는걸 미정부가 놓쳤다는 결말도 안일하기 짝이 없고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재미는 있었지만, 설득력이 낮은 부분이 많아서 아쉬웠습니다. 일본에서의 이야기를 구태여 삽입할 필요 없이, 아프리카에서의 탈출 계획만 정교하게 그려내었더라면 훨씬 좋았을 겁니다. 악의 우두머리도 미국 대통령보다는 CIA 국장 쯤으로 하는게 보다 현실적이었을테고요. 만화로 각색된 버젼이 있다면 한 번 읽어보고 싶네요.

마지막으로, 그간 격조했던 이유는 리뷰를 쓰기 위해 이용하는 에버노트 모바일 버젼이 심각하게 느려지고, PC와 동기화가 되지 않는 문제가 생겼던 탓입니다. 그동안 모바일로 썼던 글 여러 편을 날려먹었네요. 십 년도 넘게 사용해 왔지만, 에버노트를 버려야하나 심각하게 고민 중입니다....

2022/05/14

달러구트 꿈 백화점 - 이미예 : 별점 2점

 

달러구트 꿈 백화점 - 4점
이미예 지음/팩토리나인

백만부가 넘게 판매된 초 베스트셀러. 꿈을 만들고 판매하는 세계가 있고, 여기서 어떤 꿈을 어떻게, 무엇을 위해 만들고 누가 그 꿈을 사가는지, 그리고 그 꿈이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되는지에 대한 이야기.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보기 힘들었던 세계관인데 독특한 설정들을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판타지 설정에 더해 수록된 이야기들 모두 착하고 긍정적입니다. 이러한 점들로 볼 때,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고 할 수 있겠지요. 이 책이 많은 인기를 끈 이유도 이 때문일 걸로 짐작됩니다. 팍팍한 현실에 지친 어른들이 쉽게 읽을 수 있는, 착한 힐링물이거든요. 이런 류의 이야기는 일본 작품에 많은데, 한국 작가가 한국인들을 등장인물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갔다는 점도 좋은 평가를 받는데 큰 도움을 주었을 테고요.
꿈을 소재로 한 판타지는 많지만, 보통 꿈을 조종하거나, 꿈이 현실이 되거나 하는 식인데 반해, 꿈은 꾸는게 아니라 '사는 것' 이라는 독특한 설정으로 이야기를 풀어낸 것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아울러 IoT라던가 자율 주행 자동차, 업데이트 관련 설명이 살짝 지나가는 부분이 묘하게 디테일해서 인상적이었습니다. 작가가 공대를 졸업한 엔지니어 출신인 덕분이었다 생각되네요.

하지만 저는 선뜻 추천하지는 못하겠습니다. 일단 기본 설정부터가 '기묘한 물건을 파는 독특한 가게의 이상한 주인'이라는 널리고 널린 설정의 변주에 불과합니다. <<펫숍 오브 호러즈>> 등에서는 기묘한 물건을 사 간 사람들이 기묘한 물건 덕을 보다가, 지켜야 할 규칙을 지키지 못해 파국이 닥치는 식인데 이 작품은 그런 반전도 없어요. 그냥 사간 물건의 효과를 이용하는게 전부거든요. 달러구트 등 등장인물들도 어디선가 많이 보아왔던 설정을 재탕한 느낌입니다.
그리고 장편 소설이라고 홍보하는 것 치고는 담겨 있는 이야기도 빈약합니다. 꿈 백화점과 달러구트를 비롯한 관계자들에 대한 설정 소개가 거의 1/3에 이르며, 꿈에 대한 이야기들은 에피소드들처럼 짧게 지나갈 뿐이니까요. 그나마도 대체로 상상할 수 있는 범위 내였습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입니다. 어린 학생들이라면 모를까, 어른들이 읽을만한 작품은 아니었습니다. 차라리 청소년용이었다면 더 좋은 점수를 주었을 거에요. 나중에 조금 더 짧게 요약하고, 설명대신 일러스트를 곁들인 청소년용 버젼이 출간된다면 제 딸에게는 권해주고 싶네요.

2022/05/07

요리 만화들 짤막한 감상 (10)

 

남자의 면 - 4점
츠치야마 시게루 지음/미우(대원씨아이)

츠치야마 시게루 화백의 먹부림 만화. 면과 라쿠고를 너무나 사랑하는 영업맨 이케다 멘타로가 이런저런 면 요리들을 먹으며 겪는 일화들 여섯 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소바와 우동, 냉면과 오키나와 소바, 나고야면 (기시면, 녹말소스 스파게티, 타이완 라면, 된장곰탕 우동), 라면, 야키소바 등 평범한 면들이 소개되며 에피소드들도 평범한 직장인들이 마주칠 법한 이야기가 많습니다. 내용도 모든 면은 다 맛있다! 류의 만만세 해피엔딩이 대부분이고요. 대기업 츠카모토 전기 회장이 등장하는 에피소드가 있기는 하지만, <<맛의 달인>>처럼 면 요리로 모두가 하나된다는 결말입니다.
조금 주목할만했던 건, 주인공이 이케다 멘타로이기는 한데, 이야기를 끌고나가는 주체는 면 요리라는 점이었습니다. 이케다 멘타로가 주도적으로 뭔가를 하는건 초반의 두, 세 개 정도이며, 다른 이야기들은 전부 그냥 면 요리를 먹으면서 이야기가 생겨나는 식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장인 정신이 지나친 라면 가게를 '진검 승부' 하는 집이라며 마음에 들어해서 좋아하는 여직원을 데리고 갔지만, 즐겁게 먹는게 더 중요하다는 그녀의 말에 정신을 차린다는 이야기처럼요.

하지만 역시나, 다른 요리, 먹부림 만화와 확실히 구분되는 무언가를 찾기 힘들기는 했습니다. 그래서 여섯 편의 에피소드만 남기고 사라졌겠지요. 면 요리 만큼은 정말로 맛있게 그려지기는 했지만, 이 정도만으로 넘쳐나는 먹부림 만화 시장에서 살아남기는 어려웠을겁니다. 제 별점은 2점입니다.


<<미식가 탐정 료지 1,2>>
블랙 잭을 닮은 요리사 아지사와 료헤이가 등장하는 만화 '더 쉐프' 시리즈의 작가 카토 타다시의 작품. 만화 도서관 Z에서 무료로 읽어 볼 수 있습니다. 뭐 볼게 없나 하고 뒤져보다가 제목에 호기심이 동해서 읽어보게 되었네요.

그런데 내용은 생각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제목만 보았을 때에는 음식과 추리가 결합된, <<절대미각 식탐정>> 류의 추리물로 생각했었는데 전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이유는 추리의 비중이 극히 낮은 탓이에요. 등장하는 탐정 소재 이야기 중 볼만했던건 부사장파와 전무파가 세력 다툼을 하는 회사에서 전무파의 핵심 인물인 개발부부장 뒷조사를 위해 그의 집에 잠입해서 PC를 열어보는 에피소드 뿐이었으니까요. 이를 통해 부장이 컬트 (사이비) 교단 핵심 관계자였다는게 드러나게 되지요. 북해도 출신 가출 소녀를 찾을 때, 사투리를 무심코 대답하게 만드는 작전도 나쁘지는 않았습니다만, 이외에는 탐정 업무로 볼 만했던 내용은 없었습니다. 대부분 불륜 조사로 미행 후 호텔로 들어가는 사진을 찍는 정도이며, 그 외에는 아들 결혼 상대에 대한 상세 조사, 데릴 사위에 대한 탐문 조사 등이 전부입니다.

반면 음식, 요리 관련 이야기는 이야기에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합니다. 주인공 탐정 렌죠 료지부터가 일류 요리집 쥬가와의 주인 토가와의 아들로 요리에 굉장히 박식하고 능숙하다는 설정이거든요. 초반부는 그가 조사 및 탐문 과정에서 우연히 먹게 된 요리가 너무 형편없어서 한 마디 했다가 결국 그 요리를 업그레이드시켜준다는 전개가 많고요.
하지만 이런 전개는 억지의 극치죠. 탐정이 이런 일을 해 줄 이유가 없잖아요? 작가도 억지라는걸 알았는지 뒤로 갈 수록, 탐정업 보다는 요리에 집중합니다. 요리 승부가 계속 펼쳐지는 식으로요. 흥미를 돋우는 효과는 있지만 문제는 작품의 정체성이 사라져 버리고 만다는 겁니다. 욱 하는 성격으로 승부를 한다고 해도 한 두번이지, 세 편 연속 요리 승부는 지나쳤고요.
아울러 렌죠 료지와 그의 아버지에 얽힌 이야기는 <<맛의 달인>>과 흡사해서 도저히 좋은 점수를 줄 수 없습니다. 렌죠 료지가 맛없는 음식을 먹으면 바로 발끈하며 비판하는 모습, 그리고 그의 목표가 아버지로부터 자기가 만든 요리가 '맛있다'는 이야기를 듣는 것이었다는 등 캐릭터 설정도 <<맛의 달인>>과 거의 똑같더라고요.

그래서 별점은 1.5점. 추리, 요리 만화 붐에 편승해서 이런저런 인기있는 소재를 가져다 썼지만 결과물은 영 신통치 않았던 망작입니다. 유일한 장점은 공짜로 볼 수 있었다는게 전부였어요.

요리 만화들 짤막한 감상 (9)

2022/05/06

C.M.B. 박물관 사건목록(씨엠비) 44 - 카토우 모토히로 : 별점 1.5점

[고화질] C.M.B. 박물관 사건목록(씨엠비) 44 - 4점
카토우 모토히로 지음/학산문화사

NBA와 프로야구를 챙겨보는 바람에 책을 읽을 짬이 도통 나지 않는 요즈음입니다. 그래서 가볍게 읽을 수 있는 만화를 주로 읽게 되네요. 잊고 지내다가 Q.E.D 신작이 나와서 리뷰를 올렸었는데, C.M.B는 아예 완결까지 되었더라고요. 그래서 바로 찾아서 읽어보았습니다.
그동안 C.M.B는 한 권에 단편 3~4편으로 이루어진 구성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권은 <<C.M.B. 살인사건>>이라는 이야기 단 한편으로만 이루어져 있다는게 특이하더군요. 마지막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되네요. 상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읽으시기 전 참고 부탁드립니다.

대영박물관에서 3개의 C.M.B 반지가 신라 한 명에게 주어져있다는걸 못마땅하게 여긴 것에서 사건은 시작됩니다. 연구 비용을 원하는 학자들의 불만도 폭주했고요. 그래서 박물관은 신라가 가지고 있는 3개의 반지 중 2개를 박물관이 선정한 학자 5명 중 누군가에게 넘겨줄 것, 그리고 신라가 켐브리지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딴 뒤 교수로 일할 것을 요청합니다. 이 협상을 위해서 신라는 타츠키와 함께 영국 런던을 찾습니다.
그러나 5인의 학자 후보 중 한 명인 메이슨이 밀실에서 살해되었고, 당연히 신라가 유력한 용의자로 몰립니다. 신라는 알리바이를 증명해서 풀려나지만, 그 뒤 일본을 찾아왔던 3명의 학자들도 차례로 공격받아서 테렌스 행크는 죽고 베르다는 중상을 입습니다. 마지막에 신라의 박물관을 범인이 찾아와 신라와 대결을 펼치게 되지요.

이렇게 긴 이야기를 통해 C.M.B 반지를 버리기로 신라가 결심하는 등 시리즈 전체로 놓고 보면 중요한 전개가 이루어지는데, 추리적으로는 영 아니었습니다. 메이슨 밀실 살인 사건은 MRI의 강력한 자력을 이용하여 묶여있던 메이슨이 칼에 찔리게 만들었다는 트릭이고, 이미 죽은 테렌스 행크가 신라를 습격한 일본에서의 사건도 범인 올드리치가 행크의 시체를 등에 짊어지고 있다가 내던졌다는 트릭이 사용되고 있는데 두 가지 모두 납득하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만화니까 그런대로 볼만했달까, 설득력을 느끼기는 힘들었어요. 마지막에 올드리치가 신라의 박물관에서 신라와 일기토를 벌이는 장면도 지나치게 작위적이었고요. 불타는 박물관 공룡 화석 위에서 액션을 펼치는건 아동용 모험 만화와 다름 없었습니다.
메이슨 사건은 미이라가 관련되어 있기에 '몰약', 테렌스 행크 사건은 피해자가 황금 가면을 쓰고 있어서 '황금', 박물관에 불을 지른건 '유향'이 관련되어 있고 이 세 가지 키워드는 C.M.B의 뜻인 동방박사 3인과 연결된다는 장치도 정작 사건과는 별 관계가 없어서 실망스러웠습니다. 그냥 현학적인 분위기를 불러일으키는 장치로만 사용되었는데, 최소한 올드리치하고는 연결이 되었어야 했었습니다. 

물론 올드리치가 베르다를 태우고 운전할 때, 베르다가 네비게이션을 보는 틈을 노려서 일부러 차를 트럭에 부딪히게 만들고 누군가 공격했다고 주장했던 사건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오랫동안 추리 만화를 그려온 작가의 내공이 어느정도 엿보였달까요? 신라가 반지를 버리고 스스로의 길을 걸어가겠다고 결심하는 장면도 시리즈의 오랜 팬으로서는 납득할만한 괜찮은 마무리였다 생각되고요.

그러나 장점은 크지 않습니다. 오히려 시리즈 대미를 장식하는 이야기치고는 너무 별로라는 점에서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별점은 1.5점입니다. 빨리 다음 권을 읽고 시리즈에서 손을 떼는게 낫겠어요. 직전에 읽었던 Q.E.D도 실망스러웠지만 이에 비하면 선녀였다는게 더 놀랍습니다...

2022/05/01

아랑전 - 유메마쿠라 바쿠 / 타니구치 지로 : 별점 2점

餓狼傳 (MF文庫) (文庫) - 4점
유메마쿠라 바쿠/メディアファクトリ-

'화력' 하나로 일가를 이룬, 고 타니구치 지로의 격투 액션 만화. 유메마쿠라 바쿠의 소설이 원작입니다. 국내에서는 <<바키>> 시리즈의 이타가키 케이스케가 작화를 맡았던 버젼이 세주 문화사를 통해 출간되었었지요. 저도 이타가키 케이스케 버젼으로만 접해보았었습니다. 국내에는 소개된 적이 없기도 하고요. 타니구치 지로의 팬이기도 하고, 오래 전 <<만화의 시간>>에서 추천한 작품이라 관심을 가졌었는데, 운좋게 일본어 문고본을 구해서 읽어보게 되었네요.

<<만화의 시간>>에서 언급했듯, '싸움' 묘사만큼은 발군이더군요. 타니구치 지로가 잔잔한 만화 뿐 아니라 이런 만화도 그릴 수 있다는걸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히 정말 아프겠다!는 생각이 드는, 아래와 같은 여러 관절기 묘사가 아주 일품이었어요. 타격기에서 관절기로 넘어가는 등의 격투 장면 연결도 깔끔하고 유려했고요.



그러나 제대로 완결되지 않았다는 문제가 너무 큽니다. 주인공 탄바 분시치가 북진관의 이즈미, 그리고 프로레슬러 카지와라 두 명과 겨루는 묘사가 거의 전부로 작품은 카지와라와의 승부 이후 급작스럽게 마무리되거든요. 이후 벌어질 가라데와 프로레슬러들간의 세력 다툼과 그 속에서 탄바가 어떤 싸움을 해 나가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제자처럼 탄바를 따르게 된 쿠보가 어떻게 되는지, 숙적처럼 묘사되는 히메카와와의 승부는 어떻게 나는지 등 뿌려놓은 떡밥들도 제대로 회수되지 못하고요. <<만화의 시간>>에 따르면 연재하던 잡지의 폐간 탓이라고 하는데, 여러모로 애석합니다. 개인적으로 과장이 심한 이타가키 케이스케의 작화를 좋아하지 않아서, 현실적인 타격감과 고통 가득한 타니구치 지로의 작화로 이 멋진 작품을 즐기고 싶었는데 말이지요.

그래서 별점은 2점. 작화와 내용 모두 훌륭하지만 완결되지 못했다는 점 때문에 제대로 된 평가는 불가하여 감점합니다. 같은 이유로 국내에 소개되기도 힘들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