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토끼 -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문승준 옮김/내친구의서재 |
<<아래 리뷰에는 진범과 진상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무라 아키라는 가출 소녀 미치루를 찾는 의뢰를 수행하던 중 칼에 찔리고 말았다. 하지만 이 사건을 해결한 덕분에 로열 할리우드 호텔 체인 회장 다키자와의 의뢰를 받았다. 미치루의 친구이기도 한 딸 미와를 찾아달라는 의뢰였다. 고압적인 다키자와 때문에 조사는 난항을 겪었지만, 미치루의 도움으로 공통의 친구였던 아야코가 미와 실종과 관련이 있다는걸 알아냈다.
그러나 아야코는 마약 중개인에게 살해당했고, 소녀들의 공통 친구인 가나도 실종되는 등 사건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갔고, 하무라 아키라도 납치당해 감금당하고 마는데....
와카타케 나나미의 이른바 '세계에서 가장 불행한 탐정' 하무라 아키라 시리즈 첫 장편. 국내 소개된건 얼마 되지 않았는데, 초기작이 지금 소개되는게 조금 뜻밖이었습니다.
하무라 아키라의 불행은 이 작품에서도 화려하게 펼쳐집니다. 단순한 가출 소녀를 집으로 데려오는 간단한 의뢰에 미친 강간마 탐정이 끼어드는 바람에 격투 끝에 발이 부러지고, 친구가 교제하는 남자가 사악한 혼인 빙자 사기범이라는걸 알게 되고, 또 다른 실종 소녀를 찾는 의뢰는 자기 밖에 모르는 아버지 때문에 처음부터 고생하다가 납치 당해서 이틀 동안이나 갖히게 되고 마지막에는 사냥 게임의 사냥감으로 죽을 뻔 하니까요. 이 정도면 시리즈 전체를 통틀어서도 불행과 고생으로는 1, 2위를 다툴만 합니다.
그러나 그 외에는 딱히 건질건 없더군요. 가장 큰 문제는 억지스러운 설정입니다. 비교적 현실적이며, 일본의 현실에 잘 어울리는 하드보일드물이라고 여겨지는 후기작 - 특히 살인곰 서점 시리즈 - 과 비교하면 확연히 차이가 날 정도에요. 부유하지만 고압적인 아버지를 중심으로 한, 다키자와 가족과 다이라 가족 묘사부터가 그러합니다 전형적인 하드보일드 스타일을 흉내내고는 있는데, 캐릭터들이 너무 비현실적이고 만화적이었거든요. 딸의 소유물은 마음대로 내다 버리면서 거액의 용돈을 주고 남자와 만나는건 아무렇게 생각하지도 않는 다키자와, 어린 시절 유괴당한 뒤 죽고만 아들을 못 잊어 딸을 아들이라고 생각하는 다이라 미치루의 엄마 등 도저히 공감할 수 없는 인물들이 한 가득입니다. 하무라 아키라의 불행을 강조하기 위해서인지는 모르지만, 대부분의 등장인물들이 자기만 아는 괴물로 묘사되는 것 역시 읽기도 불편했고 현실적이지도 못해서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범인들이 버젓이 사람을 죽이고, 납치하고, 경찰서에서 유력한 용의자가 눈에 젖가락을 꽂는 방법으로 자살한다는 식의 전개도 억지스러웠습니다. 왜냐하면 이게 "현대물"이기 때문입니다. 개중 백미는 작품에 등장하는, 남자 명사들의 모임 '28회'에서 사람을 사냥감으로 하는 게임을 했다는 진상이었습니다.
사실 사냥꾼이 사람을 사냥한다는 소재를 가진 장르 문학은 많이 있습니다. 자기 소유의 섬으로 난파해 온 생존자들을 사냥하는 게임을 즐긴다는 내용의 <<가장 위험한 게임>>이 우선 떠오르네요. SF <<불사 판매 주식회사>>에서도 고용한 인간 사냥꾼들과 승부를 펼치는 이야기가 등장하고요. 이 작품처럼 나름 상류층 사람들 모임에서 친목 행사로 사람 사냥이 벌어진다는 설정의 작품도 있습니다. 바로 단편 <<요트클럽>>이지요. 하지만 이 작품처럼 막 나가지는 않아요. <<불사 판매 주식회사>>은 이야기가 허구라는게 이미 시대 배경 등으로 등장하고, <<아주 위험한 게임>>은 개인 소유의 섬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인물이 벌이는 게임입니다. <<요트클럽>> 역시 망망대해에서 우연히 마주친 선박 승객들을 사냥감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그나마 말은 되고요. 그러나 현대 일본에서 노숙자도 아니고, 평범한 여학생들을 대상으로 사냥 게임을 한다? 그것도 여러차례에 걸쳐서? 아무리 봐도 억지스러우며 설득력도 낮습니다.
노나카가 이 사냥 게임 사냥감으로 쓰기 위해 돈이 필요하고 유혹에 빠지기 쉽고 시끄러운 주변 인물이 없는 젊은 여자를 찾고 있었다 하더라도, 친구 딸의 친구를 끌어들인다는 것도 설득력이 부족했습니다. 최소한 다른 연줄을 활용하는게 맞았어요. 이 건을 계기로 사기가 파토날 수도 있으니까요. 실제로도 그러했고요.
작위적이며 불필요했던 요소들도 너무 많아요. 가면을 쓰고있던 딸 미와를 사살한게 아버지 다키자와였다는게 대표적이지요. 하무라 아키라를 납치해서 이틀 동안 가두어 놓는다는 것도 말이 안됩니다. 정황을 보면, 감금 장소에 시체를 묻었다면 영원히 발견되지 않았을거에요. 범인들의 범죄 행각을 보면 하무라 아키라 한 명 더 죽인다고 해도 죄상이 달라질 것도 없고요. 사건이 커질걸 우려했다? 미와와 가나의 실종은 경찰도 알고 있었습니다. 고아나 다름없는 가나야 그렇다쳐도, 대기업 회장 다키자와의 딸 실종은 이야기가 다르지요. 이래저래 하무라 아키라를 죽여서 입을 막는게 당연했습니다.
이외에도 하무라의 친구 미노리가 혼인 빙자 사기범 우시지마 준타와 교제하면서 일어나는 트러블, 도토종합리서치 사원 세라가 일으킨 트러블들도 불필요한 이야기들이었습니다. 보통 정통 하드보일드는 아무런 관계가 없어보이는 트러블 들이 결국 하나의 방향을 가리키는데 반해, 이 작품에서는 요란스럽기만 할 뿐, 전개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그냥 분량만 차지할 뿐이지요.
추리적으로도 별볼일 없었습니다. 노나카가 범인이라는걸 추리해 낸 것처럼 그려지지만, 당연히 노나카밖에 용의자가 없게끔 이야기가 흘러갔기 때문에 대단한 추리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독자가 함께 고민해볼 만한 단서도 딱히 제공되지 않으며, 제목이자 게임의 유래가 되는 동요의 존재는 억지스럽기만 했습니다. 대부분의 수사는 탐문, 그리고 관계자들 증언을 통해서 나아가고 있어서 탐정이 딱히 필요한 이야기로 보이지도 않았고요.
물론 볼만한 부분이 없는건 아닙니다. 하무라 아키라라는 독특한 탐정에 대한 묘사만큼은 발군이에요. 그녀에 대한 세세한 일상 묘사로 소심하면서도 정의로운 그녀의 매력이 생생하게 전해집니다. 미와의 엄마 아스미가 자살한 탓에 노나카가 궁지에 몰리는 과정이라던가, 미치루가 발가락을 잘 쓰는게 특기라는 극 초반의 복선도 잘 활용되고 있고요. 악당들이 모두 몰락하고 만다는 결말은 특히 마음에 들었던 부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장점보다는 단점이 더 많다는건 분명합니다. 제 별점은 1.5점입니다. 후반부 작품들 수준에는 확연히 미치지 못합니다. 구태여 구해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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