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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2/26

젊은 목수들 : 일본의 새로운 가구 제작 스튜디오를 찾아서 - 프로파간다 편집부 : 별점 1.5점

젊은 목수들 : 일본의 새로운 가구 제작 스튜디오를 찾아서 - 4점
프로파간다 편집부 지음/프로파간다


일본에서 소규모 가구 공방을 운영하는 오너 목수들를 취재한 결과물. 총 22인 (팀)의 이아기가 실려있습니다.

디자인적으로 뭔가 영감을 얻을만한 것이 있지 않을까 싶어 읽어보았는데 기대에는 전혀 미치지 못했습니다. 가구를 만드는 사람들의 생각과 삶 중심의, 제목 그대로 "목수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만든 가구는 몇개만 부록처럼 소개될 뿐이에요. 심지어는 본문 인터뷰에 등장하는 목수들의 작품, 목수들이 영향을 받았다는 유명 가구가 별다르게 실려있지 않을 정도로 말이죠!
책의 핵심인 목수들의 이야기도 별 재미가 없어요. 다른 일을 하다가 가구 제작에 뜻을 품고 전문 학원 등에서 배운 뒤 공방을 오픈한 오너들이 많다는 점, 아직도 도제식으로 이루어지는 수업이 있다는 점은 기억에 남습니다만.... 결과적으로는 같은 일을 천직처럼 여기고 열심히 한다는 내용이니 교과서적일 뿐더러, 22인 (팀)의 사고방식이나 삶의 과정에서 큰 차이점도 없거든요.

또 이전 리뷰에서도 언급했지만 출판사 "프로파간다"의 책들은 디자인은 당쵀 이해할 수 없네요. 이런 류의 책에서 쉽게 사용하지 않을 굴림체 스타일 폰트, 기묘한 그래픽의 사용은 썩 좋은 효과를 낸 것 같지 않아요. 아니, 10년 이상된 키치 유행 시절 스타일이 연상될 정도로 별로였습니다. 그냥 일반적인 폰트와 담담한 디자인으로 꾸미는게 훨씬 좋지 않았을까 싶어요.
* 책 뒷페이지를 보니 북디자인은 "구엔엠" 이라는 업체에서 진행했더군요. 궁금하신 분들은 사이트에서 주요 페이지를 한번 찾아 보시기 바랍니다.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1.5점. 재미도 없지만 분량에 비해 가격도 비싸고, 디자인 때문에 소장욕구마저 희박하게 만들기에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습니다. 어떤 독자를 위한 책인지도 잘 모르겠어요. 구태여 꼽아보자면 "목공에 관심이 있어 하던 일을 접고 새롭게 시작하려는 젊은이" 정도인데... 이런 독자가 아니라면 누구든 좋은 점수를 주지 못할 것 같습니다.

덧붙이자면 책의 내용과는 별개로, 읽다보니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과연 이런 목수들이 계속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이런 공방 최대 수요 계층으로 묘사되는 "자신의 집에 어울리는 독특한 디자인의 가구"를 원하는 소비자들이 계속 목수들에게 자신의 가구를 맡길까요? 3D 프린터가 대세가 되고 원하는 조형물을 저렴하게 뽑아내는 시대가 곧 다가올텐데 말이죠. 3D 프린터 대비 유리한 점은 원재료인 나무를 깎고 다듬는 기술 정도밖에 없어보이거든요. 재료의 차이일 뿐 동일한 디자인의 제품이라면 대부분의 소비자는 저렴한 쪽을 선택할 것 같아요. 소개된 목수들의 작품들을 보아도 가장 단순한 스툴이 4만엔 이상 하는 것을 보면 더더욱 그러하죠. "장인" 이라고 대접받을 수 있는 정말로 소수의 몇명을 제외하면 도태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뭐 제가 걱정할건 아니긴 하지만요.

2015/02/25

먹는 존재 - 들개이빨 : 별점 2점

먹는 존재 1 - 4점
들개이빨 지음/애니북스

처음 시작은 전문가들이 등장하여 겨루는 배틀물의 하나로 일종의 틈새시장같았던 요리만화. 수십년이 흐르는 사이 어느새 요리를 즐기는, 요리는 하나의 소재일 뿐 일상 속 이야기가 중심이 되는 이야기로 변해갔죠. 그러면서 점점 작품들이 많아져 이제는 구루메 (미식가) 만화 버블 시대라고도 합니다.
이러한 흐름은 만화 장르에서 일상툰이라는 것이 확고하게 자리잡은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라서 이런저런 일상 속 요리만화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팬이라고 이미 말씀드렸던 <오무라이스 잼잼>을 비롯하여 <코알랄라>, <수상한 그녀의 밥상> 등 이런 저런 작품들이 등장했죠. 이 작품도 그러한 흐름의 하나로 요사이 시장에서 큰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 유료웹툰 레진코믹스에서 연재되고 있는 작품입니다. 유료 결재까지 하면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는데 평이 괜찮아서 염두에 두고 있다가 설 연휴를 대비하기 위해서(?)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서론이 길었네요. 일단 위에서는 하나로 묶어서 이야기했지만 사실 일상 속 이야기와 요리가 결합된 만화도 세가지 분류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첫번째는 일상 속 드라마가 중심인 작품입니다. 요리는 그냥 등장해서 분위기만 환기시켜 주는 것으로 요리나 음식이 아니라 커피나 술, 책, 음악이어도 상관없을 그런 작품들이죠. <심야식당> 등...
두번째는 일상 속에서 맛보는 요리에 대한 소개가 중심인 작품. <고독한 미식가> 등...
마지막 세번째는 음식에 대한 정보나 레시피를 알려주는 것이 핵심인 작품. <아빠는 요리사>나 <술 한잔 인생 한입> 등...

이 작품은 이 중에서 첫번째 분류, 즉 일상 속 드라마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주인공 유양이 못된 상사때문에 회사를 그만두고, 뒤떨어진 기획을 하는 회사에서도 쫓겨난 뒤 한 추남 박병을 만나 사귀게 되는 등 파란만장한 이런저런 청춘의 기록이 이런저런 음식들과 소소하게 얽히는 내용이니까요.

그러나 기대와는 사뭇 다른 작품이었어요. 저 위에 소개했던 다른 작품들은 모두 즐겁고 행복한 일상 이야기인데 반해 이 작품은 불편하고 찜찜한 탓인데, 가장 큰 이유는 주인공 유양이 필요 이상으로 거친 성격의 사회부적응자이며, 유양의 성격으로 초래되는 돌출행동 및 이를 야기하는 유양 주변인물들의 이야기가 어설프기 짝이 없기 때문입니다. 작가가 사회생활을 해 보았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주변 인물들의 사고방식이 90년대에 머무르고 있으며, 어린 시절의 치기로만 보이는 개인주의와 행동이 가득하다는 점에서 그러합니다. 직장생활하나 제대로 못하는 인간이 혼자서 창작을 하겠다니 가당치도 않죠. 이렇게까지 자기 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주인공은 최근에 못 본것 같은데 여러가지로 놀랬습니다. 연필로 쓱쓱그린 인디만화 스타일의 카이지를 연상케하는 작화도 불편함을 가중시키고요.

물론 이런 저런 곳에서 좋은 평을 받은 작품답게 장점도 많습니다. 기대와는 달랐고 불쾌하기까지 했던 스토리지만 읽는 맛 자체는 나쁘지 않은 덕인데, 희극이나 비극이나 결국 방향은 하나랄까요? 애인도 생기고 절친도 생기고 원수와도 친구가 되는 등 이야기가 진행되면 진행될 수록 재미가 더하며 유양도 어떤 식으로든 성장하는 모습을 보이니까요.
아울러 요소요소에 신선한 발상이 돋보이는 장면도 꽤 많아요. 화려한 건더기 하나 없는 메밀국수를 표현하는 장면이 대표적이죠. 배고픔이란 질낮은 양아치 새끼다. 발기부전 영감같은 처량한 맛, 빵집에서 비싼 빵을 사는 자신을 자책하며 미녀에게 빠져 가산을 탕진하는 졸부 3세의 마음을 알 것 같다는 표현 등 명대사 역시 많고요.
음식에 대한 묘사도 별로 볼건 없지만 전혀 다른 성격의 두 친구가 "훠궈"로 하나가 된다던가 하는 식으로 음식과 내용을 조화시키는 이야기들은 괜찮았습니다. 무엇보다도 "초코파이를 전자렌지에 데워 먹기" 라는 독특한 방식을 유행시킨 공로는 인정할만 하겠죠.

하지만 기본적인 스토리 라인이 영 마음에 들지 않고 기대했던 "일상계 요리-음식 만화"와는 거리가 너무 멀기에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단행본 가격도 너무 비싸고요. 때문에 별점은 2점입니다.

확인해보니 레진 코믹스에서도 연재분을 무료로 모두 감상할 수 있기에 이 책을 왜 돈주고 샀는지도 모르겠네요.... 완결편까지 모두 감상하였기에 이후 돈주고 따로 책을 구입할 일은 없을 것 같군요.

2015/02/24

그림으로 보는 중국의 과학과 문명 - 로버트 템플 / 과학세대 : 별점 3점

그림으로 보는 중국의 과학과 문명 - 6점
로버트 템플 지음, 조지프 니덤 서문, 과학세대 옮김/까치글방


조지프 니덤의 <중국의 과학과 문명>을 저본으로 하여 중국이 3,000년 동안 “세계 최초”로 이룩한 놀라운 발명과 발견을 200여 점의 도판과 농업, 공학, 수학, 의학, 음악, 물리학, 수송, 전쟁기술 분야의 100가지 항목으로 편집하여 소개하는 책. (책 소개 인용)

중국 고대 발명품과 발견에 대한 일종의 백과사전. 이런 류의 읽을 수 있는 백과사전은 제가 굉장히 좋아라하는 책입니다. 이 책 역시 기본적인 재미는 물론이고 설득력을 높여주는 다양한 도판이 한가득 실려있어 더욱 매력적이었어요. 무려 100여가지 항목이 수록된 만큼 양도 굉장히 풍부하고요.
워낙에 많은 내용이 수록된 탓에 내용 요약은 어렵고... 제가 인상적이었던 것만 몇가지 적어보겠습니다.

복동식 피스톤 풀무 :
굉장히 복잡하고 어려운 기계같은 느낌의 이름인데 피스톤을 밀고 당길때 모두 바람이 나오게 하는 것이 전부인 일종의 자동 밸브. 그러나 이 단순한 발명품이 기원전 4~5세기 (!)에 등장한 덕분에 중국의 모든 산업 (특히 제철과 같은 야금업)이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고 하니 허투루 볼건 아닙니다.
크랭크 핸들 :
지금도 이런 저런 곳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수레바퀴 측면에 막대기를 끼워 손잡이로 삼아 돌리게 만든 발명품. 비슷한 것을 서양에서 생각해 내기까지는 무려 1,100여년의 시간이 필요했다고 합니다. 어떻게보면 참으로 단순한 것인데... 의외였어요. 콜럼버스의 달걀 같은 것이었을까요?
천연 가스 채굴 :
기원전 1세기에 이미 천연 가스를 채굴했다는 것도 놀랍지만 순전히 인력으로 평균 900미터에 달하는 구멍을 팠다는 것 (주로 소금 채굴을 위해), 여기서 나오는 가스를 잘 활용하기 위한 다양한 고안 역시 대단했습니다. 잘만 활용했더라면 고대 중국을 무대로 한 스팀 펑크 스타일 SF가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네요. 대나무에 저장한 천연가스를 활용한 동력원!
칠 :
옻칠은 우리에게도 친숙한 소재인데 일종의 니스로 플라스틱과 같다고 표현한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여태 그렇게 생각해본적이 없었는데 특유의 보존력, 강도, 내구성을 볼 때 그렇구나 싶기도 했어요.
성냥 :
여태 서양의 누군가 개발했다고 알고 있었는데 최초는 북제 왕조의 여관들이 유황으로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성 호르몬 추출 :
소변에서 성 호르몬을 추출했다는 것이 기원전 125년전의 회남왕의 서적에 적혀있다고 합니다! 불을 이용한 승화, 강제 증발 이외에도 증류수를 넣은 뒤 태양열로 자연 증발시켜 얻었다고 하네요. 아울러 남녀 소변을 구별하여 제조하고 싶은 호르몬 종류에 따라 소변 혼합 비율을 바꾸었기 때문에 결과물인 "추석"은 어느 경우는 안드로겐 (남성 호르몬)이 많았고 어느 경우는 에스트로겐 (여성 호르몬)이 많았다고도 합니다.
지리 식물학 :
'특정 광물질이 많아 다른 식물들은 잘 자라지 못하는 토양에서도 번성하는 식물들을 가지고 탐광하는 것'으로 이런 학문이 있다는 것부터 처음 안 사실입니다. 고서 <산해경>에 "혜당은 금광 근처에서 자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는 것이 근거이며, 이후 1421년의 <경신옥책>에서는 금은 순무에, 은은 수양버들에, 동은 인도산 괭이밥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보면 확실한 학문으로 자리잡은 듯 합니다. 광물의 미량원소가 실제로 특정 식물에 존재하며 거기서 추출될 수 있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요.
참고로 예전에 전파과학사 문고 <과학사의 뒷얘기>에 실려있던, 토마스 챌러너 경이 요크셔에서 명반석 광상을 발견한 것이 유럽 최초의 지리식물학적 탐광 사례라고 합니다. 1600년 경의 일이죠.
지진계 :
<갤러리 페이크>에도 나왔던, 용 입의 구슬이 두꺼비로 떨어지는 기계로 도판과 함께 자세한 설명이 실려있습니다. 실제 어떻게 동작했는지까지 알려주네요. 그런데 개인적으로 궁금한게 "지진"과 "단순 진동"을 어떻게 구분했는지는 궁금합니다. 예를 들어 지진계 옆에서 아이가 뛰어놀기라도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인쇄 :
중국에서 인쇄는 대단히 활발했다고 하는데 10세기 어느 불교도 문집은 지금도 40만부 이상이나 남아있다고 합니다. 당대에는 얼마나 찍었을지 상상도 안되네요. 40만부 이상 남아있는 것이 아무리 오래되었다고 하더라도 골동품으로서 가치가 있을지도 궁금하고요. 인쇄에 관련된 상세한 설명 - 인쇄에는 유실수를 사용한다. 침엽수에 포함된 수지는 먹이 균일하게 칠해지는데 방해 작용을 하기 때문 등 - 도 볼거리였어요.

마지막으로 "대나무"가 서양에서는 나지 않아서 중국의 획기적인 신기술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는 시각이 굉장히 재미있었습니다. 그만큼 튼튼하면서도 속이 비어있어서 가벼운 재료가 없었기 때문으로, 대표적인 예로는 선박의 "활대"를 들고 있는데 꽤 그럴듯했거든요.

이렇게 재미있는 내용도 있지만 문제도 있습니다. 일단은 재미없는 부분은 너무 재미없다는 것, 그리고 조지프 니덤의 원저를 베이스로 새롭게 추가하고 엮은 내용이라고 하는데 억측이 상당히 많아서 모든 것을 믿기는 어렵다는 것이죠. 해당 기술이나 발견의 시기를 단어나 문장 몇마디 가지고 굉장히 오래전 것으로 정의한다던가, 유럽에서의 발견도 중국인에게서 유래되었다고 추측하는 식입니다. 대표적인 것인 사라쿠사의 아르키메데스가 중국인이 먼저 개발했던 석궁을 보고 도시 방어용 무기를 만들었을 것이라는 것. 중국에서 "대진"이라고 불리운 시리아와 교역을 하였다는 것을 증거로 대는 정도인데 이 정도는 증거도 뭐도 아니죠.
지리 식물학 이야기에서처럼 고서 <산해경>에 "혜당은 금광 근처에서 자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는 것을 근거로 드는 것 역시 마찬가지죠. 근거치고는 많이 약해요. 실제 혜당이 뭔지도 밝혀지지 않았고 말이죠. 이건 그렇다 쳐도 <문자>에 쓰여진 "옥이 묻힌 곳에는 나뭇가지가 늘어지는 경향이 있다"는 글이 단순 지리 식물학이 아니라 식물의 생리적 상태까지 간파하고 있었다고 하는 것은 지나친 억측이라 생각됩니다.
이런 억측은 우리에게는 동북공정과 같이 큰 피해를 초래할 수 있어서 더욱 신경이 쓰이네요. 이 책에 따르면 불국사의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을 중국에서는 자기들 유물이 건너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모양이니 더욱 그러해요.
아울러 내용에서 단순 년도만 표기하지 말고 해당 시기 중국의 왕조는 무엇이었을지 정도만이라도 함께 써주는 배려가 없는 것도 아쉬웠으며, 번역도 괜찮은 편이지만 장기 이야기에서 "포"를 "로켓 소년"이라고 번역한 것은 조금 이상했습니다. 한국어로 재 번역할 때 당연히 걸러낼 수 있는 단어가 아니었을까요? 중국 장기는 뭐가 조금 다른건지...

그래도 관련된 사료도 충실하고 도판도 만족스러운 수준일 뿐더러 첫 발견 시기를 제외한 대부분의 내용은 수긍이 가기에 아주 폄하하기는 어렵군요. 도서정가제 시행 직전 50% 할인 가격에 구입했기에 더 만족감이 크기도 하고요. 때문에 별점은 3점입니다. 그런데 책보다는 영상 다큐멘터리로 보는게 더 낫지 싶긴 하네요.

2015/02/23

히틀러의 성공시대 1,2 - 김태권 : 별점 3점

히틀러의 성공시대 1 - 6점
김태권 글.그림/한겨레출판
히틀러의 성공시대 2 - 6점
김태권 글.그림/한겨레출판

거의 1주간 격조했습니다. 연휴동안 블로그는 하지를 못해서요. 다들 연휴는 잘 보내셨는지요?
이번에 소개드릴 책은 독특한 시각으로 풀어나가는 역사만화로 유명한 김태권씨의 작품입니다. 연휴 기간동안 형의 추천으로 읽게 되었습니다. 제목 그대로 히틀러의 성공시대, 그 중에서도 정치인 히틀러가 정권을 손에 넣기까지의 과정을 디테일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즉 1928년 총선에서 특표율은 고작 2.6%에 그치는 미미한 존재였던 나치당이 1930년 총선에서는 18.2%의 득표율로 제 2당으로 올라서고, 1932년에는 37.4%를 얻어 마침내 제 1당으로 올라선 뒤 마침내 1933년 히틀러가 독일 총리가 될 때까지죠.

인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것이 특징으로 히틀러를 비롯한 대권 경쟁자 8인과 괴벨스 등 나치당 관계자들의 이야기가 번갈아 펼쳐지는 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는 일종의 군웅극 느낌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정통적인 군웅극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 등장인물 중 영웅은 한명도 없고 거의 모두가 무능력하고 꼼수에만 능한, 자기 자신이 정권을 잡는 것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이기주의자들이라 블랙코미디에 더 가깝다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네요. 예를 들자면 굉장히 짧은 시간 어떻게 히틀러가 독일을 장악했는지 같은 것이겠죠. 사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그래도 히틀러가 뭔가 약간이나마 능력이 있었겠구나 싶었었는데 전혀 아니라 깜짝 놀랐습니다. 당시 정권을 손에 넣은 우익 세력들의 정권유지용 장기알로 쓰여지는 상황에서 얄팍한 책략에 운이 더해져 성공한 것에 불과했기 때문이에요. 오히려 히틀러 본인은 별다른 능력도 없는, 장황한 연설 능력과 상식을 넘어서는 무식함밖에는 없는 일종의 껍데기 캐릭터일 뿐이었습니다. 뭐 이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이겠죠. 당시 극우세력이 필요했던 것은 기관총 소리에도 꼼짝않을 용자였다니... 머리가 좋을 필요는 없다. 정치란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사업이니까. (극우논객 에카르트.1919) 그나마 개중 똑똑했던 것은 무능한 힌덴부르크 대통령을 대공황이라는 난세의 상황에서 어떻게든 재선시키고 히틀러에게 심대한 타격을 줄 수 있었던 브뤼닝 총리로 보이는데 슐라이허에 의해 실각하게 된 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여튼 이렇게 다양한 인물들이 (코믹하게) 활약하는 군웅극스러운 내용을 쉽게 읽을 수 있게 전달하는 작가의 능력은 참으로 대단했습니다. 방대하고 치밀한 자료조사를 통한 다양한 정보들과 화보, 도판도 볼거리였고요.

무엇보다도 어이가 없을 정도로 황당한 당시 독일 - 바이마르 공화국의 상황이 지금의 대한민국과 기묘하게 겹쳐지는 것도 신기했습니다. 정치권의 편가르기, 무능력하고 아무런 소신없이 권력에만 혈안이 되어 캐릭터로만 승부하는 정치인들, 인터넷을 통해 커지는 극단적인 사고방식들 모두가 그러하거든요. 특정 사회나 인물 (유대인과 공산당) 에 대한 미움과 증오를 조장하는 것이 파시스트들의 정치적 책략이라는 것을 돌이켜 볼 필요가 있겠죠. 지금의 대한민국이 한쪽 세력에 몰려 균형을 잃을 정도로 정보가 통제된 상황이 아니라는 점이 조금 위안이기는 합니다만.

그러나 단점도 있습니다. 일단 김태권씨의 작화는 분명히 호불호가 갈릴 뿐더러 특유의 유머감각 역시도 그닥이라 "만화"로는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려웠습니다. 차라리 만화가 아니라 정적인 그림 해설서같이 꾸몄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네요. 그리고 여백이 너무 많아 낭비가 심해보였는데 편집의 묘를 발휘해서 책의 두께와 분량을 조금 줄여주는 노력 역시도 아쉬웠고 말이죠. 아무래도 가격 부담이 좀 있는지라....
* 그리고 덧글 등으로 확인해보니 편향된 시각으로 작성된 컨텐츠임에도 분명해보입니다. 판단은 독자의 몫이겠죠.

그래도 저에게는 충분히 가치가 있는 좋은 책이기에 별점은 3점입니다. 지금의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유권자시라면 한번 읽어보신 뒤 어떻게하면 더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해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과거의 역사가 현대를 비추는 거울이라는 말이 틀리지 않다는 것이 실감되네요.

2015/02/16

처음 만나는 우리 문화 - 이이화 : 별점 2.5점

처음 만나는 우리 문화 - 6점
이이화 지음/김영사


여러가지 문화사적 의미가 있는 주제들을 가지고 역사와 유래에 대해 설명해주는 책. 일종의 우리 문화 백과사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정한 주제가 있다거나 중요하고 의미있는 항목들이 선정되었다기 보다는 저자가 생각나는데로, 사람들이 흥미를 가질만한 주제를 선정한 느낌이에요. 이런 류의 만물박사를 위한, "읽을 수 있는 사전" 이라는 책은 제가 굉장히 좋아하는 책으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얼마전 읽었던 <사전, 시대를 엮다> 에 나오는 메이지 시대 일본 백과사전(화한삼재도회)이 이렇지 않았을까 생각되기도 하네요.

처음 알게된 것들, 생각지 못한 주제들이 툭툭 튀어나오는데 기억에 남는 것들 몇가지는 아래와 같습니다.

동학 : 평등이 중요. 양반과 상놈, 적자와 서자의 구별 없앰. 신분계층을 가리지 않고 서로의 호칭을 "접장"으로 통일. 일반적으로 1914년 러시아 붉은 혁명 후 서로 "동무"라고 부른 것이 평등을 표방하는 호칭의 첫 사례로 꼽히나 동학은 그보다 20년 앞섬.

사대부집 여인의 태교 : 일곱가지. 음식은 고르게 썰어 먹고 자리를 반듯하게 깔아 가운데에 앉으며 무거운 짐을 들지 않고 험한 길을 걷지 않으며 위태로운 냇물을 건너지 않고 높은 마루에 올라가지 않으며 질투,음탕,부정한 말을 하지 않는다.
아이가 태어나면 집 앞에 금줄. 숫덩이를 꽂아 내거는데 사내아이의 경우는 붉은 통고추, 계집아이는 푸른 솔잎을 금줄에 더 끼워 구분. 금줄이 걸리면 사람들은 그 집에 드나들지 않았으며 특히나 부정타는 것을 막기 위해 부모의 죽음을 맞이한 상주나 월경 중 여성의 출입은 엄금.

소주의 유래 : 고려 중기 원나라 군사들이 침입하여 장기주둔했을 때 유래. 원나라 군사들이 먹던 독한 소주의 제조법을 경상도 안동의 주민들이 알아내서 소주를 빚은 것.

북촌 : 문벌세도가인 안동 김씨, 풍양 조씨, 여흥 민씨 등은 서욱 북촌지역에 주로 살았으며 몰락했거나 가난한 양반들은 서울 남산 밑에 집단으로 살았음. 향촌에 근거를 둔 양반들은 일정한 고장에 일가붙이 집성촌을 이루고 삼. 
북촌에 집을 지은 고관들은 다른 집은 염두에 두지 않고 골목길을 만들어서 지금도 이곳의 길은 꼬불꼬불.
또한 벼슬아치와 양반들은 곧잘 말을 타고 다녀서 걸어다니는 사람들은 말잡이 하인이 "물럿거라"라고 외치면 말이 지나갈 때까지 길을 피하거나 고개를 숙여야 했음. 이에 말을 피하는 뒷골목, 즉 피맛골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졌음.

신라의 종이 : 중국에서도 손꼽히는 명품. 하얗고 반질반질해 "백추기"라고 불렸음. 신라의 종이는 주로 절에서 만듬. 이 전통은 조선 시대까지 이어져 종이 제작과 기술 전수는 거의 절에서 이루어짐. 한지로 여성들 생리대도 만듬!


그러나 하나의 주제를 깊이있게 파고들지는 못하고 간략하게 개요만 소개해주는 수준에 그치는 주제들이 많다는 것과 짜장면의 유래라던가 고무신, 전차의 도입 등 다른 사료에서 더욱 자세하게 설명했던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는 것은 좀 아쉬웠습니다. 이 책 자체가 이런저런 주제를 두서없이 소개하는 것이 매력이기는 한데 정도가 좀 지나쳤달까요.
아울러 이 책에 나온 것이 정말로 증명된 "사실"인지, 아니면 하나의 설에 불과한 것인지도 명확하지 않은 것이 많아 아쉬웠어요. 대표적인게 "윷놀이의 유래" 같은 것이겠죠. 이 책에서는 부여에서 유래된 것 - 네 지역 구분이 부여의 행정구역 "사출도"에서 유래했다고 함 - 으로 나오지만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증명된 사실은 아니더라고요.

그래도 읽는 재미도 있고 도판도 충실한 편이라 마음에 든 책입니다. 깊이있는 내용이야 다른 충실한 사서에서 얻으면 되는 것이고, 이 책은 우리 문화사, 우리 역사에 대한 호기심과 흥미만 불러 일으키면 충분히 그 역할을 다하는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이러한 책의 속성 상 학생, 청소년 분들에게 추천하는 바입니다.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2015/02/13

2014년 하우미스터리 선정, 올해의 추리소설!

2013년 하우미스터리 선정, 올해의 추리소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국내 최고의 추리 애호가 커뮤니티 하우미스터리에서 진행한 투표. 2014년 출간된 추리소설을 대상으로 각자 3권씩 투표하여 결과를 합산하는 방식이죠. 진짜 추리 애호가들이 뽑은 리스트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디자인이 좋은 책도 한권 뽑게 되어 있고요. 1위~3위는 아래와 같습니다. 전체 순위는 여기서 확인하시길.

1위 14표
<황제의 코담뱃갑> 존 딕슨 카엘릭시르

2위 11표
<미시시피 미시시피> 톰 프랭클린, 알에이치코리아
<체육관의 살인> 아오사키 유고, 한스미디어

베스트 커버 디자인
1위 12표
루이즈 페니 시리즈
*<냉혹한 이야기>를 비롯 언급된 이전 시리즈 포함

저도 이벤트에 참여했었는데 제가 선정한 작품은 아래와 같습니다. 기준은 제 블로그 리뷰 별점.

공동 1위
<재앙의 거리> - 여태까지 읽어왔던 엘러리 시리즈 중 최고작
<황재의 코담뱃갑> - 고전 걸작의 힘. My All time best 중 한권.

공동 3위
<열흘간의 불가사의> - 엘러리의 패배가 인상적
<쿠드랴프카의 차례> - 성장기 청춘물과 일상계 추리물의 절묘한 조화
<파계 재판> - 사회파 속성에 깃들여진 높은 긴장감
공동 3위 중에서는 묵직한 장편으로 고전 본격물과 사회파의 가교 역할을 잘 해주면서도 법정물로도 뛰어났던 <파계 재판>을 꼽았습니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책 디자인은 한권을 뽑기는 애매하나 <녹스 머신>을 선정했습니다. 일러스트는 영 취향이 아니긴 했지만 판형과 내부 편집, 커버를 벗겼을 때의 디자인 모두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에요. 잘 만든 다이어리 느낌이 들어서 좋았거든요.

작년과 마찬가지로 1위 (<황제의 코담뱃갑>)는 맞췄으니 이제 2위를 기록한 작품들을 읽어봐야겠네요.

2015/02/12

능숙한 솜씨 - 피에르 르메트르 / 서준환 : 별점 2.5점

능숙한 솜씨 - 6점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서준환 옮김/다산책방


<하기 리뷰에는 반전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두명의 매춘부가 엽기적으로 잔혹하게 살해된 범죄가 벌어진다. 사건을 맡은 베르호벤 반장은 2년전에 벌어진 다른 사건과의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알아낸다. 그것은 현장과 시신에 가짜 손가락 지문이 남겨져 있었다는 것과 어떠한 이유도 찾아낼 수 없는 범행과정상의 디테일들. 우연히 이 디테일들이 모두 유명한 추리소설을 모방한 것이라는 것을 알아낸 베르호벤은 탐정문학 전문지 광고로 범인과의 접촉을 시도하는데....

간만에 읽은 최신 프랑스 추리 소설.
프랑스 추리소설들은 모리스 르블랑의 뤼뺑과 심농의 매그레 시리즈 외에는 딱히 취향이 아니어서 그닥 관심이 가지 않았고 제목과 표지도 왠지 마음에 들지 않았던 작품입니다. 이런저런 블로그 이웃과 커뮤니티의 호평이 아니었다면 절대로 읽을 일이 없었겠죠.

프랑스 소설답게 5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을 자랑하며 역시나 프랑스 소설답게 내용의 많은 부분을 주인공들의 심리묘사에 할애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부분은 제가 여태까지 알고 있었던, 그리고 싫어 했던 프랑스 소설들의 단점과 동일하나 이 작품은 다행히 재미면에서는 나름 차별화되고 있습니다. 등장하는 잔인한 범행들이 워낙에 자극적이기도 하지만 추리소설 애호가라면 빠져들 수밖에 없는 설정, 즉 유명 작품들의 범행을 그대로 재현 했다는 점 때문에라도 흥미로울 수 밖에 없기 때문이에요. 뭔가를 따라한 연쇄살인이야 흔한 설정이기는 하나 추리소설을 따라했다는 설정은 처음 봅니다. 명작, 고전 취급을 받는 작품들을 모방했다고 하는데 제가 읽은 작품은 달랑 한 작품 밖에는 없기는 합니다만... 이런 명작, 고전 선정은 작중에 나오듯이 자의적인 판단이 기준이 될 수 밖에 없겠죠? 아울러 저는 수사물, 하드보일드보다는 고전 본격물 취향이니 아무래도 잘 맞기가 더욱 어렵지 않았을까.. 하는 말로 변명해 봅니다. 참고로, 작중 등장한 작품들은 아래와 같습니다.
브랫 이스턴 앨리스 <아메리칸 싸이코> - 작품 도입부에 소개된 두명의 여성을 엽기적으로 살해한 범죄의 원전.
제임스 옐로이 <블랙 다알리아> - 이전 여성 토막 살인사건의 원전
마이 셰발 / 페르 발뢰 <로제안나> - 역시나 기이했던, 이전에 벌어졌던 살인사건의 원전
윌리엄 매킬바니 <레들로> - 범인이 현장에 서명을 남긴 첫번째 사건의 원전.
에밀 가보리오 <오르시발의 범죄> - 범인이 소설을 따라 벌인 첫번째 살인.

이렇게 보니 제가 읽은 <블랙 다알리아> 말고 번역된 작품은 <아메리칸 싸이코>밖에 없군요. 못 읽은게 당연하죠...

여튼 이러한 애호가를 자극하는 설정외에도 놀라운 반전을 지니고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이에요. 이야기의 거의 대부분 (1부 분량)이 사실은 범인이 쓴 소설이었다는 것이 밝혀지는, 일종의 서술 트릭이자 소설 속의 소설인 액자 소설같은 구성이 드러나는 반전인데 정말 생각지도 못했어요. 그다지 새로운 아이디어가 없을 것 같은 현대에서도 이런 아이디어를 가진 작품이 나오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입니다.베르호벤이 말발을 대하는 태도 등을 통해 소설 속 인물들과 실존인물과의 차이를 설명하는 것도 아주 절묘하고 말이죠.

그러나 설정과 이러한 놀라운 반전 트릭을 제외하고는 추리적으로는 높은 점수를 주기 어렵습니다. "추리"라는 것이 별로 등장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이유에요. 결국 범인이 기자 필리프 뷔송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은 순전히 우연에 불과하니까요. 발랑제르 교수와 통화하다가 우연히 얻은 정보가 없었다면 영원히 알아내지 못했을지도 몰라요. 아니, 최소한 아내가 죽을 때까지는 알아 낼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우연까지 예상해서 범인이 모든 것을 안배한 것처럼 전개되고 있다는 건 전혀 합리적이지가 않죠. 범인이 무슨 신도 아니고.... 이러한 우연, 그리고 범인의 안배를 제외하고는 사건 해결을 위해 노력한 베르호벤과 동료들의 수사는 모두 헛수고일 뿐이라 정말 명수사관이 맞는지 깊은 의문을 가지게 만듭니다.
범인이 유명한 추리소설들을 모방하여 범행을 저질렀다는 설정도 재미는 있고 시선을 사로잡는데는 충분히 성공적이나, 이러한 범행을 통해서 범인이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가 전혀 설명되지 않는 것은 확실히 문제라 생각됩니다. 아니 설명 되기는 하는데 작중 정신과 의사인 크레스트 박사의 말 - 사실은 미친게 아니다 -이 맞는 것인지, 아니면 독자가 범인의 편지 등을 통해 짐작할 수 있는 것 - 제대로 미친 놈이다 - 맞는 것인지 도무지 모르겠어요.
또 작중 등장했던 괜찮았던 착안점, 즉 왜 <레들로> 사건은 실제로 스코틀랜드까지 찾아가 범행을 저질렀는데 다른 사건들은 프랑스에서 재현했는지? 에 대해 더 이상 설명되지 않는 등 떡밥 회수가 부실한 것도 조금 아쉬웠고요.

마지막으로 프랑스 소설다운 장황한 묘사가 많은 것도 마음에 들지 않은 점입니다. 갓 태어난 아기까지 참살한 필요 이상의 잔인한 묘사도 그렇지만, 유명 화가인 어머니의 임신 중 흡연으로 키가 145cm에 불과하다는 베르호벤의 설정과 그에 따른 묘사가 대표적이겠죠. 키가 작다고 해서 대단한 컴플렉스가 있는 것도 아니며 작품에서 별다른 역할을 하는 부분도 없습니다. 그나마 덜 기형적인 툴르즈 로트렉의 창백한 복사판 운운하는 묘사처럼 독특한 캐릭터성을 부여 하기 위한 장치일 뿐이라 조금은 얄팍하게 느껴졌어요. 장님이지만 작품에서는 그닥 드러나지 않았던 맥스 캐러도스가 떠오르기도 하네요. 부하인 루이가 부유하다는 설정 역시 마찬가지로 디테일한 묘사를 통해 캐릭터들을 손에 잡힐듯 생생하게 그려 주는 것은 좋지만 이러한 만화 같은 설정이 과연 작품에 필요 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추리 애호가를 위한 설정에 더해 읽는 재미도 괜찮고 독특한 반전의 가치는 높지만, 추리 소설로의 완성도를 높다고 하기는 애매했습니다. 그래도 베르호벤 시리즈는 이어지고 이 작품과도 연계성이 있다고 하니 후속작도 읽어는 봐야 겠네요.

2015/02/10

사전, 시대를 엮다 - 오스미 가즈오 / 임경택 : 별점 3점

사전, 시대를 엮다 - 6점
오스미 가즈오 지음, 임경택 옮김/사계절


사전을 중심으로 고대에서 근대까지 일본의 지식 문화사를 재구성한 책.
헤이안 시대 율령국가의 모든 것을 담고 있는 <유취국사>에서 시작하여 일본이 자국의 힘으로 백과사전을 만들어 근대국가의 대열에 합류하게 되는 상징적 의미까지 가진 <일본백과대사전>까지 모두 13종의 사전 및 유서 (백과사전)과 관련 서적에 대해 소개하고 있습니다.

당대 최고 수준의 지식인들이 모여 만든 "사전" 이야말로 당대에 관심을 가진 주제가 무엇인지에 대해 쉽게 알 수 있는 만큼 해당 시기에 대해 가장 정확한 문화적인 맥락은 물론, 그것이 편찬되기까지의 사회 정치적 틀을 담고 있다는 독특한 시각이 아주 인상적이더군요. 특히 "도서 분류"야 말로 도서를 검색하는 사람들의 관심에 맞추어 모든 도서를 분류하는 체계를 갖추는, 과거의 유산과 현재의 문화가 격렬하게 부딪히는 접점이며 한 치도 틀림이 없는 사상 표현의 하나라고 해도 좋다.는 시각 같은 것이 그러합니다. 사전을 편찬한 인물들, 그리고 그 당시 사회가 어떠한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는지 보여주는 지표이기도 할테고 말이죠. 우리가 업무를 진행하면서 별 생각없이 작업하는 일종의 카테고라이징과 목차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새삼 느끼게 되었네요.
아울러 내용도 그러한 저자의 사상을 충실히 뒷받침해줄만큼 자세하면서도 설득력있게 설명되고 있기에 자료적 가치도 높습니다. 당대 사전들에 대한 다양한 도판도 볼거리고요.

재미로 읽는 책은 아니고 지루한 부분이 없지는 않기에 약간 감점하여 별점은 3점입니다만, 개인적으로는 아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일본 문화사에 대해 관심있으신 모든 분들께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그나저나 읽고나니 일본이 참 부럽습니다. 이런 책이 출간되고 있다는 것만 보아도 일본이 확실히 출판강국이구나 싶었거든요. 우리나라도 테마가 있는 역사책이 많이 나오기는 하지만 하나의 주제로 원래 있던 역사를 엮어 놓은 것일 뿐 이렇게 아예 바라보는 관점 자체를 달리한, 그리고 재미까지 있는 책은 찾기 어려우니까요. 우리 역사에 대해서도 이런 깊이있으면서도 색다른 시각으로 바라본 책들이 보다 많아졌으면 합니다.

2015/02/09

빅 히어로 6 (2014) - 돈 할, 크리스 윌리엄스 : 별점 2.5점


월트 디즈니의 최신작 슈퍼히어로 장르 애니메이션. 천재소년 히로 아르마다가 자신이 개발한 마이크로봇을 이용하여 음모를 꾸미는 마스크맨을 물리치기 위해 죽은 형의 대학 친구들 4명, 그리고 형이 만든 로봇 베이맥스와 함께 싸운다는 이야기로 (그래서 6 입니다) 이야기는 크게 세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히로의 천재성을 마이크로봇 프리젠테이션에서 확실하게 보여주는 등 주요 등장인물에 대해 소개하며 형이 사고로 죽는 장면까지인 전반부. 실의에 빠진 히로가 형이 남긴 베이맥스, 그리고 형의 친구들과 함께 마이크로봇을 몰래 만드는 마스크맨에 맞설 결심을 하는 중반부. 마지막은 슈퍼 히어로가 되어 마스크맨과의 최종 결전인 후반부죠.

아주 재미있게 감상하였는데 개인적으로는 중반부가 가장 인상적이었어요. 작품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베이맥스가 이야기의 중심으로 올라서는 부분으로 베이맥스의 매력이 대폭발하기 때문입니다. 귀엽기도 귀엽지만 "간호 로봇"이라는 기본적인 정체성에서 나오는 개그 요소가 아주 탁월했습니다. 눈물샘을 자극하는 장면도 확실해서 눈물이 핑 돌게 만들기도 하고요. 하나는 형의 기록이 재생되는 장면, 또 하나는 누구나 그렇겠지만 베이맥스와 헤어지는 마지막 장면이죠. 이러한 장면들을 통해 형의 죽음을 극복해 나가는 히로의 모습은 성장물로 보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잘 만들어져 있기도 하고요.
또 큰 돈을 들인 작품답게 시각적 만족도도 최고수준입니다. 액션 장면은 다른 슈퍼 히어로 장르물에 뒤지지 않는 박진감을 선사해 주고 있으며, 이를 위한 캐릭터들의 특징도 확실해서 히로와 형의 친구들 모두 각자의 특성에 잘 맞게끔 슈퍼 히어로로 재탄생하고 있어서 이러한 슈퍼히어로 장르물을 좋아하는 애호가의 가슴을 뛰게 만듭니다.

그러나 단점도 없지는 않아요. 일단 각본이 조금 아쉬웠습니다. 후반부에서 주인공들이 슈퍼 히어로로 업그레이드되는 과정은 길고 지루했으며, 마스크맨의 정체도 너무 뻔했거든요. 주인공과 마스크맨의 파워 밸런스도 제대로 이루어진 것 같지 않아 보였고 말이죠. 한번 패배한 주제에 아무런 대책이 없이 다시 등장한 마스크맨의 마인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최소한 헬멧이라도 쓰던가....
그리고 개인적인 취향 문제일 수 있지만 슈퍼 히어로로 변신한 주인공 일행의 슈트 디자인이 너무 별로라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지나치게 아동 취향이었거든요. 애들은 좋아했을지 모르지만 최소한 제 취향은 아니었습니다. 베이맥스의 귀여움도 가려지는 등 단점이 더 많았던 것 같아요.

같은 슈퍼히어로 애니메이션인 <인크레더블즈>와 비교한다면 한수 아래랄까... 그래도 딸아이도 너무나 좋아했고 시간가는줄 모르고 볼 수 있는, 킬링타임용으로는 괜찮은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2015/02/06

목소리의 형태 - 오이마 요시토키 : 별점 3.5점

[세트] 목소리의 형태 1~7 (완결) - 전7권 - 8점
오이마 요시토키 지음/대원씨아이(만화)

"그 때, 서로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고3이자 왕따인 이시다 소야가 초등학생 때 왕따를 시켰던, 그래서 자신의 왕따의 촉매재가 되었던 니시미야 쇼코를 다시 만나 사과를 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

요새 회사에서 하던 업무가 바뀌어서 갑자기 바빠졌습니다. 책을 읽을 짬을 내기가 어려울 정도로요. 덕분에 블로깅이 뜸한데, 그나마 짬짬이 읽어서 완결까지 본 만화입니다. 짤막하게 포스팅 남깁니다.

왕따가 얼마나 가볍게 시작되고, 얼마나 사람을 잘못되게 만드는지에 대한 고발과 함께 장애라는 것, 그리고 우리와 다른 사람들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입니다. 하지만 묵직하지만은 않고 나름의 드라마가 잘 펼쳐지고 있어서 읽는 재미까지 함께 전해준다는 것이 큰 장점이죠. 작가의 섬세한 심리묘사도 빛을 발하고요.
여튼 소년지 연재물에서 이러한 깊이있는 주제를 완결까지 긴 호흡으로 우직하게, 그리고 감동적으로 그린 작품을 만나보는 것은 정말 오랫만인것 같네요.

심리묘사가 조금은 과하고 극단적이라 읽기 불편한 부분이 없지는 않고 무엇보다도 살아있는 천사와 다름없는 니시미야 쇼코 캐릭터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조금 단점이기는 합니다. 너무 예쁘게 그려졌다는 것도 문제고요. 이 정도 미모라면 장애가 있다 하더라도 딱히 왕따의 대상이 되었을 것 같지는 않거든요.

그래도 청춘물로도 우수하고 성장기로도 우수한, 무엇보다도 장애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좋은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별점은 3.5점입니다.

2015/02/03

이야기꾼 여자들 - 기타무라 가오루 / 정유리 : 별점 2.5점

이야기꾼 여자들 - 6점
기타무라 가오루 지음, 정유리 옮김/북하우스


<하늘을 달리는 말>로 유명한 기타무라 가오루의 단편집. 국내에 번역 출간된 작품은 이 작품 외에 <시미가의 붕괴> 뿐으로 유명세에 비하면 이상할 정도로 소개가 안된 작가입니다.

이 단편집에는 모두 17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부유한 한량이 여러 여자들에게서 특이한 이야기를 듣는다는 설정으로, 이야기를 해 주는 여자와 계절만 바뀔 뿐 동일한 형식을 지니고 있습니다. 액자식 구성의 연작 단편이라 할 수 있는데 구성은 <천일야화>가, 내용은 모리 히로시의 <조금 특이한 아이 있습니다>가 떠오르더군요.

서늘한 느낌, 기묘한 맛 류의 전형적인 환상 문학 이야기들 중심으로 여운을 남기는 잔잔한 추억담, 달달한 로맨틱 코미디까지 다양한 장르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

사실 추리적인 요소를 기대했었는데 추리적 속성은 전무해서 조금 아쉽더군요. 그래도 환상 문학 쪽 장르물은 마음에 들었으며, 무엇보다도 환상 문학 단편에 작가 특유의 일상계스러운 분위기가 결합되어 있기 때문에 확실히 독특한 느낌을 전해주기에 별점은 2.5점입니다.

<초록 벌레>
초록색 벌레가 입에 들어왔는데 그 이후 아이를 낳았다는 내용. 반전의 맛이 잘 살아있는 작품입니다.

<내가 아니야>
너무나 바쁜 아내를 복제한 마네킹을 사랑하게 된 남편의 이야기. 흔히 있는 설정이기는 한데 (예를 들면 이런거요) 잔잔한 전개와 마지막 여자의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전혀 다른 이야기>
다자이 오사무의 <달려라 메로스> 작품집을 샀는데 알고 있던 메로스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실려있더라는 내용. 작품의 메로스는 친구를 죽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환상 문학이라는 소재가 일상계와 결합한 좋은 결과물이라 생각되네요.

<걸을 수 있는 낙타>
중동 지역 어느 도시에 여행을 갔다가 산 기념품인 "유리병 그림" 속 낙타가 움직이더라는 이야기. 약간 스멀스멀한 느낌이 괜찮았습니다.

<어둠의 통조림>
여섯명의 친한 주부가 모여 라벨을 벗긴 통조림을 추첨하는 행사를 갖는데 통조림이 일곱개가 등장했다는 이야기. 괴통조림의 정체를 알 수는 없었지만 맛은 제법 괜찮았다는 결말로 <환상특급> 느낌이 나는 작품이었습니다.

<선물>
아,이,우,에...로 이어지는 선물을 해 주는 남자 동료에 대한 이야기. "에가오"의 선물은 지하철에 있는 마크에 그린 웃는 얼굴 (스마일 마크) 이라는 달달한 로맨틱 코미디인데 수수께끼를 푸는 듯한 전개가 좋았습니다.

<바다 위의 보사노바>
장거리 페리에서 노래하는 가수가 무례하고 매너없는 손님들 앞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비결이 무엇인지에 대한 작품. 작품 자체는 그냥 그런데 이 비결만큼은 기억에 남을 정도로 괜찮았어요. 음악은 들을 생각이 없는 사람의 귀에도 들리기 때문, 즉 공기와 같은 것으로 들을 생각이 없어도 공존하고 공유한다고 생각하고 노래를 한다고 하네요.

<마술>
마음에 들었던 남자들이 모두 마술도구인 "P"가 그려진 상자를 꺼내더라는 일상 속 기묘한 이야기. 결말이 조금 난데없어서 아쉽기는 하나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ambarvalia>
자기와 똑같은 취향의 친구가 결혼을 하게 되자, 자신이 결혼해야 할 남자가 그 남자였다는 것을 깨닫고 그 남자의 애독서를 바꿔치기하여 혼자 즐긴다는 내용입니다. 일상계 불륜물이랄까요? 여튼 기묘한 사고방식이 꽤 괜찮았어요.

<스이코(水虎)>
제목의 스이코는 갓파를 뜻하며, 이야기꾼 여자의 회사 동료가 갓파의 후예라는 내용인데 만화 등에서 흔하게 보아온 설정을 일상계스럽게 전개한 것이 독특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