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미가의 붕괴 - 기타무라 가오루 지음, 김해용 옮김/황매(푸른바람) |
"하늘을 나는 말"이라는 작품이 굉장히 유명한, 그래서 많이 소개되지는 않았지만 국내 추리 독자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 기타무라 가오루의 작품입니다. 사실 대표작도 아니고 해서 이 작품이 어떻게 번역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작가에 대한 호기심이 워낙 컸던 탓에 구입하게 되었네요.
일단 이 작품집은 크게 3가지 성향으로 나뉩니다. 하나는 추리를 기반으로 한 블랙코미디적인 작품, 그리고 일상의 소소함을 디테일하게 추리와 결합시키는 (하지만 추리물은 아닌) 일상계 추리분위기 소품, 마지막으로 인간의 심리를 디테일하게 그린 드라마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번째 블랙코미디 류(類)로는 표제작이기도 한 "시미가의 붕괴"와 "죽음과 밀실", 그리고 "옛날 이야기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들 수 있을테고 두번째 일상계 소품은 "하얀 아침"과 "주사위, 데굴데굴", "오니기리, 꾹꾹"이 해당되며, 마지막 심리드라마는 "녹아간다"와 "나비", "나의 자리" 가 해당된다 생각됩니다. 이중 개인적으로는 일상계 소품이 가장 마음에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일상계 미스터리로 유명한 작가답다고나 할까요? 추리적인 요소가 녹아있으면서도 그것이 그야말로 일상과 밀결합되어 있고 내용과 캐릭터들도 너무 귀여워서 읽는 내내 아~주 흐뭇했거든요.
물론 그 외의 대부분의 작품들 역시 추리적인 성향과 기발한 아이디어가 포함되어 있기에 재미있게 읽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블랙 코미디 류의 작품군은 조금 더 절제했더라면 동화적인 세계관에서 벌어지는 독특한 추리물로 와 닿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지나칠 정도로 설정이 과장되어 있다는 것이 약간은 아쉽더군요.
그래도 국내에서 접하기 힘들었던 작가의 작품집이고 작가 특유의 센스가 충분히 느껴지기에 별점은 3점입니다. 정통 추리물들도 아니고 작가의 대표작도 아니긴 해도 가볍게 즐기기에 좋아서 추리소설에 거부감을 느끼실 수 있는 초심자분들에게 추천할만 하다 생각되네요. 특히 여성분들이 좋아하시지 않을까 싶어요.
아울러 이 단편집을 계기로 추후 일상계 소품으로만 묶인 (대표작인 "하늘을 나는 말" 시리즈면 더욱 좋고요) 단편집이 나와준다면 정말 좋겠습니다.
PS : 최근 너무 바빠서 좀 격조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읽은 책이 쌓여가는데 포스팅할 시간이 없네요...
녹아간다
평범한 회사원 미사키의 정신 붕괴과정을 "만화"라는 독특한 매개체를 통해 표현한 심리 드라마입니다. 치밀한 묘사는 볼거리이지만 정신 붕괴, 즉 미쳐가는 과정에 대한 이유가 합리적이지 않아서 결과물만 놓고 본다면 평범한 수준이라 생각되네요.
시미가家의 붕괴
천재탐정과 그의 조수가 탐정의 친구인 장서수집가 시미가를 방문했다가 시미의 아내 가즈코가 밀실에서 살해된 것을 발견한다.
과장된 동화같은 설정의 블랙코미디에 가까운 추리물입니다. 일단 서두의 등장인물 소개가 너무 장황하고 허무맹랑해서 당황스럽더군요. 그냥 천재탐정과 조수였어도 충분했을텐데 조수의 왼손과 오른손이 서로 사랑한다는 이야기에서 시작해서 탐정의 천재성도 정말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채워놓고 있거든요. 하지만 중반 이후에 등장하는 밀실 살인과 다이잉 메시지트릭을 적절하게 사용한 덕에 그나마 황당한 이야기안에 추리적인 이야기가 깔끔하게 녹아들어 있는 것은 마음에 들었습니다.
덧붙이자면, 이 작품에 대한 책 소갯글이 더 예술적입니다. 별거없는 반은 장난같은 이야기를 흡사 고전 전통 트릭 미스터리와 고딕 호러의 결합물 처럼 소개해 놓았더군요.
(탐정에게 사건이란 이미 읽은 책이나 다름없다! 인간의 가장 깊은 욕망을 파헤치는 천재 탐정의 놀라운 활약!
완벽히 다 갖추어지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 수집 강박증. 단순한 호기심과 관심의 경계를 넘어선 그것은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치명적인 욕망으로 자라나 목숨마저 위협한다. 책 수집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장서가 부부에게 어느 날 찾아온 죽음이라는 손님. 책에 대한 무모한 집착이 부른 재앙 앞에서 탐정은 진실의 페이지를 한 장, 한 장 넘겨 나가는데…….
아무리 채워도 꽉 차지 않는 서가의 구석에서 발견된 부인의 다잉 메세지. 남편의 가장 깊은 욕망이 드러나는 순간, 시미가는 마치 꿈처럼 아스라이 붕괴하고 만다.)
죽음과 밀실
노인 추리작가들이 모여사는 공동체 "환상의 정원"에 정말이지 완벽한 밀실살인사건이 발생하는데...
시미가의 붕괴와 연결되는 천재탐정과 조수 이야기로 추리소설의 이상적인 형태를 냉소적으로 비웃는듯한 작품입니다. 추리소설로 보기는 어려운, 추리애호가들을 위한 블랙코미디에 더 가까웠달까요?
하얀 아침
주인공이 과거 소녀였을때를 회상하며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1인칭 시점의 이야기로, 청춘드라마같은 깜찍한 사랑이야기가 나름의 추리적 요소 (누가 왜 아버지 차 백미러 성에를 닦아놓았을까?)와 잘 결합된 일상계 소품입니다. 여성작가다운 특유의 세밀한 심리묘사와 더불어 과연 일상계 미스터리의 거장이구나.. 싶을 정도로 사소한 이야기에서 추리적인 전개를 이끌어내는 것이 놀라운 작품이죠. 개인적으로는 이 단편집의 베스트 중 한편으로 추리물에 대해 별로 내켜하지 않는 지인들에게 따로 권해주고 싶을 정도로 부드럽고 따뜻한 이야기였습니다.
주사위, 데굴데굴
출판사 신입사원 치하루씨는 우연하게 한 남자가 떨어트린 십면체 주사위에 관심을 갖는데...
5페이지짜리 이야기로 이정도면 소품이라기 보다도 꽁트라 해도 무방한 분량이죠. 하지만 이야기가 완벽하게 정리되어 있으며 무엇보다도 아주 일상스럽지만 귀여운 발상의 트릭이 깜짝 등장하기에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하여간.. 아이들 머리는 정말이지 못 당하겠어요^^
오니기리, 꾹꾹
치하루씨는 회사 선배 미즈마치와 함께 이와테로 현장조사를 나간다...
전편과 같은 주인공 치하루씨 시리즈로 이번엔 분량이 약간 기네요. 하지만 역시나 귀여운 소품답게 이와테로 무대가 옮겨갔어도 여전히 일상스럽고 밝은 이야기입니다. 등장 인물들이 모두 착하디 착한 사람들이라는 것도 그러하고요.
추리의 요소는 두가지로 한가지는 버린 깡통이 어떻게 멀리 있는 계곡까지 굴러가는지와 제목의 오니기리를 만든 결과물에 대한 추리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대다한 트릭이나 추리는 아니지만 이야기와 잘 맞아 떨어지는 것은 역시나 마음에 들었어요.
나비
한 여성의 술자리 잡담이랄까... 심리묘사는 좋은데 두서도 없고 이야기도 없는 단상만 모아놓은 짧은 잡문이랄까요. 언급할게 별로 없네요....
나의 자리
주인공이 평상시와 다른 일상을 통해 누군가의 자리를 빼았는다는 설정도 굉장히 독특하지만 이러한 자신이 느낀 일상속의 불편함이 결국 자기자신과 연결된다는 결과가 굉장히 서늘해서 "기묘한 맛" 류의 작품으로 보아도 무리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이러한 반전으로 이르는 전개와 묘사도 군더더기 없는, 작가의 필력과 센스를 잘 느낄 수 있는 수작이라 두번째 베스트로 꼽고 싶네요.
옛날 이야기에 대한 새로운 해석
우리에게는 잘 알려져있지 않은 일본의 전래동화 "카치카치야마" 이야기 (할아버지가 밭일을 하다가 잡아온 너구리로 너구리죽을 만드려 하는데 너구리가 외려 기지를 발휘해서 풀려난 뒤 할머니죽을 만든다는 엽기 이야기?)를 추리물 형식으로 꾸민 내용으로 서두에 지극히 개인적인듯한 느낌의 장황한 옛날 이야기 해석에 대한 이론이 묘사되는 등 작가 스스로의 생각을 대화하듯이 써내려간 형식이 무척 이채로웠던 작품이었습니다. 뭐 달리 이야기하자면 좀 쭉쭉 써내려간 느낌도 들긴 하네요. 왠지 좀 장난스러움이 많이 묻어나는 것도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았고요. 어차피 모티브가 된 전래동화가 내용을 잘 모르는 일본 전래동화이기 때문에 몰입하기 힘든 탓도 크겠죠.
하지만 워낙 개인적인 단상이 많은 글이다보니 실제 기타무라 가오루라는 작가에 대해 조금 더 알게된 것 같아 흐뭇한 느낌도 들고 추리적으로도 이야기를 잘 구성해 놓아서 감탄했습니다. 전래동화를 앞뒤가 맞아 떨어지는 추리물로 각색할 생각을 했다는 것도 신기하지만 결과물도 상당한 수준이니 놀라울 따름이죠. 덕분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나뉠것 같은 작품인데 저에게는 무난한 평작 수준으로 생각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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