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주신 분들께 안내드립니다.

2005/03/30

역도산 - 송해성 : 별점 2.5점


조선인 역도산은 현해탄을 건너와 일본에서 스모 장사로 성공하려 하지만 이유없이 세키와케 등급에 계속 머무르며 승급을 하지 못하자 스스로 스모 장사의 상징인 상투를 자르고 스모계를 떠난다.

자신의 꿈이 깨어져 술에 만취한 상태로 행패를 부리다가 우연히 레슬러 "해롤드 사카다"를 만나 프로레슬링에 대해 알게되어 자신의 후원자인 칸노 회장의 도움으로 미국으로 건너가 프로레슬러로 성공하고 일본에서 일대 프로레슬링 붐을 일으키며 돈과 명예를 전부 손에 거머쥐게 된다.

그러나 그의 독선적인 행동은 주변에 수많은 적을 만들게 되며 후원자였던 칸노 회장과도 결별하게 된 그는 성공의 절정에서 점차 외로움에 빠지게 되는데...

말많고 탈많았던 이 영화를 이제서야 보게 되었습니다.

영화는 일단 "역도산"이라는 인물을 영웅이 아닌 "인간"으로 접근하여 묘사하고 있더군요. 때문에 그의 수많은 승리와 혈투는 영화에서 다른 스토리 전개를 위한 부가적인 요소로만 주로 쓰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야라는 캐릭터와의 순수한 애정을 주 스토리 라인에 포함시켜 최강의 사나이었지만 그 개인 자체로는 한없이 나약했고 순수했던 "인간 역도산"을 보여주는 데에는 비교적 성공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단 저는 역도산의 일대기를 먼저 접했기에, 그리고 나름대로 프로레슬링에 대해서는 관심이 있었기에 레슬링 장면과 설정에 대한 아쉬움은 좀 들더군요. 사실 시합 장면만 놓고 본다면 "반칙왕"쪽이 더 프로레슬링에 가깝다고 보여집니다. 그리고 물론 연기는 좋았었고 일본어 대사 등에 있어 노력한 티는 역력하지만 과연 설경구씨가 과거 스모까지 했었던 탄탄한 레슬러에 적역이었을까 하는 의문도 들었고 말이죠.
아울러 지나친 각색으로 실제 역도산의 캐릭터가 많이 흐려진 것은 꼭 지적하고 싶습니다. 굉장히 이기적이고 돈을 밝히지만 자기 포장과 선전에 뛰어났던 그야말로 시대를 앞서간 현대적인 인물이었던 역도산을 영화에서는 자기 감정 과잉에 항상 스스로를 성공하기 위해 채찍질하는 전형적인 밑바닥 입지전적 인물의 스테레오 타입으로 묘사하고 있거든요. 좀더 깊이를 주기 위한 감독과 설경구씨의 몸부림이 느껴지긴 하지만 저는 그 이상을 느끼기는 어려웠어요. 물론 성공하기 위해 나름대로 비열한 수단까지 동원하는 모습은 조금 신선했습니다만.... 여튼, 주변 인물들에 대한 묘사를 많이 줄이더라도 차라리 조금 더 비열하고 악한 역도산을 묘사하는 쪽이 더 좋았을 것 같네요.

그래도 고증과 설정을 무시한다면 영화적으로는 "상당히 잘 만든 영화"라는 생각이 듭니다. 한국 영화의 발전을 보여주듯이 여러 공들인 화면과 음악들로 보는 내내 흐뭇했습니다. 레슬링 팬으로서 여러 레슬러들을 화면에서 접할 수 있던 것도 좋았고요. 별점은 2.5점입니다.

덧 1 : 여러모로 곽경택 감독의 "챔피언"이 많이 연상되더군요. 실제 스포츠 스타를 소재로 영웅적인 삶과 비극적 죽음, 그리고 한 여인에 대한 사랑을 포장한 것은 거의 판박이입니다. 또한 그 스포츠 장면이 그다지 비중이 크지 않은 것 까지 말이죠. 두 영화다 아쉬움은 있지만 비교적 잘 만든 영화들이라 흥행에 실패한 것을 보면 이런 소재는 국내에서는 흥행 성적이 백전백패인 것 같기도 합니다. 역시 국내 관객에게는 너무 낡은 소재와 주인공이었을까요?

덧 2 : 거의 일본영화같은 영화지만 그래도 한국에서 제작했다는 티를 내듯이 "김일"선생님만 역도산의 핵심 측근 제자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사실이긴 했지만 이노키가 무척 서운해 할 듯.

2005/03/29

관리인의 고양이 - 얼 스탠리 가드너 / 한영순 옮김 : 별점 3점


변호사 페리 메이슨에게 어느날 애슈튼이라는 노인이 찾아온다. 그는 대부호 피터 렉스터의 관리인이었는데 피터가 화재 사건으로 사망한 후, 상속인 샘 렉스터에게서 키우던 고양이를 내쫓기게 되어 이것을 막기 위해 메이슨에게 해결책을 문의하러 온 것. 메이슨은 상속권을 놓고 소송을 제기하겠다는 편지를 보낸다.
이 편지를 받고 두명의 상속인인 샘 렉스터와 프랭크 오프리가 악덕 변호사 나다니엘 샤스터와 함께 메이슨을 찾아오고 메이슨은 끝까지 싸우기 위해 또다른 상속인 후보 위니프렛을 찾아 나선다. 고양이에 관련된 사건을 알게 된 위니프렛은 불쌍한 고양이를 대신 맡아주기 위해 남자친구 더글라스 킨을 저택으로 보내나 애슈튼 노인이 살해된 시체로 발견되고, 킨은 용의자로 몰려 도주하게 된다.
메이슨은 피터 렉스터의 사인에 대한 의문을 풀기위해 당시 간호사였던 이디스 도보를 방문하나 그녀마저 살해당한채 발견되고, 2건의 사건이 동일인물의 소행으로 보여 더글라스 킨은 수배된다. 메이슨은 그에게 자수할 것을 권유한 뒤, 법정에서의 단판 승부를 벌이게 된다...


역시 보수동 헌책방 거리에서 구한 책입니다. 문공사에서 간행되었던 월드 미스테리 시리즈로 개인적으로는 "토라진 아가씨" 이후 두번째로 읽게된 페리 메이슨 시리즈이기도 하네요.

일단, 지금 읽기에는 존 그리샴 시리즈에 비해 확실히 시대에 뒤처진 티가 역력합니다. 순진하다고 할까요? 아니면 쉽다고 할까요? 이 소설은 변호사 출신 저자가 썼음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많은 법정 지식이나 많은 자료를 풀어놓지 않습니다. 이야기는 모두 상식선에서 전개됩니다.

그래도 역시나 당대의 베스트셀러 작가답게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풀어가는 재주는 대단합니다. 이야기가 숨쉴틈없이 빠르게 진행되면서도 복선이나 단서도 나름대로 치밀하게 구성한 재미있는 작품이라 생각되네요. "고양이"를 키우게 해 달라는 어떻게 보면 사소하고 어처구니 없는 의뢰가 여러명이 얽힌 살인 사건으로 전개되고, 그 이면에 다른 진실이 숨어있다고 밝혀진다는 내용은 굉장히 뻔할 수도 있지만, 빠른 속도감과 더불어 흥분을 자아내게 하는 맛이 일품이라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또 메이슨을 비롯, 델라 스트리트와 폴 드레이크로 구성되는 3인방의 활약 역시 여전하며 무엇보다도 메이슨 소설의 백미라 볼 수 있는 법정에서의 대 역전극이 잘 표현되어 있다는 점 등 시리즈 팬으로 즐길거리도 많았다는 것도 큰 장점이죠.
여러 증인들을 소환하여 필요한 정보를 단계적으로 수집한 뒤 마지막에는 직접 "증언대"에 올라 증인으로서 사건을 밝히는 메이슨의 모습은 다른 작품에서는 보지 못했던 신선한 부분이라 특이해서 좋았습니다.

하지만 역시 너무 쉽게 쉽게 쓴 탓인지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메이슨의 계획들이 그다지 치밀해 보이지 않았다는 것은 아쉬우며 사건에 대한 추리 자체는 제법 합리적인 편이지만 그 사건 자체에 대한 우연성이 너무 강하고, 실질적으로 여러 사건들의 연관성이 떨어져 보이는 것은 옥의 티라 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제일 궁금했던 것이 순전히 "우연"에 지나지 않았던 더글라스 킨의 방문이 없었다면 과연 범인들이 어떻게 행동했을까 하는 점이었어요. 애슈튼 살인 사건은 우발적이었으니 만큼 은폐하기가 거의 불가능했을텐데 말이죠...

무엇보다도 여러군데에서 보여지는 번역 오류와 눈뜨고 봐 줄 수 없는 삽화는 용서가 안됩니다. 번역 오류로 인해 내용 전달이 잘 안되는 점이 많고 주인공들의 이름도 아무 고민없이 쓴 티가 역력하며, 깔끔한 표지 디자인에 비해 너무나 무성의한, 필요도 없이 삽입된 짜증나는 삽화들은 이 소설의 배경이 "태국"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게끔 하더군요.

그래도 전체적으로 쉽게 읽히는 재미있는 작품이라는 점에 있어서는 역시 명불허전입니다. 물론 추리소설적인 가치만 놓고 따진다면 실제 추리적인 부분에서는 약점이 분명 있는 만큼 평가가 많이 엇갈릴 것 같기도 하네요. 그래도 앞서 제시되는 증거와 단서를 이용하여 사건 자체를 밝히고 말끔하게 해결하는 추리적인 부분과 장치는 장,단편 통틀어 제가 읽었던 페리 메이슨 시리즈 중 최고작이며 확실히! 재미는 있는 책이니 만큼 한번 읽어 볼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2005/03/27

책방출 리스트 : 공짜입니다! - 마감했습니다.

이사 관계로 눈물을 머금고 다시 책을 방출합니다.

버리느니 필요하신 분들을 드리는 것이 좋을 것 같아 포스트를 남깁니다. 단 제가 시간이 거의 없으므로 방법은 무조건 일요일 오후, 2호선 문래역까지 오시는 분에게만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시간은 나중에 협의를...) 원하시는 분은 책 제목을 주인장에게만 보이는 비공개 덧글로 글 남겨 주시기 바랍니다.(연락처 포함해서요)

책 상태는 책마다 다르지만 다 읽을 만 합니다. 새책도 있고요. 예약이 끝난 책은 체크하겠습니다. 대단한 책은 없지만 필요하신 분들에게 잘 갔으면 하네요. 4월달 안으로만 정리하고 이후에는 버리는 수 밖에는....

추리소설 :
호메로스 살인사건 - 츠치야 다카오(예약)
백색살인 - 로스 토마스(예약)
건축무한 육면각체의 비밀 - 장용민 / 김성범(예약)
죽음의 편지 - 보브 렌들 (예약)
스티븐 킹, 미스터리 환상특급 1 (예약)
소환장 - 존 그리샴
황새 - 장 크리스토프 그랑제(예약)
마지막 칸타타 - 필립 돌레리스 : 바흐의 푸가곡 속의 암호 해독 미스터리 (예약)

기타 서적
시간을 지배한 사나이(에약)
심심풀이로 읽는 화학 (예약)
상대적이고 절대적인 외계인 백과사전 (예약)

만화 :
춤추는 세무관 1 ~ 9 (예약)
피스전기만물상 1~22 (예약)
Joker 1~6 (예약)
여검시관 히카루 1, 5 (예약)
신암행어사 1~4
가가탐정사무소 1~2 (예약)
만화 셜록 홈즈 전집 1~2 (예약)
성 하이퍼 경비대 1~9
쵸비츠 1~5 (예약)
두더지 1~2
돌연변이 파워걸즈 1~4 (예약)
하이퍼 레스토랑 1~2 (예약)
캄브레이커 1~6
귀참십장 1
의천도룡기 1~18
은하군웅전 라이 1~13 (옛 해적판본)

세계 미스테리 단편선 - 김한상 편역 : 별점 3점


역시 보수동 헌책방에서 구한 단편선.
원전이 되는 작품집이 모호하고,  읽기 짜증날 정도로 번역이 부실한 일어 중역본일 뿐 아니라 표지와 본문 편집 방식 조차 이 바닥의 바이블 격인 "세계 미스터리 걸작선"을 거의 그대로 카피한, 한마디로 질낮은 기획물입니다. 그런데 의외로 실린 단편들의 수준이 우수해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사실 에드워드 D 호크의 읽지 못했던 단편이 하나 실려있다는 이유로 구입했는데 의외의 성과랄까요?

첫 작품 "D언덕의 살인사건"은 에도가와 란뽀의 아케치 시리즈 단편으로 다른 단편집으로 가지고 있고, 이미 읽기도 해서 일단 패스.

두번째 작품 "냉장고 속의 갓난아기"는 제임스 M 케인의 단편입니다. "우편배달부는 벨을 두번 울린다"의 작가죠. 미국의 사회상과 문화를 서스펜스 스릴러에 잘 섞어놓는 작가로 알고 있는데 이 단편도 유사한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설정과 소재가 무척 독특해서 인상적이긴 하지만 글쎄요.. 추리적인 요소는 거의 없는 드라마 같은 작품이었습니다.

세번째 작품 "쿠비날 섬의 약탈"은 더쉴 해미트의 작품입니다. 탐정이름은 나오지 않지만 컨티넨탈 옵으로 보이는 예의 하드보일드 탐정이 등장해서 한 섬에서 일어난 전쟁과도 같은 약탈 사건의 해결과 그 진상을 다루고 있습니다. 하드보일드의 맛을 굉장히 잘 보여주면서도 추리적으로도 나무랄데 없는 추천작입니다. "난 다리 병신 소년으로부터 쌍지팡이를 훔치는 놈이라는 것도 모르나?" 라는 한마디로 이 작품의 모든 것이 설명 가능할 것 같네요.

네번째 작품 "레오폴드 경감의 휴일"은 에드워드 D 호크의 레오폴드 경감 시리즈입니다. 독립기념일 연휴에 발생한 출판사 공동 경영자 실종사건이 어느덧 살인사건으로 발전하는 이야기로 트릭은 어떻게 보면 굉장히 뻔하지만 상당히 작품과 잘 맞아 떨어지고 여러 설정이나 복선도 명쾌해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다섯번째 작품 "성난 증인"은 얼 스탠리 가드너의 페리 메이슨 시리즈입니다. 페리 메이슨이 담당하게 된 대형 금고 도난사건의 진범을 찾는 이야기인데 꽤 괜찮은 트릭이 등장하고 사건 해결과정도 좋아서 즐겁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여섯번째 작품 "두번 죽은 사내"는 다그 아린이라는 잘 모르는 작가의 작품이더군요. 장의사에서 일하는 청년이 15년의 간격을 두고 똑같은 시체를 맡게되어 스스로 진상을 찾아 나서는 이야기입니다. 설정은 재미있었지만 그 진상이라는게 조금 시시해서 아쉬웠어요. 좀더 반전이나 섬찟한 맛을 넣을 수 있었으리라 생각되거든요.

일곱번째 작품 "손톱"은 윌리엄 아이리쉬의 작품으로 다른 앤솔로지에서 이미 읽은 작품입니다. 손톱이 빠진 손가락을 인멸하는 증거인멸 트릭이 등장하며 마지막의 반전이 좋습니다. 뭐 지금 읽기에는 조금 낡아 보이기도 하나 좋은 작품이죠.

여덟번째 작품 "일석이조"는 F.W 크로포츠의 단편입니다. 협박범과 빚을 동시에 없애려는 한 건달의 계획을 그리고 있는데 내용적으로 연결과 이해가 잘 되지 않더군요. 번역 문제인지는 모르겠는데 사건해결 방법이 너무 단편적이고 평면적으로 묘사되어 있는 점은 작가의 명성과 어울리지 않았고요.

아홉번째 작품 "악인은 지옥으로"는 단편의 명수 헨리 슬레서의 단편으로 유일한 강도사건의 증인을 없애기 위한 한 강도의 작전을 다루고 있습니다. 나름의 반전도 있고 단편의 맛도 잘 살아있어서 역시 단편의 명인답다는 생각을 가지게 해 주더군요.

마지막 작품인 열번째 작품은 일본작가 마츠모토 세이쵸의 "증언"입니다. 불륜 상대와 만나던 직장인이 살인 혐의를 받고 있는 이웃집 사람을 목격했지만 불륜 사실이 들통날까봐 그것을 숨기는 과정을 보여준다는 내용으로 제법 묵직한 내용으로 잘 진행되긴 하지만 결말은 사실 좀 어처구니 없더군요. 너무 쉽게 끝났달까요? 단편에는 별로 어울리지 않는 소재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이러한 작품들 중 이미 읽었거나 가지고 있는 작품을 뺀다면, 베스트는 "쿠비날 섬의 약탈", "레오폴드 경감의 휴일", "성난 증인", "악인은 지옥으로" 입니다. 다른 작품들도 그다지 처지지는 않고요.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3점. 기대를 하지 않아서 더 만족스러운 독서였습니다. 다른 단편집보다 무척 얇기도 하고 작품수도 적지만 제가 처음 접한 작품이 그래도 반 이상 되며 수준들도 괜찮은 편이라 작품 선정은 탁월했다 생각됩니다. 번역만 조금 더 신경을 써 주었더라면 훨씬 좋았을텐데 약간 아쉽네요.

PS : "미수테리"를 "미스테리"로 겨우 고친듯한 표지의 저 제목은 코미디라고 밖에는...

2005/03/26

Y의 거리 - 아토다 다카시 / 이경재, 정태원 : 별점 3점


이전부터 눈여겨 보아 왔던 작가인 아토다 다카시의 단편집.
이 작가의 작품은 앤솔로지에서 "나폴레옹 광"을. 일한대역 문고 및 기타 등등에서 몇몇 단편을 읽은 것이 전부였었죠. 이 책은 국내에 정식 번역된 유일한 단편집이지만 절판된 관계로 구하기 힘들었었습니다. 계속 찾아다닌지 몇 해, 그런데 얼마전 집안일로 본가인 부산에 내려갔다가 보수동 헌책방 거리 탐방을 하다가 아주 운좋게! 구하게 되었습니다. (보수동 헌책방 거리는 다음에 또 가게 되면 자세히 포스트를 남기겠습니다) 이제부터 부산에 가게 된다면 꼭 보수동에 한번씩 들려봐야겠어요. 역시 노력하는 자에게 복이 오기 마련이겠죠^^

그런데 추리적인 요소가 강한 작품도 있지만 정통 "추리" 단편선은 아니더라고요. 여러가지 작품들이 섞여 있습니다. 사건과 범죄가 등장하여 강한 반전으로 독자에게 굉장히 강렬한 인상을 주는 작품들도 있고, 인간 드라마를 묘하게 여운을 남기게끔 구성한 작품들도 있고 , 독특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작품들도 수록되어 있죠. 그래서 작품의 폭이 넓으면서도 다양하다는 생각을 가지게끔 합니다. 물론 글 자체도 굉장히 잘 쓰는 편이고 문장력도 있어서 (번역이 좋기도 합니다) 몰입해서 읽을 수 있었어요.
개인적인 베스트를 뽑자면 최고의 작품 중 하나인 "나폴레옹광", 섬뜩한 반전이 돋보이는 "뻔뻔한 손님", 추리적 요소가 가장 뛰어난 작품 중 하나인 "꽃병" 을 뽑고 싶네요.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3점! 여러 사건과 범죄가 등장하고 반전의 맛이 상당해서 이쪽 장르 애독자라면 놓치기 힘든 작품들이 가득해서 아주 만족스러웠어요. 제목도 깔끔하고 인상적인 편으로 좀 과장된 묘사가 거슬리는 부분이 약간 있지만 발상 하나는 기가 막힌 작품들이 많으므로 어렵게 구한 보람이 느껴집니다.

하지만 유치찬란 3류 스릴러스러운 표지 하나만큼은 용서가 안되는군요....

단편들을 자세히 뜯어본다면

나폴레옹 광 : 이 작가의 대표작이죠. 나폴레옹에 미친 사나이와 자신이 나폴레옹의 환생이라고 믿는 사나이에 얽힌 이야기인데 굉장히 섬찟하면서도 독자의 상상에 맡기는 반전이 인상적입니다. 이전에 비슷한 설정을 다른 단편 (루스 렌들이었나...기억이...)에서 읽은 기억은 나긴 합니다만, 동서양 관점차이를 떠나서도 재미있는 작품입니다.

뻔뻔한 손님 : 우리나라 소설 "생인손"과 유사한 섬뜩한 반전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밑바닥 인생이 좋은 가문에 들어가기 위한 방법을 제시해 주는군요.

프로와 프로가 만나다 : 혼인빙자 사기범이 제대로 된 "프로"를 만나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는 소재로 평이한 수준.

꽃병 : 1년여전 죽은 언니의 살인범을 추리해 내는 동생의 이야기로 재미있는 사건 전개를 보여주는 추리 단편입니다. 트릭은 없지만 범인을 유추해 내는 과정이 괜찮습니다.

Y의 거리 : 우연히 만난 인생 막바지에 몰린 두 남녀의 이야기입니다. "Y의 거리"란 갈림길을 뜻하는 말이더군요. 표제작이긴 한데 그다지 높은 평가를 주기는 어렵군요. 여운을 주는 인생 드라마라는 느낌입니다.

투명고기 : 자신도 투명하며 같은 어항속에 물고기들도 투명하게 만드는 물고기에 관련된 짤막한 이야기. 뭐 그냥저냥입니다.

딱정벌레의 푸가 : 자신의 승용차 폭스바겐(딱정벌레)과 대화하는 한 입원 환자의 이야기로 기발한 전개와 구성은 물론 반전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사랑은 알 수 없어 : 유괴범이 돈을 받아가는 새로운 방식을 제시한 유괴물입니다. 괜찮은 편이었는데 마지막에 좀 무리한 반전으로 아쉬움을 주더군요.

장미의 문 : 도대체 내용을 알기가 힘들었던 심리물. 노리코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던 걸까요?

산책학 입문 : 여자를 낚기 위한 한 플레이보이의 "산책 코스"를 학문으로 까지 끌어올리는 기발한 상상력이 돋보였던 작품. "산책학"이 내용대로 원래 있는 학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저만의 산책 코스를 하나쯤 개발하고 싶어지더군요.

냄비와 엘리베이터 : 살인사건이 있었던 고층 아파트에서 엘리베이터의 층수 이동을 보고 범인을 유추해 내는 독특한 과정이 인상적인 추리 단편. 평이한 수준입니다.

지구의 뒤쪽 : 환상 단편. 아내의 불륜을 의심하는 주인공은 아내가 집밖을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되지만 과연 아내가 간 곳은?

비뚤어진 밤 : 이른바 "인생극장"같은 환상단편으로 2번의 인생을 살게되는 주인공의 이야기.

수상한 가방 : 여체를 "서랍"으로 묘사하는 기발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단편으로 유머러스 하면서도 독특합니다.

샘 호손의 사건부 : 서문 - 에드워드 D 호크

시리즈 캐릭터의 발단을 떠올리는 것이 쉽지 않을때도 있지만 닥터 샘 호손의 경우 그 때의 상황을 확실히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1974년의 1월의 일입니다. 새 달력을 타이프라이터 옆에 걸었습니다. 달력 각 월의 페이지에는 과거의 전원풍경 수채화가 그려져 있었고 1월은 겨울의 유개교(有蓋橋 : 덮개있는 다리) 의 그림이었습니다.

1월내내 그 그림을 보고 있다가 어느날 마차가 그 다리의 한쪽 편에서 들어가서 반대쪽으로 나오지 않는 경우는 어떨까? 라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습니다. 그리고는 이틀정도 고민해서 그것에 어울리는 해답과 플롯을 생각해 내었습니다. 이제 그밖에 필요한 것은 탐정 뿐이었습니다.

이 이야기의 시대는 과거로 설정하지 않으면 안되었기에 새로운 종류의 탐정, 새로운 시리즈, 새로운 캐릭터가 필요했습니다. 주인공은 시골의사로 하고, 이름은 간단하게 "닥터 샘 선생"으로 하였습니다. 아마 당시 악명이 높았던 닥터 샘 세펴드의 이름이 아직 기억에 새로웠기 때문이었겠죠. 이야기의 닥터 샘 선생은 의학교를 졸합한지 아직 1년밖에 지나지 않은 젊은이로 보물은 1921년형의 "피어스애로우-런어바웃", 양친이 졸업 축하 선물로 준 차로 설정 했습니다.

지금까지의 거의 전 단편을 그렇게 했듯이 이 작품을 "EQMM (엘러리퀸스 미스테리 매거진)"에 보냈습니다. "엘러리 퀸"의 한사람이자 이 잡지의 편집장이었던 프레더릭 더네이씨는 곧 이 이야기를 마음에 들어해서 두세가지의 수정을 제안했습니다.

먼저 릴리안 데 라 토레가 창조한 닥터 샘 죤슨 시리즈와의 혼동을 피하기 위해서 닥터 샘 선생의 성이 필요하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저는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었죠. 프레더릭은 두세개의 이름을 제안해 주었는데 저는 그자리에서 바로 "호손"을 선택했습니다. 뉴잉글랜드의 탐정으로써 이보다 잘 어울리는 이름이 있을까요?

두번째의 제안은 저를 조금 동요하게 만들었는데 추억담을 이야기하는 늙은 샘 선생의 어미의 "g"발음을 없는 것 처럼, 시골의 사투리로 이야기하는 것 처럼 하는 것이 좋겠다고 한 것입니다. 저는 극중의 다른 여러 등장인물들 (특히 렌즈 보안관) 에게 그렇게 사투리를 사용하도록 하였지만 닥터 샘 선생만은 사용하지 않도록 하였습니다. 하지만 결국 저는 동의 했습니다만 이 모든 수정사항은 프레더릭 더네이씨의 지시였다는 것을 알아 주십시오.
그래도 그 후의 여러편에 사투리의 사용은 점차 줄어들게 하였는데 후에 이 시리즈의 작품은 사투리를 사용 하지 않았지만 전부 같은 시리즈로 보여서 좋다고 프레더릭이 말해 주더군요.

처음부터 저는 샘 호손 시리즈를 밀실살인 등의 불가능범죄를 취급하는 시리즈로 계획했습니다. 프레더릭 더네이도 같은 것을 생각하고 있어서 제가 시리즈의 두번째 편을 보내자 이후 시리즈의 작품 전부가 불가능범죄를 취급하는 것이 좋겠다고 제안해 주었습니다. 저는 기쁘게 그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여러 종류의 범죄소설이 있지만 탐정소설의 서브 쟝르 중에서는 뛰어난 불가능범죄나 밀실살인처럼 호기심을 자극하고 의욕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없죠.

본서에 수록되어있는 작품들은 닥터 샘 호손 시리즈 최초의 12편입니다. EQMM의 1974년 12월호부터 78년 7월호까지 사이에 처음 발표되었던 것들이지요. 1편에서의 시대를 1922년 3월로 설정했고 그 후는 연대순으로 이어집니다.

단, 인쇄오류의 탓으로 인해 연대가 바뀌어 들어간 예가 하나 있습니다. 무대는 노스몬트 마을과 그 주변으로 노스몬트는 코네디컷주 동부에 있는 것 같고, 그 위치는 조금 달라지고 있습니다. 후의 작품에서 이웃 마을이 진 코너스라고 알려지는데 그것은 엘러리 퀸의 장편소설 "유리의 마을"의 무대이기도 합니다.

초기에는 연로한 닥터 샘 선생이 노스몬트에서의 젊은 시절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 술친구들을 환영하는 장면에서부터 작품이 시작하며, 대부분의 경우 다음 사건을 암시하고 끝났었습니다. 이것도 프레더릭의 생각으로 긴 시간동안 잘 진행해 왔습니다만, 이야기의 전개를 빠르게 하기 위해 저는 도입부를 상당히 줄이고 결말의 예고부분을 전면적으로 없앴습니다. 최근에는 1년에 약 두편의 샘 호손 시리즈밖에는 쓰고있지 않아서 육개월뒤의 다음 작품의 내용을 생각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생각이 들었거든요.

저의 수많은 시리즈 캐릭터 대부분이 두근두근한 불가능범죄에 도전하지만 그 서브,서브쟝르에 있어서 저의 최고의 작품은 샘 호손 시리즈 속에 있습니다. 최초의 12편을 자세히 살펴 보자면 "유개교의 수수께끼"가 제일 많이 재록되어 있는 것으로 마음에 들며 밀실물의 전문가 로버트 에이디에 따르면 "투표부스의 수수께끼"가 "호슨 시리즈 속에서도 최고로 만족을 주는 작품의 하나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쨌건 이 작품집의 12편은 닥터 샘 호손 선생의 제 1 단편집에 수록하기에 모자라지 않는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즐겁게 쓴것 같습니다. 여러분들도 좋았던 옛 시절의 이야기를 즐겁게 읽어 주셨으면 합니다.

에드워드 D 호크 / 뉴욕주 로체스터에서 1995년 11월


일본에서 구입한 국내 미발표 단편선의 작가 서문입니다. 에드워드 D 호크는 다른 앤솔로지에서 레오폴드 경감 시리즈로 접해본 작가인데 이 작품 평이 꽤나 괜찮은 편이라 구입해 보았습니다. 먼저 소개격인 서문을 한번 번역해 보았는데 실력이 많이 부족하군요. 의역과 생략 투성이이니 감안해서 보셨으면 합니다. 국내 초역(?)이라는 자부심으로 단편들도 한두편 번역해 보려고 하는데 워낙 실력이 딸려서.... (혹 하게된다면 많은 응원 부탁드리겠습니다^^ 전 마음이 약하므로 번역에 대한 너무 많은 태클은 삼가해 주시길...푸훗!)

2005/03/23

아주 긴 일요일의 약혼 - 세바스티앙 자프리조 / 김민정 : 별점 4점


아주 긴 일요일의 약혼 - 6점 세바스티앙 자프리조 지음, 김민정 옮김/문학세계사

1917년 1월, 독일군과 프랑스군이 격렬한 참호전을 벌이고 있던 솜전선의 최전방 참호 중 하나인 "해질녁 빙고"로 5명의 군인이 호송되어 온다. 그들은 자해 혐의로 군사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상태이지만 상부의 모종의 지시로 프랑스와 독일 참호 경계지역에 맨몸으로 내던져지는 처벌을 받게되고 이윽고 벌어진 대 전투의 혼란중에 모두 전사한 것으로 밝혀진다.

5명의 군인 중 한명인 마네크의 연인 마틸드는 장애인이지만 아버지의 재력에 힘입어 당시 참호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그리고 마네크는 어떻게 되었는지를 찾기 시작하며 하나 둘 씩 찾아내는 실제 참호전에 참전했던 병사들과 5명의 병사의 가족들의 여러 증언에 힘입어 서서히 당시의 진상을 밝혀내기 시작한다...


프랑스 작가 세바스티앙 자프리조의 장편소설. 프랑스 장편소설답게 (?) 길이가 만만치 않네요. 어쨌거나 간략한 줄거리만 놓고 본다면 추리 쟝르라고 말하기는 애매하지만 여러 증언들을 종합하여 그 중에 놓여있는 진상을 찾아내는 과정은 물론이고 기초적이기는 하지만 암호트릭까지 등장하는 등 추리물로 손색이 없는 작품입니다.

사실 다양한 인물들의 증언들을 모은 뒤 그 속에서 하나의 진실을 찾아낸다는 소재와 설정은 많은 작품에서 반복되어 온 것이죠. 그러나 이 작품은 장애인이라는 핸디캡을 주인공에게 설정했기 때문에 주로 "편지"를 통해 이러한 증언들이 수집된다는 차이점이 있고 덕분에 다른 작품들과 차별화 되는 재미를 선사하고 있습니다.
또 1차대전 당시와 직후의 프랑스를 배경으로 시대상황을 잘 보여주는 여러 디테일한 묘사도 좋고 독특한 성격의 주인공의 심리묘사 역시 재미있을 뿐더러 나름대로 해피엔딩인 결말까지 완벽해서 상당한 길이에도 불구하고 쉽게쉽게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작품입니다. 주 스토리인 마틸드의 마네크 탐색과 그것에 관련된 여러 반대의견, 협박과 더불어 5인의 병사 모두 각각의 이야기와 설정이 자세하고 흥미진진해서 정말 눈을 떼기 힘들 정도였어요. 물론 프랑스(!) 소설 답게 묘사가 좀 장황해서 약간 지루한 부분도 없잖이 있기도 합니다만...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4점. 추리소설 강국 프랑스의 위력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좋은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그나저나 이 작가의 다른 작품인 "비의 여행자"는 영화 시나리오를 소설로 재 구성한 것을 읽었었는데 반해 이 작품은 소설을 영화화한 "인게이지먼트"라는 작품이 곧 개봉한다고 하니 아이러니컬하네요. 도대체 편지를 주 매개체로 벌어지는 이야기를 어떻게 영화화 했는지 궁금해서라도 영화는 꼭 챙겨볼 생각입니다.

덧붙여 딱 하나 아쉬운 점은 너무 많은 등장인물들, 그리고 그 등장인물들이 거진 다 별명으로 통하기 때문에 머리속에서 다 정리가 안되서 여러번 앞장을 넘겨보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주인공들을 옛날 추리소설 스타일로 맨 앞머리에 간략하게 정리해 주었으면 훨씬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래는 제가 나름대로 정리한 주인공 표입니다. 혹 읽으시는 분들은 참고하시길...

주인공과 그 가족, 협력자들
마틸드 : 주인공. 어렸을 때 사다리에서 떨어져 휠체어를 타고 다닌다.
실뱅 : 마틸드의 운전수 겸 친구. 보호자
베네딕트 : 실뱅의 아내. 요리사 겸 가정부.
마티유 도네이 : 마틸드의 아버지. 건설회사 운영자.
피에르 마리 루비에르 : 마틸드 집안의 변호사. 군관련 인맥으로 마틸드의 조사를 돕는다.
제르맹 피르 : 사립탐정이자 조사원. "만능 해결사"

5인의 병사
마네크 : 마틸드의 연인. 20살의 어린나이로 징집되어 자해 혐의로 사형선고를 받고 참호 밖으로 내던져진 병사. 군대에서는 "블루에"로 통함.
클레베르 부케 : 원 목수. "에스키모"
앙주 바시냐노 : 형무소에 있다가 감형을 조건으로 전투에 참전한 건달. 애칭은 "니노" 별명은 (형무소에 있다가 징집되어서)"일반법"
프랑시스 게냐르 : 노동운동을 하다가 참전. 별명은 "시수"
브누아 노트르담 : 5명중 가장 강한 병사. 아내와 아들이 한명 있다. 별명은 "그 사람"

관련 병사들
셀레스탱 푸 : 당시 참호전에 참전했던 병사. 요령있고 약삭빨라 별명은 "군의 무법자".
뱅자맹 고르드 : 하사. 당시 참호전에 참전. 클레베르의 친구이자 원 동업자. 별명은 "건빵"
위르뱅 샤르돌로 : 하사. 고르드 하사와 함께 "해질녘 빙고"의 5명의 죄수 인계 책임자. 이후 전사.
다니엘 에스페란자 : 당시 병사들을 참호까지 호송한 담당자. 5명의 마지막 편지를 대신 보내준 인물.
파부리에 대위 : 당시 "해질녘 빙고"를 비롯한 진지 책임자. 5명을 참호 밖으로 내던지는 행위를 혐오하며 상부를 비판. 이후 벌어진 전투에서 전사.
장 자크 에스트랑쟁 중위 : "해질녘 빙고" 중대장.
장 바티스트 상티니 : 당시 5인의 병사를 치료한 군의관. 이후 전사.
아리스티드 포미에 : 마틸드와 마네크의 고향친구이자 마틸드의 전우.

병사 가족 및 친지들
프티 루이 : 클레베르와 "건빵"의 친구. 술집 주인.
베로니크 파사방 : 애칭 "베로", "에스키모" 클레베르의 연인이지만 모종의 사건으로 헤어짐.
엘로디 고르드 : 뱅자맹 고르드 하사의 부인.
발렌티나 에밀리아 마리아 : 앙주 바시냐노의 애인.
파올로 콘테의 미망인 : 발렌티나 에밀리아 마리아의 대모.
테레즈 게냐르 : "시수"의 아내.
로진 샤르돌로 : 샤르돌로 하사의 어머니.

2005/03/20

리틀 시스터 - 레이먼드 챈들러 / 박현주 : 별점 2점


레이먼드 챈들러 지음, 박현주 옮김/북하우스

필립 말로는 캔자스시티 출신의 소녀 오파메이 퀘스트로부터 소식이 두절된 자기 오빠 오린을 찾아 달라는 의뢰를 받는다. 하루 경비는 20달러. 호기심과 동정심에 사건을 맡은말로는 오빠가 살고 있었다는 베이시티의 하숙집을 찾아가지만 하숙집에는 까닭모를 범죄의 냄새가 가득하고 하숙집 관리인조차 얼음송곳에 찔린 시체로 발견된다.
돌아온 말로에게 중요한 물건을 맡아달라는 의뢰 전화가 걸려오고 호텔로 찾아간 말로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의뢰인의 시체였다. 그는 베이시티 하숙집의 오린의 방에서 보았던 인물이었고 말로는 순간의 기지를 발휘하여 시체에서 "물건"을 입수하는데 성공한다.

입수한 전표에서 얻은 사진으로 사진에 찍힌 인물이 경찰이 추적하고 있는 거물갱 위피 모이어라는 사실, 그리고 그의 범행을 증명하는 유일한 단서라는 것을 알게된 말로는 사진에 같이 찍혀있던 위피의 애인인 헐리우드 여배우 메이비스 웰드에게 수사를 집중함으로써 점차 갱단과 연예계에 걸친 커넥션에 서서히 발을 들여놓게 되는데...

6번째로 읽은 필립 말로 시리즈 장편입니다. 작가가 헐리우드의 각본가 생활 이후 내 놓은 후기작이죠. 헐리우드 경험때문인지 연예계에 대한 묘사가 상당히 디테일한 것이 제일 먼저 눈에 띕니다. 챈들러라는 작가가 느낀 헐리우드에 대한 복잡미묘한 감정(주로 경멸과 혐오겠지만요)이 잘 투영된 어떻게 보면 자전적인 소설이랄까요?

당시 미국의 꼬여버린 가족사나 인간의 잔인성을 표현하는 것은 루 아처를, 헐리우드를 무대로 하여 갱들과 경찰들을 묘사한 부분은 제임스 옐로이를 닮았지만 챈들러는 역시 이 바닥의 왕고참답게 자신만의 방법으로 작품의 레벨을 끌어올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파메이 퀘스트를 비롯해서 헐리우드 여배우인 메이비스 웰드와 곤잘레스 양이라는 여성을 3명이나 등장시키고 각자에게 확실한 역할을 줌으로서 이야기를 풍성하게 하는 점이 이전과는 좀 다르더군요. 무엇보다 작가의 애증이 교차하는 중요 인물인 헐리우드 스타 여배우 메이비스가 그나마 가장 괜찮고 믿을만한, 실제로 사랑에 빠지기 직전의 여인이었으며 가장 범죄와 거리가 멀어보이던 소녀 오파메이 퀘스트가 사악한 존재였다는 반전은 놀라왔어요. 마지막에 말로의 독설과 시니컬한 유머를 뒤섞어 사건을 정리하는 부분도 마음에 들었고요.

하지만 추리적으로는 상당히 부실합니다. 일단 오파메이 퀘스트가 사건을 의뢰하는 이유조차 타당성이 약해요. 또한 가장 중요한 단서인 사진에 찍힌 인물이 위피 모이어라는 것에 대해서 그 어떠한 정황증거도 내놓지 못하고 있고요. 또한 각 살인사건 (총 4건이나 발생하죠)의 범인들이 각각 누구인지조차 한번 읽었을때는 명확하지 않을 정도로 깔끔하게 정리되고 있지 못합니다. 등장인물도 상당히 많은 편이지만 우연과 추정으로 얽힌 관계들이 많아서 이야기만 복잡해진 느낌이에요. 단적인 예로 대체 라가르디 박사라는 인물은 왜 나오는지도 모르겠더라고요.
무엇보다 사건들의 인과관계가 우연으로 이루어지고 말로는 "사건을 부르는" 역할만 담당할 뿐 변변한 활약 자체를 보여주지도 못하는 점이 가장 아쉬운 부분입니다. 흡사 코난의 모리탐정 같아요. 사건만 맡으면 살인사건이 발생한다는 점이...

결론내리자면 챈들러의 장편은 이제 거의 다 접해보았으나 이 작품은 솔직히 그간의 시리즈중에서는 최악이었습니다. 내용면으로나 추리적으로나 수긍하기 힘든 부분이 많았거든요. 말로 시리즈 중에서는 가장 독특한 분위기를 풍기기 때문에 한번 읽어볼 가치는 충분하나 높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뭐 솔직히 말하자면 번역되어 나온 것 만으로도 감사한 일이겠지만...

PS 1: 책 뒷부분의 해설이 참 마음에 듭니다. 책의 소제에 걸맞게 헐리우드에서의 챈들러를 주로 다루고 있는데 재미도 있고 상세한 설명이 무척 좋더군요.

PS 2 : 해설에서 다루는 이 책의 게임판이라는 "Private Eye"라는 게임은 국내에도 한글화 되어 정식 발매된 적이 있어서 그 당시 해봤었는데 그 당시 감상 역시 "무슨 내용인지 도대체 모르겠다!" 였죠. 소설을 읽고 나니 한번 더 구해서 해보고 싶어지기는 하는군요.


2005/03/18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1,2,3,4,5- 더글러스 애덤스 : 별점 2.5점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세트 - 전6권 - 6점
더글러스 애덤스 지음, 김선형 외 옮김/책세상

영국인 아서 덴트는 자기의 집이 우회로 건설을 위해 파괴되는 것을 막기 위해 목욕가운 차림으로 불도저 앞에 누워 있던 중 자신이 사실은 외계인이며 지구가 지금 파괴 직전이라고 주장하는 친구 포드 프리펙트에 의해 정말로 지구가 파괴되기 직전 함께 우주로 탈줄하게 된다.

그들은 자포드 비블브락스라는 외계인과 트릴리언 (트리시어 맥밀란)이라는 지구인 여성과 함께 은하계를 여행하며 모험을 하게 되며 그 와중에 지구가 사실은 은하계 제일의 컴퓨터가 우주와 삶에 대한 질문에 대해 "42"라는 답을 내 놓고, 그 질문의 본질을 대답하기 위해서 설계한 거대한 유기컴퓨터였었다는 사실, 그리고 유일한 생존자인 아서의 뇌 속에 그 해답이 숨어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며 그 질문의 근본적인 답이 "6 곱하기 9" 라는 것을 깨닫고 황당해 하게 된다.

결국 이 질문에 대해 포기한채 과거의 지구에서 살아가게 된 아서 덴트는 우주의 종말을 가져오려는 크리킷 행성의 계획을 저지하기 위해 과거의 동료들의 모험에 휩쓸리게 되며 삶과 우주에 대한 진실한 해답을 알게 된다.

다시 살아난 지구로 돌아와 펜처지라는 묘한 여자와 사귀게 된 아서 덴트는 우주 창조 신의 메시지를 찾기 위한 여행을 떠나며 우주를 여행하다가 차원이동의 실수로 펜처지를 잃고 좌절한 채 조난당하여 이름모를 별에서 "샌드위치의 대가"로 살아가게 된다. 그러나 어느날 자신이 기증한 정자은행의 정자로 수정된 자신의 딸을 데리고 트릴리안이 찾아오게 되고 지겨움과 외로움을 참지 못해 자신에게 배달된 궁극의 "안내서"와 함께 지구로 도망간 딸을 찾기 위해 포드 프리펙트와 함께 다시 지구로 되돌아가게 된다...

음, 일단 이쪽 바닥 팬들에게는 전설과 같이 전해지던 바로 그 책입니다. 이전 판본으로 어렵게 1,2권만 헌책방에서 구했었는데 읽지 않고 있다가 이번에 (아마도 영화화 소식때문이겠지만) 전권이 새롭게 번역, 출간되어 한번에 읽게 되었습니다.

먼저 놀라운 것은 이 거대한 코미디를 전개시키는 작가의 상상력과 그 기발함입니다. 우주적인 설정과 무대를 굉장히 어처구니 없는 상황과 잘 접목시킴은 물론, 십수년에 걸쳐 아무 개연성없이 쓰여진 작품군임에도 불구하고 책들이 하나의 거대한 줄기를 이루는 것 같이 쓴 점은 정말 대단하네요. 여러가지 말장난으로 읽는이의 실소를 자아내는 솜씨도 좋고요.

하지만 어떠한 목적의식 없이 단지 "흥행"과 "재미"를 추구하는 라디오극이 원형이라 그런지 내용에서 깊이는 전무합니다. 삶과 우주를 논하며 지구, 그리고 우주의 지배자와 창조신의 메시지조차 유머로 다루는 착상은 높이 평가할 만 하지만, 그 착상에서 파생된 이야기를 다루는 방식이 너무나 가볍고 시니컬해서 아이디어가 상당히 아깝다고 느껴지네요.
이야기 전개가 대부분 "대사"로만 이루어져 있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내용 전개가 복잡한데 등장인물도 로봇 "마빈"만이 독특한(?) 개성을 보여줄 뿐, 다른 인물들은 독특한 척 위장하고 말만 많다 뿐이지 잘 구분되지 않아서 굉장히 혼란스럽거든요. 그나마 1권부터 3권까지는 괜찮지만 4,5권은 억지와 이야기의 비약이 심해지고 멤버도 아서와 포드로만 거의 제한됨으로 인해 단순히 "속편"으로서의 가치만 남아서 더욱 지루하게 느껴지더군요.
"영국식" 코미디에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생각만큼 웃긴 장면도 많지 않다는 것도 단점이죠. 번역으로 인해 원문의 많은 유머를 놓쳤을지도 모르지만 역시 국내 정서에는 그다지 유머로 접근할 수 있는 소재는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드네요.

그리고 도대체 포드 프리펙트가 아서 덴트와 같이 탈출한 이유부터 저는 이해가 안되더군요. 오로지 생각나는 이유라면 라디오에서 현재 상황을 포드의 독백으로 처리할 수 없으므로 어쩔 수 없이 선택된 상대역이라는 것인데, 그러기에는 아서의 비중이 너무나 커져서 결국 시리즈 후반부에는 포드보다도 중요한 인물이 되니 아이러니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하긴 유머소설에서 개연성을 논하는 것부터가 말이 안되긴 하지만요....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재미만으로 따진다면, 술술 읽히고 웃음을 주기는 합니다. 허나 단지 그것뿐이랄까요? 읽고나서 남는 것은 하나도 없기에 전부 1500페이지 정도의 방대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얄팍하다는 느낌 뿐이에요. 번역되어 나왔다는 사실 자체에는 무척 감사하지만 끝까지 다 읽었음에도 이 작품의 평가가 높은 이유를 아직도 잘 모르겠네요.
큰 재미는 없지만 대체로 쉽게쉽게 읽히면서도 책의 판형도 작으므로 민방위 훈련용이나 지겨운 강의시간 용으로 추천할 만 합니다.

PS : 그나마 영화화 하기에는 범 우주적인 위기와 "우주전쟁"을 다룬 3권의 내용이 가장 적합하지 않을까 생각되는데 두고 봐야 겠네요.

PS2 : 시리즈 권수가 5권이나 되고 페이지도 꽤 많은 편이라 1주일 정도는 후딱 보내는 묘미도 있습니다만....

2005/03/13

드래곤과 조지 - 고든 R 딕슨 / 강수백 : 별점 3.5점

드래곤과 조지 - 8점
고든 R. 딕슨 지음, 강수백 옮김/시공사

대학강사 짐 액커드는 박봉에 시달리지만 사랑하는 약혼자 앤지가 있어 그나마 위안을 삼고 있는 가난한 청년, 그러나 어느날 앤지가 조수로 일하던 연구실에서 앤지가 애스트랄 투시 기계의 오작동으로 다른 세계로 전송되는 사건을 목격하고 장치를 이용하여 그녀 뒤를 쫓게 된다.

그러나 짐이 도착한 곳은 중세시대의 영국과도 같은 세계고 짐 자신은 드래곤의 육체에 전송되어 버린 것이었다! 앤지의 행방을 쫓던 드래곤 짐은 그녀가 "암흑의 권세"에게 인질로 잡혀 있다는 사실을 마법사 캐롤리너스에서 듣고 그녀를 구해내어 원래의 세계로 돌아가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라는 "동반자"들을 모아 암흑의 권세를 쓰러트리는 모험에 착수한다.

용맹한 기사 브라이언과 원래 드래곤이었을때부터의 친구인 말하는 늑대 아아라, 그리고 활의 명수 다휘드, 황야의 무법자 가일즈와 그녀의 딸 다니엘, 그리고 자신의 할아버지 드래곤인 스므르골과 호수 드래곤 세코등과 힘을 합쳐 짐은 암흑의 권세에 도전하게 되는데....

아주 어렸을적에 TV에서 "용이여 불을 뿜어라!"라는 인상적인 영국풍 애니메이션을 본 적이 있습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물리학을 가르치는 주인공이 보드게임같은 게임을 하다가 환타지 세계로 정신만 이동하여 용의 몸에 들어가 그 세계의 악과 싸운다라는 설정으로 기억됩니다. 특히 악의 두목 앞에서 현대 물리학 이론을 열거하며 환타지 세계를 붕괴시키는 마지막 결투가 상당히 인상적이었죠.

이 작품은 이 애니메이션과 기본적인 설정이 동일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사실 환타지라는 장르를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지만 이 작품은 읽는 재미 하나만큼은 충분해요. 용과 기사, 아름다운 레이디 등 이런 류의 이야기에 빠지지 않는 기본 요소들에서 시작해서 중세사 전문가인 작가의 지식이 디테일하게 살아있는 궁수들에 대한 묘사나 말하는 늑대같은 참신한 아이디어가 결합되어 흥미진진한 모험담을 보여주거든요.
그런데 짐이 어렵고 힘든 삶을 살아온 자신의 세계를 버리고 이 세계에 남기로 결심한 결말부는 애니메이션과는 반대더군요. 애니메이션에서는 주인공이 원래의 세계로 돌아오고, 여주인공인 공주가 주인공의 세계로 온다는 결말이었는데 말이죠. 허나 소설도 워낙 매력적인 동반자들과 함께 했기에 충분히 수긍할 수 있는 결말이에요.

하지만 상당히 기발하고 유머스럽게 풀어나갔던 전반부에 비해 암흑의 권세와의 실제 한판 승부는 생각보다 시시한 편이라 약간 불만스럽긴 합니다. 애니메이션에서의 아이디어가 도입되었더라면 더욱 좋았을 것 같은데, 결국 순수하게 힘대 힘의 승부를 보여주기 때문에 좀 단순하게 끝나지 않았나 싶은 아쉬움도 조금 있고요. 물론 드래곤 대 드래곤, 오우거 대 드래곤 등 화려한 등장인물의 리얼한 전투 묘사를 즐기는 즐거움은 컸지만요.^^

여튼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3.5점. 전통적인 영국 환타지의 줄기를 어느정도 충실히 따르면서도 유머와 독특함이 잘 살아있는 점을 높이 평가하고 싶네요. 재미 역시 빠지지 않으니까요. 아울러 SF중심의 그리폰북스에 이 작품이 왜 포함되었는지 자세한 내용을 설명해 주는 뒷부분 해설도 볼거리였습니다. "반지의 제왕"같은 거대 장편에 압도되신 분들이라면 기분 전환을 위해 가볍게 읽어볼 만한 작품이라 생각됩니다.

그나저나, 다시한번 "용이여 불을 뿜어라!"를 보고 싶어 지는군요. 어디 구할데 없나....

2005/03/10

숲을 지나가는 길 - 콜린 덱스터 / 이정인 : 별점 3.5점

숲을 지나가는 길 - 8점 콜린 덱스터 지음, 이정인 옮김/해문출판사

1년전에 배낭만 발견되어 실종 처리된 스웨던 여대생 카린 에릭손을 찾기 위해 경찰에서 장기간의 수사를 진행하나 사건은 미결로 처리된다. 그러나 타임즈지에 보내진 여대생 실종사건과 관련된 수수께끼같은 독자의 투고詩로 경찰은 다시 수사에 착수하고 기존의 존스 경감대신 모스 경감을 책임자로 임명한다.

휴가 도중 복귀하여 사건을 맡게 된 모스 경감은 시에서 유추해낸 해답으로 와이탐 숲 수색에 착수하고 곧바로 숲에서 유골을 발견하지만 유골이 사실 남성의 것이었다는 것이 밝혀진 후, 사건의 중요 참고인 중 한명이었던 데일리 마저 살해되면서 사건은 또다른 방향으로 전개되는데....

모스경감 시리즈 두번째 작품입니다. 시리즈 1작인 "옥스퍼드 운하 살인 사건"은 재미는 있었지만 조금 짧고 모스의 좌충우돌(?)하는 모습이 별로 없어 아쉬웠는데 2번째 작품은 상당한 길이의 장편이 출간되었네요.

일단 이 작품은 그동안 제가 다른 작품들에서 보아온 모스 경감의 모습 중에서 가장 적나라하면서도 화끈한 모습을 여러번 보여줍니다. 어떻게 보면 모스라는 캐릭터의 전부랄까요? 호색한이면서도 음주와 클래식을 즐기는 모스의 모습은 천재탐정으로서의 잘난척과 부조화속의 조화를 이루어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유쾌한 캐릭터를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또 그동안 개그 캐릭터와 천재 탐정을 오가던 모스라는 인물 묘사에서 천재쪽의 비중이 더욱 높아서 사건에 대한 명쾌한 추리가 곳곳에 등장하며 사건 해결을 위한 활약도 상당한 편입니다. 거기에 더해 친하게 지냈던 검시의 맥스의 죽음때문에 눈물을 흘리고, 좋아하는 여인의 정보를 알아내기 위해 경찰 조직의 힘을 동원 하는 등의 모스의 모습은 확실히 이전 작품과는 많이 차별화 될 정도로 디테일하고 재미있게 꾸며져 있습니다. 그에 비하면 루이스는 의외로 비중이 작아서 조금 아쉽더군요.

추리적으로는 포맷은 전혀 다르지만 이전에 읽었었던 "사라진 소녀"와 유사한 점이 느껴졌습니다. 어떤 여인이 사라진 후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설정이 흡사하거든요. 그래서 중반 이후에는 어느 정도 감을 잡고 읽을 수 있었습니다.
모스가 사건 초반의 단서들을 종합하여 스스로만의 해답을 내놓은 뒤 그것을 밝혀내기 위해 동분서주하다가 새로운 해답을 만나게 된다는 전개는 역시나 다른 작품들과 유사하지만 이 작품은 모스가 처음 내 놓은 해답이 정답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그 과정이 일관되게 흘러간다는 점에서 차이점을 보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대로 "천재형"에 더 공을 들였달까요? 복선이나 독자에 대한 정보도 비교적 공정한 편이고요. 뭐 본격물로 보기에는 조금 부족해 보이기도 하지만 "수사"를 기본으로 하는 "현대 경찰 수사물"이라는 한계상 이 정도면 상당한 수준이라 생각되네요.

하지만 이 작품에서 작가가 공을 가장 많이 들였음직한 사건의 열쇠가 되는 수수께끼 시는 일종의 암호 트릭인데 상당히 괜찮은 편이긴 하지만 영어를 잘 모르면 해독이 불가능 하다는 점, 그리고 결정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알리바이 트릭이 생각보다는 맥빠진 내용이라는 점은 조금 아쉬웠습니다. 아울러 이른바 "정체"를 밝히는 부분의 단서가 너무 깔끔한 탓에 조금 시시하게 보여진 것도 그러하고요. 이것 역시 "현대 경찰 수사물"의 한계겠죠.
내용적으로도 각 등장인물들의 연결고리에 너무 신경쓴 듯 우연에 의한 설정이 많은 것은 단점이며 더 압축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페이지 수는 약간 부담되긴 했습니다. 영국 추리물 답지 않게 호색적인 캐릭터들이 많이 등장하여 (물론 그 중 한명은 모스입니다^^) 성적인 묘사가 좀 과한 부분도 한국 문화와는 좀 맞지 않는 점이라 생각되었고요. 물론 비슷하게 "포르노 영화"를 소재로 했던 에드 멕베인의 "장화신은 고양이"에 비하면 7만배는 낫지만요.

이렇듯 약간의 단점이 있기는 하나 결론적으로는 추천작입니다. 이 긴 호흡의 이야기를 잘 마무리 해서 깔끔하게 정리하는 작가의 필력에는 감탄을 금할 수가 없네요. 마지막 반전도 상당히 인상적이었고요. 별점은 3.5점입니다. 다음권이 기대되네요.

PS : 일부 독자들 간의 마지막에 찾아오는 여인의 정체를 놓고 의견이 분분한데 저는 클레어 오스본이라 생각됩니다.

2005/03/06

제 5 도살장, 혹은 아이들의 십자군 전쟁, 죽음과 추는 의무적인 춤 - 커트 보네거트 / 박웅희 : 별점 4점

제5도살장 - 8점
커트 보네거트 지음, 박웅희 옮김/아이필드

제2차 세계대전에 참여했던 주인공 빌리는 검안사로 성공하여 안정된 생활을 꾸려가던 중 비행기 사고로 머리에 큰 상처를 입고 퇴원한 날 부터 자신이 예전 딸의 결혼식 날 머나먼 "트라팔마도어"행성인들에게 납치되었다는 사실을 전파하고 다니게 된다. 빌리는 "트라팔마도어"로 납치된 이후 유럽의 전장에서부터 '현재'와 미래로 시공간을 초월하는 시간여행을 하며 자신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동시에 아우르는 초월적인 경험을 한다.

제목의 "제 5 도살장"은 드레스덴 폭격 당시의 미군 포로 수용소를 지칭하는 말입니다. 소설의 내용은 부제인 "죽음과 추는 의무적인 춤"이 더 어울리는 것 같지만요.
그런데 이 책은 도대체 어떤 장르로 정의할 수 있을까요? SF나 반전소설로 정의하기에는 너무 복잡한 작품이에요. 작가가 직접 경험했다는 2차 대전에서의 드레스덴 폭격에 대한 일화를 단순히 담아낸게 아니라 빌리라는 존재를 통해 시공을 초월한 구성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불교의 윤회사상과도 닮아 있지만 결정적 파국, 즉 종말은 피할 수 없다는 종말론적 사고방식은 또한 기독교의 그것인데도 묘하게 어울리면서도 깊은 울림을 전해줍니다. 짧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네요.

극중 주인공 빌리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시공 초월에 대한 소설적 접근은 엄청나게 새로우면서도 충분히 충격적이고 또한 재미도 있습니다. 짤막한 단상들이 이어져서 하나의 소설을 이루는데 그 단상들의 등장인물들이 엄청나게 방대하고 사건들도 다양함에도, 또한 시간과 공간이 제각각임에도 불구하고 소설로 성립되는데 재미까지 있다는 점은 정말 놀라워요.
그리고 "트랄파마도어" 행성인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기독교에 대한 통렬한 정의! 왜 기독교인들이 그렇게 쉽게 잔인해지는지에 대한 해답. 즉 복음서의 의도는 무엇보다 사람들에게 자비로워질 것을, 나아가 낮은 자들 중에서도 가장 낮은자가 되라고 가르치는 것이지만 실은 "누구를 죽이기 전에, 그자에게 든든한 연줄이 없다는 사실을 반드시 확인하라"라고 가르친다라는 부분은 너무나 멋집니다.
소설에서 말하는 "종말은 피할 수 없으니 가장 즐거운 시간을 즐겨라"라는 사고방식도 왠지 공감이 가네요. 채근담이었나요? 흡사 군대 훈련소 시절 화장실 벽에 붙어 있었던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말과 왠지 잘 어울리기도 합니다. 하긴, 이 책은 군대소설이기도 하죠.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4점! 처음 접하는 작가의 작품이었지만 명성에 충분히 어울리는 좋은 작품입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좋아한 작가 어쩌구 하는 선전문구가 꼭 필요했을지는 의문이나 하루키가 "노르웨이의 숲"에서 표현했던 "중간의 어떤 페이지를 열어도 멋진 책"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작품들 중 하나임에는 분명합니다. 정말로 웃기기도 하고 슬프기도 한 작품으로 추천합니다.

그나저나 영화화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뒷 해설에 나오는데, 도대체 영화를 어떻게 만들었을지 궁금하네요.

2005/03/03

모든 것이 F가 된다. (2005.06.23. 약간 내용 수정버젼) : 별점 3점

모든 것이 F가 된다 모리 히로시 지음/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완전무결한 컴퓨터가 제어하는 단 하나의 문으로 막힌 방에서 15년 간 살아온 마가타 박사. 그녀는 14살때 양친을 살해했지만 다중인격이라는 것이 인정받아 사형을 면한 뒤, 천재적인 능력으로 15년간 감금된 채로 양친이 설계한 연구소에서 여러 시스템을 개발해 오고 있었다.

15년간 그녀는 한 번도 방에서 나오지 않았으며, 그 방에 들어갔다 나온 사람도 단 세 명뿐. 유일한 출구는 카메라가 24시간 감시하고 있으며, 그 카메라가 기록한 영상은 절대 침입이 불가능한 컴퓨터에 저장되고, 나오는 짐이나 들어가는 짐 모두가 철저하게 점검당하는, 그야말로 손톱만큼의 빈틈도 찾아볼 수 없는 완벽한 밀실. 

 국립대학 공학부 교수 사이카와는 그녀의 제자 모에와 함께한 면회를 계기로 그녀에게 흥미를 느끼고, 연구소가 위치한 섬으로 학부 MT를 떠나게 되는데 첫날 밤 둘이서 우연찮게 방문한 연구소에서 급작스러운 시스템 다운과 함께 여사의 방 앞에서 마가타 여사의 웨딩드레스를 입고 양손과 양발을 절단당한 시체의 등장을 목격하게 된다. 그리고 살해당한 그녀가 남긴 수수께끼의 문장, '모든 것이 F가 된다' 

이후 연구소의 소장이 옥상의 헬기 착륙장에서 칼에 찔린 시체로 발견되며 연구소의 지속적인 시스템 다운으로 인해 경찰과의 연락이 불가능한 상태가 계속되다가 개발진의 필사적인 노력으로 겨우 전화망이 복구되었을때 부소장인 야마네마저 살해당한다. 모든 것이 컴퓨터로 관리되는 이 완벽한 밀실 살인사건에 사이카와는 수학의 천재 모에와 함께 수수께끼 같은 완전범죄 해결에 도전한다. 

모리 히로시의 데뷰작. 이 작가의 작품은 이전 서울문화사에 나온 "웃지않는 수학자"를 먼저 읽었었는데 조사해 보니 (작가 홈페이지에 자세히 나와있군요)사이카와-모에 커플의 시리즈 중에서 웃지않는 수학자는 3번째 작품이고 데뷰작이 이 작품으로 제 1회 메피스토 상을 수상했었더군요. 원래는 시리즈 5연작으로 쓰던 작품중 4번째 작품이 될 예정이었다는데 출판사의 의향에 따라 첫번째로 간행되었다고 하네요.
국내에 번역되지는 않았고 저는 한국의 번역자이신 로랑님의 홈페이지를 통해 읽었습니다. 혹 제 사이트 통해 찾아가신다면 감사의 말씀은 꼭 남겨주시길^^ 저도 무척 잘 읽었거든요.

일단 작품의 가장 큰 특징으로는 굉장히 독특하고 보기 힘든 밀실 트릭을 꼽을 수 있습니다. 카메라 등으로 완벽하게 관리되는 시스템이라는 기발한 발상을 통해 거의 완벽한 밀실을 구현한 것은 놀랍네요. 이른바 "현대 과학, 기술 시대의 완벽한 밀실 살인 사건"의 모범답안 격이랄까요? 또 첫머리에서부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 주는 등 단서의 제공 역시 상당히 공정한 편이라 마음에 듭니다.
아울러 탐정역의 사이카와는 제가 싫어하는 "천재형 명탐정"에 가까운 인물이지만 엘러리보다는 "트릭"의 우에다에 가까울 정도로 소탈하고 거부감 없는 성격으로 역시 합격점을 줄 만 합니다. 재벌가의 외동딸이자 수학의 천재인 모에는 너무 만화스럽긴 하지만 감초같은 재미는 충분히 가져다 주고요. 무엇보다도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인 천재 마가타 시키 박사의 캐릭터가 아주 멋집니다. "천재 사이코 살인범"의 전형이라 할 수 있는 한니발 렉터 박사에 뒤지지 않는 카리스마라 생각됩니다.

하지만 작가 자신이 지적하고 있지만 트릭 자체가 "실제로 쓰이기에는 조금 어렵지 않을까"라는 점이 정통 본격추리 팬들에게는 가장 아쉬운 점이겠죠. 일부 독자들은 이 트릭 때문에 이 작품을 "SF"로 까지 분류한다고 하는데 그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상당히 고도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것임에는 분명해요. 물론 그 자체가 비현실적이거나 완전 허구는 아니기에 이 작품이 본격물로서 가치를 잃지 않고는 있습니다만... 아쉽게도 아무리 단서와 복선을 많이 설정해도 저같은 일반인이 해독하기에는 불가능한 트릭이기도 하고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장 큰 반전이자 내용의 핵심인 이른바 "트로이의 목마" 트릭은 너무 작위적이에요! 15년이라는 세월동안 은폐가 가능했다는 점, 어느 시점에서의 "교체"를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는 점은 여러가지 장치로 설득력있게 설명하고는 있으나 현실적으로 다가오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뭐 그래도 흥미진진하고 굉장히 재미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내용적으로도 상당히 과학적이고 이론적으로 뒷받침 되고 있어 현학적인 재미를 충족시킴과 동시에 약간 건조하기는 하지만 건전한(?)묘사와 전개들로 좀 변태적이고 엽기적인 다른 일본 작품들과는 뚜렷한 차별점을 보이기도 하니까요. 사실 이렇게 건전하고 밝으면서도 완벽한 연쇄살인을 다룬 현대 본격물이라는 것이 이 작품이 가진 최대의 장점이겠죠. 개인적으로 불만스러운 부분이 없지는 않지만 공짜로 읽은 주제에 주절거리기는 좀 뭣하고요^^ 그래서 별점은 3점입니다.

내용 추가 : "웃지 않는 수학자" 한편만 번역, 출간되어 아쉬움이 남던 차에 이번에 다시 국내에 출간된다니 더욱 반갑네요. 모쪼록 시리즈 전편이 출간되었으면 합니다. 하지만 너무나 불량한 표지 디자인과 가격은 다시한번 국내 추리 도서 시장에 대해 재고하게 만드는군요.

PS : 이 작품은 "The Perfect Insider"라는 제목으로 게임으로까지 나와 있다니 게임도 한번 즐겨보고 싶네요. 사이트를 방문하시면 게임 오프닝과 일러스트를 보실 수 있으니 한번 들려보시기를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