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주신 분들께 안내드립니다.

2017/05/28

추리소설 800번째 리뷰 등록

 


추리소설 700번째 리뷰 등록!

2003년 첫 리뷰 <구석의 노인 사건집> 에서부터 시작한 추리소설 리뷰가 2017년 5월 28일 오늘 <허즈번드 시크릿>으로 800번째가 되었습니다. 700번째 리뷰였던 2015년 6월 23일 <다섯 마리 아기 돼지>로부터 23개월째네요. 한달에 4~5권 정도 읽는 페이스라는 것은 이전과 동일합니다. 이 정도로 규칙적이라면 거의 칸트 선생님 급인듯? 여튼, 이 페이스대로 1,000권 읽으려면 46개월, 앞으로 4년이군요.

800권째 추리소설 리뷰를 쓰는 동안 누추하고 마이너한 제 블로그를 찾아주신 많은 분들께 다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자주 찾아주시길.
아울러 그림은 예전 EST님이 보내주셨던 <블로그 6주년 축전>을 이용한 것인데 EST님께 특히나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허즈번드 시크릿 - 리안 모리아티 / 김소정 : 별점 2점

허즈번드 시크릿 - 4점
리안 모리아티 지음, 김소정 옮김/마시멜로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시드니에 거주하는 세실리아는 딸 셋, 남편 존 폴과 행복하고 무난하게 살고 있는 성공한 주부. 그녀는 어느날 존 폴의 비밀 편지를 다락에서 발견하게 된다.
레이첼은 30여년전 살해당한 딸 쟈니에 대한 회한으로 평생을 보내온 할머니. 쟈니의 죽음 이후 남편, 아들과 멀어진채 살아오다가 아들 부부가 유일한 위안인 손자 제이컵과 함께 뉴욕으로 간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듣게 된다.
테스는 남편 윌, 사촌 펠리시티와 함께 광고회사를 하는, 아들 한명이 있는 커리어 우먼.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펠리시티와 떨어진 적이 없는 단짝이었는데 급작스럽게 남편과 펠리시티가 사랑에 빠졌다는 고백을 듣게 된다.


실수는 사람의 영역이고, 용서는 신의 영역이다. - 알렉산더 포프.


최근 가장 핫한 베스트셀러 중 한권이었죠. 딱히 관심이 가지는 않았지만 읽을거리를 찾다가 우연찮게 읽게 되었습니다.
세실리아가 존 폴이 남긴 비밀 편지를 발견하고 그 내용을 궁금해하는 과정까지는 정말 흥미롭습니다. 여기까지가 이야기의 절반 부분인데 그곳까지는 독자의 흥미를 잡아끄는데 성공하고 있어요. 도입부의 판도라 상자 이야기와 엮이는 아이디어도 절묘하고요.
이 다음도 읽는 재미는 충분합니다. 편지 내용은 남편 존 폴이 과거 살인사건의 범인임을 고백하는 것으로, 이에 대해 고민하는 아내 세실리아의 심리 묘사가 아주 준수하기 때문이에요. 정말 흥미진진했습니다. 특히나 지역 공동체에서의 삶 때문에 피해자의 어머니인 레이첼과의 관계가 얽히는 과정에서 세실리아의 긴장이 극으로 치닫는 장면이 아주 대박이었어요.
딸을 허무하게 잃은 레이첼의 심리 묘사도 만만치 않습니다. 특히 편집증과 같은 심리 상태를 아주 잘 그려내었어요. 딸의 죽음 때문에 남편, 아들과의 관계가 파탄나버렸다는 묘사도 발군이고요.
시드니라는 낯선 공간을 무대로 했다는 점, 부활절 풍광과 핫 크로스번같은 디테일도 즐겁웠습니다.

그러나 단점도 명확합니다. 우선 이야기의 핵심인 '아내가 어느날 남편이 살인 사건의 범인임을 알게 된다.'는 것은 정말이지 쎄고 쎘죠. 때문에 작품이 살아남으려면 차별화 요소가 필요했습니다. 사실은 남편이 범인이 아니고 범인을 숨겨주고 있었다던가 (<<레베카>>), 아니면 남편이 아직도 살인을 저지르고 다니는 연쇄살인마라던가 (스티븐 킹의 중편 <<행복한 결혼 생활>>) 라는 식으로요. 그러나 이 작품이 선택한 방법은 <<섹스앤시티>>나 <<위기의 주부들>>같은 미국 막장 드라마 설정을 가져온게 전부입니다! 등장하는 아줌마들 모두 머릿 속에 섹스 생각밖에 없어요! 기승전섹스, 생각의 단계가 이거밖에 없는 것 같더라고요. 그 외 고부간 갈등과 불륜이라는 한국 일일 드라마 소재도 좀 섞여있는 등... 제 취향과는 완전히 달라서 실망스러웠습니다.

또 레이첼이 쟈니의 죽음 이후 삶이 망가졌다는 것을 세실리아가 알아채지 못하고 있는 것도 문제입니다. 때문에 세실리아의 죄책감이 별로 부각되지 못하거든요. 이래서야 세실리아 혼자만의 고민일 뿐이죠. 최소한 이전부터 친했다, 또는 잘 알고 있었다는 식으로 레이첼의 붕괴된 심리를 세실리아가 공유하고 있다는 식으로 전개되었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그런 관계없이 남편이 거의 30여년전 벌어진 살인사건의 범인이라는 것을 엄청난 문제처럼 부각시키니까 솔직히 설득력도 좀 많이 떨어집니다. 공소시효도 한참 지났을 뿐더러 범행을 저질렀을때까지의 삶보다 그 이후, 특히 결혼하고 함께 지낸 삶이 더 길다면 그 사람에 대해서는 최소한 진심을 믿어주고 잊어버리는게 현실적인게 아니었을까요? 존 폴은 그만큼 참회하는 인생을 살아오기도 했으니까요.
세실리아의 고민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레이첼이 피해자 포지션으로 확실히 와 닿아야 했는데 그렇지 못하는 것도 아쉽습니다. 특히 아들 롭은 내버려뒀으면서 손자 제이컵에게 한없는 애정을 보이며 며느리를 미워하는 모습이 적나라해서 완전 비호감이기 때문입니다. 카드로 만든 집 운운하며 가장 중요한 카드가 제이컵이라 그 카드가 빠지면 무너질 것이라고 이야기하는데 손자이기는 하지만 부모가 직접 뉴욕으로 데려간다는데 뭘 어쩌자는건지 모르겠더군요. 게다가 아이를 더 많이 낳아야 한다고 생각하기까지 한다니, 완전 우리나라 꼰대 시어머니 저리가라에요. 물론 직접적으로 강요하지는 않지만 심리묘사가 지나칠 정도죠. 이래서야 피해자이기는 하지만 완전히 악역 포지션이에요. 쟈니의 죽음으로 인한 안쓰러움보다는 악당이 벌을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니 말 다했죠.

무엇보다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마지막 결말입니다. 남편의 죗값으로 내 딸이 불구가 되었다고 순순히 받아들이는 장면은 솔직히 어이가 없네요. 저라면 레이첼에게 남편의 죄를 고백하고, 남편에게 보복하라고 했을겁니다. 그 대신 레이첼도 목숨을 내 놓아야겠죠. 레이첼의 행동으로 고통을 받아야 하는 것은 존 폴이지 어리고 귀여운 폴리가 아니니까요. 이런 식으로 풀어낸 결말 때문에 아무리 생각해도 좋은 점수를 줄 수 없어요.
에필로그는 더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쟈니는 마르판 증후군이었고, 존 폴은 살인지가 아니라는 결말은 그 중에서도 최악입니다. 쟈니가 마르판 증후군이라는 설정을 밀고 싶었으면 단서를 최대한 제공해 줬어야죠. 제가 보았을 때에는 허무 개그가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 외에도 테스와 윌 부부, 펠리시티 세 명의 삼각관계와 뒤이어 벌어지는 테스와 코너간의 일탈은 완전히 사족일 뿐이에요. 테스가 불안증이 있고 펠리시티는 뚱뚱해서 둘만의 세계에 갖혀 살았다는 설정도 마찬가지고요. 코너를 극에 끌어들이기 위한 장치에 불과한데 그런 것 치고는 분량이 너무 많았어요. 그렇잖아도 무지하게 긴데, 쓸데없는 이야기는 좀 잘라냈어야 합니다. 하긴 쓸데없는 이야기는 이거 한개 뿐만이 아니죠. 그 지겹고도 지겨운 베를린 장벽 관련 잡담을 비롯해서 수도없이 넘쳐납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중반까지 독자를 몰입시키는 맛은 좋지만 그 외에는 점수를 줄 만한 부분이 없습니다. 이거보다는 우리나라의 범죄가 조금 들어간 막장 드라마들이 (<<아내의 유혹>>(?) 더 재미있을 것 같네요.

2017/05/27

하카타 돈코츠 라멘즈 - 키사키 치아키 / 박춘상 : 별점 1점

하카타 돈코츠 라멘즈 - 2점
키사키 치아키 지음, 박춘상 옮김/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후쿠오카는 인구의 3%가 킬러인 마굴. 살인 청부회사의 신입사원 사이토는 이곳으로 파견되어 첫 임무(?)를 수행하게 되는데 이 와중에 하카타 시장과 시장이 고용한, 무나가타를 리더로 하는 킬러 4인조, 다국적 마피아 화구회, 사립탐정 반바와 화구회에게 배신당한 킬러 린 시안밍간 싸움에 휘말려든다.
킬러 린 시안밍은 어렸을 때 팔려와 화구회에 의해 킬러로 키워졌으나 화구회의 리더 장에게 계속 불만을 품는 와중에, 여동생 등 일가족은 모두 그에게 살해당했으며 자신은 이용당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된다. 겨우 사지에서 벗어난 린은 복수를 위해 화구회가 지목한 타겟인 사립탐정 반바와 손을 잡는다.

라멘에 대해 좀 정리할게 있어 뒤적이다가 충동적으로 읽게 된 책. 그런데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서 뭐라 말하기도 어려운, 그런 책이었습니다.
일단 후쿠오카 인구의 3%가 킬러고, 누구나 킬러나 복수 대행업자를 고용한다는 설정이야 그렇다고 쳐도 내용 전개가 너무 억지스럽습니다. 보통은 킬러가 등장하는 작품이라면 타겟을 어떻게 살해할지에 대한 고민이 이야기의 핵심이죠. <<쟈칼의 날>>이나 <<피닉스>>처럼요. <<고르고 13>>도 마찬가지고요. 그러나 이 작품 속 킬러들은 아무런 계획이 없습니다. 그냥 찾아가서 죽이고 끝! 입니다. 죽이는 것도 칼이나 손, 폭탄 등 주특기를 이용한다는 만화같은 설정이 전부고요. 이바노프가 린을 죽이려고 할 때 맨손만으로 죽이려고 하면서 강철같은 육체 어쩌구하는 장면이 대표적이죠. 영화 <<언터처블>>도 안 봤을까요? '총싸움에 칼을 가지고 오는 멍청이가 어딨나'. 이바노프는 린에게 죽어도 쌉니다.
그나마 작전이라고 부를만한 것은 복수 대행업자 지로가 초등학생 꼬마 미사키와 함께 다니면서 타겟의 경계심을 풀어놓는다는 것, 린이 이바노프에게 죽기 직전 사용하는 피스톨 나이프, 반바가 거미 모양 도청기를 활용하는 것 정도에 불과합니다.

또 킬러가 다수 등장하지만 사람이 많이 죽어나가는 전개는 쉬이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작가는 그냥 액션 장면을 쓰고 싶었던 모양인데 최소한의 설득력은 있었어야 합니다. 화구회 장이 구태여 킬러 시안밍을 자극한 후 사무실로 끌어들여 부하들을 그냥 버리는 패로 쓴다는 식인데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 중요하다는 것을 이렇게나 모르다니.
킬러들이 대놓고 활개친다는 것을 시장이 경찰 등 하카타 시 전반에 걸쳐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는데 이 역시 말도 안됩니다. 그렇다면 구태여 킬러를 고용하면서까지 반대파를 숙청할 이유가 어디 있겠어요? 경찰을 시켜 누명을 씌우고 쳐 넣으면 될텐데 말이죠.

마지막 반전이랍시고 들어간 니와카사무라이의 정체도 너무 뻔합니다. 반바의 조작질이 직전에 묘사될 뿐더러 반바와 같은 주인공급 인물이 맥락없이 죽었다고 목만 달랑 등장할리 없으니까요.
게다가 완전히 설정 오류인게 이 정도의 실력자가 화구회의 의뢰를 받은 후 움직일 이유는 없습니다. 시게마츠의 의뢰를 받은 시점에 시장을 포함해서 나쁜 놈들을 그냥 다 죽여버리는게 낫잖아요? 왜 일을 복잡하게 만드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더군요. 이렇게 화구회와 시장 부하를 쓸어버리면 니와카사무라이가 배신했다는 것이 이 바닥에 쫙 퍼지는건 기정 사실일터라 '킬러를 죽이는 킬러'라는 설정에 반하는 결과가 되어 버린다는 것도 문제고요.

킬러들이 서로 엮이는 과정도 작위적이라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입니다. 시장의 변태 살인마 아들 유스케를 축으로 그가 벌인 범죄 때문에 이런저런 킬러들이 하나의 줄기로 합쳐진다는 이야기인데 모든 이야기가 우연이에요. 사이토가 사건에 엮이는 과정이 대표적입니다. 원래 사이토의 타겟인 무라세 준은 지로의 타겟이라는 것이 첫번째 이유인데 이것부터 말이 안되죠. 아무리 나쁜 놈이라도 도대체 킬러 몇명이 달라 붙는건지... 또 사이토가 무라세 준으로 오해받아 지로에게 납치되어 죽을 뻔 하다가 안면을 트게 된다는 것도 억지스럽기는 마찬가지고요. 게다가 무라세 준이 유스케의 친구로 유스케와 함께 사람을 때려 죽여서 시장 부하 무나가타 4인조가 먼저 죽인다는 것도 황당합니다. 뒤이어 무나가타 4인조가 유스케의 다른 범죄를 만취한 사이토에게 뒤집어 씌우는 과정도 너무 작위적이고요. 이것 때문에 사이토가 지로에게 복수를 의뢰해서 지로가 무나가타 4인조를 노리게 된다는 이야기에 이르면 뭐라 더 할 말이 없어집니다. 

마음에 들었던 것은 이야기 최고의 쓰레기 유스케가 맞는 비참한 최후 정도랄까요. 한마디로 당위성을 생각하기 보다는 화끈한 액션을 즐기 위한 액션물입니다. 과거 스탤론이나 아놀드, 이후의 시걸, 최근의 제이슨 스탠덤 영화를 연상케하는 그런 내용이죠. 하지만 이런 액션물이 소설로 얼마나 가치가 있을까요? 게다가 영화나 만화였어도 화면, 작화가 별로라면 혹평을 받아 마땅할 내용으로 소설로 읽기에는 받아들이기 힘든, 종이 무더기에 불과했습니다. 요새 말로 하자면 '나무야 미안해' 급이에요. 감히 작품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하네요. 별점은 1점입니다.

2017/05/21

학교 출입 금지 - 코르네이 추콥스키 / 김서연: 별점 1.5점

학교 출입 금지 - 4점
코르네이 추콥스키 지음, 김서연 옮김/호메로스
러시아 작가 코르네이 추콥스키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쓰여진 자전 성장 소설. 모르는 작가에 관심 분야도 아니라 전혀 읽어볼 생각이 없었는데 딸아이가 제목만 보고 재미있겠다고 강력하게 추천해서 읽게 된 책입니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지만 시작은 제법 괜찮았습니다. 받아쓰기 시험에서 벌어지는 일종의 컨닝 작전이 재담처럼 소개되는데 아주 유쾌하고 즐거웠거든요. 우리나라 '얄개'와 별 다를바 없는, 학교를 무대로 한 꾸러기물에 많이 나옴직한 이야기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인공이 약간의 장난 끝에 성적표 위조 공범의 누명을 쓰고 정학을 당한 뒤 부터는 영 별로였어요. 일단 지나칠 정도로 심각하거든요. 그나마 어떻게든 학교에 돌아가려고 분투하는 장면까지는 나름 유쾌함이 남아있는 편이지만, 정말로 학교에서 쫓겨난 것을 알게된 후 부터는 걷잡을 수 없더군요. 학교에서 쫓겨난 이유가 장난 때문이 아니라 황제의 '하녀 자식 포고령' 탓이라는 것을 알게되는 장면은 인민을 위한 사회주의 계몽 소설 분위기도 풍길 정도니 말 다했죠. 좀 과장하자면 <<얄개>>에서 <<사람의 아들>> 급의 변화랄까요?
그래도 최소한 여기서 마무리 되었다면 성장기로는 괜찮았을 수는 있었습니다. 하지만 쫓겨난 것을 받아들이고 어머니에게 이실직고한 이후는 완전히 사족에 불과했습니다. 특히나 독학으로 학업을 마치는 에필로그는 자기 자랑에 지나지 않아요. 말도 안되는 영어 교과서로 독학해서 영어를 익히게 된다는 등의 이야기가 펼쳐지니까요. <<타잔>>도 아니고...

아울러 '김나지움'은 대학 바로 전 단계의 고등교육 기관으로 알려져있습니다. 그러나 작중 묘사된 주인공과 친구들은 고슴도치를 키운다고 자랑을 하며 몰려다니고, 연날리기와 같은 여러가지 장난에만 정신이 팔려있는 아이들에 불과합니다. <<꼬마 니콜라>>와 별 차이가 없을 정도의 초등학생 저학년 정도로 밖에는 보이지 않아요. 때문에 주인공의 고민도 잘 와 닿지 않았습니다. 마음으로는 고등학교라 생각되지만 읽으면 읽을 수록 고작 초등학생이 학교 쫓겨나는 것으로 읽혀 이게 뭐 큰 고민이 될까 싶은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결론내리자면 무엇을 쓰려고 했는지도 잘 모를, 개인적 이야기를 풀어나간 일기 정도에 불과한 작품입니다. 240페이지 정도에 불과한 짤막한 분량도 매력적이며 당시 러시아와 악동들에 대한 생생한 묘사는 돋보이고 몇몇 재기발랄한 부분이 있어 읽는 재미는 느낄 수 있긴 합니다. 작품 전체에 강하게 녹아있는 러시아 정서도 볼거리고요.
허나 한 편의 소설로서 완성도를 논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해 보이네요. 이런건 자전 소설의 한계일 수도 있겠죠. 별점은 1.5점입니다. 저와 같은 특이한(?) 경우가 아니라면 읽어볼 일도 없으시겠지만... 딱히 권해드리기도 어렵습니다.

2017/05/20

진짜? 가짜? 신기하고 재미있는 일본 음식 이야기 - 타무라 코지 / 유태선 : 별점 1.5점

진짜? 가짜? 신기하고 재미있는 일본 음식 이야기 - 4점
타무라 코지 지음, 유태선 옮김/어문학사

e-book으로 구입해서 읽게 된 책. 제목과 같이 여러가지 신기한 일본 음식을 주로 소개하고 있는 책입니다. 심도깊게 한가지 주제를 파고든다기 보다는 그냥 음식에 대한 신기한 정보들을 짤막하게 나열하여 소개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쉽게 읽을 수는 있지만 그다지 깊이가 있다고는 할 수 없죠.
그래도 모두 13장, 260여 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이라 몇몇 인상적인 것들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주로 초, 중반부에 음식관련 재미난 정보가 많이 수록되어 있는데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항목만 몇가지 소개드리자면,

- 일본에서는 노른자가 진한 붉은 빛을 띄는 것이 고급 달걀이라고 생각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보통 파프리카, 천연 색소, 인공 색소를 사료에 섞는다는군요.
- 가나자와의 식품 개발회사가 비지, 두부, 생선 연육을 섞어 인공 장어구이를 개발했다고 합니다. 껍질까지 신경을 써서 특허 기술을 이용하여 모양과 식감을 생생하게 재현했다는데 정체가 궁금합니다.
- 참치캔 참치와 두부, 참마 가루, 달걀 흰자를 으깨 섞은 후 김 위에 올려 구워 만드는 간단 인공 장어 레시피도 소개되고 있습니다. 집에서 충분히 해 볼 수 있는 수준의 레시피이니 만큼 기회가 되면 도전해봐야겠습니다.
- 홋피는 <<술한잔 인생한입>>을 통해 익히 접했던 맥주 모양 음료죠. 1948년에 발매되었으며 알코올 성분이 0.8%로 보통 소주와 홋피를 1:5로 섞어 알코오 도수 5% 정도의 음료를 만들어 먹는다고 합니다. 이름의 유래는 '진짜 홉을 사용한 진짜 논 비어'라는 의미로 '홋비'라고 명명했지만 발음이 어려워 '홋피'가 되었다고 하네요.
- 같이 먹으면 안 좋은 식품. <<와하맨>>에서 개그의 하나로 사용된 적도 있죠. 튀김+수박은 설사를 유발, 무+당근은 무의 비타민 C를 당근의 아스콜비나제가 파괴하는 등등 여러가지 항목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장어+매실장아찌는 소화불량을 일으킨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같이 먹으면 좋다는군요.
- 음식점에서 물을 서비스하는 것을 일본 특유의 서비스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유래는 다이쇼 시대 커피에 익숙하지 않은 일본인들을 위해 커피를 마실 때 마다 입가심을 위한 물을 제공한 것이 시초라고 하네요.
- 일본의 유파 '시조류호초도 (호초시키)' 소개를 통한 심도깊은 정통 일본요리 설명도 재미있었습니다. 요리 순서, 레시피, 차림법 등 그 디테일이 상상을 초월합니다.
- 은어 뼈 바르는 방법이 일본 전통 곡예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렇게 어려운걸까요? 심지어 천연 은어만 가능하고 양식 은어로는 불가능하다는데, 어떤 것인지 한번 보고 싶군요.
- 이런 저런 책에서 많이 봤던 '운수가 좋은 차 줄기' 관련 정보도 새롭습니다. 차의 줄기가 좀처럼 서지 않는 이유는 애초에 자 줄기가 찻잔에 들어가는 것 부터 흔치 않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내용들이 주로 수록되어 있습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몇몇 정보는 다른 곳에서 찾아보기 힘든 소중한 것이기도 하죠.

그러나 다른 책에서 접할 수 있는 정보도 많고 - 고기감자는 도고 헤이하치로가 만들게 한 것이라던가, 마가린은 나폴레옹 3세가 만들게 한 것이라던가... -, 음식에 관련되었다고 하기에는 지나칠 정도로 폭넓은 정보들 - 음식에 관련된 기념일들을 무려 30여페이지에 걸쳐 소개하는 등 - 이 수록되어 있는 등 중복과 낭비도 심한 편입니다. 심지어 젓가락 사용 방법에 대한 설명도 7페이지에 달할 정도입니다! 재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뭔가 주제와 동떨어졌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네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1.5점. 장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단점이 더 크기에 감점합니다.

2017/05/18

Q.E.D 35 - 카토우 모토히로 : 별점 4점

큐이디 Q.E.D 35 - 8점
카토우 모토히로 지음/학산문화사(만화)

이전에도 언급드렸듯이 Q.E.D 1부가 50권으로 완결되었습니다. 그런데 2주전 쯤 47권 리뷰를 올리고 전권을 정복(?) 했다고 생각했는데 블로그를 다시 찾아보니 35권에 대해 리뷰를 올리지 않았더군요. 늦었지만 짧게나마 작성해 봅니다.

35권은 강력 사건 1건, 일상계 1건이라는 황금비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두 작품 모두 빼어났습니다. 리뷰를 하지 않았으면 큰일날 뻔 했어요. 별점은 4점입니다. 에피소드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포함되어 있는 점 양지하시기 바랍니다.

<<두 용의자>>
요시미츠 운송 사장 요시미츠 료조가 사무실에서 강도에게 습격당해 중상을 입고 현금을 도난당한다. 용의자는 직원인 미카와와 쿠로세. 두 명 모두 돈에 쪼들리고, 금고에 돈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지인이 알리바이를 증명해 준 상태. 범인은 누구인가?

강도 사건에 대한 추리물. 크게 대단하지는 않지만 쿠로세의 전 부인 사고사를 이야기에 끌어들여 사건을 맡은 아사마 형사와 독자를 속이려고 시도하는 전개가 아주 인상적인 작품입니다.
작 중 쿠로세는 한창 빚 독촉에 시달리던 중 전처가 사고로 사망하여 거액의 유산을 받은 것으로 그려집니다. 그러나 사고도 어처구니없고 알리바이를 증명해 준 것은 바람피던 애인인지라 여러모로 수상한 상황이죠. 하지만 토마는 그 사건은 이번 강도 사건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을 추리쇼 시작 전 지적합니다. 심증이 가냐 안가냐? 정도의 차이일 뿐 진실을 증명할 자료는 아니라는 것이죠. 참으로 명쾌할 뿐더러 진실을 흐리는 과거의 행적이 장황하게 등장하는 작품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측면도 있어 보여 마음에 들었어요.

사장이 밖에서 사무실 안에 범인이 있는 것을 보았으면서도 사무실로 들어온 이유, 얼굴을 보지 못했다고 증언한 것 딱 두가지의 상황 증거만 가지고 범인을 특정하는 추리의 과정도 깔끔합니다. 구차하게 이것저것 가져다 붙이지 않고 핵심만 가지고 진상을 끌어내고 있거든요. 앞서 말씀드린 쿠로세 사건과 배치되는 결과 역시 괜찮았습니다.

단점이라면 쿠로세 전처 사고에 대한 진상은 결국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 정도일까요? 궁금증을 키우며 사건의 핵심이 아니라는 것을 드러내는 소재로만 쓰이고 소모될 이야기는 아니어서 아쉬웠습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아주아주 좋은 이야기였어요. 별점은 4점입니다.

<<크리스마스 선물>>
지루함에 몸부림치던 추리 동호회의 에나리와 멤버들은 동호회로 격하될 위기에 처한 연극부를 도와 크리스마스 특별 공연에 참가한다. 에나리의 조건은 '탐정물'을 공연하는 것. 연극부 부장 시로이는 조건을 받아들이고, 각본은 토마가 쓰게 된다. 토마가 쓴 작품 제목은 <<오각관 살인사건>>. 그러나 공연 전 공연을 방해하는 여러가지 사건이 벌어지는데...

크리스마스 연극 공연을 다룬 일상계 추리물. 등장할 때마다 기본 이상의 재미를 보장하는 에나리의 등장 덕분인지 역시나 좋은 이야기였어요. 친숙한 캐릭터들의 왁자지껄한 청춘물스러운 공연 과정도 볼 만 했지만, 추리적으로도 괜찮습니다. 연극 공연을 방해하는 인물이 누구인지?에 대한 것과 토마가 쓴 <<오각관 살인사건>>에 등장하는 밀실 트릭은 무엇인지? 에 대한 두가지 추리가 펼쳐지는데 모두 기본 이상은 해 주기 때문입니다.

연극 공연을 방해하는 인물의 정체는 에나리와 가나만을 노린다는 목표, 그리고 방해는 해도 공연은 하고 싶어한 인물이 누구인지?라는 사건의 핵심이 드러나자마자 바로 밝혀질 정도로 복선과 캐릭터 설정이 완벽합니다.
토마가 쓴 <<오각관 살인사건>>도 의표를 찌르는 맛이 잘 살아 있습니다. 트릭이라고 부르기에는 좀 애매하지만 '연극'이라는 상황에 최적화 되어 있다는 것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네요. 나름 수학적인 정리도 포함되어 있기도 하고요.

딱 한가지, 연극부 부장 시로이가 사고뭉치라는 점이 잘 그려지지 않다가 (이전의 문제들은 모두 고의가 아닌 '사고'의 영역입니다) 마지막 '오각관'을 태워버리는 불꽃쇼에서 갑작스럽게 민폐왕으로 등극하는 식으로 묘사된 것은 좀 아쉬웠어요. '사람은 참 좋은데 운이 나쁜' 캐릭터에서 갑자기 '민폐 덩어리'로 돌변하는 것이 너무 급작스러웠기 때문입니다. 처음부터 노골적인 민폐왕으로 묘사하는 것이 훨씬 나았을 것 같네요.
그래도 별점은 4점은 충분합니다.

2017/05/14

한국 미라 - 전승민 : 별점 3점

한국 미라 - 6점
전승민 지음, 김한겸 감수/휴먼앤북스(Human&Books)

제목 그대로 한국에서 발굴된 미라에 대해 심층 분석하고 있는 책입니다. 과학동아 기자로 한국 미라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보여왔던 저자가 그동안 취재 결과를 집대성한 결과물이지요.
'한국 미라'는 굉장히 생소하게 들리는데 저자의 말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미라가 많은 미라 국가더군요! 고온다습한 여름에 장마철까지 있어 쉽게 믿어지지가 않았는데 이는 모두 조선 시대의 독특한 장례 문화인 '회곽묘' 덕분이라고 합니다.

목차 순으로 보자면, 오산 산업단지 개발 전 답사 과정에서 발견된 미라를 분석하는 과정에 저자가 직접 참여하여 취재한 글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 항목을 통해 미라 발굴 및 수습, 그리고 미라를 통해 무슨 연구를 하는지를 간략하게 소개해 주죠.
그 다음은 한국 미라가 만들어지는 이유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해 줍니다. 앞서 말씀드린 회곽묘가 중심인데, 회곽묘는 바닥에 숯을 깔고 목곽 주위를 생석회, 모래, 황토를 2:1:1의 비율로 섞어 만든 삼물을 부어 굳힌 것으로, 삼물이 굳으면 공기가 완벽하게 차단될 뿐 아니라 삼물이 물과 섞일 경우 높은 열이 발생하기 때문에 일종의 '열소독'을 통한 살균 처리가 이루어져서 미라가 만들어 질 수 있었다고 하네요. 물론 3일장, 5일장, 7일장이라던가 '초분' 후 다시 매장하는 등 다양한 장묘 절차가 있어서 회곽묘에 안장도 모든 시신이 미라가 되지는 못했지만 말이죠. 그리고 이 회곽묘가 어떻게 우리나라에 도입되었는지를 심층 분석하여 알려주고 있습니다.
다음은 저자가 중국 취재를 떠나 유명한 '마왕퇴 미라' 등을 취재한 내용이 이어집니다. 관련 내용은 <<마왕퇴의 귀부인>>이라는 집대성에 가까운 컨텐츠가 있기는 하나 이 책에서는 순수하게 '미라'에 집중하고 있어서 차별화됩니다. 마왕퇴 무덤과 한국 회곽묘의 유사성을 논하는 부분은 새로왔고요. 형태적으로는 유사하나 회곽이 아니라 '백고니'라는 점토로 밀봉했다는 차이점이 있고, 때문에 고온 살균이 불가능했지만 마왕퇴 미라가 발견된 이유는 '수은'을 써서 살균했을 것이다! 라는 추론도 재미있었어요. 그 외 몇몇 유명 중국 미라가 함께 소개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 세계 미라에 대해 총 정리하며 책을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미라는 주요 발견 사례별로 상세하게 정리되어 있으며, 세계 미라는 이집트 등 주로 제조방식(?) 중심입니다. 미라가 일종의 타임 캡슐로 여러가지 정보를 제공하는 소중한 것이지만 선조를 중시하는 우리나라 특성 상 연구자료로 거의 제공되지 않고 재매장 또는 화장된다는 이야기는 처음 알았습니다. 2002년 발견된 삼도통제사 남오성의 미라는 키가 190센티 미터 가량의 거인으로 연구 가치가 충분했는데도 불구하고 후손들이 바로 화장했다는 식으로 말이죠. 물론 저라도 선조의 미라가 발굴되면 기꺼이 연구를 위해 내어놓지는 않을 것 같은데, 이건 정말 뭔가 제도적인 장치가 필요해 보이더군요. 무조건 2년은 연구 목적으로 활용하되 2년 후 화장, 혹은 재매장 비용을 국가에서 부담해주는 식으로 말이죠.

아울러 이러한 큰 목차 중간중간에 미라와 부장품을 통해 알 수 있는 여러가지 정보도 함께 소개되고 있습니다. 현대보다 오히려 조선시대에 충치 환자가 적었다는 것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충치가 있는 미라는 전체의 34.1%로 현대인의 충치 발생률 35%보다 낮다고 하네요. 굉장히 유의미한 차이는 아니지만 조선시대 사람들이 치약과 칫솔로 이를 관리하지 않았다는 것은 감안해야 될 것입니다. 현대인들이 섭취하는 설탕 및 각종 인스턴트, 가공 음식이 그만큼 치아에 해롭다는 뜻이죠.
그 외에도 미라의 사망 원인을 통해 밝혀지는 여러가지 정보라던가, 각종 분석을 통해 얻는 소중한 정보들이 가득하기 때문에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물론 단점이 없지는 않습니다. 기자가 '과학동아'를 위해 취재하여 정리한 1인칭 시점의 기사와 연구자료를 인용한 상세 내용이 혼재되어 있는 구성은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취재한 결과를 가지고 한번 더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생각되거든요. 도판도 저자가 직접 찍은 사진이 대부분인데 많이 부실한 편이에요.

그래도 국내 미라에 대한 책으로는 딱히 경쟁자를 찾을 수 없는 소중한 책임에는 분명합니다. 때문에 별점은 3점입니다. 이러한 정보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꼭 한번 읽어보셔야 하는 책임에는 분명합니다. 당연히 관심이 없으시다면 가치는 한없이 '0'에 수렴하겠지만요. 이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덧붙이자면, 알라딘 전자책으로 구입해 읽었는데 도판과 텍스트가 결합된 형태로 삽입된 이미지는 확대가 불가능해서 텍스트를 알아보기가 너무 힘들었습니다. 도판+텍스트를 선택하면 별도 팝업이 표시되어 사이즈를 사용자가 임의로 확대하여 볼 수 있도록 하는 배려가 아쉽네요.

2017/05/13

손자병법의 탄생 - 웨난 / 심규호, 유소영 : 별점 2.5점

손자병법의 탄생 - 6점
웨난 지음, 심규호.유소영 옮김/일빛

1972년 산동선 임기현 은작산 1호, 2호묘에서 발굴된 죽간과 출토물들을 가지고 풀어나간 580여페이지에 이르는 방대한 고고학, 미시사, 역사 서적. 웨난 작가의 고고학 관련 책을 워낙 좋아하기에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부활하는 군단>>은 정말이지 진시황릉에 대한 바이블같은 책이죠. <<마왕퇴의 귀부인>>은 그만 못했지만 역시나 괜찮았고요. <<삼성퇴의 고대문명>>을 절판전에 구하지 못한게 한스럽습니다...

여튼, 이 책의 구성은 <<부활하는 군단>>과 같습니다. 발굴 과정에 얽힌 이야기를 상세하게 풀어나가고, 이후 유물에 대한 실제 역사적 이야기를 소개하고, 마지막으로 지금 상황을 알려주는 식으로 마무리되는 구성입니다.

첫 시작인 발굴 과정부터 드라마틱합니다. 문화대혁명 직후의 어수선한 분위기와 전문가가 아닌 지역 담당자의 무식한 발굴이 겹쳐져 일어난 엄청난 피해, 고고학자들의 유물을 복원하기 위한 분투가 생생하게 펼쳐지거든요. 흙탕물 속에서 죽간을 그러잡아 뜯어 올리는 식의 엄청난 발굴이 보여집니다! 이 와중에 정치적인 논리가 개입되는 것도 상당히 재미있었습니다.
그리고 제목 그대로 발굴된 죽간이 <<손자병법>> 죽간이라는 것도 놀랍습니다. 묘는 한나라 무제 때로 추정되지만 이 죽간의 필사 연대는 한나라 문경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것 (늦어도 서한 전기), 한나라 시대 죽서 <<손자병법>>은 손무가 직접 쓴 원본일 가능성이 많기에 그야말로 초기 <<손자병법>>의 생생한 상황을 알게된 것이거든요. 송나라 판각본과의 대조 결과 명확한 차이를 보인것도 있다고 하네요. 또 <<손자병법>>, <<육도>>, <<관자>> 등의 고적이 실존하는 것이라는 것, <<손빈병법>>이 발굴되어 손무와 손빈이 각기 병법서를 세상에 전했다는 것이 밝혀진 것도 큰 성과였고요.
참고로 죽간을 수장품으로 묻은 이유는 인쇄술이 시작된 당나라 이전에는 모두 손으로 필사한 것으로 서적이 굉장히 귀한 물건이라 수장품에서 서적이 차지하는 비중이 큰 탓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은작산 한묘의 죽간은 크게 열 묶음에 가까울 정도로 많은 수량인데 유가의 경전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도 재미있습니다. 이는 진시황의 분서갱유와 법가 사상이 퍼져나가던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고 해석되네요. 후대의 '비림비공 (임표와 공자를 비판함)'과 크게 다름없는 상황인 것이죠!

여기까지가 약 120페이지에 이르는 분량이고, 이어서 360페이지에 걸쳐 발굴된 죽간을 연대별로 구분한 후 실제 해당 시기의 역사를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항목별 간단한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육도>>
강태공이 주문공을 만나고, 주나라가 천하를 재패한 후 봉지로 제나라를 하사받는 과정까지의 이야기.
주문공과 첫 만남에서 강태공이 말한 '삼상주의'는 은작산 한묘 발굴로 알려지게 되었다니 하는데, 최순실에 농락당한 대한민국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기도 하네요. '그 능력에 관계없이 사돈에 팔촌을 엮어 관직에 앉힐 경우 그 화가 나라와 백성에게 미쳐 결국 나라를 망치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는 것이거든요.
<<육도>>에 대한 설명이 뒤에 이어지는데 주로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방법에 대한 내용이네요. 하지만 화복과 길흉에 대해 인사가 하늘에 달린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달렸다는 것, 백성 사랑이 치국과 치군에 가장 중요한 전제라는 것이 분명히 지적되고 있습니다. 천하가 평화로와야 모든 것이 이롭다는 것, 인심에 순응해 천하의 일을 도모해야 한다는 것 등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이야기로 3천년도 더 전에 쓰여진 죽간 속 내용이지만 지금에도 통용될만한 이야기가 많다는 것이 신기하기만 할 따름입니다.

<<왕병>>
'절개를 목숨보다 소중히 여기는 사람은 고집스럽고 답답한 서생에 불과합니다. 사실대로 말씀드리면, 지금 세상은 사람 노릇을 하는 데 그리 진지할 필요가 없습니다.' - 포숙이 관중을 데려오려 할 때 한 말.
주 왕조가 쇠학하여 춘추 시대로 돌입하게 되고, 제나라가 관중과 포숙을 얻어 제후국의 맹주를 차지할 때까지의 이야기. 관중이 죽은 후 그의 언설을 정리한 책이 <<관자>>입니다. 대체로 군사 사상으로 다섯가지 원칙으로 정의되는데 부국강병, 우병어농, 군정일체, 선계후전, 이인위본, 선전준비가 그것이죠. 은작산에서 출토된 <<왕병>>은 관중의 정치, 군사 사상에 대한 완전한 작품이며 후대에 전해진 <<관자>>는 불완전한 작품이라고 합니다.

<<안자춘추>>
'귤은 회수 남쪽에 심으면 귤이 되지만 북쪽에 심으면 탱자가 된다.'는 명언은 익히 알고는 있었지만 안자는 처음 들은 이름이네요. 사마천 왈 "관중이 죽고 백여년이 지나 안자가 나왔다."고 할 정도의 인물인데 말이죠. 여튼 안자 안영과 전양저가 힘을 합쳐 제나라에서 세력을 확대하는 이야기는 재미있습니다. 이후 제나라 위왕이 양저의 군사 사상을 책으로 정리한 것이 <<사마병법>>이라죠.
전양저의 친척이자 전씨 가문의 유력인인 전서가 공을 세워 "손"씨 성을 하사 받았으며 이후 손무, 손빈 등의 후손들이 이어지게 됩니다.

<<손자병법>>
손무가 오나라 국경 궁륭산에 터를 잡고 혁명을 위한 군사조직을 이끌다가 오자서를 만나는 데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그 뒤는 <<열국지>> 등에서 본 이야기 그대로입니다. 초나라에 복수하기 위해 오자서가 오나라왕 합려와 함께 전쟁을 일으키고, 이후 오나라가 패망할 때 까지의 흥망성쇠가 그려지죠. 잘 알고 있는 이야기라 신선함은 덜했지만 특이한 점이 있었습니다. 손무가 일종의 도적단 두목같은 포지션으로 등장해서 오자서와 밀약을 나눈다는 설정이 그것이죠. 손무가 오나라의 왕이 되고, 오자서는 초나라의 왕이 된다는 밀약인데, 작가의 창작인지 아니면 뭔가 유래가 있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네요.
아울러 초나라가 정벌된 것이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하게 된 계기가 된 것이라는 연구자들의 의견도 신선했습니다.

<<손빈병법>>
오나라를 떠난 손무가 제나라에 정착한 후 증손자 손빈을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입니다. 역시나 <<열국지>>를 통해 알고 있는 내용이에요. 방연과의 인연, 귀곡자 문하에서의 생활, 위나라에서 방연에게 뒤통수를 맞은 뒤의 처참한 생존 과정과 탈출, 그리고 복수가 차례대로 펼쳐집니다. 그런데 읽다보니 이상한 점이 있더군요. 미친 척을 해서 방연의 눈을 피하는 것은 그럴듯한데 제나라 묵적의 제자 금활리라고 자신을 밝힌 인물에게 너무 쉽게 속 마음을 드러내는 전개는 전혀 납득이 되지 않았어요. 아마 수차례 연극을 더 했겠지만...

이 뒤 나머지 200여페이지에서는 현재 도출된 각종 의문과 문제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대표적인 사항은 방연이 죽은 마릉의 정확한 위치가 어디인지, 후대에 수차례 대두되었던 손무 허구인물설에 대한 상세한 내용과 은작산 손자병법에 의해 밝혀진 진실, 손자병법과 손빈병법의 차이점 - 춘추 말기 낙후된 생산력과 경제력 탓에 손자병법은 속전속결을 주장하며 공성전을 피해야 한다고 했지만 손빈병법이 쓰여진 전국 시대에는 쇠뇌, 투석기와 같은 선진 무기의 도입과 기병전의 증가, 전쟁 규모의 확대 및 도시의 발전으로 공성전을 적극 주장하는 등 전략, 전술, 진법이 크게 변하였음 - 등입니다. 손무의 고향이 어디인지에 대한 지역과 학계간 암투 - 저자의 말에 따르면 '고향 소유권 쟁탈' - 도 소개되고 있고요.

손무 허구설, 손자병법과 손빈병법의 차이는 재미있었지만 솔직히 마릉의 위치나 손무의 고향이 어디인지는 중국 내에서야 관심사일 뿐 저에게는 하등의 가치가 없는 내용이었습니다. 지역 경제 부흥을 중요시 여기는 듯한 저자의 글도 와닿지 않았고요. 그나마 이를 설명하기 위해 다양한 사료가 소개, 인용되는데 그 중 기억에 남을 만큼 재미있는 항목이 몇가지 있어서 다행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학자 곽말약, 여공아의 주장 중 '춘추'와 '전국'을 나누지 않고 한데 묶어 '춘추 전국 시대'라고 부르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대목입니다. 저는 여태까지 당연히 '춘추 전국 시대'로 알고 있었는데 중국 내에서 '두 시기는 사실상 연결되어 있고 그 간격은 약 28년에 불과하여 분명하게 차이가 나기 어렵기 때문에 묶어야 한다!'는 이 주장이 의외로 소수파라는 것이 굉장히 의외였습니다. 지금은 어떤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손무 무덤 발굴에 관련된 이야기 중 합려의 무덤인 검지 발굴을 위해 물을 뽑았었지만 검지 붕괴 위험과 비밀로 남겨두는 편이 지역 관광산업 발전, 경제 효과를 높이는데 유리하여 발굴하지 않고 있다는 이야기는 처음 알게 된 것입니다. 어장검 등 각종 보검이 궁금했는데 아직은 때가 아닌 듯 하네요.
그리고 손빈의 후예라는 손노가 손씨 가족을 연구할 때 '일부 당성이 탁월하고 정치적 견해가 뚜렷하고 영리한' 사람들을 모아 좌담회를 가졌다는 중국 공산당식 마인드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또 여기서 '문화대혁명' 때 손씨 가문 족보를 태우겠다고 소란을 피웠으며 손씨 가문의 어른인 손지일이 홍위병에게 끌려가 고초를 겪었지만 족보는 잘 숨겨놓아 결국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도 기억에 남고요. 또 손씨 가문 내력을 조사하여 손빈의 무덤 위치와 말년을 알아내는 과정은 조상과 제사를 중시하는 우리나라 현실과도 잘 맞아떨어져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중국 내 사학계에서 손씨 족보의 발견이 굉장한 성과로 인정받고 있을 정도라니 족보라는게 참으로 중요하구나 싶더라고요.

이어서 1996년에 벌어진 손자병법 82편의 영인본을 발견했다는 사기극이 등장합니다. 역시나 홍위병이 등장하여 고대 죽간을 태워버리는 바람에 일부만 건졌고 필사한 사본만 남았다는 주장에서 시작되는데 고대 죽간을 손에 넣었다는 조부 장서기의 일대기를 분석하여 사기꾼의 주장을 반박하고, 장서기의 진짜 직계 후손이 등장하여 이름 돌림자를 가지고 사기꾼들을 박살내는 전개는 우리나라 상황과 유사하여 재미있었습니다. 가짜임을 증명하는 고고학적인 분석 결과와 사기에 가담했던 국방대학교 강사 방립중이 벌인 민사 소송으로 벌어진 재판 과정도 법정 추리물 느낌이라 아주 흥미로왔고요. 솔직히 너무 유치하고 어설픈 사기극이라 이렇게까지 크게 이슈가 된 것도 잘 이해가 되지는 않습니다만.

마지막 에필로그는 죽간과 다른 출토물들의 후일담을 그리고 있습니다. 죽간은 그나마 신경써서 보존되었지만 성 박물관도 문화대혁명에 휩쓸려 직원들이 밭을 경작하느라 관리가 소홀해진 탓에 훼손이 심해졌다니 문화대혁명이 정말 문화와 역사에 몹쓸 짓을 한게 맞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최초 발견자들과 관계자들 후일담도 소개됩니다. 첫 발견자인 '당나귀'는 정신병원에 입원했다가 아내의 외도를 보고 자살했으며, 한묘도 지금은 고층빌딩이 들어서버리고 이후 죽간 소유권을 놓고 벌인 추잡한 암투가 벌어진 것을 보면 이것도 무슨 저주 비스무레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했습니다. 하기사 발굴이라고 해 봤자 멀쩡한 묘를 대놓고 터는 것이니 좋은 결과일리 없겠지만요.

이렇게 방대한 분량에 이런저런 이야기로 꽉 채워져 있기에 시간가는 줄 모르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활하는 군단>>이나 <<마왕퇴의 귀부인>>에 비하면 유물과 역사적 사실에 대한 도판이 극도로 부족, 부실하고 잘 알고 있는 열국지 내용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현대에 이르러 별 관심없는 중국 지방 행정부의 관광 수익을 노린 이권다툼이 많이 소개되고 있는 것은 좀 아쉬웠던 점입니다. 다른 곳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역사편과 쓸데없는 지방 행정부 이야기를 덜어내는게 훨씬 좋았을 것 같네요. 핵심인 은작산 출토 <<손자병법>>의 발굴 과정과 이로 인해 밝혀진 새로운 사실들 중심으로만 소개하는 식으로요. 물론 저자의 허락없는 제멋대로의 편집은 안될 말이겠지만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손자병법>>과 춘추 전국 시대 (중에서도 춘추 시대?)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한번쯤 볼만합니다. 허나 그렇지 않다면 딱히 권해드리기는 어렵습니다. 불필요한 내용도 많은 편이고요. 가격도 상당한 만큼 구입하실 것이라면 신중을 기하시기 바랍니다.

2017/05/07

스나크 사냥 - 미야베 이유키 / 권일영 : 별점 2.5점


스나크 사냥 - 6점
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일영 옮김/북스피어

살인자는 하느님에게 기도 같은 걸 하지 않아. - 복수를 다짐한 게이코가 화장실에 숨어 벌벌 떨면서 떠올린 생각

자신을 돈줄로 이용하다 버리고 다른 여자와 결혼한 남자에게 복수하려는 세키누마 게이코와 아내와 딸을 강도에게 잃고 복수를 꿈꾸는 오리구치 구니오라는 두 명의 복수귀가 등장하는 미야베 미유키의 장편 소설. 이들을 막으려는 인물들도 게이코를 버린 남자 고쿠부 신스케의 동생 노리코, 오리구치 구니오의 회사 후배로 그를 존경하는 사쿠라 슈지 두명입니다.
복수를 위해 폭발하도록 조작된 총을 사용하려던 게이코가 복수를 포기하고 집에 돌아올 때 오리구치에게 습격당해 총을 도둑맞고, 우연찮게 이 사실을 알게 된 슈지와 노리코가 총을 되찾고 오리구치의 복수를 막기 위해 슈지와 노리코가 그 뒤를 쫓는다는 내용이죠.

제목은 루이스 캐럴이 쓴, 괴물을 죽이면 스스로도 괴물이 되어버려 결국 모두들 괴물이 되어 사라져 간다는 <<스나크 사냥>>에서 가져왔다고 하네요.
그런데 솔직히 제목부터 공감하기 어렵습니다. 괴물을 죽이기 위해 괴물이 된다? 괴물도 괴물 나름이지, 오오이와 마스미는 살아서 숨쉬는 것 조차 아까운 절대악으로 묘사된 죽어도 싼 인간들이라 이들을 죽이려고 하는 것에 의해 스스로를 잃고 괴물이 된다는 것은 전혀 와 닿지 않아요. 작품에서처럼 오리구치의 상황에 제가 놓인다면, 저는 복수를 위해 기꺼이 괴물이 되는 것을 택하겠습니다.

게다가 오리구치는 괴물이 되기는 하는데 정작 복수는 성공하지 못합니다. 괴물 두마리만 풀어주고 본인은 가미야 다케오의 목소리를 통해 인간으로써 죽는다는 이야기인데 이것도 어처구니 없습니다. 사건만 키우고, 애꿎은 슈지까지 끌어들이고 본인은 개죽음 당한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작가의 의도대로 이야기가 흘러가려면 오리구치가 두 괴물을 사살하고 본인도 괴물이 되어 경찰에게 사살당하는 결말이 되었어야죠.
지금의 이야기는 오리구치는 '괴물임을 알고 있었지만 처단할 가치가 있는지 알기 위해 무리해서 괴물을 소환했다가 괴물에게 죽은 것'이고, 슈지는 '선택받은 용자로서 괴물을 처단한다'는 전형적인 판타지 서사일 뿐입니다. 슈지가 총을 든 오오이, 마스미와 맞서는 클라이막스에서 이러한 판타지 서사가 극명하게 드러나죠. 맨몸이지만 기지를 발휘하여 '불을 뿜는 용'을 쓰러트린다는 식이니까요.
아울러 이 마지막 클리이막스는 오오이, 마스미의 화끈한 폭주와 슈지의 두뇌 플레이가 합쳐져서 액션만 놓고 보면 인상적인 것은 분명하지만 굉장히 작위적이기도 합니다. 산탄총에 맨몸으로 맞서서 살아남는다는게 과연 말이 되는 건지 잘 모르겠네요. 그러고보면 작위적인 부분은 그 외에도 많습니다. 고쿠부 신스케가 게이코를 살해하려고 침입했다가 경찰에게 체포당하는 과정, 말을 잃은 소년이 갑자기 말을 하게 된다는 장면 등등 이야기의 주요 변곡점이 되는 장면들 모두가 그러해요. 작위적이라면 뭔가 앞 뒤를 잘 맞춘 치밀한 구성이라도 갖추었다면 좋았을텐데 하룻밤 사이에 일어나는 모험이라 그닥 정교하지도 않습니다. 오리구치가 총을 빼앗기 위해 좀 오래 공을 들였다라던가, 슈지가 오리구치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닫는 장면, 그리고 낚시봉을 이용한 자동차 절도같은 부분이 약간 눈에 띌 뿐이에요.

또 판타지스러운 서사 때문일까요? 캐릭터들도 비현실적이에요. 자신의 일도 아닌데 지나칠정도로 개입하고 능력을 발휘하는 슈지부터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오리구치가 조금 이상하게 느껴졌다 한들, 자신이 좋다고 고백한 미인을 앞에 두고 뛰쳐나가 사건을 알아보려 한다는 것은 말도 안되죠. 설령 그랬다 치더라도 게이코가 총을 빼앗긴 것을 알아차렸을 때 경찰에 신고하는게 정상이고요.
슈지야 주인공이고 자신이 원해서가 아니라 필요에 의해 '용자'로 선택받는다는 판타지 서사 그대로라고 칩시다. 허나 노리코에게는 '완전히 남'에게 일어난 일에 불과한데 그녀가 사건에 뛰어든다는 것은 더더욱 이해 불가입니다. 게이코를 간호하며 방에 남아있는게 상식적이잖아요?

나름의 차별화를 위해 살아 있을 필요 없는 진짜 악당이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정당한 처벌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이야기를 장황하게 풀어내고 있기는 합니다. 허나 이 역시 그다지 새롭지 않습니다. 용서할 수 없는 절대 악이 등장하는 작품이야 쎄고 쎘으니 당연하죠. 대부분의 현대 무대 복수물이 정당하게 처벌할 수 없는 악을 응징하는 것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사회파 액션물로 포장되어있기는 하지만 실상은 진부한 판타지와 다름없는 작위적 설정의 액션물입니다. 딱 한가지 마음에 든 점은 고쿠부 신스케가 체포되는 것 정도? 추리적으로 무언가 보여주었어야 하는데 아무 것도 없으니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군요.

2017/05/05

대지를 보라 - 아카마 기후 / 서호철 : 별점 4점

대지를 보라 - 8점
아카마 기후 지음, 서호철 옮김/아모르문디

1924년에 발표된 르포르타쥬. 당시 38세였던 기자 아카마 기후가 한겨울에 경성 이곳저곳을 탐문하여 쓴 기사를 모아 놓은 책입니다.
그런데 정말 '발로 쓴' 기사들입니다. 직접 변장하고 청소부가 되어보기도 하고, 넝마주이 소굴을 탐방한 내용을 쓴다던가, 선인숙이라 불리우는 싸구려 여관의 손님들을 관찰한 기사를 쓰는 식입니다. 똥 푸는 인부에서 시작하여 영등포 형무소에서 갓 출소한 사람들이나 거지, 신기료 장수, 풍각쟁이, 창부 등 다양한 직업의 하층민들과 진행한 상세한 인터뷰도 가득합니다. 손에 잡힐듯 써내려간 필력도 좋으며 번역 출간 시 덧붙인 각종 주석, 자료도 최고 수준이고요.

다 재미있고 볼만한 기사들인데 몇가지 꼽아보면, 거지에 대한 이야기가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당시 좋은 '목'은 경성역 앞, 조선은행 앞, 신마치 유곽 입구와 안쪽이고 일요일과 제일에는 창경원 앞 등이었다는 식의 실용적인 정보를 비롯하여 여러 거지에 대한 에피소드가 흥미롭게 쓰여져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는 상당한 부자가 많았다는 이야기가 대표적이에요. 송이라고 하는 앉은뱅이 거지가 그러한데 170여원의 예금을 모아 땅을 샀다고 하네요. 또 조선은행 앞의 유명한 거지 노파는 과거 미모와 예능으로 한성의 한량을 뇌쇄시켰던 명기 산월이의 영락한 모습이라는 이야기는 씁쓸하고요.
저자가 변장을 하고 밀창부를 찾는 이야기에서 설명되는 다양한 화류계 모습도 기억에 남습니다. 굉장한 미녀의 뒤를 쫓아 매음 현장을 알아내는 이야기는 탐정의 활약과 비슷하다 생각 되더군요. 사회부 기자 (책에서 '3면 기자'라고 불리우는)의 노련한 솜씨가 잘 드러난 재미있는 기사였어요.
또 풍각쟁이 편에 등장한 일본인 모녀라던가, 황금정 식당에서 몸을 파는 일본인 여자의 예처럼 하층 일본인이 제법 많은 것도 눈에 띄는 점이었습니다. 조선 사람들이 가난을 못 이겨 모든 것을 버리고 가는 곳이 만주였다면, 당시 일본에서는 조선이 그러한 장소였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좀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형무소에서 출소한 사람들에 대한 기사나 술집에서 벌어졌던 활극에 대한 기사 등 책 취지와는 좀 어울리지 않는 기사가 몇 개 수록되어 있다는 것이 그러합니다. 몇몇 이야기들은 정리가 잘 되어 있지 않기도 하고요. 좀 두서없이 써내려간 느낌이랄까요?
그래도 별점은 4점. 약간의 단점은 전혀 문제가 안 될 정도로 좋은 책이에요. 그동안 식민지 경성을 알려주는 다양한 미시사 서적을 읽어왔지만 1920년대 경성의 풍경, 특히 그곳에서 살았던 하층민들의 삶을 그려낸 책으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경성을 무대로 한 창작물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꼭 읽어봐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당시 경성의 하층민은 정말로 끔찍한 삶을 살았구나 싶어요. 단지 가난해서가 아니라 사람사는 정을 거의 느끼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8살 거지아이 '조노마' 인터뷰가 대표적으로 8살 밖에 되지 않은 아이를 짐덩어리 취급하는, 인간적인 정을 전혀 느낄 수 없는 팍팍함이 참으로 고단하게 다가왔습니다. 뭐 어느 시대건 마찬가지겠지만....

2017/05/03

퍼스널 - 리 차일드 / 정경호 : 별점 2점

퍼스널 - 4점
리 차일드 지음, 정경호 옮김/오픈하우스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잭 리처는 우연히 주운 '아미타임즈' 광고를 통해 군이 자신을 찾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후 군에 출두한다. 그를 찾은 이유는 프랑스 대통령 암살 기도범에 대한 수사 요청. 1300미터 밖에서 저격이 가능한 저격수는 전 세계에 몇 명 없으며 그 중 한명이 16년전 그가 잡아넣은 존 콧트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었다.
저격이 런던에서 행해질 G8 정상회담을 노릴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이 높기에 러시아, 영국 정보원들까지 뛰어드는 국제적 스캔들로 비화하는 와중에 잭 리처는 국무부 요원 케이시 나이스, 영국 SAS 요원 벤슨 등과 함께 그에게 개인적 원한이 있는 존 콧트를 쫓게 되는데...


잭 리처 시리즈. 시리즈 19번째 작품입니다. 사실 별 기대를 하지 않고 집어든 작품입니다. 읽고나니 킬링 타임용 펄프 픽션으로는 딱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대중적 인기가 이해가 갑니다. 정말 아무 생각없이 즐길 수 있더군요.
이야기가 그만큼 심플합니다. 잭 리처가 누군가를 노리고, 그 누군가를 지키는 악당들과 한판 벌이고, 알고보니 음모가 있었고 뭐 이런 식인데 복잡한 구석은 하나도 없어요. 잭 리처부터가 별다른 생각없이 사건에 뛰어들 뿐 아니라 위기가 닥칠만하면 본인의 격투 능력으로 쉽게 빠져나오기 때문에 정교하지도 않고 별다른 드라마도 없습니다.
이런 점에서는 흔해빠진 무협지와 굉장히 비슷합니다. 한마리 늑대와 같은 유랑 절대 고수 재구리차 (材究利嗟), 그는 어느날 과거 은인 수메이의 부름을 받는다. 정파 장문인을 노리는 공전절후의 원거리 비도술의 소유자들이 등장했는데 그 중 한명이 과거 리차가 뇌옥에 가두어 놓았던 조고두였던 것! 리차는 고두를 쫓아 정파 장문인들이 모이는 태산 비무대회로 향하고, 그곳을 주름잡는 녹림방 무리와 손잡은 고두를 잡기 위해 녹림방 소굴로 뛰어든다! 그냥 번안만 해도 무협지가 될 정도네요.

하지만 아무 생각없이 볼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이 되기는 어렵죠. 아니, 오히려 생각없이 쓴 티가 너무 많이 나서 실망스럽습니다. 이야기 앞뒤가 안 맞는 것은 물론이고 불필요한 설정도 너무 많으며 여러모로 급조한 티가 많이 나거든요. 오죽하면 싸구려 무협지와 비교하겠습니까.
우선 음모의 핵심인 첫 암살 시도부터 허술합니다. '첫 한발로 방탄 유리를 깨고, 두번째 총알로 죽이려 했다'면 당연히 두방을 거의 동시에 쏴야죠. 첫발로 방탄 유리가 깨지는 것을 확인하고 두번째 발을 쏜다? 1,300미터에서는 총알이 목표에 도착하려면 3초가 걸린다고 이미 설명됩니다. 그런데 작중에서 총알이 확인되고 경호원이 인의 장막을 치는데 걸린 시간은 2초입니다. 애초에 말이 안되는 암살 작전인거죠. 이걸 애초에 간파하지 못한 정보요원들은 모두 얼간이에요.

콧트가 숨어있는 리틀 조이의 집에서 벌어지는 활극도 어처구니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우선 자국에 모인 G8 협상 멤버인 각국의 수뇌들 생명이 위험한데도 동네 건달 조직 하나 건드리지 못하는 영국 정부의 모습 부터가 코미디에요. 우리나라로 따지면 우리나라에 회의차 참석한 미국 대통령이 죽을지도 모르는데 암살범을 숨겨주고 있는 범서방파 중간보스를 손대지 못하고 전전긍긍한다는 설정인데 이게 말이나 됩니까.
이러한 건달 조직간의 암투에 불필요한 시간을 소모하는 것도 모자라 총을 가진 사람이 세명이나 되는데 2미터가 넘는 괴력의 네안네르탈인 리틀 조이와 육박전을 벌이는 클라이막스도 황당합니다. 이것은 순전히 잭 리처와 리틀 조이의 일기토를 드라마틱하게 그리려는 흥행 전략에 불과해요. 리틀 조이를 쏘면 유탄이 동네 다른 주민들에게 맞을 수 있기 때문에라는 이유를 대기는 하지만 납득하기 어려워요. 당장 저 놈을 죽이지 못하면 모든게 끝나는데 참 걱정도 팔자죠. 저 같으면 탄창 하나 비울 때 까지 리틀 조이를 쏘고 또 쐈을겁니다.

리틀 조이의 거대한 인형의 집에 들어가서 콧트와 벌이는 밀땅도 어설픕니다. 우선 불구대천의 원수 잭 리처가 몇백미터 앞에서 격투를 벌이는데 콧트가 저격하지 않은 이유부터 불분명합니다. 수없이 많은 기회가 있었는데도 말이죠! 작 중에서도 저격수가 무서운 점은 언제 어디서 총알이 날아올지 모른다고 계속 이야기되고 심지어 파리에서는 천미터 이상 떨어진 곳에서 저격을 시도하는데 왜 런던에서는 가만히 있는단 말입니까? 게다가 이렇게 유능한 저격수가 기껏 여자나 인질로 잡다가 잭 리처에게 총알 한발로 사살되는 장면도 한심하기 그지없습니다. 리틀 조이야 어설프게나마 일기토를 벌이기라도 했지, 진짜 끝판왕의 최후치고는 너무나 허무하고 한심했어요.

그나마 괜찮은 것은 오데이의 음모 정도입니다. 방탄 유리 시연회나 참석하는 신세로 전락한 오데이가 재기를 위해 방탄 유리와 저격범을 활용하려고 했다는 설정 자체는 꽤 그럴듯해요. 하지만 전 세계 정보기관이 힘을 모았는데 자금의 흐름 등 뒷 배경을 밝혀내지 못했다는 것은 좀 이해하기 힘듭니다. 영국의 실력이 만만치 않은 것으로 그려지는데도 불구하고 말이죠. 또 이 음모는 잭 리처가 리틀 조이 일당을 몰살시키고 콧트를 죽이는 일련의 행동과는 무관합니다. 오데이가 왜 잭 리처를 불러 긁어 부스럼을 만든 이유도 잘 모르겠고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읽는 동안 시간은 잘 가지만 읽고나면 별로 남는게 없는 펄프 픽션입니다. 헐리우드 액션 영화라면 그런대로 즐길만할텐데 소설로 진득하게 읽기에는 적합치는 않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