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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28

주석 달린 셜록 홈즈 5 - 아서 코난 도일 원작, 레슬리 S. 클링거 엮음 / 승영조, 인트랜스 번역원 : 별점 3점

주석 달린 셜록 홈즈 5 - 6점
레슬리 S. 클링거 엮음, 승영조.인트랜스 번역원 옮김, 아서 코난 도일 원작/현대문학

거의 10년 전에 읽은 뒤 읽게 된 주석달린 셜록 홈즈 시리즈 5권째 책입니다. 이전에는 1~2, 3~4가 합본이었는데 어느 순간 분리되어 출간되더군요. 독서보다는 소장 목적으로 구입하였는데 다음에 읽자, 다음에 읽자 하다가 이제서야 읽게 되었네요. 셜록 홈즈 전설의 시작인 장편 1, 2작 <<주홍색 연구>>와 <<네 사람의 서명>>이 본편 분량에 육박하는 상세한 주석과 함께 470페이지가 넘는 분량으로 소개되고 있는 구성은 전 권들과 같습니다.

다시 읽어보니 <<주홍색 연구>>는 전설의 시작으로 부끄러움 없는, 완벽한 작품이라 놀랐습니다. 홈즈의 첫 등장 등 캐릭터 묘사부터 흥미를 자아낼 뿐 아니라 등장하는 추리 하나 하나가 모두 빼어나기 때문입니다. 셜록 홈즈 시리즈 장편은 단편보다는 못하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는데 반성합니다. 어린 시절에는 분명 재미가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놓친게 너무나 많았던 듯 하네요.
뭐니뭐니해도 제일 압권은 셜록 홈즈의 도움을 요청하러 온 경찰 그레그슨과 레스트레이드 앞에서 마부를 부른 뒤, 그가 범인이라고 폭로하는 마지막 장면입니다. 추리 소설 여명기의 작품이 지금도 능가하기 어려운 추리쇼를 선보였다는 점에서 정말이지 탄복할 수 밖에 없어요. 이 추리쇼에 비하면 현재 시점에서 소설, 만화, 영화 등에서 펼쳐지는 온갖 추리쇼는 잠자는 코고로 수준의 억지스럽고 과장된 연극에 불과합니다.

딱 한가지 문제는 범인 제퍼슨 호프가 드레버와 스탠거슨에게 복수를 결심하게 된 동기를 설명하는 2부 이야기가 지나치게 장황하고 고전적이라는 점압니다. 허나 아직 장편 추리소설 서사가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은 과도기였다는 점, 그리고 재미 측면에서는 나무랄데 없기에 단점이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실제로 코넌 도일 경은 낭만적이고 웅장한 역사 서사극에도 능한 작가니 재미가 있는 건 당연하죠. 모르몬 교도를 악습인 일부 다처제와 폐쇄적이고 강압적인 무법자 집단으로 묘사한 건 판단하기 조금 애매하지만요. 그러고보면 모르몬 교도를 조금이나마 긍정적으로 그렸던 건 영화 <<내 이름은 튜니티>> 밖에는 없었던 듯 싶네요.

그리고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인 다양한 주석 역시 재미를 더합니다. 왓슨이 제대하면서 가져온 군용 리볼버가 무슨 권총인지에 대한 심도깊은 조사와 같은 흥미로운 여러가지 당대 소품에 대한 소개라던가 물가 등 다양한 당대 정보가 상세하게 수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진핫 한 잔이 4펜스로 이는 현재 구매력으로는 2,500원에 해당된다는 식으로 역자 주석도 꼼꼼해서 더욱 만족스러웠어요.
그 밖에도 <<주홍색 연구>>가 셜록 홈즈가 실제로 욕설 (damned)을 한 묘사가 등장한 유일한 작품이라는 이야기 등 셜록키언들이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시시콜콜한 정보가 가득한데, 가장 눈길을 끈 건 제퍼슨 호프가 대동맥류를 앓고 있으며 솔트레이크 산에서 오랜 노숙 탓에 걸렸다고 말했지만 사실 그는 마르판 증후군에 걸렸거나 매독에 걸린거라는 설을 제기하는 부분이었습니다. 뭘 이런 것 까지 조사했나 싶긴 한데 읽다보니 재미있더라고요. 저 역시 말단이지만 셜로키언이기 때문이겠죠.

하지만 <<네 사람의 서명>>은 <<주홍색 연구>> 보다는 확실히 못합니다. 개 토미의 후각에 의존한 추적 외에 별다른 추리라는게 보이지 않는 탓이 커요. 몇 안되는 단서를 통해 제퍼슨 호프의 정체와 현재 뭘 하는지를 바로 알아내는 <<주홍색 연구>>에 비해, 의족 자국과 일반인에 비하면 턱없이 작은 발자욱과 독침이라는 흉기는 범인이 의족을 했으며 작은 야만인과 함께 하고 있다는게 너무 쉽게 드러나기도 하고요. 
또 배가 어디 숨겨져 있는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이야기가 너무 길게 이어지는 것도 단점입니다. 셜록 홈즈의 능력에 대해 실망감을 갖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진범인 스몰이 체포되지 않고 버틴 기간(?)에 비하면 딱히 대단한 악당으로 보이지 않는 것도 문제입니다. 의족을 했다는, "죤 실버"가 연상되는 묘사는 전형적이며, 사건에 얽히는 과정에서 그다지 뛰어난 지력을 발휘하지도 못해서 어떤 만으로도 셜록 홈즈의 상대로는 보이지 않았어요. 숄토 소령에 대한 복수심은 납득이 가지 않는건 아니나 제퍼슨 호프와는 다르게 스몰은 어차피 악당으로 죗값을 치뤄야 하기에 복수에 대해 공감하기 어렵다는 것도 문제고요. 또 사이드킥이라고 할 수 있는 원주민 통가를 잔혹한 살인마로 묘사한 것도 지금은 누가 뭐래도 좋은 평가를 내리기는 힘들겠죠. 
무엇보다도 왓슨의 사랑 이야기가 전개의 핵심이라는 점에서 호불호가 많이 갈릴 것으로 보입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불호였어요. 의뢰인에게 첫 눈에 반하는 묘사에서부터 시작하여 마지막의 사랑 고백까지 지나치게 고전적이고 지루한 탓이 큽니다.

물론 건질게 없지는 않습니다. 특히 초반부는 아주 흥미로와요. '모든 요소들을 제거하고 마지막에 남는 그 하나가 진실이다' 라는 셜록 홈즈를 대표하는 금언이 등장하고, 왓슨이 물려받은 낡은 시계를 조사한 후 왓슨의 형에 대해 추리하는 부분은 시리즈 전체를 놓고 보아도 셜록 홈즈의 빼어난 추리력을 증명하는 명장면이기 때문입니다. 
세포이 반란을 이야기의 주요 소재로 끌고 들어온 솜씨도 여전히 나쁘지 않고, 추적극을 전면에 배치하여 모험물로의 재미는 충분한 펀이기도 합니다. 주석들 역시 기대에 충분히 값하고요. 셜록 홈즈가 뛰어난 권투 선수이기도 했다는 과거 이야기라던가, 홈즈의 뛰어난 변장술이 등장하는 등 팬으로서 관심가질만한 흥미로운 설정도 몇 개 눈에 뜨입니다.

하지만 본 편 이야기는 영 별로이기에 결론내리자면 합쳐서 평균 별점 3점입니다. <<주홍색 연구>>는 4점도 충분하나 <<네 사람의 서명>>은 2점도 과하죠. 
그래도 어린 시절 읽었던 감상과는 다르게 <<주홍색 연구>>가 빼어난 수작이라는 걸 다시 확인했다는 점에서 만족스러운 독서였어요. 시대를 초월한, 셜록 홈즈의 시작을 제대로 느끼기에는 부족함이 없네요. 지금은 절판되었지만 다른 판본으로도 많이 출간되었으니 아직 읽어보지 않으신 분들은 <<주홍색 연구>> 만큼은 꼭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19/04/27

소비의 역사 - 설혜심 : 별점 4점

소비의 역사 - 8점
설혜심 지음/휴머니스트


소비하는 인간의 역사라는 거창한 타이틀의 미시사 서적. 제목 그대로 '소비' 라는 행위가 어떻게 생겨났는지에서부터 시작하여 소비를 통해 파생된 다양한 산업과 문화를 상세하게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단순하게 한 편, 한 편씩만 읽으면 당대 특정 상품과 문화, 유행 등의 역사에 불과해 보일 수도 있는데, 대부분의 이야기가 남성보다 뒤떨어지며 성적 대상으로 소비되는 여성성이 어디서 어떻게 비롯되었는지와 유색인종과 제 3세계를 비하하면서 서구 중심의 사고 방식이 확립되는 과정이 여러가지 상품과 유행을 통해 비롯되었다는 걸 알려줍니다.
예를 들어 양복의 탄생 편에서는 '맞춤복'이 '기성복' 으로 전환한 산업 행태에서 비롯되었다는 내용이 중심입니다. 이를 통해 명품을 저렴하게 모방한 복제품이 대거 유통되어 평범한 사람들도 쇼핑의 즐거움을 맛볼 수 있게 된 것이죠. 18~19세기 이후 영국 남성복이 수수하고 검소한 형태로 발전한 덕분이기도 한데 이에 대한 반동으로 여성복은 지나칠 정도로 화려함을 추구하게 됩니다. 오늘날에도 통용되는, 여성을 성공한 남성의 트로피화 하는 '수수한 남성과 하려한 여성' 개념입니다. 트럼프와 멜라니아를 보아도 쉽게 알 수 있을 정도로 어떻게 보면 당연한 흐름인데, 문제는 일과는 무관해 보이는 갖가지 화려함을 추구하게 된 여성성을 '사치' 개념과 결합하여 여성들을 정치나 경제 영역에서 배제하는 일종의 사고가 굳혀졌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백화점에서 물건을 훔치는 여자들이 '생리 증후군' 등 여성이기 때문에 일어난 범죄라고 주장했다는 것도 일종의 차별입니다. 단지 백화점의 탄생으로 도둑이 늘어난 것에 불과한데 말이죠. 그런데 이 개념도 극히 최근까지, 아무런 의심없이 언급 및 인용되어 왔습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 역시 아무런 의문을 갖지 않고 받아들여 왔었는데 반성해야 겠네요.

서구 중심의 사고방식은 '백색성'을 강조하는 비누, 제 3세계를 희화화하고 왜곡하여 정보를 전달한 당대 유행했던 각종 트레이딩 카드들 등을 통해 소개되됩니다. 그러나 여성성을 폄하하는 흐름과는 다르게 이 쪽 영역은 책 후반부에서 노예제를 통해 생산된 설탕 불매 운동이라던가, '미시시피 버닝' 등으로 촉발된 흑인의 불매 운동이 함께 소개되고 있어서 답답함이 조금은 덜해서 다행이에요. 미시시피에 모든 소비자들을 공평하게 대하는 월마트가 들어선게 긍정적인 변화의 증거로 받아들여진다는 결말은 너무 소박해서 조금 씁쓸하기도 하지만요.

지금도 통용되는 문제가 발생된 이유를 역사적으로 설명해 주는 부분들도 인상적입니다. '과시적 소비' 가 등장한 배경이 그러합니다. 산업화된 공동체에서 명성은 재력에서 나오기 때문으로, 여기서 가장 중요한건 '어디에 사는가' 라고 합니다. 18세기부터 영국에서는 어디에 사는지로 사람을 구별했다는데, 셜록 홈즈 이야기에도 슬럼가, 가난한 동네 이야기는 항상 등장하곤 했었죠. 우리나라에서 휴거 (휴먼시아 거지) 어쩌구하는 행태의 기원이 이렇게나 오래되었다니 여러모로 속상합니다.
가장 좋은 옷을 입고 교회에 가는 행위를 통해 재력을 과시했기 때문에 좋은 옷 한 벌은 필요했다는 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번듯한 옷 한 벌과 부츠는 빚을 내서라도 사야 했다는데 이는 1938년 조사에서 노동계급이 가장 큰 돈을 쓰는 항목이 남성복 - 부츠 - 석탄 - 조합 가입비 순이었다는 사실로 증명됩니다. 아무리 가난해도 경쟁해야 하는 사회가 이미 18세기부터 이어져왔다니 이쯤되면 벗어날 수 없는게 아닌가 싶어 무섭기까지 하네요.

그 외에도 그냥 소재 자체가 흥미로와서 재미있게 읽히는 이야기들도 많아요. 돌팔이 매약에서 시작된 다양한 특허약들 이야기가 좋은 예겠죠. 당대 (18~19세기) 영국에서 이런저런 특허약 소비가 유행했다며 여러가지 특허약들과 관련 에피소드에 대해 소개해주기 때문입니다. 가장 유명한 특허약이었던 토머스 비첨의 '비첨스 필'은 어떤 약인지 무척 궁금해지네요. 아울러 영국인에서의 이런저런 약이 유행했다는 말에서는 각종 추리 소설 등에서 이런저런 약을 잔뜩 챙겨먹는 등장인물들이 떠오르기도 했고요. 주로 괴퍅한 노처녀, 노파들이 많았는데 이 역시 여성성을 폄하하는 흐름의 하나였을까요? 
재봉틀이 세계 최초로 대량판매되었던 표준화된 기계이자 복잡한 내구재라는 개념도 인상적입니다. 오늘날로 따지면 '가전기기'의 효시라는데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지만 실로 그럴듯하네요. 지금도 가장 유명한 브랜드인 '싱어'가 가장 뛰어난 제품은 아니었지만 특유의 할부제와 방문 판매제도로 대성공을 거두었다는건 지금 시점에서도 시사하는 바가 커 보입니다. 인터넷 셀럽을 통한 PPL같은게 좋은 예겠죠? 재봉틀에 대한 반대가 고용 문제와 의학 담론 두가지 영역에 나타났는데 이는 지금과 같다는 말에는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지고요.
그 외에도 튀르크 옷의 유행이라던가, 저도 궁금했었던 온천의 유행이 어떻게 비롯되었는지, 현대 쇼핑몰의 역사에 대한 글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우편 주문 카탈로그가 이미 19세기 중반에 시작되어 대성공했다는 것도 처음 알았네요. 

이런 글들이 400페이지 넘는 분량에 빼곡하게 실려있는데 편집도 최고 수준이고 뒷받침하는 도판들도 최고 수준이라 만족도가 아주 높습니다. 저자인 설혜심 교수님의 글은 이전에 읽었던 <<그랜드 투어>> 처럼 읽고 이해하기 쉽게 쓰여져 있기도 하고요.
백화점의 탄생으로 소비 행태가 변화했다는 이야기는 <<취미의 탄생>> 이라는 책에서 이미 접해본 바 있으며, 영국의 대박람회와 '수정궁'에 대한 이야기는 다른 곳에서 이미 많이 소개된 등 다른 책, 컨텐츠와 중복되는 내용이 많다는 단점이 있지만 책의 가치를 훼손할 정도는 아닙니다. 제 별점은 4점입니다. 이런 류의 미시사 서적을 좋아하시는 모든 분들께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2019/04/21

초크맨 - C. J. 튜더 / 이은선 : 별점 1.5점


초크맨 - 4점
C. J. 튜더 지음, 이은선 옮김/다산책방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에디는 열 두살 어린 시절 개브, 니키, 호포, 미키와 함께 시간을 보낸다. 미키의 형의 죽음, 니키 아버지의 폭행 사건 등을 겪으며 친구들과의 거리가 멀어지던 중 그들은 그들만의 장난인 분필 낙서의 인도를 따라가다가 '댄싱걸' 일라이저의 토막난 사체를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30년이 지나 에디와 친구들은 목을 매단 막대인간의 그림과 흰색 분필 조각이 담긴 편지 한 통을 받는다. 에디는 과거의 고통스러운 추억을 떠올리면서 다시 친구들을 만나 댄싱걸 사건의 진범이 누구인지를 추적해 나가는데....


스티븐 킹이 추천했다는 띠지의 소개에 혹해서 읽어본 작품.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실망스럽습니다. 스티븐 킹의 <<그것>>과 <<스탠 바이 미>>의 저열한 모방작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캐릭터 구도와 전반적인 전개는 <<그것>>을, 어린아이들이 시체를 찾아 나선다는 테마는 <<스탠 바이 미>> 그대로에요.

물론 <<그것>>의 '악동 클럽' 멤버들이 초자연적인 크리쳐가 아니라 실제 살아 숨쉬는 살인마와 만나면 어떻게 될까? 를 그리려는 시도는 나쁘지 않습니다. 현실을 그림으로서 보다 높은 설득력을 얻을 수 있다는 장점도 분명하고요. 하지만 이 작품은 완벽한 실패작입니다. <<그것>>의 광대귀신 페니와이즈는 악동 클럽 멤버들에게 실질적인 위협으로 등장하는데 이 작품 속 아이들과 범죄가 완벽하게 분리되어 있는 탓입니다. 살인마와 아이들의 접점은 아이들이 가지고 놀던 분필과 분필 낙서에 불과해요. 어차피 살인 사건은 댄싱걸 일라이저의 토막 살인 뿐이기도 하고요. 그 외로 펼쳐지는 다양한 아이들과 관련된 사건들 - 에디를 잔혹하게 괴롭히던 미키의 형 션이 강물에 빠져죽고, 호포의 애견 머피가 독살당하고, 니키의 아빠 마틴 목사가 잔혹하게 폭행당하는 등 - 은 결국 아이들과는 거의 무관한 이야기입니다. 아이들은 실제로 위험에 처하지도 않죠.
그나마 분필 낙서 때문에 살인마는 아이들 주변 인물, 혹은 아이들 중 한명인가? 하는 수수께끼가 생겨나기는 하는데 이 역시 제대로 묘사하고 있지 못합니다. 에디 시점에서 무언가 초자연적인 존재 - 션 쿠퍼의 유령 같은 - 가 얽혀있는게 아닌가 하는 식으로 풀어나가다가 결국 에디가 낙서를 했다는 결말로 이어지는데 황당하기 짝이 없어요. 공정하지도 않고요. 이럴거라면 어린 시절 추억담 맨 뒤로 진상은 빼 놓더라도 혼란스러운 묘사 따위는 집어 치우는게 더 나았을 겁니다.

에디와 친구들의 어린 시절 이야기도 지나치게 길고 지루합니다. <<그것>>과 너무 비스무레한 것도 문제고요. 동네 깡패 일당과의 대립이라던가, 폭력적인 아버지에게 시달리는 홍일점 니키 등은 그냥 표절 수준이에요. 그 중에서도 니키는 왜 나왔는지도 모르겠더군요. 에디의 아련한 첫사랑을 그리기 위함도 아니고, 마틴 목사의 폭력성을 스스로 증명하지도 않고, 심지어 성인 시점에서 사건 해결에 도움을 주는 부분도 없으니까요. <<그것>>을 충실하게 베끼기 위한 목적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에 대한 자세한 묘사, 예를 들어 에디 아버지의 치매에 대한 묘사 등도 지나쳤어요.

하긴 이런 단점은 진범의 정체에 비하면 약과입니다. 진범이 마틴 목사라는 결말은 뜬금없기 그지 없어요. 크게 폭행을 당해 의식을 잃은채로 병원에 입원했는데, 몰래 빠져나와 살인을 저지르고 시체를 토막내어 유기까지 하다니 이게 말이나 됩니까? 뭐 당시 영국 시골 병원의 보안과 환자 관리가 그만큼 허술했다 칩시다. 하지만 이후 무려 30년의 세월동안 요양소에서 반 송장처럼 지내면서 주위 사람들을 속여왔다는건 도무지 납득이 안됩니다. 그 전에 미치거나, 퇴원하거나 했어야죠. 일라이저 사건의 범인이 핼러런 선생으로 알려진 상황에서 정신이상, 산 송장 상태로 버티는 상황부터가 말도 안되고요. 설령 그걸 몰랐더라도 공소시효가 끝날때까지만 버티면 돼잖아요.
그리고 수십년간 휠체어 생활을 했는데 불구하고 젊은 처녀인 클로이와 장년의 성인 남성인 에디와 호포를 제압한다는 마지막 클라이막스도 와 닿기 않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도끼를 들고 습격했다는 장점은 있지만 뭔가 어설퍼서 긴장감이 전혀 느껴지지도 않더라고요. 그리고 애초에 습격할 이유 자체도 없습니다. 증거도 없을 뿐 아니라 앞서 이야기한대 공소시효도 이미 끝난지 오래니까요. 찾아온 에디와 친구들을 만나 그냥 정신 이상을 가장한 채 휠체어에 앉아 있기만 했어도 아무 탈이 없었을겁니다. 정신 이상으로 일어나서 과거의 망령들을 습격했다? 그렇다면 진작에 일어나서 날뛰지 않은게 설명되지 않죠. 이 모든 걸 엮는 단서라는게 댄싱걸과 클로이가 머리를 금발로 염색했다는 정도라는 것도 웃기는 일이고요.
그 외에 추리적인 부분은 모두 함량 미달입니다. 초크맨 낙서를 보낸건 에디였다던가, 미키를 죽인건 호포였다던가 하는 이야기 모두 뜬금없으며 공정하지 못한건 마찬가지거든요. 마틴 목사를 폭행한건 토머스 순경과 친구들이라는 것도 역시나였습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1.5점. 인물 설정과 묘사는 스티븐 킹의 표절인데다가 추리적인 부분은 비합리적인데다가 우연으로 점철되어 있고, 심지어 공정하지도 못합니다. 무엇보다 범인의 정체는 최악이고요. 그 어떤 점으로도 점수를 줄 부분이 없습니다. 그냥 소설로 성립은 한다는 점 정도만 괜찮네요. 절대로 읽어보시지 마시길. 스티븐 킹이 호평했다는건 자신의 충실한 모방작을 만난 탓에 한 실언이 아닐까 싶습니다.

2019/04/20

살인단백질 이야기 - D.T. 맥스 / 강병철 : 별점 5점!

살인단백질 이야기 - 10점
D. T. 맥스 지음, 강병철 옮김/김영사

<<책장의 정석>> 에서 소개되어 관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절판되어 아쉽던 차에 중고를 저렴하게 구해서 읽게 되었습니다. 

책 제목인 "살인단백질", 즉 프리온은 광우병을 일으키는 원인입니다. 이 책은 프리온 연구의 시작과 과정, 그리고 현재 어떤 상황인지를 상세하고 재미있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기묘한 병의 원인이 프리온이라는걸 밝혀내는 과정 자체도 한 편의 추리소설을 방불케하거든요.

책은 이탈리아의 한 가족에게 대물림되는 치명적가족성불면증(FFI)이라는 유전성 프리온 질환 소개로 시작됩니다. 18세기 중엽 베네치아에서 한 의사의 사망으로 시작된 FFI의 유전이 이어지는 과정, 그리고 마찬가지로 18세기 영국에서 축산업자 베이크웰이 동종교배로 탄생시킨 거대양 디쉴리 레스터 종이 치명적인 스크래피의 유행으로 엄청난 타격을 입는 이야기가 병렬로 전개되죠.
그리고 20세기 초반, 이탈리아 베네토에서 전쟁의 혼란 와중에 피에트로가 FFI로 사망하고, 뉴기니 원주민 포레이족이 '쿠루'라고 불리우는 이상한 유행병으로 죽어갈 때 젊은 학자이자 의사 칼턴 가이듀색이 현지에 뛰어들어 쿠루병이 유전병이 아니라 감염병이라는걸 밝혀내어 노벨상을 받는 과정이 이어집니다.

다음은 1970년대로 넘어가서 피에트로의 딸, 아들들이 FFI로 사망하며 본격적으로 병의 정체에 대해 연구가 벌어지고, 가이듀색의 라이벌 프루시너가 쿠루병과 스크래피 등이 '프리온' 이라고 명명한 단백질 탓에 발병하는 병이라는걸 증명하며 결국 이탈리아 가문의 유전병 역시 프리온 질병이라는게 밝혀집니다. 이 이탈리아 가족들의 데이터로 프리온이 감염병을 일으키고, 다른 종류의 프리온은 각각 뚜렷하게 구별되는 다른 질병을 일으킨다는 것이죠. 이런 연구들로 프루시너 역시 노벨상을 수상합니다.
그리고 1986년 영국 광우병 사태가 등장합니다. 광우병이 일어난 원인을 찾아내는 과정도 흥미롭지만 무엇보다도 축산업 붕괴를 막기 위해 정치가들이 소고기가 안전하다고 홍보하다가 사람에게 감염되는게 밝혀지는 내용은 굉장히 무섭고 끔찍해서 인상적이었어요. 동종교배, 소에게 소를 먹이는 행위와 같은 축산업에 존재하는 잔혹함이 광우병의 원인이 되었다는 점도 끔찍하기는 마찬가지고요.
동종접합 유전자가 있는 사람들에게만 쉽게 점염되기에 더 큰 피해를 막을 수 있었으며 최근에는 여러가지 연구로 치료법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는 결말은 조금 다행입니다. 물론 치료약인 퀴나크린은 간 손상 등을 일으켜 결국 환자들은 모두 사망했으며, 또다른 약인 펜토산은 치료가 아니라 현상 유지에 그치고 있어서 큰 효과를 보이지 못하고 있지만 언제가는 치료약이 나올 것이라는 기대를 품게 만드네요.

이렇게 재미와 정보, 가치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게 만든 좋은 책입니다. 단점을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하기에 별점도 5점입니다. 이전 <<책장의 정석>>에서 소개받아 구입했던 <<얼음의 나이>>는 솔직히 지루했는데 이 책은 누구에게나 추천할 만한 그런 책이네요. 의학, 광우병, 프리온 등에 궁금하시다면 필독서입니다. 이런 분야에 관심이 없으시더라도 순수한 재미 측면에서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그나저나 읽어보니 미국산 소고기가 찜찜하게 느껴지는데, 앞으로는 저렴하게 먹더라도 호주산을 먹어야겠다는 결심이 섭니다. 아직까지 호주,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는 광우병 청정 구역이라고 하며 동양인은 동종접합 유전자를 지닌 인구가 상대적으로 많다고도 하니 조심해서 나쁠건 없겠죠.

2019/04/14

환불 불가 여행 - 서귤 : 별점 2.5점

환불 불가 여행 - 6점
서귤 지음/디자인이음

<<책낸자>>의 작가 서귤의 작품. 2주에 걸친 이탈리아 여행기를 만화로 그려낸 책으로 <<책낸자>>를 아주 재미있게 읽기도 했고, 여행기도 좋아해서 기대가 컸습니다.

하지만 실망이 더 크네요. 재미가 없지는 않은데, 문제는 책의 편집입니다. 부록을 빼면 165페이지인데 56편 정도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문제는 한 페이지에 2컷 씩 수록되었다는 점입니다. 이야기들은 2컷에서 4컷, 6컷, 8컷이고요. 책의 판형이 작기는 하지만 한 페이지에 만화 두 컷 들어갈 정도의 밀도높은 그림은 아닙니다. 이보다 작은 일본 문고판 사이즈 만화책도 한 페이지에 4컷 만화 2편씩은 포함되는데 이건 너무 심해요. 작가의 전작인 <<책낸자>>도판형은 크지만 한 페이지에 4컷 만화 2편씩이 들어갔었죠.
즉 전형적인 스타일로 편집했다면 50페이지를 넘지 않았을 책입니다.모두 4컷으로 구성된 이야기가 아니라고 변명할 수도 없어요. 대부분 4컷, 혹은 2+6컷 구성이며 설령 초과하거나 부족하더라도 편집만 제대로 하면 읽는데 전혀 문제는 없었테니까요.

물론 이렇게 편집한 덕분에 시원시원한 맛은 있고, 디자인도 예쁘긴 합니다. 서귤 작가의 독특한 유머 센스가 빛나는 이야기들도 몇 편 되고요. 특히 이탈리아 여행기인데 이탈리아스러운 느낌이 전혀 나지 않는게 서귤 작가다와서 좋았습니다. 그림에서 '이탈리아'를 전혀 강조하지 않기 때문인데, 그림 실력 탓으로 보이지만 독특해서 마음에 들었어요. 이런저런 책 소개라던가, 책방 소개도 역시나 서귤 작가다왔던 부분이고요. 브루노 무나리는 저도 좋아하는 작가인데 이 책에서 소개된 3종 셋트 (Drawing The Sun / Drawing a Tree/ Roses In The Salad) 모두 일단 국내 인터넷 서점에서 검색이 되니 장바구니에 담아 봅니다. 페이퍼백이라 살짝 불안하긴 합니다만.

그래도 아주 좋은 점수를 주기도 애매합니다. 여러모로 밀도가 부족하기 때문으로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작가의 팬이 아니시라면 읽어보실 필요는 없겠습니다.

2019/04/13

인어가 잠든 집 - 히가시노 게이고 / 김난주 : 별점 1.5점

인어가 잠든 집 - 4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재인

하리마 테크의 후계자 가즈마사는 바람을 피워 아내 가오루코와 별거 중으로 이혼을 앞두고 있다. 그러나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딸 미즈호가 뇌사에 빠진 후 미즈호의 생명을 유지시키기 위해 이혼을 보류하고 금전적, 기술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도움의 핵심은 하리마 테크의 기술자 호시노가 개발한 척수를 자극해 몸을 움직이게 만드는 기술.
그러나 가오루코의 노력과는 별개로 주위 가족들은 미즈호를 살아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결국 미즈호의 동생 이쿠토의 초등학교 입학을 계기로 갈등은 폭발하게 되는데...

히가시노 게이고의 최신작으로 500여 페이지에 달하는 대장편. 뇌사 상태의 아이가 살아있느냐? 죽어있느냐? 에 대한 딜레마를 심도깊게 그리고 있습니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딜레마를 그린 드라마에도 강점을 보이는 작가죠. 대표작 중 하나인 <<비밀>>도 딸로 환생한 아내는 딸인가? 아내인가? 라는 딜레마가 이야기의 핵심이었으니까요.

굉장히 긴 분량에도 불구하고 독자를 흡입시키는 솜씨는 여전히 일품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뇌사자의 상태에 대한 딜레마 이외에도 뇌사자를 기계로 움직이게 하는 행위에 대한 윤리적인 고민, 심장 이식이 필요한 아이 묘사를 통한 장기 이식에 대한 고민 등 다양하고 심각한 주제를 등장시킴에도 이를 재미있게 풀어나가는 능력은 작가 명성에 충분히 값하거든요.

하지만 <<비밀>>이 딜레마를 중심으로 깔끔한 전개와 결말을 보였다면 이 작품은 그에 미치지는 못합니다. 불필요한 내용이 너무 많아요. 대표적인건 가오루코를 둘러싼 여러가지 설정들입니다. 가즈마사와 가오루코가 이혼을 앞두고 있으며, 가오루코가 의사 에노키다와 불륜 직전까지 가는 연심을 품고 있고, 하리마 테크의 기술자 호시노가 그녀에게 반해서 보다 적극적으로 미즈호가 움직일 수 있도록 돕는다는 설정 모두가 불필요해요. 가오루코가 마성의 매력을 가진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복잡한 남자 관계를 끌고 들어오는지 모르겠더라고요. 솔직히 재미도 없고요. 
또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툭툭 끊어져 들어오는 것도 문제입니다. 미즈호의 뇌사, 하리마 테크의 기술 도입, 그 와중에 심장 이식이 필요한 유키노라는 아이에 대한 묘사가 등장하다가 몇 년 후 갈등이 폭발하고, 또 몇 년 후 유키노를 놓아 준다는 이야기 모두 자연스럽게 이어진다는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여기에 더해 특별한 악역이 없는 점도 지루함을 가중시키고요. 차라리 전남편 가즈마사가 회사를 위해 딸 아이를 회사 기술을 이용하여 인형처럼 움직이며 미소짓게 만들며 이익을 챙기지만 이를 보다못한 가오루코와 호시노가 힘을 합쳐 막다가 심장 이식이 필요한 유키노를 만난 후 미즈호를 놓아준다, 가오루코는 호시노와 결합한다는 식으로 풀어가는게 훨씬 나았을겁니다. 여러가지 설정에 대한 이유로도 그럴듯하고요. 

덧붙이자면 결말도 너무 뻔해서 당황스러웠습니다. 어쨌건 미즈호를 붙잡고 살다가, 미즈호가 유령? 처럼 나타나 떠나 보낸다는 결말, 미즈호의 장기를 이식받아 건강해진 아이가 등장하는 에필로그가 그러해요. 뇌사에 대한 깊이있는 고민은 다 부질없고 결국 마음의 준비 문제였다는 이야기에 불과해서 실망스럽기도 했고요. 미즈호가 회사에 빠지게 된 사고의 진실 역시 딱히 중요한 내용은 아니라 실망스럽긴 마찬가지였습니다. 

물론 작가 명성에 값하는 볼만한 장면이 없지는 않습니다. 우선 가오루코가 미즈호의 선생인 신쇼 후사코로 위장하여 심장 이식이 필요한 유키노를 돕기 위해 나서는 내용은 미스터리 스타일로 펼쳐져 독자에게 흥미를 불러 일으킵니다. 앞서 신쇼 후사코에 대해 수상쩍게 묘사하고, 뇌사자 장기 기증에 대해 심도깊게 이야기를 펼쳐 나가면서 신쇼 후사코에 대해서 의심을 품게 만드는 솜씨가 일품인 덕분이죠.
아울러 미즈호가 살아 있다!는 희망을 부여잡기 위해 뇌사 상태의 아이를 움직이고, 심지어 미소까지 짓게 만드는 과정이 이어지다가 이쿠토의 생일날 이미 미즈호가 죽었다고 생각하는 주위 사람들 반응에 격분한 가오루코가 미즈호에게 칼을 겨눈 뒤 경찰을 직접 불러 지금 미즈호의 심장을 칼로 찌르면 살인죄냐 아니냐를 묻는 장면은 아주 인상적입니다. 영화 버젼의 예고편에서도 이 과정과 장면을 핵심으로 소개할 정도로 뇌사자가 살아있느냐 아니냐를 극적으로 드러내는 좋은 장면이었어요.

그러나 이 정도로 좋은 작품이라고 하기는 여러모로 부족합니다. 전성기 작품에 비하면 군더더기가 너무 많은 탓으로 이렇게 길게 끌고 갈 이유는 없었습니다. 추리, 미스터리 장르와 거리가 멀다는 점도 감점 요소고요. 최소한 휴먼 미스터리라고 홍보는 하지 말았어야 합니다. 제 별점은 1.5점입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추리', '미스터리'를 원하는 분이시라면 구태여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2019/04/07

일상기술연구소 - 제현주, 금정연 : 별점 1.5점

일상기술연구소 - 4점
제현주.금정연 지음/어크로스

제목이 흥미를 끌어 관심을 두다가 도서관에 있길래 읽어 보았습니다. 제법 유명한 팟캐스트 방송의 에피소드 몇 개가 수록된 책입니다. 
그런데 기대와는 전혀 다르더군요. 저는 평범한 생활 속 기술 중 유용한 '꿀팁'을 소개하는 책이라 생각했거든요. 청소의 비법 같은 것 말이죠. 하지만 이 책에 소개된 '기술'이라는건 전혀 그런게 아니더라고요.

물론 아예 읽을만한 내용이 없지는 않습니다. 특히 첫번째 소개된 푸른 살림 박미정 대표 코치의 돈 관리 요령과 돈에 대한 시각은 꽤 괜찮은 편입니다. 소비는 프라이버시, 돈을 정해주면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 인간은 어차피 하고 싶은 건 하게 되어 있으니 적당한 지점을 스스로 찾아 기준을 세워 소비하자, 돈 쓰는 감각을 훈련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현금으로만 사는 것, 결핍을 두려워 말고 일단 과감하게 끊어보자, 돈에 대해서는 정직해 져야 한다 등 도움이 되는 말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특히나 무언가를 끊는 방법이 인상적입니다. 먼저 자기의 욕망을 먼저 수용하고 솔직하게 들여다 봅니다. 그리고 수용했으면 기한을 두고 참을 수 있는걸 끊어 보는거죠. 결핍을 겪어봐야 내가 얼마나 원하고 얼마나 댓가를 치를 수 있는지 알 수 있다는 논리입니다. 도저히 못 끊겠으면 죄책감을 느끼지 말고 허용하고요. 마지막으로 이에 따라 내 중심의 생활 경제 질서를 만들자는데 적절한지는 모르겠지만 자기 합리화에는 괜찮은 조언이다 싶네요.
<<검색, 사전을 삼키다>>의 저자 정철의 정리 관련 기술도 눈여겨 볼 만 합니다. 정리할 때는 '기타'를 잘 활용하자는 것과 찾기 쉽게 하는게 목표라는 것, 그리고 허용치 이상이 되면 버려야 한다는게 원칙인데 실제 책 정리에 유용하겠다 싶었어요. 사실 정리에 대한 비법보다는 요새와 같은 추천의 시대는 취향을 만들기가 더 힘들다는 이야기가 더 인상적이긴 했지만요. 예전에는 CD 한 장 사면 별로여도 들을 수 밖에 없으니 마르고 닳도록, 가사를 외워가며 들었던 추억을 예로 들면서, 옛날에는 무언가를 고를 때 엄청나게 고민하고 노렸했고, 좋아하는걸 골라내는 것도 기술이었지만 지금은 비슷한 장르의 음악을 공짜에 가깝게 계속 이어서 무한정 들을 수 있으니 이런 고민이 필요없는 시대가 되었다는 이야기인데 공감이 많이 갑니다. 저 역시 제 중, 고등학교 생활을 지배했던 <<오렌지 로드>>의 극장판 LD를 몇 달 용돈을 모아 구입한 후, 재미를 떠나서 마르고 닳도록 본 기억이 나네요. (솔직히, 굉장히 재미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외에는 기술이라고 부를만한게 솔직히 거의 없습니다. 일을 벌이는게 기술인가요? 배우고 가르치는 기술이라는 것도 내용만 보면 개인 경험담에 가깝고요. 손으로 만드는 기술은 그 중에서도 최악으로 정작 내용은 손으로 만드는 뭔가에 대한 방법이 아니라 시작하는 방법에 대한 소개에 불과합니다. 그냥 건담 HG나 하나 사서 시작하면 될텐데 이걸 뭐 이리 장황하게 이야기하는지 도무지 모르겠어요.
그래도 이 정도면 단지 기대와 다른 정도인데... <<함께 살기의 기술>>은 내용 자체가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예전 하숙집 느낌이라는 '우리 동네 사람들 (우동사)' 라는 공동 주택 시스템은 소개만 보면 상당히 그럴 듯 합니다. <<프렌즈>>나 <<남자 셋, 여자 셋>> 같은 느낌으로 함께 사는 재미도 있고, 가족같이 지내며 정말 오래전 대가족 느낌을 아이들에게도 줄 수 있어 보이니까요. 허나 이렇게 살거면 왜 진짜 가족과 함께 살지는 않는거죠? 가족과 함께 살지도 않는데 나와서 유사 가족을 만드는건 어불성설입니다. 집이 멀어서? 저렴해서 인천에 산다니 이 역시 성립되지 않는 이유입니다. 애초에 예를 든 <<남자 셋, 여자 셋>>은 대학 근처 하숙집이라는 지역적 특성으로 성립된 공동 생활이에요. 가족이 없어서 생겨난 게 아니란 말이죠. 제가 기성 세대를 넘어 꼰대가 된 탓이 크겠지만 최소한 제 딸은 절대 이런 생활로 보내고 싶지는 않네요.

본편 뒤에 부록처럼 이어지는 <<독립 생활의 비법>> 역시 제목만 그럴듯합니다. 게다가 나름 성공한 제빵사와 일거리가 제법 있는 프리랜서가 주인공이라 별 도움도 안될 듯 싶어요. 최저 임금으로 독립 생활을 하는 사람을 취재하는게 나았을겁니다.
아울러... 제빵사 박혜령님의 경우 30대 초반에 2,000만원 들여서 창업한 거라니 이 정도면 기성 세대 시각으로도 충분히 응원해 줄 수 있습니다. 실패해도 큰 데미지는 아니고 충분히 남은 인생에서 재기할 수 있는 수준이니까요. 게다가 베이글이라는 아이템도 꽤 신선합니다. 온라인 주문 대응에 용이한 아이템이라는 선견지명이 돋보이고요. 이 정도면 운도 좋았지만 일단 실력으로 성공했다고 봐야겠죠. 그렇다면 <<독립 생활의 비법>>이라는 항목에 묶이기에는 역시나 말이 안됩니다. <<성공의 비법>> 이라면 모를까.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1.5점. 기대했던 내용과는 전혀 달라 실망이 더 컸던 책입니다. 아무래도 제가 이런 책을 읽고 관련된 이야기를 듣기에는 나이가 많은 탓이겠지만요. 그래도 주변 지인들에게 권해주고 싶은 내용이 아니라는건 확실합니다. 저와 같이 정말 '일상 속 여러가지 생활 기술' 에 대한 내용이 있을거라 기대하신 분들이 있으시다면 낚이지 마시길 바랍니다.

2019/04/06

블러디 머더 - 줄리안 시먼스 / 김명남 : 별점 2.5점

블러디 머더 - 6점
줄리안 시먼스 지음, 김명남 옮김/을유문화사

추리 작가인 줄리언 시먼스가 쓴 추리, 범죄 장르 문학 역사서. 이쪽 바닥(?)에서는 확고한 명성을 다지고 있는 책입니다.
1794년 출간된 윌리엄 고드윈의 <<칼렙 윌리엄스 >> 부터 시작해서 비도크, 에드거 앨런 포와 찰스 디킨스, 월키 콜린스, 에밀 가보리오로 이어진 범죄 문학이 셜록 홈즈로 대표되는 단편 추리물로 만개하고, 애거서 크리스티도로시 세이어스앤서니 버클리 콕스반 다인 등 거장들에 의해 추리 문학 "황금기"인 1920~30년대에 이른 후 정통파에서 하드보일드 등으로 변주되고 현대에 이르기까지, 범죄 문학 역사의 주요 변곡점과 주요 작품들을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영국, 프랑스 및 기타 국가의 추리, 범죄 소설도 비중있게 언급됩니다. 뒤렌마트의 범죄 소설들이라던가 부알로 - 나르스자크, 세바스티앙 자프리조의 작품들이 그러하죠. 스웨덴의 페르 - 마이셰발 작품도 마찬가지고요. 특히나 페르 - 마이셰발 작품이 좌파적 견해를 드러낸다는 시각이 독특한데, 기억을 더듬어보니 확실히 그런 느낌이 떠오르기는 하네요. 저는 이런게 유럽 스타일이구나 싶었는데 말이죠.
마지막으로 스파이 소설은 아예 한 단락을 할애합니다. 대부분 아는 작가와 작품들인데 오히려 문학성이 조금이라도 있는 최초의 스파이 소설인 어스킨 칠더스의 <<사막의 수수께끼>>야 말로 모든 스파이 소설과 모험 소설 중 최고작의 반열에 오를만 하다는데 한 번 읽어봐야겠어요. 번역이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이북이 저렴하게 나와 있더라고요.

사실 대략적인 추리, 범죄 문학의 역사는 익히 잘 알고 있던 내용이라 딱히 새롭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눈길이 간 건 저자의 시각으로 바라본 여러 작가와 작품들에 대한 평가였습니다. 저자 본인이 추리 소설 작가라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트릭에 대해서는 평가가 박하고 문학적인 부분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게 인상적이었습니다. 저는 추리 소설은 정통파, 고전 퍼즐 미스터리를 선호합니다만 작가의 말 대로 수수께끼 풀이는 그냥 핏기없고 인물없는 게임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에는 어느정도 수긍이 가더군요. 하지만 수수께끼 없이 범죄와 인물에만 기댄 작품도 반쪽짜리일텐데, 그런 부분에 관대한건 좀 이해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해밋의 <<유리 열쇠>>를 당대 최고작이라 극찬하는데 그 이유가 캐릭터 묘사로 대표되는 문학적 성취 때문이라고 합니다. 트릭은 부차적이고요. 하지만 단지 캐릭터와 인간관계만으로 최고 성과라니 평이 과하다 싶습니다. 스펜서 시리즈로 유명한 로버트 B 파커를 챈들러의 후계자로 언급된다고 소개한 단락은 뭔가 싶었고요. 전형적인 펄프 픽션 작가로 좋은 평을 줄 만한 부분이 전혀 없는데 말이죠.
반대로 윌리엄 아이리쉬를 플롯이 한심하다는 이유로 평가절하는 이유를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물론 모든 작품들이 좋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이렇게 박한 평가를 받을 작가는 아닌데 말이죠. 평가 절하된 작가는 또 있습니다. 조세핀 테이가 대표적이에요. 지루하다는 이유인데 역시나 수긍하기 힘듭니다. 그 외에도 존 르 카레, 제임스 엘로이 등도 평이 좋지 않고요.
작가 특성상 단편에 좋은 평을 주지는 않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러리 퀸의 초기 단편집에 좋은 평가를 한 건 눈에 뜨입니다. 암, 좋은 작품이죠. 그런데 개인적으로 비슷한 수준으로 여기는 푸아로와 미스 마플 단편에 대해서는 좋은 평을 주지 않는건 의외더라고요. 장편보다 훨씬 수준이 떨어진다는게 그 이유인데 말도 안됩니다!

비록 평가는 좀 갈리더라도 잘 몰랐던 작품들에 대해 스포일러 없이 꼭 한 번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소개는 일품입니다. 몇 몇 작가와 작품들을 소개해봅니다. 우선 1920년대 작가인 필립 맥도널드가 있습니다. <<줄>>에서 엔서니 게스린 대령을 소개했다는데 최고작은 <<리녹스>>와 <> 두편이라는군요. 존 딕슨 카는 저 역시 좋아하는 작가인데 줄리언 시몬스는 최고 작품으로 <<할로 맨>>을 꼽습니다. 기디온 펠 박사 시리즈로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작품으로 1980년대 전문가 집단의 최고의 밀실 소설 투표에서 카의 다른 작품들 - <<구부러진 경첩>><<유다의 창>>, <<열개의 찻잔>> - 보다 두배 가까운 표를 얻었다고 하며 "환각과 위장에서 문제를 끌어낸" 소설이라니 궁금해서 미치겠네요. 마찬가지로 황금기 작품인 C.데일리 킹이 쓴 세 편의 "오벨리스트" 시리즈도 흥미롭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서로 다른 학파의 심리학자들이 함께 살인 사건을 수사하는 완벽하게 공정한 정통파 추리소설이라니까요. 
황금기 이후 작품 중에서는 페트릭 퀜틴의 <<두 아내를 가진 남자>>와 <<로널드 셸던의 아내>>, 에드먼드 크리스핀의 <<움직이는 장난감 가게>>와 <<피 흘리는 사랑>>에 대한 평이 괜찮네요. 시릴 헤어의 <<법정의 비극>>은 코미디적 감각과 인물에 대한 진실된 감정으로 순회 재판 판사의 삶이 잘 묘사된 그의 최고작이라고 하고요. 그 외에도 소개된 에드거 러스트가튼의 <<대답해야 할 사건>>, 케네스 피어링의 <<커다란 시계>>, 헬렌 유스티스의 <<수평의 남자>>, 존 프랭클린 바딘의 <<악마의 푸른 꼬리 파리>> 모두 한 번 읽고 싶어 집니다. 국내 소개된건 아쉽게도 <<커다란 시계>>밖에 없지만요.
이후 현대로 넘어오면서는 제 취향과는 거리가 있지만 그래도 퍼트리샤 하이스미스를 범죄 소설가 중 가장 중요하다며 소개하는 단락은 동의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저 역시 아주 좋아하는 작가라 무척 반갑기도 했고요. 이어서 소개되는 마고 베넷의 작품들도 굉장히 흥미로운데, <<비행하는 남자들>은 국내에 소개되면 참 좋겠습니다. 로스 맥도널드에 대한 호평도 좋았고요. 마거릿 밀러의 작품은 개인적으로는 그냥 그랬지만 여기소 최고로 치는 작품인 <<천사처럼>>은 국내에 소개되지 않았으니 이 작품까지는 읽어봐야겠습니다. 

하지만 작품 소개만 흥미롭다면 인터넷 서점 리뷰보다 나을게 없죠. 아니, 국내 소개된 작품이 드물다는 점에서는 인터넷 서점보다도 못합니다. 전문가적인 시각이 반영되었다고는 하나 개인적인 취향이 반영된 느낌이 강해서 마음에 들지 않고요. 명성에 비하면 조금은 실망스러운 책이었습니다. 제 별점은 2.5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