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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30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 - 무라카미 하루키 / 이영미 : 별점 2.5점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 - 6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이영미 옮김/비채
무라카미 하루키가 온갖 곳에 발표했던 다양한 글을 모아놓은 책. 수상 소감까지 실려있는, 제목 그대로 잡문집입니다. 본인 스스로도 그닥 가치를 두지 않는 짤막한 요청 원고들에다가 어디에 발표했는지 기억조차 희미한 글들, 여러가지 모종의 이유로 발표하지 못했던 글들이 대부분일 터인데 이런 글들을 모아놓은 책으로도 돈을 벌 수 있다는 점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다시금 탄복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잡문이라도 워낙 글솜씨가 뛰어나서 그런지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특히 음악, 번역 등 특정 컨텐츠를 소개하는 글들은 인상적이기까지 했어요. 프로작가가 무언가를 "홍보"하기 위해서는 이 정도는 써야 한다는 일종의 기준점이랄까요? <차마 말을 꺼내지 못해>는 글을 읽으며 바로 유튜브에서 찾아서 들어 보고, 레이먼드 카버에 대한 소개는 그의 작품을 인터넷 서점 보관함에 바로 담아 놓을 정도로 매력적이었습니다. 피츠제럴드의 작품 역시 마찬가지. "멸망의 미학이 아니라 그것을 능가하는 구원의 확신"이 무엇인지 너무나도 궁금합니다. 뒤에 서술한 <밤은 부드러워>는 정말이지 꼭 읽어보고 싶더군요. 그것도 소갯글에서는 작품의 내용이 어떤 것인지는 일체 설명하지도 않는데 말이죠. 어떻게하면 이런 리뷰글을 쓸 수 있을지 정말로 놀랍기만 할 따름입니다. 이렇게 꼭 읽어보게 만드는 리뷰를 저도 쓰고 싶은데 참 부럽네요.

또 읽다가 느낀 것인데 비유가 정말 뛰어난 것 같아요. 화려한 문체가 아니지만 작가의 생각을 독자에게 가장 쉽게 이해시키는데 이러한 비유만한게 또 있을까 싶은데, 폴 오스터의 소설을 읽으며 작가가 신체균형을 위해 바하의 인벤션을 쳤던 기억을 떠올리는 것 같은 것이 대표적이죠.
일종의 창작론이랄까, 글쓰기에 리듬이 중요하다는 것도 놓칠 수 없는 비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자연스럽고 기분 좋으면서도 확실해서 사람들이 읽게 만드는 리듬과 그 리듬에 맞는 멜로디, 즉 적확한 어휘의 배열, 그리고 어휘들을 지탱해주는 내적인 마음의 울림인 하모니와 자유로이 솟구쳐오르는 이야기의 흐름을 타는 즉흥연주, 그리고 고양된 성취... 뭐 그러하답니다. 따라하기는 힘들겠지만요.

잡문이기에 모든 글들이 빼어나거나 재미있거나 인상적인건 아닙니다. 허나 리뷰, 소갯글만으로도 저에게는 충분히 가치있는 독서였어요. 별점은 2.5점입니다.

2015/06/29

두 사람의 거리 추정 - 요네자와 호노부 / 권영주 : 별점 3점

두 사람의 거리 추정 - 6점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권영주 옮김/엘릭시르

새학기의 시작, 동아리들이 벌이는 신입생들 가입 권유 행사 신칸제에서 신입생 오히나타가 고전부에 흥미를 보인다. 그녀는 고전부에 가입하려 하였으나 몇주가 지난 뒤, 급작스럽게 퇴부를 결심한다. 전교생 참여 필수인 마라톤 대회 '호시가야 배'에서 오레키 호타로는 20Km 장거리를 뛰면서, 그녀가 급작스럽게 퇴부 결심을 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것을 처음부터 더듬어 나가는데...

요네자와 호노부고전부 시리즈 다섯번째. 이번 권은 그야말로 일상계의 극치입니다. 서두에 사토시가 이야기하듯 '신입 부원이 왔다. 마음이 바뀌었다. 탈퇴했다' 라는 이야기를 가지고 이만큼이나 흥미로운 작품을 써냈다는 점에서 요네자와 호노부의 일상계 추리물 이야기 구성력에 감탄할 수 밖에 없네요. 또 이러한 간단한 사건 - 오히나타의 탈퇴와 그 이유 - 을 오레키 호타로가 마라톤을 하는 시간과 거리에 맞추어, 첫 만남이었던 신칸제 (신입생 가입 권유) 에서부터 그려나가는 전개도 독특합니다. 마라톤 도중이라는 점을 뺀다면 일반적인 소설 전개와 딱히 다르지는 않지만 덕분에 후쿠베, 이바라, 지탄다, 오히나타를 차례로 만나는 설정이 가능했다는 점에서 괜찮은 발상이었어요.

추리적으로도 나쁘지 않습니다. 특히 소소한 사건들이 연속되는 전개가 발군으로, 이러한 사건이 연속되며 이야기의 핵심인 오히나타의 퇴부를 결심하게 만든 이유에 대한 단서가 하나둘씩 던져지는데 상당히 정교하게 잘 짜여져 있거든요. 밝혀지는 진상도 예상 외이지만 기발하고요. 등장하는 소소한 사건들 - 신칸제에서 제과연의 테이블 위에 호박이 놓여 있는 이유는?, 호타로 생일에 축하해주기 위해서 찾아온 고전부원들 중 이전에 호타로 집에 찾아왔던 것은 누구?, 오히나타 사촌오빠가 신규 오픈하는 카페의 이름은 무엇? 오히나타가 퇴부를 결심한 날 지탄다가 한 잘못은 무엇? - 모두 하나의 단편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로 괜찮다는 것도 큰 장점이죠. 마지막에 오히나타의 친구가 "소노코"라는 이름일 수 있다는 것도 일본어 트릭이기는 하지만 괜찮은 발상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정교함이 외려 단점으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중간중간 사소한 단서들 대부분이 일상 생활 속 대화라,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서 오레키 호타로의 '순간 기억 능력'이 압도적으로 그려지기 때문입니다. 몇 주 전에 일어났던 사건들 속 모든 대사를 머리속에 녹음하는 수준인데 이건 말도 안돼죠. 오히나타의 "친구"가 가공의 제 3자인지 아닌지에 대해 알아내는 것이 특히 그러한데, 이바라가 치즈를 싫어한다는 상황의 대사와 그 다음에 있었던 카페 방문 시 주문 메뉴를 연결한다는 것은 거의 초능력으로 보여요. 이러한 사소한 대화를 기억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래서 별점은 3점입니다. 그동안 친근했던 오레키 호타로가 일종의 초인처럼 느껴진다는 점에서 약간 감점했어요. 하지만 책으로 읽는 독자에게는 공정한 정보이기는 하고, 이야기도 앞뒤가 잘 짜여진 재미있는 '추리 소설' 이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일상계 추리물로서는 완벽한 수준이랄까요. 아직 읽지 않으신 모든 분들께 추천드립니다.

그나저나, 이전 권 <멀리 돌아가는 히나> 이후 오레키 호타로와 지탄다 메루의 관계가 급 진전하지 않을까 기대되는 제목인데 실상 내용은 전혀 그렇지 않더군요. 두 사람은 지탄다와 신입 부원인 오히나타를 의미하는데, 향후 전개도 궁금해집니다. 후쿠베와 이바라도 사귀기 시작했으니....

2015/06/26

미스테리아 1호 - 엘릭시르 편집부 : 별점 1.5점

미스테리아 1호 - 4점 엘릭시르 편집부 엮음/엘릭시르

장르문학 전문 레이블 엘릭시르에서 새롭게 시작한 미스테리 전문 매거진.

그러나 결론부터 이야기하죠. 솔직히 기대에 전혀 미치지 못했습니다.
우선 산만한 편집, 어수선한 디자인부터 영 마음에 들지 않네요. 엘릭시르 단행본 수준을 생각하면 믿기지 않을 정도로입니다. 편집 디자이너가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엉망이었어요. 내지에 있는 일반 기사를 검은 바탕에 흰 글씨로 만든 이유는 누가 설명 좀 해 주면 좋겠네요.

또 수록 기사도 대체로 실망스럽습니다. 일단 앞부분의 단순 리뷰들부터 문제에요. 온라인을 통해 쉽게 접할 수 있는 이런저런 책 소개와 하등 다를게 없고, 그나마도 최신작에 집중되어 있거든요. 리뷰를 쓴 사람들도 애매합니다. 맥심 편집장이 추리소설을 좋아해서 리뷰를 썼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딱히 새로운 시각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녀의 화보라도 같이 실어주었더라면 모르겠지만 말이죠. 다른 기사들도 대체로 별볼일 없습니다.

이러한 결과물만 보면 기획 의도부터가 잘못된 것이 아닌가 싶어요. 어차피 이 잡지를 구입한 사람은 정말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애호가가 대부분일겁니다. 제목부터가 '미스터리(mystery)와 히스테리아(hysteria)라는 단어가 결합되어 '미스터리를 광적으로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뜻' 이라고 설명하고 있잖아요. 때문에 보다 매니악한 주제로 기사를 썼어야 했습니다. 예를 들어 리뷰라면 "온라인 서점 장르문학 MD가 추천하는 한국 추리소설 All-time best 10" 같은 주제로 책들을 선정한 뒤, 간략하게 소개하는 형식으로요. 이런게 한국 미스터리를 보다 성장시키고 싶다는 출간 의지와도 맞물리는 것이겠죠.
"SCREENSELLER"라는 주제로 영화화된 작품들을 소개하는 기사 역시 마찬가지죠. 지금은 원작과 작품의 퀄리티에 상관없이 최신작 기준으로 대충 선정한 느낌인데 데니스 루헤인 인터뷰도 실려있으니 <살인자들의 섬>을 가지고 "원작 VS 영화" 형식으로 심도깊게 파고드는게 훨씬 나았을겁니다.
이런 점에서는 <판타스틱>의 김내성 특집호가 아주 좋은 예가 될 수 있겠네요. 주제도 매니악하고, 의미도 있으면서도 기사도 아주 좋았던 결과물이었으니까요.

물론 다 별로는 아니고, 괜찮은 기사도 몇개 있기는 합니다. 기존 문학작품을 분석하여 숨겨져있는 추리소설 정서를 파헤쳐주는 "MISSING LINK 집 안의 괴물들" 이라던가 "MAZE 『밀실 입문』 (1), 밀실은 ‘합법적’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법의학자 유성호의 "NONFICTION 검은 집, 엄마의 비밀"은 재미있게 읽었어요. 다른 곳에서 찾아보기 힘든 컨텐츠들이기도 하고요. 수록된 단편들도 읽을만 합니다.

그래도 다시 말씀드리지만 결론적으로는 기대이하였기에 별점은 1.5점. 2점을 줄 수도 있지만 14,000원에 육박하는 가격과 허술한 디자인과 편집으로 더 감점합니다. <판타스틱>은 5년전 출간물이기는 하지만 보다 두꺼웠는데도 불구하고 만원 이하였었죠. 2호째가 어떻게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상태라면 절대로 구입해 볼 계획이 없습니다. 추리 매니아가 호구는 아니니까요.

수록 단편만 따로 짧게 소개하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배신하는 별>
비밀리에 보호되던 인물이 암살된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 그의 일기를 보고 창에서 보이는 "오리온 별자리"를 재구성한다는 내용.
상황 설정과 전개, 결말까지 완벽한 단편입니다. 배명훈 작가 소설은 처음인데 다른 작품도 찾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아주 약간의 단점이라면, 비약이 심하다는 것과 시리즈물이라 모든 설정을 이 단편만 가지고 이해하기는 좀 어렵다는 정도? 별점은 4점입니다.

<누구의 돌>
사랑하던 동생이 실종된 사건을 추적해서 범인들을 알아내어 복수하고 남겨진 원수들은 사는게 지옥이 된다는 내용.
"나는 너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 류의 설정인데 흡입력있는 전개와 묘사가 인상적인 작품입니다.
범인들을 알아내는 과정이 작위적이라는 단점 - 몇년전 찍은 사진이 고스란히 남아있고, 그걸 찾아내고, 마침 주인이 그 사람들을 기억하고 있고... - 이 있어서 감점하지만 재미만큼은 최고수준이에요. 별점은 2.5점입니다.

<구석의 노인>
정당 방위일 수 있는 살인사건의 재판을 참관하는 할머니가 제출된 몇몇 증거만으로 진상을 꿰뚫어본다는 내용.
정당 방위와 과잉 방어에 대한 법리학적 설명 등 작가의 전문성을 발휘한 몇몇 디테일은 나쁘지는 않지만 작품 자체는 기대 이하였습니다. 국내 추리소설 작가 중 정교한 트릭 면에서는 첫 손가락에 꼽힐만한 도진기씨 작품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말이죠.
이유는 억지스러운 설정으로 일관하는 탓이 큽니다. CCTV로 잡은 화면에서 손의 반지가 보인다는 것 부터가 말이 안되죠. 설령 보였다 하더라도 드라마에 푹 빠진듯한 할머니의 추론일 뿐, 별다른 설득력이 있지도 않았어요. 범인이 정말 스토커였을 수도 있는거잖아요?
때문에 별점은 1.5점입니다.

<신드롬>
외따로 떨어진 아파트 단지에 전염병이 닥치고, 그 와중에 아내가 사라진 상황을 그린 작품.
집단 광증에 대한 분위기, 세부 디테일 - 특히 유치원 버스에서 아이들을 데려가는! - 은 괜찮았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잘 모르겠더군요. 앞집 남자와 화자인 "나"의 시점에서 각각 상황을 설명하려 하는 것 때문에 많이 혼란스러웠어요. 결말도 당쵀 이해가 안되고요. 열린 결말도 정도껏 해야 했을텐데... 별점은 2점입니다.

<말을 탄 사나이 켈러>
매튜 스커더 시리즈 작가 로렌스 블록의 단편.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특히 자기 자신과 싸구려 소설의 카우보이를 동일시하는 도입부에서부터 시작하는, 인물들을 드러내는 묘사는 역시나 대단하다 싶었어요. 매튜 스커더가 직업만 킬러로 바뀐 듯 싶긴 한데, 주변 인물들을 "배려"하고 소모적인 살인을 피하고자 흑막을 죽이기 위한 장거리 여행을 떠난다는 것도 왠지 바보같지만 멋졌습니다. 운명의 수레바퀴는 돌아갈 뿐이라는 결말도 작위적이지만 나쁘지 않았고요.
거장이 심심풀이로 여유있게 써내려간 소품느낌이랄가요? 별점은 2.5점입니다.

2015/06/24

코끼리 공장의 해피엔드 - 무라카미 하루키, 안자이 미즈마루 / 김난주 : 별점 2.5점

코끼리 공장의 해피엔드 - 6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난주 옮김, 안자이 미즈마루 그림/문학동네

얼마전 읽은 <안자이 미즈마루>를 통해 급 관심이 생겨 읽게 된 무라카미 하루키, 안자이 미즈마루 콤비의 에세이집. 안자이 미즈마루의 그림들과 함께 두페이지 남짓한 짤막한 에세이가 이어지는 구성입니다.

안자이 미즈마루의 '정성을 다해 대충 그린 그림'은 역시나 최고였고 별거아닌 일상에서 재미와 독특함을 끌어내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재기발랄한 글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좋았던 시절, 풍요롭고 여유로운 80년대를 느낄 수 있다는 점이 좋았어요. "I feel coke" 와 같은 세련된 시티팝, 시티컬쳐 느낌이랄까요?

허나 두 콤비의 결과물이 모여 더 나아졌냐면 그건 아닙니다. 그림과 글이 하나로 묶이지않기 때문이에요. 그림과 글이 아예 구분되어 있거든요. 원래 잡지에 연재되었던 기획물이라고 하는데 확실히 큰 판형에 이미지를 통으로 상단에 배치하고, 하단에 짤막한 글이 붙는 편집으로 구성되는게 훨씬 좋았을 것 같습니다.
또 책 판형에 맞추느라 그림이 하나의 온전한 형태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단점이 너무 크네요. 가로로 긴 그림이 양쪽 페이지로 나뉘어 가운데가 접혀버리는데 이거 참... 아쉬울 따름입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재미도 있고 마음에도 들지만 안자이 미즈마루의 화집으로는 앞서의 이유로 함량미달임이기에 감점합니다.

2015/06/23

추리소설 700번째 리뷰 등록!


추리소설 600번째 리뷰 등록!

2003년 첫 리뷰 <구석의 노인 사건집> 에서부터 시작한 추리소설 리뷰가 2015년 6월 23일 오늘 <다섯 마리 아기 돼지>로 700번째가 되었습니다. 2013년 7월 13일 <점과 선>이 600번째 리뷰였죠. 그로부터는 약 23개월 (10일), 한달에 4~5권 정도 읽는 페이스라는 것은 이전과 동일합니다. 블로그 제목대로 1,000권 읽기까지는 70개월, 6년 정도 남았군요.

어쨌거나 700권째 리뷰를 쓰는 동안 누추하고 마이너한 제 블로그를 찾아주신 많은 분들께 다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자주 찾아주시길.
아울러 그림은 예전 EST님이 보내주셨던 <블로그 6주년 축전>을 이용한 것인데 EST님께 특히나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다섯 마리 아기 돼지 - 애거스 크리스티 / 원은주 : 별점 2.5점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42 (완전판) - 6점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원은주 옮김/황금가지

포와로를 찾아온 미모의 여성 칼라. 그녀는 16년 전 자신의 어머니가 아버지를 독살한 사건의 진상을 밝혀줄 것을 의뢰하는데...

오랫만에 읽은 여사님 장편입니다. "애거서 크리스티 에디터스 초이스 10"에 선정된 작품이죠. 에디터가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가디언지 선정 베스트에도 포함되어 있고 판매량에서도 10위 안에 드는 작품이더군요. 여태 읽어보지 않은 미숙함을 탓하며 읽기 시작했습니다.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다섯 마리 아기 돼지라는 마더 구즈 동요를 작품에 깊이 개입시켜 전개한다는 점으로, 주요 증인 다섯명을 동요 속 다섯 마리 아기 돼지와 캐릭터를 일체화시키고 있죠. 시장에 간 돼지는 돈을 밝히는 속물 필립 블레이크, 집에 머무른 돼지는 소심하고 영향력없는 메러디스 블레이크, 로스트비프를 먹은 돼지는 천박하고 화려한 레이디 디티셤 (엘사 그리어), 아무것도 먹지 못한 돼지는 검소하지만 날카로운 세실리아 윌리엄스, '꿀꿀꿀' 운 돼지는 말괄량이 안젤라 워런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억지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캐릭터를 만들어 나가는 덕분에 작품이 적절한 분량으로 마무리 된 것 같아요. 지금은 500페이지를 넘어가는 장편이 흔하디 흔한데 이렇게 정교하고 복잡한 작품을 단 350페이지 내로 마무리한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죠. 긴 분량을 자랑하는 작품들 대부분 디테일한 묘사에 치중하는 분량이 상당하다는 것을 돌이켜 보면, 트릭이 중심인 고전 황금기 걸작은 아무래도 트릭을 제외하고는 조금 얄팍할 수도 있겠다 싶지만 마더 구즈 동요를 활용하여 짤막하지만 효과적으로 캐릭터를 구체화시킨 것은 역시나 거장다웠습니다.

추리적으로도 고전 황금기 작품답습니다. 16년 전 벌어졌던 사건의 진상을 파헤친다는 설정 탓에 포와로가 변호사와 경찰 등 사건 관계자는 물론 당시 사건 현장에 있었던 다섯명을 찾아다니면서 증언을 듣는 등 발로 뛰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안락의자 탐정물 형태와 유사합니다. 그래서 독자도 공정하게 정보를 제공받고, 공정한 두뇌 싸움을 벌일 수 있습니다. 당연히 저는 신경쓰지 못한 정말 사소한 증언, 단서를 가지고 진상을 깨우치는 포와로에게 또 패배했습니다만 고전 황금기 작품의 최대 매력인 두뇌 싸움은 항상 즐거운 법이죠. 진상과 동기 모두 합리적인 것은 물론이고요.
이 작품처럼 각자의 증언이 미묘하게 다르고, 여기서 진상을 찾아낸다는 설정과 전개를 가진 작품은 제법 되지만 - 대표적으로 <라쇼몽> - 이 작품은 약간의 차이만 있을 뿐 일관된 방향으로 증인들이 증언하고 있고 딱 한명만 거짓을 말한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는 것도 좋았습니다.

그러나 기대에 미치지 못한 점도 분명 있습니다. 일단 열페이지도 안되는 분량으로 진상을 모두 설명하고 마무리 짓는 결말은 좀 당황스럽더군요. 너무 급작스러웠어요. 진상은 알겠지만 그래서 어쩌라고? 라는 느낌이었달까요.
그리고 재판 과정에서 분명한 모순이 있습니다. 캐롤라인이 안젤라가 범인이라고 오해했다 하더라도, 엘사 그리어가 그림만 완성되면 내쫓길 것이라는 것을 왜 변호사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은 것일까요? 증인이 없다 하더라도 충분히 먹힐 수 잇는 전략일 뿐더러 짐을 싸서 내쫓을 것이라는 말은 블레이크 형제가 듣기도 했고, 어차피 손해볼 건 아무것도 없었잖아요. 경찰 수사를 통해서도 엘사 그리어가 진범임을 알아내기는 쉽지 않았겠지만 아끼는 동생은 물론 다섯살밖에 안되는 어린 아이가 고아가 될 수도 있는데 쓸 수 있는 카드는 모두 써 봤어야 하지 않을까요? 저는 납득이 잘 되지 않네요.
또 단점이라고 하기는 어려운데, 마더 구즈 동요를 주요 소재로 삼은 것은 좋지만 국내에서는 아무래도 친숙하지가 않다보니 잘 와닿지 않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사실 이 책이 700번째 추리소설 리뷰 글입니다. 그래도 나름 기념할만한 리뷰 도서인데 여사님 작품 정도는 읽어 줘야 할 것 같아 의도적으로 고르기도 했습니다. 별 네개 이상의 걸작이기를 바라는 마음도 없잖아 있었고요. 허나 제가 납득되지 않는 모순 탓에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군요.

2015/06/22

13.67 - 찬호께이 / 강초아 : 별점 3점

13.67 - 6점
찬호께이 지음, 강초아 옮김/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100여페이지 정도 분량의 중단편 6편이 수록된 연작 중단편집. 제목의 13.67은 2013년에서 시작하여 1967년까지를 거슬러 올라가는 시대적 배경을 의미하고 있죠. 탐정역의 관전둬가 전편에 등장할 뿐더러, 뤄 샤오밍이나 탕 아저씨, 범죄자 스씨 형제 등 등장인물들이 여러개의 작품에 등장하는 등 연작, 시리즈 느낌이 강합니다.

책의 가장 큰 특징은 국내에서 보기 힘든 중국 추리소설이라는 점인데, 단지 이색적이기만 한게 아니라 추리적으로 일정 수준 이상이라는 것에 놀랐습니다. 중국 추리소설 수준도 정말 높구나 싶어 감탄이 절로 나오더라고요. 탐정역인 '천리안' 관전둬의 뛰어난 추리력과 사소해보이던 단서들의 조합으로 진상이 밝혀지는 정교하게 짜여진 이야기 구성도 좋지만, 진상이 놀랍기 때문에 흡사 반전 스릴러를 읽는 듯한 짜릿함을 선사해준다는 것이 아주 마음에 들었습니다.
중국 작가가 쓴 중국 추리소설이기에 선보이는 중국 - 홍콩에 대한 디테일한 묘사도 볼거리에요. 특이한 계급명과 CIB를 비롯한 중안조, 반흑조, 특별 직무대, 비호대와 같은 다양한 부서명에 1호 (경찰 최고위인 경무청장의 속칭), 장작 (제복 문양)같은 중국 - 홍콩 경찰 관련 용어 및 은어들, 탁가, 고혹자, 파파라치, 다취안 (중국 대륙에서 건너온 범죄자), 도사 (마약중독자), 일루일봉 (홍콩 특유의 매춘업소) 과 같은 범죄 관련 은어, 호루라기를 분다 (동원 가능한 인력과 물자를 총동원한다)나 책에 들어간다 (감옥에 간다), 저수지를 경비한다 (한직으로 밀려난다)와 같은 홍콩 속어, 은어로 탄산수를 "네덜란드 음료수"라고 부른다거나 광둥어로 농땡이부리는 사람을 사왕이라고 한다는 등의 묘사가 그러합니다.
실존하는 맥퍼슨 스타디움, 퀸 메리 병원, 프린스 에드워드 서로, 퉁초이가 (여인가) 등 몽콕의 거리, 그레이엄가 시장, 카오룽 거리와 같은 이국적 풍광 역시 가득하고요.

그러나 아쉬운 점도 분명 있습니다. 일단 탐정인 관전둬의 캐릭터가 큰 매력이 없다는 점이 그러해요. "천리안" 이라고 불릴 정도로 유능한 경찰로 한번 본 것은 절대로 잊지 않고, 발자국만 봐도 범인이 누군지 알아낸다는 천재이지만 사생활에서는 구두쇠 수준으로 알뜰하고 정리정돈을 잘 못한다 라는 식으로 캐릭터를 부여하기 위한 묘사는 제법 되기는 하나 특별히 와 닿지도 않고, 내용과 잘 어울리는 것 같지 않았거든요.
또 몇몇 이야기는 너무 작위적으로 짜여져 있기도 합니다. <죄수의 도의> 편이 대표적이죠.

허나 단점은 사소할 뿐, 부담되는 분량임에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여러모로 자극도 많이 되었고요. 전체 평균한 별점은 3점입니다. 새로운 추리 소설을 읽기 원하는 모든 분들께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저와같이 80~90년대 홍콩영화 최 전성기 팬이시라면 더 즐겁게 감상하실 수 있을 것 같네요.

책 소갯글을 보니 영화가 나온다고 하는데 꼭 보고 싶어집니다.

작품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스포일러 가득하니 읽으시기 전 참고하시길...

<흑과 백 사이의 진실>
펑하이 그룹의 총수 위안원빈 살인사건 해결을 위해 담당인 뤄 독찰이 선택한 방법은 자신의 사부 관전뒤의 병실로 사건 관계자들을 소집하는 것. 이유는 관전둬가 사건해결 100%를 자랑하는 명탐정이지만 간암말기로 혼수상태에 빠졌기 때문으로 병원에서 뇌파를 읽는 특수한 장비를 이용하여 관계자들에게 사건에 대해 듣고 그 자리에서 추리를 통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함이다.
관전둬의 추리를 통해 단순 강도사건인줄 알았던 사건이 위씨 가문 내부인의 소행이라는 것, 그리고 사건 현장에 남겨진 증거들 - 테이프, 다이잉 메시지가 없는 이유, 흉기인 작살에 대한 이상한 사실 등 - 을 통해 아들 위용렌이 범인임이 밝혀진다.

그러나 뤄 독찰은 위용렌 뒤에 고용인 탕 아저씨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그를 체포한다. 탕은 경찰서로 이동하는 자동차 안에서 가설임을 전제로 사건의 진짜 동기와 위용렌을 조종한 방법 등을 낱낱이 밝힌다. 그를 옭아맬 증거는 전혀 없는 상태. 그러나 뤄 독찰은 탕이 관전둬를 살해하는 현장을 촬영하여 그를 관줜둬 살해범으로 체포하게 된다.

2013년을 무대로 한 첫 이야기. 그동안은 링컨 라임안락의자 탐정의 최고봉이라 생각했는데 그를 뛰어넘는 존재가 나왔습니다! 이제는 아예 혼수상태에 빠진 환자가 탐정이거든요.
여튼, 이러한 설정은 좀 작위적이고 웃기지만 추리의 흐름은 괜찮습니다. 바닥이 어질러져있지만 침입한 흔적은 없다는 단순한 사실로 용의자를 특정하는 초반부, 위씨 가문의 무남독녀 위첸러우에 관련된 어두운 과거가 드러나는 중반부, 테이프와 작살총, 다이잉메시지가 없는 상황 등을 통해 범인을 확정하는 후반부까지 모두 합리적으로 전개되기 때문입니다. 안락의자 탐정물이기에 독자에게 제공되는 정보도 공정한 편이고요.
무엇보다도 탕 아저씨가 진정한 흑막이며 사건의 핵심 동기가 밝혀지는 마지막 반전이 인상적이었어요. 위용롄의 설득력없는 동기에 비해, 설득력은 물론 드라마까지 갖춘 동기이기 때문입니다. 그가 위용롄을 조종할 수 있었던 이유도 충분히 설명되고요. 아울러 뤄독찰이 모든 것을 꾸민 것이었다는 것도 앞서 말한 작위적인 설정을 잘 포장하고 있어서 꽤 괜찮았어요.

그러나 탕이 관전둬를 살해했다는 것으로 끝나는 결말이 영 아닙니다. 그가 직접 나서서 관전둬를 살해할 이유가 없거든요. 본인 스스로 말했듯 아무런 증거도 없는 상황인데 뭐하러 추가 범행, 그것도 경찰을 살해하는 범행을 저질러 가며 뒷처리를 해야 했을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직접 죽이지 않아도 오늘, 내일 하는 상황이고 그의 추리도 결국 증거를 확보하지 않은 가설이자 추론에 불과할텐데 말이죠.

때문에 감점해서 별점은 2.5점입니다. 마지막 사족만 없었어도 별점 3점이상은 충분했을텐데 좀 아쉽네요.

<죄수의 도의>
잘 나가는 엔터회사 사장이지만 실상은 흑사회 보스인 줘한창을 검거하려는 뤄샤오밍은 실패만 거듭한다. 그러던 중 줘한창 회사에 소속된 신인가수 탕린이 괴한에게 습격당하고 살해당하는 동영상이 배포되는데....

줘한창을 잡아넣기 위해 암흑가 도의를 굳게 지키는 경쟁 조직 보스 런더러의 입을 열게 만든다는 작전이 그려지는 작품.
솔직히 여러모로 이해가 되지 않더군요. 특히 죄수의 딜레마가 내용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 영 모르겠어요. 죄수의 딜레마가 소용이 없는 암흑가 도의가 관련된 특수 상황에 대한 것은 알겠지만 런더러가 입을 여는 것은 아무 상관이 없는데 말이죠. 또 탕린이 사실 줘한창에게 복수를 다짐한 전 정보원의 딸이라는 설정도 지나치게 작위적이었습니다.

과거 가쉽으로 접해보았던, 암흑가가 깊숙이 관련되어 있을 것이라는 홍콩 연예계의 이면을 그린 점은 괜찮았지만 평작 이상의 작품은 아닙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가장 긴 하루>
최고의 지능범인 스번톈의 탈옥 사건과 시장 대상의 무차별 산성액 투척사건이 한꺼번에 벌어진 날, 모든 사건을 꿰뚫어 본 관전둬는 한번에 사건을 해결한다.

스번톈이 저우샹관과 바꿔치기 되어 있다는 진상이 기발했던 작품.
단지 기발한 것에 그치지 않고 이를 밝혀내는 추리의 과정도 합리적으로 그려집니다. 스번톈 탈옥에 징교원이 관련되어 있을 것이라는 추리는 쉽게 할 수 있지만, 작중 등장하는 번호표가 뜯겨진 죄수복, 도로에서 발생한 사고, 산성액 투척 사건이 벌어진 시간과 저우샹관이 선글라스를 끼고 있는 상황과 응급처치에 대한 증언 등 사소한 것 하나하나 모두가 중요한 추리의 근거가 되거든요. 마지막 스번톈과 대면한 관전둬가 그를 옭아매는 장면도 아주 통쾌했어요.
무엇보다도 '인구밀집형 도시가 무대인 탓에 설득력이 생기는' 작품의 대표적인 예라 더 주목할만 합니다. 탈옥 해 봤자 더 큰 감옥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고, 누군가 죽었을 때 누구라도 조그만 의심을 품으면 법망을 벗어나기 쉽지 않다는 홍콩만의 상황을 기본에 깔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홍콩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잘 표현한 작품이랄까요.

결론적으로 별점은 4점. 홍콩 추리문학계의 높은 수준을 짐작케 하는 좋은 작품입니다. 개인적인 이 작품집의 베스트로, 다양한 장소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의 스케일이 큰 만큼 영화화에도 가장 잘 어울릴 것 같은데 영화로도 보고 싶네요.

<테미스의 천칭>
흉악범 스씨 헝제를 체포하기 위해 경찰은 스번성이 머무는 은신처 주위에 잠복한다. 그러나 일당이 도주하려는 낌새를 보이자 잠복 중이던 TT가 이끄는 경찰들이 그들을 체포하려 나서고, 총격전 끝에 범인은 모두 사살하지만 인질이 된 시민이 모두 죽는 참사가 발생한다. 
이후 경찰내 내통자가 있을 것이라는 단서가 발견되고 사건을 지휘하던 가오랑산이 TT를 제거하기 위해 벌인 일이라는 소문이 퍼지는데...
홍콩 영화에서 봤던 악당과의 총격전이 유감없이 펼쳐지는 작품. 봉쇄된 주상복합(?) 건물에서의 활극 묘사는 일품이었어요
추리적으로도 인상적인 부분이 많습니다. TT가 모든 것을 계획한 것이라는 진상도 놀랍지만 동기가 합리적으로 그것을 끌어내는 추론 역시 타당하거든요. 몇몇 사소해보이는 대사에서 단서를 끌어내는 관전둬의 활약이 빛을 발하거든요. 아울러 전작의 스번톈과 필적하는 강적 TT와의 두뇌 싸움도 돋보였습니다. 
무선 발신 시간과 총격전 시간을 조종하는 트릭도 적절하게 사용되고 있고요.

그러나 문제도 명확합니다. 관전둬의 추리에 증거가 없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죠. 때문에 증거를 조작하면서까지 벌이는 관전둬의 협박(?)이 그리 와닿지 않기도 합니다. TT가 총탄이 바꿔치기 당했다고 우겼더라면 어떻게 되었을지 잘 모르겠고요.

그래도 단점은 사소할 뿐 장점이 훨씬 많은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빌려온 공간>
염정공서에 근무하는 영국인 그레이엄 아들 유괴 사건을 다룬 작품으로, 염정공서가 홍콩 경찰의 부정부패를 캐고 있었기에 경찰 조직과의 마찰이 있다는 당시 홍콩의 시대적 배경을 작품 전편에 깔고 있습니다.

그런데 유괴물로만 놓고 보면 정말로 높은 완성도를 자랑합니다. 특히 지금 보아도 흥미진진한 몸값 전달 방법이 그 백미에요. 지폐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금괴로 바꾸라는 지시를 하는 것이라던가, 혹시 모를 탐지기를 무효화하기 위해 수영장 잠수를 지시하는 것 등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작중 시대에 적합했던 수사 현실을 반영한 완전 범죄 계획이라 할 수 있겠죠. 게다가 범인이 몸값 회수에 실패하는 결정적 이유인 주머니의 지퍼 고장 역시 현실적이라 마음에 들었고요. 홍콩에 실존하는 여러가지 공간을 활용하여 현장감이 높다는 것도 큰 장점이라 생각됩니다.

추리적으로도 나쁘지 않아서, 관전둬가 사간의 진상을 깨우치는 모든 단서가 독자에게 공정하게 제공될 뿐더러 나름 반전도 괜찮습니다. 유괴는 조작된 것이었고 실제로는 집 금고를 열고 서류를 훔쳐내는 것이 진짜 목적이었다는 것인데 당시 시대 상황과 맞물린 좋은 동기였다 생각되네요.

허나 경찰이 연류되어 있었다면 더 현실적이고 쉬운 방법이 있지 않을까 싶긴 합니다. 좀 운과 우연에 많이 기댄 계획같거든요. 리즈는 상근 유모이기에 열쇠를 복제할 기회는 찾다보면 분명 있었을텐데 이렇게까지 사건을 키운 것은 쉽사리 납득하기 어려워요. 당시 시대 상황이 그만큼 절박했을 수도 있지만우리와 같은 이국(異國) 독자들은 아무래도 이해하기 힘드니까요.
아울러 관전둬가 직접 서류를 훔쳐낸 뒤 벌이는 공작 역시도 이해는 잘 되지 않더군요. 차라리 유괴 사건이 조작된 것임을 밝히고 주모자를 체포해 나가는게 현실적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래도 유괴 자체는 굉장히 잘 그린 작품이기에 별점은 3점입니다. 

<빌려온 시간>
1967년, 영국 정부와 홍콩인의 충돌 및 좌익 인사들의 테러 등이 벌어지던 시대. 하루하루 근근히 먹고사는 화자인 "나"는 "아칠"이라는 순경과 함께 좌익 테러리스트들의 폭탄 테러를 막기 위한 모험에 뛰어드는데...

1편의 악당인 탕 아저씨가 화자로, 관전둬가 아칠이라는 순경으로 등장하는 작품. 화자인 "나"의 추리력과 활약이 비상해서 이 친구가 관전둬인지 알았는데 좀 의외였습니다.
여튼, "1번"이라는 말 자체에 주목하고 페리선에서 영국인이 타지 않았다는 답변이 1번 차만 페리로 옮기며 운전사는 중국인이었다는 상황 설정이 돋보였던 작품. 당시 홍콩 거리를 차와 오토바이를 활용하여 질주하는 묘사 등에서 스케일 큰 모험 활극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추리적으로는 크게 눈여겨 볼 부분이 없고, 시대 상황에 따른 정치적인 이야기가 많아서 딱히 감흥은 없었던 평작입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2015/06/16

안자이 미즈마루 - 안자이 미즈마루 / 권남희 : 별점 4점

안자이 미즈마루 - 8점 안자이 미즈마루 지음, 권남희 옮김/씨네21북스

무라카미 하루키와 함께 한 책들로 잘 알려진 안자이 미즈마루의 작품집.

안자이 미즈마루라는 일러스트레이터의 대표작은 물론, 만화와 캘리그래피(?), 그림책, 에세이까지 그가 작업했던 다양한 결과물들을 총 망라하여 소개하고 있습니다.
안자이 미즈마루의 그림체를 좋아해서 구입하였는데 책의 퀄리티는 기대에 충분히 값합니다. 특유의 자유분방하면서 대충 그린듯한 일러스트가 한가득 실려있기 때문이죠. 부제 그대로 "마음을 다해 대충 그린 그림" 인데 아.. 저는 이렇게 간단한 그림들이 너무 좋아요. 어떻게 보아도 마음에 드는 그림들이라 그냥 조용히 보기만 해도 뿌둣하더군요. 단순히 년도별 대표작을 모아 놓은 것이 아니라 무라카미 하루키와 함께 한 모든 작업들이라던가, 작가가 스스로 뽑은 베스트워크 30, 그가 그린 다양한 초상화들 등 주제별로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는 것도 깔끔하게 정리된 느낌이라 좋았습니다. 인쇄의 질도 아주 훌륭한 편이고요. 책의 성격은 하나의 완성된 책보다는 도록에 가깝지만 그림만 보아도 좋다는 점에서는 아사오 하루밍의 <오후 3시의 나>와 같은, 성인들을 위한 그림책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그 외 짤막하게 실려있는 안자이 미즈마루의 글들과 관련된 에피소드들도 아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하지만 단점도 없잖아 있습니다. 아니, 단점이라고 하기 보다는 안타까운 점들이죠. 첫번째는 국내에 소개된 작품이 별로 없다는 점입니다. 그가 작업했던 대표작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당연하겠지만 표지와 아주아주 약간의 내용만 소개될 뿐입니다. 그래서 내용도 궁금하고 꼭 읽어보고 싶은데 국내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니 이거 참 안타깝네요. 그리고 조금 조사해보다가 알게 되었는데, 이 책에서 안자이 미즈마루가 유명세를 얻게 된 작품이라고 소개된 무라카미 하루키의 <중국행 슬로보트>의 일러스트가 국내판에는 전혀 다른 그림으로 대체되어 있더군요. 이렇게 국내 소개된 책이더라도 안자이 미즈마루의 그림을 접하기는 또 어렵구나 싶은 것도 역시나 안타까운 일이죠. 덧붙이자면 그나마 소개된 책들도 디자인, 장정이 영 딴판이라 원본의 맛을 전혀 살리지 못하는 것 같더군요.
두번째는 한국어로 출판되면서 생긴 문제들입니다. 일본과의 제책방식의 차이 및 일본어를 모르는 독자를 위한 번역 내용이 그림 주변에 지저분하게 배치되어 있어서 가독성 문제가 생긴 것, 그리고 안자이 미즈마루의 그림같이 대충대충, 하지만 부드러운 손글씨를 활자로 내용을 읽어야 하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점입니다. 이런 점 때문에 안자이 미즈마루의 여러 에세이는 국내에 소개되기 힘들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어서 더더욱 안타까와요!
아울러 책의 비중이 무라카미 하루키와의 컴비 작업에 많이 쏠려 있는 점, 별 관심없는 대담과 인터뷰가 많이 수록되어 있는 점도 개인적으로는 조금 불만스러웠습니다. 나쁘지는 않았지만 안자이 미즈마루의 그림과 글이 더 많았으면 하니까요. 물론 이 책이 안자이 미즈마루가 갑작스럽게 사망한 뒤 추모의 성격으로 만들어진 느낌이 강하기에 주변인들의 회고가 들어가는 것은 어쩔 수 없었을 것 같긴 합니다만...

허나 안타까움과 불만은 사소할 뿐, 별점은 4점입니다. 이런 류의 성인을 위한 그림책을 좋아하는 저에게는 선물과도 같은 책이에요. 가격은 제법 되지만 그만큼의 가치는 충분한 만큼 저와 같은 취향의 모든 분들께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안자이 미즈마루의 그림을 볼 수 있는 <코끼리 공장의 해피엔드>, <해 뜨는 나라의 공장>은 바로 사서 읽어봐야겠네요.

2015/06/15

우리집 - 사이바라 리에코 / 김문광 : 별점 3점

우리집 - 6점 사이바라 리에코 지음, 김문광 옮김/에이케이(AK)
힘들어도 사람은... 하나님이 허락해줄 때까지, 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가지 않으면 안돼. - 고이치

전에 <만화가 상경기>를 읽고 리뷰를 남겼었던, 괴짜로 유명한 작가의 대표작. 그야말로 찢어지게 가난하다는 말이 적합한 세 남매를 중심으로 남매와 여러 주변인물들 - 조폭, 약물중독자, 정신병자, 변태, 창녀들....- 의 이야기가 짤막하게 이어지며 전개되는 작품입니다.

이야기 한편 한편은 <사채꾼 우시지마> 에피소드로 옮겨도 될 만큼 끔찍한데, 이러한 잔인하고 괴로운 밑바닥 인생들의 현실을 동화같은, 흡사 <보노보노>가 연상되는 그림체와 기이한 개그 감각으로 그려내었다는 갭이 가장 큰 특징입니다. 놀랍게도 이 만화는 개그만화거든요!

잔혹한 현실과 귀여운 그림체의 조합은 아사리 요시토오의 잔혹 동화가 연상되기도 하는데, 아사리 요시토오 작품들은 모두 판타지나 SF처럼 현실같지만 현실이 아닌 세계를 무대로 하고 있는 것에 반해 이 작품은 황당할 정도로 비참한 현실을 그리고 있어서 더욱 큰 갭이 느껴집니다. 가난과 폭행, 방치와 무관심이 일상화된 세계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치는 이야기니까요. 마냥 웃고 즐길 수도 없달까요.

그래도 주인공들이 어떤 식으로든 조금씩 성장한다는 점에서는 약간 다행이긴 합니다 누나의 짐이 되지 않으려는 잇타, 폭력의 세계에서 벗어나 어부가 되는 고이치, 빚을 다 갚는데 성공한 누나 등 어떤 식으로든 밑바닥 인생에서 발판을 마련하는 것으로 보이니까요. 결국 가족이 해체되는 결말이기에 해피엔딩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모두 성장한 만큼 미래에는 조금이나마 더 행복해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져볼 수 있겠죠.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3점. 호불호가 갈릴게 뻔하지만 저에게는 진한 여운을 남기는 만화였습니다. 정말 행복이란게 별게 아니구나 싶게 만들기도 하고요. <자학의 시>를 재미있게 보셨다면 추천드립니다. 물론 이 작품은 <자학의 시>의 긍정적 결말과는 다르게 현실은 여전히 시궁창이라는 차이는 존재합니다만....

2015/06/11

신 이야기 - 고다 요시이에 / 안은별 : 별점 2점

신 이야기 - 4점 고다 요시이에 지음, 안은별 옮김/세미콜론

제 인생 All time best를 꼽을 때 빠지지 않을 <자학의 시>의 작가 고다 요시이에가 2008년~2010년에 연재했던 작품입니다.

우주를 창조한 조물주가 별다른 능력없이 노숙자처럼 거리에 머물고, 머리카락이 하나밖에 남아 있지 않아 주변에서 "하나님"이라고 불리우며 여러 사람들과 얽히는 내용이 에피소드별로 펼쳐집니다. 그를 알아보고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에서 시작해서, 노숙자 장기 고수와의 시합, 그를 성자로 알아본 사업가에 의해 시험에 들게 된다던가 바닷가 여행가서 헌팅까지 해 보는 등 다양한 이야기가 등장하죠.

장점이라면 정말로 가진 능력이 없지만 어린아이같은 천진함, 그리고 신다운 "용서"로 무장해서 읽는 사람을 훈훈하게 만든다는 점입니다. 정말로 이런 사람들이 많다면 세상은 따뜻하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에요. 힘들고 모진 세상이지만 세상은 참 살만한 곳, 아름다운 곳이며 행복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자학의 시>를 그린 작가답다고나 할까요? 어린 딸이 조금만 크면 한번 읽혀도 되겠다 싶은 그런 이야기들이었어요.

그러나 단점도 명확합니다. 가장 큰 단점은 별 재미가 없다는 것이죠... 별로 웃기지도 않을 뿐더러 잔잔함의 도가 지나치거든요. 주제가 딱히 재미있을 수 없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에피소드별로 웃음이나 울음 중 하나는 터트려 주었어야 하는데 말이죠. 마지막에 지구 파괴를 하기 위한 투표가 등장하는 부분은 생뚱맞아 보였고요. 이런 설정을 넣으려면 고우카 윤의 <지구인 (Earthian)> 수준의 이야기는 필요하지 않았나 싶거든요.

그래서 결론적으로 별점은 2점. 모나지 않은 좋은 작품이기는 한데 가격과 분량을 생각하면 추천하기는 어렵네요.

덧 : 알라딘 장르구분이 SF로 되어 있네요. <세인트 영맨>과 다를게 없는 컨셉이라 명랑만화에 가까운거 아닌가 싶은데...

2015/06/10

2차 대전 독일의 비밀무기 - 로저 포드 / 김홍래 : 별점 1.5점

2차 대전 독일의 비밀무기 - 4점 로저 포드 지음, 김홍래 옮김/플래닛미디어

제목 그대로 2차 대전에서 사용된 독일의 최첨단 무기들을 다룬 책. 출간된지는 제법 되었지만 비싼 가격 때문에 살까 말까 고민하던게 수개월. 큰맘먹고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굉장히 실망스럽네요. 전혀 기대에 미치지 못했어요!

일단 정말 황당무계한, 상상 속에서만 존재할 무기들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는 책이라 생각했는데 기대했던 비밀무기는 거의 등장하지 않습니다. 실전에 투입되었던 무기를 비밀무기라고 하는건 무리가 있죠. 정말 기획안, 테스트 기기로만 존재하는 제품이라면 모를까.

그나마 좀 재미있게라도 썼으면 괜찮았을텐데 재미도 너무 없어요. 그냥 무기에 대한 전문서같이 서술되어 있기 때문이죠. 밀리터리 매니아라면 혹할 수도 있겠지만 평범한 수준의 전쟁. 무기 애호가에게는 어렵고 불필요한 정보가 대부분이에요. 예를 들면 '잠정적인 해법인 주익 앞전은 뒤로 후퇴하는 형태를 취하되, 뒷전은 직선을 유지하는 가변적 익현을 만드는 것이었다'는 식의 묘사죠. 주익 앞전을 뒤로 후퇴하게 하는 것이 뭔지에 대한 설명이 전혀 없으니 이건 뭐 어떻게 이해하라는건지 짐작도 되지 않습니다.
또 도판이 많다고 홍보하고 있고 실제로도 많으나 적절하게 실려있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에요. 앞서 말씀드린 주익 앞전이 뭔지 같은 것에 대한 그림 설명은 커녕 본문에서 언급된 주요 기체들의 도판이 없다던가 - 포케-불프 Ta 183, 메서슈미트 P.1101 등등등... - 아니면 본문에서는 설명하고 있는 것과 다른 무기의 도판이 실려있는 식으로 - 대표적인 것은 게래트 041을 설명하는 페이지에 실려있는 도판은 게레트 040 인 것 - 외려 혼란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것에 비하면 동일 무기의 코드네임을 본문에서 혼용하여 혼란을 가져다 준다던가, 미터법과 피트 / 인치를 혼용하여 혼란을 가져다 주는 정도의 실수는 애교라고 보여질 정도에요.
아울러 새로운 내용이 많지 않다는 것도 문제에요. 세계 최초의 제트 전투기라던가, V2와 같은 로켓 무기, 거대전차 마우스 등은 인터넷을 조금만 뒤져도 나오는 것들이죠. 예전에 방송된 다큐멘터리에서 보기도 했고요.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1.5점. 네이버캐스트 남도현의 '무기의 세계', 아니면 '유용원의 군사세계'와 같은 인터넷 자료와 비교해도 크게 우위에 있는 컨텐츠는 아닙니다. 동일한 주제를 다루어 직접 비교대상이 되는 기간트 수송기, 열차포, 칼 자주박격포 모두 '무기의 세계' 쪽이 내용도 깔끔하고 해당 무기의 유래와 활약, 결과까지 알러주어 더욱 만족스러웠습니다. 도판도 큰 차이는 없고, 무엇보다 공짜니까요
25,000원이 넘는 가격을 생각하면 1점을 줘도 시원치 않지만, 그래도 미사일 관련 이야기나 잠수함 관련 이야기 등 그런대로 재미있으면서도 새롭게 알게 된 사실도 없잖아 있기에 0.5점 덧붙입니다.

2015/06/08

명당은 마음속에 있다 2 - 최창조 / 김진태 : 별점 2점

명당은 마음속에 있다 2 - 4점 최창조 지음, 김진태 만화/고릴라박스(비룡소)

명당은 마음속에 있다 - 최창조 / 김진태 : 별점 3점

1권에 이은 2권. 1권과 마찬가지로 최창조 선생의 풍수지리학을 김진태씨가 만화로 옮긴 작품입니다. 목차는 아래와 같습니다.

1화 나쁜 땅은 없다!
상식 이야기 풍수 ① 자생 풍수의 창시자, 도선 국사
풍수 Q&A ① 우리나라 풍수의 역사는?
2화 자연의 기氣를 얻어라!
상식 이야기 풍수 ② 음향오행과 풍수
풍수 Q&A ② 기氣란 무엇일까?
3화 용龍을 잡아라!
상식 이야기 풍수 ③ 현대인을 위한 도시 풍수
풍수 Q&A ③ 지관들이 사용하는 나경이란?
4화 제대로 집을 짓는 법
상식 이야기 풍수 ④ 외국에서 인기 만점, 인테리어 풍수
풍수 Q&A ④ 조상들이 지명地名으로 예언을 했다는데? 

1권과 비교했을 때 가장 큰 특징은 과거의 이론에서 머무르지 않고 현대 도시와 집에 적용할 수 있는 여러가지 방법을 소개해준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 고래의 풍수 중 "간룡법"은 백두대간이 지기를 공급한다는 이론인데, 도시는 도로와 철도로 맥이 끊겼으니 "간선도로"를 대안으로 삼자는 식이죠. 높은 빌딩은 산을 대신하는 것이고요. 여기서 더 나아가 뒷부분에는 실제 미국 등에서 유행한다는 "인테리어 풍수"까지 알려줍니다.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꽤 그럴듯해서 앞으로 이사를 하게 되면 방의 배치 같은 것에 신경을 좀 써볼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1권과 마찬가지로 수박 겉핥기 식으로 간단한 정보만 제공해서 깊이있는 정보를 얻기 무리라는 것은 좀 아쉽네요. 입문용으로 간단한 이론만 전해줄 뿐이죠. 하지만 책의 취지가 "만화로 보는 알기쉬운 풍수"이니만큼 당연하다면 당연한 것일테고, 단점이라고 보기도 어렵긴 합니다. 오히려 진짜 단점은 김진태씨의 만화가 재미 없다는 것입니다. 득수 - 수지 컴비가 집을 알아보러 다니는 과정을 통해 여러가지 현대에 접목한 풍수 이론을 간단하게 설명해 주는 정도는 괜찮았지만 다른 내용 거의 대부분은 득수 아버지나 최창조 선생의 입을 빌어 지루한 풍수 이론을 그림으로 설명해주는 것에 불과합니다. 이럴거라면 최창조 선생의 책에 삽화를 그린것과 별다를게 없지 않나 싶어요. 1권에서 꽤 재미있게 읽었던 상식 이야기, Q&A도 별로였고 말이죠.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풍수에 대한 관심이 없지는 않았지만 기대했던 것은 김진태의 만화였는데 이래서야 점수를 줄 수 없죠. 다음권을 구입해야 할지 심히 고민됩니다.

덧붙이자면 "나경" 사용법에 대해 짤막하게 소개해주고 있는데 스마트폰용 App으로 만들어도 괜찮겠다 싶더군요. 전문가의 도움 없이도 방위에 따른 해석은 정확한 GPS의 도움만 받아도 충분하지 않을까요?

2015/06/05

관 - 아르노 슈트로벨 / 전은경 : 별점 2.5점

- 6점
아르노 슈트로벨 지음, 전은경 옮김/북로드

<하기 리뷰에는 반전, 진상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관에 갇히는 악몽을 꾸고 나서 실제로 몸에 상처가 있는 것을 발견한 에바 로스바흐. 그날 그녀의 이복동생인 잉에가 관속에 갇혀 생매장당해 죽은 시체로 발견된다. 
한편 사건을 지휘하게 된 쾰른 강력계 베른트 멩호프 경감은 본인 가정사, 그리고 자신을 싫어하는 동료들 등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파트너 유타 경위와 사건을 수사해 나가는데....

독일산 심리 스릴러. 보통 유럽 추리소설을 잘 읽지 않는데 국내 최고의 추리문학 동호회 하우미스터리의 이벤트에 당첨되어 읽게된 책입니다. 리뷰 전 먼저 이 자리를 빌어 관계자 분들께 감사 인사 전해드립니다.

그동안 유럽 추리소설에 대해서는 어렵고 무겁다라는 선입견이 있었는데 최근에는 그러한 경향이 많이 사라진 것 같습니다. 요 네스뵈가 그러한 선입견을 깨 준 대표적인 작가고요. 이 작품 역시 최근 인기작답게 유럽, 독일산이라는 느낌보다는 전형적인 헐리우드 스릴러 느낌이 강한 작품입니다.

장점이라면 "산 채로 관에 갇히는" 상황을 그린 흥미로운 설정으로 독자를 매료시키는 맛, 빠른 전개, 무엇보다도 한번 읽기 시작하면 손에서 놓기 힘든 재미있는 작품이라는 점입니다. 아울러 반전도 그럴듯합니다. 브리타가 에바와 동일인물이라는 깜짝 반전에 더해 살아있는줄 알았던 마누엘마저 에바의 또다른 인격이었다는 반전인데, 에바 - 브리타 시점 변화를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일종의 서술트릭이라고 볼 수도 있겠네요.
관 속에 갇힌 느낌, 범행에 대한 묘사, 마지막 납치된 에바가 갇힌 곳에 대한 묘사 등 묘사도 생생해서 읽는 더욱 몰입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CSI의 <생매장> 에피소드 저리가라 할 정도로 박진감이 넘치거든요. 공포에 사로잡힌 심리묘사 역시 제대로고요.

그러나 아주 잘 짜여진 이야기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사건이 밝혀지게 되는 이유가 우연에 의한 점이 그러합니다. 베른트 경감의 수사는 마누엘 생존설로 흐르는 방향으로 향했기에 진상을 알아내려면 오래 걸렸을테죠. 그러나 마침 정신과 의사인 라이엔베르크 박사가 죽지 않고 살아난 것 때문에, 그리고 대거라는 파티셰가 에바와 브리타가 동일인물이라는 것을 증언함으로써 진상을 알아내게 되는 것인데 이 모든 것은 우연에 불과하거든요.
또한 반전 역시 앞서 말씀드린대로 서술트릭처럼 시점 변화에 기반을 두고 있는데, 범인이 노골적으로 남자라고 지칭되며 내용에서도 의도적으로 마누엘 생존을 강하게 언급해서 독자를 혼란에 빠트리는건 반칙이었다 생각됩니다. 최소한 범인의 성별은 숨겼어야 하지 않을까요? 술집에서 여자를 낚아챈 것은 피해자가 레즈비언이었다는 설명으로 충분하지만 이런 점에서 아쉬움이 남네요. 참고로, 반전도 비록 저는 예상치 못했지만 영화 <아이덴티티>와 흡사해서 좀 뻔하다 생각하실 분도 있을 것 같군요.

사건의 핵심인 다중인격도 문제가 많습니다. 일단 에바가 브리타라는 다른 인격으로 삶을 영위한 이유를 모르겠어요. 다중인격이라고 해도 삶 자체를 다르게 사는 경우는 들어본 적이 없는데 말이죠. 외르크 빕킹이 흑화한 에바를 (남자로 오해했지만) 목격하고, 대거라는 파티셰가 에바 - 브리타를 모두 목격했기 때문에 정체가 드러나는 것은 순식간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고요. 무엇보다도 부유한 사업가와 재혼한 새어머니가 아이들을 학대한 이유가 설명되지 않는 점은 가장 큰 문제입니다. 이 모든 사건의 원흉이 새어머니의 학대에서 비롯된 것인데, 전처 딸을 아동 성매매시키고, 작은 상자에 넣는 등의 학대를 자행한 이유가 무엇인지, 전처 딸이야 그렇다쳐도 자신의 친아들마저 학대하고 죽인 이유가 무엇이었을지 설명되지 않으니 원인없는 결과만 있는 꼴이잖아요? 원인은 없지만 아동 성매매는 "돈"이 목적인 것처럼 보이기에 피해자 브리타를 부유한 가문의 딸인 에바와 연결하기 어렵죠. 이런 점에서 반전을 위한 반칙 수단으로 사용된게 아닌가 생각되기도 합니다.

그 외의 소소한 디테일들도 약간의 문제들이 있습니다. 에바의 아버지가 집 안에 도피처를 만들어 놓았다는 대사를 복선으로 이용한 것은 나쁘지 않았지만 경찰이 집 안을 수색했는데 불구하고 그것을 간과한 것, 베른트 경감을 싫어하던 우도가 급작스럽게 마음을 돌리고 화해하는 상황 등이 석연치 않았습니다. 베른트 경감의 조금 부족한 자제력에 대한 묘사도 딱히 필요했던 것으로 보이지 않고요.

그래도 기본적인 재미만큼은 충분한 스릴러물임에는 분명합니다. 이래저래 단점만 쭉 나열한 꼴인데 킬링타임용으로는 최고에요. 요 네스뵈도 그렇고, 요새 북유럽 쪽 신예 작가들 작품이 괜찮네요. 별점은 2.5점입니다.

2015/06/03

에도 명탐정 사건기록부 - 오카모토 기도.노무라 고도.히사오 주란 / 김혜인.고경옥.부윤아 : 별점 2.5점

에도 명탐정 사건기록부 - 6점
오카모토 기도.노무라 고도.히사오 주란 지음, 김혜인.고경옥.부윤아 옮김/엔트리

20세기 초반, 주로 1930년대 발표된 에도물 단편 모음집. 노무라 고도의 제니가타 헤이지, 오카모토 기도의 한시치, 히사오 주란의 센바 아코주로 시리즈 단편이 각 세편씩 수록되어 있습니다. 목차는 아래와 같습니다.

  • <제니가타 헤이지 체포록>
  • 금빛 여인
  • 은비녀의 저주
  • 일곱 명의 신부

  • <한시치 체포록>
  • 간페이의 죽음
  • 봄눈 녹을 무렵
  • 고양이 소동

  • <아고주로 체포록>
  • 버림받은 구보
  • 유배선
  • 고양이 눈의 남자

읽기 전에는 오래된 작품이기도 하고 마치부교, 요리키, 도신, 오캇피키 등 잘 모르는 일본 고어가 난무하는 등 우리와는 거리가 먼 일본의 에도 시대가 배경이이기에 큰 재미를 느끼기 힘들 것이라 예상했었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아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흥미로운 사건들이 등장하고, 이를 주인공들이 활약해서 해결하는 추리물이자 모험물적인 성격이 강한 작품들이니 재미가 없을래야 없을 수가 없겠죠.
또 개성강한 주인공들도 인상적입니다. 각 작품별로 명확하게 특징이 구분되기도 하는데, 제니가타 헤이지는 주로 발로 뛰는 행동형 액션 히어로에 가까우며 한시치는 조용하지만 강한, 우직한 노송같은 이미지고 아고주로는 난봉꾼에 되는대로 사는 호걸 캐릭터거든요. 이러한 재미와 캐릭터를 놓고 보면 당대의 인기는 물론 지금까지 명맥이 유지되는게 당연하다 싶더군요.

그래서 전체 별점은 2.5점. 조금 낡긴 했고 우리 정서에 잘 안 맞을 수도 있지만 독특한 추리물, 모험물로 충분히 읽을만한, 가치있는 작품들이었어요. 에도물을 좋아하신다면 놓치지 않으시기 바랍니다. 조금 성향은 다르지만 미야베 미유키의 에도물도 그렇고, 예전에 읽었던 마노스케 이야기도 그렇고, 에도물은 항상 기본은 해 주는 것 같네요.

각 시리즈별로 조금 자세하게 리뷰한다면,
우선 제니가타 헤이지 시리즈는 루팡 3세의 숙적 이름으로 잘 알고는 있었지만 실제로 읽어본 것은 처음이네요.
앞서 말씀드린대로 액션 히어로에 가까운 열혈 청년이라 추리적으로 특기할 부분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쇼군에게 복수를 하기 위한 어약원 본초가의 음모에 이상한 종교 의식이 얽힌다던가, 미녀들이 연이어 눈에 은비녀가 꽂힌 시체로 발견된다던가, 혼례를 치루던 신부 일곱명이 납치되는 이야기들이라 모험물적인 성격과 스케일은 가장 커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어요. 등장인물, 특히 제니가타의 정인 오시이가 엄청난 미녀로 묘사되고 제니가타의 동전 던지기가 대단한 비술로 그려지는 등의 볼거리 역시 화려하고요.
추리적으로는 별거 없더라도 <은비녀의 저주>에서 처음 죽은 게이샤가 만자부로의 하오리에서 떨어진 히모를 쥐고 있었기 때문에 만자부로가 범인이라는 주장을 논리적으로 반박하는 장면 등 괜찮은 부분도 제법 있는 편입니다. 평균 별점은 2.5점 정도.

<한시치 체포록>은 단편집을 읽어본 적은 있습니다. 다행히 수록 작품이 겹치지 않는군요.
유명세에 걸맞게 완성도는 세가지 시리즈 중에서 가장 높습니다. 추리적으로도 볼만할 뿐만 아니라, 인간관계로 인해 범죄가 발생하는 드라마가 잘 짜여져 있거든요.
이 중 개인적으로는 <봄눈 녹을 무렵>이 마음에 들더군요.  맹인 안마사 도쿠주가 안마를 거부한 이유가 결말 부분에서 설명되는 것아 아주 괜찮았기 때문이에요. 에도물에 딱 맞는 설정인데 정말이지 생각도 못했네요. 이 작품만큼은 별점 3점은 충분하죠. 하지만 다른 작품들 두편은 평범합니다. 때문에 전체 평균 별점은 역시나 2.5점.

마지막 아코주로 시리즈는 처음 알게된 작품인데, 일단 <우주해적 코브라> 느낌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주인공이 호걸이자 해결사이며 약간 안티 히어로로 등장한다는 점, 그리고 전체적으로 유머러스하게 이야기가 전개된다는 점 때문입니다. 모든 이야기에서 일종의 트릭이 등장한다는 점에서는 가장 추리물에 가까운 작품이라고 할 수 있고요. 이래저래 이색적이네요.
첫번째 작품인 <버림받은 구보>는 시리즈의 도입부 성격이 강해서 눈여겨 볼 부분이 많지는 않지만 귀중한 상자 메야스바코를 훔쳐내기 위한 담대한 심리 트릭이 돋보입니다. 백주대낮에 당당하게 상자를 훔치고 도둑을 쫓는 모습을 가장하여 도주한다는 것인데 시대와 딱 들어맞는 괜찮은 트릭이었습니다.
<유배선>은 "마리 셀레스트호" 사건에서 따온 듯한 에도시대 유배선의 승무원들 실종사건을 그린 작품입니다. 정말 발상의 전환이 대단한, 기발한 작품이에요. 정말이지 이 사건이 에도물로 변주가 가능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뿐더러, "방금 전 까지 밥을 짓고 있었던" 상황을 트릭으로 이용한 점이 아주 기가 막히거든요. 이 트릭이 신겐에게서 따온 것이라는 마지막 대사에서는 무릎을 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희대의 미스터리를 잘 짜여진 에도물로 리메이크한 솜씨도 발군이지만 실제 일본 역사 속 이야기를 트릭으로 잘 활용한 솜씨도 인상적이라 이 작품집에서 베스트로 꼽고 싶습니다. 덧붙이자면 아고주로의 활약도 대단합니다. 상가집에서 진상을 깨우치고, 편지를 어디서 받았는지에 대한 증언 하나만으로 실종자가 어디에 있는지 추리해 내는 방식은 셜록 홈즈의 방식과 똑같더군요.
<고양이 눈의 남자>는 깜깜한 어둠 속에서 벌어진 일가족 참살 사건을 그린 작품으로 오징어를 이용한 트릭은 나쁘지는 않지만, 범인과 동기도 뻔하고 비약이 심해서 다른 작품들에 비하면 좀 처지는 범작이었습니다.

2015/06/01

브랫 패러의 비밀 - 조세핀 테이 / 권영주 : 별점 2.5점

브랫 패러의 비밀 - 6점 조세핀 테이 지음, 권영주 옮김/검은숲

<아래 리뷰에는 진상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지방 명문가 애시비가의 맏아들 패트릭이 자살을 암시하는 유서를 남기고 사라진지 8년 후, 그의 쌍둥이 동생 '사이먼'의 성년식을 앞둔 어느날 패트릭이 다시 나타난다. 그러나 그는 패트릭이 아니라 우연히 애시비가의 지인을 만난 뒤 패트릭으로 행세하여 유산을 상속받는 사기에 뛰어든 고아 출신의 브랫 패러였다.
사이먼과 꼭 닮은 외모에 더해 완벽한 교육으로 주변 모든 인물들에게 패트릭으로 인정받는데 성공하나 단 한명, 사이먼만 그가 패트릭이 아니라는 것을 간파하는데.....

  <진리는 시간의 딸>, <프랜차이즈 저택 사건> 등 추리 역사에 길이 남을 작품들을 발표한 조세핀 테이 여사가 1949년 발표한 장편 소설.

그러나 예상 외로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일단 추리적으로 특기할만한 부분이 없기 때문이에요. 특히나 제일 중요한 패트릭 죽음의 진상은 처음 보자마자 쉽게 알 수 있었습니다. 너무 비슷한 작품을 많이 읽은 탓일 수도 있겠지만... 패트릭이 8년만에 나타난 뒤, 모든 사람들이 그가 진짜 패트릭이라고 인정하나 사이먼만큼은 절대로 인정하지 않았고 오히려 보자마자 (가짜임을 알면서도) 안도했다는 것의 진상은 무엇이겠어요? 당연히 사이먼이 패트릭을 죽였다는 것 밖에는 없죠.
사이먼의 범죄에 딱히 대단한 트릭이 없다는 것도 아쉬운 점이에요, 수색하는 척 하고 유언장을 가져다 놓은 것이 전부라면 좀 허무하죠. 형과 쌍동이였다는 설정을 좀 더 효과적으로 이용했었어야 할텐데 그다지 비중있게 등장하지 않는 것도 이해하기 어려웠어요
아울러 설정면에서도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도 단점이에요. 8년전 사건 발생 당시 수색이 부실했다는 것이 대표적으로, 지역 유지의 귀한 아들이 사라진 것에 비하면 수색이 너무 대충이 아니었나 싶더군요. 찾아온지 며칠 되지도 않는 브랫 패러가 모든 것을 눈치챈 후, 단박에 수색해야 할 핵심 포인트를 찾아낸다는 마지막 클라이막스를 보면 더더욱 그런 생각이 강하게 듭니다. 물론 패트릭의 유서가 발견되었기 때문이라는 이유가 있기는 합니다만, 작중 언급되듯이 유서 자체가 자살을 "암시"할 뿐 자살의 증거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볼 때 조금 더 철저한 수색이 필요하지 않았나 싶네요.

그래도 작품이 재미없지는 않습니다. 줄거리 요약대로 누군가와 닮은 사기꾼이 상속 재산을 노린다는, 흔하게 접하는 내용을 가지고 이만큼의 재미를 뽑아낸다는 것은 확실히 놀라워요. <뉴요커>지의 평이 '"진짜인 척하는 가자", 이런 내용을 담은 작품 중에서는 단연 최고이다.' 였다는데 충분히 수긍할만했습니다.
또 거장답구나 싶은 부분도 많은데 그 중에서도 묘사가 특히나 인상적이에요. 예를 들자면 브랫 패러의 시점으로 사이먼이라는 인물의 심정 변화를 알려주는 디테일들을 들 수 있습니다. 페기 게이츠의 아버지가 그녀를 위해 명마를 사 준 뒤에 보이는 사이먼의 심리 묘사 같은 것 말이죠. 이렇게 사소한 것을 통해 독자에게 어떤 인물의 됨됨이를 쉽게 이해시키는 재주는 아무나 부릴 수 있는게 아니라 생각되네요. 전형적인 영국풍 묘사, 영국 작가의 시각이 담뿍 묻어나는 유머러스한 표현들도 상당한 재미를 가져다 줍니다. 예를 들자면 '그가 영국 중산층에 대한 이미지를 미국 영화에서 얻은 것처럼 대령이라는 종족에 대한 이미지는 영국 신문에서 얻은 것이었는데, 잘못된 것은 둘 다 매한가지였다.' 같은 부분이겠죠. 이렇게 영국에 대해 대체로 유머러스하고 따뜻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돋보였습니다.
아울러 애거서 여사님의 모험물스러운 - 그 중에서도 하나를 꼽자면 <부머랭 살인사건> - 완벽한 해피엔딩이라는 것도 마음에 든 점입니다. 결국 사랑도 이루고, 자신의 뿌리까지 찾는다는 고아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결말이니 더 말해 무얼하겠습니다. 앞부분에 등장한 복선을 활용해 사이먼과 브랫 패러가 왜 닮았는지 설명해주는 꼼꼼함도 제법이고요.

결론내리자면 거장의 범작이랄까요. 별점은 2.5점입니다. 추리적으로 아쉬운 탓이 큰데, 브랫 패러가 패트릭인 척 하는 사기를 치고 있어서 사이먼의 범행 사실을 알았다고 해도 그것을 증명하기 어렵다는 딜레마를 이야기의 중심으로 가져가는게 더 좋았을 것 같습니다. 이 점만큼은 정말 돋보이는 점이 있었는데 마지막 몇페이지 정도에서만 효과적으로 사용될 뿐이라 좀 아까왔거든요.
비록 별점은 평범하지만 재미 하나만큼은 빠지는 작품이 아니고 이래저래 재미있는 요소가 많은 만큼 고전을 좋아하시는 분들께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덧 1 : 한가지 궁금한 것은. 이야기 중반에 굉장히 화제가 되는 사건인 "트렁크 토막 사체 사건"이 몇번이나 언급되는 것입니다. 이야기 전개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데 이것도 무슨 거장의 장치가 아닌가 싶어 읽는 내내 신경이 쓰였거든요. 저와 같은 독자를 낚고, 독자의 주의를 끌기 위한 장치라면 목적은 충분히 달성하기는 했지만... 왜 그랬어야 했는지 이유는 잘 모르겠어요. 하나의 큰 줄기로 우직하게 몰고가는 느낌이 희석되어 외려 작품에는 감점 요소로 작용하지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덧 2 : 몇번 영상화되었다고 하는데 80년대 TV 시리즈는 데일리모션에 전편이 올라와 있네요. 제 기대와는 캐스팅이 사뭇 다르긴 합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