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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10

일곱 가지 이야기 - 가노 도모코 / 박정임 : 별점 2.5점

일곱 가지 이야기 - 6점 가노 도모코 지음, 박정임 옮김/피니스아프리카에

열아홉살 대학생 이리에 고마코는 "일곱 가지 이야기"라는 책을 읽고 흠뻑 빠져들었다. 그래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작가 사에키 아야노에게 팬레터를 써서 보냈는데, 마침 자신 주변에서 일어났던 기묘한 사건을 함께 곁들였다. 사에키 아야노는 직접 추리한 결과를 고마코에게 답장으로 보내주는데...

일상계 미스터리로 유명한 가노 도모코단편집입니다. 작가의 다른 단편집은 그동안 몇 권 읽어보았는데 평균적으로 별로였습니다. 이야기도 재미없고 추리적으로도 그닥이었던 탓입니다. 그래서 이 책도 별로 기대를 하지 않았었지요.

하지만 생각보다는 재미있었습니다. 일단 구성이 독특해요. 제목 그대로 "일곱 가지 이야기"라는 가공의 책에 수록된 이야기 한 개와 주인공 고마코가 만나는 일상계 사건 하나가 조합되는 식인데, 이렇게 엮이는 작품은 거의 처음 본 것 같거든요. 물론 가공의 이야기와 본편이 엮이는 작품이야 제법 있지만, "일곱 가지 이야기" 수록작에 대해 고마코가 어떤 식으로든 설명을 한 후 실제 일상 속에서 그 이야기와 비슷한 사건이 벌어진다는 전개 방식은 독특합니다. 가공의 소설 "일곱 가지 이야기"도 일상계 추리물이고, 고마코가 접하는 사건 역시 평범한 일상 속에서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을 다루고 있는, 그야말로 더블 일상계라는 점도 인상적이고요.
고마코가 탐정역인 사에키 아야노에게 편지를 보내고, 그의 추리를 답장으로 받는다는 일종의 '서간문 추리소설' 이라는 점도 역시 독특한 점입니다.

그러나 단점이 없지는 않습니다. 일단 지나치게 작위적인 이야기들이 제법 많습니다. 게다가 이게 과연 추리물인가 싶을 정도로 추리적으로는 많이 부족해요. 아무리 일상계라 하더라도 요네자와 호노부 등 다른 일상계 작가의 작품과 비교해보면, 추리물이라고 하기는 민망하다 싶은 수준의 이야기가 많은 탓입니다. 7편의 단편 속 수수께끼가 2개씩이니 모두 14개의 일상계 추리물이 담겨있는데, 추리적으로 깔끔하고 괜찮다 싶은건 한 네 편, 그러니까 30%도 안될 정도입니다.
이럴 바에야 억지로 두 작품을 연결할 필요가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평범한 대학생 고마코와 동네 오빠 (?) 세오 컴비의 일상계 추리물, 그리고 하야테와 아야메 아가씨의 전원풍 일상계 추리물 두 편으로 나누어 발표하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싶네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재미있고 독특한 일상계 작품이지만 추리적으로는 많이 부족해서 감점합니다. 

각 단편별 간단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수박 주스의 눈물"

"일곱 가지 이야기"속 단편은 "수박 귀신"으로, 하야테 소년이 밤새 수박밭을 지키지만 결국 수박이 도난당한 사건의 진상을 밝혀내는 이야기입니다. 

"수박 귀신"은 이야기 시작으로 나쁘지 않지만, 본편에서 '수박 주스'라는 소재로 "수박 귀신"과 연결시키려는 시도는 여러모로 무리였습니다. 고마코의 친구 미아이네 집에서 키우는 개와 혈흔을 연결시키는 과정도 너무 작위적으로 짜여진 티가 나고요. 좀 긴 이야기였다면 복선처럼 잘 숨길 수도 있었겠지만 단편이다보니 노골적이다 싶을 정도로 단서가 드러나더라고요. 아이가 푸딩을 달라는 말로 어머니가 집에 없다고 추리하는 것 역시 비약이 심한 등, 이래저래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모야이의 쥐" 

"일곱 가지 이야기"속 단편은 "모야이의 쥐"인데 별로였습니다. 금으로 만든 쥐가 가짜였다는 것은 그다지 신선한 내용은 아니었거든요. 독자가 추리할만한 정보도 부족하고요. 

그러나 본편 이야기는 빼어납니다. 독특한 문양 중심의 추상화가 위, 아래가 뒤집혀 전시된다는 진상이 아주 그럴듯했기 때문이에요. 별점은 3점입니다.

"한 장의 사진"

"일곱 가지 이야기"속 단편은 "파란 하늘"로 하야테와 친구들의 파란색 그림물감이 없어진 사건에 대한 진상을, 본편 이야기에서는 고마코의 어린 시절 사진을 훔쳐간 친구가 그것을 돌려준 이유가 무엇인지를 추리합니다. 

두 편 모두 일상계다운 아주 좋은 이야기였어요. 무엇보다도 가족간의 사랑과 추억을 다루고 있는 따뜻한 이야기라 더욱 마음에 들었습니다. 마침 지나가던 친구가 사진에 찍혔다는 작위적인 우연은 옥의 티지만 단점은 사소합니다. 수록작 중 최고로 별점은 3점입니다.

"버스 정류장에서"

"일곱 가지 이야기"속 단편은 "하늘색 나비"로 하야테와 친구들의 열광을 불러왔던 한 친구의 대형 파란색 나비 표본이 사실은 가짜였다는 이야기입니다. 본편은 기묘한 노부인의 행동을 다루고 있고요.

그런데 두 이야기가 잘 연결되지는 않으며, 노부인이 꽃을 심으려 한다는 것은 쉽게 추리할 수 있는 등 그다지 건질 건 없었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1만 2천년 전의 직녀성" 

더위를 피해 천체 투영관을 찾아간 고마코가 전편에서 만났던 남자 세오를 다시 만나는 이야기가 "일곱 가지 이야기" 속 "대숲이 불탄다"라는 이야기와 함께 전개됩니다. 

그런데 할아버지, 할머니 간 오갔던 연애 편지를 찾는 "대숲이 불탄다"는 솔직히 추리물이라고 부르기 어렵습니다. 상식적으로 근처를 찾아보는게 당연하니까요.
본편도 추리적으로 부족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장난감 공룡 애드벌룬이 한밤중에 백화점 옥상에서 수십킬로미터 떨어진 유치원으로 이동한 사건의 진상이 무엇인지?인데 당연히 공중에 뜨게 만들어서 날려보낸 것이지요. 의외성이 부족하며 추리의 여지도 없어요. 얼음으로 눌러 놓았다는 등의 디테일은 있지만 대단치는 않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하얀 민들레"

친구 후미의 부탁으로 초등학교 여름 캠프에 자원 봉사자로 참여하게 된 고마코가 특이한 아이 마유키를 전담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입니다. 마유키는 모든 꽃, 심지어 민들레까지 하얀 색으로 칠해버리는 특이한 아이라는 설정이지요. "일곱 가지 이야기"에서는 하야테 아버지 어린 시절 친구가 빌려간 보물 상자와 푸른 수국이 등장하는 내용의 "내일 피는 꽃"이 함께 엮이고요. 

그러나 알루미늄에 반응하여 수국이 파랗게 변하는 것은 "푸른 제라늄" 등에서 익히 많이 사용되었던 소재라서 시시합니다. 추리라고 부르기에는 민망한 수준이고요. 본편의 핵심 수수께끼는 '하얀 민들레'의 정체에 대한 것으로,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실제로 있다는 것이 진상이므로 이 역시 추리라고 할 게 없네요. 가면 갈 수록 점점 추리물에서 멀어져 가는 듯 합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일곱 가지 이야기"

"일곱 가지 이야기"에서는 고양이 절에서 얻어온 새끼 고양이가 사라진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한 내용으로 모성애를 강조한 이야기지만 현실적이지는 않습니다. 본편은 마유키를 매개로 사에키 아야노, 일러스트레이터 아소씨 등 관계자 모두가 만나는 대단원이고요. 

마지막 이야기로는 괜찮습니다. 모든 등장인물을 대상으로 이야기를 한 번 정리해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마유키가 어머니의 양육권 포기를 단념하게 만들기 위한 깜찍한 실종 자작극이 핵심으로 추리의 요소는 거의 없어서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2015/05/20

멀리 돌아가는 히나 - 요네자와 호노부 / 권영주 : 별점 2.5점

멀리 돌아가는 히나 - 6점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권영주 옮김/엘릭시르

"고전부 시리즈" 네번째. 모두 일곱 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는 단편집입니다. 가을, 겨울을 거쳐 봄방학에 이르는 시기를 다루고 있죠.

각 이야기별 줄거리 및 짤막한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해야 할 일은 간략하게"

가미야마 고등학교 7대 불가사의 중 첫 번째라는 "비밀클럽의 권유 메모"를 찾는 내용입니다. 소박한 학교 관련 일상계 소품으로 추리적으로도 별다른건 없습니다. "나무를 숨기려면 숲에, 시체를 숨기려면 전쟁터에"라는, 브라운 신부 단편 "브라운 신부의 옛날 이야기"에서도 인용되었던 격언이 핵심이지요.

그래도 이야기 서두에 등장하는 음악실 괴담에서부터 제목과 일맥상통하는 호타로의 행동이 잘 연결되는 결말 부분의 반전은 인상적이었습니다. 일상계도 이런 반전이 가능할 수 있다니 놀라울 뿐이에요. 사토시도 의외로 정곡을 찔러서 만만한 남자가 아니라는 걸 알려주고요. 여기에 음악실 괴담까지 해결해주기 때문에 여러모로 풍성한 느낌을 전해줍니다.

사실 정말 아무것도 아닌 추리지만 이런 게 고등학교 무대에 적합한 트릭이겠죠. 여기가 뭐 부동고교도 아니니까요. 한마디로 말해서 일상계 왕도를 걷는 작품이에요. 시리즈 팬에게 여러 가지 재미를 선사해 주고요. 별점은 3점입니다.

"대죄를 짓다"

수학선생님이 진도를 착각한 이유에 대한 아주 짤막한 이야기. 진상은 소문자 a와 d를 착각했다는 사소하고 별거 아닌 것입니다. 그냥 화를 낸다는 것에 대해 거부감이 있는 지탄다의 생각을 보여주기 위한 이야기가 아니었나 싶어요. 하지만 그것도 뭐 대단한 건 아니고... 과연 화를 내는 것도 에너지 낭비인 건지 좀 궁금하네요. 별 내용이 없기에 별점은 2점입니다.

"정체 알고 보니"

고전부원들이 온천 여행을 떠나는데 숙소인 여관에서 지탄다와 마야카가 목매달아 죽은 시체의 유령을 본다는 이야기. "고전부" 시리즈 추리의 핵심, 즉 "신경쓰이는" 지탄다를 납득시키기만 하면 된다는 게 잘 드러납니다. 진상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지요.

추리도 나쁘지는 않습니다. 독자에게도 공정하게 전달되는 단서들을 조합하여 나름의 합리적으로 설명해주기는 합니다. 유카타를 말리기 위해 헤어드라이어를 쓰는 게 낫지 않았을까 싶기도 한데, 뭐 그런 변수까지 다 등장시키면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았겠지요.

"고전부" 시리즈의 핵심을 꿴다는 측면에서 꼭 봐야 하는 작품입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기억이 있는 자는"

"10월 31일, 역 앞 고분도에서 물건을 산 기억이 있는 자는 지금 즉시 교무실 시바자키한테 와라." 라는 교내 방송에 대한 호타로의 추론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이야기. 누군가가 한 말을 추리해서 의외로 숨겨져 있는 범죄에 대한 진상을 파헤친다는 건 "9마일은 너무 멀다"를 떠오르게 합니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진상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냥 호타로가 지탄다를 납득시켜 승부에 이기기 위한, 순수한 추론일 뿐이거든요. 몇 가지 증거, 즉 방과 후에 호출 방송을 한 것, 학생지도부가 아니라 교감이 불렀다는 것, 10월 31일이라고 날짜를 지칭한 것, 방송을 두 번 반복하지 않은 것 등만 가지고 추론을 이끌어내는 호타로의 솜씨는 인상적이지만 진상이 위조지폐와 관련된 범죄라는 것은 비약이 너무 심했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새해 문 많이 열려라"

새해 참배에서 창고에 갇히게 된 호타로와 지탄다가 궁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벌이는 소동극. 너무 추운 날에 남녀 단 둘이서 신사 창고에 갇힌다는 설정은 만화스럽습니다. 궁지에 몰리고 별다른 수단이 없는 둘이 가진 몇 가지의 소품을 최대한 활용해서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노력이 펼쳐지는 과정은 일종의 모험담이라고 봐도 될 테고요. 이전 에피소드에 등장했던 "오다 노부나가에게 팥을 담은 주머니 양 끝을 묶어 전달했다"는 고사를 효과적으로 써먹는건 좋았습니다. Side라는 부제로 구분하여 이바라와 사토시 시점, 호타로와 지탄다 시점을 번갈아 보여주는 "이니시에이션 러브" 같은 전개도 독특했고요.

그러나 유실물이 무녀 아르바이트 중인 마야카에게 전달될 것이라는 운에 의지한 작전이라는 것, 창고에 갇힌 시점에서 지탄다의 체면을 그렇게까지 고려할 필요가 있었을지 잘 납득이 안 된다는 것, 무엇보다도 "고전부" 시리즈의 핵심인 너무나도 평범한 일상계로 보기 어렵다는 약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수제 초콜릿 사건"

이바라 마야카가 사토시에게 주려던 초콜릿이 고전부실에서 도난당한 사건을 해결하는 이야기입니다. 별 건 없지만 고등학생의 순진하고 풋풋한 사랑 이야기, 즉 집착하지 않는 것에 집착하면 더 편한 마음으로 지내던 사토시가 마야카에게 집착해야 하는 딜레마를 다룬 이야기라 생각하고 보면 괜찮습니다.

하지만 주인공들의 심리묘사가 별로라 잘 와닿지는 않더군요. 특이한 캐릭터를 만들기에 심혈을 기울이긴 했지만, 이런 류의 평범한 일상계 사랑이야기에는 적합한 캐릭터들은 아닌 탓입니다. 일상계라면 보다 일상계다운 주인공이 나와 주는 것이 훨씬 좋았을 거예요. 또 에너지 절약 주의, 즉 하지 않아도 될 일은 하지 않는다는 호타로만큼이나 특이한 사상을 가진 사토시 같은 고등학생이 실존할 것이라고 생각되지는 않기도 했고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멀리 돌아가는 히나"

표제작. 제목 그대로 히나 축제에서 히나 인형(으로 분장한 지탄다)이 다리에 생긴 문제로 멀리 돌아가게 된 경위를 밝혀내는 추리가 펼쳐지는 작품.

그러나 이 추리는 곁가지일 뿐이고 내용은 히나 인형 옆에서 우산을 받치는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호타로와, 그에게 자신의 감정을 밝히는 지탄다 사이의 미묘한 감정이 드러나는 것이 핵심입니다. 이전 편의 사토시의 심리묘사보다는 호타로 묘사가 괜찮아서 그런대로 괜찮게 읽혔습니다. 사토시는 3인칭이고 호타로는 1인칭인 덕분입니다. 훨씬 말랑말랑하고 귀엽고, 여튼 좋았어요.

아울러 히나 인형이 돌아가게 된 계기 역시 일상계답게 괜찮았습니다. 실제로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럴듯했거든요. 공정한 정보 제공도 돋보였고 말이죠. 별점은 3점. 묘사, 전개, 추리적인 부분 모두 괜찮았던 작품입니다.


결론적으로 전체 평균 별점은 2.5점. 일상계 작품다운, 평범하게 재미있는 수준의 작품들이었습니다. 아주 뛰어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무난하게 즐길 수 있는, 일상계를 좋아하신다면 꼭 한번 챙겨볼 만한 시리즈임에는 분명해요. 이 시리즈가 얼마나 이어질지는 모르지만, 호타로와 지탄다의 관계가 한 발자국 더 나아갈 수 있을지 너무너무 궁금해집니다. 후속권이 빨리 나와주면 좋겠네요.

2017/10/06

하늘을 나는 말 - 기타무라 가오루 / 정경진 : 별점 3점

하늘을 나는 말 - 6점
기타무라 가오루 지음, 정경진 옮김/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기타무라 가오루의 전설적인 일상계 연작 단편집입니다. "동서 미스터리 100"의 일본편 17위를 차지할 정도로 그 가치를 인정받는 걸작이지요. 오래 전 부터 국내 출간을 기다리던 작품입니다.
사실 국내 소개가 이렇게나 늦어진 것 자체가 굉장히 의외에요. 앞서 말씀드린 "동서 미스터리 100"선 상위 20개 작품 중 국내 미출간 작품은 이 작품과 아유카와 데쓰야의 "검은 트렁크" 두 작품이 유이할 정도거든요. 이 중 "검은 트렁크"는 1950년대 출간된 묵직한 고전이지만, 이 작품은 80년대 발표된 나름 신세대 미스터리 작품인데 말이지요. 게다가 일상계 미스터리는 국내에서도 요네자와 호노부의 작품들이나 "비블리아 고서당" 시리즈 등으로 제법 인기를 확보하고 있기도 하고요. 온갖 수준 이하의 작품들까지 번역되는 일상계 추리물의 홍수 속에 이 유명 작품이 이제서야 소개된 것 자체가 미스터리같습니다. 무슨 어른의 사정이 있는지 조금은 궁금하네요.

여튼, 그만큼 기대가 컸는데 다행히 재미있었습니다. 작가가 여성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의 섬세한 묘사들이 가득하여 푸근하고 따뜻한 느낌을 전해주며, 추리적으로도 정통에 가까운 이야기들인 덕분입니다. 기묘한 이야기가 선보이고, 그것을 엔시씨가 주어진 단서만으로 풀어낸다는 고전적인 안락의자 탐정 스타일인데, 대체로 설득력있고 합리적입니다.
국문학을 전공하는 화자 "나"와 라쿠고가 탐정 엔시 씨 캐릭터도 좋아요. 작가의 섬세한 필치로 매력적으로 묘사되고 있음은 물론, 주인공의 "국문학도" 로서의 전문가적인 지식과 엔시 씨의 "예인"으로서의 특수 능력 - 놀라운 기억력과 라쿠고 연기를 통해 단련한 사람의 심리를 꿰뚫어보는 능력 - 이 이야기와 잘 결합되고 있는 덕분입니다.

단점이라면 분량에 비해 추리적인 부분이 좀 부족하다는 것 정도? 이것은 엔시씨와 나, 그리고 그 외 등장 인물들과 본 편 추리와는 무관한 배경 묘사 비중이 높은 탓입니다. 덕분에 캐릭터가 생동감있게 다가오고, 전개에 있어서도 설득력이 더해진다는 장점은 있습니다만, 추리 부분의 비중이 작아진건 개인적으로 아쉬웠어요. 국내 소개되었던 작가의 다른 단편집 - "시미가의 붕괴" - 등에 수록된 이야기들은 굉장히 빠른 호흡으로 전개되었기에 의외이기도 했고요. 아무래도 이 작품이 발표된 해가 버블의 정점이었던 1989년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네요. 여유있고 풍요로왔던 시대에 어울리는 느긋한 분위기가 가득 느껴지니까요.

그래도 숨 넘어갈 것 처럼 달리는 와중에도, 쉬어갈 필요는 있는 법이지요. 단점은 사소할 뿐, 시대를 뛰어넘는 재미를 전해주는 좋은 일상계 소품입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일상계 미스터리를 좋아하신다면 놓치지 마시길 바랍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다음과 같습니다. 스포일러 가득한 점, 읽기 전 참고하세요.

"오리베의 망령" 

"나"는 우연히 대학교 은사 가모 교수의 부탁으로 라쿠고가 엔시씨 인터뷰에 동행했다. 인터뷰 후 회식 자리에서 가모 교수는 어린 시절 꾸었던 기묘한 꿈 이야기를 했는데, 엔시 씨는 이야기만 듣고 진상을 알아냈다. 그리고 그는 증거 보완을 위해 한 달의 시간을 요청하는데...

화자인 "나"와 탐정역인 라쿠고가 엔시씨가 등장하는 기념할만한 시리즈 첫 편입니다. 섬세하면서도 느긋하고, 조금은 할머니 취향인 "나"와, 뛰어난 기억력을 갖추고 사람들을 꿰뚫어보는 엔시 씨가 제대로 소개됩니다. 전통 일본적 소재인 라쿠고와 오리베 자기, 그리고 교수님 꿈 이야기가 한데 어우러지는 전개도 괜찮고요.

추리적으로도 단서가 공정하게 제공됩니다. 교수님 꿈의 이유가 된 숙부님이 평소 책을 함부로 대했다는게 핵심이거든요. 물론 교수님이 어렸을 때의 일본 사회 분위기, 당시 경매 제도 디테일 등은 국내 독자로서 알아내기는 불가능하다는 단점은 있습니다만, 일본 한정으로는 충분히 설득력을 가질 수 있으리라 생각되네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시리즈 시작으로는 적절한 수준의 이야기였습니다.

"설탕 합전" 

"나"는 어느 날 엔시 씨를 우연히 만나 함께 홍차를 마시게 되었다. 이야기를 나누던 중 "나"는 앞 테이블에 앉은 3인조의 기묘한 행동에 신경을 쓰게 되는데...

사소한 것에서 진상을 꿰뚫어보는 엔시 씨의 능력이 잘 드러나는 작품입니다. 핵심 추리는 "왜 세 명의 마녀(?)가 설탕 합전을 벌이는가?" 이지만, 돌아보지도 않고 "나"가 신경쓰는 사람들이 세 명의 여자 아이라는 것을 알아내고, 그녀들이 반드시 다시 돌아올 거라는걸 예언하는 등의 소소한 추리도 아주 볼만했습니다. "설탕을 홍차에 타려고 한 것이 아니라 설탕을 꺼내려는 목적이었다"에서 시작되는 핵심 추리의 흐름 및 진상도 충분히 합리적이고요. 변장과 연기(?)로 사건을 완벽하게 해결하는 엔시 씨의 활약까지 더해지기 때문에, 그야말로 완벽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나"가 무언가 이상한 것(소금)을 넣는 것을, 원래 퍼낸 설탕을 다시 넣는 것으로 착각한 이유가 불분명하다는 단점은 있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다른 용기에 담아온걸 넣었을 텐데, 이걸 착각한다는건 무리니까요. 앙심을 품은 알바생이 너무 자신을 드러내놓고 가게에 출입하는 것도 설득력이 떨어지고요.

그래도 단점보다는 장점이 훨씬 많은, 시대를 전혀 느낄 수 없는 아주 좋은 일상계 소품임에는 분명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호두 껍데기 안의 새" 

"나"는 친구 다카오카 쇼코와 함께 도호쿠 여행을 떠났다. 엔시 씨의 공연도 보고, 온갖 절경을 감상하며 여행을 즐기던 중, 현지에서 만난 친구 에미의 차 시트가 모두 벗겨진 채로 발견되는데...

분량은 약 90페이지에 가까운데, 80여 페이지에 걸쳐 도호쿠 여행담이 소개됩니다. 아무리 일상계 작품이라지만 이래서 되나 싶을 정도로 무관한 배경 묘사 비중이 높아서 마음에 들지 않네요. "나"와 친구들 사이의 대화 역시 지나치고요. 

작품 속 추리 역시 억지스럽습니다. 동일 차종의 차 커버를 벗겨 위장한다는게 대표적입니다. 단지 시트 커버만 벗긴다고 차가 비슷해질까요? 그 안의 모든 디테일, 소품이 다를텐데 말이지요. 아울러 이렇게 위장하려고 했던 대상이 어린 여자아이라는걸 쉽게 떠올리는건 너무 심한 비약입니다.

물론 배경 묘사는 아주 근사합니다. 일본 인형 코케시의 고장이라고도 하는 "자오산"의 풍광이 정말 매력적으로 그려지는 덕분입니다. "나"가 문학에 대해 정말 조예가 깊다는게 잘 드러나는 점도 좋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추리적으로는 아쉬움이 있기에 감점합니다.

"빨간 모자"

"나"는 동네 치과에서 우연히 함께 대기실에 있던 "점 여사"로부터 기묘한 이야기를 들었다. "나"도 알고 있는 점 여사의 동창 모리나가 유미코 씨의 집 앞에, 매주 일요일 밤마다 빨간 옷을 입은 소녀가 나타난다는 이야기였다.

전편에서 이어진다고 할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전편의 결과(아이를 버린 어머니)를 궁금해 한 엔시 씨가 "나"를 공연에 초대한 후 이야기를 듣는다는 설정과 본편 이야기가 이혼에서 비롯되어 있다는 점에서요.

추리적으로는 무난합니다. "빨간 모자" 이야기는 사실 모리나가 유미코의 창작으로, 점 여사가 찾아온 날 화장실 옆에서 신발장을 정리한게 핵심 단서라는 것은 괜찮았어요. 충분히 일상계스러우면서도, 독자에게도 공정하게 정보를 제공해 준 셈이니까요. 그날 목격한 "빨간 모자"는 유미코의 딸일 것이며, 이 모든 것이 점 여사의 남편과 모리나가 유미코가 불륜 관계였기 때문이라는 추리도 충분히 설득력 있습니다.

그러나 지나치게 인간 관계, 인간 심리를 그려낸 묘사는 부담스러웠습니다. 점 여사의 방자한 태도, 마지막에서 "나"가 사고가 날 뻔한 상황 등에 대한 묘사는 솔직히 불필요했고요. 본 편 추리하고는 동떨어져 있는 모리나가 유미코의 "빨간 모자" 동화 묘사도 지나치게 깁니다. 이러한 점은 한 편당 80여 페이지라는 분량을 맞추기 위한 목적이 아니었나 의심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그냥저냥한 수준의 이야기였습니다.

"하늘을 나는 말"

"나"는 집 근처 상점 "모퉁이 집"의 젊은 사장 구니오 씨가 연인과 함께 있는 것을 우연히 목격했다. 이후 "나"는 부탁을 받아 유치원 크리스마스 공연 비디오 촬영을 나섰는데, 그 곳에서 산타클로스로 분장한 구니오 씨를 다시 만났다. 그날 그는 유치원에 가게에 있던 목마를 선물로 기증했다. 그런데 이웃집 며느리로부터, 유치원 마당에 놓여져 있던 목마가 순간 사라졌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는데... 

 표제작으로 일상계 단편집 마무리에 어울리는 가슴 따뜻하고 훈훈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추리적으로 수수께끼 자체는 평이하지만, 다무라씨(구니오씨의 연인)가 날짜를 착각했다는게 잘 설명되고 있는 만큼 즐길거리는 충분합니다. 일상계에 딱 어울리는 정도의 수수께끼였어요.

무엇보다도 제가 읽었던 크리스마스용 소품들 중에서는 최고입니다. "나"의 생일이 크리스마스이고, 소재가 크리스마스 선물이며, 이야기의 핵심이 "최고의 크리스마스 선물"이니 이만큼 좋은 작품이 또 있을까요? 크리스마스의 즐거움을 더해 별점은 3.5점입니다.

2009/11/28

시미가의 붕괴 - 기타무라 가오루 / 김해용 : 별점 3점

시미가의 붕괴 - 6점
기타무라 가오루 지음, 김해용 옮김/황매(푸른바람)

"하늘을 나는 말"이라는 작품이 굉장히 유명한, 그래서 많이 소개되지는 않았지만 국내 추리 독자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 기타무라 가오루의 작품입니다. 사실 대표작도 아니고 해서 이 작품이 어떻게 번역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작가에 대한 호기심이 워낙 컸던 탓에 구입하게 되었네요.

일단 이 작품집은 크게 3가지 성향으로 나뉩니다. 하나는 추리를 기반으로 한 블랙코미디적인 작품, 그리고 일상의 소소함을 디테일하게 추리와 결합시키는 (하지만 추리물은 아닌) 일상계 추리분위기 소품, 마지막으로 인간의 심리를 디테일하게 그린 드라마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번째 블랙코미디 류(類)로는 표제작이기도 한 "시미가의 붕괴"와 "죽음과 밀실", 그리고 "옛날 이야기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들 수 있을테고 두번째 일상계 소품은 "하얀 아침"과 "주사위, 데굴데굴", "오니기리, 꾹꾹"이 해당되며, 마지막 심리드라마는 "녹아간다"와 "나비", "나의 자리" 가 해당된다 생각됩니다. 이중 개인적으로는 일상계 소품이 가장 마음에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일상계 미스터리로 유명한 작가답다고나 할까요? 추리적인 요소가 녹아있으면서도 그것이 그야말로 일상과 밀결합되어 있고 내용과 캐릭터들도 너무 귀여워서 읽는 내내 아~주 흐뭇했거든요.

물론 그 외의 대부분의 작품들 역시 추리적인 성향과 기발한 아이디어가 포함되어 있기에 재미있게 읽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블랙 코미디 류의 작품군은 조금 더 절제했더라면 동화적인 세계관에서 벌어지는 독특한 추리물로 와 닿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지나칠 정도로 설정이 과장되어 있다는 것이 약간은 아쉽더군요.

그래도 국내에서 접하기 힘들었던 작가의 작품집이고 작가 특유의 센스가 충분히 느껴지기에 별점은 3점입니다. 정통 추리물들도 아니고 작가의 대표작도 아니긴 해도 가볍게 즐기기에 좋아서 추리소설에 거부감을 느끼실 수 있는 초심자분들에게 추천할만 하다 생각되네요. 특히 여성분들이 좋아하시지 않을까 싶어요.

아울러 이 단편집을 계기로 추후 일상계 소품으로만 묶인 (대표작인 "하늘을 나는 말" 시리즈면 더욱 좋고요) 단편집이 나와준다면 정말 좋겠습니다.

PS : 최근 너무 바빠서 좀 격조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읽은 책이 쌓여가는데 포스팅할 시간이 없네요...
녹아간다
평범한 회사원 미사키의 정신 붕괴과정을 "만화"라는 독특한 매개체를 통해 표현한 심리 드라마입니다. 치밀한 묘사는 볼거리이지만 정신 붕괴, 즉 미쳐가는 과정에 대한 이유가 합리적이지 않아서 결과물만 놓고 본다면 평범한 수준이라 생각되네요.

시미가家의 붕괴
천재탐정과 그의 조수가 탐정의 친구인 장서수집가 시미가를 방문했다가 시미의 아내 가즈코가 밀실에서 살해된 것을 발견한다.
과장된 동화같은 설정의 블랙코미디에 가까운 추리물입니다. 일단 서두의 등장인물 소개가 너무 장황하고 허무맹랑해서 당황스럽더군요. 그냥 천재탐정과 조수였어도 충분했을텐데 조수의 왼손과 오른손이 서로 사랑한다는 이야기에서 시작해서 탐정의 천재성도 정말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채워놓고 있거든요. 하지만 중반 이후에 등장하는 밀실 살인과 다이잉 메시지트릭을 적절하게 사용한 덕에 그나마 황당한 이야기안에 추리적인 이야기가 깔끔하게 녹아들어 있는 것은 마음에 들었습니다.
덧붙이자면, 이 작품에 대한 책 소갯글이 더 예술적입니다. 별거없는 반은 장난같은 이야기를 흡사 고전 전통 트릭 미스터리와 고딕 호러의 결합물 처럼 소개해 놓았더군요.
(탐정에게 사건이란 이미 읽은 책이나 다름없다! 인간의 가장 깊은 욕망을 파헤치는 천재 탐정의 놀라운 활약!
완벽히 다 갖추어지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 수집 강박증. 단순한 호기심과 관심의 경계를 넘어선 그것은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치명적인 욕망으로 자라나 목숨마저 위협한다. 책 수집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장서가 부부에게 어느 날 찾아온 죽음이라는 손님. 책에 대한 무모한 집착이 부른 재앙 앞에서 탐정은 진실의 페이지를 한 장, 한 장 넘겨 나가는데…….
아무리 채워도 꽉 차지 않는 서가의 구석에서 발견된 부인의 다잉 메세지. 남편의 가장 깊은 욕망이 드러나는 순간, 시미가는 마치 꿈처럼 아스라이 붕괴하고 만다.)


죽음과 밀실
노인 추리작가들이 모여사는 공동체 "환상의 정원"에 정말이지 완벽한 밀실살인사건이 발생하는데...
시미가의 붕괴와 연결되는 천재탐정과 조수 이야기로 추리소설의 이상적인 형태를 냉소적으로 비웃는듯한 작품입니다. 추리소설로 보기는 어려운, 추리애호가들을 위한 블랙코미디에 더 가까웠달까요?

하얀 아침
주인공이 과거 소녀였을때를 회상하며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1인칭 시점의 이야기로, 청춘드라마같은 깜찍한 사랑이야기가 나름의 추리적 요소 (누가 왜 아버지 차 백미러 성에를 닦아놓았을까?)와 잘 결합된 일상계 소품입니다. 여성작가다운 특유의 세밀한 심리묘사와 더불어 과연 일상계 미스터리의 거장이구나.. 싶을 정도로 사소한 이야기에서 추리적인 전개를 이끌어내는 것이 놀라운 작품이죠. 개인적으로는 이 단편집의 베스트 중 한편으로 추리물에 대해 별로 내켜하지 않는 지인들에게 따로 권해주고 싶을 정도로 부드럽고 따뜻한 이야기였습니다.

주사위, 데굴데굴
출판사 신입사원 치하루씨는 우연하게 한 남자가 떨어트린 십면체 주사위에 관심을 갖는데...
5페이지짜리 이야기로 이정도면 소품이라기 보다도 꽁트라 해도 무방한 분량이죠. 하지만 이야기가 완벽하게 정리되어 있으며 무엇보다도 아주 일상스럽지만 귀여운 발상의 트릭이 깜짝 등장하기에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하여간.. 아이들 머리는 정말이지 못 당하겠어요^^

오니기리, 꾹꾹
치하루씨는 회사 선배 미즈마치와 함께 이와테로 현장조사를 나간다...
전편과 같은 주인공 치하루씨 시리즈로 이번엔 분량이 약간 기네요. 하지만 역시나 귀여운 소품답게 이와테로 무대가 옮겨갔어도 여전히 일상스럽고 밝은 이야기입니다. 등장 인물들이 모두 착하디 착한 사람들이라는 것도 그러하고요.

추리의 요소는 두가지로 한가지는 버린 깡통이 어떻게 멀리 있는 계곡까지 굴러가는지와 제목의 오니기리를 만든 결과물에 대한 추리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대다한 트릭이나 추리는 아니지만 이야기와 잘 맞아 떨어지는 것은 역시나 마음에 들었어요.

나비
한 여성의 술자리 잡담이랄까... 심리묘사는 좋은데 두서도 없고 이야기도 없는 단상만 모아놓은 짧은 잡문이랄까요. 언급할게 별로 없네요....

나의 자리
주인공이 평상시와 다른 일상을 통해 누군가의 자리를 빼았는다는 설정도 굉장히 독특하지만 이러한 자신이 느낀 일상속의 불편함이 결국 자기자신과 연결된다는 결과가 굉장히 서늘해서 "기묘한 맛" 류의 작품으로 보아도 무리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이러한 반전으로 이르는 전개와 묘사도 군더더기 없는, 작가의 필력과 센스를 잘 느낄 수 있는 수작이라 두번째 베스트로 꼽고 싶네요.

옛날 이야기에 대한 새로운 해석
우리에게는 잘 알려져있지 않은 일본의 전래동화 "카치카치야마" 이야기 (할아버지가 밭일을 하다가 잡아온 너구리로 너구리죽을 만드려 하는데 너구리가 외려 기지를 발휘해서 풀려난 뒤 할머니죽을 만든다는 엽기 이야기?)를 추리물 형식으로 꾸민 내용으로 서두에 지극히 개인적인듯한 느낌의 장황한 옛날 이야기 해석에 대한 이론이 묘사되는 등 작가 스스로의 생각을 대화하듯이 써내려간 형식이 무척 이채로웠던 작품이었습니다. 뭐 달리 이야기하자면 좀 쭉쭉 써내려간 느낌도 들긴 하네요. 왠지 좀 장난스러움이 많이 묻어나는 것도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았고요. 어차피 모티브가 된 전래동화가 내용을 잘 모르는 일본 전래동화이기 때문에 몰입하기 힘든 탓도 크겠죠.

하지만 워낙 개인적인 단상이 많은 글이다보니 실제 기타무라 가오루라는 작가에 대해 조금 더 알게된 것 같아 흐뭇한 느낌도 들고 추리적으로도 이야기를 잘 구성해 놓아서 감탄했습니다. 전래동화를 앞뒤가 맞아 떨어지는 추리물로 각색할 생각을 했다는 것도 신기하지만 결과물도 상당한 수준이니 놀라울 따름이죠. 덕분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나뉠것 같은 작품인데 저에게는 무난한 평작 수준으로 생각되네요.

2013/12/19

빙과 - 요네자와 호노부 / 권영주 : 별점 2.5점

빙과 - 6점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권영주 옮김/엘릭시르

회색을 선호하는 에너지 절약주의자 오레키 호타로가 누나의 부탁(협박?)으로 가미야마 고교의 특활동아리 "고전부"에 입부한 뒤 벌어지는 소소한 사건을 다룬 일상계 단편 연작집입니다.

요네자와 호노부는 국내에서 예상외로 사랑받는 작가이기는 하지만, 이 작품의 출간은 순전히 애니메이션으로 더욱 유명해진 덕으로 생각됩니다. 사실 애니메이션이 없었더라면 작가의 데뷔작일 뿐더러, 무슨 상을 탄 것도 아니기에 딱히 출간될만한 임팩트는 없거든요. 뭐 저 개인적으로야 작가에게 호감이 있는 편이라 국내 출간된 작품은 챙겨 읽는 편이고, 제가 좋아하는 일상계 미스터리물이기도 해서 주저 없이 읽어보게 되었지만요.

작품은 기대했던 대로, 그야말로 일상계 중에서도 손에 꼽을 만한 일상계 작품이더군요. 정말 놀라울 정도로 소소한 이야기들이 펼쳐집니다. 분명히 열려 있던 부실의 문이 잠긴 이유, 매주 금요일에 똑같은 책이 대출되고 반납되는 이유, 고전부의 회지가 어디로 사라졌는지를 찾아내는 정도의 사건들이니까요. 이후 지탄다의 삼촌이 남긴 말과 33년 전에 학교에 무슨 사건이 있었는지, 지탄다의 삼촌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추리하는 약간 긴 분량의 이야기가 이어지지만, 역시나 딱히 큰 사건은 아닙니다. 빙과라는 회지의 제목이 삼촌의 심정을 대변하는 말이었다는 것 정도가 인상적일 뿐이에요.

그러나 이야기 자체는 아주 재미있습니다. 소소한 사건이지만 충분히 우리 주위에서 있었음직한 것들이라 설득력 높고, 사건의 이유와 진상을 파헤치는 추리적인 재미 역시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살인범이 넘쳐나는 부동고교가 비정상적인 거지, 고등학교에서 대단한 사건이 일어나는 게 더 말이 안 되는건 당연하니까요.

필요 없는 에너지를 절대로 쓰지 않는다는 원칙의 소유자이지만 주어진 정보를 조합하여 정확한 결과를 추리해내는 의외의 능력을 갖춘 주인공 오레키 호타로, 오감이 발달해 있고 섬세한 감성을 갖췄지만 의외로 행동파인 지탄다 등의 캐릭터들도 생동감 넘치면서도 현실에 있음직한 고등학생들 그 자체라 마음에 들었습니다. 친구들도 감초 역할은 충분히 해 줍니다.

아울러 개인적으로는 작품 내에서 무리하게 성장기를 그려가는 전형적인 청춘물 느낌을 많이 전해주지 않아서 좋았습니다. 원하지는 않았지만 고전부에 입부한 뒤 평범한 사건과 소소한 일상을 거치며 약간은 회색에서 물든 오레키 호타로의 변화 정도가 딱 적절했다고 생각됩니다.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일상계의 단점인 밋밋한 이야기가 도드라지기는 해서 살짝 감점했습니다만, 일상계 추리물의 왕도를 걷는 작품으로 충분히 추천할 만합니다. 책의 장정과 크기 등 만든 모양새도 최근 본 책들 중에서는 최고로 치고 싶네요. 애니메이션도 구해봐야겠습니다.

그런데 평범한 고교를 무대로 한 설정과 소소한 일상 속 사건을 다룬 내용, 거기에 오레키 호타로와 고바토라는 탐정역 캐릭터의 속성까지 작가의 다른 작품인 소시민 시리즈와 굉장히 유사한데 왜 별개의 시리즈로 작품을 만들었는지는 궁금합니다. 뭐 하나라도 확연히 구분되는 점이 없기에 하나의 시리즈로 일관되게 끌고가도 충분했을 텐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군요...

2018/11/10

가을철 한정 구리킨톤 사건 상, 하 - 요네자와 호노부 / 김선영 : 별점 2.5점

[세트] 가을철 한정 구리킨톤 사건 상.하 세트 - 전2권 - 6점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김선영 옮김/엘릭시르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름 이후 헤어진 고바토와 오사나이는 각각 다른 이성 친구와 교제하게 되었다. 오사나이와 교제하게 된 신문부 열혈 부원 우리노는 매달 벌어지는 연쇄 방화 사건에 집중하여 사건을 다룬 기사를 교내 신문에 발표했다. 기사를 통해 몇 개월간 다음 방화 장소를 예언하고 맞춘 우리노는 신문부의 손으로 범인을 잡을 계획을 세우는데...

요네자와 호노부일상계 추리물의 존재를 우리나라에 처음 알림 소시민 시리즈 신간(이라고 하기는 작년에 나와서 좀 어색하지만 제 기준으로는)입니다. 십여 년 전에 출간된 책은 아동용 동화같은 커버 일러스트로 충격을 주었는데, 예쁜 일러스트의 양장본으로 재출간된걸 보니 감개가 무량합니다. 십여년 전만 해도 요네자와 호노부는 우리나라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었는데, 지금은 거의 전작 출간이 되었을 정도의 인기 작가라는걸 여실히 보여주네요. 이런 추리, 미스터리 장르물의 인기에 저도 약간이나마 기여(?) 하지 않았을까 싶어 살짝 뿌듯하기도 하고요.

하여튼, 이 작품은 시리즈 1편인 "봄철 딸기 타르트 사건" 보다는 2편 "여름철 트로피컬 파르페 사건"과 더 비슷합니다. 조금 긴 호흡의 긴 이야기가 핵심으로 펼쳐진다는 점에서요. 주인공 고바토와 오사나이가 거주하는 기라시에 매달 장소를 바꾸어가며 방화가 일어나고, 이를 쫓는 신문부 후배 우리노와 이에 얽히게 된 고바토와 오사나이의 이야기가 시간으로 따지면 2학년에서 3학년까지 거의 9개월에서 10개월 동안 펼쳐지거든요.

그런데 방화사건 쪽 주인공은 우리노이며 그와 교제하게 된 오사나이가 양념처럼 등장할 뿐입니다. 고바토가 다른 여자 친구 나카마루와 교제하며 일상계 추리를 펼치는 이야기는 완벽하게 분리되어 있어요.
이러한 고바토의 일상계는 다른 일상계들과 마찬가지로 대단한 사건들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나카마루와 함께 데이트를 가던 코바토가 만원 버스에서 누가 버스에서 먼저 일어날 것인지를 추리하고, 나카마루가 이야기해 준 자신의 오빠에게 있었던 기묘한 도난사건에 대해서 추리하고, 헤어지기 직전 나카마루가 토마토를 싫어하는게 아닌가하고 추리하는 정도입니다. 이 중 버스 이야기는 추리에 비하면 분량이 과할 정도로 길어 별로였고, 토마토 이야기는 정말로 스쳐 지나갑니다. 그래도 헤비메탈 음악을 좋아하는 나카마루의 오빠가 3일간 여행 갔다 온 후 집에 유리창에 깨져있고, 누군가 침입했지만 없어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는 기묘한 도난사건 이야기만큼은 꽤 괜찮았습니다. 그동안 오디오 알람이 어떻게 동작하는지 몰랐다는건 말이 안되고, 설령 이런 일이 생겨도 집 주인을 부르지 무단 침입은 하지 않겠지만 이 정도면 나쁘지는 않아요. 전부 다 소소하고 심심하지만, 담백한 덕분에 일상계 팬이라면 충분히 즐길만 합니다.

그런데 연쇄 방화 사건 이야기는 불만입니다. 물론 추리적으로는 나름 번득이는 부분이 있기는 합니다. 특히 연쇄 방화 방법에 대한 아이디어는 괜찮습니다. 우리노가 다음 번 방화 장소를 추리해 낸 게 아니라, 사실은 우리노의 친구이자 범인인 히야가 우리노의 기사를 보고 그곳에 불을 질렀다는 건데 상당히 의외성이 있어 감탄이 나올 정도입니다. 우리나라 영화 "밀정"에서도 등장했었던, 간단한 트릭으로 용의자를 좁히고 진범을 추리해 내는 과정도 괜찮았고요.
그러나 이 이야기는 제대로 된 추리물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거의 전편에 걸쳐 탐정역을 수행하고, 온갖 추리를 펼친 우리노의 마지막 추리쇼를 박살내기 위한 오사나이의 복수극일 뿐이니까요. 게다가 복수를 위한 오사나이의 공작도 억지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범인을 잡기 위해 잠복해있던 우리노와 통화했을 때 고의로 기차 소리를 들려주어 현장 근처로 오해하게 만들고, 범행 현장 근처에 서점에서 책을 산 영수증을 우리노의 눈에 띄는 곳에 놔 두는 식인데 우리노가 이를 추리해낸다는 보장도 없지만 이렇게 해서 자신을 범인으로 오해하게 만든 의도가 불분명한 탓입니다. 마지막 순간 추리쇼를 펼친 우리노에게 면박을 주고 재기불능 수준의 창피를 주기 위해서? 복수라고 하니 그럴 수도 있지만 이 모든게 작위적입니다. 또 정통 추리물이라면 동기가 무엇인지를 파고들었어야 하는데 우리노를 비롯한 등장인물들에게는 그런 인식이 전무하다는 것도 실망스럽습니다. 추리를 위한 단서도 독자들에게 공정하게 제공되지 않고요. 이래서야 잘 된 추리물이라고 보기는 어렵죠.

고바토가 마지막에 구리킨톤을 먹으며, 오사나이가 우리노에게 복수를 하기로 결심한 것은 지난 5월 이후라고 추리해내고 이유가 뭐냐는 질문에 "멋대로 오사나이에게 키스하려 했기 때문"이라고 답하는 장면은 깔끔했지만 이렇게까지 집요하게 복수를 꾸밀 정도의 일인지도 잘 모르겠네요. 또 우리노는 명예욕은 있지만 사건에 열정적으로 뛰어든 좋은 녀석인데, 이쓰카이치의 기사로 확인 사살까지 당하니 불쌍하기만 했습니다.

아무래도 이런 전개는 작가의 고등학생이 등장하는 동일한 느낌의 또다른 일상계 시리즈인 고전부 시리즈와 명확하게 구분하기 위해서였던 듯 합니다. 고바토가 마지막에 추리를 통해 자기 만족을 채우는 인물이라는 걸 깨닫는다던가, 오사나이는 대단한 행동력과 책략을 갖춘 팜므파탈로 묘사된 것도 같은 이유일 테고요. 소시민을 꿈꾸는 고바토 죠고로와 회색을 신봉하는 에너지 절약주의자 오레키 호타로의 캐릭터부터가 완벽하게 겹치기에,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선을 그은 것이지요. 아마 시리즈 다음 작품이 출간된다면 고바토는 보다 적극적으로 사건에 뛰어들어 추리를 펼치고, 오사나이는 추리를 위한 각종 작전을 짜내고 실행하는 행동대장 역으로 묘사되리라 생각됩니다.
문제는 이러한 큰 변화가 작품에 좋게 작용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고바토야 그렇다 쳐도 오사나이 캐릭터 변화가 문제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억지스러운 복수극 전개가 모두 이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에요. 그냥 예전처럼 한 발자욱 물러나 사건을 추리하는게 훨씬 좋았을텐데, 지금은 여러모로 작위적이고 억지스럽기만 해서 별로였어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일상계 추리가 자연스럽게 이야기에 녹아드는 구성은 좋고, 추리적으로도 눈여겨 볼 부분도 제법 됩니다. 하지만 단점도 분명해요. 억지스럽게 설정까지 바꾸어 가며 시리즈를 이어나가느니 그냥 고전부 시리즈에 집중하는게 훨씬 낫지 않았을까 싶네요.

2014/02/24

비정근 - 히가시노 게이고 / 김소영 : 별점 2.5점

비정근 - 6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소영 옮김/살림

비정근 교사인 주인공이 임시 담임을 맡은 학교와 반에서 벌어진 사건을 해결한다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단편집.

살인사건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일상계에 가깝습니다. 당연하지요. 초등학교에서 대단한 강력 범죄가 벌어질 확률은 낮으니까요. 허나 평범한 일상 속 사건을 흥미진진하게 전개하는 작가의 능력만큼은 확실히 인정할만 합니다. 별거 아닌데 몰입하게 되더라고요.

또 주인공 설정이 괜찮았어요.  뭔가 오래전 "떠돌이 해결사" 느낌을 현대적으로 구현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쿨하고 차갑지만 사실은 따뜻한 남자로, 마을의 위기를 해결하고 떠나는 무사같은 느낌이요. 귀찮은 것을 싫어하지만 냉정하고 분석력이 빠르며, 일을 맡기면 똑 부러지게는 하지만 더 이상의 무언가는 절대로 하지 않을 성격도 마음에 들고요. 사건을 겪으면서 조금씩 "선생님"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점도 좋았습니다. 이렇게 맡는 학교마다 크건 작건 사건이 일어나면 비정근 교사로 먹고살기는 점점 힘들어지겠지만....

그러나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일본인이 아니면 풀 수 없는 트릭이 거의 대부분이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추리에 동참하거나 공감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물론 이 자체는 단점은 아니지만 번역할 때 국내 실정에 맞게 조금 더 신경썼더라면.. 하는 생각은 듭니다.

결론적으로 별점은 2.5점. 작가 특유의 몰입감 있는 전개가 인상적인, 무난한 단편집입니다. 일상계스러운 재미는 충분한 만큼, 일상계 추리물을 좋아하시는 분들께, 또 추리소설을 처음 접하시는 초심자분들께 추천드립니다. 주인공이 독특한만큼 드라마로 만들어도 좋지 않을까 싶네요.

수록작별 간단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6*3"

3개월 한정의 비정근 교사로서 5학년 3반의 담임을 맡게 된 주인공이 기묘한 살인사건을 해결한다는 내용입니다.

주요 트릭이 다이잉메시지인데 원래의 메시지가 있었더라면 범인이 곧바로 체포되었겠지만, 작위적으로 메시지를 변경하여 이야기를 어렵게 꼬아놓았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기 어렵습니다. 그래도 원래의 메시지가 변경된 이유를 설득력있게 설명하는건 괜찮아서 평작 수준은 충분합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1/64"

반 아이들이 나누는 1/64 라는 단어와 반에서 일어난 지갑 도난 사건의 진상을 그린 작품.

평이하고 무난한 일상계지만 아쉬운 것은 "바카도지"라는 일종의 암호입니다. 일본식 암호로 국내 독자가 해석하기에 무리가 따를 뿐더러, 그 자체가 너무 작위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두엘기삼" 같은 건데 이게 우연히 단어처럼 보이게 되었다는건 너무 우연이 심해요. 또 요시오카가 돈을 빼앗긴 것을 밝히지 않은 것도 의문입니다. 그게 도박의 증거가 될 수는 없잖아요? 때문에 별점은 2.5점입니다.

"10*5+5+1"

주인공이 다른 학교 5학년 3반의 임시 담임이 된 뒤 이전 담임 모리모토의 추락사에 대한 진상을 밝힌다는 내용.

나름 무난한 일상계인데 공식의 결과인 56이 모리모토의 체중이었다는게 어머니를 통해 증언되었다면 좀 더 쉽게 풀렸을텐데, 괜히 어렵게 꼰 느낌입니다. 동기 역시도 억지스러웠어요. 이해가 안가는건 아니지만 다른 해결 방법이 얼마든지 있었을 것으로 보이거든요. 때문에 별점은 2.5점입니다. 그래도 인간이란 약한 존재라는 주인공의 독백은 마음에 들었습니다.

"우라콘"

이번에는 반도 시키 초등학교의 6학년 2반을 무대로 하여 학생인 나가세 아키호의 투신자살 미수, 그리고 그와 관련된 “우라콘"이라는 단어의 뜻을 알아낸다는 내용.

처음으로 제목이 공식이나 숫자가 아니라서 의외였던 작품인데, "우라콘"의 뜻만 알면 진상은 쉽게 드러나지만 뜻을 알아내는 과정을 흥미롭게 풀어낸 솜씨가 아주 인상적입니다. 일상계인데 이 솜씨 덕분에 그야말로 미스터리가 됐달까요. 별점은 3점입니다.

한가지 아쉬운 것은 일본식 조어인 "우라콘" 입니다. 한국식으로 "뒷담투"와 같이 번역했더라면, 최소한 각주 정도로 표기해 주었더라면 어땠을까 싶네요.

"무토타토"

이번에는 고린 초등학교 6학년 3반. 수학여행을 중지하지 않으면 자살하겠다는 협박장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트릭은 일본인이 아니면 풀 수 없는 트릭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억지스럽더라도 번역할 때 "이외"라는 한글을 풀어서 "0151"과 같이 표기했더라면 더 낫지 않았을까 싶더군요.
그래도 야노의 계획에 나카야마가 숟가락을 얹어서 사건이 복잡해진 점, 동생을 활용했다는 점, 그리고 그것을 찾아낸 발상은 좋았습니다. 무엇보다도 주인공이 꽤 괜찮은 교사임이 드러나는 결말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이러니저러니해도 주인공은 주인공다워야하는 법이죠! 별점은 2.5점입니다.

덧붙이자면 초등학교 6학년생이 이즈라는 지명을 듣고 마쓰모토 세이초의 작품을 언급하다니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저는 많은 작품을 읽어봤지만 정작 지명은 잘 모르는데... 국내가 아니라서 뇌리에 깊게 남지 않았다 위안을 삼아봅니다...

"신의 물"

이번에는 롯카쿠 초등학교 6학년 3반. 반 학생이 음독으로 쓰러진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내용.

일단 트릭은 "신의물"이라는 페트병에 쓰인 글자가 핵심인데 역시나 일본인만 알 수 있는 트릭입니다. 감점 요소는 아니지만, 아무리 아이들이어도 초등학교 6학년 정도면 음독과 고양이 먹이 주기라는 일의 경중을 파악하기는 어렵지 않았을텐데 경찰에 진상을 밝히지 않은 것은 이해할 수 없네요. 아예 저학년이었다면 모를까... 때문에 별점은 2점입니다. 완성도가 높은 작품은 아니었어요.

"방화범을 찾아라"

고바야시 류타라는 초등학생이 화자이자 탐정역으로 등장하는 짤막한 단편. 주인공은 물론 등장하는 일종의 밀실 트릭도 순간접착제를 이용했다는 진상은 유치할 뿐더러 잘 됐을 것 같지도 않아서 실망스러웠습니다. 작가가 "명탐정 코난"같은 아동용 추리물에 관심을 가진 결과물이라 생각됩니다. 만화였다면 더 나았을지 모르지만 소설로는 영 아니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유령이 건 전화"

고바야시 류타 화자의 일상계. 반 아이들에게 걸려온 장난전화의 진상을 밝혀내는 이야기로 이번에는 탐정역으로 동급생 아사쿠라 도모미가 활약합니다.

단순한 장난이라 추리의 여지가 별로 없는 이야기를 이만큼이나 흥미롭고 풍성하게 만든건 작가의 능력이겠지요. 훈훈하고 따뜻한 괜찮은 소품으로 별점은 3점입니다.

2015/11/30

화과자의 안 - 사카키 쓰카사 / 김난주 : 별점 3점

화과자의 안 - 6점 사카키 쓰카사 지음, 김난주 옮김/블루엘리펀트

모두 5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 가벼운 일상계 단편집입니다. '키 150cm, 체중 57kg'의 주인공 우메모토 교코가 고등학교 졸업 후 도쿄 백화점 지하에 있는 화과자점 "미쓰야"에서 일하게 된 뒤 만나는 소소한 사건들을 다룹니다.

잘 모르는 작가의 작품으로 충동적으로 읽게 되었는데,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꽤 괜찮았습니다. 쉽게 읽히는 재미는 물론 추리적으로도 제법이며 잘 몰랐던 화과자에 대한 현학적인 매력도 넘친 덕분입니다.

캐릭터들의 매력과 배분도 아주 적절합니다. 사건 해결은 괴인 츠바키 점장이 맡고, 이야기는 우메모토 교코가 빠른 눈치와 추진력으로 템포 있게 유지시키며, 화과자에 대한 지식은 게이 성향이 있는 화과자 장인 지망 베테랑 아르바이트생 다치바나가 덧붙여 주는 식으로 황금 분할이 이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연산 - 파워 - DB의 3위 일체네요.

허나 화과자에 대해 알고 있어야만 추리를 따라갈 수 있기에 평범한 일반인, 그것도 한국인 독자가 추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단점은 있습니다. 일상계이지만 전문가적 지식이 발휘되는 작품이라는 측면에서는 "비블리아 고서당" 시리즈나 "명탐정 홈즈걸"과 같은 스타일이지요.
물론 현학적인 재미로 보상해 주는 만큼 단점이라고만 보기 어렵습니다. 저 역시 아주 좋아하는 장르입니다. 여기서 조금 더 나아가면 "갤러리 페이크"가 될 테고요.

별점은 3점입니다. 전문가 일상계 추리물의 교과서 같은 작품으로 추리소설에 입문하시는 분들께 추천드리고 싶네요. 이야기도 소소하니 따뜻하고 즐거우며 맛있기까지 하니 더 바랄 게 뭐가 있겠습니까.

각 단편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화과자의 안"

회사원 아가씨가 생과자 "오토시부미" 1개에 "투구" 9개를 사간 이유에 대한 추리가 펼쳐지는 작품.

츠바키 점장은 오토시부미를 특정 인물 1명 앞에 내어 놓을 필요가 있었으며, 그 이유는 "오토시부미"의 사전적 의미 — '공공연하게 말할 수 없는 내용을 쓴 무기명의 문서' — 에 따라 그 과자를 받는 사람은 뭔가 부정이 있다!라고 다도에 박식한 상관에게 넌지시 고하기 위함이라고 추리합니다.
그리고 다음에 회사원 아가씨가 과자를 사러 왔을 때에는 사건이 해결된 것을 알아차리고 '액막이용 과자'인 "물의 달"을 바로 내어주었지요.

화과자에 대해 잘 모르면 추리에 동참할 수 없다는 단점은 있지만 시리즈의 시작으로 캐릭터들의 소개와 더불어 이 작품이 화과자에 대한 일상계 추리물이구나! 라는 것은 충분히 알려줍니다. 현학적인 재미도 넘쳤고요. 별점은 2.5점입니다.

"1년에 한 번 하는 데이트"

견우와 직녀가 만난 뒤의 칠석 과자 "까치"를 사러 온 여대생은 대만에 있는 남자친구와 원거리 연애 중으로 비행기를 타야 했고, 단골인 스기야마 할머니가 사 가는 과자는 사실 불단에 올릴 목적이었다는 내용입니다.

첫 번째 에피소드와 동일한 문제가 여전합니다. 일반인이 추리하기 어렵다는 것이죠. 그나마 여대생의 원거리 연애 에피소드는 독자도 추리할 만한 여지가 있긴 했습니다만, 스기야마 할머니 이야기는 정말 무리예요. 특히 할머니의 독특한 복장이 사실은 화과자의 "상제" 색 조합과 관련이 있었다는 것은 일반인의 영역은 아니니까요.

그래도 전문가적 지식을 토대로 한 일상계 추리물의 교과서적인 전개를 보여주는 작품으로 캐릭터들이 나름 성장하기도 하고, 츠바키 점장의 개인사도 살짝 엿보이는 등 읽는 재미도 충분했습니다. 별점은 3.5점입니다. 개인적으로 이 단편집에서는 베스트로 꼽고 싶네요.

"싸리와 모란"

야쿠자가 와서 시비를 거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다치바나의 사부가 가게의 전문성을 시험하느라 이런저런 전문 용어를 사용한 것이라는 이야기.

요약된 줄거리 그대로 추리의 여지는 거의 없습니다. 그냥 화과자에 대한 정보 전달이 주인 탓에 일상계 추리물이라기보다는 "갤러리 페이크"에 더 가까워요.

허나 워낙 재미있는 내용들이라 지루하지는 않았습니다. 아니, 아주 재미있었어요. 화투에 멧돼지와 싸리가 반드시 같이 그려져 있는 이유가 멧돼지 = 보탄(모란) → 모란떡은 오하기 → 하기는 싸리, 그래서 같이 그린다라는 언어유희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등의 이야기인데, 다른 작품에서 접하기 힘들 뿐 아니라 지루할 수 있는 이야기를 야쿠자스러운 말투와 엮어 재미나게 풀어내는 솜씨가 탁월해서 감탄할 정도였습니다.
신 캐릭터인 다치바나의 사부도 전형적인 스테레오 타입이긴 하지만 그런대로 작품과 잘 어울렸고요. 별점은 3점입니다.

"스위트 홈"

백화점 내 양과자집 "황금사과"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생 가쓰라자와가 팔다 남은 케이크를 "오빠"에게 가져가는 이유는?

"오빠에게 가져간다"는건 착각이었고 케이크를 "오빠", 즉 나이가 많은, 전날 팔다 남은 케이크라고 이야기했다는 내용인데 실제 자료 조사가 토대가 된 듯한 일종의 언어유희가 돋보였습니다. 화과자에 대해 몰라도 풀어낼 수 있는 이야기라는 것도 큰 장점이지요.
곁들여 주류 코너에서 일하는 구스다 씨가 떨이 도시락을 사재기한 이유가 함께 밝혀지는 구성도 참 좋았습니다. 가슴 따뜻해지는 이야기였으니까요.

아울러 양과자와 화과자의 차이를 설명하는 것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양과자와는 다르게 화과자는 이 나라에서 나는 재료를 사용해 이 나라의 기후와 습도에 맞게 만들어 관혼상제를 채색하기 위한 목적이 크다는 것인데 정말 공감됐습니다. 한천은 여름에도 녹지 않는다는 일종의 화과자 부심(?)도 귀여웠고요. 그래서 별점은 3점입니다.

"쓰지우라의 향방"

미쓰야에서 판매한 새해맞이 과자 "쓰지우라" 안에서 이상한 암호문이 나와 그것을 해독한다는 내용으로 암호 해독이 중심인 작품입니다.

종이는 누군가 바꿔치기한 것에 불과하고, 암호문은 일본어로만 풀어낼 수 있는 것이라 추리의 여지가 거의 없습니다. 화과자가 중요하게 사용되지도 않아서 시리즈와 연계성도 조금 떨어지고요.

점장이 기다리던 사람이 누구였는지 (2화에 언급된) 설명되어 독자의 궁금증을 풀어주기는 하지만, 점장의 연인이었던 과자틀 장인 "형풍"이 죽기 전 남긴 과자틀 반쪽을 안짱이 골동품 벼룩시장에서 건진다는건 우연이라도 너무 심합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추리도 별로고 작위적이라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여러모로 마무리가 약한 느낌입니다.

2016/09/16

변두리 화과자점 구리마루당 1 - 니토리 고이치 / 이소담 : 별점 2.5점

변두리 화과자점 구리마루당 1 - 6점 니토리 고이치 지음, 이소담 옮김/은행나무

제목 그대로 아사쿠사 변두리의 3대째 이어져 내려오는 화과자점 구리마루당의 주인 구리타 진과 수수께끼의 미녀 아오이가 소소한 수수께끼와 갈등을 해결해 나간다는 내용의 일상계 중단편집입니다. 모두 3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동일하게 화과자점을 주제로 한 일상계 작품인 "화과자의 안"을 이전에 읽어보았는데 두 작품을 비교해보자면, 이 작품이 추리적 요소는 덜하고 로맨스, 인간 드라마가 더욱 강조되어 있습니다. 특정 영역의 전문가가 등장하는 로맨틱 일상계라는 점에서 "비블리아 고서당" 시리즈 히트에 편승한 느낌이 듭니다. 

이러한 선입견 탓에 그동안 선뜻 손이 가지 않았습니다. 비슷한 류인 "추억의 시간을 수리합니다"가 명백한 지뢰였던 탓도 컸고요. 하지만 추석 맞이로 가볍게 집어들고 읽어 본 결과, 의외로 만족했습니다.

물론 "추억의 시간을..."과 마찬가지로 추리적 요소가 많이 부족하다는 단점은 명확합니다. 과연 이 작품을 일상계 추리물로 부를 수 있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에요. 그러나 그런대로 재미있게 읽었던건 제가 "요리"와 "음식"이라는 분야에도 큰 관심이 있는 덕분입니다. 수록작 세 편 모두 "음식의 맛"이 가장 중요한 소재거든요. 첫 번째 이야기에서 '과거의 맛이 현재에 재현되지 못한 이유'가 대표적이며, 다른 이야기들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화과자를 싫어하는 친구에게 화과자를 좋아하게 만드는 방법, 와산본이 무엇인지 등 "화과자"와 해당 분야의 전문 지식에 집중하여 이야기를 풀어가서 음식, 요리에 대해 흥미를 느낀다면 즐길거리가 제법 많습니다.

또 첫번째 이야기 "마메다이후쿠" 만큼은 부족하더라도 분명한 일상계 추리물이기도 합니다. 브라질로 출국한 후 20년만에 구리마루당을 찾은 다나베의 말 실수를 토대로 숨겨진 진상을 알아낸다는 전개는 그야말로 일상계의 왕도죠. 이에 더해 "곶감 맛 자체는 담백해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라는 표현에서 수상함을 느낀 이유가 "주인공이 화과자 전문가"였다는 점에서 작품의 특징과 잘 어울리고요. 하기사 주어진 정보를 토대로 맛의 비결이나 레시피를 찾는 이야기 역시 넓게 보면 추리의 영역이지요.

아울러 만화적이기는 해도 캐릭터의 매력도 상당합니다. 특히 주인공인 구리마루당 3대인 구리타 진이 괜찮았어요. 화과자 가게를 잇기 위해 어렸을 때부터 수련을 쌓았지만, 반항기에 한창 엇나가다가 부모님의 급작스러운 죽음으로 마음을 다잡고 가게를 이었다는 설정입니다. 이러한 독특한 이력 덕분에 이런저런 이야기에 위화감 없이 녹아듭니다. 어린 시절의 수련과 재능으로 실력은 나름 확실하나 그에 걸맞는 연륜과 경험은 갖추지 못했다는 점에서는 "맛의 달인" 지로와 약간 비슷하네요.

컴비로 등장하는 화과자에 정통한 정체불명의 미녀 아오이 역시 설정만큼은 완전 스테레오 타입이지만 지독할 정도로 순진하고 착한 면에 관심 분야에 대한 초인적인 호기심이 부각되어 나름의 매력을 전해줍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조용하고 고즈넉한 동네 풍경 속 잔잔한 드라마라는 측면에서는 볼만합니다. 단, 추리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수록 이야기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마메다이후쿠"

화과자점 구리마루당에 20년 전 신세를 졌다는 다나베라는 손님이 찾아왔다. 그는 20년 전 먹었던 마메다이후쿠를 주문했지만, 맛이 다르다고 말했다. 구리마루당 주인 구리타 진은 충격을 받은 나머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지인인 카페 마스터가 소개해 준 아오이라는 수수께끼의 미녀에게 의지하게 되는데...

요리만화에 흔히 나옴직한 "추억의 맛을 찾아드립니다." 스타일의 이야기입니다. 첫번째 에피소드답게 구리타 진과 그 주변 인물 관계도 상세하게 설명되고요.

수록작 중 거의 유일한 추리물로 "왜 마메다이후쿠의 맛이 다른지?"에 대한 설명(시부키리가 너무 많았다), 그리고 앞서 말씀드렸던대로 다나베의 "곶감"에 대한 말실수를 "곶감"의 정의를 통해 밝혀 진상을 드러내는 전개는 괜찮습니다. 망해가는 구리마루당을 살리려는 소꼽친구 유카의 작전이라는 동기도 그럴듯했고요.

다나베가 20년 전 먹었던 마메다이후쿠의 맛과 지금의 맛이 다르다는 것을 강력하게 주장할 정도로 절대 미각의 소유자라는 것은 영 설득력이 없으며, 구리타 진은 기본적인 부분에서 새로운 시도는 하지 않는 무능한 장인인지 의심스럽다는 약점은 있지만 시리즈의 첫 작품치고는 괜찮았던 소품입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도라야키"

"이러쿵저러쿵해도 이미지는 실체가 없는 거니까요. 실제 체험에는 절대 못 이겨요. 자기 눈으로 보고 자기 손으로 만지고...... 그렇게 실제로 경험하면 이미지는 간단히 바뀌죠. 말하자면 이미지란 불완전한 정보, 즉 선입견이니까요."

어렸을 때부터 구리타의 라이벌인 아사바가 대학 축제에 구리타를 초대했다. 구리타는 아사바가 만든 "베이비 카스텔라"의 맛을 인정했지만, 아사바는 화과자를 싫어한다는 말로 구리타를 자극했다.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아오이는 아사바에게 화과자 혐오를 고쳐주겠다고 약속하는데...

드라마는 별게 없지만 카스테라, 다이나곤 팥과 같은 기본 재료 설명은 물론, 1등 상품인 팥을 구하기 위해 "화과자 퀴즈 대회"에 나가 각종 화과자 관련 상식을 화려하게 펼쳐내는게 특징인 작품입니다.

또 카스테라는 좋아하는 아사바의 화과자 혐오를 고쳐주기 위해, 카스테라 반죽에 팥소를 더하여 도라야키를 만들어 준다는 결말은 깔끔하며 설득력 높습니다. 다툼과 갈등이 "맛있는 음식을 먹고 해결!" 된다는 "맛의 달인" 류의 작품에서는 억지스러운 전개가 가끔 보이기도 하는데, 이 작품 정도면 잘 마무리된 것 같아요. 이게 맛이 없을리가 없을 뿐더러, 맛이라는 것은 작중 아오이의 말 그대로 경험이 가장 중요한 것이니까요.

그래서 추리적으로는 별볼일 없지만 별점은 3점입니다. 화과자 관련 이야기로는 최고라 할 수 있겠습니다.

"히가시"

"화과자를 다루는 사람으로서 고안할 방법은 딱 한 가지. 입으로 말해서 못 알아듣는 사람에게는 먹여서 알게 해주자고요!"

어린 시절 공부를 가르쳐주곤 했던 동네 누나 고하루를 오랫만에 만난 구리타는 고하루의 집을 누군가 엿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바닥에 흘린 과자 부스러기와 엿보기를 당한 날짜를 토대로, 범인은 고하루와 거의 의절상태인 친아버지 기라라는게 드러났다. 구리타는 기라를 찾아가 설득하려 했지만 실패하는데....

수록작 중 가장 처지는 이야기입니다. 이야기부터가 별게 없는 탓입니다. 엿보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내려면, 그가 남긴 과자 부스러기를 조사하는 것보다 잠복해서 잡는게 가장 확실한 방법이니까요.

게다가 맛있는 과자를 먹었다고 모든 갈등이 눈녹듯 사라지는 마무리는 솔직히 어처구니 없습니다. 이런 류의 이야기에서 가장 조심해야 하는 전개였습니다. "도라야키"에서처럼 설득력 있게 넘어가면 모를까, 갈등과는 하등의 상관이 없는 과자를 맛보고 갈등이 해결된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아요. 그렇다면 북경오리나 프랑스 요리를 먹어도 되는 게 아니었을까요?

구리타 진의 부모님에 대한 생각이 넘쳐나는 마무리는 좋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점수를 줄 만한 부분이 없네요. 별점은 1.5점입니다.

2018/07/22

가제가오카 50엔 동전 축제의 미스터리 - 아오사키 유고 / 이연승 : 별점 2점

가제가오카 50엔 동전 축제의 미스터리 - 4점
아오사키 유고 지음, 이연승 옮김/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헤이세이의 엘러리 퀸이라는 어마어마한 별명의 일본 작가 아오사키 유고의 단편집입니다. 

작가의 이전 작품들은 트릭과 추리의 과정만큼은 괜찮았던 정통 본격물임에는 분명했습니다. 별명이 허언만은 아니었어요. 하지만 동기, 전개 등 전체적인 완성도 측면에서는 미흡한 부분이 없지 않아서 이야기를 충실하게 쌓아올리고 만들어가야 하는 장편보다는 트릭 중심의 단편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 생각해 왔었는데 아니나다를까, 단편집이 발표되었네요. 작품 해설을 보니 이 단편집으로 가제가오카의 우라조메 탐정 시리즈 1기가 마무리된다는군요.

이전 장편들이 "~관" 시리즈였던 것에 반해 단편들 제목이 상당히 소박한게 눈에 띕니다. 표제작은 엘러리 퀸의 패러디이지만요.
그런데 추리적으로는 기대에 미치지 못합니다. 추리들 모두가 비약이 심해 설득력이 떨어지는 탓입니다. 장편에서 긴 호흡으로 쌓아올릴 수 있었던 논리가 단편 분량에서는 효과적으로 선보이지 못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전형적인 학원 무대 일상계 청춘물인데, 경쟁작이라 할 수 있는 "소시민" 시리즈나 "빙과" 시리즈에 비하면 추리적으로나 캐릭터 측면으로나 모두 미치지 못하는 범작입니다. 시리즈의 팬이시라면 한번 쯤 읽어볼만 하지만 그렇지 않으시다면 딱히 권해드리지는 않겠습니다. 차라리 빠른 호흡으로, 시각적으로 정보를 전달해가며 전개하는게 용이한 만화였더라면 더 낫지 않았을까 싶네요.

수록 작품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합니다.

"원플러스원 덮밥"

학교 식당에서 금지된 식기 반출을 한 범인이 누군지 찾아낸다는 설정만큼은 학교를 무대로 한 일상계 추리물의 교과서 같은 느낌입니다. 정말 있음직하고 그럴듯한 이야기니까요. 우라조메 추리의 댓가가 식권 20장이라는 점도 역시나 일상계스럽고요.

하지만 추리적으로는 좋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추리보다는 비약에 가까운 탓입니다. 남겨진 트레이에 머리카락이 묻었다? 식판과 식기에 머리카락이 묻을 이유가 있을까요? 머리를 처박고 먹는 것도 아니고... 소스 개봉부를 얌전히 자주 쓰는 손 방향으로 놓아 둘테니 왼손잡이라는 추리도 비약입니다. 바람에 날려 떨어지거나 옮겨졌을 수도 있으니까요. 식욕 때문에 운동계 동아리일 것이다 역시 지나친 비약입니다. 작은 체구의 사나에도 한그릇 뚝딱하는 덮밥이라고 묘사되기도 했고요. 점심 시간에 중요한 회의를 한 동아리를 찾는다는 것 역시 나쁘지는 않지만 개인적인 약속일 수도 있고, 정말 급하게 화장실을 가야만 했을 수도 있어서 이 역시 비약인건 마찬가지입니다.
마지막의 진상 - 여자친구가 돈가스 도시락을 주었는데 먹지 못하고 버린 후, 원플러스원으로 좋아하는 것 반, 돈가스 반을 시켜 젓가락만 지저분하게 해서 주었다 - 도 비약입니다. 제가 저런 상황에 처했다면, 무슨 일이 있어도 다 먹던가 아니면 돈가스는 빼고 다 먹었을 겁니다. 왜 도시락을 버리고 구태여 식사를 또 시켰는지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네요.

아울러 키에 대한 추리는 추리라고 하기도 어렵습니다. 180cm 이상, 아니면 160cm 이하 등 용의자 범위를 대폭 줄일 수 있는 숫자면 모를까, 180 m이하의 학생이라는 건 가제가오카. 재학생의 90% 이상을 차지할 거라 아무런 의미가 없는 숫자니까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평범한 일상계지만 소설보다는 만화에 더욱 적합한 이야기입니다. 비약이 심한 내용으로 빠르게 전개하기 보다는, 단서가 조금 더 적더라도 정교하게 이야기를 쌓아나갔어야 했습니다.

"가제가오카 50엔 동전 축제의 미스터리"

표제작으로 왜 신사 축제 노점에서 거스름돈을 50엔 짜리로만 주는지에 대한 수수께끼 풀이가 펼쳐집니다. 

하지만 축제를 즐기는 내용이 이야기의 2/3 이상을 차지하며, 추리적인 부분은 그다지 눈에 뜨이지 않습니다. 잔돈 숫자를 증가시켜 사람들이 분실을 더 많이 하게 만드려는 의도였다는 진상 역시 설득력이 높다고 보기는 어려웠고요. 일본식 유타카 차림으로는 잔돈을 보관하기 어렵다는, 일본식 사고방식이 깔려있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납득하기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이 작품 역시나 정보의 제공이 시각적이며 전개와 호흡이 빠른 만화가 더 어울렸을 이야기입니다. 만화나 애니메이션의 전형적인 클리셰라 할 수 있는 여름 축제가 무대라 더 그런 느낌이 드네요.

"하리미야 리에코의 서드 임팩트"

전작의 등장인물 중 한 명이었던 하리미야 리에코가 등장하는 전형적인 일상계 청춘 미스터리입니다. 그녀의 남자친구인 귀여운 후배 사오토메가 취주악부에서 왕따를 당하는 듯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우라조메에게 도와달라고 부탁하는 이야기지요.

유노와 우라조메가 아니라 하리미야 시점의 이야기라는게 독특했던 작품으로 수록작 중에서 가장 그럴듯한 추리가 펼쳐집니다. 더위와 싸우며 연습하는 상황에 대한 강조, 취주악부 연습실에 널부러진 다양한 쓰레기들, 연습하는 곡과 독주 파트에 대한 언급 등 독자에 대한 정보도 굉장히 공정하게 제공됩니다.
또 불량이라고 생각했지만 의외로 순진한 하리미야 리에코의 성장기 성격도 있고, 이 둘의 사랑을 응원하는 우라조메 덴마의 모습도 상당히 의외의 재미를 선사해 줍니다. 뭔가 애니메이션이나 라이트노벨 같은 커플이라고 느꼈던게 아닌가 싶어요.

하지만 진상, 그리고 결말이 썩 개운치는 않습니다. 취주악부의 야마부키가 자신의 독주 연습을 위해서 사오토메를 일부로 쫓아내고 연습실로 쉽게 들이지 않은 상황은 일종의 왕따라고 해도 무방하니까요, 협주 파트를 모두 함께 열심히 연습하고, 독주 파트는 시간을 정해 따로 연습하자고 하거나, 최소한 선풍기를 빌리려는 시도를 먼저 해 보는게 당연한데 말이죠. 이를 하리미야가 쉽게 납득하는 것도 잘 이해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천사들의 늦더위 인사"

5년전 졸업한 시시도 선배의 노트에 적혀있던 두 소녀 소실 사건의 진상을 밝혀내는 이야기로 서두에 유노와 사나에에게 노트에 묘사된, 일종의 백합 연애물같은 포즈를 취하게 하는 개그 외에는 딱히 눈여겨 볼 부분이 없는 범작입니다. 너무 작위적인 탓입니다. 

우선, 아무리 학교 일에 관심이 없어도 모두가 대피 훈련을 하는 상황을 몰랐다는 것부터 말이 안됩니다. 우라조메의 추리도 두 소녀의 연극과는 무관하게 9월 1일이라는 날짜에 기인한 것인데, 날짜까지 적은 일기 같은 글에서 정말로 진상을 깨우치지 못한 건 이해할 수 없어요. 예전에 매월 15일마다 실시했던 우리나라 민방위 훈련같은 거니까요. 소녀들의 소실은 사다리차를 이용한 탈출 훈련 때문이었다는 진상도 그럴 수 있었겠다 싶기는 하지만 장비에 준비가 필요하고, 탈출 순간의 환성도 있었을텐데 외부 상황을 몰랐다는 건 설득력이 너무 떨어집니다.

두 소녀가 껴안는 연극에 대한 유노의 반응은 여러모로 재미있고, 우라조메가 가오리 외에도 연극부 부장 가지와라 같은 지인이 있고 나름 학교 생활을 잘 한다는 묘사도 팬이라면 볼 만 합니다. 그러나 추리적으로는 별볼일 없어서 별점은 2점입니다.

"그 꽃병에는 주의를"

가제가오카가 아닌, 사립 히텐 학원 중등부를 무대로 우라조메의 동생 교카가 탐정으로 활약하는 일상계 소품으로 복도에 놓인 꽃병을 깬 범인을 찾는 이야기입니다.

나름 정교한 무대 설정으로 범인을 특정하고, 왜 범인이 꽃병을 가져왔는지 추리하여 동기를 밝혀내고, 그 결과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를 차분하게 설명해 주는게 괜찮습니다. 특히 "물"의 사용법에 대한 추리 두 가지가 아주 그럴듯했어요. 구태여 생수를 구입한 건 화분이 깨진 장소를 위장하기 위해서!라는 추리에서, 그게 아니라 처음에는 화병의 물이 필요했던 것! 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설득력이 높았던 덕분입니다.
그다지 비중이 크지 않았던 교카의 학교 생활, 교우 관계 및 범인 야가라스의 논리적인 반박, 비야냥에 분노하는 모습에서 드러나는 성격 등의 디테일도 좋았고요.

문제는 야가라스의 말대로 나카자와와 소프트볼 부 아이들의 증언을 믿을 이유도 없고, 2층 교실에 사람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었다는 점입니다. 또 이렇게 한 방 먹은 다음에 재차 휴지통을 뒤져 폭죽을 찾아내는건 어설펐고, 극적인 드라마를 만들기 위한 억지스러운 설정에 불과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교카의 캐릭터 설정 자체가 굉장히 만화적이라는 것도 문제입니다. 백합계 쿨데레? 친구 센도 히메마리도 만화 등에 등장하는 전형적인 학생회 캐릭터라 너무 뻔했어요. 묘사를 디테일하게 하더라도 이렇게 뻔하면 딱히 깊이가 느껴지지는 않네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정말로 학교에서 일어날 수 있음직한 사건을 다룬 일상계라는 점, 교카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한 외전 형식의 성격은 마음에 들었지만 중반부 전개와 앞서 말씀드린 전형적인 캐릭터 묘사로 감점합니다. 이 작품도 마찬가지로 만화였다면 훨씬 좋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실린 짤막한 부록은 우라조메와 그의 아버지가 우연하게 사우나에서 마주친 순간을 그리고 있습니다. 우라조메 남매의 추리력은 아버지로부터의 유전임을 드러내는 이야기인데 추리에 있어 비약이 심한건 마찬가지며 워낙에 짧아 점수를 줄 만 한 부분도 없습니다.

2014/01/14

검정고양이의 산책 혹은 미학강의 - 모리 아키마로 / 이기웅 : 별점 2점

검정고양이의 산책 혹은 미학강의 - 4점
모리 아키마로 지음, 이기웅 옮김/포레

이하 내용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내가 하려는 건 미적 추리이고, 그에 따라 나타난 진상이 미적이지 않으면 내 관심은 그 시점에서 소멸될 거야."

'미학'이 주요 테마인 일상계 추리 연작 단편집. 제1회 애거서 크리스티 상을 수상하였다고 하네요. 전혀 몰랐던 작품인데, 국내 최고의 추리애호가 사이트인 "하우미스터리"에서 진행 중인 "2013년 올해의 추리소설" 이벤트에서 몇몇 분들이 언급하였길래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미학 전공자인 탐정이 등장하여 "미학 강의"를 이야기의 뼈대로 삼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야기를 다른 무언가와 절묘하게 겹쳐서 진행하는 작품은 일상계 연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형태이지만, "미학"이라는 소재는 정말이지 처음 봤습니다.

단지 독특한 수준에 그치지지도 않습니다. 미학 이론을 일상계 추리물 속에 결합하여 잘 녹여내고 있거든요. 화자인 "나"의 박사학위 논문 주제가 에드거 앨런 포라는 설정이라서 포의 작품을 중심으로 한 여러 가지 미학적 분석과 이론이 등장하는데, 실제 사건이 이러한 이론들과 엮여 나가는 과정이 제법 괜찮습니다. 실제 통하는 이론인지는 모르겠지만, 작품 속 검정고양이의 미학 이론과 논리도 읽으면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 정도로 그럴싸하고요. 덕분에 미학 이론에 대한 현학적인 재미만큼은 충분히 전해 줍니다.

아울러 특이한 탐정, 천재 탐정은 하늘의 별만큼이나 많지만 "미학"을 전문으로 하는 교수 탐정 역시 이 작품이 처음이었어요. 미학 전공이라는 점 외의 탐정에 대한 설정과 묘사는 천재 학자이자 잘난 척 덩어리로 사회성이 부족하고, 시니컬한 대사로 똘똘 뭉쳐 있는 점에서는 임상 범죄 학자 히무라 히데오나 갈릴레오 유가와가 바로 연상되는 탓에 그렇게 차별화되지는 않지만요. 오히려 설정과 묘사보다는 "검정고양이"라는 별명 외에는 이름이 등장하지 않고, 화자의 이름도 등장하지 않는게 더 특이했습니다. 추후 서술트릭에 써먹으려는 의도였을까요?

그러나 단점도 명확합니다. 첫 두 편 이외의 나머지 네 편은 추리적으로나 이야기 전개나 모두 미흡하여 완성도가 떨어집니다. 미학 이론과 추리가 제대로 조합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이후의 시리즈가 기대되지 않을 정도로 형편없었어요. 독특한 설정을 지속적으로 끌어나가기에는 여러모로 역부족인 느낌입니다.

그래서 전체 별점은 평균해서 2점입니다. 앞의 두 편은 미학 이론과 추리의 결합이 잘 이루어진 좋은 작품들로 별점 3점 이상은 충분하지만, 뒤의 네 편이 점수를 모두 깎아먹었습니다. 그래도 앞의 두 편만큼은 꼭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독특한 일상계 추리물을 찾으신다면 정답일 수도 있으니까요. e-book으로도 출간되었는데, 이 작품만큼은 각 단편별로 별도 구매할 수 있도록 하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수록작 별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달과 나의 거리"

시리즈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으로, "나"가 어머니의 정장에서 우연히 발견한 기이한 지도에 대한 수수께끼를 풀어나가는 내용입니다. 

"다케토리 이야기"의 원제는 "다케토리옹 이야기" 였는데, 달과 인간 모두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제목이 바뀌었다던가, 나폴레옹 3세가 고용한 오스만 남작이 파리에 가스등을 전면으로 도입하며 '예술의 학살자'임을 자처한 이유는 달을 대체하여 달의 주민을 파리에 살게 하기 위함이었다던가하는 등의 눈이 휭휭 돌아갈 정도로 현학적인 이야기가 끝없이 이어집니다. 거의 강의에 가깝게요.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러한 미학 강의가 무척 재미있다는 점입니다!

거기에 더해 지도의 수수께끼도 대단한건 아니지만 지도에 관계된 두 학자의 전공분야가 앞서 자세하게 설명한 이론과 딱 들어맞고, 진상 역시도 합리적으로 설명된다는 점에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암호로서의 가치가 없는 기이한 지도가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의 징표가 된다는건 별로 와닿지 않았지만, 그래도 전체적인 짜임새와 완성도는 좋았고 무엇보다도 미학이론과 일상계 추리의 결합이라는 독특한 아이디어가 잘 구현된 작품입니다. 새로운 시리즈의 도입부로는 차고 넘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벽과 모방"

3년전 "나"와 검은고양이가 처음 만나게 되었던 세미나 팀에서 여름 휴가를 계획했다. 장소는 팀원 중 한명인 세키마타의 가루이자와 별장이었다. 그러나 세키마타는 팀원들이 방문한 날 기이한 행동을 보인 뒤 자살한 시체로 발견되는데...

세키마타의 자살 원인을 분석하는 추리와 작품을 관통하는 바그너와 니체의 "벽" 이론이 절묘하게 결합된 작품입니다. 일본에서는 일반적이지만 서양에서는 말하는 벽은 공포의 대상일 수 밖에 없다 - 기본 개념의 붕괴- 는 것, "검은 고양이"에서의 벽을 해석하는 이론, "모방"과 "카피"의 차이 - 모방은 정신과 행위에 관한 개념이지만 카피는 완성된 결과만을 지향하는 것 - 를 설명해 주면서 이 개념이 이 사건에 깊게 얽혀있는 것을 간단하게 설명해 주는 등 현학적인 이론 소개는 아주 좋았습니다.

다만 세키마타의 모방 행위는 비정상적이라서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단점이 있기는 합니다. 그래도 미학과 추리를 절묘하게 엮어나간 전개는 기존에 알고있던 추리 소설의 상식을 깨는, 멋진 이야기였다 생각됩니다. 강의가 지나치게 장황하지 않아서 이해하기 쉬우며 적절한 길이로 마무리된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고요. 별점은 4점입니다.

"물의 레토릭"

연인이 동반자살로 의심되는데 여자가 사용한 향수의 향기가 이후에도 떠돈다는 괴담(?)의 진상을 밝혀낸다는 내용의 작품. 

그런데 "마리 로제의 수수께끼"와 사건을 엮는건 무리수였습니다. 물 - 여성의 시체라는 모티브 외에는 아무런 관계가 없기 때문입니다. 미학강의와 일상계 추리를 엮는다는 설정에 지나치게 얽매인 느낌입니다. 사건도 오해와 잘못된 증언이 결합된 것일 뿐이라서 사건으로 보기도 어렵고요. 우연과 작위에 의한 전개가 많다는 것도 감점요인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점수를 줄 만한 부분이 없습니다.

"숨기면 꽃"

검은 고양이가 이전에 알고 있던 여류학자 이구스가 실종되어 그녀의 행방을 쫓는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번에는 "도둑맞은 편지"와 말라르메의 "주사위 던지기"를 주로 강의하는데, 내용에 비하면 너무 거창하네요. 알맹이는 별거 없는데 포장만 요란한 종합선물세트같은 작품이었달까요. 진상도 딱히 설득력이 없어서 전혀 와닿지 않았고요. 머리를 깎았다고 해서 딸을 못 알아볼 부모가 세상에 얼마나 있을까요? 눈이 안 좋다고 해도 저같으면 목소리로 알아볼 수 있을거라 자신합니다.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두개골 속에서"

5년전 혜성처럼 데뷰했으나 데뷰작 이후 사라져 버린 천재시인 시조 도미아키의 데뷰 5주년 기념 파티에서 그의 신작이 낭독되었다. 그 후 시조와 동일인물이라고 의심받던 영화감독 에즈미가 자살하는데...

"황금충"에서 리그랜드와 황금충이 서로에게 침입했다고 설명하는 미학 강의만큼은 재미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위의 이야기들과 같습니다. 이 미학 강의가 시조 도미아키와 에즈미 감독의 죽음을 설명하는데 적절하지 않고, 오히려 억지스럽기만 했다는 점입니다. 사디즘 - 마조히즘의 관계처럼 에즈미는 관능 속에서 생을 긍정하는 반면, 시조는 그로테스크한 모티브 속에서 유머러스하게 죽음을 긍정한다는 정 반대의 작품세계를 가지고 있다는 부연 설명만으로도 이야기 전개는 충분히 가능했습니다. 검은 고양이의 누나 레이카가 제대로 설명만 해 주면 애시당초 사건이 될 수도 없는 이야기이기도 하고요.

역시나 설정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무리수를 두었다고 밖에는 생각되지 않네요. 별점은 1.5점입니다. 내용보다는 미학강의가 더 좋아서 완벽하게 주객전도된 느낌입니다.

"달과 왕"

한 노교수의 죽음, 그리고 그와 젊은 여류학자와의 사랑 이야기를 그린 단편.

포의 "까마귀"가 그리스 음악적인 시라는 것, 여기서 까마귀의 "Nevermore"는 악기를 의미할 수 있다는 등의 현란한 미학 강의만큼은 여전히 볼거리입니다. 작중 등장하는 그리스 연극 "쫓는 왕"과 작중 사건을 긴밀하게 연결하는 전개도 꽤 괜찮았고요.

그러나 추리적으로는 전혀 건질게 없습니다. 아무리 눈치가 없어도 그렇지, 바로 앞의 사람이 소리를 내는데 그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상식적으로 전혀 납득이 되지 않거든요. "골전도"를 응용한 발성법이라는 설정은 불필요한 사족이었습니다. 어치피 말도 안되는 내용에, 선하나 더 긋는다고 뭐가 달라지겠습니까... 선글라스를 끼면 신호등이 푸른달로 보인다는 마지막 이야기도 지나치게 만화적이라 별로였어요.

그래도 직전의 막장 작품들보다는 낫네요. 내용면에서 설득력도 있고, 결말 부분에서 나와 검정고양이 관계의 진전을 암시하는 달달한 전개도 선보인 덕분이지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2013/10/21

귀동냥 - 나가오카 히로키 / 추지나 : 별점 2.5점

귀동냥 - 6점
나가오카 히로키 지음, 추지나 옮김/레드박스

일본작가 나가오카 히로키의 단편집. 표제작 포함 전부 4편의 단편이 실려있습니다. 국내 최고의 추리문학 커뮤니티 "하우미스터리"에서 진행한 이벤트에 당첨되어 운좋게 읽게 되었습니다. 리뷰 전에 자리를 빌어 관계자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일단 이력이 화려한데 2008년 표제작 "귀동냥"이 제 61회 일본 추리작가 협회상 단편상을 수상하였으며 이후 발표된 이 단편집이 2012년 "추천 문고 왕국 2012" (이건 무슨 상일까요?)에서 국내 미스터리 부분 1위에 오르며 폭발적 반응을 일으켰다고 합니다. 판매도 꽤 괜찮았다고 하고요.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상을 수상할 정도의 작품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장점이 없는건 아닙니다. 우선, 최근의 추세라 할 수 있는 연작이나 시리즈물이 아니라는 점도 마음에 듭니다. 각 단편이 전부 다른 주인공과 설정, 배경으로 이루어진 독립적인 작품으로 과거 오 헨리 시대에서나 봤었던 정통 단편물입니다. 뭐 연작, 시리즈물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작가 입장에서, 또 판매나 마케팅 측면에서 비효율적일 수 밖에 없는 이런 스타일로 창작했다는 것에서 작가의 신조가 느껴져서 좋았습니다. 또 모든 단편이 제가 좋아하는 잔잔한 일상계물이라는 것도 마음에 들었고요.

하지만 이야기 측면에서는 아주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들어요. 우선 수록된 모든 단편이 사건 발생과 마지막 극적 해결이라는 오 헨리 스타일의 정석적인 단편 구성으로 전개되는데, 사건의 발생과 전개가 설득력이 떨어지는 부분이 많은 탓입니다. 예를 들자면 충분히 구두로 설명할 수 있는 부분을 설명해주지 않아 오해를 키운다던가 하는 식으로요. 억지스러운 설정이 눈에 뜨이는것도 불만이고요. (이러한 점들은 아래의 각 단편별 상세 소개에서 언급하도록 하겠습니다.)

또 같은 일상계라 하더라도 추리쪽에 좀 더 많이 치우친 작품들 - 가노 도모코의 작품들이나 요네자와 호노부의 일상계 추리물, 히가시노 게이고나 미야베 미유키의 일상계 작품들 등- 과는 다르게 추리보다는 심리 묘사와 전개에 더 주력하는 작품 - 고이케 마리코의 작품들과 같은 - 인데, 이 역시 기대에 미치지 못한 점이었습니다. 이런 류의 작품을 싫어하는건 아닌데, 추리작가협회상 수상작이라는 정보를 먼저 접해서 정통 추리쪽으로 기대가 너무 컸네요. 충분히 추리쪽으로 강화할 수 있는 여지가 많은 것 같아 아쉽기도 했고요.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충분히 읽는 재미는 있으며 일상계를 좋아하시고 단편을 좋아하시는 분들께 즐거움을 드릴 수 있는 작품집이나 추리적으로 약간 미묘한 측면이 있다는 점은 감안하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좋은 기회를 제공해주신 출판사, 관계자 여러분께는 다시금 깊은 감사 드립니다.

아래 수록작별 상세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으니 주의 부탁드립니다.

"경로이탈"

구급대원 하스카와는 대장 무로후시의 딸 가나와 결혼을 앞두고 있다. 그런데 가나는 6개월 전 외과의 마스바라의 차에 치어 휠체어에 의존하는 몸이 되어 버렸다. 긴급한 상해사건으로 출동한 하스카와와 일행은 피해자가 가나 사건의 검사였던 구즈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사고를 일으킨 의사 마스바라를 기소하지 않고 풀어주었었다.

칼에 찔린 구즈이를 병원으로 호송하는 와중에 무로후시는 바로 병원으로 이동하지 않고 사이렌을 켠채 병원 주변을 맴돌며, 하스카와에게 전화기를 주며 귀에서 떼지 말라는 이해할 수 없는 지시를 내리는데....

무로후시가 복수때문에 구즈이를 죽게 내버려두는 것인가?가 사건의 핵심인 작품. 결국 결말은 나름 훈훈한 일상계스러운 결말로 끝나게 됩니다. 떨어진 핸드폰 + 사이렌 소리를 이용하여 위치를 알아낸다는 트릭 하나로 이만큼 이야기를 뽑아낸 것은 감탄스럽네요. 마스바라의 지병을 복선으로 배치한 것도 절묘하고요.

그러나 무로후시가 아무리 과묵하더라도 상황만 설명했더라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텐데, 왜 아무 말 없이 상황을 복잡하게 만드는지는 납득하기 어려웠어요. 혹 사고라도 생긴다면 대장이 아무리 책임을 지더라도 다른 대원들한테 아무런 데미지가 없지는 않았을텐데 말이지요.
아울러 상황을 설명하지 않은 것이 구즈이에게 원한을 품은 탓도 있다면, 마지막의 감동도 희석되는 느낌입니다. 구즈이가 기소하지 않은 이유를 자백하는 대사도 사족이었습니다. 이러한 단점들 때문에 감점하여 별점은 2.5점입니다.

"귀동냥"

경찰 하즈미 게이코는 딸 나츠키와 둘이서만 살아가는 모자 가정의 가장이자 경찰로 이웃에게 발생한 집털이 사건을 맡은 뒤, 유력한 용의자인 네코자키 (요코자키)가 이미 체포되어 구류된 상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네코자키는 하즈미에게 접근하여 면회를 요청하는 등 기이한 행동을 반복하는데...

제목의 "귀동냥"을 상대방이 꼭 듣고 싶은 정보를 우연히 알게 만드는 것이 포인트라고 정의내린 후, 이러한 귀동냥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작품입니다.

네코자키가 귀동냥을 이용하여 진범을 유도하는 것, 그리고 나츠키의 엽서를 통한 커뮤니케이션이 귀동냥의 형식을 빌어 후사노 할머니를 안심시켜 주는 것이었다는 두 가지 이야기가 얽히는데 깔끔한 전개가 인상적입니다. 하즈미가 네코자키의 보복을 우려하는 부분에서부터 긴장을 쌓아나가다가 폭발시키는 과정도 일품이고요.
앞서 말했듯 "귀동냥" 설정을 잘 활용하고 있는 것과 일상계 왕도스러운 훈훈한 결말도 마음에 듭니다.

하지만 이 작품도 앞선 작품과 마찬가지로 설득력 측면에서는 아쉬움을 남깁니다. 일단 네코자키가 구태여 귀동냥 형식을 빌려 진범에게 내사가 진행중이라는 거짓 정보를 흘릴 필요가 있었을지 의문입니다. 그냥 형사에게 이야기하는게 더 쉽지 않았을까요? 또 이렇게 정보를 들었다고 해서 사이토가 바로 자수할 것이라고 생각한 이유도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나츠키가 왜 엽서를 통해 이야기를 전달하는지도 잘 모르겠더군요. 그냥 어머니한테 할머니를 안심시켜달라고 이야기하는게 더 나았을것 같은데 말이죠.

이런저런 이유로 감점하여 별점은 2.5점입니다.

"899"

소방대원 모로가미는 이웃에서 홀로 갓난아기 아이리를 키우며 살아가는 하쓰미에게 반했다. 그러던 중 그녀가 사는 주택에 화재가 발생하고 상황이 899 (긴급구조자) 마루아카 (1세 미만의 영아)라는 암호로 전달되는데...

아이를 잃은 아픈 경험을 가진 소방대원 가사마가 아이리가 학대를 받은 것을 파악하고 잠깐 동안 아이를 숨겨 엄마에게 아이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려준다는 것이 핵심 내용인데.... 이 책 전체를 통틀어 가장 어이가 없는 작품이었습니다. 긴박한 상황에서 아이가 학대받은 것을 순간적으로 파악한다는 것도 설득력이 떨어지지만, 목적을 위해 아이를 비닐봉지에 넣어 잠깐 숨긴다는 발상은 애시당초 이해불가였어요. 구한 다음 바로 경찰을 부르거나 하면 되는 거잖아요? 아이가 다치려면 어쩔려고 했던건지...

아이가 사각거리는 소리를 좋아한다던가, 가사마가 장을 본 뒤 큰 비닐봉투를 재활용을 위해 따로 챙긴다던가 하는 식의 단서가 공정하게 제공된다는 점은 마음에 들고, 모로가미의 애타는 심리묘사도 괜찮은 편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핵심 이야기의 설득력이 제로에 가깝기에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별점은 1.5점입니다.

"고민 상자"

갱생보호시설의 원장 유코는 퇴소를 앞둔 우스이의 앞길에 왠지 모를 신경이 쓰였다. 그는 만취한채 자전거로 여자아이를 치여 죽인 죄로 구속된 뒤 출소한 인물이었다. 우시이는 입사한 이즈카 제작소 기숙사에 입주하는데 1주일에 걸쳐 가전제품을 보러 다니거나 선술집을 돌아다니는 이상한 행동을 보이다가 투신 자살을 시도하는데...

설정은 굉장히 묵직하지만 실제 내용은 아주 담담한 일상계의 왕도와도 같은 작품입니다.

핵심 단서(?)인 유코의 NHK 대담 방송이 중요한 소재로 계속 언급되기 때문에 진상에 대해 독자가 눈치채기 쉽다는 단점은 있지만 유코의 심리묘사 등 디테일한 묘사가 아주 뛰어나며, 우스이의 행적을 추적하는 과정에서의 긴장감도 충분합니다. 아울러 다른 작품들과는 다르게 내용의 설득력이 충분히 보장되고 있다는 점에서 마음에 드네요. 물건을 버리기 위한 "고민 상자"라는 모티브를 잘 엮은 것도 좋았고요.

이 작품집의 베스트로 꼽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2008/10/14

카즈는 행복해 - 미유키 노마 / 아이코 우에다 : 별점 3.5점

카즈는 행복해 1 - 8점
미유키 노마 지음/대원씨아이(만화)

최근 좀 심하게 달린(?) 탓에 포스팅거리가 떨어져 집에 뒹굴고 있는 잊혀진 추리만화를 끄집어 내 보았습니다. 이 책의 부제는 "베이비시터 카즈의 하트 탐정 첫번째 이야기"로, 제목 그대로 주인공이 베이비시터 되겠습니다.

프로 베이비시터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만화는 제가 이전에도, 이후에도 본 적은 없지만 전문가적인 지식을 나열하는 "프로의 세계" 류의 만화는 아니며 놀랍게도 "추리만화" 라는 것이 이 작품의 포인트라 할 수 있으며, 베이비시터가 탐정역을 맡고 있는 만큼 대부분 일상 밀착형 사건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 매력적인 작품입니다. 

일상 밀착 정도는 정말 대단해서 일상계 추리물로 잘 알려진 여러가지 작품들("나의 미스터리한 일상", "나선계단의 앨리스", "봄철 딸기 타르트 사건" 등)도 이 책과 비교한다면 대하 서사 추리물로 보일만큼 소박하고 담백한 구성으로만 이루어져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불륜이 의심되는 아기 엄마의 정체는? 우산에 씌우는 비닐 봉지를 수십장 모아가는 남자의 정체는? 같은 류의 소소한 사건들이 주로 펼쳐집니다. 한마디로 말해 그야말로 일상계 중의 일상계라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담백한 일상계임에도 불구하고 추리만화로서의 가치는 정통 본격물에 비해 그다지 뒤떨어지지 않는게 가장 큰 장점이기도 합니다. 이야기의 전개와 추리의 과정이 굉장히 합리적이에요. 단서의 제공도 공정한 편이고요. 단편 옴니버스 물이라 이야기 하나하나가 굉장히 짧은데도 한편에 이야기를 잘 압축하여 시작부터 결론까지의 설득력도 높습니다. 2권부터 큰 사건(그래봤자 아주 약간이지만요)이 벌어져서 스케일이 커지는 부분은 그다지 마음에 들지는 않았습니다만, 전체적인 완성도는 상당한 수준입니다.

아울러 노마 미유키씨의 원작을 동글동글하고 귀엽게 구현한 그림도 마음에 듭니다. 노마 미유키 씨도 만화가이긴 한데 작품은 몇개 찾아보니 확실히 이 만화를 그린 우에다 아이코씨 그림이 훨~씬 귀여우면서도 작품과 잘 맞아 떨어지는 것 같네요. 일상계 작품이라 그런지 이 작품처럼 귀여운 순정만화 스타일이 잘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고요.

개인적인 별점은 1권만으로는 별 4점 입니다. 2권까지 포함한다면 별 3.5점이고요. 그나저나, 그다지 인기는 없었던 탓에 단행본은 달랑 2권 나오고 끝났다는 것이 아쉽습니다. 작가도 잊혀진 듯 이후의 작품은 출간된 것도 없네요(국내기준입니다). 일상계 추리물이라서 이야기가 별로 극적이지 않고, 내용이 너무 소박하여고담백한 탓에 "김전일"로 대변되는 연쇄살인범이 판치는 만화들과 한판 붙기에는 당시 분위기상 무리가 있긴 했을겁니다. 개인적으로는 시대를 너무 앞서간 탓도 큰 것 같은데 지금 보아도 추리만화로서의 가치는 충분한 작품이기에 Q.E.D의 소소한 일상 추리가 마음에 드셨던 분이라면 꼭 한번 읽어 보시길 권하고 싶습니다. 조사해 보니 현재 절판입니다만, 뭐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는 법이겠죠.

2013/03/17

매스커레이드 호텔 - 히가시노 게이고 / 양윤옥 : 별점 2.5점

매스커레이드 호텔 - 6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현대문학

도쿄에서 의문의 살인 사건이 연이어 발생했다. 피해자는 30세 전후의 회사원, 43세의 주부, 53세의 고등학교 교사였고, 사건 현장에는 수수께끼의 숫자가 남겨져 있었다.

45.761871, 143.803944
45.648055, 149.850829
45.678738, 157.788585

경찰은 이 숫자를 해독해내는 데 성공했다. 숫자는 다음 범행장소를 예고하는 메시지였다. 메시지에 의해 다음 범행장소로 예고된 곳은 최고급 호텔 코르테시아도쿄 호텔이었다.

경찰은 네 번째 살인을 막기 위해 호텔에 수사관들을 대거 급파하고 벨보이, 하우스키퍼, 투숙객 등으로 위장한 형사들이 잠복근무에 돌입했다. 닛타 형사도 호텔의 간판 부서인 프런트 직원으로 위장해 잠입 수사를 시작했다. 진짜 호텔리어처럼 보이기 위해 베테랑 호텔리어인 야마기시 나오미의 지도를 받으며, 둘은 사건 해결을 위해 함께 협력하는데...

히가시노 게이고의 비교적 최신 장편. 기둥 줄거리는 연쇄살인사건이라는 강력 사건이지만, 가운 절도, 장님인 척하는 할머니, 스토커에게 쫓기고 있다는 미인, 끊임없이 어이없는 클레임을 거는 손님이라는 일상계 사건이 연달아 벌어진다는 구성이 독특합니다.

또한 이 일상계 사건들이 모두 나름대로의 트릭이 존재하고, 이 트릭들에서 힌트를 얻어 범행의 진상에 접근해 나가는 전개는 가가 형사 시리즈 "신참자"를 연상케 합니다. 단편 연작물 느낌을 주면서도 기둥 줄거리와 잘 엮어나가는건 판박이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일상계물에 비하면, 본편 이야기인 연쇄살인사건 이야기는 많이 별로입니다. 일단 상관없는 살인들을 연쇄살인사건으로 위장하여 진상을 흐리게 만든다는 설정부터가 "ABC 살인사건" 등 다양한 작품에서 이미 사용되었기에 뭔가 다른 아이디어가 필요했을 텐데, 그런 게 전혀 없다는 문제가 너무 큽니다. "호그 연속살인" 정도의 임팩트는 줬어야 했을 텐데 말이지요.

그리고 암호도 억지스럽습니다. 연쇄살인처럼 보이게 하려면 "살인범 X" 같은 이니셜로도 충분했을 테고, 모방 범죄가 우려된다면 특별한 폰트와 사이즈 정도만 써도 충분했을 텐데 괜히 어렵게 꼬아놓기만 했으니까요. 호텔을 콕 집어 범행 장소로 지정할 이유도 명확하지 않습니다. 경찰의 주목을 끌어서 유리한 점이 뭐가 있을까요?

그 외에도 각 사건별로도 어설픈 점이 많아요. 예를 들면 오카베의 알리바이는 억지스럽습니다. 그때 옛 애인이 전화를 했으리라는 보장도 없을 뿐 아니라, 경찰에서 통화 내역을 조사했더라면 금방 진상을 알아낼 수 있었을 겁니다. 혼자만 PC를 사용하게 만들었다는 것도 말이 안 되고요.

진상도 어딘가에서 본 듯한 내용이며 - "낯선 승객"이 생각나네요 -, 범인의 동기 역시 설득력이 떨어져서 점수를 주기 어렵습니다.

물론 닛타와 야마기시 나오미의 밀당도 재미나고 소소한 일상계 트릭들은 충분히 즐길 만했습니다. 호텔이라는 장소에서 일하는 여러 전문가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는 점도 좋았고요.  제 별점은 2.5 점입니다. 차라리 호텔을 무대로 한 일상계 추리물이라면 더 좋았을 겁니다. 무리하게 장편을 만든 느낌이에요.

2010/06/30

구적초 - 미야베 미유키 / 김은모 : 별점 2.5점

구적초 - 6점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은모 옮김/북스피어

초능력자들이 등장하는 3편의 작품이 실려있는, 미야베 미유키의 중단편집입니다.

보통 초능력자 SF는 능력자들이 여러가지 무거운 사명을 짊어지고 의문의 조직과 싸워나가는 한편, 자신의 운명과 힘에 대한 두려움같은걸 느끼고 고뇌하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그에 반해, 이 작품은 너무나 평범한 일상계에 가깝습니다. 힘이 그렇게 대단한 것도 아니고, 힘에 대한 대단한 배경설명이 있지도 않고(자연발생적인 것), 힘의 소유자들도 평범한 일반인들이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일상계 초능력 SF물'이라는 장르가 있다면 그 안에서 대표를 다툴 것 같은 느낌이에요.

이렇게 쓰면 시시해 보일 수도 있는데, 미야베 미유키의 글 쓰는 재주 하나만큼은 역시나 반짝반짝 눈이 부실 정도! 읽는 재미도 탁월하고 특유의 심리묘사는 여전히 발군이라 시간가는줄 모르고 읽을 수 있었습니다. 
다만 추리적으로 조금 더 볼만한 부분이 많았더라면 하는 아쉬움, 그리고 두번째 작품 "번제"가 좀 이질적이라 감점합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그나저나 읽다가 들은 생각인데, 이 책에서처럼 약간의 능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다지 큰 이득은 없다는 것이 맞는 이야기같아요. 뭔가 예지는 할 수 있지만 그 사건이 일어날때 까지는 뭘 예지했는지 알 수 없는 예지능력, 사람과 접촉해야만 하고 접촉 순간에 얻어지는 단편적인 의미를 조합해야 하는 투시능력 모두 한계도 명확할 뿐더러 이러한 능력이 있다 하더라도 별로 쓸데가 없거든요. 혼인빙자 사기범한테는 무척이나 유용한 능력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죠...

수록작별 간단한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스러질 때까지"
어렸을적 사고로 부모를 잃은 도모코가 유일한 남은 혈육인 할머니의 죽음 이후 집을 정리하다가 오래된 비디오테이프를 발견한 뒤 벌어지는 이야기.

비디오 테이프에 찍힌 어린 도모코의 행동과 말은 예지능력이었다는 전개는 흥미진진한데, 실의에 빠진 도모코의 자살 시도라는 뻔한 결말은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그냥저냥 무난한 작품이에요. 별점은 2.5점입니다.

"번제"
어린 동생을 말도 안돼는 사고로 잃은 가즈키에게 아오키 준코라는 회사 동료가 접근하여 범인을 죽여주겠다고 약속한다. 그녀는 염화능력자(파이로키네시스) 였고, 자신의 능력을 정당하게 사용하기를 원해왔었다.

이 작품집 속에서 가장 처지는 작품입니다. 아오키 준코가 가즈키에게 접근한 이유부터가 설득력이 없습니다.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면 그냥 신문이나 TV 방송에서 죽어 마땅한 인간들을 골라내면 됩니다. 
그리고 아오키 준코는 전형적인 강력한 초능력자이기 때문에 내용이나 전개가 기존의 초능력 SF물과 별로 다르지 않다는 것도 감점 요소입니다. 이 작품집의 가장 큰 매력은 '일상계스러운 맛'인데 너무 이질적이며, 뻔했기 때문입니다.
가즈키 동생의 뺑소니 사고에 대한 이야기는 재미있었고 조금 여성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본 여운을 남기는 묘사는 인상적이지만, 앞서의 단점이 더 크기에 별점은 2점입니다.

"구적초"
남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천리안 다카코는 능력을 활용하여 형사가 되지만 서서히 자신의 능력을 잃어간다.

'초능력 일상계 추리물'이라고 부를 수 있는 작품입니다. 다카코의 능력을 통해 단서가 입수된다는 점에서는 '초능력', 공원에 출몰하는 변태 사건과 고사카 미치루 유괴 사건은 '추리물'로서도 출중하고 '일상계'스러운 맛도 잘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다카코의 능력이 감퇴해가는 과정과 더불어 이야기가 전개되는 부분에서 명확한 이유라도 좀 밝혀주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긴박감이 있긴 하지만 영문을 알 수 없기 때문에 조금 답답했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2011/06/25

Q.E.D 정주행. 1권부터 30권까지 내맘대로 Best

뭔가 꽉 막힌 듯 답답한 게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 요즘입니다. 좋아하는 독서를 마음 편히 즐긴 것도 오래전 일인 것 같네요. 그래서 기분 전환 삼아 쌓아둔 "Q.E.D"를 1권부터 다시 정주행했습니다. 누군가의 말처럼 "책장 어디를 펼쳐도 마음에 드는" 그런 작품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최소한 스트레스가 해소되는 느낌은 드니까요.

이왕 다시 정주행하는 김에 개인적으로 최고의 에피소드를 뽑아보았습니다. 생각보다 일상계 작품이 적어서 좀 의외였어요. 다른 분들의 선택이 어떨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베스트 5

4권 - 야곱의 사다리

오늘날 "Q.E.D" 장기 연재의 발판이 된 작품이 아닐까 싶습니다. 캐릭터는 독특했지만, 다소 뻔했던 이전 에피소드들과 차별화되는, 이른바 수학·과학적 지식이 실제 사건과 잘 결합되면서 만화적 전개를 통해 그 시너지를 극대화시킨다는 "Q.E.D"만의 장점이 잘 드러난 에피소드이기 때문입니다. 동기가 좀 어이없기는 하지만, 이 정도면 스케일도 적당한 편이고, 무엇보다도 인공생명을 의인화하여 성경 속 이야기와 결합한 전개가 아주 절묘했어요.

10권 - 마녀의 손안에

역시나 "Q.E.D"스러운 명 에피소드입니다. 토마가 10살 때인 MIT 재학 시절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역사적 사실인 샐럼 마녀재판과 현대의 살인사건을 접목한 전개도 좋지만, 무엇보다도 범인이 1년여에 걸쳐 계획한 범죄와 트릭이 최고 수준입니다. 법정 드라마스러운 전개도 좋았고요. 전체 시리즈를 통틀어도 최고로 꼽을 만 합니다.

16권 - 죽은 자의 눈물

핵심 트릭으로 시체 감추기 + 알리바이 위장 공작이 등장합니다. 본격물답지만 흔해빠진 설정인데, 트릭의 설득력도 높고 범인의 계획이 꼼꼼하게 짜여 있는 웰메이드 추리물입니다. 토마가 범인을 눈치챈 이유도 깔끔해서 좋았고요. 무엇보다도 만화로는 보기 드문 심리 서스펜스를 묘사가 베스트로 선정한 가장 큰 이유입니다. 마지막 토마의 '사기극(?)' 역시 눈여겨볼 만한 부분입니다.

20권 - 다망한 에나리 씨

탐정 동호회 회장 에나리의 할머니에게 닥친 수수께끼 같은 사건을 그린 전형적인 일상계 소품입니다. 정말로 별거 아닌 사건을 진지하게 본격 추리물로 구성한 일상계의 왕도! 그 와중에 웃음과 재치를 빼놓지 않은 점도 높이 평가할 만 합니다. 베스트로 선정되는 것이 당연한 에피소드입니다.

27권 - 입증 책임

학교 내 모의재판으로 배심원제도를 체험하는 행사에 참관하게 된 토마가 과거 실제 있었던 사건의 진상을 알게 된다는 작품. 

배심원 제도를 이해하는 데 아주 효과적이었던, 역시 "Q.E.D"의 장점인 학습만화스러운 전개가 빛나며, 사건의 맹점을 파헤치는 추리적인 부분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법정물스러운 분위기도 합격점이고요. 마지막에 진상을 꿰뚫고 있으면서도 검찰의 입증 책임 때문에 무죄 쪽에 힘을 실어준 토마의 행동이 역시나 토마답다는 것도 좋았어요. 캐릭터가 이렇게 일관되게 유지되기도 힘든 일이잖아요?

그리고 아래는 아쉬운 가작들. 좋은 작품들이지만 아주 약간 아쉬움이 남아 베스트 5에는 아깝게 선정되지 못한 에피소드들입니다.


아깝다, 가작!

9권 - 얼어붙은 철퇴

이미 잊혀진 과거의 사건을 현재에 밝혀낸다는 줄거리인데, 흡사 "용의자 X의 헌신"을 보는 듯한 두 천재 수학자의 대결이 볼만합니다(선·악의 캐릭터가 뒤바뀐 감은 있지만요). 특히 결말 부분에서 카치도키 다리가 다시 열리는 순간의 재회라는 극적 장치 덕분에 굉장히 드라마틱한 작품으로 완성되었습니다. 아쉽게도 핵심 트릭인 카치도키 다리 관 속에 시체를 넣는다는 트릭이 별로라서 가작이지만, 전개만큼은 높이 평가하고 싶습니다.

11권 - 겨울 동물원

무명 추리작가가 자신이 고안한 트릭으로 사건을 저지른다는 일상계스러운 본격물입니다. 추리작가의 유령이 사건을 끌어가는 유머러스한 진행도 좋지만, 유치한 트릭을 한 번 더 포장하는 결말이 마음에 들어 가작으로 선정합니다. 그런데 궁금한 게 한 가지. 토마는 유령의 존재마저 눈치챘던 걸까요?

13권 - 재난의 사나이

로키와 에바 다음으로 출연 비중이 높은 토마의 대학 동기 알렌 브레이드와의 두뇌게임을 그린 에피소드. 렘브란트의 작품으로 장물이기도 한 그림을 놓고 벌이는 게임이 상당히 흥미진진합니다. 후쿠모토 노부유키나 카이타니 시노부 같은 게임 만화 거장들의 작품처럼 긴박감 넘치는 전개가 있었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에피소드입니다.

17권 - 까마중

영화 촬영장을 무대로 한 밀실 트릭이 등장하는 에피소드로, 트릭 자체는 경찰 수사로 밝혀질 수준이라 높은 수준은 아닙니다. 하지만 설정과 트릭이 작품 속 영화 "까마중"과 병렬로 진행되며 완벽하게 맞물리는 점이 아주 인상적이었어요. 트릭만 좀 더 정교했다면 만점을 받아도 될 만한 작품입니다.

24권 - 크리스마스 이브이브

크리스마스이브의 밤, 엄청나게 바쁜 노래방에서 벌어진 희한한 사건을 그린 일상계 에피소드. 소소하지만 짜임새 있는 전개와 함께 일종의 암호 트릭이 등장하는 등 풍성함이 좋았습니다.

25권 - 여름의 타임캡슐

가나가 초등학교 때 묻은 타임캡슐 속 보물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가는 이야기. 사건의 동기가 설득력 있고, 추리의 과정도 합리적일 뿐만 아니라 추억의 소중함을 알려주는 여운이 인상적인 작품이라 가작으로 선정했습니다.

2015/11/23

야경 - 요네자와 호노부 / 김선영 : 별점 2.5점

야경 - 6점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김선영 옮김/엘릭시르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모두 6편의 단편이 수록된 요네자와 호노부스탠드얼론 단편집.

요네자와 호노부는 널리 알려진 "빙과"같은 일상계 단편의 강자인데, 여기 수록된 작품들은 일상계라고 보기 어려운 묵직한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대체로 살인 사건을 다루고 있고요.

그래도 일상계스러운 분위기가 살짝 묻어나는 게 신기하기도 했고 추리적으로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많아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석류"라는 용서하기 어려운 쓰레기 망작이 하나 섞여 있기는 하지만 다른 작품들의 수준이 무난하기에 전체 평균 별점은 2.5점이네요. "만원"이 워낙 잘 빠진 작품이라 멱살잡고 평점을 올려놓은 감도 없잖아 있지만, 그래도 요네자와 호노부 팬 분들께 추천드릴 만합니다. 이런저런 상을 탄 이유는 확실히 있는 듯싶군요.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야경"

신입 경찰 가와토 히로시의 순직 사고의 진상은? 모든 것은 가와토의 의도로, 목적은 그가 실수로 발포한 총알을 은폐하기 위해서였다. 가와토는 불륜을 가장하여 다바라를 자극한 뒤 발포하여 살해하고, 자기가 이전에 쐈던 총알을 현장에 버리는데 성공했지만 다바라의 믿을 수 없는 생명력 탓에 목숨을 잃게 된 것이었다...

가와토 죽음의 진상을 파출소장 야나오카 경사의 시점으로 풀어나갑니다. 무려 두 명이나 사망한 무거운 내용이지만 분위기는 묘하게 일상계에 가깝습니다. 캐릭터가 선명하고 '실제 있을 법하다'라는 인상을 강하게 전해주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문제아 가와토보다는 경찰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왕따를 자행한 야나오카 경사가 더욱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놈, 정말 나쁜 놈이더라고요.

딱 한 가지, 가와토는 정말로 경찰에 맞지 않는 소심한 민폐덩어리였다는 결말이 약간 찜찜하나 그 외 전개는 깔끔한 수작입니다. 역시나 일상계 전문가 요네자와 호노부답네요. 별점은 3점입니다. 가와토가 실수로 발포했다는 것에 지나친 우연이 겹쳐 있었다는 점에서 감점하지만, 읽을 만한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사인숙"

사라진 연인 사와코를 찾아 머나먼 시골 온천여관으로 향한 "나". 그곳은 자살의 명소로 알려진 곳으로, 누군가 흘린 유서를 발견한 사와코가 어떤 손님이 죽으려 하는지 찾아달라고 부탁하는데...

유서에 쓰인 글귀 중 "오늘로 이 년", "오늘 죽었다고 증언해 주시면 여한이 없겠습니다"를 통해 자살의 목적은 보험이지만 보험을 위해서는 이름과 날짜라는 중요한 요소가 빠져 있다는걸 알아낸 뒤, 나머지 부분은 물에 흘려보냈다는 결론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좋습니다. 사와코의 힘겨움을 이해하지 못했던 과거 때문에 사건에 몰두하는 "나"의 심리 묘사 역시 설득력이 넘치고요. 마지막에 자살을 목적으로 한 사람이 사실은 두 명이었다는 반전도 의외성이 충분했습니다.

하지만 유카타 색깔이라는 단서는 많이 부족했으며, 사와코가 그렇게까지 자살을 막고 싶었다면 입구 쪽에 CCTV를 설치하면 되는 문제인데 이게 왜 사건이 되는지 모르겠네요. 이런 걸 보면 사와코도 결국 죽음을 홍보에 이용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싶어요. 이러한 사와코의 기만 때문에 감점하여 별점은 2.5점입니다.

"석류"

딸 유코가 아버지 나루미를 남자로 느낀다는 야설 수준의 이야기. 둘이서 석류를 먹었느니 어쨌느니 하는, 두 번 생각하기도 싫을 정도로 찝찝하고 기분 더러운 내용입니다. 유코가 쓰끼꼬를 매질한 반전 정도는 기억에 남으나 도저히 점수를 줄 수 없는 쓰레기입니다. 별점은 없습니다.

"만등"

이케다 상사의 이타미와 OGO의 모리시타는 개발도상국 방글라데시의 가스전 개발을 위해 이를 거부하던 마을 장로 알람을 살해했다. 그러나 모리시타는 죄책감에 회사를 그만두고 일본으로 향했고, 불안해진 이타미는 그를 쫓아 입을 막으려 하는데...

모리시타가 콜레라에 걸렸으며 전 일본이 그를 쫓는다는 아이디어가 아주 좋았어요. 이타미와 모리시타가 연결되어 있다는건 아무도 모르지만 공항 검역에서 이미 이상 없는 것으로 밝혀진 이타미가 콜레라에 걸렸다면, 원인은 모리시타와의 만남이라는 인과관계가 형성되니까요. 그리고 모리시타의 과거 행적을 쫓으면 잡점이 드러날 테니 이타미는 빠져나갈 방법이 없어지게 됩니다! 그 외에도 무자비한 자원 개발을 반대하는 알람의 사고방식 등의 디테일도 볼 만했습니다.

딱 한 가지, 급작스러운 모리시타의 심경 변화가 제대로 그려지지 않은 것은 아쉽지만 단편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큰 흠은 아닙니다. 독특한 아이디어의 현대판 개미지옥 이야기로 별점 3점은 충분합니다.

"문지기"

오다와라에서 세 시간, 이즈 반도의 아마기 산맥을 넘어가는 즈난정을 향하는 가쓰라다니 고갯길에서 벌어진 네 건의 연쇄 교통사고 - 파칭코 프로 다카다, 사학과 학생 오쓰카, 기둥서방 다자와와 동거녀, 공무원 마에노가 죽은 사고 - 의 진상은 무엇인지?

전개도 흥미롭고, 할머니의 수다가 결국 진상에 이르게 만드는 여러 가지 복선들도 나쁘지 않습니다. 그러나 고의적인 범행, 즉 살인일 것이라는 것은 충분히 짐작되고, 흑막은 모든 것을 보았다는 휴게소 할머니일 것이라는 점 역시 너무 뻔해서 긴장감은 다소 떨어집니다. 또 진상 - 모든 사건의 원인이 된 다카다의 죽음은 할머니 딸이 죽인 것이며, 흉기는 길가의 석불 행신으로 목이 당시 떨어져 나갔는데 그것에 주목한 사람들을 차례로 죽였다는 것 - 의 설득력이 낮다는 것도 단점입니다. 석불 사에노카미 목이 떨어진 정도가 무슨 증거가 될 수 있을까요? 그것도 몇 년 전 사건인데 말이죠. 물론 할머니의 노파심이라는 측면에서 아주 말이 안 되는 건 아니지만 납득하기는 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만원"

학창 시절 흠모했던 하숙집 여주인 다에코가 살인사건 피의자가 되자 변호사인 주인공 후지이가 그녀를 위해 재판에 나서는데...

가보인 족자에 피가 튄 것을 사건에 고의성이 없다는 유력한 정황 증거로 사용하지만(그렇게 귀중한 물건을 피해자를 만나는 자리에 내놓을 리가 없다) 사실 족자에 피가 튀도록 한 것 자체가 의도였다는 진상이 놀라웠던 작품입니다. 해당 물건이 중요 증거로 검찰에 압수되도록 하여, 다른 재산은 모두 차압당했지만 살아남을 수 있도록 한 겁니다. 남편 우카와 시게하루가 병사한 뒤 상고를 포기한 것은 보험금으로 빚을 갚을 수 있어서 족자를 빼앗기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고요.

이렇게 법 자체를 변호사도 모르게 범인이 교묘하게 이용했다는 점이 정말 돋보였습니다. 다에코가 주인공과 법률 관련 이야기를 들으며 법에 대해 지식을 빨아들였다 정도의 묘사만 있었어도 아주 완벽했을텐데 말이지요.

그런데 딱 한 가지, 상고를 포기한 것은 이해가 잘 되지 않네요. 죽어서 빚을 갚을 수 있다면 보다 빨리 출소하는 것도 방법이 아니었을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잘 안됩니다. 뭔가 타이밍 문제가 있었나 싶습니다.

그래도 변호사가 주인공으로 법의 맹점을 다룬 단편 중에서는 손에 꼽을 만한 수작임에는 분명합니다. "살의" 급이에요. 별점은 4점입니다.

2020/05/16

밤의 매미 - 기타무라 가오루 / 정경진 : 별점 2.5점

밤의 매미 - 6점
기타무라 가오루 지음, 정경진 옮김/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일상계 추리의 시조인 '엔시 씨와 나' 시리즈 두 번째 작품입니다. 시리즈 첫 작품인 "하늘을 나는 말"은 이미 3년 전에 읽었는데, 후속 시리즈를 읽는게 많이 늦어졌네요. 

이번 권에는 세 편의 중단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일상계 추리물임에는 분명한데, 최근의 일상계와는 다른 점들이 눈에 많이 뜨입니다. 가장 큰 차이점은 분량입니다. 중편 분량의 이야기들은 다른 일상계 시리즈에서는 보기 힘드니까요.
전작과의 차이도 보이는데, '나'의 친구들, 가족들이 주요 등장인물이라는게 대표적입니다. 전편만 보면 친구 하나 없는 외로운 문학 소녀 느낌인데, 이번 편을 보면 단짝 친구도 있는 등 나름 정상적인 대학 생활을 보내고 있는 듯 하여 반갑더라고요. 또 꼼꼼하지 못하고 덤벙대는 성격이라는게 의외였습니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엔시 씨의 비중은 상대적으로 약합니다. 친구와 가족 비중이 높으니 당연하겠지요. 전작에서는 직접 사건에 뛰어들어 해결하는 에피소드도 있었지만, 이번에는 결정적 순간에 등장해서 사건을 해결해 주는 조력자 역할에 머물 뿐입니다. 전작에서는 홈스였다면, 이번에는 '구석의 노인' 인 셈이죠.

그래도 장점인 순문학적인 흥취를 돋우는 문체와 분위기는 여전합니다. '으스름달밤', '밤의 매미'라는 각 이야기 제목이 대표적입니다. "노동력을 착취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더할 나위 없이 귀족의 신분이지만, 현실은 헤이안 시대의 그것이 아니라 에도 시대의 벼슬아치쯤 된다. 생활수준이 높지 않다는 뜻이다."와 같은, '나'는 확실히 일본 문화 전공자구나! 싶은 표현도 즐거웠고요. 이런 묘사들이 이야기마다 빼곡하게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은근하고 멋진, 순문학적인 분위기가 본 편 사건과는 분리되어 있다는건 좀 아쉬웠습니다. 분위기에 치중하지 않았다면 훨씬 짧게 요약될 수도 있었을 거에요. 그만큼 추리적인 이야기와는 명백히 분리되어 있는 묘사들이었어요.

또 추리적으로 내세울만한 부분 역시 많지 않습니다. '일상계의 시조' 시리즈의 이름이 무색할 정도에요. 이유는 사건들 대부분의 설득력이 부족한 탓입니다. 세 편의 수록작에서 동기가 명확해 보이는건 첫 번째 "으스름달밤" 에서의 사건 뿐이며, 두 번째, 세 번째 사건은 동기도 모르겠고 상황도 잘 이해가 되지 않더라고요. 일상 속 수수께끼를 다룬다는 명제에 걸맞지 않게, 지나치게 비일상적인 상황들이라는 점도 감점 요소였습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묘사와 분위기도 좋고, 읽는 것 자체는 즐겁지만 추리적으로는 그리 높은 수준이라 보기 어렵습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하다는 점, 읽기 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으스름달밤" 

나'는 친구 쇼코가 아르바이트하는 서점에서 국문학 코너의 책 일부가 뒤집혀져 꽂혀 있는걸 발견했다. 엔시 씨와 도예 전시회에서 우연히 만난 '나'는, 뛰어난 추리력을 지닌 엔시 씨에게 이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앞서 요약했던 장, 단점이 극명하게 드러나 있는 작품입니다. 장점인 묘사는 유려하고, 분위기도 좋습니다. 작품에서 핵심적인 분위기를 잡아가는 건, 친구 쇼코의 '창작 시음회' 발표된 동명의 시구인데, 시 자체도 멋있지만 를 '밑바닥을 건넌다'고 표현하여 그 위 에 펼쳐진 무한한 밤을 의식하게끔 했다는 해석은 감탄사가 절로 나옵니다. 

그러나 이 시구, 분위기는 쇼코가 아르바이트하는 서점에서 책이 뒤집혀져 꽂혀있는 기묘한 사건과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그냥 분위기만 멋드러지게 만들 뿐이에요.
추리적으로도 높은 점수를 주기 어렵습니다. 물론 쇼코가 별자리를 말하기 싫어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녀의 생일을 알아내는 전형적인 일상계스러운 추리는 좋아요. 하지만 책이 뒤집혀 꽂혀 있었다는 이야기 속 핵심 수수께끼에 대한 엔시씨의 추리는 억지입니다. 범인의 목적이 '환불'이었다는건데, 환불 목적이라면 앞서의 사건, 즉 책을 뒤집어 꽂는 사건을 범인이 일으킬 이유는 없습니다. 딱 한 번만 행할 수 있는 범죄를 위해, 그 전에 무려 3번이나 서점을 방문해서 책을 뒤집어 놓을리가 있을까요? 그리고 이런 사전 작업이 책 환불의 근거가 되는 책의 슬립이 잘못 꽂혀진걸 뒷받침 한다는데, 보통은 그 책을 구입한 사람을 의심하지 않을까요?
또 책을 뒤집다가 발각될 경우 어떻게 하려고 했는지에 대해서도 설명이 부족하며, '나'가 아니었다면 이 범행 자체가 드러나지 않았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헛수고가 될 수도 있었던 등 여러모로 문제가 많아 보입니다. 

아울러 라쿠고에서 본 편에 등장하는 주요한 단어에 대해 미리 설명해주는 '서설' 이라는 용어를 통해 이 범죄를 설명하는 묘사 역시, 그리 와 닿지 않더군요. 라쿠고 및 라쿠고가 엔시 씨와의 연결 고리를 만들기 위한 사족에 불과했습니다.

덧붙이자면, '나'가 호감을 가진 '안도 선배'의 본명이 사카이리였다는 이야기는 재미있었고, '나'가 쇼코에서 진심으로 분노한다는 심리 묘사는 인상적이었습니다만, 이 역시 추리적인 요소는 없습니다. 안코 + 도넛의 약자로 '안도'라는 별명이 붙었다는건 당사자가 아니면 알 수 없는 이야기잖아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6월의 신부"

가루이자와로 향하여 시간을 보내는 부분에 대한 공들인 묘사가 인상적입니다. 풋풋한 대학생들의 여행을 그리고 있는데 아련하고 좋더군요. 약간 여정 미스터리 느낌이 들기도 하고요. 또 곁다리 사건이나 이야기없이 체스의 퀸이 없어진 사건만을 다루는 전개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딱히 재미있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결국 카루이자와 별장 여행을 함께 했던 다섯 명 중 한 명이 장난을 친 건 분명하니까요. '나'가 범인이 아니면 후보는 네 명으로 줄어듭니다. 그렇다면, 네 명 중 거의 그 날 처음 만난 듯한 귀공녀 미네, 가사이 선배와 요시무라 선배는 범인이라 하더라도 쉽게 알아챌 수가 없을테니, 에미가 범인일 가능성이 가장 높겠지요.
또 앞서 말씀드렸지만 사건에 대한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에미가 요시무라 선배가 체스를 두지 않고 시간을 보낸 걸 숨기기 위함이었다는 동기는 그럴듯해요. 하지만 이런 장난까지 칠 필요가 있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딘가 다른 곳에 떨어졌다던가 하는 식으로 대충 얼버무리는게 상식적이죠. 실제로 트럼프 카드나 체스 말이 없어지는건 흔히 있는 일이기도 하고요.
설령 이를 얼버무리기 힘들었다 하더라도, 냉장고 속 달걀과 바꿔치기하고, 달걀은 휴대용 거울과 바꿔치는 등의 수고를 할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애초에 에미와 요시무라 선배가 서로의 교제를 숨겨야 하는 상황도 제대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저녁에 술을 먹으면서 미네와 가사이 선배는 어느정도 선(?)을 넘었다는 묘사가 등장하는 걸로 봐서는, 딱히 남녀 교제가 터부시되는 상황도 아닌데 말이지요. 여행을 떠날 때 귀공녀 미네와 가사이 선배, 에미와 요시무라 선배로 커플이 맞추어진 상황이라면 더더욱 그러합니다.

'나'가 범인이 누군지 알았다!는 일종의 추리쇼 역시, 설득력이 약합니다. 에미의 자백이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밝혀내는 단서 역시 일본어 '리스 (다람쥐)'와 버금간다는 한자 '아'를 이용한 일종의 말장난이라 일본인이 아니면 어차피 알아내기 힘든 탓에,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때문에 별점은 2점입니다.

이러한 본 편 추리보다는 차라리 '나'의 중학교 시절, 교무실에서 들었던 이야기가 더 인상적입니다. 칠석은 7월 7일이니 여름같지만, 7,8,9월이 가을이라 칠석은 가을의 계어 라는 말입니다. 이유는 음력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름은 4,5,6월이고요. 음력은 확실히 과학적인 단위임이 분명합니다.

"밤의 매미"

언니는 교제하던 남자 미키에게 충동적으로 가부키 표를 보냅니다. 그러나 공연에는 미키가 마음에 두던 신입사원 아가씨가 와 있었고, 이를 계기로 언니는 미키와 확실하게 연을 끊지요. 문제는 사와이라는 신입사원은 이 표를 미키가 보낸 것으로 알고 있었다는 겁니다. 언니는 사람 마음을 가지고 노는 비열한 악녀가 되어 버린 상황인데, '나'가 엔시 씨의 도움으로 이 수수께끼를 해결하는 이야기지요.

진상은, 언니 동료 오누키 씨가 저지른 일이었다는 겁니다. 언니는 회사 우편물을 다량으로 보내면서 미키에게 이 편지를 함께 보냈는데, 오누키씨가 미키와는 헤어지는게 좋겠다 생각하여 집배원에게 통사정하여 우편물을 모두 돌려받습니다. 그리고 미키 씨 이름으로 사와이 씨에게 표를 보낸거죠.

그러나 이유, 동기에 대한 설명이 너무 부족합니다. 오누키 씨가 왜 이런 짓을 했는지 도무지 모르겠거든요. 다른걸 다 떠나서, 우편물을 거짓말을 해 가며 집배원에게서 받아내는건 범죄입니다.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에요. 누군가의 연애를 훼방놓고 싶다 하더라도 말이죠.
게다가 빼돌렸다 하더라도 그걸 가짜 이름으로 다시 보내는건 더 지나친, 정말이지 악행인데 오누키 씨가 미키 씨 이름으로 사와이 씨에게 표를 보낸 이유는 아예 언급조차 되지 않습니다. 거 봐라, 둘이 사귀고 있지 않냐!를 드러내기 위함이라고 하기에는 설득력이 약합니다. 비싼 표를 누가 보내 준다면, 아주 싫어하는 사람이 아닌 바에야 공연에 올 수도 있지 않을까요? 약간의 호감이 있다면 더더욱 그러하고요. 단지 공연에 왔다는게 무슨 증거가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의도야 어쨌건, 결과적으로 언니가 최악의 여자가 된 상황을 예상하지 못했다면 그건 정말 바보입니다.

아울러 이 이야기를 라쿠고 "미끌미끌"와 연결하려는 시도도 그리 성공적으로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미끌미끌"에서 광대 가즈야가 사랑에 실패하는건 본인의 실수 때문이니까요. 그 누구의 탓이라고 하기에는 굉장히 애매하기에, 이야기를 엮는 것 자체가 억지스럽게 느껴졌습니다.

그나마 오누키 씨가 이 상황을 모두 사와이 씨에게 말해서, 사와이 씨는 모든걸 알고 있었지만 가련한 피해자 역할을 수행했다는 반전은 괜찮았습니다만, 문제는 사와이 씨에게 고백했는데 언니에게 말하지 않은 이유 역시 모르겠어요. 그래서 제 별점은 2점입니다. '나'와 언니와의 관계가 아직은 깔끔하게 끝나지 않은 느낌인데, 후속권에서 무슨 이야기가 진행될지는 지켜봐야겠습니다.

2014/06/09

Q.E.D 큐이디 45 - 카토우 모토히로 : 별점 2.5점

큐이디 Q.E.D 45 - 6점
카토우 모토히로 지음/학산문화사(만화)

Q.E.D 큐이디 46 - 카토우 모토히로 : 별점 3점

46권부터 읽어서 45권을 찾아 읽었는데 어느새 47권이 나와버렸네요... 

45권은 Q.E.D의 전통이라고 해도 무방한 스타일 - 두 편의 이야기가 수록되며 한편은 강력 사건 범죄물, 다른 한편은 잔잔한 일상계 - 에서 벗어났다는게 특징입니다. 수록작 두 편 모두 살인 사건이 등장하거든요. 특히 두 번째 에피소드는 학교와 학생이 무대인 전형적 Q.E.D 일상계 설정인데도 불구하고요.

그러나 솔직히 아쉬움이 더 큽니다. Q.E.D만의 장점이자 김전일, 코난 등과 가장 크게 차별화되는 장점은 풋풋한 일상계 이야기들인데 그런 맛을 느끼기 힘들었으니까요. 고등학교가 무대일 필요가 없었다는 점에서 더더욱 그러합니다. 앞으로는 일상계 쪽으로도 신경을 더 써 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별점은 대충 반올림해서 2.5점 정도. 그냥저냥한 평작 수준이었습니다.

수록작별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금성"

일종의 밀실 트릭이 등장하는데, 솔직히 추리적으로는 옷장 거울을 이용한 핵심 트릭 외에는 논할게 없습니다. 트릭도 본편에서는 제대로 언급되지 않아서 공정하다고 보기 어려우며, 동기도 살의를 품을 만큼 설득력있는지는 잘 모르겠고요.

또 태양계의 여러 행성에 대해 설명해주는 과학만화가 본편과 함께 전개되는데, 인상적이기는 하지만 작품과 잘 결합되어 있다고 보기 힘듭니다. 범인이 이 책 때문에 비뚤어진 사고방식을 가진 어른이 되었다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본편 살인 사건과 무슨 관련이 있지도 않아서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건지 잘 알 수 없거든요. 제목도 잘 이해가 되지 않고요.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알고 있던 것 뒤에 숨겨진 진실'이라는 주제에 좀 더 초점을 맞추어 진행하는게 좋았을겁니다.

결론적으로 별점은 2점입니다.

"첫사랑"

모두의 여신이라 할 수 있는 여학생과 사귀게 된 뒤 살인사건에까지 휘말리게 된 동급생을 도와주는 토마의 이야기. 풋풋한 첫사랑의 감정과 살인사건을 결합시킨 전개는 그럴듯하지만, 살인 사건이 등장할 필요가 있었는지는 의문입니다.
기본 설정이 이전 Q.E.D 초창기의 농구부 주장 - 검도부 부장 - 신문부 기자 친구의 삼각관계 설정과 굉장히 흡사한걸 보면, 작가 스스로 이전 이야기의 간단한 "장난"을 "살인"으로 업그레이드해서 변주한 이야기라 생각됩니다. 이 정도면 좀 달라보이겠지?하는 심정으로요. 하지만 고교생이 장난을 치는 것은 그럴듯해도 살인을 저지르는건 지나쳤습니다. 

그래도 추리적으로는 풍성한 편이라는건 장점입니다. 트릭도 두 가지나 등장합니다. 하나는 건너편 옥상에서 시체를 던지는 장치 트릭이고, 또 하나는 시체 바꿔치기 트릭입니다. 다만 이 중에서 시체 바꿔치기 트릭은 현실성이 부족합니다. 시체를 잠깐 들춰만 보아도 알 수 있는 상황일 뿐더러, 변수가 너무 많은 탓입니다. 예를 들어 핸드폰으로 사진 정도는 찍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또 시체 주변에서 자리를 비울 것이라는 것도 확신하기 어려우며, 짧은 시간 동안 눈치채지 못하게 바꿔치기 하는 것도 과연 가능했을지 의문입니다. 베란다의 통로가 이미 제시된 만큼, 경찰 수사를 통해 진상이 밝혀졌으리라 생각되기도 하고요. 현장 감식을 통해 시체 이동 경로만 알아내면 게임은 끝이니까요.

때문에 결론적으로 별점은 2점입니다. 여러모로 조금 부족했던 작품이었습니다.

그런데 내용에서 46권의 만담가 사건 이야기가 언급되는데 다음 권 이야기를 앞서 설명해주는 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단행본에서 추가된 부분일까요? 아니면 앞부분의 내용을 작가가 미리 구상해 놓고 반영한 것일까요? 궁금하네요.

: DSmk2님께서 댓글로 알려주신 내용 덧붙입니다. 현재 Q.E.D.는 일본 잡지에서 월간소년매거진과 월간소년매거진 플러스라는 두 잡지에서 연재 중인데, 45권에 들어간 "첫사랑"과 46권에 들어간 "실연"은 각각 월간소년매거진 2013년 7월호(6월 6일 발매), 월간소년매거진 플러스 06호(6월 20일 발매)라서 동시기 작업한 결과물이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또 이 두 에피소드는 제목에서부터 일본어로 初恋, 失恋이라 딱 보면 느낌이 오는데, 한국말로 해놓으니까 느낌이 안 사는 게 아쉽다고도 하셨고요.

"실연"에서 아야메라는 캐릭터가 나와서 '실연'이라는 결말을 맞게 만든 것은 불필요한 장치로 보인다고 리뷰를 남겼는데, 제목에서부터 이어지도록 한 작가의 의도가 개입된 것이라는 점을 새롭게 알게 되었네요. DSmk2님, 좋은 정보 감사드립니다~

2019/08/17

도연사의 쌍둥이 탐정일지 - 오카자키 다쿠마 / 민경욱 : 별점 1.5점

도연사의 쌍둥이 탐정일지 - 4점
오카자키 다쿠마 지음, 민경욱 옮김/㈜소미미디어

후쿠오카 내 유치쿠 시에 위치한 도연사의 승려 가족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일상계 추리물입니다. 

특정 분야의 전문가가 등장하는 일상계 추리물은 굉장히 많습니다. 해당 분야의 지식이 추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아서 현학적인 재미를 함께 가져다 줄 수 있고, 손님이 수수께끼를 가져오는 경우가 많아서 이야기 전개를 쉽게 풀어갈 수 있기 때문이겠지요. 일상계의 효시라 할 수 있는 "하늘을 나는 말"탐정역부터가 '라쿠고가'라는 특이한 직업의 소유자이기도 했고요. 현재까지도 추리 소설계에서 큰 줄기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동안 읽었던 작품들로는 서점, 고서점, 화과자점, , 골동품점, 중고매장사진관, 수프가게, 초등학교 (선생), 시계방 등을 무대로 해당 분야 전문가나 업무 종사자가 활약하는 작품들이 있었습니다. 스님이 탐정으로 등장하는 작품도 아토다 다카시의 "A사이즈 살인 사건",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행각승 지장 스님의 방랑"을 이미 읽어 보았고요.
이 작품도 배경 설정만 놓고 보면 절에 관련된 여러가지 이야기가 주요 소재로 사용되고, 스님이 핵심 인물로 등장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여러모로 생각과는 다르더군요. 우선 화자인 도연사의 부지주 잇카이가 탐정역을 맡고 있지 않습니다. 사람 좋은 어른으로 갈등의 중재자이자 해결사 역할을 담당할 뿐입니다. 탐정 역할을 맡는건 제목의 쌍둥이입니다. 그래서 절이나 스님 관련된 이야기가 중요한 소재로 쓰이는 전문가적인 이야기보다는, 학생들이 등장하는 학원 일상계 스타일 느낌이 강합니다. 네 편의 이야기 중 그나마 공양을 주요 소재로 삼은 세 번째 이야기 정도만 소재와 어울립니다.
물론 법사, 법요, 불경, 공양 등 디테일한 절과 스님의 생활에 대한 이야기가 묘사되지 않는건 아니지만, 이야기의 핵심, 추리적인 부분과는 거리가 먼 단순한 배경 묘사에 그칩니다.

그런데 이 쌍둥이 설정은 여러모로 거슬립니다. 남자아이 렌은 "절 옆에는 귀신이 산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성악설 신봉자, 여자아이 란은 "불천인신천인(仏千人神千人)"이라는 말로 대표되는 성선설 신봉자로 정반대인 이 둘이 서로를 보완해가며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데 지나칠 정도로 작위적이고 만화적입니다. 란이 단 것을 미친듯이 좋아한다는 설정도 과하고요. 다른 주요 캐릭터들 - 사투리를 입에 달고 사는 아버지인 주지스님 신카이와 절의 살림을 도맡아 하는 먼 친척으로 잇카이를 가지고 노는 (?) 어린 처녀 고테가와 미즈키 - 은 상당히 괜찮았기에 여러모로 아쉽습니다. 차라리 쌍둥이없이 잇카이를 탐정역으로 내세워 절과 신도들에 관련된 사건을 해결하는게 훨씬 나았을 겁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추리면에서도 눈여겨 볼 부분은 없기 때문에 별점은 1.5점입니다. 널리고 널린 일상계 물 중에서 특별히 주목할 점은 없는 평균 이하의 작품입니다. 에피소드 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제1화. 절 옆에는 귀신이 살까?

마을 유지로 자산가인 오가미 집안의 장례식에서 오가미 집안 아들 딸들의 조의금이 도난당하는 사건이 벌어지는데... 

스님이 주관하는 장례식에서 조의금이 도난당한 사건의 진상을 밝혀내는 이야기입니다. 범인은 접수대를 맡았던 야스에로 그녀가 고인의 가족들 봉투를 다른 것과 바꿔치기 해서 넣었던게 진상이고요.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됩니다. 봉투만 바꿔치기해서 가져갈 이유가 없는 탓입니다. 봉투째 가져가는게 당연하지요. 어차피 맨 밑에 있어서 잘 보이지도 않았을테고요, 봉투를 바꿔치기 하는 것 자체가 지문 등의 단서가 남을 수도 있고, 바꿔치기할 수 있는 사람은 극도로 제한된다는 점에서 평범한 조의금 도둑이 할 범행이 아닙니다. 차라리 조의금 도난을 널리 알리려는 의도가 강했다는걸 부각했어야 하는데 이야기 상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아서 이도저도 아닙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이보다는 절을 방문했던 란의 동급생은 사실 새전함을 노리고 있었을거라는 서두의 추리가 더 재미있습니다. 

제2화. 할머니의 매화가지 떡

도연사 일행은 신도인 마쓰다이라 상점댁을 찾았다. 13주기 제사를 위해서였다. 그런데 법요가 끝난 후 할머니가 권한 상점의 명물 매화가지 떡을 중학생 손녀 유카리가 집어 던져 버렸다. 유카리가 반항(?)한 이유는 무엇일까?

원래 매화가지 떡을 굉장히 좋아했지만 사랑하는 할머니에게 이를 집어 던질 정도로 손녀 유카리가 비뚤어진 이유가 무엇인지를 찾는 이야기인데 역시나 추리를 끌어내기 위한 단서가 너무 부족합니다. 단지 아침에 비닐 봉투 한 가득 청소를 했다는 정도로 무언가 결론을 끌어내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렌의 반에 전학온 다이손의 존재가 추리의 결정적 근거가 된다는건 지나치게 작위적이고요. 

한마디로 여러모로 억지스러웠던 이야기입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제3화. 아이를 생각하다

미즈키의 지인 유나가 유산된 아이 '미즈코'를 공양하며 임신을 기원하는데, 사실 그녀는 이미 임신을 하고 있었다. 한달 뒤, 유나의 임신을 알게 된 남편 슈운이치는 도연사로 찾아와 임신 기간 중 자신은 출장 중이었다고 말하며 잇카이와 유나의 관계를 의심한다...

절과 스님이 어느 정도 역할을 하는 유일한 이야기입니다. 불심이 깊은 시어머니와 틀어진 남편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부처님 덕에 임신했다는걸 강조하기 위함이라는 동기 역시 사뭇 불자스러워서 마음에 들었고요. 

그러나 대단한 추리력이 발휘된 이야기는 아닙니다. 유나의 고백으로 모든게 밝혀지기 때문입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제4화. 저 세상의 꿈, 이 세상의 생명

교통사고로 사망한 불쌍한 여인의 경야를 맡게 된 잇카이는 고인이 자신이 전날 꾼 꿈에 등장한 여인이라는걸 알게 되었다. 잇카이는 그녀가 쌍둥이의 모친일 것이라 확신하는데...

교통사고로 사망한 여인의 경야, 법요가 소재로 등장하지만 핵심 내용은 사망한 여인의 아이를 찾는 것입니다.

추리적으로는 수록작 중 가장 볼 만 합니다. 사고를 당한 여성은 열쇠가 없었으니 다이얼 식 열쇠였을 것이다, 어딘가 맡길 형편이 안되니 근처의 빈집일 것이다, 사고 장소에서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을 것이다 등 모든 추리가 이치에 맞는 덕분입니다. 아이를 빈 집에 몰래 두고 일하러 갔다는 진상도 쇠락해가는 시골 마을 분위기와도 잘 어울리는 좋은 아이디어였고요. 

문제는 아이의 실종을 잇카이가 꿈을 통해 알게된다는 오컬트적인 전개입니다. 망자가 잇카이에게 이를 전달할 이유도 딱히 모르겠고, 절과 스님이 등장한다고 해도 이건 너무 과했습니다. 이어지는 가족간의 사랑 어쩌구 하는 분위기도 영 닭살돋아서 취향이 아니더군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