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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31

2018 내 블로그 리뷰 총 결산

2017 내 블로그 리뷰 총 결산

15차, 열 다섯번째!를 맞는 블로그 결산.
숫자부터 정리해보면, 2018년 읽은 책 중 리뷰를 남긴 책은 추리 / 호러 장르문학 40 (52)권, 기타 장르문학 3 (3)권, 역사서 9 (15)권, Food 및 구루메 관련 도서 18 (9)권, 기타 도서 21 (20)권으로 모두 91 (101)권입니다 (괄호는 작년). 이런 저런 일들이 많아 작년보다는 독서에 소홀했지만 그래도 한달에 7~8권 수준이면 뭐 나쁘지는 않네요. 각 항목별 베스트 - 워스트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올해 발표된 작품 기준이 아니라 제가 올 한해 보고 읽은 것들 기준입니다.

2018년 베스트 추리소설 :
<<살인범은 그곳에 있다>>
올해 추리 분야 도서 중 유일한 별점 4점짜리 책. 소설이 아니라는게 유일한 단점입니다. 재미 뿐 아니라 생각해 볼만 한 메시지를 함께 전해주는 좋은 작품이에요.

2018년 워스트 추리소설 :
<<유령탑>>
사실 모리 히로시의 사이카와 모에 시리즈 중 한 권인 <<지금은 더 이상 없다>>도 올해 별점 1점을 받은 망작이기는 합니다만 이 작품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이름과 그림을 전면에 내세워 홍보하고 팔아먹었다는 점에서 죄질이 더 나빠 단독 워스트로 선정합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그림과 설명을 제외하면 건질만한 부분이 아무것도 없거든요. 부디 다른 분들은 속지 마시길 바랍니다.

2018년 베스트 / 워스트 기타 장르문학 :
올해 기타 장르문학은 딱 3권, 그 중에서도 두 권만이 정식 출간된 책이라 따로 선정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고양이 발 살인사건>>과 <<마음의 지배자>> 모두 좋았어요. 두 작품 모두 단편집인데 별점 4점, 5점짜리 작품도 수록되어 있을 정도로 말이죠. 장르 문학에 관심있으신 모든 분들께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2018년 베스트 역사 도서 :
<<원더랜드>>
역사 관련 서적을 10권 이하로 읽은건 오랫만이지만 별점 4점짜리 책은 언제나처럼 존재합니다. 유희와 놀거리에 대해 심도깊게 고찰한 이 책이 바로 그러하죠. 제 리뷰로는 이 책의 가치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데, 취미와 오락, 유희 관련 문화에 대해 관심있으시다면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2018년 워스트 역사 도서 :
<<만물의 유래사>>
미시사 서적과 백과 사전류를 좋아해서 충동 구매한 책인데 프랑스인이 프랑스를 위해 만든 시대 착오적인 결과물입니다. 확실히 백과 사전의 시대는 이미 오래전에 지나갔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네요.

2018년 베스트 Food / 구루메 도서 :
<<늑대를 요리하는 법>>
올 한해 제법 많이 읽었는데 별점 4점짜리 책은 없습니다. 그러나 이 책은 도판과 번역만 충실했더라도 별점 4점은 충분했을터라 베스트 도서로 선정합니다. 재미도 있고 여러모로 참고가 될 내용도 많은 좋은 책이에요.

2018년 워스트 Food / 구루메 도서 :
<<소주 이야기>>
미시사 서적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두서가 없고, 소주 자체에 대한 고찰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무엇보다도 저자 스스로 석달 간 자료조사를 거쳐 열흘 만에 쓴 책이라고 하는 말 만큼이나 내용이 두서없는 졸작. 저렴한 가격만이 장점인 책입니다.

2018년 베스트 기타 도서 :
<<범죄 과학, 그날의 진실을 밝혀라>>
이번 해에 기타 도서의 베스트는 별점 4.5점에 빛나는 이 책입니다. <<깃털>><<클래식 음반세계의 끝>><<아주 오래된 서점>>의 별점 4점 트리오는 조금 안타깝군요.

2018년 워스트 기타 도서 :
올해 기타 도서는 별점 2점 아래가 없어서 워스트는 딱히 꼽지 않겠습니다. 별점 2점으로 워스트가 되는 것도 괴로운 일이니까요.

결산평 :
15년 째라니... 강산이 변해도 이제 한번 반이 변했네요. 올 한 해 무탈하게 보냈다는게 너무나 기쁩니다. 제 블로그를 찾아주시는 모든 분들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내년에 원하시는 일 다들 이루시는 그런 한해 되시기를 바랍니다.
작년, 그리고 재작년에도 말씀드렸지만 제 블로그를 찾아주시는 분들이라면 남들이 관심갖지 않는 사소하고 디테일한 것들에도 관심을 가지시는, 정말로 세심한 분임이 분명할테니 내년에는 더욱 잘 되실거에요. 사랑합니다~!

2018/12/30

10년 만의 인사이트 밀 - 요네자와 호노부 / 최고은 : 별점 2.5점

The Incite mill 인사이트 밀 - 6점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최고은 옮김/학산문화사(단행본)

2008년 발표된 작품으로 저 스스로는 "
폐쇄형 게임 미스터리" 라고 부르는 장르물의 대표작이자 요네자와 호노부의 출세작 중 하나로 2010년에는 영화까지 제작되어 개봉되었을 정도로 많은 인기를 끈 작품입니다. 연말을 맞아 책 정리를 하다가 10년만에 다시 읽게 되었습니다.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러서 그런지, 내용이 기억이 나지 않아서 처음 읽는 것처럼 읽을 수 있었네요.

재미는 있지만 비현실적인 설정은 조금 거슬린다는 개략적인 느낌은 10년 전과 별로 다르지는 않습니다. 특히나 이후 읽었던 다른 장르물에서는 "일단의 무리를 폐쇄 공간에 모으는 이유"를 설득력은 떨어지지만 복수라던가 살육극의 중계 등으로 최소한 설명하려고 노력하는 것에 비해 이런 내용을 전부 무시하고 "암귀관" 에서의 이야기만 묘사되는건 선택과 집중 측면에서는 바람직하더라도 완성도 측면에서는 아쉬움을 남깁니다.
또 유사 장르물에 비하면 "암귀관" 에서의 게임 조건(?) 도 그다지 잘 짜여져 있지 않아요. 작중에서는 니코틴을 가장한 "약살" 이 파워 밸런스를 붕괴시킨다며 문제삼지만 사실 전체적인 흉기의 파워 밸런스 자체가 문제니까요. 멋을 부리면서 유명 추리소설에 등장한 흉기를 배치하고, 이를 트릭으로 삼은건 그렇다쳐도 공기 피스톨과 보우건, 슬링샷같은 원거리 무기를 확보한 사람이 유리한건 당연하죠. 밧줄이나 자살용 칼은 정말이지 이게 뭔가 싶거든요.
그리고 10년 전에는 무심히 넘겼지만 모든 식사가 포크나 나이프와 같은 흉기가 될 도구가 불필요한 샌드위치나 도시락으로 준비되었다는 이야기도 역시나 문제에요. "젓가락"도 충분히 흉기가 될 수 있지 않았을까요? 이 역시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마지막 에필로그는 솔직히 불필요했고 말이죠. 

그래서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10년의 세월 동안 0.5점이 감점되었는데, 이는 보다 나은 다른 유사 장르물이 많이 발표된 탓으로
인기 작가 요네자와 호노부 작품의 원형 중 하나로 다시 읽어도 충분한 재미를 선사하지만 동일 장르물에서 손에 꼽을 걸작이냐 하면 그렇지는 않습니다. 이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2018/12/29

술 취한 식물학자 - 에이미 스튜어트/ 구계원 : 별점 3점

술 취한 식물학자 - 6점
에이미 스튜어트 지음, 구계원 옮김/문학동네

부제 "위대한 술을 탄생시킨 식물들의 이야기" 그대로 을 만들때 사용되는 다양한 식물들에 대해 소개하는 책입니다. 친숙한 사과나 보리, 포도, 쌀 등 고전적인 술의 원료에서 시작하여 바나나와 카사바와 같은 이색적이고 독특한 재료들, 다양한 허브와 향신료, 꽃과 나무, 열매들, 견과류 등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재료가 망라되고 있습니다. 이 재료로 만들어진 술들에 대한 소개도 충실하며 관련된 칵테일 레시피도 50여가지 수록되어 있고, 심지어는 집에서 재배할 수 있는 재료인 경우 그 재배법까지 실려있을 정도입니다.

분량도 400여 페이지를 훌쩍 넘어서 볼거리가 아주 많은데 그 중에서도 인상적으로 읽었던 몇 가지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우선 마시고 싶다! 라는 생각이 든 술에 대한 소개에요. 켄터키 버번이 첫번째인데 켄터키가 지금과 같은 버번의 땅이 된 이유가 아주 매력적으로 설명되고 있거든요. 옥수수가 재배하기 쉬웠고 초기 이민자들이 스코틀랜드나 아일랜드 출신이라 증류기 다루는 법을 잘 알고 있었다는 점, 그리고 맑고 시원한 샘물이 솟아나는 풍부한 석회암 매장층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특히 석회수는 지하에서 솟아 나올 때 10도 정도의 온도를 유지하는데 이 온도는 냉각과 응결 과정에 꼭 맞는 완벽한 온도라네요. 석회수의 높은 알칼리성과 풍부한 칼슘, 마그네슘, 인산 함유도 맛을 더해주는 요소고요. 기회가 되면 다음에 꼭 한 번 구입해야겠어요.
담배로 만든 술인 프랑스의 "페리크 리쾨르 드 타박"도 맛보고 싶더군요. 니코틴을 완벽하게 제거했다는데 과연 어떤 맛일지... 참고로 담배로는 고급 술집에서 수제로 "시가 비터즈"를 만들어 제공하기도 하는데 이는 담배와 향신료를 알코올 도수 높은 증류주에 우려내는 것으로 지나치게 많은 니코틴이 함유될 수 있기에 조심해야 한다는군요. 
포틀랜드 증류업자 스티븐 매카시의 갖은 노력으로 완성된 미송 증류주도 탐납니다. DOUGLAS FIR BRANDY 라는 술인듯 한데 1년에 250상자만 제조하는 술 치고는 가격도 5만원대로 저렴하군요. 우리나라에서 구하려면 그 배를 주어도 구하기 어렵겠지만요...

갖가지 토막 상식도 재미를 더합니다. 금주법 시행 당시 캘리포니아의 포도 재배 업자들은 "과일 벽돌"을 팔았다고 합니다. 포토를 말려서 압축한 뒤 와인 제조용 효모와 묶은 상품으로 물을 더하면 양조가 시작되는 물건이었다는군요. 아이디어가 정말 빼어나죠?
또 프랑스 포도나무는 19세기 포도나무뿌리진디에 의해 초토화 된 후 미국 포도나무와 접목하여 살아남은 것이며, 현재의 칠레 와인이 포도나무뿌리진디 이전의 포도나무로 만들어진 와인이라는 것도 처음 알았습니다. 상대적으로 저렴하다는 이유 외에도 칠레 와인을 사랑해야 할 이유가 하나 더 늘은 느낌입니다. 호밀이 맥각균에 감염되면 LSD 성분이 생기고, 이 맥각중독이 중세의 무도병의 원인이라는것도 마찬가지로 처음 알았고요. 마약 중독자라면 호밀 재배를 시도해봄직 하겠네요.
"그로그"는 영국에서 선원들에게 럼을 배급할 때 홀랑 마셔버리지 않게 물과 라임 주스, 설탕을 섞어 배급한 음료입니다. 그런데 럼이 많이 희석되었다는 선원들의 의심이 커지자 비중을 증명하기 위해 럼과 화약을 섞어 불을 붙이는 테스트를 했다는군요. 대략 57% 정도의 알코올이 함유되어야 불이 붙었다는데, 이 테스트 결과를 "프루프 Proof" 로 제시한 것에서 현재의 프루프 단위가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즉 57%의 알코올이 함유된 병은 100 프루프인 것이죠. 미국에서는 더 간략화해서 50%의 알코올이 100 프루프고요. 
그 외에도 중국 요리에 많이 사용하는 "팔각"은 허브 리큐어에도 사용되지만 독감약 "타미플루"의 원료라는 것, 스위트 우드러프라는 여러해살이 풀을 소개하며 "달콤한 풀내음"은 잠재적 독성 성분인 쿠마린이 다량 함유되어 있다는 표시라고 설명하는 것도 신기했습니다. 그런데 풀내음에 대한 설명은 정말 맞는 말인지 궁금하네요. 달콤한 풀내음을 가진 풀은 많은데... 의외로 우리나라 들판에도 독초가 가득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수록된 칵테일 레시피도 볼게 많은데, 감자로 만든 보드카인 스웨덴의 칼손스 골드 보드카로 만든 "블랙 골드"는 심플함이 눈을 사로잡습니다. 칼올드패션드 글래스에 얼음을 채운 후 그 위에 칼손스 골드 보드카 1과 1/2온스를 붓고 후추를 갈아 뿌리는게 전부거든요. 상당히 터프한 느낌인데 맛이 궁금하네요.
사케 칵테일은 니코리 사케 4, 망고 복숭아 주스 2, 보드카 1, 도멘 드 캉통 진저 리큐어 소량을 잘 섞은 뒤 칵테일 잔에 따르고 셀러리 비터즈 한 방울을 떨어트려 만듭니다. 대충 느낌은 복숭아맛 호로요이 느낌이 아닐까 싶군요.

이렇게 많은 정보가 수록된, 술과 관련된 식물의 백과사전이라 해도 무방한 책으로 술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소장가치는 충분합니다. 하지만 사전과 비슷한 수준으로 단순 정보의 나열 뿐이라 읽는 재미가 덜한 점은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재미있게 읽었지만요. 제 별점은 3점입니다.

2018/12/23

그린치 (2018) - 스콧 모지어, 야로우 체니 : 별점 2.5점

크리스마스를 맞아 딸아이와 함께 감상한 신작 애니메이션. 저는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를 보고 싶었습니다만... 딸아이의 강력한 요청을 이길 수 없었네요.

유명 동화가 원작인데다가 이미 십여년 전, 짐 캐리 주연의 영화까지 개봉되어 내용은 딱히 새롭지 않지만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한 덕분에 영화 버젼보다는 더 아이들 취향에 잘 맞게끔 제작된 건 괜찮더군요. 화려한 색상을 자랑하는 각종 아트웍도 굉장한 볼거리이고요.
무엇보다도 마음에 든 건 그린치의 충견 맥스에 대한 묘사입니다. 과거 영화버젼을 능가하는, 충견 캐릭터의 대표라 할 수 있는 그로밋과 쌍벽을 이룰만큼의 충직함, 똑똑함에 귀여움까지 갖춘 캐릭터로 그야말로 작품을 하드캐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나치게 아동 취향인 탓에 그린치 캐릭터의 사악함이 잘 묘사되지 않은건 아쉽더군요. 너무 개그로 소비되는 묘사가 많기도 해서 악당이라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고 그냥 조금 심성 삐뚤어진 어른 정도로 보여서 극적 긴장감을 잘 불러 일으키지는 못하기 때문입니다. 크리스마스를 싫어하는 심리 묘사도 썩 잘 되어 있지 않아 크리스마스를 훔치는 작전에 감정 이입하기도 힘들었고요. 차라리 대단한 천재 발명가이지만 외톨이로 동굴에서 홀로 살아간다는 설정을 잘 살려서 "배트맨" 느낌으로 풀었더라면 조금 더 낫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래도 크리스마스를 노린 아동용 애니메이션으로는 충분한 수준이에요. 별점은 2.5점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맥스를 주인공으로 한 스핀 오프가 나와주면 더 나을 것 같은데, 주인공보다 조연이 인기를 얻는 <<미니언즈>>처럼 일루미네이션 스튜디오의 전통으로 자리잡는게 아닌가 하는 우려도 조금 생기네요.

2018/12/22

취미의 탄생 - 진노 유키 / 문경연 : 별점 2점

취미의 탄생 - 4점
진노 유키 지음, 문경연 옮김/소명출판

확실히 연말은 연말이네요. 블로그 운영은 물론 기본적으로 책 읽을 시간이 부족합니다... 이 책은 일본에서 "취미"라는 말이 어떻게 탄생하였고, 취미의 개념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소개하고 있는 인문학, 미시사, 문화사 서적입니다.

책에 따르면 "취미" 라는 말이 돌연 널리 사용된 시기는 메이지 40년 전후이며, 처음에는 문학 방면에서 사용되었지만 일반적으로 널리 사용되며 의미도 굉장히 다양한 의미로 확장된 이유는 일본이 근대적 소비 사회로 성숙해 나갔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상식적으로 당연한 일이겠죠. 취미는 다양한 상품, 유행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니까요. 
그래서 이 책은 미쓰코시 백화점의 발전상을 상세하게 설명하면서, 백화점에서 유행을 연구하고 유행을 만들어내기까지 한 "유행회"를 조직해 운영하였으며, 다양한 전람회 등을 개최하고 잡지까지 발간하는 등 전방위적으로 유행을 선도했다는 점에서 결국 백화점이 취미와 연결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백화점의 활동, 상품을 통해 일본이 단순하게 서양 문물과 문화를 받아들인게 아니라 일본의 느낌을 유지하여 융합시킬지를 고민해 왔다는 점에 눈에 띄입니다. 파리의 일본 대사관 인테리어에 적용된, 양풍과 화풍을 결합한 이른바 "화양절충"이자 "미쓰코시 취미"라고 불리우는 테이스트가 대표적인 예죠. 그외에도 서양 문물을 들여와 자국화 하는 다양한 시도들이 다수 수록되어 있는데 확실히 디자인 강국 일본의 명성은 그냥 얻어진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를 선명하지는 않지만 다양한 도판을 함께 수록하여 이해를 돕는 것도 좋았습니다.

하지만 논문에 가까운 글로 그다지 재미가 있지는 않으며, 지나치게 지엽적인 부분만을 다루고 있어서 많은 분들이 흥미를 느낄만한 책은 아닙니다. 저도 몇몇 포인트 외에는 딱히 소장하거나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더군요. 300페이지도 안되는데 양장본으로 제작되어 가격이 제법 나간다는 것도 단점이고요. 일본의 19세기 후반 ~ 20세기 초반 백화점 중심 문화사에 관심이 없으시다면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제 별점은 2점입니다.

2018/12/16

"이 미스터리가 굉장해!" 30주년 기념 킹 오브 킹 순위

1년에 한 번씩 그해 출간된 작품 기준으로 국내 (일본) / 해외 작품 순위를 발표하는 <<이 미스터리가 굉장해!>> (고노미스) 가 30주년을 맞아 그동안의 리스트를 총 망라하여 베스트 10을 선정하여 발표하였네요. 국내 최고의 추리애호가 커뮤니티 하우미스터리에서 보고 퍼 옵니다. (원문)

그런데 잘 이해가 되는 순위는 아니에요. 제 개인 기준으로는 도저히 순위에 오를 수 없는 작품들이 대거 포함되어 있거든요. 단지 작품의 완성도 뿐 아니라 인기와 영향력을 감안해서 순위를 정한게 아닌가 싶기는 합니다. 예를 들어 <<신주쿠 상어>>는 추리적으로 완성도는 그닥이지만 일본식 하드보일드의 전형으로 수많은 아류작과 이종 컨텐츠를 낳은 공을 높이 산 것이겠죠. 하지만 아무리 이렇게 생각해보아도 <<유니버셜 횡메르카토르 지도의 고백>>은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하여튼, 순위는 아래와 같습니다. 해외 작품은 저도 많이 읽지 못했는데 부지런히 찾아 읽어봐야겠네요.
* 2020.11.29 <<골든 슬럼버>>, <<개의 힘>> 리뷰 링크 추가

(국내편)
#1 살아있는 시체의 죽음, 야마구치 마사야
#2 64, 요코야마 히데오
#3 용의자 X의 헌신, 히가시노 게이고
#4 화차, 미야베 미유키
#5 신주쿠 상어, 오사와 아리마사
#6 내가 죽인 소녀, 하라 료
#7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우타노 쇼고
#8 골든 슬럼버, 이사카 고타로
#9 奇術探偵曾我佳城全集 기술탐정 소가 가조 전집, 아와사카 쓰마오
#10 유니버설 횡메르카토로 지도의 독백, 히라야마 유메아키

(해외편)
#1 장미의 이름, 움베르토 에코
#2 개의 힘, 돈 윈슬로
#3 양들의 침묵, 토머스 해리스
#4 A Touch of Frost, R. D. Wingfield
#5 Pop. 1280, 짐 톰슨
#6 심플 플랜, 스콧 스미스
#6 The Crime Machine, 잭 리치
#6 콜드 문, 제프리 디버
#6 Flicker, Theodore Roszak
#10 탄착점, 스티븐 헌터

흔적 없이 사라지는 법 - 프랭크 에이헌 / 최세희 : 별점 2점

흔적 없이 사라지는 법 - 4점
프랭크 에이헌 지음, 최세희 옮김/씨네21북스

오랫동안 스킵 트레이서, 즉 의뢰인이 요청한 누군가의 그 어떤 정보도 찾아서 제공하는 업무를 수행했던 사람이 쓴 흔적 없이 사라지는 방법에 대한 책.

하지만 책은 기대에 전혀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일단 저자의 직업부터가 사기꾼 같아서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잘 모르겠을 뿐더러 FBI 운운하면서 잠적을 원하는 사람의 어설픈 행동을 우연히 본 게 계기였다는 책을 낸 동기 등 전체적으로 허세가 가득해 보여 별로 와 닿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반 이상의 분량이 미국에서의 삶을 기준으로 하고 있다는게 큰 문제입니다. 대표적인게 여러차례 언급되는 선불카드와 선불폰 사용인데 이건 우리나라에서는 사용하기 쉽지 않잖아요? 여러개의 사서함을 통해 오프라인으로 우편물을 받는 거창한 방법에 대한 소개 역시 마찬가지로 이렇게 해서 우편물을 직접 받을 이유가 우리나라에 많이 있을 것으로 생각되지 않더군요. 
즉 이 책에 수록된 흔적없이 사라지는 방법 중 우리나라에서 사용 가능한 방법만 추린다면, 모든 소셜 네트워크를 탈퇴하고 계정을 삭제하라, 온라인에 올려 놓은 개인에 대한 정보도 모두 삭제하라, 새 컴퓨터를 사고 인터넷은 공공망에서만 이용하라 정도입니다. 솔직히 이 뿐이라면 너무 단순해서 책을 살 필요도 없겠죠...

인터넷 시대를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는 내용들도 문제로 대표적인게 스킵트레이스가 소셜엔지니어링을 통해 잠입을 원하는 사람의 예전 주소를 손에 넣은 후, 근처 서점에 전화를 걸어서 거기서 어떤 책을 샀는지를 보고 도피하려는 나라에 대한 정보를 얻어낸다는 내용입니다. 인터넷으로 책을 구입하는 현재 트렌드를 무시한 것은 물론이고, 책 구입 목적이 도피하려는 지역에 대한 정보라면 인터넷 검색을 하는게 당연하지 않을까요? 이런걸 대단한 사례인 것 처럼 내세운다는 점에서 영 신뢰가 가지 않더라고요. 이 책 보다는 찬호께이의 <<망내인>> 쪽이 소설이기는 하지만 현재 시점의 개인 정보 획득 측면에서는 더 설득력이 높아 보입니다.

물론 잠적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실효성 있는 정보가 없는건 아닙니다. 실제 저자가 경험했던 다양한 정보 획득 사례와 경험에서 비롯된 각종 팁들도 인상적으로 그 중에서도 특히 채무 관련 팁은 눈여겨 볼 만 했어요. 가는 곳이 어디 건 갚아야 할 빚이 있다면 최선을 다해 갚아야 하며, 이유는 잠적은 채무를 없애주지 못하며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라는데 '빚투' 라는 말로 최근 불거진 요새 분위기에 정말로 적절한 표현이 아닌가 싶더군요.

하지만 장점보다는 국내에서는 써먹기 어려운 과장된 이야기가 대부분이기에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별점은 2점. 잠적에 관한 컨텐츠를 기획하는 분이라면 실제 사례 참고 차 한번 쯤 읽어볼만 하지만 그 외에는 딱히 권해드리기 어렵네요.

2018/12/15

18세기의 맛 - 안대회 외 : 별점 2.5점

18세기의 맛 - 6점
안대회.이용철.정병설 외 지음/문학동네

18세기의 문화를 음식과 함께 잘 소개해주는 인문학미시사 서적. 모두 23편의 글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네이버 캐스트에 연재된 글을 묶어 출간한 책으로 연재 당시 몇몇 글을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있어 구입해 읽어보게 되었네요.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각자의 전문 분야에 대해 연관된 음식과 함께 소개해준다는 아이디어도 좋고 결과물들도 상당한 수준이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전문가다운 독특하면서도 새로운 시각이 특히 인상적으로 버터의 확산이 카톨릭에서 이탈한 나라와 일치한다던가, 감자가 확산이 늦어진 이유는 당대의 오해와 의혹인데 이를 감자를 소재로 해서 작품을 남긴 유명 화가는 민중 화가인 밀레와 고호밖에 없다는 사실과 연결시킨다던가, 파스타는 18세기에 부유층만 소비하는 고급 음식으로 이를 "그건 마카로니야"라는 당시 속어로 드러내는 등의 방법이 그러합니다. 커피는 남성적 담론을, 홍차는 여성적 담론을 상징했다는 이야기도 마찬가지고요. 

진은 사회적 폐혜를 불러일으켰지만 맥주는 활력과 번영의 상징이었다는 것을 호가스의 그림으로 드러내는 이야기와 같이 도판이 중요한 이야기가 많은데 이를 위한 도판은 물론, 그 외의 각종 참고 자료 역시 최고 수준입니다. 아시아, 유럽, 아메리카 모두를 아우르는 폭 넓은 범위도 인상적이고요. 복어와 식용 국화, 삼해주와 조선의 술 문화 등을 통해 음식 그 자체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내용도 많습니다. 이 중에서는 항상 궁금했던 "솔잎"을 먹는 방법에 대한 상세한 소개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신선들이나 무림 고수들이 먹는 나름 괜찮은 음식으로 알았는데 심한 변비를 일으킨다는 건 처음 알았거든요. 하긴, 몸에도 좋고 맛있었다면 지금도 많이 먹고 있을테니.... 변비를 극복하고 맛을 좋게 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들도 상세하게 소개되어 무척 재미있었어요. 

하지만 지엽적인 이야기 소개에 그치는 내용도 적지 않고, 어떤 이야기는 너무 좁은 분야에 매몰되어 소개되는 등 전체적인 수준이 일치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나는 전문가다" 라는 인식을 지나치게 드러내는 너무 어렵게 쓴 글들이 적지 않은 것도 아쉬운 점입니다. 네이버 캐스트 연재물이라면 독자를 고려해서 조금 더 쉽고 일상적으로 써 주었더라면 훨씬 좋았을 것 같아요. 무엇보다도 책의 주제라 할 수 있는, "18세기에 대한 인문학"을 "음식"으로 잘 드러내는 글들이냐 하면 꼭 그렇지는 않다는 것도 감점 요소고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전문가들의 식견이 느껴지는 좋은 글들도 많지만 전체적인 글들의 편차가 일정하지 않은 등의 단점도 많아 감점합니다. 그래도 몇몇 특정 주제만큼은 다른 책에서 찾아보기 힘든 전문성이 느껴지는 만큼, 이런 류의 글을 좋아하시는 분들께서는 한번 쯤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18/12/09

호텔 - 도미타 쇼지 / 유재연 : 별점 2.5점

호텔 - 6점
도미타 쇼지 지음, 유재연 옮김/논형

근대 일본에서 호텔이 형성되는 과정을 당시 분위기와 함께 소개하고 있는 미시사 서적. 이 책을 통해 근대 일본 호텔의 역사에서는 크게 3개의 키워드가 도출된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 그건 바로 외국인과 서구화, 그리고 철도죠.

우선 외국인은 호텔의 역사에서 떼놓고 생각하기 힘듭니다. 최초에 호텔이 생긴 이유도 외국인들 대상의 숙박 업소가 필요했기 때문이니까요. 우리나라만 해도 최초의 호텔로 유명한건 "손탁 호텔" 이죠.
이후 요리가 유명한 작은 호텔들이 한, 두 개씩 생기다가 정부 주도의 영빈관 호텔이 들어서면서부터 "서구화"가 추진됩니다. 일본이 굴욕적인 불평등 조약을 맺은 이후라서 외교력을 강화하기 위해 정부 주도로 "서구화"를 강하게 추진한게 그 이유로 당시 도쿄 대학에서 교수로 일하던 독일인 의사 베르츠는 일본인들이 고유 문화를 너무 가볍게 생각하고 있다고 지적할 정도였다고 하네요.
이렇게 서구화가 국가의 핵심 과제인 상황에서 외국인 손님들, 특히 영국 황태자같은 외국 왕실 일가가 방문을 하게 되면서 서양식 호텔을 서둘러 건축하고, 이는 각 지방으로 널리 퍼져나가게 됩니다. 천황 일가의 방문도 겹쳐서 더욱 영빈관스러운 분위기를 추구하게 된 것이고요. 아울러 서구화는 단지 건축 양식 뿐 아니라 식사 및 호텔의 각종 운영 방식 모두가 포함되어 서비스됨으로써 전통 "료칸"과 더욱 차별화되게 됩니다. 
결과야 어쨌건 결국 이를 통해 서구 문화를 접하게 되었기에 소기의 목적은 충분히 달성한게 아닌가 싶습니다. 비싼 가격으로 "고급" 이미지가 함께 형성된 건 덤이라 할 수 있겠죠.

이후 각 지역 관광 산업이 활성화되면서 관광지와 함께 생겨난 호텔이 소개됩니다. 이러한 관광지는 교통 발달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지금 일본을 대표하는 관광 휴양지 중 하나인 가루이자도 요코가와와 가루이자와 간 아프트식 철도 개통으로 피서객이 급증한게 발전의 가장 큰 이유니까요. 이렇게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숙소가 필요해져 호텔이 속속 도입되게 되었고요. 비슷한 내용은 <<에키벤>> 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철도 회사가 호텔을 운영하기도 하였으며, 심지어 식민지 만주에서는 주요 철도역마다 "만철"이 운영하는 거대 호텔이 들어섭니다. 이는 서구화 단계를 지나선 일본이 식민지 사람들이 외경심을 갖게끔 거대하고 웅장한 호텔을 짓기 위함이었다고 하는데 참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심지어 부산과 경성에 세웠던 호텔마저 소개되니 더더욱 말이죠. 다행히 이 책의 저자는 식민지에서의 호텔 산업은 식민지 주민들의 희생 위에 세워졌다고 쓰고는 있습니다만, 씁쓸하더군요.

이 세 개의 큰 키워드를 중심으로 실제로 세워졌던 다양한 호텔들에 대해 상세히 소개하는게 주요 내용인데 지금은 사진으로 밖에 남아있지 않은 호텔이 대부분이며, 호텔 건설 및 운영에 참여한 인물들 소개는 딱히 관심이 가지 않는 등 조금은 불필요한 내용이 많은건 아쉽네요. 특히나 여러 인물 소개는 영 별로입니다. 인물에 대한 설명이 부족한 탓으로 실제로 뭘 했는지 잘 모르겠거든요. 단순히 호텔을 세우거나 운영한 사람들이 많아서 뭐 이렇게까지 소개했어야 하나 싶기도 했고요. 또 아쿠다카와 류노스케 등 유명 인사에 관련된 에피소드는 재미있기는 했지만 분량에 비하면 소개되는 호텔과 인물이 과한 편이라 집중이 잘 되지 않는다는 것도 문제에요.
이럴 바에야 이전에 읽었던 <<우아함과 탁월함의 역사>> 처럼 주요 호텔에 보다 촛점을 맞추어 소개하는게 훨씬 낫지 않았을까 싶네요. 

근대 일본의 분위기, 시대상을 호텔이라는 소재로 잘 드러낸 내용은 마음에 들고 당대 문화 (특히 숙박업과 관광 등)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사료적 가치 크지만 단점도 명확합니다.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그래도 나름의 가치는 충분한 만큼 근대 일본에 대해 궁금하시다면 한번 쯤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네요.

2018/12/08

블로그 개설 15주년

블로그 개설 15주년

블로그 이웃이신 est님 포스팅을 보다가 우연찮게 확인해보니 저도 15주년이더군요. (15주년 +1일) 총 포스트는 3,046개이며 총 1,187,749명께서 다녀가셨습니다.

15년이라니 제가 생각해도 대단한거 같네요. 저도 est님처럼 이글루스 서비스가 유지되는 한 계속 이어갈 생각입니다. 별 인기도 없고 방문자 수도 격감하고 있지만 그래도 찾아주시는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원더랜드 - 스티븐 존슨 / 홍지수 : 별점 4점

원더랜드 - 8점
스티븐 존슨 지음, 홍지수 옮김/프런티어

"재미와 놀이가 어떻게 세상을 창조했을까" 라는 부제로, 여러가지 대중 오락에 얽힌 역사를 풀어나가는 미시사 서적. 무언가 의미있는 활동을 통해 만들어지는 결과물이 아닌, 단순한 재미와 유희, 놀이를 통해 만들어진 무언가가 세상을 변화시킨 갖가지 사례를 상세하게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물론 재미 외에 특별한 목적이 수반된 경우는 있습니다. 자주색 염료를 만들 수 있는 뮤렉스 달팽이를 찾아 페니키아인들이 지중해를 벗어나 대서양으로 나아갔다는 활동은 명백히 "돈"을 위함이니까요. 이 역시 자줏빛 의상이 그것을 걸친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었기 때문이라는 식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즐거움을 주는 물건들은 가치가 있어서, 사람들이 이를 상업화하려는 시도를 하고, 신기술을 개발하고 시장을 개척한다는 논리인데, 아주 틀린 말은 아니죠? 이렇게 즐거움을 주는, "유희"가 가장 중요한 동기 부여 요인이며, 이를 통해 발전된 무언가가 궁극적으로 무엇에 이르렀는지를 콕 짚어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첫번째 단락은 상점을 무대처럼 장식하여 고객을 사로잡고, 구매 행위를 일종의 오락처럼 만드는 과정과 면직물의 유행을 통해 산업 혁명이 촉발된 후 "유행"이 "소비"를 창출하여 "백화점" 이 등장하는 과정, "쇼핑몰"이 도시 계획과 맞물린 후 미래 도시의 비젼을 제시하는 이야기입니다.
음악 역시 마찬가지로 즐거움을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 이는 각종 악기의 발전과 오르골 등을 거쳐 로봇 공학과 자동 방직기로 이어지게 됩니다. 방직기는 프로그래밍과 직접적인 연관성을 가지고요. 악기의 발전은 전문적인 공학의 발전과 맞물려야 했기 때문이라는 이유와 이러한 음악 관련 기술의 발전이 현대의 디지털 시대에 이르는 과정 모두 굉장히 설득력있게 다가왔습니다.

유희, 즐거움이라면 미식이 빠질 수 없죠. 향신료 교역이 불러온 갖가지 이야기도 소개되는데, 로마 제국이 후추에 너무나 열광해서 아피키우스의 요리책 조리법의 80%가 후추를 사용한다는 이야기 같은 잡학이 가득해서 마음에 듭니다. 프랑스인 푸아브르가 네덜란드가 독점하다시피 한 정향을 빼돌려 재배에 성공한다는 일종의 산업 스파이 이야기 등이 그러하죠. 
무엇보다도 향신료 중 가장 마지막까지 사치품 지위를 유지한게 바닐라라는건 처음 알게 된 사실이네요. 토머스 제퍼슨이 바닐라 아이스크림 조리법을 미국에 도입했다던가, 가루받이가 어려워 퍼지기 어려웠지만 한 노예 소년의 아이디어로 양산(?)에 성공했다는 이야기도 마찬가지고요. 특히 이 노예 소년 이야기가 향신료 교역을 상징합니다. "스페인이 지배하는 멕시코에 자생하는 식물을 인도양에 있는 한 섬에서 프랑스인이 재배했고, 프랑스 노예상인들이 그 섬에 데려온 아프리카인의 후손인 한 소년이 그 꽃을 최초로 가루받이 했다" 는 이야기니까요. 

다음에는 만들어진 "환영" 에 대한 소개가 이어집니다. 영화의 전신인 특수 효과 공연과 이 중 가장 유명했던 유령 쇼 "팬태즈머고리아", 풍경을 실제처럼 느끼게 해 주는 파노라마 전시, 활동 사진과 월트 디즈니의 혁신, 이윽고 등장하게 된 "유명인들" 에 대한 여러가지 이야기가 다양한 도판과 함께 설명되죠. 이러한 시각 효과를 활용한 오락거리가 문화적으로 어떻게 침투했고,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에 대한 고찰이 함께 진행되는데 여러모로 생각할 거리가 많더군요.
게임 또한 빠지지 않습니다. 여기 소개된 단락 중 가장 재미있게 읽은 부분인데 체스 게임은 "비유"의 중요성을 느끼게 해 주었기 때문에 중요하다는 도입부부터 신선할 뿐 아니라 이를 통해 인공 지능이 발전되는 과정, 그리고 진보주의자들에 의해 시작되었지만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게임이 된 보드 게임 (모노폴리) 등 모든 소개되는 내용이 인상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콜롬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에서 발견한 "공 놀이"가 고무라는 혁신적인 물질의 역사로 이어지는 과정, 마지막 비디오 게임의 등장과 이것이 컴퓨터를 재미로 쓸 수 있다는 혁신적인 발상의 시작이었으며, 덕분에 컴퓨터가 일상 생활 속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는 설명 역시 흥미로왔어요.
그리고 마지막은 다양한 놀이 공간에 대한 이야기인데 선술집에서 시작해서 커피 하우스, 박물관, 동물원, 공원 등의 역사가 실려 있습니다.

이렇게 즐거움, 놀라움을 추구하는 인간이 얼마나 새로운 걸 많이 만들어내었는지 새삼 느낄 수 있어서 아주 좋았습니다. 혁신을 하고자 하면 무슨 일이든 재미있게 즐기는 마음가짐이 필수일 듯 합니다. "즐기는 사람을 절대 이길 수 없다"는 옛 말은 과연 허언이 아닌거죠. 또 단지 혁신에 대해 되새겨 보는 측면 외에도 다양한 놀거리와 즐길거리에 대한 미시사 서적으로도 탁월해서 만족스럽네요. 
글의 내용이 통사적 구분이라기 보다는 주제별로 좀 널뛰는 감이 없잖아 있다는건 단점이지만 장점에 비하면 극히 사소합니다. 도판도 충실한 편이고요. 이렇게 취미에 가까운 놀거리, 즐길거리에 대해 관심이 많으신 모든 분들께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최소한 엉망인 제 리뷰보다 훨씬 좋은 책이에요. 별점은 4점입니다.

참고로 책 뒤 "감사의 말씀"을 보니 방송 프로그램을 책으로 만든 듯 싶더군요. 책보다는 방송으로 보는 게 훨씬 나은 내용일 거라는 생각은 듭니다. 방송으로 보면 4점 이상도 가능했을 것 같네요.

2018/12/02

세계 탐정 사전?

텀블벅이라는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가 있습니다. 창작자가 컨텐츠를 기획하여 올린 후 후원을 받아 목표를 달성하면 후원자들에게 컨텐츠를 제작하여 배송하는 시스템이죠. 색다른 컨텐츠가 소개되곤 해서 가끔 들여다보곤 합니다. 참고로 <<슈뢰딩거의 고양희>><<중국집>> 등이 텀블벅 후원을 통해 손에 넣은 책입니다.
이번에 들어가보니 "52인의 탐정들을 만나다. <<세계 탐정 사전>>" 이라는 책이 올라와 있더군요. 항상 관심을 가지고 있는 주제라 후원을 해 볼까 하고 내용을 좀 들여다 보았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굉장히 실망스러울 것 같다는 생각이 앞서네요. 무엇보다도 이들이 소개하는 52인의 탐정 명단이 아주 가관이에요. 만화 <<명탐정 코난>> 의 책 앞날개에 소개되는 "코난이 찾은 명탐정" 을 그대로 베꼈거든요. 아니, 제대로 베끼지도 못했습니다. 자기들 멋대로 명단을 삭제했는데 대표적인 예는 아르센 뤼팽과 쥘 메그레의 명단 삭제입니다. 그 외에도 룰타비유까지 삭제된걸 보면 프랑스인을 싫어하나 싶은 의심마저 생기는군요. 이렇게 영미권과 일본 탐정만 소개할거면 "세계" 라는 제목은 가당치도 않죠.
그나마 국내에 소개된 탐정들은 (심지어 뤼뺑은 전작이 소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들 멋대로 빼고 국내에 제대로 소개도 되지 않은 아사부키 리야코, 사시치, 다카기 요시부미, 브롱크스의 어머니, 코코, 칸헤 다이스케, 제니가타 코이치, 센바 아코주로, 이바라키 칸키, 타라오 반나이 등이 명단에 있는 이유는 도무지 모르겠어요. 이들보다 국내에 더 많이 소개되고 더 유명한 탐정은 일본 한정으로 해도 여러 명 될 겁니다. 가가 교이치로, 미타라이 키요시, 아사미 미츠히코, 사와자키, 에노모토 케이, 엔시씨, 아 아이이치로, 삼색묘 홈즈, 사이카와 - 모에, 류몬 다쿠, 스스키노 탐정, 우라조메 덴마등등등....

결론적으로, 만드는 사람들도 "세계 탐정" 에 대한 기준이 없으며, 원작을 읽어본 후 탐정을 선정해서 소개하는 사전은 아닐 것이라는 확신이 듭니다. 때문에 저는 후원할 생각이 없습니다. 이전 <<탐정 사전>> 이라는 책 리뷰에서도 언급했듯, 이럴 바에야 <<세계의 명탐정 50인>> 시리즈나 재간행하는게 훨씬 나을겁니다.

2018/12/01

오래된 책들 (5) - 매거크 소년 탐정단 3 : 사라진 신문배달 소년

딱히 포스팅꺼리가 없을 때 업로드하려고 모아놓은 오래된 책들 이야기 다섯번째. 아동용 추리, 모험물인 매거크 탐정단 시리즈 중 한 권으로 1984년도 출간된 책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 굉장히 좋아해서 전 시리즈를 구입했었는데 본가에서 오랫만에 확인해보니 두 권 밖에 남아있지 않네요.

지금은 <<맥거크 탐정단>> 이라는 이름으로 몇 권이 새로 출간되었기 때문에 소장 가치가 많이 떨어지기는 했지만... 이번에 바뀐 컬러풀한 삽화보다는 옛날 버젼 삽화가 저는 더 친숙해서 마음에 듭니다. 캐릭터들도 옛 버젼이 특징을 더 잘 살린듯 싶고 말이죠.

그래도 좋은 책임에는 분명하기에 재출간은 환영할합니다. 요새 어린이들이 이 책을 읽고 추리 문학에 흥미를 가지게 된다면 좋겠네요.

2018/11/30

위스키의 지구사 - 케빈 R. 코사르 (주영하) / 조은경 : 별점 2.5점

위스키의 지구사 - 6점
케빈 R. 코사르 지음, 조은경 옮김, 주영하 감수/휴머니스트

눈에 띌 때마다 한 권씩 사 모으고 있는, 출판사 휴머니스트에서 출간된 "~ 지구사" 시리즈의 한 권입니다. 제목 그대로 위스키의 역사를 다루고 있는 미시사 서적이죠.

책은 위스키란 곡물을 발효시킨 후 증류하여 만든 술이라는 정의에서 시작하여 기본적인 제조 방법의 소개에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위스키의 기원이 무엇이며 "위스키"라는 말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등 실제 역사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이어지죠. '위스키'가 '우스키', 즉 '생명의 물'을 뜻으로 '오스케바'라고 발음되는 게일어를 영어화한 것이라는데 재미있네요. 어원부터가 '생명의 물' 이라니!

다음은 맨 처음 위스키를 만들었다는 스코틀랜드, 경쟁자였던 아일랜드, 신대륙 미국에서의 위스키 역사가 국가별로 소개됩니다. 스코틀랜드의 싱글 몰트 위스키는 저도 무척이나 좋아해서 무척 반갑더군요. 그다지 잘 알려져있지 않은 아일랜드 위스키의 역사도 흥미로왔고요. 아이리시 위스키는 한 번도 마셔본 적이 없는데 로크스 (locke's)라는 싱글 몰트 위스키는 구할 수 있다면 한 번 구해보고 싶네요. 미국 위스키의 역사는 정착민이 처음부터 만들기 시작했다는 등 전반적으로 새로운 내용은 많지 않지만 미국 건국의 아버지인 조지 워싱턴이 위스키 애호가라는 등의 소소한 에피소드가 꽤 괜찮았습니다. 조지 워싱턴은 독립 전쟁 당시 군대에 항상 충분한 술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는데 무척 놀랐어요. 어떻게 승리할 수 있었는지 잘 모르겠네요. 이후 알 카포네 등으로 우리도 잘 알고 있는 금주법 시대에 대한 설명도 재미있게 읽었던 부분이고요.
그리고 <<21>> 이라는 제목으로 현재의 위스키 시장과 상황을 설명하며 내용은 마무리됩니다.

이러한 '지구사' 뒤에 한국의 음식 문화 전문가 주영하 씨의 한국 위스키의 역사가 특집으로 실려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본편보다도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처음에 위스키를 발음대로 '유사길' 이라는 한자로 표시했다는 내용부터 대한 제국 시절의 유통 과정, 일본 강점기 시기 위스키 시장의 확대와 위스키 원액은 한 방울도 들어가지 않은 '유사 위스키'의 등장, 그리고 해방 후 상황으로 이어지는 내용 모두 말이죠. 아무래도 우리 역사에 관련된 내용이라서 그랬던 것 같네요.

이렇게 대충이나마 통사적인 접근도 가능하고, '지구사'라는 말에 걸맞게 각 국가별 현황에 대해서 다루어 주기 때문에 위스키에 대해 전반적으로 (대충이나마) 이해할 수 있어서 만족했습니다. 서양 중심의 역사만 서술된 것은 분명 아쉬운 점이지만 주영하 씨의 글이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고 있기도 하고요. 위스키에 대해 별다른 관심이 없으시다면 읽어보실 필요가 없겠지만, 이쪽 분야를 좋아하시거나 관심이 있으시다면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2018/11/25

피너츠 완전판 12 : 1973~1974 - 찰스 M 슐츠 / 신소희 : 별점 2.5점

피너츠 완전판 12 : 1973~1974 - 6점
찰스 M. 슐츠 지음, 신소희 옮김/북스토리

드디어 완전판이 제 출생년도에 진입하였습니다! 여러모로 감개가 무량하군요.

수록 에피소드들은 대체로 수년간 이어온 설정에서 유래된 개그가 많은 편입니다. 찰리 브라운의 야구팀이나 여름 캠프같은 이야기들 말이죠. 그래도 조금 새로운 시도가 몇 개 보이는데 대표적인 게 찰리 브라운의 야구팀이 다른 이유로 몰수패당하기는 하지만 첫 승을 거두는 에피소드입니다. 저는 어떤 상황, 이유에서건 찰리 브라운이 감독, 투수로 있는 동안에는 절대로 이기지 못한 줄 알았는데 굉장히 의외였어요. 마찬가지로 패티가 스누피가 비글이라는 걸 알게된다는 것에도 놀랐고요. 영원히 모를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빠른 시기에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캐릭터도 등장합니다. 그 중에서도 학교 건물이 가장 독특했어요. 샐리 브라운과 대화하는 (?) 식으로 등장하는데, 시각이 상당히 신선했거든요. 아무도 (심지어 샐리마저도) 정말로 답을 기대하며 대화를 하는게 아니지만 실제로는 생각이 있다는 기묘한 설정을 이야기로 잘 풀어나가고 있어서 인상적이었습니다. 반면 처음으로 실체가 등장한 루시의 동생 리런은 좀 아쉽더군요. 라이너스와 크게 구분되는 특징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아마 지금 잊혀진 이유도 그래서였겠죠.

그 외에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라면,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봉투를 뒤집어 쓴 채 참가한 여름 캠프에서 찰리 브라운이 대표로 선출되고 잘 나가는 에피소드들이 우선 떠오릅니다. 여러모로 많은 걸 생각하게 만들어요. 또 스누피의 대 기록 (홈런 기록)을 앞두고 찰리 브라운이 견제사로 사망하는 에피소드는 최불암 시리즈의 오래된 옛 농담과 거의 비슷해서 좀 놀랐습니다. 
아울러 이전 권들과 마찬가지로 당대 유행을 반영하는 에피소드들도 몇 개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번 권에는 서머타임 시행 초기의 시행 착오와 스트리킹의 유행이 그러합니다. 오래된 작품이니만큼 이런 이야기가 더 많았더라면... 하는 생각도 드는군요.
무엇보다도 이번 권에서 가장 눈여겨 본 것은 제 생일에 발표되었던 에피소드에요. 개인정보(?)라 자세한 언급은 하지 않겠지만 글을 쓰는 입장에서 꽤나 반가왔던 내용이라 마음에 듭니다.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빵빵 터지는 재미도 없고, 식상한 설정과 개그가 많아 감점합니다만 오래된 팬이라면 충분히 즐길만 합니다. 여전히 은근한 개그도 매력적이고요. 이 정도 수준만 유지해 주어도 저는 만족합니다. 다음 권도 기대가 되네요.

2018/11/24

일본의 식문화사 - 이시게 나오미치 / 한복진 : 별점 2점

일본의 식문화사 - 4점
이시게 나오미치 지음, 한복진 옮김/어문학사

선사 시대에서부터 근대까지 일본의 식문화를 정리한 서적. 정확하게는 후기 구석기 시대에서부터 시작됩니다. 특정 요리나 특정 시기만을 다룬게 아니라, 통사적으로 전반적인 식문화사를 다루고 있다는게 마음에 들었습니다.

몇가지 기억에 남았던 부분을 꼽아보자면, 조몬 시대 초 2만 명 정도였던 일본 열도의 인구가 조문 시대 중기 26만여명 까지 늘어났는데, 그 이유는 도토리, 상수리 나무 열매 및 각종 견과류가 식량 자원으로 이용되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상수리 나무 열매는 동일 면적 대비 생산량으로 따지면 생산량이 많은 벼의 1/8에 해당될 만큼 생산량이 많아서 유용했다는군요. 이는 발굴된 당시 인골이 충치가 많은 것으로도 증명됩니다. 
쌀이 주식으로 도입된 이유는 벼가 몬순 아시아에 적합하고 수확량이 많을 뿐더러 토양 침식이나 연작 장애가 없다는 농학적 장점에 더해 칼로리원이며 단백질도 우수하다는 영양학적 장점이 컸던 탓입니다. 부식물 없이 인체 유지를 위한 단백질을 쌀만으로 섭취하려면 체중이 70kg인 사람의 경우 조리하지 않은 쌀을 하루에 약 0.8kg 먹어야 하는데 이는 위장에 부담을 주기는 합니다. 그러나 위장에 일단 채워두는게 가능했기에 유용했습니다. 이만큼을 밀가루로 섭취하려면 3kg을 섭취해야 하는데 이는 위장에 넣어두기 불가능한 양이라네요. 여튼, 이를 위해 농번기에 일본 농민은 하루에 1.5kg씩 쌀을 먹기도 했답니다. 우리나라도 예전에 고봉밥으로 밥을 엄청나게 많이 먹은 이유도 마찬가지겠죠. 
그러나 식육의 공급은 여러모로 부족했고, 유제품 역시 거의 활용되지 않았는데 그나마 기록에 남은 유제품은 '소' 뿐입니다. 유즙을 1/10로 졸인 음식인데 현재는 우유를 은근히 가열하여, 표면에 떠오른 막을 걷어내기 반복하여 얻은 유피일 것이라네요.

그리고 9세기 경에 현재에 계승된 전통적인 일본 요리의 기본적 조리법이 확립되었다고 합니다. 차이점이라면 기름을 이용하는 요리법이 거의 없다는 점인데 이는 육식을 하지 않아 동물성 지방, 버터를 이용할 수 없었고 식용유를 짤 수 있는 깨 등의 작물은 매우 비쌌기 때문이죠. 이는 기름진 맛이 진하고 품위없다는 인식이 정착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연회의 형식도 같은 시기 확립되었는데, 공적 질서를 중시하는 전반부 음주가 끝나고, 자리를 바꾸어 예를 찾지 않는 2차회가 이어지는 2부 구성입니다. 현대와 똑같은데 이러한 형식이 헤이안 시대에 이미 확립된 것이라니 재미있네요.

그리고 다회, 가이세키 요리 등 지금도 친숙한 여러가지 용어가 등장합니다. 이 중에서 네덜란드나 포르투칼 요리에서 비롯된 '난반 요리' 설명이 특히 재미있네요. 서양식 요리를 일본식으로 변경한 아이디어가 재미있었기 때문인데 예를 들어 나가사키의 '히가도'는 참치, 무, 당근, 고구마를 주사위 모양으로 썰어 간장으로 맛을 낸 조림 요리로 원래는 소고기를 기름에 볶은 조림 요리라고 합니다. 소고기 대신 붉은 빛의 참치로 변경하고, 기름을 많이 쓰지 않는 일본 요리처럼 소테 과정을 빼고 조림 요리로 변화시킨 것이죠. 

이러한 과정을 거친 전통적 식문화의 완성, 그리고 근대에 외국 요리가 대거 도입되며 일어난 변화로 식문화사를 정리하는데 이 과정도 난반 요리와 유사한 점이 엿보입니다. 대표적인게 우스터 소스의 사용입니다. 간장을 만능 조미료로 사용했던 전통적 식문화에 기반하여, 쌀밥에 어울리는 우스터 소스를 서양 간장으로 이해하여 이를 적극 활용하게 된 것이죠. 중국 요리가 일본적으로 변형되고, 여기서 '시나 소바'가 '라면'으로 변화하는 과정도 같은 시각으로 설명합니다. 시나 소바는 원래 돼지고기와 닭뼈 스프에 구워서 조린 돼지고기를 얹고 후추를 뿌려 먹은 면 요리인데, 소바와 우동 등 전통적인 면류를 야식용으로 행상이 팔았던 것 처럼 야식으로 시나 소바가 활발히 팔리면서 일본적으로 변형된게 계기라고 말이죠. 그리고 예를 든 건 고명으로 차슈 외에 멘마, 나루토말이, 다진 파를 얹은 것입니다 

이러한 식문화 역사가 1부 분량이며 2부에서는 식문화, 즉 예법과 용품, 조리법, 조리 기술 등을 망라하여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법과 용품에 대한 내용은 딱히 흥미롭지 않았으며, 조리법 등을 소개하며 사시미, 스시, 스키야키, 두부, 라멘 등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하는 부분은 다른 관련 서적에서 익히 보아왔던 내용과 별로 다르지 않아 실망스러웠습니다. 30여 페이지에 불과한 3부인 세계로 뻗어나가는 일본 식문화에 대한 소개는 정말 볼 내용이 없었고요. 

아울러 기대에 미치지 못한 2부, 3부의 내용 외에도 책의 완성도는 아쉬움이 많습니다. 도판이 부실한 점은 그렇다 쳐도 번역이 너무 엉망입니다. 보다 쉽게 쓸 수도 있었을텐데 너무 어렵게 썼으며, 맞춤법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음은 물론 오탈자도 많기 때문이에요. 번역을 전문 번역가가 아니라 요리 전문가가 했기 때문이겠죠. 요리 전문가가 각종 용어에 대해서는 훨씬 잘 알 수 있기야 하겠지만 "제 2의 창작" 이라고 까지 불리우는 번역의 역할을 너무 간과했습니다. 어찌되었건 20,000원이라는 가격에 어울리는 수준은 아닙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한 국가의 식문화를 통사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책으로 인상적인 부분이 없지는 않지만 완성도에 걸맞는 가격은 아니라서 감점합니다. 같은 이유로 선뜻 권해드리기는 어렵네요.

2018/11/23

맥파이 살인 사건 - 앤서니 호로비츠 / 이은선 : 별점 3점

맥파이 살인 사건 - 6점
앤서니 호로비츠 지음, 이은선 옮김/열린책들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별고 없는 조용한 마을 색스비온에이번에서 대저택 파이 홀의 가정부 메리 블래키스턴의 장례식이 치러진다. 추도식을 맡은 목사, 음흉한 앤티크 숍 주인, 고인과 갈등을 겪은 아들, 시신을 발견한 관리인 등 등장인물들의 미심쩍은 행동과 죽음을 둘러싼 소문들이 밀도 있게 다뤄진다. 이후 파이 홀의 주인인 매그너스 파이마저 기이한 죽음을 맞는다. 소식을 접한 탐정 아티쿠스 퓐트는 본격적으로 수사에 착수한다... 라는 내용의 인기 추리 소설 시리즈 아티쿠스 퓐트 시리즈 최신작 <<맥파이 살인 사건>> 원고를 읽던 담당 편집자 수전 라일랜드는 소설의 결말이 누락된 것을 알고 원고를 전해 준 출판사 사장 찰스를 찾아간다.
찰스로부터 작가 앨런 콘웨이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수전은 사라진 원고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에 앨런의 자택과 주변 인물들을 조사해 나간다. 그러면서 점차 앨런 콘웨이 죽음이 자살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히는데...


작 중 최고의 인기 추리 소설 시리즈 중 하나인 아티쿠스 퓐트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인 <<맥파이 살인 사건>>과, 이 책의 출판을 담당하는 클로버리프 북스의 소설팀 팀장 수전 라일랜드가 저자인 앨런 콘웨이 사망 사건에 얽힌 진상을 추적하는 두 개의 소설이 함께 수록된 작품. 본 이야기 속에 하나 이상의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는 일반적인 액자 소설이라기 보다는 <<맥파이 살인 사건>> 자체가 하나의 독립된, 완성된 추리 소설로 수전 라일랜드 이야기의 동기로 사용된다는 점이 조금 특이했습니다. 보통 액자 소설은 본편 주인공에게 소설 내용이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는데, 이 작품에서의 <<맥파이 살인 사건>>은 강력한 동기 외에는 딱히 다른 역할을 하지는 않거든요.

물론 인기 시리즈로 베스트셀러가 확실한 작품인데다가 수전 라일랜드부터가 굉장한 추리소설 매니아라서 안 찾고는 못 배겼을 거라는, 굉장히 확실한 동기라는 측면에서는 설득력은 높습니다. 문제는 <<맥파이 살인 사건>>이 앨런 콘웨이 사건에서 큰 단서가 되지 못한다는 점이죠. 앨런 콘웨이가 얼마나 추리 소설을 싫어하고 증오했는지를 설명해 주는 도구로만 사용될 뿐 딱히 대단한 단서나 트릭이 숨겨져 있지 못한 탓입니다. 그런 도구로의 사용도 대부분 앨런 콘웨이의 장난에 불과해서 크게 와 닿지도 않았고요.
오히려 <<맥파이 살인 사건>> 이라는 추리 소설 자체만으로의 완성도가 높은 수준이라 이렇게 사용되는게 아깝게 느껴지기까지 했습니다. 1955년을 무대로 하고 있는데 크리스티 여사님으로 대표되는 당대 본격 추리물과 비교해도 뒤쳐지지 않을 정도였거든요. 단서의 제공도 공정하며 모든 등장 인물들이 동기가 있고 수상하다는 전개도 본격물스러우며, 범인을 추리하는 과정도 무척이나 합리적이며 범인의 동기도 확실해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수전 라일랜드의 활약을 그린 본 편도 흥미롭습니다. 추리 소설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딱히 대단한 능력은 없는 출판사 직원이 보여줄 수 있는 한계의 최대치를 뽑아내는 전개도 좋으며 ,본격물답게 엄청나게 많은 용의자가 엄청나게 많은 수상한 점을 드러내지만 이 모든게 마지막에 제대로 밝혀지는 결말까지는 아주 완벽했어요.

그러나 범인이 드러난 직후부터는 영 마음에 들지 않아요. 일단 범인이 찰스였다는 진상은 놀랍지만 이게 밝혀지는 이유가 잠깐 스쳐지나간 해고된 비서와의 대화에서 비롯된다는 점이 그러합니다. 우연에 기댄 작위적인 전개일 뿐 아니라, 찰스의 행동이 너무나 허술해서 황당할 정도에요. 앨런 콘웨이을 사전에 만났고, 이미 완성된 원고를 전달받았다는걸 수전이 아는 순간 모든게 끝나 버리잖아요? 마지막에 수전을 죽일 생각이 들었다면 비서부터 죽였어야죠. 
또 동기에 대한 설득력도 낮습니다. 앨런 콘웨이가 아티쿠스 퓐트 시리즈를 완벽한 조롱거리로 끝장내기로 작정했다 하더라도, 그의 계획과 인터뷰는 책을 화제로 만들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작품 자체의 수준도 높은 만큼 판매에 지장이 있으리라 생각되지는 않아요. TV 시리즈야 물 건너 갈 수도 있겠지만 판매량으로 대중적인 인기를 증명한다면 영상화 판권을 소유한 업체가 쉽게 포기할 것으로 보이지도 않고요. 즉, 수전 라일랜드가 처음에 찰스를 의심하다가도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죽일 리 없다'고 생각을 접은게 타당한 추리입니다. 수전만큼의 추리 소설에 대한 애정을 찰스가 보였다면 그나마 조금 나았을지도 모르지만 이래서야 현실성이 없죠.
아울러 앨런 콘웨이가 시리즈 제목을 활용하여 '애너그램' 이라는 말을 만들어 안배한게 고작 아티쿠스 퓐트의 이름을 풀어서 해석하면 욕이다라는 핵심 동기는 물론, 앨런이 추리 소설을 우습게 보았다는 각종 설정 (예를 들어 등장인물들의 이름을 지하철 역 이름이나 만년필 회사 등으로 대충 지은 것)도 딱히 이상하다 느껴지지는 않았어요. 추리 소설이라는 장르를 우습게 보고 그것을 조롱하고자 했더라면 좀 더 거대한 무언가가 필요하지 않았을까 싶네요.

수전을 죽이려고 시도한 후 경찰에 체포되어 출판계 동료들이 수전을 배신자라 생각하여 등을 돌렸다는 후일담도 와닿지 않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앨런 콘웨이는 모든 사람들이 싫어해서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했더라도, 수전을 죽이려고 시도한 것은 엄연한 범죄인데 배신자는 무슨 배신자랍니까... 마지막 수전이 그리스로 옮겨가는 에필로그는 솔직히 완전한 사족이었고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3점. 두 편의 완성도 높은 추리 소설을 한 권으로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은 굉장하지만 위의 단점으로 감점합니다. 욕심이 좀 지나쳤달까요? 차라리 <<맥파이 살인 사건>> 만으로 출간되었더라면 더 낫지 않았을까 싶네요. 그래도 추리적으로는 볼만한 부분이 많고, 현대에 전통 본격물을 제대로 복원한 공 만큼은 인정합니다. 추리 장르 애호가시라면 꼭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18/11/18

마블스 - 커트 뷰식, 알렉스 로스 / 최원서 : 별점 2.5점

마블스 - 6점
커트 뷰식 지음, 알렉스 로스 그림, 최원서 옮김/시공사(만화)

포토 저널리스트 필 셸던의 시각으로 바라본 마블 슈퍼 히어로 이야기. 휴먼 토치가 첫 등장하는 1939년부터 시작하여 네이머와 토치의 사투, 2차 대전 후 영웅이 된 캡틴 아메리카와 다양한 영웅들의 등장, 엑스맨의 등장으로 시작된 초인들에 대한 공포, 갤럭투스의 침공, 그웬 스테이시의 죽음 등이 필 셸던의 시선을 통해 전개됩니다. "마블스"는 필 셸던이 이 경이로운 능력자들을 부르는 자신만의 별칭이고요.

특징이라면 단순한 영웅담이 아니라 일반인 시선에서 바라본 슈퍼 히어로들의 경이, 두려움, 그리고 이를 이성으로 재단하고 판단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뇌가 심각하게 드러나 있다는 점입니다. 
이를 일반인 시각에서 바라본 일종의 르포르타쥬 형태로 묘사하고 있어서 설득력이 높을 뿐 아니라, 탁월한 작화력의 소유자인 알렉스 로스의 그림이 더해지니 정말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느낌을 전해주는 것도 참신합니다. 그야말로 "현실감" 이라는 측면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할 수 있죠.
또 마블 세계관의 팬으로서는 휴먼 토치, 네이머, 캡틴 아메리카, 아이언맨, 판타스틱 4... 등 셀 수 없이 많은 마블 슈퍼 히어로들, 심지어 죠나 제이머슨과 벤 유릭 등이 등장한다는 점도 볼거리였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액션이 제대로 선보이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던 르포르타쥬, 다큐멘터리 형식이 강한 탓으로 필 셸던은 사건이 벌어지면 휩쓸리는 군중 1 정도의 비중으로 모든 사건을 먼발치에서 바라만 볼 뿐이거든요. 사진작가다운 과감한 앵글 (앤트맨을 밑에서 찍는 장면은 정말이지 최고입니다) 은 나쁘지 않지만 이래서야 슈퍼 히어로물 다운 재미가 있다고 하기는 어렵겠죠.
필 셸던의 생각과 고뇌는 시종일관 같아서 뒤로 가면 갈 수록 지루해 진다는 것도 단점이고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독특하기는 하나 재미 측면에서는 아쉬움이 많았습니다. 선뜻 권해드리기 조금 애매하네요.

2018/11/17

당신의 별이 사라지던 밤 - 서미애 : 별점 1.5점

당신의 별이 사라지던 밤 - 4점
서미애 지음/엘릭시르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3년 전 모종의 사건으로 딸을 잃은 우진. 깊은 슬픔에 빠져 간신히 삶을 지탱하던 그는 아내마저 갑작스럽게 떠나보내고 만다. 이제 아무것도 남지 않은 우진은 아내의 장례를 치르고 절망 속에 주저앉지만 그때 그런 그를 붙드는 뭔가를 발견한다. 누군가 우진에게 남긴 편지 한 장, "진범은 따로 있다"는 단 한 줄의 메모.

삶의 벼랑 끝에서 무너져 내리던 우진은 딸과 아내의 죽음에 얽힌 의혹을 풀기 위해 그 한마디를 붙들고 다시 일어난다. 가슴에 묻어둔 딸의 살인 사건을 파헤치기 시작하자, 진실을 외면하고 침묵하던 사람들의 모습이 하나둘 드러나는데……. (출판사 제공 책 소개에서 인용)

한국 추리, 장르 문학 암흑기부터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중견 작가 서미애의 신작 장편소설. 제목의 별은 주인공 우진의 딸 수정을 의미합니다. 딸이 고등학생 일당에게 살해 당한 후, 모든 것을 잃고 지옥에서 살게 된 우진의 심정을 잘 나타낸 제목이죠.

우진이 자살하려는 아내 혜인의 전화를 받고 집으로 뛰어가는 도입부, 그리고 아내의 자살 이후 자신이 몰랐던 아내의 처절한 고독과 새삼스러운 딸의 부재를 깨닫는 장면의 묘사는 아주 좋습니다. 작가의 말의 따르면 친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은 후 쓴 작품이라는데 확실히 이런 슬픔을 느껴본게 분명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잘 쓰여져 있어서 공감을 불러 일으킵니다. 이렇게 감정이입하게 만드는 묘사는 자신도 죽을 결심을 한 우진이 "진범은 따로 있다"는 메모를 발견하고, 혼자만의 수사를 시작하는 전개에 강한 설득력을 부여하기도 하고요.
수사 초기 아내 자살의 원인이 된 병원에서의 수모를 우진이 새삼스럽게 겪는 부분까지는 정말이지 몰입해서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후 내용은 솔직히 엉망입니다. 어설픈 클리셰가 난무하고 캐릭터의 설정과 역할도 제대로 배분되어 있지 못하지만, 무엇보다도 추리, 스릴러물로 볼 수 없는 이야기 전개 때문입니다. 범죄, 사건은 등장하지만 추리는 눈을 씻고 찾아볼 수도 없고, 스릴도 당최 느껴지지가 않습니다.
가장 중요한 진범의 정체가 밝혀지는 과정부터 황당하기 짝이 없어요. 우진이 사건에 뛰어든 직후, 3인조 윤기, 재강, 승찬의 대사를 통해 세영은 사건과 관련이 있다는게 드러납니다. 그리고 3인조는 우진이 다시 추궁을 시작해서 세영을 만나려 한 것이고요. 그럼 진범은 누구겠어요? 당연히 진범은 세영이겠죠... 이렇게 이야기의 핵심이 초, 중반에 드러나 버립니다.
또 사건의 진범을 쫓는 전개에서 우진이 하는 일은 세영의 아버지인 전 검사 출신 (딸 사건 담당) 변호사 재혁에게 문자를 남기는 것 뿐입니다. 정작 독자에게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역할은 사건을 은폐한 핵심 인물인 재혁이 담당하니 이게 뭔가 싶더군요. 재혁도 검사 시절 연줄로 우진의 위치를 추적해서 뒤를 쫓는 것 외에 하는게 없기는 마찬가지고요.
추리가 없으면 분위기라도 잡아줘야 하는데 우진과 세영은 평범한 부녀처럼 바다, 천문대 여행을 즐길 뿐이라 긴장감 역시 눈을 씻고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전개도 작위적입니다. 세영과 우진이 엮이는 장면부터 그러합니다. 세영은 우진의 딸을 살해한 3인조에게 쫓기던 와중에 '우연히' 우진의 차를 타게 되고, 우진과 함께 '우연히' 바다로 떠나게 됩니다. 그리고 '우연히' 트럭 사고에 휘말려 응급실을 방문하고 여기서 '우연히' 우진이 세영의 핸드폰으로 그녀의 신분을 알게 된다는 식입니다. 도대체 우연이 몇 번 겹쳐야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지 감도 오지 않네요.

그리고 사건을 '우연히' 키우게 된 원인인 3인조가 세영을 만나려 한 의도도 전혀 설명되지 않아서 의아합니다. 진범이 따로 있다고 해도 3인조가 지금 시점에 안달이 날 필요는 없어요. 이미 법의 심판은 받았고, 주역이라 할 수 있는 재강은 서울대 법대에 다닐 정도로 모두들 부모의 재력으로 잘 살고 있는 와중에 무얼 두려워 하는걸까요? 본인들이 저질렀지만 숨겨 놓은 죄가 밝혀지는게 아니라, 본인들이 저지르지 않았지만 뒤집어 쓴 죄가 밝혀진다는데 오히려 환영해야 할 일이 아닐까요? 그들을 단죄한 검사 재혁이 세영의 아버지로 일종의 딜을 통해 가벼운 형벌을 주었다 치더라도 일사부재리의 원칙으로 다시 법정에 세워 판결을 내리는 건 어려울테고요. 어차피 자기들끼리 여자를 보호하려는 기사도 정신을 발휘한 것이라고 입만 맞춘다면 무거운 형벌을 받지도 않을테고 부모들에게 피해가 갈 리도 없죠. 한마디로 쓰잘데 없는 행동으로 이를 3인조의 브레인같은 서울대 법대생 재강이 모른다는 것도 설득력이 낮습니다. 
무엇보다도 3인조가 내분을 일으키고 재강이 윤기를 살해했다는 이야기는 당쵀 왜 나왔는지도 모르겠어요. 이 상황에서 재강이 당당하게 빠져나갈 수 있다고 자신하는 장면도 이해가 되지 않고 말이죠.

이러한 무리수는 제가 보기에는 독자는 다 알지만 작가 스스로만 세영의 정체를 잘 감추었다고 생각하고, 진정한 흑막은 3인조, 그 중에서도 재강이다! 라는 인식을 독자들에게 심어주기 위해 전형적인 추리 소설류에서 따온 뻔한 설정인데 정말이지 무의미했습니다.

아울러 캐릭터 설정과 묘사, 배분도 엉망입니다. 누가봐도 주인공 우진이 탐정 역할을 수행하며 악을 단죄해야 하고, 사건의 절대악은 진범인 세영과 이를 은폐한 재혁이어야 합니다. 허나 우진은 앞서 말씀드린대로 하는게 없고, 세영은 마지막 부분의 묘사를 빼면 시종일관 가정 불화로 고통을 겪는 불쌍한 소녀로 그려집니다. 재혁도 세영 부분의 묘사와는 다르게 딸 바보 인격자로 묘사되고요. 3인칭 시점이었다면 단서가 복선처럼 등장했을지도 모르나... 세영과 제혁 모두 각자의 시점으로 묘사되어 이야기의 공정함이라던가 복선 모두 안드로메다만큼 거리가 멉니다. 세영이 마지막에 절대악으로의 면모를 드러내며 범행을 고백하는 장면도 뜬금없기 그지 없고 무언가 깔끔하게 단죄하는 느낌도 들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요.
또 이를 핸드폰으로 촬영한 것 정도로 다 잘 해결될거라고 보는 것도 무리죠. 재혁과 세영을 감금, 포박한 상태에서 얻은 자백이 과연 증거 효력이 있을까요? 고문해서 증거를 날조한 거와 다를 것도 없잖아요?

그래서 결론 내리자면 별점은 1.5점. 딸과 아내처럼 가족, 친지를 잃은 사람의 슬픔이 어떤지를 그리는 절절하고 먹먹한 묘사만큼은 일품입니다만 추리, 스릴러 장르물로서는 꽝이에요. 추리물을 표방하지만 신파 드라마 쪽 완성도가 훨씬 높다는 점에서는 전형적인 한국 장르물이구나 싶네요. 여튼, 권해드릴만한 작품은 절대로 아닙니다.

2018/11/15

쥐덫 - 애거서 크리스티 / 김남주 : 별점 2.5점

쥐덫 - 6점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김남주 옮김/황금가지

황금가지의 정식 한국어 판으로 다시 읽은 크리스티 여사님의 대표 단편집. 이전에, 무려 14년 전에 해문 출판사 버젼으로 읽고 리뷰를 남겼었죠. 다시 읽은 김에 짤막하게 리뷰 남깁니다.

이전과는 다르게 단점이 먼저 눈에 들어오더군요. 무려 9편이나 되는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보니 완성도가 낮은 작품도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예전에는 다 좋아보였는데 말이죠. 예를 들어 <<관리인 사건>>은 정보 제공이 공정하지 못해서 좋은 단편이라고 하기는 힘들고, <<조니 웨이벌리 사건>>의 경우는 증거가 너무 빈약해요. <<사랑의 탐정>>은 범인들의 위증에만 기대고 있는 최악의 작품이고요. 14년 동안 너무 많은 작품을 읽어온 탓이겠죠. 
여사님 리뷰의 바이블인 <<애거사 크리스티 완전 공략>> 에서의 별점도 2점에 불과하며, 이유는 메인인 <<쥐덫>>의 트릭은 재탕한 것이고 추리 소설로 알맹이가 너무 없으며, 다른 단편들은 추리 퀴즈 수준이기 때문이라는데 어느 정도는 공감이 갑니다.

그래도 마냥 폄하하기만은 힘듭니다. <<쥐덫>>은 아무리 트릭을 재탕했다 하더라도 폐쇄된 공간, 제한된 등장인물들끼리 빚어내는 긴장감이 일품이기 때문입니다.어차피 트릭도 대단하지 않은, 평범한 인물 바꿔치기에 불과해 재탕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지도 잘 모르겠어요.
트릭에 기댄 추리 퀴즈 같은 작품이라 하더라도 <<줄자 살인 사건>> 에서 짤막한 분량 안에 사건의 동기까지 집어넣은 솜씨는 눈여겨 볼 만 합니다. 피해자 스펜로 부인이 처음에 꽃집을 시작해서 부자가 되었다는 한 페이지도 안되는 과거사를 살짝 언급한 후, 스펜로 부인이 하녀일을 할 때 사라진 에메랄드를 연결하는 식이거든요. 하녀 외에 여주인의 몸종이 있었을 것이다라는 당대의 상식이 잘 공유되지 못한 건 안타깝습니다만...
그 외에도 <<완벽한 하녀 사건>>과 <<검은 딸기로 만든 '스물네 마리 검은 새'>>는 이런 트릭을 사용한 작품의 교과서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높은 완성도를 자랑하고요. 최소한 <<퀸 수사국>> 같은 정말이지 추리 퀴즈에 불과한 이야기하고는 차원이 다릅니다. 푸아로미스 마플에 할리 퀸까지 등장하는 종합 선물세트라는 점도 돋보이는 점이고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추리 소설의 팬이자 크리스티 여사님 팬이라면 한 번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런 분이시라면 이미 읽어 보셨겠지만요.

2018/11/11

책 정리하는 법 - 조경국 : 별점 2점

책 정리하는 법 - 4점
조경국 지음/유유

저도 독서가 취미인 애서가로 쌓이는 책에 대한 고민은 항상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이사 계획 때문에 최근에는 고민이 더욱 늘었고요. 그러던 와중에 이 책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제목도 제목이지만 부제인 "넘치는 책들로 골머리 앓는 당신을 위하여"가 너무 마음에 들었기 때문입니다. 부제만 보면 딱 저의 고민을 해결해 줄, 그런 책이라 생각되었거든요.

그런데 읽고 나니... 너무 완벽하게 기대를 배신당해서 뭐라 할 말이 없네요. 이유는 저자가 이 책의 독자가 누구인지를 쓰면서 망각한 탓입니다. 머리말 서두에서 "이 책을 읽는 분이라면 분명 자신만의 특별한 책 정리법이 있을 겁니다." 라고 쓴 걸 보면 저자도 이 책은 어느 정도 책을 소유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독자라는걸 잘 알고 있는 듯 해요. 저 역시 그런 사람으로서 저자만의 특별한 노하우 공유를 기대했고요. 하지만 실제 내용은 정말이지 '초보자' 수준의 지식을 설명하고 나열하는데 그칠 뿐입니다!

그나마 제목과 연결고리를 가질만한 내용은 4부인 <<서가의 다양한 형태들>> 정도입니다. 직접 만드는게 최고라며 사이즈 등 여러가지 팁을 소개해 주고 경량랙 등 기성품에 대한 소개도 충실한 덕이며, 자금의 여유가 있다면! 이라며 추천하는 이케아 빌리 시리즈도 눈여겨 볼 만 했습니다. 다음에 이사갈 때 저도 한 번 고려해 봐야겠더라고요.
7부인 <<책을 싸는 이유와 노하우>>에서 맥도날드의 포장용 봉투가 완벽한 책싸개라고 알려주는 부분도 실용적인 팁이라 인상적이었어요. 튼튼하기도 하고 가벼우면서도 색깔도 무난하니 괜찮다는 이유인데 실제로 사용해보니 꽤 마음에 들었습니다. 앞으로 애용할 듯?

하지만 괜찮은 팁과 노하우 공유는 이 정도에 그칩니다. 다른 내용들은 앞서 말씀드린대로 이 책을 읽을 독자들 수준에는 걸맞지 않는 초심자용 내용이 많아요. 예를 들어 4부인 <<책 정리하는 법>>은 제목만 놓고 보면 책의 핵심인데, 책을 어느정도 보유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다 자신만의 정리법이 있을테고 저 역시 그러한만큼 딱히 도움이 되는 내용은 아니었어요. 그냥 헨리 페트로스키의 방식, 십진분류법, 분야별 분류, 작가별 정리, 출판사별 정리 등 다양한 방식만 나열될 뿐입니다. 책 목록 정리법도 '비블리'라는 어플리케이션을 추천하며 마무리하는데 이 역시 새로운 내용도 아니며 딱히 땡기지도 않았고요.
마지막에 책을 정리하는 최후의 방법이라며 소개되는 다양한 책 처분법 역시 새로운 내용은 전무합니다. 기증하거나, 온라인을 통해 팔거나 헌책방에 파는 등의 방법이 소개되는데 책을 어느 정도 소유하고 있는 애서가라면 당연히, 누구나 알 내용이에요.

저자 본인 기준에 맞추어져 있어서 동의하기 어려운 내용도 많습니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완벽한 서재의 조건 중 180*80 센티미터 크기의 책상이 필요하다는 게 대표적인 예입니다. 서재는 책을 보관하는 곳이기도 하고, 책을 읽는 곳이기도 해야 한다는 말에는 동의하는데 그런 것 치고는 책상이 너무 크잖아요! 차라리 이 책에도 등장하는 일본의 유명 애서가 다치바나 다카시가 말하는 "방 안에서 몸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은 의자 주변의 반경 1미터 남짓이면 충분하다"는 완벽한 서재 쪽이 더 공감이 갑니다. 공간을 좁게 구성하는게 책을 보관하는 기능에는 훨씬 유용한게 당연하니까요. 그리고 이어지는 자신의 책상, 독서대, 스탠드, 커튼 등에 대한 이야기들도 모두 저자의 기준일 뿐입니다. 
제목과 아예 동떨어진 이야기가 많은 것도 문제인데 2부인 <<남의 서재 엿보기>>는 저자가 과거 잡지사에서 일할 때 사진가의 서재를 찾아 인터뷰했던 기억을 더듬어 쓴 내용으로 책 정리하고는 거리가 멉니다. 저자의 헌책방을 열기까지의 과정도 재미는 있지만 단순한 개인사 에세이라 기대했던 내용은 아니었어요.
마지막으로 도서출판 유유의 책 답게 내용과 분량에 비하면 높은 가격도 매력을 떨어트립니다. 저는 전자책으로 약 7,000여원에 구입했는데 종이책은 200쪽에 불과한 분량임에도 정가가 무려 12,000원입니다! 도판도 모두 흑백에다가 특별한 일러스트가 사용되지도 않았고, 양장본도 아닌데 이 가격은 정말 미친게 아닌가 싶어요. 종이책은 모르겠지만 전자책은 1/3 분량이 유유 출판사 책 소개에 할애되어 있는데 이건 또 뭔가 싶고요.

사실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내용은 저자의 머릿글에 모두 나와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 이렇게 길게 쓸 필요도 없었어요. 책 정리법의 핵심은 "책 욕심을 버리는 것" 이며, 그렇지 못하면 내가 가진 공간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내 정리법은 공간을 구분하는 데에서 시작하고 서가별로 여러가지 기준을 세워서 정리한다... 는 짤막한 글인데 이게 정말 전부에요. 이 책 본문에 소개되는 실제 책 정리에 대한 디테일은 그만큼 별 볼일이 없습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입니다. 쉽게 읽힌다는 점, 그리고 드물지만 유용한 팁이 있기는 하지만 현재 가격과 전체적인 수준을 고려한다면 권해드릴만한 책은 아닙니다.

2018/11/10

가을철 한정 구리킨톤 사건 상, 하 - 요네자와 호노부 / 김선영 : 별점 2.5점

[세트] 가을철 한정 구리킨톤 사건 상.하 세트 - 전2권 - 6점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김선영 옮김/엘릭시르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름 이후 헤어진 고바토와 오사나이는 각각 다른 이성 친구와 교제하게 된다. 오사나이와 교제하게 된 신문부 열혈 부원 우리노는 매달 벌어지는 연쇄 방화 사건에 집중하고, 이 사건을 다룬 기사를 교내 신문에 발표한다. 기사를 통해 몇 개월간 다음 방화 장소를 예언하고 맞춘 우리노는 신문부의 손으로 범인을 잡을 계획을 세우는데...

요네자와 호노부와 일상계 추리물의 존재를 우리나라에 처음 알림 소시민 시리즈 신간 (이라고 하기는 작년에 나와서 좀 어색하지만 제 기준으로는) 입니다. 십년도 더 전에 출간된 책은 아동용 동화같은 커버 일러스트로 충격을 주었는데, 다시 예쁜 일러스트에 양장본으로 재출간된 것을 보니 감개가 무량합니다. 십여년 전만 해도 요네자와 호노부는 우리나라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지금은 거의 전작 출간이 되었을 정도의 인기 작가라는걸 여실히 보여주는데, 이런 추리, 미스터리 장르물의 인기에 저도 약간이나마 기여(?) 하지 않았을까 싶어 살짝 뿌듯하기도 하네요.

이 작품은 시리즈 1편인 <<봄철 딸기 타르트 사건>> 보다는 2편 <<여름철 트로피컬 파르페 사건>>과 더 비슷합니다. 조금 긴 호흡의 긴 이야기가 핵심으로 펼쳐진다는 점에서 말이죠. 주인공 고바토와 오사나이가 거주하는 기라시에 매달 장소를 바꾸어가며 방화가 일어나고, 이를 쫓는 신문부 후배 우리노와 이에 얽히게 된 고바토와 오사나이의 이야기가 시간으로 따지면 2학년에서 3학년까지 거의 9개월에서 10개월 동안 펼쳐지거든요.

그런데 방화사건 쪽 주인공은 우리노이며 그와 교제하게 된 오사나이가 양념처럼 등장할 뿐이고, 고바토가 다른 여자 친구 나카마루와 교제하며 일상계 추리를 펼치는 이야기는 서로 완벽하게 분리되어 있다는게 특이합니다. 이러한 고바토의 일상계 이야기는 다른 일상계 이야기들과 마찬가지로 그렇게 대단한 사건들이 등장하지는 않습니다. 나카마루와 함께 데이트를 가던 코바토가 만원 버스에서 누가 버스에서 먼저 일어날 것인지를 추리하고, 나카마루가 이야기해 준 자신의 오빠에게 있었던 기묘한 도난사건에 대해서 추리하고, 헤어지기 직전 나카마루가 토마토를 싫어하는게 아닌가하고 추리하는 세편 정도?의 사건이 등장하죠.
버스 이야기는 추리에 비하면 분량이 과할 정도로 길어 별로였고, 토마토 이야기는 정말로 스쳐지나가는 이야기입니다. 그래도 헤비메탈 음악을 좋아하는 나카마루의 오빠가 3일간 여행 갔다 온 후 집에 유리창에 깨져있고 누군가 침입했지만 없어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는 기묘한 도난사건 이야기는 꽤 괜찮았어요. 조금 깊게 들어가면 그동안 오디오 알람이 어떻게 동작하는지 몰랐다는 것도 말이 안되고, 설령 이런 일이 생겨도 집 주인을 부르지 무단 침입은 하지 않겠지만 이 정도면 나쁘지는 않아요. 이야기 전부 다 소소하니 심심하지만 담백해서 일상계 팬이라면 충분히 즐길만 합니다.

그런데 연쇄 방화 사건 쪽은 개인적으로 불만이었습니다. 추리적으로는 나름 번득이는 부분이 있어요. 특히 연쇄 방화 방법에 대한 아이디어가 괜찮거든요. 우리노가 다음 번 방화 장소를 추리해 낸 게 아니라, 사실은 우리노의 친구로 범인인 히야가 우리노의 기사를 보고 그곳에 불을 질렀다는 진상이 그것인데 상당히 의외성이 있어 감탄이 나올 정도였어요. 우리나라 영화 <<밀정>>에서도 등장했었던 간단한 트릭으로 용의자를 좁히고, 진범을 추리해 내는 과정도 괜찮았고요.

하지만 이 이야기는 제대로 된 추리물은 아닙니다. 거의 전편에 걸쳐 탐정역을 수행하고 온갖 추리를 펼친 우리노의 마지막 추리쇼를 박살내기 위한 오사나이의 복수극일 뿐이에요. 복수를 위한 오사나이의 공작도 억지스럽기 짝이 없고요. 범인을 잡기 위해 잠복해있던 우리노와의 통화 당시 고의로 기차 소리를 들려주어 현장 근처로 오해하게 만들고, 범행 현장 근처에 서점에서 책을 산 영수증을 우리노의 눈에 띄는 곳에 놔 두는 식인데 우리노가 이를 추리해낸다는 보장도 없지만 이렇게 해서 자신을 범인으로 오해하게 만든 의도가 불분명하거든요. 마지막 순간 추리쇼를 펼친 우리노에게 면박을 주고 재기불능 수준의 창피를 주기 위해서? 복수라고 하니 그럴 수도 있지만 이 모든게 작위적입니다.
또 정통 추리물이라면 동기가 무엇인지를 파고들었어야 하는데 우리노를 비롯한 등장인물들은 그런 자각이 전무하다는 것도 실망했던 부분입니다. 추리를 위한 단서도 독자들에게 공정하게 제공되지 않고요. 이래서야 잘 된 추리물이라고 보기는 어렵죠.

고바토가 마지막에 구리킨톤을 먹으며 오사나이가 우리노에게 복수를 하기로 결심한 것은 지난 5월 이후라고 추리해내고 이유가 뭐냐는 질문에 "멋대로 오사나이에게 키스하려 했기 때문" 이라고 답하는 장면은 깔끔했지만 이렇게까지 집요하게 복수를 꾸밀 정도의 일인지도 잘 모르겠더라고요. 또 우리노는 명예욕은 있지만 사건에 열정적으로 뛰어든 좋은 녀석인데 이쓰카이치의 기사로 확인 사살까지 당하니 불쌍하기만 했습니다.

이렇게 쓴 이유는 작가의 고등학생이 등장하는 동일한 느낌의 또다른 일상계 시리즈인 고전부 시리즈와 명확하게 구분하기 위해서겠죠. 고바토가 마지막에 추리를 통해 자기 만족을 채우는 인물이라는 걸 깨닫는다던가, 오사나이는 대단한 행동력과 책략을 갖춘 팜므파탈로 묘사한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소시민을 꿈꾸는 고바토 죠고로와 회색을 신봉하는 에너지 절약주의자 오레키 호타로의 캐릭터부터가 완벽하게 겹치기에 이번 기회에 선을 그은 거죠. 시리즈 다음 작품이 출간된다면 고바토는 보다 적극적으로 사건에 뛰어들어 추리를 펼치고, 오사나이는 추리를 위한 각종 작전을 짜내고 실행하는 행동대장 역으로 묘사되리라 생각됩니다.
문제는 이러한 큰 변화가 작품에 좋게 작용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고바토야 그렇다 쳐도 오사나이 캐릭터 변화가 문제에요. 앞서 말씀드린 억지스러운 복수극 전개가 모두 이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에요. 그냥 예전처럼 한 발자욱 물러나 사건을 추리하는게 훨씬 좋았을텐데, 지금은 여러모로 작위적이고 억지스럽기만 해서 별로였어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일상계 추리가 자연스럽게 이야기에 녹아드는 구성은 좋고, 추리적으로도 눈여겨 볼 부분도 제법 됩니다. 하지만 단점도 분명해요. 억지스럽게 설정까지 바꾸어 가며 시리즈를 이어나가느니 그냥 고전부 시리즈에 집중하는게 훨씬 낫지 않았을까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