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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7/31

일주일 간의 살인 여행 - 욱예일 : 별점 2점

대학때부터 절친한 친구였던 김인식과 우성혁. 어느날 인식은 성혁과 자신의 아내 한영애와의 불륜을 눈치채고 살의를 품는다. 그리고 인식은 옆집에 이사온 강지혜라는 여인의 도움으로 완벽한 시나리오와 알리바이로 아내의 살인 및 성혁의 파멸을 차근차근 실행에 옮겨 나간다.
그러나 결국 인식과 성혁만 죽게 된 뒤, 박형사는 사건 뒤에 감추어진 강지혜라는 여인의 정체에 의심을 품고 치밀한 조사에 착수한 뒤 마침내 이 사건은 세명의 절친했던 여인들의 과거에 벌어졌던 사건과, 두명의 여인이 한 남자를 사랑하게 된 것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96년도에 발표된 작품. 작가도 이 작품으로 데뷰했군요. 일종의 완전 범죄를 위한 범죄자의 음모를 다루고 있는 비교적 정통에 가까운 작품입니다. 내용만 본다면 "죽음 전의 키스"와 약간 비슷한 분위기를 풍긴달까요?

일단 트릭과 전개 자체는 생각보다 괜찮아서 놀랐습니다. 정황 증거를 뒤집는 시나리오와 정황 조작이 주 트릭인데 내용과 잘 맞아 떨어지고 설득력도 높은 편이라 이야기에 힘이 실리는 느낌이에요. 주요 복선으로 작용하는 성형 수술 역시 꽤 괜찮은 아이디어였고요.
또한 각각 부-지혜-미모를 상징하는 조민희, 윤희주, 한영애라는 여인들과 대학 유도부 출신으로 힘을 상징하는 김인식과 우성혁, 그리고 사건의 흑막으로 전체를 조종하는 이른바 신 같은 역할의 이현우라는 신화에서 따온 듯한 설정을 나름 유치하지 않게 각색을 잘 해서 제법 잘 어울리게, 현실감 있는 분위기를 자아내는 것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하지만 범인이 자신의 완전범죄를 위해 여자를 순전히 도구로서 이용하는데 여자들이 맹목적으로 따라온다는 전개는 너무 비현실적이었으며, 가장 중요한 3명의 여자들의 관계가 지나치게 작위적인 점은 작품의 완성도를 떨어트립니다. 인식과 성혁의 심리도 묘사와 설정에서 현실성이 많이 부족했고 말이죠. 무엇보다도 마지막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는 결정적 단서가 너무나 단순해서 그간 굉장히 치밀했던 범인의 시나리오와 동떨어져 있다는 점이 가장 아쉬웠어요.
그 외에도 대체로 묘사가 장황하며 특히나 마지막의 에필로그는 지나치게 길어 과잉설명이라는 인상이 강한 것도 단점입니다.

그래도 생각보다는 추리적으로 제법 완성도있는 작품이었어요. 보다 압축해서 길이를 줄이고 내용면에서 설득력을 좀 더 보강했더라면 더욱 좋은 작품이 되었을 것 같군요. 별점은 2점입니다. 작가가 추리적인 기본은 충분히 잡혀있다고 보이는데 후속 작품을 기대해봅니다.

2005/07/30

한국 미스터리 컬렉션 : 불새의 미로 - 유우제 : 별점 1.5점

불새의 미로 1 - 4점
유우제/고려원(고려원미디어)
불새의 미로 2 - 4점
유우제/고려원(고려원미디어)

태평양 전쟁의 끝이 보이던 1944년 겨울. 일본은 남방에 은닉했던 중요 군수물자를 본토로 옮기는 작전 "불새"를 시행한다. 하지만 물자와 난민을 실은 화물선 "압록강"호는 돌연 사라지고 다음해 1월 텅텅빈 배로 발견된다.
1993년, 북파 공작원 출신 트럭 운전수 동하는 갓 출소한 장기수 노인을 납치하려는 의문의 조직에게서 노인을 구해준 뒤 그에게서 막대한 보물에 대한 정보를 듣는데 노인이 살해당하자 범인으로 몰린다. 어쩔 수 없이 동하는 스스로 노인에게 들은 정보를 가지고 보물을 찾고 의문의 조직과 맞상대할 결심을 한 뒤, 수차례의 위험을 겪은 끝에 노인이 남긴 정보의 진상을 알아낸다. 이 모든것이 일본이 종전 직전에 숨긴 막대한 양의 금괴 때문이라는 것을 ....

한편 경찰청 장세호 경감은 죽은 노인 이춘규에 대한 수사를 통해 노인이 숨기고 있던 과거와 보물에 대한 정보를 하나씩 수집하게 된다. 그 와중에 국내에 잠입한 킬러 제임스 리에 대한 수사를 FBI 특별 수사관 채수현과 함께 진행하는데...

2차대전때 패망 직전 일본이 숨긴 금괴를 둘러싸고 그 비밀을 알고 있는 인물들이 주도권을 쥐고 있는 양대 조직의 암투속에 휘말린 한 트럭 운전수의 이야기.

문제는 아주 예전에 읽었었던 니시무라 쥬코의 "낯선 시간 속으로"와 설정이 너무 비슷하다는 것입니다. 함부로 이야기 하기 어려운 소재임에는 분명하고 확신은 없습니다만 표절의 의심까지 들 정도거든요. (참고로, "낯선 시간 속으로"는 1975년 발표되었고 이 작품은 1991년에 연재가 시작되었군요)
가장 중요한 테마인 "구 일본군이 숨긴 금괴"라는 것에서 부터 주인공이 살인범으로 몰려 도주하는 과정, 금괴를 둘러싸고 일본 야쿠자와 미국 정부가 충돌한다는 기둥 줄거리에서부터 하드한 액션장면의 묘사, 그리고 산에서 만나는 조력자 등 세세한 부분까지 유사합니다. 제임스 리라는 킬러의 출생 비밀 또한 "낯선 시간 속으로"의 주인공 니시나 소오스케처럼 전쟁때 강간당한 어머니가 있고 혼란 와중에 자라게 되었다는 점까지 똑같아요.

물론 "낯선 시간 속으로"에서는 금괴 수송에 수송기가 사용되었고 은닉한 금괴가 눈사태에 매몰되지만 이 작품에서는 수송에 화물선이 사용되었다는 점, 은닉 금괴가 수장되는 등의 차이점은 있습니다. 나름 일제 강점기와 6.25 전쟁, 그리고 그 직후의 국내 상황을 적절히 이용하여 이야기를 풀어나가려는 국내 특화된 부분도 있고요. 그러나 워낙 기둥 줄거리가 유사해서 의구심이 자꾸 생기네요.

게다가 각 인물들의 과거에 대한 설정이 장황해서 쓸데없이 길고 혼란스럽기까지 합니다. 이야기에서도 불필요한 인물이 너무 많이 등장해서 짜증나고요. 이 작품의 주인공은 트럭 운전수 동하지만 장세호 경감과 FBI 요원 채수현의 비중도 적지 않은 편인데 채수현은 왜 등장하는지 알 수도 없고 그녀가 중심이 되는 킬러 제임스 리 수사 역시 이야기를 흐리기만 할 뿐입니다. 그나마도 등장 횟수와 비중에 비한다면 너무나 쉽게, 허무하게 끝나버려서 황당할 정도죠.

결말도 배드 엔딩에다가 별다른 극적 해결을 제시하지 못해 별로 마음에 들지 않더군요. 구태여 비교한다면 "낯선 시간 속으로"는 별다른 주변 이야기 없이 우직하게 주인공 니시나 소오스께의 행동과 활약에만 촛점을 맞추고 있어서 이야기 자체는 무척 깔끔한 편인데 전 깔끔한게 훨씬 좋았습니다.

분명 재미있을 것 같은 소재이고 우리의 역사의 한토막을 접목시켜 뭔가 이야기를 만들어보려 한 노력은 평가할만 합니다. 작품 자체도 재미만 따진다면 일정 수준은 되고요. 그러나 앞서 말한대로 표절에 대한 의구심이 강하게 들어 도저히 높은 점수를 줄 수 없네요. 별점은 1.5점입니다.

덧붙이자면 전에 소개했던 "추리소설 필독서 16선"에 실려있던 탓에 사 보았는데 전혀 이해가 좀 안되네요. 보다 뛰어나고 완성도 높은 작품이 많은데 왜 이 작품이 당당하게 실려있는지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고려원 한국 미스터리 컬렉션에 있는 작품 중에서도 "저린 손끝"이나 "돛배를 찾아서"가 한단계 높은 작품입니다.

PS : 제 개인적인 견해일 뿐이니 만큼 표절에 대한 어떤 논란도 없었으면 합니다.

2005/07/29

비밀의 백화점 (추리소설 특급 가이드) - 한겨레21 별책부록

한겨레 21의 여름 특집 별책부록 추리소설 가이드입니다.

별책부록이라고는 하지만 분량으로는 100여페이지 정도이고 폰트 크기도 작은 편이니 외견보다는 많은 내용을 담고는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다양한 저자들을 섭외해서 여러 종류의 글들을 짧게 짧게 실어놓은 책으로 김탁환씨와 성귀수씨와 같은 메이저 작가, 번역가에서 영화평론가들, 그리고 Howmystery.com과 화요추리클럽 분들을 비롯해서 알라딘 전설의 리뷰어 물만두님까지 온-오프라인을 아우르는 기고자들이 면면이 화려하고 워낙 많아서 다양한 취향을 음미하는데에는 상당히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거기에 짤막한 만화까지 포함되어 다양한 쟝르를 포괄하고 있는 점도 좋은 기획으로 보입니다. 척박한 국내 만화계에서 비교적 정통파 추리 만화를 그렸던 한혜연과 석동연씨가 작가진에 있는것이 반가우며 추리 매니아이신 김진태씨도 짧지만 재미있는 만화를 개재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워낙 짧다보니 글의 테마와 종류에 비한다면 그다지 깊이가 없긴 합니다. 조금 페이지를 늘리더라도, 아니면 기고자를 조금 줄이더라도 내용을 더욱 풍성하게 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네요. 물론 별책부록인 만큼 자금과 페이지 사정이 있었겠지만 지금 상태는 좋은 기획의도를 충분히 받쳐주지 못하는 팜플렛에 가까운 결과물이라 생각됩니다. 또한 온라인 추리 동호인들의 의견이 많이 반영된 것은 분명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척박한 풍토에서 고생해온 국내 추리작가들의 비중이 너무 없는 것은 불만스럽습니다. 이젠 원로축에 끼시는 김성종 선생님이나 정건섭 선생님에게는 최소한 한페이지 이상은 의뢰드렸어야 하지 않았을까 싶거든요. 번역계에서도 국내 추리계의 저변 확대에 기여하신 정태원 선생님의 이름이 없어 아쉬웠습니다. 마지막으로 책 권말의 추리소설 목록은 솔직히 불필요한 부분이었다고 보이고요. 어차피 다 싣지 못할 바에야 올해 신간만 리스트업하는게 더욱 좋았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래도 조금만 더 손을 본다면, 그리고 출판사의 의지가 작용한다면 장래에는 국내판 "이 미스테리가 굉장해!" 수준의 책을 뽑아 낼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던져 주는 책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내 작가의 비중이 보다 높아져야 하리라 생각되고 국내 추리소설계도 분발해야 겠지요. 부디 내년에는 보다 풍성한 내용으로 가득차기를 기대합니다.

마지막으로 저도 포함되어 있는 앙케이트 한번 해  봅니다...

1. 가장 사랑하는 추리소설 1-5
어떻게 다섯개만 뽑을 수 있겠습니까만은, 현재의 베스트는
미야베 미유키 "화차", PD 제임스 "어떤 살의", 피터 러브시 "밀랍인형", 로스 맥도널드 "소름", 크리스티 "화요일 클럽의 살인"

2. 명성에 비해 실망스러웠던 작품
아카가와 지로의 삼색털 고양이 홈즈 시리즈. 명성이라는게 있는지조차 의심스럽지만요.

3. 최고의 작가
레이몬드 챈들러. 두말할 필요 없겠죠...

4. 가장 사랑하는 탐정
모스 경감. 나름 약점도 많고 인간적인 매력이 넘쳐 마음에 듭니다.

5. 가장 인상적인 악당
"유니스의 비밀"의 유니스 파치먼. 전형적인 악당이 아니고 평범한 하녀에서 폭발하는 광기에의 감정 이동이 놀라왔던, 그래서 더욱 무서웠던 인물입니다.

6. 가장 훌륭한 결말 그리고 어처구니없는 결말
훌륭한 결말 - 피터 러브시 "가짜 경감 듀" 납득하기 어려운 점도 있지만 복선과 사건이 완벽하게 정리되며 모두가 행복해지는 멋진 엔딩이라 추천합니다.
어처구니 - 사카구치 안고 "불연속 살인사건" 이렇게 모두 죽어나가면 범인이 누구인지 알 수 밖에 없잖아요?

7. 가장 완벽한 범죄
도널드 웨스트레이크의 "도끼". 범죄자의 자기 합리화를 독자에게도 공유하게끔 하는 설정이 놀랍습니다.

8. 가장 멋진 대사
"정말 잘 가라는 말은 벌써 해 버렸단 말이야. 정말 잘 가라는 말은 슬프고, 쓸쓸하고, 절실한 느낌을 지니고 있을 걸세"
 레이몬드 챈들러의 "기나긴 이별" 마초이즘과 서정성을 동시에 느끼게 하는 명대사.

9. 배신하지 않는 작가 (가장 믿을 만한 작가)
로스 맥도널드, 국내 출간된 작품을 다 읽은 유일한 작가일 뿐더러 작품이 전부 일정 수준 이상입니다.

10. 가장 잘된 추리(미스터리)영화
알프레드 히치콕의 "다이얼 M을 돌려라!" 구관이 명관, 명불허전의 작품입니다.

11. 우리나라에 꼭 소개되어야 할 작품
비교적 소개된 것이 적은 일본 고전 본격물과 신 본격물의 다양한 소개를 기원합니다. 예를 들자면 아리스가와 아리스나 노리츠키 린타로. 다카키 아키미쓰 등이요.

12. 가장 좋아하는 국내 추리소설
많이 읽지는 않았지만 그 중에서라면 김성종의 "최후의 증인"

13. 미스터리 초보에게 추천하는 작품 셋
초보자에게는 단편이 더욱 어울리리라 생각됩니다. 세 편이라면 크리스티의 "화요일 클럽의 살인", 엘러리 퀸의 "엘러리 퀸의 모험" 두 단편집과 황금시대 정통 본격물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딕슨 카의 "황제의 코담배 케이스" 를 추천합니다.

14. 나는 추리소설을 좋아한다. 그 이유
항상 저를 지적인 흥분상태로 몰고 가는 두근두근한 긴장감이 좋습니다. 또 혹시 압니까? 향후 요긴하게 써먹게 될지도..... 기차 시간표를 이용한 알리바이나 한번 만들어 볼까나!

15. 그리고 할 말이 남아 있다.
추리 독자의 저변이 더욱 넓어져서 제가 군침만 삼키던 작품들이 더욱 많이 번역되어 출간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뭔가 기획해서 책을 내보고 싶기도 한데, 저변과 시장이 넓어지면 언젠가는 기회가 되겠죠.

2005/07/28

비밀의 백화점에 실린 추리만화에 대한 개인적 보완..

대중문화평론가이신 이명석씨가 아래 언급한 "비밀의 백화점"에서 짤막하게 글을 쓰셨는데 개인적으로 아쉬운 작품이 너무 많이 있어서 몇개 추가할 까 합니다.

먼저 정통 추리물에서는 "Nervous Breakdown"이 빠진 것을 용납할 수 없습니다. 3등신 캐릭터가 활약하다가 결정적 순간에 등신대의 인물로 바뀌는 등의 형식적인 독특함도 돋보이지만 트릭과 전개도 뛰어나며 무엇보다 기존 걸작들에 대한 풍자와 비판의 정신도 뚜렷한 걸작입니다. 한마디로 제가 읽은 추리 만화에서는 베스트라 할 수 있는 제가 엄청나게 좋아하는 작품인데 언급조차 되지 않아 유감이더군요. 
그리고 제가 이전에 소개했던 "탐정 레이디X 시리즈"는 워낙 마이너이니 넘어갈 수 있지만 "어둠의 인형사 사콘"은 빠진게 의외더군요. 애니메이션까지 만들어진 나름 비중있는 작품인데 왜 빠졌을까요? 추리적인 요소는 약간 허술하지만 완벽한 그림과 독특한 설정으로 한몫하는 작품인데 말이죠. 
순정 만화 스타일로는 "미궁시리즈"의 몇몇 에피소드들이 상당히 괜찮으며 가벼운 소품으로 잔잔하게 즐길 수 있는 "할아버지와 나의 사건수첩"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작품입니다. 초등학교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가벼운 사건들을 다루고 있는 독특한 일상계 추리물이라서 저는 무척 좋아하거든요. 꼭 추리 쟝르에서 강력 사건이 벌어지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재미를 줄 수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죠. 잔잔하기로는 베이비시터 탐정이 등장하는 "카즈는 행복해" 시리즈도 빼 놓을 수 없지만 이것 역시 너무 마이너하니 패스.

스릴러에서는 "바나나피쉬"가 없더군요. 중반이후 삼천포로 빠지는 감이 있긴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우직하게 진행되며 독자를 몰입시키는 맛이 뛰어난 스릴러로 추천할 만 합니다. 

전문가 등장 작품의 리스트에서는 "검찰관 기소가와"가 빠지더라도 "사이코 닥터"가 반드시 포함되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신분석 전문가 카이가 등장하는 작품으로 각 사건의 설득력이 뛰어나며 치밀한 심리 분석 사례가 일품인 작품이죠. 1, 2부가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1부를 더 추천합니다. 
범위를 살짝 더 넓혀 본다면 "용오"는 교섭인이 등장하는 작품으로 옴니버스물의 특성상 모든 에피소드가 뛰어난 것은 아니지만 전체적으로 고른 수준의 서스펜스와 재미를 전해주는 작품입니다.

마지막으로 국내 작품에 소홀한 것은 제일 아쉬운 부분입니다. "푸른길"을 언급하긴 했지만 이 작품은 일본 작가가 글을 쓰고 일본 잡지에 연재된 작품이기 때문에 권가야씨의 그림을 뺀다면 국내 작품으로 보기 어려운 요소가 더욱 많은 작품이죠. 완성도 역시 높이 평가하기 어려운 작품이고요. 차라리 한혜연씨의 "M노엘"을 추천하는게 낫지 않았을까요? 자료조사가 거의 없었던 것 같은 허전한 그림과 만화 스토리 전개의 미숙함, 왠지 익숙치 않은 순정만화체에 부담스러울 수 있지만 기본적인 아이디어와 트릭은 괜찮은 작품입니다. 
드라마로 더욱 유명하지만 "다모" 그리고 국내 만화에서 보기 드문 역사 추리물의 시리즈 탐정인 이두호씨의 "장독대 시리즈 ("뛰어야 벼룩이지" 등등)" 역시 추천 작품입니다. 아주 고전으로는 방학기씨의 다른 여러 작품들, "사라진 낡은 집"이나 "초립동이", 이우정씨의 "모돌이 탐정" 등도 포함되겠지만 지금은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이니 패스...  (*모돌이 탐정은 2022년에 복간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솔직히 선정 기준에 의심이 많이 가는 리스트였습니다. 추리 만화는 하늘의 별 만큼 많고 지면은 한정되어 있으니 이명석씨의 고충은 어느정도 이해가 되지만 이름값에 기댄 작품이 너무 많아 실망스웠습니다. 보다 다양한 접근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싶네요.
덧붙이자면 QED작가의 독특한 작품인 "로켓맨"이나 과학 스릴러에 가까운 "레밍의 행방", "비밀", 호러가 약간 가미된 "백작 카인 시리즈 (특히 초반부)"도 추천할 만 합니다. "로켓맨"과 "레밍의 행방"은 아까짱님의 블로그에 정리된 포스트가 있으니 참고하셔도 좋을 것 같네요.

옥문도 (獄門島) - 요코미조 세이시 / 정명원 : 별점 4점

옥문도 - 8점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시공사
쇼와 21년, 즉 1946년 일본이 항복한 직후 옥문도라는 섬에 탐정 긴다이치 코스케가 찾아온다. 그가 찾아온 이유는 전우 기토 치마타의 죽음을 알리고 유서를 전하기 위해서라는 표면적인 이유 뒤에 그가 죽으면서 자신이 죽으면 자신의 세 여동생이 살해당할 것이라며, 그것을 막아달라는 유언이 있었기 때문.

기토 가문은 섬의 선주로 막강한 권세가 있었지만 다이코라고 까지 불리웠던 막강했던 선대 선주 카에몬이 죽은 이후 본가와 분가와의 세력 다툼과 두 후계자의 징집으로 말미암아 서서히 가세가 기울고 있던 상태였었다. 치마타의 배다른 세 여동생은 대단한 미인들이었지만 모자란 듯 한 묘한 분위기의 자매들이었고 명탐정이라고 불리우는 코스케의 방문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곧 세 자매는 차례로 괴이한 방식으로 살해당하게 되는데....

기대하고 또 기대했던 "옥문도"의 정식 번역판입니다. 요코미조 세이시의 대표작이기도 하고 국내에는 "김전일"에서 할아버지로 잘 알려진 긴다이치 코스케의 활약이 돋보이는 작품이죠. 동서에서 "혼진 살인사건"이 이미 출간되었긴 하지만 "혼진"의 경우는 트릭이 너무 일본적이고 동기면에서 좀 작위적이라는 느낌이 강했으며 지루한 면도 없잖아 있었지만 이 작품의 경우는 재미와 전개면에서 훨씬 나아진 모습을 보여줍니다.

먼저 외딴섬 "옥문도"와 그곳에서 벌어지는 연쇄살인, 연쇄살인의 배후에 있는 섬을 지배하는 가문 (국내 영화 "혈의 누"도 거의 동일한 설정이었죠) 같이 음울하면서도 굉장히 폐쇄적인 이질적 공간을 무대로 한 것과 고르고의 세자매라 칭해지는 세자매, 그리고 자매들의 아버지인 광인인 요사마츠같은 비현실적인 존재들이 등장함으로써 동시대의 라이벌이었던 에도가와 란포의 변격물적인 분위기를 어느정도 보여주고 있는 것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란포 같은 경우에는 이러한 분위기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주도해 나가지만 이 작품에서는 일종의 동기와 트릭에 연관된 장치로 쓰이고 있다는 것은 차이점이겠지만요. 또 이야기에서 이러한 인물들이 비교적 합리적으로 묘사되고 있으며 극 구성에서 효과적으로 배치되어 이야기가 진행됨으로써 몰입도를 높이고 재미를 배가시키는 충분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거기에다가 일본의 본격물로 명성있는 작품답게 추리적인 요소도 뛰어난 편입니다. 연쇄살인극이 펼쳐지는 와중에서 각각의 사건의 트릭 수준이 상당하거든요. 보통 엽기적인 범죄의 경우 그러한 엽기적 연출의 타당성을 설명하는 부분에서 많은 작품들이 실패하고는 하는데 이 작품은 상황과 트릭이 잘 맞물리는 괜찮은 트릭으로 보여집니다.
그 중에서도 첫번째, 두번째 사건에서의 알리바이 공작 트릭은 정말 빼어납니다. 세번째 사건 트릭은 예상 가능한, 약간은 뻔한 트릭이지만 범인을 특정하는데 있어서 장소의 특이성을 이용하여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상황 설정이 좋아요.
독자와의 승부도 굉장히 공평한 편이라 가장 중요한 단서를 앞머리에서 부터 설명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서 중요 단서와 상황에 대한 묘사를 디테일하게 보여줌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탐정인 긴다이치 코스케와 동일 선상에서 두뇌게임을 하게 하는, 본격물로서의 미덕을 잘 살리고 있습니다.

물론 트릭이 우연에 의지한 부분이 있으며 세밀하지 않다는 약점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아울러 살인범이지만 악하지만은 않은, 나름의 소신과 신념으로 범행을 계획하고 진행해 나가는 카리스마 확실한 범인이 킨다이치 코스케보다도 더 마음에 들었는데 범인이 자신의 모든 범행이 "헛수고"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막판의 작은 반전 후 너무나 급격하게 무너져 버리는 부분도 좀 아쉬웠어요.
그리고 단점이라고 하기는 어려우나 중요한 단서가 지극히 일본적인 것이고, 동기 역시 소설에서 칭하듯 "너무나 봉건적인" 일본 특유의 상황에 기인하는 탓에 일본 이외의 지역에서 공감을 얻기에 좀 부족하다 싶더군요. 몇몇 부분에서 묘사와 설명이 너무 장황해서 지루하고, 중요 단서마다 꼭 토를 다는 방식 같이 세월을 느끼게 하는 요소도 단점이기는 한데 아무래도 너무 오래전에 발표된 탓이 크겠죠.

하지만 이러한 단점은 굉장히 사소한 부분으로 일본의 본격물의 풍취를 느끼기에는 모자람이 없는 작품이라 생각되네요. 내용 전개와 기본 설정부터 지극히 일본적인 요소가 강해서 번역에 어려움이 있었으리라 예상되지만 번역도 깔끔하고 특히 일본 속담이나 여러 인용되는 인물과 고사들을 각주 처리하는 등의 배려도 좋았고요. 책 자체도 최근 출간된 추리소설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사이즈와 디자인으로 폼나게 출간되어 고맙기만 할 뿐입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기획에서 출판까지 책임져 주신 decca님께 원츄를 날리며.....! 부디 많이 팔려서 앞으로 시리즈가 간행되길 바랍니다. 

덧 1 : 마지막 긴다이치 코스케와 범인과의 한판 대결로 압축되는 결말 부분은 죽어야 할 모든 인물들이 죽은 이후에 범인을 밝내는 뒷북 성격이 강해 역시나 김전일의 할아버지구나.... 싶었습니다.

덧 2 : 워낙 유명한 작품이니 만큼 영상화도 많이 되었는데 캐스팅은 여기서 확인해 보실 수 있습니다. 저도 본 적이 있는 "팔묘촌"도 올라와 있어서 재미있기도 하고, 비교해서 보는 재미도 있네요.

2005/07/27

역곡역 구내 서점 홍익문고

역곡역 구내서점을 가다!

석원님의 글을 읽고 마침 시간이 난 참에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매장이 정말 생각보다 넓어서 둘러보는데 시간이 좀 걸리더군요. 하지만 추리소설은 이미 많은 분들이 다녀간 후이기 때문인지 생각보다 그다지 구입할 책이 많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구입한 책은

<챔피언 시저의 죽음. 렉스 스타우트> : 시공사 시그마 북스에서 나온 작품입니다. 읽기는 했지만 굉장히 갖고 싶었던 책인데 구입해서 다행입니다. 전 이미 팔렸을 것이라 생각했거든요. 제가 읽은 네로 울프 시리즈 중에서는 최고 작품이라 생각됩니다.

<재앙의 거리. 엘러리 퀸> : 역시 시그마 북스 판본으로 마침 읽어보지 않은 작품이기에 구입했습니다.

그 외에 각종 한국 추리문학 단편선 여러권을 싼 값에 구입하게 되었네요.
<씨오점케이알 살인사건>, <한국추리문학 '신예상' 수상작가 대표소설 >, <아주 특별한 유혹-금요문학회 작품집 3번째> 등등등...

기대했던 일본 추리 문학 관련 도서는 거의 전무해서 약간 아쉬웠습니다.

때문에 제 생각보다는 많은 책을 구입하지는 않았고 "숨어있는 책" 보다는 포스가 좀 떨어지는 느낌을 받았지만 주인 아저씨도 친절하시고 집에서 그다지 멀지도 않은 편이고 하니 가끔은 들려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구입한 책은 천천히 읽어봐야 겠습니다.

마다가스카 (Madagascar, 2005)


뉴욕 센트럴 파크 동물원의 최고 인기 스타인 사자 알렉스(벤 스틸러), 얼룩말 마티(크리스 록), 기린 멜먼(데이비드 쉬머), 하마 글로리아(제이다 핀켓 스미스)는 절친한 친구 사이. 하지만 마티의 10번째 생일날 야생을 꿈꾸는 마티가 동물원을 탈출하게 되고 다른 친구들은 그를 데려오기 위해 애쓰다 포획되어 아프리카로 이송되던 중 자유를 꿈꾸는 펭귄들 탓에 중간에 표류하여 미지의 정글 마다가스카로 보내지게 된다.

마다가스카의 여우 원숭이들의 왕 킹 "줄리앙"은 그들을 위협하는 "푸싸"들을 없애기 위해 사자 알렉스의 환심을 사고자 하지만 고기가 없는 마다가스카에서 굶주림에 시달린 알렉스가 폭주하여 친구들을 위협하다가 정신이 든 후 자책하며 혼자 외로이 지내게 된다.

하지만 북극으로 탈출을 원했던 펭귄들이 너무 춥다며 배를 몰고 다시 마다가스카로 돌아오면서 최후의 모험이 시작되는데....

드림웍스의 여름 신작 애니메이션입니다. 일단 그간의 동물들이 나오는 애니메이션들과는 좀 다른 캐릭터 설정이라 특이하더군요. 동물들이 나오면 보통 야생의 정글이 무대거나 최소한 시골 목장 정도가 배경이었는데 이 작품은 사자, 얼룩말, 하마, 기린 이라는 독특한 조합의 "동물원"에서 사육되고 있는 설정을 가지고 감으로써 차별화를 시키고 있으면서도 이 길들여진 동물들이 본의아니게 (얼룩말 마티는 제외하고) 마다가스카에 표류하면서 벌어지는 상황을 상당히 재미나게 연출하고 있습니다. 동물들이 주인공이지만 그냥 뉴요커로 설정을 바꾸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코미디 영화가 하나 탄생할 것 같네요. (개인적으로 기린 멜먼의 설정은 좀 많이 아니었지만요)

하지만 내용면으로는 대부분의 코믹한 요소를 주인공들이 아닌 펭귄들이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이야기의 중심이 많이 흐려지고 있는 것이 아쉽습니다. 분명 재미난 요소들이 많은 설정임에도 불구하고 주인공 4마리의 동물들은 그다지 활약하거나 보여주는 것이 없거든요. 오히려 중반 이후 알렉스가 배고픔에 정신을 잃고 야성에 눈을 뜨면서 부터는 심각해지기까지 해서 비교가 더 크게 되고 있습니다.

그나마 마지막에는 펭귄들까지 4마리의 동물들에게 합세하며 이야기의 매듭을 확실히 지어주며 완벽한 해피엔딩으로 끝나긴 합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주인공들이 뉴욕으로 돌아갈 것을 결심하는 결말은 썩 유쾌하지만은 않았습니다. 그동안 아동용 영화에서 강조해 왔던 미덕은 "자연으로 돌아가라!" 였던 것 같은데 이 작품은 그러한 상식을 완전하게 뒤집고 있거든요. 물론 현대인을 풍자해서 구성한 성인용 코미디의 티도 좀 나긴 하지만 이 작품의 주요 타겟이 아동이라는 장르적 한계를 놓고 본다면 쉽고 편한것만 추구하는 현대인의 감성을 아이들에게마저 강요하는 것 같아 뒷맛이 씁쓸하더군요.

그래도 이야기의 얼개도 잘 짜여져 있긴 하고 웃겨줄때는 확실히 웃겨주는 센스는 있습니다. 캐릭터들도 충분히 귀엽고 재미나며 많은 친숙한 음악들의 사용으로 귀까지 즐거운 킬링타임용 여름방학 특선 애니메이션으로는 손색이 없긴 합니다. 크게 생각하지 않고 쉽게쉽게 즐길 수 있는 인스턴트 요리 같다고나 할까요? 하지만 드림웍스의 저력을 보여주기에는 뭔가 부족해 보이고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점도 많이 보이는 작품입니다.

PS : 사자가 초밥을 먹을 수 있을까요? 뭐 고양이과니까 잘 맞을지도 모르겠지만.... 얼룩말을 더 좋아할 것 같은데 말이죠.

2005/07/26

마다가스카 (Madagascar, 2005)


뉴욕 센트럴 파크 동물원의 최고 인기 스타인 사자 알렉스(벤 스틸러), 얼룩말 마티(크리스 록), 기린 멜먼(데이비드 쉬머), 하마 글로리아(제이다 핀켓 스미스)는 절친한 친구 사이. 하지만 마티의 10번째 생일날 야생을 꿈꾸는 마티가 동물원을 탈출하게 되고 다른 친구들은 그를 데려오기 위해 애쓰다 포획되어 아프리카로 이송되던 중 자유를 꿈꾸는 펭귄들 탓에 중간에 표류하여 미지의 정글 마다가스카로 보내지게 된다.

마다가스카의 여우 원숭이들의 왕 킹 "줄리앙"은 그들을 위협하는 "푸싸"들을 없애기 위해 사자 알렉스의 환심을 사고자 하지만 고기가 없는 마다가스카에서 굶주림에 시달린 알렉스가 폭주하여 친구들을 위협하다가 정신이 든 후 자책하며 혼자 외로이 지내게 된다.

하지만 북극으로 탈출을 원했던 펭귄들이 너무 춥다며 배를 몰고 다시 마다가스카로 돌아오면서 최후의 모험이 시작되는데....


드림웍스의 여름 신작 애니메이션입니다. 일단 그간의 동물들이 나오는 애니메이션들과는 좀 다른 캐릭터 설정이라 특이하더군요. 동물들이 나오면 보통 야생의 정글이 무대거나 최소한 시골 목장 정도가 배경이었는데 이 작품은 사자, 얼룩말, 하마, 기린 이라는 독특한 조합의 "동물원"에서 사육되고 있는 설정을 가지고 감으로써 차별화를 시키고 있으면서도 이 길들여진 동물들이 본의아니게 (얼룩말 마티는 제외하고) 마다가스카에 표류하면서 벌어지는 상황을 상당히 재미나게 연출하고 있습니다. 동물들이 주인공이지만 그냥 뉴요커로 설정을 바꾸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코미디 영화가 하나 탄생할 것 같네요. (개인적으로 기린 멜먼의 설정은 좀 많이 아니었지만요)

하지만 내용면으로는 대부분의 코믹한 요소를 주인공들이 아닌 펭귄들이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이야기의 중심이 많이 흐려지고 있는 것이 아쉽습니다. 분명 재미난 요소들이 많은 설정임에도 불구하고 주인공 4마리의 동물들은 그다지 활약하거나 보여주는 것이 없거든요. 오히려 중반 이후 알렉스가 배고픔에 정신을 잃고 야성에 눈을 뜨면서 부터는 심각해지기까지 해서 비교가 더 크게 되고 있습니다.

그나마 마지막에는 펭귄들까지 4마리의 동물들에게 합세하며 이야기의 매듭을 확실히 지어주며 완벽한 해피엔딩으로 끝나긴 합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주인공들이 뉴욕으로 돌아갈 것을 결심하는 결말은 썩 유쾌하지만은 않았습니다. 그동안 아동용 영화에서 강조해 왔던 미덕은 "자연으로 돌아가라!" 였던 것 같은데 이 작품은 그러한 상식을 완전하게 뒤집고 있거든요. 물론 현대인을 풍자해서 구성한 성인용 코미디의 티도 좀 나긴 하지만 이 작품의 주요 타겟이 아동이라는 장르적 한계를 놓고 본다면 쉽고 편한것만 추구하는 현대인의 감성을 아이들에게마저 강요하는 것 같아 뒷맛이 씁쓸하더군요.

그래도 이야기의 얼개도 잘 짜여져 있긴 하고 웃겨줄때는 확실히 웃겨주는 센스는 있습니다. 캐릭터들도 충분히 귀엽고 재미나며 많은 친숙한 음악들의 사용으로 귀까지 즐거운 킬링타임용 여름방학 특선 애니메이션으로는 손색이 없긴 합니다. 크게 생각하지 않고 쉽게쉽게 즐길 수 있는 인스턴트 요리 같다고나 할까요? 하지만 드림웍스의 저력을 보여주기에는 뭔가 부족해 보이고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점도 많이 보이는 작품입니다.

PS : 사자가 초밥을 먹을 수 있을까요? 뭐 고양이과니까 잘 맞을지도 모르겠지만.... 얼룩말을 더 좋아할 것 같은데 말이죠.

2005/07/25

악어의 심판 (Maximum Bob) - 엘모어 레오나드 / 김명렬 : 별점 1.5점

악어의 심판 - 4점 엘모어 레오나드 지음, 김명렬 옮김/고려원(고려원미디어)

법정에서 자기 마음대로 범죄자들에게 형을 구형하는 판사 보브 기브스는 60 가까운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자를 무척 밝히는 노인.
그는 송사리 범죄자 데일 크로 주니어를 담당하는 보호 관찰관 캐시 베이커에게 눈독을 들여 수작을 걸기 시작한 뒤, 자신이 완다라는 노예소녀에 빙의되어있다고 생각하는 아내 레이느를 귀찮게 여기고 쫓아낼 것을 계획한다. 계획은 그녀가 가지고 있는 악어에 대한 트라우마를 이용하는 것으로 밀렵꾼 디키 캠포에게 악어를 자기의 집에 몰래 갔다 놓아줄 것을 요청한다.
하지만 디키 캠포가 가져다 놓은 악어가 너무 거대하고 사나운 나머지, 오히려 그가 형을 선고한 악당들에게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다는 착각을 불러 오게 된다.

한편 보브 기브스에게 중형을 선고받은 악덕 마약중독자이자 변태인 의사 토미는 데일 크로 주니어의 삼촌인 앨빈에게 개인적 복수를 위해 보브 기브스를 죽이면 5만달러를 줄 것을 제의하고, 앨빈은 제의를 받아들여 토미의 차와 권총, 돈을 이용하면서 서서히 폭주하기 시작한다....

저에게는 지루함으로밖에는 기억되지 않는 작가 엘모어 레오나드의 장편. 아주 예전에 구입했지만 작가가 취향이 아닌지라 그동안 미루어 오다가 읽게 되었는데... 역시나 생각대로더군요. 예전에 읽었던 "마지막 모험"은 그나마 꼬아놓은 이야기구조나 캐릭터 설정이 흥미진진해서 나름 수확도 있었지만 이 작품은 정말 별로였습니다.

초반은 원제이기까지 한, 최고형량을 집행하는 호색한 판사 맥시멈 밥 - 보브 기브스와 그가 찜한 미인 보호 관찰관 캐시 베이커와의 이야기가 중심인데, 중반 이후부터는 편집광적인 살인범 엘빈 크로가 주인공으로 바뀝니다. 내용도 크로의 심리 묘사와 무차별적인 비인간적 연쇄살인 행각 중심이고요. 이렇게 앞-뒤가 달라 무척 혼란스러울 뿐 아니라, 등장인물도 비중있는 캐릭터가 너무 많아 도무지 무슨 내용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조금씩 연관되는 인물들과 사건들에 대한 여러 이야기 몇개를 뒤섞어 하나의 소설이 나온 듯 한데 영화라면 꽤나 흥미로운 구성이었을것 같으며 작가 자신도 "펄프픽션" 같은 비슷한 영화에서 모티브를 많이 얻은 듯 하지만 불행히도 소설로 잘 구현된 것 같지는 않네요.
한마디로 추리물이라고 하기에는 이야기 자체가 빈약하고 사건도 별다를 것이 없으며 드라마라고 하기에는 이야기가 너무 혼란스러운 어정쩡한 작품이에요.

그래도 아주 건질게 없는건 아닙니다. 특유의 뒷골목 짜투리 범죄자들의 디테일과 숨이 막힐것 같은 갑갑한 소도시의 분위기는 잘 살아 있는 편입니다. 무엇보다도 본능으로만 움직이는 즉흥적인 범죄자 앨빈 크로 캐릭터가 아주 흥미롭고 압도적이에요. 작가가 뒷골목 생활 경험이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범죄자들과 범죄에 관한 묘사도 대단한 수준이고요.

허나 이 정도로 점수를 주기는 어렵군요. 별점은 1.5점입니다. 너무 많은 인물들을 동원해서 많은 것을 보여주려고 한 욕심이 지나쳐서 오히려 많은 것을 놓쳐버린 작품인데 과유불급이라는 격언을 되새겨 다음 작품에서는 보다 밀도있는 모습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2005/07/24

아웃 오브 타임 (Out Of Time, 2003) - 칼 프랭클린 : 별점 3점


플로리다의 한 작은 마을, 베니언 키의 보안관인 매트(덴젤 워싱턴 분)는 자신의 일을 성실하게 수행해 온 덕분에 동료들은 물론 주민들의 신뢰와 존경을 받는다. 하지만 사실 그는 유부녀인 앤(산나 라단 분)과 오래 전부터 내연의 관계에 있는 사이.
어느날 매트는 앤과 같이 찾아간 의사에게서 앤이 암에 걸려 6개월 정도의 시한부 인생이라는 것을 알게되고, 앤은 매트에게 마지막 이별의 선물로 자신의 생명보험 100만달러의 수취인으로 매트를 지명한 서류를 주며 떠날 결심을 한다. 이에 매트는 앤을 돕고자, 그녀를 스위스의 대체의학 치료 센터에서 치료를 받게끔 하기 위해 자신이 압수한 마약 사건의 증거품인 경찰서의 공금 45만여 달러를 전해 준다.

하지만 은신처에서 연락하기로 한 앤은 연락이 두절되고, 다음날 앤과 그녀의 남편의 사체로 추정되는 살인 방화 사건이 일어나게 되고, 사건의 모든 증거는 매트가 살인사건의 제 1 용의자로 지목되는 방향으로 흐른다. 앤이 사실은 암이 아니었다는 사실까지 알게 된 매트는 동료 경찰들이 그를 범인으로 의심하기 전에 마약 단속국에서 수금을 요청한 45만달러를 회수하고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초를 다투는 치열한 상황 속에서 동분서주하며, 그의 전 아내이자 이 사건을 담당하게 된 형사 알렉스(에바 멘데스 분)는 점점 수사망을 좁혀 가면서 조금씩 매트의 수상쩍은 행동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기 시작하는데....

영화 감상은 오랫만이네요. 역시 여름에는 공포물도 좋지만 스릴러물도 좋죠. 2003년도에 개봉했던 덴젤 워싱턴 주연 영화입니다.

주인공이 모종의 음모에 의해 궁지에 빠지고 스스로 해결하고자 하는 영화나 소설, 만화는 사실 수없이 많습니다. 때문에 이런 작품들이 신선함과 재미를 주기 위해서라면 그 음모가 얼마나 치밀한지와 궁지에서 빠져나가는 과정이 굉장히 중요하죠. 다행히 이 영화는 제법 성공하고 있는 편입니다.
초반 30여분간은 매트와 앤의 불륜에 포커스를 맞춰져 지루하지만 거금을 노리는 범인들이 매트를 범인으로 완전히 옭아매려는 작전이 시작되면서부터는 정말 숨쉴틈 없이, 재미있게 진행됩니다. 와중에 매트가 순간순간 기지를 발휘해서 자신에게 집중될 수 있는 용의를 살짝살짝 빠져나가는 장면들 역시 놓칠 수 없는 부분이고요. 중반에 등장하는 GPS를 이용한 복선과 마지막에 마약 단속국에서 요청한 돈을 타이밍 좋게 넘겨주는 부분 역시 영화에 치밀함을 더해주는 요소로 잘 이용되고 있습니다.

감독도 잘 모르는 사람이고 주연 배우들도 덴젤 워싱턴을 빼면 유명한 사람이 거의 없어서 그닥 돈을 많이 들인 것 같지는 않지만. 검증된 배우 덴젤 워싱턴의 야자수무늬 셔츠로만 활약하는 시골 경찰 서장역의 연기를 비롯해서 다른 배우들의 연기도 괜찮고(개인적으로는 나름의 악역 연기를 소화한 TV시리즈 슈퍼맨의 딘 케인의 모습이 이채로왔습니다) 뭔가 궁지에 몰린 사람의 아찔한 심리가 잘 표현된 연출도 마음에 들었어요.

하지만 범인들의 공범자가 쉽게 잡혀버려 가장 중요한 범죄의 요소인 "돈"을 너무 빨리 매트가 회수하게 되는 바람에 후반 밀도가 많이 떨어진다는 단점은 있습니다. 범인이 마지막에 찾아온 매트와의 최후 승부에서 앞뒤 가리지 않고 총질부터 하는 것도 앞부분의 치밀함과 잘 맞아떨어지지 않았고요. 아울러 개인적으로는 꽤 괜찮은 흑인 팜므파탈역으로 영화사에 기록될 수 있었을 앤이 초중반까지는 남자에게 질질 끌려다니는 연약한 캐릭터에서 막판에 180도 돌변하는 모습으로 바뀌는 바람에 성격이 애매모호해진 것이 가장 아쉬웠어요.

그래도 영화는 내용이 시종일관 깔끔하고 설득력 있게 전개되서 꽤 괜찮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킬링 타임용으로 가볍게 더운 여름날 한번 감상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별점은 3점입니다.

PS : 느낌이 예전에 봤었던 "블루 데블 (Devil In A Blue Dress, 1995)"과 너무나 분위기가 흡사하다고 느껴져 잠깐 조사해 봤더니 같은 감독이 연출했더군요. 역시나....하여간 이 "블루 데블"도 추천작입니다.

PS2 : 부하가 4명밖에 없는 시골 경찰 서장을 007처럼 표현한 저 포스터의 센스는 그야말로....

2005/07/23

정인숙 사건 - 나명순 르포집 : 별점 2점

1988년에 나온 책이니 당시에는 화제가 되었을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지금은 그냥 잊혀지고 있는 한국 현대사의 한토막인 정인숙 사건에 대한 르포집입니다.

정인숙사건은 아마 지금은 모르는 사람도 많겠지만 간략히 소개한다면 박정희 독재 당시 주미대사를 손가락으로 부르며 상당한 재력과 권력을 손에 넣었던 미모의 여인 (아마도 고급 콜걸?) 정인숙이 1970년 자동차를 타고 귀가중 운전하던 오빠 정종욱의 총을 맞고 살해당한 사건을 말하는 것입니다. 당시에, 그리고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은 미스테리가 몇가지 존재하기 때문에 이 여인의 이름이 역사에 한토막으로 남게 된 것이겠죠.

미스테리는 크게 2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1. 정인숙이 낳은 아이는 누구인가? 이미 수차례의 임신 중절 수술을 경험했으며 직업 특성상 아이를 가지는 것이 불리했을 것이 당연한 정인숙이 애써 낳아 기른 아이는 누구의 아이였을까? 이 아버지가 자신을 지키기 위해 정인숙을 죽이고 희생양으로 오빠 정종욱을 내세워 이 사건의 수사를 졸속으로 처리하게 하였을까?
  2. 집에서 가까운 위치에 동기마저 불명확한 오빠의 충동적 살인은 설득력이 떨어지는데 진범은 과연 누구인가?
물론 이외에도 사건에 관련된 소소한 수수께끼들, 예컨데
  1. 결국 발견하지 못한 권총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2. 범행에 사용된 권총을 제공했다는 신현정씨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등도 있습니다. 그러나 핵심은 앞서 말한 저 2가지라 생각됩니다.

첫번째 미스테리는 정인숙의 부와 권력에 직접적인 연관이 있었던 부분이기도 해서 더욱 관심을 자아내는데, 일단 이 책에서는 소문과 추론을 통해 인물을 2명, "박정희"와 "정일권"으로 좁히고 있습니다. 
두번째 미스테리도 당시 수사와 재판은 졸속이었고 다른 곳에서 살해당해 옮겨졌다라는 설이 파다하게 퍼졌을 만큼 정종욱은 희생양에 불과했다는 추론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고요.
거기에 사건의 정황에서 수사과정과 재판과정, 그리고 정인숙의 태어나면서부터 죽을때까지의 행적, 당시 사회상 등을 소상하게 추적하여 기술하고 있고 관련자 인터뷰도 진행하는 등 소문보다는 "사실"에 가까운 무언가를 전해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생각보다 별로 팩트에 기초한 것 같지는 않고 추정과 당시의 소문 등에 많은 할애를 하고 있어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어요. 무엇보다도 미스테리 자체를 밝혀내는데에는 결국 실패했다는 점에서 실망이 컸습니다.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결국 새롭게 알 수 있는 사실이 없기에 감점합니다. 그래도 르포집이라는 책을 읽어본 것은 처음인데 나름 좋은 경험이었어요. 국내 현대사에도 밝혀지지 않은 사건이 많은 만큼 이런 장르의 책들도 많이 나와 주길 바랍니다.

덧 : 그나저나, 몇년전에 아들인 정승일이 정일권씨에게 친자 확인 소송을 제기하여 DNA검사를 했지만 결국 친자가 아닌것으로 증명된 일이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친부는 누구였을까요? 정말이지 궁금할 따름입니다....

2005/07/20

이글루땅 프레임 버젼

어제 올린 그림으로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는데 덧글을 보니 오히려 도장 버젼이 더 반응이 좋더군요. (희한하네?)

그래서 내친김에 Variation 작업 몇개 더 해 보았습니다.

작업툴 및 방식은 전부 어제와 동일합니다.

즐겁게 봐 주세요.

PS : 이제 귀찮아서 더는 못하겠네요...^^;;

래스코 탄젠트 - 리처드 노스 패터슨 / 황해선 : 별점 1.5점

래스코 탄젠트 - 6점 리처드 패터슨 지음, 황해선 옮김/해문출판사

외부에서의 밀고로 조사가 시작된 대통령의 친구인 거물 실업가 래스코의 주가조작 사건 담당인 경제범죄대책위원회 고발국 소속 변호사 크리스토퍼 캐넌 파제트. 그는 정치적인 입김이 많이 작용하는 사건의 성격에 적응하지 못하고 상관과 계속 충돌한다.
그러던 중, 래스코의 경리부장이던 알렉산더 리만에게 증언을 약속받으나 리만은 파제트의 눈 앞에서 뺑소니차에 치어 즉사하고 파제트는 리만의 유품을 뒤져 수수께끼 같은 메모를 입수하게 된다.

계속 사건을 추적해 가던 파제트는 정보가 계속 누설되어 래스코에게 전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내부의 배신자를 찾으면서도 메모의 내용을 해독하는데 성공하여 래스코의 모든 음모를 밝혀내게 되지만 배신자의 책략으로 위기에 처하게 되는데...

우연찮게 헌책방에서 구입한 책입니다. 그닥 땡기지는 않았지만 책 뒷표지에 있는 "1979년도 미국 추리 작가 협회상(MWA)" 수상작이라는 문구에 낚이기도 하고 가격도 워낙 싸서 냉큼 구입하게 되었네요. 해문 Q 미스테리 46권입니다.

하지만 예상대로 내용은 뻔하디뻔한 미국식 스릴러에 불과하더군요. 정의감에 불타는 주인공과 거물 악당을 잡아들이기 위한 노력, 그 와중에 벌어진 증인의 원인모를 죽음과 그에 꼬리를 무는 의문의 사건들... 단서는 피해자가 남긴 메모 한장뿐! 그리고 마지막에 밝혀지는 충격적인 배신자의 정체!까지 어디서 본듯한 내용이 난무합니다.

스테레오 타입의 이야기와 주인공 캐릭터라 워낙 뻔하기 때문에 이를 커버하기 위해서라도 복잡한 음모와 배신자의 정체를 잘 포장하는 것이 나름 중요할텐데 이 작품은 이런 부분에서도 성공하지 못했어요. 무엇보다도 증인인 알렉산더 리만이 죽기 직전 남긴 메모로 범행의 전모가 밝혀지며 범행이 입증된다는 결말은 당쵀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설령 백번 양보해서 범행을 입증할 수 있다고 해도 순전히 주인공 파제트의 추정에 불과한 대통령과의 연관성을 밝히는 것은 불가능했을 겁니다. 뭔가 있어보이던 메모조차 별다른 암호 트릭도 아니고 사건을 해결해 가는 과정에서 알게 되는 정보의 나열이었을 뿐이어서 더욱 실망스러웠고요.

그래도 경제범최대책 위원회 고발국 소속 변호사라는 주인공 크리스토퍼 케넌 파제트라는 캐릭터의 직업 하나만큼은 독특하고 신선해서 좋았습니다. 직업에 더해 고발국이라는 특수한 환경 등에 대한 디테일도 뛰어난 편이라 감탄했는데 조사해 봤더니 작가가 변호사 출신이더군요. 이야기 전개도 시원시원 명쾌하며 사건들을 흥미진진하게 묘사하여 연결하는 글재주는 있어서 읽는 재미는 그런대로 괜찮은 편이고요.

그러나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요즘 읽기에는 지나칠 정도로 구식인, 시시하기 짝이없는 작품이었습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2005/07/18

끝없는 추적 (追いつめる) - 이쿠시마 지로 / 이경재 : 별점 3점

이제는 대기업의 풍모마저 느껴지는, 고오베의 항구를 장악하고 있는 하마우찌 구미를 처단하기 위해 형사부장 시다 시로오는 경찰 본부장 구사야나기의 은밀한 지시를 받고 독자적인 행동에 나선다. 시다의 첫 타겟은 하마우찌 구미의 간부 아오다니. 그는 시다가 주목하던 전과자 구와다를 살해한 혐의가 있어 검거에 나서지만 검거 도중 시다는 동료 형사 노리마쓰를 쏘게 되고 검거마저 실패해 형사를 그만 두고 가족까지 잃게 된다.
하지만 혼자서라도 하마우찌 구미에 대항하던 시다는 아오다니의 행적을 추적, 검거에 성공한다. 이어 구사야나기 본부장이 발족시킨 특수 대책반의 활동으로 아오다니를 통해 하마우찌 구미의 경영을 책임지던 오쿠다마저 체포함으로써 하마우찌 구미는 결국 몰락의 길로 접어든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베스트셀러 작가 이쿠시마 지로의 작품입니다. 나오키 상까지 수상한 작품이네요.

하드보일드 분위기를 풍기지만 하드보일드 추리물은 아닙니다. 캐릭터나 전개 방식이 니시무라 쥬꼬나 오사와 아리마사가 연상되는, 구태여 장르 구분을 하자면 "하드보일드 풍 모험소설"이라고 할 수 있겠죠. 왜냐하면 이 작품에서의 시다 시로오의 수사 방식이 "혐의자를 협박하거나 때린다 >> 혐의자가 진실을 말한다 >> 진실을 추적해서 다른 혐의자를 잡는다 >> 다시 혐의자를 협박하거나 때린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복잡한 인간 관계 속에 진실이 숨어있는 하드보일드 추리물과는 다르게 한방향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며, 추리라는 것도 거의 존재하지 않습니다. 뭐 사건 자체가 단순할 뿐더러 일개 개인과 거대 조직과의 싸움이기 때문에 별로 숨길 것이 없기도 하고 말이죠.
주인공이 복수심으로 혈혈단신 외로운 늑대로 싸워나간다는 점에서 과거 사무라이 활극이 연상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더욱 더 모험소설처럼 보이는 것 같네요.

이렇게 비록 추리적 요소는 거의 없지만 "재미"라는 기본 요소에 굉장히 충실하다는 것도 특징입니다. 거대 조직 하마우찌 구미의 치밀한 묘사를 비롯하여 협박과 공갈, 폭력 및 각종 상납 등 여러 범죄에 대한 디테일이 워낙 뛰어나서 진부한 설정에도 불구하고 이야기속에 독자를 빨아들이는 매력이 대단하거든요. 작가가 나가사키 출신이라는데 본인 체험에서 우러나온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어요.
이러한 재미에는 하드보일드에 걸맞게 외롭고 고독하면서도 터프하고 냉소적인 유머를 갖춘 쿨가이 시다 시로오의 매력 역시 제대로 거들고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산토리 위스키를 찾는 장면 같은 디테일에서 시다의 고집이 잘 드러나 보여 마음에 들었어요. 이야기속에 작게나마 나름 반전이 있는 것도 이채로왔고요.

한마디로 결론내리자면 추천작입니다. 현대의 일본식 하드보일드 액션 스릴러의 원조격, 할아버지 뻘로 한번쯤 읽어볼 가치는 충분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덧붙이자면 허무하긴 하지만 여운을 남기는 엔딩이 인상적이었는데 뭔가 속편을 암시하는 듯 해서 조사해 봤더니 아니나 다를까 이후 10여편의 시다 시로오 시리즈로 이어졌네요. 1972년에 영화화 되었는데 구하기는 어렵겠지만 영화도 궁금합니다.

2005/07/15

스위트홈 살인사건 - 크레이그 라이스 / 백길선 : 별점 3점

스위트홈 살인사건 - 6점 크레이그 라이스 지음, 이기원 옮김/해문출판사

추리소설 작가인 엄마 마리안 카스테어스와 함께사는 삼남매 다이나, 에이프릴, 아치는 어느날 옆집 샌퍼드 저택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을 목격한다. 삼남매는 이 사건을 해결해서 엄마의 명성을 높여주겠다는 욕심을 품고, 경찰까지 농락해가며 사건을 조사해 나가기 시작한다.
이 와중에 사건의 담당 형사 빌 스미스와 엄마의 감정이 미묘한 것을 눈치채고 둘을 연결시켜 주려는 노력까지 해 가며 결국 삼남매는 사건의 진상을 꿰뚫고 사건을 해결하게 된다.

여성 작가 크레이그 라이스의 작품. 동서에서도 출간되었지만 제가 읽은 것은 해문의 Q 미스테리 시리즈 판본입니다.

무대는 외딴 시골 동네, 주인공도 아이들, 그리고 작중 대화와 사고방식 모두 아동 입장에서 쓰여진 작품입니다. 때문에 스케일도 작고 흡사 "소년탐정단" 시리즈가 연상되는 전형적인 아동용 모험소설의 느낌이 강해요.
그러나 이러한 점이 오히려 다른 추리소설들과는 굉장히 다른 독특한 재미를 안겨주며, 특히 아이들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벌이는 기발하고, 때로는 유치한 여러 작전들이 굉장히 유쾌하고 재미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엄마 소설의 탐정들의 방식과 대사를 흉내내는 장면들이 귀여웠어요) 흡사 "초원의 집" 분위기의 당시 미국 시골 마을의 디테일한 묘사도 마음에 들었고요.

사건 자체는 이러한 작품 분위기와는 다르게 의외로 진지하고 복잡한 편이기는 합니다. 그래도 아이들이 샌퍼드 저택에서 죽은 샌퍼드 부인의 서류를 발견한 뒤 이를 통해 주변 인물들을 조사하여 단 하나의 진실을 밝혀낸다는 결말로 깔끔하고 명쾌하게 마무리하고 있다는 점에서 정통 추리의 맛도 잘 느껴졌습니다. 단순한 캐릭터 중심의 모험물만은 아니랄까요. 물론 샌퍼드 부인의 서류를 경찰이 수색에서 왜 발견하지 못했는지가 잘 납득되지 않는다는 단점은 있지만 뭐, 납득할만한 수준이었어요.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3점. 가벼운 마음으로 즐길 수 있는 웰메이드 홈코미드 스릴러입니다. 소박하고 유쾌하면서도 동심으로 돌아갈 수 있는 흔치 않은 작품이기에 추리소설 초보자에게 적극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초보자가 아니시라도 거대하고 큰 음모, 잔인한 엽기 연쇄 살인사건에 관한 작품이 난무하는 요즈음 신선한 느낌으로 기분전환 할 수 있으실테고 말이죠.

덧 1 : 내용 전개가 디즈니의 모험영화 같아서 잠깐 조사해 보니 아니나 다를까 이미 1946년에 영화화가 되었더군요.
덧 2. 아이들이 말썽꾸러기이긴 해도 집안일도 잘 돕고 엄마의 일과 마음을 잘 이해하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약간 판타지스러운데 저자인 크레이그 라이스 여사 본인의 결혼생활은 불행했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소설로나마 이상적인 가정을 꾸미고 싶어한 심정이 반영된 결과물로 보입니다. 안타깝네요.

2005/07/13

엘러리 퀸 미스터리 매거진 (EQMM) 1,2 : 각권 별점 3점


유명한 단편 추리 전문 잡지 엘러리 퀸 미스터리 매거진(EQMM) 한국판 1, 2호. 우연찮게 헌책방에서 발견해서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워낙 유명해서 자세한 설명은 필요 없겠죠? 짧게만 소개해 드리자면, 추리작가 엘러리 퀸이 간행하기 시작한 잡지로 유명한 단편 앤솔로지나 단편집, 단편 작가들은 거의 다 여기를 통해서 알려지고 배출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에드가상 단편 부분 수상작으로도 선정된 작품도 많은, 그야말로 단편의 보물창고 같은 잡지죠.

각 권별 전체 평균 별점은 3점. 제가 뽑은 베스트는 1호에서는 "여행중에 생긴 일". 2호에서는 "평생동안의 기다림"과 "클레머티스의 향기" 입니다. 2호보다는 1호가 좀 더 고전파에 가깝다 보이는데 취향에 맞춰 골라보는 재미도 쏠솔하네요. 그러나 한국판은 제가 알기로는 2호가 마지막인듯 싶군요. 좋은 기획인데 역시나 판매부수가 문제였을테죠. 단편 추리물 팬으로서 무척 아쉬운 일입니다. 이 정도 두께와 가격에 이 정도의 수준을 보여주는 잡지라면 계속 구입했을 것 같은데 말이죠. 이후에도 계속 출간되었으면 합니다만... 힘들겠죠?

수록 작품은 아래와 같습니다.

1호 수록작
"욕실살인"
나름대로 개인적 인연이 약간 (아주 약간!) 있는 에드워드 D 호크의 작품으로 아무도 없는 욕실 안에서 단검에 찔려 살해된 시체때문에 범인으로 몰리는 백화점 직원 수잔 홀트의 이야기입니다. 수잔 홀트는 수많은 작가의 시리즈 캐릭터 중 한명인 모양이네요. 에드워드 D 호크 특유의 "불가능 범죄" 이야기를 잘 풀어나가고 있기는 하나 트릭은 좀 시시한 편입니다. 별점은 2.5점.

"여행중에 생긴 일"
보험 조사원 숀 콜란 (마스터 키튼? ^^)이 우연히 여행 중 사고를 당해 한 농장에 머물게 됩니다. 그리고 농장 여주인 남편의 교통 사고를 알고나서 나름의 호감과 정의감으로 보험금을 받게 해 주려고 애쓰던 중, 이유를 알 수 없는 습격을 받게 된다는 서스펜스 스릴러입니다.
이런저런 앤솔로지에서 몇번 접해보았던 도그 앨린의 작품으로 단편보다는 중편에 가까운 길이지만 시간가는 줄 모르고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한편의 영화처럼 서스펜스 가득한, 긴박감이 넘치는 묘사가 일품이었기 때문이에요. 마지막 부분에 공격받는 이유를 설득력 있게 설명해 주는 부분도 아주 좋았고요. 그야말로 무릎을 칠 만 했달까요. 별점은 4점!  1호의 베스트로 꼽겠습니다.

"여자의 행복조건"
생소한 작가 도날드 올슨의 작품. 유산을 둘러싸고 조카딸의 도박꾼 남편 윌리와 베스타 이모가 대결한다는 일종의 완전범죄물로 도박꾼이자 인간 쓰레기인 윌리라는 인물과의 두뇌싸움이 흥미진진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놀라운 돼지들"
역시나 생소한 작가 조지 체스브로의 작품. 시리즈 캐릭터라고 하는 갈쓰 프레더릭슨이 등장하는 작품입니다.
돼지를 둘러싼 소송때문에 갈쓰가 머리를 써서 소송을 낸 사기꾼 어크맨을 속여먹는 부분은 좋았는데 후반부가 황당해서 점수를 다 깎아먹네요. 상상력은 기발한데...글쎄요, 저는 적응이 잘 안되더라고요. 별점은 2점입니다.

"계산 착오"
완전 범죄를 노리는 여인의 이야기를 다룬 단편.
여성작가 캔디스 앨리엇의 작품으로 '현대 범죄에서 동기는 그다지 중요하게 다루어지거나 분석되지 않는다'는 뒷부분 작품 해설처럼 동기보다는 완전 범죄를 위한 주인공의 계획에 촛점이 맞춰지고 있습니다. 나름 설득력있는 발상이라고 생각되네요. 제목에서 암시하는 것 처럼 결국 완전 범죄는 실패로 돌아가는게 문제지만... 별점은 2.5점입니다.

"수다쟁이의 질투"
존 몰티머의 작품으로 원래는 TV용 시나리오였다고 합니다. 짧지만 변호사가 주인공으로 등장해서 긴박감있는 법정 장면까지 보여주는 알차고 임팩트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정통 추리물로 보기에는 어렵지만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어요. 별점은 2.5점입니다.

2호 수록작
"비상을 꿈꾸며"
클라크 하워드의 작품으로 악당 조직의 두목이 자신에게 불리한 증언을 할 인물을 없애기 위해 항공기 관제사 제드의 가족을 인질로 삼는다는 인질극입니다.
한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서스펜스와 스릴이 확실해서 시종일관 긴장을 늦추지 않게 만드는 전개는 대단하더군요. 허나 마지막이 너무 허무한 편이라 아쉽습니다. 단편의 한계였던 것일까요? 별점은 2.5점입니다.

"이번엔 진짜 실탄?"
윌리엄 뱅키어의 작품입니다. 30여년만에 고향에 돌아온 조 헉은 보험 사기를 위해 살인을 저지르고 현재 도피중인 인물이라는 이야기로 두번의 반전이 돋보입니다. 충격적이거나 놀랍다기 보다는 아기자기한 소품같은 느낌이 좋고, 해피엔딩이라는 것이 마음에 들고요. 별점은 3점입니다.

"악녀의 죽음"
피터 턴블의 드라마에 가까운 소품. 우연하게 순찰경관이 발견한 방치된 차에서 범죄가 드러나는 과정, 그리고 범인의 심리를 밝히는 결말부가 인상적인 작품입니다. 정통 추리물은 아니지만 작가가 글을 참 잘 쓴다는 느낌이 들어서 좋았어요. 별점은 3점입니다.

"평생동안의 기다림"
1호에도 실려있는 도날드 올슨의 작품입니다. 이 작가 EQMM과 인연이 깊나 보네요. 두명의 노파가 등장하여 갈등관계를 보여주다가 한 노파가 고향 마을로 여행을 떠난다는 단순한 내용인데 범죄와 드라마가 모두 포함되어 있는, 깊이있는 전개가 인상적인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트릭보다는 드라마가 중시되는 현대 추리 단편의 좋은 예라 생각되네요. 별점은 3.5점입니다.

"페트라코브와 고릴라"
러시아에서 망명한 병리학자 일리아 페트라코브 시리즈로 벤 클라인의 작품입니다. 동물농장의 주인이 고릴라 우리에서 굉장한 힘으로 짓이겨져 타이어에 쑤셔넣어져 있는 시체로 발견되고 범인으로 의심받는 고릴라가 사형(?) 당할 위기에 처한다는 이야기로 캐릭터 측면에서는 손다이크 박사가, 수사 측면에서는 CSI 느낌이 많이 나는 단편이었습니다. 괜찮긴한데 시리즈 캐릭터라는 병리학자 일리아의 매력이 별로 드러나지 않는 것은 단점으로 보입니다.별점은 2.5점입니다.

"콜럼버스의 얼굴을 훔친 사나이"
에드워드 D 호크의 괴도 닉 벨벳 시리즈로 거대한 콜럼버스 동상의 11톤이나 되는 머리 부분만 훔쳐내는 이야기입니다. 유명한 시리즈이긴하나 전개와 설정 모두 납득이 잘 가지 않는 평균 이하의 작품이었습니다. 작가와 시리즈 명성에 비하면 무척 실망스럽더군요. 별점은 1.5점입니다.

"비밀을 털어 놓은 남자"
H.R.F 키팅의 인도 봄베이 경찰국의 가니쉬 고케 경감이 등장하는 단편으로 시리즈라고 하는군요. 일종의 "윤회"를 테마로 하고 있는 지적이면서도 몽환적인 단편이었습니다. 추리적으로 별로 눈여겨 볼 것은 없지만 문체와 전개방식이 독특해서 읽는 맛은 좋았어요. 별점은 2점입니다.

"클레머티스의 향기"
미뇽 F 발라드의 작품으로 한 노처녀의 의문의 죽음을 다루고 있습니다. 정통 추리에 가까운 작품으로 애거서 여사의 단편같은 느낌의, 영국 정통 추리물의 명맥을 잇는 듯한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럼 비지니스"
마가렛 요크의 그랜트 교수가 등장하는 시리즈 단편. 내용과 전개방식은 고전적이고 정통 추리물에 가까우나 사건의 해결 방식이 쉽게 납득 되지 않고 그다지 공정한 편은 아니라 높은 점수를 주기는 힘들었습니다. 갑자기 마약 밀매로 이야기가 급진전 되는 것도 문제있는 설정으로 보이네요. 그냥저냥한 작품으로 별점은 2점입니다.

사라진 보석 - 콜린 덱스터 / 이경아 : 별점 3점

사라진 보석 - 6점
콜린 덱스터 지음, 장정선.이경아 옮김/해문출판사

영국 "유적도시" 관광을 위해 미국에서 단체 관광객이 찾아온다. 그들 중 영국의 역사적 유물 "올버코트 텅"이라는 보석을 기증하기 위해 찾아온 스트래턴 부부가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로라 스트래턴이 샤워를 하던 중 심장발작으로 사망하고 보석을 도둑맞는다. 모스 경감과 루이스 경사는 수사에 나서지만 보석의 소재를 찾아내지는 못하던 중, 여행객들과 같이 행동하며 강연과 설명을 해 주던 고고학자 시어도어 켐프마저 잔인하게 살해된 시체로 발견된다. 피해자는 타고난 바람기로 주변의 원망을 들어 왔으며, 과거 자신이 일으킨 교통사고로 불구가 된 아내에게도 미움받고 있었던 인물.
그러나 시체를 옮기는 것은 불구가 된 아내 마리온에게는 무리였기에 모스는 켐프의 주변 인물들에게 눈을 돌려 조사를 계속 해 나가며 보석의 행방도 함께 수사해 나간다. 이후 켐프의 살인범으로 모스가 지목한 용의자는 터무니 없는 인물임이 밝혀지고 또다른 인물도 자신의 완벽한 알리바이를 입증함으로써 모스는 궁지에 몰리게 되는데...

모스경감 시리즈 3번째로 출간된 작품. 그런데 제가 읽었던 작품 중 다른 작품들과 가장 차이점이 많더군요.

첫번째로는 보석 도난 사건이 소재로 쓰이고 있다는 점입니다. 물론 한건의 살인 사건이 있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긴 합니다만...

두번째로는 등장인물들 사이의 관계입니다. "미국"에서 건너온 단체 관광객들과 여행에 관련된 불특정 다수 사이에서 벌어지는 사건이 그려지거든요. 주로 지역 사회 기반의 좁은 인간 관계 중심이었던 다른 작품들과 확실히 차이가 나죠.

세번째로는 캐릭터인데 모스 경감이 여러개의 추론을 내놓고, 여러번 실패하며 진상에 도달하는 모습은 다른 작품과 동일하지만 한번의 실패가 꽤나 결정적이라는 점, 그리고 추리쇼를 통해 진상을 밝혀내는 마지막 장면은 다른 시리즈와 굉장히 다른 느낌을 전해 줍니다. 특히나 마지막 여행객들을 모아놓은 자리에서의 추리쇼는 모스 경감의 캐릭터를 잘 살리면서도 명탐정의 포스를 잘 뿜어내 주고 있어서 마음에 들더군요.
아울러 모스 경감의 차가 란치아가 아니라 재규어라는 점 (이 부분은 TV 시리즈 방영 후 바뀐 것이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실제로 여자와 원나잇스탠드에 성공한다는 점도 다른 작품과는 다릅니다.

추리적으로 일종의 위증을 통한 알리바이 조작이 핵심입니다. 하지만 꽤나 이야기에 잘 어울리게, 공정하게 전개되고 있어서 마음에 들었어요. 사건의 동기 역시 상당히 설득력이 있기에 정통 추리물로 불러도 손색없는 작품이 된 것 같습니다.
이에 더해 "보석은 어디로 갔는가"와 "누가 켐프 교수를 죽였는가"라는 두 사건 모두 관계자들의 증언 중 누구의 말이 참말이고 거짓인지에 복잡하게 비교하여 진실을 끌어내는 전개는 보다 이야기가 복잡해지기는 했어도 다른 시리즈 작품과는 색다른 재미요소였습니다. 읽으면서 자꾸 앞부분을 다시 들추게 될 정도로 말이죠.

또 영국에 여행온 미국인들이 주요 인물이라 런던 (주로 옥스퍼드 중심이지만)의 관광명소에 대한 상세한 설명과 묘사가 부록처럼 따라오는 점도 인상적이었습니다. 특히 유명 사적지에 얽힌 이야기가 감초처럼 끼어 있어서 좋더군요. 나중에 혹 영국 여행을 가게된다면 나름대로 도움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3점. 전에 읽었었던 다른 5개의 작품과 분명 차별화된다는 점이 가장 좋았습니다. 기존의 스타일과 유머를 적절히 유지하면서도 작가 스스로 진부해 질 수 있는 시리즈에 변화를 준 것이 괜찮게 느껴졌거든요. 사실 시리즈가 계속되면서 매너리즘에 빠지는 작품들이 상당히 많이 있어서 아쉬웠는데 이 모스경감 시리즈는 역시 명성에 걸맞는 위치를 충분히 차지할 만한 시리즈로 보이네요.

이제는 모스경감의 TV 시리즈를 어떻게 구해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자막 포함해서요. 케이블 TV에 독자 엽서라도 한번 보내봐야겠군요.

2005/07/12

일본 서스펜스 걸작선 - 일본 추리작가 협회 추천 / 한국 추리작가 협회 편역 : 별점 2.5점

무슨 기준으로 선정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건 꽤 괜찮은 작품들이 실려있는 단편 앤솔러지. 다양한 분야의 장르들도 공평하게 배분되어 있고, 수록 작가들도 야마무라 미사나 아카가와 지로, 아토다 다카시, 나쓰키 시즈코, 도가와 마사코, 하라 료, 모리무라 세이이치, 오사와 아리마사 등 유명하고 친숙한 작가들이 많아 풍성한 느낌을 전해줍니다. 여성 - 남성 작가의 비율 배분 역시 공평하네요.

개인적으로 이 단편집 최대의 수확은 다른 작품들에서는 항상 실망만 안겨줬었던 아카가와 지로의 정통 추리물 "곳에 따라 비"와 아토다 다카시의 서늘한 서스펜스 "취미를 가진 여인"입니다.
"곳에 따라 비"의 우노경부와 대학생 유키코 컴비는 꽤나 유쾌한 캐릭터라 다른 시리즈도 기대를 갖게 만드네요. 사건과 트릭도 꽤 기발하면서도 잘 짜여져 있고요. "취미를 가진 여인"은 수많은 사람들이 등장하며 사건도 일견 복잡해 보이지만 마지막에 꽤나 서늘한 반전을 가져다 주며 한방에 정리하는 전개가 괜찮았어요. 그 외의 작품들도 대체로 괜찮은 편입니다.

그러나 실망스러운 작품도 실려있긴 합니다. "내가 죽인 소녀"의 사와자키 탐정이 등장하는 하라 료의 단편 "소년을 본 남자"는 마음에 들던 캐릭터가 등장하는 단편이라 기쁜 마음으로 읽었지만 작품 자체는 별로였습니다. 드라마에 너무 신경쓴 느낌이랄까요? 여튼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어요.
도가와 마사코의 "노란 흡혈귀"는 최악이에요. 약간 저능아인 주인공의 심리 묘사를 축으로 진행되는 1인칭 시점의 서스펜스물인데 설정과 전개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았거든요. 다른 작품들과는 내용이나 분위기가 너무 달라서 생뚱맞기도 했고요. 미국에서 출간된 일본 추리 단편 앤솔로지에도 선정된 유명 단편이라고는 하는데 이해하기 어려운 수준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모리무라 세이이치의 "단위의 야망"역시 기대 이하였습니다. 비정한 현대 조직 사회를 드러내기 위한 드라마이긴 한데 트릭도 거의 없다시피 한, 싸구려 치정극에 불과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기본적으로는 어느 정도 수준을 갖춘 80~90년대 초반까지의 일본 추리계를 잘 드러내는 작품들이 선정되어 있다고 생각되네요. 저같은 일본 추리 소설 팬과 단편소설 팬이라면 만족하실 수 있으실 것 같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2005/07/11

GoGo Bears!

(그림은 원치않는 분들도 많으시겠지만 이글루땅 베어스 버젼...^^)
드디어 두산 베어스가 우승을 위한 집념을 보여주는군요.

어제 벌떼 투수 작전으로 연패를 끊어내고, 몇년간 기아 타이거즈의 에이스 역할을 해왔던 용병 리오스 투수까지 트레이드 해 왔습니다.

우리의 좌완 영건 전병두 선수와 맞트레이드 된 것은 아쉽지만 어쨌건 리오스 선수 환영합니다.

리오스 선수가 두산에서 투구수 조절과 효과적인 수비, 그리고 넓은 잠실 구장을 바탕으로 어느정도 위력을 회복해 준다면 현재 상승세가 멈추고 하락세였던 두산에 단비같은 존재가 되 주리라 의심치 않습니다. 사실 올 시즌 방어율도 높고 패도 많지만 이 패도 반정도는 기아의 수비 실책 등에 기인한 것이 많기 때문에 저는 부활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거든요.

박명환-리오스-이혜천-랜들 로 이어지는 선발진은 현재 다른 어떤 팀과 비교해도 우위에 설 수 있는 파워를 가진 선발진으로 보이네요.

깔끔하게 전반기 마무리하고 후반기부터는 재 정비해서 1위, 포스트시즌 직행을 꿈꿔봅니다.

GoGo Bears!!!!!

제리코의 죽음 - 콜린 덱스터 / 이정인 : 별점 3.5점

제리코의 죽음 - 8점 콜린 덱스터 지음, 장정선.이정인 옮김/해문출판사

모스경감은 한 파티장에서 우연히 만난 여성에게 호감을 느낀 후 옥스퍼드 근처 제리코 거리에 있는 그녀의 집에 우연히 방문하게 된다. 그러나 집은 텅 비어있는 상태였고 사실 그녀는 부엌에서 목을 매고 죽어 있었다.
그녀의 죽음을 알게된 모스는 스스로 개인적인 수사에 나서서 그녀의 주변 인물들을 탐문하기 시작하나 그녀의 이웃인 조지 잭슨이라는 동네의 허드렛일을 맡아 하는 수리공마저도 잔인하게 살해된채 발견되고 사건은 점차 미궁에 빠지게 되는데...


영국 추리 작가협회의 실버 대거상 수상작으로 해문의 모스경감 시리즈 4번째 작품입니다. 3, 4권이 동시 출간되었는데 형이 전부 구입해서 저는 4권부터 읽게 되었네요^^

전개는 다른 모스경감 시리즈와 비슷한 스타일입니다. "작은 사건"이 벌어지지만 이야기는 복잡하게 얽혀서 이어진다는 점이 그러하죠. 이 작품에서도 사건은 한 여인의 자살사건과 늙은 수리공 살인사건, 딱 두개만 등장하지만 주변 인물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또한 이들의 증언에 거짓말과 진실이 교묘하게 섞여 있으며, 이것을 파악하는 것이 사건의 핵심인 것이라는 점도 다른 시리즈와 유사하네요.

그러나 다른 시리즈와 구별되는 특이한 점도 존재합니다. 특히 제가 읽었던 모스 경감 시리즈 중에서는 유일하게 "트릭"이라고 불리울 수 있는 것이 등장하는 것이 아주 이채로왔어요. 범인이 정말 머리를 써서 만든 알리바이 공작 트릭인데 기발한 것은 아니지만 상당히 작품과 잘 어울릴 뿐더러 기대하지 않고 읽어서인지 더욱 재미있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첫번째 사건인 자살사건의 당사자와 모스 경감이 약간의 교분(?)이 있기 때문에 모스가 정식으로 수사를 지휘하기 전부터 스스로 조사를 하기 시작한다는 것도 다른 작품들과는 다른 점이었고요.
그리고 단락이 끝나고 독자에게 힌트를 주듯이 "그러나 나중에 알았지만 그것은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사실 중 하나였다."라는 언급이 자주 등장하는 점도 특징인데 이게 제법 감칠맛 있더군요. 중요한 사실임에는 틀림없고, 머리를 싸매며 연구하는 재미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경험치를 쌓아가는 느낌이랄까요? 복잡한 설명들을 쌓아올려 막판에 가서 무릎을 치게 만드는 요소들이라 후반부가 궁금해져서 열심히 읽게 만드는, 양념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외에도 모스 경감의 캐릭터도 언제나의 즐거움을 주며 루이스 역시 감초같은 재미를 주기에 충분하도록 자기 역할을 다 하고 있는 등 시리즈 작품으로서의 매력도 확실합니다.

결론적으로는 추천작. 전형적이지만 독특한 매력의 작품으로 캐릭터를 즐기더라도 재미있고, 정통 추리 독자에게도 만족감을 심어주는 시리즈 작품의 교과서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겠네요. 별점은 3.5점입니다.

단, 이전 "브라운 신부" 완전 번역판때에서도 느꼈었는데, 번역이 지나치게 딱딱합니다. 몰입하기 힘들 정도였어요. 영국식 문체 탓일까요?

2005/07/10

이글루땅 열풍에 동참하며...

하아... 저도 예전에 캐릭터 디자인 일을 하며 저의 말라 붙은 통장을 촉촉히 적셨던 때가 있었습니다.... 벌써 6년 전 일이네요.

과거를 잊고 살아가던 중, 요사이 이글루스에서 굉장히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캐릭터를 접했습니다. 이름하여 이글루땅! 이름가지고 말이 많긴 하지만 중요한 건 그건 아니고....사실 캐릭터도 귀엽지만 팬들의 성원이 더욱 대단해서 저도 오래간만에 잊었던 작업을 다시 한번 시도해 보았습니다. (진짜 사실은 이것을 계기로 인기 블로그로 거듭나려는 발버둥일지도...)

처음 2시간은 "와우! 이런것도 혼자 취미로 만드니까 재미있는데?"
다음 2시간 ".... 내가 도대체 이게 뭐하는 짓이다냐...."
다음 2시간 "..... 대충! 해서 그냥 올리고 말자...."


해서 나온 결과물입니다.

이마가 너무 휑~한듯해서 머리카락을 몇개 추가해 주고 몇몇 디테일을 약간 고치긴 했지만 원작자 EST님의 원안에 충실했다고 생각합니다. 왼쪽의 도장 버젼은 Variation으로 제작해 본 것이고요.

즐겁게 봐 주시고, 꽤 재미있던 경험이었으니 만큼 다른 기회가 온다면 다시 한번 시도해 봐야 겠네요.

사실 가든옹도 스케치까진 했지만 귀찮아서 도저히......ㅠ.ㅠ

2005/07/07

약소국 그랜드 펜윅의 뉴욕 침공기 - 레너드 위벌리 / 박중서 : 별점 4점

약소국 그랜드 펜윅의 뉴욕 침공기 레너드 위벌리 지음, 박중서 옮김/뜨인돌

유럽에 위치한 가로 5Km, 세로 8Km의 초미니 독립국 그랜드펜윅. 이 공국은 일찌기 그 주권을 인정받은 독립국가로 와인 수출로 주 수입원을 충당해 왔으나 급격한 인구의 증가로 와인에 물을 섞느냐, 마느냐에 대한 논쟁에 휩싸인다. 하지만 선거결과 희석당과 반희석당은 동수의 의원이 선출되어 논쟁은 답보상태에 빠지고 지도자 글로리아나 12세 대공녀는 난국 타개를 위해 강대국 미국에 선전포고 할 것을 제안받게 된다. 요지는, 미국은 패전국에게 엄청난 원조를 해 주므로 월요일에 선전포고를 해서 목요일쯤 점령당하고 금요일에 그 차관으로 부흥시키자는 계획.
하지만 그랜드펜윅의 선전포고는 장난으로 치부되고, 결국 그랜드팬윅은 미국에 공격부대를 보내게 되는데 마침 뉴욕은 그때 가상 공습을 대비한 민방위 훈련으로 텅텅 빈 상태가 되어 그랜드팬윅의 사령관 털리 배스컴은 콜럼비아 대학에서 당대 최고위력의 폭탄 Q폭탄과 개발자 코킨츠 박사를 포로로 잡고 귀환하게 된다. 그리고는 Q폭탄의 존재로 말미암아 그랜드팬윅이 세계 정점의 강대국이 되게 되는데....

국내에 50여년만에 처음으로 소개되는 작품. 성인들을 위한 풍자 소설입니다.

일단 무척 재미있습니다! 그랜드팬윅 공국의 설정이 치밀하고 유머러스해서 그 묘사만 따라가도 즐겁게 읽을 수 있거든요. 선전포고 장면에서부터 읽는 사람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며, 20세기에 아직 장궁과 갑옷으로 무장한 24명으로 이루어진 군대의 미국 정벌기라는 아이디어는 정말 높이 살 만 합니다. 심지어 전투를 벌이는 장면까지 등장하며 귀환할때에는 포로와 노획물, 거기에 희생자까지 더한 완벽한 모습까지 보여주는 부분은 정말로 감탄스러웠어요.
또한 미국과 소련, 영국등 강대국의 행위에 대한 통렬한 풍자 역시 유머로 포장해서 읽는 사람을 너무나 즐겁게 해 줍니다.
아울러 이상적인 국가로 그려진 그랜드팬윅의 모습이야말로 성인들을 위한 환타지에 걸맞는 설정이기도 하고요.

한마디로 말해 즐겁고 쉽게 읽을 수 있으면서도 디테일도 잘 살아있는, 그야말로 성인들을 위한 동화랄까요? 별점은 4점입니다.
미국에 대한 묘사가 완전한 비판이나 풍자보다는 이성에 근거하고 있다는 것이 조금 아쉬우며, 냉전시대에 발표된 풍자소설답게 내용은 지금 읽기에는 약간 낡은 감도 있고 엔딩이 너무 이상적인 해피엔딩이라 약간 허무하다는 것은 아쉽지만 충분히 납득할 만 한 수준입니다. 최소한 그랜드펜윅 공국만큼은 행복해 질 권리가 있거든요. 미국을 이긴 나라이니까!

덧 1 : 약간 스탠리 큐브릭의 블랙 코미디 "닥터 스트레인지 러브"가 연상될 정도이니만큼 영화화하기 무척 좋은 소재라 생각되며 당연히 영화화가 되었다지만 저는 아쉽게도 감상하지 못했네요.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영화도 꼭 보고 싶습니다.

덧 2 : 원제대로 "생쥐, 울부짖다 (Mouse that roared)"라고 출간되었으면 더욱 좋았을 것 같은데 너무 설명적인 번역 제목이 붙어서 약간 아쉽긴 하네요.

신선함을 드립니다 - 호시 신이찌 / 주유경 : 별점 2.5점

1987년에 출간된 책입니다. 무척 희귀한 책으로 국내에 다른 가지고 계시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네요. 일본 초단편의 창시자이자 거두인 호시 신이찌의 단편집으로 출판사는 국내에는 80~90년대 초반까지 꽤 유명했던 "학생과 컴퓨터" 등의 컴퓨터 잡지를 출간했던 민컴입니다. 민컴이 자사의 잡지 "경영과 컴퓨터"에 연재했던 작품들과 기타 작품을 모아 출간한 책으로 일본에도 없는 새로운 판본이 아닐까 싶네요.

'ShortShort'라는 명칭인 이 작가의 이른바 "초단편" 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아토다 다카시의 작품군과도 상당히 유사한, 굉장히 짧은 3~4장 분량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부담없이 읽을 수 있었습니다. 작가 특유의 기발한 아이디어와 전개, 반전이 잘 살아있기에 상당한 재미를 가져다 주기도 하고요.
예를 들자면 무인 혹성인줄 알고 혹성의 물건을 가져오는데 그건 외계인의 "셀프 서비스 마켓" 이었다는 이야기, 실내장식에 집착하는 여자가 어느날 실내장식이 남편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되고 이혼을 요청하는 이야기 등이 책안에 가득합니다.

요사이 신문 연재 만화로 인기 있는 "츄리닝", "트라우마"의 형식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겠네요. 쉽게쉽게 한번에 읽을 수 있으면서도 그 안에 독특한 설정과 반전까지 담겨 있고, 유머스러운 분위기가 많다는 점에서 그러합니다.

하지만 역시 너무 짧기 때문인지 작품성이나 뭔가 여운을 남기는 맛은 거의 없어서 아쉽습니다. 몇몇 작품은 좀 더 길이를 늘리고 밀도를 높였더라면 보다 좋은 작품이 될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말이죠. 이런 형식이었다면 차라리 위에 쓴 것 처럼 만화 형식으로 비쥬얼화 하면 더욱 좋을 것 같기도 합니다.
그래도 재미있게 읽은 좋은 단편집이에요. 별점은 2.5점입니다.

PS : 길이를 볼 때 일본어 공부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작품들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2005/07/06

연애의 목적 - 한재림 : 별점 1점


줄거리는 생략하겠습니다. 어느정도 흥행에는 성공하고 있는 듯 한데... 저는 보는 내내 영화가 불쾌해서 참을 수 없었습니다.

이유는 언론이나 매체에서 귀엽고 솔직하다고 표현하는 주인공 박해일의 행동은 제가 보기에는 자신의 위치를 이용한 성추행, 강간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에요. 강혜정이 자포자기 상태에서 끌려다니는 것이 당연할 만큼 자신의 권위 (교생의 담당 선생으로 학점 및 졸업과 직결되어 있는)를 철저하게 이용하며 상대를 제압하는 식의 비이성적이며 잔인한 행동이 남발합니다.
이 쓰레기의 직업이 선생이라는 것도 마음에 안 듭니다. 학교에서 여자 성추행하고 저녁에는 술먹고 하는 것 말고는 도대체 하는 일도 없어요. 선생이 그렇게 편한가?
여기까지면 그나마 이해라도 가지, 강간범과 피해자가 서로 이상한 감정, 절대 사랑이라고 표현할 수 없는.... 감정에 사로잡혀 불장난 하는 행동은 더욱 황당합니다. 한마디로 막나가는 거죠.

그나마 막판에 강혜정이 박해일에게 모든 쌓여있는 울분을 토해내며 복수하는 장면 하나만은 볼만하더군요. 나름 감정이입도 되면서 영화 내내 쌓여왔던 짜증이 좀 풀리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물론 엔딩에서 강혜정이 다시 박해일을 찾아가 사랑을 시작한다는 결론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지만 말입니다.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1점. 앞서 말한 성추행 건 때문에라도 점수를 줄 수 없는 쓰레기입니다. 짜증나는 영화였습니다. 제가 그다지 특이한 사고방식이나 인생관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은 분명한데 이 영화의 흥행과 호평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군요. 저는 여성 관객들이 남성에 대해 가지고 있는 사고방식이 이 영화로 인해 고정될까 두렵습니다.
아울러 감독에게 묻고 싶네요. 솔직하면 강간해도 되나요? 거기에 영화의 제목이 왜 "연애의 목적"이죠? 이 영화에 정상적인 연애가 등장하기나 하나요? "강간범의 최후"라면 모를까.

2005/07/05

미스테리 환상여행 1 - 아이작 아시모프 선 / 정성호 옮김 : 별점 3점

아이작 아시모프가 직접 선정했다는 100편의 단편을 모아놓은 앤솔로지입니다. 2,000단어 내외의 짤막한 작품들만 모아 놓았다는 것이 특징으로 아시모프 표현대로라면 "스낵"같은 작품들입니다. 아시모프의 말대로 항상 좋은 요리나 정식만 먹고 살 수는 없고 가끔은 스낵이 더 맛있는 법이죠. 저 역시 스낵을 더 좋아하기도 하고요.
그러나 아시모프 역시 책머리에서 엘러리 퀸의 "미니 미스테리"와 유사한 방식의 단편집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역시 이 바닥은 엘러리가 꽉 잡고 있군요.

여튼간에 당대의 거장 아시모프가 직접 선정한 재미난, 짤막한 이야기들이 과연 어떤 것들인지 궁금하지 않으세요? 저는 무척 궁금했습니다. 다행히 작품들도 기대를 충분히 만족시키는 흥미진진한 것들이 많아서 무척 재미나게 읽었습니다. 아시모프의 취향을 대변하듯, 정통 추리라기 보다는 유머와 반전이 있는 작품들이 대다수인데 그야말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었네요. 워낙에 부담없는 분량이라 읽기 편한 것도 큰 장점이라 생각되고요.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3점입니다. 문제라면 100편을 한권에 담을 수도 있었을텐데 책의 활자를 키우고 행간도 넓히는 출판사의 작전(?)으로 1,2권으로 간행되어 아쉽게도 2편은 구하지 못한 점입니다. 제가 읽은 1편에는 47편만 수록되어 있는데 이 앤솔로지의 2권 역시 언젠가 구해서 100편 완독을 마치고 제 책장에 나란히 꽂아놓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너무 편수가 많고 짤막한 이야기들이라 다 소개하긴 어렵지만 특히나 인상적이었던 작품만 몇개 소개하겠습니다.

"손 안대고 코풀기" - 알 누스바움
한 할머니가 은행에서 나오다가 두 명의 날치기에게 가방을 빼앗기나, 기지를 발휘해서 범인들에게 복수한다는 이야기.
아이디어가 좋을 뿐더러 충분히 "있음직한" 이야기라는게 마음에 듭니다.

"사랑은 꽃과 함께" - 헨리 슬레사
돈 프레머 경위가 이웃집 주부 살인 사건의 결정적 증거를 잡아내는 계기가 되는 것은 푸른 수국이었다는 이야기.
다른 앤솔로지에도 실려있는 좋은 작품입니다. 단편의 교과서적인 작품 중 하나인 것 같네요. 헨리 슬레사 느낌이 별로 강하지 않은 것도 인상적이고요.

"한턱 내요" - 쥬디스 가너
이웃집에 이사온 건방진 미국 꼬마의 할로윈 이야기.
"애들이 더 무섭다"는 것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굉장히 서늘합니다.

"우울한 세상" - 헨리 슬레사
뉴스에 우울한 뉴스만 나오는 것에 대해 아내와 내기하게 된 아놀드의 이야기.
헨리 슬레사 특유의 반전이 인상적인 작품으로. 단 두명의 등장인물만 가지고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작가의 창의력은 정말 놀랍네요.


"살인 그리고 음악" - 헬렌 맥클로이
법정신의학자 월링이 등장하는 정통 추리 단편.
절대음감의 소유자인 용의자에게 피아노 코드로 정보를 보내는 트릭이 등장하는데 꽤 재미있는 발상이라 생각됩니다.

2005/07/04

Japan 미스터리 걸작선 1 - 한국, 일본 추리작가협회 추천 / 정태원 번역 : 별점 3점

J 미스터리 걸작선 1 - 6점 정태원 옮김/태동출판사

예전에 구했지만 다시 읽게 된 일본 추리 단편선. 일본 추리 작가 협회 창립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펴낸 책으로 선정을 한국 추리 작가 협회에서 했다는 점이 특이합니다.

낯선 작가의 낯선 작품들이 많다는 것이 눈에 띄는데, 책 뒤의 설명을 보면 다른 단편선 등에서 이미 소개된 작품이 아닌 새로운 작품을 선정하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하네요. 그러나 이러한 의도는 50주년 기념 앤솔로지라는 주제와는 좀 맞지 않았다 생각됩니다. 그동안 소개된 작품들이 일본 추리 문학의 대표작에 더 가까운게 당연하잖아요.
또 이러한 기획 의도를 충족시키기 위해서였다면, 진짜 국내에 초역되는 작품들만 모아 놓았어야 하지 않나 싶은데 정작 그렇지 않은 작품들이 수록된 것도 이상하고요.
아울러 정통 추리나 스릴러가 아닌 환상문학과 호러, 그리고 SF에 가까운 작품까지 실려 있어 기준이 약간 모호하다는 것도 솔직히 잘 납득이 가지는 않았습니다. 그나마 수록된 작품도 특정 시대나 작가별로 편찬된 것이 아니라 무작위인듯 한데 에드가상 수상작품집 처럼 어느정도 목차에서도 시대순 같은 기준을 가지고 책을 분류하는게 더 좋았을 것 같네요.

그래도 한국 추리문학 협회가 선정한 일본 추리 단편이라는 기획 자체가 그냥 놓치기에는 너무 흥미로울 뿐더러 전체적으로 일정 수준 이상의 재미까지 가져다 주는 것은 분명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개인적인 베스트로는 "광기의 계보", "정사의 배경" 그리고 "살의" 를 꼽겠습니다.
총 3권이라는데 제가 가지고 있는 것은 1권 뿐... 언젠가는 2, 3권도 발견하여 책장에 추가하고 싶네요.

작품별 상세 소개는 아래와 같습니다.

1. 아파트의 귀부인 - 아카가와 지로
새로 이사온 옆집의 미모의 귀부인이 하는 요리의 냄새를 알아 맞출 정도로 후각이 민감한 아내를 가지고 있는 구보, 그는 옆집의 부인에게 호감을 느껴 아내가 집에 없는 틈에 옆집에 찾아간다.
다른 앤솔로지에서도 많이 소개된 아카가와 지로의 단편. 추리 문학이라기 보다는 반전의 맛이 있는 스릴러랄까요? 하지만 너무 뻔해소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군요.

2. 나체의 방 - 호시 싱이치
일본 단편의 거장 중 한명인 호시 싱이치의 작품. 우연히 여러 남녀들과 복잡한 관계를 가지게 된 남자의 이야기. 상황 설정이 재미있고 여운을 주는 맛도 잘 살아있어서 역시나 단편의 거장다운 느낌을 전해주기는 합니다만... 추리물은 절대! 아닙니다.

3. 나폴레옹 광 - 아토다 다카시
아토다 다카시의 초 유명 단편. 제가 이전에 "Y의 거리" 소개 때에도 리뷰했기에 패스합니다. 좋은 작품이에요.

4. 고양이의 목 - 고마츠 사쿄
고양이를 키우면 죽는 미래의 어느 도시에서 일어나는 짤막한 이야기. 고양이를 워낙 좋아라 하는 일본이기에 나옴직한 작품이 아닐까 싶습니다. 반전의 맛도 어느정도 있고 재미도 있지만 추리물도 아니고 호러도 아니고 SF도 아니고... 여러모로 좀 어정쩡한 느낌이 강했어요.

5. 광기의 계보 - 후지이 레이코
초등학교 교사 게이코는 우연히 들춰본 학생 기누코의 일기에서 그녀의 계모가 기누코를 광기로 몰고 가고 있는 상황을 알게 된다...
여성작가의 느낌이 잘 살아있는 작품으로 일기를 주요 매개체, 단서로 하여 전개된다는 특이함에 더해 극적 반전까지 뛰어납니다. 약간의 호러 분위기가 잘 살아있다는 것도 마음에 들고요. 그런데 왠지 영상물에 더욱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6. 3억엔의 악몽 - 니시무라 교타로
평범한 올드미스 여사원 교코는 어느날 찾아온 변호사에게서 자신이 친절을 베푼 한 노인에게 3억엔의 유산을 상속받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하지만 그 변호사는 자신과 다른 인물을 착각하고 있었던 것. 교코는 유산을 상속받는 진짜 인물인 아리사와 나미코를 찾아가 담판을 지으려 하는데...
여정 미스테리의 달인이라는 니시무라 교타로지만 이 작품은 의외로 "지푸라기 여자" 같은 인물 설정을 가진 완전범죄 스토리더군요. 조금 의외였달까요. 그러나 기발한 발상에 비해 전개가 뻔하고 치밀함이 많이 부족해서 높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네요.

7.얼굴 - 마츠모토 세이쵸
살인 사건을 저질렀던 배우 이노 료기치. 그는 자신이 주연인 영화가 전국 개봉되기 전에 자신이 저지른 살인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인 이시오카를 살해하려 하는데...
"거장" 세이쵸 선생의 작품입니다. 세이쵸 선생 단편은 대표작들에 비해 많이 격이 떨어지는 편인데 이 작품은 꽤 괜찮네요. 특히 범인이 배우이고 영화 개봉 때문에 목격자를 죽이려 한다는 설정은 참신합니다. 하지만 결말이 너무나, 너무나 심하게 아닙니다...

8. 정사의 배경 - 츠츠야 다카오
한 주부가 음독 자살하지만 그 주부는 자신이 죽기 직전 Y타임즈의 독자 투고란에 과거의 애인에게서 협박받고 있다는 투고를 보내 상담을 의뢰한 상태. Y타임즈의 기자 소네는 단순 자살 사건은 아니라는 판단에 독자적인 조사를 개시하는데...
잘 모르는 작가인데 작품이 굉장히 좋아서 놀랐습니다. 독자 투고와 음독 자살한 여인을 연결시키는 발상도 뛰어나지만 실제 사건의 트릭도 괜찮고 무엇보다 전개가 굉장히 깔끔합니다. 진범과 동기도 납득할 수 있고 단서도 공정한 편이고요. 이 단편집 최고의 단편 중 하나였습니다.

9. 조건반사 - 오타니 요타로
여배우 미즈사와 미나코는 연기지도 담당 오모리 세이지에게 혹독한 훈련을 받아 그의 동작 하나하나에 희로애락을 표현할 수 있는 경지에 오르며 그와 결혼까지 하게 된다. 그러나 결혼 후 알콜 중독으로 바닥으로 추락한 세이지를 거추장 스러워한 미나코는 그를 살해할 계획을 세우는데...
이른바 "조건반사"에 의한 다이잉 메시지가 등장하는 작품인데 여기서처럼 가능할지는 잘 모르겠네요. 때문에 기발하긴 하지만 현실성은 떨어져 보입니다. 그래도 꽤 재미있었어요.

10. 벽 - 고다카 노부미츠
아내와 그녀의 정부에 의해 벽속에 파묻히게 된 남자의 이야기. 이 한줄이 이 작품의 전부입니다....

11. 살의 - 다카키 아키미츠
옆집의 이마노 부부를 돌봐주던 타누마 변호사는 이마노의 부인 준코가 질투로 저지른 살인사건을 변호하여 그녀를 감형시켜 집행유예를 받게 하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어느날 이마노가 집으로 찾아와 충격적인 고백을 하게 되는데...
거장 다카키 아키미츠의 단편. 이른바 "살인을 하기위한 살의의 정도를 법적으로 판단하는 잣대가 어디에 있는가?" 가 이 작품의 핵심 요소로 이 살의를 최소한으로 나타내기 위한 범인의 치밀함, 법의 헛점을 잘 꿰뚫고 있는 내용이 아주 충격적이었습니다. 1952년에 발표된 작품이라고는 보이지 않게 세련되고 꽉 짜여진 구성이 놀랍네요.

12. 소라 - 야마무라 마사오
추리단편이라기 보다는 못살던 시대의 불우한 가족의 이야기를 리얼하게, 적나라하게 그린 순문학에 가까운 단편입니다.

13. 무서운 선물 - 유키 소지
한 여자에게 가벼운 마음으로 키스했다가 저주(?) 받는 한 바람둥이의 이야기. 전해주는 꽃들의 꽃말로 마음을 나타내는 이야기 전개는 괜찮지만 마지막에 저주니 어쩌니 하며 마무리하는 결말은 납득이 안됩니다...

14. 연습게임 - 후지무라 쇼타
가지키는 아내 구니코의 수다를 겨우겨우 참고 살다가 우연찮게 불륜을 저지른 상대 미와와의 달콤한 미래를 위해 그녀를 살해하려 한다. 하지만 그가 아내와 몰래 만나기로 한 장소에 아내는 오지 않고 다른 장소에서 살해당한 시체로 발견되고 가지키는 함정에 빠지게 된다.
함정에 빠지는 인물이 등장하는 "함정물"인데, 어차피 가지키는 아내 구니코를 죽이려 했으므로 그다지 용서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네요. 전혀 관계없는 인물이 함정에 빠지는 것이라면 모를까... 반전의 여운을 남기기는 하지만 좀 약합니다.

15. 우물이 있는 집 - 미나카와 히로코
과거 자신이 유괴당한 집에 신혼여행을 오게 된 주인공의 이야기. 이야기의 전개가 주인공의 심리를 따라 흘러가는 구조로 여성작가만의 섬세함과 미묘함이 잘 살아 있는 작품입니다. 하지만 흥미진진한 줄거리에 비해 결말은 시시했어요.

16. 복안 - 소노 다다오
일본의 손다이크 박사라고 불리운다는 복안전문 범의학자 고이케 고로라는 캐릭터가 나와 두개골 복안을 보여주는 것이 전부인 작품. 캐릭터 이외의 설정과 전개는 평이합니다.

17. 사랑 - 미야자키 준
동물 뇌세포를 집어넣은 육아 로봇이 저지른 아동 살해 사건 이야기. 아시모프 작품과 유사한 분위기지만 반전이 인상적입니다.

18. 산키치의 식욕 - 와타나베 게이스케
어려운 시대, 어렵게 살아가는 고학생 산키치가 우연히 주운 3엔으로 한끼를 해결하는 이야기. 이야기는 꽤 재미있고 진지하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만 순문학 단편으로밖에는 보이지 않네요. 작가도 그렇고 작품도 그렇고 왜 이 단편선에 실려있는지를 잘 모르겠습니다.

19. 쇼윈도의 연인 - 요코미조 세이시
소설에 빠져드는 기이한 습성이 있는 청년 다마루 소진은 최근 간행된 소설 "쇼윈도의 연인"을 읽은 직후, 한 양품점 쇼윈도의 마케팅을 사랑하게 되는데...
국내에서는 찾아보기 드문 요코미조 세이시의 단편이라는 것 자체가 가치가 있지만 작품 자체도 인상적입니다. 처음에는 다른 외국 작품에서 볼 수 있는 일종의 성도착적인 애정에 대해 다루는 듯 하다가 급변하여 놀라운 반전을 남기는 작품으로 발표 시대를 감안한다면 정말 기발한 상상력과 아이디어라고 밖에는 할 말이 없네요. 거장다운 작품입니다.

20. 범인은 누구인가 - 구사카미 진
쌍동이 중 한명이 범인인 것은 확실한데 누구인지를 몰라 궁지에 몰린 경찰이 사건을 결국 해결한다는 이야기. "음악"을 주요 소재라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다지 인상적이진 않지만 트릭과 설정은 마음에 들었어요.

21. 계단을 오르는 남자 - 마유무라 다쿠
세계가 거대 빌딩화되어 엘리베이터가 기차처럼 다니는 세계. 한 남자가 25.000층의 건물을 걸어 올라가기 시작하고 그는 계단을 올라 새로운 층에 도착할 때마다 점차 여행자에서 모험가, 그리고 성자로까지 추앙받게 된다. 그리고 결국 그가 꼭대기 층에 다다르게 되는 날이 오고 군중이 그를 보기 위해 운집한다...
아이디어가 정말 기발합니다! 엘리베이터가 기차처럼 다니는 초고층 빌딩 사회에서 목적없이 그냥 계단을 오르는 남자가 주변 인물들에 의해 성자로까지 추앙받게 되는 과정이 묘하게 현실감 있게 그려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결말은 너무나 시시해서 아쉽습니다. 좀 더 생각했더라면 정말 마음에 드는 걸작 단편이 될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말이죠...

2005/07/01

사라진 소녀 - 콜린 덱스터 / 김미희 : 별점 3점

16세의 소녀 발레리 테일러가 실종되고 4년 뒤, 소녀 실종사건을 수사하던 에인리 형사부장의 급작스러운 사고사로 모스 주임과 루이스가 사건을 인계받아 새롭게 수사에 착수한다.
발레리 테일러의 실종이 그녀의 임신과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포착한 모스는 그녀의 주변 남자들에 대한 조사를 펼쳐 나가나 그녀가 다니던 학교의 교감 베인즈가 살해된 시체로 발견되며, 주변 인물들의 동기와 여러가지 단서를 모은 모스는 진상에 근접해 가는데...

모스 경감 시리즈입니다. 지금 해문에서 새롭게 나오는 책은 아니고 이전에 "행복"이라는 출판사에서 간행된 작품입니다. 좀 옛날에 구입해서 읽었었는데 처음에는 대충 넘어간 부분이 많아서 가볍게 다시 읽어 보았습니다.

우선 모스 경감 시리즈답지 않게 상당히 간단한 이야기라는 것에 놀랐습니다. 한 소녀의 가출 사건과 연계된, 과거 소녀가 다니던 학교 교감의 살인 사건 하나에 관계자는 단 4명 - 교장 필립슨과 불어교사 에이컴, 그리고 소녀의 부모 - 뿐이거든요.
그러나 이야기를 복잡하게 꼬아놓고 독자에게 정보를 공평하게 제공하지 않으면서도 서서히 해답에 근접하게끔 하는 과정은 역시나 모스 경감 시리즈답달까요? 독자에게 정보를 공평하게 펼쳐놓지 않는 방식을 모스경감 캐릭터 연장선상에 놓고 있기 때문에 - 모스는 과거의 기록이나 증언을 거의 검토하지 않는다 - 결과적으로는 모스 경감과 독자가 아는 정보의 수준이 동일선상에 놓여진다는 것도 독특하게 다가온 점입니다.
모스의 추론이 "소녀는 죽은게 확실하다!"에서 "사실은 소녀는 다른 사람으로 변장했다!"로 넘어가는 과정의 설득력이 상당하다는 것도 인상적이에요. 단계별 추론 모두가 모스 나름의, 증거는 없는 추론으로만 진행되지만 별다른 기대없이 듣고있던 루이스조차 고개를 끄덕거리게 될 정도로 설득력이 넘치거든요. 계속 추론이 틀리면서 당황해하고 창피해하며 좌충우돌하는 모습을 보는 재미 역시 각별합니다.

아울러 모스 경감의 개인적인 매력이 잘 살아 있다는 것도 장점인데, 모스가 사건을 건성으로 다루다가 스스로 사건을 어렵게 만드는 부분이 특히 그러합니다.정통 추리물 독자에게는 약간 반칙으로 느껴질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워낙 캐릭터가 그런 존재다보니 팬으로서 감안하고 즐길 수 있었어요. 루이스 형사와의 컴비 플레이의 재미도 여전하고요.

그러나 결말이 좀 흐지부지한 편이며, 번역이 너무나 별로라 전체적으로 읽기가 힘들기는 합니다. 그래도 결론적으로는 수준작입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유머가 굉장히 풍부한 편이며 콜린 덱스터의 독자를 가지고 노는 듯한 작풍이 잘 살아있어서 더욱 재미있게 읽었던 것 같네요. 제가 읽은 모스 경감 시리즈 중에서도 재미만 따진다면 상위권인 작품입니다. 번역만 좋았더라면 별점 4점은 충분했을텐데 조금 아쉽네요.
지금은 조금 구하기 힘들지만 제대로 해문에서 간행되리라 생각되는데, 제대로 나오면 제대로 된 번역으로 다시 한번 읽어봐야 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