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연속 살인사건 사카구치 안고 지음, 유정 옮김/동서문화동판주식회사 |
아내와 나는 여름을 산간마을에 있는 친구 집에서 보내게 된다. 시인, 소설가, 극작가, 배우, 화가 등 20여 명과 같이 지내게 되는데, 돌연 인기작가가 살해되면서 이후 차례로 7, 8명이 연달아 칼에 찔리거나 교살, 독살, 익사체로 죽어나간다. 범행방법도 제각각, 동기도 알 수 없는 이 연쇄살인은, 서로 아무런 관계가 없는 불연속 살인사건인가.
일본 고전 미스테리 걸작을 뽑을때 빠지지 않는 사카구치 안고의 불연속 살인사건입니다. 평소 헌책방을 뒤져 절판된 추리소설을 구해 읽는것을 좋아하지만 워낙 유명한 일본 정통(?) 고전 추리소설인지라 동서 추리문고의 따끈따끈한 새책으로 구해 읽게 되었습니다.
위의 줄거리와 같이 무려(!) 20여명에 가까운 등장인물들이 나온다는 것이 특징으로 화자역인 야시로 슨페이나 탐정역의 교세이 박사 두명 다 수많은 등장인물들의 개성에 가려 별로 돋보이지 않을 정도에요. 홈즈나 왓슨의 비중이 죽어나가는 조연들보다 낮은 것 같다는 느낌이랄까요? 이름들도 "야시로 슨페이""우타가와 가즈우마""모치즈키 다카히토" 등등 외우기가 거의 불가능할 정도라 앞부분의 등장인물 표를 계속 보게끔 만들더군요. (중반 이후부터는 번역과 교정 문제인 듯 이름이 잘못 표기된 부분이 꽤 눈에 띄더군요. 흐....)
또 여러 설정들이 정말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구식이라는 것도 큰 특징으로 한 시골마을에 왕처럼 사는 구 귀족 출신의 부자와 그의 자식들, 변태적이고 엽기적인 친구들, 미친 의사와 간호원까지.. 어떻게 보면 "김전일"에 많이 나옴직한 시골 명문가와 비뚤어진 인간관계의 원형같기도 하네요.
하지만 김전일에 비하면, 이야기는 너무나 장황하고 사건보다는 심리묘사와 각종 상황묘사, 그리고 인물간의 대사에 치중하고 있어서 추리소설의 느낌이 많이 약합니다. 너무 대사가 많은 나머지 가장 중요한 사건인 "살인사건"마저도 이런 저런 등장인물들의 대사에 묻혀 어영부영 넘어가는 느낌이 들 정도니까요.
그러나 이건 약과일 뿐이고 더 큰 문제는 너무 많이 죽어서 결국 용의자가 좁혀진다는 것입니다. 저조차도 끝부분에서 트릭은 알아채지 못했지만 범인이 누군가인가 하는 정도는 눈치챌 수 있었거든요. 실질적 동기를 가진 사람이 한명밖에 남지 않았으니 말 다했죠 머...^^
게다가 정통 고전파 명작 중 하나라고 선전하고 있지만 정통파라는 느낌은 그다지 들지 않는다는 것도 문제에요. 최소한 동요에 맞춰 사람이 죽어나간다던가, 이름 머릿글자 순으로 죽어나간다던가 하는 재미 정도는 더해주어야 하지 않았을까요?
결론내리자면 고전을 읽은 기쁨은 있지만 아쉬움도 큰 책입니다. 이 책은 분명 고전이고 발표 당시에는 뭔가 획기적이고 대단한 면이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 읽기에는 너무 낡고 지루하기만 할 뿐이었어요. 높은 평가를 받고 있기는 하나 작가의 이름값에 기댄 측면이 커 보이네요. 별점은 1.5점입니다.
덧붙이자면 뒷부분에 수록된 진슌신의 "얼룩화필"도 별로 신선하지 못했기에 본전 생각이 더 나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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