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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30

먹는 즐거움은 포기할 수 없어! - 구스미 마사유키 / 최윤영 : 별점 2점

먹는 즐거움은 포기할 수 없어! - 4점
구스미 마사유키 지음, 최윤영 옮김/인디고(글담)

국내에는 <<고독한 미식가>> 원작가로 잘 알려져있는 구스미 마사유키의 음식 관련 에세이집. <<고독한 미식가>> TV 시리즈를 보신 팬이시라면 에피소드가 끝나면 에피소드에 등장했던 가게에 찾아가 음식을 즐기는 구스미 마사유키의 모습이 친숙하실 겁니다.

고기구이, 라면, 돈가스 등 모두 26편의 에세이가 실려 있습니다. 전부 저자가 특정 음식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고 어떤 추억을 갖고 있는지를 털어놓으며, 맨 마지막에 아주 짤막한 4컷 만화로 마무리되는 구성이고요. 하나의 음식 이야기 전부 해서 10페이지도 되지 않을 정도로 짧을 뿐더러 만화 외의 그림도 많아서 쉽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조금 특이했던 것은 음식에 대해 확고한 자기 생각이 있으며 다른 스타일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컵라면은 갑자기 먹고 싶어질 때가 있는데 원조 닛신 컵누들이 제일 좋다. 이런 저런 맛을 낸다는 본격파 따위는 필요없다. 건방지다'면서 본격적인 라면이 먹고 싶으면 나가서 사 먹으라고 하는 식이거든요.
자기 주장이 과하고 일방적이라 친근감이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사고방식이 <<술 한잔 인생 한입>>의 이와마 소타츠하고 그야말로 판박이라 재미있었습니다. 몸에 좋고 맛있는 것 보다는 정크 푸드를 가끔이지만 찬양하는 모습 등 그 외에도 비슷한 부분이 많아요. 이런 사람이 가족이나 친구라면 피곤하겠지만 그냥 지켜본다면 재밌게 감상할 수 있는 것이죠.

먹는 방식에 대한 일종의 체계와 룰도 재미있었습니다. 고양이 맘마는 대체로 단무지 두 조각이 나오는데 대체로 마지막 밥 한 입과 단무지 반 조각이 남도록 조절하여 함께 입에 넣어 음미하는게 마무리라던가, 돈가스 조각을 먹는 순서와 돈가스를 맛있게 먹으려면 돈가스 양의 최소 다섯배의 양배추가 필요하다는 등의 이야기죠. 돈가스 관련된 내용은 <<음식의 군사>> 에 등장했던 내용과 조금 비슷하기도 합니다.

간단힌 레시피도 몇 가지 소개되는데 그 중에서도 양배추 요리가 가장 땡기더군요. 밤새 뼈 째로 푹 고아 만든 토종닭 수프를 걸러낸 후 여기에 십자로 칼집을 넣은 양배추를 통째로 넣어 소금으로만 간 한 후 통냄비로 한 시간 정도 푹 끓여낸 양배추 수프입니다. 누룽지밥에 유자 후추를 살짝 뿌려 먹으면 맛있다는데 꼭 한 번 먹어보고 싶네요. 닭 백숙 육수로 끓여내면 되려나요? 간단하게 치킨 스톡을 써도 될 것 같은데....

이렇게 쉽게 읽을 수 있는 에세이입니다. 그런데 만화였다면 훨씬 재미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구스미 마사유키라는 작가가 아니라 허구의, 가상의 캐릭터였다면 보다 마음 편하고 재미있게 읽었을 것 같거든요. 너무 자기 주장이 센 부분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으니까요. 또 딱히 건질 내용이 있는 것도 아니라 권해드리기는 조금 애매하네요. 제 별점은 2점입니다.

2018/09/29

그것 1~3 - 스티븐 킹 / 정진영 : 별점 2점

그것 세트 - 전3권 - 4점
스티븐 킹 지음, 정진영 옮김/황금가지

메인 주 데리 시에는 수십년 주기로 대형 사건이 일어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어 왔다. 정체모를 '그것'에게 동생 조지가 희생당한 소년 빌 덴브로는 절친 '악동 클럽' 멤버들과 함께 '그것'을 퇴치하지만 그 대신 그것과 그것에 관련된 모든 기억을 잃고 만다.
그리고 이십여년이 지난 후, '그것' 이 돌아오고 악동 클럽 멤버는 이전의 약속대로 다시 모여 '그것'을 퇴치하기 위해 나서는데...


스티븐 킹의 장편 호러 모험 소설. 얼마전 영화화되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예전부터 관심이 가던 차에 새롭게 셋트 버젼이 출간되어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실망스러웠습니다. 무엇보다도 너무 길어요... 초반 빌 덴브로의 동생 조지의 죽음 이후, 데리에 다시 광대 귀신이 나타났다는 전개까지는 괜찮았습니다. 하지만 그 뒤 38살 성인이 된 빌 덴브로와 어린 시절 왕따 클럽 친구들 모두의 시점을 바꾸어가며 과거의 기억과 공포를 불러 일으키는 전개부터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길어요. 재미가 없는건 아니지만 비슷비슷한 묘사가 많은 탓이 큽니다. 캐릭터부터가 비슷해요. 빌 덴브로와 벤, 에디와 리처드는 서로 캐릭터가 많이 겹치니까요. 분량 정리를 위해서라도 캐릭터는 좀 줄였어야 했습니다. 스탠리가 공포에 이기지 못해 자살한다는 설정은 공포를 드러내는데 효과적이었던 만큼 스탠리는 등장시키더라도 리더 (인간 기사) 빌 덴브로, 떠벌이 (음유시인, 힐러) 리처드, 행동파이자 과묵한 덩치 (몸빵 탱커이자 장인) 벤 한스컴, 홍일점이자 명사수인 (원거리 딜러) 비벌리 마시의 4인 파티면 충분했을겁니다.
'그것' 페니와이즈에 얽힌 이야기만 풀어나가도 충분한데 11살 때 왕따 클럽이 모이고 뭉치게 된 계기인 헨리 바워스 패거리와의 충돌에 관련된 묘사가 너무 길고 많은 것도 마찬가지의 단점이에요. 이와 비슷한 시골 마을에 만연한 가정 폭력, 아동 학대, 왕따, 인종 차별 등의 묘사도 천편일률적이라 지루했고요. 이런 걸 읽으려면 <<시체 (스탠 바이 미)>> 로 충분합니다. <<시체 (스탠 바이 미)>>의 등장 인물들을 가지고 공포 소설을 써 보려고 한 시도라고 보면 이해가 되지 않는건 아닙니다만...

그리고 별로 무섭지 않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이는 페니와이즈라는 초월적 존재인 절대악이 가진 능력에 비하면 하는 행동이 유치한 탓도 커요. 사람을 뜯어버리는 괴력에 자연 현상을 거스르고, 변신 자재에 공간 이동까지 할 수 있으며 데리라는 중형 도시를 지배하여 희생자들에게 극도의 공포심을 안겨주는 존재가 하는 짓이라곤 주로 약한 어린 아이를 환각에 빠트리고, 꾀어 내 죽이는 정도라니 뭔가 밸런스가 안 맞잖아요. 살짝 언급되는 대로 초기 데리 마을 정착자 480 여명을 한 번에 휩쓸어 사라지게 만든 정도의 위력은 보여 줬어야 합니다. 이러한 페니와이즈보다는 차라리 바워스나 헨리와 같은 개막장 정신병자 인간들이 더 무서웠어요. 귀신보다 사람이 무섭다는 건 불변의 진리죠. 그러나 이들의 이야기까지 섞여 쓸데없이 길어진건 역시나 문제입니다.
게다가 최후는 그야말로 최악입니다. 꽤나 독특하고 인상적이었던 광대 모습 대신에 흔해 빠지고 식상한 (지금 시점이기는 하지만요) '거미' 형태를 취한 것 부터 시작해서 리처드에게 휘둘려 패배하고 마는 결말은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에요. 그야말로 <<소드마스터 야마토>> 급이었다 해도 무방할 정도로 실망스럽더라고요. 사람의 의지와 상상력으로 없앨 수 있다는 주제야 나쁘지 않지만 고작 리처드 한 명에게 휘둘려 무너질 정도라면 성인이 된 악동 클럽을 다시 불러 대결을 벌일 이유가 대체 무엇이었을까요? 자신이 조종할 수 있는 헨리 바워스 한 명 보다도 떨어지는 전투력으로 퇴장하는 마지막 장면은 헛 웃음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그나마 페니와이즈에서 비롯되는 갖가지 현란한 환각에 대한 묘사는 괜찮은 편입니다. 그러나 쓰여진지 이제 삽십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공포감을 불러 일으키는 건 무리였습니다. 워낙에 자극적인 컨텐츠에 단련된 탓이죠. 페니와이즈 자체가 혐오스럽고 무섭다는 묘사라면 모를까, 동상이 움직이고 개수대에서 피가 솟구치는 등은 화려하긴 하나 무섭다는 느낌은 딱히 받기 어려웠어요. 또 이러한 묘사를 위해 불필요한 전개가 이루어지는 것도 불만스러워요. 왕따 클럽이 다시 모인 후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다" 는 이유로 위험천만한 상황임에도 개인 행동을 하면서 각자 무서운 환각을 보는게 대표적인 예입니다. 저 같으면 하늘이 무너져도 친구와 함께 했을겁니다.

전개도 너무 쉽게 쉽게 흘러갑니다. 모든 건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다" 는 것들이 모두 딱딱 들어맞으며 다음으로 이어지는데 이런 전개의 정점은 인터넷 상에서도 논란거리인 베벌리와 왕따클럽 멤버들 간의 성관계죠. 이야기 전개와는 큰 상관도 없었을 뿐 아니라 이유도 베벌리가 '우리가 위기를 벗어나려면 하나가 되어야 한다!' 고 생각했을 뿐이니까요. 생각한걸 실천하면 그냥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그야말로 의식의 흐름대로 써 내려간 느낌이에요.

물론 30년이 지난 후 다시 영화화가 될 정도로 매력이 없지는 않아요. 성장기스러운 부분은 나름 가치가 있고, 어린 시절 왕따 클럽 멤버들이 다시 모여 페니와이즈를 상대한다는 전형적인 모험물 서사도 재미는 있으니까요. 사십대 중반에 접어든 어린 시절 친구들이 고향에 깃든 악마를 퇴치한다는 설정도 매력적이고요.
어린 시절과 성인 시점의 교차 전개도 절묘한 부분이 있으며 이 과정에서 아이들과 어른의 차이를 설명하는 부분도 기억에 남아요. 아이들은 늘 죽을 고비를 넘기며 이상한 현상을 삶 속에 잘 받아 들이지만, 어른들은 그런 일이 벌어지면 신경망이 마비되고 결국에는 미치거나 죽는다는 것인데 이 책의 핵심이 아닐까 싶어요. 그래서 아이들 때에는 페니와이즈와의 대결을 용감하게 준비했지만 능력있고 부자가 된 어른 시점에서는 그를 두려워 하며 심지어 자살까지 하는 것이겠죠. 그 뒤 다시 하나로 뭉쳐 옛 기억을 떠올린 후에나 다시 맞서 싸울 결심을 하는 것이고요.

하지만 지금 읽기에는 지나치게 길고 낡았으며 별로 무섭지 않아 감점합니다. 무엇보다 큰 감점 요소는 페니와이스의 허무한 결말이에요. 등장인물을 쳐내서 한 권 분량으로 줄이기라도 했더라면 조금은 좋았을텐데 말이죠. 제 별점은 2점입니다. 혹 궁금하시더라도 영화만 보셔도 충분할 듯 싶네요. 1,800여 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을 읽어야 할 가치는 없습니다.

2018/09/23

죽이는 화학 - 캐스린 하쿠프 / 이은영 : 별점 3점

죽이는 화학 - 6점
캐스린 하쿠프 지음, 이은영 옮김/생각의힘

애거서 크리스티 여사님 작품 속에 등장했던 14 종의 독약 - 비소, 벨라도나, 청산가리, 디기탈리스, 에세린, 독미나리, 바꽃, 니코틴, 아편, 인, 리신, 스트리크닌, 탈륨, 베로날 - 에 대해 각각 약 30여 페이지의 분량으로 해당 독약의 역사와 효과, 실제 사례 및 검사 방법과 같은 정보를 여사님 작품 중 해당 독약이 등장한 대표작의 줄거리와 함께 설명해주는 병리학, 약학 서적이자 추리 소설 설명서.

여사님이 1차 세계 대전 중 지역 병원에서 조제사로 일하기 위해 자격 시험까지 치뤘던 나름 독약 전문가라는 설명에서 시작하는데, 등장하는 독약의 작용 사례에 대한 묘사는 약학 학술지에서 칭찬 받았을 정도로 정확했다고 하네요. 이러한 정확하고 치밀한 묘사 덕분에 이런 책까지 나올 수 있었겠죠.
소개되는 독약의 역사, 효과, 사례 모두 재미있지만 그 중에서도 사례 부분이 가장 인상적입니다. 유명 사건이 다수 등장하는 탓도 큰데 대표적인 예는 나폴레옹 비소 독살설입니다. 이는 당시 유행했던 비소 염색 벽지 때문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상세하게 전해주거든요. 여기서 비소 벽지의 독소는 실제로 사람을 죽일 정도는 아니었지만 좋지 못한 건강 상태에 기여했고, 의사들이 이를 치료하기 위해 더 많은 중독성 화합물을 주입한 것이 죽음의 원인일 것이라고 추리하는데 이 역시 꽤나 그럴싸 했습니다.
라스푸틴이 시안화물 중독으로 사망했는지? 에 대한 가설 검증 부분도 흥미로왔던 부분입니다. 특히 라스푸틴이 알코올성 위염을 앓고 있었기 때문에 위산이 적어서 시안화칼륨이 치명적인 시안화수소로 변환되는 양이 적었으리라는 이야기는 무척 신기했어요.
유명인에 얽힌 사례 외에도 수록된 사례는 많습니다. 디기탈리스 설명에서 1863년 처음으로 피해자에게서 디기탈리스가 검출된 사건 사례부터 설명해 줄 정도로 충실하기도 하고요. 이 사례에서 피해자의 토사물이 묻었을 침실 바닥을 대패질 해 올 정도로 끈질겼던 경찰의 수사 의지가 기억에 남네요.
실제 여사님 작품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이는 사례도 등장합니다. <<엄지손가락의 아픔>>이 대표적으로 1935년 실제로 발생했던 워딩엄 간호사가 저지른 모르핀 독살 사건이 영향을 주었다고 언급하는데, 설정을 보면 꽤 설득력이 높아 보입니다.

그 외에도 에세린이 함유된 콩이 자생되던 서아프리카 칼라바르 (그래서 칼라바르 콩이라 불리움)에서는 용의자가 유죄인지 무죄인지를 이 콩이 혼합된 음료를 마시게 한 다음 결정했다는 옛날 이야기도 재미있었습니다. 죄를 범한 사람들은 최대한 시간을 끌기 위해 천천히 콩을 씹어 삼키려 했고, 죄가 없는 사람들은 죄가 없다는 확신 하에 재빨리 삼켰을텐데 천천히 먹을 수록 독약에 노출되는 시간이 길어져 신체가 독약을 흡수할 기회가 늘어났다는, 일종의 심리적 근거가 있는 재판 방식이라는게 아주 인상적이었거든요.
해독제에 대한 소개도 충실한데 그 중 비소를 치료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가 "숯"을 삼킨다는 내용은 눈여겨 볼 만 합니다. 그 외에도 많은 독약을 흡수하는데 효과가 있다고 하니 사무실 숯도 치우지 말고 그냥 두어야 할듯요.

또 이미 읽었던 (<<헤라클레스의 모험>>, <<죽음과의 약속>>, <<비뚤어진 집>><<다섯 마리 아기 돼지>>, <<3>>, <<삼나무 관 (슬픈 사이프러스)>>, <<부부 탐정>> 등등) 여사님 작품과 병행되어 설명되는 구성도 흥미를 자극합니다. 대표작과 독약을 결부시키기 위해 여사님 전 작품을 분석하여 해당 독약이 쓰인 작품이 무엇인지 선정한 것도 책을 참 정성들여 썼구나 싶어 마음에 들었고요. 제일 처음 소개되는 비소 항목 첫 문단에서 "실제로는 네 편의 소설과 두 편의 단편에서 오직 일곱 명의 등장인물만이 이 악명높은 독약으로 죽음에 이르렀다." 고 알려줄 정도니까요. 참고로 비소만큼이나 유명한 청산가리는 "10편의 장편과 4편의 단편에 등장하여 17명을 해치웠다" 고 합니다. 도로시 세이어스 여사님의 맹독은 비소였는데, 당대의 라이벌이었던 여사님 작품 속 최고 킬러는 청산가리라는 사실도 재미있네요.
무엇보다도 이렇게 독약과 내용을 결부시켜 설명하면서도 작품 속 주요 스포일러에 대해 잘 감추는 솜씨는 본받고 싶었어요. '탈륨' 에 대해 설명하는 <<창백한 말>> 에 대한 설명 외에는 흥미만 자극할 뿐 핵심 내용은 전혀 알려주지 않아서 정말로 책을 읽고 싶게 만들거든요.

이렇게 재미있고 유익한 정보가 가득하기에 제 별점은 3점입니다. 재미만 놓고 보면 4점도 아깝지 않지만 독약의 성분과 체내 작용 과정 설명을 위한 복잡한 화학적, 생리학적 반응에 대한 설명이 조금 지루하고 따분해서 감점합니다. 그래도 여사님 팬을 비롯한 추리 소설 애호가, 추리 소설 작가 등 이 쪽 바닥 사람들께는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18/09/22

모략의 기술 - 장스완 / 유아이북스 : 별점 3점

모략의 기술 - 6점
장스완 지음/유아이북스

춘추 전국 시대 처세의 달인이었다는 귀곡자의 '모략' 을 현대 사회에 응용하여 적용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처세술 - 자기 계발 서적. 귀곡자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솔직히 전혀 모르고 있었지만 '모략' 이라는 제목이 왠지 모르게 와 닿아서 구입한 책이죠. 조금 찾아보니 그의 저서는 정말로 유세가들을 위한 처세를 다룬 책으로 그 덕분에 당대에는 희대의 소인배라고까지 불리웠다고 하네요. 다른건 다 몰라도 이 정도 처세의 달인이 혼란했던 춘추 전국 시대 당시 한자리 차지하지도 못했다는 점에서 조금 믿음이 떨어지기도 합니다만, 여튼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책은 <<1>>이라는 부제 아래 총 4장의 소주제, 그리고 <<2>>로 구성되어 있으며 1부의 분량이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데 특정 상황 하에 중국 역사에서 실재로 있었던 사례, 그리고 그러한 상황에 대한 귀곡자의 글을 연결시키는 식입니다.
하지만 1부 '귀곡자와 생존 모략' 1장 '처세의 기술'과 2장 '현명한 조직 관리'의 경우는 그럴싸한 소주제와는 다르게 귀곡자의 말에 상황을 억지로 가져다 붙인 이야기가 많아서 실망이 컸습니다. 송나라 군대가 금나라 군대 몰래 후퇴하는데 성공했던 필재우의 작전 사례에 '일의 변화가 심하여 어떻게 돌아갈지를 잘 알지 못할 때는 물러나 자신의 몸을 안전하게 하는 것이 큰 도리다." 라는 말을 연결시키는게 대표적인 예입니다. 필재우의 작전은 후퇴하여 후일을 도모하겠다는 결심이 중요한게 아니라서 전혀 맥락이 맞지 않거든요.

그래도 다행히 '3장 기업 경쟁령 높이기' 부터는 읽을만 합니다. 실제 사례와 귀곡자의 말의 연결도 매끄럽고 정말 현재 상황에 어울리는 내용이 많았기 때문이에요. 미국 쉐보레 자동차 회사의 세일즈맨 윌리엄의 부동산 구매 일화를 통해 '판매는 남의 비위만 맞추는게 아니라 세심히 관찰해 사용자가 원하는걸 알아내는게 더욱 중요하다'는 비결을 이끌어내고 이를 '칭찬으로 상대방을 꼼짝 못하게 하되 상황에 따라 다르게 사용해야 한다.'는 귀곡자의 말을 이어 설명하는 것처럼 말이죠. 쉐보레 외에도 아마존의 사례가 등장하는 등 친숙한 주제가 많은 것도 마음에 들었고요.
그 외에도 '욕쟁이 할머니' 같은 마케팅 비법도 고객 중심 경영의 하나로 이는 귀곡자의 '깊은 곳을 헤아려 속사정을 파악한다' 는 말과 같은 이치라던가, 일본 대표 세일즈맨 하이라치헤이의 일화를 통해 상대방에게 자기 말을 듣게 하려면 같은 부류, 같은 욕망을 가지고 말해야 한다는 등 재미난 이야기가 많습니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제 때에 균열을 미리 차단하기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한다, 성실과 신용이 중요하다, 부자가 되려면 타이밍을 잘 잡아야 한다는 등 당연한 이야기들이 많은 건 아쉽지만 그래도 옛 지식이 아직도 통용될만한 여지가 있다는 점에서는 여러모로 반가웠어요.

다음에 이어지는 '4장 직장에서 살아남기'는 유용한 정보가 가득한 이 책의 하일라이트입니다. 소주제 명칭부터 아주아주 마음에 들어요. 우리네 평범한 직장인의 처세라면 직장에서 살아남는 정도가 고작일테니까요. 여기서 몇가지 귀곡자의 비결을 알려드리자면, 라이벌인 동료가 있다면 그에게 뭔가 부탁을 하던가 최소한 한번 쯤 그를 칭찬해보라는군요. 적보다는 친구가 생기는게 낫거든요. 또 어떤 사람을 이해하려면 그가 한 말이 아니라 말하지 않은 말을 들어야 하고, 누군가에게는 3할만 말해야 한다는 등의 화법 관련 이야기는 모두 새겨들을만 했습니다. 사내에서 내 진급 문제로 논의 중인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남들보다 한 발 앞서 기회를 잡고 과감하게 결단해야 한다는군요. 어차피 인간 세계는 모두 경쟁이니 모략을 이용해서라도 자리를 쟁취해야 하기 때문이랍니다. 아.. 정말 놀라운 식견입니다. 또 조직 관리를 위해서 엄격한 상벌은 필수라는 것도 굉장히 와 닿았던 부분이에요. 특히 벌의 목적은 교육이지 처벌이 아니며, 이는 투명하게 적용되고 공개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는 무릎을 치게 만드네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부록처럼 수록된 <<핵심 구절 강설>> 은 처세의 달인 귀곡자의 엑기스만 정리한 60여 페이지 정도의 짤막한 내용인데 워낙 핵심 정보들이라 이 부분만 따로 정리하여 소개드리고 싶을 정도로 유용한 내용이었습니다.

모든 내용이 재미있거나 가치가 있지는 않고, 책을 읽는다고 직장에서의 출세나 생존을 보장하는 건 아닙니다. 그래도 이천년도 더 전 인물이 한 말이 현대에도 조금이나마 통용될 수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는 의의가 컸던 독서입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결국 사람 사는 이치는 별로 달라진게 없다는 뜻이니까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3점. 역사나 처세술 관련 서적을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한 번쯤 읽어보실 만 합니다.

2018/09/16

Beck 1~34 해롤드 사쿠이시 : 별점 3.5점

벡 Beck 34 - 8점
사쿠이시 해럴드 지음/학산문화사(만화)

해롤드 사쿠이시의 장편 록 밴드 이야기. 요사이 답답한 일상이 이어지던 차에 다시 꺼내어 읽게 되었습니다.

내용은 뭐 다들 아시다시피 굉장히 단순합니다. 무명의 인디 밴드가 No.1이 되는 이야기를 주인공 유키오의 성장과 함께 그리고 있는데 '음악'을 정말 멋지게 그려내면서도 열혈 배틀물의 전개를 띄게 만든게 이 작품을 당대의 인기작으로 만든 요인입니다. 최강자에게 짓밟히지만 밑바닥에서부터 차분히 힘과 실력을 키우고, 타고난 재능이 뒷받침되어 결국 최고의 정점에 우뚝 선다는 전형적인 흙수저 성장기이기도 하니까요.
이 과정에서 밴드 멤버들의 개성은 물론 경쟁 밴드의 캐릭터성도 확실히 구축되어 보는 재미를 더해 주며, 음악적으로 성장해 나가는 유키오와 유우지의 모습 역시 언제 보아도 흐뭇하고 훈훈해서 마음에 듭니다.

물론 장기 연재작답게 문제가 없는 건 아니에요. 우선 유키오와 마호의 관계가 수시로 엇나가는 걸 들 수 있는데 그나마 이 정도는 허용 범위고... 밴드에 닥치는 위기들이 제일 큰 문제입니다. 지나칠 정도로 작위적이고 반복적이어서 읽다보면 짜증이 날 정도입니다. 거의 모두 류스케가 가져온, 자초한 것이라는 것도 짜증의 요인 중 하나고요. 일본 굴지의 프로듀서 란의 눈밖에 난 이유는 사소한 것이라 그냥 넘어갈 수 있다 하더라도, 레온 사익스의 개와 기타를 훔친 것은 명백한 범죄로 변명의 여지는 없으니까요. 술 문제로 공연에 지장을 초래한 일탈도 마찬가지라서 솔직히 공감하기 힘들었습니다. 
이런 면에서 생각해보면 Beck도 오래 가지는 못했을 겁니다. 원래는 류스케의 원맨 밴드에 가까왔지만 숨겨진 리더로 베이스 타이라가 급부상했고, 이후는 류스케보다 유키오의 천재성과 스타성에 기대고 있는 측면이 강하니 자존심 강한 류스케가 계속 버텼을지 의문이거든요. 즉 타이라가 리더인 유키오와 유우지의 3인 체제로 재편된 후 치바는 록 밴드에서 MC로서의 제약을 체감하고 독립해서 홀로서기를 했을 것 같네요. 류스케는... 롤링 스톤스의 브라이언 존스처럼 마약, 알콜 중독으로 경력을 제대로 마치지도 못하고 젊은 나이에 급사해 버렸을 테고요. 이렇게 되면 아집을 벗어던지고 Beck은 사이가 좋아진 란과 벨 암과 손잡고 앨범을 내었을 수도 있겠죠. 여러모로 아쉽군요.

덧붙이자면, 애니메이션 OST를 들으며 쓰고 있는데 OST는 영 별로네요. Toy도 그랬고, 코우카 윤의 <<어시안>> OVA에서도 그랬지만, 음악을 다룬 만화 작품의 OST가 실제로 좋았던 경우는 거의 없는데 이 작품 역시 마찬가지... 만화에서 표현하는 전율의 보컬이나 노래는 없네요. 게다가 가사에 대한 고민이 담긴 에피소드들에 부합하는 곡들, 'Out of Hall'이라던가, 작 중 클라이막스를 장식하는 'Devil's way'가 없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그래도 단점은 사소하며 애니메이션 OST는 작품의 가치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습니다. 음악을 다룬 만화 중에서는 All time best 중 한편으로 꼽아도 무방할 좋은 작품임에는 분명해요. 제 별점은 3.5점입니다.




아울러 읽다보니 허영만의 <<고독한 기타맨>>과 여러모로 비교가 되어 재미있었습니다. 기타, 밴드, 록이라는 공통 분모를 가지고 있지만 그 결과물이 사뭇 다르기 때문인데 우선 주인공부터 비교해 볼까요? <<고독한 기타맨>>의 이강토는 자기를 파괴하면서까지 봄을 사랑한다는, 병적인 사랑에 집착하는 천재이고 유키오는 친구들과, 동료들과 함께 걸어가는 것으로 충분한 음악 소년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유키오 쪽이 설득력이 높죠. 
이강토는 자기 파괴적인 사랑, 증오를 바탕으로 실력을 발휘하는 80년대~90년대 초반 한국 극화 주인공들과 똑같아요. 사랑을 위해 지면 안되는 경기를 고의로 망치고 실명한거나, 링에서 죽어 버리는 등 모두 다 마찬가지인 그 시절의 초상인데 유행이 지난 지금 읽기에는 여러모로 와 닿지 않습니다. 발표 시기를 감안한다 해도 고등학생이 아폴네르의 시를 읆으며 누군가에게 목숨을 건다는 건 정신병이라고 봐야죠. 유키오처럼 그냥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있고 싶고, 조심스럽게 마음을 전하는 것이 훨씬 설득력 높은건 당연합니다. <<고독한 기타맨>>에서 유일하게 사실적인건 봄이 강토를 거부하는 것 뿐이에요. 스토커처럼 자신을 쫓아다니는 무능력한 고아보다야 음반 회사 사장 아들로 장래가 보장된 푸른땅에게 마음이 가는게 뭐가 이상합니까? 심지어 자신을 파괴하면서까지 자기를 사랑한다면 감동보다는 부담을 먼저 느끼는 것이 인지상정일 테고요. 그런데 푸른땅을 악당처럼 묘사한 내용은 정말이지 어처구니 없어요.

게다가 두명 다 천재이기는 하지만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도 엄청나게 차이가 납니다. 강토는 거의 지옥훈련과 같은 훈련을 받으며 기타를 익히지만 유키오는 꾸준한 연습, 라이브를 통해 실력을 키우죠. 이 역시 어느 쪽이 더 설득력 높은지는 더 이야기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기타가 지옥훈련으로 실력이 는다는 것도 웃기는 발상이고요.
전미 최고의 밴드 다잉 브리드의 보컬 맷이 유키오의 보컬을 인정하는 것, 밥 딜런이 이강토의 기타 실력을 인정하고 앨범 제작을 돕는다는 설정도 어찌보면 같지만 밥 딜런이 너무 전능하게 그려지고 앨범 제작이 일사천리라 이 역시 Beck 쪽의 설득력이 훨씬 높습니다.

그나마 강타가 성장하여 세속을 초월한 음악의 신이 된다는 결말만큼은 나쁘지 않았는데... 문제는 봄에 대한 사랑도 모두 잊어버리고 음악에 모든 걸 바친 후 승천한다는 결말 외에 몇 달 같이 지냈을 뿐인 장애우 소녀에게 결혼하자고 하는 사족을 덧붙인 것입니다. 이야기와 어울리지도 않는 무리수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어요.

한마디로 <<고독한 기타맨>>은 지금 읽기에는 시대 착오적인 코미디입니다. Beck은 아직 유통기한이 살아있는 생생한 작품이고요. 두 작품의 발표시기는 20년 차이가 나지 않는데, 앞으로 이 차이는 계속 벌어질 것이라 확신합니다.

역사를 만든 백가지 레시피 - 윌리엄 시트웰 / 안지은 : 별점 2.5점

역사를 만든 백가지 레시피 - 6점
윌리엄 시트웰 지음, 안지은 옮김/에쎄

제목 그대로 특정 역사를 대표하는 요리사 - 미시사 서적.
레시피 소개에 이어 해당 레시피가 어떤 역사를 만들었는지 여러 페이지에 걸쳐 설명하는 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당연하겠지만 상상 속 레시피는 아니며 모든 레시피가 명확한 근거를 기반으로 소개됩니다. 예를 들어 첫번째 레시피인 고대 이집트의 빵은 룩소르 세네트 묘실의 벽에 기록되어 있다고 설명됩니다. 두번째인 바빌로니아의 카나수 수프는 설형문자 점토판에서 인용하고 있고요.

레시피만 보면 이게 뭔가 싶기도 한데 읽어보면 "역사" 를 만들었다는 제목에 수긍이 갑니다. 인류사, 아니면 최소한 요리계에 영향을 준 것들 중심으로 수록되어 있거든요. 고대 로마 카토의 햄 레시피는 그 자체가 특별한건 아니지만 이를 '염장 보관' 과 연결하여 그 중요성을 드러낸다던가, 로마 문화의 절정은 소스가 가장 맛있었던 시대였다는 해석처럼 설명도 아주 그럴듯하고요. 후추, 로바지, 파슬리, 말린 박하, 회향, 포도주에 적신 꽃, 구운 견과류나 편도 열매, 소량의 꿀, 포도주, 식초를 섞은 수프를 가열하여 휘젖다가 녹색 셀러리 씨와 개박하를 넣는 소스가 소개되는데 이 정도의 재료를 갖추어 요리할 정도의 문명이라면 대단히 번성한건 분명하겠죠. 그 외에도 샌드위치가 이동이 잦아진 시대에 유행했다는 해석이라던가, 키치너 박사의 레시피와 책을 통해 영국의 쓸데없을 정도로 복잡하고 거추장스러운 형식주의를 드러내고 카렘의 유명한 과자 레시피로 프랑스 요리의 화려함을 극명하게 알려주는 등 볼거리가 많아요. 
레시피를 통해 새로운 식재료가 전파된 것, 그리고 요리가 국가와 대륙 사이로 이동이 이루어 졌다는 것을 당대 문화 교류사와 엮어 설명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초콜릿의 전파와 식민주의를 연결하는게 대표적인 예입니다.

근대 이후부터는 실제 역사의 흐름과 요리, 레시피가 특별한 해석 없이도 일치하는 것도 재미있네요. 라디오 방송에서 시작된 쿡방으로 레시피가 널리 알려지고, 전자 레인지로 대표되는 여러 도구들의 도입을 통해 획기적으로 식생활이 변하는 과정, 전쟁 당시 배급제로 빚어진 열악한 레시피들, 풍요의 시대를 거쳐 즉석 식품의 유행, 그리고 방송과 언론, 미슐랭 가이드를 통해 연예인 수준의 유명인이 된 셰프들의 등장, 각종 먹거리의 범람에 대한 반동과 환경 운동으로 등장한 채식주의와 슬로 푸드 운동, 인터넷과 앱으로 매체가 변하고 마지막에는 다시 중세의 레시피를 재 해석하여 소개하는 것으로 마무리됩니다. 절대적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당시 역사의 흐름과 대부분 일치하고 있다는게 재미있어요. 브리아 샤바랭의 말 처럼 "무엇을 먹는지" 를 통해 그 사람과 시대를 알 수 있다는 뜻이죠.
그나저나, 다시금 중세 요리로 복귀하는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는 추세라면 중세의 그 으리으리하고 시끌벅적했던 쇼와 같은 만찬이 다시 등장하지 말라는 법도 없겠네요.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직접 연출을 지휘하기도 했다는 르네상스 연회는 항상 궁금했었는데 곧 실제로 보게 될 지도 모르겠어요.

이렇게 세계의 역사와 밀접하게 연관된 레시피를 다루고 있기에 당연히 범위도 넓습니다. 고대의 경우는 중국을 포함해 모든 고대 문명의 레시피가 수록된건 물론이고 역사적으로도 고대 - 중세를 거쳐 타이방 이후 체계를 갖추는 과정, 중세 이후 근대, 현대, 그리고 지금 현재까지를 대표하는 레시피가 소개되고 있거든요. 타이방과 카렘에서 줄리아 차일드, 제이미 올리버 등 유명 셰프들의 레시피도 많으며 지금도 널리 알려져 있고 많이 먹는 에그 베네딕트, 흘렌다이즈 소스, 피치 멜바 등 친숙한 요리도 반가운 점이었습니다.

하지만 주로 "영국" 기준으로 쓰여진건 아쉬웠습니다. 세계사와 관련된 요리를 다루는 것도 앞부분의 잠깐일 뿐 결국 영국의 요리, 영국의 요리사, 영국의 식당이 관련된 레시피 비중이 높기 때문이에요. 근대 이후에는 동양권 요리는 찾아보기도 힘들고요. 그리 큰 비중은 아니더라도 일본의 제국주의의 시작과 "고기 감자 볶음" 정도는 연결해서 설명해줄 만 했을텐데 말이죠.
그리고 번역의 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읽기 쉬운 글도 아니었습니다. 도판이 부실하여 글만으로 요리와 그 맛에 대해 상상해야 하는데 그러기에는 딱딱하고 단순한 번역투인 문체가 상당히 거슬렸어요.
아울러 정말로 역사적인 레시피이냐? 라고 할 때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는 레시피도 제법 수록되어 있다는 점도 약점이에요. 어떤 역사를 대표한다거나, 요리 역사에 있어서 변곡점이 되었다거나 하는 레시피가 많은 건 아니니까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기획 자체의 아이디어는 좋고 소장 가치가 있는 단락도 있지만 600페이지 가까운 분량 모두가 흥미롭지는 않습니다. 요리와 역사에 대해 관심이 있으시다면 한 번 읽어보셔도 괜찮지만 재미가 있는 책은 아닌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2018/09/09

만물의 유래사 - 피에르 제르마 / 김혜경 : 별점 1.5점

만물의 유래사 - 4점
피에르 제르마 지음, 김혜경 옮김/하늘연못

사물의 기원을 다룬 일종의 백과사전으로 피에르 제르마가 1980년에 처음 간행한 책. 알라딘 중고 서점에서 발견했는데 개인적으로 잡학 사전류의 책을 좋아하기에 주저없이 구입해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수록된 '만물'의 기준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수백개 항목에 대해 짧게는 몇 줄, 길게는 한두장 정도로 설명해 주는데 다른 곳에서 찾아보기 힘든 몇몇 사물들에 대한 정보는 고맙더군요. 비엔나 커피의 유래가 커피 찌꺼기를 싫어했던 비엔나인을 위해 커피 찌꺼기를 걸러낸 후 커피액에 우유를 넣은 카페 주인 쿨크지스키의 아이디어였다는 내용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익히 알려진 유래와 조금 달라서 기억에 남네요. 비프 스테이크는 영국에서 프랑스로 전래된 요리로 워털루 전투 이해 유럽 전체에 퍼졌다는 이야기도 마찬가지고요. 프랑스 요리가 아니었다니 의외였어요.
이러한 정보들과 함께 하는 클래식한 도판들은 가장 마음에 든 점입니다. 다른 곳에서 찾아보기 힘든 오래된 삽화가 많은 편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항목들이 관심만 있다면 대부분 인터넷을 통해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내용들로 백과사전이 사양길에 접어든지 오래라는걸 다시금 깨닫게 해 줄 뿐입니다.
그나마 그냥 백과사전이라면 오며가며 한두장씩 읽는 재미는 있었을텐데... 더욱 큰 문제는 지나치게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서술입니다. '라비올리'는 파스타의 한 종류일 뿐인데 구태여 프랑스식 이름을 갖추었다고 따로 항목을 만들어 설명해준다던가, 민들레는 옛날부터 식용이었다는 설명 다음에 '프랑스에서 민들레 재배가 시작된건 18세기 말 부터이다' 등 프랑스에서의 설명만 이어진다던가 하는 식이에요. 산업디자인의 창시자가 프랑스의 레이몽 뢰이라는 것은 오류를 넘어 왜곡 수준입니다. 이 바닥은 바우하우스가 앞선다는건 기본적인 상식이잖아요.

이렇게 프랑스인이 프랑스를 위해 만든 시대 착오적인 사전으로 대한민국 국민이 따로 찾아 읽거나 옆에 둘 이유는 거의 없습니다. 제 별점은 1.5점입니다. 이런 책을 읽느니 그 시간에 네X버 지식 사전이나 뒤져보는게 나을거에요.

2018/09/08

깃털 - 소어 핸슨 / 하윤숙 : 별점 4점

깃털 - 8점
소어 핸슨 지음, 하윤숙 옮김/에이도스

부제는 "가장 경이로운 자연의 걸작". 제목 그대로 깃털에 대해 모든 것을 고찰하여 알려주는 과학 서적. 
목차로 내용을 간략하게 설명해드리면, 어떻게 깃털이 진화하여 만들어졌는지에서 시작합니다. 그리고 깃털의 주요 기능과 목적인 온도 조절과 비행, 그리고 장식 용도 세가지 항목을 각각 상세하게 설명해줍니다. 마지막으로 인간이 깃털을 활용해왔던 여러가지 사례들을 설명해주며 마무리되고요.

인터넷 서점 소갯글을 보고 읽게 되었는데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대박입니다.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거든요. 시조새 화석 이야기에서 시작되는 첫번째 단락부터 푹 빠져버렸습니다. 저는 공룡에서 새가 진화했다는 이론을 접했던 세대는 아니라 더욱 빠져든 것 같아요. 이 책을 통해서 공룡이 갖춘 초기 깃털은 아마도 보온과 장식 용도가 더 컸을 것이다, 그리고 이후 진화하여 일종의 '활공' 용 깃털이 생겨난 것이다라는 진화의 과정을 상세하게 알 수 있었거든요. 가장 인상적이었던건 이미 날 수 있는 공룡 (익룡) 이 있었는데 왜 활공용 깃털로 진화가 이루어졌을까? 라는 의문에 대한 답이었습니다. 이른바 WAIR 가설 (Wing assisted incline running) 으로 발과 조합하여 높은 경사를 오르기 위함이라는데 무릎을 탁 치게 됩니다. 여기서 뛰어내리거나, 날아오르는 방향으로 점점 진화해 나가게 된 것이죠. 퍼덕거리며 높이 올라간 후 퍼덕거리며 뛰어내린다, 너무나도 그럴듯해요!

새의 온도 조절 메커니즘에 대한 이야기도 아주 새로왔습니다. 어떻게 새가 영하 수십도의 높은 고도에서의 비행, 극지방, 물속에서 벼텨내고 뜨거운 열대 기후 속에서 생존하는지가 전부 '깃털' 덕분이라니 놀랍기만 하네요. 덕다운 파카, 이른바 오리털 파카는 우리도 한겨울 보온용으로 친숙한데, 새의 솜털은 우리가 생각한 그 이상으로 대단한 보온 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솜털을 포함한 깃털은 현대의 공업 기술로도 만들어 낼 수 없는 복잡한 구조물(?) 이라는 점도 처음 알았고요. 농담삼아 하는 "오리털 대신 닭털을 써서 싸구려다!" 는 말은 근거가 없다는 것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깃털의 메커니즘은 모두 동일하기 때문으로 "솜털을 쓰지않고 다른 깃털을 써서 싸구려다!" 라고 해야 맞는 말인 것이죠.
새들이 체온이 올라갔을 때 체온을 내리는 다양한 방법도 재미있었는데 가장 인상적인건 동물원가면 가끔 보는 열대 조류인 큰부리새의 큰 부리도 체온을 내보내기 위해서 크게 발달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단지 귀염귀염한 외모를 위해서가 아니었던거죠! 이렇게 체온을 유지하고 관리하는데 최적화되었기 때문에 이런 능력을 갖추지 못한 박쥐와는 다르게 전 세계 어디에서나 살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자연의 신비는 정말 놀랍네요.

극락조로 대표되는 새들의 기묘한 깃털 장식들과 인간 사회에서 유행했던 깃털 모자들, 이 때문에 이루어졌던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바르바리 타조 밀수 작전, 그 외 깃털을 활용하여 만들어진, 심지어는 화폐로까지 이용되었던 공예품과 예술품들 이야기와 마지막을 장식하는 다양한 깃털 관련 물건들 이야기도 흥미가 넘칩니다. 깃털 책에서 플라이 낚시 미끼라던가 깃털 펜의 역사와 특징에 대해 읽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요? 깃털 펜에 대해서 이렇게 자세하게 설명한 책은 읽어본 적이 없는데 이전에 읽었던 문구 관련 서적에서 인용해서 다루어 주어도 좋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이 외에도 재미있는 내용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중국의 이시안 지층, 시애틀의 깃털 회사, 라스베이거스 깃털 의상 제조자, 뉴욕의 깃털 모자 디자이너, 오리건 동부의 플라이 낚시 전문가 등 여러 지역을 방문하여 현지 취재 및 인터뷰를 감행한 저자의 노력과 이러한 연구 와중에 곁들여지는 좌충우돌 경험담도 재미를 더해주고요.

한마디로 지식의 충족과 읽는 재미 모두를 갖춘 최상급의 과학 교양 서적입니다. 도판이 전부 흑백에다가 주요한 도판이 제대로 수록되어 있지 않은 점 때문에 감점하지만 별점 4점은 충분해요. 저처럼 깃털에 대해 관심이 전무하셨던 분들이라도 한번 읽어 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저처럼 새와 깃털에 푹 빠지시게 될 것을 장담합니다.

조선을 사로잡은 꾼들 - 안대회 : 별점 2점

조선을 사로잡은 꾼들 - 4점
안대회 지음/한겨레출판

몇몇 사료를 바탕으로 주로 조선 후기에 이름을 날렸던 기인들을 소개하는 인물사 - 미시사 서적. 
내용 대부분은 주로 조수삼의 <<추재기이>> 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 그 밖의 다양한 사료를 찾아 증명하고 보완하여 설명하려는 노력도 돋보이고 전체적으로 어렵지 않게, 쉽게 쓰여져 있어서 편하게 읽을 수 있어서 좋았어요.

제목과 부제인 "시대를 위로한 길거리 고수들 이야기" 만 보면 거리를 무대로 한 사기꾼이나 범죄자들이 연상되는데 의외로 지금으로 따지면 엔터네이너(?) 들이 주로 소개되고 있다는 점이 특이하더군요. 독특한 기예로 인기 연예인이었던 사람들이나 기생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거든요.
지금으로 따지면 성대 묘사의 대가인 "구기"의 달인 박뱁새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다양한 동물, 상황, 사람 목소리를 흉내내어 혼자서 극을 이끌어 나가는 공연의 달인으로 소갯글을 보면 무척 재미있겠더라고요. 지금은 실전되었다고 하는데, 뭐 남보원 선생님 등의 공연과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종친 남원군이 스승으로 모셨다는 전설적인 음악 거장 김성기의 존재도 눈길을 끕니다. 신분이 천했지만 남원군은 "재능이 있는 곳이 바로 스승이 있는 곳이다. 나는 재능을 스승으로 삼을 뿐, 귀천이 있고 없고는 모른다" 고 했다는데, 캬~ 정말 멋진 말이에요. 암요, 실력이 중요하죠.
그 외에도 재미있는 이야기, 즉 재담의 달인이었다는 김옹. 책을 재미있게 읽어주는 소설 구연 직업인 '전기수' 등 여러 당대 예인들의 소개가 이어지는데 모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재담은 지금으로 따지면 개그맨으로, 소설 구연은 오디오 북으로 이어지고 있는 등 그 명맥이 계속된다는 점에서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사람들이 좋아하는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그리고 당대 조선의 사고 방식으로는 생각하기 어려웠던 노처녀 삼월이와 같은 예인이 아닌 기인들 이야기도 많습니다. 삼월이는 세상 사람들 모두가 자신의 배필이라 여기며 장사하여 돈을 벌어 스스로를 꾸미며 항상 당당했다는데 이 역시 현재의 골드 미스와 비슷하죠? 이외에도 사랑 때문에 불가를 등진 비구니, 몰락한 양반 거지, 우월감 때문에 값비싼 서화골동품을 수집했다는 모지리들 이야기 모두 지금 시점에서 그렇게 낯설어 보이지 않는게 신기하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합니다.
참고로, 삼월이 이야기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건 삼월이보다 조선 후기 혼수를 애걸하는 박도령의 호소문이었습니다. 결혼하고 싶다는 절절한 내용이 이어지는 중간에 "기분이 안 좋을 때 마누라를 패는 재미가 어찌 없으랴?" 라는 문구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거 참, 결혼 못해도 싸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하지만 제목과는 거리가 먼 인물들의 이야기가 많은건 아쉬웠어요. 기생 이야기들 대부분이 그러했습니다. 한 남자에게 순정을 바쳤다던가, 번 돈을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베풀었다는 정도의 이야기인데 조금 독특할 뿐 시대를 대표한다던가, 무언가를 사로잡았다고 할 만한 내용은 아니에요.
게다가 아예 사료에 기반하지 않은 전설이나 야담에 가까운 이야기들은 실망스러운 수준이었습니다. 물고기로 변신한 여인, 의적 일지매와 점쟁이 이야기들로 전체 내용과 어울리지도 않고, 사료적인 가치도 없기 때문입니다.
또 쉽게 쓰인건 좋은데 깊이가 없달까요? 제목에 어울릴 만한 굵직한 인물의 묵직한 이야기가 전무해서 여러모로 기대에 미치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재미가 없지는 않고 저잣거리의 평범하지만 나름 명성을 떨쳤던 사람들을 모아 소개한다는 발상은 좋지만 재미 외의 또다른 가치 측면에서는 부족했기에 감점합니다. 몇몇 꼭지만 따로 분리해서 '살림 지식 총서' 분량으로 나누어 내는게 더 낫지 않았을까 싶네요.

2018/09/02

별걸 다 재는 단위 이야기 - 호시다 타다히코 / 허강 : 별점 3점

별걸 다 재는 단위 이야기 - 6점
호시다 타다히코 지음, 허강 옮김/어바웃어북

일본의 중학교 선생님이 여러가지 각종 단위에 대해 정리하여 소개하는 책. 크게 4장, 34개의 소주제로 분류되며 친숙한 미터, 킬로그램, 초, 화씨와 섭씨에서 시작하여 들어보지도 못했던 각종 단위가 설명됩니다. 주로 해당 단위가 무엇을 측정하고 재는 기준인지, 어떻게 생겨났고 어떻게 활용되는지, 그리고 관련된 토막 상식이나 정보를 전해주는 식인데 저자가 학교 선생님이라 그런지 이해하기도 쉽고 재미있게 쓰여져 있는 편이에요.

워낙 많은 단위와 이야기가 실려 있어서 새롭게 알게 된 내용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무게와 질량은 그간 미처 인지하지 못했지만 다른 개념이라는 것 같은거요. 무게는 지구 중력에 의해 물체에 가해지는 힘이며, 질량은 물질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양으로 무게는 중력에 따라 다르지만 질량은 장소에 관계없이 일정하다는 차이가 있다는군요. 알고 계신 분들은 많으실테지만 제 공부가 부족한 탓에 이제서야 알게 되었는데, 이를 주제로 아동용 추리 SF를 쓰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던 단위인 칼로리의 정확한 뜻 역시 처음 알았습니다. 물 1g의 온도를 1도 올리는게 1 칼로리로 튀김 덮밥 한 그릇이 731칼로리라면 이는 Kcal, 킬로칼로리이므로 73만 1000칼로리, 즉 10Kg의 물을 73.1도 까지 올릴 수 있는 어마어마한 에너지더라고요. 이게 에너지로 사용이 안되면 몸에 쌓이고 살이 찌는 건 당연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쓰이는 몇몇 단위가 일본에서 유래되었다는 것도 그동안 몰랐던 이야기들입니다. 예전에 많이 쓰였던 "관" 이라는 단위는 일본 간에이통보 1푼을 한 가운데 끈을 통과시켜 묶는데에서 유래된 것으로 1푼이 1돈, 1관은 1,000돈이라고 합니다. "평"도 도요토미 히데요시 만든 단위이며, "홉"은 중국에서 유래되었지만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세금 징수를 위해 부피 재는 용기를 통일하여 1되가 1홉의 10배가 되었다는 내용도 재미있었어요. 그런데 책 설명에 따르면 에도 시대에는 어른 한 명이 1년 동안 소비하는 쌀의 부피를 대략 1섬으로 생각했다는데 대충 1홉이 1끼라고 치면 하루에 3홉, 이를 1년으로 계산하면 1095홉으로 대층 110되, 즉 11섬인데 왜 1섬으로 생각한 것인지 궁금하네요. 수학적인 오류인건지, 번역 실수인건지...
그 외에도 여름은 최고 기온이 25도 이상인 날, 겨울은 최저 기온이 0도 미만인 날로 정의되어 있다는데 이 역시 일본 기준일테죠.

그리고 단위와 관련된 토막 상식도 흥미로왔는데 몇가지 소개해드리자면, 첫번째는 실생활에서 유용한 미터법 자를 만드는 방법입니다. 신문 두 페이지를 펼쳐 만든 직사각형의 대각선은 약 98cm로 유용하게 사용할수 있다는군요. 일본 판형이라 국내 실정과는 조금 다를 것 같기는 하지만요. 
원유 거래의 단위인 배럴 (Barrel)은 말 그대로 나무 통에서 유래된 것으로 원래 1 배럴은 189리터지만 운송 중 유실분을 감안하여 현재는 1 배럴은 158.9 리터로 셈한다고 합니다. 
역시 일본 기준이라 조금 다르겠지만 역세권의 기준도 소개해드립니다. '걷는 속도의 기준은 분속 80m, 시속 4.8km이며 거리는 직선거리가 아니라 도로를 바탕으로 계산해야 하며 소요 시간이 1분 미만일 때에는 반올림한다' 입니다. 굉장히 그럴듯한데 이런 기준은 우리나라도 도입하는게 어떨까요?
마지막으로 흔히 사용하는 종이컵 용량은 7온스, 즉 가득채우면 200ml라니 뭔가 계량할 일이 있으면 써먹어 보고 싶네요. 그 외에도 재미있는 이야기가 가득합니다.

조금 대상 연령대가 낮은 듯 하며, 깊이 있는 내용을 파악하기는 무리이지만 단위에 대해 가볍게 짚고 나가기에는 이 정도면 충분해 보입니다. 제 딸이 조금만 더 크면 권해주고 싶을 정도로 말이죠. 제 별점은 3점입니다. 이런 분야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께 권해드립니다.

2018/09/01

경성 새점 탐정 - 김재성 : 별점 2점

경성 새점 탐정 - 4점
김재성 지음, 이영림 그림/푸른책들

기억을 잃어버린 소녀가 청계천에서 새점을 치는 할머니를 만나 함께 살게 되며 새점 치는 법을 배운 후, 새점을 빙자한 추리 (?) 쇼를 통해 여러가지 사건을 해결해 나간다는 이야기의 아동용 추리 소설경성을 무대로 한 독특한 추리물같아 관심이 가던 차에 읽어보게 되었네요.

추리적으로는 분량에 비하면 제법 풍성한 편입니다. 작품 속에서 새점 탐정이 해결하는 사건은 처음에 1대째 새점 탐정인 할머니가 해결하는 주먹코 할아버지 가보 도난 사건, 주인공 소녀 강영재가 처음으로 전면에 나서는 미쓰비시 백화점 사장 아들 납치 사건, 할머니가 죽는 계기가 되는 박준성 살인사건, 그리고 마지막 떠나기 전에 해결하는 일상계스러운 청계천 아이들 동전 도난 사건까지 4개나 되거든요. 

하지만 수준은 그다지 높지 않습니다. 정말 몇 안되는 단서로 결론을 도출하는데 억지스럽고 작위적인 내용이 많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청계천 아이들 동전 도난 사건은 추리가 아니라 그냥 함정 수사에 불과하기도 하고요.
그래도 탐정만큼은 높이 평가하고 싶어요. 새점은 새가 무작위로 쪽지를 물어오는게 아니라 점쟁이가 점을 치려는 사람들의 표정, 눈빛, 옷차림, 걸음걸이 등을 관찰하여 새에게 해답에 맞는 쪽지를 뽑게 하는 것이라는 점쟁이 탐정 설정이 아주 좋거든요. 지역, 신문 기사 등으로 주요 사건을 파악하고 온갖 지식에 능통하며 이를 통해 결과를 도출하는 추리력도 갖추고 있다는 배경 설명으로 충분한 설득력도 갖추고 있고요. 무엇보다도 '점쟁이 탐정'이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아주 괜찮아요. 특히 우리나라에는 딱입니다. 탐정업이 공식적으로는 존재한 적도 없고 존재하지도 않는 우리나라에 어떤 '의뢰인'이 찾아와서 돈을 주면서 특정 사건에 대해 답을 요구하는 직업으로는 이만한 게 없잖아요? 실제로 <<극비수사>> 라는 영화의 실재 사건에서도 점쟁이에게 아이의 행방을 물어보았다고 하니 탐정역으로 충분히 등장할만한 직업이라 생각됩니다. 앞으로 잘 써먹고 싶은 설정이에요.
그 외에 새점이라는 지금은 사라진 일종의 전통 풍습, 청계천과 수포교, 다방과 설렁탕집 등 당대 거리를 이야기에 적절히 녹여낸 점도 볼거리였습니다.

그러나 탐정만으로 작품의 가치를 끌어올리기는 역부족이었습니다. 분량에 비하면 사건이 너무 많아서 잘 정리되어 보이지도 않는데다가 무리하게 독립군과 주인공 소녀 강영재의 이야기를 엮은 탓이 커요. 아무리 독립군이 정의의 조직이라고 해도 어린아이를 납치한 건 용서하기 어려운 범죄이며, 김필두가 강영재를 찾아와 칼을 책상에 꽂아가며 협박하는 묘사도 잘못한 건 마찬가지니까요. 어린 소녀에게 이게 뭐하는 짓인지 잘 모르겠네요. 차라리 일본 순사 기무라가 솔직하게 잘못을 인정하고 금전적인 도움을 준다는 점에서는 더 좋은 인물로 보일 정도입니다. 나중에 납치범들과 김필두는 독립군이며, 할머니 죽음은 김필두가 아니라 기무라가 관련되어 있다는 식의 생뚱맞은 결말도 영 납득이 가지 않았어요. 기무라가 할머니를 죽일 이유는 없잖아요?
또 할머니가 영재의 잃어버린 기억에 대해 이미 내용을 알고 있으면서도 알려주지 않은 이유도 불분명합니다. "스스로 자신을 되찾지 못하면 잃어버린 나라도 찾을 수 없다"는 이유인데, 말도 안됩니다. 잘못하면 청계천에서 몹쓸 짓을 당하고 죽어버렸을지도 모르는데 말이죠.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기발한 부분이 없지는 않지만 이야기 전개면에서는 아쉬움이 더 많았던 작품입니다. 점쟁이 탐정, 새점 탐정이라는 설정만 가져와서 성인 취향의 정통 추리물을 쓰는게 더 좋지 않았을까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