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을 사로잡은 꾼들 - 안대회 지음/한겨레출판 |
몇몇 사료를 바탕으로 주로 조선 후기에 이름을 날렸던 기인들을 소개하는 인물사 - 미시사 서적.
내용 대부분은 주로 조수삼의 <<추재기이>> 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 그 밖의 다양한 사료를 찾아 증명하고 보완하여 설명하려는 노력도 돋보이고 전체적으로 어렵지 않게, 쉽게 쓰여져 있어서 편하게 읽을 수 있어서 좋았어요.
제목과 부제인 "시대를 위로한 길거리 고수들 이야기" 만 보면 거리를 무대로 한 사기꾼이나 범죄자들이 연상되는데 의외로 지금으로 따지면 엔터네이너(?) 들이 주로 소개되고 있다는 점이 특이하더군요. 독특한 기예로 인기 연예인이었던 사람들이나 기생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거든요.
지금으로 따지면 성대 묘사의 대가인 "구기"의 달인 박뱁새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다양한 동물, 상황, 사람 목소리를 흉내내어 혼자서 극을 이끌어 나가는 공연의 달인으로 소갯글을 보면 무척 재미있겠더라고요. 지금은 실전되었다고 하는데, 뭐 남보원 선생님 등의 공연과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종친 남원군이 스승으로 모셨다는 전설적인 음악 거장 김성기의 존재도 눈길을 끕니다. 신분이 천했지만 남원군은 "재능이 있는 곳이 바로 스승이 있는 곳이다. 나는 재능을 스승으로 삼을 뿐, 귀천이 있고 없고는 모른다" 고 했다는데, 캬~ 정말 멋진 말이에요. 암요, 실력이 중요하죠.
그 외에도 재미있는 이야기, 즉 재담의 달인이었다는 김옹. 책을 재미있게 읽어주는 소설 구연 직업인 '전기수' 등 여러 당대 예인들의 소개가 이어지는데 모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재담은 지금으로 따지면 개그맨으로, 소설 구연은 오디오 북으로 이어지고 있는 등 그 명맥이 계속된다는 점에서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사람들이 좋아하는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그리고 당대 조선의 사고 방식으로는 생각하기 어려웠던 노처녀 삼월이와 같은 예인이 아닌 기인들 이야기도 많습니다. 삼월이는 세상 사람들 모두가 자신의 배필이라 여기며 장사하여 돈을 벌어 스스로를 꾸미며 항상 당당했다는데 이 역시 현재의 골드 미스와 비슷하죠? 이외에도 사랑 때문에 불가를 등진 비구니, 몰락한 양반 거지, 우월감 때문에 값비싼 서화골동품을 수집했다는 모지리들 이야기 모두 지금 시점에서 그렇게 낯설어 보이지 않는게 신기하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합니다.
참고로, 삼월이 이야기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건 삼월이보다 조선 후기 혼수를 애걸하는 박도령의 호소문이었습니다. 결혼하고 싶다는 절절한 내용이 이어지는 중간에 "기분이 안 좋을 때 마누라를 패는 재미가 어찌 없으랴?" 라는 문구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거 참, 결혼 못해도 싸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하지만 제목과는 거리가 먼 인물들의 이야기가 많은건 아쉬웠어요. 기생 이야기들 대부분이 그러했습니다. 한 남자에게 순정을 바쳤다던가, 번 돈을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베풀었다는 정도의 이야기인데 조금 독특할 뿐 시대를 대표한다던가, 무언가를 사로잡았다고 할 만한 내용은 아니에요.
게다가 아예 사료에 기반하지 않은 전설이나 야담에 가까운 이야기들은 실망스러운 수준이었습니다. 물고기로 변신한 여인, 의적 일지매와 점쟁이 이야기들로 전체 내용과 어울리지도 않고, 사료적인 가치도 없기 때문입니다.
또 쉽게 쓰인건 좋은데 깊이가 없달까요? 제목에 어울릴 만한 굵직한 인물의 묵직한 이야기가 전무해서 여러모로 기대에 미치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재미가 없지는 않고 저잣거리의 평범하지만 나름 명성을 떨쳤던 사람들을 모아 소개한다는 발상은 좋지만 재미 외의 또다른 가치 측면에서는 부족했기에 감점합니다. 몇몇 꼭지만 따로 분리해서 '살림 지식 총서' 분량으로 나누어 내는게 더 낫지 않았을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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