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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29

광고로 보는 근대문화사 - 김병희 : 별점 2점

광고로 보는 근대문화사 - 4점
김병희 지음/살림

살림 지식 총서 501. 제목 그대로 근대 신문 광고 분석을 통해 당시 문화를 조망해 본다는 취지의 문화사미시사 서적입니다.

살림 지식 총서치고는 두꺼운, 140페이지 정도 되는 분량도 좋지만 다방 광고를 통해 당시 (1911년) 다방에서는 소라와 전복까지 팔았다는 소소한 정보를 비롯하여, 미술관이나 도장 가게의 광고는 현재와 사뭇 다르기도 하면서도, 시대상과 문화를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재미있었습니다. 권번 기생 연합이 봉사료를 신문에 광고로 개제한 것 역시 마찬가지고요. 당시에는 기생이 당당한 직업이었다는 뜻이니까요. 또 신문 광고를 통한 사기극 역시 흥미로왔습니다. 10원을 투자하면 월 100원을 벌 수 있다! 자세한 내용은 30전을 보내면 알려주마!라는 광고로 이런 사기의 전형적인 모습이지요. 과연 얼마나 현혹되었을지 무척 궁금합니다. 그 외에도 '순수한 처녀의 피 (?)'라는 놀라운 카피의 포트 와인 광고나 콘돔 광고 등도 인상적이었으며, 미국 의학박사로 한국에 와서 간호사 양유식과 사랑에 빠졌지만 그녀의 죽음 후 순애보를 이어갔다는 '어을 빈'의 이야기는 더 찾아보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도판과 출처, 번역도 꼼꼼하여 자료적 가치도 높고요.

그러나 이렇게 광고를 기반으로 문화를 조망한다는 취지의 다른 책들에 비해 더 나은 점이 많냐 하면 그렇지는 않습니다. 저자의 의견이 많이 개입된 탓이 큽니다. 그것도 당대 문화에 대한 의견보다는 현대 세태 등에 대한 개인 의견들이 많아요. 이래서야 책 취지에는 영 걸맞지 않지요. 뒤로 가면 갈 수록 이러한 개인 의견 추가가 많아지는데, 특히나 해방 이후가 심합니다. 고려교향악단 정기연주회 광고를 통해 타악기의 결정적 순간에 대해 이야기하고, 원자력 책 광고를 소개하면서 지금의 원자력에 대한 인식을 논한다는 식으로요. 이래서야 역사서보다는 에세이에 가깝겠죠.
그 외에도 어머니와 아이의 일러스트를 크게 선 보인 광고를 소개하며, 지금의 '미니미 룩' 같다는 언급은 억지스러웠으며 저자의 말장난같은 글도 지나칩니다.

또 다른 유사 도서들과는 다르게 디자인에 포커스를 맞춘다던가, 재미있는 카피나 광고 문구에 주목하는건 좋지만, 이러한 내용이 별다른 카테고리 분류없이 단순 시대 흐름대로 두서없이 등장하는 건 아쉬웠어요. 차라리 '재미있는 광고 문구들', '시대를 앞서간 디자인' 등과 같이 명확히 주제 구분을 해 주었더라면 훨씬 좋았을텐데 말이죠.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저렴한 가격에 괜찮은 정보를 제공하기는 하지만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살림 지식 총서 대부분이 이 정도 수준에 그치는데, 앞으로는 구해 읽어보지 않을 생각입니다.

2020/02/28

백은의 잭 - 히가시노 게이고 / 한성례 : 별점 2.5점

백은의 잭 - 6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한성례 옮김/씨엘북스

<<아래 리뷰에는 트릭, 진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신게쓰 고원 스키장의 스키 시즌이 막 시작한 즈음, 익명의 메일이 도착한다. 스키장에 폭탄을 묻어두었다는 협박 메일로, 관리 책임자 쿠라타의 의견과는 다르게 경영진은 돈을 주고 사건을 무마하고자 한다. 협박범과의 거래를 위해 쿠라타는 스키장 패트롤 요원 네즈, 후지사키, 키리바야시의 도움을 얻는걸 허락받고, 3천만엔의 몸값을 건네준다. 그러나 몸값을 건네준 뒤에도 범인들의 협박은 계속되는데...

얼마전에 골프를 소재로 한 추리 소설을 읽었었죠. 이번에는 스키장을 무대로 스키어와 스노보더가 활약하는 작품입니다. 이른바 '설산 3부작'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으로 히가시노 게이고의 스노보드, 스키장 사랑이 물씬 느껴집니다.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가 스노보드에 빠진 경위를 설명하는 에세이를 전에 읽었었는데, 확실히 푹 빠졌구나 싶더라고요. 스키장과 스노보드, 스키 등 동계 스포츠에 대한 묘사가 아주 빼어나거든요.

그러나 단지 취미 생활을 소재로 한 소일거리 작품은 아닙니다. 범죄물로도 아주 괜찮아요. 스키장을 협박하는 범인들의 계획부터 그럴싸하니까요. 경영자 입장에서는 협박받은걸 경찰에 신고하여 영업을 그만두는게 더 큰 손실인건 당연하겠죠.
하지만 이건 그냥 양념에 불과합니다. 뒤에서 밝혀지는, 폭탄을 실제로 묻은건 현재 경영진이라는 진상은 더욱 놀랍습니다. 이유도 굉장히 설득력이 높아요. 스키장 매각을 용이하게 하려고 인기없는 호쿠게쓰 구역을 눈사태를 일으켜 없애버리려는 속셈이었죠. 일본의 법에 따르면, 스키장을 폐쇄하게 되면 그 지역의 자연을 원상태로 회복해야 하기 때문에, 그 돈을 투자하느니 아예 날려버리는게 낫다는 것입니다. 마침 범인 중 한 명인 마스부치 히데나리는 인기없는 코스가 엮여 있는 마을 촌장 마스부치의 아들로, 스키장에 매수된 아버지의 비밀을 알고난 뒤 이 계획을 저지하려고 스키장 협박을 시작한거죠.
범인들이 여러 차례 돈을 요구하며 협박한 이유도 합리적으로 설명됩니다. 돈을 손에 넣을 때 마다 스키장 슬로프 일부만 안전하다고 정보를 흘리면서, 국제 스키대회인 크로스 대회를 호쿠게쓰 구역에서 개최하게끔 유도하려는 의도였습니다. 호쿠게쓰 구역만 일단 안전한게 밝혀지면, 스키장에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으리라 생각한거에요.
그러나 세 번째 협박은 스키장 경영진의 역습이었다는게 기발합니다. 협박을 자작한 뒤 폭탄을 터트리고, 범인들이 협박에 실패하여 벌인 짓이라고 할 속셈이었다는게 이 역시 충분히 말이 됩니다. 여러모로 버블 이후 스키장의 어려움, 그리고 일본의 법을 잘 활용한 멋진 아이디어였어요.

이러한 범인, 스키장이 얽히고 섥혀 서로가 목적을 위해 암투를 벌이는 복잡한 이야기를 경찰에게만은 절대로 알리지 않으려고 하면서도, 은밀히 네즈에게 범인을 쫓아보라고 말하는 경영진의 석연치않은 행동이라던가, 일부러 네즈가 추격전을 벌일 수 있도록 유도한 세 번째 협박장 등을 통해 잘 드러내는 전개도 빼어납니다. 범인들이 스노보드의 명인들이라서 슬로프에 놓인 돈을 쉽게 회수할 수 있었다는 것도 결말과 잘 연결되고요.
안전보다는 돈을 더 생각하는 스키장 경영진, 이에 반대하는 관리 책임자 쿠라타와 용기있는 패트롤 대원 네즈와 후지사키 캐릭터도 단순하지만 이해하기 쉬워 좋았습니다. 쿠라타와 후지사키의 로맨스, 말괄량이 스노보더 치아키의 발랄함과 활약도 읽는 재미를 더해 줍니다.

그러나 호쿠게쓰 구역에서 일어난 사고로 아내를 잃은 이리에 부자가 폭발에 의한 눈사태 때문에 위기에 처한다는 마지막 결말 부분은 억지스럽습니다. 이리에 타쓰키의 경우, 전날 그 장소에서 극심한 공포를 느꼈는데, 다음날 아침에 다시 그 곳에 가고싶다고 이야기한다? 이건 말도 안되죠. 설령 아버지에 끌려 갔다치더라도, 전날과 마찬가지로 패트롤의 도움을 받는게 당연하고요. 게다가 신게쓰 고원 스키장을 매입하려는 세이운코사의 회장 부부가 이들 부자와 정말로 우연히 엮여 함께 위기에 처하게 된다는건 지나쳐도 너무 지나칩니다. 히요시 씨가 죽다가 살아난 뒤, 그 코스에 더 애착을 느낀다는건 억지 전개와 결말의 화룡정점이라고 할 수 있겠죠.
이런 작위적인 부분을 들어내고, 경영진의 음모와 이를 눈치챈 협박범 정도의 구도로 끌고가는게 더 좋았을겁니다. 꼭 필요했다면 우연은 범인들이 이리에 부인을 사망케 한 사고를 일으킨 스노보더였다는 정도로 끝내는게 좋았을거에요.

뭐 그래도 시원한 범죄 오락 소설로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4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을 한 번에 몰입해서 읽게 만드니까요. 스토리텔러로서의 히가시노 게이고의 능력이 잘 발휘된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인기 작가의 괜찮은 오락 소설이니 영상화된건 당연한데, 조사해보니 TV 스페셜 드라마로 2014년에 방영되었더군요. 그런데 쿠라타 역은 와타나베 켄, 후지사키 리오 역은 히로스에 료코, 네즈 역은 오카다 마사키라는 나름 화려한 캐스팅에 놀랐습니다. 캐스팅 때문인지 네즈보다 쿠라타의 비중이 엄청나게 커 보였고요. 뭐 이런 각색이야 얼마든지 할 수 있겠지만, 설산에서의 박력있는 활강은 전혀 그려내지 못한 듯 싶어 제대로 볼 생각이 들지는 않네요.

2020/02/27

더 이퀄라이저 2 (2018) - 안톤 후쿠아 : 별점 2.5점




지난 주말, 코로나 바이러스로 도저히 어디 갈 수가 없어서 넷플릭스로 감상한 영화. 예전에 감상했던 1편이 괜찮았기에 2편도 조금은 늦었지만 찾아보게 되었네요.

1편에서의 사건 때문인지 로버트 맥콜은 더 이상 홈센터에서 일하지 않고 택시 운전사로 일하는데, 단골 서점 주인의 딸을 구하기 위해 터키 악당들을 물리치고, 마약에 취해 성폭행당한 여성의 복수를 위해 파티 주관자들을 응징하고, 동네 마약 판매상들로부터 이웃 청소년 마일즈를 구해낸다는 이야기들은 세상의 선과 악을 균등하게 만드는 심판자 "더 이퀄라이져" 스럽습니다. 성폭행 파티 참석자들을 응징하고 경찰을 부르면 맥콜이 범인이라는게 쉽게 드러날거라는 문제를 너무 대충 넘기지 않았나 싶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액션도 볼만하고 이야기 하나하나에서 이웃간의 정이 느껴지기도 해서 아주 마음에 들었어요.

그러나 이 이야기들은 영화의 핵심인 과거 정보기관에서 일할 때 친구의 복수를 위해 살인 청부업자가 된 옛 팀원들 모두를 죽이는 복수극과는 잘 어울리지는 않았습니다. 게다가 이 복수극은 너무 뻔했어요. 과거 잘 나가던 영웅이 은퇴한 뒤, 복수나 다른 모종의 임무를 위해 악을 처단한다는 이야기에 불과하니까요. 오히려 로버트 맥콜의 과거를 제대로 밝히지도 않고, 복수를 위한 수사의 치밀함도 부족해서 유사한 복수극보다도 완성도는 떨어집니다. 범인들이 엘리베이터 버튼을 먼저 눌렀다는 정보를 CCTV를 통해 밝혀내는 정도만이 조금 그럴싸 했을 뿐입니다. 게다가 정작 그 범인들은 사전에 모두 정리되어 버리고요. 맥콜이 진짜 흑막 데이브의 정체를 알아내는건 자신을 습격한 킬러의 휴대폰을 통해서라는 전개는 개연성, 설득력 모두 떨어지는 작위적인 이야기에 불과했어요. 애초에 이럴거라면 뭐하러 킬러를 고용합니까? 자기 정체를 알기 전에 초대해서 몰래 죽이면 되지....
또 이 영화의 매력은 평범한 이웃 노인이자 택시 운전사인 로버트 맥콜이 알고보니 악을 모조리 응징해 버리는 응징자라는 것인데 그런 로버트 맥콜의 캐릭터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게 가장 큰 문제에요. 복수를 실행할 때의 로버트 맥콜은 인간 흉기 그 자체로 묘사되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전의 동료들이자, 지금은 살인 청부업을 하는 데이브와 팀원들의 최후도 허무합니다. 4명이나 되는 젊은 살인 전문가들이 팀을 짜서 움직이지만 60이 넘은 할아버지에게 반항도 못하고 나가떨어지는걸 보면 한심하기 그지 없어요. 마일즈를 인질로 잡았음에도 잘 써먹지 못하고, 오히려 태풍이라는 자연재해 때문에 궁지에 몰리는 데이브를 보면 과연 이놈이 프로가 맞나 싶은 생각마저 듭니다.
액션도 여전히 화려하고 멋지긴 하지만 전편에서 눈에 띄었던 근접 격투 장면이라던가, 시작 전 시계를 맞추고 특정 동선에 따라 움직이는 등의 특징이 거의 드러나지 않습니다. 이 역시 매력 포인트였는데 말이죠.

물론 이 복수극 와중에서 건질만한 장면이 없는건 아닙니다. 맥콜의 집에 페인트를 칠해주기 위해 방문한 마일즈가 습격한 데이브와 킬러를 피해 비밀 장소에 숨는 장면은 긴장감이 정말로 압도적이더군요. 간만에 쫄깃하게 보았네요.
또 캐릭터의 매력은 무뎌졌지만 맥콜의 카리스마만큼은 여전합니다. 마일즈가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자신의 집 안을 CCTV 모니터링으로 확인한 뒤 데이브에게 전화를 걸어 "오랫동안 귀가하지 않을 예정이니 화분에 물 좀 줘라"고 말하는 장면, 그리고 데이브와 옛 팀원을 만난 자리에서 "너희들 모두를 죽일거다. 내 친구는 건드리지 말았어야지. 한 번 밖에 죽일 수 없는게 유감이다"라고 말하며 데이브 아내를 도와주는 척 하며 유유히 그 자리를 빠져나가는 장면은 정말 멋져요. 절대자, 최강자이자 고수의 풍모가 물씬 넘쳐납니다.

그러나 여러모로 전 편보다는 못했기에 별점은 2.5점입니다. 흥행 성적을 보아도 3편이 나올 것 같지는 않네요. 동네 소시민의 "더 이퀄라이져" 스러운 이야기들은 마음에 들었던 만큼, 이런 류의 에피소드들로 구성된 TV 시리즈로 나오면 좋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2020/02/24

2019년 하우미스터리 선정, 올해의 추리소설!

매년 이맘때쯤 발표되는 하우미스터리 선정 올해의 추리 소설입니다. 2019년 한 해 동안 출간된 추리 소설을 대상으로, 하우미스터리 회원들이 선정한 결과입니다. 33명만이 참여했을 뿐이지만 투표하신 분들이 대부분 추리 애호가라는 점에서 상당히 공신력있는 결과물이라 생각합니다.

대망의 2019년 1~3위는 아래와 같습니다.

공동 1위 11표
<미스터리 아레나>, 후카미 레이이치로, 김은모, 엘릭시르
<피부밑 두개골>, P. D. 제임스, 이주혜, 아작

공동 3위 8표
<조용한 무더위>, 와카타케 나나미, 문승준, 내 친구의 서재
<내가 죽인 남자가 돌아왔다>, 황세연, 마카롱

공동 1위인 두 작품 모두 저도 아직 읽어보지 않았는데, 이번 기회에 한 번 읽어봐야겠네요.
다른 추천작들이 궁금하시면 상기 링크를 통해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제 선정은 아래와 같습니다.
1. <<블러디 프로젝트>>
2. <<일러바치는 심장>>
3. <<조용한 무더위>>

2017년 하우미스터리 선정, 올해의 추리소설!

요리 만화들 짤막한 감상 (5)

쿠미카의 미각 1 - 6점
아키히로 오노나카 지음, 유유리 옮김/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식사가 필요없는 절약 근성 노력가 외계인 쿠미카가 지구에서 일하면서 서서히 음식에 길들여진다는 작품. 쿠미카가 식사를 하면서 여러가지 감각을 느끼고, 새로운 경험을 한다는 전개는 일견 독특해 보이지만 반대로 뒤집었을 뿐, 이세계에서 이종족에게 이쪽 요리를 대접한다는 판타지와 별로 다르지는 않아요. 새롭고 맛있는 요리를 먹고 감탄하며 놀라는 묘사도 동일하고요. 이야기도 새로운 음식에 놀란다는 경험이 반복될 뿐입니다.

오히려 한 푼이라도 아껴 모성에 돈을 보내야 한다는 쿠미카의 설정에 따른 이야기들이 더 재미있었습니다. 처음으로 무언가를 구입해서 요리를 하게 될 때의 감정 묘사나, 처음으로 여자 외계인들끼리 파자마 파티를 할 때 무엇을 입을지 고민하는 모습들은 아주 귀여웠거든요. 억지로 음식 이야기를 집어넣지 말고 이런 이야기로 그려나가는게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되네요.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덧붙이자면, 절박한 상황에서 열심히 일하며, 다행히 호흡만으로 살아갈 수 있는 쿠미카에게 음식의 맛을 알게 해 그녀에게 불필요한 돈을 쓰게 만드는 치히로는 정말이지 사악한 악당이라 생각됩니다. 천벌 받을 놈 같으니라고.


[고화질] 마감의 미식가 - 6점
츠치야마 시게루/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작년에 유명을 달리한 만화가 츠치야마 시게루의 단권 완결 일상계 음식 만화. 마감과 작가들과의 교섭, 접대에 시달리는 편집자 시노하라 카오루 (38)가 그 때 그 때 상황에 따라 그날 그날을 마감하기 위해 먹는 요리들을 주제로 다루고 있습니다. 제목과 구성을 보면 <<고독한 미식가>> 시리즈의 인기에 편승한 기획물로 보이네요.

그래도 이 작품만의 특징도 확실합니다. 주인공이 편집 업무를 하면서 만나는 작가들과의 에피소드가 많은데, 그러한 만남을 어떻게든 음식과 이어가며 드라마를 만드는 노력이 돋보이거든요. 약간이나마 기승전결이 있다는 점에서는 <<고독한 미식가>> 보다는 나은 측면이 있어요. 츠치야마 시게루의 연륜이 돋보이는 그림도 나쁘지 않고요.

등장하는 음식들은, 초반에는 주로 그날 자기 전 마지막으로 먹는 음식들입니다. 말 그대로 그날 하루를 마감하는, 우리말로는 '야식'에 가까운 음식들로 모두 간편식에 가깝죠. 컵우동과 집에서 남은 카레를 섞어 만드는 카레 우동, 길거리 포장마차 라면편의점 오뎅 등이 그러하죠.
그러나 뒤로 가면 갈 수록 자기 전이 아니라 그날 업무를 마감한 뒤 먹는 음식으로 바뀝니다. 아마 간단한 야식만으로는 이야기를 끌고나가기 힘들었기 때문에 생긴 변화라 생각되네요. 그래서 제대로 된 식당에서 제대로 된 음식들을 먹게 됩니다. 선술집이나 규동집 등 좀 대충 먹는 음식도 있지만 중화요리집의 교자와 라멘이라던가 기리탄포 나베, 굴 나베 등 제대로 된 음식도 많아요.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3점. 개인적으로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후속권이 이어지지는 않은게 아쉬울 뿐입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주문 배달의 왕자님 1 - 6점
타카세 시호 지음/대원씨아이(만화)

'배달 음식'을 소재로 한 작품. 그러나 우리나라 배달 음식과는 다릅니다. 주로 일본 각 지역 유명 맛집 대표 요리를 배달용으로 가공한 것들을 다루고 있거든요.

소재도 독특하지만 주인공인 이이다 역시 범상치 않습니다. 오타쿠 엔지니어로 사교성이 부족하고 자기 중심적인 성격으로 묘사되거든요. 때문에 배달음식으로 혼밥, 혼술을 즐기고 먹은걸 SNS에 '왕자님'이라는 닉네임으로 올리는게 유일한 취미죠. 그야말로 배달 음식과 딱 맞는 인물입니다.
야근이 잦고, 이런저런 독특한 인물들이 넘쳐나는 IT 업계의 묘사도 나쁘지 않습니다. 소소하게 이이다와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를 풀어놓는 것들도 좋았고요. 덕분에 극적인 드라마가 없더라도 상당히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많았어요. 이런게 오히려 현실적이겠죠. 평범한 회사원 인생에 뭐 그리 특별한 일이 있겠습니까.
등장하는 배달 음식들은 일본에 실존하는 음식들로, 상당히 흥미로운 음식들이 많습니다. 완성된 음식 외에도 재료 배달에 가까운 음식도 많은데, 이이다의 요리 솜씨가 제법 괜찮아서 항상 그럴듯한 요리들이 태어납니다. 완성된 음식들도 나름의 어레인지로 이런저런 변화를 선사하고요.

그래서 별점은 3점. 적당한 재미에 그림도 좋고, 음식과 요리들도 만족스럽습니다. 배달 요리도 한계가 있는 만큼, 적당한 시점에 완결을 내 준 것도 마음에 든 점이에요. 비슷한 주인공을 등장시켜 우리나라 특유의 '편의점 레시피'를 만화로 만들어도 재미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요리 만화들 짤막한 감상 (4)

2020/02/23

그때, 맥주가 있었다 - 미카 리싸넨.유하 타흐바나이넨 / 이상원.장혜경 : 별점 2.5점

그때, 맥주가 있었다 - 6점
미카 리싸넨.유하 타흐바나이넨 지음, 이상원.장혜경 옮김/니케북스

유럽의 기나긴 역사에서 맥주가 중요한 대목을 장식했던 이야기들을 선별하여 소개하는 미시사음식사문화사 서적. 역사 속 맥주가 관련된 특정한 사건을 수 페이지 정도 소개한 뒤, 해당 사건과 관련된 현대의 맥주를 마지막에 소개하는 식으로 24편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취지에 걸맞는 내용이 많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맥주 때문에 정말 역사의 흐름이 바뀌거나 한 이야기는 기대도 하지 않았어요. 그러나 역사의 어떤 한 장면에서 맥주가 멋지게 등장하거나 활용된 정도는 기대했는데, 절반 이상의 이야기가 그렇지 못합니다. 단순히 유럽의 특정 역사를 소개하면서 '그 때는 아마 맥주를 마셨을거다' 정도에 그치거든요. 추정 자체는 꽤 그럴싸 합니다. 문제는 사료로 증명되지 않는다는 점이죠.
조금 맥주와 관련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어떤 이야기들은 단지 등장인물들이 맥주에 관련된 직업에 종사했거나, 맥주 회사가 관련되어 있는 정도에 그칩니다. 예를 들자면 난센의 북극 탐험은 단지 링그네스 양조장에서 탐험 비용을 후원했을 뿐이죠. 히틀러가 맥주집에서 바이에른 정부를 실각시키고 제국 정부를 수립하는 쿠데타를 일으켰던 역사를 맥주와 관계가 있다고 하기도 좀 애매하고요. 옥스퍼드 대학 문인들이 펍에서 열리는 문학 클럽에 참석하다가 <<반지의 제왕>>과 <<나니아 연대기>> 등을 발표하게 되었다는 것 역시 장소가 펍일 뿐입니다. 딱히 맥주와 관련이 있지는 않아요. 바이마르 공화국의 외무 장관 역할을 멋지게 수행했던 구스타프 슈트레제만의 이야기나 체코 대통령 하벨의 이야기는, 그 둘이 술집에서 일했던 경력이 있다는게 전부고요.

그래도 맥주가 중요하게 등장하는 이야기들도 많고 시기적으로는 수도원에서 맥주를 양조하기 시작했을 때 부터 현대까지, 장소로는 유럽 전역을 무대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소개하고 있어서 그 폭은 상당히 넓고 방대합니다. 때문에 재미있는 이야기, 새로운 이야기들이 적지는 않은 편이에요.
맥주가 중요한 이야기부터 살펴보자면, 30년 전쟁 당시, 목마른 스웨덴 왕 구스타브 아돌프가 농부로부터 맥주를 대접받은 후 커다란 루비가 박힌 금반지를 답례로 선사하고, 브라이텐펠트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었다는 일화는 명백히 맥주가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사료로 증명되지는 않은 전설급의 이야기라고는 하지만요. 그래도 이 전설 후에도 해당 지역에서는 계속 맥주를 만들어 왔으며, 지금의 크로스티츠 양조장은 유럽에서 가장 현대적인 양조 시설 중 한 곳으로 대표작인 '파인헤르베스 필스너'는 라벨에 구스타브 아돌프의 초상화를 담아 판매되고 있다고 합니다. 400년 이상 된 전설 속 맥주라니 마케팅으로는 더할 나위 없네요.
1836년, 유럽 대륙 첫 철도 운송 화물이 뉘른베르크 레데러 양조장에서 퓌르트로 보낸 맥주 두 통이었다는건 역사적으로 증명된 사실입니다. 레데러는 현재도 독일 리데베르거 그룹의 계열사로 '레데러 프리미엄 필스'를 계속 출시하고 있답니다.
파스퇴르가 맥주 양조 분야에서 독일을 물리치기 위해 열정을 불태웠다는 이야기도 맥주가 중심입니다. 영국 위트브레드 양조장과 협력하여 최적의 열처리 온도가 섭씨 50~55도라는걸 알아내는 등 이런저런 과정을 거쳐 <<맥주에 관한 연구>>라는 유럽 맥주 양조인의 경전과도 같은 책을 출간했다는 내용이니까요. 그런데 그의 맥주 실험의 가장 큰 수혜자는 프랑스가 아니라 코펜하겐의 칼스버그 양조장이라는게 재미있네요. 결국 칼스버그에서 파스퇴르의 꿈이었던 미생물없는 라거 맥주 효모 배양에 성공했다니 진짜 후계자인 셈입니다.

처음 알게 된 이야기도 제법 됩니다. 오줌싸게 소년 동상의 모델은 브라반트 공국의 수장인 어린 고드프리 3세로, 당시 반란군을 진압하기 위해 어린 나이로 출정했을 때 반란군을 향해 오줌을 싼 게 유래라는 설이 대표적입니다. 이 때, 유모가 맥주를 마시고 수유를 했거나 아니면 실제로 맥주를 마셔서 요의를 느꼈을 거라고 설명하는건 좀 억지스러웠지만, 나름 재미있었어요. 함께 알려주는 브라반트 공국의 중심지 브뤼셀의 전통있는 맥주 '램빅'도 아주 입맛을, 아니 흥미를 돋구고요.
스웨덴의 미식가 전쟁 영웅 요한 아우구스트 산델스 역시 이전에는 알지 못했었던 인물입니다. 1808년, 스웨덴과 러시아가 핀란드에서 벌였던 전쟁에서 활약한 영웅입니다. 다만 소개되는 이야기 속에서 맥주 관련된 일화는 없습니다. 러시아 군 보급품을 털었을 때, 맥주도 함께 털었을거라고 추정하는게 전부죠. 그래도 지금 '산델스'라는 이름의 맥주가 산델스가 활약했던 핀란드 양조장 올비에서 양조되어 판매된다니 한 번 마셔보고 싶네요.

근현대사로 넘어오면서는 재미가 덜하지만, 1935년 투르 드 프랑스 경주에서 맥주 탓에 벌어진 순위 변경이라던가, 이탈리아 경제 성장기에 함께 발전한 페로니 맥주의 마케팅 전략, 아일랜드가 무섭게 성장하다가 리먼 사태 등으로 휘청일 당시, 카우언 총리의 기네스 맥주 사랑 등은 기억에 남네요. 특히 폴란드의 맥주 애호가 정당 이야기는 온갖 정당이 창궐하는 지금의 우리나라를 연상케 해서 제일 인상적이었고요.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기획 의도대로 완벽하게 쓰여진 책은 아니지만 그런대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처음 알게된 이야기들이 많기도 하고, 저자들의 글 솜씨도 유쾌하기 때문이죠. 맥주 한 잔 하면서 읽으면 더욱 좋지 않을까 싶네요.
마지막으로, 책에서 소개하는 맥주 리스트를 인용하며 리뷰를 마칩니다. 이 중에서 우리나라에서 파는 맥주는 한 개 씩 구입해서 마셔볼 예정입니다.

1. 생 푀이엥 트리플 St-Feuillien Triple 벨기에
2. 칸티용 괴즈 100% 램빅 바이오 Cantillon Gueuze 100% Lambic Bio 브뤼셀 (벨기에)
3. 아인베커 우어 보크 둔켈 Einbecker Ur-Bock Dunkel 아인베크 (독일)
4. 린데만스 파로 Lindemans Faro 블렌제비트 (벨기에)
5. 우어 크로스티처 파인헤르베스 필스너 Ur-Krostitzer Feinherbes Pilsner 크로스티츠 (독일)
6. 발티카 No.6 포터 Baltika No.6 Porter 상트페테르부르크 (러시아)
7. A. 르꼬끄 포터 A. Le Coq Porter 타르투 (에스토니아)
8. 올비 산델스 Olvi Sandels 이살미 (핀란드)
9. 레데러 프리미엄 필스 Lederer Premium Pils 뉘른베르크 (독일)
10. 위트브레드 베스트 비터 Whitbread Best Bitter 웨일스의 마고 (영국)
11. 칼스버그 Carlsberg 코펜하겐 (덴마크)
12. 링그네스 임페리얼 폴라리스 Ringnes Imperial Polaris 오슬로 (노르웨이)
13. 그랭 도르주 뀌베 1898 Grain d'Orge Cubee 1898 릴 (프랑스)
14. 레벤브로이 오리지널 Lowenbrau Original 뮌헨 (독일)
15. 베를리너 킨들 바이세 Berliner Kindl Weisse 베를린 (독일)
16. 크로넨버그 1664 Kronenbourg 1664 오베르네 (프랑스)
17. 그래비타스 Gravitas 브릴 (영국)
18. 스핏파이어 프리미엄 켄티시 에일 Spitfire Premium Kentish Ale 파버샴 (영국)
19. 페로니 나스트라즈로 Peroni Nastro Azzurro 로마 (이탈리아)
20. 크라코노시 스베틀리 레작 Krakonos Svetly Lezak 트루트노프 (체코)
21. 지비에츠 Zywiec 지비에츠 (폴란드)
22. 사라예브스코 피보 Sarajevsko Pivo 사라예보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23. 기네스 드래프트 Guineness Draught 더블린 (아일랜드)
24. 하이네켄 Heineken 암스테르담 (네덜란드)

2020/02/22

추리소설 속 트릭의 비밀 - 에도가와 란포 / 박현석 : 별점 2.5점

추리소설 속 트릭의 비밀 - 6점
에도가와 란포 지음, 박현석 옮김/현인

일본의 추리 소설가 에도가와 란포의 전설적인 에세이. 국내 출간은 늦은 감은 있지만 드디어 출간되었네요. 오래 전 부터 존재를 알고 있던 책이기도 하고, 저 역시도 추리 소설 (물론 요리들 중심이지만)에 관련된 에세이를 출간한 경험이 있기에 기쁜 마음으로 구입해 읽었습니다.

책은 1956년에 출간되었으며, 주로 1950년대 <<환영성>> 등 이런저런 잡지들에 기고했던 에세이들을 모아 놓은 구성입니다. 1953년, 에도가와 란포가 영미 탐정소설에서 예전부터 사용되던 트릭을 800여개 수집하여 쓴 <<유형별 트릭 집성>>이라는 글이 유래이며, 이 글로부터 여러가지 에세이들이 파생되어 이런저런 잡지들에 수록되었다고 하네요.

목차는 아래와 같습니다.
서 ―이 책의 탄생과정
1. 기발한 착상
2. 뜻밖의 범인
3. 흉기로써의 얼음
4. 특이한 흉기
5. 밀실 트릭
6. 은닉 방법에 관한 트릭
7. 프로버빌리티의 범죄
8. 얼굴 없는 시체
9. 변신 소망
10. 이상한 범죄동기
11. 탐정소설에 나타난 범죄심리
12. 암호기법의 종류
13. 마술과 탐정소설
14. 메이지의 지문 소설
15. 원시 법의학서와 탐정소설
16. 스릴에 대해서
이런 주제별로, 에도가와 란포가 직접 이런저런 소설의 예를 충실히 들어가며 설명해 줍니다. 책의 특성 상 당연히 핵심 트릭이 까발려지고요. 노리즈키 린타로의 "나쁜 놈들은 추리 작가가 피를 토하는 노력 끝에 고안한 트릭을 쏙 빼다가 미스터리 가이드북이라는 이름으로 팔아먹는 녀석들이지. 이쯤 되면 기생충 수준이야."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그런 기생충같은 책인거죠. 그나마 다행인건 지금은 읽기 힘든, 오래전 잊혀진 작품들이거나 우리가 접하기 힘든 일본 고전들, 아니면 너무나도 유명한 작품이 많다는 것입니다. 에도가와 란포 자신의 작품 이야기도 많이 소개된다는 점에서는 약간의 면죄부를 줄 수 있지 않나 싶기도 하고요. 또 미스터리 가이드에서처럼 어떤 작품에서 어떤 트릭이 쓰였다고 명확하게 이야기해 주고 있지는 않습니다. 좀 두루뭉실, 애매하게 소개하고 있거든요. 뭐 그래도 알 사람은 다 알겠지만...
그래도 거장이 쓴 책 답게, 단순히 트릭을 분류하여 정리하는 것에 그치지는 않습니다. 본인 스스로의 분석을 통해 깊이있는 식견을 보이는 글도 많아요. 마지막 16장인 <<스릴에 대해서>>가 좋은 예입니다. 스릴의 종류를 상세히 분류하여 이를 단계별로 설명하는 내용인데, 실로 이치에 맞고 설명도 적합하여 무릎을 치게 만듭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들을 예로 드는 것도 아주 좋았고요.

그러나 기대에 미치지 못한 글들도 제법 눈에 뜨입니다. 가장 큰 이유는 이 책이 처음 발표된 시점에서 60여년 이상 지난 탓이 가장 크겠죠. 대표적인 예는 <<이상한 범죄 동기>>에서 결코 좋은 작품이라 할 수 없었던 <<대통령의 미스터리>>를 길게 설명하는 부분입니다. 이 책이 발표되었을 당시에는 일본에는 거의 읽어본 사람이 없는 책이라 특별히 소개했던 모양인데, 지금 상황에는 너무나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암호 기법의 종류>>도 마찬가지로, 지금 읽기에는 다른 비슷한 책에 비하면 내용이 굉장히 부실한 편이에요. 메이지 시대 지문을 증거로 삼는 소설이 처음 등장했다는 역사적 사실만 소개하는 <<메이지의 지문 소설>>도 시대에 걸맞지 않은 이야기였고요.
아울러 하나의 트릭으로 완전히 자리잡은 서술 트릭이 빠져 있는 등, 현대적인 작품 속 최신 트릭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점도 문제입니다. 시대적으로 어쩔 수 없었더라도, 출판사나 후대의 작가가 증보판을 출간하는 선택지는 없었을까요? 제가 가끔 읽는 'oo의 지구사' 시리즈에 주영하 씨가 한국의 상황에 대해 수록한 글처럼, 다른 작가가 부록 형식으로 뒤에 최신 트렌드를 덧붙이는건 얼마든지 가능했을텐데 말이죠.
그 외에도 책의 완성도, 모양새 역시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고 도판도 부실합니다. 또 책 속에서 소개된 작품이 국내에 출간되었는지 여부, 그리고 출간되었다면 무슨 제목으로, 어디에서 출간되었는지를 따로 소개해 주는 정도의 노력은 필요했어요. 어차피 추리 소설의 애호가들만 구입할 이런 류의 책에서는 필수적인 정보인데 여러모로 아쉽네요.

그래서 별점은 2.5점. 나름의 가치는 분명하나 여러모로 지금 읽기에는 낡은 결과물입니다. 책의 완성도도 부족하고요. 추리 소설의 대단한 애호가가 아니라면 구해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물론 추리 소설 애호가시라면 즐길 거리가 제법 되는 만큼, 한 번 읽어보셔도 나쁘지는 않을 거에요. 하지만 그게 누가 되었건, 누군가가 21세기에 걸맞게 내용을 수정하고 덧붙여 개정증보판 형식으로 재출간해 주면 더욱 좋겠습니다.

2020/02/21

미스터리는 풀렸다! - 박광규 : 별점 2.5점

미스터리는 풀렸다! - 6점
박광규 지음, 어희경 그림/눌민

주간 경향에 연재되었던 계간 미스터리 편집장이셨던 박광규씨의 컬럼을 모은 책. 추리 소설 관련된 이아기들을 여러가지 주제로 분류하여 소개하고 있습니다. 연재 당시에 재미있게 읽었었죠. 당시 대부분 읽은 터라 별도의 단행본을 구입할 생각은 없었는데, 마침 헌책방에 올라와있기에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저도 추리 소설이라면 남 못지 않게 읽은 탓에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 많기는 했습니다. 그래도 웹 사이트가 아니라 책으로 진득하게 읽으니 이전에 놓쳤던 세세한 디테일들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클라이브 커슬러의 시리즈 주인공 더크 피트가 얼마나 말도 안되는 상황에서 생환하는지, <<스트라이크 살인>>의 탐정역이었던 프로야구 선수 하비는 후속작에서 아예 사립탐정으로 전직했다던지, 제닛 에바노비치와 기리노 나쓰오가 원래는 로맨스 소설 작가였다던지, 요코미조 세이시는 편집자 시절 에도가와 란포의 이름을 빌린 대필 작품을 발표했다던지, 체스터튼은 194cm에 135kg의 거구였다던지 등 시시콜콜하면서도 쉽게 알 수 없는 정보들은 다시 읽어도 충분한 재미를 전해주고요. 펠레, 나브라틸로바, 찰스 바클리가 추리 소설을 발표했다는 황당한 이야기를 다른 책에서 읽기는 어려울겁니다. 공저라고는 합니다만.
다카키 아키미쓰가 <<문신 살인사건>>을 쓰게 된 이유가 점술사의 권유였다는 것도 처음 알았네요. 심지어 점술사가 대가에게 원고를 보내라고 해서 에도가와 란포에게 보낸 뒤 출간과 성공이 이어졌다는 이야기를 보면, 점이라는게 그냥 미신으로 치부할건 아니구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이러한 시시콜콜한 추리소설 관련 뒷 이야기 외에도 '헌사'에 대한 여러가지 정보와 소설 속 화폐가치를 현재 가치로 치환하여 알려주고, 추리 소설 속에 등장했던 동물들에 대해 소개하고 제목이 바뀐 작품들의 이유를 알려주는 등의 좋은 분석 자료들도 많습니다.
무엇보다도 이런 류의 추리 소설 정보서에서 보기 드물게 국내 작품 소개가 많다는 점은 높이 평가할 만 합니다. 저도 꽤나 애호가라고 생각하지만 황세연이 1998년 발표한 단편 <<떠도는 시체>>같은 작품은 들어본 적도 없으니까요. 박광규씨의 내공의 깊이, 그리고 연륜에 찬사를 보낼 수 밖에요.

또 이런 류의 책이라면 빠질 수 없는, 읽지 않고 잘 몰랐던 작품들 소개도 빼어납니다. 무엇보다도 스포일러 등 핵심 정보 공개를 최소화하면서 작품을 소개하는 솜씨가 정말 대단하더라고요. 핵심 내용이 빠진채 소개되는 작품들도, 그 정도의 소개만으로도 읽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니까요. 스티븐 킹의 <<죽음의 지대>>, 딘 쿤츠의 <<어둠의 소리>>, 구라치 준의 <<별 내리는 산장의 살인>> 등은 꼭 찾아서 읽어봐야 겠습니다. 소개 이후 진상이 너무나 궁금하니까요. 히가시노 게이고의 <<백은의 잭>>도 마찬가지고요. 이런 줄거리 요약은 저도 배우고 싶어집니다.

그러나 아쉬운 점도 분명합니다. 일단은 작품들이 고르게 소개되고 있지는 않다는 점이겠죠. 소개되는 작품은 1차대전 부터 1930년대 후반까지의 황금시대 (골든에이지)와 1990년대 후반 작품들이 대부분입니다. 추리 소설 강국이기는 하지만 비중만 놓고 보면 영, 미에 비하기 어려운 일본 작품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은 점도 같은 이유로 문제고요.
억지스럽게 가져다 붙인 소재들도 약간은 거슬렸습니다. 무주택자 탐정을 소개하면서 <<행각승 지장 스님의 방랑>>의 지장 스님을 예로 드는게 대표적입니다. 행각승이 집이 있을리가 없잖아요? 특이한 캐릭터 설정이나 이야기 전개에 따른게 아니라, 단지 직업 탓에 집이 없는걸 특이하다고 설명하는건 억지죠. 예로 든 바와 같이 진짜 집이 없는 주인공은 잭 리처 정도면 족했습니다. 노리즈키 린타로가 요리를 즐긴다는 것도 딱히 와 닿는 설명은 아니었고요. 이 역시 <<수수께끼가 있는 아침 식사>>처럼 요리가 직업인 탐정을 예로 드는게 더 낫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마지막으로, 이건 정말 큰 문제인데 연재 때에는 풍성했던 여러가지 자료 도판이 전무하다는건 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저작권 문제가 있었던 걸까요? 유명 작가들의 아들, 딸 관련 글에서 작가들 가족 사진같은건 꽤 인상적이었었는데 말이죠.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완벽하지는 않지만 즐길거리가 많은건 분명합니다. 저처럼 연재 당시에 이미 읽으셨던 분들이라면 또 읽어보실 필요는 없지만, 추리소설을 좋아하신다면 가볍게 읽을거리로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2020/02/20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 (2018) - 우에다 신이치로 : 별점 2.5점



작년 세간의 화재였던 일본의 독립영화. 워낙 평이 좋았던 탓에 관심이 컸었는데, 넷플릭스에 올라와있길래 주말에 감상하게 되었습니다.

다행하게도 스포일러의 피해를 입지 않고 아무런 사전 정보없이 감상했는데, 꽤 재미있었습니다. 조금은 어설픈 좀비 영화로 초반부에 달려주다가, 이 영화를 찍으면서 벌어지는 여러가지 좌충우돌, 해프닝을 극복하고 어떻게 영화를 만들었는지를 보여주는 중반 이후 과정의 대비가 확실한 덕입니다. 여러가지 해프닝이 영화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도 상당히 볼거리이고요. 초반에 분장사와 배우들 사이의 대화에서 갑자기 등장하는 호신술 이야기, 음향감독이 갑자기 좀비가 있는 밖으로 뛰쳐나간 이유, 좀비 습격 상황에서 선보인 기묘하면서도 독특한 촬영 등이 실제로 촬영 중에 있었던 여러가지 문제로 벌어진 이야기라는게 설득력있으면서도 재미있게 설명되니까요. 이 와중에 분장사의 호신술 ('퐁!') 과 같은 디테일한 복선들의 활용을 보면, 이래저래 굉장히 고민해서 각본을 쓴 티가 물씬 납니다.

그렇지만 기대했던 만큼 신선하거나 재미있던건 아니에요. 원래 있었던 기획이 실제 제작을 하면서 산으로 가지만 제작진의 노력으로 어떻게든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다는 이야기는 이미 <<웰컴 미스터 맥도날드>>에서 선보인 바 있기 때문입니다. 생방송이라서 어떻게든 촬영을 이어간다는 설정도 똑같죠. 오히려 상황의 황당함과 암담함 면에서는 <<웰컴 미스터 맥도날드>>가 한 수 위입니다.
마지막에 고장난 지미집대신 인간 쌓기(?)로 고공 촬영을 구현하는 장면도 촬영팀의 협력과 가족간의 사랑을 드러내기는 하지만 여러모로 작위적이라 별로였어요. 코미디에 신파를 섞는 한국 영화보다야 낫지만, 왜 이런 어설픈 가족 이야기를 넣었는지 잘 모르겠네요. 이럴 바에야 그냥 막 가면서 웃겨주는게 더 좋았을 겁니다. 소소하게 웃기기는 한데 크게 빵 터지는 부분이 없어서 아쉬웠거든요.

그냥저냥 볼만한 소품이기는 한데, 대박을 칠 만큼의 작품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2020/02/16

구제의 게임 - 가와이 간지 / 이규원 : 별점 1.5점

구제의 게임 - 4점
가와이 간지 지음, 이규원 옮김/작가정신

미국 캘리포니아의 요세미티 국립공원. 그 안에 자리한 ‘성스러운 나무 언덕’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홀리파인힐’ 골프코스에서 열린 PGA챔피언십에서는 ‘골프 신의 총애를 받는 남자’ 닉 로빈슨이 우승을 눈앞에 두고 있다. 그는 단독 선두를 달리고 있었지만 마지막 18번 홀에서 위기를 맞이한다. 첫 타를 숲에 박은 것이다. 그곳에는 기병대에 의한 원주민 학살이 이뤄졌다는 불길한 전설이 내려오는, 4,500년 수령의 거목 ‘신의 나무’가 우뚝 솟아 있었다. 이 신령한 나무는 오르면 벼락을 맞고 떨어지다가 옆의 나무기둥에 몸통이 관통되어 죽는다는 재앙이 깃들어 있다고 한다. 로빈슨과 캐디 토니 라이언은 가까스로 위기에서 벗어나 마침내 승리를 쟁취하지만, 이튿날 로빈슨은 골프 역사에 영원히 남을 기록을 세우고 돌연 은퇴를 선언한다.
이듬해 같은 장소에서 열린 US오픈에서 예선을 1위로 통과한 일본계 미국인 잭 아키라 그린필드와 캐디 팀 브루스는 첫 승에 도전한다. 하버드에서 진화심리학을 전공한 잭은 자신만의 골프 이론과 탁월한 기술을 겸비한 천재 골퍼다. 그러나 대회 당일 아침, 18번 홀에서 깃대에 복부가 관통된 끔찍한 모습의 시체가 발견되는데…….<<출판사 소개에서 인용>>

<<데드맨>>의 작가 가와이 간지가 쓴 본격 추리 장편.
솔직히 작가의 전작에 대한 인상은 별로 좋지 않았습니다. 추리적인 부분은 괜찮았지만, 전개가 영 그닥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평소라면 거들떠 보지도 않았을 책이에요. 하지만 코로나 바이러스 탓에 도서관이나 서점을 가기 힘들어져서, 온라인 도서관으로 읽을거리를 찾다가 소갯글을 보고 호기심이 당겼습니다.
호기심이 당긴 이유는 딱 한가지, 작품이 "골프"를 소재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스트라이크 살인>>이나 <<마구>>처럼 야구라던가, 엘러리 퀸의 단편의 소재로 등장했던 권투딕 프란시스의 모든 작품에 소재로 사용된 경마<<검은개>>와 <<사라진 테니스 스타>>의 테니스, 스키 등 여러가지 스포츠를 소재로 한 작품들은 많이 읽어 보았습니다. 그러나 골프를 소재로 한 작품은 읽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한 신선함에 더해 골프라는 스포츠를 즐기지는 않지만, 규칙은 잘 알고 있고 평소 관심을 두어 왔기에 읽어보게 되었네요.

이런 스포츠 소재 작품들 중 어떤 작품은 단순히 해당 경기의 선수가 등장하는 정도에 그치기도 하는데, 이 작품은 다행히 그 정도 수준은 아닙니다. 사건의 핵심 동기가 '벌타'규정에 따라 우승을 놓치게 된 슈퍼스타 닉 로빈슨의 캐디 토니 라이언이 어쩔 수 없이 벌인 부정행위이며, 또 이 부정행위 탓에
1. 캐디의 판단보다 세 단계나 짧은 클럽을 선택했다.
2. 루틴을 무시하고 손수 클럽을 뽑아 들었다.
3. 서드 샷 전에 에이프런에서 한참 멈칫거렸다.
4. 지극히 단순한 라이에서 생크를 냈다.
5. 우승 공을 처음으로 직접 챙겼다.
6. 우승 직후 뜻밖의 은퇴 발표를 했다.
7. 은퇴 이튿날 18번 홀에서 드라이버 연습을 했다.
이라는 닉의 이상한 행동들이 결정적 단서가 되니까요.
게다가 이 부정행위 탓에 협박받게 된 캐디가 살인을 저지르고 자살한 장소가 US 오픈이 열리는, 요세미티에 위치한 더 홀리파인힐 리조트이며, 탐정 역할을 맡은건 US 오픈 출전권을 갓 획득한 일본계 미국인 잭 아키라 그린필드이고 왓슨 역할은 그의 캐디 팀이 수행한다는 점, 그리고 “골프는 훌륭한 스포츠야. 바람, 풀, 나무, 물, 모래, 흙, 늘 자연과 함께하는 스포츠잖아. 바람이 불거나 비가 내려서 실수해도 누구 하나 불평하지 않아. 인간은 겸손해야 한다는 걸 가르쳐주지." 라는 잭의 후원자 맥거번 회장의 말이나, "골프는 스포츠 중에 유일하게 심판이 없는 경기다, 골퍼는 양심과 자존심을 걸고 규칠을 지키며 정직하게 플레이해야 한다"는 잭의 말 등 이야기 전반에 걸쳐 골프라는 스포츠에 대한 애정이 묻어난다는 점에서 '골프 추리 소설' 이라는 칭호가 부끄럽지 않은, 그런 작품입니다. 제목도 아주 근사하지요.

<<데드맨>>도 그랬지만, 추리적으로도 꽤 그럴싸합니다. 앞서 설명드린대로 닉 로빈슨의 기묘한 행동을 파고들어 해당 경기에서의 부정을 밝혀내는 부분도 좋지만, 무엇보다도 사건을 담당하는 휴즈 형사의 접근법이 아주 마음에 들었어요. 그는 토니 라이언이 살해된 현장을 보고 세 가지 의문을 느낍니다. 첫 번째는 왜 전설과 일치하도록 범행했는지, 두 번째는 깃대로 어떻게 몸을 관통시켰는지, 세 번째는 왜 많은 사람이 모이는 US 오픈 현장에서 범행했는지입니다. 그러나 휴즈 형사는 앞의 두 가지는 버리고, 마지막 의문에만 집중합니다. 가장 현실적인 의문이며, 이 의문을 풀어 범인을 체포하면 앞의 두 가지는 범인을 통해 알아낼 수 있다는 논리인데 굉장히 와 닿더라고요. 온갖 불가능 범죄가 난무하는 고전 본격물에 도입하면 꽤 괜찮겠다 싶은 현실적인 추리법이라 생각되었습니다.
그 외에도, 잭과 팀의 티격태격하는 대화는 만담같은 재미가 잘 살아있으며, 가끔 등장하는 골프 장면도 박진감있게 묘사되어 읽는 재미를 더해 줍니다.

그러나 역시나, 작품의 완성도가 높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일단, 토니 라이언 살인 사건의 동기가 닉 로빈슨의 마지막 경기이며, 그 중에서도 다른 공을 발견한 척 했다는건 읽다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때문에 이를 밝혀내려고 하는 휴즈 형사와 잭의 추리에 대한 흥미는 상대적으로 떨어져요. 그런데 다른 피해자 앤서니 스미스가 발견되고, 그가 닉 로빈슨 마지막 경기에서 공을 발견한 당사자였다? 이렇게 되면 진범은 닉 로빈슨이거나, 최소한 닉이 강하게 연루되었으리라는건 뻔한 추리입니다. 앞서 휴즈 형사의 추리 방법론에 따르면 그로부터 자백을 이끌어내면 되는거죠.
또 토니 라이언이 닉을 보호하기 위해 앤서니 스미스를 죽이고 자살했다는 진상도 석연치 않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토니의 동기는 설득력이 높지만 인디언 전설에 따라 현장을 조작할 이유는 전혀 없었거든요. 토니는 자신도 살해된 것처럼 꾸며서 닉을 지키기 위한 의도였다고는 하는데, 동기가 명확하기 때문에 닉이 빠져나갈 방법은 애초에 없었습니다. 차라리 앤서니 스미스의 시체를 싣고 US 오픈 현장을 떠나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차와 함께 불타버리는게 더 나은 해결 방법이었을거에요.이 작가는 이야기를 전개하는 실력이 아무리 봐도 너무 부족해 보입니다.
아울러 끝이 뭉툭한 깃대를 몸에 관통시킨 방법은 드라이버 샤프트로 미리 구멍을 뚫었기 때문이라는 진상 역시 그다지 새롭지 않을 뿐더러 무의미했어요. 차라리 앤서니 스미스의 몸을 관통한 나뭇가지 끝은, 사고 후 부러졌다는 추리가 더 그럴듯하게 느껴졌습니다.

여기에 더해, 인물들이 지나치게 만화적이라는 것도 설득력을 떨어트리는 요소입니다. 주인공 탐정인 잭에 대한 설정이 대표적이에요. 하버드에서 진화심리학을 전공하였으며, 골프는 시작한지 1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1년 만에 골프 스윙의 진리를 발견한 뒤 US 오픈 출전권을 획득했고 일종의 시범 게임에서 세계 1위를 압도적으로 이긴다는 묘사는 해도 너무하지요. '사고기계' 반 두젠 교수도 규칙만 이해하면 충분하다며 체스를 익힌지 단 하루만에 체스 세계 챔피언을 이기긴 했다지만 이건 1900년대 초반의 이야기입니다. 21세기에 먹힐 수 있는 설정은 도저히 아니에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1.5점. 골프를 소재로 한 거의 유일무이한 추리 소설이라는 점에서는 골프를 정말로 좋아하고 사랑하는 분께 어필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평범한 추리 애호가에는 그닥 인상적이거나 흥미로운 부분이 없는 평범 이하의 작품입니다. 구태여 구해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2020/02/15

붓끝으로 시대를 울다 - 김성언 : 별점 3점

붓끝으로 시대를 울다 - 6점
김성언 지음/프로네시스(웅진)

역사 속 시와 노래를 단순 번역이 아니라, 시와 노래가 발표되고 노래되었던 시점의 여러가지 상황까지 고려하여 분석하여 알려주는 문화사문학사 서적. 모두 10개의 큰 주제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이 중 인상적이었던 이야기는 우선 <<구지가>> 이야기였어요. 분명 거북은 임금이나 신령스러운 절대자인데 머리를 내밀지 않으면 구워먹겠다는 불경스러운 위협의 이유가 무엇일까요? 저자는 중국의 기우제 노래인 <<도마뱀 노래>>를 가지고 이 이유를 풀어냅니다. 신성물을 얻거나 재앙을 막고자 매개자를 위협하는건 오랜 전통으로 <<구지가>> 역시 마찬가지 의미라는군요.
또한 이를 통해 굳이 자신을 왕으로 맞으라고 숨어서 이 노래를 가르친 김수로, 그리고 김해 김씨 집단은 중국에서 내려운 정복자라고 추리합니다. 한문화 영향권에서 널리 쓰이던 기우 노래로 자신들이 신으로부터 권능을 위임받았다는 우월성을 김해 토착민들 마음 속에 심어놓은 고도의 술책이었다고요. 김수로의 정체야 어찌되었건, 기우제 노래를 통한 해석은 꽤 재미있네요. 약간 역사 추리물 느낌도 들고 말이죠.

지금 가사는 전하지않는 신라의 <<동경곡>>도 부대 기록을 통해 국가와 군주를 송축하는 노래로, 이를 위해 온갖 상징물들이 포함되었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무엇보다도 이 노래의 목적은 '임금은 임급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백성은 백상답게' 각자 계급에 맞게 의무를 다하라는 은근한 협박과 유도라는 주장이 인상적이에요. <<애국가>>와 동일한 목적이라는건데, 좀 센 주장이기는 하나 어느정도 수긍도 갑니다.
<<용비어천가>>가 단순 찬양이 아니라 규계, 즉 왕도 윤리 덕목을 지켜야 한다는 강한 요구를 담았다는 이야기도 기억에 남고요.

시에 관련된 이야기 외에 시인에 대한 소개도 많습니다. 고려의 대문호였던 이규보가 당대에 관직을 얻지못해 당대 권력자 최충헌 등에게 온갖 아부를 하는 시를 남긴 아부꾼이었다는 등의 일화를 비롯, 조선 시대 시인들이었던 남효온, 박상, 권필, 이안눌을 설명해주거든요. 단순 인물 소개에 그치지않고 그들이 살았던 시대와 그들의 인생이 그들의 시로 어떻게 표현되었는지를 알려주는게 좋았습니다.
또 이러한 이야기를 통해, 정치적 핍박을 받거나 좌천된 관리가 할만한 소일거리로는 고려말부터 조선 시대까지는 술 마시고 시를 읆는 것 밖에 없었을거라는걸 잘 보여주고 있기도 합니다. "외론 울분 다만 시 지어 쫓아내고, 괴론 마음 때로 술 곁에서 풀어보네"라는 박상의 싯구가 있을 정도거든요. 물론 권필과 같이 본인이 필화를 일으커 광해군의 노여움을 산 탓에, 고문 끝에 사망하고 만 반골 시인도 있기는 하지만 대체로는 좌절한 채 시만 짓고 산 것으로 보이네요. 예나 지금이나 시인은 참 살기 힘들어요...

그 외에도 재미있는 내용이 많아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3점입니다. 재미는 물론 눈여겨 볼 부분도 많았던 유익한 독서였습니다. 이런 류의 책을 좋아하신다면 한 번 쯤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20/02/14

커리의 지구사 - 콜린 테일러 센 / 강경이 (주영하) : 별점 4점

커리의 지구사 - 8점
콜린 테일러 센 지음, 강경이 옮김, 주영하 감수/휴머니스트

<지구사>>라는 이름으로 출간된 식문화 역사 시리즈 중 한 권. 이 전에 시리즈 중 세 권을 읽고 리뷰를 남겼었죠. (위스키치즈피자) 책은 예쁘게 잘 만들어져 있는데, 내용은 크게 인상적이지는 못했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시리즈는 손대지 않고 있던 차에, 얼마전 읽었던 <<카레라이스의 모험>>을 읽고 급작스럽게 땡겨서 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읽었던 시리즈 중에서 가장 만족도가 높습니다. 커리에 대한 역사는 물론, 세계화된 과정과 세계속 커리 요리들, 그리고 커리의 현재까지 쉽게 파악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선 그동안 항상 궁금했었던, '커리는 과연 무엇인지?'에 대해 정확하게 알려줍니다. 채소와 고기를 기름에 볶은 매콤한 카릴 혹은 카리라는 남부 인도 요리가 영어로 '커리'로 변형되고, 이 말이 일반적인 인도 요리를 가르키는 말로 굳어지게 된 것입니다. 중국 요리를 서양에서 '찹 수이'라고 퉁쳐 말하는 것과 똑같은 상황인 셈이죠.
그리고 원래 인도 아대륙에는 강황, 생강, 카마린드, 인도산 후추라는 자생 향신료가 있었는데, 인도 상인들이 다양한 국가와 교역을 하면서 온갖 외국 요리들이 인도로 들어오게 되었으며, 그 뒤 포르투칼과 영국 등의 침략, 식민지 운영을 통해 서양 요리가 인도 요리, 재료와 결합되며 18세기 말에는 영국인들에게 '커리'라는 말과 요리가 일반적으로 널리 퍼지게 되었다는, 커리의 오랜 세월을 거친 발전 과정도 상세하게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인도 뿐 아니라 인도인들이나 다른 교역을 통해 커리가 전파된 이웃 국가들의 커리 요리에 대한 설명도 빠지지 않습니다. 영국은 물론, 미국이나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와 같은 식민지 운영 국가는 물론 카리브 해, 모리셔스, 스리랑카, 피지 및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등지에서 커리가 어떻게 전파되어 어떻게 발전되었는지 일목요연하게 알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여러가지 요리들의 명칭과 상세한 소개는 물론, 유명 요리의 경우 간략한 레시피까지 수록되어 이해를 도와주는데요, 미국 남부에서 가장 인기 있는 커리 중 하나라는 영국식 인도 음식 컨트리 캡틴 치킨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수록된 '리델 박사의 컨티리 캡틴 치킨' 레시피는 1849년 출간된 서적에서 인용된 것인데, 현대 커리 레시피와 별로 다르지 않더군요. 양파를 채 썰어 버터에 갈색이 될 때 까지 볶다가 잘게 썬 닭고기와 소금, 커리 가루를 뿌리고 볶은 후 수프를 부어 끓이면 됩니다.

상세한 설명 덕분에 새롭게 알게 된 것들도 많아요. '탄두리 치킨'이 파키스탄 난민 쿤단 랄 구즈랄에 의해 만들어진지 고작 70여년 밖에 되지 않은 레시피라는 것입니다! 버터 치킨 역시 쿤단 랄 구즈랄이 만들었다니 그리 오래 된 요리가 아닌건 마찬가지고요. 탄두리 화덕의 역사와 함께 하는 오래된 레시피라 생각했는데 의외였어요.
마지막에 수록된, 주영하 님이 쓴 한국 커리의 역사도 자료적 가치가 무척 높습니다. 일본인들에 의해 20세기 초반 전파된 후, 1930년대 이후는 일반화되었고 해방 이후 1960~70년대에는 이미 직장인들의 주된 점심 메뉴로 자리잡았으며, 같은 시기에 인스턴트 카레가 발매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는 과정이 도판과 함께 충실히 소개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밖에도, <> 시리즈답게 판형과 디자인도 마음에 들고, 풀 컬러로 수록된 도판과 각종 자료도 아주 좋은 편이고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4점. 과연, 카레왕이 추천할 만 합니다. 카레를 좋아하는 모든 분들께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카레라이스의 모험 - 모리에다 다카시 / 박성민 : 별점 3점

2020/02/12

요리 만화들 짤막한 감상 (4)

[고화질] 만화가 야식연구소 - 6점
무라타 유스케 지음/미우(대원씨아이)

<<아이실드 21>>로 일세를 풍미했고, 지금은 <<원펀맨>>으로 상종가를 치고 있는 만화가 무라타 유스케가 직접 만들어 먹는 야식을 소개하는 작품. 만화가 생활을 하면서 밤 늦게 사러갈 시간도 없고, 배달도 안될 때 빠르게 만들어 먹던 야식들에 대해 트위터에 소개한게 계기가 되어 한 권의 책으로 엮여 나왔다고 하네요.

등장하는 레시피들은 구태여 이렇게 소개해야 하나 싶은 것들이 대부분이에요. 유튜브 외 이런저런 매체에서 흔히 보는 간단 레시피들과 크게 다르지 않거든요. 또 손이 제법 많이 가는 튀김류나 제과제빵 류의 레시피는 취지와는 좀 거리가 있어 보였고요.

그러나 한 편당 5~6페이지 분량으로 레시피 중심의 짤막한 소개가 전부인데도 불구하고, 기승전결이 나름 완벽해서 읽는 재미는 충분합니다. 구성과 전개에서 왜 인기 작가인지를 새삼 느낄 수 있었어요. 할머니와의 추억을 그린 양배추 롤 에피소드라던가, 오래 전 불법 체류하던 태국인 이웃의 이야기, 보온기를 쓴 라면 조리처럼 상, 하편으로 이어지는 좀 긴 호흡의 이야기들도 당연히 좋았고요.
레시피도 두부 한 모 (200g)를 으깨어 녹말가루 약 60g 정도를 잘 섞은 뒤 랩을 씌워 전자렌지에 총 4분을 데워 만드는 두부떡같은, 따라해 볼만한 것들도 제법 수록되어 있습니다. 삿포로 소금 라면에 두유를 넣어 만든다는 '두유 라면' 같은 독특한 음식의 등장도 인상적이었어요.

그래서 별점은 3점. 대단한 걸작은 아니지만 읽는 재미와 함께, 쉬운 레시피 전달이라는 목적은 충분히 달성하고 있습니다. 


[고화질] 콘다 테루의 합법 레시피(단행본) 01 - 2점
우마다 이스케/시프트코믹스

고등학생 야쿠자 콘다 테루가 조직 생활과 학교 생활을 병행하며 접하는 이런저런 사건들을 요리로 해결하거나 해소한다는 내용.

요리의 맛을 야쿠자와 관련된 상황으로 비유하여 소개하는 장면 (예를 들면 너무 맛있어서 마음을 빼앗기는걸 경찰에 체포되는 식으로 묘사하는 등), 콘다와 관련된 상황을 주변 사람들이 오해하는 (야쿠자인걸 몰라서) 몇몇 장면만 조금 재미있을 뿐, 그 외에는 건질게 하나 없는 졸작입니다.소개되는 에피소드들 모두 억지스러우며, 캐릭터의 현실성이 전무한 탓이에요. 고등학생이면서 능력있는 야쿠자, 그런데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피해를 주지 않는 따뜻한 인물이라는건 아무리 만화라고 해도 용납이 안 되는 수준이지요.
등장하는 요리들이 에피소드들과 잘 어울리지도 않으며, 작화도 마음에 들지 않아 1권 이후는 읽어보지 않았습니다.

별점은 1점. 개인적으로는 야쿠자를 미화하는 작품은 지구상에서 사라졌으면 합니다.


[고화질세트] 행복한 밥 (총4권/완결) - 6점
UNOME Santa/서울문화사/DCW

대사 한 마디 없이 그림만으로 짤막한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독특한 작품. 조금은 팍팍한 일상을 그리고 있는 것도 특징으로 1권을 예로 들자면 직장에서 혹사당하는 이혼 중년남, 쥐꼬리만한 월급으로 고향 내려갈 여비도 없는 OL, 젊은 나이에 머리가 벗겨져 여자에게 인기 없는 독신남, 교도소에서 갓 출소한 전직 식당 주인 등이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이들이 대사는 없지만 음식 하나로 위안을 얻는 과정이 잘 그려지고 있지요. 음식도 당연히 대단한게 아닙니다. 라면과 고향에서 보내준 감자와 밑반찬, 풋콩에 맥주, 돈가스 덮밥 등입니다.
그림도 순박하면서도 정성이 듬뿍 담겨 이야기와 잘 어울립니다. 아내가 세상을 떠난 학교 선생 이야기에서, 함께 식사를 하는 듯 하지만 부인 몫의 젓가락이 없는 장면처럼 이야기 뒤에 짤막하게 등장하는 에필로그에서 소개되는 디테일들도 마음에 들고요.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몇 명의 등장인물들이 반복해 등장하는 것도 재미를 더해줍니다.

그러나 포맷과 전개가 길게는 끌어갈 수 없었던건 분명합니다. 후속권이 되면 될 수록 좀 지루해지거든요. 주된 이야기들은 대체로 가족 간의 정, 근면하고 열심히 사는 소박한 삶을 다루고 있어서 비슷비슷한 탓입니다. 변주를 주기 위한 이야기도 있지만 70대 후반 할아버지가 돈가스 푸드 파이팅에 도전한다는 <<돈가스 카레>>나 은혜갚기 위해 베를 짜는 학을 방치하고 노부부가 모듬 전골을 먹는다는 <<모듬 전골>> 같은 당황스러운 내용은 등장하지 않으니만 못했어요. 이런 이야기를 빼고 3권 분량으로 발표하는게 훨씬 낫지 않았을까 싶네요.

그래도 최근 보기드문 착한 만화, 순박한 만화라는 점은 마음에 듭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요리 만화들 짤막한 감상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