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끝으로 시대를 울다 - 김성언 지음/프로네시스(웅진) |
역사 속 시와 노래를 단순 번역이 아니라, 시와 노래가 발표되고 노래되었던 시점의 여러가지 상황까지 고려하여 분석하여 알려주는 문화사, 문학사 서적. 모두 10개의 큰 주제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이 중 인상적이었던 이야기는 우선 <<구지가>> 이야기였어요. 분명 거북은 임금이나 신령스러운 절대자인데 머리를 내밀지 않으면 구워먹겠다는 불경스러운 위협의 이유가 무엇일까요? 저자는 중국의 기우제 노래인 <<도마뱀 노래>>를 가지고 이 이유를 풀어냅니다. 신성물을 얻거나 재앙을 막고자 매개자를 위협하는건 오랜 전통으로 <<구지가>> 역시 마찬가지 의미라는군요.
또한 이를 통해 굳이 자신을 왕으로 맞으라고 숨어서 이 노래를 가르친 김수로, 그리고 김해 김씨 집단은 중국에서 내려운 정복자라고 추리합니다. 한문화 영향권에서 널리 쓰이던 기우 노래로 자신들이 신으로부터 권능을 위임받았다는 우월성을 김해 토착민들 마음 속에 심어놓은 고도의 술책이었다고요. 김수로의 정체야 어찌되었건, 기우제 노래를 통한 해석은 꽤 재미있네요. 약간 역사 추리물 느낌도 들고 말이죠.
지금 가사는 전하지않는 신라의 <<동경곡>>도 부대 기록을 통해 국가와 군주를 송축하는 노래로, 이를 위해 온갖 상징물들이 포함되었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무엇보다도 이 노래의 목적은 '임금은 임급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백성은 백상답게' 각자 계급에 맞게 의무를 다하라는 은근한 협박과 유도라는 주장이 인상적이에요. <<애국가>>와 동일한 목적이라는건데, 좀 센 주장이기는 하나 어느정도 수긍도 갑니다.
<<용비어천가>>가 단순 찬양이 아니라 규계, 즉 왕도 윤리 덕목을 지켜야 한다는 강한 요구를 담았다는 이야기도 기억에 남고요.
시에 관련된 이야기 외에 시인에 대한 소개도 많습니다. 고려의 대문호였던 이규보가 당대에 관직을 얻지못해 당대 권력자 최충헌 등에게 온갖 아부를 하는 시를 남긴 아부꾼이었다는 등의 일화를 비롯, 조선 시대 시인들이었던 남효온, 박상, 권필, 이안눌을 설명해주거든요. 단순 인물 소개에 그치지않고 그들이 살았던 시대와 그들의 인생이 그들의 시로 어떻게 표현되었는지를 알려주는게 좋았습니다.
또 이러한 이야기를 통해, 정치적 핍박을 받거나 좌천된 관리가 할만한 소일거리로는 고려말부터 조선 시대까지는 술 마시고 시를 읆는 것 밖에 없었을거라는걸 잘 보여주고 있기도 합니다. "외론 울분 다만 시 지어 쫓아내고, 괴론 마음 때로 술 곁에서 풀어보네"라는 박상의 싯구가 있을 정도거든요. 물론 권필과 같이 본인이 필화를 일으커 광해군의 노여움을 산 탓에, 고문 끝에 사망하고 만 반골 시인도 있기는 하지만 대체로는 좌절한 채 시만 짓고 산 것으로 보이네요. 예나 지금이나 시인은 참 살기 힘들어요...
그 외에도 재미있는 내용이 많아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3점입니다. 재미는 물론 눈여겨 볼 부분도 많았던 유익한 독서였습니다. 이런 류의 책을 좋아하신다면 한 번 쯤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