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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28

2017 내 블로그 리뷰 총 결산

2016 내 블로그 리뷰 총결산

14차, 열 네번째!를 맞는 블로그 결산입니다. 열네살이라... 블로그 생활도 이제 중학생 레벨에 진입한다니 감개무량합니다.

숫자부터 정리해보면, 2017년 읽은 책 중 리뷰를 남긴 책은 추리 / 호러 장르문학 52 (53)권, 기타 장르문학 3 (8)권, 역사서 15 (18)권, 디자인 및 스터디 도서 2 (4)권, Food 및 구루메 관련 도서 9 (9)권, 기타 도서 20 (15)권으로 모두 101 (107)권입니다 (괄호는 작년). 작년보다 소폭 줄었지만 100권은 넘겼으니 만족합니다. 각 항목별 베스트 - 워스트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올해 발표된 작품 기준이 아니라 제가 올 한해 보고 읽은 것들 기준입니다.

2017년 베스트 추리소설 :
<<올빼미의 울음>>
단평 :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장편 중에서 재미와 함께 서스펜스를 가져다 주는 보기드문 수작
작년과 마찬가지로 올해 추리, 호러 장르물 중 별점 4점 이상 작품은 단 한편도 없습니다. 이 작품 홀로 별점 3.5점을 받았을 뿐이죠. 전반적으로 흉작인데, 내년에는 좀 더 재미있는 작품을 많이 읽었으면 합니다.

2017년 워스트 추리소설 :
<<나를 사랑한 스파이>>
<<후쿠오카 살인>>
단평 : 과연 바닥은 어디인가?
올해 별점 1점을 받은 쓰레기는 이 두 편입니다. 뭐라 이야기하기도 어려운 수준의 망작들로 꼭 피해가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17년 베스트 / 워스트 기타 장르문학 :
<<수상작 없음>>
올해 기타 장르문학은 딱 3권밖에 읽지 않아 선정할 작품이 없네요.

2017년 베스트 역사 도서 :
<<보석 천 개의 유혹>>
단평 : 첫번째 장은 별점 5점도 아깝지 않음.
올해는 역사 도서 중에서 무려 3 권의 별점 4점 짜리 책들이 등장했습니다. 그 책들은 아래와 같습니다.
<<대지를 보라>>
<<북로우의 도둑들>>
<<보석 천 개의 유혹>>
전부 재미와 가치를 동시에 지닌 좋은 책들이지만 이중 한 권을 꼽는다면, 일제 강점기 시대에 대한 개인적 관심사가 크게 작용한 <<대지를 보라>>, 특정 특정 소재에 집중한 <<북로우의 도둑들>> 보다는 <<보석 천 개의 유혹>> 이 훨씬 재미와 대중적인 측면에서 앞선다고 생각되기에 이 책을 올해의 베스트로 꼽습니다.

2017년 워스트 역사 도서 :
<<수상자 없음>>
역사 도서는 좀 가려읽는 편이라 워스트가 대체로 없습니다. 올해 별점 2점 짜리 책은 두 권인데 "워스트"라고 할만한 책들은 아닙니다.

2017년 베스트 디자인 / 스터디 도서 :
<<수상자 없음>>
읽은 책이 2권 밖에 안되기에 평가가 불가하네요.

2017년 베스트 Food / 구루메 도서 :
<<수상작 없음>>
올해 읽은 10권 모두 고만고만해서 딱히 베스트는 없습니다. 별점 3점짜리 책은 4권인데 이 정도 별점은 베스트로는 좀 애매하죠.

2017년 워스트 Food / 구루메 도서 :
<<진짜? 가짜? 신기하고 재미있는 일본 음식 이야기>>
단평 : 전반적으로 장점보다는 단점이 더 크다.
온갖 잡다구레한 정보를 담아내어서 주제에 걸맞지도 않았고, 깊이있는 내용도 부족한 등 총체적 난국입니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e-book 으로 읽어서 그나마 다행이었습니다.

2017년 베스트 기타 도서 :
<<작가의 수지>>
단평 : 이쪽 바닥에 속한, 관심있는 사람들 모두의 필독서
작가로서의 벌이에 대한 상세한 정보 전달은 물론 여러모로 허투루 듣기 어려운 프로 작가의 의식이 선명히 빛나는 멋진 에세이. 재미까지 있으니 별점 4점을 받는건 당연하죠. 이 쪽 바닥 (출판)에 어떤 식으로건 속해 있거나 관심이 있으시다면 꼭 한 번 읽어보셨으면 합니다.

2017년 워스트 기타 도서 :
<<윤광준의 신 생활명품>>
단평 : "생활 명품"과는 몇 광년 멀어지다.
올해 기타 도서 중 별점 1.5점을 받은 책은 이 책과 <<학교 출입 금지>> 의 두 권입니다. 그래도 <<학교 출입 금지>> 는 애초부터 제 취향은 아닌, 아동용 성장기 비스무레한 책이라 그렇다 치더라도 (딸이 골라줘서 억지로 읽었을 뿐입니다...) 이 책은 너무나도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당당한 올해의 워스트에요. "생활 명품" 이라는 말이 아까운, 그냥 비싼 명품 소갯글에 불과하기 때문으로 널리고 널린 잡지와 구분하기도 어렵더군요. 오히려 최신 트렌드나 신상을 소개하지 못한다는 점에서는 잡지보다도 못합니다.

그 외 만화는 <<피너츠 완전판 5>>가 별점 4점으로 올해의 베스트이며, 다른 작품들은 대체로 무난했습니다. 딱히 소개해드리지는 않겠습니다.

결산평 :
순수한 책만 따져서 올해도 완독한 책이 100 권이 넘네요. 이 정도면 취미인으로 할만큼 했기에 만족스럽습니다.
추리, 호러 등 장르 문학은 최근 점수가 별로 좋지 않지만 그래도 작년 보다는 조금 나은 듯 해서 다행이에요. 내년에는 보다 재미있고 가치있는 작품을 많이 읽게 되면 좋겠습니다.

제 블로그를 찾아주시는 모든 분들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내년에 원하시는 일 다들 이루시는 그런 한해 되시기를 바랍니다. 작년, 그리고 재작년에도 말씀드렸지만 제 블로그를 찾아주시는 분들이라면 남들이 관심갖지 않는 사소하고 디테일한 것들에도 관심을 가지시는, 정말로 세심한 분임이 분명할테니 내년에는 더욱 잘 되실거에요. 사랑합니다~!

2017/12/25

죽이는 요리책 - 케이트 화이트 엮음 / 김연우 : 별점 2점

죽이는 요리책 - 4점
케이트 화이트 엮음, 김연우 옮김/라의눈

MWA (미국 추리 작가 협회) 에서 소속 작가들을 대상으로 레시피를 추천받아 모아 놓은 요리책. 개인적으로 "추리 소설 속 요리"라는 주제로 글을 조금 쓰고 있기 때문에 흥미가 생겨 사 보았습니다.

사실 구입 전부터 "요리"와 "추리 소설" 에 관련된 글들은 아니고 단순한 레시피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는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 때문에 별로 큰 기대도 없었고요. 책은 유명 작가들이 짤막한 레시피 소갯글과 함께 레시피를 실어 놓은게 전부라 딱히 언급할 내용이 많지는 않네요.

그런데 책의 성격이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만약 제가 이런 의뢰를 받았다면 최소한 제 작품, 자기 작품에 등장했던 인상적인 레시피를 소개했을 겁니다. 루이즈 페니의 <<마담 브누아의 투르티에>> 처럼 말이죠. 루이즈 페니는 자신의 작품 속 묘사와 함께 투르티에 레시피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작품에서는 스쳐 지나가는 소재에 불과하긴 하지만, 최소한 자신의 작품 속에는 등장하는 소재죠. 그러나 요리가 특별한 소재로 등장하지 않는다면 모를까, "우리 어머니의 특기 요리" 라던가, "내 시리즈 탐정이 즐겨 먹음직한 요리"라면서 작품과 별 상관도 없는 레시피들이 실려 있는 건 솔직히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아울러 "MWA" 소속 작가들의 지명도가 떨어지는 것도 책의 매력을 반감시키는 요소입니다. 전부 110명의 작가가 레시피를 소개하고 있는데, 제가 이름을 들어보았거나 한 권이라도 책을 읽어본 작가는 15명이 채 안 됩니다. 제가 우리나라에서는 그래도 추리 소설을 꽤 읽은 편인데 이 정도라면 아마 일반 독자분들은 한두 명 (리 차일드나 제임스 패터슨, 길리언 플린 정도?) 아시는 정도겠죠. 유명 작가의 레시피라면 팬심으로라도 구해 볼지 모르겠는데 이름을 알 만한 작가조차 적으니 우리나라에서는 여러모로 흥행하기 힘든 책이겠구나 싶었습니다.

또 레시피들의 거의 대부분이 "오븐"을 필요로 해서 집에서 해 먹기가 만만치 않다는 것도 아쉬운 점이었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국내에서 구하기 힘든 재료도 많고요. 토머스 H. 쿡의 <<채식주의자 칠리 프롤로그>> 는 아주 그럴듯해 보이는데 "초리조" 를 어떻게 구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그래도 아예 절망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존 매커보이 <<파산자의 굴라시>> 처럼 국내에서도 구할 수 있는 재료들로 이루어진 레시피도 제법 되니까요. 파산자의 굴라시는 제일 먼저 간 쇠고기를 양파, 피망과 함께 냄비에 볶은 후 마늘 소금으로 간합니다. 국수를 알 덴테 직전까지 삶아 쇠고기, 채소를 볶은 냄비에 넣고 토마토소스도 넣은 후 뚜껑을 연 채 약한 불에 15분 정도 끓이고 케첩을 넣어 잘 섞으면 완성입니다. 맛있어 보이죠?
또 "베이커 가의 음식 사냥개"라는 제목으로 홈즈의 작품에 등장하는 음식들을 소개한다던가, "당신의 정원에 있는 예쁜 독"이라는 제목으로 일상 속 독초를 소개하는 식으로 짤막하게 실린 몇 가지 팁들은 무척 반가웠고요. 책도 아주 잘 만들어져 있어서 마음에 들었어요.

하지만 전체적으로 딱히 마음에 드는 책은 아니었습니다. 별점은 2점. 유명 작가가 되면 몇 줄의 레시피 소개만으로도 돈을 벌 수 있어서 참 좋겠다는 생각만 뿐입니다. 수록 작가 중 누군가의 굉장한 팬이 아니시라면 딱히 권해드리지 않습니다. 25,000원이라는 가격을 생각하면 더더욱 말이죠.

2017/12/24

막대가 하나 - 타카노 후미코 / 정은서 : 별점 2점

막대가 하나 - 4점
타카노 후미코 지음, 정은서 옮김/북스토리

북 스토리 아트코믹스 시리즈 다섯번째 단행본. 관심이 가던 차에 연휴를 맞이하여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모두 6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제일 처음에 실려있는, 과묵하면서도 성실한 남편과 그를 믿고 따르며 묵묵히 내조하는 아내의 잔잔한 일상을 그린 <<아름다운 마을>> 은 괜찮습니다. 잔잔한 이야기에서 일상 속 드라마를 만들어가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다른 작품들에 대한 기대감이 생기게 하는 좋은 작품이에요. 이와 비슷한 잔잔한 이야기인, 익숙치 않은 초행 심부름길을 다룬 <<버스로 네 시에>> 도 마음에 들었고요. 특히 이 작품은 앵글을 과감하게 사용한다는 특징이 있는데 영화적이기도 하면서 시대를 뛰어넘어 신선함을 가져다 준다는 점에서는 충분히 읽을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이야기들은 그냥 저냥입니다. 우선 <<병에 걸린 토모코>>는 굉장히 짧은 소품이라 언급하기 애매하고, <<내가 아는 그 아이>> 는 자신의 감정 표현에 대한 이야기인데 대단한 내용은 아니에요. <<도쿄 코로보클>>은 이야기는 명확하지만 지금 읽기에는 좀 낡은 이야기였고요.
그래도 여기까지는 이야기로 성립은 하는데, 마지막 수록작으로 가장 긴 중편 분량의 <<오쿠무라 씨의 가지>> 는 도무지 무슨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더군요. 전기점을 운영하는 오쿠무라 씨에게 정체를 알 수 없는, 아마도 외계 지성체로 보이는 아가씨가 찾아옵니다. 그녀는 25년전 6월 6일 목요일 오쿠무라 씨가 먹었던 식사에 대해 물어봅니다. 그가 먹은 식사가 자기 선배의 결백을 증명해 줄 수 있다는 이유로요. 그리고 온갖 기묘한 도구로 당시 상황을 추측해 나가는 내용으로 "막대가 하나"라는 대사가 여기 등장하는데... 내용을 이해할 수 없어서 줄거리를 요약해드리기도 힘드네요. 기묘한 설정과 과감한 묘사들은 그런대로 괜찮은데 작품에 제대로 녹아났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습니다.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시대를 초월하는, 아직도 세련되어 보이는 깔끔한 작화와 선 굵은 전개는 충분히 인상적이기는 합니다. 이러한 그림과 함께 잔잔한 이야기 속에서 깊이있는 심리 묘사와 기묘한 설정이 가끔 눈에 띈다는 점에서는 <<카페 알파>>의 직계 조상 쯤 되는 작품이라고 해도 무방하겠죠. 그러나 <<카페 알파>> 만큼의 재미나 고즈넉함, 여유를 찾아보기는 어렵습니다. 아무래도 저는 "아트 코믹" 취향은 아닌듯 싶네요.

2017/12/17

배빵빵 일본식탐여행 한 그릇 더! - 타카기 나오코 / 채다인 : 별점 2.5점

배빵빵 일본식탐여행 한 그릇 더! - 6점
다카기 나오코 지음, 채다인 옮김/애니북스

2권이 나왔는지 전혀 몰랐는데 얼마전 알고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1권과 마찬가지로 타카기 나오코 에세이 만화의 진수인 음식, 여행, 일상과 유머가 모두 포함된 즐거운 작품이라 마음에 들었습니다. 작화, 만화적 구성도 조금 실망스러웠던 다른 작품들에 비하면 훨씬 '만화'에 가깝고요.
1권과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술과 음식을 더 많이 먹고, 더 먼 곳으로 떠난 여행이 많다는 정도? 제목에 '배 빵빵'이 들어가기는 하지만 정말 많이 먹더라고요.

하지만 대지진 이후 갈 생각이 없어진 후쿠시마를 비롯한 동북부 지방 여행기가 절반 정도 되는건 조금 아쉬웠습니다. 후쿠시마와 카나가와 편에서 맛있어 보이는 음식이 많이 등장해서 더 그러했어요. 후쿠시마의 꿀경단과 도부지루를 비롯한 해산물들, 카나가와의 네이비 버거와 시로코로 곱창 등은 당장이라도 먹고 싶은데 말이죠. 그래도 이러한 부분은 여행의 용이성 문제일 뿐, 이야기 자체는 충분히 재미있고 즐겁습니다. 
고치, 미야자키와 카고시마는 충분히 허용 범위라 더 즐겁게 읽을 수 있었어요. 특히나 고치의 가다랑어 타타키는 이런저런 만화 등에서 많이 접해서 먹어본 적은 없지만 굉장히 친숙한데 정말이지 먹어보고 싶네요. 타카기 나오코도 완전 극찬하고 있으니까요. 특히 맛있다고 한 소금 타타키는 <<술 한잔 인생 한입>>에서 주인공 소다츠의 친구 다카노마타가 집에서 만들어 주는 에피소드도 있었는데, 이렇게라도 먹어봐야하나...
그 외에도 고치 시골 초밥과 각종 디저트, 미야자키의 토종닭 숯불 구이도 언젠가는 한 번 먹고야 말겠습니다.

이렇듯 1권, 그리고 타카기 나오코 팬이라면 누구나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좋은 작품입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덧붙이자면, 마지막 에피소드는 번역본이 출간된 대만 출판사 요청에 의한 대만 여행기인데 우리나라에도 거의 전 작품이 번역 출간된 만큼, 3편에서라도 다루어주면 어떨까 싶습니다. 번역하신 채다인님도 찬조 출연하시고....

캐리 - 스티븐 킹 / 한기찬 : 별점 2점

캐리 - 4점
스티븐 킹 지음, 한기찬 옮김/황금가지

호러 문학의 제왕 스티븐 킹의 기념비적인 대표작. 영화 버젼으로도 굉장히 유명한 작품이죠. 주말 내 읽을 거리를 찾다가 호기심에 집어들었습니다.

그러나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영화를 먼저 봐서 내용을 알고 있던 탓입니다. 광신도 어머니 때문에 겪는 성적인 무지와 왕따로 촉발되는 거대한 재앙이라는 핵심 내용은 영화 그대로거든요. 
게다가 돼지피를 뒤집어 쓴다던가 하는 묘사는 아무리 잘 써도 영상을 따라가기도 힘들 판인데 정작 잘 쓰여져 있지도 못합니다. 돼지피에서 이어지는 클라이막스인 캐리의 폭주와 마을에 닥치는 거대 재앙은 데뷰작이라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박력과 화끈함, 통쾌함 모두 부족해요. 너무 짧기도 하고요. 대표적으로 크리스와 빌리의 최후는 최근 영화 쪽이 몇 배는 더 낫습니다.

그래도 소설에서는 혹시 뭔가 다른 전개가 있을까 싶었는데 별다른 건 없습니다. 신문 기사, 다양한 인터뷰, 고백서 등 이런저런 인용 문서들로 캐리 사건이 실존했음을 강하게 드러내고, 전개에 설득력을 더하고는 있지만 있으나 마나한 이야기들이 대부분입니다. 작가 후기에서 고백하듯 단편 분량을 중, 장편 이상으로 늘리기 위한 꼼수로밖에는 여겨지지 않았어요.

그래도 몇가지, 담임과 교장 선생님은 제대로 된 교육자였고 수지와 토니, 특히 그 중에서도 토니는 순수한 의도만 가지고 있었던 점은 눈에 띄더군요. 이들의 노력만으로도 캐리는 어머니로부터 벗어나 충분히 행복해 질 수 있었을텐데, 아쉽습니다.
악역을 담당하는 크리스와 빌리가 단순한 일진은 아니고 비교적 복잡한 배경을 갖추고 있다는 점은 조금 특이했고요. 그래봤자 동네 건달이긴 하지만...

한마디로, 스티븐 킹의 데뷰작이라는 점 외의 장점은 찾기 힘듭니다. 발표 당시라면 모를까, 지금 읽기에는 너무 낡았어요. 별점은 2점입니다만, 역사적인 가치를 감안했을 뿐입니다. 영화를 이미 보셨다면 구태여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2017/12/10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 김정선 : 별점 2.5점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 6점
김정선 지음/유유

20년 이상 단행본 교정 교열 작업을 해 온 저자가 어색한 문장을 다듬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 예제가 많고 현실적이라 마음에 듭니다. 굉장히 실용적이거든요.

특히 빼야 하는 것들이 아주 대박이네요. 굉장히 충실하고 이치에 맞습니다. 저 자신부터 생각없이 반복했던 습관이 빼야 하는 것들로 굉장히 많이 등장해서 부끄럽기도 했고요. 그래도 이런 방법들을 잘 익힌다면 더 나은 글을 쓸 수 있겠죠. 대표적인 예는 아래와 같습니다.

  • '-적', '-의' 를 뺄 것
  • 의존명사 '것'을 뺄 것
  • '있다' 라는 표현은 주의하고 뺄 수 있으면 빼자. 쓸데없는 장식이다.
  • '- 들 중 하나', '- 중 대부분' 역시 습관적으로 쓸 때가 많다. 되도록 빼자.
  • '될 수 있는', '할 수 있는' 도 뺄 수 있으면 빼자.
  • 지시대명사 '그', '이', '저' 와 '이렇게' 도 마찬가지로 빼자.
  • '여기', '저기', '거기'도 가려 써야 한다.
  • '놀라기 시작했다' 대신 '놀랐다' 처럼 '시작하다'는 명확한 항목 외에는 붙이지 말자.
  • 말을 이어 붙이는 접속사는 자제하자. '가령', '그리고', '그래서' 나 '은', '는' 과 같은.
  • '이', '가' 와 같은 주어 하나에는 서술어 하나를 쓴다. 그 뒤에 관형사를 붙이는 말도 많지만 뺄 수 있다. '그 누구도 나를 대신할 수 없다' 대신 '아무도 나를 대신할 수 없다' 처럼.
  • '- 같은 경우', '- 에 의한', '-으로 인한' 은 쓸 수는 있지만 습관처럼 반복하지 말자.

이렇게 빼야 하는 요소들을 실제 문장 예와 함께 차분히 설명해 주고 있어서 이해가 쉽습니다. 당연하지만 사전적인 의미와 함께 설명되어서 합리적이기도 하고요. '-에 대한' 에 대한 설명이 대표적입니다. 사전적 의미와 함께 용례를 설명해 주는데 뭉뚱그리지 말고 구체적으로 써야 한다는 결론이에요. '사랑에 대한 배신' 이라는 문장에서는 빼기 어려우며, 빼려면 '사랑을 저버리는 일'과 같이 풀어써야 한다는군요. 하지만 뭉뚱그려 표현한 문장은 구체적으로 쓰는게 좋다고 합니다. 아울러 '-에 대해'는 빼도 되고요.

또 사전적 의미를 통해 새롭게 알게된 용법들도 많습니다.
  • 주격 조사는 '이','가' 고 '은', '는' 은 보조사이기 때문에 '이', '가' 는 말하는 주체이고 '은', '는' 은 화제의 중심이라는 설명.
  • '에' 는 처소나 방향, '을' 은 목적이나 장소라는 것.
  • '-에' 는 무생물, '- 에게'는 생물에 붙이므로 선전포고는 '적국에게' 가 아니라 '적국에' 하는게 맞다는 것.
  • '- 을 하다'와 '하다'는 다른 말이라는 것도 처음 알았네요.
  • '멋진 그림으로 장식을 했다.' 에서는 장식이 목적어입니다. 멋진 그림으로 다른걸 할 수도 있었지만 장식을 했다는 의미죠. '멋진 그림으로 장식했다' 는 말 그대로 멋진 그림으로 장식한 것이고요. 즉 내가 쓰려는 문장이 하다가 동사인지, 다른 동사가 주가 되는지 가려 써야만 합니다.
피해야 하는 용법 설명도 많아요.
  • '-로의', '-에게로' 처럼 조사가 겹친 표현은 피하자.
  • '-로부터' 는 '-에게', '-와', '-에서' 로 나누어 써야 할 표현을 뭉뚱그려 대신한 것으로 피해야 한다.
  • 두번 당하는 말을 만들지 말자. '나뉘어지다' 는 '나누다'의 당하는 말인 '나뉘다'와 '나누어지다'가 합쳐진 말이다.
  • '시키다'는 자제하자.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 줘' 대신 '소개해 줘' 로 충분하다.
  • '-가 되다'와 같이 구태여 '되다'를 동사로 쓸 필요는 없음.
무엇보다도 마지막에 저자가 쓴 "문장의 주인은 문장을 쓰는 내가 아니라 문장 안위 주어와 술어임." 이라는 글은 아주 인상적이었어요. 여태까지 놓치고 있던 것을 비로서 깨달은 느낌이랄까요?

이렇게 실용적이고, 도움이 되는 부분도 많은 좋은 책인데 아쉽게도 단점이 없지는 않습니다. 용례 중간 중간에 삽입된 저자와 소설가 함진주 씨 사이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소설은 재미도 없고, 내용에 도움도 되지 않습니다. 200페이지에 불과한 분량인데 가격이 12,000원이나 한다는 것도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고요. 도서출판 유유의 책들이 대체로 분량에 비해 가격이 높은데 솔직히 무슨 근거로 책정된 가격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 책만해도 쓸데없는 함진주 씨 이야기를 빼고 120여 페이지 정도로 정리해서 '살림 지식 총서' 처럼 5,000원 이하 가격으로 내 놓는게 훨씬 좋았을 겁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입니다. 글을 쓰시는 분들이라면 한번 쯤 읽어보셔도 괜찮겠지만 가성비에 문제가 있다는 점은 꼭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도판이 하나도 없는 만큼 ebook으로 읽어도 되긴 하지만 ebook의 현재 가격도 8,400원이나 하는군요. 혹시 모를 세일이 있다면 한 번 노려보시기 바랍니다.

2017/12/09

마스터 키튼 리마스터 - 우라사와 나오키, 나가사키 타카시 / 강동욱 : 별점 2점

마스터키튼 리마스터 - 4점
우라사와 나오키, 나가사키 타카시 지음, 강동욱 옮김/대원씨아이(만화)

전설의 작품의 후속작. 마스터 키튼의 20 년 뒤 이야기. 출간된지 1년이 넘었는데 리뷰가 늦었네요.
키튼이 오리지널 시리즈 마지막에 도전한 도나우 강 유적 발굴에 성공하지만, 박사 학위도 없고 후원자도 없어서 연구를 계속하지 못하고 여전히 탐정업무를 - 짬을 내어 - 진행한다는 설정입니다.

각 단편 에피소드들은 일견 그럭저럭 괜찮습니다. 구 시리즈의 좋았던 이야기들과 비슷한 느낌은 전해주거든요.
그 중에서도 키튼의 학자적 지식이 돋보인 <<매리언의 덫>> 과 <<하바쿡의 성야>>가 특히 괜찮았습니다. <<매리언의 덫>>에서는 트로이 목마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하바쿡의 성야>>에서는 물에 적신 신문지로 총알을 막는다는 설정이 괜찮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로 보스니아-헤르체고비아 사태가 이야기의 배경으로 자주 등장하는 점, 구 시리즈에서 질릴 정도로 보았던 특정 인물의 도망과 암살 시도 등이 반복되는 점 등은 지루했습니다 . 냉전 시대 스파이들과 군인의 사회 부적응을 다룬 에피소드들 역시 마찬가지고요. 한마디로 좋았던 과거 영광의 자가 복제에 불과하죠.
게다가 키튼은 전직 군인으로서의 실력을 거의 보여주지 않고, 그냥 학자나 보험 조사원 이미지로만 등장해서 나름의 매력도 사라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키튼의 아버지도 건재하고 성인이 된 딸 유리코도 반갑긴 한데, 가족 외 다른 구 시리즈 캐릭터들이 등장하지 않는건 아쉬웠습니다. 특히 후반부 주요 인물이었던 찰리 채프먼의 근황은 아주 궁금했는데 말이죠. 그나저나 딸 유리코도 이혼하는데 3대가 다 이혼하다니, 참 유니크한 가족이에요. 물론 유리코가 이혼한 건 키튼의 편이 되어주지 않은 남편 탓이기는 합니다만.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많이 부족했습니다. 이 정도라면 돌아오지 않는게 좋았을 것 같습니다. 작화, 내용 모두 구 시리즈에서 한 발자욱도 나아가지 못한 과거의 유물에 불과해서, 구태여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페퍼로드 - 야마모토 노리오 / 최용우 : 별점 3점


페퍼로드 - 6점
야마모토 노리오 지음, 최용우 옮김/사계절

고추의 발상지가 어디인지에서부터 고추가 전 세계로 전파되는 과정을 그린 음식사문화사미시사 서적.

농학 박사이자 민족, 민속학자로 화려한 이력을 지닌 저자가 직접 발로 뛰고 조사한 정보들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내용이 굉장히 충실하고 신뢰가 갑니다. 고추가 자생종에서 처음 재배종으로 바뀌게 된 남미에서의 이야기가 대표적이에요. 저자의 젊은 시절 박사 논문을 읽기 쉽도록 재구성했다고 하는데, 수록된 사진과 분포도 등의 도판만으로도 박사 학위는 충분히 딸만 하다 생각될 정도입니다.
새롭게 알게 된 내용도 많습니다. 고추가 매운맛을 지니게 된 이유는 동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인데 새는 고추를 좋아한다고 하네요. 씨앗을 널리 퍼트리기 위해 선택적으로 진화되었기 때문이라는군요. 굉장히 신기했습니다.

이 책에 따르면, 고추는 중남미에서 가장 오래된 재배 식물로 기원전 8,000~9,000년 경부터 이용되기 시작하여 수천 년에 걸쳐 재배화되었습니다. 이후 콜럼버스가 처음 발견하여 후추를 대체하기 시작하면서, 16세기 중반 무렵에는 스페인 곳곳에서도 재배가 시작되죠. 매운맛은 이런저런 편견을 불러일으켜 유럽 전역으로 퍼지지는 못했지만, 이탈리아 등에서는 널리 퍼지게 됩니다. 흔히 들어본 "페페론치노"가 바로 고추라는 뜻이죠.
또 고추의 하나인 파프리카는 헝가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사실 헝가리에는 맛이 아니라 관상용으로 전해지기 시작했는데, 이후 오스만 제국을 거쳐 식용 고추가 유입됩니다. 헝가리에서 고추를 "터키 후추"라고 부르는 게 가장 큰 증거죠. 그 후 덜 매운 고추를 선별해가는 과정을 거쳐 파프리카가 탄생하게 됩니다. 그리고 파프리카는 1937년 얼베르트 센트죄르지의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에 지대한 공헌을 합니다. 센트죄르지는 비타민 C를 연구하기 위해 이를 분리해내어야 했지만, 감귤류에서 분리하는 건 여러 가지 문제가 있어 답보상태에 이르렀다가, 우연히 저녁 식사로 올라온 파프리카를 실험한 결과로 다량의 비타민 C를 분리하는데 분리하여 성공하게 되죠. 수많은 국경과 시대를 넘어 대단한 결과를 가져온 멋진 이야기입니다.

이후 노예제 때문에 아프리카로 전해지는 과정, 대항해 시대를 거쳐 인도로 전해지는 등 세계화되는 과정 모두가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당연히 한, 중, 일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로의 전래도 상세하고요.
여기서 몇 가지 특기할만한 점은 매운 요리로 유명한 사천 지방에서도 고추를 이용한 건 그렇게 오래된 일은 아니라는 점, 한국에서도 18세기나 되어서야 김치에 고추를 사용한다는 기술이 등장한다는 점 등이 있습니다. 저는 우리나라 고추는 중국에서 전래하였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임진왜란 때 일본에서 전래하였을지 모른다고 이야기하는 것도 흥미로웠고요. 또 일본에서 왜 중국이나 우리나라처럼 고추를 많이 먹지 않았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재미있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고기 요리를 중국이나 우리나라처럼 많이 먹지 않았기 때문이라는데 아주 그럴듯했거든요. 또 빨간색과 매운맛을 통한 일종의 '벽사 신앙'도 큰 역할을 했다고 하니 놀랍습니다.

이렇게 고추의 역사와 그 전파 과정, 그리고 나라별 특징 등을 모두 아우르는 고추의 집대성 같은 책입니다. 재배화 과정에 대한 내용은 조금 지루하고, 나라별 전파 과정과 레시피를 보다 상세하게 실어주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지만, 단점은 사소할 뿐입니다. 재미와 가치 모두 높기에 별점은 3점입니다. 고추에 대해 궁금하신 점이 있다면 당장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2017/12/03

대포와 스탬프 03, 04권 - 하야미 라센진 : 별점 2.5점

[고화질] 대포와 스탬프 03권 - 6점
하야미 라센진 지음/미우(대원씨아이)

[고화질] 대포와 스탬프 04권 - 6점
하야미 라센진 지음/미우(대원씨아이)

출간된 지 제법 되었지만 리뷰가 늦었네요. 대포와 스탬프 제3, 4권입니다. 전자책으로 구입하여 읽었습니다.

이번 권들에는 단편 에피소드도 있지만, 전작에서부터 이어지는 이야기 비중이 더 큽니다. 특히 헌병대 이중스파이 시난 중위를 핵심으로 이야기를 길게 끌고 가려는 작가의 의도가 강하게 엿보이더군요. 물론 짤막하게 소모될 캐릭터는 아니라 생각했지만, 가면 갈수록 그 스케일이 정말로 커져서 (마약밀매 조직의 운영이라던가, 비행선 테러 등) 당황스러울 정도입니다.
문제는 덕분에 밀리터리 물로서의 가치가 훼손된다는 점이겠죠. 특히 공화국, 공국에 걸쳐 있는 범죄 조직을 다룬 에피소드는 군대 이야기하고는 별 상관없었으니까요. 이는 사라진 보고서를 둘러싼 암투가 벌어지는 4권 마지막 에피소드도 마찬가지고요.

또 그림체와 어울리지 않는 잔혹함, 성적인 묘사도 작품과 어울린다 생각은 들지 않더군요. 형무소 내 세력 다툼과 그에 따른 희생, 잔혹한 현실을 그린 아네티카 주인공의 번외편 <<북극 번외지>> 가 대표적입니다. 이런 작화로 다루기에는 여러모로 어울리지 않았어요.

물론 나쁜 점만 있는 것은 아니에요. 전편부터 이어지던 여러 가지 이야기들 - 장갑 열차 부대의 재등장이라던가, 대령이 나름 SF 작가로서 확고부동한 위치가 있다던가 등 - 은 즐거웠으며 캐릭터들을 꼼꼼하게 만드는 캐릭터 관련 에피소드도 나쁘지 않았어요. 보이코 상사의 부인 등장이나 마르티나 중위의 고향과 가족 이야기 등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그림체하고 어울리지는 않았지만 아네티카 병장이 과거 형무소에 있었던 죄수였다는 과거도 이야기만큼은 마음에 들었고요. 작화와 어울리는 귀엽고 유쾌한 이야기도 없지는 않아요.

또 비중은 작아졌지만 특유의 집요한 밀리터리 관련 설정도 여전히 즐길 거리임에는 분명합니다. 구소련군이 모티브인 독특함에 더해진 묘사는 그야말로 최고 수준이니까요. 에피소드마다 등장하는 '있었음 직한' 메카닉들도 마찬가지로 반가웠고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며 별점은 2.5점. 저는 꽤 재미있게 읽었지만, 팬이 아니라면 조금 애매할 수 있는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덧붙이자면, 전자책으로는 2페이지 양 쪽을 사용하여 에피소드별 주력 등장 메카닉을 소개하는 부분 편집이 영 괴상하더군요. 이왕지사 전자책으로 출간했다면 이런 부분에 대한 세세한 수정이 조금은 아쉽습니다.

독서광의 모험은 끝나지 않아! - 미카미 엔, 구라타 히데유키 / 남궁가윤 : 별점 2.5점

독서광의 모험은 끝나지 않아! - 6점
미카미 엔.구라타 히데유키 지음, 남궁가윤 옮김/북스피어

<<비블리아 고서당>> 시리즈의 작가 미카미 엔과 <>의 작가 쿠라타 히데유키가 여러가지 책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대담집. 얼마 전에도 읽었던 북스피어의 '박람강기' 프로젝트의 한권이기도 합니다.
정말 자연스럽게 일상생활 속에서 이야기하는 것 같은 대담이 인상적으로, 술집에서 옆자리에 두 남자가 주고받는 대화를 귀 기울여 들었더니 꽤 재미있더라 하는 책 뒤 소갯글 그대로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구라타 스스로도 북 가이드라고 할 수는 없다고 말하고 있을 정도거든요.
이런 책까지 출간되는 일본 출판 시장은 부럽네요. 우리나라 같으면 팟캐스트나 유튜브 방송 정도로 소모되고 끝날 내용으로, 좋게 말하자면 읽기 쉽고 나름 재미도 있습니다. 나쁘게 말하자면 그닥 깊이가 있거나 진지한 내용은 아니고요.

그래도 워낙 독서광 작가들이 모여 수다를 떠는 터라 독서광까지는 아니더라도 독서에 있어 명함을 내밀 정도는 되는 저로서는 여러모로 흥미로운 부분이 많았습니다. 순서대로 한 번 살펴볼까요?

우선 모던 호러가 주제인 수다에는 스티븐 킹, 딘 쿤츠, 클라이브 바커 등 익숙한 작가들의 이름이 많이 나옵니다. 그러나 내용은 딱히 새롭지 않아요. 모던 호러라는 주제를 이야기하면 누구나 이야기할만한 내용이었거든요. 뛰어난 작품이라고 생각되지 않는 롱워크를 극찬하는 등 저와 취향이 다른 탓도 크고요.
하지만 잭 케첨 소개는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이웃집 소녀>>라는 작품은 구라타 히데유키 말에 따르면 산 그날,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책을 다 읽지 않으면 오늘은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을 거야 라고 생각했을 정도라니 꼭 읽어 보고 싶네요. 마침 국내에 유일하게 소개되어 있기도 하니까요. 그 외에도 소니빈 사건을 소재로 삼았다는 데뷔작 <<비수기>> 와 후일담 <<더 우먼>>도 굉장히 재미있을 것 같은데, 이 두 작품은 아쉽게도 소개되어 있지 않습니다.

요코미조 세이시와 에도가와 란포, 야마다 후타로를 소개하는 챕터는 더 뻔합니다. 다 알고 있는 내용이거든요. 딱 한가지, 일본 초등학생이 읽기 힘들어했다는 토로는 색달랐지만요. 구라타가 모르는 단어가 많이 나와서라고 이야기하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그런 인상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번역을 잘 한건지 아니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만큼 역사와 과거에 대해서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인지는 모르겠네요. 그냥 일본 초등학생보다는 제가 이해력이 좋기 때문인걸까요?
그래도 좋아한다고 언급하는 작품들이 대체로 저 역시 좋아하는 작품들이라 마음에 들었습니다. <<백일홍 나무 아래>> 만 빼고 말이죠. 그 외 작품으로는 읽어본 적 없는 식인 테마 작품인 <<어둠에 꿈틀거리다>>가 궁금했습니다. 국내 출간되었는지 찾아봐야겠군요.
그런데 갑자기 야마다 후타로와 <<마계전생>> 이야기로 넘어가는건 좀 당황스러웠습니다. 야마다 후타로의 대표작이라는 <<인법첩>> 시리즈도 영화, 만화로 접한게 전부라 딱히 수다에 공감하거나 이해할 내용도 별로 없었고 말이죠.

영화화된 작품 원작에 대한 수다는 가도카와 하루키가 이끌던 가도카와 문고와 영화 전성 시대에 국한되어 있습니다. 작가 시점에서 아카가와 지로를 나름 극찬하는 - 쉽게 대사를 쓴, 일종의 라이트 노벨 선구자라는 등 - 정도만 눈에 뜨일 뿐 특별한 것은 없습니다.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듯한 아카가와 지로가 쓴 크리쳐 호러 소설 <<밤>>이 그나마 궁금하지만, 최고 걸작이라는 <<마리오네트의 덫>> 수준을 미루어 본다면 구태여 읽어볼 필요는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좌절본은 읽다가 포기하거나 여러가지 이유로 아예 그 생각이 없었던 작품들에 대해 수다를 떠는 챕터로 보통은 어려운 책 - 커트 보니컷의 <<제 5 도살장>>이나 케플러의 <<우주의 신비>> 등 - 이거나 너무 길어 포기한 작품들이 대부분입니다. 100권이 넘는 <<구인사가>>, 미완으로 끝났다는 일본의 시대소설 <<대보살고개>> 등이 그러한데...
<<제 5 도살장>> 이 어렵다는 주장도 동의하기 어렵고 <<삼국지>> 나 <<삼총사>> 같이 재미도 있고, 읽기도 쉬운 작품이 좌절본에 포함되어 있는 등 제 생각과는 조금 다르더군요. 미카미보다는 구라타 취향이 특히 그런데, 뭐 이런 것이야 말로 개인 취향이겠죠?
허나 오래전 작품이라 요새 취향과 맞지 않기 때문에 읽기 힘들다는 이유로 <<반지의 제왕>> 은 좌절본이다!라는 의견만큼은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입니다.

이런 류의 독서광들 수다라면 빼 놓을 수 없는 진귀한 책, 기이한 책이 이야기도 물론 들어가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정말 희귀 도서들보다는 재미있는 아이디어의 책들 소개가 더 인상적이었어요. 아와사카 쓰마오의 <<산 자와 죽은 자 - 명탐정 요기 간지의 투시술>> 이 대표적입니다. 모든 페이지가 16 페이지 단위로 봉해져 있어서 그대로 읽으면 25페이지 짜리 단편이지만 다 읽고 봉한걸 풀면 새로운 장편 소설이 된다는 책으로 여러모로 신기했거든요.
우리나라에도 소개되다 만 게모노기 야세이의 만화 <> 소개도 기억에 남습니다. 무려 30년간 이어진 연재의 설정을 초기에 확립하여 그대로 끌고가다니! 미카미 엔이 혀를 내두르며 감탄하는게 이해가 되더라고요. 국내에는 절판되어 말 그대로 진귀한 책이 되어버렸는데 어떻게 다시 구해보고 싶어 지네요.

또 추억 속에 깊게 남은 인상적이었던 책도 소개합니다. 구라타를 독서가로 이끈 책은 <<투명인간>>, <<우주전쟁>> 이라고 합니다. 덕분에 SF에 빠졌다가 미스터리로 관심이 이동한다는 전형적인 장르 애호가 루트를 밟았더군요.그 리고 또 다른 추억의 책은 폴란드 아동문학인 <<크레크스 선생님의 학교>>를 들고 있으며 미카미 엔은 <<마더 구스>>, 히노 히데시의 만화 <<죠로쿠의 기묘한 병>>를 이야기하는데 이 책들은 국내 소개되지 않았으니 잘 모르겠습니다.
그나마 미카미 엔이 소설을 쓰자고 마음먹은 계기가 되었다는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단편집 <에렌디라> 속 수록작인 <단순한 에렌디라 와 무정한 할머니의 믿을 수 없이 슬픈 이야기> 정도만 국내 출간되었을 뿐입니다. 마르케스 작품은 많이 읽어보지 못했는데 일정한 틀의 캐릭터에서 빠져나온 뭔가를 소설에서 배운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라는 미카미의 말이 마음에 들기에 한 번 구해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이런저런 만화 이야기도 하는데, <<블랙잭>> 이야기에서는 확실히 두 사람의 깊은 내공이 느껴지더군요. 미카미 엔이야 블랙잭이 <<비블리아 고서당>> 시리즈 한 편에 소개되었으니 그렇다 쳐도 그에 뒤지지 않는 구라타가 참 대단했습니다.
후지코 후지오 이야기는 제가 좋아하는 작가라 더 반가왔습니다. 도 아마 <<비블리아 고서당>> 에서 소개되었었죠? 개인적으로는 <<만화의 길>> 에서 접했기에 더욱 반가왔고요. 어차피 지금은 복간되어 구하기 그리 어렵지 않긴 하죠. <<모쟈코>>와 <<에스퍼 마미>>는 개인적으로 좋아해서 언급되는게 기뻤습니다. 또 <<유혈귀>> 라는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의 내용을 상당히 길게 언급하는데 결말이 뭔지 궁금해 미칠 지경으로 만들어서 구해 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흡혈귀는 신인류고, 구인류는 선량한 신인류의 피를 흘리게 만드는 유혈귀로 결국 주인공도 신인류?가 되어 즐겁게 살아간다는, 발표 시기를 감안하면 굉장히 시대를 앞서간 호러물이더군요. <<만화의 길>> 에서는 데즈카 오사무, 이시노모리 쇼타로, 아카츠카 후지오 등 다른 거장들보다 못한 모습으로 그려지지만, 누가뭐래도 후지코 후지오 역시 뒤지지 않는 천재임에는 분명해요.
무엇보다도 소설가로 계속 활동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기억에 남습니다. 소설가가 되고 처음 안 사실은 계속 하는게 정말 어렵다는 점이라는군요.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쌓아두었던 것을 토해내면 첫 번째 책은 어떻게든 모양은 갖출 수 있지만, 문제는 그 뒤로 세 번째, 네 번째 때 제대로 쓸 수 있는 사람만이 프로로서 해 나갈 수 있다는 말인데 여러가지 생각할 거리를 많이 전해줍니다. 데뷰작이 가장 좋은 작가들이 많은 이유도 마찬가지겠죠.

그리고 책을 사랑해서 벌어진 에피소드들은 주로 재미있은 책을 읽었을 때의 경험들에 대한 수다입니다. 미카미 엔이 코니 윌리스의 <<항로>> 라는 소설을 읽을 때, 절묘한 부분에서 상권이 끝났지만 한밤중이라 문을 연 서점이 없었다는 이야기같이 말이죠. 저도 이런 경험이 몇번 있죠. <<용오>>의 복제 예수 에피소드 다음 권을 사기 위해 업무 중 홍대 앞 한양 문고로 뛰어갔던 적도 있고, <<불멸의 용병>> 이라는 해적판으로 접한 <<베르세르크>> 의 그리피스 편 다음을 읽기 위해 한 밤중에 도서대여점을 돌아다닌 적도 있으니까요.
페이지를 접거나 메모하는 행동에 대한 대화도 정말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 이야기같아 좋았습니다. 저는 둘 다 안합니다만.
책 때문에 담배를 끊고 심지어 하루에 라면 한개로 버틴다는 이야기에 이르러서는 심하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더라고요.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베스트셀러는 왠지 꺼린다는 미카미와 구라타의 말에 공감이 갔습니다. 저도 좀 청개구리과라서, 인기가 있다고 하면 그냥 좀 싫거든요.

이렇게 다양한 책에 대한 수다가 장황하게 펼쳐지는데, 공감가는 이야기도 있고 동의하지 못하는 이야기도 있고, 재미있는 이야기도 있고 뭐 그렇습니다. 그래도 재미만 놓고보면 나쁘지는 않았어요. 별점은 2.5점입니다.

그러나 <<탐정, 범죄, 미스터리의 간략한 역사>> 리뷰에서 적었듯이, 수다 중 언급되는 작품들 중 국내 출간된 작품 정도는 조사하여 알려주었어야 했습니다. 하루도 안 걸렸을 것 같은데, 이 정도 수고도 하지 않는 이유를 도무지 모르겠네요.

2017/12/01

관계의 조각들 - 마리옹 파욜 / 이세진 : 별점 2점

관계의 조각들 - 4점
마리옹 파욜 지음, 이세진 옮김/북스토리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

그림이 좋아서 읽게 되었는데 묘사나 풍자, 담고있는 사상들 모두 은근해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요즘 작품같지가 않더군요.예를 들면 <<고독>>이라는 작품이 그러합니다. 한 여자가 한 남자를 앞에 두고 한참 식사를 하다가 그 남자를 말아버립니다. 그 남자는 그림이었던거죠. 그리고 여자는 홀로 고독에 잠긴다는 내용입니다. 반전이 아주 놀랍지도 않고, 드라마도 별건 없습니다. 풍자로서도 평범하고요. 그래도 그림으로 이러한 이야기를 아주 잘 살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참 뒤에 이 여자가 다시 등장해서 그림 고양이를 꺼내어 잠깐의 평화를 얻는다는 후일담도 과하지 않고 적당한 수준이었고요.
그 외에도 남자는 초, 여자는 남자에게 불을 당긴다. 남자는 여자때문에 녹아버리고, 여자는 그 속으로 풍덩 뛰어든다는 그럴듯한 이야기인 <<불을 당기는 여자>> 라던가, 여자들에게 사랑받지만 자기 자신만을 사랑하는 남자를 여자들이 부숴버리고 조각들을 나눠 갖는다는 <<미남자>> 등이 기억에 남네요.

그러나 굉장히 평범하거나 지나치게 소박한 이야기의 비중이 더 많아서 아쉬웠습니다. <<식육 식물>>이 대표적이에요. 아이를 키우다가 너무나 커져버린 아이에게 부모가 죽거나 잡아 먹힌다는 이야기인데 풍자로서는 지극히 평범하고 내용도 별로 인상적이지 못했어요. 그 외 프랑스 감수성 탓인지 이해 못할 작품도 많았고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이야기 보다는 빼어난 그림을 보는 맛이 더 좋았습니다. 그림책으로서는 괜찮은 미덕이지만 두 번 보게 될 것 같지는 않네요

2017/11/26

의자의 재발견 - 김상규 : 별점 2점

의자의 재발견 - 4점
김상규 지음/세미콜론

2011년에 초판이 발간된 책으로 좋은 의자란 무엇인지, 좋은 의자 디자인은 무엇인지, 어떤 의자들이 있는지, 누가 유명 의자 디자이너인지 등 의자에 대한 여러가지를 알려주는 디자인 에세이집.

의자는 제품 디자인에 있어 궁극의 소재 중 하나죠. 관련 도서도 몇 권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유명 디자이너들의 유명한 디자인 작품이라던가, 여러 디자인 회사들에 대한 소개와 설명은 재미있으며, 도판도 충실하지만 제가 읽어왔던 다른 책들과 비교할 때 이 책만의 차별화 요소는 특별히 없습니다.
출간된지 제법 된 탓에 지금 시점에서는 이미 생명력을 다한 작품과 소재가 많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3D 프린터가 보편화된 지금 보기에는 아이들 장난감과 다를 바 없는 스웨덴 디자인그룹 프론트의 '스케치 가구' 퍼포먼스가 대표적이죠.

또 내용이 정리가 되어 있지 못한 느낌이 강한데, 이유는 저자의 욕심이 과한 탓입니다. 의자의 역사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고, 좋은 의자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고, 좋은 의자 디자인은 또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하는 등 펼쳐 놓은 이야기는 많지만 정작 눈에 잘 들어오지는 않아요. 저자의 글 솜씨도 그닥이며, 책의 목차와 내용도 잘 정리되어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괜찮았던 다른 문화와 연결되는 의자 이야기를 다듬어서 좀 더 소개해 주었더라면 좋았을텐데 아쉽네요. 예를 들어 영화 속, 명화 속 의자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등 다른 책에서 보기 힘든 아이디어가 빛나는 이야기들말이죠.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입니다. 구태여 구해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2017/11/25

오래된 디자인 - 박현택 : 별점 4점

오래된 디자인 - 8점
박현택 지음/안그라픽스

부제는 박현택의 디자인 예술문화 산책. 저자는 국립 중앙 박물관에서 근무하시는 디자이너로 동문 선배님이시더군요. 알라딘 등을 통한 책 소개를 보고 관심이 가던 차에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디자이너의 관점으로 바라본 여러가지 것들에 대한 에세이인데 저자의 방대한 인문학적 지식과 미적 관점이 잘 결합되어 있습니다. 게다가 글재주도 빼어나서 읽기도 편하고요. 읽기 편하다는게 얼마나 큰 장점인지는 이 책 맨 앞에 수록된 도올 김용옥의 서두만 읽어도 잘 알 수 있습니다. 도올의 글도 물론 좋아요. 깊이도 있고요. 그러나 읽기가 너무 힘들었습니다. 솔직히 서두만 읽었을 때에는 본문도 이렇지 않을까 긴장을 많이 했을 정도인데 무척 다행이었어요. 단순한 생활 속 신변잡기 같은 글들 뿐 아니라 복잡하거나 사연있는 디자인이나 미학 이론을 설명하는 글들마저도 쉽게 읽히는 것은 정말이지 대단하다 생각됩니다. <<호랑이 요강과 마르셀 뒤샹의 샘>> 이라는 글이 좋은 예에요. 요강에서 시작하여 변기로 이르는 과정과 변기가 미술관에 놓인 사연을 통해 "다다이즘"을 설명하는 내용인데 다다이즘은 "예술품이란 무엇인가?"가 아니라 "언제 예술인가?"라는 질문이 더 적절한, 제도의 산물이라는 것으로, 결론은 이렇게 억지스러운 것 보다는 호랑이 요강이 더 정이 가고 좋다!라고 마무리되고 있습니다. 삶을 위한 예술은 있어도 예술은 위한 삶은 없기 때문이죠. 이렇게 요약하니 좀 두서가 없어 보이는데, 실제로 글을 한 번 읽어보시면 호랑이 요강과 샘의 차이가 무엇인지, 예술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아실 수 있으실 겁니다.

세한도를 디자인 전문가적인 관점에서 분석한 에세이도 아주 인상적입니다. 세한도가 왜 뛰어난 그림인지는 관련된 서적을 이전에도 한 번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시각 디자이너로서 "편집 디자인" 관점에서 바라보니 세한도는 "그리드"시스템, 모듈 관점에서 보아도 완벽하다는 것을 그림과 함께 설명해주니 더 머리에 쏙쏙 들어오네요.

또 명품, 유명 디자이너가 손댄 것들보다도 우리 주변에서 보아왔던 재활용 디자인 등도 중요하다고 서술한 관점도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비싸고 좋은, 유명 디자이너가 손 댄 것이 당연히 좋고 예쁘겠지만 단지 미학적, 디자인적으로 뛰어나다는 관점보다 중요한 것은 삶과 생명 그 자체라는 논리로 디자이너가 만든 가죽으로 된 이케아 쇼핑백이 수백만원에 팔리는 세상에 경종을 울려줍니다. 저자는 다른 글들에서도 허울뿐인 허례 허식을 비판하면서 "사실 디자인이란 그리 대단한 것도 전문적인 것도 아니다. 그걸로 밥 벌어먹고 사는 사람들에게는 지상 최대의 화두이며 고도의 전문적인 분야로 취급되고 싶어 할 지 모르지만, 우리 삶 속에서의 디자인이란 조금 다듬어진 상식의 범주일 수도 있다."라는 말을 남깁니다. 저도 디자인 전공자이지만 정말이지 와 닿는 말이에요. 이런 글들이 더욱 널리 알려지면 좋을 것 같습니다. 쓸데없는 선민의식은 제발이지 사라졌으면 하거든요.

그 외의 다른 글들 모두 대부분 하나하나 곱씹을 만한 좋은 글들입니다. 도판도 적절하고요. 
몇몇 글들은 저자의 의견에 동의하기 힘든 부분도 있고, 소재와 글이 잘 어울린다고 여겨지지 않은 글도 있습니다만 소수일 뿐으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4점입니다. 사소한 단점을 제외하면 최고 수준의 디자인 에세이입니다. 디자인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시라면 꼭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17/11/19

탐정, 범죄, 미스터리의 간략한 역사 - 엘러리 퀸 / 박진세 : 별점 1.5점

탐정, 범죄, 미스터리의 간략한 역사 - 4점
엘러리 퀸 지음, 박진세 옮김/북스피어

북스피어의 박람강기 프로젝트 일곱번째 책. 박람강기(博覽强記)는 국어사전 풀이로는 "여러 가지의 책을 널리 많이 읽고 기억을 잘함." 이라는 뜻입니다. 북스피어에서는 장르 소설이 아니라 소설 외의 다른 책들을 이러한 이름으로 펴내고 있습니다. 제가 읽은 것으로도 작가의 수입, 지출에 대한 일종의 보고서인 <<작가의 수지>>, 서간문집인 <<나는 어떻게 글을 쓰게 되었나>>, 기행문인 <<미야베 미유키 에도 산책>> 이 있었습니다.

이 책 역시 박람강기 레이블로 출간된 책 답게 추리 소설은 아닙니다. 엘러리 퀸이 추리 소설을 연대별로 구분하여 각 연대별로 걸작을 꼽은, 추리 소설의 큰 역사와 대표작을 소개하는 일종의 가이드 북이자 서지 정보 책입니다.

그러나 제목만 다를 뿐, 추리 소설 애호가들에게는 익히 잘 알려져 있는 <<퀸의 정원>>의 단순 번역본에 불과해서 아주 실망스러웠습니다. 제가 이전에 관련해서 글을 남긴 적이 있을 정도로 이미 이런 저런 곳에서 공개되어 있는 내용이거든요.

물론 저는 일본어 사이트로 접했고, 영어나 일본어를 못하는 독자분들께는 유용한 정보가 될 수 있으리라는 점에는 동의합니다. 그러나 정말로 의미가 있으려면 제가 링크한 일본 사이트처럼 국내에 번역되었는지, 어떤 작품이 수록되어 있는지, 간략한 내용이 무엇인지는 알려주었어야 했습니다. 대충 훝어보니 약 30권 정도만 국내 소개된 듯 한데 간단한 수고 만으로도 이 정도 정보는 제공해 줄 수 있었을 거에요. 한 마디로 돈 받고 파는 책이 공짜 일본 사이트보다 담고 있는 정보가 부실합니다. 이 정도 수고도 하지 않고 그냥 책을 출간한 것은 솔직히 이해가 되지 않는군요. 지금 이 책을 읽어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우리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는, 희귀한 책을 소장하고 있다는 엘러리 퀸의 책 자랑 정도 밖에는 없습니다. 

그나마 내용이라도 재미있다면 괜찮겠지만 선정된 125 편의 책 소개 대부분은 작가와 탐정 이야기가 전부입니다. 제일 궁금한 내용은 정작 알려주지 않으니 뭘 어쩌라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스포일러를 방지하기 위한 목적이라면 완벽하게 성공하기는 했습니다만, 이래서야 이게 책 가이드로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또 이 책이 발표된 해는 1969년 증보판 기준으로 보아도 이미 50년 전이며, 선정 기준에 "역사적인 중요성"이 중요하게 작용합니다. 게다가 "단편" 이어야 한다는 기묘한 기준도 있기 때문에 (아마도 잡지 EQMM의 홍보를 겸한 듯 싶어요) 국내에 소개되어 있다 하더라도 재미나 완성도 측면에서는 부족한 것이 많습니다. 제가 읽었던 잘레스키 (자레스키) 왕자 시리즈 중 한편인 <<오번 가문의 비극>> 단편이 대표적이죠. 도저히 눈 뜨고 보기 힘든 수준이었거든요. <<아마추어 괴도>> (래플스 시리즈)도 마찬가지고요.
<<뜀뛰는 개구리>> 처럼 그 어떤 기준을 들이 대어도 추리 소설이라고 보기 어려운 작품도 선정되어 있는 것도 문제지만... 그래도 이 작품은 재미라도 있으니 좀 낫긴 하네요.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1.5점. 추리 애호가로서 한 번 읽어보고 싶었던 책이 번역되었다는 점 외에는 점수를 줄 만한 부분이 없네요. 앞서 말씀드린 이유들에 더해 번역도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고요. 추리 소설 명작 리스트가 궁금하시다면 이런 것 같은, 인터넷에 여러가지 공개된 자료를 참고하시는 것이 훨씬 나으실 겁니다.

2017/11/18

다이아몬드 미스터리 - 마틴 위드마크 / 김영선 : 별점 2.5점


다이아몬드 미스터리 - 6점
마틴 위드마크 지음, 헬레나 윌리스 그림, 김영선 옮김/한길사

"팀과 티나의 탐정 사무소" 시리즈 제 1작. 아동용 작품으로 제목 그대로 팀과 티나의 탐정 사무소에 의뢰된 카라트 씨의 다이아몬드 도난 사건을 해결하는 내용입니다. 소개에 따르면 북유럽에서 가장 사랑받는 탐정 소설 시리즈라고 합니다. 정말인지는 모르겠지만요.

그런데 예상 외로 정통 추리물이라 놀랐습니다. 사건이 있고, 용의자들도 세명이나 등장하며 용의자들 모두 어딘가 수상쩍다고 소개됩니다. 여기에 더해 다이아몬드를 어떻게 빼돌렸는지에 대한 나름 정교한 장치 트릭까지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특히나 래리 스미스 씨가 매일 아침 먹는다는 사과를 이용하여 사과 속에 보석을 쑤셔넣고 창 밖으로 던진 후 밖에서 회수해 왔다는 트릭을 밝혀내는 과정은 정통 본격물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에요. 래리 스미스의 사무실 및 그 어떤 장소에서도 사과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는 것과 래리 스미스의 행동 관찰을 통해 진상을 추리해낸다는 점에서 그러합니다.
이외에도 주어진 떡밥, 예를 들면 마가레트 로스 부인의 화려한 치장이 어떻게 된 것인지에 대한 것 등도 모두 깔끔하게 설명되는 것도 만족스러웠으며, 이 모든 내용이 80여 페이지에 불과한 분량에서 모두 정리되는 것도 좋았습니다.

물론 성인 시각으로 보면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에요. 왜 카라트 씨가 경찰에 신고를 하지 않고 누가 봐도 어린아이임이 분명한 팀과 티나에게 사건을 의뢰하는지 부터가 석연치 않거든요. 경찰 수사만 했다면 범인이 누군지 밝혀내는데 한 시간도 걸리지 않았을텐데 말이죠.
또 아쉽지만 삽화가 좋은 편은 아닙니다. 기대했던 북유럽 스타일(?)의 깔끔하고 차분한 그림이 아니더라고요.

그래도 별점은 2.5점. 아이들을 위한 정통 추리 입문서로서는 충분한 가치를 지니는 작품이라 생각됩니다. 추리 강국 북유럽의 저력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네요. 나중에 제 딸 아이가 조금 더 크면 한번 권해볼 생각입니다.

2017/11/17

인간증발 - 레나 모제, 스테판 르멜 / 이주영 : 별점 2점

인간증발 - 4점
레나 모제 지음, 스테판 르멜 사진, 이주영 옮김/책세상

1990년대 중반 이후 일본에서는 매년 10만명이 실종되고, 이 중 85000명이 스스로 사라진 사람들이라는 충격적 전제로부터 시작된 프랑스 작가의 논픽션. 다양한 사람들과의 인터뷰 및 현장 취재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책 소개가 아주 흥미로왔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하여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기대와는 좀 많이 달라요. 우선 "인간 증발"에 대해 다루고는 있지만 직접 인터뷰나 취재가 가능했던 특정 사례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소문이나 저자의 추측에 의지하지 않는 것은 좋아요. 허나 큰 빚, 야쿠자의 협박 같은 것도 아니고 그냥 회사나 학교에서 실수를 저질러서 혹은 오래전부터 짝사랑했다는 남편 직장 사장의 고백을 받아서 라는 식으로 증발 이유가 뜬금없고 황당한 것이 많아서 당황스러웠어요. 그나마 이 정도면 드라마라도 있지만... 정말 뜬금없이 갑작스럽게 사라진 사례의 경우는 정말이지 와 닿지 않았습니다.
또 스스로 증발을 택한 것이 아니라 어쩌다 보니 낙오자가 된 경우는 같은 레벨로 설명하면 안될텐데 좀 의아했습니다. <<마키오의 고백, 증발 65년>>은 가난과 학대로 집을 나와 떠돌던 마키오의 이야기인데 이건 스스로 택한 증발이라고 보기는 어려우니까요. 마찬가지로 "부락민"이 차별받는다는 언급은 그 차별 때문에 증발한 것이 아니므로 사족에 불과했고요.
그 외 자살자에 대한 이야기나, 실종자를 찾는 탐정들 인터뷰, 사라진 가족이 북한에 갔을 것이라 믿는 어떤 가족의 이야기들도 주제에 적합한 이야기로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책의 핵심은 인간 증발이 아닙니다. 모든 취재와 인터뷰는 결국 "일본인은 체면이 중요하며 조직 내에서의 관계가 중요하다. 체면을 잃고 수치심을 느끼게 되면 다른 해결책이 없다."는 일본만의 특이성을 설명하기 위한 목적이 더 크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저자의 주장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 책 안에서 딱히 설득력 있게 설명되지 않습니다. 나름 근거로 삼기 위하여 독특한 일본만의 사회, 문화를 보여주기 위한 이야기에 적지 않은 분량이 할애되고 있는데 - <<지옥의 캠프>>, <<오타쿠의 성지>>, <<토요타 시, 떠나거나 병들거나 미치거나>> 등 - 너무 억지스러웠어요. 일본 사람들은 이상하다! 그런데? 그 다음이 없는거죠. 
정말 저자의 주장이 맞다고 이야기하려면 이러한 일본만의 특수한 문화 소개 후 이것 때문에 증발한 사람의 사례를 연결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도 못했고, 증발의 원인이 저자의 주장 때문이 맞는지도 이 책에 실린 내용으로 파악하기는 어려워요. 여러모로 프랑스인이 통역을 써 가며 취재한 한계가 느껴졌습니다.

물론 기대에 값하는 부분이 없지는 않습니다. 증발이라는 말이 몸과 함께 과거를 씻어내고자 했던 도망자들이 온천을 찾은 것에서 유래했다는 것은 처음 알았네요. 흔하게 이런저런 작품에서 많이 보아왔던, 회사에서 잘렸지만 출근하는 척을 하다가 결국 증발한 이야기가 상당히 많아서 놀라왔으며 탐정에게 의뢰하여 증발자를 찾았지만 가족이 재회를 거부한다던가, 인생 낙오자들이 후쿠시마에서 쓰레기 치우는 일을 하게 된다던가 하는 등의 이야기는 상당히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기에 별점은 2점입니다. 인간의 밑바닥을 볼 수 있는 기회라 물론 생각했는데 여러모로 실망스럽네요. 개인적인 문제로 야반 도주나 증발을 기도하는 사람들의 처절한 모습을 보려면 차라리 <<사채꾼 우시지마>> 를 보는게 나을 것 같습니다.

2017/11/12

윤광준의 新생활명품 - 윤광준 : 별점 1.5점

윤광준의 新생활명품 - 4점
윤광준 지음/오픈하우스

윤광준의 생활명품 에세이 신작.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이 직접 써 보고 경험했던 제품들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습니다. 모두 45개의 제품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일단 저는 '생활 명품'은 지극히 평범할 수 있지만 오래 사용하면서 장점과 특징을 알게되어 진가를 깨닫게 되는 제품들이라 생각합니다. '명품' 보다는 '생활'에 방점이 더 강하게 찍힌다는 뜻이죠. 그만큼 일반인들의 진입도 아주 어렵지만은 않아야 한다고 느끼고요. 그러나 이 책에서 소개되는 제품 대부분은 그다지 오래 쓰지도 않았으며 좋아하는 이유도 단지 개인 취향, 개인 기호에 불과한 제품이 다수라 무척 실망스러웠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디지털 가젯들입니다. <>와 같은 얼리어답터 잡지라면 모를까, <<생활 명품>>에는 영 어울리지 않더군요. 이런 류의 디지털 제품들은 아무래도 수명이 정해져 있고, 시간이 지나면 더 좋은 제품이 더 싸게 나오는게 당연하니까요. 게다가 이 가젯들에 관련된 저자의 사고방식도 '독일에는 가전 메이커의 A/S 센터가 눈에 잘 뜨이지 않는다. 고장이 잘 안나니 당연하다. 이를 보면 국내 가전사의 A/S망이 풍부하다는 것은 자랑이 아니다...' 라는 식으로 동의하기 어려운 것이 많습니다. 무엇보다도 '아스텔앤컨'의 좋은 음질이 전문가가 내부 회로를 변경했기 때문이라는 주장은 어이없음의 극치였어요. 디지털 음원을 재생하는데 회로의 변경이 큰 의미가 있나요? 자체 스피커로 음악 감상하는 도구도 아닌데 말이죠.
여러 식품 소개들도 마찬가지 이유로 별로입니다. 수많은 싱글 몰트 위스키 중에 구태여 '글렌리벳'을 점찍는 것은 순전히 개인 취향에 불과하기죠. 자기 취향의 '디자인'을 갖추었다고 생활 명품이라고 추켜세우는 몇몇 제품들 역시 마찬가지로 '아물레또 스탠드', '이노 디자인 T라인' 등이 대표적인데, 저는 저자 취향 외에 생활 명품이라고 이야기할 포인트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하긴, 저자의 사고 방식이 이전과 조금 달라진 게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이번 저서에서는 유달리 '명품은 비싼게 당연하다.'는 주장이 강하게 반영되어 있거든요. 예전 저서에서는 그렇지 않았던 것 같은데 말이죠. 좋은 재료, 원료를 사용하여 장인 정신으로 꼼꼼히 만든 명품이 비싸다는 것에는 동의하나, 앞서 말씀드렸듯 '생활 명품'이라는 제목에 부합하는 사고 방식으로는 전혀 느껴지지 않습니다. 예컨데 '아물레또 스탠드'를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동네 마트에서 파는 스탠드 중 가장 가성비가 적절하고 괜찮은 제품을 소개하는게 더 적절했을 것입니다. 현재로서는 '생활 명품'이 아니라 그냥 '명품' 소개에 불과하여 이래서야 비싸고 좋은 제품을 소개하는 널리고 널린 잡지들과 다른 이 책만의 차별화 포인트가 뭔지 잘 모르겠네요.

물론 몇몇 제품은 여전히 와 닿고, 갖고 싶다는 생각을 들게 만들긴 합니다. '토앤토' 신발', '요괴손 등긁개'가 그러합니다. 저 역시 잘 쓰고 있는 '세타필', '에버노트' 소개도 반가왔던 부분이고요. 그 외에도 "생활 명품"이라는 단어 취지에 부합하는 제품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소개된 45개 제품 중 그러한 제품은 절반, 아니 1/3도 되지 않으며, 근저에 깔린 저자의 사고 방식 역시 "생활 명품"에 적합해 보이지는 않기에 도저히 점수를 줄 수가 없네요. 별점은 1.5점입니다. 아무래도 저자가 오랜 시절 사용한 생활 명품 소재가 고갈된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후속권이 이어질지는 모르겠지만 설령 나온다 하더라도 이대로라면 더 찾아볼 이유는 없겠네요. 아울러 후속권 제목은 독자의 혼란을 최소화 할 수 있도록 "생활"이라는 단어를 빼 주었으면 합니다.

2017/11/11

최후의 도박 - 로버트 B. 파커 / 강호걸 : 별점 2점

스펜서는 보스턴 레드삭스 관계자 해럴드 애스킨으로부터 유망한 투수 마티 러브가 승부 조작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조사를 의뢰받는다. 조사를 위해 작가로 위장한 스펜서는 락커룸 등에서 관계자 인터뷰를 진행하지만, 그날 고리대금업자 프랭크 두어와 히트맨 월리 호그의 방문 및 협박을 받게 된다.

탐정 스펜서 시리즈 세번째 작품. 이전에 전작을 읽고 더 읽어볼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모처에서 "프로야구"를 소재로 한 작품이라는 글을 읽고 호기심이 동해 찾아 보았습니다. 
그런데 한마디로 킬링 타임용 펄프 픽션이더군요. 쑥쑥 읽히는 재미는 있지만, 한번 읽으면 그 뿐입니다. 소재가 된 프로야구도 승부 조작과 도박이라는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전형에서 한 발자욱도 더 나아가지 못했고요.

특히나 전개가 뻔한데 이 작품에서 스펜서가 탐정으로서 뭔가 추리(?)하는 부분은 딱 한 장면밖에는 없습니다. 마티 러브가 아내 린다를 처음 만났다는 상황 - 싸인을 해 달라고 하는 아내에게 한 눈에 반했다 - 을 너무나 작위적이라 느끼는 부분이죠.
그러나 이후 스펜서가 벌이는 조사는 모든 것이 그의 생각대로, 순서대로 진행됩니다. 마티 러브와 아내 린다가 처음 만났다는 이야기는 너무 작위적이다에서 시작해서 린다에 대한 조사가 시작되죠. 약간의 트릭 (사진을 골라달라고 해서)으로 확보한 린다의 지문을 경찰 친구에게 조사 의뢰한 결과 그녀의 본명을 알게 되며, 어린 시절 가출해서 뉴욕에서 매춘부로 일했었다는 것이 밝혀지고, 매춘부 시절 포주(?)를 만나 그녀가 매춘부 시절 촬영한 포르노가 협박 거리라는 것이 드러납니다. 아울러 포르노 마스터 프린트를 찾으러 온 놈팽이가 레스터 프로이드였다라는 결론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흐름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물 흐르듯 하여 감탄이 나올 정도에요. 중간에 어떻게 단 한 번의 헛발질도 없을까요? 사실 린다가 마약 복용으로 검거된 과거만 없었더라도 첫 단계에서 꽉 틀어 막혔을텐데 말이죠. 하기사, 이런 저런 좌충우돌로 분량만 낭비하는 작품들 보다야 이런 깔끔한 전개가 읽기에는 더 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게 펄프 픽션의 미덕이겠죠?

그래도 여기까지는 조사, 수사가 핵심이라 보통의 미국식 하드보일드 탐정물과 비슷하기는 한데, 다음부터는 전형적인 헐리우드 히어로물, 고전 서부극의 현대적 변주로 흘러갑니다. 돈 한 푼 받지 않고 오로지 정의감 때문에 스펜서는 프랭크 두어와 부하 월리 호그를 목숨을 걸고 처단하고, 버키 메이터드와 레스터 프로이드 컴비까지 응징해 버리거든요. 한 가족을 위해 악을 응징한다! 또 이렇게 세 가족을 위해 목숭을 거는 떠돌이 설정은 <<셰인>>의 판박이이기도 하죠.
물론 과거를 매스컴에 고백하는 린다의 큰 결심도 있기는 하나, 스펜서는 목숨을 걸고 살인까지 저지르는 마당에 이 정도 희생은 미약하기 짝이 없습니다.

이러한 헐리우드스러움은 이외에도 작품 곳곳에 묻어납니다. 도나 발링턴이 가난에 쪄든 고향을 떠나 매춘부가 된다는 이야기는 너무나 전형적인 시골처녀 상경기와 다름 없죠. 포주 패트리셔 애틀리가 도덕심을 발휘하여 마스터 프린트 폐기를 도와주는 것 역시 마찬가지고요.

뭐 그래도 쑥쑥 시원하게 읽히는 맛은 있으니 나쁘다고 폄하하기만은 어렵습니다. 마지막에 레스터를 작살내는 장면은 아주 속이 시원하기도 하고요. 스펜서가 사람을 죽였다는 죄의식에 아주 약간 사로잡혀 있는 묘사도 괜찮았습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추리물이라고 보기에는 몇 광년 떨어져 있지만 성공한 펄프 픽션이 무엇인지 잘 보여주는 좋은 예입니다. 메이저리그, 범죄, 도박, 포르노까지 모든 흥행 요소가 갖추어 졌을 뿐더러 읽기도 쉽고 결말까지 완벽한 권선징악 해피엔딩이니 이래서야 실패하는게 더 어려울 듯요. 아, 저도 앞으로는 이런 작품을 써야겠습니다.

덧붙이자면, 작품이 발표된 1975년에는 미국에서도 매춘부라는 직업이 사람들에게 알려지면 문제가 된다는 것이 조금 특이했습니다. 지금은 스포츠 스타가 포르노 배우하고 결혼하는 세상인데, 세상이 변해도 참 많이 변했네요.
그리고 스펜서가 굉장히 요리에 관심이 있는 것으로 그려지는 것도 인상적이었어요. 이전에 읽었던 <<약속의 땅>>에서도 요리를 통해 사람의 인간성을 파악하는 괜찮은 묘사가 등장했었는데, 여기서는 요리 묘사가 과하다 못해 흘러 넘칠 정도입니다. 매일 매일, 매 끼 무엇을 먹는지를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을 정도거든요. 딱히 전개에 필요한 부분도 아닌데 말이죠. 여튼, <<스펜서의 요리책>> 이라는 책이 출간된 이유가 충분히 느껴졌습니다. 스펜서의 요리책이나 출간되면 좋겠네요.

2017/11/05

화석의 기억 1~3 - 타가미 요시히사 : 별점 2.5점 (국내 미출간)


국내에는 <<nervous breakdown>> , 그리고 <<초공속 가루비온>>의 캐릭터 디자이너로만 알려진 타가미 요시히사의 1980년대 작품. 정확하게는 1985~87년까지 연재된 작품입니다. 대표작이라고 하는 <<카루이자와 신드롬>> 연재 종료 직후 (1982~85) 발표된 작품으로, 작가 인생 최전성기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다른 대표작 <<grey>>와도 년도가 겹치네요. 굉장히 진지한 SF물이면서도 크리쳐 물이기도 하고, 미스터리 스릴러물 성격도 포함된 복잡한 내용을 갖춘 작품입니다.
"누시"라는 큰 곰(?)이 사람을 습격하곤 하는 시골 마을 (정확하게는 '붉은 숲'이라는)이 있습니다. 도쿄에 사는 주인공 미나기 류이치는 어린 시절 어머니 후유코가 누시에게 살해당했는데, 어느날 우연히 본 TV 뉴스에서 누시가 다시 나타났다는 것을 짐작하고 복수를 결심합니다. 그리고 교제하던 유키에와의 성관계 동영상으로 그녀의 아버지를 협박하여 300만엔이라는 자금을 마련한 후 고향으로 향하죠.
이곳에서 류이치는 대학 조교 혼조 테츠야를 만나고, 백악기 (7,000만년전) 지층에서 호모 사피엔스의 두개골 화석 발굴 현장에 동참하게 됩니다. 이후 이 '오파츠'가 교수에 의해 부정당한 테츠야는 홀로 조사를 떠나는 데....! 여기까지는 아주 흥미롭습니다. 누시가 무엇인지도 궁금하지만 무엇보다도 7,000만년 전의 호모 사피엔스 화석 정체는 특히나 궁금증을 자아내니까요. <<별의 계승자>>가 살짝 떠오르기도 하고요.

뒤이어 모든 것은 타임머신의 탓이라는 것이 밝혀지는 전개와 여기서 불거지는 '타임 패러독스'도 볼만합니다. 등장하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뭔지도 모르면서 찾아 헤메는, 그리고 타임 머신으로 밝혀지는 "용고"의 정체는 원래 지구에서의 생존이 어려워져 만들어낸 외계로의 도망 우주선이었습니다. 그런데 엔진 (용고)의 폭주로 시공을 뛰어넘어 1987년 붉은 숲에 떨어졌고, 이 "용고"가 계속 시공간을 뒤튼 탓에 7,000만년전과 연결되어 있게 된 겁니다. 누시는 7,000만년 전 숲에 살던 공룡이었고, 7,000만년전 지층에서 발견된 호모 사피엔스 화석은 마찬가지 이유로 과거로 점프한 현대 인류의 것인거지요.
이렇게 원인과 결과가 동일한 타임 패러독스는 도라에몽에서도 익히 보아 온 것입니다. 작 중에서도 용고는 노비타의 책상 서랍이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이니까요. 그러나 진지한 SF 스토리에 약간의 추리적 요소를 가미한 덕에 꽤 재미나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용고"의 위치를 찾아내기 위한 단서가 오래전 한 할머니가 남긴 일기라는 것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누시가 12간지의 움직임을 보이는, 일종의 시계 같은 장소에 나타나며 이를 통해 한 가운데임을 추리하는 식이죠.

그러나 아쉽게도 결말이 완성도를 떨어트립니다. 류이치가 깨닫는 것, '조금씩의 차이가 결과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을 그려내기에는 너무 서둘러 마무리된 탓입니다. 관련자들을 타임 머신이 부른 이유 - 동일한 역사 반복을 위해 - 에 대한 설명도 부족했고요. 설득력을 갖추려면 또다시 시공을 점프한 후, 류이치가 다른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여 현 시점 (1987년)에 "용고"가 없는 평안한 인생을 손에 넣는다는 결말 정도는 보여줬어야 합니다. 마지막 장면이 현세의 기차에서 내리는 류이치가 어머니 후유코와 포옹하는 것이었다면 좀 낫지 않았을까요? <<죠죠의 기묘한 모험>> 6부 스톤 오션의 결말이나 영화 <<프리퀀시>>의 클라이막스처럼 말이죠. 뭐 그만큼의 설득력은 조금이나마 쌓아 올렸어야 하겠지만... 여튼 지금의 결말은 역사가 단순 반복되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아 작가 의도가 제대로 반영된 것인지 의심스럽습니다.

또 흥미로운 본편 전개에 비하면, 곁들여지는 사이드 에피소드들이 이야기에 잘 녹아들지 못한다는 것도 단점입니다. 누시의 정체가 공룡이라는 것도 너무 빨리 밝혀져서 몰입을 저해하고, 누시보다 주인공들 혈족에 전해지는 "용고"를 찾아내려는 음모 이야기는 솔직히 지루했습니다. 이 부분의 핵심인 기업, 친족 간의 파벌 싸움이 이야기에 잘 녹아나지도 않았고 말이죠.
아울러 주인공 캐릭터가 너무나 별로에요. 여중생 섹스 파트너와의 성관계 비디오를 그 아버지에게 팔아 넘겨 자금을 마련하는 쓰레기인데다가, 어머니인 후유코를 제외한 거의 모든 여성 등장 인물들과 정사를 갖는 등 전반적으로 쿨함을 강조하기에는 도가 지나칠 뿐더러 너무 자극적으로 접근하려 한 것 같아 영 별로였어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꽤나 흥미로운 소재이지만 지루한 전개에 더해 작가 특유의 허무한 결말이 더해진 결과물입니다. 본 편 이야기에 집중하여 조금만 더 긴 호흡으로 가져갔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네요.

2017/11/04

고양이는 알고 있다 - 이상우 : 별점 1.5점

국내 대표적 추리 작가 중 한 분이신 이상우 작가의 단편집. 표제작을 포함하여 7편의 꽁트 및 단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우연찮게 읽어보았는데, 수준은 낮은 편입니다. 평균 별점은 1.5점 정도? 때문에 권해드리기는 무리지만 그래도 딱 한편, <<황매실의 하룻밤>>은 괜찮았습니다. 기회가 되시면 이 작품 하나만큼은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네요.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읽으시기 전 참고 부탁드립니다.

<<낭랑 18세>>
수위와 짜고 빈 사무실을 터는 보일러실 직원의 실패담. 굉장히 짤막한 꽁트인데, 나름 재미있는 트릭이 등장합니다. 지하에서 일하는 직원이 어떻게 빈 사무실을 알아냈나?는 것으로 답은 공범자인 수위가 휴게실에 틀어놓은 음악 테이프죠. 음악을 듣고, 보일러실 직원이 레코드 가게에서 그 노래의 길이로 몇 호인지를 알아낸 것입니다. 4분 12초 짜리면 412호라는 식으로요.
그러나 결국 덜미가 잡히는데, 그 이유는 가게 점원에게 부탁하여 낭랑 18세를 찾은 탓이라는 결말입니다. 그녀가 찾은 것은 오리지널이 아니라 최근에 유행하던 리메이크 버젼이었던 것이죠.

발상은 재미있지만, 문을 따기 전에 최소한 안이 비었는지 아닌지 정도는 최소한 확인하고 문을 땄어야 하지 않나 싶네요. 때문에 그리 현실적인 아이디어로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백사도>>
김내성스러운 제목에, 주인공인 그로테스크한 화풍으로 유명하다는 화가 김몽산도 김내성스러운 설정인데다가, 내용을 보니 정말로 김내성의 백사도에서 모티브를 따온 작품이더군요. 김몽산의 최신 대표작 제목이 <<백사도>> 거든요.

그러나 내용 자체는 김내성 작품과는 무관합니다. 자신의 작품을 혹평하는 평론가 곽충빈에게 살의를 품고 독이 든 얼음을 만든 김몽산의 계획이 실패하고 허무한 결말에 이르는 내용으로, 독이 든 얼음을 직접 챙기지 않고 딸에게 운반시킨 잔꾀 때문에 망한다는 것입니다.
설령 김몽산의 계획이 성공하여 곽충빈이 죽었어도 김몽산이 빠져나갈 수 있었을까?도 지극히 회의적이고요.

거장의 명성에 기대기만 한 수준 이하의 내용으로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네요. 별점은 1점입니다.

<<예고 살인>>
유전공학을 이용한 제품으로 유명한 주식회사 무진에서 일하는 천재 학자 김묘숙 박사와 그녀와 함께 기술팀을 이끌던 장주석 기술이사가 차례로 살해당한다...

작가의 시리즈 캐릭터인 추경감과 강형사가 등장하는 작품. 이 단편집 속 다른 작품들에 비하면 추리적으로는 완성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범죄에 김묘숙 박사에게 1시간 이상 지나야 녹는 독약 캡슐을 준다던가, 100kg이 넘는 장이사의 체중을 이용하여 일정 무게 이상의 사람이 밟아야 독이 주입되는 독 주사기를 장치하는 식으로 트릭이 등장한다는 점, 그리고 범인인 변사장이 범인으로 삼을 희생양 (이이사)을 준비하여 사건을 꾸미고 이이사가 범인이라고 몰고 간다는 점, 마지막으로 변사장의 동기가 비교적 상세하게 등장한다는 점에서 그러합니다.

하지만 이 모든 점들이 잘 연결되어 완성되어 있지는 않아서 아쉽습니다. 일단 김묘숙 박사에게 준 캡슐이 1시간이 지나야 녹는다는 것은 마지막 추경감의 추리 외에는 그 어떤 단서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이래서야 트릭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하지요. 장이사 체중을 이용한 트릭은 조금 낫기는 하지만 너무 뻔할 뿐더러, 경찰이나 다른 사람이 과체중일 수도 있다는 것을 감안하지 않은 것은 문제고요.
또 이이사라던가, 비서 미스 구 등을 엮어서 범인으로 꾸미려는 변사장의 계획도 그닥 치밀하게 전개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결정적인 증거인 "괴문서"를 만든 신문이 변사장 집에서 발견된다는 점에서 좋은 추리물이라고 하기는 어렵겠죠. 이런 증거 앞에서 또 다른 추리들은 전부 불필요해져 버리니까요. 그 외에도 변사장의 계획은 헛점이 너무 많습니다!

그래도 추경감과 강형사의 툭탁거리는 캐미는 좋고, 앞서 말씀드렸듯 추리물로서의 기본 조건은 갖추었기에 별점은 2점입니다. 조금만 더 신경썼더라면 훨씬 좋은 작품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아내의 남자들>>
우연찮게 한 주부의 불륜을 목격한 추경감, 그리고 그날 저녁 추경감은 그 주부가 살해되었다는 것을 전해듣고 사건 수사를 돕기 위해 나선다.

지극히 평범한 불륜 치정극입니다. 약간의 수사가 진행된 후 현장에 남겨진 증거 - 현장 도어 손잡이 지문과 체모 - 로 범인이 체포되기에 추리물이라고 보기는 무리인 작품. 정숙해 보였지만 사실은 문란했던 한 주부에 대한 묘사를 선보이는게 목적이었을지 모르겠지만 그 쪽으로도 많이 부족했습니다. 딱히 점수를 줄 부분이 없기에 별점은 1점입니다.

<<황매실의 하룻밤>>
두 쌍의 젊은 부부는 시골 별장에서 휴가를 보내려고 이동하다가 별장 옆 황매실이라는 작은 촌락을 지난다. 그런데 그 곳에 거주하던 사람들 모두 그들을 보고 말 없이 방 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급한 일로 밤에 전화를 쓰려 별장에서 황매실로 이동한 부부는 황매실 마을이 텅 빈 것을 보고, 황매실 마을이 전설처럼 구미호들이 사람 행세를 하고 있는 곳이 아닐까 생각하며 두려움에 떠는데...


몇 페이지 되지 않는 꽁트인데 이 단편집 최고의 작품. 공포스러운 상황도 설득력이 넘칠 뿐더러, 결말 역시 와 닿기 때문입니다. 지극히 한국적이라는 것도 마음에 들고요. 진상은 바로 '황매실 주민들은 할아버지 제사로 밤에는 모두 아랫 마을에 다녀온 것이며, 제사드리는 날은 목욕 제계하고 외간 사람들과 말도 나누지 않는 법도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마우스로 긁어보세요) 인데, 정말 그럴듯 했어요.
별점은 4점! 공포스러운 하룻밤에 대한 묘사가 조금만 더 생생했더라면 5점도 충분했겠지만, 이대로도 아주 좋은 작품입니다.

<<고양이는 알고 있다>>
최건일이 청산 중독으로 사망한다. 원인은 팔에 난 상처로, 경찰 수사를 통해 상처의 원인이 된 고양이 발톱에 청산이 발라져 있었다는 것이 밝혀진다. 추경감과 강형사는 수사를 통해 최건일의 복잡한 가정사에 주목하는데...

니키 에쓰코의 작품을 떠올리게 하는 표제작. 어떻게 보면 전형적이라고 해도 될 정도의 콩가루 집안이 등장하는 작품. 빚에 쪼들리는 동생 (최건식), 방탕한 아들 (최호정), 아버지가 반대하는 남자와 교제하는 딸 (최현아), 최건일의 오랜 불륜 대상인 가정부 (석이네) 등에 대한 묘사가 그러합니다.

그러나 콩가루 집안에 대한 묘사 외에는 추리물로 볼 만한 여지가 전무합니다. 강형사의 현란한 헛다리짚는 추리가 펼쳐지는 것 정도는 볼거리이지만, 실상 진상은 별 볼일 없기 때문이에요. 차라리 고양이 발톱에 바른 청산이 흉기였다는게 더 재미는 있었을텐데, 실상은 건식이 소독약을 바꿔치기한게 진상이라니 허무하기 그지 없죠. 이것이 밝혀지는 것도 최호정의 자백에 불과하고요. 도대체 고양이가 뭘 알고 있었던건지 당쵀 알 수가 없네요.
무엇보다도 방탕하고 철없던 최호정이 마지막 순간에 휴머니스트로 돌변하여 눈물까지 쏟는다는 결말은 최악 그 자체였습니다. 그런고로 별점은 1점입니다.

<<아내는 탐정>>
술을 끊은 김말구는 아내 박순임, 딸 김민희와 무인도로 캠핑을 떠난다. 그런데 텐트에서 소주병이 발견되고, 김말구는 새벽에 몰래 술을 마시러 나오는데...

남편이 술을 사다가 텐트에 숨겨놓은 후, 오래전 술을 우연히 발견한 것으로 위장하여 다시 술을 입에 대려고 한 것을 알아챈 아내가 술을 물로 바꿔치기한다는 내용의 꽁트. 아내가 이를 알아챈 이유는 술병을 쌌던 신문지가 올해 것이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모로 딱히 점수를 주기 애매한 수준의 작품이네요. 별점은 1.5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