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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31

가위남 (ハサミ男, 2004) - 이케다 토시하루 : 별점 3.5점


예쁘고 성적이 우수한 여고생만 노려 가위로 잔인하게 살해하는 연쇄 살인범 가위남. 그가 세번째 희생자를 찾아내어 추적하던 중, 자신을 모방한 다른자가 그녀가 살해한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에 가위남은 스스로 사건의 범인을 찾아내기 위해 사건에 뛰어들며, 경찰 역시 범죄 심리 분석관 호리노우치를 사건에 투입시키는데...

슈노 마사유키의 동명 원작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입니다. 소설이 얼마전 국내 출간되었는데 마침 영화가 있길래 궁금하기도 해서 별 기대없이, 아무생각없이 시간 떼우기 용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뭐야 이거 재미있잖아! 일종의 반전물로 볼 수 있기도 하지만 사실 반전 자체는 중반정도에 유추가 가능한 반전이었기에 크게 대단한 것은 아니고 외려 추리적으로도 딱딱 들어맞는 전개, 거기에 음산한 음악이 잘 어우러진 잘 만든 웰메이드 추리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원작 소설은 아마도 1인칭 시점이 아닐까 싶은데 텍스트 트릭물의 영화화 성공사례가 아닐 정도로 잘 각색한 것이 마음에 들더군요.

추리적으로 본다면, 일단 전혀 연관이 없는 불특정한 피해자들의 선정 방법이 특이했지만 합리적이었습니다. 범인의 네트워크 만으로 뽑을 수 있는 정보가 한정되어 있을텐데 그 맹점을 잘 파고들었더군요. 그리고 그 외의 몇가지의 단서-버려진 가위의 존재, 피해자들의 상태, 운동화 자국 등-를 공정하게 던져놓고 그 모든 단서들이 영화 안에서 전부 정보로 소모되면서 결말까지 이르는, 한마디로 깔끔한 마무리가 무척 인상적이네요. 억지스러운 점도 별로 없고요. 물론 주인공 캐릭터 설정이 억지라면 억지겠지만....

무엇보다도 도요카와 에츠시의 냉정하고 감정없는 연기가 참 좋았습니다. 정말 "가위남" 이 존재한다면 그처럼 말하고 행동할 것 같더군요. 아베 히로키의 예상외의 모습도 반가왔고요. 몇몇 특수촬영 부분이 눈에 거슬리는 등 저예산으로 제작한 영화같지만 잘 짜여진 추리물이기에 추천하고 싶습니다.

단, 후반 20여분은 주인공 치카의 거듭나기(?) 와 같은, 스스로의 트라우마를 이겨내는 과정이 무척이나 지루하고 짜증나게 그려지는데 좀 줄였으면 어땠을까 싶네요. 또한 치카가 아무 죄의식없이 앞으로의 인생을 이소베와 함께 살아갈 것 같이 그려지는 엔딩도 좀 찜찜했습니다. 미모의 여고생들로 나오는 피해자들이 하나같이 미모가 아니라는 문제도 있었고, 여주인공 역의 아소 구미코는 뭐 그냥저냥이었지만 중간에 잠깐 등장하는 회상장면의 고교생 복장은 너무 아니올시다 였습니다. 즉, 여자 캐릭터를 보기 위해 보는 영화는 절대로! 아니라는 것이죠^^

2007/08/27

천사의 이빨 B.T.A ((天使の牙 B.T.A., 2003) - 니시무라 료 : 별점 1.5점

마약과 형사 아스카는 연인이자 파트너인 후루요시에게서 인정받고자 남자뿐만인 경찰 조직 안에서 힘들게 버텨가던 중, 엄청나게 성장한 신흥 마약 조직 클라인의 보스 키미쿠니의 연인이라는 여성에게서 연락을 받고 그녀를 보호하는 임무를 수행하다가 둘 다 총기 난사로 사망한다. 그러나... 극비리의 그녀의 뇌를 키미쿠니의 연인 칸자키 하츠미의 몸에 이식하는 수술이 시행되고 그녀는 키미쿠니의 연인으로 재 탄생하여 조직에 잠입하는 새로운 역할을 맡게 되는데...

신쥬쿠 상어의 아버지이자 일본식 하드보일드의 거장인 오사와 아리마사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입니다. 원작 소설은 1996년 발표되어 그해 "이 미스터리가 굉장해!" 에서 10위를 차지했던 작품이더군요.

사실 신쥬쿠 상어 시리즈가 아닐까 하고 봤는데 전혀 다른 작품이었고, 작품 자체로 따지자면 좀 실망스러웠습니다. 뇌 이식이라는 소재가 그다지 현실적으로 그려지지도 않았을 뿐더러 지나치게 스타일을 추구한 촬영과 액션씬은 좀 짜증스러웠거든요. 또한 실질적으로 칸자키 히츠미의 몸으로 다시 태어나 벌이는 활동이나 액션은 사실 사건 해결에 큰 영향을 끼칠 만한 내용이 전혀! 없었기에 개연성이 많이 부족해 보였고요. 단지 "페이스오프"의 영향을 받은 심심풀이 땅콩형 맛보기 설정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알맹이가 없었습니다. 반전도 예상 범위 안에서 이루어지고 추리적으로도 맨 처음에 스쳐가듯 등장하는 간단한 암호트릭 이외에는 그다지 건질게 없더군요.

내용이 이렇게 별볼일 없다면 캐릭터의 외모나 연기, 카리스마로 극복해 주었어야 하는데 여자 주인공 2명 모두 작품에 어울리는 외모로 보기에는 어려웠기에 아쉬움이 많이 남았습니다. 아스카 역이야 경찰이니 그렇다 쳐도 칸자키 하츠미라는 캐릭터는 대 마약조직의 보스조차 빠져들어 헤어나지 못하는 외모, 매력의 소유자로 그려지는데 실제 배우가 그러한 역할을 보여주기에는 어려운 외모였거든요. 단 후루하타 닌자부로의 얼빵한 조수(?) 이마이즈미가 강한 눈빛과 쫙 깔은 낮은 목소리로 분한 캐릭터는 특이했습니다. 단지 특이할 뿐이라는 것도 문제긴 하지만요^^

한마디로, 오사와 아리마사의 팬이 아니라면 그다지 권하고 싶지 않은 영화입니다. 팬이라도 재미를 느낄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개인적으로는 영화가 어떤 수준인지 궁금하기에 원작을 한번 읽고 비교해 보고 싶긴 했습니다.

참고로, T.A,T,U의 노래와 함께 이어지는 엔딩 크레딧 뒤에 등장하는 짤막한 에필로그는 속편을 예감케 하는 여운을 남기기는 하는데 영화가 망했는지 어쨌는지 속편은 존재하지 않네요. (물론 이 에필로그 역시 진부하기 그지 없습니다...)

PS : 그런데, B.T.A가 뭐의 약자일까요???

2007/08/24

도중의 집 - 엘러리 퀸 / 김민영 (자유추리문고 35-36) : 별점 2.5점

중간지점의 집
엘러리 퀸 지음, 현재훈 옮김/동서문화동판주식회사

10여년만에 우연히 변호사인 친구 빌 에인절을 만나게 된 엘러리 퀸은 빌 에인절의 처남이 살해되는 사건에 휘말려 들어가게 된다. 엘러리 퀸은 기억을 더듬어 빌의 처남 조지프가 사실은 이중결혼 생활 중인 사기꾼(?) 이라는 것을 밝혀 내지만, 그의 생명보험 및 이중결혼에 대한 배신감이라는 동기가 부각되어 빌의 여동생 루시가 용의자로 지목되어 재판을 받게 된다. 빌은 스스로 변론을 맡아 뛰어난 솜씨를 보여주지만 재판에 패하고 엘러리는 포기하지 않고 사건 수사를 계곡한다...


엘러리 퀸 시리즈에서 중간정도 시점에 위치하는 작품입니다. 약간 긴 장편으로 독자에게의 도전이 담겨있는 등 정통 추리물을 표방한 작품이기도 하죠.

개인적으로 몇번 이야기했지만 잘난척 하는 탐정을 싫어해서 엘러리 퀸 시리즈는 썩 좋아하지는 않으나 (물론 반 다인에 비한다면야 장난 수준이지만) 그래도 정통의 맛이 잘 살아있다는 점에서는 제 취향이기에 구할 수 있으면 대체로 읽는 편입니다. 그런데 이 작품은 완독까지 제법 시간이 걸렸네요. 그닥 유명하지도 않고 해서 애써 구해보지 않은 탓이죠.
읽어보니 아니나 다를까 이 작품 역시 잘난척 하는 모습이나 유식함을 자랑하는 미사여구가 남발하는 등 여전히 제 취향은 아니었습니다. 그나마 엘러리 퀸의 조금은 색다른 면모 (플레이보이?) 가 보이며, 엘러리의 친구 빌의 로맨스에 대한 묘사가 특이하긴 합니다. 작품에 크게 중요한 요소도 아니고 그다지 잘 표현되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말이죠.

사실 이 작품에서 가장 특이한 점은 엘러리 퀸 작품에서 보기 힘든 "법정 드라마" 적인 요소가 굉장히 많다는 점입니다. 당시 법정물이 유행은 유행인 모양이네요. 어쨌건 법정씬이 중반부에서는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할 만큼 분량도 많지만 변호사와 검사간의 논리대결 역시 타 법정물에 그다지 밀리는 수준이 아니라서 무척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유력한 증거"와 "상황 증거"의 차이를 가지고 벌어지는 한판 승부가 무척 재미있었거든요. 배심원 제도에 대한 비판도 눈에 띄고요.
그리고 추리적으로는 이름난 정통파 답게 모든 단서를 독자에게 공정하게 제공하면서 논리적으로 사건을 풀어간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네요.

그런데 엘러리 퀸 답지 않게 결정적인 단서가 지나칠 정도로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좀 아쉽습니다. 물론 교묘하게 단서를 숨겨놓기는 했지만 조금만 찬찬히 읽어본다면 확인할 수 있기에 숨겨놓는 방법에서 조금 실패한 느낌이거든요. e-Book 시대가 되어 검색이 용이해진다면 좀 문제가 되지 않을까 싶었어요. 아울러 범인을 밝히는 "추리쇼"가 너무 작위적이었다는 것 역시 아쉬운 부분이었고요.

그래도 여전한 고전 정통파적인 면모는 느껴지며 작품의 수준 역시 범작 수준은 되는, 재미있게 읽을 만 한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제목도 멋드러지고 번역이 잘 된 것 같지는 않지만 어느정도 번역자의 의지(?)가 느껴지는 것도 인상적이고요. 제 취향은 아니라는 것 하나만 문제였달까요. 별점은 2.5점입니다.

2007/08/23

파일 7 - 윌리엄 P 맥기번 (일신추리문고 52) : 별점 2점

대부호 올리판트 블래들리의 손녀가 듀크 파렐을 중심으로 한 악당들에게 유괴된다. FBI는 곧바로 수사에 착수한다. 한편 듀크 파렐의 동생인 행크가 형의 음모를 눈치채고 그들의 은신처를 방문하면서 사건은 알 수 없는 결말로 치닫게 되는데...

윌리엄 P 맥기번의 유괴물 고전입니다. 제목 자체가 FBI의 사건 코드, 즉 "유괴사건"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하네요.

간략한 줄거리와 설정만 본다면 흥미진진한 수사물에 가까울 것이라 생각되지만 수사물로 보기에는 범인의 단서가 너무 쉽게 잡히는 점과 FBI의 수사가 지나치게 조심스러워서 외려 시간을 질질 끄는 느낌을 받는 등 그다지 잘 꾸며진 이야기는 아닙니다. 한마디로 정석적이긴 한데 너무 심심해요. 차라리 보모 케이트 때문에 발생하는 수사적인 혼돈을 병행하여 처리하였다면, 혹은 은신처의 보안관의 활약이라도 보여주었다면 훨씬 나았을 겁니다.

그래도 유명한 고전답게 건질게 아예 없지는 않습니다. 특히 유괴범, 특히 듀크 파렐의 심리묘사가 빼어나고 악당들과 케이트, 행크 커플 사이에서 발생하는 심리적인 갈등과 위기감의 표현은 무척 탁월합니다. 추리물을 기대한다면 썩 만족스러운 선택은 아니지만 희대의 악당이라 할 수 있는 듀크 파렐을 만난 것 만으로도 그런대로 성과는 있었다고나 할까요? 충분히 시리즈물 캐릭터로 써먹음직한 매력적 인물로 보였는데 거물 악당치고는 결말이 조금 시시하고 안일한 측면이 있어서 약간 아쉽긴 했지만요.

어쨌거나 결론을 말하자면 별점은 2점. 제 취향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썩 권할만한 책은 아니라 생각됩니다. 캐릭터만 보고 선택하기에는 재미가 너무 없기에...

2007/08/19

부패의 풍경 - 데이비드 리스 / 남명성 : 별점 4점

부패의 풍경
데이비드 리스 지음, 남명성 옮김/대교베텔스만주식회사(베텔스만)

저지르지도 않은 살인 혐의로 법정에 선 해결사 벤자민 위버. 그는 자신의 무죄를 입증할 명백한 증거를 제시했음에도 유죄 판결을 받는다. 그리고 더 알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진다. 감옥으로 끌려가던 위버 앞에 한 매혹적인 여성이 나타나 자물쇠를 풀 수 있는 도구를 건네준 것. 위버는 적어도 두 가지를 확실하게 알 게 된다. 누군가는 위버가 교수형을 당하길 바라고, 다른 누군가는 그가 자유의 몸이 되길 바란다는 것이다.

교도소를 말 그대로 죽을힘을 다해 탈출한 위버. 그는 자신의 결백을 밝히기 위해 친구 엘리아스의 아이디어로 자마이카에서 돌아온 돈 많은 상인 행세를 하며 지저분한 정치판에 끼어들고, 자신에게 벌어진 모든 일이 선거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잘 모르는 작가이긴 한데 간만에 본가에 갔을때 형이 권해줘서 읽게 되었습니다. 읽다보니 에드가상을 수상했던 전작을 비롯, 세번째에 위치하는 시리즈물이더군요. 이거 한편으로도 이야기는 완벽하게 전개되고 마무리되니 큰 상관은 없지만...
여튼, 두께가 범상치 않아 읽기 좀 힘들겠다.. 싶었는데 왠걸! 의외로 재미있어서 쑥쑥 쉽게 며칠만에 읽어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나마 보통 출퇴근때 읽어서 며칠 걸린 것이지 맘 잡고 읽으면 하루에 다 뗄 수 있을 정도로 재미를 갖춘 책이더라고요.

내용은 18세기 영국, 특히 런던을 중심으로 토리당과 휘그당의 격렬한 선거전 와중에 펼쳐지는 암투와 음모 와중에 주인공이 누명을 벗기 위해 싸워 나가는 과정을 다루고 있는데 솔직히 주인공 벤자민 위버가 걸려들은 덫은 치밀하거나 깊은 의미가 있지는 않으나 맨 처음에 밝혀낸 것이 진실이었다는 복선이 재미를 더하고 있으며, 가장 중요한 설정인 토리당과 휘그당, 그리고 재커바이트간의 치밀한 세력 싸움이 잘 묘사되었다는 점과 이러한 세력 싸움이 벤자민 위버가 얽힌 사건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는 것이 제대로라 참 잘 만든 이야기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끔 합니다.
또 등장하는 인물들의 캐릭터들이 강렬하다는 것도 인상적이에요. 특히 주인공인 벤자민 위버는 정말 참 잘 만든 캐릭터더군요! 친구 엘리아스의 비중이 너무 적었다는 것은 좀 아쉽지만요.
아울러 정치인들은 고금동서를 통틀어 똑같다.. 라는 진리 역시 충실히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제목 그대로 "부패의 풍경" 그 자체니까 말이죠.
추리적으로 크게 특기할 만한 점은 없으나 당시의 고증을 잘 살리면서도 수사과정을 제대로 묘사하고 있어서 어느정도 추리적인 재미도 느끼게 해 주면서 크게 위화감이 들지 않는 설득력 있는 전개를 보여준다는 것도 마음에 드는 점입니다. 아무래도 "자백"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사건 특성 상 벤자민 위버가 자신에게 뒤집어 쓰여진 죄를 벗어나는 것이 너무 쉽게 그려지지 않았나 싶기는 한데, 또 이 부분은 악당 캐릭터의 강력함 때문에 더 어설퍼 보이기도 합니다만 벤자민 위버가 워낙 작품 내내 고생만 한 만큼 이 정도는 봐 줘야겠죠.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4점! 전편이 읽어보고 싶어질 만큼 매력적인 캐릭터와 스토리로 가득찬 역사 추리 소설의 교과서 같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번역도 마음에 들고요. "장미의 이름" 같이 추리의 탈을 뒤집어 쓴 역사 소설과는 확실히! 다릅니다. 구태여 비교하자면 캐드펠 시리즈와 좀 유사한데 캐드펠 시리즈 최고작들과 비슷한 수준의 재미를 선사해 주는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전작을 꼭 읽어봐야 겠네요.

조디악 (Zodiac / 2007) - 데이빗 핀처 : 별점 4점

 


1969년 8월 1일, 샌프란시스코의 3대 신문사인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샌프란시스코 이그재미너, 발레호 타임즈 헤럴드 앞으로 한 통의 편지가 배달된다. “친애하는 편집장께, 살인자가 보내는 바요…”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편지에는 1968년 12월 20일 허만 호숫가에서 총에 맞아 살해된 연인, 1969년 7월 4일 블루 락 스프링스 골프코스에서 난사 당해 연인 중 남자만 살아남았던 사건이 자세하게 서술되어 있었다. 그가 편지에 적힌 단서들은 사건을 조사한 사람 혹은 범인만이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신문사의 업무는 일대 마비가 된다. 희대의 살인마 잭 더 리퍼 이후 언론에 편지를 보내 자신의 신원에 대한 단서를 던지며 경찰을 조롱하는 살인범은 처음이기 때문. 범인은 함께 동봉한 암호문을 신문에 공개하지 않으면 살인을 계속하겠다고 협박한다. 경찰은 범인이 자신의 별명을 ‘조디악’이라고 밝히자 그를 ‘조디악 킬러’라고 명명하고 수사에 착수한다.

뒤이은 살인 사건으로 사건은 커져만 가고, 모방범죄가 전국에서 속출하지만 유력 용의자는 거리를 활보했다. 시간이 흘러 사람들의 기억 속에 조디악의 존재가 잊혀져 가고 있다. 그러나 크로니클의 만평가 출신인 그레이스미스는 범인의 추격을 포기하지 않았다.


데이빗 핀처 감독의 영화입니다. 영화는 실제 70년대 유명했던 연쇄살인범 조디악 킬러의 이야기를 다룬 것입니다.

실제 존재했던, 그리고 아직 체포하지 못한 연쇄 살인범을 추적한다는 점에서 "살인의 추억"과 어느정도 비슷한 부분이 있지만, 이 영화는 실존 인물들을 전부 등장시켜 논픽션에 가깝게 영화를 제작하여 더욱 사실감을 높이고 있다는 부분이 차이점입니다. 실존 인물이자 조디악 킬러에 관한 책을 쓴 원 만평가 로버트 그레이스미스를 주인공으로 하여 그가 개인적으로 조디악 킬러에 대해 조사해 나가고 결국 단서를 잡아 가장 유력한 용의자를 부각시키는 과정을 한편의 수사-추리물로 보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굉장히 디테일하게 묘사하고 있어서 아주 흥미진진하고 재미있게 감상할 수 있습니다. 아무래도 실제 인물과 그가 쓴 책을 기초해서인지 정말 사실감이 넘치더군요. 보다보면 추리소설 "호그 연속 살인" 에서 봄직한 범인의 트릭이 등장하는 것도 이채로왔습니다.

데이빗 핀처에게서 기대해 봄직했던 잔인한 묘사는 그렇게 많지 않고 거칠고 생생한 느낌의 촬영도 그렇게 눈에 띄지 않는, 정제되고 차분한 연출 역시 볼거리였습니다. 음악도 좋았고요.

단, 실존 인물과 실제 사건을 자세하게 짚고 넘어가기 때문에 영화가 제법 길다는 점, 그리고 초-중반부의 중요 인물이었던 기자 폴 에이버리의 비중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이야기의 중심축이 급격하게 그레이스미스로 넘어가는 부분 등이 약간 거슬리긴 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로버트 다우닝 주니어의 간만에 보는 모습이 반가왔기 때문에 폴 에이버리가 꽤 마음에 들었었거든요.

어쨌건 실제 사건을 다룬 영화 중에서는 베스트로 꼽을 만큼 잘 만든 영화라 생각이 되네요. 마지막 마무리 부분, 즉 "진범은 누구인가?" 에 대한 답은 미결사건 답게 명확하게 제시되지 않지만 영화를 보면 한명을 지목할 수 있고, 또 그가 유력한 용의자임에는 분명해 보이기에 한편의 완결된 수사물로 보아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정답은 아닐 수도 있겠지만...

2007/08/17

히어로즈. 일상 생활에서의 초능력자

제 주위에는 초능력을 소유한 인물들이 참 많습니다.

가장 독특한 능력의 소유자는 같이 근무하는 디자인 팀의 김과장.

그의 초능력은 "어디서 뭘 주문해도 항상 가장 늦게 음식이 나온다!"는 것이죠. 능력이 점차 진화하여, 급기야는 오늘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시켰는데도 가장 늦게 나오는 궁극단계에 들어섰습니다. 일상 생활에는 아무 보탬도 되지 않지만, 아니 외려 불편하지만 가끔 이 능력을 보고 있자면 신기하기만 하더군요.

저도 간단한 능력이라도 하나쯤 가지면 참 좋겠다.. 싶은 생각이 듭니다. 일단 제일 원하는 능력은 "지하철에서 내 앞에 앉은 사람이 바로 일어나는 능력" 입니다. 이 정도면 소박하면서도 CIA 등에 쫓기지 않고 일생을 편안하게 보낼 수 있는 적절한 수준이 아닐지...

2007/08/15

사라진 남자 (Charlie Muffin)- B 프리맨틀 / 박종원 (일신추리문고31) : 별점 3.5점

찰리 머핀은 영국 정보부의 베테랑 요원. 그러나 정보부장의 교체 등 인물들이 물갈이 되면서부터 서서히 소외되기 시작한다. 한편 그의 활약으로 붙잡은 소련 KGB의 1급 스파이 베렌코프의 석방을 놓고 궁지에 몰린 KGB 장군 카레닌은 망명의사를 은밀히 피력하게 되고, 그러한 신호를 감지한 CIA와 영국 정보부는 공동 작전을 개시하여 그를 서방세계로 망명시키려 한다. 영국 정보부는 담당 정보부원들이 모두 실패하자 어쩔 수 없이 찰리 머핀을 작전의 중심 인물로 기용하며, 찰리 머핀은 일생일대의 대 작전에 나선다.

B 프리맨틀은 일본에서 선정한 "동서미스테리100"에 "이별을 알리러 온 남자"라는 작품이 선정되어 있기도 한 유명작가인데 작품을 읽어본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국내에 소개된 작품이 적은 탓도 크지만요.

줄거리 소개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스파이 첩보물입니다. 그러나 이 바닥의 고전인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 라던가 "르윈터의 망명"과는 분명히 차별화되는 요소를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조국에 대한 충섬심은 배재한체 두뇌게임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는 점이죠.
또한 일반적인 스파이들과는 다른 찰리 머핀이라는 캐릭터도 무척 인상적이에요. 잔머리에 강하면서도 프로로서의 자부심도 높고 약간 비열한 면모도 보이는, 그간 다른 첩보물에서 보기 힘들었던 복잡하면서도 독특한 캐릭터였거든요. 이러한 그의 모습이 작품의 재미에 가장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기도 하고요.

내용은 베테랑 요원 찰리 머핀의 1인극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로 그의 활약과 두뇌싸움이 중심인데 007같은 단순한 히어로물은 아니며 정보부의 비정함, 서로가 속고 속이는 잔인한 게임을 잘 표현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때문에 현실적이면서도 긴박한 전개가 무척 일품이었어요.

결론적으로 별점은 3.5점. 스파이 첩보물을 좋아하신다면 추천드립니다. 이미 절판된 책이라 지금 구하기에는 조금 어렵지만 구해볼 가치는 있습니다.

그나저나... 조사해 보니 이 작품을 시작으로 한 시리즈물이던데 이후 작품들도 꼭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특히 "이별을 알리러 온 남자"가 땡기네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시리즈물이 계속될 만한 결말이 아니었는데 어떻게 이어지는지도 좀 궁금하거든요.
덧붙이자면, 이 작품의 가장 중요한 교훈은 "부하한테 잘 해줘라" 정도가 되겠습니다....^^;;

2007/08/10

대답은 필요없어 - 미야베 미유키 / 한희선 : 별점 3.5점

대답은 필요 없어 미야베 미유키 지음, 한희선 옮김/북스피어

미야베 미유키의 단편집. 잡지 "판타스틱"에서 읽었던 단편이 별로였으며 같은 여성작가인 기리노 나쓰오의 단편집 "암보스 문도스" 역시나 그냥저냥이었기에 그닥 기대하고 구입한 책은 아닙니다.

그런데 이 책이 상당히 물건이더군요! 단편들의 수준도 높지만 추리적으로도 깔끔한, 정통파적인 맛이 느껴지는 수작 단편집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작품이 해피엔딩이라는 것도 마음에 든 점이고요. 미야베 미유키의 해피엔딩은 익숙치 않았는데 의외로 아주 좋았어요.
바로 직전에 읽은 "백기도연대"와 정 반대로 대중성과 작품성을 모두 갖추고 있습니다. 같이 사무실을 차려서 일할 만큼 서로의 영역에서 인정받는 작가들이긴 하지만 제 취향은 아무래도 저는 쿄고쿠 보다는 미야베 미유키 쪽이라 생각이 드네요.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3.5점. 개인적인 베스트는 추리적인 요소가 잘 살아있는 "배신하지 마" 인데 다른 작품들도 다 재미있었습니다. 아직 읽어보지 못하신 분들, 대답은 필요없습니다.^^ 미야베 월드 입문작으로 추천합니다.
작품별 간략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대답은 필요없어>
일종의 은행사기를 다룬 단편으로 의외성은 없지만 사건 수사의 결정적 단서가 되는 "비밀번호"가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예상치 못한 부분의 맹점을 팍!하고 찔러주기 때문입니다. 보험사기 등 현대 신용사회에서 발생할 수 있는 소재를 이야깃거리로 구성하는 작가의 전공이 다시한번 느껴졌습니다.

<말없이 있어줘>
난데없는 교통사고가 완전범죄와 연결되는 단편. 일본 추리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인물의 수사극"과 그 맥을 같이하고 있지만 결말의 의외성이 독특했습니다. 너무 의외성을 강조한 점, 그리고 우연에 의지한 전개가 보이는 점이라는 단점은 있지만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나는 운이 없어>
고등학생을 주인공으로 하여 일종의 사기극을 다룬 소품. 그런데 작품의 설정이 이해하기 어려웠어요. 너무 극단적인 복수극인것 같기도 하고, 아무리 장난이지만 너무 심한 사기가 아닌가 싶기도 하고... 또 결말부의 약간의 반전 역시 별로였고요. 주인공 캐릭터는 마음에 들었지만 그 외에는 다 별로였기에 이 단편집의 워스트로 선정합니다.

<들리세요>
어머니와 할머니의 불화끝에 이사를 오게 된 초등학생이 우연찮게 도청기를 발견하게 되는 것에서 시작하는 이야기. 노인의 외로움과 의심 등을 잔잔하지만 나름 충격적으로 담아낸 소품으로 미야베 미유키의 서정적이면서도 주제를 잘 전달하는 능력이 잘 드러나는 수작이었습니다.

<배신하지 마>
빚더미에 올라 앉은 신세대 여성의 추락사를 수사하는 내용으로 가장 정통 추리물에 가까운 작품이었습니다. 중요한 단서를 포착하는 부분이 너무 "감"과 "우연"에 의지하는 것은 단점이나 여성의 심리를 잘 아는 여성작가답게 심리를 파고드는 점은 괜찮았어요. 씁쓸한 결말의 조화도 마음에 들었고요.

<둘시네아에 어서 오세요>
최고급 디스코텍 둘시네아에 관한 메모를 남기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고학생 속기 아르바이트가 등장하는 작품으로 설정이 일상적이면서도 재미있어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잔잔하나 인상적인 작품이었어요.

2007/08/08

백기도연대 雨 - 쿄고쿠 나츠히코 / 이길진 : 별점 2.5점

백기도연대 雨 쿄고쿠 나츠히코 지음, 이길진 옮김/솔출판사

일본에 있는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제목은 직역하자면 "백가지 그릇 무리의 당연한 자루" 정도 되려나요? "백가지 그릇과 관련된 이야기 책"이라는 뜻으로 짐작됩니다만....

어쨌거나 이 책은 쿄고쿠 나츠히코의 다른 작품들에서 주연급 조연으로 출연했던 괴물탐정 에노키즈를 주인공으로 한 중편집입니다. 그런데 화자인 전기배선공 모토시마부터가 원래 교코쿠도 시리즈의 주요 인물인 소설가 세키구치와 너무나 유사할 뿐더러 결국 사건을 해결하는 중심축은 추젠지 (교코쿠도)가 맡고 있기 때문에 교코쿠도 시리즈와 별다른건 없더군요. 에노키즈의 기묘한 언행이 보다 업그레이드되어 묘사될 뿐, 그의 특수한 능력, 즉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 제대로 표현되지 않는 것 역시 여전하고요.
한마디로 이야기하자면 기존 시리즈와 차별화되는 요소가 전혀 없는, 스핀오프로 보기에는 애매한 작품이었습니다. 에노키즈의 괴이한 능력이 십분 발휘되는 작품을 기대했는데 조금 아쉬웠어요.

그래도 실려있는 3편의 중편 - <나리가마- 장미 십자탐정의 우울>, <가메오사 - 장미 십자탐정의 울분>, <야마오로시 - 장미 십자탐정의 분개> - 중 첫번째 이야기는 절대로 추리물이라 볼 수 없는 왁자지껄한 소동극이지만 두번째, 세번째 이야기는 대충 추리물의 얼개를 갖추고 있으며 제대로 된 쿄고쿠 나츠히코 스타일 추리소설이라서 그러한 작풍에 기대를 가진 저같은 독자에게는 꽤 만족스럽기는 했습니다. 중편들이라 너무 장황하고 긴듯한 묘사가 다른 장편에 비하면 많이 줄어들어 읽기는 수월했다는 장점도 있었고요.
특히 개인적인 베스트인 세번째 작품 "야마오로시"는 따로 떼어놓고 본다면 아주 괜찮은 트릭과 여러가지 사건들이 잘 맞물리는, 단서도 명확한 상당히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그러나 장편물에서도 지나치게 방대하다 느껴졌던 요괴나 주술에 대한 정보를 잔뜩 나열하는 부분은 중편분량 작품임에도 전혀 줄지가 않고, 캐릭터의 묘사 역시 비슷한 분량이라 사건에 대한 내용이 많이 축소되어 묘사된다는 단점이 눈에 많이 거슬리네요. 정통 추리물로는 많이 부족한 작품이 되어 버렸거든요. "탐정소설"이라는 부제가 달려있는 만큼 "이건 추리물이 아니야!"라는 작가의 의도일 수도 있겠지만 요괴 이야기 등은 아무리 봐도 억지로 집어넣은 것 같은 티가 나서 영 별로였어요.

결론적으로 별점은 2.5점입니다. 저에게는 그렇게 만족스럽지 않았던, 또한 쿄고쿠도의 매력을 제대로 느끼기에는 확실히 2% 정도 부족해 보였어요. 괜시리 에노키즈를 끌어들이느니 그냥 쿄고쿠도, 즉 추젠지의 이야기를 중편으로 만드는 것이 더 나았을 것 같네요.

아울러 번역, 특히 교정에서의 실수가 눈에 제법 뜨였던 것도 감점 요소 였습니다. 책 자체는 신경을 많이 썼지만 좀 더 세심한 교정이 필요해 보입니다.

2007/08/05

용의자 X의 헌신 - 히가시노 게이고 / 양억관 : 별점 3점

 

용의자 X의 헌신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억관 옮김/현대문학

과거 술집에서 일했지만 지금은 도시락집에서 착실하게 일하며 딸과 함께 오손도손 살아가는 야스코에게 잊고 싶은 과거인 전남편 도미가시가 나타난다. 폭력을 휘두르는 그에 맞서 우발적으로 도미가시를 살해한 야스코 모녀는 당황해하지만 마침 옆집에 사는 고교 수학교사 이시가미가 그들을 돕기위해 나선다...

국내에 번역된지는 꽤 됐지만, 또 평이 무지무지하게 좋았던 작품이지만 워낙에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작가를 싫어하는 탓에 이제서야 읽게 되었습니다.

읽고 난 감상이라면, 일단 기대에 미치지는 못하더군요. 평이 너무 좋았기에 기대가 컸는데 그 기대를 충족시킬 만한 작품은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추리적으로만 따진다면 트릭은 생각보다 훨씬 뛰어난 편이었습니다. 히가시노 게이고를 정통 작가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에 보다 의외이기도 했는데 소설적 장치 트릭 (일종의 서술트릭?) 중에서도 일급 수준이라 평하고 싶네요. 하지만 시체의 진위를 가리는 장면을 대충 넘어간 것 하나는 좀 아쉬웠습니다. 단지 얼굴과 지문의 유무만 가지고 시체가 특정된 측면이 강했거든요. 보다 정교하고 치밀한 장치가 필요하지 않았을가 싶은데 말이죠. 또한 이시가미가 당일의 알리바이를 철벽으로 만들어 제시하는 것이 더 낫지 않았을까 싶어요. 어차피 우연에 의해 사건에 뛰어드는 유가와를 배제한다면 그것이 더욱 설득력있는 상황일텐데 지나치게 앞서간 것 같아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여 사건을 벌여 나간다는 것은 아무래도 납득이 되지 않거든요. 뭐 그래도 트릭은 상당한 수준임에는 분명합니다.

또한 탐정역인 물리학 조교수인 천재 유가와라는 캐릭터가 굉장히 강렬하며, 유가와와 범인인 이시가미의 두뇌 싸움 역시 상당히 볼 만 하게 전개됩니다. 좀 작위적이고 만화적이기도 하지만 좋은 트릭과 강렬한 탐정 - 범인의 대결구도가 잘 결합하여 상승작용을 불러 일으키는 느낌이었어요.

그러나 아무리 사랑하는 여인이라도 그 여인을 위해서 전혀 관계없는 살인사건을 떠안고 또 다른 살인까지 벌인다는 설정은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 현실성도 떨어졌고요. 이 점은 이시가미라는 캐릭터에 대한 묘사나 설명이 그만큼 부족했었기 때문에 그만큼 효과적으로 설명되지 못한 것 같습니다. 고독한 수학천재가 한 여자를 사랑하고, 그 여자를 위해 범죄에 뛰어든다.. 라는 이야기는 충분히 재미있을 수 있지만 유감스럽게도 "QED"의 토마만큼의 캐릭터성도 보여주지 못한 평면적 인물에 그치고 말았을 뿐입니다. 다른 걸 다 떠나서 제가 싫어하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최대 단점, 말랑말랑한 러브 라인이 지나치게 묘사되어 아쉽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영상물에 더욱 어울리는 작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영상물이라면 비쥬얼로 캐릭터성을 부여하고 작품의 설득력을 보다 높일 수 있을 테니까요..

디 워 (D-War, 2007) - 심형래

스토리야 뭐 워낙 잘 알려져 있으니깐 생략하기로 하고... 전 개인적으로 무척 재미있게 감상했습니다.

뜬금없고 난데없는 장면들의 연속일지라도 스토리가 이어지지 않는것은 아니며, 배우들이 연기를 발로 하더라도 어쨌건 CG로 구현된 이무기와 용이 너무 멋있고 대단했기에 돈은 전혀 아깝지 않았거든요. 애국심을 떠나서라도 화려한 이무기의 액션은 최소한 저에게는 8000원의 값어치는 충분히 했습니다. 특히 마지막의 용은 정말! 캐감동이더군요!

조금 조사해보니 어떤 영화감독의 글로 파문이 좀 일었나 봅니다. 그런데 솔직히 저에게는 그 감독의 "질투" 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B급 영화, 혹은 독립영화로 시작하여 메이저로 진출한 사람이 널리고 널린 국내 영화판에서 아직도 독립영화계에 있다는 것 자체가 본인에게는 불만이었을 수는 있겠지만.... 뭐 그것도 그 사람 실력이니까요. 

어쨌건, 로저 코만이 이야기했죠. 돈을 들인것이 화면에 보여야 한다고. 국내 대작 중에 들인 만큼의 돈이 화면에 보였던 작품이 어떤 것이 있었죠? 배달의 기수였던 <실미도>? 작품의 수준을 떠나, 디-워는 충분히 그 돈이 화면에 보였기에 저는 만족합니다. 1시간 30분 동안 저는 충분히 즐거웠습니다.

PS : 덧글을 보니 제가 뭔가 잘못 생각했던 것 같아 이송희일 감독의 글 전문을 다시 읽고 수정하며, 아울러 몇 줄 더 적습니다.

1. 350개 어쩌구 했던 발언은 제가 잘못 본 것이었군요. 사과드립니다. 하지만 700억이란 돈을 끌어다 한편의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것도 분명 열정이고 재능입니다. 독립영화가 어렵다고 넋두리는 그만 하시길. 말씀하신 열정의 쓰나미로 영화만 찍지 마시고 열정적으로 돈을 끌어 오세요.

2. 전 이야기가 개판이라도 즐거웠다고 다시 한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700억짜리 (아니면 그게 얼마가 됐든) 이무기와 용의 향연을 보러가서 충분히 즐거웠기 때문이죠. 디-워의 경우는 허접함이 극의 재미를 더하는? B급 영화의 풍모가 느껴져 더 즐길 수 있었습니다. 이 재미는 애국심과 상관없는 것으로서 저는 단지 한명의 관람객으로서 돈 8000원이 아깝지는 않았습니다. 

3. 그리고 마지막으로 왠 기타노 다케시? 전혀 쟝르가 다르잖아?

2007/08/04

럭키경성 (樂喜京城) - 전봉관 : 별점 3점

 

럭키경성
전봉관 지음/살림

경성기담의 작가 전봉관씨의 신작입니다. 경성기담이 일본강점기 시대의 여러가지 범죄를 다루었다면 이 책은 크게 1, 2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1부는 투기에 관련된 내용 중심으로, 2부는 당시 거액의 재산을 희사한 거부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1부가 훠~얼씬 재미있었습니다.^^

1부에는 총 4편의 이야기가 실려있습니다. 함경북도 나진의 부동산 투기열풍, 미두왕 반복창의 인생유전, 소설가 김기진의 이중생활, 조선취인소 슈퍼개미 열전의 4편의 이야기인데 모두 재미있고 신선한 이야기였습니다. 나진의 부동산 투기 열풍에 관한 글을 읽다보면 지금과 부동산 투기에 대한 것은 하나도 다르지 않구나 싶은 생각도 들고, 미두왕 반복창의 인생유전을 읽다보면 지금도 주식 등에서 패가망신하는 개미들이 겹쳐지기도 했고요. 그 외 소설가 김기진의 일확천금을 노리는 이야기라던가 조선취인소에서 활동하던 승부사 유영섭이나 주식왕 조준호 등의 이야기 역시 흥미진진하더군요. 특히 미두왕 반복창, "반지로"의 이야기는 정말 한편의 드라마라서 영상화 작업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파란만장했습니다.

하지만 2부의 금광왕 이종만이나 유기장수 이승훈, 평양 백과부와 여걸 최송설당 이야기는 뭐랄까, 감동적인 이야기일 수도 있긴 하지만 썩 재미는 없더군요. 28전29기만에 금광왕이 된 이종만과 보부상에서 시작해서 거부가 된 이승훈의 이야기는 괜찮았는데 뒤의 여성 2분의 이야기는 그냥 재산을 희사했다... 정도 수준의 이야기였거든요. 백과부 이야기는 가끔 뉴스에 나오는 "김밥할머니 전재산 XX대학에 기부" 라는 기사 수준의 이야기였고, 이승훈과 최송설당의 재산형성 과정에는 아무래도 문제가 많이 보이기에, 물론 전 재산을 희사했다라는 것은 대단하지만 그 가치가 많이 희석되는 측면이 있어 그리 와닿지는 않았습니다.

여전한 전봉관씨의 자료 수집 능력에는 경의를 표하며, 단지 사건만 나열하지 않고 어느정도 문장으로 재 구성하여 읽기도 편하고 각 인물들의 후일담도 충실히 소개하고 있는 등 자료로서 꽤나 괜찮은 수준이라 생각됩니다. 물론 기본적으로 재미도 있는 만큼 이쪽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읽어볼만한 책이 아닐까 싶네요. 저 역시도 조선취인소나 미두시장 등의 이야기는 꽤 인상이 깊었던 만큼, 언젠가 써먹어 보고 싶어졌습니다. 지금 알라딘에서 구입하면 전작 "경성기담"을 같이 주는 이벤트를 하고 있으니 구입하실 분들은 참고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