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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14

추리 소설 속 자동차 : 알파 로메오 스파이더

그동안 추리소설 속에 등장하는 요리에 대해 몇 차례 글을 써 왔습니다. 음식은 인물의 취향과 성격, 그리고 시대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장치이기 때문입니다. 이 글은 모아서 책으로 출간하기도 했지요.

이번에는 조금 방향을 바꿔, 추리소설에 등장하는 자동차를 소개해 보려고 합니다. 자동차는 추리적으로 알리바이를 만들기도 하고, 완벽해 보이던 알리바이를 무너뜨리는 결정적인 단서가 되기도 하니까요. 때로는 밀실을 대신하는 공간으로 활용되기도 하고요. 차종과 색상, 구입 시기 같은 정보만으로도 인물의 성향과 처지를 드러노기도 합니다. 굴러가기만 한다는 이유로 오래된 고물 블루버드를 타고 다니는 탐정 사와자키처럼요. 낡고 오래되었지만 ‘가난한 사람들의 BMW’라는 별명답게 튼튼하고 신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인물과 차가 절묘하게 겹쳐 보입니다. 최근의 예로는 "링컨차를 타는 변호사"의 미키 할러를 떠올릴 수 있겠네요.

이처럼 현대 추리소설에서 자동차는 사건과 등장인물과 밀접하게 연결된 존재입니다. 수많은 작품 속에 다양한 차가 등장하지만, 그중에서도 이야기의 핵심 장치로 기능하는 자동차들을 중심으로 하나씩 소개해 보겠습니다.

첫 번째로 소개할 자동차는 알파로메오 스파이더 3세대입니다.

알파로메오는 1910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출발한 브랜드로, 레이싱을 통해 다져진 기술력과 감각적인 디자인으로 명성을 쌓아 왔습니다. ‘운전의 즐거움’을 상징하는 브랜드로 자주 언급되며, 스포츠성을 중시하는 제조사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스파이더는 1966년 처음 등장한 2인승 오픈 스포츠카입니다. 디자인은 피닌파리나가 맡았고, 유려한 곡선의 차체로 큰 호평을 받았습니다. 영화 "졸업"에 등장하며 세계적인 인기를 얻었고, 1993년까지 약 27년간 생산되며 12만 대 이상 판매된 장수 모델이기도 합니다. 그중 3세대는 1983년부터 1989년까지 생산된 후기형으로, 기존의 클래식한 이미지를 유지하면서도 범퍼와 외관을 현대적으로 다듬어 1980년대 감각에 맞춘 변화를 보여 주었습니다. 전통을 이어 가면서도 시대의 흐름에 발맞춘 세대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모델이지요.

이 차가 등장하는 작품은 일본의 콤비 추리소설가 오카지마 후타리의 1987년 작품 "그리고 문이 닫혔다"입니다.
오카지마 후타리는 두 명(이노우에 유메히토, 도쿠야마 준이치)의 합동 필명으로, 이름의 유래는 ‘재미있는 두 사람’(오카시나 후타리)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독특한 아이디어와 소재를 도입한 본격 추리물로 유명하며, 대표작으로는 "클라인의 항아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문이 닫혔다"는 피해자의 모친이 사건 용의자 네 명을 핵 셸터에 가둔 뒤 진상을 밝혀내려 한다는 독특한 설정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이 작품 속 피해자 사키코의 애차가 바로 알파로메오스파이더고요. 세대가 명확히 언급되지는 않지만, 발표 시점이 1987년이고 사키코가 부유한 집안의 딸로 최신 유행과 명품을 선호하는 인물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당시 판매 중이던 3세대 모델이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화려한 빨간색 오픈 스포츠카는 제멋대로이면서도 타인의 시선을 즐기는 사키코의 성격과 잘 어울립니다. 유이치와 드라이브를 하다가 일부러 차를 세우고, 루프를 연 채 키스를 나눈다는 묘사를 통해 관심받기를 좋아하고, 주변 사람들 위에 군림하려는 그녀의 모습을 한층 선명하게 드러내지요. 이는 2인승 오픈카라서 가능했을 행위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이 자동차는 단순히 이러한 사키코의 성격을 상징하는 소품에 그치지 않습니다. 그녀가 절벽 아래로 추락해 사망했을 당시 타고 있던 차가 바로 이 알파로메오였고, 사건의 실마리 역시 차량에서 발견되기 때문입니다. 

신문에 실린 흑백 사진 속 인양된 알파로메오와, 사키코가 생전에 찍힌 컬러 사진 속 차량을 번갈아 보던 유이치 일행은 운전석 시트 위치가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알아냅니다. 두 사진 모두 차량의 왼쪽에서 촬영되었고, 좌핸들 차량이므로 운전석은 카메라 쪽에 자리합니다. 그런데 바다에서 끌어올린 차량의 시트는 컬러 사진보다 훨씬 뒤로 밀려 있습니다. 사키코가 직접 운전했다면 시트 위치가 같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던 것입니다. 즉, 사건 당시 마지막으로 운전대를 잡은 인물이 사키코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자동차는 단순한 배경, 소품이 아니라 소설의 추리적 핵심 장치로 사용됩니다. 시트 위치라는 사소한 차이가 사고사라는 견해를 뒤집고, 등장인물들의 알리바이를 다시 검토하게 만드니까요.

조금 더 들여다보면, 그 시각 현장에 있던 네 명 중 타다시는 사키코를 살해한 뒤 차량에 태워 절벽까지 이동할 수는 있었습니다. 그러나 타다시와 치즈루, 아유미는 이후 함께 절벽에서 차량을 발견했지만, 차 안에는 시체가 없었습니다. 그 뒤로 세 사람은 계속 함께 있었기 때문에 타다시가 차량을 절벽 아래로 밀어 떨어뜨리는 일은 불가능했습니다.
반면 그 시간대에 유일하게 자리를 비운 인물은 유이치였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유이치가 범인이라고 단정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는 사건 초반에 별장을 떠났기 때문에 살해를 실행하기에는 시간이 맞지 않으니까요. 

과연 범인은 누구일까요. 누가 언제 운전대를 잡았고, 사키코의 죽음은 어떻게 연출된 것일까요. 그 진상과 트릭은 "그리고 문이 닫혔다"를 통해 직접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앞으로 추리소설을 읽으실 때 인물들의 대사뿐 아니라 그들이 타고 다니는 자동차에도 한 번쯤 눈길을 주시면, 또 다른 재미를 발견하실 수 있을 겁니다.

2025/09/27

돈돈 다리, 떨어졌다 - 문고판 후기

어제 읽은 "돈돈 다리, 떨어졌다" 문고판의 아야츠지 유키토가 직접 쓴 후기입니다. 재미있는 내용이 제법 있어서, 이 부분만 ChatGPT로 번역하여 소개해 드립니다.

문고판 후기

『どんどん橋、落ちた』라는 이 작품집에는 사실 남다른 애착이 있습니다. 일반 단행본 판본이나 고단샤 노벨스판으로 읽어 주신 분들의 반응은 각자 달랐습니다. 가벼운 ‘범인 맞히기’ 단편집으로 시원하게 즐긴 분도 있었고, “바보 같다”라며 불쾌해한 분도 있었지요. 현대 본격 미스터리를 둘러싼 상황에 대한 일종의 비판으로 무겁게 읽은 분도 있었고, 이번 문고판 해설을 써 주신 시노하라 미야코 씨처럼 “애잔한 미스터리”로 받아들이신 분도 있었습니다. 어떻게 읽든 독자의 자유이며, 한 번 손을 떠난 이상 작가가 “이렇게 읽어 달라”고 요구할 권리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 작품집에 실린 다섯 편 가운데 네 편(제1화부터 제5화)을 1998년 가을부터 1999년 여름에 걸쳐 잇달아 잡지에 발표하던 시절을 돌아보면, 제가 그 작품들을 꽤 절실한 마음으로 썼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합니다. “절실한 마음”이란,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내 ‘존재 방식’이 이대로 좋은가, 라는 물음이었습니다.

내 존재 방식은 이대로 괜찮은가? 결국 그 답은 제5화의 마지막에서 일단 제시되었지만, 그것만으로는 말끔히 매듭지을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이번 문고판이 이 작품집의 최종판이 될 것입니다. 이어서 각 수록작에 대한 짧은 해설을 덧붙입니다.

「どんどん橋、落ちた」"돈돈 다리, 떨어졌다."
(초출 = 아유카와 데쓰야·시마다 소지 편 『ミステリーの愉しみ 第五巻 奇想の復活』 릿푸샤, 1992년 9월 10일 초판)

1991~92년에 걸쳐 아유카와 데쓰야·시마다 소지 두 분이 책임 편집한 앤솔로지 『ミステリーの愉しみ』 전 5권이 릿푸샤에서 간행되었습니다. 그 최종권 『奇想の復活』은 띠지에 “헤이세이 본격의 기수”라 내세운 젊은 작가 19명의 신작을 모은 책으로 화제가 되었는데, “문장이나 인물 묘사보다 무엇보다 기상천외하고 전인미답의 발상을 담은 본격물을” 써 달라는 편자 시마다 씨의 요청에 응해 제가 쓴 작품이 이것입니다. 데뷔 이래 “인간이 그려져 있지 않다”는 상투적인 말을 들으며 내심 질려 하던 차였지만, 그 나름의 생각이 있었던 것이겠지요.

애초의 원형은 1984년 여름, 교토대 추리소설연구회 합숙에서 선보인 ‘범인 맞히기’ 단편이었습니다. 기노사키 온천의 어느 여관 큰방에서 십수 명의 회원을 상대로 ‘문제편’을 낭독했을 때의 두근거림은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그 자리에는 젊은 날의 아비코 다케마루 군과 노리즈키 린타로 군도 있었지요. 두 사람을 포함해 거의 모두가 속아 넘어가 주어 무척 기뻤던 기억이 있습니다. 참으로 천진난만했던 때였습니다.

「ぼうぼう森、燃えた」"보우보우 숲, 불타다."
(초출 = 『小説現代メフィスト』 1998년 12월 증간호)

1992년에 「どんどん橋、落ちた」를 썼던 즈음에 떠올려 “언젠가 속편을 써 볼까” 하고 농담처럼 몇 해 동안 품고 있던 아이디어입니다. 제목도 처음부터 이대로 정해 두었지요. 게임 『ナイトメア・プロジェクト YAKATA』 관련 일을 간신히 마무리하고 본업으로 돌아가려 했지만, 마음만 앞서 집필에 집중이 되지 않던 1998년 가을, 반쯤은 재활의 뜻도 담아 『메피스토』에 발표했습니다. 그만한 고생은 있었지만 의외로 즐거운 작업이었습니다. 다만 「どんどん橋」 때와는 사뭇 다른 뉘앙스의 ‘고생’이자 ‘즐거움’이었지요. 참고로 이 작품 속에 삽입된 ‘작중작’에는 블랙 유머와 여러 겹의 숨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전부 알아차릴 독자는 아마 손에 꼽을 정도일 것입니다.

「フェラーリは見ていた」"페라리는 보고 있었다."
(초출 = 『小説現代メフィスト』 1999년 5월 증간호)

본서에서 유일하게 정식 ‘독자에의 도전장’이 들어 있지 않은 작품입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작가로서 저는 이것이 가장 마음에 듭니다(의외이지요?). 등장하는 ‘U야마 씨’, ‘K코 씨’, ‘A모토 군’은 모두 실재 인물입니다. 사건은 물론 완전한 허구이지만, ‘카사이 씨 댁 신짱’을 둘러싸고 작중에 “암시적”이니 “예견적”이니 하는 말이 오가는 대목에는 작은 원 네타가 깔려 있습니다. 굳이 밝히지 않는 편이 멋일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래도 신경 쓰이시는 분은 가사이 기요시의 『ミネルヴァの梟は黄昏に飛びたつか? ——探偵小説の再定義』(하야카와쇼보, 2001)을 참조하시길.

「伊園家の崩壊」"이소노 가의 붕괴"
(초출 = 『小説現代メフィスト』 1999년 9월 증간호)

중심 아이디어는 아주 오래전부터 갖고 있었지만, 설정이 설정인지라 선뜻 써서 발표할 결심이 서지 않았습니다. 전년에 우연히 고지마 미야코의 만화 『こども地獄』(분카샤, 1998)을 읽은 것이 계기가 되어 등을 떠밀리듯 결심했습니다. 잡지 발표 당시에는 당사자인 고지마 씨께서 훌륭한 삽화를 그려 주셨고, 이번 문고화에서도 그 그림의 재수록을 생각했지만 여러 사정을 고려해 자숙하기로 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가장 문제작일지도 모릅니다. 본격 미스터리로서는 그렇지만, 다섯 편 중에서는 오히려 정통파에 가까운 편이 아닐까 합니다.

「意外な犯人」"의외의 범인"
(초출 = 『IN★POCKET』 1999년 9월호)

원본이나 노벨스판의 후기에 적었던 말을 반복합니다만, 작중에도 언급했듯 이 소설은 1994년 요미우리TV 심야 특집 『真冬の夜のミステリー』의 일부로 제작된, 제가 원안을 제공한 추리 드라마 「意外すぎる犯人」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극중극 부분에 배우 이토 세이코 씨가 등장하는 것은 드라마 그대로지만, 그 밖의 배우 이름은 가공으로 바꾸었습니다. 원안을 만들던 시점부터 언젠가 이 네타를 소설로 쓰고 싶다고 생각해 왔습니다만, 설마 이런 형태, 이런 결말의 이야기로 이어질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정말 인생은 무엇이 어떻게 굴러갈지 모르는 법입니다.

이렇게 되돌아보니, 고작 3년 전에 묶은 작품집임에도 어쩐지 이상할 만큼 숙연한 기분이 듭니다. 다섯 편 중 세 편에 등장하는 얄미운 젊은이에 대해서는 일단 이것으로 봉인…할 작정입니다만, 글쎄요.

현안인 『暗黒館の殺人』도 연재를 시작한 지 벌써 2년 반. 헉헉대며 숨이 차오르면서도 슬슬 7합목이 보이는가 싶은 데까지 진행했습니다. 『鳴風荘事件』 이래 무려 7년 만의 장편 『最後の記憶』을 근래에 간행할 수도 있었습니다. 1987년 『十角館の殺人』으로 데뷔한 지 딱 15년. 올가을이 저에게 큰 분기점인 것은 분명하고, 그런 시기에 이 『どんどん橋、落ちた』가 문고화되는 것은, 이것 또한 뭔가 의미심장한 인연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서두에서도 슬쩍 언급했듯 이 책의 해설을 써 주신 시노하라 미야코 씨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아홉 해 전 『海になりたい青』와 『満たされた月』 두 장의 앨범을 잇달아 들었을 때의 감동은 아직도 빛바래지 않았습니다. 노랫말처럼 엮인 “애잔한 해설”, 정말 고맙습니다.

2002년 9월
綾辻行人

2025/01/19

(번역) 컬럼 : 책 모형을 소재로 한 추리소설 "고양이 혀에 못을 박아라"

전에 읽었던 "고양이 혀에 못을 박아라" 속에 등장하는 츠즈키 미치오의 책에 대한 재미있는 컬럼을 발견해서 소개드립니다. 원문은 이 곳입니다.

책을 만드는 사람이라면 관심있게 읽을 수 있는 주제라 생각합니다. 저는 전자책 버전으로 읽었는데, 책이 이렇게 구성되어 있다는걸 전혀 몰랐습니다. 이런건 - 빌 벨린저의 "이와 손톱"도 마찬가지겠지요? - 정말 전자책으로는 느낄 수 없는 감성인데, 기술 발전과 전자책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걸 새삼 깨닫게 됩니다.


책 모형이란 무엇인가?

책 모형(束見本)은 대량으로 인쇄 및 제본을 시작하기 전에 실제 사용될 종이를 이용해 시험적으로 제작된 책입니다. 몇 부 정도만 인쇄소에 의뢰하여 만들어지며, 이를 통해 완성된 책의 외형과 특징을 미리 확인할 수 있습니다. 책의 두께(등 너비), 무게, 열림 정도, 촉감 등을 사전에 검토할 수 있는 유용한 도구이죠.

이 책 모형은 인쇄 작업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아 표지와 본문 모두 하얗게 비어 있습니다. 최근에는 서점에서도 이러한 백지 책이 판매되고 있습니다. 일기장, 메모장, 혹은 그림책으로 활용하는 등 용도가 다양합니다.

책의 구성은 편집자가 페이지를 배치하고, 디자이너나 책 제작자가 종이를 지정하여 완성됩니다. 특히 고급 제본(上製本)의 경우에는 세부적인 제본 양식을 지정해야 하며, 이 단계에서 속지, 책갈피(스핀), 꽃무늬 천(花布) 등도 결정됩니다. 그러나 책 모형은 대량 생산 과정과는 달라서 최종 완성본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외부 상자를 제작할 때는 실제 제작된 책의 크기를 기준으로 해야 한다는 점이 있죠.

추리소설 『고양이 혀에 못을 박아라』

이러한 책 모형을 소재로 한 독특한 추리소설이 있습니다. 일본 작가 츠즈키 미치오(都筑道夫, 1929~2003)의 "고양이 혀에 못을 박아라"는 1961년에 출간된 작품으로, 이후 여러 출판사를 통해 재출간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책 모형의 구조를 활용한 독창적인 트릭과 기발한 이야기로 많은 독자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소설의 줄거리

주인공인 아와지 에이이치(淡路瑛一)는 잡지에 잡문을 쓰며 생계를 유지하는 작가입니다. 그의 집에는 책 모형이 있었고, 주변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을 계기로 그는 책 모형을 일기처럼 활용하기 시작합니다. 독자들은 주인공이 기록한 일기 형식의 글을 읽으며 사건을 따라가게 됩니다.

경찰은 주인공을 용의자로 의심하지만, 그는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고 진범을 찾기 위해 직접 탐정 역할을 맡습니다. 하지만 자신도 누군가에게 생명의 위협을 받으며 피해자가 되기도 합니다. 이 작품은 주인공이 용의자, 탐정, 피해자의 세 가지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는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트릭과 결말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는 몇 장의 공백 페이지가 등장합니다. 책 모형에서 공백 페이지는 자연스러울 수 있지만, 당시 독자들은 이를 인쇄 사고로 오해하여 반품하는 일이 잦았다고 합니다. 특히 초판본은 페이지 번호도 없어서 더 혼란을 주었습니다.

갑자기 공백 페이지가 나타난다. 공백 페이지가 가장 많은 책은 헤이안쇼텐(平安書店) 판본으로 9페이지이며, 고단샤 문고(講談社文庫)는 6페이지, 고분샤 문고(光文社文庫)는 5페이지이다. 이는 접지 방식의 특성 때문일 수도 있다.
책 속 깊숙한 부분에 몇 줄로 조판된 글자가 있다. 그곳에 사건의 진상이 적혀 있다.

소설의 진상은 공백 페이지의 깊숙한 부분에 적혀 있습니다. 단순히 책을 넘기기만 해서는 발견할 수 없도록 만든 주인공의 의도였죠. 이러한 트릭은 소설의 물리적 형식을 활용한 뛰어난 장치로 평가받습니다.

작품이 남긴 의미

저는 대학생 시절 이 작품을 통해 책 모형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이후 편집자로 일하게 되면서 이 책이 제게 미친 영향을 실감하게 되었죠. 이야기의 플롯과 책 제작의 물리적 구조가 서로 맞물려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 사례였습니다.

하지만 요즘 젊은 세대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면 큰 반응을 얻지 못해 조금 아쉽기도 합니다. 그래도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와, 작품의 배경이 된 신주쿠, 이케부쿠로, 고이시카와 등 익숙한 장소들을 떠올리며 가끔 이 책을 다시 읽곤 합니다. 책 속에 담긴 일본 에도 시대 문화와 언어유희 역시 이 소설을 특별하게 만드는 매력입니다.

추가 이야기 (2016년 2월 27일)

오랫동안 꿈꾸던 "고양이 혀에 못을 박아라"의 초판본을 드디어 손에 넣었습니다. 페이지 번호가 없는 공백 페이지를 실제로 확인할 수 있었죠. 당시 이 페이지는 독자들로부터 반품 요청이 빗발쳤던 악명 높은 부분이기도 했습니다.

이 초판본은 제 서재의 소중한 보물이 되었고, 다른 희귀 서적과 함께 자리 잡았습니다. 또한, 최근에는 이 작품의 전자책 버전도 출간되었습니다. 공백 페이지가 어떻게 디지털화되었는지 확인하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 될 것 같습니다.

2024/11/02

무협소설 주인공 및 별호, 무공이름을 챗 GPT로 만들어 보자.

아주 오래 전, 무협 소설을 쓰다가 별호 등을 만드는 벽에 부딪혔을 때 자동 별호 생성기를 만들려고 했었습니다.
제가 프로그래머도 아니고, 무협 소설도 더 이상 쓰지 않아서 ver0.01에서 아무런 진전이 없었는데, 챗 GPT를 알고나서 이걸 손쉽게 구현할 수 있다는걸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이전 아이디어를 지침삼아 이런저런 학습도 시켜서 무협소설 별호 및 무공, 초식 이름 생성봇을 만들었습니다.

테스트 삼아서 아래 인물의 별호, 주요 무공과 무공 초식 이름을 만들어달라고 시켜보았습니다.

"안양에 거주하는 50대 남성, 비교적 키가 크고 마른 편으로 검은 머리. 긴 팔과 손가락을 이용한 빠른 키보드 입력이 특기."

바로 접니다. 제가 무협지에서는 어떤 별호와 무공을 사용하는 인물이 되었을까요?

별호 : 유운비객(幽雲飛客)
유운(幽雲): 은근하고 신비로운 매력,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손의 움직임을 상징.
비객(飛客): 재빠른 손놀림을 은유적으로 표현하여, 속도와 정확성을 함께 담음

무공 : 운쇄천영수(雲鎖千影手)
운쇄(雲鎖): 구름이 움직이듯 자유롭게 흐르며 상대를 속박하는 손놀림을 의미하여 유연한 움직임과 신비한 이미지를 강조.
천영수(千影手): 수많은 그림자처럼 빠르게 움직이는 손을 상징하며, 다채롭고 민첩한 무공의 특징을 표현.
1초식 운영락화(雲影落花)
운영(雲影): 구름의 그림자처럼 가볍게 접근하여 상대를 교란.
락화(落花): 흩날리는 꽃처럼 부드러우면서도 예리한 손동작으로 상대의 약점을 타격.
2초식 천쇄풍진(天鎖風陣)
천쇄(天鎖): 하늘에서 내려오는 구름의 고리를 형상화하여 상대를 속박.
풍진(風陣): 바람처럼 재빠르게 몰아치는 연속 공격으로 상대를 공략.
3초식 운무흩영(雲霧佚影)
운무(雲霧): 안개처럼 빠르게 다가가 상대를 혼란에 빠뜨림.
흩영(佚影): 그림자가 흩어지듯, 다양한 각도로 공격하여 상대가 방어할 틈을 주지 않음.
4초식 영월쇄진(影月鎖進)
영월(影月): 달의 그림자가 스며들 듯 부드럽게 타격의 흐름을 이어감.
쇄진(鎖進): 속박을 강화하며 한층 더 깊은 타격을 가함으로써 상대의 체력을 서서히 소모.

괜찮지 않나요? 저는 마음에 듭니다. 이제 무협 소설만 쓰면 되겠습니다. 그게 가장 힘든 일이지만요...

2024/08/02

[번역] 돈돈 다리, 떨어졌다 (4). - 아야츠지 유키토

「돈돈 다리, 떨어지다」의 「문제편」을 다 읽고 나서, 나는 속으로 살짝 일어난 화를 누르며 U군을 바라보았다. 그는 책장에서 꺼내온 우메즈 가즈오의 만화(『오로치』의 SUNDAY COMICS판, 네 번째 권이다)를 열심히 읽고 있었다.
"아, 다 읽으셨어요?"
내 시선을 느낀 U군은 책을 덮으며 앞머리를 쓸어올렸다.
"우메즈 가즈오는 몇 번을 읽어도 대단하죠. 저는요, 그를 인생의 스승 중 한 명이라고 생각해요."
환하게 웃으며 그런 말을 했다. 우메즈 가즈오가 대단한 것은 나도 전적으로 인정하는 바지만, 그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인생의 스승"이라고까지 치켜세우는 그의 천진난만함(이라고 할까 뭐라고 할까)이 이때의 나에게는 왠지 몹시 불쾌하게 느껴졌다.
그는 "스승"의 책을 정중히 옆에 놓으며 "자, 아야츠지 씨"라고 하며 자세를 바로잡았다.
"어떻습니까? 설마 벌써, 풀어버리셨나요?"
"생각하고 있는 중이야. 제한 시간은 얼마나 남았지?"
"그렇네요."
U군은 손목시계를 보더니,
"30분 정도 남았군요. 그 정도면 괜찮으세요?"
나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오늘 세 번째 세븐스타 담배 포장을 뜯었다. 불을 붙이면서, 지금 느끼는 이 화의 원인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았다.
피해자인 악동의 이름이 "유키토"라는 것 때문인가? 그것도 완전히 관계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것 때문에 기분이 나빠져서는 안 된다. 상대는 열 살이나 어린 학생이다. 악의가 있을 리는 없고, 어설픈 농담이라 웃으며 관대하게 넘겨야 한다.
불만을 제기하자면 오히려 다른 등장인물들의 이름이다. "린타로"와 "타케마루"는 그렇다 치고, 이 M** 마을 주민들의 이름은 대체 무엇인가. "포", "엘러리", "아가사", "올츠이"……. 캠프에 있는 사람들의 이름도 끔찍하다. "반 다이스케"는 반 다인의 패러디인가? "아사노 요우지"에 "사이토 사카에"——웃기지 않는다. 전혀 웃기지 않는다. 미스터리 매니아의 유치함이라면 듣기 좋겠지만, 읽는 내가 얼굴이 붉어질 정도의 이런 이름짓기는 정말 참아주었으면 좋겠다.
게다가 이 인물들, 읽다 보면 전혀 '얼굴'이 떠오르지 않는다. 구별은 가능하지만, 아무리 '범인 맞추기' 단편이라 해도, 소설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 이상 조금 더 제대로 된 묘사를 해주었으면 한다. 이럴 바엔 차라리 A, B, C……로 표기하는 것이 깔끔하지 않을까.
생각하는 동안 점점 화가 치밀어 오른다. 결국 나는 이렇게 비판하고 싶었던 것이다. "인간이 그려지지 않았다!"——맞아, 바로 이것이다.
목구멍까지 나왔던 그 말(인간이 그려지지 않았다고)을 간신히 삼키고, 나는 소파에서 일어나 부엌으로 갔다. 커피라도 마시며 기분을 전환하기 위해서였다. 상대는 열 살이나 어린 아마추어 학생이다. 여기서는 선배답게 그 부분은 눈감아주고, 어쨌든 이 '문제'에 도전해야 한다.
"자, 그럼."
두 잔의 커피를 테이블에 내놓고, 나는 「문제편」의 원고를 다시 한번 대충 넘겼다. "잘 먹겠습니다"라며 컵에 손을 뻗으면서, U군은 내 표정을 힐끔거리며 살피고 있었다.
"확실히, 자신작이라고 할 만하군. 꽤 어려운 문제야."
라고 말했다. 사실 나의 진심이었다. 사건의 상황은 이른바 '준밀실'이다. 20미터의 공간으로 격리된 '열린 밀실'에서의 불가능 범죄. 설정과 이야기에서 뭔가 장치가 있을 것 같은 냄새가 풍기지만, 초점은 역시 이 불가능한 상황을 어떻게 '가능'하게 만들었는가 하는 것이다. 어떤 방법으로 20미터의 거리를 극복했는가. 그 트릭을 간파하면 자연스럽게 범인의 정체도 알 수 있는, 그런 타입의 '문제'다. 과연……?
커피를 홀짝이며 잠시 생각한 후, 나는 가장 접근하기 쉬운 부분부터 파고들어갔다.
"'당했다', '밀쳐졌다', '사……사아……'라는 유키토의 말은, 글 중에 나와 있듯이 '다잉 메시지'로 받아들여도 되는 거겠지?"
"네, 그렇습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마지막 '사아'는 범인이 누구인지 말하려던 것이라는 거네."
"글쎄요, 그건 어떻게 생각하실지……"
U군은 얼버무리며 입꼬리를 올렸다. 얄미운 얼굴이라 생각하면서 나는 말을 이었다.
"'사'가 머리에 오는 등장인물은, 이 중에서는 사키와 사카에군. 사카에는 성도 사이토지. 설마 그렇게 단순한 건 아니겠지만.——흠. 달려온 사카에의 목소리를 듣고 '사이토 씨'라고 대답하려 했다고도 해석할 수 있겠군."
"그렇죠. 하지만, 다잉 메시지라는 건 대부분 보조적인 단서일 뿐이잖아요. 아야츠지 씨의 작품에서도, 항상 그렇지 않나요?"
"뭐, 그렇다고 하면 그렇지. 그럼, 이건 나중에 보기로 하고——"
그리고 나는 일단 정석적인 '소거법'을 적용해보기로 했다.
"알리바이 등 데이터를 통해 범위를 좁혀나가는 거야. 먼저, M** 마을 사람들부터——"
범행 시각인 오후 2시 40분에 알리바이가 없는 사람은, 엘러리, 아가사, 올츠이, 카의 네 사람이다. 이 중 카는 중상을 입고 위독한 상태니까, 당연히 제외된다. 출산을 앞둔 올츠이는 체력적으로 생각해도 다리까지 왕복해야 하는 범행은 무리겠지.
엘러리는 어떤가. 가령 어떤 트릭을 써서 다리 건너편의 유키토를 죽였다고 해도, 그 후 25분 이내——즉 포가 그를 광장에서 본 3시 5분까지——마을로 돌아오려면, 어떻게든 [옆길 B]를 내려와 통나무 다리를 건너는 ①의 루트를 갈 필요가 있다. 그런데, 파이프 바위에 있던 린타로는 그 시간에 통나무 다리를 건넌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단언하고 있다. 따라서, 엘러리도 범행은 불가능했다는 결론이다.
남은 사람은 아가사뿐이지만, 그녀의 경우 엘러리와 달리 3시 40분까지의 알리바이가 없으므로, ②의 루트를 통해 돌아왔다고 해도 시간적인 모순은 없다. 그러나 한쪽 팔이 없는 그녀가 범행이 가능했는지 생각해보면, 올츠이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상식적으로 불가능하다고 결론내려야 한다. 어떤 트릭을 썼다 해도, 상대는 20미터의 계곡이니까.
결국 여기서는 네 사람 모두 제외된다. 포가 말하는 X는, 그들 중에는 없는 것이다.
한숨을 쉬며, U군의 반응을 본다. 그는 또 의미심장하게 입꼬리를 올리고 나서 손목시계를 보고,
"10분 남짓 남았습니다."
라고 말했다. 역시 얄미운 얼굴이라고 나는 속으로 혀를 찼다.
"다음은 캠프의 네 사람."
가능한 한 평정을 유지하려 노력하며, 나는 소거법을 계속했다.
요우지와 사키는, 오후 2시 40분 시점의 알리바이는 없지만, 다이스케가 돌아온 2시 50분에는 분명히 캠프에 있었다. 범행 후, 10분 안에 다리에서 돌아올 수는 없다. 다이스케가 다시 돌아온 루트도 20분 걸렸으니까. 예를 들어 [옆길 A]로 꺾어 [지류 B]를 따라 올라왔다면, 더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이 두 사람은 제외해야겠군.
당연히 다이스케에게도 같은 이야기가 적용된다. 2시 40분에 범행을 저지른 후 되돌아갔다면, 아무리 서둘러도 2시 50분에 캠프에 도착할 수는 없다.
그러니까 결국 남는 사람은 사카에인가. 사카에가 빈사 상태의 유키토를 발견하는 장면 — 여기에는 시간이 전혀 표시되어 있지 않다. 즉, 그는 시간적인 알리바이가 성립되지 않는다. 다이스케가 산등성이 길을 되돌아간 것과 엇갈리면서 [옆길 A]에서 산등성이로 올라와 다리까지 가는 것이 충분히 가능했디. 그렇게 범행을 끝낸 후, 강으로 내려갔다고 해석해도 무리는 없겠지.
물론 사카에가 강가에서 유키토를 발견하는 장면에서는 도저히 그가 범인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문장이 몇 개 있던것 같기는 하다. 때문에 정말로 사카에가 범인이라면, U군이 '페어 플레이의 룰은 엄격히 지켰습니다'라고 호언장담한건 이상하다. 그 부분에 대한 의식이 희박한걸까.
자, 어쨌건 문제는 그 다음이야—
뭔가 찜찜한 느낌이 들었지만, 어쨌든 제한 시간이 다가오고 있어서 나는 서둘러 말을 이었다.
“알리바이로는 사카에가 범인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어.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해서 유키토를 절벽에서 떨어뜨렸을까.”
그러다 문득 한 가지 황당한 트릭이 떠올랐다.
“흠. 굳이 계곡을 건너 유키토 곁까지 갈 필요는 없었겠군.”
“어떻게요?”
“사카에의 배낭에는 이때 낚싯대가 들어 있었어. 여기에 튼튼한 긴 낚싯줄을 달고, 그 끝에 예를 들면, 야구공 정도의 크기의 돌을 묶어서 말이야...”
“휘둘러서, 다리 건너편의 유키토를 맞췄다고요?”
“그런 거야. 무리일까.”
U군은 복잡한 표정으로 “하아” 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래도 아닌 것 같군.
“이런 건 어떨까.”
극약을 먹는다는 심정이 되어, 나는 거기서 새로 떠오른 트릭을 말했다.
“남아 있던 한 줄의 로프를 따라 뱀을 보내는 거야. 놀란 유키토는... 아니, 이건 안 되겠군. 유키토는 뱀을 전혀 무서워하지 않았을 테니까.
그럼, 이런 건 어떻지. 들쥐의 목에 긴 끈을 묶어 로프를 따라가게 하는 거야. 그리고 구해줄 테니까 그 끈을 잡으라고 명령하는 거지. 멍청한 유키토가 그 말을 믿고 따랐을 때, 힘껏 끈을 당긴다. 균형을 잃은 유키토는...”
점점 바보같이 느껴졌다. 나는 애당초 이런 물리적인 트릭을 고안하는 게 별로 능숙하지도 않고, 좋아하지도 않는다.
“정말 여러 가지를 생각하시는군요.”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는 나를 보고, U군은 조금 유쾌한 듯 눈을 가늘게 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지금 말씀하신 것들은 모두 틀렸어요. 실행 가능 여부를 떠나서, 그것만으로는 ‘밀쳐져 떨어졌다’는 것이 되지 않으니까요. 유키토는 어디까지나, X의 손에 의해 ‘밀쳐 떨어져 죽음을 당했다’는 것이거든요. 그렇게 전한 유키토의 죽기 직전의 대사에 ‘거짓’은 없고, 본문에서도 분명히 그렇게 명기되어 있습니다.”
“흐음.”
“유키토는 X의 손에 의해 밀쳐져 떨어졌다. 이것은 즉, 범행이 일어난 2시 40분 시점에서, X는 확실히 돈돈다리 북쪽 돌출 부분에 있었고, 자신의 손으로 유키토를 거기서 밀쳐 떨어뜨린 겁니다.”
“하지만 그러면...”
“슬슬 시간 초과네요.”
라는 무정한 선언을 듣고, 나는 어쩔 수 없이 입을 다물었다.
U군은 왼팔을 들어 다시 한 번 시간을 확인한 뒤, “그럼, 이걸로”라고 말하며 ‘해답편’ 원고를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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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답편
○반 다이스케, 아사노 요우지, 아사노 사키, 사이토 사카에 네 명은 시간적 혹은 물리적으로 생각해도 명백히 범행이 불가능하다. 또한, 본문에서 알리바이가 명기된 린타로와 타케마루는 X가 아니다.
○따라서 X는 M** 마을의 엘러리, 아가사, 올츠이, 카 중에 있다.
○위독한 상태에 있는 카는 범행 불능. 한 팔이 없는 아가사는 범행 불능. 출산을 앞둔 올츠이는 범행 불능.
○이상으로 X일 가능성이 있는 것은 엘러리 뿐이다.
○엘러리는 다이스케가 도망친 후 돈돈 다리를 건너가 유키토를 공격해 계곡 아래로 떨어뜨렸다. 범행 후 다리를 건너 고개 길로 돌아가, [옆길 B]를 내려가 [지류 A]의 나무 다리를 건너는 루트로, 오후 3시 5분에 마을 광장에 돌아왔다.
○동기는 복수. 전날, 아들 카가 '금단의 계곡'에 갔다가 큰 부상을 입은 것은 잔혹한 소년 유키토의 짓이었다. 사키의 바지에 묻은 빨간 손자국은 그때의 피에 의한 것이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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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끝이야?"
순간적으로 아연한 후, 나는 물었다. U군은 씨익 웃으며 "네, 끝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잠깐만, 그건 아니지 않나."
나는 본의 아니게 큰 소리를 냈다. U군은 태연하게,
"왜죠?"
라고 되물었다.
"왜긴 왜야, 이건 전혀 해결이 안 됐잖아."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역시 조금 불친절했나."
"불친절이고 뭐고의 문제가 아니야."
나는 테이블에 몸을 기울여 따졌다.
"첫째로 말이지, 다리가 부서진 후 남은 로프는, 작은 초등학생인 유키토의 몸무게조차 버티지 못할 정도였다구. 지문에 분명 그렇게 적혀 있었어. 그런 로프를, 어떻게 어른인 엘러리가 건널 수 있었던 거야? 거리는 20미터나 된다고. 계곡에서 부는 바람은 강하고, 로프는 매우 불안정한 상태였어. 가령 엘러리가 난쟁이고, 또 줄타기의 명인이었다 하더라도, 이 로프를 건너는 건 무리였다고 생각하는데."
"음, 확실히. 그런데요…"
"그리고, 범행 후는 ①의 루트를 통해 마을로 돌아왔다고 하지만, 그렇다면 당연히 린타로에게 들켰을 거라고. 린타로는 엘러리의 모습을 본 적이 없다고 쓰여 있었잖아. 그건 거짓말이었던 건가."
"그건 아야츠지 씨의 오해입니다."
U군은 단호히 말했다.
"사실, 린타로는 엘러리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증거로, 도중에 타케마루가 두 번이나 심하게 짖었다고 했죠. 타케마루는 자기들 앞을 지나가는 수상한 자를 알아차린 거예요. 그래서 짖은 겁니다."
"그럼, 역시 범인 이외의 등장인물의 말에 '거짓'이 있는 거잖아."
"아니에요. 왜냐면, 린타로는 이렇게 증언했잖아요. '그 다리를 건넌 자는 아무도 없었다'고. 엘러리를 보지 못했다고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아하?"
대체 그는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걸까.
U군의 설명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나는 전혀 알 수 없었다. 혹시 그와 나는 사용하는 언어의 종류가 다른 건 아닐까, 진지하게 의심했다.
"부서진 돈돈다리를 엘러리가 건널 수 있었는가, 라는 문제인데요."
U군은 진지한 얼굴로 계속했다.
"엘러리는 난쟁이도 아니고 줄타기 명인도 아니지만, 그래도 역시, 남아 있던 로프 한 줄로 계곡을 건널 수 있었던 겁니다. 아주 쉽게요."
"그런…"
나는 산소를 찾는 물고기처럼 입을 벌렸다.
"설마, M** 마을이 닌자의 숨은 마을이었다고 말하려는 건 아니겠지."
"당연히 그런건 아닙니다. 안심하세요. 설령 닌자라 하더라도, 미군의 특수 공작 부대라 하더라도, 이 계곡을 건너기 위해서는 특별한 도구가 필요하겠죠. 하지만 '도전'에 주석을 단 대로, 그런 도구는 여기서 전혀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그럼"
라고 말했지만, 이어지는 말을 생각해내지 못해, 나는 불안하게 새로운 담배를 입에 물었다. 그 움직임을 그대로 따라하듯이, U군도 자신의 담배(같은 세븐스타)를 물었다.
"아직도 모르시겠어요?"
그는 말했다.
"엘러리는 난쟁이도 줄타기 명인도 닌자도 아니었어요. 그게 아니라, 유키토의 다잉 메시지에서도 짐작할 수 있을 겁니다."
"에…?"
담배에 불을 붙이려던 손을 멈추고, 나는 테이블 구석에 던져진 '문제편' 원고를 바라보았다.
"애초에 이 상황에서, 유키토를 자신의 손으로 밀어 떨어뜨리는 것 같은 묘기는, 인간에게는 불가능해요. 따라서 당연한 논리적 결론으로…"
"…설마"
혼란스러운 생각 속에서, 겨우 하나의 단어(설마)가 떠올랐다. 나는 두려워하며 말했다.
"설마 그 '사…'라는 게, '사루(원숭이)'를 말하려고 한 건가?"
"정답입니다."
U군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타케마루가 격하게 짖은 거예요. 옛날부터 개와 사이가 나쁜 동물이라고 하면 정해져 있잖아요. 타케마루와 엘러리는 문자 그대로 견원지간이었던 거죠."
잠시 멍해져서 중얼거리듯 "원숭이, 원숭이…"라고 중얼거리는 나를, U군은 여전히 순진한 미소로 응시하며,
"처음에 분명히 말했잖아요. 이 작품은 '본격 미스터리의 원점으로 돌아가 쓴 것'이라고. 본격 미스터리의 원점이라고 하면 당연히, 에드거 앨런 포의 '모르그가의 살인'이죠?"
"—사기다. 불공평해."
겨우 기운을 짜내어, 나는 항의했다. 그러나 U군은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M** 마을에 사는 일본 원숭이들을 '인간'이라고는, 한 번도 쓰지 않았어요. '한 사람'이나 '두 사람' 같은 표현도 하지 않았고, 그들에게 '자'라는 한자도 사용하지 않았어요. 인간이 아닌 생물일 가능성을 암시하기 위해 '자'라고 굳이 히라가나로 표기했습니다.
애초에, 아야츠지 씨, 일본 본토의 산속에 포라든가 엘러리라든가 하는 이름의 인간들이 사는 건 이상하지 않나요. 덧붙이자면, M** 마을의 M**는 'monkey'를, H** 대학의 H**는 'human'을 각각 암시한 이름입니다."
"원숭이를 '남자'나 '여자'라고 썼잖아."
"남자 = 인간 중, 수컷으로서의 성기관·성기능을 가진 쪽. 넓은 의미로는, 동물의 수컷도 지칭.
여자 = 인간 중, 암컷으로서의 성기관·성기능을 가진 쪽. 넓은 의미로는, 동물의 암컷도 지칭.
출처는 산세이도의 '신명해 국어사전'입니다. '코지엔'이나 '다이지린'이어도 상관없어요."
"젊은 여자들이 '바느질'을 하고 있었다는 것은? 원숭이가 그런 걸 할 리 없잖아."
"그건 물론 그루밍을 말하는 거예요. 원숭이의 털 손질. 아시죠."
"—더럽다. 비겁해."
"더럽다니요. 나이 많은 포우가 참나무 열매를 깨물고 있거나, 아이들이 벌거벗고 뛰어놀고 있는 등, 그들이 원숭이라는 복선을 몇 가지 깔아놓았다고 생각하는데요."
나는 조금 흥분한 나머지, 어조를 강하게 했다.
"하지만 말이야, 원래 원숭이가 말을 할 리가 없잖아. '규칙'이라든지 'X'라든지 '복수'라든지......"
그러자, U君은 "어머 어머"라는 듯 얇은 눈썹을 치켜올렸다.
"그건 전부 어디까지나 원숭이의 세계에서의 일이니까요. 인간과 대화를 나누진 않잖아요? 대사도 전부 캠프의 인간들과 구별하기 위해 이중 괄호로 묶여 있죠. 게다가 고금을 통해 소설 속에서는, 고양이부터 도룡뇽까지, 생각하는 동물도 있고 나름의 문화를 가진 동물도 있어요. 인간의 말을 이해하거나, 인간적인 감성으로 행동하기도 하죠. 그러고 보니, 최근의 미스터리에서도 있었죠. 은퇴한 경찰견의 일인칭으로 쓰인 이야기. 미야베 미유키 씨의 '퍼펙트 블루'."
"그거랑 이거랑은 다르잖아."
"그런가요?"
나는 점점 더 흥분하며,
"이건 '범인 맞히기'가 아니야."
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U君은 간단히 "네, 맞아요."라고 고개를 끄덕이며,
"이건 '범인 맞히기'가 아니라 '범원숭이 맞히기'죠. 그래서 그런 언어의 엄밀성을 중시해서, 작품 속에서도 아야츠지 씨와의 대화에서도, 나는 한 마디도 '범인'이라는 말을 쓰지 않았어요. X 같은 진부한 미지수 기호를 끄집어낸 건 고육지책이었어요. '문제편'의 체크, 해 보실래요?"
"........"
"꽤나 고심했어요, 그 부분은. 아야츠지 씨라면 분명 그 고심을 이해해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불쾌하게 입술을 삐죽거리며 소파에 기대앉았다. 어쩐지 기분이 좋지 않았다. 정말이지, 이래서 아마추어 학생은 곤란하다......라고 마음속으로 독을 품으며, 심하게 미간에 주름을 잡고 눈을 감았다. 한동안 그대로 침묵하고 있자,
"저기, 텔레비전 켜도 될까요?"
조심스럽게 U君이 말했다. 나는 눈을 감은 채, "그러게."라고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스위치를 켜는 소리가 나고, 이어서, 이상하게 밝고 씩씩한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스피커에서 흘러나왔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그 말을 듣고, 나는 깜짝 놀라 눈을 떴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라고, U君이 같은 말을 반복했다. 어쩐지 지금 막, 시계의 바늘이 오전 0시를 지난 모양이다. 새로운 해가 시작된 것이다.
브라운관 속에서는, 익숙한 연예인들이 만면에 웃음을 띠고 "축하해, 축하해"라고 말하고 있다. 그 화면의 한쪽에서 우왕좌왕하고 있는 한 마리의 동물의 모습을 보자마자, 나는 저도 모르게 "와"라고 소리를 질렀다.
"――원숭이잖아."
어째서 U君이 굳이 오늘 밤을 선택해서 나를 찾아왔는지. 하필이면 섣달그믐의 이런 늦은 시간에, 추운 중에 오토바이를 타고.
그것도 연출("복선"이라고 그는 말할지도 모르겠지만)의 하나였던 것이다. 내가 이 '범원숭이 맞히기'를 다 읽을 즈음에 딱 새해가 밝는, 그런 타이밍을 그는 노렸다. 그래서 그렇게, 몇 번이나 손목시계를 보며 시간을 확인했던 것인가.
1992년, 원숭이해의 시작――.
어깨에 짓누르고 있던 무거운 무언가가 스르르 녹아 사라져가는 듯한 기분을 나는 맛보았다. 방금 전까지 내가 느끼던 화가 몹시 하찮게 느껴지고, 동시에 그런 나 자신이 무척이나 부끄러워져서......
나는 U君 쪽을 보았다. 하지만, 소파에는 이미 그의 모습이 없었다. 검은 배낭도 가죽 장갑도, 크림색에 초록색 줄무늬가 들어간 헬멧도, 거기에는 없었다. "돈돈다리, 무너졌다"라고 표지에 크게 적힌 원고만이, 테이블 위에 덩그러니 남겨져 있었다.
확실히 익숙한 얼굴. 잘 아는 이름. 무엇인지 무척 그립고, 그렇지만 조금 얄밉고, 그 천진난만함이 때로는 이상하게 짜증스럽고......
'아, 그렇구나'라고 나는 그제야 생각해냈다.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생각해냈는지, 그건...... 아니, 이제 그만두자. 이 이상은 적지 않기로 하겠다.
남겨진 '돈돈다리, 무너졌다'의 원고에 살짝 손을 뻗으며, 다음에 그가 찾아오는 건 언제일까, 하고 나는 생각하고 있었다.


2024/07/31

[번역] 돈돈 다리, 떨어졌다 (3). - 아야츠지 유키토

### 4. '금단의 계곡'의 젊은이들
같은 8월 1일 오후. 장소는 바뀌어, 여기는 M** 마을 사람들이 '금단의 계곡'이라 부르는, 돈돈산의 서쪽이다.
돈돈다리에서 능선길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파이프 바위로 내려가는 샛길이 나오고, 거기를 지나쳐서 좀 더 남쪽으로 가면 서쪽으로 꺾이는 샛길이 있다. 경사는 동쪽에 비해 훨씬 완만하고, 발밑 상태도 좋다.
자세한 위치 관계는 첨부된 지도(27페이지 "현장 부근 약도")를 참조해 주시고, 이 길을 내려가 만나는 계곡의 한 구석에 어제 저녁부터 두 개의 빨간 텐트가 쳐져 있었다. 포우가 말한 "사악한 마음을 가진 외지인들"의 일행이었다.


"요우지. 유키토는 어디 갔어?"
물길에서 돌아온 반 다이스케가 나무 그늘에 앉아 계곡 풍경을 스케치하고 있던 아사노 요우지에게 말을 걸었다. 요우지는 스케치북에서 눈을 들어 시큰둥한 표정으로 "글쎄"라며 어깨를 으쓱했다.
"아까까지 저기 있었는데. 사키를 또 괴롭혀서 혼내줬더니, 혀를 내밀고 도망갔어."
다이스케는 한숨을 쉬었다.
항상 그렇듯, 유키토는 손이 많이 가는 아이였다. 머리도 나쁘고 난폭하며, 성격도 전혀 귀엽지 않았다. 내년이면 중학생이 되는데, 나이에 맞는 분별력도 전혀 없다. 저 아이가 내 친동생이라니, 정말 한심하고 어쩔 수 없는 기분이었다.
다이스케는 H**대학 이학부 2학년으로, 이번 봄에 스무 살이 되었다. 중학교 시절부터 산을 좋아해, 틈만 나면 이렇게 가까운 산으로 캠프를 오곤 했다.
이번 일행은 다이스케를 포함해 다섯 명이다.
중학교 때부터 산행을 함께했던, 소꿉친구인 아사노 요우지. 같은 H**대학 문학부 2학년. 취미로 그림을 그리며, 대학에서도 미술 동아리에 소속되어 있다.
그의 여동생으로, 고등학교 3학년인 사키.
요우지의 미술 동아리 후배로, 사키의 남자친구이기도 한 사이토 사카에.
그리고, 다이스케의 동생 유키토.
캠프 계획은 다이스케와 요우지가 세웠다. 대학 입시를 앞두고 초조해하는 사키의 기분 전환을 위해서가 본래 목적이었고, 사이토 사카에를 초대한 것은 요우지였다.
처음에는 네 명이 갈 예정이었지만, 유키토가 자기도 가겠다고 떼를 쓰기 시작했다. 너는 아직 초등학생이라며 거절해봤자 통하지 않는다. 자기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하루 종일이라도 울부짖는다. 엄하게 꾸짖으면 엄청난 소리로 운다. 부모님도 늦둥이로 태어난 유키토에게는 무척이나 관대하다. 그래서 결국 데려올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유키토는 골칫덩어리다.
최근 초등학생 치고는 작고, 겉모습은 얌전해 보이지만, 제멋대로 자라서인지 심리학에서 말하는 초자아(super-ego)의 발달이 현저히 늦어졌다. 열두 살이 되어서도 좋은 일과 나쁜 일의 구별을 거의 내면화하지 못한 상태이다. 초등학교 2, 3학년 때부터 싸움을 하고 수업을 빼먹는 문제아였다. 아직 잡힌 적은 없지만, 도벽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언젠가 이웃집 고양이를 모닥불에 던져 죽인 일도 다행히 들키지 않았지만, 유키토의 소행이었다. 새해 첫 참배나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 데려가면, 주차된 차의 타이어에 못을 박거나, 커터칼로 다른 사람의 옷을 찢는 등, 범죄에 가까운 나쁜 장난을 일삼았다. 이대로 성장한다면 언젠가 경찰 신세를 지게 될 게 뻔했다. 문제는 무엇보다도, 유키토가 그런 행동이 "나쁜 일"이라는 자각이 없다는 점이다. 깊이 생각하지 않고, 재미 삼아 하는 것이다. 어딘가 머리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다이스케는 생각했다. 학교 성적은 당연히 좋지 않다. 특히 국어와 사회는 최악이라, 이 점에 대해서는 부모님도 한탄했다. IQ는 그렇게 낮지 않고, 오히려 우수한 편이라지만…….
"꺄!"
갑자기 날카로운 비명이 들렸다. 텐트 안에서였다. 바로 아사노 사키가 뛰쳐나와 오빠 요우지에게 눈물 섞인 목소리로 호소했다.
"이거 봐요, 오빠. 내 배낭 안에……"
투명한 비닐봉지를 바닥에 던졌다. 그 안에는 토막 난 뱀의 사체가 들어 있었다.
"또 그 애 장난이야."
"정말 미안해, 사키."
다이스케는 황급히 사과했다.
"나중에 잘 말해둘게."
"유키토를 데려온 건 정말 실수였어."
라고 요우지가 말했다.
"정말이야! 이제 지긋지긋해."
사키는 상당히 히스테릭해졌다. 아까는 스치면서 유키토에게 가슴을 만졌다고 한다.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유키토는 최근 여성의 몸에 지나치게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정말 앞날이 걱정되어 다이스케는 다시 한숨을 쉬었다.
"말하긴 그렇지만, 그 애는 정상 아니야. 분명 어딘가 이상해. 어제도 내 엉덩이를 만지고, 나중에 바지를 보니 빨간 손자국이 있었어. 아마 피였을 거야. 대체 뭘 한 건지 모르겠지만."
"정말 미안해."
다이스케는 그저 사과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사이토 사카에가 능선길 쪽에서 천천히 걸어왔다. 혼자 산책이라도 다녀온 모양이다.
"무슨 일이야, 사키. 왜 그렇게 화가 났어? 또 유키토야? 뭐, 뭐. 그렇게 신경 쓰지 마. 상대는 아이잖아."
사카에는 아주 느긋한 태도였다.
"사이토 군. 유키토가 어디 갔는지 모르겠어."
"위쪽에서 봤어요. 저쪽 다리 쪽으로 걸어가더군요. 너무 멀리 가지 말라고 했더니, 혀를 내밀었어요."
"다리라면, 막다른 곳에 있는 출렁다리?"
"네."
위험하다고, 다이스케는 생각했다. 아무리 문제아라도, 역시 동생은 동생이다. 혹시라도 일이 생기면 걱정이 될 수밖에 없다. 유키토에게 관대한 것은 부모님뿐만 아니라, 다이스케도 마찬가지였다.
"흥. 저런 녀석, 계곡 아래로 떨어져 버리면 좋겠어."
사키는 부루퉁한 얼굴로 말했다.

## 5. 유키토의 수난
반 유키토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누가 좀! 도와줘!"
아까부터 목이 쉬도록 소리치고 있었지만, 아무도 도와주러 오지 않았다. 넓은 산 속에서 아무리 큰 소리로 외쳐도, 그들의 캠프까지는 닿지 않을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라고 유키토는 생각했다. 다리 앞에 있던 그 더러운 표지판. 거기에 적혀 있던 것은 어떤 경고였을까?
"노후화로 위험"—그 글자는 국어를 잘 못하는 유키토는 읽을 수 없었다.
현수교를 건너는 것은 그야말로 스릴이 넘쳤다. 양손으로 로프를 더듬듯이 잡으며, 군데군데 큰 틈이 난 판자 위를 처음에는 천천히 걸었다. 한 걸음씩 갈 때마다 다리 전체가 삐걱거리고 흔들렸는데, 그것이 참을 수 없이 재미있었다. 점점 흥분한 나머지, 마지막 5미터 정도를 뛰어갔는데, 그 순간이었다. 유난히 큰 삐걱거림 소리가 나더니, 갑자기 다리의 형태가 무너졌다. 다리를 지탱하던 로프가 마침내 끊어진 것이다. 아슬아슬했다. 조금만 늦었더라도 유키토는 이미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절벽 가장자리에서 계곡 바닥을 내려다보며, 천하의 악동 유키토도 몸을 부르르 떨었다. 건너편까지는 20미터 가까이 된다. 남아 있는 것은 간신히 끊어지지 않은 로프 한 줄과 거기에 매달린 몇 장의 판자뿐이었다. 강한 바람에 휘말려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두려운 마음에 로프에 손을 대보았지만, 크게 흔들리더니 남아 있던 판자가 계곡 바닥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것으로는 도저히 유키토의 체중을 견딜 수 없다. 이쪽 길은 절벽 때문에 2미터 정도만 가면 막힌다. 주위는 모두 올라가거나 내려가는 것이 불가능한 절벽이었다. 도움을 청하는 것 외에는 유키토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손목시계를 보니 오후 2시가 넘었다. 한여름의 태양이 무자비하게 내리쬐고 있다. 작은 그늘도 없는 천연 발코니였다. 이대로 2, 3시간만 이 뜨거운 햇볕 아래 있으면, 일사병으로 쓰러질 수도 있다. 유키토는 간절히, 매주 보고 있는 TV 속 변신 히어로가 되고 싶다고 빌었다.
"도와줘…"
이제는 외치는 것도 지쳐갔다. 이제 정말 끝일지도 모른다고 반쯤 포기하려던 그때,
"유키토!"
능선 쪽에서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형 다이스케의 목소리였다.
"형!"
유키토는 손을 흔들며 있는 힘껏 소리를 질렀다. 곧이어, 부서진 현수교 건너편에 다이스케의 모습이 나타났다.
"여기야, 형. 도와줘."
"위험하니까 움직이지 마."
다이스케가 큰 소리로 답했다.
"기다려. 지금 모두를 데리고 올 테니까. 알겠지? 거기서 움직이지 마. 무리하지 마!"
"—알았어."
"괜찮아. 금방 돌아와서 도와줄 테니까. 아무튼 가만히 있어."
그리고 다이스케는 몸을 돌려 능선 길로 돌아갔다. 오후 2시 반의 일이었다.

### 6. 다가오는 그림자
다이스케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자, 유키토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두 손으로 무릎을 끌어안았다. 얼굴을 무릎 사이에 묻고 쏟아지는 햇볕의 더위를 견디고 있었다. 평소에 말썽꾸러기인 유키토도 이 상황에서는 형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이런 곳에 오지 말 걸, 그런 짓을 하지 말 걸...'이라고, 그 순간만큼은 진심으로 후회하면서 유키토는 그대로의 자세로 다이스케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살의를 품은 어떤 존재의 그림자가 다리 건너편에 나타났을 때도, 유키토는 전혀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M** 마을의 오후는 평소와 다름없이 평화로웠다.
숲이 끊긴 곳에 생긴 광장에 모여, 모두가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옷을 벗고 건강하게 뛰노는 아이들, 나무 그늘에서 바느질을 하는 젊은 여자들… '수염의 노사' 포우는 광장 한쪽에 있는 노천 온천에 어깨까지 몸을 담그고, 그런 마을의 풍경을 한가롭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멀리서 희미하게, 무언가 이상한 외침이 들려왔다. 광장에 모여 있던 사람들은 일제히 같은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뭐지, 지금 그 소리는?'
중얼거리며 포우는 뭔가 불길한 예감에 흰머리가 섞인 눈썹을 찌푸렸다.
'출렁다리 쪽에서 나는 소리 같았는데…'
오후 2시 40분의 일이었다.


다이스케가 캠프장에 도착한 것은 오후 2시 50분이었다. 능선길을 따라 곧장 달려와, [샛길 C](지도를 참조할 것)를 뛰어 내려왔다.
나무 그늘에 깔린 그라운드 시트 위에 사키가 누워 있었다. 다른 두 사람은 보이지 않았지만, 한쪽 텐트 안에서 라디오 소리가 들려왔다.
"사키, 사키야!"
"응?"
졸린 듯 눈을 비비며 사키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숨을 가쁘게 내쉬는 다이스케를 보고,
"무슨 일이에요, 반 씨? 그렇게 급하게."
"큰일났어. 요우지와 사이토 군은 어디 있어?"
"무슨 큰일이죠?"
라는 목소리가 들려왔고, 요우지가 텐트에서 얼굴을 내밀었다. 다이스케는 서둘러 사정을 설명했다. 요우지는 팔짱을 끼고 불만스럽게 아랫입술을 내밀었고, 사키는 "꼴 좋다"는 듯한 표정을 노골적으로 지어 보였다.
"흠. 그거 우리만으로는 어쩔 수 없겠네."
요우지가 말했다.
"어쨌든 빨리 돈돈 마을로 달려가서 구원을 요청해야겠어."
"부탁해. 나는 다리로 돌아갈게. 사이토 군은 어디에 있어?"
"낚시하러 계곡으로 내려갔어."
라고 사키가 대답했다.
"알겠어. 그럼, 사키는 여기서 대기하고, 그가 돌아오면 함께 다리 쪽으로 와줄래?"
말을 끝내자마자, 다이스케는 뒤돌아섰다.

### 7. 유키토의 최후
다이스케가 돈돈 다리로 돌아온 것은 오후 3시 반이었다. 같은 경로를 거쳐 올라왔지만, 능선까지는 오르막길이어서 시간이 더 걸렸다.
'서두르지 말자,' 라고 여러 번 스스로에게 말하며 마음을 다스렸다. 그 다리의 상태를 생각하면, 구조대가 올 때까지는 아무런 조치를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유키토를 진정시키고, 그저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해가 지려면 아직 시간이 있다. 다행히 날씨가 나빠질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드디어 다리 앞에 도착했다.“노후화로 인해 위험”이라고 적힌 표지판을 붙잡고 체중을 지탱하며, 헐떡이는 숨을 고르면서 동생의 무사함을 확인하려고 다리 너머를 보았다. 그때――.
다이스케는 자신의 눈을 의심하며, 그 자리에서 망연자실하게 서 있었다.
유키토가 없었다.
몸을 숨길 만한 장소는 어디에도 없었다. 비록 20미터 정도 거리가 떨어져 있다고 해도, 시야는 탁 트여 있었고, 다이스케의 시력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부서진 다리의 모습도 아까와 다름없었다.

그렇다면……. 곧이어 다이스케는 다리 쪽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발걸음 하나하나가 무겁게 느껴졌다. 다리 중앙에 도착하자, 그는 다리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곳에서, 다이스케는 유키토의 작은 몸이 바닥에 누워 있는 것을 발견했다. 몸은 이상하게 비틀려 있었고, 움직임이 없었다.
다이스케는 가슴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고통과 절망을 억누르며 다리 밑으로 내려갈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그의 마음 속에는 여러 가지 생각들이 휘몰아쳤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어떻게 해야 유키토를 도울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러나 다이스케는 곧 알게 되었다. 유키토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태에 빠져 있었다. 눈물을 참으며 다이스케는 다리 밑으로 내려가, 유키토의 차가운 손을 잡았다. 유키토의 마지막 순간을 느끼며, 다이스케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했다고 스스로에게 말하려 애썼다. 그러나 그 말은 그의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울려 퍼지는 공허함을 채울 수 없었다.


사이토 사카에는 캠프를 떠나 혼자서 계곡을 따라 내려갔다. 계곡을 따라가는 길은 생각보다 험난했고 고생을 했지만, 결국 본류의 돈돈 강과 만나는 지점에 도착할 수 있었다.
강가에 서서 사카에는 오른손 위쪽을 올려다보았다. 거기에는 돈돈 다리라는 현수교가 있어야 했다. 그러나——.
다리가 부서져 있었다. 양쪽 절벽에는 끊어진 로프가 늘어져 있었고, 강가에는 다리의 잔해로 보이는 나무 조각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사카에는 조심스럽게 다리 쪽으로 다가갔다. 몇 걸음 나아가다 문득, 건너편에 누워 있는 사람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유키토?"
그는 소리쳤다.
"이봐! 어떻게 된 거야? 괜찮아?"
하지만, 사람 그림자는 쓰러져 움직이지 않았다.
강물은 불어나고 흐름도 거셌다. 어디서든 건너갈 수 있을 만한 곳이 없을까 하고, 사카에는 좌우를 둘러보았다.
몇 미터쯤 위쪽으로 가보니, 여기저기 바위가 드러나 있는 곳이 있었다. 저 바위를 따라 건널 수 있을지도 몰랐다. 사카에는 낚싯대 등이 들어있는 배낭을 강가에 던져두었다.
여러 번 발을 헛디뎌 강물에 빠질 뻔했지만, 간신히 건너편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달려가 보니, 쓰러져 있는 것은 역시 유키토였다.
"이봐, 괜찮아?"
소리치자, 그에 답하듯 소년의 입에서 "으으" 하는 낮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정신 차려. 이봐."
"……으으"
사카에는 깎아지른 절벽을 올려다보았다. 이 위에서 떨어진 건가? 그렇다면 이렇게 아직 숨이 붙어 있는 것이 거의 기적이나 다름없었다.
"이봐, 유키토. 이봐."
등을 받치고 여러 번 불러보았다. 유키토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옆에서 들여다보니, 갈라진 머리에서 흐르는 피로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으……으……"
어쩐지 희미하게 의식이 있는 듯했다. 유키토는 계속해서 무언가를 말하려 하고 있었다.
"뭐? 뭐라고 말하고 싶은 거야?"
"……당했다……"
"뭐라고?"
"……밀……쳐……졌……"
소년은 힘겹게 말을 이었다. "당했다" "밀쳐졌다"고 분명히 말했다. 이는 바로 다잉 메시지였다. 그리고——.
"사……사……아……"
그렇게 결국, 악동 유키토는 숨을 거두었다.

### 8. M** 마을의 소동
돈돈 다리의 북쪽 절벽에서 사람이 떨어져 죽었다는 정보는, 그날 저녁이 되어서야 정찰을 다녀온 엘러리가 전해주었다. 죽은 사람은 유키토라는 이름의 소년으로, 어제부터 '금단의 계곡'에 머물던 외지인들 중 한 명이었다. 보고에 따르면, 유키토는 문제의 절벽 위에서 누군가의 손에 의해 "밀쳐졌다"고 했다.
포우는 마을 사람들에게 이 사건을 알리며, 좋아하는 도토리를 씹어 먹으면서 모두의 반응을 살폈다.
"엘러리,"
마침내 포우는 엄숙한 얼굴로 침묵하고 있는 젊은 리더에게 말했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 일을 나에게 맡겨보는 게 어떻겠느냐?"
"맡기죠,"
엘러리는 대답했다. 포우는 깊은 숨을 천천히 내쉬며, 모인 사람들을 다시 한 번 둘러보았다.
"좋다, 우리 중에 이 살인을 저지른 자가 있다면, 반드시 찾아내어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할 것이다. '금기를 어기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어제 '금단의 계곡'에 간 카도 마땅히 대가를 치러야 한다. 물론 우리 중에 범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살해된 소년의 동료들 중에 있을 수도 있다만..."
"잠깐 기다려 주세요, 포우,"
엘러리가 끼어들었다.
"그 소년은, 하지만..."
"알고 있다. 하지만 어떤 이유로든 살인은 살인, '금기를 어기는 것'과 다름없다. 게다가, '더럽혀진 땅'에 온 사악한 마음을 가진 인간을 죽였다는 것은, 이중의 '더러움'이 아니겠느냐. 이대로 두고 볼 수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엘러리는 반론하지 않았다. 포우는 계속해서 말했다.
"다리 쪽에서 그 비명 소리가 들려왔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광장에 있었다. 그때 여기에 없었던 사람은 누구인가? 우리 중에 살인을 저지른 자, 여기서는 가칭 X라고 부르자, 그 X가 있다면, 당연히 그때 이 광장에 없었던 자일 것이다..."
모두에게 물어본 결과, 문제의 시간에 보이지 않았던 사람은 엘러리와 그의 아내 아가사, 엘러리의 두 번째 아내 올츠이, 그리고 엘러리와 아가사의 아들 카, 이 네 명 뿐이었다. 이 중 카는 어제 다친 이후로 여전히 누워 있었다.
"아가사는 그때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
포우의 질문에 중간 키의 아름다운 여자가 일어섰다. 아가사였다. 그녀는 작년 봄, 숲에서 곰에게 공격받아 오른쪽 팔꿈치 아래를 잃었지만, 그 기품 있는 아름다움은 여전히 빛났다.
"저는 계속 카의 곁에 있었습니다.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가사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러나 중환자 상태인 자신의 아이가 여전히 걱정스러운 듯, 그녀의 표정은 유난히 어두웠다.
"올츠이는? 어떻게 했느냐?"
올츠이는 아가사보다 한참 작은 젊은 여자였고, 출산을 앞두고 있었다. 포우의 질문에 그녀는, 오후 내내 광장에서 떨어진 나무 그늘에서 몸을 쉬고 있었다고 대답했다.
"그러면 엘러리, 너는 어떻게 했느냐?"
마지막으로 질문을 받은 엘러리는 현재 리더로서의 권위를 주장하듯 강한 앞니를 드러내며 다소 무뚝뚝한 어조로,
"혼자서 숲 속에 있었습니다."
라고 답했다.
"저도 그 비명 소리를 들었습니다, 포우."
"흠."
고개를 끄덕이며 포우는, 그 비명 소리를 들은 후 잠시 지나 엘러리가 광장에 나타났던 것을 떠올렸다.
여기서 다시 한 번 확인해 두자. 돈돈 다리에서 비명 소리가 들린 시간은 오후 2시 40분이었다. 그리고 포우가 광장에서 엘러리를 본 시간은 정확히 25분 후인 오후 3시 5분이었다.

### 9. '신'에 의한 데이터 제공
이번 장에서 다시 등장하는 인물은 "고뇌하는 자유업자" 린타로이다. 린타로가 그의 애견 타케마루와 함께 파이프 바위까지 와서, 복잡하고 심각한 고민에 빠지기 시작한 것은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오후 1시가 조금 지난 시각이었다. 그리고 그는, 이 또한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그곳에서 약 세 시간, 즉 오후 4시가 조금 넘을 때까지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즉, 의도하지 않았지만 그는 M** 마을에서 능선 길로 가기 위해 반드시 건너야 하는 그 통나무 다리를 계속해서 감시하고 있었던 셈이다. 이 소설에서 '신의 시점'을 취하는 작가가 지문에서 이렇게 명시하고 있으니, 그 사실은 틀림없다.
작가의 인터뷰에 응한 린타로는 이렇게 단언한다.
"그 통나무 다리는 그 시간 동안 항상 제 시야 안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다리를 건넌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놓쳤을 가능성은 없나?"
"그건 불가능합니다. 아무리 복잡하고 심각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하더라도, 다리를 건너는 사람이 있었다면 절대 알아챘을 것입니다."
다만――그는 이어서 말했다. 그 시간 동안 두 번 정도, 그의 발치에 있던 타케마루가 심하게 짖었다는 것이다. 타케마루는 겁이 많기 때문에, 아마도 풀숲에서 뱀이라도 보고 놀랐을 것이라고 린타로는 이야기했다.


### 9. '신'에 의한 데이터 제공
문제의 실체를 명확히 하기 위해, 여기서 두세 가지 설명을 추가하겠다.
M** 마을 및 ‘금단의 계곡’의 캠프지에서 돈돈다리로 가는 길은, 첨부된 지도에 표시된 것 외에는 없다고 생각해도 좋다. 예를 들어, 포우 일행만이 아는 비밀의 지름길 같은 것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범람한 동쪽 지류에 대해서도, 그림에 표시된 것처럼, 적어도 파이프 바위 부근보다 하류 부분에 대해서는, 그 통나무 다리를 사용하지 않고 건너는 것은 불가능하다. 거꾸로 말하면, 더 상류로 돌아가면 바위를 타고 건널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이다.
정리해보자. 가령 포우가 말하는 X가 M** 마을 사람이라고 가정하고, 그가 마을에서 돈돈다리까지 가려고 한다면, 기본적으로 다음 두 가지 루트를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1. 통나무 다리를 건너고, [횡도 B]에서 능선길로 올라 돈돈다리로.
2. 일단 [지류 A]의 상류로 돌아가서 강을 건너고, [횡도 D]에서 능선길로 올라 돈돈다리로.
각 루트의 소요 시간을 기록해두자면, 1번 루트는 가는 데 35분, 돌아오는 데 20분, 2번 루트는 가는 데 1시간 반, 돌아오는 데 50분이 걸린다. 이것은 생각할 수 있는 최단 소요 시간이다.
가능성을 논하자면 물론, 이 두 가지 외에도 돈돈다리까지 가는 루트는 존재한다. 예를 들어, [횡도 D]에서 한 번 능선길로 나온 뒤 [횡도 C]를 내려가거나, [지류 B]를 따라 계곡을 내려간 뒤 [횡도 A]를 올라 다시 능선길로 나오는 등의 극단적인 우회로도 생각할 수 있으며, 다른 정규 “길”을 통하지 않고 능선까지의 경사를 오르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다. 그러나 어떤 경우라도, 앞서 언급한 1번과 2번 루트에 비해 상당한 노력과 시간이 소요되는 것은 분명하다.
추가로, 엘러리, 아가사, 올츠이, 카의 경우, 엘러리의 알리바이는 오후 3시 5분 이후 완전히 성립한다. 아가사와 올츠이에 대해서는 모두 오후 3시 40분까지의 알리바이가 전혀 없다. 아가사는 계속 카의 곁에 있었다고 하지만, 위독한 상태였던 카는 그녀의 알리바이를 증명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한편 캠프의 네 명은, M** 마을 사람들이 비명을 들은 오후 2시 40분 시점에서는 모두 단독 행동을 취하고 있었다.
각자의 증언에 따르면――
- 다이스케: 모두에게 유키토의 상황을 알리기 위해 능선길을 되돌아가던 중이었다.
- 사키: 캠프의 나무 그늘에서 졸고 있었다.
- 요우지: 텐트 안에서 라디오 뉴스를 듣고 있었다.
- 사카에: 낚시를 하기 위해 [지류 B]를 내려가고 있었다.
덧붙이자면, 이것은 사건의 핵심을 다루는 것이다, 오후 2시 40분에 포우 일행이 들은 문제의 비명은 확실히, 유키토가 돈돈다리 북쪽 절벽에서, 누군가의 손에 의해 밀쳐졌을 때 외친 목소리였다.
거듭 강조하지만, ‘신’인 작가가 지문에서 말하는 것이므로 절대 틀림없다.

.【독자에게 던지는 도전】
○ 문제 1
반 유키토를 죽인 X의 이름을 맞춰주세요. X는 단독범으로, 어떠한 의미에서도 공범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작품 속에 등장하지 않는 제3자의 범행도 아닙니다.
○ 문제 2
범행 방법은? X는 어떻게 유키토를 죽였는가, 라는 것입니다.
주의할 점으로는, 연, 행글라이더, 낙하산, 기구, 괴인20면상이 애용하는 미니 헬리콥터 등 작품에 명시되어 있지 않은 특수한 도구는 전혀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초능력이나 우주인, 이공간통로 등 초자연적인 존재나 개념도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이런 종류의 퍼즐 미스터리의 규칙에 따라, 본문에는 전혀 거짓된 기술이 없음을 여기에 명시합니다. 또한, 논리가 무의미하게 복잡해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 이 "문제"에 있어서 등장인물들의 대사에도 동일한 규칙을 설정했습니다. 다시 말해, X 이외의 것들의 대사에는 거짓말이 없음을 의미합니다.
위 조건을 바탕으로 답을 제출해 주세요.
건투를 빕니다.


2024/07/28

[번역] 돈돈 다리, 떨어졌다 (2). - 아야츠지 유키토

1. 돈돈 다리
곳은 일본, 혼슈의 어느 산속.
깊은 계곡이 있고, 거기에 긴 현수교가 걸려 있다. 계곡 바닥에는 '돈돈 강'이라는 이름의 강이 흐르고 있으며, 현수교는 '돈돈 다리'라고 불린다.
보기에도 오래된 다리이다.
길이는 20미터도 되지 않을 정도. 나무로 만든 도리를 로프로 매단 단순한 구조로, 강한 바람이 불면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은 삐걱거림을 내며 흔들린다. 예를 들면, 영화 '인디아나 존스 2'의 클라이맥스에 나오는 다리를 떠올리면 된다. 다리 앞에는 '노후화로 인해 위험'이라고 쓰인 팻말이 서 있지만, 굳이 경고를 하지 않아도, 보통의 상상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두세 걸음 내디디고 곧 돌아갈 것이다. 그 정도로 보기에도 위태로운 모습이다.
다리에서 계곡 바닥까지의 거리는 30미터는 될까. 계곡 양쪽은 거의 수직으로 깎아지른 절벽이다. 부서지기 쉬운 듯한 적갈색 바위 표면에는 발 디딜 곳도 없고, 덩굴조차 자라지 않는다.
무엇이든, 자일 같은 도구 없이 이 절벽을 오르내리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단언해 두겠다. 아니, '도구 없이'라는 조건도 여기서는 불필요할지 모른다. 설령 암벽 등반의 천재라 하더라도, 이 절벽을 정복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야말로 나비나 새처럼 날개를 가진 것이 아니라면.

강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르고, 다리는 길을 남북으로 잇고 있다. 남쪽 길은 '돈돈 산'을 종주하는 능선길로 이어진다. 한편, 다리를 사이에 두고 북쪽에는 길이 없다. 곧바로 막다른 곳이 된다. 한 달 전에 일어난 대규모 산사태가 그 원인이었다. 계곡을 따라 서쪽으로 향하던 길이 십수 미터나 흔적도 없이 무너져 내린 것이다. 산속 깊은 곳이라 복구의 전망도 전혀 서지 않은 채, 오늘까지 계속 방치되어 있다. 막다른 길 앞에는 마치 계곡으로 돌출된 발코니처럼 약간의 지면이 남아 있지만, 이것도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어떤 것에도 오르내릴 수 없는 절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자, 이제부터.
돈돈 다리 북쪽의 고립된 이 돌출 부위가, 본편의 '문제'의 초점이다. 즉 이곳이, 지금부터 서술할 어느 살인 사건의 범행 현장이 된다.

2. 린타로와 타케마루
돈돈 다리에서 남쪽으로 이어지는 능선 길을 한참 가다 보면, 동쪽으로 갈라지는 작은 길이 있다. 일반 등산 지도에는 표시되지 않은 좁고 험난한 길이다. 가파른 산비탈을 기어 내려가다 보면, 길은 어느새 돈돈 강으로 흘러드는 지류 중 하나에 닿는다.

그날, 8월 1일 오후, 이 계류 옆에 한 남자와 한 마리의 개가 있었다. 남자는 스물여섯 살, 이름은 린타로였다. 개는 타케마루, 수컷 시바견이다.
린타로는 돈돈 산 기슭에 있는 '돈돈 마을' 출신으로, 지금은 고향을 떠나 혼자 도시에 살고 있다. 어느 일류 대학을 졸업하고 은행에 취직했으나, 적응하지 못하고 1년이 채 안 되어 그만두었다. 현재의 직업은 "자유업"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는 여기서 굳이 언급하지 않겠다.
린타로는 고민하고 있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도 여기서 굳이 언급하지 않겠다. 설명하기 시작하면 몇 장을 써도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그의 고민은 그만큼 복잡했다.
어쨌든 린타로는 고민하고 있었다. 고민에 지친 그는 당장의 일을 내팽개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몇 년 만의 귀향이었다. 부모님은 크게 환영해 주었고, 고등학생 때부터 키우던 사랑스러운 타케마루도 재회에 기뻐하며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마음은 전혀 가라앉지 않았다.
그런 린타로가 타케마루를 데리고 돈돈 산으로 향한 것은, 말하자면 최후의 결심이었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곳에서 마음껏 고민해 보자고 결심한 한편, 최악의 경우 그 자리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도 있다고까지 생각하고 있었다. 그만큼 그의 고민은 심각했다.

그들이 그 강가에 도착한 것은 오후 1시를 조금 넘긴 때였다. 얼마 동안 흐린 날씨가 계속되었지만, 오늘은 화창했다.
그곳은 한때 린타로가 좋아하던 장소였다. 마을에서 상당히 걸어야 했지만, 고등학교 시절 여름 방학에는 사흘에 한 번 꼴로 찾아오곤 했다. '파이프 바위'라고 그가 마음대로 이름 붙인, 말 그대로 파이프처럼 생긴 길쭉한 큰 바위가 강 앞에 있었고, 이를 벤치 삼아 혼자 사색에 잠기는 것이 그 시절 그의 고독한 취미였다.
"오랜만이네, 여기 오는 것도."
옛날처럼 파이프 바위 끝에 앉아, 린타로는 발밑에 웅크리고 있는 타케마루에게 말했다.
"가끔 너도 데리고 왔었지. 기억나니?"
타케마루도 이제 만 열한 살, 사람으로 치면 환갑을 넘은 나이다. 오랜 시간 산길을 걸어와서인지, 지친 듯 혀를 길게 내밀고 눈도 뜨지 않았다.
린타로는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고뇌로 가득한 그의 마음과는 반대로, 맑게 갠 여름 하늘은 한 점 흐림 없이 파랬다. 시선을 돌리면 나무들의 선명한 초록색이 눈에 들어왔다. 계곡을 스쳐 가는 시원한 바람이 땀에 젖은 피부에 상쾌하게 느껴졌다.
눈앞을 가로지르는 강물의 흐름이 유난히 거세었다. 엊그제까지 내리던 비 때문일 것이다. 평소보다 두 배나 강폭이 넓어지고, 물의 양도 늘었다. 실수로 떨어지기라도 하면 단번에 물살에 휩쓸려 버릴 것 같은 기세였다.
여기서 뛰어내리면 죽을 수 있을지도 몰라, 그런 생각을 하며 린타로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타케마루는 간접흡연의 피해를 호소하듯, 꼬리로 땅을 두드리며 앞발로 얼굴을 문질렀다.
"좋겠다, 너는."
린타로는 진심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좋겠어. 아무런 고민도 없으니까."
타케마루는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며, "왈" 하고 대답했다. 린타로는 고민했다. 왜 여기서 타케마루가 "왈" 하고 짖는지, 그런 문제조차 그의 복잡하고 심각한 고민 속에 새롭게 포함되어 갔다.

이렇게 해서...
그 후 약 세 시간, 오후 4시가 넘을 때까지 그들은 그곳에서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물론, 그것은 후에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된다.

3. M** 마을의 규율
린타로와 타케마루가 있는 파이프 바위 주변에서 길은 계곡에 스며들 듯, 끊겨버리는 듯 보인다. 그러나 강의 폭이 약간 좁아진 부분에 원목 다리(라고 해도, 쓰러진 나무가 우연히 양쪽 강둑을 연결한 자연의 다리다)가 놓여 있어, 이를 건너면 길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좁은 길이 점점 더 가늘어지며 원시림이라고 부를 만한 깊은 숲 속으로 이어진다.
이 숲에는 산의 지리에 밝은 현지인들도 좀처럼 발을 들여놓지 않는다. 그것에는 약간의 이유가 있다. 사실 오래전, 이 깊은 곳으로 패망한 헤이케의 무사들이 도망쳐 들어왔다고 한다. 그들 중 한 명이 강력한 주술적 능력을 가진 자(영능자, 초능력자라고 생각하면 된다)였고, 추격자들로부터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특수한 결계를 만들었다. 그것이 지금도 부주의하게 접근하는 자들에게 재앙을 가져온다는 이야기가 근처 마을들에 전해져 내려오고 있었다.
그런 기이한 패망 무사 전설의 진위 여부는 차치하고, 이 숲 속 깊은 곳에는 실제로 알려지지 않은 한 마을이 존재하고 있었다. 여기서는 가칭으로, 그것을 [M** 마을]이라고 부르기로 하자.


"좋아, 얘들아."
포우는 둘러싼 작은 얼굴들을 천천히 둘러보며 말했다.
"함부로 생명을 죽여서는 안 돼. 우리는 항상, 우리가 사는 이 산의 자연과 조화롭게 살아야 하니까. 뱀이든 토끼든, 아무 이유 없이 죽여서는 안 된다. 그것이 우리의 '규율'이다. 알겠느냐?"
포우는 M** 마을의 '장로'라 불러야 할 존재였다. 나이를 먹고 '장'의 자리를 젊은 엘러리에게 물려주었지만, 여전히 이곳에 머물며 모두에게 존경받고 있었다. 일단 권력을 내려놓은 자는 집단을 떠나는 것이 그들의 오래된 관습이었기 때문에, 이는 매우 예외적인 상황이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땅에 털썩 주저앉은 채, 포우는 다시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아이들은 그를 그의 흰 턱수염을 따서 '수염의 노사'라고 부른다.
"강을 건너, 능선을 넘은 저쪽 계곡으로는 절대로 가서는 안 된다. 그곳은 '더럽혀진 땅'이다. '금단의 계곡'이다. 사악한 마음을 가진 외지 사람들이 오는 곳이다. 그들과 교류하는 것, 이것도 역시 규율에 어긋나는 것이다."
"왜 그런 거예요, 포우?"
라고 질문하는 아이가 있었다. 루루우라는 이름의 작은 남자아이였다.
"그냥 그런 것이다."
포우는 단호히 대답했다.
"'더러움'은 '더러움', '금단'은 '금단'이다. 그것은 우리에게 악을 가져오는 것. 우리를 파멸로 이끄는 것. 그 증거로 어제 저녁, 금기를 어기고 그곳에 갔던 카가, 목숨을 잃을 뻔했다. 루루우, 너도 알고 있지 않느냐."
아이들은 조용해졌다. 카는 루루우의 사촌이자 마을의 젊은 장 엘러리의 아들이다.
"좋아, 얘들아"
포우는 다시 엄하게 주의를 주었다. 큰 부상을 입고 지금도 위독한 상태가 계속되는 어린 생명을 생각하며, 작은 노인의 눈에 깊은 우수가 가득 차올랐다.


2024/07/27

[번역] 돈돈 다리, 떨어졌다 (1). - 아야츠지 유키토


여름을 맞아 오랫만에 번역글을 올립니다. 아야츠지 유키토의 "돈돈 다리, 떨어졌다."입니다. '독자에의 도전장'이 삽입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는 작가의 초기작입니다. 제목부터 유명 동요인 "London bridge falling down"의 패러디일 정도로 패러디, 인용이 많은게 눈에 띕니다.
번역에는 Chat GPT의 도움을 얻었으며, 문맥에 맞게 가다듬은게 전부입니다. 혹시라도 문제가 되면 삭제하겠습니다.
그럼 즐겨주시기 바랍니다. 여름에는 누가 뭐래도 추리 소설이니까요.

1991년 12월 31일 밤, 기묘한 방문객이 찾아왔다.
12월 31일이라 하면 대개 온천이라도 가서 한가로이 새해를 맞이하고 싶은 법이지만, 마감이 다가온 장편 소설의 원고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하루 종일 워드 프로세서 앞에 앉아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 날 밤에도 작업실로 쓰는 맨션의 방에 틀어박혀 있었지만, 보고 싶지도 않은 연말 방송을 보며 마음만 초조해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정신적으로만 초 바쁜' 상태였고, 솔직히 말해 이는 몸과 마음에 그다지 좋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 갑자기 방문객이 찾아온 것이다.
시각은 오후 10시 전. 새해 전야의 이 시간에 방문 판매원이 올 리 없다고 생각하며 현관문을 열자, 그가 서 있었다. 가냘픈 몸에 두꺼운 가죽 점퍼를 입은, 피부가 하얀 청년이었다. 나보다 열 살 정도 어린, 대략 20세 정도의 나이로 보였다.
"안녕하세요, 아야츠지 씨."
병약해 보이는 차분한 얼굴에, 머리는 옛 포크 가수처럼 길게 기르고 있었다. 붉게 상기된 볼에 하얀 입김을 내뿜는 그 얼굴은 분명 기억이 있었다. 하지만 누구였더라? 이름이나 나와의 관계가 떠오르지 않았다.
크림색에 녹색 줄무늬가 들어간 풀페이스 헬멧을 작은 겨드랑이에 끼고, 손에는 가죽 장갑, 검은색 데이팩을 메고 있었다. 이 추운 날씨에 오토바이를 타고 온 모양이다.
"저기, 당신은..."
상대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며, 나는 말을 더듬었다. 역시 누구인지 떠오르지 않았다.
"음..."
"오랜만입니다. U입니다. 잊어버리셨나요?"
"아... 아니 아니. U군, 맞아, 그렇지."
고개를 끄덕였지만, 나는 내심 당황했다.
'U'라는 이름은 확실히 익숙한 이름이었다. 왠지 매우 그리운 느낌도 들었다. 그런데도 어째서인지, 명확한 기억이 떠오르지 않았다. 머리의 한 부분에 반투명 커튼을 드리운 것 같은, 정말 기묘한 느낌이었다.
"별로 건강해 보이지 않네요. 일이 힘드신가 보죠?"
U군은 친근하게 미소 지었다.
"조금 시간 내실 수 있을까요? 폐가 되나요?"
그렇게 말하면, 아무리 정신적으로 바쁘다고 해도 무례하게 돌려보낼 수 없는 것이 나의 성격이었다. 분명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적어도 첫 만남은 아니란 것만은 확실했다. 아마도 대학 후배일 거라고 어렴풋이 납득하고, 나는 그를 방으로 들였다.
거실의 소파에 앉자, U군은 손목시계를 힐끗 보며 "딱 좋은 시간입니다"라고 중얼거렸다. 그리고 데이팩에서 한 권의 노트를 꺼내들었다.
"사실은, 아야츠지 씨에게 오늘 꼭 이것을 보여드리고 싶어서 찾아 왔습니다."
테이블 위에 놓인 것은 보통 노트가 아니라, 원고지를 묶어 만든 책이었다. 표지에는 '돈돈 다리, 떨어졌다'라는 제목이 크게 적혀 있었다.
"뭐지? ...소설인가?"
"네, 뭐 그렇습니다."
U군은 머리를 쓸며 부끄러운 듯 말했다.
"좀 생각이 나서, 써봤습니다. 건방진 부탁이지만, 오늘 밤 꼭 아야츠지 씨가 읽어주셨으면 해서."
"미스터리인가?"
탐색하듯 물어보자, "물론입니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역시 이 U군, 대학 후배였던 것 같다.
학생 시절, 나는 '추리 소설 연구회'라는 학내 서클에 소속되어 있었다. 그 열정이 지금의 나를 미스터리 작가로 만들었고, 지금도 가끔 서클 모임에 얼굴을 비추곤 한다. 젊은 학생들과의 접촉이 나름대로 자극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 해도, 여전히 기묘한 감각은 계속되고 있었다.
아무리 요즘 기억력이 떨어진다 해도, 왜 그의 존재를 제대로 떠올릴 수 없는 것일까? 얼굴도 알고 이름도 익숙하다. 분명 여러 번 만난 적이 있다. 그런데도...
"짧은 거라서, 가능하면 지금 바로 읽어주셨으면 합니다만."
U군이 말했다. 나는 원고를 손에 들고,
"어떤 유형의 작품인가?"
전문 작가인 듯한 어조로 질문했다. U군은 약간 긴장한 얼굴로,
"본격 퍼즐 미스터리로 '독자에의 도전'이 붙은..."
:범인 맞추기 소설인가?"
"네, 뭐 그렇습니다."
'범인 맞추기 소설'이란 즉 '범인 맞추기 게임'의 통칭이다. 출제자가 먼저 '문제편'을 낭독하고, "단서는 모두 나왔다. 자, 범인은 누구인가?"라는 도전이 삽입된다. 참가자들의 답을 모은 후 '해답편'이 제시되고, 정답자에게는 상이 주어진다. 옛날, 일본 탐정 작가 클럽 '토요회'의 신년회에서 이 행사가 진행되었던 것은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다. 우리 모교의 미스터리 연구회에서도 발족 이후 현재까지 활동의 일환으로 정기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미 모임에서 발표했나?"
내가 묻자, U군은 "아니요"라고 고개를 저었다.
"우선 아야츠지 씨가 읽어주셨으면 해서."
"자신작인가?"
"절대 맞힐 수 없는 것을 쓰겠다는 각오로 썼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조금 자신이 있습니다."
"흠, 대단하네."
담배를 피우며 U군의 표정을 살폈다. 창백한 뺨에 불가사의한 미소가 떠올랐다. 알겠다. 과거 시마다 소우지에게 '범인 맞추기 게임의 명수'라고 칭송받았던 이 나에게, 그는 문자 그대로 도전하려는 것이구나.
"문제 자체는 매우 단순합니다. 복잡하게 만들어 독자를 속이려는 얄팍한 수는 쓰지 않았습니다. 본격 미스터리의 원점으로 돌아가 썼습니다. 물론, 페어플레이 규칙은 엄격히 지켰습니다. '독자에의 도전'에도 명기했지만, 삼인칭 서술에서 거짓된 묘사는 일체 없습니다. 복잡한 기계 트릭이나 의문의 중국인도 등장하지 않으니 안심하세요."
그런 설명을 덧붙이고 나서, U군은 다시 손목시계를 힐끗 보았다.
"그러니, 우선 읽어보시겠습니까?"
"정답일 경우의 상은?"
농담으로 그렇게 말하자, U군은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요. 만약 정확히 맞히면, 앞으로 저를 노예라고 불러 주세요."
농담을 던지긴 했지만, 이는 엄청난 자신감이었다.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나로서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좋아." 기운을 내서 고개를 끄덕이고, 나는 그 원고를 읽기 시작했다.


2023/07/09

亂れからくり 복잡한 기계장치 : 15. 즌부리코

亂れからくり (創元推理文庫) (文庫) - 8점 泡坂 妻夫/東京創元社

15. 즌부리코
기차를 타고 가는 동안 마사오는 거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도시락을 주면 먹고, 차를 내밀면 조용히 마셨다. 목적지도 신경 쓰지 않는듯 했다. 마이코의 코트에 감싸여 그저 흘러가는 대로 몸을 맡기고 있었다.
기차 여행 내내, 약한 비가 모든 곳에서 끝없이 내렸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승객들은 언제나 익숙한 표정과 모습으로 제멋대로 움직이고 있었지만, 둘만 이질적인 여행을 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아타미의 바다는 하늘과 같은 회색으로 저 멀리에서 그대로 하늘과 이어져 있었다. 후지산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깔끔하게 정돈된 모습의 후지산이 보이지 않는게 이 여행에 더 어울렸다.

토시오는 미시마에 내려 곧바로 공중전화로 에토를 불렀다. 에토는 상대가 토시오라는 것을 알고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카츠? 라디오 들었어?"
"안 들었어."
에토는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너, 살인 용의자와 함께 도망쳤다는 게 정말이야? 방금 뉴스에서 들었어."
오랜만에 듣는 에토의 억양에는 사투리가 돌아와 있었다.
"자세한 건 만나서 얘기하자. 그보다 여관 방 하나만 잡아줘."
"그건 맡겨 둬, 지금 어디야?"
"미시마 역이야."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들 사이에서 전화를 하고 있는거야? 되도록이면 사람들에게 얼굴을 드러내지 말라고."
"...... 슈젠지까지 갈 수 있을까?"
"야, 잠깐만. 사람이 많은 곳은 위험해. 이렇게 해. 오히토(大仁)에서 내려서 상가를 지나 가노가와(狩野川)의 오히토 다리 쪽으로 걸어가. 그러면 내가 차로 데리러 갈게."
전화를 끊자 마사오가 슬픈 눈빛으로 말했다.
"친구에게 폐를 끼치는 건가요?"
"당신이 신경쓰실 일은 없습니다."
토시오는 그렇게 말하고 걸어 나갔다.
미시마에서 이즈 하코네 철도를 탔다. 차 안에는 학생들이 많았다. 에토의 말에 따르면, 자신도 뉴스에 보도되었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나서부터 사람들의 시선이 신경 쓰였다. 토시오는 전철 구석에 서서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마사오의 모습을 감추려고 노력했다.
전철은 느리고 정차역이 많았다. 오히토까지는 삼십 분도 채 안 되는 거리지만, 멀게만 느껴졌다.
오히토에서 내리는 승객은 많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두 사람이 눈에 띌 정도로 적지도 않았다. 토시오는 에토의 배려를 알게된게 기뻤다.
오히토 역을 나와 앞에 있는 짧은 언덕을 오르면, 옆 쪽으로 상가가 펼쳐져 있었다. 상가를 오른쪽으로 가면 가노가와 강이 나온다고 에토는 말했다. 상가에 들어서자 갑자기 날이 어두워졌다. 그리고 차가운 비바람이 거세게 두 사람을 감쌌다.
우산을 샀다. 비는 약하게 내렸지만, 우산을 쓰는게 사람들 시선으로부터 훨씬 안전할 것 같았다.
상점가는 길지 않았다. 상점가 끝에서 제방으로 이어지는 길이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걷고 있던 두 사람 곁에 차 한 대가 멈춰 섰다. 푸른색 경트럭이었다. 운전석에서 에토의 얼굴이 보였다.
"그 얼굴로 봐서는 아주 건강해 보이네."
에토는 두 사람을 차에 태우며 말했다. 차 안은 생선 비린내가 진동했다.
"미안해…."
토시오가 말했다.
"아냐, 오히려 날 기억해줘서 고마운걸."
에토는 뻣뻣한 얼굴의 수염 사이로 하얀 이빨을 드러냈다.
"구마사카에 친숙한 여관이 하나 있어. 작지만 조용하지. 그곳이라면 걱정하지 않아도 돼."
차는 가노강을 건넜다. 넓고 깊은 강바닥은 검은 돌로 채워져 있고, 물은 그 사이로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가노강을 건너자 차는 좌회전해 제방 위를 달렸다. 건너편 제방 위를 달리는 차의 불빛이 작게 이어졌다.
여관으로 향하면서 에토는 자기 얘기만 했다. 약혼녀가 미인이라는 것, 일이 바쁘다는 것 등이었다.
제방을 내려와 밭을 지나 낮은 산자락을 돌았다. 산 중턱에 성처럼 생긴 건물이 희미하게 보였다.
"오히토 산이야. 아무리 채굴해도 더 이상은 광물이 나오지 않지만 폐광은 남아 있어. 여름에도 그 안은 시원하지."
좁은 길을 한참 달리다 '섬집'이라고 적힌, 불이 켜진 작은 간판 아래에 차를 세웠다.
"무슨 일이 생기면 언제든 전화해줘."
에토가 말했다.
"그리고 너 이름은 야마다 타로야. 한심한 이름이지만 워낙 급했으니 참아줘."
작지만 잘 정돈된 숙소였다. 이름을 말하자 두 사람은 별채로 안내되었다. 벌레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 조용하네."
마사오가 중얼거렸다.
토시오는 유카타와 단젠 (*일본의 남성용 겨울 실내복)을 들고 욕실로 들어갔다.

식판이 정리되자 마사오의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거짓말 같네요........ ......"
마사오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서 벌레 소리를 들을 수 있다니....... 도망칠 수 있었던 건 당신 덕분이에요. 하지만 카츠 씨까지 도망치지 않아도 됐을 텐데......."
"당신이 곤경에 처한 것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어요"
"도와주지 않아도 괜찮았어요. 나는 시간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기로 했어요. 어떤 행운이 닥쳐오더라도 더 이상 흔들리지 않겠다고 마음먹고 있었어요."
"당신이 체포되더라도요?"
"그래요."
"사형에 처해지더라도요?"
"그래요."
"사형에 처해지면 죽습니다."
"사형에 처해지지 않아도 어차피 언젠가는 죽을 거예요. 같은 거에요. 사람을 죽여도, 안 죽여도 마찬가지에요."
마사오는 멍하니 말했다.
"당신이 죄가 있다는게 오히려 나에게는 다행입니다."
마사오의 침착함이 오히려 마음에 들지 않았다. 토시오는 강한 어조로 말했다.
"나는 당신을 경찰의 손에서 구해냈고, 앞으로도 운명을 함께 할 겁니다."
".... 내가 살인자라고요?"
마사오는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나는 당신이 한 일을 모두 알고 있어요. 나한테만 숨기려고 하지 말아주세요."
".... 내가 살인자가 아니라면요?"
마사오는 같은 어조로 말했다.
"그렇다면 나는 이대로 돌아가겠습니다. 당신은 너무 똑똑하고 아름다워요. 나 같은 사람과는 어울리지 않아요."
"괜찮아요......"
마사오는 천천히 일어선 뒤, 등을 돌려 미닫이 문을 열었다. 옆 방은 이부자리가 펼쳐져 있었다. 마사오는 전등을 껐다. 침대 옆 스탠드만 켜져 방을 살짝 붉게 물들였다.
단젠이 마사오의 어깨에서 미끄러져 떨어졌다. 마사오는 유카타의 끈을 뒤로 풀고 바닥에 떨어트렸다.
"......데츠바의 약병에 독을 넣은 것은 나에요."
마사오의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마사오는 인형처럼 몸을 움직이지 않았다.
마사오에 대한 애정은 가까워질수록 더욱 강렬해졌다. 그것은 광기 어린 격정으로 변했다. 온갖 감정이 뒤섞여 온몸을 휘감았다. 그 격정을 마사오는 조용히 받아들였다.
몸을 떼어내자 마사오는 눈을 떴다.
"...... 나, 이제 안 되겠어요."
목소리를 담은 숨결이 토시오의 어깨에 닿았다.
"안 된다는 말은 싫어요. 슬퍼지니까요. 우리는 이제 막 새로운 한 걸음을 내딛은 것 아닙니까?"
토시오가 말했다.
"그랬군요. 미안해요."
마사오는 다시 한 번 사과했다. 토시오는 마사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마치 미로 속에 있는 것 같아요."
"...... 나사 저택의 동굴에 들어갔던 적이 있었군요."
"토모히로에게 들었어요. 토모히로는 동굴의 지도까지 만들어 놓았어요."
토시오는 문득 손가락의 움직임을 멈췄다.
"그 동굴 어딘가에 제니야 고헤에의 은닉 재산이 있다는 것도?"
"그것도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그런 꿈같은 일은…. 믿지 않았어요."
"하지만 실제로 동굴에 들어갔었잖아요?"
"그야 저도 호기심은 있었으니까요. 토모히로가 죽고, 토모히로가 무언가를 계획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나서야 제니야 고헤에의 재산 이야기가 허황된 이야기라고 생각되지 않았어요. 그래서 토모히로의 지도를 믿고 동굴에 들어갔는데, 도중에 겁이 났어요. 캄캄한 동굴의 맞은편에서 섬뜩한 소리가 들려왔어요........ ......"
"폭포 소리예요."
"맞아요, 살아있는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던 동굴 안에서 구불구불하게 움직이는 폭포를 보고 순간 겁이 났어요. 나는 중간에 돌아섰지만, 저렇게 큰 무대가 있는 걸 보니 토모히로가 말하는 숨겨진 재산의 존재를 믿을 수 밖에 없게 되었어요."
"다른 사람들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나요? 소우지, 카오리, 데츠바 씨 등은?"
"소우지 씨가 알았다면 바로 손을 대서 써버렸을 거에요. 카오리 씨가 알았다면 나한테 말하지 않았을 것 같고요. 데츠바 씨가 알았다면 사업을 더 확장했을테죠."
"즉, 숨겨진 재산이 있다는 건 당신과 남편, 두 사람만 알고 있었다는 거군요"
"그런 것 같아요."
"토모히로 씨는 그 재산을 혼자서만 갖고 싶었던 것이고요."
마사오는 입을 다물었다.
"그 토모히로 씨의 유지를 당신이 이어받으려 한 것이군요."
마사오는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숨이 목구멍에 걸려서 마치 흐느끼는 소리처럼 들렸다.
"당신은 소우지와 인연을 끊지 못한 탓에, 토모히로 씨에 대한 죄책감이 마음속에 무겁게 쌓여 있었어요. 이번 여행에서 토모히로 씨에게 고백과 사과를 하려고 했는데, 토모히로 씨가 기이한 사고를 당해 그 기회가 영원히 사라져 버려서 당신의 마음속에는 죄책감만 무겁게 남아 버렸죠."
"맞아요......."
"토모히로 씨의 죽음의 충격이 채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토우이치 군까지 죽었죠. 토우이치 군의 죽음은 자신의 실수라고 밖에 말할 수 없는 사고였고요. 이 사고는 토모히로씨에 대한 죄책감을 더욱 더 키워서 당신이 짊어지기 버거울 정도로 무거운 짐이 되고 말았지요."
"나는 계속 남편을 외면하고 있었어요. 미안한 마음에 미쳐버릴 것 같았어요."
"당신은 미쳤어요. 마음의 평형을 잃고 자신을 잃고 말았죠. 지금 당신은 사람을 죽여도 괜찮을 것 같은, 악마의 모습을 하고 있어요. 당신은 토모히로 씨에게 사과하기 위해 그의 유지를 이어받기로 결심했죠."
마사오의 눈꼬리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눈물이 귀로 흘러내렸다.
"당신의 마음속에 토모히로 씨의 인격이 들어갔습니다. 항상 토모히로 씨를 경멸하던 소우지가 미웠습니다. 소우지는 토모히로 씨의 아내까지 빼앗아 농락하고 있었으니 소우지의 죽음은 당연하다고 생각했죠."
"나는 소우지 씨를 사랑하지 않았어요"
마사오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오노 벤키치의 역립인
형에 독침을 장치했어요. 그 인형은 오직 소우지만이 만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소우지가 당신에게 태엽을 감게 하려고 했습니다. 당신은 마음속으로 곤란하다고 생각했겠지만, 기계를 잘 모른다는 핑계를 대고 거절할 수 있었어요."
마사오는 조용히 토시오의 말을 듣고 있었다.
"역립인형에 독침을 장치했을 때, 당신은 이미 소우지를 죽인 것이나 다름없었어요. 대담해진 당신은 카오리 씨를 총으로 쏴 죽였어요. 총소리가 났을 때 나는 미로 속에 있었지요. 우다이 씨는 테츠바 씨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요. 소우지는 방에서 막 뛰쳐나온 참이었습니다. 당신만이 카오리 씨 곁에 서 있었어요........"
"맞아요, 나만 카오리 씨 곁에 서 있었죠."
"그때 나는 절대로 당신을 범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아니, 생각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다른 사람이 범인이라고 믿고 있었죠. 그 범인은 발자국도 남기지 않았고, 누구의 눈에도 보이지 않았다는 사실이 매우 신기했어요. 그런데 당신을 범인으로 생각하니 모든 것이 설명이 되더라고요. 또 당신이 다가왔다면 카오리 씨도 경계를 하지 않았을테죠."
"카오리 씨를 쏜 총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트릭이 사용됐어요. 나사 저택에서 일어난 세 건의 살인 사건은 모두 교활한 트릭이 사용된게 가장 큰 특징이죠. 소우지를 죽이기 위해 역립 인형을 이용했듯이, 카오리 씨를 죽인 흉기를 처리하기 위해서는 카라쿠리 즌부리코가 사용되었어요."
"즌부리코?"
"예전에 길거리나 장터 등에서 장난감으로 만든 움직이는 오리를 팔았어요. 오리는 일반 셀룰로이드 재질로 만들어졌지만, 움직이기 위해서는 또 다른 장치가 필요했습니다. 장난감 오리 목에 실을 묶고 그 끝에 미꾸라지를 연결해 탁한 물이 담긴 수조에 넣는 거지요. 그러면 장난감 오리는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헤엄쳐 다니거나 먹이를 잡아먹는 듯한 동작을 하게 됩니다. 카오리 씨를 죽인 흉기는 없앤 방식은 이와 같아요. 그때 당신 곁에는 연못의 오리가 있었습니다. 당신은 카오리 씨를 쏜 후 바로 종이끈으로 권총을 오리에 묶어 놓았습니다. 오리는 곧장 연못으로 돌아갔고요. 종이끈은 물에 녹아내리고 권총은 연못 바닥에 가라앉게 된 겁니다."
마사오의 입가에 희미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토시오는 그것을 패배자의 웃음으로 해석했다. 자신도 권투에서 패하고 나서 마사오처럼 웃은 적이 있었다.
"데츠바 씨의 약병에 독을 넣는 데에도 트릭이 필요했죠. 데츠바 씨는 두 자식가 죽고 나서 극도로 조심스러워졌습니다. 방에 자물쇠를 걸어놓고 그 누구라도 거의 접근하지 못하게 했죠. 그 데츠바 씨의 약을 독약으로 바꿔치기하는 것은 누구에게도 불가능했습니다."
"그래요. 아무도 그 약병에 손도 대지 못했죠.”
"그래서 트릭이 필요했던 겁니다. 이번 트릭에 사용된건 아무도 모르는 동굴이었고요. 당신은 데츠바 씨가 살해당하기 전날 밤, 미로에서 이어진 동굴로 데츠바 씨의 방으로 몰래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그가 잠든 사이, 약병의 캡슐을 독이 든 캡슐로 바꿔치기했고요. 당신은 자신말고는 나사 저택에 동굴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우다이 씨는 동굴을 찾아냈어요. 만약 동굴이 드러나지 않았다면 누구도 당신의 범행을 입증할 수 없었을 겁니다."
"그렇군요."
마사오는 침착하게 대답했다.
"세 가지 범행은 모두 치밀한 계산 하에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계산에서 벗어난, 예상치 못한 일도 일어났어요. 그 중 첫 번째는 우다이 씨가 동굴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이죠. 그래서 데츠바 씨의 약병 속 캡슐을 바꿔치기한건 당신 외에는 생각할 수 없게 되고 말았습니다. 두 번째는 소우지가 그 장소에서 역립인형을 움직일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우리 눈앞에서 소우지는 카라쿠리를 움직이려고 했고 당신은 그것을 막을 수 없었어요. 억지로 막으면 오히려 의심을 받게 되니까요. 그 결과 우리는 범인의 수법을 알게 된 겁니다. 역립인형 안에 독침을 장치해 둔 범인의 수법 말이에요. 범인은 역립인형으로 소우지를 죽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았을텐데 말이죠.”
"알려지는걸 원치 않았다고요?"
마사오의 눈빛이 한 곳을 응시하며 멈췄다.
"그렇습니다. 원래 계획대로였다면 소우지의 시신은 무수한 장난감들 속에서 발견됐을 거예요. 역립인형은 다른 장난감들 속에 섞여 있고, 안에 장치된 독침은 누구도 발견하지 못했을테고요. 당신은 범인이 외부인이라고 생각하게 만들고 싶었던 것 아닙니까?"
"외부인?"
"그래요, 그래서 당신은 또 다른 미끼 주사기를 준비해서 나사 저택 밖에 떨어뜨려 놓았던 것이겠죠."
"미끼 주사기......."
"그것도 오늘 우다이 씨가 찾아냈어요. 주사기 안에는 액체가 남아 있었고요. 분명 소우지를 죽인 독극물과 같은 것으로 밝혀질테죠. 바늘에는 소우지의 피가 묻어 있었을지도 모르고요. 치밀한 준비가 필요했겠지만, 소우지에게 주사를 놓아본 당신에게 불가능한 공작은 아니였겠죠."
마사오의 눈은 얼어붙은 듯 움직이지 않았다. 토시오는 마사오의 얼굴을 손가락 끝으로 들어 올린 뒤 입술을 탐했다.
"...... 내 말에 틀린 점이 있습니까?"
마사오는 토시오를 바라보았다. 그 표정에서 어린아이 같은 천진난만함은 사라졌다.
"조금 다른 부분이 있지만 ...... 괜찮아요."
"다른 부분? 어디가요?"
"괜찮아요."
마사오는 팔을 뻗어 토시오의 손을 잡았다.
"부탁이 있어요."
마사오는 토시오의 손을 자신의 목에 갖다 댔다.
"...... 이대로, 힘을 주세요!"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말아요."
토시오는 마사오의 팔을 풀어주었다. 그러자 마사오의 상체가 드러났다.
토시오 밑에서 마사오의 표정이 처음으로 흔들렸다. 마사오는 토시오의 등에 팔을 두르고 몇 번이나 하얀 목을 내밀었다. 목소리가 떨렸다. 토시오는 마사오의 냄새를 맡았다.

반쯤 깨어난 상태에서 토시오는 팔을 뻗었다. 토시오는 그렇게 하면서 마사오의 몸을 확인하려고 했다. 하지만 토시오의 팔은 하늘을 향해 뻗어 버렸다. 토시오는 깜짝 놀라 눈을 떴다. 마사오는 없었다.
방은 밝아져 있었다. 옆의 침구류가 가지런히 접혀서 쌓여 있었다. 토시오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토시오는 옆방을 열었다. 정리된 책상 위에는 흰 종이가 놓여 있었다. 그 종이 위에는 빨갛고 하얀 눈을 드러낸 마도죠가 문진으로 놓여져 있었다. 토시오는 마도죠를 치우고 종이를 손에 쥐었다.
"카츠 씨의 호의가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렇게 있을 수 없습니다.
부디 저를 찾으려고 하지 말아주세요. 시간이 좀 걸렸지만, 이것으로 끝을 맺겠습니다.
마사오”

…….죽으려고 하는구나. 토시오는 직감했다.
프런트에 전화를 걸어 물어보니 마사오가 숙소를 떠난 시간은 7시였다. 한 시간 전이었다.
"어디 간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누군가를 만나러 간다고 하지 않았나요?"
토시오는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심정으로 물었다. 물론 마사오는 아무 말도 남기지 않았다. 그 뒤 전화가 걸려왔다. 에토였다.
"무슨 일이야? 그녀는?"
에토가 물었다.
"......그게, 사라져버렸어."
토시오는 당황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도망쳤지?"
"그래."
"이거 참… 도망가는게 유행도 아니고. 그럼 너는 어떻게 할거야?"
"...... 아직 생각하지 못했어."
"하지만 너를 위해서라면 그렇게 사라져버리는게 괜찮을 것 같은데. 그나저나, 정말 여자는 알 수가 없군."
토시오는 우스갯소리로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하지만 에토의 말에 의심이 생겨났다.
“...정말 여자는 알 수 없네…. 라고?”
마사오는 나사 저택으로 돌아간 것이 아닐까. 어제는 자기가 방해가 된 것이다. 마사오는 다시 한 번 동굴에 숨겨져 있는 비밀 재산을 되찾으러 나간 것이다. 그 때문에 마사오는 세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것이다. 무일푼으로 마사오가 따라올 거라 생각한 자신의 생각은 얄팍했다.
여종업원이 와서 아침은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다. 토시오는 필요 없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종업원이 가지고 온 새 손전등을 방 안의 비상용이라고 적힌 꼬리표 아래에 걸려고 했다.
"그건?"
토시오는 무심코 물었다.
"어머, 모르셨나요? 먼저 가신 손님분께서 실수로 떨어뜨려서 망가뜨렸다고 하셔서 ...... 네, 대금은 받았습니다."
마사오는 손전등을 들고 떠났다. 마사오의 행선지는 나사 저택의 동굴이다. 확실하다.
토시오는 옷을 갈아입고 숙소를 나섰다. 여전히 가랑비가 계속 내리고 있었다. 저녁에 산 우산은 그대로였다.
마이코의 코트를 입고 우산 없이 비를 맞으며 걸어가는 마사오의 작은 등이 보이는 듯했다.
 
亂れからくり 복잡한 기계장치 : 1 달그락달그락 새 亂れからくり 복잡한 기계장치 : 11. 베이지 않는 말 

2023/07/02

亂れからくり 복잡한 기계장치 : 14. 잠자는 인형

亂れからくり (創元推理文庫) (文庫) - 8점 泡坂 妻夫/東京創元社

14. 잠자는 인형
"그건 귀찮은데."
마이코는 호시자와에게 말했다.
"뭐가 귀찮아?"
호시자와는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마이코도 굴복하지 않았다.
"첫째, 나는 데츠바의 죽음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어. 둘째, 아까 내가 온 것을 환영하지 않았잖아. 마지막으로, 나는 너무 바쁘다고."
"하지만 말이야. 데츠바가 죽었잖아. 그것도 너가 마침 왔을 때 말이야."
"내가 사신이라도 되는 건가?"
"너처럼 뚱뚱한 사신 따위가 어디있어. 혹시 너, 데츠바가 살해당할걸 알고 있었던 것 아니야?"
"그런 말을 하는 걸 보니 아직 범인을 못 알아낸 모양이군."
호시자와는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다물었다.
"그럼 나라키 경감도 곤란한 상황이겠네."
"맞아. 그래서 부탁하는데, 혹시 만났을 때 경감이 뭔가 물어본다면 알고 있는건 대답해주라고."
"내가 아는 건 아무 것도 없어. 그리고 데츠바가 정말로 죽었다면 나 역시도 큰일이야."
"마이코가? 왜지?"
"나라키 경감이 말해주지 않았어? 데츠바는 내 마지막 증인이었다고."
"증인?"
"내가 경찰서를 그만두게 된 경위를 알고 있지? 나한테 지폐를 주고 도망친 차 사건 말이야. 그 차가 해바라기 공예의 차라는 걸 알아냈어. 데츠바는 그 차의 뒷좌석에 앉아 있었고."
"그럼 지폐를 마이코에게 건네준 사람은 누구였지?"
"운석에 맞아 죽은 마와리 토모히로였어."
"잠깐만. 그러면 마이코의 증인들이 차례로 죽임을 당했다는 건가."
"그래서 곤란한 거야."
"그렇다면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 마이코가 서에 돌아오게 되면 누가 가장 곤란할까?"
"교도 씨인가. 그 시끄러운 여자가 또 돌아온다고."
"다른 사람은?"
"이 사람이야. 또 실직하게 될테니."
마이코는 토시오를 보며 말했다. 호시자와도 묘한 표정으로 토시오를 바라보았다.
"그 동기는 너무 약하네. 예를 들어, 우다이 군 같은 경우는 어떨까?"
"우리 남편?"
"서에 마이코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서에 돌아가는 것을 좋게 생각하지 않을 거야."
마이코는 웃음을 터뜨렸다.
"재미있네, 그거. 하지만 그렇다면 소우지의 죽음은 어떻게 해석할거야?"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어."
호시자와는 처음으로 이빨을 드러냈다.
"나라키 경감에게 가 봐."
"그 대신 교환 조건을 걸지. 마사오를 만나게 해줄 수 있어?"
"그건 안 돼."
"안 된다고? 왜?"
호시자와는 목소리를 낮추었다.
"...... 마사오는 중요한 용의자로 지목되고 있기 때문이야."
"설마? 지금 어디에 있는데?"
"방금 전까지 카오리의 방에서 계속 조사를 받고 있었어"
"도대체 왜 그녀가 중요한 용의자로 지목된 거지?"
호시자와는 힐끗 토시오를 쳐다보았다.
"이 사람이라면 안심할 수 있어. 말하지 않으면 나라키 경감도 만나지 않을 거야. 이대로 돌아갈거라고."
"어쩔 수 없군. 마이코 상대로는 어쩔 도리가 없다니까…... 데츠바는 자신의 방에서 죽어 있었어. 사인은 청산성 화합물에 의한 중독사. 감식 보고는 아직 없지만, 내가 보기에는 거의 틀림없어. 그리고 데츠바가 쓰러져 있던 책상 위에 약병이 놓여 있었는데, 그건 마사오가 주었던 약이었어."
"그렇다고 해서 마사오가 독약을 넣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 단순하지 않습니까?"
토시오가 항의했다.
"글쎄, 끝까지 들어봐. 그 약병 안에 독 캡슐을 넣을 수 있는 사람은 마사오밖에 없어."
"그럼 그 약병 안에 독약 캡슐이 섞여 있었단 말이야?"
"그 약병이라고? 그럼 마이코는 그 약병을 알고 있는 건가?"
"토모히로의 철야 당시, 데츠바가 불편하다고 했었지. 마사오가 약은 잊어버리지 않고 계속 복용하고 있느냐고 묻자, 데츠바는 매일 가지고 다니면서 아침마다 제대로 복용하고 있다고 대답하며 약병을 꺼내 보였어. 빨간 라벨이 붙어있었는데, 라벨 가장자리는 벗겨져 있었어."
"그건 중요한 증언이 될 거야. 그걸 본 사람이 또 있어? 그 때 그 방에 있던 사람은 누구였어?"
"그때 그 방에 있던 사람은 소우지, 카오리........"
"모두 죽었어."
"그 약병이라면 나도 보고 있었어요."
토시오가 입을 열었다.
"라벨의 가장자리가 말려서 뒤집혀 있었어요. 틀림없어요."
"그 약병이 데츠바가 죽은 현장에 있었던거야."
마이코가 물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 약병에 독약 캡슐을 넣을 수 있는 사람은 마사오밖에 없다는 거지?"
"여기가 가장 중요한 부분인데, 그 약병의 캡슐에는 전부 독이 섞여 있었어."
"전부 다…….?"
마이코는 토시오와 눈을 마주쳤다. 의외의 일이었다.
"한 알도 빠짐없이?"
"그래, 한 알도 남김없이. 당연히 자살은 아니야. 자살을 하려면 모든 캡슐에 독약을 넣고 그 중에서 한 알만 마시는 짓은 하지 않을테니."
"데츠바는 정말 그 캡슐 독을 마신게 맞아? 다른 음식에 섞여 있던건 아니야?"
"아니야. 시체를 해부하면 녹아내린 캡슐도 발견될 거야. 약병이 마이코가 본 것이라면, 약병을 범인이 준비한 독약병과 바꿔치기한 것이 아니라 캡슐만 바꿔치기한 것이지."
"어제 무슨 일이 있었지? 데츠바가 계속 그 약을 먹고 있던건 확실해?"
마이코의 목소리가 숨을 헐떡거렸다.
"데츠바는 매일 아침마다 약을 빠뜨리지 않았어. 특히 어제 아침에는 데츠바가 그 약을 먹는 것을 동거하는 가정부가 목격했어."
"어제는 죽지 않았었으니........"
"그래. 캡슐이 바꿔치기 된 건 어제 데츠바가 약을 먹고 오늘 아침 데츠바가 약을 먹은 지 24시간 사이에 이루어진거야."
"그 동안 약병은 어디에 있었지?"
"데츠바의 주머니에 있었어."
"밤에는?"
"데츠바의 방이야. 데츠바 저택은 문단속이 엄격할 뿐 아니라, 데츠바는 두 자식이 죽고 난 뒤부터 더 신경질적으로 변했어. 밤은 물론 낮에도 필요 없는 문은 잠가두었어. 어제 나사 저택에 있었던 사람은 데츠바, 마사오, 가정부 세 사람밖에 없었어. 나사 저택을 드나든 사람은 한 명도 없었고."
"낮에 누군가가 침입해서 나사 저택 어딘가에 숨어 있을 수 있지 않았을까?"
"나사 저택이 아무리 넓다고 해도 불가능해. 게다가 데츠바는 잠을 잘 때 자기 방에 자물쇠를 잠그고 잤다고."
"자물쇠를?"
"마이코도 가 봤으니까 알겠지? 데츠바의 방은 들어가면 서양식 응접실이고, 그 안쪽에 일본식 거실이 있어. 방의 출입은 응접실 문으로만 가능한데, 그 문에 자물쇠가 걸려 있었어."
"열쇠는? 찾았어?"
"데츠바 주머니에 있었어."
"그럼 마사오라도 데츠바의 약병 속 캡슐을 갈아 끼울 수는 없잖아."
"나라키 경감은 마사오라면 가능했을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더군."
"그건 왜지?"
"데츠바는 마사오를 신뢰하고 있었어. 그래서 마사오라면 데츠바에게 다가갈 수 있을 거라는군."
"그리고 마사오가 데츠바의 주머니에서 캡슐만 빼냈다는 거지? 눈 깜짝할 사이에?"
"그런 말은 하지 않았어. 다만 마사오라면 어떻게든 가능했을거라고 생각하더라고. 말로 잘 다독여서 말이야."
"무슨 말?"
"그건 모르지."
"무슨 말을 해야 데츠바를 속일 수 있었을까?"
마이코는 팔짱을 끼고 미로 쪽을 바라보았다.
그 시선을 따라가던 토시오는 깜짝 놀랐다. 마이코는 동굴을 통과하면 데츠바의 방에 몰래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데츠바의 약병의 캡슐을 바꾼 인간, 그것은 분명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저녁에 데츠바를 마지막으로 본 사람은 누구야?"
"가정부야. 이부자리를 깔고 데츠바를 방에 들여보냈고, 데츠바가 자물쇠를 내리는 소리도 들었다는군."
"아침은?"
"평소와 똑같아. 아침을 마사오와 함께 먹고 방으로 돌아갔어. 그게 마지막이었어."
"오늘 해바라기 공예의 직원들이 이곳에 모이기로 했다고 들었는데?"
"맞아, 간부들이 모인 건 9시 반부터 10시까지였어. 그때는 이미 데츠바는 죽어 있었지."
"해바라기 공예의 간부들은 결국 데츠바를 만나지 못했군?"
"그래. 시간이 되어도 데츠바는 좀처럼 방에서 나오지 않았어. 응답도 없었고. 마침 우리도 왔던 터라, 그 자리에서 자물쇠를 부수고 안으로 들어갔지."
"데츠바가 죽어있었군."
마이코와 토시오가 데츠바의 방에서 동굴로 돌아온 직후였을 것이다.
"데츠바는 오늘 해바라기 공예의 간부들을 모아놓고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했던 걸까?"
"그건 아무도 모르지. ...... 이봐, 마이코. 이제 그만하자. 같이 가자고."
호시자와가 손짓했지만 마이코는 움직이지 않았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약병의 캡슐에 대해서."
마이코는 겨우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독을 넣은 캡슐을 오래 전에 데츠바의 약병 속에 섞어 놓은 게 아닐까 싶어서."
"마사오를 감싸고 싶은 마음은 알겠어. 하지만 그건 불가능해."
"왜?"
"왜라고? 마이코답지 않네. 데츠바의 약병 속 캡슐에는 모두 독약이 섞여 있었어. 그리고 데츠바는 어제까지 살아있었고. 마이코의 말대로 이전에 독 캡슐이 투입되어 있었다면, 범인이 약병 중 몇 개의 약병에 독을 섞어 놓았는데 데츠바는 그 다음 날부터 일반 캡슐만 골라 먹다가 일반 캡슐이 다 떨어진 오늘 아침에 처음으로 독약 캡슐에 손을 댔다는거라고."
"그건 안 되나?"
"불가능하지. 데츠바는 일일이 캡슐을 고르는 등의 행동을 하지 않았어. 누구나 하듯 약을 먹었어. 약병을 기울여 우연히 굴러나온 한 알을 집어 입에 넣는 거지. 가정부도 그렇게 증언했어.”
"어제까지만 해도 우연히 평범한 캡슐만 데츠바의 손바닥 위로 굴러나왔다는 것도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은 아니잖아."
"절대 불가능하진 않겠지만, 복권에 당첨될 확률보다 낮을거야. 누가 그런 걸 믿겠어?"
호시자와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수사관들은 모두 긴장하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나라키 경감의 표정이 달라져있었다. 수사 도중 그의 눈앞에서 사람이 또, 세명이나 살해당한 것이다. 이런 일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일임에 틀림없다.
나라키는 끈질기게 질문을 반복했지만, 토시오는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았다. 미로의 중심부에 동굴이 있다는건 굳이 숨길 필요가 없었다. 나라키는 동굴의 존재를 몰랐기 때문이었다. 애시당초 질문의 대상이 될 수 없었다. 오히려 나라키가 알고싶어한건 마이코가 자주 나사 저택을 찾는 이유에 대해서였다. 토시오는 자신이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아무것도 모른다고만 대답했다.
토시오를 대신해 마이코가 불려갔다. 마이코도 나라키에게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은 것 같았다. 마이코가 카오리의 아틀리에에 배치된 수사본부에 들어간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마이코는 돌아와서 말했다,
"생각보다 마사오에 대한 혐의가 짙은 것 같다"고 말했다.
"마사오 씨는 어디 계세요?" 토시오가 물었다.
"데츠바의 응접실인 것 같아. 감시를 받고 있다는군. 만나게 해달라고 했지만, 어림 반푼어치도 없었어."
"이제 어떻게 할까요?"
"요코누마 씨에게 보고서를 전달해야 해. 오늘 중으로 전달하기로 약속했거든. 대동 흥신소에 가야 해."
마사오를 만나지 못해 아쉬웠다. 곁에 있으면서도 얼굴조차 볼 수 없다는 사실에 괴로움마저 느껴졌다.
"마사오 씨는 어떻게 될까요?"
"저런 상태라면 구금될지도 모르겠어."
"우다이 씨는 정말 마사오 씨가 범인이라고 생각하세요?"
"...... 데츠바가 죽어 있는 상태가 저렇다고 가정하면 말이야."
토시오는 침착함을 잃었다. 마사오를 도와야 한다는 마음은 어느새 토시오의 손끝까지 차오르고 있었다.
밖으로 나가자 구름이 낮아지고 있었다. 회색 하늘에 검은색 굵은 구름이 두 줄로, 옆으로 길게 늘어져 있었다. 기온도 올라가는 것 같았다. …..마사오가 데츠바의 캡슐에 독을 넣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하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마사오가 위험에 처하면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사 저택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야, 뭐 하는 거야?"
마이코가 고개를 돌렸다. 토시오는 조용히 땅을 내려다보았다.
마이코는 토시오의 발밑을 보았다. 토시오가 무언가를 발견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마이코는 시선을 옮겼다.
"어?"
마이코는 한 점을 보고 움직이지 않았다. 그것은 나사 저택을 크게 감싸고 있는 굵은 담쟁이덩굴의 뿌리 부근이었다.
"카츠 군, 보고 있어?"
토시오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마이코가 무엇을 보고 있다는 뜻인지 알 수 없었다.
잡초 속에 작은 빛나는 무언가가 있었다. 마이코는 몸을 숙여 눈을 땅에 가까이 가져갔다. 토시오는 별다른 관심 없이 그 빛나는 물체를 보았다.
"주사기네…… 아직 새 것이야."
마이코가 말했다.
그것은 가느다란 바늘이 빛나는 작은 주사기가 틀림없었다. 3분의 1 정도 액체가 들어 있었다. 하지만 그런 곳에 왜 주사기가 있단 말인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할까.
"......조금, 곤란하네."
마이코는 몸을 일으켰다.
"내가 이런 걸 찾았다고 하면 또 발이 묶일 것 같아."
"제가 발견한 걸로 하고 형사에게 설명할게요."
그때의 토시오는 그저 나사 저택에 남아있을 생각만 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도 괜찮을까? 아니, 내가 남아 있을게. 너는 서류를 요코누마 씨에게 전달해줘. 전달만 해 주면 돼."
그래도 좋았다. 마이코와 헤어져 혼자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이코는 에그의 문을 열고 서류를 토시오에게 건넸다.
"전달하고 나면 사무실에 들러."
마이코는 하늘을 바라보며 에그에서 검은색 코트를 꺼냈고, 가방 속 양초와 손전등은 좌석에 올려 놓았다.
경관이 문에 매단 밧줄을 풀었다. 토시오는 에그를 몰고 밖으로 나갔다. 마이코는 경관에게 무언가 말을 걸고 있었다.
토시오는 도로로 나가자 속도를 줄이고 나사 저택 뒤편으로 나가는 길을 찾았다. 잡목 숲 속에 좁은 길이 있었다. 에그를 거칠게 몰고 나아갔다.
미로 바로 뒤에 차를 세운 토시오는 에그에서 손전등을 꺼내어 들고 밖으로 나왔다. 풀숲을 헤쳐 나가자 미로가 보였다. 인적은 없었다. 경찰은 미로 안쪽이 나사 저택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아직 모르는 듯 했다. 토시오는 미로 입구로 미끄러지듯 들어갔다. 미로의 길은 이제는 기억하고 있었다.
중심부에 도착한 토시오는 마이코와 마찬가지로 울타리 아래를 살폈다. 곧 레버가 손에 닿았다. 세게 당기자 반응이 있었고, 중앙에 놓인 돌 테이블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토시오는 몸을 날려 미로 안으로 들어갔다.
처음 미로에 들어갔을 때와 달리, 섬뜩함이나 공포감은 사라졌다. 손전등과 기억만 의지할 뿐이었다. 가파른 돌계단에서 좁은 통로를 지나 폭포가 있는 석실을 통해 동굴에서 가장 넓은 E 지점에 이르자 토시오의 심장 박동은 이미 빨라져 있었다.
마지막 돌계단을 숨을 몰아쉬며 올라서려고 할 때였다. 돌계단 위에 빛이 보였다. 토시오는 본능적으로 전등을 끄고 바위 그늘에 몸을 숨겼다.
빛은 천천히 움직이면서 돌계단을 내려왔다. 전등을 든 사람은 마사오였다.
하지만 그것이 마사오라는 사실을 알고도 의심이나 놀라움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강한 그리움으로 가득 찼다.
어떻게 하면 마사오를 놀라게 하지 않고 자신을 알릴 수 있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조용히 말을 거는 수밖에 없었다. 마사오가 돌계단을 다 내려왔을 때, 토시오는 낮은 목소리로 불렀다.
"...... 부인"
전등 불빛이 멈췄다. 토시오는 계속 말했다.
"저입니다. 카츠입니다. 도와주러 왔습니다."
토시오는 전등을 켜고 자신의 얼굴을 비추었다.
마사오는 긴 가방을 옆구리에 끼고 한 손으로 손전등을 들고 토시오를 향해 서 있었다. 마사오의 표정은 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가만히 몸을 움츠리고 있는 기색은 알 수 있었다.
"도와주러 왔습니다."
토시오는 계속 말하면서 다가갔다. 마사오는 뒤로 물러났다. 토시오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는 것 같았다. 토시오가 조용히 손전등을 비추자 마사오는 거부하는 듯 얼굴을 돌렸다.
토시오는 옆으로 다가가 손전등을 들고 있는 마사오의 손목을 잡고 끌어당겼다. 저항하는 마사오의 힘은 너무 약했다.
"안심하고, 나를 따라오세요."
토시오는 마사오의 귀에 입을 가까이 대며 나직히 말했다.
"난폭한 짓을 해서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서둘러야 해요."
"저를 어떻게 하려는거죠?"
마사오는 겁에 질린 눈으로 토시오를 바라보았다. 마사오의 이런 눈빛을 전에는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토시오는 마사오의 어깨에 손을 얹고 그의 눈동자 속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부인, 저를 믿어주세요. 저는 당신의 편입니다."
"내 편? 그게 무슨 뜻이죠?"
마사오의 눈빛에 다소 침착함이 돌아온 것 같았다.
"이쪽으로 가면 미로를 통해 빠져나갈 수 있어요."
토시오는 손전등을 검은 구멍을 향해 손전등을 비췄다.
"알아요."
이 말은 조금 의외였다.
"안다고요?"
"토모히로에게 들은 적이 있습니다."
토모히로에게 들었다고? 하지만 지금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지나가신 적이 있으신가요?"
"아니요. 소름끼쳐서 안쪽까지 들어가지 않았어요. 하지만 카츠 씨는 왜?"
그것을 설명할 여유가 없었다.
"부인, 저를 싫어하세요?"
싫다고 대답해도 좋았다. 하지만 한 번쯤은 그 말을 해주고 싶었다.
"싫다느니 뭐니 하는 것은 ......"
마사오는 토시오의 단호한 말투에 충격을 받은 듯했다.
"그럼 저를 따라 오세요. 길은 제가 알고 있습니다."
"어디로 가려고요?"
"동굴을 지나서 미로 속으로 들어가는 거예요. 미로 끝에 차를 두고 왔어요. 저와 함께 도망치시죠."
"도망친다고요?"
"조금만 더 있으면 당신에 대한 체포영장이 나올 겁니다. 데츠바 씨를 살해한 범인으로 말입니다."
"데츠바를 내가 죽였다고요 ......"
마사오는 감정이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도 그럴까봐 혼자서 나사 저택을 빠져나온거 아닌가요?"
"아니요."
부정하는 마사오의 말에는 오히려 너무 많은 감정이 담겨 있었다. 토시오는 마사오의 손목을 잡고 걷기 시작했다. 마사오는 더 이상 거부하지 않았다. 자세히 보니 마사오는 스타킹만 신고 있었다. 어떻게든 급히 도망칠 생각 뿐이었구나, 라고 토시오는 생각했다.
좁은 동굴에 들어가자 서로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단지 잡은 손의 촉감과 숨소리가 들릴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시오는 강한 유대감을 느꼈다.
"폭포야……. 이상하네요."
폭포의 석실에 들어서자 마사오가 작게 외쳤다.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한 소리였다.
"다리는 괜찮나요?"
토시오는 바위가 많은 길에서 말했다.
"괜찮아요. 어떻게 되든 상관없어요."
마사오는 몇 번이나 걸려 넘어져 토시오의 가슴에 쓰러질 뻔했다. 출구가 가까워질 무렵에 두 사람은 거의 서로를 끌어안은 채였다.
미로 한가운데로 나오자 안개 같은 비가 얼굴에 내려앉았다.
"비가 오네요."
마사오가 하늘을 바라보았다. 토시오는 아까부터 마사오의 무심한 표정이 신경 쓰였다. 두려움이 사라진 마사오의 표정에는 천진난만함이 묻어났다.
동굴 입구를 닫고 토시오는 마사오의 손을 잡으려 했다. 보니 손목이 빨갛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너무 심하게 움켜쥐고 있었던 모양이다.
"아팠나요?"
토시오는 마사오의 얼굴을 보았다.
"아니요……"
마사오는 고개를 저으며 꽉 쥐고 있던 손전등을 토시오에게 건넸다.
미로 출구에서 나사 저택을 둘러보았다. 인적이 없는 것을 확인한 두 사람은 몸을 움츠리고 미로 뒤를 돌아보았다.
"또 이 차로 도와주시는군요."
마사오는 길에 놓인 에그를 보고 말했다. 뒷좌석에는 마이코의 샌들이 놓여 있었다. 토시오는 샌들을 마사오의 발에 신겨주었다.
차를 도로로 올려놓자마자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머리를 푸세요."
토시오가 말했다. 마사오는 뒤로 묶은 머리를 풀었다.
"그리고 립스틱을 짙게 바르세요."
마사오는 가방을 열어 립스틱을 짙게 칠했다.
"뒷좌석에 우다이 씨의 코트가 있으니 입어보세요."
마사오는 시키는 대로 몸을 움직여 마이코의 오렌지색 코트를 입었다. 그것만으로도 마사오의 행색이 많이 달라졌다.
국도로 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갑자기 도로가 정체되기 시작했다. 차량 검문때문인 것 같다고 토시오는 직감했다. 토시오는 에그를 길가에 세워두고 차에서 내린 뒤, 진흙투성이 옷 위에 자신의 코트를 입었다. 그리고 다시 국도로 나와 택시를 잡았다. 예감이 맞았다. 검문이 있었지만, 경찰관들은 소형차에 집중하고 있었다.
"어디로 가는 거죠?"
마사오가 물었다.
"일단 슈젠지로 가죠."
토시오의 마음가짐은 정해져 있었다.
"슈젠지…… 여행 같네요."
마사오가 말했다.
"체육관에서 알게 된 친구가 있어요. 분명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거리로 나가자 마사오가 신고 있는 마이코의 샌들이 눈에 띄었다. 토시오는 터미널 백화점에 들어갔다.
"돈이라면 있어요."
마사오는 가방을 만지작거리며 이상하게도 웃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거 갖고 싶어요."
마사오는 화려한 빨간 스카프를 보고 말했다.

亂れからくり 복잡한 기계장치 : 1 달그락달그락 새 亂れからくり 복잡한 기계장치 : 11. 베이지 않는 말 

2023/06/16

亂れからくり 복잡한 기계장치 : 13 나사 저택

亂れからくり (創元推理文庫) (文庫) - 8점 泡坂 妻夫/東京創元社

13 나사 저택
"건드리지 마!"
마이코는 억눌린 목소리로 말했다.
당연히 건드릴 리 없었다. 토시오는 다다미방 위에 쪼그리고 앉았다.
마이코는 데츠바 옆에 무릎을 꿇고 한참을 앉아 있었다.
데츠바의 양손 손가락이 비틀려 있었다. 죽기 직전에 데츠바는 어떤 고통에 시달렸을까. 의복 가슴 부분의 흐트러짐도 고통의 격렬함을 말해주고 있는 듯했다.
"방금 전에 죽었네."
마이코는 토사물에 얼굴을 가까이 대고 냄새를 맡았다.
검은 칠을 한 책상에는 주홍색 쟁반이 놓여 있고, 물이 반쯤 담긴 컵이 놓여 있었다. 쟁반 옆에는 뚜껑이 잘 닫힌 작은 빨간 병이 놓여 있었다. 낯익은 병이었다. 병 바닥에는 여전히 몇 개의 빨간 캡슐이 들어 있었다.
마이코는 방을 둘러보았다. 방의 가구들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흐트러진 물건은 하나도 없었다.
"미로로 돌아가자. 누군가 발견하면 귀찮아질테니까."
마이코는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섰다. 자신이 앉아있던 다다미 위에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것을 확인한 뒤, 다다미방 안쪽으로 돌아갔다. 낡은 도구들이 쌓여 있는 방에 들어서자 마이코는 평소의 그녀와는 다르게,
"젠장 ...... 드디어 나의 마지막 증인까지 죽여버렸군……"
라는 말을 내뱉었다.

"데츠바는 어떻게 죽었습니까?"
동굴의 세 갈래 길, 마이코가 말한 E 지점으로 돌아왔을 때, 토시오는 물었다.
마이코는 평평한 바위 위에 앉았다. 그것은 데츠바의 죽음을 목격한 뒤 마음의 동요를 가라앉히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앞으로의 행동을 위해 몸을 추스르기 위한 것 같았다.
"자살이 아니야. 독약을 먹은 거야."
마이코는 그렇게 단정했다.
"책상 위에 놓여 있던 병을 기억하겠지? 그건 마사오가 데츠바를 위해 준 약이었어. 만약 데츠바가 자살했다면 죽기 직전에 그 병을 놓아두었을리 없어."
"그렇군요."
"데츠바는 아침 식사 후 늘 그렇듯이 그 약을 먹었을거야."
"식사에 독극물이 들어갔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토시오는 마사오가 준 약에 독이 들어있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것도 아니지. 식사에 독이 들어있었다면 당연히 식사 중에 쓰러졌을테니까."
"식사를 누군가가 치웠을 수도 있잖아요?"
"안 돼. 책상 위의 토사물은 책상이 깨끗하게 치워진 상태에서 토한 것이니까."
"컵의 물 속에 독극물이 들어 있었을 가능성도 있지요."
마이코는 멍하니 토시오를 바라보았다.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책상 위에 약병이 있는 이상, 독극물은 그 약에 섞여 있었다고 생각하는게 자연스럽지 않겠어?"
"그건 그렇긴 하지만 ......"
"당신은 마사오가 데츠바에게 건네준 약병에 독이 들어 있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군."
"분명 누군가가 똑같은 캡슐에 독을 담아서, 그 약병과 똑같은 약병에 담아서 바꿔치기 한 것이겠죠."
"하지만 데츠바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필요 이상으로 신경을 많이 썼을 거야. 최근에 가족이 네 명이나 죽었으니까. 데츠바가 가지고 있는 약병을 바꿔치기 할 틈이 있었을 것 같지는 않은걸."
"......독극물 캡슐을 하나만 준비해서 데츠바의 약병에 몰래 넣었다는건 어떻습니까? 카오리 씨와 소우지가 죽기 전에요. 데츠바가 아직 자기들을 노리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때 말입니다."
"호오......."
마이코는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꽤나 그럴싸한 말을 하는군. 맞아. 독약 캡슐을 하나만 넣었다면 가능성은 있어. 책상 위에 있던 약병 안에 얼마나 많은 캡슐이 남아있었을까?"
"열 알도 채 안 됐을 것 같은데."
"그래, 그런 거였어. 그렇다면 그 약병이 캡슐로 가득 차면 몇 알 정도 들어갔을까?"
"오십 알은 들어가겠지요."
"데츠바는 그 캡슐을 매일 아침 한 알씩 먹는 습관이 있었어. 따라서 범인이 독극물을 넣었다면 거의 40일 전에 넣었다는 뜻이지. 그렇다면, 역시 가장 쉽게 독을 넣을 수 있는 사람은 누가 뭐래도 마사오야"
"독은 무엇일까요?"
"청산성 독극물인 것 같더군...... 마사오는 병원에 근무한 적이 있었지?"
"독극물은 꼭 병원이 아니어도 구할 수 있어요. 청산가리라면 도금에도 쓰이지 않나요? 해바라기 공예는 작지만 도금 공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도 그렇지, 하지만 ......"
마이코는 손전등으로 동굴의 바위 하나하나를 비추고 있었다. 마치 아이가 거울로 햇빛과 놀고 있는 것처럼 전등 불빛이 춤을 추었다.
"마사오 씨는 동기가 없어요."
토시오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있어."
마이코는 무심코 말했다.
"데츠바가 어떤 유언을 남겼는지는 모르겠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마와리 가문의 유산은 마사오의 것이야."
"유산이라니........"
"있어."
마이코는 전등을 크게 움직였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건, 제니야 고헤에가 덴포 14년에 오노 벤키치에게 상담했던게 무엇이었을까?라는 것이야."
"제니야 고헤에가 ......"
토시오는 마이코의 말 뜻을 바로 파악하지 못하고 말을 더듬었다.
"오노 벤키치의 츠루슈일록 첫머리에 적혀 있었잖아.
‘…. 비, 카네이시로 감. 회의 후 심사숙고 끝에 승인을 미룸.’
카네이시는 당연히 고헤에의 집이야. 비가 오든 말든 벤키치는 카네이시에 갔어. 그만큼 중요한 용건이었음을 알 수 있지. 카네이시에서 은밀한 회의가 있었고, 고헤에는 중요한 일을 벤키치에게 부탁했던거야. 하지만 쉽게 맡을 수 있는 일이 아니었어. 고심 끝에 승낙을 미루었고."
"그게 뭐였을까요?"
"다음 날들의 기록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지. ‘하루 종일 고민하다.’ 다음 날은 ‘도면은 진전이 없다….. ‘라고. 너무 큰 일이라서 도면에 대해 생각할 틈이 없었던거야. 그리고 다음 날, 구우에몬이 모리타치노치토세를 가지고 찾아왔어.…..구우에몬에게 맡길까, 벤키치는 고민했지. 또 다음 날, 맑은 날씨가 계속되고 통풍이 회복된 우타는 역립인형의 의상을 만들었어. 이 기록은 구우에몬에게 모든 것을 맡기기로 결심한 벤키치의 마음이 그대로 담겨 있는 것 같아."
"그 구우에몬이란?"
"마와리 사쿠조야."
마이코는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사람은 가명을 지을 때 아예 엉뚱한 이름으로 짓지는 않는 법이야. 그때 스승 벤키치는 칼로 베지 못하는 말을 만드는 일에 몰두하고 있었지. ……..말을 베는 마와리 사쿠조, 어때? 딱 맞는 이름 아니야?"
"............"
"구우에몬은 그 목적을 실행하기 위해 번을 떠나 도망쳐 버렸어. 명목상으로는 시녀에게 손을 댔다고 하지만, 꾸며낸 이야기야. 구우에몬은 가나자와를 떠나 오나와로 옮겨왔지."
"사쿠조의 아내는 오나와 태생이었어요."
"거기서 비롯되었겠지. 구우에몬은 생계를 위해 가나자와에서 배운 기우라기리코보시(起上り小法師)와 쌀을 먹는 쥐에서 힌트를 얻은 키츠키(きつつき)를 만들기 시작했어. 카라쿠리를 배웠던 만큼, 섬세한 일에 능했을테고. ……생활이 안정된 후, 구우에몬은 가게 이름을 츠루슈도(鶴寿堂)로 짓고, 아이에게도 도키치(東吉)라는 이름을 지어주었어. 벤키치에 대한 애착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수 있지 않아?"
"그렇다면 구우에몬이 물려받은 것은 도대체 무엇이었습니까?"
"그건 제니야 고헤에의 입장이 되어보면 알 수 있는 일이 아닐까?"
"...... 모르겠습니다."
"이봐. 가가번의 중신 오쿠무라 히데미가 죽기 전, 고헤에는 절정의 시기였어. 나이는 칠십. 하지만 가가번에서 반대파가 세력을 키우기 시작했고, 세간의 시기와 질투를 모르는 것은 아니었지. 오히려 더 강하게 느꼈을거야. 지금 손을 잡고 있는 히데미도 병이 들었다, 반대파가 정권을 잡으면 내일은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아무도 모른다, 요도야 진고로(淀屋辰五郎)의 사례도 있다, 사소한 일로 상인이 재산을 몰수당한 사례가 한, 두 번이 아니었던 시대였어. 자신을 지키고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는……"
마이코는 잠시 말을 잇지 못하다가 말했다,
"재산의 일부를 은닉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지 않았을까?"
토시오는 생각에 잠겼다. 재산의 은닉.......그래, 그것은 당연히 생각할 수 있는 일이다. 지금도 가끔 금화를 담은 항아리가 발굴되는 경우가 있다. 재산을 은닉하는 것은 당시 상인들 사이에서는 상식적인 일임에 틀림없었다.
"제니야 고헤에의 자산이 삼백만 양이었다니 10%만 해도 삼십만 양이야. 천량상자가 삼백 개나 된다고."
마이코는 회계업자처럼 계산을 했다.
"고베에가 아무리 해운업자였더라도 그런 막대한 돈을 다른 번으로 쉽게 옮길 수 있었을까요?"
"그래서 오노 벤키치에게 자문을 구한 것이 아니었을까? 벤키치는 젠고 재벌에게 없어서는 안 될 두뇌였어. 하지만 벤키치는 거절했어. 벤키치의 은둔 생활을 보면 상상이 가. 벤키치는 지금까지 없던 가라쿠리에 대한 열정은 있었지만, 번주의 눈을 피해 재산을 은닉하는 일은 꺼려했어. 너무 세속적이고 위험한 일이었으니까. 그래서 벤키치는 고민 끝에 모든 것을 구우에몬에게 맡기기로 결심했어."

"구우에몬이 그만큼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었을까요?"
"그랬다고 생각해. 무엇보다도 벤키치에게 푹 빠져 있었고, 동시에 제니야 고헤에의 신봉자였다고 생각되는군. 그렇지 않다면 벤키치가 구우에몬에게 상담할리도, 고헤에가 일을 맡길리도 없었을테니까."
"구우에몬은 그 일에 성공했군요?"
"그렇지. 구우에몬은 시녀에게 손을 댔다는 이유로 탈번 후 가나자와를 떠났지. 벤키치는 그 때 마지막 작별의 선물로 역립 인형을 주었을테고. 그리고 어떤 계획에 의해 고헤에의 재산의 일부가 이 오노와에 숨겨졌던거지. 장소는 이 동굴 안이 틀림없을거야."
"그 재산은 아직 누구도 발견하지 못했을까요?"
"구우에몬은 정직한 사람이었어. 고베에의 재산을 맡았지만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스스로 장난감을 만드는 일을 시작한 것을 보면 알 수 있지. 그러던 중 가가 번에서는 결국 집정관 히데미가 죽어버려서 반대파가 득세하게 되었어. 고헤에는 공식어선의 지위를 빼앗긴 뒤, 하호쿠가타 매립공사에 착수했다가 투독사건의 혐의로 체포되어 옥사했고, 제니야 가문은 순식간에 몰락했어. 구우에몬은 가슴이 아팠을거야. 유산을 제니야에게 돌려주어야 했는데 불가능해져버렸으니까. 결국 그 기회를 갖지 못한 채 병으로 죽고 말았지."
"그 사실을 자신의 아들에게도 말하지 않았던걸까요?"
"물론, 말하지 않았겠지. 하지만 아들 도키치는 한, 두 가지 버릇이 있는 사람이었어."
"마와리 호도말씀이시죠?"
"그래. 도키치는 자신의 이름도 버린 뒤 호도라 자칭하고, 츠루슈도를 없애고 해바라기 공예라 했지. 문장까지도 바꾸었고. 이유는 하나야. 가나자와와의 인연을 끊고 고헤에의 재산을 자기가 차지하려고 했던거야."
마이코는 손전등을 크게 움직였다.
"호도는 요코하마의 도박판에서 큰돈을 벌었다고 하지만, 그 자금은 고헤에의 재산 중 일부였을거야. 하지만 호도는 상술에 능한 사람이었어. 은닉 재산의 대부분은 아직 그대로 남아있을 거야."
마이코는 계속했다,
"호도는 요코하마를 떠나 오노와로 이주했어. 물론 동굴에 재산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서 말이야. 그리고 기괴한 나사 저택을 지었어. 장난감을 싫어하는 호도가 이런 건물을 지은건 아까 말했듯이 이 저택에 미로 같은 것이 있어도 부자연스럽지 않기 때문이야. 그 미로는 지하 동굴의 지도이자 입구였고. 평범한 건물에 미로 따위를 만든다면, 미로는 금방 관심의 대상이 되었겠지. 그러면 미로가 왜 만들어졌는지에 관심을 갖게 되고, 결국 동굴도 발견되고 말았을테니까."
"나사 저택 전체가 입구를 숨기기 위한 하나의 커다란 미로였던 셈이군요."
"그리고 호도의 언행도 생각해보면 마찬가지야. 호도는 기행이 많은 남자였다고 전해지는데 이 성격 역시 의도적으로 그렇게 보이도록 꾸민 것이었을거야. 무슨 일이 있어서 숨겨진 재산이 발견된다 하더라도, 동굴 속에 재산을 숨겨놓는건 과연 호도가 할만하다고 생각하게 만들기 위해서. 호도가 나사 저택을 만든 진짜 속뜻은 바로 이것이야."
"호도는 이 사실을 아들에게 말하지 않았던걸까요?"
"아마도? 미로로 그린 지도만 남겼지. 설령 아들에게 전했을지 몰라도 데츠바에게는 전해지지 않았어. 데츠바는 전쟁 후 가난을 경험했잖아? 만약 알았더라면 당연히 은닉 재산을 사용했을 거야. 그리고 둘러보니 이 동굴이 발견된 것은 아주 최근의 일인 것 같아."
"누가 발견했을까요? 토모히로, 아니면 소우지?"
"둘 다겠지. 소우지는 오노 벤키치의 역립 인형을 발견했어. 역립 인형은 데츠바의 다실 다다미방 안쪽 작은 방에 있었고........ 토모히로가 가나자와의 다카라다 노인에게 보여주었던 사진, 두 사람 뒤에 찍힌 소나무 숲의 모양이 카네이시의 소나무 숲과 닮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
"토모히로는 가나자와에 갔었군요"
"그렇다면 마사오도 당연히 제니야 고헤에의 은닉 재산에 대해 들었을거야. ...... 이제 가 봐야겠다."
마이코는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펴고 일어섰다.

동굴 밖으로 나오자 약한 햇살이 비췄지만, 오랫동안 어둠 속에 있던 눈에는 꽤나 눈부셨다.
마이코는 남은 양초와 손전등을 가방에 넣었다. 두 사람의 옷은 진흙투성이였다. 마이코는 진흙을 털어낸 뒤, 닫힌 담벼락 문 아래로 손을 뻗었다.
물소리와 함께 튀어나온 돌판이 조용히 동굴 입구를 닫기 시작했다. 동시에 울타리가 움직이기 시작하며 미로의 문을 열었다.
"정말 잘 만들었어."
마이코는 오각형의 돌탁자가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을 보고는 울타리 사이로 몸을 넣었다.
미로를 걷던 중, 미로 입구에서 제복을 입은 경찰을 만났다. 두 사람의 모습을 쫓고 있던 순경이었다.
"어머, 마중 나왔어요?"
마이코가 담담하게 말했다.
"아니요, ......"
경찰관이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길을 잃었어요. 출구를 알려주실 수 있나요?"
"그게 ......"
"그건 곤란하네요. 아마 이쪽인 것 같은데요."
마이코는 순경과 자리를 바꾸어 먼저 나섰다.
미로를 빠져나와 소정 쪽으로 가니 호시자와가 무서운 표정을 짓고 서 있었다.
"덕분에 좋은 공기를 마실 수 있었어요."
마이코가 지나가려고 하자,
"나라키 씨가 만나고 싶대요."
무뚝뚝한 얼굴로 말했다.
"오호. 미녀의 얼굴이 보고 싶었구나."
"그런 게 아니야. 데츠바의 시체가 발견됐어. 이제는 돌아가려고 해도 돌아갈 수 없다고. 각오해."
마이코는 일부러 눈을 크게 떴다.

亂れからくり 복잡한 기계장치 : 1 달그락달그락 새 亂れからくり 복잡한 기계장치 : 11. 베이지 않는 말

2023/05/29

亂れからくり 복잡한 기계장치 : 12. 카라쿠리 미로

亂れからくり (創元推理文庫) (文庫) - 8점 泡坂 妻夫/東京創元社

12. 카라쿠리 미로
다음 날, 토시오가 니시키 빌딩의 사무실에 들어갔을 때 마이코는 자신의 책상에 앉아 한 장의 종이를 놓고 몰두하고 있었다. 토시오의 얼굴을 보자 그녀는 종이를 들고 일어섰다,
"차나 마시자"
평소와 다름없이 사무실을 나섰다.
카페 테이블에 가져온 종이를 펼쳤는데, 그것은 소우지의 노트에서 복사한 미로의 개략도였다.
"카츠 군, 이 미로,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마이코는 미로가 그려진 그림을 토시오 앞에 내밀었다.
"커피, 커피로, 괜찮지?"
토시오는 우물쭈물 대답하며 미로를 바라보았다. 이상하다는 말을 듣고도 그 의미를 바로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토요일에 카츠 군은 카오리와 함께 미로에 들어갔지만, 미로의 중심부에는 도착하지 못했다고 했지?"
"네, 맞습니다."
"너의 말에 따르면, 미로에는 단연결형과 복연결형 두 종류가 있는데, 단연결형 미로에서는 한 손을 미로 벽에 대고 진행하면 돼. 손이 항상 벽에 닿아 있기만 하면 막다른 골목에 들어가도 언젠가는 골인 지점에 도착할 수 있으니까. 맞지?"
"맞습니다."
"이 미로는 위에서 내려다보면 그다지 어려운 미로는 아니야. 그게 문제였어. 나도 지금까지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이 미로의 진정한 의미를 몰랐었고. 그런데 오늘 아침 문득 생각나서 네가 시도한 방법으로 미로를 진행해보았어."
마이코는 성냥개비를 꺼내 토시오에게 건넸다.
"자, 이 그림으로 네가 실제로 미로에 들어갔을 때와 똑같이 미로를 통과해 봐."
토시오는 성냥개비 끝을 미로의 왼쪽 벽에 대고 조용히 따라갔다. 성냥개비는 몇 개의 막다른 골목길을 돌았지만, 놀랍게도 마지막에는 정확하게 오각형의 중심에 도달했다.
"어때?"
마이코가 미로를 들여다보았다.
"중앙에 도착했어요."
"반대편 벽으로도 시도해 봐."
토시오는 성냥개비를 오른쪽 벽에 대었다. 결과는 같았다. 성냥개비는 똑같이 마지막에 중앙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카츠 군은 그때 벽에서 손을 뗀 적은 정말 없었어? 아니면 앞만 보고 가다가 막다른 골목에 들어가는걸 빼먹은건 아니었어?"
"아니요, 그렇지 않았습니다. 저는 절대로 벽에서 손을 떼지 않았어요."
"이 그림이 잘못 그려진건 아니야. 실제로 그날 소우지가 미로를 안내할 때 나는 이 그림을 보면서 굽이굽이마다 구석구석 확인해 두었어. 이 미로는 단지 단연결된 미로에 불과해."
"그럼 저는 왜 미로 중심부로 골인하지 못했을까요?"
커피가 나왔다. 마이코는 설탕을 컵에 듬뿍 담아 제대로 섞지도 않고 마셨다.
"이 미로를 만든 사람은 꽤나 머리를 쓴 것 같아."
"그렇습니까?"
"이렇게 그림으로 보면 별 것 아닌 미로로 보여. 하지만 실제로 미로에 서보면, 조금만 실수해도 골인할 수 없도록 여러 가지 장치가 되어 있어. 이 미로를 만든 사람의 세심함에 나도 모르게 탄성을 지르고 싶을 정도야."
"그런가요 ......"
"첫째, 이 모양에 주목해야 해. 오각형말이야. 이 모양이 인간의 방향 감각을 잃게 하는 첫 번째 원인이야."
"오각형이 사람을 미치게 한다고요?"
"그래. 이상하게도 인간의 머릿속에 있는 기본 형태는 삼각형도 아니고, 오각형도 아니야. 언제나 사각형이야. 네모난 집, 네모난 테이블, 네모난 침대, 네모난 종이, 네모난 책 ...... 인간이 보통 접하는 대부분의 물건이 네모야. 잘 정비된 도시는 반드시 바둑판의 눈처럼 깔끔한 사각형으로 구분된 길이 붙어 있기도 하고. 길을 잃기 쉬운 길은 그것의 형태와 구분이 깔끔한 사각형이 아니기 때문이야. 그런데 오각형의 굴곡은 사람의 머릿속에 들어가면 사각형의 굴곡으로 인식될 것 같아."
"이 미로의 모든 면이 휘어져 있는 것은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을 더욱 강하게 만들기 위한 것이었군요."
"그것도 있지. 그리고 또 하나는 미로에 들어간 사람의 시야를 없애는거야. 미로를 나아가다가 갑작스럽게 돌발적인 느낌으로 갈림길이 나타나도록. 실제로 그렇지 않았어?"
"그랬어요. 정말 불안한 느낌이 들었어요."
"햄튼 코트의 미로를 백과사전에서 찾아봤는데, 일부에 이런 갈림길이 쓰여 있더라고. 하지만 부채꼴 모양으로 장식성은 있을지언정, 나사 저택의 미로처럼 현기증을 유발하는 용도로 사용되지는 않은 것 같아. 나사 저택처럼 모든 길에 현기증이 나는 갈림길이 준비되어 있는 예는 다른 곳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어. 또 이 미로를 자세히 보면........"
마이코는 빨간 연필을 꺼내 미로의 바른 길을 빨간색으로 칠했다.
"이 바른 길 말이야. 미로에 들어가는 사람은 중심부를 향하게 돼. 그래서 당연히 중심부 방향으로 길을 선택하려고 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바른 길은 미로의 중심을 등지고 돌아가야만 하는 갈림길을 여러 개 만들어 놓았어. ……. 뭐, 이것은 미로의 상식이기 때문에 당연하기는 하겠지. 그런데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건 이렇게 다양한 장치를 담은 미로가 결국 단연결 미로였다는 점이야."
"단연결 미로는 안 됩니까?"
"안 돼지. 카츠군이 시도한 방법, 즉 손을 벽에 대고 나아가는 방법은 미로를 소개하는 책에는 반드시 설명되어 있어. 그렇다는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방법으로 쉽게 풀 수 있는 미로를 만들었다는 뜻이야. 오각형 등 여러가지 장치로 사람을 미치게 하는 데 열중하던 사람이 말이야. 어딘가 균형이 맞지 않는다고 생각되지 않아?"
"하지만 실제로 저는 미로의 중심부에 도달할 수 없었죠......"
"그게 핵심이야. 이 미로를 굳이 단연결로 만든 것은, 때로는 미로에 들어간 사람이 절대 미로의 중심에 도달할 수 없도록 하는 장치가 되어 있는 게 분명해."
"절대로 골인할 수 없는 장치?"
토시오는 무심코 미로 그림을 다시 보았다.
"실제로 토요일에 카츠 군이 미로 중심부에 골인하는데 실패했잖아? 그거야말로 단연결 미로 해결 방식으로는 중심부로 갈 수 없도록 만들어졌다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지."
"그런가요?"
"다시 한 번 그 미로 안으로 들어가 봐야 할 것 같군."
밖으로 나오니 이상하게 따뜻했다. 마이코는 비가 오는 것 같다고 말하며 오렌지색 코트를 에그의 뒷좌석에 던져 넣었다.

나사 저택 안에는 많은 차들이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자 제복을 입은 경찰이 차를 세웠다.
마이코는 자신의 이름을 말하고 나라키와 아는 사이라고 말했다.
잠시 후, 나라키 대신 호시자와가 저택에서 나왔다.
"당신이 오면 항상 나쁜 일만 일어나."
호시자와는 잠에서 깬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많이 혼잡한 것 같네."
마이코는 늘어선 차를 보며 말했다.
"해바라기 공예의 간부들이 모였어. 사장님을 중심으로 잠시 후 회의가 시작될 예정이야."
해바라기 공예의 핵심 간부를 두 명이나 잃었으니, 회사로서도 중요한 갈림길에 서 있는 셈일 것이다.
"데츠바씨는 잘 지냈어?"
"건강해 보여. 강인하더군. 아들과 딸을 잃고도 우리 앞에서는 한 번도 약한 소리 한 번 내지 않으셨어. 대단한 분이야."
"마사오 씨를 만나고 싶은데..."
"안 돼."
"안 된다고? 설마, 용의자로 지목된 건 아니겠지?"
"그건 아니지만 안 돼. 바빠서 말이야."
"언제 만날 수 있어?"
"중요한 용건인가? 내가 대신 전해줄 수 있어."
"나라 공이 그렇게 시켰겠지. 변함없이 융통성 없는 남자로군."
"우리가 알면 안돼는 용건인가?"
"뭐, 됐어. 그 대신 정원을 산책하는 것 정도는 괜찮겠지."
"냄새를 맡으면서 돌아다닐 거라면 그만두는 게 좋을 거야"
"그런 술에 취한것 같은 짓거리는 당연히 하지 않아. 잠깐 바깥 공기를 마시고 싶을 뿐이야."
"나쁜 말은 하지 않겠어. 그냥 돌아가는 게 나을거야."
"경찰이 민간인의 협조를 거부하게 된 건가?"
"그럴 생각은 없어"
"그럼 괜찮지 않아? 호위병이 있어도 상관없어."
호시자와는 마지못해 차를 통과시켰다.
"이상한 짓은 하지 말고, 쉬고 나면 바로 돌아가. 오늘은 마사오 씨와 만날 수 없어."
라며 말렸다.
마이코는 어슬렁어슬렁 정자 쪽으로 걸어갔다. 호시자와는 한 순경을 붙잡고 무언가 지시를 내렸다. 정말로 호위병과 함께 걷게 되었다.
정자의 흙에는 아직 피가 묻은 흔적이 남아 있었다. 흙에 흡수되어 신경써서 확인하지 않으면 그냥 지나칠 수 있을 정도의 흔적이었다.
마이코는 정자 앞의 다소 가파른 언덕을 내려와 돌다리를 건너 미로 쪽으로 걸어갔다. 토시오는 마이코를 따라 천천히 미로를 돌았다. 마지막 모퉁이를 돌자 마이코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서둘러!"
라고 말하며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토시오도 뒤따라 달렸다. 마이코는 그대로 미로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마이코는 미로의 길을 훤히 꿰뚫고 있는 것 같았다. 모퉁이를 돌아도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정확하게 길을 선택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미로의 중심부에 도착했다.
"지도대로야."
마이코가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 지도는 틀리지 않았어. 그렇다면, 카츠 군은 왜 그날 실패했던 걸까?"
마이코는 돌 의자에 앉아 가방에서 지도를 꺼냈다.
"뭔가 있는 모양인데.... 뭔가 ......."
마이코는 돌로 된 테이블을 쓰다듬었다. 그러다 문득 무언가를 발견하고, 탁자 밑으로 몸을 굽혀 떨어진 물건을 집어 들었다. 성냥개비의 타버린 조각이었다. 끝이 씹혀서 부서져 있었다. 마이코는 지겹다는 듯 성냥개비를 탁자 밑에 버렸다.
"미로 안에 돌 의자가 놓여 있었어요."
토시오는 처음 미로에 들어갔을 때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건 이 그림에도 제대로 적혀 있어요."
마이코는 그림의 ○표를 가리켰다.
"올바른 길은 의자 앞을 지나치지 않도록 되어 있군요."
"맞아. 올바른 길로 지나가면 의자 앞을 지나치지 않아. …….잠깐만. 의자 앞을 지나쳤다고?"
마이코가 깜짝 놀랄 정도로 눈을 크게 떴다.
"너, 그날 의자 앞을 지나쳤어?"
"네."
마이코는 지도를 두드렸다.
"이 지도에서는 의자가 막다른 골목 안쪽에 표시되어 있어."
마이코는 지도를 들고 일어섰다. 중앙을 벗어나 미로를 거꾸로 따라간다. 몇 번 모퉁이를 돌자 막다른 골목 안쪽에 타원형의 돌이 보였다.
"의자는 이걸 말하는거지?"
"맞습니다. 바로 이거였어요. 하지만 막다른 골목에 있던건 아니었습니다. 이 앞을 지나갔던 기억이 나는데요."
마이코는 몸을 굽혀 타원형 의자를 면밀히 살폈다. 얼마간 시간이 흘렀다. 마이코가 고개를 들며 말했다.
"아무래도 미로의 속임수를 알아챈 것 같아."
마이코는 막다른 골목에서 나와 다시 미로의 중심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중심부 입구의 울타리를 살피기 시작했다.
"이 울타리의 바로 뒷편에 돌 의자가 놓여 있어."
마이코는 계속 울타리를 만지작거리다가 울타리 밑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레버 같은 것이 나와 있어. 잡아당겨 보지."
반응이 있는 것 같았다. 동시에 울타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조심해."
마이코는 몸을 움츠렸다. 울타리는 마치 문처럼 움직여 오각형의 중심부 광장을 꽉 막아 버렸다.
"즉, 의자 앞의 통로가 열려있으면 ……. 이쪽은 막다른 골목이 아니야. 반대로 이 중심부는 닫힌 방으로 변해버리게 돼지. 여기가 닫히면 더 이상 아무도 이 안으로 들어올 수 없게 되는 거야."
마이코는 다시 한 번 닫혀 방처럼 변해버린 미로의 중심부를 둘러보았다.
"사람을 못 들어오게 하기에는 너무 신경을 많이 쓴 것 같군."
이 장난이 단지 그것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은 곧 알게 되었다.
토시오는 문득 귀를 쫑긋 세웠다. 땅속에서 물이라도 흐르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잘못 들은 것이 아니었다. 그 소리에 익숙한 소리가 들렸다.
그때 오각형 방에서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중앙에 있는 오각형의 돌 테이블이 조용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돌탁자는 튕겨져 나오듯 일어섰고, 탁자 밑에 있던 오각형의 포석이 가라앉으면서 오각형 모양의 검은 구멍이 뻥 뚫렸다.
구멍에는 가파른 돌계단이 바닥으로 이어져 있었다. 토시오는 조심스럽게 구멍의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구멍은 꽤 깊었고, 돌계단은 어둠의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었다. 습한 공기가 희미하게 불어왔다.
"이게 뭐죠?"
토시오는 깜짝 놀라며 마이코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동굴이야."
마이코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그러나 금방이라도 몸을 날려 구멍 속으로 들어가려는 모습이었다.
"르네상스 이후의 조경은 인공적인 도원향을 만드는 것이 이상적이었어. 정원에는 이국적인 정자, 분수, 미로, 실물 크기의 자동 인형이 놓여 있고, 동굴 안에는 다양한 장치가 설치되어 있었지."
"이 동굴은 만들어진 것입니까?"
"그건 직접 들어가 봐야 알 수 있겠지. 하지만 내 상상으로는 반반인 것 같아. 오나와라는 땅에서는 고대인의 토기 등이 발견되고 있으니, 고대인이 살던 동굴을 조금 가공해서 만들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니까. 오나와라는 지명은 다혈(多穴)이라는 뜻의 '오아나(おおあな)'가 사투리로 전해진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거든."
"이 큰 돌 탁자를 움직인 힘은 무엇이었을까요? 전력인가요?"
"전력 따위가 아니야. 수력의 힘을 이용한 것 같아."
"그러고 보니 물소리가 들리네요."
"이 동굴은 꽤 넓은 것 같아. 연못의 물이 흘러서 동굴 안에 물이 고여 있는 곳이 있는데, 저 레버를 당기면 그 물이 한꺼번에 흘러서 그 힘으로 테이블을 움직이는 것이라고 생각되는군.”
"이 동굴은 누가 만들었을까요?"
"나사 저택은 마와리 호도가 만들었지만, 이 동굴은 호도의 아버지인 사쿠조가 만든 것 같아"
"그 시대 사람들처럼 사쿠조는 이상향으로 이 동굴을 만들었을까요?"
"그건 아닌것 같아. 이 미로부터가 매우 폐쇄적이니까. 단지 재미나 장식을 위해서라면 이런 장난은 불필요했을거야."
"그러니까 동굴이 열려 있을 때는 아무도 모르게 미로를 닫아놓는 거군요."
"내려가 보자."
마이코는 아무렇게나 말하면서 가방을 열었다. 가방 안에는 손전등과 양초가 준비되어 있었다.
"우다이 씨는 미로 안에 동굴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나요?"
토시오가 놀랐다.
"마와리 가문의 철야 때 만났던 스님이 미로를 만드는 동기도 다양하다고 말했었지. 그 말이 마음에 남아 있었어."
마이코는 직접 촛불을 들고 손전등 쪽을 토시오에게 건넸다.
"지금도 이 미로가 정확하게 움직이는 걸 보면 최근에 누군가가 이 미로를 손질한 적이 있는 게 틀림없어. 그래서 아마 괜찮을거라고 생각해. 하지만 만일의 사태가 발생하면 치명적일 수 있으니 양초가 필요해. 만약 양초의 불이 꺼지면 산소가 없다는 뜻이니까."
마이코는 촛불에 불을 붙이고 구멍 옆에 섰다. 동굴의 바람이 불어서 양초의 불이 꺼져버렸다. 마이코는 불을 다시 붙인 뒤 바람을 피하면서 돌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토시오는 뒤따라가며 손전등으로 마이코의 발밑을 비춰주었다.
돌은 검고 축축하고 가팔랐다. 동굴 안은 따뜻하고 곰팡이 냄새가 났지만 불쾌하지는 않았다. 마이코는 돌계단 중간에 몸을 굽혀 무언가를 집어 들었다. 아까의 성냥개비 조각이 떨어져있었다. 동굴의 문이 열렸을 때 안으로 들어온걸로 보였다. 마이코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조각을 주머니에 넣었다.
돌계단은 꽤 깊었다. 희미하게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토시오는 손전등으로 마이코의 발밑을 조심스럽게 비췄다.
돌계단을 내려가자 여섯 장 정도의 넓이의 돌방이 나왔다. 바닥 곳곳에 물이 고여 있어 손전등 불빛을 비추자 하얀 거미 같은 벌레들이 도망쳐 나갔다. 석실 벽에는 사람 한 명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구멍 두 개가 나란히 눈동자처럼 열려 있었다.
"보라고."
마이코의 큰 목소리가 동굴에 울려 퍼졌다. 마이코는 방금 내려온 계단 아래를 가리켰다. 거기에는 박쥐의 손아귀처럼 녹슨 쇠막대기가 튀어나와 있었다.
"이걸로 미로의 문을 열고 닫을 수 있겠지."
마이코는 막대기에 손을 대었다가 바로 물러섰다,
"지금 테이블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곤란하겠지. 호위 아저씨에게 들킬지도 몰라."
마이코는 두 개의 동굴 안쪽에 촛불을 비췄다. 하나는 완만한 오르막길이고, 다른 하나는 가파른 내리막길이었다. 물론 안쪽까지 빛이 닿지는 않았다.
"카츠 군이라면 어느 쪽을 선택할래?"
마이코는 촛불의 반짝임 속에서 섬뜩하게 웃었다.
토시오는 땅을 주의 깊게 살폈다. 최근에 누군가가 지나갔다면 발자국이 남아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특이하게도 이론적으로 풀려고 하네."
마이코는 토시오의 마음을 꿰뚫어보는 듯 말했다. 하지만 두 동굴 어느 쪽에도 발자국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아니면 또 한 쪽 손을 벽에 붙이고 가야할까? 이 구멍은 꽤 길 것 같은데?"
"그럼, 우다이 씨는 어느 길이 맞는지 알 수 있나요?"
불만을 품은 듯한 토시오의 목소리에 마이코는 다시 웃었다.
"물론, 왼쪽이야."
마이코는 망설임 없이 왼쪽의 가파른 경사면에 있는 구멍으로 들어갔다.
"꺾는 순서를 메모해 둘까요?"
"아니, 이미 가지고 있어."
"그럼 동굴의 길찾기 지도를 찾았나요?"
"그런 것, 있다고 하면 있고, 없다고 하면 없지."
천장이 낮아 두 사람은 허리를 굽혀 걸어야 했다. 한참을 가다가 마이코가 걸음을 멈추고 땅을 바라보았다.
"왁스가 흘러내린 흔적이 있네. 우리처럼 걸어온 사람이 있었구나. 내 생각이 옳았던 것 같군."
그러다 길이 다소 넓어지고 평탄해지자 두 갈래로 갈라진 길로 접어들었다.
"봐."
마이코는 동굴 벽을 가리켰다.
"두 개의 구멍은 자세히 보면 서로 다를 거야. 한쪽은 벽을 깎은 흔적이 새롭지. 그러니까 이 두 구멍이 생긴, 혹은 만들어진 시대에 차이가 있다는 뜻이야."
"......알겠습니다. 즉, 새로운 구멍은 동굴을 복잡하게 만들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니, 거기에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 오래된 길을 선택하면 되겠군요."
"그렇다면 그 반대도 생각해 볼 수 있겠지. 새로운 구멍은 불완전했던 동굴을 완성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따라서 올바른 길 순서는 새로운 구멍을 선택해야 한다."
"어느 쪽 해석이 옳은가요?"
"결국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
마이코는 얼른 오래된 쪽의 구멍으로 들어갔다.
길의 폭이 넓어지고, 왼쪽에 좁은 도랑이 뚫려 물이 조용히 흐르고 있었다.
마이코는 걸음을 멈추고 귀를 쫑긋 세웠다. 물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이상하네. ...... 누군가가 미로의 문을 닫은걸까?"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 계속 걸음을 옮길수록 물소리가 더 커졌다.
"...... 폭포가 있어."
"폭포가? 동굴에?"
토시오는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이코는 촛불을 들었다. 그 빛 끝에 실 같은 무언가가 보였다. 가느다란 폭포였다.
폭포가 있는 곳은 꽤 넓고 천장도 높았다. 석실 양 옆에는 큰 구멍이 뚫려 있고, 두 구멍 사이로 튀어나온 듯한 바위가 있고, 물은 바위 위에서 떨어지고 있었다. 바위 표면은 물보라로 빛나고, 떨어지는 물은 도랑을 따라 조용히 흘러내렸다.
폭포는 두 갈래로 꼬불꼬불하게 휘어져 각각 뾰족한 바위 위로 떨어지고 있었다. 바위 사이에 접시처럼 움푹 패인 곳이 있는데, 그곳에 고인 물은 손전등 불빛 아래에서도 맑고 깨끗해 보였다.
"이번에는 이쪽이야"
폭포를 바라보던 마이코가 몸을 돌렸다. 촛불이 흔들리며 동굴이 흔들리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어떻게 아는 거지요?"
토시오는 마이코가 선택한 동굴에 전등을 비췄다.
"아하, 동굴의 지도가 있었군요."
마이코가 돌아보았다.
"있었어. 엄청나게 큰 녀석이."
"어디에요?"
마이코는 천장을 가리켰다. 토시오는 깜짝 놀라 위를 올려다보았다.
"여기서는 보이지 않아. 땅 위에 있었어."
토시오는 무슨 말인지 몰라 입을 다물었다. 마이코는 양초를 토시오에게 건네주며 담배를 꺼내어 불을 붙였다.
"이 나사 저택의 주인인 마와리 호도는 장난감을 싫어했다고 하지. 장난감의 창작보다는 상술에 능숙했기 때문에 작은 회사였던 츠루슈도를 해바라기 공예라는 큰 회사로 키울 수 있었어. 그런 사람이 왜 장난감 나라에나 나올 법한 나사 저택 같은 집을 지었을까?"
"단순한 변덕이 아니었나요?"
"아니야. 호도는 장사도 잘한걸 보면 굉장히 계산적인 삶을 살았던 사람일거야. 변덕스럽게 이런 이상한 건물을 만들지는 않았을테지."
"그럼 또 다른 동기가 있었나요?"
"그래. 나는 나사 저택 같은 기괴한 건물이라면, 정원에 이상한 미로가 만들어져도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있을 거라는게 이유라고 생각해. 만약 일반 가정집에 미로가 있다고 해봐. 미로만 너무 눈에 띄어서 사람들의 시선이 미로에 집중되었을거야."
"그럼 미로를 만들고 싶어서 호도는 나사 저택을 만든 건가요?"
마이코의 말은 상식을 뛰어넘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그럼, 그 미로는 왜 만들었나요?"
토시오는 그때까지 미로를 만들어야만 했던 호도의 마음을 도무지 읽을 수 없었다.
"그래, 좋은 질문이야. 장난감을 싫어하는 호도가 왜 미로를 만들었을까?"
마이코는 가방을 열어 오각형의 미로 그림을 펼쳤다.
 
"이건 땅에 그린 동굴의 지도인 것 같아."
"지도? ...... 에서도 이 동굴은 오각형이 아니잖아요."
"지도라는건 실물과 똑같은 축척으로 그려야 한다고 정해져 있는 건 아니야. 도쿄의 야마노테 선의 지도는 만두에 꼬챙이를 꽂아놓은 것처럼 그려지기도 하잖아. 즉, 실제 길과 그림이 상대적으로 동일하다면 그림은 아무리 변형되어도 상관없다는 뜻이야."
"알겠습니다."
"즉, 나사 저택의 미로와 이 동굴의 길은 위상적으로 동일하다는 거지."
"위상적?"
"오각형 미로의 입구와 골목을 잇는 길에 밧줄 하나를 놓았다고 하자. 그 밧줄에 갈림길, 즉 막다른 길에도 밧줄을 뻗어 본길과 연결해 주는 거지. 미로 안의 모든 길에 밧줄이 깔렸을 때, 밧줄을 빼내어 양 끝을 잡고 잡아당겨 보라고."
"내 팔은 그렇게 길지 않아요."
"융통성 없는 남자네. 로프를 훨씬 더 짧게 만들어서 생각해 보라고. 그러면 이런 모양이 될 거야."
마이코는 미로 그림을 토시오에게 보여주었다. 마이코는 그림의 모서리에 나뭇가지 같은 그림을 그려 넣었다.
"미로나 동굴의 길을 생각할 때 길의 길고 짧음, 오르막과 내리막, 길의 굴곡 등은 생각할 필요가 없어. 길이 아무리 구불구불하고 각이 져 있어도 상관없다고. 다만 문제는 갈림길에서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지."
"오각형의 미로와 동굴의 길이 같다는 의미는 알겠습니다. 지금까지 갈림길에서는 미로와 같은 방식으로 꺾어 왔던 거군요."
"맞아. 막다른 골목에 부딪히지 않은 것을 보니 내가 생각했던 것이 맞았던 것 같네."
"동굴의 지도를 그리는 데 왜 이런 엉뚱한 방법을 택한 거죠?"
"호도는 일반인에게 동굴이 알려지는 것을 절대 원치 않았어. 그런데 지도를 세밀하게 그려놓을 경우, 다른 사람이 보면 이 저택 안에 동굴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도둑맞을 수도 있으니 문제가 많지. 그래서 호도는 동굴의 그림을 미로로 바꾸어 놓는 방법을 생각해냈던거야."
"미로 자체가 지도였던 거군요"
"호도는 동굴의 그림을 지상에 크게 그린 거지. 설마 이것이 동굴의 길을 표현한 것이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을거야."
"그렇게까지 해서 숨기려고 한 동굴 안에는 도대체 무엇이 있는 걸까요?”
크로커다일폴리스의 미궁에는 왕과 크로커다일이 묻혀 있었다고 했다.
"그건 아직 알 수 없지. 호도는 그저 통로로 이용했을지도 모르고."
"그럼 이 길은 어디로 이어져 있는 건가요?"
"확실하진 않지만, 내 생각에는 아마 나사 저택 안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싶은데?"
마이코는 다시 한 번 지도를 훑어본 후 촛불을 들고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길의 굴곡은 점점 심해져 불규칙한 계단과 언덕이 이어졌고, 땅바닥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몇 번의 갈림길을 지나니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공간이 나타났다. 바위로 둘러싸인 복잡하고 넓은 공간이었다. 길은 바위 틈새를 통과하듯 세 갈래로 나뉘어져 있었다.
"오각형의 미로에 대응시키면 E의 지점에 해당되지."
마이코는 지도의 한 지점을 가리켰다. 미로의 E 지점은 세 갈래로 갈라져 있었다.
마이코는 주변의 바위를 둘러보며 돌아다녔다,
"르네상스 이후에 만들어진 동굴 안에는 물속에서 움직이는 인형이 놓여 있었다고 해. 물론 다양한 장식도 가득 차 있었을 것으로 생각되고. 또 종교적 수행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동굴에는 벽면에 많은 불상 등이 새겨져 있었어.”
"이 동굴 안에 그런 것이 있나요?"
"없군. 보이지 않아. 그냥 맨땅과 흙이 있을 뿐."
"이상한 말이지만, 이 동굴에서는 실용주의적인 냄새가 나네요."
마이코는 바위 틈새에 몸을 넣었다.
"오각형의 미로에는 본 길에 대해 여섯 개의 갈림길이 있어. 지금 막 여섯 번째를 지나고 있는 중이야. 내 생각대로라면 드디어 출구가 나오는 거지."
하지만 그 출구에 도달하기까지는 갈 길이 멀었다. 길은 쉴 새 없이 굽이굽이 이어졌고, 좁은 곳은 몸을 옆으로 눕혀야만 빠져나갈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다소 곧게 뻗은 길을 따라 올라가면 작은 공간이 나왔다. 그곳은 처음에 돌계단을 내려왔던 곳과 느낌이 많이 비슷했다. 넓이도 거의 비슷했고, 위로 올라가는 가파른 돌계단도 있었다. 토시오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지만 문을 열고 닫는 레버가 없어."
마이코가 혼잣말처럼 말했다. 마이코도 똑같은 생각을 한 것으로 보였다. 마이코의 말대로 돌계단 옆에 있던 막대가 이 방에는 없었다. 막대기뿐 아니라 물건을 움직일 수 있는 장치 같은 것도 보이지 않았다.
"일단 올라가 보자"
마이코가 먼저 서서 돌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돌계단 중간쯤에 뾰족뾰족한 흰 풀이 자라고 있었다.
돌계단을 다 올라간 곳에 두꺼운 판자로 된 문이 있었다. 녹슨 철제 틀이 끼워져 있고, 나무 껍질은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기름을 바른 흔적이 있네."
문의 경첩을 보고 있던 마이코가 말했다.
마이코는 문에 살며시 체중을 실었다. 문이 작은 소리를 냈다. 마이코는 촛불을 껐다. 문틈 사이로 가느다란 빛이 보였다.
"전등을 아래로 향하게 해."
마이코가 작게 말했다. 토시오는 시키는 대로 전등을 아래로 향하게 하고 문 반대편 상황을 살폈다.
마이코는 몇 숨을 쉬고 나서 문을 반대편으로 밀었다. 문은 무거운 소리를 내며 크게 움직였다. 문 반대편에서 곰팡이 냄새가 나는 공기가 흘러들어왔다.
희미하고 먼지가 자욱한 방이었다. 사방이 거친 벽으로 둘러싸여 있고, 빛은 천장 가까이 열린 작은 사각형 창문을 통해 들어왔다.
토시오는 어렸을 때 친구 집에 있던 낡은 창고를 떠올렸다. 바로 그 창고 안과 똑같았다. 낡은 인형, 제등, 검은 상자 더미, 큰 화로 등이 무질서하게 쌓여 있었다.
토시오는 무심코 방금 들어온 문을 닫았다. 묵직한 소리가 나더니 문이 스르륵 사라졌다. 문은 방에 면한 쪽이 사방의 벽과 같은 색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토시오는 당황하여 문을 찾으려고 벽을 쓰다듬고 돌렸다. 아무것도 닿지 않았다. 손바닥이 순식간에 검게 변했다.
"문이 없어졌어요."
토시오는 마이코에게 말했다. 마이코는 벽의 위아래를 살폈다,
"이렇게 하는 거야."
마이코는 문이 사라진 곳의 기둥을 세게 잡아당겼다. 기둥과 벽이 동시에 움직이기 시작했다. 문 뒤에 기둥과 벽이 붙어 있었던 것이다.
마이코는 문을 다시 닫으면서 오른쪽 벽에 주목했다. 이 벽이 미닫이문 역할을 하는 것 같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동굴의 출입구는 모두 동굴로 들어가려는 사람의 눈을 속이도록 고안된 것이었다.
마이코가 벽에 손을 얹고 힘을 주자 벽이 옆으로 움직이면서 좁은 틈이 나타났다. 마이코는 틈새에 눈을 대고 반대쪽을 들여다보았다.
"내 생각대로군. 데츠바의 방이야."
마이코는 벽을 크게 당겼다. 벽의 구멍 맞은편에 갈색 종이가 걸려 있었다.
"아무도 없나요?"
토시오는 마이코의 대담함에 놀라며 말했다.
"여기 있는 종이는 족자야. 이곳은 데츠바의 다실 다다미방 안쪽이고. 이 족자는 산수화지. 그날 나는 이 방에서 산수화를 보며 데츠바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어 ......"
마이코는 족자를 치우고 방 안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마이코의 몸이 굳어지는 것이 뒷모습으로도 확연하게 느껴졌다.
"어?"
마이코는 신발을 걷어차고 구멍을 빠져나갔다. 토시오도 서둘러 신발을 벗었다.
여섯 장의 다다미방. 검은색으로 칠해진 책상 위에 데츠바가 엎드려 있었다. 데츠바는 시커먼 피를 토해내고, 열린 눈은 완전히 생기를 잃은 듯 했다.

亂れからくり 복잡한 기계장치 : 1 달그락달그락 새 亂れからくり 복잡한 기계장치 : 11. 베이지 않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