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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08

고양이 혀에 못을 박아라 (猫の舌に釘をうて) - 츠즈키 미치오 : 별점 2점

猫の舌に釘をうて (德間文庫) - 4점
쓰즈키 미치오/德間書店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소개될 일은 없겠지만 참고하세요.

3류 추리 작가 아와지는 사랑하던 유키코와 결혼한 쓰카모토에게 살의를 품었다. 정말로 살인을 저지를 수는 없었기 때문에, 단골 카페 손님 고토의 커피잔에 유키코에게 받은 감기약을 몰래 타는 정도로 살의를 달래려 했다. 그런데 커피를 마신 고토는 정말로 죽고 말았다.
아와지는 자신이 범인인데다가, 유키코의 감기약에 독이 들어있었기에 누가 독을 넣어 유키코를 죽이려했는지를 밝히기 위해 스스로 탐정 역할을 자처한다. 이를 진범이 알게되면 아와지를 살해할 수 있어서 피해자가 될 수도 있는 위험을 무릅쓰고 나선 행동이었다.
아와지는 경찰과도 협력하며 수수께끼의 남자 고토의 뒤를 캐면서 사건을 수사해나갔으나, 유키코마저 자택에서 열린 파티에서 살해당하고 말았다.

이런 리스트, 이런 리스트 등에 작품이 선정될 정도로 꽤 유명하지만, 아쉽게도 우리나라에는 공식적으로 소개된 적이 없는 츠즈키 미치오의 장편 소설. 이 리스트에서는 무려 59위에 선정될 정도로 대표작 중 하나입니다. "샤라쿠 살인사건"보다도 순위가 높네요. 원서를 구해 읽어보았습니다. 번역에 ChatGPT의 도움을 크게 받기는 했는데, 아무래도 원서인 탓에 오래 걸렸습니다. 이번 주 한 주는 이 책만 읽었네요.

유명한 작가의 유명한 작품답게 재미있는 구석이 제법 있습니다. 우선 아와지가 연습삼아 죽이려 했던 고토가 실제로 죽어버리고, 끝까지 지키려 했던 유키코가 살해당한다는 이야기 자체가 무척 흥미롭습니다. 아와지가 쓰는 수기와 그의 실제 행동을 번갈아 보여주는 독특한 전개 방식도 독자들에게 큰 몰입감을 주고요. 아와지가 '범인이자 탐정이며 동시에 피해자가 될 수도 있는 상황'에 처해 있다는 설정도 좋아요. 이야기의 긴장감을 배가시키거든요. 
그리고 도입부의 설정이 결말에서 동일하지만 다른 상황이었다는게 드러나는, 일종의 수미쌍관식 구성으로 마무리되는 것도 좋았습니다. 진상은, 아와지가 유키코를 살해했지만 고토의 죽음과는 연루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고토를 죽인 진범은 협박을 당하던 고토의 동생 쓰카모토였고, 아와지는 진범을 밝혀내는 탐정 역할이자, 이 진실을 덮으려는 쓰카모토 일당에게 살해될 수 있는 피해자의 위치에 놓이게 되지요. 이렇게 이야기는 치밀하게 얽힙니다. "신데렐라의 함정"도 떠올랐는데, 유명세는 "신데렐라의 함정" 쪽이 더 크지만, 설정을 더 정교하게 다듬은건 이 작품이라 생각되네요.

추리적으로도 깔끔합니다. 대부분의 단서가 독자들에게 공정하게 제공되고요. 특히 유키코 사건의 진상 규명은 돋보이는데, 유키코를 끔찍이 아끼던 아와지가 그녀가 외설적인 게임에 참여하는 것을 그냥 두고 볼 리 없었다는건 확실히 설득력 있었습니다. 고토와 쓰카모토가 형제라는 설정, 오노기와 고바야카와가 형제라는 사실 역시 이야기 속에서 충분히 독자에게 설명됩니다.

더불어 아와지의 입을 빌려 츠즈키 미치오와 그의 작품 "고양이 혀에 못을 박아라"를 작품 속에 삽입한 재치도 눈에 띕니다. 아와지가 욕을 하면서도 가지고 있던 츠즈키 미치오의 책이 그의 범행 기록을 담은 일지를 숨기기 위한 껍데기에 불과했다는 반전 역시 재미를 더해주는 요소였어요.

이 책이 발표된 1961년 당시의 도쿄를 생생하게 묘사한 점도 눈에 띕니다. 전쟁 이후 사회적 혼란, 아직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도시 문화, 히로뽕 중독에 대한 설명, 그 와중에 현재를 떠올리게 하는 지명과 거리 분위기 등 당시 분위기가 손에 잡힐 듯 묘사되어 있거든요. 이는 작품의 몰입도를 한층 높여 줍니다. 

하지만 추리 소설로 아주 높은 평가를 하기는 무리입니다. 가장 큰 이유는 아와지 본인이 언급했듯, 범행 동기가 제대로 표현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와지가 유키코를 살해한 이유는그녀가 고바야카와와 관계를 가졌기 때문이라는데, 이는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유키코가 여러 남자와 만났다는 묘사가 이미 존재하는 탓입니다. 고바야카와와의 관계만을 살인 동기로 삼는 것은 비합리적이에요. 그녀의 죽음에 대해 수기에서 제대로 표시하지 않은건 반칙이고요.
또한 아와지가 고토를 살인 리허설 대상으로 삼으려 했던 순간에, 그가 진짜로 살해당했다는건 지나칠 정도로 우연이 겹친 상황이라 좋게 보기는 어렵습니다.

수기와 실제 사건을 뒤섞은 전개도 문제입니다. 아와지 1인칭 시점으로만 이야기를 진행하면서 그가 유키코를 살해한 진범이라는걸 독자에게 속이기 위한 목적은 달성하고 있지만, 완성도가 높다고 보기는 어려워요. 너무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탓입니다. 아와지가 범인일 수 밖에 없다는 상황은 독자에게 공정하게 제공되었다고 보기도 어렵고요.
오노기가 갑자기 탐정으로 등장해 진상을 밝히는 부분, 여기서부터 이어지는 짤막한 분량의 결말도 급작스럽고 뜬금없었습니다. 그나마 아와지 집도 몇 번 찾아오곤 했던 무라코시 경부보가 사건을 해결하는게 차라리 나았을거에요.

마지막에 아와지가 정말로 피해자가 되어 살해될지도 모른다는 결말도 이상합니다. 고토와 유키코를 살해한게 아와지라는게 드러난 이상, 쓰카모토가 그를 죽일 이유는 없으니까요.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정통 추리 소설과 치정 범죄극을 섞은 결과물은 재미로만 본다면 꽤 괜찮습니다. 그러나 추리적인 부분과 설득력, 그리고 결말 부분에 문제가 있어 감점합니다. 우리나라에는 소개될 일은 없겠지만, 설령 소개된다고 해도 특별히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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