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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9/30

FBI 심리 분석관 (Whoever Fights Mosters)- 로버트 K 레슬러, 톰 샤흐트만 / 황보석 : 별점 3점

FBI 심리분석관 - 6점
로버트 K. 레슬러 & 톰 샤흐트만 지음, 황보석 옮김/미래사
실제로 FBI에서 범죄 심리학 전문의 심리 분석관으로 20여년을 일한 로버트 K 레슬러의 기록물. 20여년간 여러 연쇄 살인범들의 수사에 참가하고 프로파일링 및 그들의 심리분석을 토대로 사건 해결에 기여하는 과정에 대한 정확한 설명은 물론,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연쇄 살인범인 테드 번디나 보스턴 교살자 드 살보, 세크라멘토 흡혈귀 트렌튼 체이스, 맨슨 일당 등 저명한 살인범들과의 인터뷰 내용이라던가 실제 연쇄 살인 기록, 사건개요, 당시 작성된 프로파일링 내용과 범인에 대한 비교 및 묘사, 상세한 수사 활동 및 반성과 앞으로의 과제까지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유사하게 연쇄 살인범의 심리와 사회상을 분석한 표창원 교수의 "한국의 연쇄살인"이라는 책과 비교해 본다면 아무래도 "재미"라는 측면에서는 저같은 한국 독자에게는 "한국의 연쇄살인"이 더 낫긴 하겠지만 범죄에 대한 과학적이고 상세한 접근은 이 책이 보다 뛰어난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실제 사건을 직접 수사했던 전문 분석관이 직접 저술했기 때문이고 범인과의 인터뷰까지 상세하게 분석해 놓았기 때문이죠.
저자가 "양들의 침묵"과 "천재 정신과 의사의 살인광고" 라는 두권의 책에 직,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 전문가라는 내용도 들어 있는데 책에 기록된 여러 사건들만 보아도 충분히 인정받을 만 하다고 생각되네요. 실제로 엽기적인 연쇄살인범을 인터뷰하는 과정의 묘사나 신문광고를 통한 희생자 낚기 등은 충분히 저자의 실제 수사 경험에서 우러나온 아이디어로 보이거든요.

다만 FBI 조직 발전사 같은 부수적인 설명과 저자 개인의 사건에 대한 평가가 지나칠 정도로 많아서 약간 지루한 부분이 있고 책의 목차도 시기별이나 수사상의 발전에 따른 구분이 아닌 약간 모호한 상태로 구분되어 있어서 조금 혼란스럽더군요. 조금 더 재미있고 풍성하게 구성할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약간 아쉽습니다. 

어쨌건 저는 꽤 관심가는 분야의 내용인지라 흥미진진하게 읽었습니다. 지루한 부분도 없잖아 있지만 범죄 심리학이라는 분야에 관심이 있다면 꼭 한번 읽어볼 책인 것 같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2005/09/28

미러클 두산! 2위 확정!


거짓말 같은 연승, 최근 10경기에서 9승 1패라는 놀라운 성적으로 두산이 결국 야구사에 길이 남을 기적을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연출해 버렸습니다! 만세!!

SK를 총력전끝에 잡아준 LG덕이 크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은 두산베어스 감독과 코칭 스탭, 선수와 팬 모두가 이루어 낸 값진 기적이라 생각되네요. 특히 막판에 빛나는 용병술과 작전을 보여준 김경문 감독의 작전에 박수를 보냅니다. 어제의 리오스-랜들 원투펀치 카드에 이어 오늘 처음 본 김경문 감독의 스퀴즈!

이제 푹 쉬면서 플레이오프를 준비하면 되겠습니다. 그나저나 SK 큰일났네요....

2005/09/27

하얀 암사자 - 헤닝 만켈 / 권혁준 : 별점 2점

하얀 암사자 - 4점
헤닝 만켈 지음, 권혁준 옮김/좋은책만들기

어느 날 정말 행복하기만 한 것 같은 부동산 중개업자인 루이제가 실종된다. 실종신고를 접하고 수사에 착수한 형사 발란더는 그녀가 미간 정중앙에 총을 맞아 살해된 것을 알게 된다. 더불어 그녀가 발견된 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저택이 폭파되며, 현장 잔해 속에서 흑인의 손가락과 함께 고성능 무전기와 남아프리카에서만 제작되는 피스톨 잔해가 발견되어 발란더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온 킬러의 존재를 서서히 파악해 나가게 되는데...

유명한 발란더 형사 시리즈의 첫 작품. 드디어 읽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스웨덴 작가의 작품은 많이 접해보지 못했는데 확실히 이색적이긴 하더군요.
그러나 기본이 되는 기둥 줄거리는 미국식 스릴러물과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또 발란더 형사가 수사하는 여인의 실종-살해 사건과 남아프리카의 만델라 암살 음모가 겹쳐져서 진행된다는 전개는 특이하지만 별로 사건이 스웨덴하고 어울려 보이지 않는다는 것도 문제라 생각됩니다. 미국 스릴러에 비해 친숙함이 떨어지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건 별로 설득력있게 느껴지지 않았어요.
그리고 스웨덴 경찰들이 잔 실수가 굉장히 많은 것도 유감스럽더군요. 전개 과정에서 흑인 킬러로 선발된 빅토르나 타냐같은 중요 인물들이 급격한 심경 변화를 일으키는 것도 설득력이 떨어지는 안일한 전개였다고 생각되고요. 이러한 부분부분에서 너무 쉽게 이야기를 풀어나가려는 의도가 많이 보여 아쉽습니다.

그래도 주인공 발란더의 설정이나 캐릭터는 마음에 든 편입니다. 별다른 능력 없는 약간은 한심스러워(?) 보이기까지 하는 중년 남자로서 추리력이라는 것은 거의 없지만 행동력으로 이를 보충한다는 점에서는 현실감이 느껴졌고요. 묵직한 중년의 맛을 잘 풍겨준달까요? 그리고 스웨덴의 일개 형사로서의 활동 범위가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보여지는 것도 큰 장점이기는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발란더가 직접 암살 음모를 파헤치고 막기 위해 뛰어다니지 않는 것 하나만으로도 만족스러웠어요.

결론내리자면 절반의 성공이랄까... 글 자체는 상당히 유려하게 잘 썼다는 느낌이나 정통 추리물을 기대했는데 조금 실망스럽긴 합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인종 차별 정책을 부각시킨 독특함 이외에는 스웨덴이라는 이국적 문화가 도드라지는 점도 없었고요. 이미 "미소지은 남자"라는 다른 작품을 구입해 놓긴 했으니 마저 읽고 시리즈를 완독할지 말지를 결정해야 될 것 같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에드가상 수상 작품집 2 - 정태원 편역 : 별점 3점

에드가상 수상작품집 2 - 6점
정태원 엮음/명지사

아주 예전에 사긴 했지만 분실한 듯 해서 외근차 광화문에 나갔다가 우연찮게 들린 교보문고에서 발견, 구입한 책입니다. 예전에는 만원 이하였던 것 같은데 이번에 다시 사니 만 오천원이나 되더군요. 아까와라....  다시 읽다보니 기억나는 작품이 너무 많아 더 돈이 아깝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책 자체만 놓고보면 역시나 충실합니다. 특징이라면 트릭보다 드라마와 극적 구조에 더 비중과 가치를 두는 경향이 서서히 보이는, 고전 황금시대와 현대를 잇는 가교역활을 하는 작품들이 많다는 것인데 저같은 고전 퍼즐 미스테리의 팬에게는 약간 아쉬운 부분이기는 했습니다.

그래도 결론내리자면 추천작. 이만한 수준의 단편을 한권에 모아놓은 앤솔러지는 쉽게 만날 수 있는 것이 아니죠. 별점은 3점입니다.
개인적인 베스트로는 간단하지만 이채로운 에드워드 D 호크의 "직사각형의 방"과 단편의 교과서적인 작품인 셜리 잭슨의 "악의 가능성", 그리고 역사추리물에 가까운 유머러스한 단편인 워너 로우의 "세계를 속인 남자" 를 꼽겠습니다.

간략한 목차와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윌리암 오파렐의 "그쪽은 어둠"
오해로 비롯된 비극을 다룬 소품. 그닥 특이한 점은 없지만 서늘한 느낌이 드는 도회적인 분위기가 좋은 작품입니다. 별점은 2.5점.

로얄드 달의 "여주인"
아토다 다카시의 "나폴레옹 광"이 연상되는, 로얄드 달 특유의 기묘한 맛이 잘 살아있는 작품. 이런저런 앤솔러지에 많이 수록되어 있는 걸작. 별점은 4점입니다.

존 더람의 "호랑이"
일종의 청소년 범죄극이라 할 수 있는데 60년대 당시 미국 문화를 잘 대변하고 있다고는 생각되지만 그 외에는 별로더군요. 추리물로 보기도 좀 어렵고요. 에드가상을 어떻게 수상했는지 알 수가 없네요. 별점은 1.5점입니다.

에이브람 데이비슨의 "라호아 병영 사건"
과거 라호아 병영에서 있었던 사건을 추억하는 한 노인의 회고담. 좋은 소재에 내용도 흥미진진하나 반전이 예상 가능한 것이라 막판에 힘이 좀 달린다는 단점이 있긴 합니다. 그래도 단편으로서의 미덕은 잘 살아있는 좋은 작품입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데이빗 엘리의 "요트 클럽"
스텐리 엘린 분위기도 좀 나는 서늘한 반전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다른 앤솔러지에도 수록되어 있던 기억이 나네요. 하지만 서늘한 반전을 위한 앞부분의 묘사가 좀 지루한 편입니다. 보다 짧게 줄일 수 있었을 것 같은데 말이죠. 별점은 2.5점입니다.

패트릭 퀜틴의 "운없는 남자"
그야말로 "미국적"인 느낌이 가득한, 아내를 죽이고 새 출발을 꿈꾸지만 계속해서 실패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반전이 제법 괜찮습니다만 전형적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그래도 유머러스한 맛과 전개에서 확실히 고전시대와 다른 분위기를 전해줍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로렌스 트리트의 "살인의 H"
정통 경찰 수사 - 형사물로 사건과 전개는 흥미진진한데 사건이 밝혀지는 것이 순전히 우연에만 의지하고 있다는 치명적 약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캐릭터는 마음에 들었는데 트릭면에서 아쉬움을 주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셜리 잭슨의 "악의 가능성"
좋은 작품입니다. 여성 작가 특유의 섬세한 묘사에 인간의 잔인한 내면을 투영한 캐릭터가 압권으로 이 작품집 최고의 작품 중 하나라 생각되네요. 시골마을이 배경인 잔잔한 소품으로 짧지만 인상적인, 단편의 특성을 잘 살린 작품입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리스 데이브스의 "선택된 것"
일종의 범죄물인데 도저히 무슨 이야기인지... 한 남자의 심리를 디테일하게 따라가는 과정같은 것은 루스 렌들의 "내눈에 비친 악마"와 비슷한데 내용이 혼란스럽고 어지러운 편입니다. 시점변화가 많은 독특한 스타일때문이긴 합니다만 제 취향은 아니더군요. 별점은 2점입니다.

에드워드 D 호크의 "직사각형의 방"
불가능 미스테리의 대가 에드워드 D 호크의 불가능 미스테리가 아닌 심리물로 레오폴드 경감 시리즈입니다. 좀 썰렁하긴 하지만 인상적인 반전이 돋보이는 수작이죠. 단편의 대가다운 호흡 조절을 엿볼 수 있는, 짧지만 인상적인 작품으로 별점은 4점입니다.

워너 로우의 "세계를 속인 남자"
가상 역사물이라고 해야 할까요? 고갱과 서머셋 모옴 등 실제 인물들이 등장하여 좌충우돌하는 유머스러움이 잘 살아 있는 유쾌한 작품으로 마지막 반전까지 숨쉴틈 없는 재미를 가져다 주는 작품이었습니다. 이 작품을 읽으니 고갱 작품이 다시 보고 싶어지더군요. 별점은 4점입니다.

조 고어즈의 "잘 있거라 고향아"
드라마로 특이한 맛은 없습니다. 범죄물이긴 한데 에드가상을 탈 만한 이유를 저는 전혀 모르겠습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M.F 브라운의 "리가 숲의 짐승은 더 난폭하다"
"몽환적"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정신사나운 이야기로 심리 묘사와 두서없는 내용이 정신이 하나도 없는 어수선한 작품. 60년대 히피문화의 하나인 "마약"에 의한 의식 흐름을 다룬 작품들과 유사한 스타일로 핵심 뼈대 자체는 날이 잘 서 있긴 합니다만 제 취향은 아니었어요. 별점은 1.5점입니다.

라간 (Lagaan: Once Upon A Time In India)- 2001, 아슈토쉬 고와리커 : 별점 2.5점

"저 흰둥이들을 박살내 버리라구!" - 영주

영국이 인도를 지배하던 1800년대 인도의 어느 조그마한 마을. 가뭄이 길어져 라간 (세금)을 두 배로 올리겠다는 영주에게 마을 촌장과 주민 대표들이 찾아가 선처를 부탁한다. 하지만 거만한 영국장교 러셀대위가 그들에게 크리켓 게임을 해서 그들이 이길 경우 3년간 라간 (세금)을 면제해 주겠다는 내기를 제안한다. 마을 청년 부반이 이 승부에 응하고 지루한 설득과 노력으로 마을 사람들의 힘을 모아 크리켓을 연습하기 시작하며 부반에게 호감을 가진 영국 장교의 여동생 엘리자베스가 이들을 돕는다. 시합까지는 3개월. 과연 승부는 어떻게 될까?


TV에서 보게된 인도 발리우드 영화입니다. 처음에 별 생각없이 봤는데 의외로 진지한 스포츠물이라 몰입해서 흥미진진하게 보았습니다. 예전에 정말 낯설게 보았던 "춤추는 무뚜"보다는 우리에게 친숙한 영화적 문법이 더욱 많이 도입된 편이라 크게 어려움없이 볼 수 있었다 생각되네요.

억압받는 식민지 주민들이 스포츠를 통해 승리와 환희를 느낀다는 이야기는 그동안 많이 있어왔습니다. 이 작품을 보면서는 특히나 우리나라 영화 "YMCA야구단"이 많이 연상되더군요. 하나씩 팀원을 모아가는 과정, 경기 규칙을 가르치는 미녀라는 설정이나 천민과 상위 계급이 대립하지만 평등하다는 사실을 일깨우는 장면 같은 것은 정말 똑같다고 보이거든요. 시기상 "YMCA..."쪽이 많이 참고하지 않았나 생각도 되지만 "YMCA..."도 어느정도 실화에 근거한 만큼 유사한 설정에서 오는 공감대가 비슷한게 많았다라고 보는게 맞을 것 같습니다. 어느나라나 생각하는 건 다 비슷한가봐요^^

발리우드 영화답게 중간중간 음악과 춤을 곁들인 뮤지컬 장면이 계속 이어지는 것도 흥겨움을 더해주고요. 개인적으로는 부반과 카오리, 엘리자베스 3명이 동시에 등장하는 사랑의 세레나데 장면의 편집과 촬영은 베스트로 꼽고 싶군요.

아쉽게도 제가 크리켓을 잘 알지 못해 가장 중요한 클라이막스인 크리켓 시합 장면에서의 몰입이 초반에 약간 힘들었지만 보면서 어느정도 룰도 깨우쳐 가니 더욱 재미있게 즐길 수 있었습니다. 특히 영국인들은 크리켓을 "즐기지만" 주민들은 그야말로 사력을 다하는 모습을 대비시켜 보여줌으로써 이야기의 완성도와 가치를 더욱 높였다고 생각합니다.

주인공 부반역의 아미르 칸은 현재 인도 최고의 스타라는데 그에 걸맞는 마스크와 완벽한 눈빛 연기를 보여주며 영화에 힘을 더 실어줍니다. 다른 조연들의 개성넘치는 연기도 물론 좋고요.

엘리자베스와 부반의 사랑 이야기는 지나친 사족이라 생각되고 거의 4시간에 가까운 상영시간은 지나치게 길어 중간중간 조금 지루하기도 했었지만 특이하고 이색적인, 이국적인 문화에 더불어 정통 스포츠물로의 가치까지 있어 흥미진진하게 볼 수 있었던 독특한 작품이었습니다.별점은 2.5점입니다.

2005/09/26

베트남 10000일의 전쟁 - 마이클 매클리어 / 유경찬

베트남 10,000일의 전쟁 마이클 매클리어 지음, 유경찬 옮김/을유문화사


"우리가 미국에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도덕적인 지원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 호치민

베트남 전쟁에 대한 역사서입니다. 1945년 프랑스 식민지 지배와 호치민의 첫 등장에서 시작하는 글은 1975년 남베트남의 사이공 함락으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 제목 그대로 30년, 약 10000일에 걸친 이 기간동안의 베트남에 있었던 여러 전투와 베트남의 실상에 대한 자세한 묘사와 더불어 미국 사회의 다양한 반응까지 알기쉽게 실제 주요인물들의 인터뷰까지 실어가며 상세히 묘사하고 있는데 저자가 기자 출신이라 상당히 원칙에 충실하고 사실을 전달하는 능력이 뛰어나 방대한 기록을 잘 정리해 놓았다는 느낌이 드네요.

책을 읽으면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지만 프랑스와 미국의 개입이야말로 전혀 불필요했고 무의미한 돈과 희생만을 불러온 전쟁이라는 것을 다시금 알게 해 줍니다. 자칭 "세계의 경찰"을 자임하는 안하무인적인 사고방식이 얼마나 큰 댓가를 요구했는지가 철저하게 객관적인 시각에서 묘사되거든요. 미국 수뇌부의 오만과 무지를 까발림과 동시에 반전운동에 대한, 그리고 당시 사회 분위기에 대해 정말 기사를 보는 듯이 상세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반전운동의 대부였던 유진 매카시 상원의원과 반전 운동에 대한 묘사가 상당히 이색적이고 재미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베트콩"이라 불리웠던 영웅들에 대한 사실감 넘치는 묘사야 말로 압권입니다. 반공교육때문에 잘못된 정보를 전달받아왔던 우리와 우리 바로 앞 세대 한국인들에게 반드시 알려야만 하는 정보들이라 생각됩니다. 호치민은 물론이요 보 구엔 지압이나 둥 장군같은 전쟁영웅들의 청렴하고도 용맹한, 애국적인 삶은 재조명 받아야 마땅하다 보이네요. 그에 반해 남베트남의 티우 대통령이 영국 대 저택에서 가명으로 살고 있다는 것에 씁쓸함을 지우기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도 상당 수준의 병력을 파병한 파병국으로 우리 나라에 대한 설명도 좀 들어갔으면 했는데 그런 내용이 없어서 아쉽습니다. 박정희 정권의 용병 장사가 좀 자세히 조명되었으면 좋았을 것을...

어쨌건 미국에 보수주의자들이 정권을 잡을때마다 세계가 위기에 처하는 것 같아 무섭네요. 이번에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어느정도 성공을 거두긴 했지만 다행히 하늘이 노한 것 같아 태풍을 내리니 정신차리기만 바랄 뿐입니다.

2005/09/22

부드러운 볼 - 키리노 나츠오 / 권남희 : 별점 3점

부드러운 볼 - 6점 기리노 나쓰오 지음, 권남희 옮김/황금가지

홋카이도 작은 바닷가 마을의 소녀 카스미는 자신만의 새로운 세계를 찾기위해 가출 후 도쿄로 나오고 직장 사장과 결혼해 두 아이의 엄마가 된다. 그러나 여전히 새로운 세계를 추구하는 그녀 앞에 남편 회사의 주요 거래처 인사 이시야마가 나타나고 두 사람은 곧 불륜 관계에 빠진다.
카스미와 이시야마는 두 사람의 밀회를 위해 대담하게도 두 가족이 함께 떠나는 여행을 계획하는데, 장소는 홋카이도 시코츠 호반의 어느 별장. 가족의 눈을 피해 밀회를 즐기던 두 사람은 순간적으로 둘의 관계를 위해서라면 아이를 버려도 좋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다음날 카스미를 꼭 닮은 다섯 살짜리 큰딸 유카가 거짓말처럼 실종된다.

생사도 알 수 없는 아이를 찾으려는 노력으로 4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두 가족은 물론 별장을 통해 관계를 맺게 된 사람들이 크고 작은 사건에 휩쓸리게 된다. 마침내 남편과 남은 딸에게서마저 "탈출"한 카스미는 우연히 아이 찾기에 도움을 주겠다고 연락한 시한부 인생의 암 말기 전직 형사 우츠미와 함께 고향에서 본격적으로 유카를 찾기 시작한다.

별장 관련 인물들을 통해 사건 당시 상황으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유카의 종적을 다각도로 추적하는 동안 서로에게 누구보다 필요한 존재가 되는 두 사람은 우츠미의 죽음에 임박해서야 서로를 통해 모든 사건과 의문의 실마리를 찾고 삶의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

예전에 재미있게 읽었던 "얼굴에 흩날리는 비" 라는 작품을 썼던 일본 여류 추리작가 기리노 나츠오의 작품입니다. 20세기 마지막 나오키상 수상작이라는 카피가 먼저 눈에 들어오네요. 동호인들 사이에서 평가가 좋길래 내심 기대하고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유카의 유괴사건은 이야기를 끌어가는 주된 소재이며, 여기에 더해 주인공 카스미의 불륜이라는 상황과 여러 색다른 등장인물들을 등장시켜 사건을 흥미진진하게 만들기는 하지만 이에 따르는 가정과 개인의 붕괴, 그리고 새로운 삶의 의미를 찾는 일종의 성장기에 가깝기 때문에 추리소설보다는 순문학 드라마로 보입니다. 특히나 우츠미에게 점차 죽음이 다가오는 종반부로 갈수록 그런 느낌이 강하게 드네요.
이외에도 사건 자체를 풀어나가기 위한 동기나 단서도 이야기 중에 거의 던져주지 않고, 다양한 성격으로 설정되어 있으며 입체적으로 흥미롭게 묘사되는 주변 인물들 역시 탐정역의 우츠미가 묻는 단순한 질문에 이미 과거에 경찰에게 말했던 사실 그대로의 답변만 해 줄 뿐이라 추리의 여지가 거의 없다는 점, 우츠미도 적극적인 사건해결을 위한 질문보다는 사건에 대한 "감상"을 주로 물어보기 때문에 전개 과정에서 증언을 조합하여 어떤 새로운 결론이 나오는 것은 애시당초 불가능하다는 점도 이 작품이 추리소설이 아님을 입증합니다. 단순히 주인공들의 상상과 작가에 의한 일방적 사실 묘사에 의해 사건이 덜컥 종결될 뿐 범인이 누구인지는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는 결말까지도 그러하고요.

좋은 작품임에는 분명하고 재미도 있습니다. 나오키 상을 수상할 만 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글의 묘사가 뛰어나기도 하고 여류 작가다운 꼼꼼함이 작품 전체에 묻어나오는 것도 좋았고요. 그러나 추리적인 뭔가를 기대한 저로서는 약간 실망스럽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본다면 묘한 여운을 주는 나름 매력적인 소설임에는 분명하기에 별점은 3점입니다. 추리매니아보다는 감성적인 순문학 취향의 분들께 추천드립니다.

PS : 원제가 더 의미심장하고 좋은데 왜 저렇게 단순하고 직설적인 번역 제목으로 출간되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네요. 다행히 번역 자체는 괜찮은 편이지만... 

* 2013년 3월 6일 수정하였습니다. 제목이 이제 바뀌었네요.

2005/09/21

나는 폭력의 세기를 고발한다-박노자의 한국적 근대 만들기 - 박노자 : 별점 3점

나는 폭력의 세기를 고발한다 - 6점
박노자 지음/인물과사상사
박노자씨의 책은 처음 읽어보았습니다. 같은 회사 김팀장이 추천해 줘서 읽게 되었는데 생각보다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일단 한국인인 저보다도 더욱 자세하고 상세하게 알고 있는 한국 근대사와 인물들의 대한 이야기는 그 자체만으로도 흥미로운 소재였습니다. 거기에 엄청나게 객관적이고 한국에서는 공론화 하기 힘든 자신의 견해를 많이 덧붙이고 있는 것도 마음에 들었고요. 

요약하기에는 내용이 좀 포괄적이지만 한국의 근대는 이른바 "숭미"와 "친일"로 얼룩져 있고 발전을 위한 여러 정책도 "독재"를 위한 포장재였을 뿐이다라는 것이 이야기의 요체인데 (물론 더욱 많은 내용과 사료가 담겨 있습니다만) 아마 우리나라 교수들이 공론화 한다면 바로 색깔논쟁이 시작되고 학계에서 매장당할 이야기라 생각되네요. 하지만 저에게는 공감할만한 부분이 더 많았습니다.

용기있는 한국 학자에 의해 먼저 쓰여졌더라면 더욱 좋았겠지만 내용도 타당하고 이해하기도 쉬운 좋은 책이었습니다. 보다 많이 팔렸으면 좋겠네요. 별점은 3점입니다. 다른 책도 한번 읽어봐야겠군요.

2005/09/18

조선 과학수사대 별순검

조선시대 형사 수사의 바이블이라 할 수 있는 "증수무원론"을 토대로 우리나라 고유의 과학 수사를 보여주는 드라마입니다. 추석 특집 기획으로 편성된 일종의 특별편을 추석날 오후 시청해 보았습니다. "혈의 누"에서도 표현되었었던 조선시대의 과학 수사를 아예 기본 설정으로 깔고 간다는 것에서부터 호기심을 자극하더군요.

내용은 생각보다도 흥미진진하니 재미있는 편입니다. 궁중의 별감들에 얽힌 살인사건을 다루는 이야기와 경상도 산청에서 벌어진 한 며느리의 죽음, 2가지 사건을 다루고 있는데 별감들의 이야기는 완결되지 않고 다음편에 계속이더군요. 완결된 며느리의 죽음에 얽힌 사건 하나만 놓고 본다면 증인 한명만 찾으면 해결되는 내용이라 추리적으로 그다지 내세울 것은 없었지만 정통 과학수사의 디테일이 잘 살아있고 그에 따른 추론의 과정이 납득할 만 하더군요. 마을 주민의 진상과는 다른 증언을 결말부분에서 해석해 주는 것도 인상적이었고요.

하지만 지나치게 C.S.I를 의식한 과도한 CG가 섞인 연출, 거기에 개연성 없는 액션장면은 불만이었습니다. 소재와 설정이 독특해도 아류작을 벗어나기 위한 뭔가를 좀 더 보여줬어야 하는데 지금은 "다모" + "C.S.I"라는 생각했던 그대로의 결과물밖에는 드러나지 않고 별볼일 없는 액션장면때문에 극의 밀도만 떨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퓨전 사극이라고는 해도 고증에 있어 왠만한 것은 지켜주었으면 하는 바램이 생깁니다. 비쥬얼도 중요하지만 너무 지나침은 좋지 않겠죠. 저는 도저히 설정상의 시대와 화면이 매치가 안되더라고요... 아울러 배우들의 연기에 있어서도 발전된 모습을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래도 초심만 잃지 않는다면 괜찮은 재미는 보장해 줄 수 있는 시리즈라 생각됩니다. 다음편이 기대되네요.

명탐정 코난 Movie 9 - 수평선 위의 음모 (水平線上の 陰謨)

15년 전, 북대서양. 안개 낀 깊은 밤을 항해 중이던 화물선이 빙산과 충돌하여 침몰하는데 부선장의 알 수 없는 음모때문에 선장과 다른 한 명의 선원이 책임을 뒤집어쓰고 희생된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대재벌 야시로 그룹의 하나인 야시로조선의 설계사 야시로 에이진은 자동차를 운전하던 중 심장발작을 일으켜 벼랑에서 떨어져 사망한다.

태평양을 항해하는 호화여객선 아프로디테호. 코난과 란, 코고로 일행은 란의 친구 소노코의 초대를 받아 호화여객선의 처녀 항해에 참가하여 즐거운 한때를 보내지만 모두가 함께한 숨바꼭질 놀이 중에 수수께끼의 인물이 소노코를 습격, 감금하는 사건이 일어나고 곧이어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피해자는 야시로객선 사장 야시로 다카에와 야시로 그룹의 회장 야시로 노부타로.

메구레 경부가 이끄는 수사팀 헬기가 아프로디테호에 도착해 곧장 수사가 시작되고 육지에서는 경시청에 의해 과거의 사고가 재수사에 들어간다. 바다와 육지에서 대대적인 수사가 전개되고 있는 상황에서 코난도 추리를 시작하며 아프로디테호의 환영 파티가 벌어지는 장소에서 모리 탐정의 추리쇼가 시작되는데...

명탐정 코난의 아홉번째 극장판입니다. 이제 매년 나오는 시리즈화 된 인기 작품이지만 최근 몇편은 사실 극장판에 어울리지 않는 퀄리티와 스토리로 실망감을 안겨다 주었었죠. 제 기억에도 8기 "은빛 날개의 마법사"와 7기 "미궁의 크로스로드"는 완성도 자체에 문제가 있는 작품들이었거든요. 추리 만화임에도 불구하고 액션장면만 강조되는 스토리 전개도 불만이었고요. 그러나 이 작품은 일종의 "원점회귀"적인 모습을 보여주듯 추리적인 사건 전개에 이야기의 대부분을 할당하고 있는것이 먼저 마음에 듭니다. 어느 정도 명예 회복을 했달까요?

물론 과거에 대한 복수라는 테마는 무척 진부하고 시시하며 트릭도 생각보다는 신선하지 않아 약간 실망스럽기는 합니다. 너무 아동용에 포커스를 맞춘 탓이 아닐까 생각되는데 특히 초반부에 등장하는 알리바이 트릭은 너무 문제가 많았다 생각되네요. 하지만 막판에 범인과 사건에 대한 극적 반전을 보여주어 앞부분의 실망감을 많이 덜어주기는 합니다. (뭐 그래도 트릭 자체에 대한 실효성 여부는 상당히 의심가긴 하지만요.)

무엇보다도 이 작품의 가장 탁월한(?) 점은 모리 코고로가 의외의 멋진 활약을 보여준다는 것이죠. 액션과 추리가 어우러진 잠자는 코고로의 대활약은 팬이라면 절대 놓칠 수 없는 즐거움이었습니다. 하츠토리가 등장하지 않는 것은 아쉽지만 이외의 거의 모든 인물이 등장하는 올스타 캐스팅이기도 하니 팬이라면 꼭 한번 봐야 하지 않을까요?

2005/09/17

폭스 이블 - 미네트 월터스 / 권성환 : 별점 3.5점

폭스 이블 - 8점
미네트 월터스 지음, 권성환 옮김/영림카디널

영국의 한적한, 하지만 부유한 사람들의 별장지로 알려진 시골마을 센스테드. 이곳의 유지인 로키어-폭스 가문의 장원에서 에일사 부인이 얇은 잠옷만 걸친채 시체로 발견된다. 경찰은 자연사로 판명하지만 마을 주민 사이에서는 에일사의 남편이자 장원의 주인 제임스 대령이 살해했다는 소문이 나돌고 제임스 대령의 집에 괴전화가 계속 걸려오기 시작한다. 제임스 대령은 손녀 낸시를 찾으나 낸시는 과거 어머니가 아버지를 모르고 낳은 딸로 대령이 가문의 명예를 생각해 몰래 입양시킨 과거 때문에 유산 상속을 거부한다. 그러나 협박이 계속되자 대령을 돕기로 결심하고 크리스마스에 장원을 방문하게 된다.

대령의 변호사 마크와 낸시는 힘을 합쳐 대령을 돕기 시작하고 에일사의 죽음에 관련된 배후의 진상을 조사하지만 수수께끼의 남자 폭스 이블이 행동을 개시하는데....

앞선 미네트 월터스의 장편 2편을 읽고 주저없이 구입해서 읽게 된 미네트 월터스 3번째 장편입니다. 데뷰작 "냉동 창고"가 존 크리지 상을, 두번째 작품 "여류 조각가"가 에드가 상을, 이 작품이 골드 대거상을 수상했으니 정말 상복 많은 작가라는 생각도 듭니다. 여담이지만 그동안 이 상들을 수상한 작품들은 기대를 배신한 적이 없는 만큼 최소한의 재미와 수준은 갖추고 있으리라 판단되는 만큼 선택해도 후회는 없으리라 판단되네요.

이 작품은 전작 중에서 "냉동 창고"와 같이 시골 장원을 주 무대로 그리고 있는 소설로 여러 타입의 동네 사람들과의 갈등관계를 그리고 있는 것이나 콩가루 집안의 내력을 묘사하는 것도 전작들과 비슷합니다. 이런 하드보일드 작품 스타일의 복잡한 갈등관계의 묘사가 작가의 특기이기도 하고요.

그러나 다른 작품들과의 차이도 큰데 대표적인 것은 남성 주인공을 중심으로 글을 풀어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제임스 대령의 변호사 마크와 수수께끼의 악한 폭스 이블을 축으로 극이 전개되거든요. 특히나 폭스 이블이라는 인물의 묘사가 상당히 재미있었습니다. 아울러 여성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낸시는 "강한 여성"을 표방하던 그간의 작품들과 비슷한 캐릭터라 조금 단조로운 느낌은 들었습니다만 특유의 치밀한 심리 묘사로 전작들과 다른 차별점을 가지면서 잘 그려냈다고 생각됩니다.
또 정체를 알 수 없지만 잔인하고 똑똑한 폭스 이블의 정체를 소설 전행에 맞춰 여러 단서를 하나씩 던져주면서 독자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전개도 괜찮았어요. 마지막의 깜짝쇼같이 진상이 밝혀지며 반전이 연속되는 부분은 너무 갑작스럽게 등장해서 좀 난데없기는 하나 나름 괜찮은 해결 방법이었다 여겨지고요.
그 외에도 여러 기사와 인터뷰, 편지 등이 상당히 중요하고 적절하게 사용되는데 이런 부분을 표현하는 책의 편집도 좋더군요. 기사들 중에서 <얼음 창고> 주인공 중 한명이었던 여기자 앤 카트렐이 잠깐 언급되는 것은 팬으로서 반가운 부분이었고요. 마지막으로 "우리편" 모두가 행복해지는 결말도 개인적으로 마음에 듭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제대로 된 번역으로 읽으니 재미가 더 컸습니다. 솔직히 앞선 두 작품보다 조금 지루하고 단조로운 면이 있고 사건의 "충격"적인 면에서도 전작들에 미치지 못하지만 앞선 두 작품은 형편없는 번역 때문에 미네트 월터스라는 작가의 진가를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웠거든요. 흥미와 재미가 반감되는 것은 물론이고요. 좋은 번역과 좋은 출판 기획이 얼마나 작품에 중요한 요소인지 다시금 깨닫게 해주는 책이었습니다. 가격도 적당한 편이고 재미도 있으니 읽지 않으신 모든 분들께 추천드립니다. 별점은 3.5점입니다.

2005/09/14

냉동 창고 (Ice House) - 미네트 월터스 : 별점 3.5점

냉동창고 -상 - 8점 미네트 월터스 지음/중앙출판사(중앙미디어)
냉동창고 -하 - 8점 미네트 월터스 지음/중앙출판사(중앙미디어)

부모님의 자동차 사고로 인한 죽음과 남편의 실종 탓에 "마녀"라고 불리우는 그렌지 장원의 여주인 포베. 그녀는 레즈비언이라는 오명까지 뒤집어 쓰면서도 그녀를 도와주는 절친한 친구 2명의 도움으로 역경을 헤쳐나간다. 그러던 와중에 그렌지 가문의 냉동 창고 안에서 거의 뼈만남은 시체가 발견되고 10년전 실종된 남편 데이비드 메이베리의 수사를 담당했던 월시 반장은 시체가 데이비드일 것이라는 확신하에 수사를 진행한다. 그러나 검시관의 소견서에 의해 그 가능성은 부정되며 외려 당시에 실종된 파산한 사업가 톰슨이 시체에 합치되는 인물로 떠오른다.
열혈 형사 맥로린은 월시 반장의 편견에도 불구하고 서서히 마녀라 불리우는 3명의 여인과 그들의 가족에게 호감을 느끼게 되면서 사건의 진상에 접근해 가는데...

얼마전에 읽은 "여류 조각가"에 이어 두번째로 읽게 된 미네트 월터스의 작품입니다. 몰랐는데 이 작품이 데뷰작이네요. 뭐 시리즈 작품은 아닌 만큼 순서가 바뀌었다고 해도 큰 차이는 없지만...

어쨌건 읽다보니 "여류 조각가"와는 많은 차이점이 느껴졌습니다. 가장 큰 차이점은 "여류 조각가"가 올리브라는 캐릭터의 강렬함으로 승부하는 느낌이 강하다면 이 작품은 보다 아기자기한 구성을 보여준다는 것을 들고 싶네요. 영국 시골 마을을 무대로 "생활"에 녹아 들어가 있는 범죄와 그 잔인성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애거서 여사님의 작품을 연상케 하는 구석도 많이 있고요.
하지만 고전 영국 추리물의 판박이가 아닌 스스로 지닌 장점도 확실한데 대표적인 것은 현대 여류 작가다운 디테일한 심리묘사가 발군이라 단순함을 많이 극복하게 해 준다는 것입니다. 3명이나 되는 여성 주인공들을 모두 개성이 잘 살아있게 묘사하면서도 심리와 정황을 굉장히 세밀하게 다룬다는건 쉬운 일은 아니죠. 그 외의 묘사들, 예를 들면 마을 사람들의 집단적인 광기 같은 묘사도 좋았고요.
추리적으로도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의 앞뒤가 잘 들어 맞고 수많은 등장인물들이 다 제각각 맡은바 역할을 충실히 해 나가고 있어서 상당한 짜임새를 느끼게 해 줍니다.

그러나 실망스러운 부분도 있습니다. 일단 여성 캐릭터들에 비해 남성 캐릭터들 묘사가 너무 실망스러워요. 주인공인 탐정역의 맥로린마저도 혼란스러울 뿐 아니라 때때로 파괴적이기까지 한 정신사나운 캐릭터로 묘사될 정도니 말 다했죠. 게다가 선한 인물로 나오는 남성들은 대체로 외모면에서 보잘것 없다는 것, 그나마의 선한 인물 두서너명을 제외한 나머지 남성들은 하나같이 인간 쓰레기급으로 그려지는 것은 남성에 대한 혐오감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데 작가가 남성에게 크게 당한적이 있는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습니다.
또 경찰의 수사 과정이 지나칠 정도로 편견에 가득차 있다는 것도 단점입니다. 특히 월시 형사부장의 성폭행급의 언사가 난무하는 심문 장면 같은 것은 들통나면 바로 옷을 벗어야 할 정도로 지독한 수준으로 그려지는데 이 점 역시 그다지 마음에 들지는 않더군요.
마지막으로 추리적으로도 딱 한가지, 앤의 금고안에서 발견된 칼은 대체 무슨 용도였을까? 하는 의문이 해결이 안되는 것도 의아했어요. 중요한 증거임에도 불구하고 너무 비중이 작게 다루어졌달까요?

그래도 단점보다는 장점이 훨씬 많은, 평균 이상의 완성도를 갖춘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작가의 데뷰작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에요. 이 정도 필력과 완성도라면 별점 3.5점은 충분하죠. 맥이 끊긴 듯 했던 영국 여성 추리작가의 후계자가 되기에 충분한 작가가 아닐까 생각되네요.

덧붙이자면 전작 "여류 조각가"에서도 지적했듯이 번역의 문제는 심각한 편이라 내용 이해 자체가 힘들 정도입니다. 좀 제대로 된 번역으로 출간되면 더욱 좋을 것 같은데 아쉽네요....

2005/09/13

부머랭 살인사건 - 애거서 크리스티 / 신용태 : 별점 3점

부머랭 살인사건 - 6점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신용태 옮김/해문출판사

영국 웨일즈 지방의 작은 해안도시 마치볼트. 그곳 교구 목사의 아들 바비 존스는 골프를 치던 중에 한 사내의 죽음을 목격한다. 사내가 죽어가며 남긴 말은 "왜 그들은 에반스를 부르지 않았을까?"
바비는 검시심문에서 죽은 남자 알렉스 프리처드의 여동생을 만나 몇가지 정보를 주고 사건을 잊어버리지만 그 직후 바비에게는 이상한 일들이 연달아 발생한다. 급기야는 죽을 뻔 하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나게 된 후 그는 생명을 지키고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마을 제일 귀족의 딸 레이드 프랜시스 더웨트 - 프랭키 와 같이 사나이의 죽음과 관련된 위험 속으로 뛰어들게 되는데...

애거서 여사의 모험소설(?). 두 남녀의 유쾌한 이야기가 시종일관 지루하지 않게 펼쳐져서 무척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작품입니다. 다른 정통 추리물에 비한다면 추리적인 내용은 좀 약하지만 사건의 인과관계가 확실하고 복선도 잘 짜여져 있고요. 확실히 여사님이 거장이구나 싶은 느낌이에요.
또 캐릭터들이 굉장히 생생하다는 것이 큰 특징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도 사악하고 치밀하며 유머스러운 악당 로저의 캐릭터가 정말 대단해요! 독특할 뿐더러 개성이 넘쳐 이 악당을 주인공으로 한 시리즈가 계속 되었으면 하는 바람까지 들 정도에요.
프랭키는 제가 싫어하는 여사의 부르조아틱한 취향을 반영한 귀족 딸이라는 설정이지만 그다지 귀족 답지 않은, 오히려 왈가닥 아가씨의 전형처럼 그려져 있어서 부담이 덜하고 목사의 아들 바비와 연결되는 엔딩이 꽤 그럴 듯 하다는 것도 마음에 든 점이고요.

물론 단점도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여사님이 소일거리삼아 쉽게 쓴 느낌이 강합니다. 마지막 대 위기의 상황에서 바비의 친구 배저가 난데없이 등장해서 상황을 역전시키는 장면이 대표적이죠. 복선이고 뭐고 없이 우연에 의지할 뿐이라 많이 황당했어요.

그래도 짤막하게 킬링 타임용으로 읽기에는 아주 좋은 작품입니다. 토미-터펜스 부부류의 작품을 좋아한다면 이 작품 역시 즐길 요소가 많다 생각되네요. 별점은 3점입니다.

그런데 원제대로 "왜 그들은 에반스를 부르지 않았을까?"로 출판되었으면 더욱 좋았을 것을... 전혀 상관없는 "부머랭"이 갑자기 왜 등장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원제대로 출판된 다른 출판사 책도 있긴 하지만 해문판이 마음에 드는데, 이런 것들은 앞으로라도 좀 신경써 주었으면 하네요.

2005/09/09

바람의 12방향 - 어슐라 K 르귄 : 별점 3.5점

바람의 열두 방향 - 8점
어슐러 K. 르 귄 지음, 최용준 옮김/시공사

이 바닥에서는 유명한 여류 작가 어슐라 K 르귄의 단편집입니다. 이쪽 쟝르문학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형이 구입했길래 우연찮게 읽게 되었습니다. 제가 워낙 단편집을 좋아라 하기도 하죠.

처음에 제목을 보고는 단편이 12편 있겠구나 싶었는데 오히려 생각보다 많은 15편(!) 이나 되는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어 양적으로 굉장히 마음에 듭니다. 유명 장편 시리즈물의 초안이나 외전격 이야기도 있고 완전히 독립된 이야기도 있으며 장르도 SF와 판타지를 아우르는 다양한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작품의 수준 또한 높고요. 한마디로 쟝르문학 팬이라면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요소가 많은 선물세트 같은 책이랄까요? 
거기에 각 단편별로 소개하는 말머리 글까지 꼼꼼하게 번역한 번역도 좋고 책도 깔끔하고 예쁘게 나와서 즐거움을 더해주네요.

사실 조금 어려운 글들도 제법 되기는 합니다. 작가의 다른 작품을 읽지 않으면 참 재미를 느낄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외전격 이야기도 몇개 있기도 하고요. 그래서 조금 감점하여 별점은 3.5점입니다만 모든 작품들이 글 하나는 확실히 유려하게 잘 쓴다는 느낌은 전해주며 거장으로서의 풍모를 잘 느끼게 하는 좋은 작품들입니다. 로저 젤라즈니의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와 더불어 이 바닥 단편집의 양대산맥으로 남을 것 같군요.

제가 재미있었거나 인상적이었던 작품들은 아래와 같습니다.

"샘레이의 목걸이"
다른 장편과 연관이 있는 고전적인 SF-환타지로 새로울 것이 없는 설정이지만 작가 특유의 묘사로 작품이 힘을 받는 느낌입니다.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단편이었어요.

"파리의 4월"
작가로서의 데뷰작이라고 하는군요. 현대 프랑스 역사학자와 14세기 프랑스 흑마술사의 기이한 우정을 그리고 있는 환타지인데 유머스러운 묘사가 볼거리입니다. 그런데 이야기에 몰입하기는 좀 어려웠어요. 꼭 여자들을 불러내어야만 했는지도 의심스럽고 불러낸 다음의 이후 이야기가 오히려 볼거리 같은데 좀 어정쩡하게 끝난 느낌도 들고요.

"어둠상자"
이 작품이 저 사진의 표지 삽화입니다. 조금만 더 다듬으면 장편 판타지로도 손색이 없을 것 같은데 단편인 탓에 세계관과 설정이 자세히 묘사되지 않아 아쉽더군요.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해제의 주문"
두 마법사들의 마법대전을 다루고 있는데 무척 긴박하고 현실감이 넘치는 묘사 탓에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하지만 최후의 주문인 "해제"가 무슨 뜻일까요? 한자어를 같이 표기해 주던지 원문을 언급해 주었어야 할 것 같은데... 

"이름의 법칙"
동화같은 전개로 진행되어 의아했지만 반전이 확실한 작품입니다. "용과 기사"류의 이야기의 독특한 변주인데 간단명료하고 약간의 반전이 있는, 이런 쉬운 이야기가 아무래도 제 취향이라서 아주! 즐겁고 재미나게 읽은 작품입니다. 이 책에서 저의 베스트입니다. 

"겨울의 왕"
아주아주 예전에 읽었던 "어둠의 왼손" 세계관을 공유하는 외전격 이야기입니다. 장편 덕에 워낙 방대한 설정이 쌓여있는터라 작품에 힘이 느껴집니다.

"아홉 생명"
복제인간 이야기로 정통 SF입니다. 설정이나 전개는 지금 읽기에는 약간 식상한, 그다지 독특하지 못한 소재이지만 결말부의 여운이 진하게 남는 작품이었습니다.

"물건들"
벽돌공장 사장으로 최후의 땅에서 마지막 벽돌로 섬까지의 둑을 만드는 한 사나이의 이야기. 몽환적인 끝맺음이 인상적이네요.

"제국보다 광대하고 더욱 느리게"
사람들의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오즈본이 소속된 행성 탐사대가 공포의 감정을 발산하는 외계 행성에서 벌이는 이야기. 오즈본이라는 캐릭터에 대한 설정과 묘사가 굉장히 좋습니다. 결말은 약간 납득하기 어려웠지만 재미있었어요.

"땅속의 별들"
중세시대의 천문학자를 모델로 한 듯 합니다. 이단으로 몰려 화형당하기 직전 탈출한 천문학자가 광산에 숨어살며 땅의 별자리를 발견하는 이야기인데 발상과 전개, 모든것이 완벽하게 맞물린 작품입니다.

"시야"
심한 충격을 받아 이상이 생긴 두 우주 비행사의 이야기인데 굉장히 기발하면서도 반전이 인상적입니다. 신성에 대한 새로운 고찰이랄까요? 



2005/09/07

한국의 연쇄살인 - 표창원 : 별점 3점

한국의 연쇄살인 - 6점
표창원 지음/랜덤하우스코리아
요새 이 책이 많이 포스팅되더군요. 저도 관심가는 분야라 눈여겨 보긴 했는데 형이 구입했길래 냉큼 읽어봤습니다.
실제 범죄 전문 학자이자 프로파일러인 표창원 교수가 저술한 책으로 책 안에 단순한 범죄 사실에 대한 나열만이 아닌, 경기도 연쇄 살인사건 (속칭 "화성 연쇄 살인사건")의 범인에 대한 프로파일링 같은 여러 정보와 분석이 가득해서 보다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네요. 거기에 연쇄살인 사건의 대부분이 제 기억에 남아있는 사건들이라 더욱 흥미로왔던 것 같습니다. 해당 사례별 외국의 연쇄살인범과의 비교를 통한 분석도 재미있었고요. (물론 꼭 들어맞는 케이스는 거의 없었지만요)

한국 연쇄살인의 시초에서부터 접근해서 최근의 유영철 사건까지 10년 주기의 연도별로 챕터를 구분하여 자세하게 기술하고 있는데 당시의 기사와 자료를 토대로 상세하게 분석, 작성되어 자료적인 가치가 굉장히 높은 책이라 더욱 마음에 듭니다. 관련 도판도 주로 기사에서 인용된 것으로 보이지만 꽤 충실한 편이고요.
거기에 분석을 통해 나름 해결책 같은 것도 제시한 것도 학자로서 좋은 태도로 여겨집니다. 국내 연쇄살인의 케이스는 외국과 달리 성범죄쪽 보다는 못가진자의 한(恨)을 토대로 한 범죄가 많고 어린 시절의 학대에 기인한 경우가 대부분이라 사회적 문제 해결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어떻게 보면 원론적인 이야기지만 진지하게 접근하고 있어서 설득력이 강합니다. 아울러 분석에 따라 경찰 수사의 문제도 많이 지적하고 있는 것도 좋고요.

한가지 아쉬운점은 외국처럼 범인에 대한 인터뷰를 좀 해줬었으면 한데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국내 현실상 무리였을까요? 이미 형 집행된 인물들은 어쩔 수 없다 쳐도 유영철 같은 최근 사건의 범인은 가능했었으리라 생각되는데 조금 아쉽네요. 여튼, 별점은 3점입니다.

읽고나니 사형제도는 절대 없어지면 안된다는 생각을 다시금 갖게 합니다.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지만 죄도 죄 나름이니 만큼...

박수칠때 떠나라 - 장진 : 별점 2.5점


강남의 최고급 호텔 1207호에서 A급 카피라이터 정유정이 칼에 9군데나 찔려 발견된다. 용의자는 휘발유 통을 들고 현장에서 바로 검거된 김영훈. '범죄없는 사회만들기 캠페인'의 일환으로 대한민국 건국 이래 최초로 살인사건의 수사가 공중파에서 생중계된다. 열혈 폭력 검사 최연기(차승원)와 자신의 혐의를 줄기차게 부인하는 용의자 김영훈(신하균)의 줄다리기 속에 1박 2일 간의 '버라이어티한 수사극'이 펼쳐지는데...

그런데 영화는 생각과는 많이 다르네요. 처음에는 일종의 수사극이라 생각했습니다. 초중반부 분위기는 그런대로 비슷하기는 하고요. 그러나 잘 짜여진 수사물로 보기에는 어려울 정도로 헛점이 많습니다. 초반부에 "동기" 자체를 물어보는 장면이 전무하다는 것, 그리고 범인의 본명을 중반에서나 알게 된다는 것 등 기본적인 수사 과정의 오류가 대표적인 예가 될 수 있겠죠. 무엇보다도 검사가 중요 증거물을 빼돌리는 행위는 정말 공정치도 못하며 용서할 수도 없었습니다..... (실제로 그러지 않기를 바랄뿐이죠)
또  "TV중계"라는 설정이 특이하기는 하지만 영화에 좋게 작용하지 않는 것도 문제에요. 특히 무당이 등장하고 PD가 빙의(?)하는 후반부 클라이막스 장면은 솔직히 오버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왜 이런 설정을 집어 넣었을까요? 미디어를 풍자하기에는 뭔가 부족하고, 독특함을 심어주려는 단순한 의도였다면 불필요했는데 말이죠.
그리고 오컬트 심령물로 완전 급선회하는 마지막 장면... 무당이 나오면서 그런 분위기를 팍팍 풍기기는 했지만 이렇게까지 뒤통수를 칠줄은 몰랐습니다. 뭐 진상을 이보다 완벽하게 보여주기는 어렵겠지만 제 생각에는 절반의 성공으로 보입니다. 의외성과 반전의 묘미는 좋았지만 뭐랄까, 납득이 안되는 면도 적지 않은 그런 결말이었어요.

물론 아주 나쁘기만 하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어느정도 꽉 짜여진 수사물로서의 조건은 잘 갖추고는 있습니다. 여러 단서들의 제시도 공평한 편이라 추리적으로 제법 완성도 있는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사실 추리적 요소의 조합만 따진다면 "혈의 누"보다도 탄탄합니다. 대사들도 제법 감칠맛 있고 배우들의 연기도 좋고요. 그리고 영화의 인트로 장면 만큼은 정말 잘 만들어서 기대를 팍팍! 하게 만듭니다. 여담이지만 요새 우리나라 영화 인트로는 정말 잘 만드는 것 같아요.

결론적으로 별점은 2.5점. 부수적인 요소를 들어내고 더 드라마 위주로 탄탄하게 만드는게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은 남지만 흥행작으로의 미덕과 장진감독의 과감한 실험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잘 잡은 그런 작품으로 보이네요. 중반부는 조금 지루했지만 최소한 재미라는 요소는 확실히 건질 수 있는 영화였습니다.

PS : 근데 저 제목, 도대체 무슨 의미죠?

2005/09/05

여류 조각가 상/하 - 미네트 월터스 / 임옥희 : 별점 3점

여류 조각가 -상 - 6점 미네트 월터스 지음/중앙출판사(중앙미디어)
여류 조각가 -하 - 6점 미네트 월터스 지음/중앙출판사(중앙미디어)

"조각가"라는 별명이 붙은 희대의 살인마 올리브. 그녀는 어머니와 여동생을 잔인하게 살해하고 토막낸 혐의로 종신형을 선고받고 수감되어 있다.
그녀에 대한 작품을 쓰기 위해 인터뷰를 신청하고 자료를 조사하던 작가 로즈는 그녀에 대해 알게 될수록 그녀의 혐의에 의문이 생기기 시작하고, 올리브를 최초로 체포한 경찰 할과의 만남을 통해 또다른 이상한 범죄에 말려드는데....


미네트 월터스의 유명한 작품이죠. 읽기 전 부터 기대가 컸습니다. 에드가 상 수상작일 뿐더러 워낙 평이 좋았기 때문이에요. 절판되어 구하기가 어려웠는데 구하자마자 바로 읽게 되었습니다.

여성 사이코 살인마가 등장하고 그 살해방식의 잔인성에 촛점이 맞춰진 초반부는 "검은집"이나 "유니스의 비밀" 같은 작품을 연상케하는데 이야기가 전개될 수록 정통 추리물로 변해 나가는 전개 과정의 의외성이 돋보이네요. 추리적인 수준 또한 높고요. 극히 적은 단서들을 하나씩 추적하고 결론을 도출하는 과정이 이치에 맞고 치밀하거든요. 저는 마지막까지 짐작조차 하지 못했던 인물이 범인이라는 점에서도 정말 놀랐고요.그 외에도 나름대로 여운과 독자의 상상을 어느정도 허용하는 결말도 인상적이었어요.
아울러 여성 작가다운 묘사도 볼거리인데 특히 주요 캐릭터인 올리브는 정말 굉장하게 묘사됩니다. 키 180cm에 체중이 160Kg이나 되는 압도적인 외모에 파괴적인 충동, 그리고 식탐에 대한 생생한 묘사가 작품안에 넘쳐나기 때문에 제가 읽어 왔던 추리소설 캐릭터 중에서도 손에 꼽을 만한 카리스마 넘치는 캐릭터라 생각되네요.

그러나 단점도 있습니다. 일단 불필요한 잔가지, 예를 들면 할이라는 전직 경찰과 변호사 피터 크루에 관련된 사건과 같은 요소는 좀 지루했어요. 왜 나왔는지도 잘 모르겠고요. 그리고 생생하게 살아있는 올리브의 묘사에 비해 신경질적이고 히스테리 가득찬 주인공 탐정 작가 로잘린드(로즈) 레이는 캐릭터는 읽는 내내 짜증을 유발할 정도로 별로였고 말이죠.
무엇보다도 번역이 굉장히 문제가 많습니다. 전반적으로 까칠까칠하고 거슬려서 읽기 힘들 정도였어요. 요새는 좋은 번역을 만나기가 어렵군요.

그래도 에드거상 최우수 장편상을 수상한 작품 다운 재미와 수준은 충분히 전해 주는 작품이었습니다. 별 3개는 충분히 줄 만 합니다. 역시 MWA상과 에드거상, 대거상 수상 작품들은 전부 기본 이상은 해주네요. 아직 읽지 않으신 분들께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단, 번역은 감수하시길....

PS : 로즈의 캐릭터는 영화 "데이비드 게일"의 빗시 블룸과 굉장히 유사한 면이 많은 것 같기도 합니다. 히스테리성향이 있는 전문직 여성이라는 묘사도 그렇지만 탐정역을 소화하는 과정이 상당히 닮았어요. 뭐 이런 류의 캐릭터의 스테레오 타입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요.

2005/09/03

삼국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 한국 역사 연구회 : 별점 3점

삼국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 6점
한국역사연구회고대사분과 지음/청년사
젊은 역사학자들이 모인 한국 역사 연구회에서 발간한 "....어떻게 살았을까?" 시리즈의 한권. 

막연하게만 알고 있었던 것들에 대해서 정확한 사료와 정보, 관련 설화에 대한 연구 등으로 어느정도 검증된 이론을 설명해 주는 책의 컨셉도 좋지만 설명하는 주제들이 너무나 재밌습니다! 제목만 봐도 너무너무 궁금하고 호기심을 자극하거든요. 예를 들자면 "삼국시대 각 나라의 언어는 서로 통했는가?", "당시 주식은 뭐였을까?", "당시 농가 소득은 얼마나 되었을까?" 같은 것들인데 저는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답니다. 그 외에도 삼국시대의 사회, 문화, 생업, 과학, 종교, 외교, 통상 등 전반에 대한 짤막하고 재미도 있으면서 알맹이까지 확실한 주제들이 가득해요.

문제라면 쉽고 재미있게 쓰려는 탓에 내용이 약간 부실하다는 것, 그리고 깊게 파들어 간다면 문제가 있을 수도 있을 수 있는 이론들이라는 점과 참고 도판들이 전부 흑백에다가 좀 부실하다는 점인데 그래도 이 정도면 양호한 편이죠. 제가 가지고 있는 우리 역사에 대한 지식은 조선시대에 많이 한정적이며, 또 조선시대 이전은 다른 자료들에서 많이 다루고 있지도 않은 탓에 더욱 반가운 독서였습니다.

때문에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3점. 젊은 학자들이 쉽고 재미나게 쓰려고 한 노력이 묻어나는 좋은 기획물로 재미와 지식을 둘 다 충족시킬 수 있는 책입니다. 한국 역사 연구회의 다른 시리즈들도 읽어보고 싶군요.

2005/09/02

저격자 (The Bourne Identity) - 로버트 러들럼 / 김명렬 : 별점 4점

지중해의 노아섬에 한 환자가 실려온다. 영국인 알콜중독 의사 조프리 워시번은 그를 성심껏 수술, 치료하여 회복시키는데 성공하지만 그는 모든 기억을 잃은 상태이며 유일한 단서는 그의 몸 안에서 발견된 필름에 적힌 스위스 은행 구좌 번호뿐. 
자신을 찾기 위해 스위스로 향한 그는 은행에서 그는 500만불이라는 거액에 놀란다. 그리고 자신의 이름이 제이슨 보언이라는 것을 알게되나 곧 자신의 생명을 노리는 인물들과 차례로 만나 숱한 위험을 거치고, 그 와중에 마리라는 여성과 사랑에 빠진다. 
그의 생명을 노리는 자가 국제적인 암살 전문가 "카를로스"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서서히 기억이 돌아오나 보언은 혼란을 느끼게 된다. 그의 기억은 암살과 파괴에 대한 경력만 남아있었기 때문.
그래도 보언은 그 자신의 과거를 되찾고 500만불을 입금한 트레드스톤71이라는 조직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카를로스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위험한 계획을 실행에 옮기는데...

"본 아이덴티티"의 원작 소설. 로버트 러들럼의 책은 처음 읽어보네요. 여튼 제이슨 보언에 관련된 모든 설정과 계획이 복잡하면서도 여러가지로 꼬여있고, 전개면에서 치밀해서 지루함 없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작품입니다.
특히나 인상적인 것은 제이슨 보언의 진짜 정체에요. 상당한 반전의 묘미를 주거든요. 그러고보니 "무간도"와 약간 비슷하기도 하네요.
또 결말에 이르기까지 상황을 밝혀나가는 전개 하나하나가 설득력있고 교묘해서 시종일관 땀을 쥐게 하는 것도 큰 장점입니다. 그만큼 트레드스톤과 카를로스 사이에서 위험한 줄타기를 하는 여러 상황들이 디테일하게 잘 짜여져 있습니다.

딱 한가지 아쉬웠던 점은 번역으로 "인의" 출판사라는 곳에서 발간된 책으로 읽었는데 오류는 별로 눈에 띄지 않지만 문체가 지나칠 정도로 딱딱하다는 것입니다. 내용 몰입에 방해되는 수준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약간 거슬리더군요.

그래도 로버트 러들럼이라는 작가가 왜 베스트셀러 작가인지 진면목을 느낄 수 있는 재미있는 작품이었습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후속작을 암시하는 듯한 끝맺음 역시 "팔리는" 작가 다운 마무리라 생각되는데 영화가 계속 히트치고 있는만큼 국내에도 시리즈가 계속 나와주었으면 합니다.

덧붙이자면, 영화 말고도 아주 오래전에 TV에서 리처드 챔벌레인이 나오는 미니시리즈를 본 기억이 나는데 영화보다는 TV 쪽이 훨씬 원작에 충실합니다. 영화는 초반 은행을 찾아갈 때 까지만 비슷하고 이후는 각색이 엄청 심하거든요. TV 미니시리즈가 영화보다야 시간이 긴 만큼 (기억에 2부작으로 합쳐서 4시간 정도?) 복잡도 높은 원작을 구현하는데 더 적합한건 당연하죠. 그래도 영화도 원작에 조금이나마 더 가깝게 만들었더라면 훨씬 좋지 않았을까 싶네요. 지금은 너무나 단순한 액션 영화로밖에는 보이지 않으니까요,

2005/09/01

「タッチ」실사영화판!

"나는 고시엔에 간다. 기다려 미나미"

로맨틱 코미디와 야구를 모두 좋아하는 저에게 일종의 바이블과도 같았던 "タッチ" (Touch). 이 작품때문에 아다치 미츠루를 좋아하게 되었었죠. 개인적으로 원작의 마지막 권은 너무 사족이 심했다고 생각되며 여러가지 이유로 아다치의 최고 작품은 "러프"라고 생각하지만 아다치의 대표작답게 아사쿠라 미나미와 우에스기 형제의 이야기는 언제 읽어도 저에게 재미와 즐거움을 전해줍니다.

이렇게 굉장히 좋아했던 작품의 실사 극장판이 나온다니 두근거리네요. 완성도야 어쨌건 저에게는 잊을 수 없는 작품 중 하나이니만큼 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스토리를 대충 보니 미나미의 리듬체조 선수 활동 이야기는 등장하지 않는 것 같지만 그 외에는 대체로 원작의 기둥 줄거리를 잘 따라가고 있는 듯 하고, 거기에 원작의 캐릭터들이 대부분 등장하여 원작팬의 향수를 자극합니다.

캐스팅에서 미나미역의 아키짱은 무난해 보이지만 헤어스타일 정도는 따라해주었으면 했는데 아쉽고, 우에스기 형제역은 글쎄요... 별로 강해(?) 보이지는 않아서 아쉽습니다. 홈페이지에 한컷밖에 나오지 않은 닛타 아키오가 더 예리해 보이지만... 정확한건 영화를 봐야 알 수 있겠지요.

홈페이지에서 예고편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출신 가수 윤하(윤나?)가 리메이크한 예전 TV시리즈의 명 오프닝이 주제가가 아니라 좀 뜻밖이지만 음악도 꽤 잘 어울리고 원작에 충실한 것 같아 여러모로 기대가 되는 작품입니다. 부디 이 기대를 무참하게 깨지만 않아 준다면 좋겠는데....

여담이지만 이런 일본식 학원 스포츠 환경은 굉장히 부러워요. 저도 고등학교때 이런 방식으로 특활부가 운영되었더라면 야구부에 가입했을 것 같거든요. 뭐 주전자 담당으로 3년을 보내게 되었을지라도 굉장히 즐겁고 소중한 추억이 되었으리라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