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러운 볼 - 기리노 나쓰오 지음, 권남희 옮김/황금가지 |
홋카이도 작은 바닷가 마을의 소녀 카스미는 자신만의 새로운 세계를 찾기위해 가출 후 도쿄로 나오고 직장 사장과 결혼해 두 아이의 엄마가 된다. 그러나 여전히 새로운 세계를 추구하는 그녀 앞에 남편 회사의 주요 거래처 인사 이시야마가 나타나고 두 사람은 곧 불륜 관계에 빠진다.
카스미와 이시야마는 두 사람의 밀회를 위해 대담하게도 두 가족이 함께 떠나는 여행을 계획하는데, 장소는 홋카이도 시코츠 호반의 어느 별장. 가족의 눈을 피해 밀회를 즐기던 두 사람은 순간적으로 둘의 관계를 위해서라면 아이를 버려도 좋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다음날 카스미를 꼭 닮은 다섯 살짜리 큰딸 유카가 거짓말처럼 실종된다.
생사도 알 수 없는 아이를 찾으려는 노력으로 4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두 가족은 물론 별장을 통해 관계를 맺게 된 사람들이 크고 작은 사건에 휩쓸리게 된다. 마침내 남편과 남은 딸에게서마저 "탈출"한 카스미는 우연히 아이 찾기에 도움을 주겠다고 연락한 시한부 인생의 암 말기 전직 형사 우츠미와 함께 고향에서 본격적으로 유카를 찾기 시작한다.
별장 관련 인물들을 통해 사건 당시 상황으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유카의 종적을 다각도로 추적하는 동안 서로에게 누구보다 필요한 존재가 되는 두 사람은 우츠미의 죽음에 임박해서야 서로를 통해 모든 사건과 의문의 실마리를 찾고 삶의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
예전에 재미있게 읽었던 "얼굴에 흩날리는 비" 라는 작품을 썼던 일본 여류 추리작가 기리노 나츠오의 작품입니다. 20세기 마지막 나오키상 수상작이라는 카피가 먼저 눈에 들어오네요. 동호인들 사이에서 평가가 좋길래 내심 기대하고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유카의 유괴사건은 이야기를 끌어가는 주된 소재이며, 여기에 더해 주인공 카스미의 불륜이라는 상황과 여러 색다른 등장인물들을 등장시켜 사건을 흥미진진하게 만들기는 하지만 이에 따르는 가정과 개인의 붕괴, 그리고 새로운 삶의 의미를 찾는 일종의 성장기에 가깝기 때문에 추리소설보다는 순문학 드라마로 보입니다. 특히나 우츠미에게 점차 죽음이 다가오는 종반부로 갈수록 그런 느낌이 강하게 드네요.
이외에도 사건 자체를 풀어나가기 위한 동기나 단서도 이야기 중에 거의 던져주지 않고, 다양한 성격으로 설정되어 있으며 입체적으로 흥미롭게 묘사되는 주변 인물들 역시 탐정역의 우츠미가 묻는 단순한 질문에 이미 과거에 경찰에게 말했던 사실 그대로의 답변만 해 줄 뿐이라 추리의 여지가 거의 없다는 점, 우츠미도 적극적인 사건해결을 위한 질문보다는 사건에 대한 "감상"을 주로 물어보기 때문에 전개 과정에서 증언을 조합하여 어떤 새로운 결론이 나오는 것은 애시당초 불가능하다는 점도 이 작품이 추리소설이 아님을 입증합니다. 단순히 주인공들의 상상과 작가에 의한 일방적 사실 묘사에 의해 사건이 덜컥 종결될 뿐 범인이 누구인지는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는 결말까지도 그러하고요.
좋은 작품임에는 분명하고 재미도 있습니다. 나오키 상을 수상할 만 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글의 묘사가 뛰어나기도 하고 여류 작가다운 꼼꼼함이 작품 전체에 묻어나오는 것도 좋았고요. 그러나 추리적인 뭔가를 기대한 저로서는 약간 실망스럽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본다면 묘한 여운을 주는 나름 매력적인 소설임에는 분명하기에 별점은 3점입니다. 추리매니아보다는 감성적인 순문학 취향의 분들께 추천드립니다.
PS : 원제가 더 의미심장하고 좋은데 왜 저렇게 단순하고 직설적인 번역 제목으로 출간되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네요. 다행히 번역 자체는 괜찮은 편이지만...
* 2013년 3월 6일 수정하였습니다. 제목이 이제 바뀌었네요.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