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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9/14

냉동 창고 (Ice House) - 미네트 월터스 : 별점 3.5점

냉동창고 -상 - 8점 미네트 월터스 지음/중앙출판사(중앙미디어)
냉동창고 -하 - 8점 미네트 월터스 지음/중앙출판사(중앙미디어)

부모님의 자동차 사고로 인한 죽음과 남편의 실종 탓에 "마녀"라고 불리우는 그렌지 장원의 여주인 포베. 그녀는 레즈비언이라는 오명까지 뒤집어 쓰면서도 그녀를 도와주는 절친한 친구 2명의 도움으로 역경을 헤쳐나간다. 그러던 와중에 그렌지 가문의 냉동 창고 안에서 거의 뼈만남은 시체가 발견되고 10년전 실종된 남편 데이비드 메이베리의 수사를 담당했던 월시 반장은 시체가 데이비드일 것이라는 확신하에 수사를 진행한다. 그러나 검시관의 소견서에 의해 그 가능성은 부정되며 외려 당시에 실종된 파산한 사업가 톰슨이 시체에 합치되는 인물로 떠오른다.
열혈 형사 맥로린은 월시 반장의 편견에도 불구하고 서서히 마녀라 불리우는 3명의 여인과 그들의 가족에게 호감을 느끼게 되면서 사건의 진상에 접근해 가는데...

얼마전에 읽은 "여류 조각가"에 이어 두번째로 읽게 된 미네트 월터스의 작품입니다. 몰랐는데 이 작품이 데뷰작이네요. 뭐 시리즈 작품은 아닌 만큼 순서가 바뀌었다고 해도 큰 차이는 없지만...

어쨌건 읽다보니 "여류 조각가"와는 많은 차이점이 느껴졌습니다. 가장 큰 차이점은 "여류 조각가"가 올리브라는 캐릭터의 강렬함으로 승부하는 느낌이 강하다면 이 작품은 보다 아기자기한 구성을 보여준다는 것을 들고 싶네요. 영국 시골 마을을 무대로 "생활"에 녹아 들어가 있는 범죄와 그 잔인성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애거서 여사님의 작품을 연상케 하는 구석도 많이 있고요.
하지만 고전 영국 추리물의 판박이가 아닌 스스로 지닌 장점도 확실한데 대표적인 것은 현대 여류 작가다운 디테일한 심리묘사가 발군이라 단순함을 많이 극복하게 해 준다는 것입니다. 3명이나 되는 여성 주인공들을 모두 개성이 잘 살아있게 묘사하면서도 심리와 정황을 굉장히 세밀하게 다룬다는건 쉬운 일은 아니죠. 그 외의 묘사들, 예를 들면 마을 사람들의 집단적인 광기 같은 묘사도 좋았고요.
추리적으로도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의 앞뒤가 잘 들어 맞고 수많은 등장인물들이 다 제각각 맡은바 역할을 충실히 해 나가고 있어서 상당한 짜임새를 느끼게 해 줍니다.

그러나 실망스러운 부분도 있습니다. 일단 여성 캐릭터들에 비해 남성 캐릭터들 묘사가 너무 실망스러워요. 주인공인 탐정역의 맥로린마저도 혼란스러울 뿐 아니라 때때로 파괴적이기까지 한 정신사나운 캐릭터로 묘사될 정도니 말 다했죠. 게다가 선한 인물로 나오는 남성들은 대체로 외모면에서 보잘것 없다는 것, 그나마의 선한 인물 두서너명을 제외한 나머지 남성들은 하나같이 인간 쓰레기급으로 그려지는 것은 남성에 대한 혐오감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데 작가가 남성에게 크게 당한적이 있는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습니다.
또 경찰의 수사 과정이 지나칠 정도로 편견에 가득차 있다는 것도 단점입니다. 특히 월시 형사부장의 성폭행급의 언사가 난무하는 심문 장면 같은 것은 들통나면 바로 옷을 벗어야 할 정도로 지독한 수준으로 그려지는데 이 점 역시 그다지 마음에 들지는 않더군요.
마지막으로 추리적으로도 딱 한가지, 앤의 금고안에서 발견된 칼은 대체 무슨 용도였을까? 하는 의문이 해결이 안되는 것도 의아했어요. 중요한 증거임에도 불구하고 너무 비중이 작게 다루어졌달까요?

그래도 단점보다는 장점이 훨씬 많은, 평균 이상의 완성도를 갖춘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작가의 데뷰작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에요. 이 정도 필력과 완성도라면 별점 3.5점은 충분하죠. 맥이 끊긴 듯 했던 영국 여성 추리작가의 후계자가 되기에 충분한 작가가 아닐까 생각되네요.

덧붙이자면 전작 "여류 조각가"에서도 지적했듯이 번역의 문제는 심각한 편이라 내용 이해 자체가 힘들 정도입니다. 좀 제대로 된 번역으로 출간되면 더욱 좋을 것 같은데 아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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