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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30

피너츠 완전판 7 : 1963~1964 - 찰스 M. 슐츠 / 신소희 : 별점 3점

피너츠 완전판 7 : 1963~1964 - 6점
찰스 M. 슐츠 지음, 신소희 옮김/북스토리

이제는 관성처럼 읽고 있는 피너츠 완전판 일곱번째 권입니다. 1963년에서부터 1964년까지의 연재분이 실려있습니다.

이제 캐릭터들이 완성되었고 이야기의 포맷도 어느정도 정해졌습니다. 그래서 반복되는 캐릭터 설정 관련 개그가 많은 편입니다. 찰리 브라운의 승리하지 못하는 야구팀 이야기, 라이너스의 할로윈 호박 대왕 이야기, 슈뢰더와 베토벤 생일 관련 이야기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에요.

그래도 이러한 뻔함 속에서 재미를 찾아내어 전달하는 작가의 능력은 반짝반짝 빛납니다. 거장이 달리 거장이 아니죠. 앞서 말씀드린 찰리 브라운 야구팀 이야기가 대표적이에요. 찰리 브라운의 부상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이끌어내거든요. 놀라운건 저는 여태까지 이 야구팀이 전패했는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요! 찰리 브라운 부상 중 라이너스가 투수를 했을 때 몇 번 이겼다고 묘사됩니다! 이래서야 찰리 브라운 본인이 투수를 그만두어야 할텐데 투수를 고집하는 것을 보면 패배해도 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네요.
여튼, 그리고 루시가 찰리 브라운 정신 상담으로 무려 143달러를 청구한 에피소드도 재미있었습니다. 1960년대에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에게는 생각하기도 힘들 거액인데 이런 돈을 떡하니 요구한다니 역시나 루시답더군요. 슬라이드를 이용한 치료 때문이라는데 100달러가 개인 수수료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부분에서는 요새 의사들과도 별로 다르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행복이란 따뜻한 강아지"의 변주 몇 개도 눈에 띠네요. 샐리가 '행복이란 나만의 도서관 대출 카드를 갖는 거야!'라고 말하는 식입니다.

이러한 변주 외에도 새롭게 등장하는 설정과 캐릭터도 당연히 많습니다! 캐릭터 설정 관련해서는 찰리 브라운이 메이저리그 선수 중 조 슐라보트닉을 좋아한다는 것이 제일 재미있었습니다. 루시로부터 조 술라보트닉 야구 카드를 얻기 위해 노력하는 이야기들인데 평생 패배자인 찰리 브라운을 잘 드러내고 있거든요. 새 캐릭터로는 숫자 이름을 가진 "5"가 처음으로 등장하기도 하고요.

그 외에 인상적인 에피소드도 많습니다. 셜록 홈즈를 아동용으로 각색한 이야기를 '루트비어에 물을 타서 마시는 것 같다'라고 표현하는 촌철살인 표현은 정말 멋졌어요!
하지만 무엇보다도 개인적으로는 아버지날에 대해 이야기하는 에피소드가 가장 마음에 들었습니다. 찰리 브라운이 아빠 이발소에 가면 아빠가 언제나 웃어준다, 이유는 나를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말을 하는 장면 때문입니다. 정말이지 뭉클하네요. 찰리 브라운이 작중에서는 왕따에 패배자 기믹이지만 독자들은 모두 알고 있죠. 정말 최고의 아들이라는 것을 . 정말 심지굳게 잘 큰 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3점. 좀 뻔하고 지루한 부분이 없지는 않지만 앞서 말씀드린 찰리 브라운의 아버지날 에피소드만으로도 별점 3점은 너끈하죠. 팬이시라면 즐길 거리가 많은 좋은 책이니만큼 꼭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17/06/25

나를 사랑한 스파이 - 이언 플레밍 / 권도희 : 별점 1점

나를 사랑한 스파이 - 2점
이언 플레밍 지음, 권도희 옮김/뿔(웅진)

007시리즈 입니다. 어린 시절 조악한 번역본으로 읽었던 <<닥터 노>> 이후 처음 읽는 오리지널 007 시리즈네요. 정식 번역 출간본입니다.
별 생각없이 읽기 시작했는데 솔직히 말해 실망스럽기 그지 없네요. 아니, 최악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입니다. 이유는 이 책은 작중 비브의 말 그대로 용에게 죽기 직전의 공주를 구해주는 기사의 무용담을 현대화하여, 약간의 소프트코어 포르노를 끼얹어 그려낸 어른들을 위한 할리퀸 로맨스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화자부터가 23살의 캐나다 아가씨 비비안 미셸이며 전체 분량의 거의 절반이 그녀의 짧지만 고역이었던 인생 역전 - 영국 유학 중 만난 첫사랑 데릭에게 순결을 잃는 과정, 두번째 남자 쿠르트의 아이를 가졌다가 낙태 종용과 함께 차이는 과정 - 을 그리고 있는데 너무나도 전형적이고 식상합니다. 우리나라 60~70년대 영화를 보는 듯한 기시감이 들더군요. 정말 내가 '007" 시리즈를 읽고 있는게 맞는지도 혼란스러웠고요.
다행히 우리나라 영화와는 다르게 순정따위는 없다는 것을 깨닫고 혼자서 세상에 대항해보겠다는 결심을 하긴 하지만 그래봤자 혼자 여행을 떠나는 정도에 불과합니다. 그것도 베스파 스쿠터를 타고 미대륙을 횡단하려는 무모한 계획이고요. 솔직히 비브가 모텔에서 위험에 직면하지 않았더라도 언젠가 호되게 당하게 될 것은 자명해 보입니다.

여튼, 비브에 대한 장황한 묘사 후 책의 절반이 지나서부터 겨우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2인조 악당이 모텔에 쳐들어오는 것이죠. 그녀의 짤막한 저항이 또 한바탕 펼쳐지고 나서야 겨우 제임스 본드가 등장합니다. 분량으로 따지면 3/5 정도 지점부터네요. 그 뒤가 본드의 활약으로 악당들을 물리치고 여자를 구해주는 이야기인데 전체 책 분량에서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게다가 악당들이 아무리 전문가들이라고 해도 고도로 훈련받은 전문 첩보원과 상대가 될리가 없잖아요? 긴장감이 전혀 살아나지 못합니다. 본드의 활약도 솔직히 가관이에요. 처음부터 총으로 제압하면 되는데 왜 놈들이 마각을 드러낼 때까지 뜸을 들이는지 도무지 알다가도 모르겠더군요. 불을 지르기 전에 놈들을 잡았다면 모텔 주인 상기네티의 재산을 지켜준 것에 불과해서 끝까지 기다렸다는 이유를 대는데 모순입니다. 불을 지르기 전에 놈들의 계획이 무엇인지 알아내는 것은 불가능했으니까요. 이 부분을 설득력있게 설명하려면 놈들의 방화에 대한 단서를 어느 정도는 제공해 주었어야 하는데 그런 설명은 전무합니다.
비브에게 악당들 몸 수색하여 총을 꺼내라고 시킨 후 위기에 빠지는 장면 묘사는 어처구니가 없어 실소를 자아내고요.

비브가 본드에게 반하는 과정이야 뭐 당연한 수순이라고 쳐도 여기서 비브의 묘사 역시 정말이지 최악입니다. "여자들은 반쯤 강제로 사랑을 나누는 것을 좋아한다. 여자들은 빼앗기는 것을 좋아한다"라니, 어처구니가 없네요

아울러 모텔 주인 상기네티가 보험금을 받기 위해 모텔을 전소시키려고 한다는 범행 동기도 쉽게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당시 법과학이 테르밋 등 가연성 물질을 동원한 방화와 사고를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낙후된 수준이었을지도 의문이며 사람도 한 명 죽여가면서, 4명이나 되는 관계자를 만들어가면서 일을 벌일 정도의 보험금인지도 제대로 설명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별점은 1점. 멋드러진 책 표지, 첫 정식 완역본이라는 가치는 있지만 재미와 수준 모두 기대에 미치지 못한 졸작입니다. 읽으실 기회가 있더라도 피해가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17/06/24

오늘 뭐 먹지? - 다카기 나오코 / 고현진 : 별점 2점

오늘 뭐 먹지? - 4점
다카기 나오코 지음, 고현진 옮김/artePOP(아르테팝)

신간이 나오면 찾아보곤 하는 다카기 나오코의 에세이 만화. 제목처럼 평상시 먹는 음식들에 대한 짤막한 이야기를 그린 만화가 봄, 여름, 가을, 겨울 4계절로 구분되어 수록되어 있습니다. 전부 19편에 스페셜 만화 2편을 포함하여 21편 구성이며, 각 편이 끝나고 해당 음식 사진들과 정말로 짤막한 만화가 덧붙여진 형태입니다.

다카기 나오코 만화다운 소소함과 소소함 속에서 피식하게 만드는 잔재미가 넘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굉장히 일상에 맞닿아 있는 이야기들이라 공감가는 것도 많아요. 여름에 차가운 소면 등 차가운 음식만 먹은 후 위기 의식을 느끼고 간단 미소시루를 끓여 먹는다는 이야기가 대표적입니다. 조미료가 냉장고에 넘쳐난다는 것도 역시 마찬가지. 확실히 특별한 조미료는 유통 기한 내 다 먹기가 쉽지는 않죠. 계량을 대충대충한다는 내용도 와 닿았고요. 무엇보다도 맥주를 좋아하고, 중간에 술에 취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내용은 정말이지 제 이야기였습니다!
자세하지는 않지만 슬쩍 소개되는 레시피도 반가왔습니다. 토마토 편에서 소개된 토마토 먹는 방법 - 토마토에 소금만 살짝 뿌려먹는다던가, 토마토를 맥주 안주로 먹는다던가 -, 다카기 나오코의 비법 국수장 레시피 - 간장, 미림, 청주 가쓰오부시 (등)을 넣고 끓인 농축 엑기스 - , 닭 가슴살을 물에 술과 소금 조금, 생강과 함께 끓인 후 불을 끄고 예열로 한참 익힌 후 간장과 청주, 고추기름을 섞은 양념장을 끼얹어 먹는 레시피 (닭 국물은 소금, 후추로 간하고 계란과 파를 풀어넣어 국을 만든다)는 한번 해 먹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하지만 일본 기준이고 등장하는 음식들도 일본 요리들 - 미소 어묵탕, 토필 볶음, 우메보시, 히야얏코 등등 - 이 많다는 것은 확실히 아쉬운 점이었어요. 그리고 내용 대부분이 '어떤 음식을 먹고 싶어서 해 먹었다'라는 것이라 별다른 드라마도 없습니다. <<배 빵빵 일본 식탐 여행>> 처럼 여행가서 생긴 에피소드와 함께 소개되는 여행지 별미도 아니고, 그냥 집밥들이기도 하고요. 우리나라로 따지면 "술을 많이 마셔 숙취가 심해졌기 때문에 콩나물 국을 끓여 먹었다"는 이야기로 만화 한편이 나온 것과 다를게 없습니다. 앞서 말씀드린대로 이런 소소함이 다카기 나오코 작품의 매력이기는 하지만 내용면에서 볼륨이 부족하다고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네요.
아울러 다른 작품들에 비하면 매 편 이야기도 부실합니다. <<배 빵빵 일본 식탐 여행>> 대비 한 페이지에 포함된 그림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에요. 출판사의 의도인지, 원래 이런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가격 대비해서 내용이 충실하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나쁘지는 않은데 단점이 더 눈에 밟히기에 감점합니다.
마지막에 결혼했다고 나오는데 이전에 읽은 작품들 모두가 독신으로 오래 살아온 이야기로 좀 급작스럽더군요. 여튼 축하드립니다. 앞으로도 재미있는 만화를 많이 그려주면 좋겠네요.

2017/06/18

미스테리아 5호 - 미스테리아 편집부 : 별점 2점

미스테리아 5호 - 6점
미스테리아 편집부 엮음/엘릭시르

구하게 되면 읽곤 하는 장르문학 전문 잡지 미스테리아의 5호입니다. 작년 초에 출간된 한참 전 과월호죠. 언제나처럼 특집 기사와 신간 소개, 이런 저런 연재 기사, 인터뷰, 수록 단편으로 이루어진 구성입니다.

이 중 가장 관심 있던 것은 특집입니다. "음식 미스터리"가 주제인데, 개인적으로 '장르 문학 속 요리'에 대해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있기 때문입니다. 좋은 비교, 혹은 참고가 되지 않을까 싶었거든요. 그런데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아주 별로였습니다.
첫번째 이유는 소재가 진부하다는 것입니다. 추리 애호가라면 누구나 쉽게 떠올릴 수 있는 흔해빠진 내용이에요. 도입부의 식인 천재 범죄자 한니발 렉터, 미식가 탐정 네로 울프가 대표적이며, 그나마도 인터넷을 뒤지면 알 수 있는 내용일 뿐으로 정작 기대했던 내용은 실려있지도 않습니다. 저라면 한니발 렉터의 '전두엽 소테'나 네로 울프의 '소시스 미뉴이'를 소개할 때 최소한 해당 음식의 레시피와 조리 사진을 수록했을 겁니다. 그리고 애거서 크리스티 작품 속 독약에 대한 소개는 솔직히 '음식 미스터리'의 범주로 넣기에는 무리였어요. 차라리 <<크리스마스 푸딩의 모험>> 같은 작품 소개가 더 적절한 예가 아니었을까요?
이어지는 작품 속 요리를 재현하는 코너 역시 실망스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주제와 연결되는 요리들이 등장하는 것도 아니고, 미스테리아 측에서 별다르게 창작한 것도 없습니다. 모두 참고 도서 속 요리를 재현한 것에 불과해요. <<미국 미스터리 작가들의 요리책>>이 주로 사용되었더군요. 게다가 작품 속에서 그 요리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지도 않습니다. 개중 마음에 들었던 것은 <<해군 조약문>> 속 치킨 커리 정도랄까요? 작품에서는 셜록 홈즈가 '해군 조약문'을 극적으로 등장시키기 위한 장치로 사용되었었죠. 이야기의 주인공이나 핵심 소재라고 하기에는 절대로 무리이지만 다른 요리들에 비하면 그래도 비중이 있어 보이네요.
그리고 마지막의 '10권의 맛있는 미스터리' 소개는 실망의 정점을 찍습니다. 기준, 근거를 알기 어려워요. 일단 소개작 중 <<스위트 홈 살인사건>><<우리는 언제나 성에 살았다>><<기나긴 이별>>은 음식 미스터리라고 포장할 수 없습니다. 억지에요. <<어느 백만장자의 죽음>>은 아슬아슬하게 음식 미스터리 범주 안에는 들기는 합니다. 허나 지금은 절판되어 구하기 힘든 책을 추천 도서로 떡하니 내미는 행위는 영 받아들이기 힘들군요. 조앤 플루크의 한나 스웬슨 시리즈는 빈말로도 좋은 작품이라 하기 어렵고요. 그 외 작품들도 음식 미스터리로 볼만한 작품들이긴 하지만 과연 추천할만한 작품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특별 요리>>와 <<맛>> 외에는 모두 추천하고 싶지 않습니다.
결론적으로 점수를 주자면 1.5점 정도? 여러모로 점수를 주기 힘든 기획이었습니다. 제 개인 프로젝트에 필적할만한 내용은 없어서 안심이 되긴 했습니다만.

그래도 특집 외에는 나쁘지는 않습니다. 우선 신간 소개는 <<미스테리아>>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인 코너입니다. 빼어난 리뷰가 많은 탓으로 이번 호에도 역시나 사람을 혹하게 만드는 좋은 리뷰들이 많습니다. 솔직히 읽어본 결과에 따르면 좀 과한 홍보의 결과물이라 생각되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마쓰모토 세이초의 <<범죄자의 탄생>>은 꼭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런데 원작, 영화를 함께 소개하는 코너에서 딱 한가지 불만이 있습니다. <<검은 옷을 입은 신부>>가 <<상복의 랑데뷰>>보다 낭만적인 애상으로 넘쳐흐른다는 것인데 동의할 수 없습니다. 완성도 면에서 천지차이에요. 영상화된 작품이라는 이유로 소개되기는 했지만 정보는 공정하게 제공해 주면 좋겠네요.

연재물인 아리스가와 아리스와 건축가 야스이 도시오의 밀실에 대한 대담은 재미있었습니다. 일본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라 써먹기는 힘들다는 단점은 있지만 참고할 만한 내용이 많았어요. 특히 다다미를 걷어내면 아마추어는 다시 깔 수 없다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아울러 이 코너를 통해 소개되는 정보를 토대로 아리스가와 아리스가 내 놓는 아이디어 - 다양한 기술자들이 등장하는 탐정물 - 도 재미있을 것 같았습니다. 미로관을 예로 들며 전기비가 많이 들었을 것이라는 언급을 하는 등 건축 전문가의 식견이 느껴지는 여러 코멘트들도 기억에 남네요.

한국의 50~60년대 추리 소설을 발굴한 추리소설 평론가 박광규 씨와의 인터뷰 역시 좋습니다. 새로운 사실을 많이 알게 되었으니까요. 화재 사고와 관련된 논픽션, 폴란드에서 실제로 있었던 젊은 지식인 발라가 자신이 저지른 살인 사건을 바탕으로 쓴 소설 이야기도 아주 흥미로왔고요. 범인 크리스티안 발라와 그의 작품 <<아목>>, 형사 브로블레브스키라는 키워드는 꼭 기억해두었다가 나중에 찾아봐야겠어요.
한국 미스터리 소설의 계보를 추적하며 잃어버린 고리를 찾는다는 기획물인 '동아시아 미스터리, 정치적 죄와 서스펜스'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식민지 대중 서사의 최고봉이라는 이병주의 <<관부 연락선>>, <<별이 차가운 밤이면>>과 김내성의 <<청춘 열차>>는 시간나면 한번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지막에 수록된 2편의 단편도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전체 평균내리자면 별점은 2점. 척박한 한국 장르 문학의 구심점 역할을 해 주는 좋은 잡지라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이번호는 특집이 너무 별로라 아주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마지막으로 수록된 2편의 단편의 짤막한 리뷰로 글을 마칩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점 참고하시길.

<<나비 부인의 커튼콜>>
전직 사회부 기자 박희윤과 퇴출 형사 갈호태, 두 남자가 운영하는 카페 '이기적인 갈 사장' 건너편에 '나비 부인'이라는 카페가 개업한다. 가면을 쓰고 서빙한다는 독특한 컨셉과 인테리어, 커피맛이 입소문을 타 어느새 맛집으로 유명해 진 상황. 기묘한 노인이 '나비 부인'에서 진상을 부린 다음날, '나비 부인'의 사장이 살해된 시체로 발견된다.

최혁곤의 단편. 단편집 <<탐정이 아닌 두 남자의 밤>>에 이어지는 시리즈라고 합니다. 시리즈 캐릭터로 전직 사회부 기자 박희윤과 퇴출 형사 갈호태 콤비가 등장하죠.

전작은 읽어보지 않았지만 한국에서는 보기 드문, 유쾌한 분위기의 버디물이더군요.
추리적으로 높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별로 대단한 트릭이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초반에 나왔던 수상쩍은 노인이 범인으로 체포되는 등 수수께끼의 여지도 없고요. 후더닛 물로는 영 아니올시다입니다.
오히려 인터넷 상에서 사람을 공격하여 죽게 만드는 일종의 '사이버 테러'에 대해 경종을 울리는 사회파적 측면이 강하며, 이것이 동기로 밝혀지는 과정이 이야기의 핵심인 와이더닛물로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좀 가볍고 유머러스한 분위기와 사회파적 설정이 잘 어울리는 것 같지는 않네요. 인터넷의 비방글로 자살을 한다는 것도 와닿지 않고요. 또 고3 수험생 투신 사건도 불필요할 정도로 질질 끄는 느낌입니다.
또 와이더닛 물로서 치명적인 약점인데, 동기를 드러내는 과정이 잘 짜여져 있지 않습니다. 진소담의 가족 관계 증명서 정도만 나름 증거일 뿐 추리가 모두 정황 증거에 기반할 뿐이고요. 아울러 진범 검은 뿔테가 살인을 저지른 이유는 불분명하다는 것 역시 큰 단점입니다. 남자 친구이기 때문에? 설득력이 낮아요.

그래서 제 별점은 2점. 읽는 재미는 있지만 추리적으로는 기대 이하였던 범작이었습니다. 그래도 버디물로서는 충분히 즐길만한 캐릭터가 등장하는 만큼, 단편집은 한번 읽어봐야겠습니다.

<<죽음이 갈라 놓을 때>>

기흥 보리산 자락에 있는 무당의 당집에서 처첨한 살인사건이 벌어진다. 완벽한 밀실 안에서 발견된 유홍석이 유력한 용의자로 체포되어 사형이 구형된다. 그러나 판사에게 유홍석의 편지가 도착하는데...
한국에서 보기 드문 본격 추리물들을 발표하고 계신 도진기 판사님 - 현 시점에서 변호사가 되셨지만 - 의 스탠드얼론 단편.

다른건 몰라도 작가가 뼛속까지 고전 본격물 애호가라는 것이 잘 드러나 있는 작품입니다. 1인칭의 수기 형태로 전개된다는 것, 끔찍한 사건이 무언가 초자연적인 현상과 얽혀 일어난다는 점이 완전 고전 스타일이니까요. 비교하자면 코난 도일경의 <>이라던가, 앰브로스 비어스의 <<아울크리크 다리에서 생긴 일>> 등에 수록된 작품들이 떠오릅니다. 제가 워낙 고전물을 좋아하기 때문일까요? 완전 제 취향이라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게다가 단지 스타일을 따온 것에 그치지 않고 무당 '인문희' 캐릭터가 압도적인 존재감을 뽐내기에 독특한 한국적 오컬트물로 보아도 손색이 없다는 것도 큰 장점이에요. 특히 그녀가 서상표의 집에 몰래 부적을 붙인 것이 드러나는 장면은 굉장히 섬찟합니다. 만약 영상화한다면 클라이막스로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어요.

그러나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문희에 비하면 서상표 캐릭터는 전형적인 한국 쓰레기 남자 캐릭터를 반복하는 것에 불과해 지루합니다. 무엇보다도 진상은 정말이지 어이가 없었어요. 괜찮은 고전 오컬트물이 갑자기 크리쳐 호러로 변질되는 느낌이었어요. 영 안 어울리게 말이죠. 게다가 잘린 목이 경동맥을 물어 뜯었다면 부검으로 밝혀지지 않았을리가 없으며, 유홍석이 현장 문을 잠가 밀실로 만든 이유도 끝까지 설명되지 않는 등 디테일에서 문제가 많습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보기 드문, 고전 스타일 오컬트 호러 스릴러임에는 분명합니다. 취향에 따라 호불호를 굉장히 탈 것 같은 작품인데 저한테는 호 쪽에 가까웠어요. 무엇보다도 앞서 말씀드린 부적이 드러나는 장면 하나만으로도 별점 2.5점은 충분합니다.

2017/06/17

건축왕, 경성을 만들다 - 김경민 : 별점 3점

건축왕, 경성을 만들다 - 6점
김경민 지음/이마

일제 강점기 시절, 폭발적으로 경성 인구가 증가하던 때 일본인들의 북촌 진출을 저지하고 조선인들을 위한 거리와 가옥을 만들어 공급한 건축왕 기농 정세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책은 크게 두 항목으로 구분됩니다. 전반부는 경성을 개발한 부동산왕, 이 책 표현에 따르면 '디벨로퍼'로서의 정세권을 그리고 있으며, 후반부는 조선 물산 장려운동, 조선어학회 활동을 통한 민족 운동가로서의 정세권을 그리고 있습니다.

일단 용비어천가 같은 위인전스러운 소개가 아니라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듭니다. 당시 경성 상황과 부동산 개발에 대해 현 시점에서도 충분히 통용될 수 있는 논리로 설명해 주고 있거든요. 정세권이 부동산 대폭락 상황에서 살아남아 재기할 수 있었던 것을 '부동산 부실자산의 즉각적 손절매'라는 현 시점 경제 이론으로 설명해 준다던가, 1930년대 후반 심한 주택난에도 건축 재료 등의 폭등으로 이전과 같은 마진을 기대하기 어려웠을 때 '임대 주택 시장 진출'이라는 큰 의사 결정을 한 이유를 현대의 민간 주택 임대 사업과 연결하여 설명해 주는 것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한옥을 개량하여 근대 한옥, 지금의 '북촌 한옥 마을' 주택들의 모태가 된 건양사의 건양 주택에 대한 상세한 설명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오랫동안 이어져 온 한옥의 개량이 어떤 생각으로 이루어졌는지 알 수 있어서 좋았어요. 건양 주택이 결국 마당을 중심으로 'ㅁ'자 형태로 구성된 근대 단독 주택의 모태가 된 것인데 이런 식으로 건축의 역사를 일람해 보아도 아주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 정세권이 왕십리에 주목했다는 것도 인상적입니다. 1930년대 정세권의 왕십리 토지 매입은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별볼일 없는 토지를 매입하는 것이지만 이는 일제의 경성 도시 계획을 이해하고 뉴타운 개발이 시작될 것이라는 선견지명이 있었던 것이라는 해석이거든요. 용산과 왕십리를 연결하는 남산 주회 도로 건설, 더 나아가 여기에서 시작되는 거대한 '동부축'의 건설을 내다 본 것이죠. 역시 부동산왕은 아무나 하는게 아닌가 봅니다.
그 외 일본이 일본인 경성 이주를 위해 현 일본인 거주지의 도시 미화 운동과 지금의 뉴타운 정책과 같은 빈 공간에 신도시를 건설하는 두가지 전략을 썼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된 내용입니다 1937년의 대경성 중심 100년 계획이 그것으로, 경성 인구 성장 억제를 위해 수원, 인천, 김포, 개성, 의정부, 춘천, 이천, 김량장 등 경성 주변 8개 도시를 신도시로 개발한다는 계획이었다고 하네요. 경성과 이 도시들을 남대문 등 6개 문에서부터 방사형 도로로 연결하고 완상형 도로로 각 도시를 서로 연걸시키는 엄청난 스케일이라 눈길이 절로 갑니다. 큰 스케일 탓에 결국 실현 되지 못했지만 꽤나 그럴듯하네요. 지금 시점에서 시사하는 바도 크고 말이죠. 부동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위치'와 '교통' 이라는 것이니까요.

후반부 조선물산장려운동, 조선어학회 활동에 대한 기록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줍니다. 친일을 하면 3대가 잘 살고, 독립 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인데 이미 당대 조선에서는 탑 클래스의 기업가가 적극적으로 민족 운동을 했다는 것이 놀랍기만 합니다. 이런 선각자가 독립 운동으로 막대한 재산과 건강까지 잃었음에도 지금 이름조차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현실은 정말이지 개탄을 금하기 어렵군요.
조선어학회 활동으로 일제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했으며, 이 때 '이명래 고약'으로 유명한 이명래 씨의 덕분으로 치료될 수 있었다는 것은 나름 귀중한 에피소드라 생각되고요.

이어서 정세권의 말년 등을 다룬 일종의 에필로그 형태로 마무리되는데, 말년에는 일종의 '주택협동조합' 운동을 펼치다가 실패했다고 합니다. 앞으로 가족수가 줄 것을 내다본 것, 월급쟁이로 살면서 생활비와 식비가 많이 들 것이라 주택은 적정 크기여야 하고 대지에서 소출을 얻어 비용을 절감해야 한다는 발상으로 지금은 상식이 된 흐름을 미리 읽어내었다는 점은 과연 부동산 왕 답습니다. 자급자족에 대한 이론도 단지 농경이 아니라 태양광 발전 등 현대 기술을 접목하면 아주 틀린말도 아니니까요. 너무 시대를 앞서가서 실패했다는 것이 안타깝기만 할 뿐입니다. 성공했더라면 잃었던 재산을 복구하고 다시 대한민국의 부동산 왕으로 남을 수도 있었을텐데 말이죠.

물론 단점이 없지는 않습니다. 가격에 비하면 양이 부실하다는 점이 대표적입니다. 정세권이라는 인물의 부동산 왕으로서의 행적과 독립 운동이라는 두가지 축만 다루지 정작 출생부터 출세할 때 까지는 대충 넘기는 탓이 큽니다. 이런 부분까지 보충했더라면 전형적인 위인전이 되었을 수는 있겠지만 그래도 출생 및 성장 과정이 궁금한 것은 어쩔 수가 없네요.

하지만 단점은 사소할 뿐입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덧붙이자면, 앞으로는 독립 운동한 분들이 대접받고 잘 사는 나라가 되었으면 합니다. 최소한 친일파보다는 잘 살아야죠...

2017/06/16

어둠 속의 일격 - 로렌스 블록 / 박산호 : 별점 2점

어둠 속의 일격 - 4점
로렌스 블록 지음, 박산호 옮김/황금가지

9년 전 연쇄 살인을 저질렀던 얼음송곳 살인마가 체포된다. 그러나 7건의 살인 사건 중 한건에 대해서 체포된 피의자 피넬은 강력하게 부인한다. 그가 부인한 바버라 에팅거 사건 피해자의 아버지 찰스 런던은 은퇴한 전직 경찰 매튜 스커더에게 이 사건의 진범을 찾아내 줄 것을 의뢰하는데...

간만에 읽은 로렌스 블록의 매튜 스커더 시리즈 장편.
특이한 점이라면 매튜 스커더가 술독에 빠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냥 마시는 커피조차 버번을 타서 먹는 정도로 중반에는 술에 떡이 되는 묘사까지 등장할 정도에요. 그래서 저는 시리즈 후기작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800만가지 죽는 방법>> 바로 직전인 1981년 작품이더군요. 마지막 장면에서 알콜중독 조각가 재니스가 알콜 중독자 갱생회에 간다고 통보하는데 그 때문에 금주 결심이 서게 된 것이 아닐까 싶네요. 여튼, 세상 다 산것 같은 관록을 보여주는데 -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실 자식들이 손자들을 낳기 전까지는 자신의 아이들에 대해 잘 모른다 (21p) - 의외로 초기작이라는 점에서 놀랐습니다.
또 다른 특이한 점은 작품은 매튜 스커더 시리즈 치고는 짤막한 분량이라는거죠. 260 페이지 정도밖에는 안되니까요.

하지만 짤막한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묘사는 여전히 근사합니다. 특히 특정 상황에 대해 어떤 사물이나 소재를 빗대어 그리는 글들이 눈에 띱니다. 이혼한 아내와 전화 통화를 하면서 오래 키운 반려견이 안락사된다는 것을 듣게되는 장면이 대표적입니다. 이 반려견을 통해 그들의 결혼 생활도 서서히 죽어갔다는 것을 독자들에게 강하게 드러내거든요.
또 작품 내내 선보이는 매튜 스커더의 그야말로 고전적인, 발로 뛰는 수사 역시 인상적입니다. 사건 관계자들을 우직하게 만나 인터뷰하는 것이 수사의 전부인데 그것도 아날로그 시대, 즉 핸드폰과 컴퓨터가 없는 시대가 무대라 공중전화, 전화번호부 및 기억력에 주로 의지한다는 점에서 시대를 느끼게 해 줍니다.

추리적으로는 역시나 별로 대단한 건 없어요. 아니, 밀도는 부족한 편입니다. 진범 버튼 하버메이어를 밝혀낸 과정의 설득력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단지 자신이 살던 집 주소를 정확하게 이야기하지 않았다고 의심하는 것은 잘못이죠. 자식이 없다고 거짓말 한 것이 드러나는 장면은 괜찮았지만 역시 증거력은 부족해요.
무엇보다도 동기의 설득력이 낮습니다. 버튼이 아내를 죽음을 가장하여 살해하기 위해 예행 연습을 한 것이 진상인데 왜 이혼을 하기 힘들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너무 부족해요. 실제로 범행을 저지르고 나서는 손쉽게 이혼을 한 것으로 볼 때 더더욱 설득력이 낮죠. 아무리 아내가 밉다 하더라도 이혼을 하기 힘든 별다른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닌데 현직 경찰 신분으로 살인을 저지른다? 솔직히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
게다가 버튼의 말 대로 매튜 스커더는 경찰도 아니고 어차피 증거도 없기 때문에 절대로 그를 체포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양심을 건드리며 자수하게 만드는데 성공하지만 이건 버튼이 착해서라고 밖에는 설명이 안됩니다. 마지막 버튼 아내에 대한 반전도 놀랍기는 하지만 솔직히 왜 나왔는지 잘 모르겠고요.

그래도 매튜 스커더의 추리법이 설명되는 것 정도는 이채로왔습니다. "사소한 점들을 모으고 여러 사람에게서 받은 인상들을 흡수하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해답이 마음속에 팍 떠오르죠."라는 식으로 논리가 아니라 '직감'에 의존한다고 스스로 밝히거든요. 그런데 전직 형사로 발로 뛰는 수사가 특기라 탐문과 끈기에 의존하는 전형적인 경찰이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일종의 천재형이라는 점이 신기했습니다. 오랜 경험을 토대로 하여 갖춘 추리법도 괜찮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의사의 아내가 살해됐을 땐. 남편이 범인이에요. 증거는 상관없어요. 항상 의사가 범인이에요."라고 말하는 장면이죠.
아울러 얼음 송곳에 대한 이야기도 아주 흥미로왔어요. 80년대지만 모두들 냉장고를 가지고 있고, 얼음 장수가 배달을 해 주는 것도 아니니 얼음 송곳은 살인 말고는 쓸데가 없다!는 논리로 실제로 하나 사러가 보니 아주 가끔 하나씩 팔릴 뿐이라는 증언을 듣는 것이 요지로 사건이 발생했던 9년전 철물점, 잡화점에서 얼음 송곳을 사간 사람을 탐문했어야 하는 논리로 귀결되는데 아주 그럴듯 했어요. 본 편과는 별 상관은 없습니다만.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짧다는 점과 묘사는 좋지만 '매튜 스커더' 시리즈로 보기에도 애매하고 추리적으로도 좋다고 하기 어렵습니다. 시리즈의 대표작도 아닌 만큼 권해드리기는 어렵겠네요.

2017/06/11

후쿠오카 살인 - 김성종 : 별점 1점

후쿠오카 살인 - 2점
김성종 지음/뿔(웅진)

국내 추리문학의 거목인 김성종 선생님의 근간입니다만... 단언컨데, 그동안 읽은 책 중에서도 최악을 다툴만합니다. 감히 '작품' 이라는 표현을 붙이기도 어려운 지경의 종이 무더기에요. 얼마전 <<하카다 돈코츠 라멘즈>>가 '나무야 미안해' 수준이라면 이건 미안하다는 말로 끝낼 수준이 아닙니다. 그 정도로 최악이에요.

지나와 봉수 부부, 세호와 서라 부부가 등장하고 그들이 각자 상대방 배우자들과 불륜을 저지른다는 시대착오적인 도입부 설정부터 가관입니다만, 유지나가 이세호를 시켜 서봉수를 죽이기 위한 일본 여행을 떠나는 본편 이야기부터는 더 걷잡을 수 없어집니다. 먹고살기 힘든 인쇄소 사장에 불과해 보였던 이세호의 정체가 사실은 국내 위조 조직에서도 거물인 범죄자로 과거 살인을 포함한 수없이 많은 범죄를 저지른, 변장의 달인익도 한 범죄의 황제라는 진상은 어이를 상실케 만들고요. 알고보니 옆집 남자가 팡토마나 고르고 13이었다는 이야기인데 이렇게 설정을 변경하려면 최소한의 설득력은 보장해 줬어야 하지 않을까요? 뜬금없기가 과거 김삼 화백 만화를 보는 느낌이 들 정도에요.

더 웃기는 것은 이세호가 개중 나은 편이라는 사실입니다. 여성들 캐릭터는 모두 삼류 성인만화에나 나옴직한 색정광들로 이해의 영역을 넘어섭니다. 그 중에서도 형사 구밀라 캐릭터는 최악 오브 더 최악이에요. 섹스 중독증이라는 설정부터가 유치하지만 등장하는 모든 남자들과 관계를 가진다는 전개로 더블맨을 먼저 만나기위해 위조업자 황사장과 관계를 갖는다던가, 한국과 일본 양국 경찰에게 쫓기는 흉악범이 된 더블맨 이세호와 마지막에 관계를 갖는다던가 하는 식입니다. 섹스 중독증에 걸린 이유도 어처구니 없습니다. 어렸을 때의 성폭행 때문이라는데 요새 삼류 성인만화도 이렇게 막 나가지는 않을것 같군요. 게다가 이 조교로 육노예를 만든다는 싸구려 성인물 설정을 구밀라 한명 뿐 아니라 미치코라는 다른 여성에게도 써먹는 것은 정말이지 어안이 벙벙할 지경입니다.

추리적으로도 최악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우선 이세호가 일본에서 위조지폐를 구태여 쓴 행위부터가 설명되지 않습니다. 그깟 잔돈푼이 뭐가 중요해서 청부살인을 앞두고 사건을 일으켰을까요? 자신의 위조 기술을 괴신했다기에는 설명이 너무 부족합니다.
서봉수가 유지나를 청부살해하는 전개도 억지스럽습니다. 유지나와 이세호가 자신의 목숨을 노린다는 것을 알게된 시점에서 유지나를 죽일 하등의 이유는 없어집니다. 이혼이 충분히 가능한 상황이니까요. 게다가 유지나가 살해된 이후는 더 문제입니다. 적극적으로 피해자 남편 역할을 수행하지 않고 두 여성 사이에서 왔다갔다 하면서 섹스나 하려고 하는데 이건 말도 안되죠. 경찰이 자신을 찾아온 것도 잊어버렸단 말인가요? 서봉수가 문서라의 시체를 발견했을 때의 대응도 최악입니다. 당연히 이세호의 불륜을 눈치채고 쳐들어온 것이라고 둘러댔어야죠. 이렇게까지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 주역을 보는 것도 참 오랫만이에요.
그나마 괜찮았던 것은 도다이, 미치코가 유지나를 죽이기 위해 아무런 연고 없는 부랑자를 동원하여 일종의 자살 테러를 하는 것 정도인데 이 역시 미치코와 범인간의 관계를 작위적으로 설정했기 때문에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제목처럼 일본 홋카이도에서 후쿠오카에 이르는 장대한 여정을 녹여낸 것 만큼은 나쁘지 않습니다. 등장하는 여행 코스도 꽤 그럴듯하고요. 허나 일본 여행은 작품과 하등의 관계가 없다는 결정적 문제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일본에서 살해하는게 여러모로 더 쉽다? 무슨 근거가 있는지 알 수가 없네요. 일본도 나름대로 유능한 경찰력을 보유한 선진국인데 말이죠. 또 이 책을 읽으면 일본에서 살인을 저지르는 것은 무모한 행동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더군요. 일본 여행 설정은 아무래도 일본에 대해서 잘 알고 많이 가 봤다는 아는척에 분량을 늘리기 위한 꼼수가 아니었나 싶을 정도입니다. '미우라 아야코 문학관'에 대해 장황하게 풀어내는 등 작품과 상관없는 작가 개인 생각이 너무 많이 드러나는 것도 문제였고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1점. 김성종 선생님은 척박한 한국 추리문학을 어떻게든 일으키셨던 이 바닥의 거목이시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항상 존경하고 있고요. 그러나 이 쓰레기만큼은 도저히 용서가 안되네요. 과거의 좋은 기억만 안고 가는게 훨씬 좋을 뻔 했습니다. 여러분들도 이 쓰레기만큼은 주의하시고 피하시기를 간곡히 요청드립니다.

2017/06/10

일곱 가지 이야기 - 가노 도모코 / 박정임 : 별점 2.5점

일곱 가지 이야기 - 6점 가노 도모코 지음, 박정임 옮김/피니스아프리카에

열아홉살 대학생 이리에 고마코는 <<일곱 가지 이야기>>라는 책을 읽고 흠뻑 빠져든다. 그래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작가 사에키 아야노에게 팬레터라는 것을 써서 보낸다. 마침 자신 주변에서 일어났던 기묘한 사건을 곁들여. 사에키 아야노는 직접 추리한 결과를 고마코에게 답장으로 보내준다...

일상계 미스터리로 유명한 가노 도모코단편집. 작가의 다른 단편집은 그동안 몇 권 읽어보았는데 평균적으로는 별로였었습니다. 이야기도 재미없고 추리적으로도 그닥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책도 별로 기대를 하지 않았었죠.

하지만 이 책은 생각보다는 재미있었습니다. 일단 구성이 독특해요. 제목 그대로 <<일곱 가지 이야기>>라는 가공의 책에 수록된 이야기 한 개와 주인공 고마코가 만나는 일상계 사건 하나가 조합되는 식인데 이렇게 엮이는 작품은 거의 처음 본 것 같아요. 가공의 이야기와 엮이는 작품이야 제법 있지만 작품 속 소설은 그냥 주인공 고마코가 좋아하는 대상이며, <<일곱 가지 이야기>> 수록작에 대해 고마코가 어떤 식으로든 설명을 한 후 실제 일상 속에서 그 이야기와 비슷한 사건이 벌어진다는 전개거든요. 그리고 고마코가 탐정역인 사에키 아야노에게 편지를 보내고, 그의 추리를 답장으로 받는다는 일종의 '서간문 추리소설' 이라는 독특함만큼은 충분히 인상적이었어요.
가공의 소설 <<일곱 가지 이야기>>도 일상계 추리물이고, 고마코가 접하는 사건 역시 평범한 일상 속에서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을 다루고 있는, 그야말로 더블 일상계라는 것도 대단하다 싶었고요.

그러나 단점이 없지는 않습니다. 일단 지나치게 작위적인 이야기들이 제법 많습니다. 게다가 이게 과연 추리물인가 싶을 정도로 추리적으로는 많이 부족하기도 하고요. 아무리 일상계라 하더라도 요네자와 호노부 등 다른 일상계 작가의 작품과 비교해보면 추리물이라고 하기는 민망하다 싶은 수준의 이야기가 너무 많아요. 7편의 단편 속 수수께끼가 2개씩이니 모두 14개의 일상계 추리물이 담겨있는데 추리적으로 깔끔하고 괜찮다 싶은 것은 한 4편, 30%도 안될 정도입니다.
이럴 바에야 억지로 두 작품을 연결할 필요가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평범한 대학생 고마코와 동네 오빠 (?) 세오 컴비의 일상계 추리물, 그리고 하야테와 아야메 아가씨의 전원풍 일상계 추리물 두편으로 나누어 발표하는게 더 낫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래서 별점은 2.5점. 재미있고 독특한 일상계 작품이지만 추리적으로는 많이 부족해서 감점합니다. 각 단편별 간단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수박 주스의 눈물>>
<<일곱 가지 이야기>>속 단편은 <<수박 귀신>>. 하야테 소년이 밤새 수박밭을 지키지만 결국 수박이 도난당한 사건의 진상을 밝혀내는 이야기. 이야기 시작으로 나쁘지 않았어요.
그러나 본편 이야기는 '수박 주스'라는 소재로 <<수박 귀신>>과 연결시키려는 시도는 여러모로 무리였다 생각됩니다. 고마코의 친구 미아이네 집에서 키우는 개와 혈흔을 연결시키는 과정도 너무 작위적으로 짜여진 티가 나고요. 좀 긴 이야기였다면 복선처럼 잘 숨길 수도 있었겠지만 단편이다보니 노골적이다 싶을 정도로 단서가 드러나더라고요. 아이가 푸딩을 달라는 말로 어머니가 집에 없다고 추리하는 것은 분명 비약이고요. 그래서 이래저래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모야이의 쥐>>
<<일곱 가지 이야기>>속 단편은 <<모야이의 쥐>>인데 별로였습니다. 금으로 만든 쥐가 가짜였다는 것은 그다지 신선한 내용은 아니었거든요. 독자가 추리할만한 정보도 부족하고요.
그러나 본편 이야기는 빼어납니다. 독특한 문양 중심의 추상화가 위, 아래가 뒤집혀 전시된다는 진상이 아주 그럴듯했기 때문이에요. 별점은 3점입니다.

<<한 장의 사진>>
<<일곱 가지 이야기>>속 단편은 <<파란 하늘>>로 하야테와 친구들의 파란색 그림물감이 없어진 사건에 대한 진상을, 본편 이야기에서는 고마코의 어린 시절 사진을 훔쳐간 친구가 그것을 돌려준 이유가 무엇인지를 추리하는 작품입니다. 두 편 모두 일상계다운 아주 좋은 이야기였어요. 무엇보다도 가족간의 사랑과 추억을 다루고 있는 따뜻한 이야기라 더욱 마음에 들었습니다. 마침 지나가던 친구가 사진에 찍혔다는 작위적인 우연은 옥의 티지만 단점은 사소할 뿐입니다. 이 단편집의 베스트로 꼽고 싶네요. 별점은 3점입니다.

<<버스 정류장에서>>
<<일곱 가지 이야기>>속 단편은 <<하늘색 나비>>로 하야테와 친구들의 열광을 불러왔던 한 친구의 대형 파란색 나비 표본이 사실은 가짜였다는 이야기입니다. 본편은 기묘한 노부인의 행동을 다루고 있고요. 그런데 두 이야기가 잘 연결되지는 않으며, 노부인이 꽃을 심으려 한다는 것은 쉽게 추리할 수 있는 등 그다지 건질건 없었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1만 2천년 전의 직녀성>>
더위를 피해 천체 투영관을 찾아간 고마코가 전편에서 만났던 남자 세오를 다시 만나는 이야기가 <<일곱 가지 이야기>> 속 <<대숲이 불탄다>>라는 이야기와 함께 전개되는 작품. <<대숲이 불탄다>>는 할아버지, 할머니 간 오갔던 연애 편지를 찾는 이야기인데 솔직히 추리물이라고 부르는 것이 힘들 정도입니다. 상식적으로 근처를 찾아보는게 당연하니까요.
본편 이야기도 추리적으로 부족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장난감 공룡 애드벌룬이 한밤중에 백화점 옥상에서 수십킬로미터 떨어진 유치원으로 이동한 사건의 진상이 무엇인지?인데 당연히 공중에 뜨게 만들어서 날려보낸 것으로 의외성이 부족합니다. 추리의 여지도 없고요. 얼음으로 눌러 놓았다는 등의 디테일은 있지만 대단치는 않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하얀 민들레>>
친구 후미의 부탁으로 초등학교 여름 캠프에 자원 봉사자로 참여하게 된 고마코가 특이한 아이 마유키를 전담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 마유키는 모든 꽃, 심지어 민들레까지 하얀 색으로 칠해버리는 특이한 아이라는 설정이죠.
<<일곱 가지 이야기>>에서는 <<내일 피는 꽃>>. 하야테 아버지 어린 시절 친구가 빌려간 보물 상자와 푸른 수국이 등장하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알루미늄에 반응하여 수국이 파랗게 변하는 것은 <<푸른 제라늄>> 등에서 익히 많이 사용되었던 소재라 특이한 것은 없어요. 추리라고 하기에도 뭣 할 정도죠. 본편의 핵심 수수께끼는 '하얀 민들레'의 정체에 대한 것인데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실제로 있다는 것이 진상이므로 이 역시 추리라고 할 게 없고요. 왠지 점점 추리물에서 멀어져가는 느낌이에요. 별점은 2점입니다.

<<일곱 가지 이야기>>
<<일곱 가지 이야기>>에서는 고양이 절에서 얻어온 새끼 고양이가 사라진 이유가 무엇인지?를 그리고 있는데 모성애를 강조한 이야기지만 현실적이지가 않습니다.
본편은 마유키를 매개로 사에키 아야노, 일러스트레이터 아소씨 등 관계자 모두가 만나는 대단원이죠. 마지막 이야기로는 괜찮습니다. 모든 등장인물을 대상으로 이야기를 한 번 정리해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마유키가 어머니의 양육권 포기를 단념하게 만들기 위한 깜찍한 실종 자작극이 핵심으로 추리의 요소는 거의 없기에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2017/06/09

인어공주 - 기타야마 다케쿠니 / 김은모 : 별점 2.5점

인어공주 - 6점 기타야마 다케쿠니 지음, 김은모 옮김/엘릭시르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폴레옹 황제의 실각 이후 동맹국이었던 덴마크는 노르웨이에 해당하는 영토를 빼앗기는 등 빈국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덴마크 왕 프레데리크 6세의 둘째 아들 크리스티안 왕자는 스웨덴의 실력자 가문의 딸 루이세와 결혼했다.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는 결혼식 직후 피살된 시체로 발견되었다.
한편 덴마크 군인이었던 아버지가 실의에 빠져 병사한 후, 의지할 데 없는 나날을 보내던 학생 한스 안데르센은 우연히 만난 화가 루트비히 그림과 함께 해변에서 자신이 인어라고 주장하는 셀레나라는 여성을 만났다. 그녀가 심장을 내걸고 인간이 된 목적은 왕자 살인 사건의 진범이 누구인지를 밝히는 것이었다. 그녀를 도와 그림과 안데르센은 사건 수사에 뛰어드는데...

기타야마 다케쿠니의 판타지 본격 추리물. 요네자와 호노부<<부러진 용골>>과 비슷한 느낌의 작품입니다. 
하지만 실제 역사를 이야기에 강하게 끌고 들어온다는 점에서 큰 차이를 보여줍니다. 나폴레옹에게 반해버린 마녀가 나폴레옹을 돕기 위해, 크리스티앙 왕자와 루이세 왕자비간 결혼을 파탄내어 스웨덴과 덴마크 간 동맹을 무너트리려 했다는 왕자 살해 동기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 외에도 실제 덴마크 역사를 이야기에 많이 삽입하고 있어서 이채로왔어요. 화자 역할로 한스 안데르센을, 탐정 역할로 그림 형제의 막내 루트비히를 내세우고 있는 것 역시 팩션 분위기를 더해주고요.
이러한 실제 역사, 인물과 대척점에 있는 '인어 공주' 이야기도 괜찮습니다. 안데르센동화를 가져와 추리 소설로 변주하고 있는데, 후더닛, 하우더닛 물로는 충분한 수준의 본격물이라 할 수 있어요. 도개교를 이용하여 시체를 발코니로 옮겼다는 핵심 트릭이 특히 그럴듯했습니다. 작품 분위기하고도 잘 어울리는 트릭이기도 하고요. 세세한 별궁 묘사는 물론 한스와 셀레나가 별궁에서 도망다닐때 도개교는 아이의 힘으로도 끌어올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등 단서도 공정하게 제공됩니다. 시체가 도개교 끄트머리에서 떨어지지 않았을지?라는 의문은 존재하며, 이 정도는 추가로 설명해 주었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확실히 나쁘지 않았어요. 작가가 워낙에 물리 트릭을 많이 내세워 '물리의 기타야마'라고 불리울 정도라는데 그 명성에는 충분히 값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마녀의 단도는 마녀의 갈비뼈로 만든 것인데 마녀의 시체 갈비뼈와 입수한 단도의 손잡이 모양이 다르다는 것에서 마녀가 사실은 2명이라는 것을 끌어내는 추리도 좋습니다. 마녀가 일종의 '대를 잇는' 존재라는 아이디어도 나쁘지 않았고요.
여러가지 가설을 늘어놓고 가장 합리적인 가설을 선택하는 루트비히의 추리법도 괜찮습니다.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가설이 전부 등장하며, 가설 모두 논리적으로 분석되어 설득력이 높은 편이에요. 개인적으로는 마녀가 마법으로 왕자를 죽이지 않은 이유가 가장 궁금했는데 구태여 '살인 사건'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 마녀의 마법이라면 자연사나 사고사를 노렸을테니 - 말이 안된다는 이론이 기억에 남네요.

하지만 문제가 없지는 않습니다. 우선 셀레나가 사건 수사에 왜 뛰어드는지 잘 모르겠어요. 바닷속 나라에서 인어공주 사건 때문에 내분이 생겼다는데 설득력이 약합니다. 바다 속 왕국은 어차피 덴마크와 아무 상관도 없는데 공주가 왕자를 죽이건 말건 그게 왜 큰 문제가 될까요? 설령 문제가 된다고 하더라도, 공주가 이미 죽은 이상 처벌도 끝난 것이고요.
핵심 동기도 본격물다운 설득력은 갖추고 있긴 하나 설정에 오류가 있습니다. 인어 공주는 원래 크리스티앙 왕자를 사랑해서 인간이 된 것인데, 마녀가 됨으로서 그 사랑을 잊어버리고 나폴레옹에 대한 사랑만 간직하게 된다는 것은 말이 안되죠. 나폴레옹을 사랑한 인어도 마녀를 죽이고 마녀가 된 것으로 묘사되기 때문입니다. 크리스티앙 왕자를 사랑한 인어가 이전 마녀를 죽였다면 사랑의 대상도 바뀌는게 더 합리적이잖아요?
아울러 루이제가 왕자를 살해한 것도 마녀에게 조종당했다고 보기에는 석연치 않습니다. 그냥 단순히 질투 때문이었다고 하는게 훨씬 깔끔했을 것입니다. 이 부분은 동화 속 주인공 중 하나인 루이제를 배려하기 위한 티가 역력합니다.
개인적을 이런 내용들은 싹 정리하는게 훨씬 좋았을 것 같아요. 물거품이 된 인어 공주가 왕자 살인범의 누명을 쓴 탓에 진상을 밝혀 억울함을 풀어주려고 언니 셀레나가 나서고, 범행은 루이제 왕자비가 질투 때문에 저질렀다는 정도로 말이죠. 이렇게 된다면 장점이라고 했던 실제 역사 이야기가 작품에 거의 녹아들 여지가 없다는 것이 단점이지만 추리적으로 설득력을 높이려면 이 편이 훨씬 깔끔했으리라 확신합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제 별점은 2.5점. 아이디어도 나쁘지 않고 추리적으로도 괜찮지만 지나치게 살을 붙인 것이 좀 아쉽습니다. 조금만 힘을 뺐더라면 훨씬 좋았을텐데, 최소한 <<부러진 용골>>급의 작품은 되었을텐데 말이죠. 그래도 워낙에 독특한 점이 있는 만큼, 궁금하신 분들은 한번쯤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네요.

2017/06/06

도쿄에 왔지만 - 다카기 나오코 / 고현진 : 별점 2점

도쿄에 왔지만 - 4점
다카기 나오코 지음, 고현진 옮김/artePOP(아르테팝)

이런저런 일상계 에세이 만화로 알려진 다카기 나오코의 도쿄 상경기. 그녀가 1998년 고향을 떠나 급작스럽게 도쿄로 올라와 정착하는 과정을 유머러스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상경기' 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한 때 많았던 컨텐츠죠.

그러나 기대했던 '상경기' 특유의 재미는 거의 없습니다. 상경기 특유의 재미라면 오래전 '시골 영감 서울 나들이'에서처럼 좌변기 위에 쪼그려앉는다는 식의 시골과 도시의 차이, 무지에서 비롯되는 개그를 들 수 있는데 아쉽게도 등장하는게 전무해요. TV와 같은 이런저런 매체를 통해 익숙해 졌을 뿐더러 저자도 상경 전 도쿄에 여행온 적이 있으니 어찌보면 당연합니다. 더 이상 '상경기' 로는 재미를 줄 수 없는 시대인 것이죠. 그나마 등장하는 것이라고 해 봤자 전철을 갈아타기 힘들다 정도가 그나마 등장하는데 그닥 재미있지는 않았습니다.
아울러 대단한 드라마도 없습니다. 다카기 나오코의 삶 자체가 평범하고 문하기 때문입니다. 물장사에 빠지거나, 기둥 서방과 동거하거나, 사채를 땡겨쓴 것도 아닌 나날들로, 작중 등장하는 가장 큰 위기라고 해 봤자 술을 먹고 막차를 놓친 다음 길까지 잃는 정도의 에피소드에 불과합니다.

상경기다운 이야기는 가난뱅이 에피소드들이 전부입니다만... 그것도 돈이 없어서 못 먹는 몬자야키를 누군가 사준다, 고향에 갔더니 오래되고 낡은 옷을 놀려서 큰 맘 먹고 새로 샀는데 그 옷만 입어서 금방 낡아버렸다라는 식으로 잔잔하고 훈훈한 이야기들로 딱히 빵터지는 부분은 없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 작가 특유의 긍정 마인드는 즐겁고 책의 만듬새는 좋지만 작가의 광팬이 아니라면 딱히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가격도 만원이 넘어가는 만큼 더더욱 추천하기는 어렵네요. 분량도 150 여 페이지밖에 안되거든요. 이전 작품들과는 다르게 아예 컷조차 없는, 일러스트에 글이 결합된 형태인데 그만큼 여백이 많아서 페이지의 밀도가 높지도 않습니다.

덧붙이자면, 여성 만화가의 도쿄 상경기라는 점에서는 사이바라 리에코의 <<만화가 상경기>>와 비교됩니다. 어두운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이바라 리에코와 그래도 세상은 살만한 곳이고 훈훈하다는 것을 전해주는 다카기 나오코의 대결이죠. 개인적으로 재미만큼은 사이바라 리에코가 압도적다 생각되네요.

2017/06/04

요리책 쓰는 선비, 술 빚는 사대부 - 김봉규 : 별점 2.5점


요리책 쓰는 선비, 술 빚는 사대부 - 6점
김봉규 지음/담앤북스

우리나라 유명 종가와 그 종가에 전해져 내려오는 독특한 음식을 소개하고 있는 책입니다. 제목대로 크게 두 항목, 먹치레와 술치레로 구분됩니다. 두 항목 구성은 약간 다른데 소개되는 내용은 항목별로 동일하고요.

먹치레의 경우 1장 '선비, 셰프가 되다'를 예로 들자면, 안동 계암종가와 삼색어아탕을 소개하면서 <<수운잡방>>이 안동 광산 김씨 가문의 탁청정 김유와 그 손자 계암 김령이 저술한 것이며, 이 책이 안동 계암종가에 물려 내려오면서 관련된 음식들이 전해졌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수운잡방>>에 나오는 30여가지 음식과 술을 재현하였는데 삼색어아탕은 그 중 대표적인 것으로 은어, 숭어를 이용해 완자를 만든 후 은어 삶은 물에 집간장으로 간은 해 탕을 만들어 완자, 녹두묵, 대하에 탕을 부어 완성한다는 간략한 레시피로 끝납니다. 그리고 '김유'라는 인물에 대해 2페이지를 할애한 설명을 추가하고 있고요. 먹치레 편의 모든 항목 구성이 이와 같습니다.

종가와 종부들의 삶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는데 그들이 어떻게, 무엇을 먹고 살았는지를 알게 되니 왠지 모를 친근감이 느껴져서 좋았습니다. 당연하지만 서애 류성룡이 '중개' (일종의 약과)를 좋아했다던가, 고산 윤선도는 의술에 밝아서 직접 장수를 위한 술을 담구어 먹었다던가 하는 것들 말이죠. 일제 강점기 바둑고수 노근영의 삶 이야기도 재미있었습니다.
처음 안 인물이지만 독특한 인물도 많네요. 천재로 유명했다는 노사 기정진의 청나라 사신 수수께끼 풀이는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류이주라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실천인을 알게 된 것도 수확이고요. 그의 자택인 '운조루'에는 항상 쌀 두가마니가 들어가는 뒤주가 있어서 배고픈 동네 사람들은 누구나 퍼 갈 수 있었다고 하고 심지어 굴뚝까지 낮다고 합니다. 밥 짓는 연기가 멀리 퍼지는 것을 막기 위험이었다니 대단해요.
종가 고택에 대한 설명들도 재미난게 많습니다. 전주 인재종가의 판소리 공연을 위해 지었다는 칠량집 학인당, 앞서 말씀드린 노근영의 자택이었던 노참판댁 고가는 한번 찾아가 보고 싶어집니다. 노참판댁 고가는 특별한 건 없지만 노근영이 바둑 내기에 건 탓에 주인이 27번이나 바뀌었다는 이력이 호기심을 당기거든요.

잘 모르는 종가라도 음식 분야에서 흥미로운 것들도 많습니다. 지촌종가의 여름철 고급 별미라는 '건진국수'는 정말 맛있을 것 같아 꼭 한번 먹고 싶어지더군요. 국수를 삶아 바로 건져 사용하기 때문에 붙은 이름인데 예상외로 뽑아낸 국수가 아니라 칼국수라는게 의외였습니다.
성주 사우당종가의 '은어 국수'는 은어를 잡아 내장을 제거하고 손질한 뒤 푹 고아 육수를 만드는 것인데 지금은 물이 오염되어 은어를 거의 잡을 수 없어 요리가 끊길 위기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라면 요리왕>>에 나오는 세리자와의 라면이 말린 은어로 육수를 내는 것이었죠. 이렇게 말린 은어를 이용하여 육수를 내어 재현하면 될 듯한데 맛이 많이 달라지려나요?

이어지는 술치레 역시 재미있는 내용이 가득합니다. 술치레는 종가를 별도로 상세하게 설명하지 않고 술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는 차이점은 있지만 항목 구성이 전부 같다는 것은 마찬가지고요.
구성은 어떤 집안에서 어떻게 전승되어 왔으며 지금은 누가 비법을 이어 빚고 있다는 유래에서 시작하여 어떻게 빚는지를 상세하게 알려주고 있으며 그 다음에 술의 특징과 잘 어울리는 안주, 그 집안 유명인에 대한 짤막한 소갯글이 덧붙여져 있는데, 제가 술을 좋아해서인지 더 재미있던것 같기도 하네요. 이렇게나 모르는, 안 먹어본 술이 많았다니 놀랍기만 합니다. 모두 18종의 독특한 전통주가 소개되는데 이름만이라도 들어본 것은 '교동법주'와 '안동소주' 뿐이니 말 다했죠. 그나마 교동법주와 안동소주도 제가 먹어본 것과는 뭔가 다른, 더 깊이있고 전통있는 술이 소개되고 있고요.

몇가지 흥미로운 것들만 소개해 드리자면, 교동법주는 오랫동안 만석꾼이었던 경주 최부잣집 가양주더군요. 술 이름에 '춘'자가 붙는 춘주는 귀한 술에 붙는 별칭으로 당나라 때 생겨났다고 합니다. 이화주가 점성이 높아 숟가락으로 떠 먹기도 했다는 것, 그리고 이화주의 梨花가 배꽃이 재료라는 뜻이 아니라 '배꽃이 필 무렵 빚는 술'이라는 것도 흥미로왔습니다.
육당 최남선이 꼽은 조선 3대 명주는 '관서감홍로', 전라도 '이강고', '죽력고'라는데 세가지 다 먹어보고 싶네요. 감홍로는 그 중에서도 이런저런 곳에서 언급되며 특히나 <<별주부전>>에서는 자라가 토끼에게 용궁에 가면 감홍로가 있다고 꾀며 <<춘향전>>에서는 춘향이 이도령과 이별하는 장면에서의 이별주가 감홍로라니 더더욱 그러합니다.
안동소주가 작금에 이르러 '명인 안동소주'에서 세계적 위스키가 되고자 2015년부터 오크통 숙성을 한다니 이 역시 꼭 한병 소장하고 싶습니다. <<맛의 달인>>에서 일본 술에는 스피리츠가 없다고 한탄하던 평론가가 오키나와 고주를 마시고 감탄한다는 에피소드가 갑자기 떠오릅니다.

이렇듯 재미있는 내용은 많지만 단점도 있습니다. 가장 큰 단점은 음식과 술에 대해서 소개에 그친다는 점이에요. 이런저런 정보들이 많기는 하지만 깊이는 많이 부족합니다. 종갓집 한곳당 음식 하나만 소개하는 구성도 아쉽고요. 어떤 종갓집은 대표 음식이 많은 곳도 있을텐데 말이죠. 이런 점에서 본다면 책보다는 영상 다큐에 더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또 지금 사업체로 발전한 종가와 종가 음식의 소개는 어떻게 하면 쉽게 먹을 수 있는지를 알려주려는 취지는 분명 있을 것입니다. 의련 백산종가의 '설뫼 망개떡'은 평생 독립운동에 헌신한 백산 안희제를 위함이라는 명분까지 있고요. 그러나 솔직히 광고로 보이는 것들도 많았습니다. '오희숙 전통 부각'이 대표적이죠. 그 외 전통주를 복원한 것들 모두 광고로 보아도 무방하지 않나 싶을 정도고요. 내용에 불만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럴거라면 협찬 형식으로 좀 더 저렴하게 내놓는게 낫지 않았을까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나쁘지는 않으며 이쪽 분야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입문서로는 괜찮습니다. 그러나 가격이 비싼 편이고 편집에서도 페이지 낭비가 심해서 가성비가 좋지만은 않아요. 읽으시기 전 참고하시길.

덧붙이자면, 종갓집별로 분리하여 책 한권씩을 따로 내는게 좋은 선택이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살림 지식총서' 정도 두께로 말이죠. "한국 종가의 먹치레와 술치레' 시리즈! 멋지지 않습니까? 가격만 괜찮다면 저는 구입 용의 있습니다.

2017/06/03

수고했으니까, 오늘도 야식 - 이시야마 아즈사 / 김은모 : 별점 3점

수고했으니까, 오늘도 야식 - 6점
이시야마 아즈사 지음, 김은모 옮김/북폴리오

구루메미식, 음식 관련 만화 홍수의 시대죠. 너무 많아서 꾸준히 사 모으는 몇몇 작품들 (<<술 한잔 인생 한입>> 등)을 제외하면 눈길이 잘 가지 않을 정도로 조금 피로감도 느껴지기까지 합ㄴ다. 그래도 이 작품은 한권으로 끝나는 작품이며 풀 컬러에 동화 일러스트같은 따뜻한 그림체가 마음에 들어 구입해 보았습니다.

그림 관련 일과 아르바이트로 나날을 보내는(듯한) 평범한 처녀인 작가의 하루하루의 끼니, 그 중에서도 주로 야식을 다루고 있는 작품입니다. 대단한 드라마도 없이 그냥 먹거리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먹거리에 관련된 짤막한 추억, 에피소드와 그날 그날 만든 먹거리에 대해 소개하고 맛있게 먹는게 전부니까요.
하지만 꽤 재미있었어요. 사람 사는 이야기가 뭐 그리 큰 드라마가 있겠습니까. 이 작품처럼 야식으로 뭘 먹을까 정도가 그날 그날의 가장 큰 고민이라는게 오히려 현실적이죠. 맛있는 걸로 세계 평화가 찾아오는 이야기보다는 훨씬 마음에 듭니다. 유사 작품들과 비교하면 '혼밥', '집밥'이 주요 소재라는 점,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훈훈하고 따뜻한 이야기라는 점, 레시피가 많이 수록되어 있다는 차별화 요소도 확실하고요. 작화도 좋은 편이에요.

무엇보다도 레시피들이 아주 마음에 듭니다. 집에서 해 먹음직한 것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오븐 등 거창한 도구도 쓰지 않고 전자레인지를 적극 활용하는 모습이 특히나 인상적이에요. 설겆이가 귀찮아 알루미늄 호일을 적극 사용하는 것도 제 스타일이고요. 두께 있는 재료도 넣을 수 있는 '토스터'를 사용하는 레시피가 간혹 있지만 프라이팬으로 대체 가능할 것 같더군요. 저자도 그렇게 소개하고 있고요.
등장 레시피 중에서 가장 도전해보고 싶은 것은 우동 겉을 물로 적시고 사발에 넣어 랩을 씌운 후 전자렌지에 5분 돌려 맛국물 + 참깨 + 파 + 후리카케 + 날계란 조합으로 먹는 간단 우동! 입니다.

이런 혼밥 야식 이야기 외에도 <<여러 가지 야식 편>>이라는 제목으로 밖에서 사 먹었던 음식들을 소개하는 부분도 수록되어 있습니다. 맛집을 찾아 돌아다니는 흔해 빠진 형식이지만 역시나 따뜻한 그림이 잘 어울려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특히 컬러가 일러스트 느낌을 주는 앞부분 이야기와 다르게 모두 펜으로 그려진 전형적인 만화 형식으로 그려져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컬러보다는 이쪽 작화가 더 마음에 들었거든요. 더 선명하면서도 임팩트가 있었다고나 할까요? 약간 <<카페 알파>> 느낌도 나고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3점. 구루메, 미식, 음식 만화의 홍수 속에서 소박하게 자신의 위치를 가져갈 수 있는 그런 작품입니다. 이런 류의 만화를 좋아하시는 분들께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2017/06/02

시체가 켜켜이 쌓인 밤 - 마에카와 유타카 / 이선희 : 별점 2.5점

시체가 켜켜이 쌓인 밤 - 6점
마에카와 유타카 지음, 이선희 옮김/창해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985년 여름, 한 남자가 여섯 여자와 집단 자살을 했다. 남자는 과거 도쿄대 조교수 출신의 기우라 겐조로 자살 전 무려 10명을 살해한 혐의로 쫓기고 있었다.
사건 당시 정보 누설이 알려져 자살한 이가라시 형사의 조카인 '나'는 이 사건을 추적하는 논픽션을 쓸 것을 결심하고 여러가지 조사와 인터뷰를 통해 사건을 처음부터 차근차근 재구성해 나가는데...


마에카와 유타카의 2015년 작품. 30년 전 벌어진 연쇄 살인, 집단 자살 사건을 현대의 르포 작가가 뒤쫓아 그 진상을 밝혀낸다는 구성으로 과거 시점의 이야기와 현재 시점의 인터뷰가 교차되어 전개되는 구성입니다.

작가의 전작 <<크리피>>는 전에 읽고 리뷰를 올린 적이 있는데 두 작품의 유사성이 눈에 많이 띄네요.
가장 큰 유사점은 주위 사람들을 일종의 세뇌 상태로 만들어 범죄에 끌어들이거나 피해자로 만든다는 기우라 겐조의 독특한 능력입니다. <<크리피>>의 "위장 살인마" 야지마의 능력 - 한 가족에 침입하여 가장 행세를 하며 가족들을 한 명씩 차례로 죽이는 - 과 아주 흡사하죠. 이를 위해 공포, 협박, 좁은 (갇힌) 공간이라는 3가지 요소를 갖춘 마인드 콘트롤이 핵심이라는 것도 같고요.
그러나 <<크리피>> 이후 발표된 덕인지는 몰라도 마인드 콘트롤을 보다 상세하게 묘사하여 설득력을 높이고 있다는 점에서는 확실히 발전했어요. 기우라가 여관 하기노야를 손에 넣기 위해 하기노야의 주인 세이지 일가족을 극한으로 몰아가다가 한명씩 살해하는 부분이 그것으로, 적나라하면서도 세밀한 묘사를 통해 굉장한 흡입력과 설득력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흡입력, 설득력이 당연한 것은 실존했던 일본의 '스미다 미요코 사건'의 배역을 살짝 바꾸어 묘사한 덕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한 가족을 대상으로 이간질 후 범행에 끌어들여 (고이치) 제일 약한 사람부터 (세이지) 한명씩 죽게 만든다는 전개는 스미다 미요코 사건과 같습니다.

이러한 범죄 묘사 외에 추리적인 디테일도 나쁘지 않습니다. 히라가나로 쓰여진 고발 편지와 초밥에 비소를 넣은 사람이 우타라는 것이 밝혀지는 것이 대표적입니다. 별다른 정보가 공정하게 제공되는 것은 아니고 진범이 누구인지가 중요하지는 않지만 나름 의표를 찌르는 맛이 있었어요.
중요하지는 않지만 80년대가 무대답게 마지막을 야쿠시마루 히로코의 노래 <<세일러복과 기관총>>이 장식하는 것도 이채로왔습니다.

하지만 <<크리피>>와 단점 역시 비슷합니다. 조금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설명이 부족하다는 것이 그것이죠. 특히 기우라가 왜 이렇게 잔혹한, 무려 10명이나 살해하는 범행을 저질렀는지를 설명하지 않은 탓이 큽니다. 이성과 잔혹함, 정신병의 경계에 있다는 캐릭터 설정만으로 때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묘사에 따르면 2가구 6명을 포함한 10명을 살해하면서 하기노야를 손에 넣지만 정작 현금 수익은 세이지 가족의 적금 1,500만엔 정도에 불과합니다. 이래서야 수지가 전혀 맞지 않죠. 그 돈도 범행 계획에는 들어있지 않은 공돈이나 마찬가지고요.
물론 하기노야 권리증이 없더라도 시간만 있었더라면 어떻게든 현금화는 할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렇게 사람을 죽여가면서 돈을 얻을 필요는 없어요. 3천만엔을 빌려준 것 만큼은 명확한 사실이니 고이치를 사장으로 앉히는 것 만으로도 여관을 손에 넣는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테니까요. 게다가 이렇게까지 여관을 손에 넣을 이유도 사실 없습니다. 단지 매춘업에 끌어들이기 위해서라면 이미 성공하기도 했고요. 마지막 자살 여행에서 여자들에게 현금을 나눠주는 묘사를 보면 대충 1억엔 이상은 현금으로 뿌립니다. 이 정도로 성공한 인물이 왜 이런 범행을 저지른 걸까요? 마지막 묘사 탓에 이유는 더욱 알 수 없게 되어 버렸습니다...

또 작가의 이상한 묘사로 캐릭터가 모호해져 버린 것도 문제입니다. 이지적인 모습이 보였다, 카리스마가 있는 리더일 뿐 손을 더럽히는 모습은 없었다는 식으로 묘사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마지막 집단 자살 묘사는 그 중에서도 최악이죠. 너무 꿈처럼 그려졌을 뿐더러 지나칠 정도로 신사적이라 모호한 상황을 더욱 극단적으로 만듭니다.
아울러 그가 누나와 근친상간을 통해 우타를 낳았다는 것은 이러한 극단적인 범행과 하등의 상관이 없습니다. 아내가 누나와 굉장히 닮았으며, 아내가 누나와의 관계를 눈치채어 살해했다는 것 역시 마찬가지고요. 완전히 사족에 불과했어요.

이렇게 모호하게 그릴 것이라면 차라리 '돈'이 목적이고 타고난 악인이었다고 설명하는 쪽이 훨씬 나았을 것입니다. 이래서야 한가운데 직구를 넣었다면 깔끔하게 처리했을텐데 괜히 변화구, 변화구를 고집하다가 주자를 쌓아놓고 한방 크게 얻어맞는 것과 다를게 없죠. <<주자가 켜켜이 쌓인 9회말>>이랄까... 좋은 공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에서 더욱 아쉽네요.

그리고 기껏 손해를 보아가면서 까지 도쿄대 출신임을 밀어 붙였다면 이렇게 무식한 야쿠자 스타일 협잡보다는 더 그럴듯한 무언가를 보여주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세이지 일가를 옭아매는 과정은 전형적인 감금, 협박과 다르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범행 중간중간에 걸쳐 허술한 관리로 수많은 위기를 만나게 되는 것을 보면 한숨밖에 나오지 않아요. 그냥 즉흥적으로, 되는대로 사람을 죽이는 묻지마 범죄와 다를게 없어 보일 정도입니다. 중간중간 수사나온 형사를 설득하여 돌려보내는 장면은 그럴싸하지만 기대에 값하는 수준은 아닙니다.

또한 앞서 말씀드린대로 범행 과정의 적나라한 묘사를 통한 생생함은 발군이나 들여다보면 구멍이 많다는 것도 단점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유키가 정상적인 사고를 거두고 매춘까지 끌려나가게 되는 과정입니다. 제대로 설명되지 않거든요. 사부로가 급작스럽게 유키와 가까와진다는 것도 작위적이고요. 하기사 유키를 죽이지 않는 것 부터가 뾰족한 이유가 없네요. 상식적이라면 진작에, 아무리 늦어도 고이치 살해 시점에는 정리했을 것입니다. 더 필요가 없으니깐...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하기노야를 손에 넣는 중후반부까지의 압도적인 묘사는 충분히 흥미롭습니다. 그러나 설득력이 부족한 설정 탓에 감점합니다. <<크리피>>보다는 낫지만 단점은 여전히 동일합니다. 작가의 다음 작품을 읽어봐야 할지 살짝 고민되는군요.

덧붙이자면, 범행의 규모나 희생자 수를 본다면 현실의 '스미다 미요코 사건'이 더 큰 사건이니 그냥 '스미다 미요코 사건'의 논픽션을 쓰는게 더 나았을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