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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28

서술트릭의 모든 것 - 니타도리 케이 / 김은모 : 별점 2점

서술트릭의 모든 것 - 4점
니타도리 케이 지음, 김은모 옮김/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서점의 명탐정>>의 작가 니타도리 케이의 단편집. 원제는 간단하게 <<서술트릭 단편집>>입니다.
처음에는 서술트릭을 쓴 작품들을 모아놓고, 트릭들을 분석해 놓은 책일거라 생각했는데 단편집이라서 의외였습니다. 서술트릭은 작가가 독자를 속이는게 핵심인데, 이 책에 수록된 단편은 모두 서술트릭물이다! 라고 서두에서 알려주는 것도 독특했고요. 한 마디로 "속일테니 맞춰봐라!"라는 마술사의 마술 공연같은 발상이었달까요? 독특하면서도 신선하고, 그 패기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러나 작품들 수준은 영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서술 트릭을 사용하려고 무리수를 둔 작품들이 많은 탓도 크지만 가장 큰 문제는 만화적이고 과장된 탐정 캐릭터 벳시의 존재였습니다. 그래서 전체 평균한 별점은 1.5점입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뻥 뚫어주는 신>>
주식회사 세븐티즈의 2층 화장실 변기가 막혀 물이 넘쳤었는데, 업자를 부르기 전에 뚫리고 바닥도 깨끗하게 청소된채 발견되었다. 누가 몰래 이런 기특한 짓을 하였을까? 궁금해하던 직원들에게, 지나가던 프리랜서 기자 벳시가 난입해 사건을 해결한다.

한 명을 제외한 등장인물들 모두가 70세가 넘은 노인들이라는게 서술트릭으로 사용된 작품.
그러나 좋은 작품은 아니었습니다. 내용에서 설득력이 거의 전무하거든요. 애초에 막힌 변기를 뚫고 바닥 청소를 한게, 몰래 해야 할 일이 아니잖아요? 그것도 1층 화장실 창문을 통해서, 2층 화장실 창문으로 몰래 기어 올라가면서까지 말이죠. 때문에 이런 무리한 활약은 노인인 다른 사람들에게는 무리였고, 그래서 유일한 여고생인 아르바이트 우미짱이 범인이었다! 는 추리도 억지스러웠어요. 서술 트릭은 중요하게 사용되지도 못한 셈이지요. 화장실 매니아 벳시는 억지를 넘어선, 만화같은 존재라 더 와닿지 않았고요.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등을 맞댄 연인>>
호리키 히카루는 히라마쓰 시오리가 블로그에 올리는 사진을 보고난 뒤,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다. 시오리도 히카루의 다정한 모습을 먼 발치에서 바라보고, 똑같은 감정을 품기 시작했다. 그러나 두 명 다 서로에게 다가갈 기회를 찾지 못해 애태우던 와중에, 시오리가 속해 있던 사진부에서, 암실 사진 확대기 필터가 0호로 바꿔치기된 사건이 일어났다. 유력한 용의자는 사진부 부장의 연인으로 부장과 싸운 뒤, 부장에게 복수심을 풀었을 마쓰모토였다. 그러나 그녀는 범행 시각에 사진부와는 반대쪽에 있는 도서관 앞에서 호리키 히카루에 의해 목격되었다는 완벽한 알리바이가 있었다.

호리키 히카루와 히라마쓰 시오리가 서로에게 호감을 갖고, 서로에게 다가가기 위해 각자 계획을 세우는 이야기를 시점을 바꿔가며 전개하는 청춘 연애물에서 급작스럽게 일상계 추리물로 전환하는 작품.
청춘 연애물로는 좋은 느낌이에요. 두 청춘의 감정이 풋풋하면서도 귀엽게 묘사되고 있으니까요.
트릭도 깔끔했습니다. 서술 트릭의 핵심은, 호리키 히카루가 마쓰모토라고 생각했단건, 사실은 히라마쓰 시오리였다는 겁니다. 그래서 마쓰모토의 알리바이는 없어지고, 그녀가 범인이라는게 밝혀지게 되지요. 호리키 히카루가 시오리를 마쓰모토로 오해하게 된 계기도 잘 설명되고 있으며, 서술 트릭을 위한 억지도 눈에 뜨이지 않는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벳시'라는 지극히 비현실적인 인물을 끼워넣었다는 겁니다. 자연스러운 일상계 추리물에 갑자기 만화 주인공이 등장한 느낌이었어요. 부자연스러울 뿐 아니라, 묘사와 행동은 유치할 정도였습니다. 벳시를 등장시켜 전체을 연작 단편 시리즈로 묶으려는 어리석은 노력을 하느니, 차라리 독립된 단편 작품으로 만드는게 훨씬 좋았을 겁니다. 어차피 탐정이 필요한 이야기도 아니었거든요. 모두가 한 자리에 모인 상태에서 서로 이야기를 하다보면, 사람을 잘못 알았다는건 바로 드러났을테니까요. 오해의 원인은 호리키 히카루의 여동생 소라나가 등장해서 설명해주면 되고요.

결론적으로 별점은 2.5점입니다. 서술트릭이 사용된 완벽한 청춘 연애 일상계 추리물이 될 수 있었는데, 벳시의 존재가 오점을 남겨 아쉽습니다.

<<갇힌 세 사람과 두 사람>>
강도단의 일원 아담, 해밀턴, 윌은 서로를 의심하고 있었다. 세 명이 잠깐 자리를 비운 틈에 샘슨이 누군가에게 살해당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산장에 있던 일본인 두 명은 꽁꽁 묶어 놓아서 움직일 수 없었다....

서술 트릭은 강도단이 묶어 놓은 일본인 2명이 벳시와 조수 우미가 아니었다는 겁니다. 둘은 강도단이 나오는 영화를 보러 왔던 거지요. 처음부터 미국을 무대로, 미국인 강도단이 나와서 뭔가 싶더라고요. 너무 비현실적이었으니까요. 진상도 역시나였고요. 왜 일본을 무대로, 일본인들이 등장하는 영화가 아니었을지 의문입니다. 독자를 속이는게 목적이 아니라, 이렇게 속일 수도 있다는걸 과시하기 위한 목적이었을까요?

서술트릭을 사용한 단편이라는 목적에는 충실했고, 강도단이 서로를 범인이라고 단정지으며 죽이는 과정의 추리는 제법 볼만했지만 작위적이었다는 느낌을 지우기는 힘드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별 생각없이 산 책의 결말>>
벳시가 바텐더로 일하는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나는 잡담을 나누다가, 최근에 읽었던 책 속 트릭을 풀어내는 퀴즈를 내었다. 형사 사에지마 시리즈로, 산에서 낚시를 하던 네기시 기요시가 살해당한 사건이었다...

'나'와 벳시의 잡담 이후, 곧바로 '형사 사에지마 시리즈' 이야기가 이어지는, 일종의 액자 소설 구성을 갖추고 있는 작품.
너무나 착하고 성실했던 네기시 기요시가 살해당했던 이유는, 단골 스낵바에서 다른 단골 아라이에게 억지로 술을 권해서 먹였기 때문입니다. 아라이는 술만 먹으면 사람이 변해 폭력적이 되는 탓에, 오래 금주를 해 왔지만 네기시의 권유로 실패하고 말았던 거지요. 아라이의 음주 폭력으로 가족은 지옥같은 상황에 처했고, 그래서 둘째 아들 데쓰야가 복수를 하게 된 겁니다.

사용된 서술 트릭은 시점을 착각하게 만든 겁니다. 소설은 오래 전, 80년대에 발표되었던 작품이거든요. 그러나 문제는, 이 서술 트릭은 사에지마 사건의 트릭을 풀어내는 것과는 무관했다는 겁니다. 데쓰야의 알리바이 - 범행 시각에 친구 누마타가 전화를 받았다 - 는 그 시간에 집 근처에서 있었던 선거 연설 방송을 다른 동네에서 미리 녹음해 두고, 친구에게 전화할 때 그 녹음을 틀었다는 간단한 조작이거든요. 이건 휴대용 플레이어만 있다면 어느 시대에나 가능했을 이야기입니다. '수화기를 내려 놓았다'는 묘사로 1985년 단기간에 생산되었던 NTT의 숄더백 핸드폰 '숄더폰'을 썼다고 추리하는건 완전 억지스러웠어요. 수화기 내려놓는 소리도 녹음했다가 틀면 되잖아요?
사에지마 소설 속 이런저런 디테일로 그 작품이 80년대 작품이라는걸 밝히는건 재미있었지만, 서술 트릭을 사용하기 위한 목적 외에는 작품의 시점이 다를 이유를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또 벳시 씨는 책이 오래 전 발표되었을 수도 있다는걸, 그동안 있었던 동네 서점 이벤트로 잘 알고 있었으리라는 점에서 공정함도 부족한 편이고요.

그냥 사에지마 시리즈 단독으로만 보아도, 녹음기 트릭이 잘 사용되었다고 보기는 힘듭니다. 이 트릭이 없었어도 범인 체포는 어렵지 않았을 거에요. 매주 일요일 네기시를 감시했던 데쓰야의 행동에 대한 증언이 나왔다면 바로 체포할 수 있었을테니까요. 아라이 가족에 대해 수사하고, 아라이 이사무의 주폭 행위를 추리해 내는 등의 디테일은 괜찮았지만, 기본적으로 좋은 작품으로 보기는 힘들어요.

그래서 별점은 2점. 트릭은 많이 사용된 편이지만, 핵심 서술 트릭은 무의미했고, 이야기의 설득력도 약해서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빈궁장의 괴사건>>
너무나도 저렴한 방세 덕분에 외국인 유학생과 고학생들에게 인기있는 '유명장'은 흡사 교도소나 폐가같은 상태로 '유령장' 이라고도 불리우고 있다. 어느날, 세입자 중 한 명인 중국인 리의 귀중한 '하이셴'이 도난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범인은 사건 발생 시간에 있었던 유령장 세입자가 분명했다. 일본인 유아사, 세네갈인 응가보, 태국인 마시, 한국인 최선배였다...

서술 트릭은 태국인이 두 명이었다는 겁니다. 마시 오카를 닮은 라챠시챠나논미챠시브와실라, 잘생기고 양복을 입는 '챵' 라챠시챠논이챠시브와실라 두명이었던 거지요. 챵은 왼손잡이인데, 범인은 오른손잡이라는게 증명되었습니다. 하지만 둘이 '마시 오카' 한 명으로 오인된 탓에 그가 범인이 아닌 것 처럼 착각하게 만든 겁니다.
하지만 실제 소설 속 사람들에게는 명백히 두 명이라서, 이 서술 트릭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긴 태국인 이름의 글자 한 자를 바꿔쳐서 독자를 속이려고 했던건 너무 조잡해 보였어요.

마시 오카가 벽 시계 위에 가짜 시계를 붙여서 응가보가 시간을 착각하게 만든 장치 트릭이 더 중요하게 사용되고 있는데, 이 장치 트릭은 나쁘지 않고, 나름 설득력은 있었던 만큼, 억지로 서술 트릭을 넣으려고 몸부림 치는 것 보다는, 이 장치 트릭 중심으로 풀어나갔더라면 훨씬 좋았을 것 같아요. 벳시의 등장도 유치하고 만화적이었던건 마찬가지라, 당연히 빼는게 더 나았을 테고요.

제 별점은 2점입니다. 서술트릭 연작을 만들기 위해 잃은게 더 많았던 작품입니다. '하이셴'이 결국 무엇이었는지 끝까지 밝혀지지 않는 등 유쾌한 분위기만큼은 나쁘지 않았기에, 여러모로 아쉽네요.

<<일본을 짊어진 고케시 인형>>
벳시 탐정 사무소에 정계 여당의 거물 다와라다 고사부로가 찾아왔다. 그는 일본의 미래를 걸고, 일본 내 유명 동상에 장난을 치는 걸로 유명해진 헤드헌터를 붙잡아 달라고 부탁했다. 벳시는 헤드헌터의 다음 목표물이 미야기현 센다이에 있는 세계 최대 고케시 오타네 짱이라는걸 알아냈고, 우미와 함께 현장으로 향해 잠복했다. 그러나 잠복에도 불구하고 오타네 짱도 헤드헌터의 장난 대상이 되어 버리고 말았는데....

단편집 대미를 장식하는 마지막 작품입니다. 그런데 결과물은 수록작 중 최악이었어요. 헤드헌터의 장난은 정부에 비판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정치단체 모션을 몰락시키기 위한 음모 - 모션의 리더가 연설하는 장소에서 헤드헌터가 장난을 친 뒤, 모션의 리더가 헤드헌터라고 음해할 목적 - 였다는 발상부터가 유치했고, 등장하는 벳시 씨가 전부 5명이었다는 서술 트릭도 한 번 속여보겠다!는 의도가 지나쳤어요.
뭐 이것까지는 그럴 수 있다 쳐도, 코케스 오타네 짱 얼굴에 낙서를 한 핵심 트릭은 황당하기 그지 없습니다. 벳시 씨 5명이 잽싸게 인간 사다리를 만들어서, 도장을 찍듯 낙서를 완성했다는건데 할 말을 잃게 만드네요. 이게 가능할거라고, 그것도 짧은 시간에 가능할거라고는 도무지 생각되지 않습니다. 3명 정도였다면 모르겠지만요.
오타네 짱이 있는 곳이 아니라, 오타네 짱으로 향하는 입구에만 카메라를 설치한 비상식적인 행동도 나중에나 트릭 때문이었다고 설명되지, 실제 잠복할 때에는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는 것도 설득력이 떨어지고요.

이전 이야기에 등장했던 벳시 씨는 모두 다른 사람이었고, 등장했던 우미 짱도 이전 이야기에 전부 등장했다는 등의 소소한 디테일도, 작품 내용이나 추리하고는 무관했습니다. 그야말로 최악이라, 별점은 1점입니다.

<<작가 후기>>
간단한 소설과 함께 에필로그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소설은 딱히 언급할 수준이 아니었고, 앞서의 '독자에게 보내는 도전장'에 모든 작품을 풀기 위한 열쇠가 숨겨져 있다며 공개하는데, 나쁘지는 않았습니다만 <<빈궁장의 괴사건>>에서 등장인물 이름을 메모해보라는 것 외에는 그다지 도움이 되는 열쇠는 없더군요. 앞서 말씀드렸듯 이름을 가지고 장난친 조잡한 트릭에 지나지 않고요.

2021/11/27

주름 - 파코 로카 / 김현주 : 별점 3점

주름 - 6점
파코 로카 지음, 김현주 옮김/중앙books(중앙북스)


스페인 작가의 그래픽 노벨 단편집. 일본 잡지 IDEA 지난호에서 우연찮게 소갯글을 보고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스페인 만화는 처음 읽어봤네요.
신선함, 완성도 모두 좋았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수록작별 상세 소개는 아래를 참고하세요.

마지막으로, 왜 '만화' 라고 하지 않고 '그래픽 노벨'이라고 하는지 잘 모르겠네요. 미국 만화는 '코믹스', 일본 만화는 '망가', 프랑스 만화는 '방 드 베시네' 라고 부르는건 말이 됩니다. 하지만 특별한 원칙, 장르 구분 없이 좀 비싸고 있어보이는 만화를 '그래픽 노벨'이라고 칭하는 행태는 사라졌으면 합니다.

<<주름>>
요양원에 들어간 전직 은행원이었던 노인 에밀리오가 치매로 최근 기억을 잃어가는걸 노인 시점에서, 그리고 그의 요양원 친구 시점으로 그리는 작품.

치매에 대해 다룬 작품은 많이 보아 왔는데, 신파 위주의 서사가 많았었지요. <<내 머리 속의 지우개>> 처럼요. 그러나 이 작품은 그런 모습은 거의 보여주지 않는다는게 독특했습니다. 처음에 에밀리오가 '공'의 이름을 잊어버리는 장면은 큰 컷으로 그려 치매 증세에 대해 위중하게 묘사하지만, 그 뒤에는 옷을 입는 방법을 잊어 버리고, 현재의 자신을 잊고 과거 시점인걸로 착각하고, 방금 읽은 책과 방금 한 일도 잊어버리는 식으로 증세가 심해지는데에도 불구하고 모든걸 자연스러운 일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에밀리오는 잠깐 분노를 표시하기는 하나, 대체로 그냥 받아들일 뿐입니다. 에밀리오 가족의 슬픔도 전혀 보이지 않고요. 하긴, 슬픔은 커녕 제대로 등장조차 하지 않지요.
유일한 친구인 불량 노인 미겔이 주동하여 자동차를 타고 질주하는 일탈이 짤막하게 등장하기는 합니다. 그러나 목적도 없었고, 얼마 가지도 못해 사고를 일으켜 실패하고 만, 너무나도 미약한 일탈이었습니다. 하기사, 중증 치매 환자인 노인이 운전하는 차로 뭐 얼마나 대단한걸 할 수 있었을리가 없겠지요. 요양원에서 만났던 미겔이 에밀리오를 돌봐준다는 엔딩도 현실적이면서 씁쓸했습니다.
나라의 차이인지는 모르겠지만, 비교적 정열의 나라라고 알고 있었던 스페인 작가가 감정 표현이 거의 없는 이런 작품을 발표했다는게 신기하기도 하네요.
이런 이야기에 딱 어울리는 작화도 아주 마음에 듭니다. '땡땡' 시리즈가 리메이크된다면, 이런 그림으로 그려지면 참 좋겠습니다.

별다른 서사가 없거나, 서사를 드러내기에는 드라마가 약하다는 단점은 있습니다. 분량도 노인들의 유대 관계를 설명하기는 부족했고요. 그래도 한 번 읽어볼만한 좋은 작품이라는건 분명합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등대>>
프랑코 독재 정부에 맞서 싸우다가 도망치던 공화국군의 젊은 군인 프란시스코를 구해준건 버려진 등대 등대지기 텔모였다. 둘은 함께 배를 만들어 환상의 섬 라퓨타로 떠날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라퓨타가 <<걸리버 여행기>>에 나오는 가상의 섬이라는걸 알게 된 프란시스코는 분노하는데, 그날 밤 프랑코 군이 등대로 쳐들어왔다...

늙은 텔모가 자신처럼 늙은 등대를 밝혀 프란시스코를 탈출시키고, 자기는 등대와 함께 무너져내린다는 결말은 많이 뻔했습니다. 자기도 모르게 친구를 죽이고, 아무 것도 모른 채 전쟁에 끌려갔다는 등 전쟁으로 인해 벌어졌던 비극들도 마찬가지였고요. 우리나라도 6.25라는 동족상잔의 비극을 마찬가지로 겪었으니 익숙할 수 밖에요.
단색톤의 작화는 정교하고 깔끔했지만, 이런 드라마에 잘 어울린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습니다.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2021/11/25

사라진 세계 - 톰 스웨터리치 / 장호연 : 별점 3점

사라진 세계 - 6점
톰 스웨터리치 지음, 장호연 옮김/허블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미래의 지구에 QTN입자가 날아와 환각에 빠져 죽게 만드는 터미너스 현상을 일으켰고 인류는 멸망해버리고 말았다.
1980년대의 미국 해군 우주 사령부는 ‘인정되지 않는 미래 궤적(Inadmissible Future Trajectories)’, 즉 IFT라는 다중차원의 미래로 이동할 수 있는 기술을 확보했기 때문에 이 미래에 대해 알게 되었다. 터미너스 현상을 막기 위해 사령부는 여러 요원들을 IFT 미래로 보내어 방법을 찾으려고 시도했지만, 터미너스 현상이 일어날 시점만 2666년에서 2456년, 2121년... 등으로 계속 앞당겨졌을 뿐이었다. 과거에서 미래로, 터미너스 현상을 일으키는 QTN 입자가 향하는 길을 열어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1997년 현재, IFT로의 탐험을 떠났다 돌아왔던 패트릭 머설트의 가족이 살해되고, 큰 딸 매리언은 실종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사건 수사에 IFT 귀환병 출신 섀넌 모스 특별 수사관이 투입되었다. 귀환병 관련 사건에는 해군 범죄 수사국이 참여되는게 규정이었을 뿐만 아니라, 패트릭 머설트가 탑승했던 '리브라 호'는 공식적으로 귀환하지 않은 상태였던 탓이었다. 그녀는 사건 해결을 위해 20여년 후의 IFT로 이동하였다.
그리고 섀넌의 수사 결과, 리브라 호가 QTN 입자가 있는 에스페란스 별에 착륙했던게 터미너스 현상을 지구로 불러온 원인이었으며 패트릭 머설트 사건은 역시 리브라 호 귀환병이었던 하이델크루거가 이끄는 테러 조직이 일으켰다는게 밝혀졌다. 하이델크루거는 추락한 리브라 호의 B-L 엔진이 가동될 때, 바르게도르 나무 주변에 생겨나는 시간의 틈을 이용하여 다른 IFT의 '메아리' 들을 끌어들여 세력을 넓히고, 터미너스 현상을 초래할 해군 사령부의 IFT 탐험과 관련된 모든 것에 거대한 테러를 가할 계획을 세웠는데, 이를 누설하려던 머설트를 가족과 함께 살해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섀넌이 이를 알아낸 직후, 터미너스가 1997년의 지구를 덥쳤다. 섀넌이 패트릭 머설트의 증언을 확보하여 해군 사령부와 거래 하려던 변호사를 하이데크루거의 습격에서 구해주었기 때문이었다. 해군 사령부는 이 증언을 통해 에스페란스의 위치를 알아내어 전함을 보냈고, 전함이 지구로 귀환하자 QTN 입자가 전함을 따라와 곧바로 지구를 덥쳤다. 섀넌은 바르게도르 나무 근처 시간의 틈을 이용해, 과거 리브라 호에서 반란이 일어나던 시점으로 이동하여 리브라 호의 자폭이 성공하도록 도울 결심을 하였다. 성공하면 단 하나 뿐인 시공간 '굳건한 대지'는 안전하게 될 터였다...


시간 여행 (타임 리프)을 통해 사건을 해결한다는, 570여 페이지에 달하는 대장편 SF 범죄 수사물. 크게 1986년 리브라호 사고, 1997년 현재, 그리고 약 20년 후의 IFT의 3개 시간대를 축으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너무 평범한 제목 탓에 손길이 가지 않았었는데, 읽다보니 굉장히 재미있더군요. 감탄하면서 읽었습니다. SF지만 범죄 수사물 측면으로도 충분히 재미있었기 때문입니다. SF과 결합된, 시간을 뛰어넘어 사건을 수사한다는 설정이 잘 사용되고 있는 덕이지요. 원래 시공간 ('굳건한 대지')의 사람들이 IFT 미래에서 어떻게 지내는지를 알아내어 그들과 사건의 관계가 드러나는 과정을 꼼꼼한 복선 배치를 통해 정교하게 그려내고 있거든요. 대표적인게 FBI 수사관 네스터입니다. 섀넌은 미래의 그와 사랑에 빠지지만, 과거로 돌아온 뒤 그가 미래에서 살던 집이 하이텔크루거 일당의 은거지였다는걸 알게 됩니다. 네스터가 자기 것이라고 말했던 무기들 역시 원래 테러범들 것이었고요. 즉 하이델크루거 일당과 네스터는 지금은 아니더라도, 결국 어떤 식으로든 필연적으로 엮이게 된다는 뜻입니다. 아무리 다른 미래라도, 시간의 흐름 상 필연적으로 관계를 맺게 된다는,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는 거지요. 다른 인물들도 모두 마찬가지에요. 또 비교적 초반부에 니콜과 절친한 친구가 된 덕분에, 과거의 그녀의 도움을 받아 임무를 완수하게 되는 식으로 이렇게 연결된 '인간 관계'가 사건 해결에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기도 합니다. 그만큼 관계를 잘 구축해 놓고 있어요. 무고한 사람을 살리려던 섀넌의 노력이 터미너스 현상을 미래가 아니라 현재에 불러오게 되었다는, 일종의 딜레마와 같은 상황도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고요.

SF적인 측면으로도 볼 만 했습니다. 저같은 과학 둔재도 이해할 수 있도록 과학 기술과 이론들을 이야기와 잘 결합하여 소개한다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던 점이었어요. 예를 들어 시간 이동이 핵심인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그 원리나 기술을 이론적으로 상세하게 설명하지는 않습니다. 그냥 소설에 잘 어울릴 설정들을 적절하게, 작품과 잘 어울리게 묘사하고 있을 뿐입니다. 새년이 '굳건한 시간'에서 A라는 IFT 미래로 이동한 뒤, 임무를 마치고 원래의 '굳건한 시간'으로 돌아가게 되면 A라는 IFT 미래 시공간 자체가 소멸하여 무로 돌아간다는 설정처럼요. 하지만 독자가 충분히 설정에 대해 이해하고, 재미를 느낄 수 있게끔은 잘 그려내고 있기에, 이 설정이 타임 패러독스를 없애는 완벽한 설정이라는 것도 잘 알 수 있었어요. 여기서 파생되는, 이 비밀을 아는 해당 IFT 시공간 사람들이 시간 여행자를 감금한다던가 (그가 돌아가면 시공간이 소멸해버리니), '굳건한 시간' 외의 시공간에서 온 사람들을 '메아리'라고 부른다던가 하는 부가적인 설정들도 흥미롭게 묘사됩니다.
시간 점프 기술을 이용하여, 미래에서 터미넌스를 막기 위한 기술을 개발하지 않았을까 싶어 미래로의 이동을 반복하지만, 그 방법을 찾지 못해서 모든 미래 시점에도 터미넌스가 발생하게 된다는 것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이 역시 '일어날 일은 결국 일어난다'는 거지요.

하지만 IFT 미래로의 탐험을 빼면, 수사물이나 추리물로서의 가치가 높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범인이 '리브라 호' 선원이었던 하이델베르그라는건 비교적 쉽게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머설트가 리브라호 귀환병이라는걸 알고 난 뒤에도 리브라 호 선원 명단을 전체 조사하지 않았던 해군 수사 본부의 무능함만 눈에 뜨일 뿐이지요. 이런 기본적인 수사도 하지 않고, 모든 수사를 IFT로의 시간 여행을 통해 미래에서 언제 무슨 사건이 일어날지 알아낸 후, 현재 시점으로 돌아와 잠복 등으로 사건을 막는게 전부라 추리적인 요소는 거의 없습니다. 사건 수사 과정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위기와 액션 묘사가 출중한 덕에 읽는 재미는 있었지만, 이래서야 수사물이라고 하기도 어렵겠지요.

또 불필요했던 설정과 묘사도 너무 과했습니다. 하이델베르그가 해군 우주 본부 테러로 아득한 시간과 공간 탐험을 막고자 하는 동기부터 그러합니다. 납득할 수는 있지만 오버스러웠달까요. 몇몇 주요 인물만 암살하면 충분했을텐데 말이지요. 패트릭 머설트 가족을 비롯한 희생자들의 손톱을 뜯어낸 이유가 '손톱으로 만든 배'를 만들기 위해서였다는건 쓰잘데없는 설정의 최고봉이고요. 사건과 아무런 관련이 없었을 뿐더러, 말 그대로 '손톱으로 만든 배'를 만들기 위해서였다는 진상은 허탈하기만 했거든요. 사건 현장마다 뭔가 흔적을 남긴다는 전형적이고 흔해빠진 싸이코 범죄물 설정에 집착한 듯 한데 그 이유를 잘 모르겠네요.
앨릭 플리스가 패트릭 머설트의 딸 매리언을 납치해서 바르게도르 나무에 묶은 이유도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그녀가 집에 없었을 때 하이델베르그 일당이 다른 남은 가족을 죽인건 말이 됩니다. 도망간 패트릭 머설트를 처형한 것도 말이 되고요. 그렇지만 일당이 메리언을 찾아내서 죽일 이유는 하나도 없습니다. 앨릭이 하이델베르그 일당인지도 제대로 설명되지 않으며, 설령 그가 일당이었다 쳐도, 구태여 바르게도르 나무까지 끌고가 묶어 놓는건 설명이 되지 않아요. 죽이는 것도 아니고, 다른 가족과 구분하여 처단할 이유는 전혀 등장하지 않습니다. 사건 수사에 집착하는 섀넌 모스의 사명감을 불러 일으키는, 그래서 하이델베르그 일당과 접점을 만들고 마지막에 리브라 호 자폭으로 전개하기 위해 필요했던 소재인데, 조금 더 상식적으로 말이 되게끔 전개했더라면 훨씬 좋았을 것 같네요.

하이델베르그가 섀넌 모스를 생포한 뒤, 반란이 일어난 직후의 리브라 호로 데려간 이유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리브라 호에 감금되었던 섀넌 모스가 추락 직후 니콜에 의해 구조되었던건 무려 11년이 지난 뒤였다는 이상한 시간의 뒤틀림도 설명은 전무한, 작위적이고 편의적인 전개였고요. 차라리 이런 내용은 몽땅 들어내 버리고, 생포된 섀넌 모스가 하이델베르그를 어떻해든 설득해서 함께 리브라 호를 파괴하러 간다는게 더 명쾌했을 겁니다. 하이델베르그는 분명 과거 리브라호로 이동한다는걸 알고 있었고, 그의 행적을 보면 당연히 현재 시점의 '굳건한 대지'로의 탈출 방법도 알고 있었을테니까요. 반란만 제압하고 함장이 자폭하게 도와주고 탈출하면 그만이지요. 헐리우드에서 영화로 만든다면 이렇게 각색할거라고 확신합니다!
아울러 시간 여행도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리브라호를 자폭시켜 블랙홀로 빨아들이면 터미너스가 없는 '굳건한 대지'가 유지될 수는 있습니다. 리브라호가 터미너스를 유발한건 사실이니까요. 그러나 미래는 다양한 우주로 점프하면서, 과거는 '굳건한 시간'의 과거로 갈 뿐이라는 것도 설명이 부족했습니다. IFT 미래로 이동 후 복귀할 때 그 IFT 미래 시공간은 소멸하는데, 과거로 이동 후 죽거나 복귀하면 왜 그 과거에 관련된 시공간은 소멸하지 않는지에 대해서도 설명이 부족했습니다. IFT 미래 시공간 이동 기술은 600년 후의 미래 기술을 1980년대 현재 기술로 양산 가능하도록 만든거라는 설정이 잠깐 등장하는데, 그렇다면 과거로도 충분히 이동할 수 있지 않나? 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나마 이런 설정들은 그래도 전개에 필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는데, 코트니 김이 살아있고, 섀넌 모스가 임신했다는걸 알아채는 1986년의 한 장면으로 끝나는 마무리는 영 이상했습니다. 코트니 김의 죽음은 리브라 호와는 무관했기에, 과거의 리브라호 자폭이 코트니 김이 살아있는 미래로 이어질 이유는 없습니다. 게다가 섀넌 모스가 코트니의 오빠와의 관계로 임신했다는걸 알아챈다는건 더 문제에요. 원래 코트니가 살해되기 전에 가졌던 관계이니, 현실의 섀넌도 임신을 했어야 했는데 그렇지 않았으니까요. 이렇게 임신한 섀넌 모스는 원래 작중의 섀넌과 그녀 어머니 관계와 유사해서, 시공간은 모두 연결되어 있고,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는 이야기를 하려고 했을 수도 있겠지만, 납득할 수 없는 과한 사족에 불과했다 생각되네요. 앞서 이야기했듯 '현재'의 섀넌 모스가 '과거'로 돌아가 죽었다면, '과거'의 미래가 바뀐다는건 이 작품의 시공간에 대한 기본 전제에 어긋나는 일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읽는 동안은 단점을 떠올리기 힘든 재미를 갖춘 작품입니다. 추락한 미래에서 온 우주선의 엔진 점화로 시공간이 뒤틀려 연결된다는 설정은 예전에 읽었던 다카미 요시히사의 <<화석의 기억>>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필연적으로 멸망할 미래에서 과거로 탈주했다는 점, 탈주용 우주선 엔진이 현재에 폭주하여 타임 패러독스를 일으키는 등 유사한 점이 많이 느껴졌고요. 그러나 결말까지 이어지는 깔끔한 전개는 이 작품 쪽이 훨씬 낫습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영상물로 만들어도 좋을 소재와 내용인데, 약간의 설정 구멍을 보완하여 만들어주면 참 좋겠다 싶네요.

2021/11/21

카레로 보는 인도 문화 - 가라시마 노보루 / 김진희 : 별점 3점

카레로 보는 인도 문화 - 6점
가라시마 노보루 지음, 김진희 옮김, 오무라 쓰구사토 사진, 최광수 감수/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맛의 달인 걸작 에피소드 중 하나인 '카레 전쟁' (24권) 편에서 카레 전문가 교수님으로 출연했었던, 인도 역사 교수가 쓴 식문화사 서적. 한방약을 카레에 섞어 먹곤 한다던 그 교수님입니다. 전공 분야라는 인도 역사에 대한 지식, 그리고 다년간의 인도 유학 경험과 학자다운 방대한 참고 문헌을 바탕으로 인도 요리가 무엇이며, 왜 지역별, 문화별 차이가 있는지에 대해 알려주고 있습니다.

책은 왜 '카레'라는 요리가 생겨났으며, 그 어원이 무엇인지에서부터 시작해요. 인도 식민지 지배로 인해 인도 식문화가 영국에 자연스럽게 유입되었다는건 다른 책들에서도 소개되었던 내용이지요. 그러나 카레 가루가 생겨난건 영국에 생 스파이스가 없어서였으며, 밀가루를 버터로 볶아 만든 루는 볶은 양파, 토마토 페이스트, 코코넛 크림 등으로 조리 과정에서 자연 발생하는 걸쭉함을 구현하기 위해서였다는 디테일은 좋았습니다.
교수님이 등장하셨던 <<맛의 달인>> 에서도 소개되었던 '커리'의 어원에 대한 추론은 다시 읽어도 흥미로왔어요. 영어 '커리'는 16~17세기 포르투갈인과 네덜란드인이 기록한 '카릴'에서 유래되었을 거라는 설이 있습니다. 그런데 칸나다어와 타밀어 커리는 야채와 고기라는 뜻인데, 왜 당시 사람들은 수프를 부어먹는 식사를 인도인들이 '카릴 이라고 부른다고 썼을까요? 저자는 당시 포르투갈, 네덜란드 인은 수프를 부은 밥 요리 이름을 물었는데, 인도인들은 수프에 들어있는 건더기, 즉 야채와 생선과 고기에 대해 묻는다고 생각해 대답했던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럴듯하지요? '캥거루' 어원 가설이 떠오르기도 하는데, 저는 저자의 추론을 지지합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인도 요리와 그 역사적, 문화적 배경에 대한 고찰이 이어집니다. 특징이라면 앞서 '커리'의 어원 추론처럼 어원, 요리 유래에 상당히 디테일하다는 점입니다. 북인도의 긴 후추를 피랄리라고 하는데,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인도 원정 당시 그리스로 가져간게 영어의 페퍼의 어원이 되었다는 등의 재미난 정보가 가득합니다. 저자가 역사 학자인 덕분이겠지요. 각 지방 및 요리하는 사람의 특성에 따라 요리를 명확히 구분하는 것도 확실히 연구자가 썼구나 싶은 부분이었고요.
하여튼 저자에 따르면, 인도 식문화는 남인도에서 성립된 스파이스를 혼합하여 맛을 내는 '카레 문화'와 우유를 기름, 버터, 요거트 등의 다양한 형태로 요리에 활용하는 북인도의 '우유 문화'가 오랜 역사 과정에서 적절하게 융합되어 구축된 것입니다. 그 근거로 든 것은 7-8세기 남인도 힌두교 사원에 남아있는 신에게 올리는 식사 관련 글귀에 등장하는 재료 - 밀라구 (후추), 만질 (강황), 지라가 (커민), 시르 카두구 (겨자), 코타말리 (코리엔더) - 목록입니다. 이건 현대 카레에 가장 중요한 스파이스로 꼽는 '터메릭, 커민, 코리앤더, 후추, 겨자'와 동일하거든요. 즉, 당시 남인도에는 커리의 원형이 이미 존재했다는 뜻입니다. 반면 북인도에서는 불교에서 석가에게 우유죽을 공양했던 고사에서 보듯, 우유 식문화가 탄생했고요.
이런 지역에 따른 대립은 카레, 우유 뿐 아니라 밀과 쌀 중 무엇이 주식인지, 재료가 고기인지 생선인지, 논베지테리언인지 베지테리언인지 등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북인도는 밀 생산 지역으로 쌀이 아니라 로티라고 부르는 밀가루 빵이 주식이다라는게 대표적인 예이고요.
이런 역사와 지역, 문화를 통한 요리 구분이 굉장히 상세한게 큰 장점으로, 심지어 '자이나교 요리'까지도 별도로 다루고 있을 정도입니다. 자이나교는 철저한 불살생으로 베지테리언 요리로 유명한데, 우리도 인도 요리점 요리로 친숙한 '파니르'가 대표 요리더군요. 파니르는 끓인 우유에 식초를 넣어 굳힌 코티지 치즈이고, 이걸 카레 소스로 끓여낸 요리이지요. 여기에 시금치를 넣은게 '팔락 파니르'고요.
무굴 제국의 궁정 요리도 별도 항목을 할애하여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외부에서 정복 세력이 인도로 침입한 것이라, 그 역사적 배경이 다른 인도 요리와는 다른 탓이겠지요. 우선 무굴 요리의 시작은 유목민의 캐러밴 요리로 케밥이 그 원점이라네요. 무굴 제국의 이름도 몽골에서 유래했고, 그들은 원래 아프가니스탄 유목민 출신이니 중앙 아시아 유목민 문화가 그들의 바탕인 건 당연합니다. 여기에 2대 황제가 이란에 망명했던걸 계기로 페르시아의 맛과 정취가 더해졌고요.

특정 지역에 독특한 식문화가 생겨나게 된 역사적, 문화적, 사회적인 이유 설명도 그 깊이가 남다릅니다. 남인도 케랄라 식문화 소개가 좋은 에에요. 이 곳은 원래부터 후추와 카다몬이 자생하였던 향신료의 천국이었는데, 이후 남서 해상 무역 중계 기지라 남동아시아에서 클로브, 넛맥이, 스리랑카에서 시나몬이 운반되어 향신료의 폭이 더욱 넓어지게 되었다고 하네요. 로마 및 서방 지역과도 관계가 깊어서 이미 1세기에 그리스도 포교가 이루어졌고, 유대교 성당인 시나고그도 있었으며, 무슬림도 거주하면서 커피 재배 등에 종사했을 정도로 국제 도시이기도 했다고요. 중국배 역시 12세기 경부터 모습을 드러내었으며, 15세기 초에는 정화의 선단이 방문했다고 합니다. 이런 지역이라면 향신료를 풍부하게 사용하면서, 외부 식문화도 많이 유입된 요리가 생겨날 수 밖에 없겠지요.
또 스리랑카 신할족은 북인도 왕자의 후예라는 전설이 있을 정도로 언어와 전통은 북인도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지만, 식문화는 가까운 남인도 카레와 밀착되어 있으며 특징은 매운 맛, 그리고 몰디브 피쉬의 사용, 코코넛을 많이 사용하는 것이라는 스리랑카의 식문화 이야기는 무엇보다도 맛의 달인의 '카레 전쟁'의 스리랑카 요리 소개 부분과 똑같아서 인상적이었습니다. 몰디브 피쉬를 절구로 빻는 장면은 사진까지 똑같더라고요!

소개되는 요리들에 대한 소개도 재미있었어요. 기억에 남는 요리는 빈달루입니다. 어원은 포르투갈 요리 카르니 드 비나달로스의 비냐달로스라네요. 이게 인도식 발음으로 변형되었던 거지요. 16세기 초에 포르투갈이 고아를 점령했을 때 전래되었던 요리라고 합니다. 처트니도 영국식 잼으로 알고 있었는데 사실은 힌디어로 '다'라는 뜻의 '차트나'가 어원인 인도 요리라는건 처음 알았네요. 그외 정 요리에 대한 설명도 상세합니다. 몇몇 요리는 레시피도 함께 소개해주고 있어서 더 마음에 들었습니다. 칠리, 터메릭, 커민, 코리앤더와 후추가 듬뿍 들어간다는 라삼 파우더로 만든 라삼은 우리 입맛에도 잘 맞을 듯 싶더군요. 타밀어로 '후추 주스'라는 뜻이라니, 매콤한게 딱일거 같아요.

이런 내용들 소개에 이어, 책은 현대 인도 요리에 대한 저자의 생각으로 마무리됩니다. 인도 요리란 어디까지나 스파이스와 우유를 주요소로 하는 요리의 총칭이며, 원래 다양한 지방에서 자기들끼리만 먹었었지만, 지방 요리가 인도 전체로 퍼져 현대 인도 요리가 된 것이라고요. 이를 '다양성 속의 통일성' 이라고 말합니다.

카레, 커리 뿐 아니라 '인도 요리'가 무엇인지에 대해 잘 알 수 있게 해 준 좋은 책입니다. 단순히 흥밋거리가 아니라, 근거가 확실한 전문가적인 식견으로 썼다는 점이 돋보였고요. 목차가 조금 두서가 없다는건 아쉽지만, 이 정도면 별점 3점은 충분하지요. 좋은 책이었습니다. 커리와 인도 요리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이 글도 한 번 읽어보시면 좋겠고요.

그나저나 일본에 좋은 카레 책이 많이 나오는걸 보면, 확실히 카레에 진심인 나라가 맞긴 맞나보네요.

2021/11/20

홍학의 자리 - 정해연 : 별점 3점

홍학의 자리 - 6점
정해연 지음/엘릭시르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혼 직전 상황에서 지방 고교에 발령받아서 혼자 내려가 살던 김준후는 제자 채다현과 불륜 관계에 빠졌다. 그러던 어느날, 준후와 다현이 교실에서 관계를 맺은 직후 다현이 무참하게 살해된 시체로 발견되었다. 시체를 발견한 준후는, 자신의 인생이 파멸할거라 여겨 시신을 둘이 밀회를 위해 자주 찾던 인적없는 호수에 유기했다.
며칠 뒤, 시신은 발견되었고 사건 수사를 받은 강치수 형사는 준후의 불합리했던 진술을 하나씩 파헤치기 시작하는데...


모처럼 읽어본 한국산 범죄 스릴러. 적절한 분량, 빠른 호흡과 적절한 긴장감, 그리고 생각지도 못했던 추리적인 장치들 덕분에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특히 준후가 다현의 시체를 삼은 호수에 유기했던 트릭이 괜찮았어요. 검시 결과 밝혀진 다현의 사망 시각에 준후의 차는 호수 방향 모든 길 CCTV에 찍히지 않았습니다. 호수로 향하는 길은 험했고, 다현의 시체에도 긁힌 상처 하나 없어서 사람이 끌고갈 수는 없었고요. 어떻게 유기했던 걸까요?
준후는 다현의 시체를 일단 자택 욕조로 옮겨 놓은 뒤, 장기 결석 핑계로 다현의 집을 방문하는 척 할 때 삼은 호수를 지나며 시체를 유기했던 겁니다. 이는 부검 결과, 다현의 폐에서는 플랑크톤이 검출되었지만 신장, 심장, 간에서는 나오지 않았다는걸로 증명되고요. 사인은 익사인데 플랑크톤이 나오지 않았다면, 수돗물로 죽었다는 뜻이니까요. 굉장히 현실적이라는 점도 마음에 들지만, 이를 밝혀내는 과정도 인상적이었습니다. 특히 작중에서 김준후가 집 목욕탕을 이용하지 않는 묘사로 드러내는게 좋았습니다.

다현이 사실은 남자였다는걸 마지막에 드러내는, 서술 트릭의 효과적인 사용도 눈여겨 볼 만 합니다. 여자인줄 알았지만 사실은 남자였다는건 흔한 설정이기는 합니다. 그래도 이 작품에서는 꽤 잘 숨기고 있는 편이에요. 읽으면서는 상상도 못했을 정도였어요. 또 다현과 준후의 관계를 '홍학'을 이용하여 은근슬쩍 독자에게 알리는 솜씨도 제법입니다. 홍학에 집착하면서, 홍학이 산다는 아루바 섬에 가고 싶다는 다현의 소원은 유치한 캐릭터 만들기라고 생각했었는데, 다현이 남자라는게 밝혀진 뒤 그 의미가 드러나는 덕분입니다. 홍학은 동성끼리 새끼를 키우고, 아루바는 네덜란드 령으로 네덜란드는 동성 결혼이 가능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다현은 준후와 아루바로의 여행을 꿈꿨던 겁니다. 즉, 다현의 정체에 대해서는 꽤나 결정적인 단서를 초반부터 제공해 준 셈입니다.
준후가 아내 영주와 자연스럽게 관계를 가지고, 심지어 아이까지 있다는 설정은 좀 반칙같기는 했지만, 실제 양성애자도 있고, 이런 사례가 없는건 아니니 허용범위 이내겠죠.

수사물로도 꽤 수준이 높습니다. 앞서 사체 유기 트릭을 밝혀내는 과정은 물론, 준후가 CCTV 사각을 피해 시신을 교실에서 외부로 옮긴 방법에 대한 추리와 수사도 돋보였어요. 준후는 경비원이 3층 순찰을 돌 때 마주친 뒤, 경비원이 4층 순찰을 다 마치고 경비실로 돌아올 때 까지 차에서 기다렸다고 진술했습니다. 사실은 3층의 완강기를 이용해서 시신을 1층에 내려놓고,CCTV가 있는 주차장에서 차를 몰고나와 본관 옆에 차를 대고 시신을 실은 뒤, 완강기는 잠기지 않은 창문을 통해 계단으로 올라가 원위치 시켜 놓았었지요. 강치수 형사는 이 때 15분이라는 공백이 발생한걸 수상하게 여깁니다. 경비원 순찰이 끝나기를 기다렸다는건 그럴싸한 핑계였지만, 그렇다면 누구나 교문 앞에서 기다릴텐데 교문에서도 멀고 경비실이 보이지도 않는 본관 옆에서 기다린건 이상하다고 생각했고요. 이를 통해 창문과 완강기에 대한 분석을 벌이게 됩니다.
다현과 준후가 밀회를 위해 이용했던 다현의 핸드폰은, 준후가 발급받았었기 때문에 초반 수사 과정에서 걸리지 않았다는 착안도 좋았습니다. 학교에서는 수업 전에 핸드폰을 수거했다가 하교 시 다시 나누어주는데, 이 때 폰이 바뀔 수 있어서 어쩔 수 없이 별도의 폰을 마련해 주었다는건 분명 타당한 이유가 되니까요.
수사 과정에서 드러낸 준후의 수상한 행적을 준후가 필사적으로 변명하는 장면들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억지 변명이기는 한데, 말이 안되는게 아니라서 경찰도 당장 어쩔 수 없는 상황을 잘 그려내고 있거든요.

빠른 호흡으로 전개되면서, 적절하게 충격과 긴장을 안겨다주는 덕분에 몰입도도 높습니다. 다현의 죽음과 사체 유기, 다현의 사인이 익사라는게 드러나는 장면, 준후가 협박장을 받는 장면, 경비원 황권중의 시체를 발견하는 장면, 교무부장 조미란이 체포되는 장면 등 단락마다 극적 긴장감을 한껏 높이며 마무리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문제가 없지는 않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주인공 김준후입니다. 그는 초반에는 다현의 상황에 가슴아파하는 유일한 인물로 그려집니다. 그래서 진범이 밝혀지기를 원했고요. 다소 어설픈 사체 유기도 그 일환인 것처럼 설명됩니다. 사체가 발견되어야 수사가 진행되어 진범이 밝혀질 수 있다는 이유였지요. 그러나 후반부에서는 악당으로 돌변해버립니다. 알고보니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어떻게 바라보는지만 신경써는 극도의 이기주의자로, 다현의 죽음 따위는 진작에 잊어버렸다는데 그 변모가 거의 다른 사람 수준이에요. 이를 위한 별다른 설명도 없고요. 처음에는 교사로서의 지위를 잃고 파멸할게 두려워 다현의 시체를 유기했다고 설명되는데, 뒤에서는 교사라는 직업 따위는 중요하지도 않다고 하니 뭐가 맞는지도 잘 모르겠고요. 이럴 바에야 애초에 시신을 좀 더 철저히 유기했더라면 만사 형통이었을겁니다. 이렇게 정체를 드러낸 이후, 불화가 있던 아내 영주의 돈까지 끌어모아 해외 도주를 시도한다는건 그야말로 최악이었고요. 이 와중에 김준후의 아내 영주는 왜 이혼을 하려고 하지 않는지, 왜 재결합을 원해서 지방까지 따라 내려왔는지 등이 제대로 설명되지 않아서 답답했습니다.
경비원 황권중 묘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초반에는 별 생각없이 태만하게 근무하는 사람좋은 아저씨로만 보였는데, 현장의 증거를 확보한 뒤 준후를 협박한다는건 별로 와 닿지 않더라고요. 초반부터 철저하고 깐깐한 아저씨로 묘사했다면 훨씬 좋았을텐데 말이지요.

황권중의 협박으로 비롯된 사건들도 다소 억지스러웠습니다. 김준후가 협박에 응하지 않는건 당연했어요. 자기는 범인이 아닌게 확실하고, 범인이 누구인지 드러나지도 않은 상황에서 자신이 범인이라는 협박에 직접 움직인다는건 바보짓이니까요. 어설프게 김준후가 행동에 나설 이유는 없었습니다.
게다가 김준후에게 보낸 협박장을 본 조미란이 직접 나서 황권중을 죽였다는 건 더 이상합니다. 다현을 죽인 진범이 자기 아들 은성이라고 생각한 나머지 그를 죽였다는데, 협박장이 보내진 상황을 보면 황권중은 김준후가 범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조미란이 황권중을 서둘러 죽일 필요는 없지요. 죽이기 전에, 김준후와 만나서 무얼 어떻게 하는지를 먼저 살펴보는게 당연했습니다.
물론 이 범행은 어머니의 절박한 심정 때문이었다면 아예 말이 안 되는건 아니겠지요. 그러나 조미란이 지극히 간단한 수사에 의해 체포되는건 납득하기 어려웠어요. 아들의 범행이 드러나지 않기 위해 살인을 저질렀는데, 이렇게 쉽게 체포되는거야말로 주객이 전도된 셈이잖아요? 조미란을 체포한 후, 경찰이 심문할 때 은성이를 불러다 함께 심문을 한 것도 법적으로 가능해 보이지 않았고요.
애초에 황권중이 확보했던 증거라는 다현을 매달았던 끈을 현장에 두고왔다는 것도 좀 납득이 되지 않은 등, 여러모로 황권중 사건은 극적 긴장감을 높이기 위해 벌였던 무리수로밖에는 생각되지 않았습니다.

다현의 죽음이 자살이었다는 진상도 놀랍기는 했지만, 설득력이 약한건 마찬가지였어요. 다현이 자살한 동기까지는 납득이 갑니다. 준후와도 영원히 함께 할 수 없다는걸 깨닫고, 친구한테도 용서받지 못해서 죽음을 택했다는건 꽤나 타당한 이유니까요. 그러나 누군가에게 살해당한 것 처럼 위징해서 자살할 이유는 잘 모르겠어요. 자살로 밝혀지면 준후가 빠져나갈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던걸까요? 다현이 목을 매는 끈을 손으로 쥐고 몸을 끌어올린 뒤 목을 집어 넣어 죽었기 때문에 아래에 발판이 없었다는 진상을 다현이 사실 남자였다는걸 드러내는 장치로 사용한건 효과적이었지만, 이를 위해 다소간 억지를 부린 느낌이 강하게 듭니다. 준후에게 복수하는게 궁극적인 목적이었다면, 준후의 체액을 몸에 담은 채 유서를 쓰고, 학교 운동장에서 목을 메는게 더 나았을거에요. 이래서야 개죽음일 뿐이지요.

이렇게 단점이 없지는 않지만, 재미있게 읽은건 분명합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아직 읽어보시지 않으셨다면, 한 번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네요. 서술 트릭이 사용되어 영상화나 시각화는 어려운만큼, 반드시 책으로 읽어야 하는 작품이기도 하니까요.

2021/11/19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밀실 대도감 - 아리스가와 아리스 / 김효진 : 별점 1.5점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밀실 대도감 - 4점
아리스가와 아리스 지음, 이소다 가즈이치 그림, 김효진 옮김/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추리작가 아리스가와 아리스가 선정한 밀실 트릭 걸작 40편을 일러스트레이터 이소다 가즈이치의 그림과 함께 소개하는 책.
몰랐던 작품에 대해 알게된 건 좋았습니다. 어떤 트릭이 사용되었을지? 생각하게 만드는 글솜씨와 저는 별로였던 작품에 대해 호평하는 이유 등 아리스가와 아리스만의 시각도 볼 만 했고요. 저는 폄하했던 작품에 대해 왜 높이 평가하는지? 는 저 역시 리뷰어로서 많은 공부가 되었어요.

그러나 솔직히 다른 점들은 거의 모두 기대 이하였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이런 리뷰 모음인 줄은 몰랐던 탓입니다. 밀실 트릭에 대한 분류와 대표작 소개 등, 이론적으로 접근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구입했는데 예상과 너무 다르더군요.
게다가 소개된 트릭의 비밀을 완벽하게 숨기는 것도 큰 문제입니다. 서두에서 이 책은 일종의 '초대장' 임을 분명히 밝히며 앞으로 이 작품을 읽어보라는 취지의 리뷰이니 이렇게 쓴 건 당연합니다만... 절반에 가까운 작품이 국내 출간되지 않은게 문제지요. 국내에는 서양 미스터리 20선 중에서 11편 - 빅 보우 미스터리13호 독방의 문제, 노란 방의 비밀, 급행열차 안의 수수께끼 (<<세계 미스터리 걸작선 1>>에 수록), 시계 종이 여덟 번 울릴 때, 개의 계시세 개의 관모자에서 튀어나온 죽음, 킹은 죽었다, 벌거벗은 태양, 투표 부스의 수수께끼 (<<샘 호손 박사의 불가능 사건집>> 수록) -, 일본 미스터리 20 + 1 중에서도 11편 - D 언덕의 살인사건, 거미완전 범죄등대귀혼진 살인 사건문신 살인 사건호로보의 신 (<<아 아이이치로의 낭패>>에 수록), 천외소실 사건, 인형은 텐트에서 추리한다녹색 문은 위험모든 것이 F가 된다모든 것이 F가 된다 - 이 출간되어 있습니다(2021년 11월 기준). 41편 중 무려 19편이 미출간된 상황이에요. 이래서야 거의 절반 가까이는 정답을 알래야 알 수 없는 퀴즈집을 읽은 셈이라 짜증이 날 수 밖에 없네요.
소개된 작품들이 선정된 이유도 여러가지를 대고 있지만, 결국 트릭만 멋지면 다른건 다 간과하는 듯한 리뷰도 불만스럽습니다. <<녹색문은 위험>> 같은 작품을 선정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애초에 이 작품 속 트릭은 기발하기만 할 뿐 현실성은 전혀 없거든요. 하긴, 밀실 자체가 범인이 일부러 만들 이유가 없다는 점을 너무 대충 넘어가는 것 부터가 이상해요. 애초에 밀실 '살인'은 말이 안됩니다. 밀실에서 죽었다면 자살이어야죠.

수록 일러스트들도 실망스러웠습니다. <<거미>> 속 거미 연구소처럼 몇몇 작품 속 건물에 대한 일러스트는 나름 반가왔지만 대체로 간단한 평면도와 밀실이 있는 건물의 간략한 스케치 수준에 불과해서, 예쁘기는한데 무가치했습니다. 책도 꼼꼼히 읽고, 관련 자료도 열심히 수집했다는 일러스트레이터의 설명이 무의미하게 여겨질 정도로요. 이왕 밀실 트릭 해설을 위한 그림을 싣는다면, 트릭을 설명하는 용도가 훨씬 좋았을거에요. <<급행열차 안의 수수께끼>>의 복잡한, 기차 내부 장치들을 활용하여 만든 장치 트릭을 그려 주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게 '밀실 대도감' 취지에도 더 잘 맞았을테고요.
이런 문제에 더해 3만원에 육박하는 가격도 용납하기 어렵습니다. 내용을 떠나 분량, 완성도 등 모든 면에서 이 가격을 받을 책은 절대로 아닙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1.5점. 조금 조사해봤더니 저와 같은 이유 - 단순한 리뷰 모음, 트릭 설명 없음, 무의미한 그림들 - 로 이 책에 실망하신 분들이 많더군요. 저도 좀 조사해보고 구입할걸 그랬습니다.

마지막으로, 너무 궁금했던 나머지 인터넷을 뒤져 알아낸, 국내에서 구할 수 없는 작품들 트릭을 몇 개 찾아서 소개드립니다. 당연히 스포일러입니다. 혹시라도 국내 출간에 기대를 걸고 계시다면, 절대 읽지 마세요.

<<밀실의 수행자>>
비록 국내 소개된 작품은 아니지만 트릭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세계의 명탐정 50인>>에 소개된 적이 있기 때문이지요. <<소년탐정 김전일>>의 <<이진관촌 살인사건>>에서도 살짝 비틀어 사용되기도 했고요.
진상은 인도인 하인들이 위의 창을 통해 침대를 천장까지 끌어올렸던 겁니다. 백작은 고소공포증이 있던 탓에 침대에서 탈출하지 못하고 굶어 죽게 된 거지요.

<<엔젤 가의 살인>>
엘리베이터 천장 창문을 통해 엘리베이터가 내려가면 칼이 떨어진다는 장치 트릭.
작품을 읽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칼을 3층 천정쪽에 묶은 끈으로 엘리베이터 천정에 매달아 놓으면, 엘리베이터가 내려가면서 끈이 끊어지고, 칼이 떨어져 아래 사람에게 꽂힌다는 걸까요?

<<고블린 숲의 비밀>>
뒷문 쪽에 있던 사촌이 잽싸게 집에 들어가 비키를 죽이고, 방수 시트 위에서 잽싸게 시체를 해체해서 짐 속에 나누어 넣었다. 그리고 뒤따라 온 사촌이 비키를 찾는 척 정문으로 들어간 뒤 뒷문을 잠근 것. 그리고 짐을 차에 싣고 돌아간게 진상이었다.

<<지미니 크리켓 사건>>
이야기를 들려주는 자일즈가 범인이었다. 그는 경찰복을 입고 큰아버지를 살해한 후 방 안에 숨어있다가, 루퍼트가 들어온 뒤에 경찰들과 함께 들어온 것처럼 속였던 것. 납치했던 경찰관을 죽였던건 경찰복을 돌려주기 위해서였다.
루팡 3세 애니메이션에도 사용된 트릭이라지요. 조금 조사해보니, 자일즈와 노인의 관계에 대한 반전도 인상적이라고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51번째 밀실>>
범인이 지붕을 떼어내고 탈출하는 트릭.
그림만 봐서는 잘 모르겠네요. 범행을 저지른 동기 쪽이 더 재미있어 보였습니다.

<<그리고 죽음의 종이 울렸다>>
조각상 밑에 쐐기를 꽂아 놓아 쓰러지기 쉽게 해 놓은 뒤, 창 밖에서 푸코의 진자를 움직이면, 진자가 조각상에 맞아 쓰러지게 만든 것.
설명만 읽어서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런 트릭의 작동 원리를 그려 주었어야죠!

<<보이지 않는 그린>>
살해 장소인 화장실의 작은 환기구로 고무 보트를 들여놓은 뒤, 좁은 화장실 안에서 고무보트를 부풀려 심장 빌작을 일으킨 것.

<<다카마가하라의 범죄>>
현인신은 신이라서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는다. 무녀가 조서를 들고 2층에서 내려왔기 때문에 신과 같은 존재가 되어 보초 눈에 보이지 않았던 것.
찾아본 결과로는 이러하던데, 이게 말이 되나요?

<<구혼의 밀실>>
어린 아이가 범인. 피해자와 범인이 협력하여, 피해자 어깨 위로 범인이 올라가서 3미터 이상 높이였던 천장 채광창으로 탈출한 것.

<<로웰성의 밀실>>
만화책 37페이지에 있던 엘로라를 맞은편 36페이지에 있던 홀리가 손을 뻗어 살해한 것.
3차원의 인물이 2차원에서 저지른 사건으로, 이소다 씨의 일러스트가 나름 힌트가 되기는 하네요. 이걸 트릭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밀실대도감

2021/11/14

알라딘의 2021 당신의 기록

 https://www.aladin.co.kr/events/wevent.aspx?EventId=226230&custno=249021

Q.E.D Iff 증명종료 16 - 카토 모토히로 : 별점 1.5점

Q.E.D Iff 증명종료 16 - 4점
카토 모토히로 지음/학산문화사(만화)

Q.E.D의 두 번째 시즌이라고 할 수 있는 iff도 16권 째입니다. 그런데 수록된 두 편의 이야기 모두 억지스러운 설정과 전개로 점철된, 수준 이하의 작품들이었습니다. 첫 번째 이야기인 <<시계탑>>은 그나마 추리적으로 약간 볼만합니다만, 이야기의 현실성이 부족하여 도저히 좋은 점수를 줄 수 없네요.
또 두 편 모두 Q.E.D 시리즈일 이유를 알 수 없다는 점도 감점 요소에요. 토마와 가나가 사건에 휘말리게 되는 이유가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 탓입니다. 내용만 보면 '지나가던 명탐정이 수수께끼의 괴사건을 해결한 뒤, 제 갈길을 간다'는 이야기니까요.

별점은 1.5점입니다. 시리즈의 오랜 팬으로 애정을 담아서 이 정도이지, 팬이 아니었다면 그 이하 별점도 가능했을 졸작이었어요. 읽다가 힘이 다 빠질 정도였는데, 후속권에서는 부디 만회해주기만을 바랍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두 편 모두 스포일러가 그렇게 의미있는 이야기는 아닙니다만...

<<시계탑>>
시계탑이 있는 건물에 저렴한 애프터눈 티 세트를 파는 카페가 생겼다. 가나들은 열광했지만 얼마 지나지않아 기업가 데마키가 운영하는 게스트 하우스로 바뀌었다. 게스트 하우스는 큰 적자를 보던 끝에, 데마키에게 돈을 빌려주었던 투자자 다이바가 실종되고 데마키가 도망가버리는 사건이 일어났다. 조사해보니, 시계탑이 있는 건물에서 지난 60년간 2건의 살인 사건, 3건의 실종 사건이 있었다는게 밝혀지는데....

이전에도 등장했던 타나바타 형사가 재 등장하는 작품.
원래 시계탑 건물에 거주했던 화가 오키가 실종되었던게 사건의 원인이었습니다. 오키는 시계탑 주인 하토야 가문의 딸 하라코와 사랑에 빠졌었는데, 이를 반대하던 하라코의 오빠 히카루와 만난 후 사라졌습니다. 당시 비명 소리를 들었다는 신고가 들어와서 경찰이 수색을 진행했지만 시체는 발견하지 못했고, 사건은 오빠가 말한대로 오키가 돈을 받고 떠난걸로 마무리되었지요.
그러나 이를 믿지 못했던 하라코는 시체를 찾기 위해 시계탑을 자기 소유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샅샅이 뒤진 끝에도 건물 안에서 시체를 발견하지 못하자, 살인 사건을 저지를만한 사람에게 건물을 빌려줬던 겁니다. 그들이 살인 사건 후 시체를 숨긴 곳에 오키의 시체도 있을거라 생각해서요. 즉, 일종의 집단지성? 에 기댄 셈입니다.

하지만 너무 어설픈 설정입니다. 건물을 빌리려는 사람 중 누가 살인을 저지를지를 어떻게 예상할 수 있단 말입니까? 그리고 건물에서 살인이 일어나게 만들고, 범인들이 숨긴 시체 (실종 사건으로 처리된 시체들)를 따로 가져다 버리는 것보다, 돈을 써서 전문가에게 시체 찾기를 요청하는게 더 상식적일 겁니다. 애초에 범인이 시체를 숨길만한 곳도 조사를 하지 않았다는 것도 말이 안되고요.
오키의 시체가 시계의 동력 역할을 하는 돌 주머니를 이용하여 감추어졌다는 진상도 당황스러웠습니다. 애초에 시계탑 기둥은 철저히 조사하는게 당연했습니다. 설령 사건 직후에는 못했다 하더라도, 시계가 작품에서처럼 동작 이상을 일으켰다면 어쩔 수 없이 조사가 이루어졌을 거에요. 그러나 토마가 나설 때 까지 시체를 발견하지 못했다?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시계를 정기적으로 관리했다는 언급까지 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지요. 아울러 주머니에 감추어진 시체가 백골이 될 때까지 들통나지 않았다는 것도 설득력이 떨어졌어요. 거주자도 있었고, 이런저런 가게가 있었는데 아무런 냄새나 흔적 없이 시체가 자연스럽게 백골이 될 리가 없잖아요.
하긴, 시체가 수십년간 돌 주머니 줄에 매달려 있었다는 것 자체가 완전 억지입니다. 사건이 대충 무마된 후에, 살인을 저질렀던 히카루가 직접 시체를 없애는게 당연하잖아요? 하라코 본인도 건물 안에 범인들이 숨겨놓은 시체를 그대로 놔 두지 않고 따로 처리해 버렸잖아요. 오빠 히카루가 오키의 시체를 진작에 처리하지 않았다고 생각할 근거는 전혀 없어요.

토마와 가나가 사건에 휘말린 이유도 설명이 부족하며, Q.E.D 특유의 학습 만화스러운 부분도 거의 찾아보기 힘들어서 Q.E.D 시리즈가 맞는지도 의심스러울 정도입니다. 의미있는 정보는 게스트 하우스 사업이 실패한 원인 - 외국인 여행객들은 시간을 중요하게 여기므로 역이 가까와야 한다, 마찬가지로 식사도 쉽고 싸게 할 수 있게 편의점이 가까와야 한다, 목욕탕에 문제가 있다는 클레임을 무시하면 안된다 - 을 아르바이트 아가씨가 읆조리는 정도만 눈에 뜨였을 뿐입니다.

그나마 소소한 추리, 시계탑 건물에 관련된 나쁜 소문을 없애기 위해 자기 소유 회사가 운영하는 가게를 오픈하여 저렴한 가격으로 손님을 끌어들이려 했다면, 왜 계속 그런 방법을 쓰지 않고 다른 사업자에게 임대를 했는지?에 대한 설명은 괜찮았습니다. 또 다이바 실종 사건에서 사용되었던 무거운 우물 뚜껑에 시체를 묶어 놓았다는 시체 은닉 트릭도 기발했고요. 경찰도 뚜껑이 너무 무거워서 내려 놓지 않고, 옆으로 살짝 옮겨 놓고 우물 속을 조사해서 들키지 않았다는건데, 상황만 놓고 보면 꽤 그럴싸했고든요. 출동한 경찰조차 무거워서 완전히 내려 놓지 않은 뚜껑을 짧은 시간 동안 혼자서 내려놓고, 시체를 위에서는 안 보이도록 묶은 뒤 다시 혼자서 올려 놓았다는건 여러모로 무리라고 생각되었지만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1.5점. 사건의 원인에 대한 설득력이 부족한 탓에 현실성이 무너져버린 수준 이하의 이야기였습니다.

<<마드무아젤 클루조>>
파리 프루니에 미술관에서 <<달과 거북이>>이 도난당했다. 프루니에 관장의 요청으로 실수투성이 마리안느 클루조 경부가 사건을 맡게 되었다. 범인이 요구했던 50만 유로는 전달 과정에서 사라졌지만, 다행히 그림은 그림 애호가 루이 오규스트의 도움으로 미술관에 무사히 반환되었다. 그리고 이 사건이 널리 보도된 탓에 프루니에 미술관은 문전성시를 이루는데...

클루조 경부 혼자의 원맨, 아니 원우먼쇼가 펼쳐지는 작품. 오규스트가 수상하다는걸 눈치챈 뒤 그를 미행하여 그가 원래는 배우였다는걸 알아낸다던가, 돈이 든 가방에 일부러 홍차를 쏟아서 나중에 가방이 바뀌치기된게 아니라는걸 증명한다는 식으로 사건 해결은 모두 그녀 혼자의 힘으로 이루어냅니다. 때문에 이 작품은 Q.E.D 시리즈일 하등의 이유가 없어요. 토마가 하는 일은 전무하다시피하고, 가나가 우연히 크루소 경부와 엮여서 수사에 동행하기는 하지만 지나치게 억지스럽기도 했고요. 프랑스 경찰이 생면부지의 일본인 관광객?과 수사를 벌인다는게 말이나 될까요?

추리적으로도 눈여겨볼만한 부분은 없습니다. 그림 도난과 그림값을 빼돌리는 두 건의 범행이 벌어지는데, 두 개 다 추리가 필요한 범죄가 아니었습니다. 그림 도난 사건은 인기없는 미술관에 손님을 끌기 위한 프루니에의 계획이라는게 처음부터 공개되니까요. 오규스트의 정체는 추리가 아니라 미행으로 알아내고요. 배우라는 오규스트의 정체는 미행이 아니었어도 경찰 조사로 쉽게 알아낼 수 있었겠지만요.

'경부는 아무나 되는게 아니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면서도 실수 투성이인 클루조 경부 캐릭터도 추리 소설에서는 너무나 흔해빠진 설정이라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애초에 왜 신규 캐릭터를 등장시켰는지도 잘 모르겠어요. 이름부터 당대 서스펜스 스릴러의 거장 앙리 조르주 클루조 감독에서 따온 듯 싶은데, 뭔가의 콜라보레이션 기획이 아니었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1점. 미술품 도난에 대한 짤막한 정보가 공유되는 것 외에는 건질게 하나도 없는, 전작은 괜찮다고 생각하게 만들 정도로 형편없는 졸작이었습니다.

2021/11/13

노킹 온 록트 도어 - 아오사키 유고 / 김은모 : 별점 2.5점

노킹 온 록트 도어 - 6점
아오사키 유고 지음, 김은모 옮김/엘릭시르

우리 탐정 사무소의 현관문에는 인터폰이 달려 있지 않다.
차임벨이나 초인종, 노커 따위도 없다.
따라서 방문자들은 반드시 맨손으로 문을 노크해야 한다.
왜냐하면 노크하는 방법에 따라서 어떤 손님이 문 앞에 서 있는지 대개 추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타쿠 탐정 우라조메 덴마 시리즈의 작가 아오사키 유고의 새로운 시리즈 단편집. 불가능 전문 고텐바 도리, 불가해 전문 가타나시 히사메, 두 명의 탐정이 함께 운영하는 탐정 사무소 '노킹 온 록트 도어'에서 의뢰받은 사건들을 해결하는 일곱 편의 단편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장점이라면 완벽한 고전 본격물 스타일이라는 점입니다. 모든 작품들에 일정 수준 이상의 트릭이 사용되어 있으며, 이를 추리하기 위한 단서들도 독자 시점에서 공정하게 제공됩니다. 추리 소설 황금기 시절 대표작들에 전혀 뒤지지 않을 정도에요. 과연 신세대 본격물로 유명했던 오타쿠 탐정 우라조메 덴마 시리즈의 작가다왔습니다.

그러나 현대 배경 본격물의 지닐 수 밖에 없는, 지나치게 작위적이라는 단점은 있습니다. '탐정 사무소'에 '불가능 사건'의 해결을 의뢰한다는 기본 설정부터가 현대물에 적합할리 없지요. 의뢰를 받기는 하는데, 보수를 누구한테서 어떻게 받는지는 설명되지 않는 등, 여러 모순이 눈에 뜨이기도 하고요. 작품 속 트릭들도 마찬가지에요. 법의학이나 법과학으로 충분히 풀어낼 수 있었던 트릭이 많았던 탓입니다.
캐릭터도 아쉬웠습니다. 고텐바 도리가 특히 그러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반말을 하고 탐정이라는 자의식이 넘쳐나는 캐릭터 묘사 자체가 영 별로였거든요. 우라조메 덴마가 떠오르기도 했는데, 캐릭터의 독특함과 매력은 훨씬 못 미칩니다. 히사메는 약간이나마 인간적인 매력을 보여주는 덕분에 그나마 조금 낫기는 했습니다만, 도긴개긴이었어요.

게다가 한 명은 불가능, 즉 하우더닛 쪽 전문가이고 다른 한 명은 불가해, 즉 와이더닛 쪽 전문가라는 설정은 최악이었습니다. 와이더닛 탐정 히사메의 존재는 아무리봐도 불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수록작 중 히사메가 '불가해'를 풀어서 사건을 해결하는 작품은 <<다이얼 W를 돌려라>>밖에는 없습니다. <<이른바 하나의 눈 밀실>>에서 불가해한 상황을 풀어내기는 했지만, 완벽하지는 못했고, <<칩 트릭>>에서는 트릭을 풀어냈지만 이토기리 미카게로부터 결정적 증거를 입수했던 덕분이었습니다. 게다가 어차피 불가능 범죄에 대한 내용이라서 설정상으로는 히사메가 활약하면 안되는 작품이기도 했고요. 반대로 불가해 상황이 등장하는 <<머리카락이 짧아진 시체>>에서는 히사메는 헛다리를 짚고, 진상은 도리가 풀어냅니다. 이 역시 설정에 반하는 작품인 셈이지요. 대체 왜 두 명의 탐정이 필요했던걸까요? 셜록 홈즈와 그 라이벌들의 시대였다면 모를까, 현대물에 가당키나 한 설정도 아니었고요.
그렇다고 둘이 있을 때 뭔가 재미가 발생하는 것도 아닙니다. 시종일관 둘의 말다툼이 이어지지만 별다른 재미는 없었어요. 추리를 하면서 둘 사이의 티키타카가 빛났던건 <<십 엔 동전이 너무 없다>>가 유일했습니다. .
아울러 악당들을 위해 트릭을 설계해주는 '칩 트릭' 이토기리 미카게도 <<소년탐정 김전일>>의 지옥의 광대 요키치나 <<탐정학원 Q>>의 케르베로스와 같은 만화 속 등장인물을 떠올리게 만들며, 경찰 쪽 협력자이자 친구인 우가치 기마리 경위가 막과자를 좋아한다던가 하는 소소한 설정들도 유치하기 짝이 없더군요. 흡사 만화를 연상케했거든요.

본격물로는 나쁘지 않지만, 이런 점들로 볼 때 차라리 만화화 버젼 쪽이 더 나으리라 생각되네요.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노킹온록트도어>>
살해당한 화가 가스미가 히데오의 미망인 미즈에가 사건 해결을 의뢰했다. 화가는 잠긴 작업실에서 등에 칼에 꽂힌 시체로 발견되었는데, 작업실은 밀실이었다. 남겨져있던 화가의 풍경화 여섯 점은 액자에서 꺼내져 바닥에 내팽겨쳐져 있었고, 그 중 한 점은 온통 새빨갛게 덧칠이 되어 있었다...

두 탐정 및 관련된 모든 설정이 소개되는, 시리즈의 시작을 알리는 표제작.
트릭은 그림 여섯 점을 쌓아서 문 앞에 놓고, 카펫으로 덮어놓았던 겁니다. 그 위에 성인 남자 두 명이 서서 문을 열려고 해서 문이 열리지 않았던 거지요. 문이 잠겨있던게 아니라요. 그림 두께만큼 카펫 길이가 부족해져서, 맨 위 그림은 카펫 색깔로 덧칠했던게 새빨간 그림으로 남게 되었고요.
범인은 걸쇠를 열 도구를 가져와 달라는 핑계로, 함께 있던 어머니와 미술상을 아래로 내려보내어 현장을 정리할 수 있었던, 그리고 잠겨져 있지 않았던 문을 여는 척 했던 화가의 아들 류지였습니다.

이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은 본격 추리 소설로의 완성도가 높다는 점입니다. 트릭의 핵심인 복도의 폭과 레드 카펫의 존재, 그림 크기와 캔버스 두께에 대하 상세히 설명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트릭을 풀기 위해 가장 중요한 단서였던, 문을 두드릴 경우 바닥으로 떨어지는 하얀 페인트 가루가 현장에서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 역시 빼 놓지 않고요. 트릭을 파헤친 뒤, 이를 통해 범인이 누구인지 드러내는 전개도 합리적이었어요.

그러나 그림을 카펫 바닥에 깔았던 이유는 아버지의 친구인 미술상이 그림을 밟게 만드려는 목적이었다는 히사메의 추리는 억지스러웠습니다. 자기 작품에 대해 모욕받았다는 동기는 명확했고, 작업실을 밀실로 만들려는 목적도 확실해서 이를 불가해 상황으로 볼 이유도 없었고요. 오히려 이 논리대로라면 밀실은 우연히 발생했다는 의미가 되잖아요?
마지막 히사메의 추리가 없었다면, 아니, 히사메의 존재 자체가 없었다면 더 좋은 작품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머리카락이 짧아진 시체>>
사건 중개인 진보가 받아온 의뢰는 극단 "목이버섯"의 리더 젠다 미카 살인 사건이었다. 그녀는 속옷만 입은 채 연습실의 물이 틀어져 있는 욕실에서 목이 졸려 죽은 채 발견되었다. 문제는 그녀의 치렁치렁했던 긴 머리가 짧게 잘린 채였다는 것...

진상은 젠다 미카가 스스로 머리를 잘랐던 겁니다. 애인 오쿠데라로 변장하기 위해서요. 연습실에서 다투다가 애인 오쿠데라를 목졸라 살해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연습실에서 시체를 옮기기 위해 큰 상자 속 짐을 비운 뒤, 그 안에 시체를 넣을 생각이었어요. 연습실에서 시체가 발견되면 젠다 미카가 범인이라는게 너무 쉽게 드러나게 되니까요. 그래서 짐은 다른 극단원 니시베를 시켜 옮기고, 자기는 오쿠데라로 변장해서 극장을 방문한 뒤 다른 사람으로 변장해서 사라질 속셈이었지요. 그럼 극장을 방문했던 오쿠데라가 누군가에게 살해당했다고 생각할거라 여긴거지요. 그러나 오쿠데라는 죽지 않았었고, 의식을 회복한 후 그녀를 목졸라 죽였던 겁니다.

기묘한 상황을 합리적인 추리로 설명하는 전개가 좋았던 작품입니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본격 추리 소설로는 완벽했어요. 단서 제공은 공정하고, 추리도 합리적이었으니까요.
그러나 전편보다도 설득력은 약했습니다. 일단 젠다 미카의 계획은, 실제로 일어났다 한들 과학 수사의 벽을 넘을 수 없었을 겁니다. 검시가 이루어지면 오쿠데라의 사망 시각은 그가 마지막으로 목격된 시각 이전으로 판명될 가능성이 높으니까요. 그렇다면 경찰은 극장으로 옮겨진 커다란 '짐'의 존재에 주목할 수 밖에 없었겠죠.
머리카락을 흉기로 썼을거라는 히사메의 최초 추리도 용의자를 조사할 필요는 없었어요. 목에 남은 흔적으로 흉기가 뭔지는 파악이 가능했을 테거든요.
죽은 줄 알았던 오쿠데라가 일어나사 젠다 미카를 다시 살해했다는 진상도 억지스러웠습니다.

또 불가해한 상황 풀이인데 히사메는 헛다리를 짚고, 도리가 진상을 풀어낸다는 전개도 좀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이럴 거라면 두 명의 탐정이 필요 없잖아요?

그래서 별점은 2.5점. 설득력 높은 이야기라기 보다는, 불가해한 상황을 풀어내는 추리 퀴즈 느낌이 더 강하게 들었던 작품입니다.

<<다이얼 W를 돌려라>>
30분 간격으로 의뢰가 들어왔다. 첫 번째 의뢰는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금고를 열어달라는 나가노사키 히토시의 의뢰였다. 유언장에 남겨진 대로, 금고 위 아래 다이얼을 돌렸지만 금고는 전혀 열리지 않는다고 했다.
두 번째 의뢰는 한 밤중 산책을 나갔다가 죽은 아버지는 경찰은 사고사로 판단했지만, 아버지는 살해당했다며 찾아온 시마즈 나쓰코의 의뢰였다. 두 탐정은 각각 사건을 맡아 해결을 위해 나서는데...


결국 두 사건이 하나로 합쳐지는 구조로 금고가 열리지 않았던 이유는, 뒤집어져 있었기 때문이라는 간단하면서도 명쾌한 해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범인이 금고를 뒤집어 놓았던건, 윗면에 할아버지를 죽일 때 피가 묻었기 때문이었고요.
금고가 뒤집혔다는걸 알아낸 히사메의 추리도 좋았지만, 할아버지가 실제로 살해당했던 것을 지팡이를 통해 알아내고, 범인이 누구인지 추리해 내는 도리의 추리도 좋았습니다. 모처럼 컴비 플레이가 빛났네요. 이를 추리해내기 위한 단서 제공도 공정하고요.

고작 십만엔 정도로 살인을 저지를 수 있었을지, 금고가 뒤집힌걸 그렇게 쉽게 눈치채기 어려웠을지, 왜 탐정이 오기 전에 원상태로 복구해 놓지 않았는지 등 의문이 없지는 않지만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별점은 3.5점입니다. 이 단편집의 베스트로 꼽겠습니다.

<<칩 트릭>>
대규모 개인 정보 유출 사건이 일어난 하나와 스쿨의 핵심 용의자였던 중역 유바시 진타로가 저격으로 사망했다. 문제는 그는 암살을 극도로 두려워해서 평소 서재 창문에는 가까이 가지 않았던 탓에, 그를 창 밖에서 저격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이 불가능해 보이는 암살이 가능하도록 만든 건, 도리와 히사메, 그리고 경찰 우가치의 대학 동기인 '칩 트릭' 이토기리 미카게였다...

창 밖에서 쏜 총에 유바시가 맞아 죽은건 확실합니다. 입사각도 명확했고요. 그러나 그가 창 바로 앞에 있었던게 아니라면? 서재 중앙 지점에서 발판 위에 올라가 있었던 겁니다. 높이가 높아졌던 탓에 입사각이 맞아 떨어졌던 거지요.발상 자체는 그럴듯합니다.

그러나 이 경우, 총 한 발로 정확하게 맞출 수 있었을까요? 저는 불가능했을거라고 봅니다. 형광등을 가는 위치가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고, 조금만 중심에서 빗나가 있어도 원거리 저격은 성공했을리 없어요.
그리고 메이드 고노에가 해고되지 않기 위해, 시체를 창 밑에 옮겨놓았다는 것도 억지스러웠습니다. 해고되는 것 보다, 현장 조작이 더 큰 중죄잖아요? 또 상황이 이상하다 하더라도, 유바시가 저격당해 죽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습니다. 범인 입장에서는 이렇게 조작할 이유가 없고, 경찰도 구태여 탐정을 불러다가 불가해 상황을 해결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냥 그 날만 우연히 유바시가 창가에 서게 되었다는 설명으로 충분했을 테니까요.
이런 점에서는 불가해한 상황의, 불가능 범죄를 만들기 위한 억지에 불과했던 이야기에요.

아이디어는 높이 평가할 만 하지만, 현실성없고 설득력없는 이야기였기에 별점은 2점입니다.

<<이른바 하나의 눈 밀실>>
눈이 쌓인 공터 한 가운데에서 칼에 찔린 가쓰히코의 시체가 발견되었다. 시체까지는 가쓰히코의 발자욱 하나만 남아 있었고, 흉기인 칼에 지문은 없었다.

동생과 싸운 뒤 흥분한 가쓰히코가 갓 세척을 마친 식칼을 들고 동생 집으로 향하다가 실수로 쓰러질 때 칼에 찔려 죽었다는 진상은 합리적이었지만, 흉기에 지문이 남아있지 않았던건 제대로 설명하지 못합니다. 손에 묻었던 눈이 녹으면서 씻겨 나갔다는데, 현실성이 없어 보였거든요. 물 좀 묻는다고 지문이 그렇게 쉽게 지워질까요? 그렇다면 손바닥에 묻었던 피는 왜 안 지워진 걸까요?

이 진상보다는 중간 부분에 등장하는, 가쓰히코 공장 직원 두 명이 공모했다는 도리의 추리가 훨씬 더 나았습니다. 한 명이 먼저 현장으로 가서 죽은척 하고, 그 뒤 다른 한 명이 집에서 죽인 시체를 짊어지고 간 뒤, 시체를 내려놓고 공범자를 짊어지고 오면 된다는 추리로 꽤 그럴듯했어요. 최소한 지문이 눈이 녹은 물에 씻겨 나갔다는 것보다는 훨씬 좋았습니다. 칼에 대해 잘못 말한건, 그냥 말실수였다고 해도 무방했을테고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십엔 동전이 너무 없다>>
탐정사무소의 여고생 아르바이트 구스리코는 심심해하던 탐정들에게 학교에 가다가 들었던 기묘한 말의 진상에 대해 추리를 부탁한다. 수상한 남자가 스마트폰으로 누군가에게 했던, "십 엔 동전이 너무 없어. 다섯 개는 더 필요해."라는 말이었다.

제목과 내용 모두 걸작 단편 <<9마일은 너무 멀다>>를 오마쥬하고 있는 작품. 두 탐정이 서로 각자 추리를 말하고, 반론하며 서서히 진상에 근접해 나가는 과정의 빌드업이 좋습니다. 탐정이 두 명인게 그나마 긍정적으로 사용된 예라고 할 수 있겠지요.

수상한 남자는 꽤 여러 번 공중전화를 사용하여 전화를 걸어야 했지만,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었던 점에서 남자가 공중전화를 사용한 이유가 신원을 감추기 위해서라는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또 동전 갯수를 어림잡았다는 점과 평일 낮이었던 시간을 근거로 둘은 수상한 남자가 전화번호부를 통해 알아낸 특정 지역에 사는 주부들에게 모조리 전화를 하려고 했다고 추리합니다.

추리 자체는 나쁘지 않았고, 이야기 특성 상 그냥 여기서 마무리해도 좋았을텐데 추리가 진짜였다는게 드러나는건 좀 별로였어요. 전화번호부와 공중전화가 과연 21세기에 먹힐 이야기는 아닌 듯 싶었거든요. 저만 해도 집에 전화가 없습니다. 휴대전화로 충분하니까요. 또 수상한 남자의 의도대로 형편좋게 전화를 받았다고 한 들, 1분 정도의 전화 통화를 통해 들은 목소리로 그 주부가 누구인지 특정한다는건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피해자가 마침 떨어트린 화과자 포인트 카드로 범인들이 그녀가 사는 동네와 성을 알아냈다는 것도 작위적이었고요.

<<9마일은 너무 멀다>>의 변주로 적당한 완성도는 갖추고 있었지만, 추리 놀이는 놀이로만 끝내는게 훨씬 좋았을 것 같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99퍼센트 확실한 독살>>
중의원 의원이었던 도자마 간조가 독살당했다. 후원회 파티에서 접객 담당 종업원이 날랐던, 똑같은 잔 10개 중 도자마 간조가 무작위로 고른 한 잔에만 독이 들어있었다. 독살 방법은 '칩 트릭' 이토기리 미카게가 설계했다는게 드러나는데...

도리는 처음에 의원에가 찰싹 달라붙어 있던 비서가 샴페인을 마시기 직전에 독을 넣었다고 추리하지만, 이내 불가능하다는게 밝혀져 실의에 빠집니다. 다른 작품과는 다른게, 히사메는 트릭 담당이 아니라며 위로만 할 뿐이라는 거지요. 그래도 위로 덕분인지, 곧바로 도리는 진상을 추리해냅니다. 독은 이미 마셨던 것이고, 샴페인 잔이 아니라 의원이 서 있던 위치를 가늠하여 바닥에 독을 발라 놓았던거라고요.

하지만 추리와 전개 모두 억지스럽고 작위적이었던 수준 이하의 작품이었습니다. 추리의 착안점이 의원의 유류품이었던 것 부터가 말이 안됩니다. 여러가지 약이 있었지만, 물이 없었다는 것에 주목하는데 납득하기 어려웠어요. 물은 어디서나 쉽게 구해 마실 수 있는데, 그걸 항상 상비해서 들고 다닌다?
그리고 바닥에 미리 발라 놓았던 독이 떨어트린 샴페인 잔 속 내용물과 섞여, 삼페인에서 독이 검출되었다고 오인되었다는 것도 설득력이 낮습니다. 지나치게 운에 의지했을 뿐더러, 현대 과학 수사를 너무 우습게 본 걸로 보이니까요.

과거 도리가 목이 베여 죽을 뻔 했던 적이 있고, 그 사건 때문에 동창 4명의 행보가 갈렸으며 도리는 목이 긴 터틀넥 스웨터를 고집하게 되었다는 과거사가 살짝 선보이지만 이야기에는 별다른 역할을 하지는 못합니다. 만화적이며 과장된 캐릭터 형성에 불과해서 오히려 거슬렸어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